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디무빙 - 소설가 김중혁의 몸 에세이
김중혁 지음 / 문학동네 / 201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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찾아야 한다. 나보다 더 나를 잘 아는 녀석이다. 이 녀석은 내 안에 숨어있다 구석구석을 돌아다니며 말을 건다. 강조하려는 글씨에 밑줄을 긋거나 음영을 드리우는 것처럼, 이봐! 여기야! 라는 표식을 남긴다. 빨간 반점으로 나타나기도, 열을 내기도, 콕콕 찌르기도 한다. 며칠 물 안 준 화분의 흙처럼 쩍쩍 갈라지기도 하고, 고약한 냄새를 풍기기도 한다. 반드시 찾으리라 결심하고 한참을 바라보면 아뿔싸! 슬그머니 자취를 감춘다. 잊을 만하면 불쑥 불쑥 나타나서 말을 건다. 여간 치밀한 녀석이 아니다. 존재감은 확실한데, 도무지 거주지가 분명치 않다. 지금부터 이 녀석을 공개수배 한다!

 

난감할 때도 있다. 보기 싫은 인간이 내 앞을 지날 때 특히 그렇다. 반가운 표정을 장착하고 어머! 반가워요! 다음에 밥 한 번 먹어요!”라 가식적인 멘트를 날릴 때마다 이 녀석은 협조를 해주지 않는다. 내 얼굴 근육을 어찌나 미세하게 조절하는지. 성질은 또 얼마나 급한지. 내뱉는 언어와는 상반된 표정과 시선과 눈빛을 재빠르게 드러낸다. 사회생활이라곤 도무지 모르는 융통성 제로인 녀석이다. 이 녀석이 무서워 고개를 숙이고 걸은 적도 있다. 말이 포장하고 있는 마음을 고스란히 보여주는 녀석이라 언제 어디서 튀어나올지 모른다.

 

참을성도 없다. 코가 간질간질하면 끝내 수많은 침방울을 분수처럼 뿜어내며 표시를 내고 나서야 직성이 풀린다.

행동 모사의 달인이다. 반쯤 눈이 감긴 옆 사람이 하는 행동은 잘 따라하며 그 옆 사람에게 전염시킨다. 덤으로 꺽 소리를 내뱉을 때에는 심히 민망하다.

기억력도 좋다. 고소한 빵이나 테두리 세 겹 정도 둘러준 피자, 특히 찬란하게 회오리치는 우유와 얼음의 콜라보레이션에 최적화되었다. 실물 그대로를 완벽하게 재현하며 입안을 옹달샘으로 만든다.

 

얼마 전에는 이 녀석이 이제껏 나타난 적이 없는 장소에 출몰하여 일주일 넘게 머문 적이 있다. 평소 관심을 갖지 않던 사막 같은 곳이었는데 온종일 꼼짝 않고 천장만 바라보았다. 일상의 거의 모든 활동이 중지된 채 비상이 걸린 사건이었다. 중요한 곳이었구나, 한가운데 있었는데 보지 않고 지나치던 곳이었구나, 그동안 정말로 소홀 했구나 반성했다. 누워서 안방 창문 아래 놓인 하늘을 바라보며 바쁘게 달려왔던 일상을 돌아보았다. 주변 사람들을 둘러보았다. 느닷없이 느려진 삶의 시계는 관성인 듯 앞으로 달려가는 나를 잠시 붙들었다. 이 녀석이 내게 준 것은 느린 시간이었다. 압축되어서 보이지 않던 장면들을 펼쳐보게 하려고 그곳에 머물렀다 싶었다.

 

네이버캐스트의 다큐사이언스 코너에는 <숫자에 담긴 일생>이라는 제목의 칼럼이 있다. 사람이 일생동안 배설하는 배설물의 무게와 먹는 양과 손톱이나 머리카락, 수염의 길이 등을 수치화한 영상을 담았다. 수업 시간에 보여줄 때마다 매번 아이들의 폭발적인 반응을 얻는 것은 진흙으로 추정되는 배설물 모형이 하늘에서 질척하게 쏟아지는 장면이다. 사람이 일생동안 이만큼이나 싼대요, 뭐 이런 식이다. 50여 톤 입으로 들어가고 3톤이 조금 안 되는 양을 배설한다니 참 효율적인 시스템이다.

기억에 남는 장면은 마지막에 있다. 가장 오래 사는 세포들은 뇌 안에 있는데 이 세포들이 우리의 모든 기억을 담고 있다는 내용이다. 기억을 담고 있는 세포라니. 곱씹을수록 철학적이면서도 신비한 느낌이다. 기억은 세포에서 어떤 형태로 있을까. 사람의 몸은 세포로 이루어져있고, 세포는 혈액에 의해 운반된 산소와 영양소를 결합시켜 필요한 에너지를 얻어 활동한다. 대뇌의 해마에서 기억을 담당한다는 사실도 알지만 가끔 과학 이론을 떠나서 상상해보면 신기한 현상들이 많다. 기억이라는 무형의 것이 세포의 어느 부분에 심어져 있는 걸까. 기억이 없어지는 건 그 자체가 아예 사라지는 걸까, 아니면 인식의 영역으로 단지 전달만 안 되는 상태일까. 일반인은 일생동안 뇌의 10%도 사용 못한다던데, 기억의 영역에서 버려진 기억들은 혹시 사용되지 못한 90%의 곳곳에 숨어있는 것은 아닐까.

 

김중혁의 글을 읽을 때마다 엉덩이에 뿔이 난 송아지가 된다. 문장 곳곳에 볶은 소금처럼 톡톡 튀어나오는 유머 코드에 낄낄거리다가도, 후텁지근한 바람처럼 한순간 훅 끼얹어지는 가슴 뭉클한 느낌에 눈시울이 뜨거워진다. 책 제목Body Moving은 사전을 찾아볼 필요도 없이 중학생 정도면 알 수 있는 단어이다. ‘몸의 움직임정도로 해석할 수 있을까. 영화이야기가 많이 등장하니 ‘movie’라는 단어가 연상되기도 한다. 작가의 의도를 모르겠지만 나름대로 해석을 하자면 ‘moving’이 지닌 또 다른 의미, ‘가슴을 뭉클하게 하는이란 뜻도 얹고 싶다. 가만히 생각하면 찡해지는 존재이니. 몸과 마음이 합체가 되어야 완벽한 인간이 된다. 예전의 내게는 마음이 절대적으로 중요했는데, 몸도 마음 못지않게 중요한 대상임을 나이 들어갈수록 느낀다. 작가 말대로 한 사람의 몸에는 수많은 이야기가 담겨 있고, 이 모든 걸 기억하는 것은 바로 몸이므로.

