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리적인 환경 뿐만이 아니라 인간관계적 환경에서도 나는 천혜의 환경을 누리고 있다. 남편은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몸도 일으키지 않고, 안경도 끼지 않은 채로 침대 옆에 있는 책부터 펴는 사람이다. 책을 읽다 좋은 부분이 나오면 꼭 내게 읽어준다. 책을 다 읽고 난 후에도 그 책을 정리한 글을 써서 내가 읽을 수 있도록 해준다. 

남편과 나의 책 취향은 꽤 다른 편인데, 내가 남편의 관심 분야에 무관심한 것과는 달리, 남편은 내 관심 분야에도 관심을 놓치지 않고 괜찮은 책이 나왔다는 말을 들으면 꼭 선물로 사서 준다. 간혹 내가 남편 분야에 관심을 보이면, 남편은 입문서부터 자신이 좋아하는 책까지 차근차근 선물해준다. 자부한다. 누구나 쉽게 가질 수 없는 책 친구를 나는 가지고 있다." 


첫 페이지를 읽으며 좌절한다. 거실은 물론 방 한 칸 전체를 도서관처럼 꾸몄다는 글쓴이의 집도 부러운데 그 다음 구절은 더 부럽다. 책 친구. 눈을 뜨자마자 책부터 펼치는 사람. 자연스럽게 나와 함께 사는 남자가 떠올랐고, 미워졌고, 그러다가 나는? 에 생각에 미치자 그만 부끄러웠다. 나는 옆지기의 관심 분야에 무관심하다. 눈을 뜨면 스맛폰부터 집어든다. 책을 읽다 좋은 부분이 나오면 알라딘 서재에 글을 쓰기도 하지만 옆지기에게 읽어주지는 않는다. 그러니 써서 읽히기는 더더욱 하지 않는다. 가끔 읽으면 좋겠는 책을 추천하고 사주곤 하지만... 마음이 동하지 않는 사람에게 책을 읽히는 일은 어렵다. 내가 먼저 관심을 보이고 내가 먼저 책의 좋은 구절을 읽어주고 내가 먼저.......... 이것이 바람직하겠지만, 그러나. 그러나. 나도 하지 않고 옆지기도 하지 않으니 피차 공평한 일인가? 우리는 그러니까, 책 친구는 될 수 없는 거지, 앞으로도. 

 

서너 페이지를 읽었을 뿐인 이 책에서 또다른 부러움과 좌절을 맛볼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어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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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이 2020-12-02 21: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희도 관심 분야 거의 겹치지 않아요. 남편은 한국소설 매니아인데 저는 한국 소설 거의 안 읽고_ 음 책 때문에 만나기는 했는데 책으로 이야기 나눈 적은 연애 시절 제외하고는 거의 없어요. 책 친구들은 알라딘에 많으니까 :)

난티나무 2020-12-02 22:55   좋아요 0 | URL
그래도 책을 읽으시잖어요!! ㅎㅎㅎㅎ 거기다 한국소설 매니아라니!! 우와~~~~@@
 

한국 프로그램 중 자주 챙겨보는 것들이 있다. '신박한 정리', '구해줘 홈즈', '건축탐구-집'. 정말 내 집처럼 물건들이 많고 지저분한 집들이 버리고 정리하는 과정을 거쳐 새롭게 변하는 것이 좋고(신박한 정리), 매물로 나온 집을 구경하며 저건 좋다 이건 싫다 나의 취향을 다듬어보는 것도 좋고(구해줘 홈즈), 잘 지었거나 특이하거나 한 개성 넘치는 건축물인 집을 찾아가 거기 사는 사람의 삶을 엿보는 것도 좋다(건축탐구-집).

