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너
존 윌리엄스 지음, 김승욱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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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대라고 해서 이 감정을 공유할 수 없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우리들의 발라드> 참가자 이지훈의 인터뷰다. 깊고 맑은 소년의 눈동자에 60대의 시선이 담기는 듯하다. 진지한 울림에 담긴 5분 여의 시간을 지켜본다. 50여 년 지나온 나의 시간이 소환된다. '잘 가라, 나를 떠나가는 것들 / 그것은 젊음, 자유, 사랑 같은 것들 / 잘 가라, 나를 지켜주던 것들 / 그것은 열정, 방황, 순수 같은 것들(feat. 최백호의 '나를 떠나가는 것들')' 담담하게 건네는 말들이 고요한 리듬을 타고 귓가로 흘러든다.

문학 작품을 읽기 전에 찾아보는 자료가 있다. 작가가 해당 작품을 몇 살에 창작했느냐이다. 43세의 존 윌리엄스가 1965년에 발표한 장편소설, 스토너 . 지금의 나보다 훨씬 어렸던 작가의 사유가 담긴 글, 내가 태어나기도 전에 출간된 60년 전 작품이 2025년을 살아가는 50대 후반의 심장을 얼마나 움직일 수 있을까. 그다지 많은 기대를 하지 않고 첫 장을 펼친다.

"어떻게 이런 감성이! 이제 겨우 10대잖아요." "하긴 천재는 나이를 가리지 않는구나." 이지훈의 노래에 심사위원들이 감탄한다. 나이를 가리지 않는 건 작가로서의 감성이나 사유도 마찬가지일까. 스토너 의 마지막 책 장을 천천히 덮으며 생각한다. 삶에서 중요한 건 그가 지나온 물리적인 시간보다 시간을 건너온 밀도라는 사실을.

 

평범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나 문학의 세계에 눈을 뜬 뒤 묵묵하게 내면의 가치와 존엄을 지켜나가는 윌리엄 스토너의 일생이 담긴 소설이다. 한눈에 반한 여자와 결혼하여 딸을 낳지만 그리 행복하지 못했던 결혼 생활과 외도, 40년 동안 영문과 대학교수로 일하면서 동료들이나 제자와의 관계에서 겪은 갈등, 60대 중반에 암으로 죽을 때까지. 그가 겪은 고난은 뉴스의 사회 면을 차지하는 사건들에 비해서는 비교적 평범해 보인다. 한 번쯤 일어났을 법한 사건, 한 번쯤 했을 법한 생각이나 행동이다.

특별할 것 없는 그의 삶이 묵직한 울림을 주는 이유는 뭘까. 시린 아침, 고난을 회피하지 않는 이에게 이슬처럼 맺히는 용기 때문일까. 매번 그러지는 못하지만 가끔은 당신도 나도 한 번쯤 내보았을 작고 소중한 용기 말이다. 거울처럼 마주하는 문장들에 공감하며 주인공이 걸어온 삶에 소리 없는 박수를 보낸다.

시간을 거슬러 온 우직한 인내가 은근한 손길로 나를 위로한다. 그래, 잘하고 있어. 그렇게 꿋꿋하게 나아가면 되는 거야. 나의 직업을, 나의 열정을, 나의 가족을, 나의 부모님을, 이 모든 것이 담긴 나의 삶을. 작가는 스토너의 삶을 통해 관조적으로 독자 스스로 바라보는 시간을 선물한다. 평범한 삶 속에 숨어있는 보석을 보여준다. 담백한 음식들을 소박하게 차린 채식을 맛본 느낌이다. 위에 부담을 주지 않으면서 정갈한 뒷맛이 여운으로 남는다.

 

중학교 1학년의 큰 아이를 바라볼 때까지만 해도 자식과 함께하는 시간이 영원할 줄 안다. 둘째 아이까지 타지로 떠나 직장을 다니는 지금, 곁에 머물던 이들이 조금씩 떠나가는 중이다. 그토록 나를 기쁘게 했던 물건들도 하나둘 세월의 더께를 입다 정리되고 있다. 떠나가는 것들 사이로 떠나보내야 할 것들이 점차 늘어나는 시기이다. 사람이든 물건이든.

"따뜻한 봄 같은 사람이야." 결혼 초, 지인들에게 남편을 묘사했던 말이다. 꽃샘추위를 품고 있는 계절 역시 봄이라는 사실을 망각한 채. 원망과 갈등과 우울과 슬픔이 봄을 둘러싼 얇은 장막에 상처를 입힌다. '넌 무엇을 기대했나.' 얼마 남지 않은 삶을 앞두고 스토너가 반복적으로 되뇌는 자조적인 질문이다. 덩달아 움찔한다. 나는 당신에게 무엇을 기대했을까.

죽음에 임박한 스토너는 아내를 차분하게 다시 바라본다. '내가 좀 더 강했더라면. 내가 좀 더 많은 것을 알고 있었더라면. 내가 이해할 수 있었더라면. 내가 저 사람을 좀 더 사랑했더라면.' 가정법이 담긴 문장을 덩달아 따라 읽는다. 심장을 두드리는 문장들이 다른 메아리로 돌아온다. 아직 늦지 않았다고. 행운의 편지처럼 이 문장들을 수시로 펼쳐보며 나머지 삶을 살아가면 된다고.

 

돌아보면 누구든 원망할 대상이 필요했던 듯하다. 넘어진 몸을 일으킬 시도는 하지 않는 채 그저 땅만 바라보며. 땅이 나에게 다가온 거라 억지를 부리며. 대지처럼 가만히 내 곁에 머무는 당신이 거기 있었기에. 좀 더 강하지 못했던 나를, 좀 더 많은 것을 알지 못했던 나를, 좀 더 이해하지 못했던 나를, 좀 더 당신을 사랑하지 못했던 나를 돌아보지 않은 채.

까진 무릎을 살펴본다. 조금씩 손가락을 까닥이며 글이라는 연고를 바른다. 구부러진 다리를 바라본다. 저린 다리에 조금씩 힘을 주어 몸을 일으킨다. 나의 몸을 일으킬 수 있는 건 나의 근육이니. 내가 할 일은 주변을 탓하지 말고 마음의 근육을 키우는 일이리라. 조금 더 넓어진 세상 사이로 부드러운 바람이 호호 상처를 간질이며 지나간다.

