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 빼기의 기술 - 카피라이터 김하나의 유연한 일상
김하나 지음 / 시공사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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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간절히 바랬다. 제발 어디라도 아프게 해주소서! 남들은 부러워했건만 물을 무서워하는 내게는 한마디로 재앙이던 체육 수업. 이노무 몸은 어찌나 튼튼하던지. 그렇다고 꾀병을 부릴만한 배짱은 없던 중1의 소심한 소원이었다. 재미로 발만 담그는 물장구가 아니라 여기서 저기까지 무려 헤엄쳐가는 실기시험이라니! 망했다고 생각했고 실제로도 망했다. 점수고 나발이고 당최 숨도 쉴 수 없는 공간에서 허우적거린다는 것은 공포 그 자체였다. 당시 느낀 심리적 거리감은 거의 1000m 왕복 수준이었다. 학창 시절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시험 거부를 해봤다. 앞에서 붙들어준다는 절친의 설득으로 1m 가량 허우적거리는 액션으로 끝이 났지만. “힘을 빼!” 그때 지겹도록 들었던 말이다.

다니던 중학교에는 수영장이 있었다. 담쟁이덩굴로 둘러싸인 고풍스러운 건물이지만 럭셔리하지는 않았다. 푸세식 화장실과 걸음을 옮길 때마다 삐걱대는 복도. 수영장과 어울리지 않던 구색의 비밀은 운동부에 있었다. 대부분의 학교마다 있던 운동부 종목이 수영이었던 거다.

힘을 빼는 데에 기술씩이나? 책 제목 참 희한하다. 잠시 곱씹어본다. 아하!  ‘의 차이가 눈에 들어온다. 빠지는 것이 아니라 힘빼는 거로구나. 그게 참 어렵다는 것은 진작 경험했던 일이다. ‘힘을 빼고 물에 나를 내맡긴 채 나아가는 것. 딛고 선 땅이 없어도 두려움을 이기고 나를 믿는 것.(p10)’ 프롤로그에서 오랫동안 풀리지 않던 문제의 답을 발견한다. 내가 끝내 수영을 배우지 못했던 이유는 나를 믿지 못하고 힘을 빼지 못해서였다.

 

뜨거우면서도 시원하고, 바삭거리면서도 부드러운. 책에서 아이스크림 튀김 맛이 났다. 한없이 가벼운가 싶다가도 해양심층수의 느낌이 났고, 웃음 뒤에 뭉클함이 스며들었다. 추운 곳을 여행하는 이야기에서 열정이 뿜어내는 김이 모락모락 났다. 냉탕과 온탕을 왔다 갔다 하는 사이, 마음은 점점 따뜻해지고 말랑말랑해졌다. ‘힘을 줄 수 있는데 힘을 빼버렸기 때문에 생겨나는 매력(p45)’ 인건가. 작가의 문체가 주는 매력에, 삶으로 뛰어드는 과감한 용기에, 주변을 돌아보는 열린 마음에 빠져들었다.

모두에게 좋은 책은 없다. 마찬가지로 모두에게 나쁜 책도 없다. 다만 나와 맞거나 맞지 않는 책이 있을 뿐이라 생각한다. 오랜만에 내 정서 코드와 가까운 책을 만났다. ‘독서는 대화(p57)’ 라는 말에 공감하며 책을 읽는 동안 얼굴조차 모르는 작가와 대화라도 한 듯 친숙함을 느꼈다.

광고를 좋아한다. 정확히 말하면 광고 카피를 좋아한다. 30초의 작은 프레임 안에 메시지를 담아야하는 스피디함과 촌철살인의 전달력이 나를 강하게 끌어당긴다. 하나의 문장으로도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다는 점에서 시가 지닌 매력과도 통한다. ‘세월은 강물을 따라 흐르고 사람은 그리움을 따라 깊어간다.’ 였던가. 커피의 카피였는데 오래전이라 기억이 가물가물하지만, 한동안 이 문구가 머릿속에 맴돌던 기억이 있다. 그래서였을 거다. 카피라이터인 작가의 글에 더욱 호감이 느껴진 것은.

 

Part 1 <가까이에서>는 가족, 친구, 고양이 등 작가 주변의 이야기가, Part 2 <먼 곳에서>는 반년 동안 남미를 여행하면서 겪은 이야기가 담겨있다.