이상하게도 이런 프로그램들을 보고 그래, 결심했어! 하고 집정리를 시작하거나 집을 확 바꾼다거나 하게 되지는 않았다. 아니, 결심은 늘 했지만 실천을 할 수 없었다. 나는 갖고 있는 물건들을 좀처럼 버리지 못하는 성격이기 때문이다. 좋아하는 것 중 하나가 뭔가로 만들기를 하는 것인데, 그 취미 때문에 사소한 물건이나 잡동사니를 버리지 못한다. 뭔가를 만들고 남은 종이조각이나 천쪼가리조차도 버리지 못하고 모아두는 편이니, 내 집이 어떤 모양새인지는 더 말 안 해도 얼추 짐작이 되리라. (만들려고 생각했던 그것을 실제로 만드는 일은 매우 드물다고 한다. 웃프다.) 

프랑스에 처음 왔을 때는 이민가방 하나와 캐리어 하나였던 짐이, 1년 2년 세월의 더께와 함께 지금은 엄청나게 몸을 불려버렸다. 이사도 잦아서(2~3년에 한번씩 옮겨다녔다) 한 집에 정을 붙이고 살기 힘든 형편이었다. 지금 사는 집은 여기저기 문제도 많고 재미도 없는 단층집이다. 이사 들어올 때 페인트칠이라도 싹 다 했어야 했다. 빌려사는 집이고 또 언제 이사갈 지 모르니 대충 살자 했던 게 벌써 8년째다. 이렇게 오래 살 줄 알았다면... 모처럼 집을 정리해 보자는 마음을 먹는다. 사실 코로나로 거의 모든 것을 집에서 해결하고 생활하다 보니 어느 쪽으로든 돌파구 내지는 탈출구를 찾아야 했을지도 모르겠다. 더이상은 물건들이 널려있는 집안이 보기 싫어진 것일 수도 있고. 또 살림을 식구들과 나누어 하자 했을 때 그것이 쉽지 않았는데, 너무 많은 물건들이 제자리를 찾지 못하고 널려 있다는 게 큰 이유 중 하나일 수 있었다. 그래서 정리에 좀더 박차를 가하기 위해 책을 빌려보기 시작했다. (책 좋아하는 사람은 뭐든지 시작하기 전에 책을 뒤져본다는 말에 격하게 공감하며.) 















줄리 칼슨, 마고 거럴닉 [수납 공부] 

오! 이런 수납 좋습니다. 플라스틱 용기를 되도록 사용하지 않고 유리나 나무용기, 바구니 등을 최대한 활용하는 것. 그리고 역시 뭐든지 결론은 깔맞춤.ㅎㅎㅎ 일단 먼저 버려야 깔끔한 수납이 되겠는데. 그런데 정리가 아니라 지름신이 내릴 수도 있다. 예쁜 거 왤케 많나요.@@ 내가 물건들을 잘(!) 버리고 집이 넓어지면 이런 식으로 정리해야지 이런 바구니를 놓아야지 하게끔 만드는 책. 

















윤선현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은 순간 정리를 시작했다] 

제목이 내 맘인 것 같아서 읽었는데, 그냥 그랬다. 지금 내 상태에 크게 도움이 되지 않는 말들. 이 책에서 건진 건 앞부분의 인용구. "인간을 바꾸는 방법은 세 가지 뿐이다. 시간을 달리 쓰는 것, 사는 곳을 바꾸는 것, 새로운 사람을 사귀는 것. 이 세가지 방법이 아니면 인간은 바뀌지 않는다. 이 세 가지를 바꾸지 않고 새로운 결심을 하는 것은 가장 무의미한 행위다."-오마에 겐이치. 
















곤도 마리에 [정리의 힘] 

오며가며 들어본 이름이라 빌려봄. 흠. 한번에, 해치우라고? 어떻게? 이렇게 많은데?? 정리전문가들의 말은 비슷하면서도 조금씩 다르다. 아마 그 한번에 해치우라는 것은 일단 마음을 먹었으면 되도록 짧은 기간 안에 많은 것을 버리고 정리하라는 말일 것이다. 응 나 이제 시작할 거야. 먼저 버리기 가장 쉬운 옷부터 공략하라고 한다. 옷을 다 끄집어내어 쌓아놓고 하라는데, 차마 그럴 엄두가 안 나서 일단 붙박이옷장 문을 열어보았다. 안 입는 옷, 안 입는 옷, 한번도 안 입은 옷, 들이 줄줄이 걸려있네. 그런데 막 뺄 수가 없어. 왤까. 무엇 때문일까. 아 나는 안 되는 걸까. 정녕. 