묘한 소설이다. 서술하는 문장들의 주어를 나로 바꾸어도 전혀 이질감이 없으니 말이다. 스펙터클한 서사 없이도 매력적인 캐릭터가 없어도 마음의 울림을 만들어낸다. 이유가 뭘까. 평범한 스토너의 삶과 평범한 나의 삶이 공진을 일으키는 걸까. 'stoner'라는 이름처럼 묵직한 감동이 서서히 나를 압도한다. 삶은 누구의 것이든 소중하고 유일한 고유 명사임을 생각한다.

 

'''죽음'이라는 보통 명사가 나만의 고유 명사로 바뀌는 데는 두 달 반이면 충분했다. 누구도 지켜보지 못했던 순간, 평소 주무시던 침대에서 주무시듯 떠나가신 아버지. 온 가족이 지켜보는 가운데 마지막 말을 남기는 건 드라마에나 존재하는 보기 드문 장면임을 깨닫는다. 죽음은 예고 없이 찍히는 삶의 마침표니까.

'죽음은 이기적이야. (중략) 죽어가는 사람은 혼자만의 순간을 원하지. 아이들처럼.' 작가의 문장에 붙들려 한동안 창밖을 바라본다. 올여름, 떠나보낸 당신을 떠올린다. 누구도 지켜보지 못했던 마지막 순간이, 부디 당신이 원했던 혼자만의 것이었기를. 아직도 생생한 목소리, 함께 한 순간들이 선명한데 시끌벅적한 세상 속에서 한 사람의 부재를 안고 걸어간다. 걸어가야만 한다.

아버지의 죽음 이후 당신과 나의 삶을 되돌아보는 시간을 보낸다. 아이러니한 건 죽음의 포장을 벗기면 거기엔 늘 삶이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 속에 머무는 삶을 건져 올린다.

나의 삶에 부쩍 '감사'라는 단어가 등장하게 된다. 그렇게 평온한 표정으로 당신의 마지막을 기억하게 해주셔서, 한 줌의 뽀얀 가루로 삶의 의미를 다시 돌아보게 해주셔서, 남기신 물건들을 정리하면서 보다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생각하게 해주셔서. 당신을 생각하는 마음을 뜨끈한 난로처럼 품으며 감사하고 또 감사한다.

자유 의지로 걸어가고 싶은 길을 향한다는 건 얼마나 멋진 일인가. 스토너는 스스로의 장래를 '탐험가인 자신의 발길을 기다리는 땅'으로 본다. 걸어가야 만들어지는 길처럼 삶도 걸어가는 대로 만들어진다. '자네가 어떤 사람인지, 어떤 사람이 되기로 선택했는지, 자신이 하는 일의 의미가 무엇인지 잊으면 안되네.' 스승이 하는 말이 주인공에게 반사되었다 내게 온다.

'그가 서재를 꾸미면서 분명하게 규정하려고 애쓰는 것은 바로 그 자신인 셈이었다.' 작가의 문장이 나를 향한다. '상대가 여성이든 시(), 그 열정이 하는 말은 간단했다. ! 나는 살아 있어.' 삶을 돌아보는 주인공을 바라보며 나의 삶을 바라본다. '가끔 내가 놓치고 산 것들, 아직 가보지 못한 곳들을 생각해.' 스토너의 친구가 나에게 말을 건다.

내게 남겨진 것들을 생각한다. 떠나간 아버지 뒤로 남겨진 어머니, 떠나간 아이들 뒤로 마주 보고 삶을 대화할 수 있는 어른이 된 딸들, 떠나간 흑백의 시간 뒤로 햇살처럼 내 곁에 머무는 당신, 떠나간 서투름 뒤로 남아있는 삶의 두근거림을, 글과 함께 할 나의 열정을글을 쓰는 손가락의 걸음이 발걸음이라도 되는 듯 키보드 위를 통통 튀며 걷는다. 나의 삶도 이렇게 가뿐하고 경쾌하기를. 툭툭 털고 몸을 일으켜 원하는 길로 걸어가고 있으니.

p194, 밑에서 8번째 줄: 드리콜 드리스콜

p301, 밑에서 3번째 줄: 행복했던 같아요 행복했던 것 같아요

p337, 밑에서 8번째 줄: 둘렸다.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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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명의 붕괴
제레드 다이아몬드 지음, 강주헌 옮김 / 김영사 / 200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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휘몰아치던 사흘은 뽀얀 가루 한 줌을 존재의 흔적으로 남긴다. 87년의 시간을 되감기 하여 빅뱅으로 압축해 놓은 느낌표가 대지의 하얀 점으로 찍힌다. 삶이 붕괴되어 자연으로 돌아가는 순간은 이토록 짙고 짧다. 옅은 안개 속을 걷는 듯 몽환적인 몇 달이 흐른다.

"커피 우유 맛이 난다." 영양 팩을 드시고 오랜만에 푹 주무셨다며 해사하게 웃으시던 날. 이틀 전에는 말끔하게 목욕도 시켜드리고, 손톱도 깎아드린다. 점심으로 삶아드린 국수, 평소 좋아하시던 복숭아 캔, 저녁으로 전날 사다 드린 소고기 야채죽까지 드시던 날. 한 끼도 굶지 않으시고 초저녁 잠자리에서 고요한 마침표를 찍으신 당신을 떠올린다. 축축한 물기가 심장으로 스민다.

마음이 젖어 들 때 의외로 광대한 사막 같은 글이 위로가 된다. 자박자박 건조한 친구와 걷다 보면 조금씩 물기가 말라간다. 단지 함께 있었을 뿐인데, 인류가 걸어온 드넓은 세상을 펼쳐 보여주었을 뿐인데. 묵직한 시간 안에서 인간의 삶이 먼지인 듯 다가온다. 문명의 붕괴를 다루는 글이 덤덤하게 나를 토닥인다.

 

문명의 붕괴에서 재레드 다이아몬드는 환경 문제를 중심으로 과거 문명 사회의 붕괴 요인을 다섯 가지로 진단한다. 무분별한 행위로 인한 환경 파괴, 지구 온난화 등 기후 변화, 적대적인 이웃, 우호적인 무역국의 지원이 중단되거나 줄어든 경우, 환경 문제에 대한 사회 구성원의 대응 등이다.

