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모노
성해나 지음 / 창비 / 202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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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은 빛의 시간인가, 어둠의 시간인가. 초저녁은 또 어떠한가. 하루 두 번, 빛과 어둠이 교차하는 순간을 떠올린다. '개와 늑대의 시간'. 황혼 무렵 나에게 다가오는 실루엣이 내가 기르던 개인지, 나를 공격하러 다가오는 늑대인지 분간하기 어려운 순간을 일컫는 용어다. 적군인지 아군인지, 선인지 악인지, 좋은 이인지 나쁜 이인지, 낮인지 밤인지. 삶은 이런 순간들을 툭 던져 놓고 휘리릭 달아난다. 판단은 온전히 나의 몫이다.

진짜인지, 가짜인지. 7편의 단편 소설이 툭 질문을 던져 놓고 달아난다. 소설집 혼모노. 각기 다른 내용임에도 불구하고 이야기들은 한 곳으로 나를 데려다 놓는다. 진짜와 가짜의 경계선이다. 그 위에 선 나는 양쪽을 바라보며 작가가 보여주고자 하는 한 가지를 찾는다. '진실'이다.

사실과 진실은 다르다. 전자는 실제로 있었던 일을 객관적으로 나열한다. 감정이 담기지 않는 AI 느낌이랄까. 후자는 여러 자료와의 관계성에 숨어있는 본질이다. 보다 인간적 요소가 많다.

작가는 세밀한 감정의 동요조차 놓치지 않는다. 반복되는 의성어에도 의미가 담겨 작품 안에서 꿈틀댄다. 미세한 시선의 떨림을 지나치지 않고 집요하게 파헤쳐 숨겨진 진실을 드러낸다. 크로키를 그리듯 긴박한 전개 속에서 정밀 묘사로 구현한 작품을 마주한다. 성해나 작가는 묻는다. 당신은 지금 무엇을 보고 있냐고.

 

표제작 <혼모노>에서 '혼모노'는 진짜를 의미하는 일본어이다. 주인공 박수무당은 삼십 년 동안 자신에게 깃들었던 할멈이 앞집 신애기에게로 옮겨갔음을 깨닫는다. 작가는 바나나 우유와 바나나맛 우유는 뭐가 다른지 독자에게 묻는다. 진짜 무당과 가짜 무당이 함께하는 굿판. 신이 떠난 후 어설프게 진짜를 흉내 내왔던 주인공은 피비린내 나는 칼날 위에서 가벼워진 자유를 만끽한다. 진짜 가짜가 되어 진짜를 압도한다.

작품을 마주하며 생경한 경험을 한다. 한 손은 뜨거운 물에 다른 손은 차가운 물에 담갔다 동시에 미지근한 물로 옮겨온 듯하다. 진짜는 좋은 것, 가짜는 나쁜 것이라는 공식이 파괴된다. 이게 진짜가 맞나, 이걸 가짜라고 말할 수 있을까. 진짜와 가짜의 정의조차 혼란스럽다. 소설은 벌써 끝이 났는데 마침표 끝에 진득한 감정이 묵직한 꼬리처럼 매달린다. 읽은 시간보다 여운이 길다.

작가는 능숙한 외줄타기의 달인인 양 균형 잡힌 시각으로 달려간다. 엉겁결에 덩달아 그 줄에 올라탄 초보 독자는 위태위태한 난감함을 안는다. 꼼지락거리며 줄을 부여잡은 엄지발가락까지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밖이 훤히 비치는 통창 앞에서 몸을 가다듬는 인간처럼 몸 둘 바를 모른다. 한 번쯤 생각해 보았지만 드러내지 않던 감정이 거울 속 풍경처럼 책 속에 담긴다. 속속들이 끄집어내어 질 때마다 움찔한다.

 

직장 사람들과의 관계는 수시로 균형을 잡아야 하는 긴장의 연속이다. 좋은 마음만 있지 않아도 좋은 마음으로 포장해야 하는 순간을 마주한다. <우호적 감정>은 형식적 관계에서 비형식을 찾는 모순을 다룬다. " · · · · · ·그럴까요?" 말줄임표 안의 드러나지 않는 감정 끝에 정반대의 멘트가 드러난다. 정이 흘러넘치는 우호적인 분위기 속에서 주인공은 입에 넣은 뜨거운 딤섬을 차마 삼키지도 뱉지도 못한 채, 그대로 머금는다.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닌 모호함이 AI 세계에서는 존재하지 않는다. 01, ON 혹은 OFF. 흰색과 검은색처럼 명료하다. 인간 세계와의 차이점이다. 우리의 삶은 매번 어딘가의 '사이'에 놓이며 흔들린다. 이 소설집에서 일관적인 흐름이 감지되는 이유는 모든 서사가 정반대의 선택지를 품은 채 경계를 보여주기 때문이다.

<잉태기>는 할아버지와 엄마 사이에 놓인 딸 서진의 이야기이다. 임신한 딸의 해외 원정 출산을 준비하는 엄마와 당신의 방식을 고집하는 할아버지. 엄마는 할아버지를 '그 사람'이라 표현하며 신랄하게 비판한다. 시아버지 역시 며느리를 보는 시선이 만만치 않다. 그들의 공통점은 서진을 향한 '사랑'이건만. 정반대의 척점에서 두 사람은 각기 자신을 향해 아이를 끌어당긴다. 공항에서 쓰러진 아이의 목소리를 듣지도 못한 채 고조되는 갈등 속에서 이야기는 멈춘다. 감추어졌던 독선과 집착이 사랑이라는 외피를 뚫고 드러난다.

 

타인에 관한 판단은 종종 모순을 동반한다. <길티 클럽 : 호랑이 만지기>의 주인공은 스타 감독의 팬이 된다. 영화를 찍으면서 감독이 행했다는 비도덕적 행위의 진실 여부를 판단하지 않고 무조건적으로 믿는다. 어째서 잘 알지도 못하는 타인을 나락으로 떨구려 할까 하며. 그녀 역시 잘 알지도 못하면서. 시사회에 나온 감독 앞에서 영화를 극찬하는 주인공. 이어진 감독의 사과로 숨어있던 진실이 떠오른다. 외면하던 진실이 드러나는 순간, 주인공은 뜨거운 허탈감을 느낀다.

젊은 시절의 꿈은 언제까지 유효한가. <메탈> 음악으로 대동단결한 세 명의 친구. 녹슬지도 썩지도 않는 그들의 꿈은 선명하다. 위험하지만 아름다운 원소 '코발트'를 밴드명으로 붙이는 순간, 청춘의 시간은 영원할 것만 같다. 세월이 흘러 친구들은 현실의 길로 떠난다. 주인공은 그들의 아지트를 정리하기로 결심한다. 앨범들을 정리하던 그의 가슴속에 다시 따끔한 전류가 일어난다. 그 진동을 끝내 외면하지 못한 그는 친구에게 전화를 건다.