선혜림 [처음 시작하는 미니멀 라이프] 

음, 비슷한 주제의 비슷한 책들을 여럿 읽고 나면 어 이 책은 무슨 내용이었더라 싶을 때가 있다. 이 책이 바로 그렇다.ㅠㅠ 















박미현, [날마다 미니멀 라이프] 

"행복을 주는 물건을 억지로 줄이지 말고 그 외의 것을 비워 균형을 맞춰보세요.(박미라)" 

"생각, 말조차도 점차 비워내는 중이다. 인간관계에서도 말 때문에 상처를 주고받게 된다. 불필요한 말, 상처 주는 말을 비워내는 일은 물건 비우기 이상으로 중요한 일이다.(탁진현)" 

안 쓰는 건 다 버려라!가 대세인 책들 중에서 억지로 줄이지 말고 균형을 맞추라는 말이 마음에 쏙 들었다. 
















정희숙, [똑똑한 정리법] 

실제로 정리할 때의 규칙이랄까, 정리의 기본을 생각하게 해주는 책. "자신의 공간이 필요없는 사람은 없다." 
















밀리카 [마음을 다해 대충 하는 미니멀 라이프] 

이런 책도 있어야지. 이렇게 완벽하고 저렇게 흐트러짐 없이 사는 모양만을 보는 것은 괴롭다. 지향하는 바를 지키려 애쓰면서도 잘 되지 않거나 조금 흐트러지는 것, 이런 모습도 볼 수 있어야 한다. 챕터 사이사이 들어있는 남편의 글들이 웃김. 
















도미니크 로로, [심플한 정리법] 

이거슨 정리책인가 철학책인가. 나는 철학책으로 분류하겠다. 

"현대사회는 우리가 쟁취하고 소유하려 하는 것이 정상적인 일이라며 오히려 그렇게 하도록 부추긴다. 하지만 물건은 우리로 하여금 외부 세계로 눈을 돌리게 해서 정작 자기 자신에게서 멀어지게 만든다. 이것이 바로 물건이 우리 삶에 미치는 영향력이다." 

"우리의 삶 속에서 '지금'이 아닌 순간은 단 한순간도 없다." 

"버리는 일은 어렵다. 이 행위는 인생에 관한 개인의 문제들을 보여주는 데다 바로 그 자리에서 돌이킬 수 없는 결정을 해야 하기에 고통스럽다. 버리는 것은 존재의 이유에 대한 책임을 지도록 강요한다. 어떤 상황에서든지 균형 잡힌 삶을 살 수 있는 힘을 만들어주는 것이 바로 우리 자신의 의식이라는 점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버리는 것이 그토록 두려운 이유는 그것이 인생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키는 일이기 때문이다." 

"버리는 것은 진정한 실존적 행위다. 물건에 둘러쌓일수록 고통이 느껴지는 이유는 자신을 잃어가는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지금부터라도 나를 찾고 싶고 나를 지키고 싶고 나로 존재하고 싶으므로 필요없는 물건들을 버리기로 했다. 