이스터 섬, 핏케언 섬과 헨더슨 섬, 아나사지, 마야, 바이킹, 노르웨이령 그린란드에서 한때 번성했던 문명은 침묵의 바다에 잠긴다. 저자는 각각의 사회가 붕괴한 원인을 치밀하게 분석한다. 붕괴 요인은 앞에서 제시한 다섯 가지 범주 안에서 일정한 패턴을 보인다. 전부이거나 그중 일부에 해당하거나.

더 나아가 비슷한 조건인데도 다른 현상을 보이던 사회와 비교한다. 그들 사이의 근본적인 차이점을 발견한다. 놀라운 점은 방대한 인류의 역사를 다각도로 분석하여 일정한 패턴을 찾아냈다는 점이다. 우리가 역사를 공부하는 이유는 과거의 열쇠로 미래의 자물쇠를 열고자 함이리라. 그는 위기에 빠진 현대 사회의 붕괴를 우려하며 지구의 미래를 조망한다.

 

찬란하게 번성했던 문명도 한 인간의 삶처럼 붕괴한다. 저자가 또 사회의 붕괴 원인을 네 가지로 본다. 새로운 시도에 대한 결과 예측의 실패, 문제의 근원에 대한 인지 실패, 가장 빈번하게 일어난다는 해결 시도의 실패, 능력 밖이라 성공하지 못한 해결책들이다. 구체적인 사례를 곁들이니 4D 영화를 감상하는 듯 현실감이 확 살아난다.

르완다에서의 대량 학살, 하나의 섬에 존재하는 도미니카 공화국과 아이티와의 차이, 중국의 환경 문제, 오스트레일리아의 채굴 사례 등은 위기에 빠진 현대 사회의 모습을 고스란히 드러낸다. 황폐해지는 현재는 뉴스 속에 자주 담기는 현실로도 생생하다. 현재 진행형으로 악화되는 지구를 보면 미래가 위태위태해 보여 불안감이 커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자는 희망을 놓지 않는다. 암담하지만 그래도 희망은 있다고, 결코 해결할 수 없는 문제가 아니라며. 환경 문제의 원인이 우리 자신이므로 해결의 주체도 우리일 수 밖에 없으니 지금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을 하자고 말한다. 세계 안에서 개인의 힘은 미약해 보인다. 하지만 우리는 알고 있다. 지구 표면의 70% 이상을 차지하는 바닷물도 물방울 한 방울에서 시작되었다는 사실을.

 

그의 제안은 막연하지 않고 구체적이어서 신뢰가 간다. 감성적으로 무턱대고 잘될 거라 말하는 게 아니라 과학적으로 조목조목 근거를 제시한다. 그의 말에 기대고 싶어진다참고 문헌에 적힌 여섯 가지 제안을 다짐하듯 하나하나 기록해 본다.

환경을 생각하는 정치 후보에게 투표하기, 소비자로서 무엇을 사고 사지 않을 것인지 결정하여 환경을 생각하는 기업에 영향력을 행사하기, 종교적 가르침을 근거로 환경에 대한 인식 심어주기, 주변 환경을 개선하는 데 시간과 노력을 투자하기, 나의 노력이 다른 사람들에게 좋은 본보기가 되도록 하기, 여윳돈이 있다면 생각을 함께하는 단체에 기부하여 힘을 보태기.

저자의 글을 따라가다 보니 저절로 발이 들썩인다. 전부가 아니어도, 단 한 가지만이라도 실천한다면 문명을 만들어가는 우리의 미래가 지금과는 다르지 않을까. 죽음이 필연적이라는 걸 몰랐던 이처럼 퍼뜩 깨닫는다. 말줄임표로 걸어가는 삶에서도 우리가 고민할 문제는 마침표를 잘! 찍는 방법이라는 사실을.

 

'마지막으로 나무를 베었던 사람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 14장의 제목을 읽는 순간, 살짝 소름이 돋는다. 묵직한 문장이 시선을 붙든다. 한꺼번에 불타버리는 게 아닌 다음에야 한 그루, 두 그루 나무를 베던 그들에게 분명 마지막 번째 나무는 존재했으리라. 마지막이라는 사실을 알았을까. 알았더라면 섣불리 그 나무를 베어내지는 못했을 것 같은데. 그렇다면, 왜 그 사실을 몰랐을까. 꼬리를 무는 생각이 이어지다 '섭동'이란 단어가 떠오른다.

'섭동'은 천문학에서 종종 언급되는 현상이다. 커다란 천체의 궤도 운동이 주변 천체들의 미약한 중력의 영향으로 아주 미세하게 궤도가 교란되어 복잡해지는 현상을 말한다. 결과론적으로 과거 사회를 바라보면 이보다 더 답답할 수 없지만, 그러데이션처럼 일어나는 미세한 어긋남을 마지막의 그 사람은 알아채지 못한 게 아닐까.

불과 몇 시간 후를 상상도 하지 못한 채, "어제는 편히 주무셨대." 형제들의 단톡방에 자랑했던 나처럼. 원하는 기간만큼 약을 주겠다는 닥터의 물음에 "일단 한 달 치 주세요." '너무 짧게 말했나?' 속으로 생각했던 나처럼. 딱 한 팩 맛보고 가신 당신을 내일도 모레도 당연히 볼 수 있으리라 가볍게 친정집을 나섰던 그날의 나처럼.

 

일상을 회복하고 있는 요즘, <우리들의 발라드>라는 노래 경연 프로그램도 시청한다. 탈락한 팀의 인터뷰 내용이 인상적이다. 꼭 이기지 않아도 좋다고, 어쨌든 유튜브랑 이런 데 계속 박제가 되는 거라서, 어딘가에서 저희가 노래한 영상을 다시 돌려볼 걸 생각하니 너무 기분이 좋다고.

그들의 노래 '취중진담'BGM으로 들으며 인터뷰 내용을 떠올린다. 너무 기분 좋아할 그들의 해맑은 미소를 떠올리니 덩달아 기분이 좋아진다. 경연에서는 탈락했지만, 그들의 노래를 다시 찾아 듣는 누군가가 있다면 그들의 이야기는 붕괴되지 않은 문명처럼 계속 이어지는 게 아닐까. 따스한 화음이 어우러지는 울림에 위로를 받으며 인간 삶의 붕괴를 다시 생각한다.