 

어딘가 아프다는 것은 몸이 말을 거는 것이라고 한다. 여기 좀 봐달라고, 가끔은 쉬어가라고. 종종 말을 걸어주는 몸 덕분에 자만하지 않고 살아간다. 속마음을 고스란히 드러내는 비언어적 표현 때문에 겉과 속이 같은 인간이 되려고 애쓴다. 몸이 거는 말은 마음으로 들을 수 있다. 마음을 가다듬고 천천히 심호흡을 하다보면 몸이 거는 말이 들리는 것 같다. 요즘에는 왼쪽 허벅지가 말을 건다. 더 뻣뻣해지기 전에 요가라도 하라고. 살짝 허물이 벗겨지는 왼쪽 발가락들이 말을 건다. 피곤하다고 그냥 자지 말고 제발 퇴근하면 발 좀 닦으라고요! 다른 사람은 매일 씻나 궁금하지만 결코 묻지 않는다. 이 말은 곧, ‘나는 매일 안 씻는다.’는 말과 동급이기 때문이다. 침침해지는 눈이 말을 건다. 살아온 날들을 돌아보고 드러나지 않는 풍경을 보라 한다.

내 모든 이야기를 기억하는 몸이 갈수록 수다스러워진다. 허리가 아팠던 이후로 자주 뭉클하고 겸손한 마음을 갖고 몸을 대한다. 드디어 찾았다! 내게 끊임없이 말을 걸며 존재를 표현하던 녀석을. 이 녀석을 오랫동안 아끼며 내게 거는 말에 귀 기울이려 한다. 나는 내 몸을 사랑한다.

 

 

* 2017.10. S독서감상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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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1-04 01:06   URL
비밀 댓글입니다.

나비종 2017-11-04 13:56   좋아요 0 | URL
그렇죠? 어지간히 많이도 먹습니다. 그게 다 에너지로 소모되어야 하는데 살로 가니^^;;
맞습니다. 아프지 않게 사는게 정말 중요하다는 것을 주변을 보면서 많이 절감합니다.^^
 
로봇 시대, 인간의 일 - 인공지능 시대를 살아가야 할 이들을 위한 안내서
구본권 지음 / 어크로스 / 201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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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점점 좁아지는 신문지, 발뒤꿈치를 들며 발끝이라도 삐져나올까 조바심을 내던 기억. 신문지 게임이다. 옆 사람과 서로 의지하다보면 어느덧 친밀한 연결고리가 만들어진다. 많은 말을 하지 않아도 체온을 공유하는 숨 가쁜 시간은 긴장감과 따뜻함이 중첩되는 묘한 느낌으로 남는다.

로봇 시대를 다양한 각도로 고찰하는 저자를 따라가며 예전에 했던 게임을 떠올린다. 앞으로 체감하게 될 로봇 이야기들이 다가올수록 접혀지는 신문지 위에 올라선 듯 마음이 쪼그라든다. 두렵다. 이런 시대에 흔들리지 않고 제대로 살아갈 수 있을까.

 

네이버캐스트에서 전차 문제사고 실험을 보고 딜레마에 빠진 적이 있다. 다수를 살리느냐 소수를 살리느냐. 어쩔 수 없는 선택지라면 당연히 다수 쪽일 것이다. 하지만 소수가 자식이나 형제라면? 여전히 판단을 내릴 수가 없다.

로봇이나 기계의 모든 행동은 알고리즘으로 작동된다. 미래에 무인자동차를 타고 가다 비슷한 상황 속에 놓인다면 어찌해야할까. 입력된 알고리즘이 나의 판단과 일치하지 않는다면?

융통성 없는 사람을 보면 사소한 것까지 일일이 알려줘야 하냐며 답답해하는 경우가 있다. 곰곰 생각하면 완벽함을 자랑하는 기계야말로 바로 이런 존재 아닌가. 다양한 상황을 예견하고 적절한 판단에 의해 알고리즘을 입력하는 것은 온전히 인간의 몫이다. 알고리즘 설계자들에 대한 깊이 있는 윤리 교육이 절실한 이유이다.

 

8년 전, 가족들과의 중국 여행에서 자유 시간이 주어진 첫 날, 중국어를 몰라 햄버거로 점심을 때웠다. 도대체 뭐를 파는지 짐작조차 할 수 없던 거리에서 그나마 눈에 띤 간판이었다. 의도치 않게 매운 햄버거가 나와 속이 쓰렸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이제는 스마트폰을 잃어버리지 않는 한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자동 번역 시대이다. 메뉴 사진을 찍으면 관련 자료가 쏟아져 나오기까지 한다. 의사소통이 더 이상 여행을 망설이는 이유가 되지 않는다.

기계를 매개로 한다면 현지인과의 대화가 어느 정도까지 가능할까. 대화는 말하는 이의 의도와 앞뒤 맥락이 핵심이다. 외뇌에 전적으로 의지한다면 알맹이 빠진 겉핥기식의 대화만 이루어질 가능성이 크다. 대화라 표현하기 애매한 수준의 사실 전달만 될 것이다. 대화다운 대화를 원한다면, 역시나 외국어를 익히는 과정이 필요하겠다.

 

개방형 온라인 강의가 넘치는 사회에서 대학은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까. 위키피디아로 대표되는 집단지성은 이미 유용성을 증명했다. 대학의 가치를 생각해보며 기계를 매개로 하는 SNS공간을 떠올린다.

언제부터인가 전화보다 카카오 톡 대화가 편해졌다. 음성을 듣거나 직접 만나면 오히려 어색하다. 편안하게 카카오 톡을 주고받던 사이가 맞나 싶을 정도이다. 온라인상의 많은 관계는 쉽고도 허탈하다. 순식간에 맺어지고 한순간에 끊어진다. 실제보다 부풀려져서 인식되는 경우도 다반사이다.