관련 책 읽기를 시작하니 그만 꼬리에 꼬리를 물어 버렸다. 이밖에도 읽은 책들이 더 있지만 아 뭐야 싶은 것들이라 생략. 맨처음 보았던 [수납 공부]를 한번 더 읽고 정리책 파기는 마무리. 이젠 실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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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로 2020-11-20 12: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난티나무 님 정말 집요한 책읽기를 하시는 분이신 것 같아요!! 멋지심!!! 그러니까 [수납공부]책이 정말 좋으셨다는 거지요? 저도 찜합니다!! 저도 아직 옷을 많이 버리지는 못하고 있어요. 흑,,,우리는 옷을 정말 사랑하는 거야!!!ㅎㅎㅎㅎㅎㅎㅎ

난티나무 2020-11-20 15:53   좋아요 1 | URL
ㅎㅎ 관심 있는 것만 집요하게 되지요.ㅎㅎㅎ 이번엔 기필코!!!! 많이 버리리라 다짐했거든요.ㅠㅠ
읽은 책들 중에 수납공부, 가 가장 좋았다는 거구요, 책 뒷편에 유용한 물건을 살 수 있는 샵 정보가 있으니 라로님께 특히 요긴할 거 같아요. 사지는 마시고 빌려보세요. 미국 책이니 아마 도서관에 있겠죠? ^^

수이 2020-11-20 23: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과감하게 버리기로 했어요 언니 ㅋㅋㅋㅋㅋㅋㅋ 미친듯 버리다보니 어느덧 백리터짜리 두 개로 모자라 내일 더 사오려구요. 버리는 쾌감이라니!

난티나무 2020-11-20 23:36   좋아요 0 | URL
버리는 것도 중독될 수 있으니 조심하라고 하더라고요. ㅎㅎ 으쌰으쌰!! 저도 어제오늘 부피로 따지자면 200리터 정도는 들어낸 것 같아요.
 
















흠. 예약판매 할 때부터 눈독 들이던 책이었는데. 

역시 책은 제목과 목차를 잘 뽑아야 하는 것인가. 50%는 낚였다는 생각이 드는 건 왤까. 

사실 청소년들 특히 남성 청소년들에게 가장 필요한 교육은 공감하기 교육이다. 섹스 이전에 상대방을 이해하고 알아가고 감정에 공감하는 능력이 없는데 사랑이 되나. 이런 내용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지만 부족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면 성교육 책이 아니라 공감하는 법 책인가. ㅎ 

아니 근데 브래지어 잘 벗기는 방법이라니, @@ 지은이의 의도를 왜곡하고 싶진 않지만 이런 부분도 한쪽에 주도권(?)을 주는 것은 아닐까? 브래지어 착용법이나 생리대 사용법은 여자아이들이 배울 때 남자아이들도 함께 배워야 하는 것이지!!! (브래지어는 할 필요가 없는 속옷이라고 교육하는 날이 오기는 할까.) 함께 배우세요~라고 해야 하는 것이지. 벗기는 법이 아니라. 

어쩌면 아주 현실적이라 해야 할 지도 모르겠다. 이론과 현실의 간격이 좁혀지지 않는다면 너무 이론의 잣대를 들이미는 것도 아이들에게 반작용이 될 테니. 아무튼 남자아이 대상의 성교육 책인 것을 확실히 하고는 있다. (남자가 여자를 좋아하는 경우, 남자를 좋아하는 경우, 둘 다 좋아하는 경우, 관심이 없는 경우 모두의 가능성을 이야기하고 있는 점은 높이 살 수 있겠다.)

아이들이 프랑스어로 먼저 읽은 이 책에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은 이유를 알 것 같다. 흠흠. 흠흠흠. 

그나저나 이런 책도 번역해서 팔면서 얼마전 논란이 된 어린이용 성교육책들은 뭐가 그리 문제라고? 살짝 엿본 바로는 그 책들도 내용이 뭐 썩 좋지는 않았지만(너무 오래전에 나온 것들이라), 섹스가 즐겁자고 하는 것이 아니면 뭐란 말인가? 반대하는 이유도 참. 이 책도 학교에 비치하자고 하면... 아주 난리 나겠어. 
















