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을 읽어내는 과학 - 1.4킬로그램 뇌에 새겨진 당신의 이야기
김대식 지음 / 21세기북스 / 201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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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안에 너 있다! 활활 타오르는 눈빛으로 터프하게 여자의 손목을 움켜쥐고 제 가슴에 손을 얹는 남자. 드라마 <파리의 연인> 속 이동건이다. 내 맘속에 너 있어 부르짖는 심쿵 멘트에 모니터가 뚫어져라 감정 이입했던 기억이 생생하다. 사랑하면 두근거리는 심장, ‘Heart’. 하트 모양()이 심장의 형태를 본뜬 것이라는 사실에 놀라워하며 마음은 심장에 있음을 당연히 여겨왔다. 곰곰 생각하면 중추신경계는 뇌와 척수뿐이니, 정신 작용은 뇌에서 일어나는 현상이라 굳이 마음이 어디에 있냐 한다면 뇌에 있다고 봐야 하는 것을. 그렇긴 해도 이동건이 김정은의 손을 자기 머리에 얹고 뇌 안에 너 있다!’ 외치는 장면은 어쩐지 뻘쭘하다. 이어질 장면을 더 상상해본다. 집에 온 여주인공, 손바닥으로 느껴지던 심장 박동을 생생하게 되새기며 뒤척여야 자연스럽건만, 머리에 얹었던 손을 코끝에 대었을 때 정수리 냄새라도 난다면?

 

347페이지의 두께감에 눌리고, ‘라는 기관이 연상시키는 복잡한 이미지에 주춤했다. 신화 속에나 등장할 법한, 살짝 헐벗고 허연 옷 늘어뜨린 근육질의 남자가 근엄한 표정으로 컴퍼스를 들고 도형을 그리는 책표지. ‘이 책 겁나 어려워.’ 라며 학문적 냄새를 뿜어내는 포스에 멈칫하던 책, 인간을 읽어내는 과학이다. 한동안 책장의 먼지만 읽어내던 책인데 어쩌다 손이 갔을까. 명색이 과학 샘인데 이 정도 책은 읽어낼 수 있지 않을까. 자신은 없지만 크게 심호흡을 하고 도전해보기로 했다.

 

1.4킬로그램의 뇌에 대한 이야기는 긴장했던 마음이 무색하리만큼 빠른 스피드로 펼쳐졌다. 괜히 걱정했다 싶었다. 일반인을 대상으로 하는 뇌 관련 강연을 집중해서 듣고 난 기분이었다. 뇌의 구조적인 과학 상식부터 뇌를 연구한 많은 학자들에 관한 일화, 영화 속 장면, 실험 이야기, 미술 작품, 정밀한 스케치, 문학 작품, 철학적 사유가 담겨있었다. 그 안에서 저자는 독자들에게 란 존재에 대한 질문을 던졌다. 뇌 모양의 퀼트 작품을 라는 실로 한 땀 한 땀 꿰어서 만드는 것 같았다. 뇌를 통해 나를 들여다본 경험은 신선했고 새로운 관점 하나가 늘어 삶을 바라보는 시야가 넓어지는 느낌에 뿌듯했다. 첫 장을 펼칠 때부터 마지막 장을 덮을 때까지 끊임없이 를 생각했던 의미 있는 시간이었다.

 

는 존재하는가. 1<뇌와 인간>을 읽으면서 육체와 정신에 대하여 생각한다. ‘육체가 시간의 흐름을 살듯이 정신도 시간의 흐름을 삽니다.(p40)’라는 문장 앞에서 점점 예전 같지 않아지는 몸을 바라본다. 육체가 늙어가는 속도로 정신이 늙어가지 않는다는 사실은 얼마나 다행이면서도 무서운 일인가. 육체는 세월을 거스를 수 없다. 누구나 나이 들어가면서 쇠약해진다. 이와는 달리 정신의 흐름은 정해진 규칙이 없다. 강물을 거스르는 연어가 되었다가 탈피하고 날아가는 나비가 되는가 하면 폭우에 무기력하게 휩쓸려가는 나뭇가지가 되기도 한다. 변화무쌍하고 예측 불허한 대상이 내 안 어딘가에 있다. 공간을 차지하지 않으면서도 뇌의 어딘가에 존재한다는 점이 새삼 신기하다.

우리 몸의 세포는 주기적으로 생성과 소멸을 반복한다. 뇌세포만이 유일하게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변하지 않는다고 한다. 네이버캐스트의 <숫자로 보는 일생>에서는 사람의 몸에서 가장 오래된 것은 뇌가 가지고 있는 기억이라 말한다. 어릴 때부터 내게 다가왔던 모든 경험들은 내 뇌의 어딘가에는 새겨져있을 것이다. 그런 것들이 차곡차곡 쌓여 란 존재를 만들어왔다는 생각을 하니 왠지 뭉클하다.

 

는 합리적인 존재인가. 2<뇌와 정신>에 나온 한 문장에 고개를 끄덕이며 공감한다. 맞다. ‘인간은 합리적인 존재가 아니라 합리화하는 존재다.(p117)’. 어떤 일이든 그 일이 내게 일어날 수밖에 없던 배경을 어찌나 잘 끼워맞추어 왔던지. 스스로를 보호하려는 자기 방어적인 본능인걸까.

