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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싸기대장의 형님 네버랜드 꾸러기 문고 1
조성자 글, 김병하 그림 / 시공주니어 / 2000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나는 삼남매의 맏이이다. 어릴 적 흑백사진을 보면 갓난쟁이인 동생이 누워 있는 곁에서 좋아 죽겠다고 웃고 있는 다섯 살짜리 내가 나온다. 그 중간에 나와 두 살 터울인 여동생이 있다. 다섯 살 이전의 기억이 남아 있는 사람은 잘 없을 것이다. 나도 그렇긴 하지만, 그 이후에도 부모님에게 맏이인 내가 잘못 한 거라고 야단맞은 기억이 거의 없는 것으로 보아 아마 다섯 살 이전에도 나는 아기를 귀여워하고 잘 보았던 것 같다.(어디까지나 내 생각...)
그런 탓인지, 맏이니까 의젓해야 하고 맏이니까 참아야 하고 맏이니까 양보해야 한다는 생각에 크게 사로잡혀 살지는 않는다.

요즘은 이 동화책에서처럼 자녀 터울이 큰 집이 많다. 큰아이가 동생을 늦게 보면 아무래도 한두 살 차이나는 것보다는 동생에 대한 질투심이 덜 할 것이다. 그런데 이 책의 주인공 기훈이는 초등학교 일학년인데도 삼 개월 된 동생에게 부모를 빼았겼다고 생각한다. 물론, 아이가 그렇게 생각하게 된 건 부모의 탓이다.
기훈이의 부모는 큰아이에 대한 배려가 전혀 없다. 아이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동생을 어떻게 생각하는지는 안중에 없고 갓난아이 돌보기에 바쁘다. 여덟 살이라고 질투하지 말란 법은 없지 않은가. 기훈이는 있는 대로 질투를 하고 엄마 아빠를 미워한다.




갈등 해소의 계기는 기훈이가 할머니집 찾아가다 길을 잃고 헤매는 사건이다. 이 사건으로 부모의 사랑이 동생에게만 가 있는 건 아니라는 걸 기훈이가 깨닫게 되는데, 이런 결말을 위해서 기훈이에 대한 배려가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처음부터 머리를 맴돌던 생각. 이렇게밖에 표현할 수 없는 걸까? 뭔가 다른 방식으로도 이 주제를 이야기할 수 있지 않을까?
기훈이를 야단치며 얼굴을 찌푸리는 엄마의 얼굴 그림을 보며 절로 내 얼굴도 찌푸려졌다.




기훈이와는 다르게, 갓난 동생에게 잘 해 주는 보람이, 엄마는 약국 앞에서 꽃을 판다. 보람이는 집에서 아기도 보고 엄마 점심을 싸고 갓난아이를 업고 엄마에게 점심을 가져다 준다. 그리고 말을 좀 더듬고 계속 침을 흘린다. 그러니까 보람이는 학교갈 나이임에도 학교를 가지 않고 동생을 보고 집안일을 하는 것이다.

아, 나는 왜 이런 이야기를 보면 화가 나는 것일까???
보람이를 보고 나면 기훈이의 질투가 그저 가벼운 투정으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우리 사회에는, 살기 위해서 돈을 벌어야 하는 엄마가 있고, 누구도 봐줄 수 없는 그 엄마의 아기가 있고, 제대로 배울 기회가 없는 아이가 있다. 갑자기 이 동화책의 주제가 헷갈린다. 이걸 염두에 두고 쓴 건 지 아닌지가 심히 궁금하다. 아님 내가 너무 멀리 간 건가???




꽃 아줌마의 친절로 엄마 아빠를 만나게 된 기훈,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며 갈등이 해소된다.
그런데, 작중 화자는 기훈이, 여덟 살 아이의 어투에서 어른의 화법이 읽힌다. 처음부터 끝까지. 상황 설명도 장황한 부분이 있다. 좀더 어린아이의 어투를 살렸더라면 좋았을 걸.