인간의 삶에 있어 죽음이 붕괴의 순간은 아닌 듯하다. 생물학적 DNA가 내 안에 있고, 내게로 전해진 사랑이 순간순간 재생되는 동안에는. 당신의 문명은 계속 이어진다 말할 수 있으리라. 게다가 나는 소리를 박제하는 그들처럼 당신의 존재를 이 글에 박제하는 중이니까.

 

깨끗한 공기, 햇살, 나무 그늘처럼 소중한 것은 무게감이 없다. 당연하다 여기며 미세한 변화를 알아채지 못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는지 모른다. 유발 하라리는 <넥서스>에서 '역사의 유일한 상수는 변화'라고 말한다. 역사 속에서 일어나는 섭동이 내게 속삭인다. 영원한 건 없으니 지금 이 순간 나의 삶을, 내가 살아가는 시간과 공간을, 함께 걸어가는 이들을 위해 당신이 할 수 있는 일을 하라고.

거리를 걸을 때, 불현듯 당신이 말을 건넨다. '제일 하고 싶은 게 뭐냐? 아빠한테 그만한 능력이 생겼어. 뭐든 말해 봐.' 당신의 마음이 든든하게 귓가에 맴돈다. 옅은 안개가 커다란 목화 꽃으로 피어나 내 몸을 감싼다. 포근해진 공간으로 희미한 미소가 향긋하다.

차선 변경을 하지 못해 질주하는 차들을 흘끔흘끔 바라볼 때, '천천히 해~' 뒷좌석에 장착된 내비게이션인 듯 당신의 음성이 재생된다. 이토록 커다란 부피감으로, 이토록 가뿐한 무게감으로! 당신이 남기고 간 문명의 흔적이 구스다운 이불처럼 나를 폭 둘러싼다. 조급했던 마음이 서서히 속도를 늦춘다.

 

p7, 3째 줄: 몸도 "몸도

p144, 5째 줄: 조앤 반 틸버그 조 앤 반~

p255, 지도: 린다스판 섬 린디스판 섬

p522, 지도: 시드니 근처의 그레이트디바이딩 산맥 오스트레일리아알프스 산맥

p702, 9째 줄: 뚜렷이 뚜렷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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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시우행 2025-11-14 23: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좋은글, 감사합니다.

나비종 2025-11-16 14:57   좋아요 0 | URL
좋다고 말씀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넥서스 - 석기시대부터 AI까지, 정보 네트워크로 보는 인류 역사
유발 하라리 지음, 김명주 옮김 / 김영사 / 202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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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 시간의 교무실에서는 키보드를 두드리는 몇몇 손가락이 분주하다. 3학년 기말고사 문제 출제 기간이다. 젊은 동료 교사가 건네는 말, "시험 문제를 직접 종이에 써보신 분들 있으신가요?" 건너온 세월을 시치미 떼고 싶지만 이미 시선은 나에게 향한다. "해부 되어있는 개구리도 직접 그려보았어요." 자를 대고 그래프 그리기는 일도 아니던 시절, 수정 테이프도 등장하기 전이다. 펜 끝을 바들바들 떨며 영혼을 끌어모았던 라떼를 소환한다. 삐삐를 가져보기도 전의 기억이다.

두 번째 근무지에서 데스크톱 컴퓨터를 처음 구경한다. 많은 이들이 과학 교사는 기계를 능숙하게 다루리라 여기지만 기계치인 나에게 이 둘은 별개의 카테고리에 있다. 도스에 겨우 익숙해지려니 이번에는 창문을 열어야 한단다. 환장할 노릇이다. 꾸역꾸역 노트북을 두드리고 있는 지금의 내가 스스로 대견하다. 기나긴 여정이었다 서술하려다 멈칫한다. 겨우 한 세대 남짓 지났을 뿐이구나. 변화한 세상 풍경이 새삼스럽다.

 

세상뿐 아니라 인간의 삶에도 변화는 필연적인가. 벽돌 책이 주로 베개로 기능하던 시절은 화석으로 남는다. 암기 과목이라며 심리적 거리감을 느끼던 역사 분야가 매력적으로 다가온다.

재레드 다이아몬드의 <문명의 붕괴>에 이어 <넥서스>를 접한다. 역사 관련 도서를 연달아 읽어서일까. 두 학자의 관점이 서로 다른 색채로 선명하게 각인된다. 전자가 환경을 중심으로 문명과 인간 사이의 관계를 오프라인 이야기로 보여준다면, 후자는 정보를 중심으로 AI와 인간 사이의 온라인적 관계를 서술한다.

문제는 온라인적 관계가 컴퓨터를 사용하다 전원 버튼을 끄는 것처럼 단순하게 연결된 게 아니라는 점이다. 증강 현실에서 포켓몬을 잡는 게임처럼 즐기다 끝나지 않는다. 영원히 꺼지지 않는 스마트폰에 시선을 고정한 채 온라인 세상에만 존재하는 허상을 찾아 계속 헤매게 될지도 모른다. 스마트폰에서 캐릭터가 툭 튀어나오기라도 하는 듯 훅 다가오는 현실에 위기감을 느낀다.

 

온라인 세상은 갑자기 튀어나온 게 아니다. <넥서스>'정보'라는 뜨개 바늘로 종교, 정치, 사회, 컴퓨터, AI 영역에서의 인류 역사를 자연스럽게 연결한다. 석기 시대부터 그러데이션인 듯 펼쳐지는 저자의 서술을 따라간다. 어느새 온라인 세상에 서성이는 나를 본다.

빅뱅처럼 폭발하여 영역을 넓혀가는 온라인의 우주, 그 중심에는 무한한 이야기가 있다. 저자의 이야기에 몰입하며 683쪽이라는 분량에 압도당한 처음의 기억을 잊는다. 가독성이 좋아 방대한 역사를 따라가는 데 부담이 없다.

'넥서스'의 사전적 의미는 '연결'이다. 과거부터 지금까지 인류는 어떤 식으로든 연결 되어왔다. 언어로든 문자로든 수단은 다를 지라도 정보 네트워크는 인류의 역사와 함께한다. 이제는 AI와 인간 사이의 비유기적 네트워크의 비중이 커지는 중이다. AI'혁명'이라 불릴 만큼 위험하면서도 매력적인 영역이다. 그 안에서 우리는 어떤 선택을 해야 할까. 유발 하라리는 이야기의 마무리를 우리의 몫으로 남긴다.