<스무드>는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며 사실을 보면서도 진실을 모를 수 있음을 시사한다. '스무드'는 예술가 제프의 작품명이다. 분노도 불안도 결핍도, 의도도 동기도 비밀도 없는 스테인리스스틸 재질의 검은색 구이다. 그의 작품을 전시하기 위해 난생 처음 한국을 방문한 매니저 듀이의 시선에는 가감이 없다. 미국인의 정체성을 지닌 한국인 듀이를 데리고 다니는 친절한 태극기 부대, 열사, 이승만 광장은 좋은 장면으로 묶여 흡수된다. 마주친 이들을 전혀 모르기에 그들 사이에는 아무 갈등도 없다. 그가 보낸 하루는 '알 수 없지만' '아주 좋은' 하루로 남는다.

 

<구의 집 : 갈월동 98번지>은 가장 인상 깊게 남은 단편이다. 소설인지 다큐인지 헷갈려서 진짜 이런 건물이 있었나 인터넷을 검색한다. '경동수련원'이라는 소설 속 고문실이 허구라는 사실에 잠시 안도하다, 실제로 있었던 고문 시설 '남영동 대공분실(갈월동 98-8번지)'을 모티브로 했다는 사실에 흠칫한다.

남영동 대공분실은 건축가 김수근이 설계한 건물이다. 문외한인 나에게도 낯설지 않은 건축가다. 그의 작품을 더 찾아본다. 현대 건축의 거장이라는 별칭에 걸맞게 업적이 화려하다. 공간사옥, 경동교회, 아르코 예술극장, 남산 자유센터, 세운상가, 잠실 올림픽 주경기장, 국립부여박물관, 한계령 휴게소. 이런 분이 좁은 수직 창문과 5층으로 바로 연결된 나선형 계단을 지닌 고문 시설을 설계했다니! 인간의 양면성을 구현한 증거물을 접한 기분이다.

관점이 다른 신념은 인간을 어디까지 데려갈 수 있는가. 소설 속 건축가 구보승에게 건축에서 가장 중요한 건 인간이다. 그는 빛이 인간에게 희망뿐 아니라 두려움과 무력감을 안길 수도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하루 중 빛이 단 10분만 들어오는 고문실을 설계한 이유다. '구의 집'은 건물의 목적에 최적화된 완벽한 공간이다. 소름 돋는 사실은 그곳이 인간을 위한 공간이라며 추호의 의심도 없이 믿고 있는 건축가의 광기이다. 인간을 파괴하기 위한 목적도 인간을 위한 게 아니냐는 궤변이다.

 

무지갯빛 해피 엔딩은 없다. 절망적인 새드 엔딩도 없다. 이 순간도 이어지는 삶처럼 성해나의 소설은 마침표가 없는 투비컨티뉴드 엔딩으로 마무리된다. 소설 끝에 작가는 질문을 던진다. 지금 당신이 보고 있는 진실은 무엇이냐고.

진실은 상대적이다. 모든 사람에게 적용되는 보편적인 진실은 없다. 주어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각기 다른 소유격에 진실은 매달린다. A의 진실, B의 진실, 이런 식으로 말이다. 같은 사실을 보더라도 누가 보느냐에 따라 정반대의 진실이 구현될 수도 있으리라. 진실을 판단하는 과정이 혼란스러운 건 이런 이유로 당연하다. 진실의 간극을 줄이기 위해서는 나와 타인을 이해하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리라.

순간순간 균형을 잡아가며 흔들리는 과정의 연속, 삶은 외줄타기와 같다. 나의 진실은 나에게 언제나 옳지만 내가 진실이라고 믿고 있을 때조차 그를 수도 있음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당신의 것도 마찬가지다. 옳고 그름의 기준은 사람이다. 매번 긴장하며 세상과 나를 바라보아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보다 사람에 가까워질 수 있도록, 방심하는 순간 자칫 왜곡될 수도 있는 진실을 경계하며 나아가야 한다. 삶은 수시로 빛과 어둠의 경계에 나를 데려다 놓으니까. 그 순간 내가 할 일은 양쪽을 수시로 바라보며 중심을 잡는 것, 진실의 양면성을 염두에 두고 경계를 경계하는 것이리라.

 

p340, 밑에서 9째 줄: 존재이도 존재이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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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우리가 같은 별을 바라본다면
차인표 지음, 제딧 그림 / 해결책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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래된 기억이 있다. 15년 전이니 오래되었다 표현하기엔 다소 애매하지만. 2010년 봄, 나는 42명의 학생들과 경기도 광주에 위치한 <나눔의 집>을 방문한다. 윤정모 작가의 소설 봉선화가 필 무렵2차원으로 박제된 인물들을 현실로 마주한다. 독서 모임을 함께했던 아이들은 특히 생생한 표현으로 그날의 후기를 남긴다.

탐방 후기 양식을 제작하며 책 속의 문구 '기억의 집'을 인용한다. '여러분들은 어떤 기억의 집을 지었나요?' 역사관 탐방 일정, 관련 용어의 정의, 뉴스 기사 등으로 구성된 참고 자료도 곁들인다. 일본군 '위안부', 정신대, 위안소, 종군위안부, 성노예, 성폭력 피해자, 일본군 '위안부' , 나눔의 집, 일본군 '위안부' 역사관에 대한 기록을 사전 교육 자료에 담는다.

짐짓 빵빵한 배경지식을 습득하고 당신들을 마주한다고 여겼건만. 3차원으로 구현된 <나눔의 집>속 풍경을 마주하던 날, 마음은 순식간에 바람 빠진 풍선이 된다. 사랑을 글로 배운 인간이라도 된 듯 생경한 느낌표가 털썩 내려앉는다. 장윤정의 노래 <>을 불러주시는 표정이, 특별할 게 없는 당신들의 모습이 너무 평범해서 당황한다. 할머니로 만난 분들이 처음부터 할머니는 아니었다는 당연한 사실을 퍼뜩 깨닫는다.

 

함께 간 10대의 학생들과 비슷한 나이에 겪어낸 역사의 무게는 묵직하다. 함께 부르는 노래 <우리의 소원은 통일>이 공간을 울리니 과거와 미래가 뒤섞인다. 70여 년의 시간을 꾹꾹 눌러 담은 서툰 그림에서 꽃샘추위처럼 회한이 전해진다.

'어떤 향기로부터, 어떤 날엔 소리로부터, 아주 오래된 기억을 느껴...' 노트북을 두드리는 카페에서 백예린의 노래가 흘러나온다. 기억은 다양한 방식으로 소환된다. 향기, 소리, 촉감, , 인상적인 장면이 오감을 자극하면 먼지 쌓인 기억은 바닥으로부터 비상한다. 한 편의 이야기가 오래된 기억을 현실로 불러오기도 한다. 이 책처럼.