내가 처음에 내 어릴 적 이야기를 한 것은, 맏이에게 "넌 맏이니까 의젓해야지." 하는 말이 아이를 주눅들게 하고 스트레스가 될 수도 있다는 말을 하고 싶어서였다. 하고 보니 내 이야기는 별로 필요없는 부분이 된 것 같기도 하다.

빌려본 책. 나더러 이 책을 살 거냐고 묻는다면, 글쎄올시다, 내년이나 내후년쯤 다시 읽으면 또 다를 수도 있을까?





사소한 딴지 : 기훈이의 엄마는 아기에게 분유를 먹이고, 보람이의 엄마는 아기에게 젖을 먹인다.
그래, 그게 뭐 어때서? 라고 말하고 지나갈 수도 있지만, 가만히 한 번 생각해 보자. 아무 생각이 안 난다면 그냥 지나가면 된다. ㅡ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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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티나무 2005-06-10 00: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내가 쓰는 리뷰가 온갖 편견에 버무려진 것은 아닐런지, 쓸 때마다 걱정스럽다...
혹 편견이라면 누군가가 꼬집어 주었으면 좋겠다...
 
꿀빵과 아이스크림을 좋아한 뾰족섬 꼬마 임금님 - 현대문학어린이 동화의 숲 003, 저학년
소중애 지음 / 현대문학북스 / 2001년 11월
평점 :
절판


그림책이나 동화책을 볼 때, 나는 더이상 아이가 아니구나 하는 생각을 한다. 주인공에 감정이입을 하는 건 고사하고 재미도 떠나서, 이건 이래서 싫고 저건 저래서 안 되는 거잖아, 이걸 아이들이 보고 어떻게 생각하겠어,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책을 쓰는 거야, 이러다 갑자기, 휙, 어른이라는 허울을 뒤집어쓰고 있는 내가 보이면 쓴웃음이 난다.

며칠 전 빌려온 동화책 몇 권을 읽을 때에도 그랬다. 왜 그렇게 딴지 걸고 싶은 부분들이 많은지...
그러나, 이런 책을 만날 때 나는 기분이 좋다. 
<꿀빵과 아이스크림을 좋아한 뾰족섬 꼬마 임금님>.
제목 탓인지, 읽기를 제일 나중으로 미루었는데, 오히려 그것이 잘 한 일이었다. 이 책을 먼저 읽었다면 다른 책들에 대한 실망이 배로 커졌을 테니까.

잠깐 줄거리 : 배를 타고 나간 임금님과 남자들이 돌아오지 않자, '임금님이사는땅'에서는 임금님과 가장 가까운 친척인 여덟살 아이 '돔'을 임금님의 자리에 앉히기로 하고, 임금님 교육을 시킨다. 새 임금님은 먼구름, 돌팍 등과 함께 '배부른땅'과 '차갑게빛나는땅'을 방문,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여러 가지 일들을 총명(!)하게 처리하고 돌아온다. 바다에서 임금님과 남자들이 돌아와 이제는 임금님 하지 않아도 된다며 기뻐라 하는 천진난만한 돔.
(돌아온 임금님이 돔에게서 많이많이 배워 이전보다 더 현명한 임금님이 되기를 바라본다. 아니, 사실은 돔이 계속 임금님을 하길 바란다..)

꼭꼭 씹어보기 : '차례'의 소제목만 살펴도 이 동화에 숨어있는 의미들을 발견할 수 있다.

6. 임금님은 거만해도 좋대
9. 뭐든지 아는 척하기
10. 얼렁뚱땅 넘어가기
13. 모른 척, 못 들은 척

이 시대 정치인들이 생각나는 구절들이다. 돔은 이런 방법들을 배웠지만 실제로 이것들이 전혀 효과가 없다는 걸 몸으로 깨닫고 좋은 해결책을 내놓으려 애쓴다.