동생과 조카를 위해 책을 고르느라고 위의 두 권도 빌려보았다. 비슷비슷. [부모의 첫 성교육]이 조금 더 나은 느낌. 그나저나 [일단, 성교육...] 책을 읽어보라고 동생에게 추천해 놓았는데 왠지 동생은 책을 집어던질 것 같은. ㅋㅋㅋ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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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쩍 '공간'에 대한 욕심이 생겨 좁은 집(방) 어찌 안 될까 요리조리 궁리 중이지만 뾰족한 수는 없어보인다. 크지도 않은 몸을 숨길 곳이 없다. 숨고 싶을 때 숨을 만한 장소를 찾지 못하면 슬프고 허무하다. 아이가 어릴 때 자주 그랬던 것처럼 커다란 이불을 식탁에 씌우고 그 안에 들어앉고 싶을 때가 있는 것이다. 아무도 아무 소리도 나를 방해하지 않는 공간이 필요하다. 

그래서 이런저런 책을 읽는다. 공간욕과 더불어 오랜만에 분위기 바꾸기용 인테리어 욕구도 뿜뿜. 이것도 사실 뾰족한 수가 없기는 마찬가지지만. 
















최고요, [좋아하는 곳에 살고 있나요?] 

글쓴이만큼은 아니지만 나도 내가 사는 집을 꾸미기 좋아한다. 벽지 위에 페인팅 몇 번 해본 정도. 두번째 신혼집의 내가 꾸민 거실 인테리어는 한 면을 그대로 누군가가 사갔다. ㅎㅎㅎ 프랑스 온다고 온갖 살림을 다 정리하던 때였는데 아파트에 벼룩시장 연다고 광고를 붙이고 집에서 죄다 팔았었다. 그 때 내 예쁜 샌들 계산 안 하고 그냥 집어가신 그 분! 누구인지 모르지만 그렇게 사시면 안 됩니다! 아직도 기억난다.ㅋㅋ 

임대하는 집이지만 내 맘에 들게 최소한의 금액을 들여 고쳐서 사는 모습이 뿌듯하게 좋았다. 남들이 뭐라건 내가 좋으면 하는 거지. 그런 의미에서 부럽기도. 밑줄친 구절은 없지만 통째로 나의 취향인 책이라 잘 읽었다. 

한 달을 살아도 내 맘에 드는 곳에서 살고 싶은 것이 내 마음이지만, 혼자 사는 게 아니다 보니 옆에서 제동을 걸면 아무래도 망설이고 결국 포기하게 된다. 이 책을 읽고 그동안의 망설임을 접자 싶었다. 집안 구석구석 맘에 안 들어 맘에 안 들어 이러면서 7~8년 살고 있는데 이사는 요원해 보이고 계속 이러고 살 거면 페인트칠이라도 내 맘대로 하겠다! 선포를 했다. 역시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해야 즐거운 법이지. 그러나 날은 춥고 봉쇄령은 내리고 인터넷으로 모든 것을 해결해야 하는 상황이 되니 슬그머니 또 꺼려진다. 인테리어의 기본은 정리하며 버리기인데, 자질구레한 물건들을 도저히 버리지 못하는 성격 탓에 집안은 온갖 잡동사니로 넘쳐나고 통일되지 않은 제각각의 가구들이며 어디부터 손대야 할 지 막막할 뿐이고. 



















윤성근, [작은 책방 꾸리는 법] 

서점이든 북카페든 도서관이든 아니면 개인 서재든,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꿈꿀 법한 아무 형태의 책방을 나도 갖고 싶다. 그래서 읽어보았다. 딱 좋습니다. 길이가 조금만 더 길면 더 좋았을. 책에서 제안하는 대로 나도 내 생각대로 컨셉을 만들어 표를 그려보았다. 오! 한번에 다 써지는데? 책방 내도 되겠어! 라는 엉터리 생각을 했다는. 푸핫. 이런 책 더 읽어보고 싶다. 

















이유미, [자기만의 (책)방] 

목차와 리뷰를 꼼꼼히 살피고 인용 문구도 다 읽어보고 책을 고르는 편인데, 이번 선택은 실패. 내 기대를 채워주진 못했다. 


















김민채, [언젠가는, 서점] 

아직 안 읽음. 언젠가는, 책방. 
