유리창 안에서 밖에 펼쳐진 풍경을 보듯 작가의 일상을 들여다보다가도 자연스럽게 비친 내 모습으로 초점이 옮겨졌다. 나무를 보면서 나를 보고, 하얗게 쌓인 눈을 보면서 나를 바라보았다. 나의 삶과 내가 바라는 삶을 진지하게 생각했다.

여행을 하고 싶은 마음이 강해졌다. 여행지를 소개한 글도 아니고 작가의 경험담일 뿐인데도 그 어떤 여행서보다 더 매혹적이었다. 자연에 대해서도, 여행지에서 만날 사람들에 대해서도 나도 직접 경험하고 싶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작가와는 또 다를, 나에게 전해질 미지의 느낌이 궁금했다.

 

나란 인간의 진짜 크기(p28)’ 라는 말에 꽂혀 며칠 동안은 수업을 들어갈 때마다 이 말을 떠올렸다. 간혹 아이들의 말이 마음의 평정심을 깨뜨리며 훅 들어올 때, 입장이 곤란해질까 봐 소심하게 허락하지 못하는 일이 생길 때마다 생각했다. 마음속으로 이 말을 내뱉으며 적절한 허용 선을 찾았다. 마음이 조금씩 커지는 듯했다.

돌아보면 순간순간 그랬다. ‘인생은 언제나 기회비용과 선택의 문제(p129)’ 였다. 사소한 것으로부터 비중이 큰 것에 이르기까지 하루에도 몇 번씩 선택을 해야 하는 시간이 왔다. 그런 선택의 결과들이 적분처럼 모여 내 삶의 방향을 정했다.

선택의 순간은 대부분 사소한 차이로 결정된다. 4951의 근소함이 부지기수이다. 선택되지 못한 49를 떨쳐내지 못해 헛된 시간을 보냈다고 생각했다. 이 책을 읽고 다시 생각하니 그 시간들이 마냥 쓸데없지만은 않았다. 그 안에 담긴 깨달음이 나를 더 단단하고 선명하게 만들었으니. 어릴 때 큰 삼촌이 붙여주셨던 별명이 흐리멍텅이었는데, 지금은 어느 정도 과감하게 결단도 내리고, 미련을 떨쳐버리는 시간이 짧아졌으니. 갖지 못한 것에 대한 욕심도 부리지 않게 되었다.

 

<어쩌다 어른>에서 김미경 강사는 실패한 경험이 갖는 강력한 에너지를 말한다. 실패는 몇 % 모자란 성공이라고. 실패가 쌓이다보면 결국 바라는 대로 이루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작가도 역시 그런 경험의 중요성을 언급한다. ‘인간은 자신이 선택한 경험을 통해 가장 많이 배운다.(p32)’ 는 말에 크게 공감했다.

1학년 수업에 들어갔더니 아이들이 회의 시간을 조금만 달라고 했다. 축제날 오전에 이루어질 학급별 부스를 준비하기 위한 협의 시간이 필요하다고. 하고 싶은 것과 할 수 있는 것 사이에서 의견이 분분했다. 적정선이 보였지만 해결점을 찾지 못하고 있었다. 답답한 마음이 들었지만 그대로 지켜보았다. ‘자신이 선택한 경험, 실패한 경험이 필요하다는 말이 떠올라서였다. 아이들은 결국 그들에게 맞는 결론을 내렸다. 한 시간 내내 수업을 하지 못했지만, 의견이 조율되는 시간들이 뭉클했다. 교과서 지식보다 더 값진 경험이 그들에게 쌓이는 과정을 보았기 때문이다.

교사로서, 엄마로서 마음의 테두리를 넓히고 조용히 지켜보는 과정이 새삼 중요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지나온 삶을 반추해보면 나 역시 실패하고 부딪히는 과정에서 배운 점이 많았다. 나의 조급함과 내 삶의 잣대로 실패할 기회를 빼앗으면 안 되는 것이었다.

 

잠시 멈췄다. ‘인간의 몸이란 어떤 감각을 그리워하는구나 싶었습니다.(p230)’ 란 문장 앞에서였다. 나는 어떤 감각을 그리워하는 걸까. 시각, 청각, 후각, 미각, 피부감각. 지금은 인간이 지닌 오감 중 온각이 가장 그립다. 나의 온도와 거의 같은 또 다른 36.5. 열은 온도가 높은 물체에서 낮은 물체로 이동한다. 이론상으로 열이 이동은 거의 없지만 너무 뜨겁지도, 차갑지도 않은 온기가 그립다. , 잠시 감성적인 인간 모드로! 추울 때 쓴 글이 확실히 절절하지만 나란히 잡은 손을 통해 이어지는 온기가 그리울 때도 있다.