온라인의 놀라운 파급력을 따라갈 수는 없지만 순간순간 느끼는 사실은 2차원적인 화면이 감정의 모든 것을 전달해주지 못한다는 것이다. 오프라인에서 이루어지는 관계의 울림을 간과할 수 없다. 공기를 통해 직접 전달되는 3차원적인 에너지는 상상 이상으로 강력하다. 대학에서의 지식 교류의 가치도 이런 맥락으로 접근해야 한다.

 

나는 중학교 과학 교사이다. 교사는 미래에 사라질 직업리스트 중 꽤 상위권에 링크된다. 적막한 수업 시간을 맞이할 때마다 종종 자문한다. EBS와 무슨 차이가 있나 하고. 질문을 주고받는 과정에서 전해지던 희열이 두드러지게 줄었다.

진지한 질문이 오가는 순간은 간혹 교과 관련 직업을 말할 때이다. 아이들에게도 장차 무엇을 하며 살아갈까 하는 문제는 중대한 고민이다. 프랑스의 요리하는 로봇, 로봇 바텐더, 샌프란시스코의 로봇 바리스타, 실리콘밸리의 피자 만드는 로봇, 강아지 로봇에 이르기까지 로봇은 빠른 속도로 인간의 일자리를 대신하고 있다. 로봇에게도 세금을 매겨야 한다는 뉴스가 나오는 세상이다. 다가올 세상을 예측하여 직업 선택을 해야 한다고 말해주지만 어떤 직업이 적당할지 묻는다면 답변이 궁색해진다. 세상은 너무도 빠르게 변화하고 직업의 영역에서 로봇의 비중이 점점 넓어지기 때문이다. 이 책에서 현명한 답을 발견한다. 직업과 미래를 바라보는 관점을 변화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살아가면서 2~3개 혹은 그 이상의 직업을 갖게 될 아이들에게 적절한 답으로 보인다.

 

스마트폰의 드넓은 세계에 입문하고 카카오스토리를 시작하면서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손가락 아래로 펼쳐지는 온라인의 세상은 MSG처럼 나를 강렬하게 끌어당겼다. 완벽한 세팅 사진을 업로드하기 전까지 숟가락을 드는 일은 있을 수가 없었다. 스마트폰과 몇 시간을 훌쩍 보내는 일이 예사였다. 1년 이상을 그렇게 살다 겨우 빠져나왔다.

스마트폰 검색에 대한 조절 의지는 자주 힘없이 무너진다. 네이버 앱에서 과학뉴스를 훑어보다 연예 탭으로 무대가 옮겨지면 자제력은 날아가는 시간과 함께 금세 증발한다. 스마트폰에 끌려 다니는 자신을 돌아보면서 로봇 시대를 생각한다. 기계에 의해 인간이 소외되지 않도록 강한 의지가 필요함을 절감한다.

가사 노동의 많은 부분이 기계로 대체되었다. 다양한 영역에 본격적으로 로봇이 등장하면 여유의 시간이 늘어날 것이다. 이를 효율적으로 활용하는 방법을 고민해야하는 시점이다. 예전에는 놀 줄을 몰랐다. 여가를 위해 일하기보다는 일하기 위해 여가를 보낸 적이 많았다. 이제는 진정한 여가를 즐기기 위해 최선을 다하려 한다. 책 읽는 시간을 점점 일상화하며 나를 위한 시간을 많이 가지려 노력 중이다.

 

요즘 즐겨보는 웹 소설 <모두 너였다>에서는 감정을 가진 클론이 등장한다. 과연 이런 인공지능이 가능할까 싶기는 한데, 미래에는 어쩌면 가능할 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에 소름이 돋는다.

이 책의 저자도 관계의 심리학을 말한다. 저자가 던지는 물음에 꽤 많은 시간을 고민한다. 결론을 단정 짓기 어렵다. 로봇의 모든 것을 내가 통제하면서 원하는 감정만을 누리는 관계를 진정한 관계라 할 수 있을까. 일시적으로 위안을 받고 나면 더 많은 공허함이 밀려들지 않을까. 마음이 복잡해진다.

 

스마트폰에 과하게 의지했던 시간들을 돌아본다. 내 대신 많은 정보를 저장하고 있던 스마트폰의 충전을 잊었을 때 머릿속도 덩달아 방전되었다. 부모님의 핸드폰 번호조차 가물가물했을 때 바보가 된 기분이었다. 집 전화만 있던 학창시절에는 꽤 많은 전화번호를 기억했는데, 지금은 자연스럽게 떠올릴 수 있는 번호가 손에 꼽힌다.

저자는 풍부한 기억이 풍요로운 삶이라 말한다. 인간은 망각과 선택적 기억을 통해 자신만의 기억을 재구성한다는 것이다. 알수록 놀라운 존재라는 생각을 하며 고개를 끄덕인다.

 

로봇과 기계에 대한 방대한 데이터와 전망을 접하면서 인간이란 참 불완전한 존재라는 사실을 재확인한다. 수많은 SF소설에서 그리고 있는 미래의 모습. 로봇이 지배하는 세상이 정말로 올까. 저자가 건네는 말은 불안한 마음에 희망을 불어넣는다. 인간은 미래만큼이나 불확실하고 자주 결핍되는 존재이지만, 인간만이 가지고 있는 호기심과 질문, 감정은 바로 여기에서 나온다고. 그건 로봇이 감히 흉내 낼 수 없는 영역이라고. 허점투성이의 결점이 미래를 극복하고 로봇에게 지배당하지 않을 힘이 된다는 말에 공감하며 안도한다.

의기소침해하는 내 손을 말없이 잡아주던 친구의 따뜻한 손이 생각난다. 비슷한 온도의 물건을 만졌을 때의 온기와는 달랐던. 딱히 말로 설명하기 어렵지만 느낌으로 전해지는 무언가가 있다. 36.5도의 열을 가진 로봇이 만들어진다 한들 친구의 손을 통해 내게로 전해지던 찡함을 구현할 수 있을까. 그건 아닐 것이다. 내게도 있을 36.5도의 힘을 누군가에게 전하고 싶어진 지금, 미래를 향한 두려움이 서서히 녹아내린다. 불완전한 36.5도가 지닌 힘을 믿게 되었기 때문이다.