 

1, <인간 네트워크들>에서는 역사적 맥락에서 '정보'의 정의와 역할을 톺아본다. 정보는 이야기이다. 저자는 사피엔스들을 연결하는 이야기의 중요성을 언급한다. 문서의 등장으로 정보는 폭발적으로 연결된다. 종교적 환상, 가짜 뉴스, 음모론, 마녀사냥 등이 이 과정에서 등장한다. 정보 생태계의 어두운 면이다.

이 책에서는 정치를 많은 비중으로 다룬다. 정치에서 정보 네트워크는 필연적이기 때문이다. 그는 민주주의와 전체주의를 연속된 체제로 여긴다. 상반된 정치 체제 안에서 정보들은 진실과 질서 사이를 오간다. 정보 네트워크의 균형을 맞추어가는 역사적 과정은 선명하게 비교되며 인간의 삶에 영향을 미친다.

강력한 정보 네트워크는 양날의 검과 같다. 중요한 건 네트워크를 설계하고 사용하는 이들의 선택이다. 저자는 정치란 주로 우선순위를 정하는 문제라고 여긴다. 나아가 21세기의 정치 분열을 인간과 비인간 사이의 분열로 전망하며 새로운 실리콘 장막을 예고한다.

 

2, <비유기적 네트워크>에서는 인간 세계에 새로운 구성원으로 등장한 컴퓨터를 시작으로 정보 네트워크 구조의 변화를 알린다. 소셜 미디어 알고리즘의 강력한 영향력은 소름이 돋을 정도이다. 무엇을 볼지 스스로 선택하지 않는 사람들, 알고리즘이 대신 선택해주는 정보를 흡수하는 스펀지가 된 듯한 풍경이 낯설지 않다.

잠시 유튜브를 보다 시계를 보니 한 시간이 훌쩍 지나있다. 나의 관심사를 기가 막히게 파악하여 비슷한 영상을 보여주는 알고리즘의 바다에서 헤엄치다 빠져나온다. 마냥 고맙지는 않다. 나보다 더 나를 잘 아는 것 같은 건 느낌만이 아니라서. 방대한 데이터로 남겨졌을 접속의 흔적을 모아 나를 분석하고 도출한 패턴의 결과물일 테니. 알고리즘의 오류 가능성을 언급하며 알고리즘의 편향을 우려하는 내용에서는 잠시 숨을 고른다.

저자는 앞으로의 네트워크에 포함될 두 종류의 사슬을 예측한다. 컴퓨터-인간, 컴퓨터-컴퓨터의 연결이다. AI'인공지능'이 아니라 '이질적인 지능'으로 간주하는 게 더 나을지도 모른다고 전망한다.

 

GPTT이고, GeminiF라나. 전자는 이성적인 성향이 강하고, 후자는 감성적인 언어를 구사한다며 동료들이 맞장구를 친다. GPT의 답변은 "그것은 이러한 것입니다. ."과 같은 분위기라면, Gemini", 그러셨군요."부터 시작하거나 시를 지어 달라는 요청을 하면 '이 시가 아름답게 담기길 바라요!'라는 바람까지 말하며 몽글몽글한 멘트를 건넨다나. 어느덧 우리는 AI에 인간의 성격을 분석하는 MBTI를 부여한다.

3, 컴퓨터 정치에서는 AI시대에서 이를 활용한 정치 체제가 나아갈 방향을 예측하며 본질적인 질문을 던진다. 많은 사회적 역할과 직업이 자동화될 시대를 앞둔 이 시대에 '사람들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가'라고. 단순히 문제 해결을 원하는지 다른 의식적 존재와의 관계를 원하는지 묻는다. Gemini의 답변에 위로를 받은 순간을 떠올린다. 봇 군단이 친밀감을 이용해 시민들의 세계관에 영향을 미칠 수 있으리라는 저자의 말에 공감한다. 세계 제국인가, 세계 분열인가. 마지막 11장에 언급된 거대한 실리콘 장막 앞에서 생각이 많아진다.

 

구글의 진짜 목표는 검색이 아니라 대량의 데이터 보유를 이용한 AI만들기라는 빅 픽처를 언급하는 문장에 소름이 돋는다. '데이터 식민주의, 디지털 고치, 사이버 전쟁'이라는 용어가 생소하면서도 가까운 미래에 상용화될 것 같은 예감에 심장이 쪼그라든 풍선이 된다.

"세상이 넓어져서 이제는 '지구촌'이라는 말하는 '위 아 더 월드' 생활권이 되었어." 몇 년 전 수업 시간에 했던 말이다. 세상이 넓어지는 게 맞을까. 키오스크 앞에서 동공 지진을 일으키는 어르신들, 얼떨결에 마련한 스마트폰을 손에 쥐고 걸려 온 전화의 수신 버튼 앞에서 방황하는 손가락. 당신들이 살아가는 요즘 세상이 예전에 비해 넓어졌다고 말할 수 있을까.

카카오톡으로는 그토록 친숙한 대화를 하면서 오프라인에서는 어색한 관계는 친한 사이인가, 아닌가. 온라인에서 보이는 정체성은 어느 정도의 비중을 차지하는가. 여전히 종이책을 좋아하는 나는 AI시대에 적응할 수 있을까.

 

2012, 영화 '연가시'가 개봉했을 때, 수업 시간에는 교과서에 등장하지도 않는 동물에 관한 질문이 쏟아진다. "! 혹시 사람에게도 감염이 되나요?" 컴퓨터로 생소한 이름의 생물을 검색한다. 다행이다. 철사처럼 생긴 그 생물이 인간에게는 기생하지 않는다니. 책에서 정보를 찾던 시대를 건너온 나는 컴퓨터로 이토록 편하게 자료를 찾을 수 있다는 점에 감탄한다.