쓰지야마 요시오, [서점, 시작했습니다] 

사놓고 다음 배송을 기다리는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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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마음의 가장 깊숙이까지 꺼내 볼 줄 모르는 눈으로는 세계를 응시하는 깊이에 한계가 있을 터였다. 무의미한 일상을 나만의 시선으로 해석하는 데에 미흡했고 나만의 언어를 만드는 직조 능력도 부족했다. 인생의 얕은 경험은 세상을 편협하게 바라보게 했고, 좁은 시야로는 너른 세상을 생생한 삶의 언어로 압축하지 못했다." 

-이 구절이 나를 돌아보게 한다. 내가 미흡하고 부족한지도 모른 채 무조건 살았던 날들. 책 끝부분의 부침글에서 구병모 작가는 이런 말을 한다. "우리는 그 쓸 수 있는 시간이라는 것을 온전히 자신의 것으로 확보하는 데에만 최소 10년이 걸리며 소설 속에 나오는 조카들은 4세와 6세이니 아직 한참 남은 듯싶어 보는 내가 다 까마득해질 무렵, ..." 최소 10년. 나의 10년. 그 10년. 


"어른들의 반찬과 아이들이 먹을 반찬을 따로 했고, 아이가 아플 때마다 병원으로 업고 뛰는 것도 내 몫이었다. 아이들을 먹이고 씻기고 재우고 놀아주는 일은 결코 단순하거나 만만한 일이 아니었다." 

"육아는 체력 싸움이었다. 그 시기의 내 꿈은 딱 세 시간만 통잠을 자는 것이었다. 두어 시간 간격으로 둘째가 깰 때마다 엄마는 동생이 자는 방문이 꼭 닫혔는지 확인하고 나를 흔들어 깨웠다. 동생은 출퇴근하는 사람이었고, 나는 집에 있는 사람이라는 이유였다."

- '어른들의 반찬과 아이들이 먹을 반찬을 따로 했고'라는 문장을 읽으면 음식을 하는 그 지난한 과정이 한꺼번에 떠오른다. 반찬을 따로 만들었다는 이 구절은 경험해본 사람에게는 그 수고로움이 엄청난 무게로 다가온다. 그러나 해보지 않은 사람에게는? 만들어진 반찬을 먹기만 한 사람에게는 그저 힘들다는 뜻의 구절이 아닐까, 내가 느끼는 이 감정을 아주 비슷하게 느낄 수 있을까. 모든 문장이 그렇다. 한두 문장으로 써버릴 수 없는 이야기들. 한 문장 안에 끝도 없는 문장들이 들어서 있는. 


"이 길로 어딘가로 떠나고 싶었다. 멀리가 아니어도 좋으니, 그저 쳇바퀴 같은 일상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단 일주일만이라도, 아니, 단 하루만이라도 청소와 빨래와 밥 준비와 아이들 뒤치다꺼리를 하지 않는 곳으로 도망치고 싶었다."

- 그러니 주부에게 일주일에 하루는 달라. 이틀도 아니고 하루다. 숨통이 트이지 않으면 결과는 비슷하다. 미치거나 사라지거나. 


"3년쯤 지나니 엄마가 별소릴 하지 않아도 알아서 하는 모양새가 되었지만, 첫해 동안엔 정말 사소한 것까지 엄마가 시켜야 할 줄 알았다." 

- 집안일은 이렇게 힘든 일이다. 3년. 옆지기와 아이들이 하나같이 서투른 이유는 3년을 매번 숙제처럼 연습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같은 말을 수십 번을 해도 늘 같은 결과인 것은 그 때문이다. 자기 일이라 생각하면서 적어도 3년은 지나야 손에 익는 일. 