모든 선택에는 우리도 모르게 우리 행동을 좌우하는 수백 수천 가지 요소들이 존재(p122)’한다는 문장에서 잠시 쉬어 간다. 내가 했던 수많은 선택을 되돌아보면 당시의 나로서는 최선이었다. 지금은 다른 선택을 하겠지만, 정반대의 선택이라 해서 자신을 모순되는 존재라 여길 필요는 없겠다. 선택으로 가는 배경적인 공간이 변화했을 것이니. 빛은 직진하지만 중력장을 지날 때에는 휘어져서 진행한다. 개기월식 때 지구 그림자에 가려져 보이지 않아야 할 달이 붉게 보인다는 사실이 처음에는 이해가 가지 않았다. 태양과 달 사이에 지구가 가로막고 있어도 지구의 중력장에 의해 빛이 휘기 때문에 달 표면까지 파장이 긴 붉은 빛이 도달하여 반사되기 때문이라 한다. 대학 다닐 때 설명해주신 교수님의 말씀이 아직도 기억이 난다. 빛의 입장에서는 최단 거리를 가는 것이라고. 단지 공간이 휘어져서 먼 길을 도는 것처럼 보이는 것뿐이라고. 다른 사람의 선택에 대하여 함부로 말하면 안 되는 것임을 다시 한 번 깨닫는다. 내 모든 선택이 선택 시점의 배경 안에서는 최선이었듯이, 그도 마찬가지였을 것이기에.

뇌는 복잡하면서도 단순한 면이 있다. ‘행동은 바꿀 수 있습니다. 마음에 안 드는 사람과 어쩔 수 없이 일해야 한다면, 눈 딱 감고 2주 동안만 그 사람에게 잘해주면 됩니다.(p124)’ 웃으면서 공감한다. 행동을 정당화하는 뇌의 습성을 적절히 활용하는 현명함이 필요하다. 환상통, 거울 요법, 환각, 코타르 증후군(좀비 병) 등 뇌와 관련된 질병에 대한 설명을 들으면서 바보스러워 보이는 뇌의 작용이 귀엽다는 생각을 한다.

 

는 의미 있는 존재인가. 3<뇌와 의미>를 되새기다보니 아침에 본 재방송 TV프로그램이 생각난다. <어쩌다 어른>에 나온 김미경 강사의 강연이다. 나를 가장 잘 아는 사람은 나이므로 나에 대해 가장 현명한 판단을 할 수 있는 존재도 나라고 한 부분이다. 20대에는 스스로 판단하는 것이 두려웠다. 주변 사람들에게 자주 조언을 구했다. 하지만 조언을 들은 후에 찜찜해한 적도 많았다. 반드시 그런 것만은 아닌데 하며. 나에 대해서 나만큼 완벽하게 알고 있는 사람도 없는데 엉뚱한 데에서 답을 찾으려했으니 나의 사소한 면까지는 모르는 이의 조언이 어긋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휴대폰의 해상도에만 관심을 가질 뿐 삶의 해상도에는 관심이 없습니다.(p243)’라는 저자의 말이 인상적이다. 입이 딱 벌어지는 풍경을 보았는데 막상 사진으로 찍으면 눈으로 보았던 만큼의 감흥을 느낄 수 없다. 그만큼 우리 눈의 해상도는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정밀하다고 한다. 삶의 해상도도 마찬가지 아닐까. 다른 사람들이 바라보는 내 삶은 상대적으로 해상도가 떨어지는 카메라의 사진일 수밖에 없다. 내 삶의 장면을 의미 있는 해상도로 멋지게 바라볼 수 있는 사람은 바로 나 자신인 것이다.

 

는 영원한 존재인가. 4<뇌와 영생>에서는 SF영화 속에 자주 등장하는 존재를 떠올린다. 컴퓨터에 뇌만 이식하여 불로장생하는 우주적인 악당이. 그런 모습으로 존재하는 것이 얼마나 의미 있는 일인지는 아직도 잘 모르겠다.

몇 년 전 과학뉴스에서 미래의 인간 모습이 그림으로 등장한 적이 있다. 뇌와 생식기나 손가락이 과하게 크고 나머지 몸은 상대적으로 왜소하다. 영화 <E.T.> 속 주인공이 연상되는 기형적인 모습이다. 묘한 일은 어쩌면 언젠가는 그런 모습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는 점이다.

인공지능이 과학 분야 뉴스에 점점 많이 등장하고 있다. 어쩌면 우리가 불가능할 것이라고 여기는 일들이 언젠가는 가능해질 지도 모를 일이다. 하지만 나는 아직까지 영원히 살고 싶지는 않다. ‘우주 더하기 나우주 빼기 나의 차이가 없는(p267) 세상일지라도 유한한 삶에서 나름의 의미를 찾고 싶다.

 

5<뇌과학자가 철학의 물음에 답하다>에서는 독립적으로 성장하는 나를 생각한다. ‘무엇인가 특별한 경험을 하거나 유리벽을 깨고 멀리 갔을 때 자아가 성장한다(p326)’ 이 책을 읽은 것도 특이한 경험이었고, 그것은 생각의 폭을 넓혀주는 계기가 되었다. ‘어떻게 해야 독립적인 자아를 만들 수 있을까요? 예측 가능한 세상에 잡음을 집어넣음으로써, 예측 코드로는 더 이상 예측할 수 없는 상황을 만드는 것이 방법입니다.(p330)’ 새로운 경험에 도전하고 스스로 설 수 있도록 나를 더욱 성장시키고 싶다는 생각이 들자 가슴이 뛴다.