 

 

* 2017.10. G독후감 공모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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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7-10-27 14: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과학 선생님이 시를 쓰셨다니... 나비종님을 다시 봤습니다. ^^

나비종 2017-10-27 14:40   좋아요 0 | URL
전공을 잘못 선택한 바른 예일 수도 있습니다.ㅎㅎ
 
정혜신의 사람 공부 공부의 시대
정혜신 지음 / 창비 / 201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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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쓰는 과정은 여름과 겨울을 동시에 마주치는 일이다. 나를 끌어내고 덜어내면서 복잡하게 응어리져 깊이 쌓여있던 고통이 조금씩 흘러나온다. 글을 쓸 때마다 종종 아픈 이유이다. 리뷰나 시가 완성될 즈음에는 대부분 눈시울이 뜨거워진다. 마지막 문장의 마침표를 찍는 순간은 실컷 울고 난 것처럼 후련하다.

독서의 끝은 글을 쓰는 것으로 마무리한다. 언젠가부터 책을 읽고 나서는 꾸역꾸역 노트북 앞에 앉는다. 밥을 먹고 잠을 자는 일상처럼 퇴근 후의 시간을 책을 읽고 글을 쓰며 보낸다. 쏟아지는 직장일로 눈이 뻑뻑한 날에도 피곤한 몸을 끌고 커피숍에 가서 글을 쓴다. 노트북을 통해 내가 쓴 글을 객관적으로 마주 보며 나를 다독인다. 글과 함께 하는 시간은 스스로를 치유하는 시간이다.

 

늘 마음에 걸렸다. 연애를 글로 배운다는 느낌이랄까.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들에 대하여 머리로 인식하거나 가슴까지는 겨우 도달했으나 발까지는 미치지 못했다. 책을 읽고 독서모임에 참여하고 독후감을 썼지만 딱 거기까지였다. 행동하는 사람들을 볼 때마다 주눅이 들었다. ‘행동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이미지는 과격한 시위였다. 그런 낯설음이 두려워서 걸음을 쉽게 뗄 수가 없었다. 말이나 글은 행동으로 옮길 때 생명력을 갖건만 대부분 말과 글에서 그치는 자신을 돌아보며 무력감을 느꼈다. 내 글이 더없이 가볍다는 생각이 행동하지 못한 무거움으로 나를 잡아당겼다.

 

말 한 마디 한 마디가 생명력을 가지며 살아있는 책을 만났다. 정신과 의사인 정혜신이 사람 공부라는 주제로 한 강연을 엮은 책이다. 정신 분석 이론이나 심리학적 치료 기법을 말했다면 실망을 느끼며 그리 깊은 인상을 받지 않았을 터이다. 이 책은 달랐다. 삶의 현장에서 직접 끌어올린 말은 지하 몇 백 미터에서 올라온 암반수였다. 작가는 거리의 의사가 되는 것이 꿈이라 했다. ‘사람에 가까워질수록 의사로서 탁월한 치유자가 된다고 믿으며 끊임없이 노력하고 있었다. 작가의 태도에 절로 고개가 수그러들었다. 객관적으로 완벽해 보이는 사람이 노력까지 열심히 하니 실력이 폭발적으로 늘 수밖에 없었다. 책 속에서 나는 속으로만 고민하던 고구마 같은 문제의 답을 찾을 수 있었다. 액체 소화제를 먹은 듯 속이 뻥 뚫렸다.

 

반복되는 우울함으로 지쳐가던 때가 있었다. 결혼으로 새롭게 맺어진 인간관계 앞에서 한없이 서툴렀던 시기였다. 관계가 맺어지는 과정에서 일어나는 갈등을 감당하지 못했다. 많은 시간을 식탁 끝에 걸려있는 유리컵처럼 지냈다. 언제 깨질지 모를 불안함이 공기처럼 흘렀다. 내게 가장 추운 장소는 집이었다. 사회에서의 얼굴은 더없이 즐거웠으나 퇴근 후에 체감하는 온도는 낮고 공허했다. 그 온도차가 마음에 균열을 내며 딱딱하고 건조한 마음의 소유자가 되어갔다. 길을 가다 갑자기 죽는다 해도 전혀 아쉬울 것이 없었다. 전원이 꺼진 채 멀티탭에 연결된 전기기구처럼 어두운 시간의 흐름을 근근이 유지하던 날들이 흘러갔다.

 

20144월의 그날도 시린 나를 견뎌야 했던 하루일뿐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눈물 흘리며 아파했지만 내 마음은 화석처럼 굳어버린 듯 했다. 안쓰러운 마음은 들었지만 그 이상은 아니었다. 무덤덤한 표정으로 TV를 통해 가라앉는 배를 바라보았다. 나는 점점 무감각한 인간이 되어가고 있었다.

행동할 수 있는 시기를 놓쳐버렸다. 모든 일은 하기에 적당한 때가 있는 법인데 팽목항에도 안산에도 가보지 못했다. 남들 다 달고 다니던 리본도 옷에 매단 적이 없고 핸드폰 뒤에 노란 스티커를 붙여본 적도 없다. 마음에 담긴 차가운 어둠이 공감할 수 있는 능력까지 얼려버린 것 같았다.

 

3년이 지난 후에야 뒷북을 치고 있다. 마음 속 얼음이 점점 녹아내리고 있음을 느끼면서였다. 고등학생이 된 둘째에게 감정이입이 되기 시작했다. 아이비 크래커 절반만한 크기의 노란색 금속 열쇠고리가 자동차 키에 매달렸다. 출퇴근 때마다 시동을 걸면서 흔들리는 노란 영혼을 생각한다. 내 아이에게 같은 일이 일어난다면 제대로 견딜 수 있을까. 아무 생각도 할 수 없다. 먹먹한 마음으로 한 번도 본적 없는 아이들의 부모님을 생각한다.

3년이나 지나서 내가 하는 일이라고는 고작 차 키에 열쇠고리를 매달고 그들을 생각하는 일이었다. 점점 따뜻한 사람이 되고는 있었지만 한편으로 한없이 느린 나를 돌아보며 쪼그라들었다. 내 행동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이런 것도 행동이라 할 수 있을까.