따뜻함의 순환이란 말은 생각할수록 좋았다. ‘고마운 마음을 잊지 않고 있다가 도움이 필요한 다른 사람에게 보답하면 되니까. 그렇게 해야 따뜻함의 순환이 생겨나는 것이다.(p39)’ 물질의 순환 뿐 아니라 사람의 마음도 자연의 규칙을 따라가면 아름다운 결이 생긴다. 대가를 바라지 않고 내미는 손길을 생각하니 마음이 폭신해졌다.

 

관점과 태도에 관한 글을 읽으면서 <인간을 읽어내는 과학>에 나오는 뇌의 합리화 과정을 연상했다. ‘사람들에게 다가가는 내 태도가 달라지니까 관점이 변해간다.(p186)’ 는 말에 공감했다. 관점에 따라 태도가 달라지지만 역과정도 성립할 수 있다. 인간이란 자신의 태도를 합리화하려는 경향이 강하므로 태도에 정당성을 부여하기 위해 관점이 변할 수도 있겠다 싶었다.

가장 인상 깊던 문장은 사진을 찍는 것은 구도를 잡는 것이며, 구도를 잡는 것은 뭔가를 배제하는 것이다.(수전 손택, p195)’ 란 문장이다. ‘뭔가를 배제한다는 부분에 확 꽂혔다. 관점과 가치관의 차원에서 이루어지는 행위. 삶에서의 많은 활동들도 마찬가지 아닌가. 그림을 그리거나, 뉴스 기사를 쓰거나, 음악을 만들거나, 글을 쓸 때에도. 불필요한 부분을 세심하게 깎아내야 하는 에까지 생각이 미치자, 한 문장이 담고 있는 깊은 사유에 전율이 일었다.

 

국제우주정거장에서 인간은 무중력 상태로 떠다닐 수 있다. 이때의 무중력은 ‘zero gravity’ 가 아니라 ‘gravity free’ 이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매우 크다. 없는 게 아니라 균형이 맞는 상황인 것이다.

수영장에서 자유롭게 유영하는 겉표지의 그림을 보면서 무중력 상태를 떠올린다. 힘이 없는 것이 아니라 줄 수 있는 힘을 뺌으로써 얻어지는 자유와 그 안에서의 삶을 생각한다.

내가 원하는 삶은 어떤 모습인가. 온전히 자유로운 삶을 살고 싶다. 무리하게 힘주지 않고 자연스러운 모습으로 때론 과감하게 새로운 무언가에 도전하며 나를 넓히고 싶다. ‘나는 아주 디테일한 것까지, 내가 원하는 대로 내 삶을 조직할 수 있다.(p207)’ 는 문장처럼, 상상하는 것만으로 가슴이 탁 트이는 내 삶의 주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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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린 새벽 다섯 시를 연탄불에 올리셨다

어두운 밤 한껏 품고 출렁이는 물을 담아

커다란 솥 한가득 데워 하얀 아침 건네주셨다

 

걸레 꽁꽁 얼던 방 안 코끝까지 덮은 이불

부스스 눈뜬 아침 모락모락 김나는 물

한 바가지 찬물과 섞어 따뜻하게 세수를 했다

 

뜨거운 물 나르시다 뜨거운 물 쏟아진 날

화들짝 부어올라 벌겋던 당신의 발등

당신 삶의 쓰라린 물기가 어린 기억에 내려앉아

녹지 않은 눈이 되어 가만가만 쌓인 걸까

 

시린 새벽 다섯 시에 하얀 아침 꺼내어본다

온수에 손 적시는 계절이 올 때마다

당신의 나날들을 종종 그러안는다

촉촉해진 눈으로 덴 듯한 심장으로

차가운 겨울 아침 뜨거움을 안는다

 

 