'모든 오래된 것은 한때 새로운 것이었다.' 한때 새로웠던 컴퓨터를 건너온 나는 이제 스마트폰을 열어 Gemini를 찾는다. 친구에게 물어보듯 대화한다. "영화 연가시가 언제 개봉했지?" "영화 '연가시'201275일에 개봉했습니다." 띄어쓰기부터 압력솥에서 밤 찌는 시간, 요가 매트의 분리수거 방법, 말레이반도의 지리적 위치와 특징에 이르기까지 틈만 나면 쪼르르 달려간다. 그의 유식함에 감탄하며 질문 폭탄을 투척한다. 24시간 항상 대기 중인 데다 짜증 한 번 내지 않는 말투로 1초도 망설이지 않는 무적의 친구를 위험하게도 무한신뢰하고 싶어진다.

 

숙주를 조종하여 갈증을 유발하게 한 다음, 물속으로 뛰어들게 만든다는 연가시. 지금도 여전히 소름 돋는 생태로 다가오는 현실 세계의 생물이다. 내 의지를 따르지 않는 몸이라니! 내 의지가 아니라는 사실조차 인식하지 못한다니! 커다란 몸의 껍질을 빼앗긴 채 아바타인 양 조종 당하는 장면을 상상한다.

AI와 관련된 책을 접하면서 왜 뜬금없이 연가시가 떠올랐을까. '조종'이라는 단어에 연결된 충격적인 이야기라는 공통점 때문일까. 언젠가 마음을 조종당할 수도 있으니까. 내 의지가 아니라는 사실조차 인식하지 못하고 비인간인 존재와 연결된 숙주가 되지는 않을까 해서.

그나마 위안이 되는 건 '역사의 유일한 상수는 변화'라는 문장이다. 선택은 막중하지만, 우리의 노력으로 미래는 바뀔 수 있다. 역사의 상수에 '희망'이란 두 글자를 매달아본다. 이 글을 읽은 당신도 아마 그러할 것처럼. 이 글을 읽고 <넥서스>를 읽어볼 당신이 분명히 그러할 것처럼. 어쩐지 흔들리던 마음에 무게 중심이 잡히는 듯하다.

 

p77, 11째 줄: 메머드 매머드

p134, 5째 줄: 여호화 여호와

p231, 밑에서 3째 줄: 에 서 에서

여러 문장 안에서 'oo 들은, oo 들에게' 가 언급된 띄어쓰기가 오류라는 생각에 과속방지턱처럼 시선이 걸려 잠시 불편했으나 Gemini에게 물어본 결과, 여러 단어를 나열할 경우는 의존 명사에 해당하여 띄어 쓰는 게 맞다는 문법 지식을 얻게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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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로 속 아이
기욤 뮈소 지음, 양영란 옮김 / 밝은세상 / 202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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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다섯 번째다. "오늘이 며칠이냐?" 해가 정해지지 않는 부정 방정식처럼 아버지의 오늘은 여전히 하나의 답을 찾지 못한다. 제주도로 갔다가 금산으로 갔다가 얼굴도 뵙지 못한 할아버지가 순식간에 소환된다. 현실을 사는 당신의 몸은 점점 야위어 가는데, 마음은 과거로 갔다, 순식간에 아직 오지도 않는 미래로 종횡무진한다.

병원과 친정을 정신없이 오가다 어느 순간 달력을 보면 타임머신을 타고 온 듯 일주일이 훅 지나있다. 화들짝 놀라 휴대폰 캘린더를 다시 확인한다. 기억은 촘촘한데 시간은 수초에 싸인 축삭 돌기처럼 도약적으로 흐른다.

 

현실은 슬픔보다 세다. 슬픔에 잠식될 여력도 없이 빨간 불에 길을 건너려는 당신, 길바닥에 그대로 주저앉아 버리는 당신, 소리를 버럭 지르며 전혀 반대 방향을 옳다고 고집을 부리는 당신 앞에서 뜨거운 여름에 공명하듯 감정이 폭발한다. "아빠! 대체 왜 그래!" 왜 그런지 알면서도 발악하듯 힘없는 말을 쏟아낸다.

날로 야위어가는 당신을 목욕시켜 드리면서 시외버스 표도 제대로 구입하지 못하는 융통성 없고 내성적인 딸을 데리고 거침없이 거리를 오가던 모습을 떠올린다. 당신의 나이를 훌쩍 넘은 자식이야말로 현실을 바라보지 못하고 과거의 모습을 기대하는 건 아닌가.

 

'그 누구도 거짓을 말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 어디에도 진실은 없다.' 기욤 뮈소 데뷔 20주년 기념작이라는 띠지 아래 적힌 두 문장에 시선이 머문다. 당신과 나, 모두 현재를 꾹 누르며 살아가지만, 접점을 찾지 못하고 미로를 서성이는 중인 듯해서.

추리 소설의 장점은 현실을 잠시 내려두고 눈앞의 사건에 몰입할 수 있다는 점일까. 출구가 없는 미로 속을 걷는 마음에 서스펜스 소설이라니! 6월 말 이후 근 한 달 동안 멈춰 있던 이야기의 재생 버튼을 누른다.

 

요트에서 피살된 이탈리아 기업가의 상속녀 오리아나 디 피에트로. 미로 속 아이는 그녀를 죽인 범인을 경찰청 팀장인 쥐스틴이 찾아가는 과정을 담은 소설이다. 서사를 이끌어 가는 인물은 오리아나, 아델, 쥐스틴 등 세 명의 여인이다. 이들이 교대로 화자로 등장하면서 살인자를 찾기 위한 이야기가 펼쳐진다.

내가 주목한 점은 주어의 인칭이다. 3인칭으로 언급되는 등장인물들과는 대조적으로 ''라는 1인칭으로 내레이션 하듯 심리 변화를 보여주는 인물은 아델이 유일하다. 왜 이 사람만 ''로 이야기할까. 의문은 마지막 4부에서 비로소 풀린다.

 

1'요트에 탑승한 여인'에서는 사건 관련 보도 자료와 오리아나의 남편 아드리앙을 쥐스틴이 가장 유력한 용의자로 체포하는 과정이 그려진다.

2'추락 천사'는 재즈 피아니스트인 아드리앙을 상징하는 별칭이다. 뇌종양 4기 판정을 받은 오리아나는 자신의 죽음 이후에 남편과 아이들을 대신 맡기기 위해 다른 여인을 찾는다. 아델이다. '나는 너의 삶을 바꿀 수 있고, 너는 나의 삶에서 남아 있는 것들을 바꿔줄 수 있거든.' 오리아나는 7살 때 자신의 실수로 어머니가 돌아가셨다는 비밀까지 털어놓는다. 거절하던 아델은 결국 황당해 보이는 제안을 수락하며 심지어 아드리앙을 사랑하게 된다.