 

신기한 일이다. 어떤 장르의 책을 읽어도 결론은 나 자신으로 모아지는 것이. 뇌는 끊임없이 무언가를 당겨서 바탕 화면을 변화시키며 나를 읽어보라 시험한다. 다양한 각도에서 삶을 경험하며 살아간다면 더욱 재미있어질 것 같다. 뇌에 앉은 먼지가 기분 좋은 바람에 살짝 날아간 것처럼 상쾌하다. 뇌 안에 있는 내가 조금 더 자란 기분이랄까. 정신이 거의 무한정적으로 깊어지고 확장될 수 있다는 사실은 정말 멋진 일이다. 뇌에 있는 주름 켜켜이 새로운 무언가가 담기는 상상을 한다. 발이 절로 들썩인다. 일단 걸어가자. 지금까지와는 다른 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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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7-11-20 11:2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제는 우주에 거주하는 미래형 인간의 모습도 상상해야 하는 시대입니다. 우주의 무중력 현상 때문에 뇌의 모양이 짓눌리는 형태로 변한다고 해요.

나비종 2017-11-20 23:21   좋아요 0 | URL
공간이란 시간만큼이나 묘하다는 생각을 합니다. 여기에 어떤 힘이 개입하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환경으로 탈바꿈하니 말이죠. 우주에 존재하는 크고 작은 힘들이 물감처럼 공간을 채색하는 이미지를 떠올립니다.
무중력 상태의 공간에서 뇌가 변한다면, 그 안에 담긴 정신도 육체만큼이나 달라지는 걸까요?
 
복제인간 윤봉구 - 제5회 스토리킹 수상작 복제인간 윤봉구 1
임은하 지음, 정용환 그림 / 비룡소 / 201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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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장을 덮고 눈을 감는다. 방금 본 조명이 잔상이 되어 눈 속에 머물다 사라진다. 커피 맛이 오늘따라 혀끝에 오래 매달린다. 마음이 감각 기관이라도 된 양 동화의 여운이 머릿속에 둥둥 떠다니다 아직까지도 심장을 붙들고 있다.

가슴에 ‘ORIGINAL’과  ‘COPY’가 새겨진 졸라맨의 타이즈 같은 옷을 입고 익살스런 표정으로 겉표지를 장식한 두 아이. 책 제목 <복제인간 윤봉구>가 겹쳐지면서 읽기도 전에 엉뚱한 이야기를 상상했다. 호평이 쏟아지는 어린이 심사위원의 멘트까지 정점을 찍으면서 속단해버렸다. 아이들의 취향을 저격한 재미있는 SF만화 같겠구나 라고.

무방비 상태로 마음을 향해 훅 들어왔다. 이런 내용이리라고는 상상하지 못했던 만큼 꽤 오랜 시간 잔영이 남는다. 재미있으면서도 긴장감이 느껴지는 요소가 뒤에 나올 장면을 궁금하게 만들고, 코끝 찡한 감동까지 밀려오면서 마지막 장을 덮는 순간 울컥한다. 통통 튀는 정용환의 그림도 춘장처럼 맛깔나다. 책표지 안쪽에 있는 어린이 심사위원의 강력 추천 한 마디를 다시 읽는다. 아이들의 말이 과장이 아니었음을 깨닫는다. 이런 이야기를 알아볼 줄 아는 시선을 갖고 있다는 생각에 절로 흐뭇해져 미소를 짓는다.

 

1993, 영화 <쥬라기 공원>에서 날카로운 이빨을 번득이며 크르렁 거리던 복제 공룡 이야기는 영화에서나 존재하던 판타지였다. 그러다 1996년 복제양 돌리가 성공했다는 뉴스를 들었을 때, 무서운 생각이 들었다. 미역 줄기 같은 머리카락으로 얼굴을 가린 캐릭터가 TV속에서 슬금슬금 기어 나오는 공포 영화가 현실에서도 재현된 느낌이랄까. 포유류도 복제가 되는구나. 277분의 1의 확률이었지만 결국 성공했다는 사실이 충격이었다.

2005년 개봉된 영화 <아일랜드>를 우연히 TV에서 본 순간, 이제는 먼 미래의 일이 아니구나 싶었다. 장기를 내놓기 위해 존재하는 복제인간이라니! 혼란이 왔다. 무조건 나쁘다 말하지도 못할 것 같았다. 내 소중한 가족이 병에 걸렸는데, 장기만 이식받으면 살아날 수 있다면? 충분히 갈등할 만한 상황이었다. 하지만 소모품처럼 장기가 떼어지는 복제인간을 생각하면? 뫼비우스의 띠로 이루어진 길을 걸어가기라도 하듯 내 생각은 원본인간과 복제인간의 입장을 오락가락했다.