내 작은 행동에 대한 의미를 드디어 이 책에서 찾을 수 있었다. 그것은 커다란 위안이었다. ‘…… 그런데 괜찮아.(p70)’ 동생의 죽음을 한참 후에야 받아들였던 형을 상담하면서 했다는 말이다. ‘괜찮아라는 세 글자를 손가락으로 어루만졌다. 조금 늦게 아파해도 괜찮아, 괜찮아 하며 따뜻한 온기가 손끝으로 전해지는 것 같았다. 글이 지닌 힘이었다. 강의 후 이어진 Q&A에서 나와 비슷한 고민을 만났다. ‘우리는 연결되어 있다, 당신의 고통을 나도 알고 있다는 신호를 보내는 일은 어떤 방식이든 사람 목숨을 구하는 일(p114)’이라는 작가의 답변은 소심했던 나를 가만히 토닥였다.

 

올 봄에 있었던 일이 떠오른다. 겨울의 입김이 남아있던 3월 아침, 패딩에 털모자에 목도리까지 두른 채 교문 앞에 서 계시는 배움터지킴이 선생님을 보았다. 그 모습이 찡하기도 하고 감사하기도 해서 내 느낌을 시로 지었다. 다음 날 오전, 시를 출력한 종이를 드리러 지킴이실을 찾아갔다. 마침 교내 순찰 중이시라 자리를 비우셨길래 다른 분께 전달을 부탁드렸다.

그분은 점심시간에 나를 찾아오셔서 두 손을 꼭 잡아주셨다. 내 시를 읽고 우셨다며 살짝 붉어진 눈으로 고운 편지봉투에 담긴 답장을 건네주셨다. 몇 번이나 감사하다는 말씀을 하셨다. 정갈하고 빽빽한 글씨로 채워진 편지지에는 표정에 담겨있던 마음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당신의 마음을 선생님이 알아주시는 것 같아 피곤함이 싹 가시고 많은 힘을 얻었다고 하셨다. 학생들을 더욱 잘 보살피는 것으로 보답하겠다고 하셨다. 다른 두 분께도 시를 지어 드렸다. 세 분의 지킴이 선생님은 내가 지나가면 멀리서도 반갑게 다가오시며 함박웃음을 지으신다.

 

소설 <삼총사>에는 ‘One for all, All for one’이란 구호가 등장한다. 멋진 리듬감을 주는 문구만큼이나 깊은 의미를 지닌 문장이다. 19세기의 뒤마도 인간의 개별성이 나타내는 심오한 의미를 깨달았던 것일까. 작가 기타노 다케시는 후쿠시마의 원전 사고와 관련해서 이것은 2만 명이 죽은 하나의 사건이 아니다. 한 사람이 죽은 2만 개의 사건이다.”라 말하며 개별적 인간의 중요성을 시사했다. 정신과 의사로서의 정혜신 역시 한 개인에 집중하며 한 명 한 명을 치유해나간다. 강연의 결론은 모든 인간이 개별적인 존재라는 것을 아는 게 사람 공부의 끝이고 치유의 출발점(p150)’이라는 것이었다.

많은 경우 이런 마음을 안고 사람들의 고통을 알아주는 것만으로도 충분하겠다 싶었다. 결국 최종적인 치유자는 자기 자신이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스스로 답을 알고 있으므로. 주변에서는 그가 스스로 걸어갈 수 있도록 힘을 줄 뿐이다. 많은 이들이 다른 사람들의 고통을 이런 시각으로 바라본다면 세상은 놀라울 정도로 따뜻해지지 않을까.

 

나란히 배치된 세 개의 책상을 보는 순간 코끝이 찡해졌다. 업무적인 일로 지킴이실에 들른 날이었다. 각각의 책상 앞에는 내 시가 적힌 종이가 나란히 붙어있었다. 볼 때마다 힘을 얻는다고 하셨다. 당신들 마음의 온도를 1정도 높여드린 것 같아서 마음이 벅차올랐다. 시를 드린 마음을 깊이 이해받았다는 생각과 감사한 마음까지 뒤엉켜 교무실로 돌아오는 내내 뭉클했다. 나를 치유하는 역할을 넘어 타인을 향한 글이 의미 있는 발걸음으로 다가온 순간이었다.

작가는 문학을 가리켜 인간에 대한 치유적 접근에 적합한 도구(p144)’라고 말했다. 어쩌면 글로도 행동할 수 있겠다 싶었다. 행동하는 글이란 타인의 마음을 따뜻하게 어루만지는 글이었다. 그로 인해 누군가는 시린 마음을 녹이고 힘을 얻어 행동할 것이니. 내 글도 생명력을 가질 수 있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자 가슴이 뛰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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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로팅 아일랜드 일공일삼 50
김려령 지음, 이주미 그림 / 비룡소 / 201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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짐짓 모른 채 파고들며 질문했다. 인공지능로봇이 발달하면 공장에서 필요로 하는 사람들의 수가 줄어들 텐데 그들이 일자리를 잃는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나도 명쾌하게 답변할 수 없는 문제였지만, 16세 아이의 시선에서 떠올릴 수 있는 답변이 궁금했다. 그럴 일은 없을 거예요. 공장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결국 생산될 물건을 쓰는 소비자가 될 테니까, 그 사람들이 돈을 못 벌면 소비가 줄어들 테니 결국 공장이 문을 닫게 될 거잖아요. 그러니까 공장을 경영하는 사람들이 일하는 사람들을 적절하게 고용해야 할 거예요. 이런 내용으로 천천히 흘러나오던 아이의 답변은 질문이 무색하리만큼 문제의 핵심을 파고들고 있었다. 표현은 서툴렀지만 논리적으로 희망을 말하는 아이의 답변에 뿌듯했다. 그 마음은 오후 내내 주변을 맴돌았다.

잠시 잊고 있었다. 세상은 특별한 몇몇 사람들이 아니라 결국 우리 주변에서 일을 하며 살아가는 평범한 사람들이 이끌어간다는 것을. 특별함과 평범함을 나눈다는 것조차 의미 없는 일이라는 것을. ‘인간을 누가 어떤 잣대로 특별함과 그렇지 않음을 판단합니까?(p183)’책 속의 문장이 오래도록 내 마음에 남았던 이유는 아까 들었던 아이의 답변이 인상적이었기 때문인지도 몰랐다.