차인표의 언젠가 우리가 같은 별을 바라본다면은 일제 강점기에 '위안부'로 끌려간 소녀 순이의 이야기가 담긴 장편 소설이다. 2009년 출간된 잘가요 언덕의 개정판이다. 작품의 공간적 배경은 백두산에 있는 호랑이 마을이다. 호랑이의 전설과 맞물린 이야기가 생동감 있게 펼쳐진다. 등장인물들의 서사에 담긴 순수하고 애틋한 사랑이 균형 잡힌 시각 속에서 전개된다.

 

균형이 잡혀 있다는 생각이 드는 이유는 일본인과 조선인의 상반된 캐릭터 때문이다. 조선인 순이를 구하려는 일본인 소위 가즈오와 오로지 돈만 좇아 일본에 협조하여 용이와 순이를 잡는 데 거리낌 없는 조선인 장 포수. 두 인물의 심리는 양국을 향한 편견을 지우도록 만든다.

일본군 가즈오가 어머니에게 보내는 편지는 말미에 붙인 문구를 통해 그의 심리 변화를 섬세하게 구현한다. 9번째 편지에 등장하는 '대일본제국군' 소위라는 명칭은 군인으로서의 자부심을 반영한다. 68번째 편지에서 그 문구는 슬그머니 사라진다. 뭔가 잘못되어 가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음을 시사한다.

남자 주인공 용이는 잡혀간 순이를 구하기 위해 홀로 일본군 진지를 습격한다. 주인공은 죽지 않는다는 영화적 공식이 살짝 적용된다. 저자는 잠시나마 암울한 전개에 활력을 불어넣으며 독자에게 쾌감을 선사한다.

독특하게 다가온 점은 이야기의 무게 중심이 할머니가 아니라 어머니라는 점이다. 서두에 적힌 문장 '생명을 주신 어머니께'를 시작으로 소설의 마지막까지 누군가의 '어머니'BGM처럼 등장한다. 간지처럼 끼워진 가즈오의 편지를 받는 어머니, 새끼를 지키는 어미 호랑이, 백호에 의해 희생된 용이 어머니, 부부가 두고 간 아기 샘물이에게 어머니가 되어주는 순이에 이르기까지.

 

어머니라는 보통 명사는 따스함을 품는다. '엄마별은 금색이나 은색이 아닌 따뜻한 색이니까요.', '가축을 해치던 무서운 육발이의 발이 새끼 호랑이에게는 따스한 엄마 발이었나 봅니다.', '전 엄마라는 이름으로 죽고 싶어요. 한 아이가 아닌 여러 아이들의 엄마.' 일본군 '위안부'가 되어 필리핀으로 끌려간 순이의 소박한 소원이 가시처럼 까끌거린다.

엄마를 죽인 백호를 용서할 수 없는 용이의 눈에는 엄마별이 보이지 않는다. 순이는 말한다. '용서는 백호가 용서를 빌기 때문에 하는 게 아니라 엄마별 때문에 하는 거야. 엄마별이 너무 보고 싶으니까. 엄마가 너무 소중하니까.' 작가는 어머니의 따뜻함을 이야기에 투영하며 자연스럽게 주제와 연결한다. '용서'. 어머니의 존재는 상대가 빌지도 않는 '용서'조차 커다란 품으로 포용한다.

<뒷이야기>에 묘사된 에피소드는 이 소설의 백미다. 70년 뒤 귀국한 89세의 쑤니 할머니는 어느덧 할머니가 된 샘물이에게서 용이의 메시지를 건네받는다. 아기를 업은 순이의 모습과 함께 글자가 새겨진 나무 조각이다. '따뜻하다, 엄마별.' 일곱 글자가 뭉클한 느낌표가 되어 눈물샘을 조용히 터뜨린다.

 

일본군 '위안부'와 성노예라는 명칭에는 분명한 차이점이 존재한다. 전자는 역사적인 용어이다. 범죄의 주체는 명확하게 드러나지만 '위안부'라는 말은 여전히 껄끄럽다. ''로하고 ''심 시킨다니! 후자는 국제법적 용어이다. 전쟁 범죄이자 반인륜적 범죄라는 본질을 강조한다.

이 책에 대한 사전 정보 없이 표지와 제목으로만 접했을 때, 그리 큰 기대를 하지는 않았다. '언젠가, 우리, 같은 별'이라는 제목의 문구와 표지에 등장하는 소년, 소녀를 보며 이들의 사랑 이야기라 여긴다. 일본군 '위안부' 이야기라는 책 소개에 살짝 의아했던 이유다. 대동단결의 위력을 지닌 두 글자 '엄마'''이란 글자 앞에 숨겨둔 의도를 짐작하지 못한다. 사랑 이야기는 맞지만, 이런 방향의 서사는 나의 예상을 뛰어넘는다.

억지스럽지 않고 다큐와 소설 사이에서 무게 중심을 찾아낸 저자의 지혜가 돋보인다. 영화를 본다는 착각이 들 만큼 동영상으로 그려지는 장면들, 가볍지 않은 흐름, 뚜렷한 주제 의식이 마음에 든다. 배우 차인표가 작가로 글을 쓴 게 아니라 작가 차인표가 배우로도 일했다는 생각이 들 만큼 인상적이다.

 

이야기의 힘은 강하다. 설득력 있는 이야기는 기억의 집을 더욱 확장시킨다. 240페이지의 짧은 이야기는 15년 전 스쳐 갔던 기억을 순식간에 불러온다. 청소년 단체의 회원으로 활동하며 역사 탐방에 참여했던 경험이 순이가 겪은 이야기와 연결된다.

과거의 자료들을 뒤적인다. 2010312일 현재 85명 생존, 최저 연령 11~13, 평균 연령 만 17세 전후, 등록되지 않은 피해자까지 20여만 명이 추정된다고 한다. 탐방 당시, <나눔의 집>에 거주하시던 할머니는 7명이다.

최신 자료를 검색하다 멈칫한다. 202512월 현재 평균 연령 95.7, 전체 등록된 피해자 240명 중 전국 생존자 총 6, <나눔의 집> 거주자 2. 불과 15년이 블랙홀처럼 80여 명의 생명을 빨아들인 거다.