2004년에 나온 소설 마이 시스터즈 키퍼: 쌍둥이별2009년 개봉된 영화 <마이 시스터즈 키퍼>는 중학교 3학년 과학 교과서 ‘생식과 발생단원의 말미에 나온다. 백혈병에 걸린 언니에게 줄기세포를 제공할 목적으로 만들어진 맞춤형 동생과 관련된 이야기라고 한다. 2008, 영국 의회에서는  치료용 맞춤 아기의 출산을 합법화했다. 작가 조디 피코는 가까운 미래의 일을 예측이라도 한 걸까? 복제인간을 연상케 하는 소재이지만 가족의 의미에 더욱 무게가 실린 작품이다. 동생이 죽는다는 원작도, 언니가 죽는다는 영화도, 결말은 둘 다 마음에 안 든다. 모두 행복해지는 결말은 없는 걸까?

그런 면에서 이 동화는 따뜻하고 개운하다. ‘인간은 존엄하다. 그 말이 내 목구멍에 걸렸다. 복제인간도 존엄할까?(p98)’라며 복제인간의 정체성을 질문한다. 주 독자층일 아이들에게 생각할 거리를 던져준다. 짜장면 요리사를 향한 꿈을 꾸는 복제인간 윤봉구의 모습을 보여주면서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생각하게도 한다. ‘넌 진짜보다 더 진짜니까. 꿈꾸고 웃고 사랑할 줄 아는 진짜.(p155)’라는 문장에서는 아이들의 마음을 다치게 하지 않으려는 섬세함이 빛난다. 동화의 캐릭터들을 묶어주는  가족이라는 따뜻한 끈 앞에서 원본과 복사본을 구분하는 일은 무의미해진다. 한 호흡 멈추고 주변의 가족을 천천히 둘러본다.

 

여전히 논란의 여지가 있는 묵직한 소재, 복제인간. 세상 어딘가에서 누군가에 의해 만들어지고 있을지도 모를, 이미 만들어졌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두려움을 안겨주는 민감한 소재이기도 하다. 치료를 필요로 하는 존재와 치료를 목적으로 만들어지는 존재. 아직도 어느 쪽으로 서야 할지 갈등이 일어난다. 날짜변경선 위에 선 듯 위태로운 기분이다. 어쩌면 미래에 펼쳐질 현실은 무겁고 훨씬 더 치열하고 상상도 못한 장면을 보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 그래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임은하 작가의 동화를 통해 따뜻한 희망을 본다. 탁탁탁탁탁. 복제인간 봉구가 경쾌하게 양파를 자르는 소리처럼 다른 어딘가에서는 누구도 상처받지 않고 문제를 해결할 방법이 반드시 나타날 것이라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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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

내 공간만 바라보던

햇살 담은 12세의 5월은

마냥 맑기만 한 파랑 이었다

 

2007

<화려한 휴가> 속에서

충격이던 39세의 여름은

어쩔 줄 모르던 빨강 이었다

 

2010

수많은 비석 앞에서

고요했던 42세의 5월은

할 말 잃어버린 무채색 이었다

 

기억해야 할 사실을

제대로 몰랐다는 건

기억되어야 할 영혼들 앞에서

얼마나 부끄러운 일인가

 

나에겐 파랑이던 5월이

파랑이고 싶었을 누군가에겐

색깔을 잃어가던 치열함이었음은

순간순간 얼마나 눈가 시큰한 일인가

 

당당한 빛으로 살아내며

자유와 민주에 색깔 입히던

수많은 삶의 이야기는

뜨겁게 스미는 역사는

 

2017, 다시 이 곳

먹먹한 색깔로 지나갔다

가슴 깊이 생생하게 새겨진

49세의 5월은

 

* 2017. 9. H공모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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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론 - 신영복의 마지막 강의
신영복 지음 / 돌베개 / 201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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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종일 낀 렌즈로 뻑뻑해진 눈과 같은 관계. 당신과의 만남은 늘 아귀가 맞지 않는 톱니바퀴였다. 1995, 사랑하는 사람과의 새로운 시작은 그로부터 갈라져 나온 또 다른 관계의 출발이기도 했다. 어설프게 끓인 김치찌개의 맛처럼 같은 공간에 섞여있으면서도 조화를 이루지 못하는 만남. 어머님과 나와의 관계에서는 자주 그런 맛이 났다. 드러나지 않는 묵직한 갈등은 당사자들만이 느낄 수 있는 묘한 씁쓸함이었다.

 

대학교 1학년 겨울방학, 신영복 선생님의 책을 처음으로 접했다. 사색이란 말이 감옥이 주는 이미지와 어울리지 않는다는 생각을 하며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을 펼쳤다.

존재 자체가 미움이 되는 비좁은 감옥의 여름을 묘사한 문장 중 앞부분의 문구가 선명하게 남았다. 없는 사람이 살기는 겨울보다 여름이 낫다는 말씀이다. 겨울이 다가올 때마다 연탄 들여놓을 걱정을 하시던 엄마의 모습을 가까이에서 보아왔던 터라, ‘맞아, 맞아!’하며 공감했다. 여름은 그냥 벗고 물 끼얹어가며 견디면 되지만 없는 형편에 겨울은 난방을 위한 돈이 필요해 더욱 시린 계절이었다.