 

결말이 도무지 짐작이 되지 않던, 미스터리하면서도 모험을 연상시키는 동화이다. 전체적인 느낌은 동전의 양면 같다. 500원짜리의 동전은 고고한 학이 날아다니는 앞면이 마음에 들지만, 100원짜리 동전은 언제 맞아도 기분 좋은 점수가 떠오른다는 이유로 뒷면이 마음에 든다. 동전의 어떤 면을 좋아하느냐는 온전히 취향의 차이이다. 확률 1/2로 호불호가 갈릴 것으로 예상되는 책이다. 마음에 드는 점도 있지만, 어떤 시각에서는 마음에 들지 않는 점도 있었으니까.

상징성이 크다는 점은 다소 허술하거나 불친절한 구성으로 비춰진다. 쓰레기가 쌓인 산, 하리 마을 아이들의 삶, 사원의 존재, 섬을 소개해준 아빠 회사 직원 등 등장 요소의 배경에 대한 구체적인 설명이 생략되어있다. 결과만 제시하고 원인을 감춘 모습이랄까. 따라서 독자는 이야기되지 않은 나머지 부분을 유추하면서 내용을 채워가야 한다. 서툰 솜씨로 끓인 김치찌개를 맛본 듯 맛이 충분히 우러나지 않고 겉도는 듯한 느낌이다. 물론 작가의 잘못은 아니다. 김려령의 이전 작품들을 토대로 미루어 짐작한다면 이것은 충분히 의도된 내용일 것이다. 김치찌개의 맛을 놓고 재료 탓만 할 수 없는 것처럼 책을 해석하는 독자의 비중이 크기 때문에 나타나는 부작용으로 보인다. 수학처럼 답이 똑 떨어지거나 과학적으로 인과 관계를 치밀하게 증명하지 못한 것 같은 느낌을 준다는 면에서 내 성향과 맞지는 않는다.

이 책이 드러내는 상징성은 해석하는 입장에 따라 장점으로도 작용한다. 책이 하는 근본적인 역할을 생각한다면 독자는 여러 방향으로 상상력을 발휘해야 하니까, 이런 점에서 충분한 역할을 한다. 동화가 던지는 메시지는 결코 가볍지 않다.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의 모습과 사람들의 존재를 깊숙하게 생각해보는 계기가 된다. 몇 시간 만에 후다닥 읽게 되지만, 읽는 데에 걸린 시간보다 훨씬 많은 시간을 생각에 잠기게 한다. 어느새 내용 자체보다 내용을 중심으로 떠오르는 생각에 더 깊게 빠졌다. 세 가지 생각을 했다. 특별함과 평범함, 쓰레기 섬, 아이에 관한 것이다.

 

섬의 안과 밖의 사람들은 특별함과 평범함, 대단함과 하찮음이란 개념으로 대비된다. 이들은 같은 공간에서의 빛과 그림자처럼 전혀 대조적인 삶을 살아간다. 헛웃음이 나올 정도로 경계를 나누는 모습은 여러 가지 생각을 하게 한다.

몇 년 전, 뉴스에서 들었던 기사이다. 부유한 아파트 입주민들이 인접해 있는 임대 아파트 아이들이 아파트 앞을 지나다니는 것을 꺼려해 통학로를 막아 멀리 돌아가게 했다는 내용이다. 특권 의식을 가진 그들이 자신의 아이들과 임대 아파트의 아이들이 어울리지 못하게 통제까지 한다는 보도내용에 씁쓸해했던 기억이 있다. 그들의 잣대에서는 돈의 소유 정도가 특별함과 하찮음을 판단하는 기준인 듯하다. 그 옛날 최영 장군은 황금을 보기를 돌같이 하라고 했다던데. 황금은 땅에서 나는 광물이다. 광물은 암석을 구성하는 성분이니 황금은 돌 맞다. 돌멩이 몇 개 더 소유했다고 특별한 인간이 되는가. 정신적 가치의 소유 정도를 기준으로 해도 그들이 특별할까.

시야를 넓혀 지구 위에서 전혀 다른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을 떠올린다. 비만으로 인해 다이어트를 하는 사람들과 바싹 말라 굶어 죽는 사람들, 한쪽에서는 버려지는 음식물 쓰레기로 골치를 썩는데 다른 쪽에서는 음식물 찌꺼기조차 구하지 못해 주린 배를 움켜쥔다. 지구라는 동그란 섬 안에서 동시에 공존하는 모습이다. 플로팅 아일랜드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과 별반 다를 바 없다.

 

이 책에 등장하는 쓰레기 산이 상징하는 의미와는 다르지만, 여러 번 언급되는 쓰레기 산을 보면서 실제로도 존재한다는 쓰레기 섬을 떠올린다. 태평양 한 가운데에 있다는 2개의 섬이다. 사람들이 버린 쓰레기 조각들이 일정한 방향으로 흐르는 해류에 의해 모이면서 형성되었다고 한다. 과학 교과서에서는 환경오염 문제를 언급하면서 쓰레기 섬의 몇몇 풍경들을 보여준다. 보는 순간 마음이 덜컹 내려앉던 사진이 있다. 죽은 새의 배를 갈라 뱃속에 들어있는 내용물을 함께 보여준 사진이다. 새의 위 속에 든 것이 소화되고 남은 물고기나 다른 생물이 아니라는 사실에 소름이 돋았다. 각종 플라스틱과 스타이로폼 같은 것을 잔뜩 먹고 죽은 새. 먹을 것인 줄 알고 먹었다가 영양부족으로 죽은 것이라는 설명이다. 인간이 생태계의 자연스런 리듬을 깨뜨리고 있다.

 

동화를 이끌어가는 존재가 아이라는 점이 가장 마음에 든다. 체념하며 살아가던 하리 마을 사람들은 주인공 강주가 하리 마을의 아이들과 어울리는 모습을 보고 달라져야겠다는 결심을 한다. 결국 아이에게서 희망을 찾는다.

세상이 갈수록 삭막해진다고들 한다. 희망은 오래전에 사라졌다 말하기도 한다. 그렇다고 마냥 놓아버릴 수도 없는 삶이다. 이런 세상 안에서조차 아이들은 명쾌하고 과감하다. 작가의 말에서 그려진 세상을 공감하며 바란다. 아이들과 어른들이 다 같이 행복하고 즐거운 세상은 언제쯤 가능할까.