"매일 한 편씩 필사를 하고, 줄곧 시집만 읽어댄다고 실력이 늘 리 없었다. 계속 써왔어야 했는데, 쓰지 않으면 늘지 않는 것이 글인데, 알면서도 마음처럼 못 했다. 늦은 줄 알고 출발했지만 너무 늦었다는 자책에 시달렸다. 뭐든 다 때가 있는 법인데. 공부를 할 때, 결혼을 할 때, 아이를 낳고, 여행을 떠나고, 누군가와 헤어지고 새로 만나는 것 모두가 그 시기에 걸맞은 때에 행하는 것이 보편의 삶인데. 내가 보편의 삶을 살지 못해서 나에게는 늦거나 이른 건 없다고 생각했던 것이, 현실적인 벽에 맞닿으면 자꾸 잘못된 결과가 되고 말았다. 그걸 깨닫는 것조차 너무 늦어버려서 나는 길 잃은 아이처럼 자꾸 어쩌지 못했다." 

- 매일 한 편 필사하는 것만 해도 대단한 것 아닌가. 계속 읽는다는 것도 대단한 것 아닌가. 보편의 삶은 없다고 믿자. 개인의 삶일 뿐이다. 대체로 다 비슷한 것 자체가 더 이상한 거다. 늦었다고 말하면 서글프다. 늦은 때는 없다. 


"세상은 무섭고, 사람들은 더 믿을 수 없으며, 자연은 매 순간 황폐해지고 있었다. 이런 세계에 생명을 낳고 키운다는 것이 어른들의 이기심은 아닐까, 무책임하고 무모한 선택은 아닐까라는 의문이 들기도 했다." 

- 때 되면 결혼하고 때 되면 아이를 낳는 거라고 가볍게 이야기하지 말자. 아이를 낳아 키운다는 것은 작은 세계 하나를 구축하는 일이다. 


"인생은 길고, 넌 아직 피지 못한 꽃이다. 아버지가 했던 말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피지 못한 꽃, 아직 발화하지 못한 꽃, 아직 제대로 맺히지 못한 꽃. 내가 꽃이라면 한 번은 피워내고 싶었다. 더 늦기 전에, 정말 식구들에게 발목이 잡혀 땅에 묻히기 전에. 나는 쉴 곳이 필요했다. 나는 도망칠 곳이, 숨어 있을 곳이 필요했다. 적어도 식구들과 거리감을 둘 공간이 필요했다." 

- '거리감을 둘 공간', 절실한 공감. 아버지, 좀더 딸을 알아봐줬어야 해요. 뒤에 물러서있지 말고 함께 해야 했어요. 그러나 앞으로도 뒤로도 물러설 공간이 없는 사람들에게 어떻게 무엇을 더 바랄 수 있을까. (주인공이 자기만의 방을 찾아 집을 나온 것은 정말 잘한 일이다.) 


"시인은 누가 될 수 있는 걸까. 나는 가끔 다음 생애에 다시 태어날 수 있다면 시인이 아니라 시인의 애인으로 태어나고 싶다는 생각을 해보곤 했다. 내가 시를 쓰는 것이 아니라, 시인이 나를 보며 시를 쓰게 만드는, 시를 쓰지 않고는 못 배기는 애인으로 태어나고 싶었다. 그것이 다음 생의 바람이라면 이번 생에서는 어떻게든 시인이 되어야 했다. 

시를 쓰는 사람이라면 모두 다 시인이라고. 시심을 품은 자가 시인이니 시를 읽을 줄만 알아도 시인이라는 말을 들어본 적이 있다. 다음 생애에 시인의 애인이 되고 싶다는 말만큼이나 허황된 표현 같았다." 

- 어렵게만 느껴지는 시, 어릴 적엔 제법 시라고 끄적이곤 했었는데 아주 짧은 그 순간이 지나고 나도 시를 잊었다. 세상을 보는 또다른 눈을 잃었다. 내게도 그런 시절이 있었...지 하게 만든다. 대학 시절 어떻게 써도 등단을 할 수 없다며 신춘문예 낙방 소식만을 전하던 선배의 소주잔 같은 것. 그런 것이 떠올랐다. 잃어버린 눈을 이제는 좀 찾아봐야 겠네. 