2020일의 수감 기간은 20세를 갓 넘은 나에게 감히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압도적인 세월이었다. 얼마나 힘들었을까 라는 마음조차 초라해지는 무게감으로 스러졌다. 20대에 걸 맞는 몇몇 문장만이 어설프게 흡수되었다.

 

18년이 흘러 책과 함께하는 삶이 시작될 즈음, 강의-나의 동양고전 독법을 만났다. 40세를 바라보는 나이였으나 이과를 전공한 입장에서 인문학 책의 존재는 넘어서기 힘든 거대한 산이었다. 당시의 내가 감당하기에는 책에서 소개하는 고전들과 저자가 그리는 세상이 너무 컸다. 꾸역꾸역 읽었다는 표현이 적절했다. 읽기는 읽었지만 마음에 남은 내용은 거의 없었다. 좋았다는 느낌만 희미하게 남았다.

 

그나마 가벼운 마음으로 읽었던 책은 그 다음 해에 나온 처음처럼이었다. 내용도 좋았지만 나를 사로잡은 것은 글씨와 그림이었다. 화려하지 않지만 투박하고 힘찬 글씨와 그림에서 풍겨 나오는 분위기는 지나간 후에 돌아보게 되는 향기처럼 깊었다. 2016, 개정판으로 나온 노란 겉표지를 사진으로 찍어서 카카오 톡 배경사진으로 올렸다. 네 글자가 나타내는 의미가 좋아서 볼 때마다 마음에 되새기고 있지만, 글씨체에서 뿜어져 나오는 설명할 수 없는 그 무엇이 참 좋았다.

 

다시 11년을 지나 담론을 마주했다. 표지를 넘기는 데에만 몇 분이 걸렸다. ‘신영복의 마지막 강의라는 하얀 글씨가 먹먹해서였다. 한지 느낌의 소박한 표지를 조심스레 쓰다듬었다. 힘차게 뻗어나간 검은 색의 한자 속으로 천천히 빨려 들어갔다.

앞표지를 넘겨 저자의 소개를 읽다가 ‘~재직하고 있다.’는 마지막 문장에서 뭉클했다. 손에서 놓쳐버린 물건이라도 본 양 아쉽고 허전한 느낌이었다. 벌써 1년도 넘었구나. 이제야 겨우 당신의 책을 집어들만 한 수준이 되었건만 더 이상 다른 책을 볼 수 없다는 안타까움에 한참을 머물었다.

이제껏 읽었던 저자의 책을 모아서 보는 듯했다. 1고전에서 읽는 세계 인식을 읽으며 강의를 떠올렸다. 2인간 이해와 자기 성찰에 나온 감옥 사람들과의 에피소드는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을 연상시켰다. 강의하신 내용을 모은 글이라 책 속의 당신이 말을 거는 것 같았다. 현장에서 경청하는 마음으로 2주일동안 천천히 읽었다. 읽은 기간보다 더 많은 시간을 생각했다.

30년의 시간에는 30년만큼의 기쁨과 상처가 존재한다. 스무 살 이후로 내 삶의 중간 중간에 쉼표처럼 들어오던 당신의 글은 내 기쁨과 상처와 어우러지며 세상과 사람을 찬찬히 둘러보게 했다. 그 안에서 나는 조금씩 무르익어갔다. 10여 년 동안 천 권 넘게 책을 샀다. 구입한 수의 절반도 채 읽지 못했다. 걸어온 길보다 걸어갈 길이 아직도 멀었지만, 이 책은 깊이 우러난 곰국의 맛처럼 깊었다. 갈수록 넓어지는 사유가 서서히 스며들었다.

 

1부에서는 공자, 맹자, 노자, 장자, 묵가, 법가, 춘추전국시대의 담론 등이 이어졌다. 고전 사상의 핵심을 요약해서 공부할 수 있었다. 그런데 뜬금없이 논어에서도 맹자에서도 어머님 생각이 책갈피처럼 행간에 끼워졌다. 당황스러웠다. 난해한 수학 문제처럼 항상 어려웠던 관계. 강의의 중심 개념이 관계이다보니 자연스레 나를 중심으로 만들어진 관계가 생각날 수밖에 없던 걸까. 아픈 손가락으로 마음이 모아지듯이 가장 삐걱거리던 당신과의 관계를 읽게 되었는지도 몰랐다.

내 딸 둘을 헌신적으로 돌봐주셨다. 지켜보는 나는 아이들을 위하시는 마음이 과하게 느껴져 종종 버거워했다. 이성적으로 판단한 당신은 너무나 고마운 분이셨다. 다만 당신 마음을 표현하는 방식이 서툴렀을 뿐이었다. 투박한 것이 나쁜 것은 아닌 것을. 불편하고 낯설다는 이유로 나는 끊임없이 스스로를 합리화했다. 최소한의 도리만 하며 당신과의 거리를 벌리고 있었다. 껄끄러운 관계의 어색함을 당신 탓으로만 돌리던 매정한 며느리였다.

공부는 머리가 아니라 가슴으로, 가슴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 발까지의 여행이라는 문장 앞에서 발가벗겨지는 느낌을 받았다. 이론과 실천은 함께 간다는 내용에서는 이성적으로 판단한 대로 행동하지 못하는 나를 돌아보며 달아오른 얼굴을 문질렀다. 이제껏 헛공부를 해왔구나. 감춰왔던 위선이 고스란히 드러나 버린 나를 거울로 보는 것 같았다.