 

우리는 각자 섬을 품고 살아간다. <플로팅 아일랜드>라는 섬 이름이 의미하는 것처럼 뿌리가 없이 둥둥 떠다니는 부유도이다. 정현종 시인은 사람들 사이에 섬이 있다, 그 섬에 가고 싶다며 사람들 사이의 단절을 얘기했다. 내 안 어딘가에 존재할 나만의 섬은 주변의 섬들과 얼마나 이어져있을까. 책에서 등장하는 섬은 뿌리 없이 떠다니지만, 내게 있을 섬은 지형적인 섬의 존재와 닮았으면 한다. 바닷물을 거대한 빨대로 모두 빨아들인다면 육지와 바다 밑은 한 겹의 땅 껍질인 지각으로 이루어져 있다. 섬은 단지 육지와의 사이에 그보다 낮은 바다로 채워져 있는 땅일 뿐, 바다 아래로는 하나로 이어진다.

바람은 공기의 양이 많은 곳에서 적은 곳으로 불고, 열도 고온의 물체에서 저온의 물체로 이동한다. 자연계에는 양쪽의 상황이 평형을 이룰 때까지 이루어지는 거대한 흐름이 있다. 저마다 가지고 있는 사람들의 섬이 이어진다면, 지금 추운 곳은 좀 더 따뜻해지지 않을까. 그 처음은 아이에게서 시작될 것이다. 아이는 희망의 섬을 품고 세상을 향해 힘껏 손을 뻗는 용기 있는 존재이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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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리게 걷고 있다.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조심스럽다. 개미 한마리라도 밟을까 살펴 걷는 수행자가 된 기분이다. 도시가 들썩이며 숨을 쉬는 것 같다. 요가라도 하듯 덩달아 숨을 깊숙이 들이마신다. 꽃심 전주를 읽기 시작하면서 나타난 변화이다.

204페이지밖에 안 되는 책을 읽는데 일주일이 걸렸다. 왠지 천천히 읽어야 할 것 같았다. 글자 한 자, 사진 한 장까지 꼼꼼히 훑으며 전주라는 도시를 알아갔다. 잘 알고 있다고 여겼던 것은 착각이었다. 까면 깔수록 새로운 면이 드러났다. 그 모습은 낯설고도 강한 매력으로 나를 끌어당겼다. 전주는 양파 같은 도시였다.

 

전주시 홈페이지에서 e-book을 다운받아 출력했다. 종이의 질감을 느끼며 읽고 싶어서였다. 책 제목의 꽃심꽃의 심, 꽃의 힘, 꽃의 마음을 의미한다. 처음에 보기에는 단지 멋진 신조어에 불과했지만 진정한 의미는 책장이 넘어가면서 서서히 피어났다. 전주정신은 이 책을 매개로 깊은 맛을 냈다. 꽃차에 띄운 꽃인 듯 사르르 살아나다 설렁탕 국물처럼 점점 진하게 우러나더니 마지막 장을 덮는 순간 나를 압도했다.

 

전라북도 행정.교육.문화의 중심지. 수학여행 가서 비빔밥 한 번 먹어보고, 한옥 마을 휘리릭 다녀온 게 전부이던 내게 이 책에 실린 내용은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왔다. 내가 알던 모습은 바다 위로 드러난 빙산의 꼭대기보다도 적었다. 담백한 두부처럼 전주의 풍경을 담담하게 묘사한 글을 따라갔다. 마음은 덩달아 '전주'라는 도시를 천천히 걸었다.

 

더불어 함께 사는 대동’, 문화예술을 아끼고 즐기는 풍류’, 의로움과 바름을 지키는 올곧음’, 새로운 문화와 세상을 만드는 창신’. 꽃심이 담고 있는 네 가지 특질은 전주의 구석구석에서 구현된다.

비빔밥과 콩나물국밥은 같은 마음으로 화합하는 대동의 맛을 제대로 보여준다. 동학농민혁명, 민주화 열사들, 천주교 순교자들, 촛불의 꿈은 대동 세상을 향한다. 판소리, 전주대사습놀이, 태극선, 합죽선, 한지, 완판본은 멋과 여유를 지닌 책 풍류의 정신으로 춤을 춘다. 조선왕조실록을 끝까지 지켜낸 전주사고, 임란과 호란의 영웅들, 일제강점기에서 자존심을 지킨 한옥과 항일 투쟁은 올바른 뜻을 가지고 의로움을 향하는 올곧음이다. 후백제와 조선 왕조가 이어지는 왕도의 역사, 음식과 풍류와 영화에 불어넣은 새로운 숨결이 창신이다.

우리의 것이 많이 담긴 도시라는 점이 정겹다.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인 것이라던 말이 떠오른다. 옛 것과 새 것이 어우러지는 적절한 조화로움은 뿌듯한 자부심을 느끼기에 충분하다. ‘온전한 고을을 뜻하는 지명대로 전주는 완전히 균형 잡힌 도시이다.

 

내용면에서 인상적이던 부분은 관련 인물과 역사적 장소에 대한 섬세한 서술이었다. 사상가, 목회자, 교육자, 성자, 명창, 서예가, 유학자, 춤꾼, 문학인, 영웅, 투사, 선비, 법조인, 영화인, 화가, 명장 등 수많은 인물들이 전주에서 태어나고, 자라고, 터전을 잡으면서 전주의 역사를 만들었다. 구석구석 이들의 존재를 찾아낸 노력은 감동적인 또 하나의 역사로 펼쳐진다.

여행 관련 TV프로그램에서 유럽의 궁전이나 예전 모습이 남아있는 건물을 보고 부러워했던 적이 있다. 전통적인 우리나라의 건축 양식을 생각할 때면 용인 민속촌을 떠올렸다. 책을 읽고 놀랐다. 전주는 우리 고유의 건물과 역사적인 의미를 지니는 장소들을 생각 이상으로 많이 품고 있었다. 이제는 전주한옥마을을 제일 먼저 꼽으려한다. 다른 나라와 견주어보아도 결코 초라하지 않다. 오히려 멋스럽기까지 하다.

장독집, 우물 깊은 집, 문이 많은 집 등 집의 이름에도 정감이 듬뿍 묻어난다. 과학계에서는 흔히 법칙을 발견한 과학자의 이름을 따서 단위를 정한다. 전압의 단위인 V(볼트)나 힘의 단위인 N(뉴턴)은 모두 과학자의 이름을 뜻하는 맨 앞 글자이다. 단위의 형태로 자주 부르며 이들의 업적을 기리려는 의도도 있을 것이다. 견훤로, 태조로, 최명희길 등 길에 붙은 이름을 보면서 전주사람들의 마음을 다시 한 번 느꼈다.