확연하게 줄어든 숫자가 심장에 각인된다. 쉽게 잊혀졌던 당신들은 한순간도 잊을 수 없던 뜨거운 역사를 내내 간직하다 가셨으리라. 먹먹함을 안고 작가의 이야기에 나의 리뷰를 연결한다. DNA를 통해 유전자가 전달되듯 잊지 말아야 할 역사는 어떤 식으로든 이어져야 한다고 생각하며 그분들의 존재를 숫자로 새겨둔다. 이 글을 마주하는 당신에게도 잊히지 않을 이야기가 건네어지기를 바라며 기억의 집을 넓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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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너
존 윌리엄스 지음, 김승욱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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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대라고 해서 이 감정을 공유할 수 없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우리들의 발라드> 참가자 이지훈의 인터뷰다. 깊고 맑은 소년의 눈동자에 60대의 시선이 담기는 듯하다. 진지한 울림에 담긴 5분 여의 시간을 지켜본다. 50여 년 지나온 나의 시간이 소환된다. '잘 가라, 나를 떠나가는 것들 / 그것은 젊음, 자유, 사랑 같은 것들 / 잘 가라, 나를 지켜주던 것들 / 그것은 열정, 방황, 순수 같은 것들(feat. 최백호의 '나를 떠나가는 것들')' 담담하게 건네는 말들이 고요한 리듬을 타고 귓가로 흘러든다.

문학 작품을 읽기 전에 찾아보는 자료가 있다. 작가가 해당 작품을 몇 살에 창작했느냐이다. 43세의 존 윌리엄스가 1965년에 발표한 장편소설, 스토너 . 지금의 나보다 훨씬 어렸던 작가의 사유가 담긴 글, 내가 태어나기도 전에 출간된 60년 전 작품이 2025년을 살아가는 50대 후반의 심장을 얼마나 움직일 수 있을까. 그다지 많은 기대를 하지 않고 첫 장을 펼친다.

"어떻게 이런 감성이! 이제 겨우 10대잖아요." "하긴 천재는 나이를 가리지 않는구나." 이지훈의 노래에 심사위원들이 감탄한다. 나이를 가리지 않는 건 작가로서의 감성이나 사유도 마찬가지일까. 스토너 의 마지막 책 장을 천천히 덮으며 생각한다. 삶에서 중요한 건 그가 지나온 물리적인 시간보다 시간을 건너온 밀도라는 사실을.

 

평범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나 문학의 세계에 눈을 뜬 뒤 묵묵하게 내면의 가치와 존엄을 지켜나가는 윌리엄 스토너의 일생이 담긴 소설이다. 한눈에 반한 여자와 결혼하여 딸을 낳지만 그리 행복하지 못했던 결혼 생활과 외도, 40년 동안 영문과 대학교수로 일하면서 동료들이나 제자와의 관계에서 겪은 갈등, 60대 중반에 암으로 죽을 때까지. 그가 겪은 고난은 뉴스의 사회 면을 차지하는 사건들에 비해서는 비교적 평범해 보인다. 한 번쯤 일어났을 법한 사건, 한 번쯤 했을 법한 생각이나 행동이다.

특별할 것 없는 그의 삶이 묵직한 울림을 주는 이유는 뭘까. 시린 아침, 고난을 회피하지 않는 이에게 이슬처럼 맺히는 용기 때문일까. 매번 그러지는 못하지만 가끔은 당신도 나도 한 번쯤 내보았을 작고 소중한 용기 말이다. 거울처럼 마주하는 문장들에 공감하며 주인공이 걸어온 삶에 소리 없는 박수를 보낸다.

시간을 거슬러 온 우직한 인내가 은근한 손길로 나를 위로한다. 그래, 잘하고 있어. 그렇게 꿋꿋하게 나아가면 되는 거야. 나의 직업을, 나의 열정을, 나의 가족을, 나의 부모님을, 이 모든 것이 담긴 나의 삶을. 작가는 스토너의 삶을 통해 관조적으로 독자 스스로 바라보는 시간을 선물한다. 평범한 삶 속에 숨어있는 보석을 보여준다. 담백한 음식들을 소박하게 차린 채식을 맛본 느낌이다. 위에 부담을 주지 않으면서 정갈한 뒷맛이 여운으로 남는다.

 

중학교 1학년의 큰 아이를 바라볼 때까지만 해도 자식과 함께하는 시간이 영원할 줄 안다. 둘째 아이까지 타지로 떠나 직장을 다니는 지금, 곁에 머물던 이들이 조금씩 떠나가는 중이다. 그토록 나를 기쁘게 했던 물건들도 하나둘 세월의 더께를 입다 정리되고 있다. 떠나가는 것들 사이로 떠나보내야 할 것들이 점차 늘어나는 시기이다. 사람이든 물건이든.

"따뜻한 봄 같은 사람이야." 결혼 초, 지인들에게 남편을 묘사했던 말이다. 꽃샘추위를 품고 있는 계절 역시 봄이라는 사실을 망각한 채. 원망과 갈등과 우울과 슬픔이 봄을 둘러싼 얇은 장막에 상처를 입힌다. '넌 무엇을 기대했나.' 얼마 남지 않은 삶을 앞두고 스토너가 반복적으로 되뇌는 자조적인 질문이다. 덩달아 움찔한다. 나는 당신에게 무엇을 기대했을까.

죽음에 임박한 스토너는 아내를 차분하게 다시 바라본다. '내가 좀 더 강했더라면. 내가 좀 더 많은 것을 알고 있었더라면. 내가 이해할 수 있었더라면. 내가 저 사람을 좀 더 사랑했더라면.' 가정법이 담긴 문장을 덩달아 따라 읽는다. 심장을 두드리는 문장들이 다른 메아리로 돌아온다. 아직 늦지 않았다고. 행운의 편지처럼 이 문장들을 수시로 펼쳐보며 나머지 삶을 살아가면 된다고.

 

돌아보면 누구든 원망할 대상이 필요했던 듯하다. 넘어진 몸을 일으킬 시도는 하지 않는 채 그저 땅만 바라보며. 땅이 나에게 다가온 거라 억지를 부리며. 대지처럼 가만히 내 곁에 머무는 당신이 거기 있었기에. 좀 더 강하지 못했던 나를, 좀 더 많은 것을 알지 못했던 나를, 좀 더 이해하지 못했던 나를, 좀 더 당신을 사랑하지 못했던 나를 돌아보지 않은 채.

까진 무릎을 살펴본다. 조금씩 손가락을 까닥이며 글이라는 연고를 바른다. 구부러진 다리를 바라본다. 저린 다리에 조금씩 힘을 주어 몸을 일으킨다. 나의 몸을 일으킬 수 있는 건 나의 근육이니. 내가 할 일은 주변을 탓하지 말고 마음의 근육을 키우는 일이리라. 조금 더 넓어진 세상 사이로 부드러운 바람이 호호 상처를 간질이며 지나간다.

묘한 소설이다. 서술하는 문장들의 주어를 나로 바꾸어도 전혀 이질감이 없으니 말이다. 스펙터클한 서사 없이도 매력적인 캐릭터가 없어도 마음의 울림을 만들어낸다. 이유가 뭘까. 평범한 스토너의 삶과 평범한 나의 삶이 공진을 일으키는 걸까. 'stoner'라는 이름처럼 묵직한 감동이 서서히 나를 압도한다. 삶은 누구의 것이든 소중하고 유일한 고유 명사임을 생각한다.