텍스트를 통해 객관적인 시각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책을 읽는 것은 필자를 읽는 것이고, 결국 자신을 읽는 것이라는 문장이 강하게 새겨졌다. 조그마한 갈치 가시를 삼켜 다른 음식을 넘길 때마다 따끔하게 느껴지는 목 안의 감각처럼 결혼이후 시시때때로 마음에 걸리던 당신이 서서히 떠올랐다.

 

2부도 가시방식이기는 마찬가지였다. 실천이 없는 독서를 비유한 표현, ‘한 발 걸음이 정곡을 찔렀다. 어머님과의 관계에서 한 발조차 움직이려하지 않던 나였다. 관계의 시작은 가정이다. 여기에서 이루어지는 관계조차 편안하지 못하다면 그 어떤 타인과의 관계를 제대로 맺을 수 있을까.

가슴이 공감과 애정이라면, ‘은 변화라는 문장에서 주춤했다. 어머님께 나는 머리만 있는 며느리였을까. 끊임없이 먹을 것을 주셨던 당신. 중학생이 된 막내가 아파트 옆 라인에 있는 할머니 댁에 가기를 귀찮아하자 빨간 법랑냄비에 국이나 반찬을 담아 매일 저녁 우리 집까지 날라 오셨다. 직장일로 종종 퇴근이 늦는 며느리를 대신해 끼니를 챙겨주시던 고마움이 그 때는 왜 그리 부담스러웠는지.

올해, 아이가 고등학교로 진학하면서 아이 학교 근처로 이사를 왔다. 시댁에서 자동차로 10분 남짓한 곳이라 물리적인 거리감은 멀지 않았지만, 심리적인 거리감은 그보다 더 컸다. 처음에는 홀가분한 느낌이 들어 너무 좋았지만 그 기분이 그리 오래 가지는 않았다. 두어 달쯤 지나자 무언가를 두고 온 듯 마음이 다시 껄끄러웠다. 분명 당신 탓은 아닌 마음이 무엇 때문에 생긴 것인지 몰랐다.

처음 한두 달 정도는 퇴근길에 들러서 먹을 것을 가져가라며 일주일에 한 번 정도 전화를 하셨다. 살짝 귀찮은 마음을 안고 들렀더니 저녁 먹고 가라며 밥을 해놓고 기다리고 계셨다. 목이 살짝 메었다. 바리바리 먹을 것을 싸들고서 돌아오는 길이 혼란스러웠다.

인간만큼 간사한 존재가 또 있을까. 감동스럽고 감사하던 마음은 오래 가지 않았다. 며칠이 지나면 용수철의 탄성처럼 원래의 건조한 마음으로 돌아가곤 했다. 하지만 팽팽하던 용수철은 늘어나고 줄어들기를 반복하면서 느슨해지고 있었다. 당신과의 관계에서 진하게 느껴지던 어색함은 점점 옅어졌다.

 

경계에 있는 사소함은 더 이상 사소하지 않다. 그것은 때로 어떤 상태를 원래대로 되돌릴 수 없는 결정적인 요인으로 작용한다. 1의 차이라 해도 99의 물과 100의 물 사이에는 엄청난 틈이 존재한다. 상태의 경계에 들어서는 순간, 물은 더 이상 되돌아갈 수 없는 수증기로 날아가 버린다.

이 책이 어머님과의 관계를 변화시키는 계기로 작용했다. 마지막 책장을 덮는 순간까지 몰랐다. 이제부터 여러분이 강의 이후를 시작하라는 문장이 결정적으로 마음을 들썩이게 한 걸까. 물처럼 스며들던 427쪽의 문장들이 어머님의 사랑과 어우러져 모르는 사이 마음을 가득 메웠던 것일까.

집에 가져가서 먹으라며 나를 위해 해놓으신 찰밥이 담긴 플라스틱 용기에서 따뜻함이 배어나왔다. 오늘 어머님 댁에 들렀다 나오면서 이제는 당신과의 관계에 두 발 걸음을 하게 될 것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신혼 초, 한 아름 주신 조기를 손질하면서 난생 처음 생선을 다듬어본 며느리가 생선 눈깔이 무서워 울었다는 일화가 있다. 조만간 웃는 당신과 나누게 될 이야기의 시작이다.

 

수감 기간 동안 신영복 선생님이 자살하지 않은 이유는 감옥의 창을 통해 들어오던 햇볕때문이라고 했다. ‘햇볕이라는 낱말을 보는 순간 아까 보았던 어머님의 표정이 떠올랐다. “잘 먹을게요, 어머님. 도착하면 전화 드릴게요. 얼른 들어가세요.” 자연스러워진 내말에 활짝 피어나던 당신의 얼굴. 아름답고 참 고왔다. 며느리의 무정함을 묵묵히 지켜보시던 넓고 따뜻한 마음이 담겨있었다. 눈부신 웃음을 보는 순간 코끝 찡한 마음이 굴러다니며 실타래처럼 뭉쳐졌다. 물건을 올려놓고 집으로 돌아오는 뒷좌석이 햇볕을 받은 듯 내내 따뜻했다. 당신의 환한 얼굴이 몇 시간이 흐른 지금까지도 마음 언저리를 맴돈다. 호박고구마 한 상자와 뜨끈한 찰밥과 엄청난 양의 곰국이 한 가득 담긴 커다란 통에 묻어있는 햇볕을 만졌다. 눈이 시큰해졌다.