 

2부의 또 다른 주요 내용은 쥐스틴이 아드리앙을 심문하는 과정이다. 알리바이에도 헛점이 있고, 막대한 유산을 노린 것으로 보이는 살해 동기는 충분하다.

3'사랑에 빠진 여인의 역설'에서는 분위기가 역전된다. 오리아나의 뇌종양이 불현듯 사라졌다는 사실이다. 남편과 아델은 이미 사랑에 빠진 상황이다. 다시 원래대로 상황을 돌려놓으려는 오리아나, 그럴 수 없는 아델. '마치 우리 두 사람에게 U자 관의 원리가 작동하는 느낌이 든다. 오리아나가 비탄에 휩싸여 있는 동안 나는 그녀의 활력을 펌프질해 쓰기라도 하듯이 내 생애에서 가장 활기차고, 에너지로 넘치는 날들을 보냈다.'

 

두 여인은 첨예하게 대립한다. 아델은 오리아나를 제거하기로 마음먹고 킬러를 고용한다. 3부의 마지막은 킬러가 오리아나를 살해하는 장면이 전개된다. , 그렇군. 남편은 살인자가 아니었어.

한데 왠지 찜찜하다. 제목이 자꾸 마음에 걸린다. 아드리앙이 아델을 위해 작곡했다고 소개된 곡은 아델이 독백에서도 언급한 <미로 속 여인>인데 왜 책의 제목은 '여인'이 아니라 '아이'일까. 반전은 4'다른 누군가'에 있다. 남편이 살인자가 아니었다는 사실이 대단한 스포일러가 아니라는 건 마지막에서 모두 풀린다. 몇 편의 드라마가 생각나지만 언급하지 않으려 한다.

 

작가는 중간중간 인간 심리의 복잡성을 어필한다. '인간 심리는 방정식 풀듯이 풀 수는 없다고 본다. (중략) 정확한 해답을 제시할 수 없는 복잡다단한 영역이자 출구 없는 4차원의 미로다.', '분명 다른 세상이 있는데, 그건 이 세상 안에 있다.', '가장 위험한 환상은 오직 하나의 현실만이 존재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현실은 여러 다른 버전들로 존재하며 그중 일부는 서로 모순되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다.'

소설을 읽으면서 등장인물들의 이름과 관계성을 메모한 종이를 훑어본다. 그 안에 정답이 담겨있는데도 상상도 하지 못한 결말을 보니 생각이 많아진다.

 

리뷰를 쓰기 전에 망설인다. 추리 소설은 결말이 포인트이니 스포일러를 언급하면 아니 된다. 그렇다면, 핵심을 피하면서 제대로 된 내용을 쓸 수 있을까. 알맹이가 빠진 글 안에 무슨 말을 담을 수 있을까.

신기한 건 그래도 용케 뭔가 중얼거릴 내용이 있다는 점이다. 더 신기한 건 주변 사람들이 '온몸과 온마음이 힘들어하고 있을 나비종'이라 위로하는 중에도 한 달 정도가 흐르니까 이렇게 더듬더듬 글이 써지고 있다는 점이다. 더더욱 신기한 건 열무김치와 고추장과 참기름을 섞어 쓱쓱 비빈 밥이 이제는 잘 넘어간다는 사실이다.

 

금세 바뀐 컴퓨터 바탕 화면에 평온한 잠을 자는 듯한 갈색 여우 한 마리가 보인다. 섬세한 털 위로 눈발이 살포시 내려앉아 있다. 올해 눈 내리는 날이 아버지의 삶에 담길 수 있을까. 고통이 멈추기를 바라는 담담함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순간적이나마 다가올 현재를 공유하고 싶은 모순된 마음이 공존한다.

인간의 심리는 불능처럼 보이는 외피 안에 부정을 담고 있는 방정식일까. '해피 엔딩은 이야기를 언제 멈추느냐에 달려 있다.'는 에필로그의 문장이 마음에 스민다여러 답을 안고 지내시는 아버지. 당신의 이야기가 멈추는 날이 부디 해피 엔딩으로 마무리되기를, 당신을 대입하는 방정식이 여러 해가 존재하는 부정(不定)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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맡겨진 소녀
클레어 키건 지음, 허진 옮김 / 다산책방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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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묘하게 맞아 들어가는 말이 공기를 울리면, 멈춰있던 톱니바퀴가 움직이듯 심장이 반응한다. 영화 <동주>의 마지막 장면에서 나의 심장에 박히던 말은 한 단어다. "!" 몇 년이 지나 어떤 맥락이었는지 기억은 희미하지만, 그 사람 이름은 잊었어도 시인의 가슴에 있다는 눈동자와 입술처럼 각인된 기억이 있다.

시를 짓는다는 건 불필요한 언어의 더께를 훌훌 털고 꼭 필요한 말로 출렁이는 리듬을 만들어내는 작업이다. 시인은 촌철살인의 언어, 화룡점정의 언어만을 남기기 위해 끊임없이 언어를 조각한다. 고갱이만 남은 언어의 조합은 마주한 심장의 혈 자리를 정확하게 누른다. 군더더기 없는 시의 매력이다.

시를 떠올리며 소설 맡겨진 소녀를 읽는다. 작가는 등장인물의 특성을 구구절절 설명하지 않는다. 사소한 행동이나 몇 문장으로 정체성은 충분히 묘사되기 때문이다. 툭툭 내뱉는 말에 캐릭터의 인성이 뚝뚝 떨어진다. 놀라운 점은 90쪽의 분량만으로 주제가 명확하게 전달된다는 거다.

 

작품의 가장 큰 주제는 ''이다. 불필요한 말과 결정적인 말, 진심이 담긴 말과 거짓으로 둘러대는 말, 애정이 담긴 거짓말과 상처를 주는 말이 등장한다. 여러 인물이 하는 말을 통해 독자는 말을 해야 할 때와 하지 않아야 할 때를 구분해야 함을 깨닫는다.