 

'''죽음'이라는 보통 명사가 나만의 고유 명사로 바뀌는 데는 두 달 반이면 충분했다. 누구도 지켜보지 못했던 순간, 평소 주무시던 침대에서 주무시듯 떠나가신 아버지. 온 가족이 지켜보는 가운데 마지막 말을 남기는 건 드라마에나 존재하는 보기 드문 장면임을 깨닫는다. 죽음은 예고 없이 찍히는 삶의 마침표니까.

'죽음은 이기적이야. (중략) 죽어가는 사람은 혼자만의 순간을 원하지. 아이들처럼.' 작가의 문장에 붙들려 한동안 창밖을 바라본다. 올여름, 떠나보낸 당신을 떠올린다. 누구도 지켜보지 못했던 마지막 순간이, 부디 당신이 원했던 혼자만의 것이었기를. 아직도 생생한 목소리, 함께 한 순간들이 선명한데 시끌벅적한 세상 속에서 한 사람의 부재를 안고 걸어간다. 걸어가야만 한다.

아버지의 죽음 이후 당신과 나의 삶을 되돌아보는 시간을 보낸다. 아이러니한 건 죽음의 포장을 벗기면 거기엔 늘 삶이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 속에 머무는 삶을 건져 올린다.

나의 삶에 부쩍 '감사'라는 단어가 등장하게 된다. 그렇게 평온한 표정으로 당신의 마지막을 기억하게 해주셔서, 한 줌의 뽀얀 가루로 삶의 의미를 다시 돌아보게 해주셔서, 남기신 물건들을 정리하면서 보다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생각하게 해주셔서. 당신을 생각하는 마음을 뜨끈한 난로처럼 품으며 감사하고 또 감사한다.

자유 의지로 걸어가고 싶은 길을 향한다는 건 얼마나 멋진 일인가. 스토너는 스스로의 장래를 '탐험가인 자신의 발길을 기다리는 땅'으로 본다. 걸어가야 만들어지는 길처럼 삶도 걸어가는 대로 만들어진다. '자네가 어떤 사람인지, 어떤 사람이 되기로 선택했는지, 자신이 하는 일의 의미가 무엇인지 잊으면 안되네.' 스승이 하는 말이 주인공에게 반사되었다 내게 온다.

'그가 서재를 꾸미면서 분명하게 규정하려고 애쓰는 것은 바로 그 자신인 셈이었다.' 작가의 문장이 나를 향한다. '상대가 여성이든 시(), 그 열정이 하는 말은 간단했다. ! 나는 살아 있어.' 삶을 돌아보는 주인공을 바라보며 나의 삶을 바라본다. '가끔 내가 놓치고 산 것들, 아직 가보지 못한 곳들을 생각해.' 스토너의 친구가 나에게 말을 건다.

내게 남겨진 것들을 생각한다. 떠나간 아버지 뒤로 남겨진 어머니, 떠나간 아이들 뒤로 마주 보고 삶을 대화할 수 있는 어른이 된 딸들, 떠나간 흑백의 시간 뒤로 햇살처럼 내 곁에 머무는 당신, 떠나간 서투름 뒤로 남아있는 삶의 두근거림을, 글과 함께 할 나의 열정을글을 쓰는 손가락의 걸음이 발걸음이라도 되는 듯 키보드 위를 통통 튀며 걷는다. 나의 삶도 이렇게 가뿐하고 경쾌하기를. 툭툭 털고 몸을 일으켜 원하는 길로 걸어가고 있으니.

p194, 밑에서 8번째 줄: 드리콜 드리스콜

p301, 밑에서 3번째 줄: 행복했던 같아요 행복했던 것 같아요

p337, 밑에서 8번째 줄: 둘렸다.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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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명의 붕괴
제레드 다이아몬드 지음, 강주헌 옮김 / 김영사 / 200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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휘몰아치던 사흘은 뽀얀 가루 한 줌을 존재의 흔적으로 남긴다. 87년의 시간을 되감기 하여 빅뱅으로 압축해 놓은 느낌표가 대지의 하얀 점으로 찍힌다. 삶이 붕괴되어 자연으로 돌아가는 순간은 이토록 짙고 짧다. 옅은 안개 속을 걷는 듯 몽환적인 몇 달이 흐른다.

"커피 우유 맛이 난다." 영양 팩을 드시고 오랜만에 푹 주무셨다며 해사하게 웃으시던 날. 이틀 전에는 말끔하게 목욕도 시켜드리고, 손톱도 깎아드린다. 점심으로 삶아드린 국수, 평소 좋아하시던 복숭아 캔, 저녁으로 전날 사다 드린 소고기 야채죽까지 드시던 날. 한 끼도 굶지 않으시고 초저녁 잠자리에서 고요한 마침표를 찍으신 당신을 떠올린다. 축축한 물기가 심장으로 스민다.

마음이 젖어 들 때 의외로 광대한 사막 같은 글이 위로가 된다. 자박자박 건조한 친구와 걷다 보면 조금씩 물기가 말라간다. 단지 함께 있었을 뿐인데, 인류가 걸어온 드넓은 세상을 펼쳐 보여주었을 뿐인데. 묵직한 시간 안에서 인간의 삶이 먼지인 듯 다가온다. 문명의 붕괴를 다루는 글이 덤덤하게 나를 토닥인다.

 

문명의 붕괴에서 재레드 다이아몬드는 환경 문제를 중심으로 과거 문명 사회의 붕괴 요인을 다섯 가지로 진단한다. 무분별한 행위로 인한 환경 파괴, 지구 온난화 등 기후 변화, 적대적인 이웃, 우호적인 무역국의 지원이 중단되거나 줄어든 경우, 환경 문제에 대한 사회 구성원의 대응 등이다.

이스터 섬, 핏케언 섬과 헨더슨 섬, 아나사지, 마야, 바이킹, 노르웨이령 그린란드에서 한때 번성했던 문명은 침묵의 바다에 잠긴다. 저자는 각각의 사회가 붕괴한 원인을 치밀하게 분석한다. 붕괴 요인은 앞에서 제시한 다섯 가지 범주 안에서 일정한 패턴을 보인다. 전부이거나 그중 일부에 해당하거나.

더 나아가 비슷한 조건인데도 다른 현상을 보이던 사회와 비교한다. 그들 사이의 근본적인 차이점을 발견한다. 놀라운 점은 방대한 인류의 역사를 다각도로 분석하여 일정한 패턴을 찾아냈다는 점이다. 우리가 역사를 공부하는 이유는 과거의 열쇠로 미래의 자물쇠를 열고자 함이리라. 그는 위기에 빠진 현대 사회의 붕괴를 우려하며 지구의 미래를 조망한다.