조만간 한옥마을을 가보려 한다. 한복 입고 돌아다니는 사람들, 겉에서 본 한국적인 건축물, 길거리에 늘어선 먹거리, 이번에는 이것만 보고 오지는 않으리라. 전주를 거쳐 간 인물들의 발자취와 우리의 향기를 따라가다 보면 며칠간을 머물게 될 지도 모르겠다.

 

담고 있는 내용만큼이나 구성 방식도 감동적이다. 전체적으로는 시의 운율처럼 느껴지는 형식이다. ‘꽃심이 의미하는 네 가지 특질을 대등하게 소개하는 방식으로 적절하다. 맛깔난 전주비빔밥을 먹은 듯하다. 나물 본연의 맛이 독특하게 살아나면서도 잘 어우러지듯이 대동, 풍류, 올곧음, 창신은 책 안에서 고유한 빛을 발한다. ‘꽃심을 중심으로 정성스럽게 입혀진 옷에는 전주만의 향기가 풍겨 나온다. 중간 중간에 시처럼 삽입된 문구들은 소금처럼 녹아들어 문학적인 맛을 낸다.

특히 시선을 끈 부분은 소주제의 첫 페이지이다. 두 가지가 마음에 든다. 첫째, 단어 연상 퀴즈처럼 관련된 낱말들로 그려진 그림이다. ‘꽃심에는 꽃 한 송이가, ‘대동에는 촛불 두 개가, ‘풍류에는 부채를 들고 판소리 하는 명창이, ‘올곧음에는 선비의 모습이, ‘창신에는 호남제일문이 형상화되었다. 이로 인해 그 안에 담긴 단어들의 의미는 더욱 깊어진다. 둘째, ‘전주 중학생들이 떠올린 낱말을 적었다는 점이다. 10대의 한 가운데를 통과하면서 과도기를 지나는 중학생들. 아이들의 꿈틀대는 마음은 전주의 정신과 만나 희망을 향해 나아가고 있었다.

그 다음 페이지도 좋았다. 다양한 세대와 각계 각 층의 전주 사람들이 연상한 단어들이 마인드맵처럼 나열되었다. 전체적인 모양은 민들레를 연상시켰다. 꽃의 마음에서 출발해서일까. 연약해보이지만 강인한 생명력으로 하나의 중심을 향해 힘을 합치는, 바람을 따라 날아가며 온 공간을 가볍게 메우는 홀씨가 생각났다. 나열된 단어들을 하나하나 실로 꿰면서 전주의 이야기에 가만히 귀를 기울였다.

 

글을 쓴 사람이 궁금했다. 맨 뒤에 적힌 저자 이름 최기우를 검색했다. 극작가이면서 전주대 겸임 교수이다. 올해 831일 자 전북일보 기사 한 자락에도 작가와 관련된 내용이 있다. 2017 대한민국 독서대전 기획 전시의 일환이던 한 권의 책, 마음에 담다의 총괄기획자였다. 전주한옥마을에는 볼거리가 많은 다양한 체험 행사가 진행되고 있다는 정보도 얻었다. 한 권의 책으로만 감히 짐작해보건대, 작가는 전주를 매우 사랑하는 사람일 것이다. 전주에 대한 애정이 깊지 않고서는 이런 글을 쓸 수 없다. 문장마다 전주를 아끼는 마음이 오롯이 담겨있었으니까.

 

묘하다. 소설도, 시도 아닌 책이 이런 뭉클함을 주게 될 줄이야. 한 땀 한 땀 정성스레 바느질한 수제 퀼트 가방을 선물 받은 기분이다. 마지막 장을 덮는데 코끝이 시큰했다. 도시가 아닌 전주라는 인물을 주인공으로 한 이야기 한편을 읽은 느낌이 들어서였다.

한 곳에 오랫동안 머문 공기는 거대한 기단을 형성하면서 그 지역의 온도와 습도를 닮는다. 전주를 호흡하며 살아가는 이들의 몸과 마음에는 모르는 사이 전주가 뿜어내는 숨결과 향기가 배어있을 것이다. 책 속의 전주는 전주사람들을 푸근하게 감싸는 꽃이었다. 사람들 역시 꽃심자체였다. 문득 거시기란 말이 떠올라서 피식 웃었다. 책을 읽은 내게도 참 거시기하게 꽃심이 흘러들어왔을까.

 

길은 모든 것을 기억한다. 자신을 딛고 서 있던 사람이 누구인지, 그곳에서 어떤 일이 있었는지 길은 다 안다. 엉거주춤 인지 제자리걸음인지 뒷걸음인지도 안다. 오랜 시간이 지나고 주위 환경이 바뀌어도 길은 아득하게 그 역사를 간직하고 있다. 길을 걸으면 옛 정신이 스며든다. 우리가 걸음걸음을 더 똑바로 해야 하는 이유다.(p178)’사진을 설명하는 작은 글씨로 된 이 문장이 책을 통틀어 가장 좋았다. 읽는 순간 뭉클했다. 소중히 옮겨 적어 사무실 책꽂이 앞에 붙여놓았다. 두고두고 바라보며 음미하고 싶었다.

 

전주의 구석구석을 알고 나니, 내가 살고 있는 도시가 담고 있는 이야기를 듣고 싶어졌다. 도시명의 유래가 어떻게 변화되어 왔는지, 예로부터 전해 내려오는 얼과 정신이 무언지, 어떤 이들이 이 땅을 밟으면서 살아왔는지, 이곳을 거쳐 간 피가 얼마나 뜨거웠는지를. 길은 모든 것을 기억할 것이기에 귀 기울이며 제대로 걷고 싶어졌다. 천천히 숨을 쉬며 걷는다. 한 걸음, , 두 걸음, . 길이 내 발바닥을 툭툭 치며 말을 건다. 이봐! 내가 궁금하지 않나? 함께 걸어가려는 내게 도시의 숨결이 조금씩 스며든다. 다시 힘차게 발걸음을 옮긴다.

 

 

* 2017. 9. K 독후감 경진대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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