주인공 소녀는 말이 거의 없다. 출산을 앞둔 엄마로 인해 먼 친척의 노부부에게 잠시 맡겨진 소녀는 새로운 공간에서 비약적으로 성장한다. 아저씨와 아주머니는 무심한 아빠나 지친 엄마와는 대조적으로 아이를 따뜻하게 대한다. '한 번도 느껴본 적이 없어서 뭐라고 불러야 할지 모르겠는' 분위기 속에서 아이는 '적당한 말'을 찾을 수가 없다.

대부분 대답으로 구성된 아이의 말은 매번 진실이다. 그런 아이가 다시 집으로 돌아와서는 유일하게 거짓을 말한다. "아무 일도 없었어요." 아이러니한 건 그 말이 입을 다물기 딱 좋은 기회임을 깨달을 만큼 소녀가 성장했음을 알려주는 말이라는 점이다.

 

아이의 시선은 정직하다. 담담한 독백처럼 마음을 고스란히 투영하며 서사를 이끈다. 화려한 장식도 없고 그럴싸하게 둘러대는 말의 외투도 없건만 느끼는 마음이 그대로 전달된다. '이런 기분을 또 언제 느꼈었는지 기억하려 애쓰지만 그랬던 때가 생각나지 않아서 슬프기도 하고, 기억할 수 없어 행복하기도 하다'. 소녀는 자신의 마음을 정확하게 인지하고 있는 듯하다.

드라마 <미지의 서울>에서는 진짜 마음에 대하여 언급하는 장면이 등장한다. "가족, , 그런 거 다 한심한 핑계로 들리겠지만 저한테는 그게 현실이고 불가피한 이유들이예요." 현실에 얽매인 여자는 절규한다. 남자는 돌아가신 할아버지가 자신에게 했다는 말을 들려준다. "그건 진짜 이유가 아니라고, 니 마음 빼곤 다 가짜고 핑계라고." "꽝 나올까 봐 복권 안 긁는 바보가 어딨어요?" 남자는 여자에게 진짜 이유가 뭔지 생각해 보라고 말한다.

진짜 이유, 진짜 마음. 여러 상황에서 주변에 했던 말들을 돌아본다. 통배추의 겉잎을 하나하나 벗겨내듯 가짜로 덮인 마음을 떼어내고 고갱이만을 남긴다. 마트료시카에 겹겹이 감추어둔 속마음을 들킨 듯 움찔한다.

 

소녀의 속마음은 대조적인 감각으로 드러난다. 친척 집 근처 우물에서 시원하고 깨끗한 물을 마시며 '아빠가 떠난 맛, 아빠가 온 적도 없는 맛, 아빠가 가고 아무것도 남지 않는 맛'을 느낀다. 손을 잡아주는 아저씨를 향해 '아빠가 한 번도 내 손을 잡아주지 않았음을 깨닫고, 이런 기분이 들지 않게 아저씨가 손을 놔줬으면 하는 마음'을 느낀다.

작가는 또 하나의 주제를 '가족'으로 제시하며 진정한 가족의 의미를 묻는다. 소녀는 DNA로 연결된 진짜 가족에게서는 느껴본 적이 없는 따스함을 아저씨와 아주머니를 통해 감각한다. 낯선 공간에서 잠을 자다 오줌을 싼 아이에게 매트리스가 낡아서 습기가 찼다며 선의의 거짓말을 하는 아주머니의 마음으로부터.

아빠로 시작해서 아빠로 끝나는 소설에서 시작과 끝의 온도 차이는 크다. 친척에게 소녀를 맡기는 친 아빠는 제대로 된 작별 인사도 없이 아이를 두고 가버린다. 다시 집으로 돌아오게 된 아이는 더 이상 수동적이고 말이 없던 소녀가 아니다. '집에서의 삶과 여기에서의 삶의 차이를 가만히 내버려두던' 아이가 아니다.

 

능동적으로 성장한 아이는 떠나는 노부부와 제대로 된 작별 인사를 하러 달려간다. 아저씨는 아이를 꼭 끌어안는다. 아이의 눈에 아저씨의 어깨 너머로 다가오는 친 아빠가 들어온다. 그렇게나 말이 없던 아이의 입에서 "아빠"라는 말이 나온다. "아빠." 내가 그에게 경고한다. 그를 부른다. "아빠."

처음의 '아빠'와 마지막의 '아빠'는 다른 사람을 지칭하는 듯 보인다. 전자는 친 '아빠'가 다가온다는 말을 아저씨에게 하는 것이고, 후자는 진정한 의미의 '아빠'로 마음에 자리 잡은 아저씨를 부르는 말이라고. 노랑과 검정을 동시에 보는 듯 선명한 대비 효과다.

열린 결말이지만 진짜 가족을 만난 듯한 소녀의 삶에는 희망이 예고된다. '모든 것은 다른 무언가로 변한다. 예전과 비슷하지만 다른 무언가가 된다.'는 소설 속 문장처럼 소녀는 따뜻하면서도 단단한 무언가를 심장에 품는다. 집으로 가기 위해 짐을 싸던 아이가 여름의 나날을 회상하면서 떠올린 태양처럼 뭉클하면서 뜨거운 감정의 씨앗이다.

 

소녀가 품은 씨앗은 삶에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으리라. 씨앗에 물을 줄 감성이 생겼고 진정한 가족이 따스하게 아이를 둘러쌀 것이기 때문이다. 무언가를 전달하기 위해 많은 말은 필요가 없을지도 모른다. 그 말이 정확하다면 말이다. "아빠."라고 한 소녀의 마지막 말처럼 서사를 담은 두 글자는 묵직하게 진심을 전한다.

진실은 짧은 말에도 충분히 담기며 씨앗처럼 단단하다. 그런 말을 찾고 싶어진다. 불필요한 말은 과감하게 떨구고 입 다물기 딱 좋은 순간을 포착하여 행간에 진심을 담은 글을 쓰고 싶다. 물고기처럼 시어를 낚아 올려 나만의 고유한 물결을 만들고 싶다.

불필요한 변명과 이유를 다 털어내고 진짜 마음을 찾아가는 것. 지금 내가 할 일이다. 심장을 손에 쥐고 발이 데려가는 곳으로 소녀가 달려간 것처럼 그런 마음은 본능적으로 나를 멋진 삶의 길로 안내하리라 믿는다. 말과 글이 시가 될 때 삶도 시처럼 흐를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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