* 2017. 11. D 시 공모전(겨울에 어울리는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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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을 파는 상점 - 제1회 자음과모음 청소년문학상 수상작 자음과모음 청소년문학 15
김선영 지음 / 자음과모음 / 201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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흘러내리게 그릴 수도 있다니. 흘러내린다는 상상을 할 수도 있다니. 시계가 주르륵 흘러내리는 장면은 상상조차 해본 적이 없었다. 살바도르 달리의 <기억의 지속>은 그 어떤 작품을 보았을 때보다 강한 충격으로 다가왔다. 중학교 1학년 과학 <분자 운동과 상태 변화>단원에서 액체의 성질을 설명하면서 교과서 한 구석에 그려져 있던 그림이다. 그림을 제시한 이유는 흐를 수 있다는 단순한 사실을 보여주기 위함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졸다가 번쩍 눈을 뜬 순간처럼 얼떨떨한 기분이 오랜 여운으로 남았다. 일 분 일 초가 철저하게 지켜지는 크로노스의 시간은 한 예술가에 의해서도 깨뜨려질 수 있었다. 그것은 용기이며 고정 관념을 향한 과감한 도전이었다. 카이로스의 시간은 크로노스의 시간과 대비되는 개념이다. 달리의 상상력은 바로 이 카이로스의 시간을 담고 있었다.

 

카이로스의 시간이 가지는 의미를 가슴 찡하고 따뜻하게 그린 소설을 만났다. 소설 속 이야기를 따라가면서 <기억의 지속>을 떠올렸다. 그림 속으로 빨려들어가 시계 아래에 묘사된 눈을 감고 있는 인간이 된 듯했다. 여기저기 널브러진 시계 안에는 내 주변에 있는 사람들과의 시간이 담겨있었다. 그들과의 시간을 천천히 음미했다. 왜 이제야 이 소설을 만났을까 싶다가도 이제라도 만나서 얼마나 다행이냐며 배시시 웃었다. 바싹 마른 식물의 뿌리가 물기를 흠뻑 빨아들이듯이 작가가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내안으로 끌고 들어왔다.

추리 기법을 사용해서일까. 처음 얼마간은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을 떠올렸다.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에 등장하는 각각의 에피소드처럼 피카레스크식 구성으로 전개되리라 예측했다. 그런데 미묘하게 달랐다. 이 소설 속 이야기들은 모두 시간이라는 하나의 주제를 향했다. 옴니버스 식의 구성도 담겨있었다. 모든 이야기에는 시간이 배경 음악처럼 흘렀다. 그 속에서 전개되는 이야기들은 캐논 변주곡처럼 다양한 리듬을 타며 조금씩 변주되었다. 겹겹이 스며든 시간들은 마지막 장을 덮는 순간 우르르 끓어 넘쳐 시야를 뿌옇게 만들었다.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에서처럼 시간을 왔다 갔다 하는 판타지적인 요소가 없어도 이야기는 충분히 흥미로웠다. 요즘은 책을 읽다 며칠 간격을 두고 다시 펼쳐보면 읽었던 내용에 대한 기억이 가물가물해서 도돌이표를 찍곤 한다. 이 책은 그럴 필요가 없었다. 다음에 전개될 이야기가 도무지 상상이 안 되었다. 어느 부분에서 읽던 호흡을 멈추었는지 금세 기억이 났다. 주인공 온조가 어떻게 이야기를 풀어나갈까 궁금한 까닭에 이틀 만에 다 읽어버렸다.

따라잡느라 허둥대는 것보다 내 식대로 내 시간대로 사는 게 낫다는 생각이 들었어.(p59)’ 내 시간이라는 말. 얼마나 뭉클한 말인가. 시간이 내 것이라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다. 40대 후반으로 달려온 많은 시간동안 나는 자주 숨이 찼고 늘 헉헉대며 하루를 마무리했다. 올해가 되어서야 겨우 내 걸음으로 시간을 걸어가는 기분을 느낄 수 있었다. 출근하는 순간 퇴근하고 싶어지게 만드는 시간, 퇴근 후 따뜻한 아메리카노를 앞에 두고 책을 읽고 글을 쓰는 시간이다. 사람들은 나로부터 서로를 방해하지 않을 만큼 적당한 간격으로 앉아 듬성듬성 그들의 시간을 보내고 있다. 이어폰에서는 좋아하는 음악이 흘러나와 목도리처럼 뒤통수를 감싼다. 온전한 내 시간, 스스로에게 주는 뭉클한 행복이다.