7. 쓸데없는 일을 맡았구나
15. 배부른땅의 배고픔
16. 밀가루랑 꿀이랑 바꾸자
17. 목에 걸린 가시 같은 일

이 소제목들에선 정치에 대한 작가의 생각을 엿볼 수 있다. '배부른땅의 배고픔'이라니, 정말 예리한 지적 아닌가. 밀이 쏟아져 나오지만 항상 배고픈 사람들, 우리 농촌의 눈물과 땀이 생각나 가슴이 먹먹하다. '목에 걸린 가시 같은 일'은 그냥 지나쳐가지 않았으면 좋겠다. 이거 꼭 높으신 분들이 보아야 할 책이 아닐까?

아이들이 이 책을 보고 그 풍자의 의미를 모른들 어떠하리. 재밌어서 보다 보면 아이들도 저희 나름대로 생각이 갖춰지는 법. 함께 읽는 부모가 길을 안내한다면 더없이 좋은 일.
나는 이런 책이 좋다. 재미있고, 읽는 사람에 따라 발견의 의미가 달라질 수 있는 책, 작가의 곧은 철학이 드러나는 책.

(궁금하신 분들을 위해 그림 몇 컷을 함께 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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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만두 2005-06-03 20: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림 좋아요^^

난티나무 2005-06-03 20: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 소개에는 그린이가 없네요... 책 표지에도 글 소중애 라고만 되어 있고...
그린이는 이유진입니다.^^
만두님, 감사~^^
 
하얀 늑대처럼 - 세계의 그림책 023 세계의 그림책 23
에릭 바튀 글 그림, 양진희 옮김 / 함께자람(교학사) / 2003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도서관에서 그림책을 고를 때 이상하게도 에릭 바튀의 그림책엔 선뜻 손이 가질 않았었다.
집어 들어 몇 장 넘기며 그림을 훑어보고 내려 놓길 여러 번, 생각해 보니 그의 그림 스타일이 맘에 들지 않았었던 모양이다.
내가 가진 이런 선입견을 한 방에 깬 그림책이 <하얀 늑대처럼>이다.

힘 없고 단결도 모르는 군중, 자신보다 약하고 작은 자에게는 강하고 자신보다 강하고 힘센 자에게는 짓밟히는 인간의 모습들이 토끼에 비유되었다. 당장은 권력자의 횡포가 떠오르지만 곰곰 생각하면 우리 자신의 모습이다. 이기적이고 욕심 많은 인간, 결국은 자기보다 더 힘센 자에게 잡아먹히는...

온갖 말도 안 되는 기준을 내세워 다른 토끼들을 마을에서 쫓아내는 흰 토끼. 그는 자신이 토끼 마을의 진정한 지도자이며 권력자라고 믿는다. 색깔과 무늬가 다르다고, 키가 더 작다고, 수염이 짧다고 쫓겨난 토끼들은 이 힘센 토끼를 어쩌지 못한다. 흰 토끼 주변에서 '나는 흰색이라, 키가 커서 얼마나 다행인가' 하며 두 손 부비던 토끼들마저 쫓겨나자 마을에는 달랑 대빵 흰 토끼 한 마리만 남는다.

뭔가 또는 누군가가 더 없나 싶어 마을 꼭대기서 주위를 휘휘 둘러보던 흰 토끼,
자신보다 키도 더 크고 눈도 빨갛고 수염도 더 긴 또다른 흰 토끼를 발견, 지금까지와는 다른 비굴한 모습을 보인다. 그러나, 남은 건 쓰러진 의자와 손대지 않은 당근 두 개, 끊어진 발자국...

쫓겨났던 토끼들은 작은 몸을 숨긴 덕에 이 모든 걸 다 본 점박이 칼라 토끼 덕분에 다시 마을에 모일 수 있었다. 혼란의 일 년을 마무리하며 모두 가진 것을 나누어 먹으면서 '봄'을 기다린다. 공동체 사회에서의 나눔과 평등, 희망의 내재, 이런 메시지들이 읽힌다.

토끼들의 힘을 한데 모아 독재자 행세를 하려는 녀석을 몰아내지 못 한 것이 좀 아쉽지만, 약육강식의 법칙이 엄연히 존재하는 우리 사회의 모습을 보여 주려는 의도가 아니었겠는가 싶다.(혹은 유럽 역사의 한 장면일 수도.)