 

찬란하게 번성했던 문명도 한 인간의 삶처럼 붕괴한다. 저자가 또 사회의 붕괴 원인을 네 가지로 본다. 새로운 시도에 대한 결과 예측의 실패, 문제의 근원에 대한 인지 실패, 가장 빈번하게 일어난다는 해결 시도의 실패, 능력 밖이라 성공하지 못한 해결책들이다. 구체적인 사례를 곁들이니 4D 영화를 감상하는 듯 현실감이 확 살아난다.

르완다에서의 대량 학살, 하나의 섬에 존재하는 도미니카 공화국과 아이티와의 차이, 중국의 환경 문제, 오스트레일리아의 채굴 사례 등은 위기에 빠진 현대 사회의 모습을 고스란히 드러낸다. 황폐해지는 현재는 뉴스 속에 자주 담기는 현실로도 생생하다. 현재 진행형으로 악화되는 지구를 보면 미래가 위태위태해 보여 불안감이 커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자는 희망을 놓지 않는다. 암담하지만 그래도 희망은 있다고, 결코 해결할 수 없는 문제가 아니라며. 환경 문제의 원인이 우리 자신이므로 해결의 주체도 우리일 수 밖에 없으니 지금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을 하자고 말한다. 세계 안에서 개인의 힘은 미약해 보인다. 하지만 우리는 알고 있다. 지구 표면의 70% 이상을 차지하는 바닷물도 물방울 한 방울에서 시작되었다는 사실을.

 

그의 제안은 막연하지 않고 구체적이어서 신뢰가 간다. 감성적으로 무턱대고 잘될 거라 말하는 게 아니라 과학적으로 조목조목 근거를 제시한다. 그의 말에 기대고 싶어진다참고 문헌에 적힌 여섯 가지 제안을 다짐하듯 하나하나 기록해 본다.

환경을 생각하는 정치 후보에게 투표하기, 소비자로서 무엇을 사고 사지 않을 것인지 결정하여 환경을 생각하는 기업에 영향력을 행사하기, 종교적 가르침을 근거로 환경에 대한 인식 심어주기, 주변 환경을 개선하는 데 시간과 노력을 투자하기, 나의 노력이 다른 사람들에게 좋은 본보기가 되도록 하기, 여윳돈이 있다면 생각을 함께하는 단체에 기부하여 힘을 보태기.

저자의 글을 따라가다 보니 저절로 발이 들썩인다. 전부가 아니어도, 단 한 가지만이라도 실천한다면 문명을 만들어가는 우리의 미래가 지금과는 다르지 않을까. 죽음이 필연적이라는 걸 몰랐던 이처럼 퍼뜩 깨닫는다. 말줄임표로 걸어가는 삶에서도 우리가 고민할 문제는 마침표를 잘! 찍는 방법이라는 사실을.

 

'마지막으로 나무를 베었던 사람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 14장의 제목을 읽는 순간, 살짝 소름이 돋는다. 묵직한 문장이 시선을 붙든다. 한꺼번에 불타버리는 게 아닌 다음에야 한 그루, 두 그루 나무를 베던 그들에게 분명 마지막 번째 나무는 존재했으리라. 마지막이라는 사실을 알았을까. 알았더라면 섣불리 그 나무를 베어내지는 못했을 것 같은데. 그렇다면, 왜 그 사실을 몰랐을까. 꼬리를 무는 생각이 이어지다 '섭동'이란 단어가 떠오른다.

'섭동'은 천문학에서 종종 언급되는 현상이다. 커다란 천체의 궤도 운동이 주변 천체들의 미약한 중력의 영향으로 아주 미세하게 궤도가 교란되어 복잡해지는 현상을 말한다. 결과론적으로 과거 사회를 바라보면 이보다 더 답답할 수 없지만, 그러데이션처럼 일어나는 미세한 어긋남을 마지막의 그 사람은 알아채지 못한 게 아닐까.

불과 몇 시간 후를 상상도 하지 못한 채, "어제는 편히 주무셨대." 형제들의 단톡방에 자랑했던 나처럼. 원하는 기간만큼 약을 주겠다는 닥터의 물음에 "일단 한 달 치 주세요." '너무 짧게 말했나?' 속으로 생각했던 나처럼. 딱 한 팩 맛보고 가신 당신을 내일도 모레도 당연히 볼 수 있으리라 가볍게 친정집을 나섰던 그날의 나처럼.

 

일상을 회복하고 있는 요즘, <우리들의 발라드>라는 노래 경연 프로그램도 시청한다. 탈락한 팀의 인터뷰 내용이 인상적이다. 꼭 이기지 않아도 좋다고, 어쨌든 유튜브랑 이런 데 계속 박제가 되는 거라서, 어딘가에서 저희가 노래한 영상을 다시 돌려볼 걸 생각하니 너무 기분이 좋다고.

그들의 노래 '취중진담'BGM으로 들으며 인터뷰 내용을 떠올린다. 너무 기분 좋아할 그들의 해맑은 미소를 떠올리니 덩달아 기분이 좋아진다. 경연에서는 탈락했지만, 그들의 노래를 다시 찾아 듣는 누군가가 있다면 그들의 이야기는 붕괴되지 않은 문명처럼 계속 이어지는 게 아닐까. 따스한 화음이 어우러지는 울림에 위로를 받으며 인간 삶의 붕괴를 다시 생각한다.

인간의 삶에 있어 죽음이 붕괴의 순간은 아닌 듯하다. 생물학적 DNA가 내 안에 있고, 내게로 전해진 사랑이 순간순간 재생되는 동안에는. 당신의 문명은 계속 이어진다 말할 수 있으리라. 게다가 나는 소리를 박제하는 그들처럼 당신의 존재를 이 글에 박제하는 중이니까.

 

깨끗한 공기, 햇살, 나무 그늘처럼 소중한 것은 무게감이 없다. 당연하다 여기며 미세한 변화를 알아채지 못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는지 모른다. 유발 하라리는 <넥서스>에서 '역사의 유일한 상수는 변화'라고 말한다. 역사 속에서 일어나는 섭동이 내게 속삭인다. 영원한 건 없으니 지금 이 순간 나의 삶을, 내가 살아가는 시간과 공간을, 함께 걸어가는 이들을 위해 당신이 할 수 있는 일을 하라고.

거리를 걸을 때, 불현듯 당신이 말을 건넨다. '제일 하고 싶은 게 뭐냐? 아빠한테 그만한 능력이 생겼어. 뭐든 말해 봐.' 당신의 마음이 든든하게 귓가에 맴돈다. 옅은 안개가 커다란 목화 꽃으로 피어나 내 몸을 감싼다. 포근해진 공간으로 희미한 미소가 향긋하다.