기계 대신에 사람이 들어오고 사람이 가지고 있는 미덕들이 살아나. 시간이 나를 위해 움직인다고 해야 하나? 시간이 나를 지배하는 것이 아니라 내 뒤로 물러나 있는 듯한 느낌 같은 거야.(p65)’ 휴대폰도 연락처도 없는 강토 할아버지가 하신 말씀이다. 친정 엄마 생각이 났다. 엄마는 휴대폰이 없다. 괜히 구속받는 것 같다 시며 일부러 마련하지 않으신다. 여행이라도 다녀오실 때면 정작 당신은 태연하고 여유 있는데 주변에서 조바심을 낸다. 내가 가장 존경하는 인물, 채 여사의 시간은 분명 당신을 위해서 움직이는 듯하다.

나를 둘러싸고 있는 관계들이 과속방지턱처럼 불쑥 불쑥 튀어나왔다. 책을 읽다 잠시 덮고 그들과의 관계 속에서 흐르던 시간을 생각했다. 시간은 마냥 앞으로만 흐르는 것이라 생각했다. 한순간도 같은 강물이 흐르지 않듯이 흘러가면 그만이라고. 하지만 과거에 울컥했던 시간들은 그대로 떠내려가지 않았다. 마음이 약해질 때 번번이 되살아나 현재의 시간들을 아프게 했다. 어느 순간은 아무렇지 않다가도 다른 순간이 오면 바늘처럼 쿡쿡 나를 찔렀다. 그런 시간들이 다가오는 이유를 스스로를 향해 논리적으로 설명하기 어려웠다. 이 책을 읽고 나서 답을 찾았다. 이전보다 확장된 개념으로 시간을 바라보니 실타래처럼 얽혀있던 관계의 시간들을 내 방식대로 차분하게 정리할 수 있었다.

 

모든 관계는 일대일이다. 여러 명과 서로서로 알고 있는 관계라 해도 거미줄처럼 방사상의 구조를 가질지언정 정작 나와 연결된 각각의 선들은 한 줄씩이다. 나와 사람들 사이에 존재하는 다양한 시간들을 생각했다. 관계에는 각기 다른 시계가 존재하는 걸까. 달리의 그림에 등장하는 상황처럼 각각의 시계들은 과거의 어느 시점에 멈춰있거나 현재와 같은 속도로 바늘을 움직이는 시계도 있는 걸까. 상대와 다른 시간을 바라보며 관계를 맺고 있다면, 현재 내 위치로부터의 간극이 멀다면 쓰라리거나 아득한 마음이 들 터이다.

친정 엄마를 생각하면 종종 마음이 아리다. 정작 당신을 만나면 즐거움이 넘치는데 돌아오면 마음 한 구석이 먹먹하다. 당신을 바라보는 나의 시계는 가난하고 힘겨웠던 시절에 멈춰있는 걸까. 당신을 향한 생각의 출발점이 과거의 그 시각이라서 자주 마음이 아픈 것일지도 모르겠다.

큰 아이를 보아도 마음이 아프다. 그 아이를 바라보는 시계는 방황으로 인해 아이를 내팽개쳤던 20대 후반과 30대에 머물러있다. 그래서 더 많이 웃기려고 노력한다. 웃기는 능력은 근육과도 같다. 노력을 하면 업그레이드된다. 운동을 계속 할수록 복근이 생기듯이 응장군(큰 아이 애칭)을 향한 나의 운동은 계속될 것이다.

둘째 아이는 더 어린 모습에서 멈춰있다. 아이들이 6살 터울이니 아마도 비슷한 시기일 것이다. 마우스 반만 한 손가락을 꼬물거려 하늘을 가리키며 군늠, 군늠하던 모습에 눈물이 핑 돌던 마음이 생각난다. 얼마 전 내 키보다 더 자란 아이에게 이 이야기를 했다. “삐까(둘째 아이 애칭)만 보면 옛날에 군늠 군늠 하며 구름보고 좋아라 하던 생각이 나염.” 말하며 팔짱을 끼고 엉겨 붙으면 몸을 피하며 쉬크하게 말을 내뱉는다. “~ 지금도 군늠 군늠하면 정신 지체임.” 이런 무드라고는 찾아볼 수 없이 메마른 17세 청소년 같으니라고!