신영복 선생님이 좋아하는 글귀라며 책의 마지막 부분에 언약은 강물처럼 흐르고/ 만남은 꽃처럼 피어나리.’를 소개하신다. 22년 동안 불안하게 이어지던 어머님과의 관계. 당신과의 만남이 이제야 꽃으로 피어나려는 걸까. 눈에 고인 맑은 꽃이 볼을 타고 흘러내렸다.

 

 

* 2017.10. H독후감 공모, 동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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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1-07 07:56   URL
비밀 댓글입니다.

나비종 2017-11-07 08:39   좋아요 0 | URL
항상 지나고 나서야 깨달아진다는 것이 참.. 마음이 아프네요...
오늘, 제 주변에 있는 사람들에게 잘해야 나중에 후회가 덜 할텐데, 바쁘게 움직이다보면 간혹 때를 놓치는 경우가 많은 것 같아요...

마루쫑 2022-05-13 17:09   좋아요 1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감동적인 서평이네요. 제 삶의 사표로 삼고 살았음에도 머리로만 읽은 느낌이 들어 다시 읽기를 하고 있습니다. 역동성과 창조성의 공간인 변방으로 가라는 선생님의 ‘행동지침‘에 따라 서울생활 정리하고 농촌으로 내려 왔는데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느라 고단한 나날이었습니다. 머리도 몸도 굳어져 가는 50대 초반, 선생님의 가르침에 따라 다시 일어섭니다. 좋은 긍에 감사드리며.

나비종 2022-05-21 00:10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이런 종류의 책은 경험의 폭이 넓어질수록 와닿는 문장들이 더욱 많아지더군요. 오랜만에 예전의 기억을 거슬러올라갔습니다. 다시 읽는다고 하시니 저도 다시 한 번 읽어보고 싶어지네요.
한때 농촌에서의 삶을 머리로만 꿈꾸던 때가 있었는데요, 벌레를 너무 무서워하는 지라 시도도 하기 전에 깔끔하게 접었습니다.^^;
시골 생활은 어떠신지요? 자연과 가까운 일상의 풍경이 잠시 궁금해집니다. 다시 일어서시는 마루쫑님의 삶을 응원합니다.^^
 
음악 혐오 - 공쿠르상 수상 작가 파스칼 키냐르가 말하는 음악의 시원과 본질
파스칼 키냐르 지음, 김유진 옮김 / 프란츠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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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럼과 베이스 기타 소리를 좋아한다. 커다란 울림으로 오롯이 하나의 감각만을 향하는 규칙적인 두드림에 내 심장도 덩달아 두근거린다. 심장 박동이 피부로 느껴진다. 어두운 곳에서 이어폰을 끼고 듣다 보면 머리 뒤편에서 울리는 소리가 밖에서 온 건지 안에서 온 건지 경계가 모호해진다. 음악에 취한 듯 강하게 끌려들어간다.

어릴 적에는 타악기의 매력을 몰랐다. 높은 소리와 낮은 소리를 넘나드는 맑은 가락의 피리나 하모니카가 멋져보였지, 큰 북은 그저 기악 합주의 맨 뒤에서 밋밋하게 둥둥거리는 재미없는 악기에 불과했다. 언제부터였을까. 깊은 진동이 피부를 뚫고 심장을 두드리기 시작한 순간, 그 울림에 빠져버리고 말았다.

 

이 책을 왜 샀을까. 과속방지턱을 만난 듯 옮긴이의 각주를 볼 때마다, 각주를 읽어도 이해되지 않는 내용을 접할 때마다, 무한한 무지가 피부로 으스스 스며들 때마다, 짧은 문장 사이를 몇 번이나 왕복 달리기를 하며 멘붕이 올 정도로 시간을 흘려보낼 때마다, 이노무 책을 집어던지고 싶은 충동이 불쑥 불쑥 일었다. 어느 정도 읽다보면 책장이 술술 넘어가는 부분도 나오겠지 싶던 기대는 마지막 장을 덮는 순간 힘없이 무너졌다. 어쩌면 그리 한결같은 난이도를 유지하는지, 어쩌면 이리 한결같게 모를 수가 있는지. 듣도 보도 못한 신화 속 인물들이 바닷가 모래알처럼 수시로 등장했고, 철학가와 문학가, 발음도 잘 되지 않는 종교적인 캐릭터까지 이 작은 책을 비집고 북적댔다. 일주일 만에 가까스로 마지막 장을 덮었다. 책 표지 색깔처럼 암담함이 엄습했다. 인정하고 싶지 않은 세 글자가 떠올랐다. ...

 

이상한 일은 그 후에 일어났다. 분명 제대로 이해한 내용이 없었는데 따뜻한 물에 푹 담근 몸으로 온기가 스며드는 것처럼 무언가가 내 안에 들어온 듯했다. 다 읽고 나니까 책의 맛을 어렴풋이 느낄 수 있었다. 세상에 흩어져있는 수많은 음악 안에서 어떤 요소가 내 마음을 강하게 끌어당겼는지 알게 되었다.