이러한 주제가 빨강과 검정을 주조색으로 한 거친 질감의 그림으로 더 돋보인다.
이거 내가 잘못 생각해도 한참을 잘못 생각했구나, 그림책을 덮고 이마를 탁, 친다.
역시 그림책은 일단 펼쳐서 끝까지 보고 판단해야 한다. 내 눈에 확 들지 않는 그림이라 해서 제쳐 둘 일은 아닌 것이다.

그리고 확실히, 어른이 보아야 할 그림책은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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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 2005-05-13 23: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아..이런 책이 있었네요? 내용은 낯설지 않고 어디선가 들어 본 것 같지만 ..우린 프랑스 동화는 자주 못 접하는 것 같아요.(나만 그런가??)
그리고 저도 동감해요. 어른들이 보아야 할 그림책이 너무 많아요.

난티나무 2005-05-13 23: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렇죠, 진주님? 어른들에게 그림책을 마구 권하고 싶어요.^^
그리고 유럽 그림책이 영어권보다는 적은 것 같아요..ㅎㅎㅎ
제가 도서관서 빌려보는 책 중 한국에 없다 싶은 것 자주 소개하려 하는데 게을러서리...--;; 그리고 책을 사진 찍어 올리려니 저작권과 상관 없나 싶은 걱정도 들구요.. 그래도 조금씩 올리도록 노력할게요~!!^^

진주 2005-05-13 23: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을 사진찍어 올리는 건-작가나 출판사에서는 오히려 권고할 걸요? 그 사진 때문에 동기유발이 될 수 있잖아요^^

히피드림~ 2005-06-07 21: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리 사회의 모습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동화는 우리자신을 부끄럽게 하고 되돌아 볼 기회를 줍니다. 님의 리뷰만 읽어도 참 좋은 책이라는 게 느껴지네요.
특히 님의 마지막 문장, 왜 그렇게 다 큰 어른들이 그림동화에 집착(?)하는지 새삼 깨닫게 만드네요.

난티나무 2005-06-08 07: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즘 저는 무조건 이쁘고 가벼운 주제의 어린이책보다 사회를 보여주는 묵직한 어린이책이 더 좋아요. 읽고 느끼고 생각할 수 있어서 그런가 봅니다.
감사합니다.^^
 
빨간 모자 아저씨의 파란 집 세상을 넓게 보는 그림책 1
안느 에르보 지음, 양진희 옮김 / 함께자람(교학사) / 200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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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 자기 만족, 마음의 여유, 시선, 넓게 보기, 자신감, 정체성, 과정, 노력, 긍정적 자아...

이 그림책을 보며 떠오른 단상들이다. 독특한 안 에르보만의 그림과 더불어, 깊이 생각해 봐야 할 화두를 툭 던지는 그녀의 글이 자꾸만 맘에 들려 한다.

내 주위를 둘러 본다. 내가 서 있는 이 상황은, 힘들지만 견뎌낼 만한 것이고, 마음의 여유를 갖고 서두르지 않고 노력한다면 내가 이루고픈 꿈에 가까이 다가설 수 있을 것이고, 무엇보다 내 사랑하는 사람들과 더불어 살 수 있음에 나는 행복하다는 것을... 새삼 느낀다.

'나는 수다쟁이 새가 아닌가? 다른 사람과 그 사람의 일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참견하고 무엇이든 깎아내리려는 수다쟁이 새는 아닌가? ' 한 번씩 나를 뒤돌아보며 이런 질문을 할 때 단호히 아니라고 대답하는 나를 기대해 본다.

한 권의 그림책으로 이런 생각을 하게 만든다는 건 작가의 대단한 역량이다. 28세, 젊은 그녀의 약진을 기대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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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드무비 2005-04-12 22: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짧지만 할 말 다 하는 리뷰예요.
마음에 들어요.

난티나무 2005-04-13 16: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로드무비님, 감사해요~
(아이고, 쑥스러워라... 리뷰 쓰는 연습 많이 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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