남편을 바라보는 나의 시계는 행복했던 20대에 멈춰있다. 그 온도차로 인해 가장 아득한 시간이다. 마음 가장 깊숙한 곳에 자리 잡은 무거운 시계. 이 시계가 조금씩 다시 움직일 언젠가가 온다면 그 시간들에 담긴 이야기를 꺼낼 수 있을까.

인간의 본능 중 행복한 행위를 함께 하고 싶은 욕구, 그게 바로 카이로스의 시간을 나누는 것이 아닐까? 그 시간이 하나의 의미로 남는 것.(p66~67)’ 극소수이기는 하지만 과거로부터 현재까지 내게 일어난 사건들을 공유하는 관계들이 있다. 몇 달 만에 연락해도 어제 전화하다 만 이야기를 이어가듯이 부담이 없는. 가끔 생각한다, 나는 인복이 많은 사람이라고. 그들과 즐겁게 밥을 먹는 시간들이 카이로스의 시간이겠지.

 

관계의 시계들은 제각기 움직인다. 나를 중심으로 서로 다른 시간들을 공유하며 흘러간다. 수많은 시계들이 머릿속에서 마그리트의 <골콩드>처럼 떠다닌다. 부유하는 존재는 어디로 흘러갈지 짐작하기 어렵다. ‘시간은 지금을 어디로 데려갈지 모른다. 분명한 것은 지금의 이 순간을 또 다른 어딘가로 안내해준다는 것이다. 스스로가 그 시간을 놓지 않는다면.(p219)’ 마지막 문장을 읽는 순간 이제껏 멈춰있던 모든 시계들이 째깍째깍 움직이는 듯 했다. 그 시간들을 놓치고 싶지 않다. 내 기억이 지속되는 한 그 시간들을 놓지 않으련다. 고요한 침묵 속에서 느리게 움직이는 시계들이 묵직하고 의미 있게 다가온 시간들이었다. ‘우리가 맞이하는 시간이 늘 처음인 것처럼.(p220)’ 내게 다가온 관계들이 물컹하고 따뜻하게 나를 어루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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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못 걸린 선생님 중학년을 위한 한뼘도서관 43
이은재 지음, 신민재 그림 / 주니어김영사 / 201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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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맨날 저만 가지고 그러세요?”

수업시간마다 눈에 거슬리는 녀석. 작년에 발표 잘한다고 칭찬해주었을 때는 그렇게 열심이더니만 올해는 속이 터진다. 엉뚱한 얘기를 픽픽 해대는가 하면, 방금 전까지 짝꿍과 얘기를 하다가도 지적을 하면 시치미를 뚝 뗀다. 여간 얄미운 게 아니다. 녀석이 속한 반을 들어갈 때면 미리 심호흡을 한다. 의식하지 말자 하면서도 강아지풀처럼 곤두서는 신경은 어쩔 수 없다.

 

우연히 펼쳐본 책장에서 네잎클로버를 발견한 기분이랄까. 한동안 고민거리이던 문제의 답을 동화에서 찾게 될 줄은 몰랐다. 잘못 뽑은 반장시리즈를 재미있게 읽었던 기억이 있어 어린이 독서모임의 토론도서로 선정한 책이었다. 최근에 접한 어떤 책을 읽을 때보다도 많은 생각을 했고, 교사로서의 나를 돌아보는 시간을 가졌다.

조손 가정에서 자란 말썽쟁이 5학년 장우와 다이아몬드처럼 완벽하다고 자부하는 신규 교사 고결 선생님과의 갈등과 화해의 과정을 유쾌하면서도 찡하게 다룬 동화이다. 흔히 문제아라 불리는 아이가 등장하면 아이를 거의 헌신적으로 이끌어가는 교사가 등장하기 마련이다. 작가의 이야기 전개는 이 부분에서 일반적인 예상을 뛰어넘는다. 툭하면 일등, 최고 타령을 하는 교사는 반 평균을 깎아먹는 학생의 자리를 따로 마련하는가 하면, ‘최고가 되자는 급훈을 걸고 아이들을 경쟁의 도구로 생각한다. 학생보다 문제가 많은 교사이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등장하는 옆 반의 나이 지긋한 강 선생님의 교육 방법은 참된 스승이란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가를 생각하게 한다.