화려한 외피를 걷어내고 알맹이를 보려는 사람처럼, 음악의 본질을 향해 조금씩 거슬러 올라갔다. 아름다운 선율의 옷을 벗은 날 것 그대로의 음악에는 짐승들의 울음과 질척이는 생명의 떨림이 존재했다. 심장의 두근거림과 지금 이 순간에도 끊임없이 들썩이는 호흡의 규칙적인 리듬이 이 모든 것의 기원이었다. 음악이란 결국 생명에서 뿜어져 나온 울림을 모방하면서 이어져왔던 소리였다. 다양한 각도에서 음악의 본질을 파헤치는 저자의 사유에 절로 경외감이 느껴졌다.

 

음악(音樂)에서 (樂)’이란 한자에는 노래라는 뜻 이외에도 즐기다란 의미가 있다. 독음은 다르지만 좋아할 요도 같은 한자를 쓴다. 저자가 이 책에서 말하는 음악은 음향(音響)에 가까워 보인다. ‘(響)’이란 한자는 고향 향아래에 소리 음자가 합쳐진다. '울린다'는 뜻이다. 음악의 기원을 거슬러 올라가며 좀 더 본질적인 소리의 고향을 찾고자 하는 사유가 엿보인다는 면에서 음향을 떠올린다. 그 본질은 즐겁지도 맑지도 않고 비릿한 눈물의 맛을 닮았다. 갓 태어난 아기를 볼 때의 느낌처럼 찡함과 기쁨을 동시에 품는다.

 

피아노 계단이 발명되었다는 뉴스를 보았을 때 참 대단하다 감탄했다. 그러다 몇 년 뒤비트 박스계단이 소개된 동영상을 보았을 때의 느낌은 신선한 충격에 가까웠다. 한 사람이 올라설 때에는 아름다운 소리가 나지만, 여러 명이 오르내릴 때는 잡스럽게 섞이는 소음이 되는 피아노 계단의 단점을 보완했다고 했다. 음의 고저가 없는 비트만으로도 충분히 아름다운 음악이 되고 있었다. 여러 비트가 섞여 조화롭게 어울리는 모습을 보니 묘했다. 계단을 오르내리는 사람들은 저마다 흥겨워하며 춤을 추고 있었다. MSG를 첨가하지 않은 콩나물국인 듯 깔끔하고 개운한 소리였다.

 

주변 사람들이 뒤척이는 소리에 오늘따라 민감해진다. ‘귀에는 눈꺼풀이 없다.(p104)’는 문장이 떠오른다. 우리는 소리에 무방비하게 노출되어 있다.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모든 소리가 외피를 뚫는 송곳의 성질을 지니고 있다는 저자의 생각에 절로 공감이 된다. 책에 등장한 묵음침묵의 의미를 곰곰 생각한다.

이어폰을 끼고 좋아하는 음악을 들으며 글을 쓰고 있다. 즐겨찾기로 등록한 음악들을 민감하게 듣다 보니 강하게 끌리는 노래의 공통점이 보인다. 내게 있어 노래 한 곡의 모든 부분이 마음에 드는 경우는 드물다. 1초 혹은 한 소절의 포인트에 반하면 스킬 자수를 하는 바늘에 꿰어진 듯 훅 끌려들어가는 경우가 많다. 오늘 다시 분석해보니 좋아하는 노래들 안에서 드럼과 베이스 기타 소리가 두드러진다. 내가 그리워하는 소리는 심장 소리였을까.

백예린의 <아주 오래된 기억>이 흘러나온다. ‘어떤 날은 소리로부터 아주 오래된 기억을 느껴음악을 거슬러 올라가다보니 가사도 사라지고 리듬도 사라지고 심장의 떨림이 나를 기다리고 있다. 그 미묘한 떨림이 많은 것을 담고 있다. 가장 좋아하는 낱말 지음(知音)’의 의미를 새삼 생각한다. 내 심장은 나도 모르는 사이에 음악의 떨림을 인지하고 뛰어왔던 걸까.

 

음악에는 마냥 아름답다고 하기엔 훨씬 묵직하고도 깊은 무게감이 있다. 그 울림이 생명을 흔드는 방향으로 접근했을 때, 이 책의 제목처럼혐오라는 말이 나란히 붙을 정도로 처절할 수도 있겠다 싶다. 수용소에 있던 프리모 레비가 음악을 가리켜 지옥 같다라는 표현을 했듯이.

커피숍에서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주문했다. 캐러멜 마키아토만 마시던 때도 있었건만 이제는 눈길이 가지 않는다. 아메리카노의 맛을 알게 된 후 나타난 변화이다. 우유도 첨가하고 캐러멜도 첨가한 음료가 더 이상 매력적이지 않다. 이 것 저 것 다 걷어낸 커피 고유의 매력을 알게 되었기 때문일까. 본질에 접근한 음악은 생명을 닮아 있었다. 그것은 훨씬 오래전부터 울리던 깊은 소리였다. 동물의 울음으로, 인간의 언어로, 악기의 울림으로, 누군가의 목소리에 실린 음악은 우리의 심장처럼 항상 뛰고 있었다. 생명의 떨림과 같은 파장으로 진동하는 공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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