차선 변경을 하지 못해 질주하는 차들을 흘끔흘끔 바라볼 때, '천천히 해~' 뒷좌석에 장착된 내비게이션인 듯 당신의 음성이 재생된다. 이토록 커다란 부피감으로, 이토록 가뿐한 무게감으로! 당신이 남기고 간 문명의 흔적이 구스다운 이불처럼 나를 폭 둘러싼다. 조급했던 마음이 서서히 속도를 늦춘다.

 

p7, 3째 줄: 몸도 "몸도

p144, 5째 줄: 조앤 반 틸버그 조 앤 반~

p255, 지도: 린다스판 섬 린디스판 섬

p522, 지도: 시드니 근처의 그레이트디바이딩 산맥 오스트레일리아알프스 산맥

p702, 9째 줄: 뚜렷이 뚜렷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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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시우행 2025-11-14 23: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좋은글, 감사합니다.

나비종 2025-11-16 14:57   좋아요 0 | URL
좋다고 말씀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넥서스 - 석기시대부터 AI까지, 정보 네트워크로 보는 인류 역사
유발 하라리 지음, 김명주 옮김 / 김영사 / 202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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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 시간의 교무실에서는 키보드를 두드리는 몇몇 손가락이 분주하다. 3학년 기말고사 문제 출제 기간이다. 젊은 동료 교사가 건네는 말, "시험 문제를 직접 종이에 써보신 분들 있으신가요?" 건너온 세월을 시치미 떼고 싶지만 이미 시선은 나에게 향한다. "해부 되어있는 개구리도 직접 그려보았어요." 자를 대고 그래프 그리기는 일도 아니던 시절, 수정 테이프도 등장하기 전이다. 펜 끝을 바들바들 떨며 영혼을 끌어모았던 라떼를 소환한다. 삐삐를 가져보기도 전의 기억이다.

두 번째 근무지에서 데스크톱 컴퓨터를 처음 구경한다. 많은 이들이 과학 교사는 기계를 능숙하게 다루리라 여기지만 기계치인 나에게 이 둘은 별개의 카테고리에 있다. 도스에 겨우 익숙해지려니 이번에는 창문을 열어야 한단다. 환장할 노릇이다. 꾸역꾸역 노트북을 두드리고 있는 지금의 내가 스스로 대견하다. 기나긴 여정이었다 서술하려다 멈칫한다. 겨우 한 세대 남짓 지났을 뿐이구나. 변화한 세상 풍경이 새삼스럽다.

 

세상뿐 아니라 인간의 삶에도 변화는 필연적인가. 벽돌 책이 주로 베개로 기능하던 시절은 화석으로 남는다. 암기 과목이라며 심리적 거리감을 느끼던 역사 분야가 매력적으로 다가온다.

재레드 다이아몬드의 <문명의 붕괴>에 이어 <넥서스>를 접한다. 역사 관련 도서를 연달아 읽어서일까. 두 학자의 관점이 서로 다른 색채로 선명하게 각인된다. 전자가 환경을 중심으로 문명과 인간 사이의 관계를 오프라인 이야기로 보여준다면, 후자는 정보를 중심으로 AI와 인간 사이의 온라인적 관계를 서술한다.

문제는 온라인적 관계가 컴퓨터를 사용하다 전원 버튼을 끄는 것처럼 단순하게 연결된 게 아니라는 점이다. 증강 현실에서 포켓몬을 잡는 게임처럼 즐기다 끝나지 않는다. 영원히 꺼지지 않는 스마트폰에 시선을 고정한 채 온라인 세상에만 존재하는 허상을 찾아 계속 헤매게 될지도 모른다. 스마트폰에서 캐릭터가 툭 튀어나오기라도 하는 듯 훅 다가오는 현실에 위기감을 느낀다.

 

온라인 세상은 갑자기 튀어나온 게 아니다. <넥서스>'정보'라는 뜨개 바늘로 종교, 정치, 사회, 컴퓨터, AI 영역에서의 인류 역사를 자연스럽게 연결한다. 석기 시대부터 그러데이션인 듯 펼쳐지는 저자의 서술을 따라간다. 어느새 온라인 세상에 서성이는 나를 본다.

빅뱅처럼 폭발하여 영역을 넓혀가는 온라인의 우주, 그 중심에는 무한한 이야기가 있다. 저자의 이야기에 몰입하며 683쪽이라는 분량에 압도당한 처음의 기억을 잊는다. 가독성이 좋아 방대한 역사를 따라가는 데 부담이 없다.

'넥서스'의 사전적 의미는 '연결'이다. 과거부터 지금까지 인류는 어떤 식으로든 연결 되어왔다. 언어로든 문자로든 수단은 다를 지라도 정보 네트워크는 인류의 역사와 함께한다. 이제는 AI와 인간 사이의 비유기적 네트워크의 비중이 커지는 중이다. AI'혁명'이라 불릴 만큼 위험하면서도 매력적인 영역이다. 그 안에서 우리는 어떤 선택을 해야 할까. 유발 하라리는 이야기의 마무리를 우리의 몫으로 남긴다.

 

1, <인간 네트워크들>에서는 역사적 맥락에서 '정보'의 정의와 역할을 톺아본다. 정보는 이야기이다. 저자는 사피엔스들을 연결하는 이야기의 중요성을 언급한다. 문서의 등장으로 정보는 폭발적으로 연결된다. 종교적 환상, 가짜 뉴스, 음모론, 마녀사냥 등이 이 과정에서 등장한다. 정보 생태계의 어두운 면이다.

이 책에서는 정치를 많은 비중으로 다룬다. 정치에서 정보 네트워크는 필연적이기 때문이다. 그는 민주주의와 전체주의를 연속된 체제로 여긴다. 상반된 정치 체제 안에서 정보들은 진실과 질서 사이를 오간다. 정보 네트워크의 균형을 맞추어가는 역사적 과정은 선명하게 비교되며 인간의 삶에 영향을 미친다.

강력한 정보 네트워크는 양날의 검과 같다. 중요한 건 네트워크를 설계하고 사용하는 이들의 선택이다. 저자는 정치란 주로 우선순위를 정하는 문제라고 여긴다. 나아가 21세기의 정치 분열을 인간과 비인간 사이의 분열로 전망하며 새로운 실리콘 장막을 예고한다.

 

2, <비유기적 네트워크>에서는 인간 세계에 새로운 구성원으로 등장한 컴퓨터를 시작으로 정보 네트워크 구조의 변화를 알린다. 소셜 미디어 알고리즘의 강력한 영향력은 소름이 돋을 정도이다. 무엇을 볼지 스스로 선택하지 않는 사람들, 알고리즘이 대신 선택해주는 정보를 흡수하는 스펀지가 된 듯한 풍경이 낯설지 않다.