다른 이야기 같지만, 나는 현생에도 미래의 생에도 예술가의 애인(여자로서)은 하기 싫다. 이미 알려진 예술가들이 흔히 그러하듯이 내가 이래저래 아는 예술가들과 그 예술가의 부인들이 정말 끔찍(!)하게 사는 것을 간접적으로 보았기 때문이다. '허황된 표현'이라는 말만큼이나 그들의 삶은 허황했다. 


"그러니까 나는 시를 쓴다는 포즈만 취해왔던 것이다. 시와 같은 편이 되거나 시와 같이 어울려야 하는데 나는 늘 속내를 알아내고야 말겠다는 듯이 멀찍이서 노려보기만 했다. 작품 하나하나마다 나를 그려 넣고, 나를 새겨야 하는데 그마저도 용기를 내지 못했다. 시를 쓰지도 못하면서 시 쓰기를 꿈꿨다는 건 시의 그림자에 숨어 내 언어가 사라지는 줄도 몰랐다는 뜻이었다." 

- 그러니까 나는, 인생을 산다는 포즈만 취해온 건 아닌가... 



*** 


소설을 읽으면서 눈에 걸리는 부분들에 다 밑줄 표시를 했다. 위의 구절들은 밑줄 그은 것의 절반 정도. 주로 마음에 와닿거나 깨우침을 주거나 인상깊은 구절들이 밑줄인데, 이 소설에는 자꾸 토를 달고 싶어졌다. 그 또한 다른 방식으로 나에게 와닿았다는 말이겠지. 휘몰아치듯이 읽고 났으니 이제 숨을 좀 고르고 다시 한번 천천히 읽어봐야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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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로 2020-11-06 06: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김 이설 작가의 책이군요. 그분을 알라딘에서 알던 시절이 벌써 오래 되었네요. 작가가 되어 알라딘에 뜸하신 분들이 갑자기 보고 싶어 지네요. ^^;

난티나무 2020-11-06 12:31   좋아요 0 | URL
오 몰랐어요! 저도 보고 싶은 닉넴들이 많은뎅. ㅎㅎ 잘 지내고 계시겠죠 모두?

다락방 2020-11-06 08: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김이설 작가의 이 책 읽으면서 같은 처지에 놓인 사람들을 향한 위로의 손길이라고 생각했는데, 난티나무님께 제대로 가서 꽂혔네요. 김이설 작가의 위로가 난티나무님께 닿은 것 같습니다.

난티나무 2020-11-06 12:40   좋아요 0 | URL
솔직히 말하면 위로,보다는 낙담? 좌절? 이랄까 그런 감정이 더 많이 듭니다. 공감하지만 이렇게 쓴 글이 많은 독자에게 가 닿을 수 있을까 싶어서요. 아는 사람 말고 모르는 사람들에게... 그리고 가족이라는 이름 아래 짊어져야 하는 돌봄의 무게는 결혼하거나 안 하거나와 상관없다는 현실이 ㅠㅠ 조카들 양육에서 벗어난 주인공은 몇 해 지나지 않아 또 어머니를 돌보게 되겠죠....
왠지 [82년생 김지영]보다 두어 단계 더 나아간 것 같은 느낌? 그러므로 그건 또 의미있는 나아감이란 생각이 들어요. 전 소설 읽고 잘 우는 편인데 이 소설엔 눈물이 나지 않더라고요.ㅎㅎㅎ

수이 2020-11-06 08: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예전 작품만 읽었었는데 이 책 읽어봐야겠구나 싶어져요. 얼마나 수많은 이야기들이 켜켜이 쌓여있을지 그 갈피 잘 헤아리면서.

난티나무 2020-11-06 12:44   좋아요 0 | URL
한국소설 좋아요! 한밤중에 잠이 완전 깨버려서 읽고 있던 황정은의 [계속해 보겠습니다]를 마저 읽었는데 좋아요! 결이 다르고 무엇보다 아름답네요? 만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