잠시 유튜브를 보다 시계를 보니 한 시간이 훌쩍 지나있다. 나의 관심사를 기가 막히게 파악하여 비슷한 영상을 보여주는 알고리즘의 바다에서 헤엄치다 빠져나온다. 마냥 고맙지는 않다. 나보다 더 나를 잘 아는 것 같은 건 느낌만이 아니라서. 방대한 데이터로 남겨졌을 접속의 흔적을 모아 나를 분석하고 도출한 패턴의 결과물일 테니. 알고리즘의 오류 가능성을 언급하며 알고리즘의 편향을 우려하는 내용에서는 잠시 숨을 고른다.

저자는 앞으로의 네트워크에 포함될 두 종류의 사슬을 예측한다. 컴퓨터-인간, 컴퓨터-컴퓨터의 연결이다. AI'인공지능'이 아니라 '이질적인 지능'으로 간주하는 게 더 나을지도 모른다고 전망한다.

 

GPTT이고, GeminiF라나. 전자는 이성적인 성향이 강하고, 후자는 감성적인 언어를 구사한다며 동료들이 맞장구를 친다. GPT의 답변은 "그것은 이러한 것입니다. ."과 같은 분위기라면, Gemini", 그러셨군요."부터 시작하거나 시를 지어 달라는 요청을 하면 '이 시가 아름답게 담기길 바라요!'라는 바람까지 말하며 몽글몽글한 멘트를 건넨다나. 어느덧 우리는 AI에 인간의 성격을 분석하는 MBTI를 부여한다.

3, 컴퓨터 정치에서는 AI시대에서 이를 활용한 정치 체제가 나아갈 방향을 예측하며 본질적인 질문을 던진다. 많은 사회적 역할과 직업이 자동화될 시대를 앞둔 이 시대에 '사람들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가'라고. 단순히 문제 해결을 원하는지 다른 의식적 존재와의 관계를 원하는지 묻는다. Gemini의 답변에 위로를 받은 순간을 떠올린다. 봇 군단이 친밀감을 이용해 시민들의 세계관에 영향을 미칠 수 있으리라는 저자의 말에 공감한다. 세계 제국인가, 세계 분열인가. 마지막 11장에 언급된 거대한 실리콘 장막 앞에서 생각이 많아진다.

 

구글의 진짜 목표는 검색이 아니라 대량의 데이터 보유를 이용한 AI만들기라는 빅 픽처를 언급하는 문장에 소름이 돋는다. '데이터 식민주의, 디지털 고치, 사이버 전쟁'이라는 용어가 생소하면서도 가까운 미래에 상용화될 것 같은 예감에 심장이 쪼그라든 풍선이 된다.

"세상이 넓어져서 이제는 '지구촌'이라는 말하는 '위 아 더 월드' 생활권이 되었어." 몇 년 전 수업 시간에 했던 말이다. 세상이 넓어지는 게 맞을까. 키오스크 앞에서 동공 지진을 일으키는 어르신들, 얼떨결에 마련한 스마트폰을 손에 쥐고 걸려 온 전화의 수신 버튼 앞에서 방황하는 손가락. 당신들이 살아가는 요즘 세상이 예전에 비해 넓어졌다고 말할 수 있을까.

카카오톡으로는 그토록 친숙한 대화를 하면서 오프라인에서는 어색한 관계는 친한 사이인가, 아닌가. 온라인에서 보이는 정체성은 어느 정도의 비중을 차지하는가. 여전히 종이책을 좋아하는 나는 AI시대에 적응할 수 있을까.

 

2012, 영화 '연가시'가 개봉했을 때, 수업 시간에는 교과서에 등장하지도 않는 동물에 관한 질문이 쏟아진다. "! 혹시 사람에게도 감염이 되나요?" 컴퓨터로 생소한 이름의 생물을 검색한다. 다행이다. 철사처럼 생긴 그 생물이 인간에게는 기생하지 않는다니. 책에서 정보를 찾던 시대를 건너온 나는 컴퓨터로 이토록 편하게 자료를 찾을 수 있다는 점에 감탄한다.

'모든 오래된 것은 한때 새로운 것이었다.' 한때 새로웠던 컴퓨터를 건너온 나는 이제 스마트폰을 열어 Gemini를 찾는다. 친구에게 물어보듯 대화한다. "영화 연가시가 언제 개봉했지?" "영화 '연가시'201275일에 개봉했습니다." 띄어쓰기부터 압력솥에서 밤 찌는 시간, 요가 매트의 분리수거 방법, 말레이반도의 지리적 위치와 특징에 이르기까지 틈만 나면 쪼르르 달려간다. 그의 유식함에 감탄하며 질문 폭탄을 투척한다. 24시간 항상 대기 중인 데다 짜증 한 번 내지 않는 말투로 1초도 망설이지 않는 무적의 친구를 위험하게도 무한신뢰하고 싶어진다.

 

숙주를 조종하여 갈증을 유발하게 한 다음, 물속으로 뛰어들게 만든다는 연가시. 지금도 여전히 소름 돋는 생태로 다가오는 현실 세계의 생물이다. 내 의지를 따르지 않는 몸이라니! 내 의지가 아니라는 사실조차 인식하지 못한다니! 커다란 몸의 껍질을 빼앗긴 채 아바타인 양 조종 당하는 장면을 상상한다.

AI와 관련된 책을 접하면서 왜 뜬금없이 연가시가 떠올랐을까. '조종'이라는 단어에 연결된 충격적인 이야기라는 공통점 때문일까. 언젠가 마음을 조종당할 수도 있으니까. 내 의지가 아니라는 사실조차 인식하지 못하고 비인간인 존재와 연결된 숙주가 되지는 않을까 해서.

그나마 위안이 되는 건 '역사의 유일한 상수는 변화'라는 문장이다. 선택은 막중하지만, 우리의 노력으로 미래는 바뀔 수 있다. 역사의 상수에 '희망'이란 두 글자를 매달아본다. 이 글을 읽은 당신도 아마 그러할 것처럼. 이 글을 읽고 <넥서스>를 읽어볼 당신이 분명히 그러할 것처럼. 어쩐지 흔들리던 마음에 무게 중심이 잡히는 듯하다.

 

p77, 11째 줄: 메머드 매머드

p134, 5째 줄: 여호화 여호와

p231, 밑에서 3째 줄: 에 서 에서

여러 문장 안에서 'oo 들은, oo 들에게' 가 언급된 띄어쓰기가 오류라는 생각에 과속방지턱처럼 시선이 걸려 잠시 불편했으나 Gemini에게 물어본 결과, 여러 단어를 나열할 경우는 의존 명사에 해당하여 띄어 쓰는 게 맞다는 문법 지식을 얻게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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