고결 선생님은 시골 학교를 홍보하는 동영상을 제작하는 과정에서 몇몇 뛰어난 아이들만 뽑아 가식적인 장면을 연출한다. ‘1반 애들은 좋겠다. 전부 다 주인공이라서.(p164)’ 반 전체가 참여하는 동영상을 제작한 옆 반을 부러워하는 아이들의 모습에서 잠시 멈칫한다. 공개수업을 좀 더 잘해내고 싶어 일부러 잘하는 학생들에게만 발언의 기회를 주었던 적이 있다. 고결 선생님을 통해 극단적으로 드러나지만 그 안에 내 모습이 전혀 없다고는 자신할 수 없다.

무덥고 짜증나던 6, 수업을 하러가다 문득 우울했다. 아이들을 더 이상 사랑하지 않는 것 같다는 생각에 그만 두고 글만 쓰고 싶었다. 아이들을 사랑하고 따뜻하게 품을 줄 모르는 사람은 우리 사회 어디에서도 필요하지 않을 거라고.(p207)’ 교사를 그만 두고 법을 공부하려는 고결 선생님에게 강 선생님이 하신 말씀이다. 가슴이 뜨끔했다. 아이들을 품지 못하는 마음으로 무슨 글을 제대로 쓸 수 있느냐며 동화 속 선생님이 갑자기 튀어나와 나를 꾸짖는 것만 같아서.

그런대로 괜찮은 선생님이라고 생각해왔다. 나는 정말 괜찮은 교사였던 걸까. 교과서 지식을 잘 가르치고 말 잘 듣는 아이들에게는 좋은 교사였을지 모른다. ‘참된 스승은 아이들에게 빨리 가라고 채찍질하는 사람이 아니라 앞에 놓인 길을 잘 달려갈 수 있도록 옆에서 함께 뛰어 주는 사람이라고 하시더구나.(p207~208)’ 이 문장 앞에서 한동안 숙연해진다. 맨날 저만 가지고 그러시느냐 하던 그 녀석에게도 나는 참된 스승이었을까. 한 번이라도 옆에서 함께 뛰어 준 적이 있던가. 답변이 궁색해진다. 곰곰 생각해보니 유독 녀석에게 신경이 곤두서서 딴 아이들이었다면 그냥 넘겼을 일도, 녀석 말대로 저만 갖고 그랬던 적도 있던 것 같다.

 

잘못 끼운 단추는 더 늦기 전에 풀어서 처음부터 다시 끼우면 되잖아.(p208)’ 갈등이 풀리면서 고결 선생님이 장우에게 한 말이다. 녀석이 떠오른다. 꾸벅꾸벅 졸지도 않고 무관심한 모습을 보인 적도 없었지. 내 수업으로부터 한 걸음 더 나아갔을 뿐 녀석이 한 말이 아예 관련이 없지는 않았다. 선생님과 제자 사이에는 마음을 여는 용기가 필요해요.(p6)’ 작가의 말에 작은 용기를 얻는다. 함께 뛰어 주고 싶다. 녀석과의 관계에 탄성이 생겨 또 다시 투탁거릴 수도 있겠지만, 이제는 그런 모습조차 사랑스럽게 보일 것만 같다. 갑자기 지긋지긋했던 그 녀석이 보고 싶다. 동화가 무슨 마법을 부린 걸까.

 

 

* 2017. 8. H독서 공모, 금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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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의 곁 - 오늘이 외롭고 불안한 내 마음이 기댈 곳
김선현 지음 / 예담 / 201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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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한해 당신이 사랑한 작가는 서민입니다.” 허걱! 몰래한 사랑이었건만 이렇게 발각되다니! 알라딘 추천 마법사 앞에서 나의 취향은 숨길 수 없는 기침이었다. 한국소설, 초등 5~6학년, 교양 인문학, 에세이, 책읽기/글쓰기, 사회문제, . 나도 인지하지 못한 관심 분야를 정확히 짚어낸다. 나는 구매 이력을 통해 끊임없이 분석되는 대상이었다.

 

모든 예술 작품은 작가가 표현하는 이야기이다. 문학, 음악, 연극뿐 아니라 미술에도 저마다 길고 짧은 이야기가 있다. 유쾌하거나 슬프거나 설레거나 마음이 깊고 넓어지거나. 특히 미술작품을 감상하다 보면 각기 다른 장르의 단편소설을 읽는 기분이 든다.

다양한 화풍과 개성 있는 색깔이 스펙트럼처럼 펼쳐졌다. 78점의 그림이 사랑, 관계, 라는 주제로 나뉘어 소개된 책이다. 저자의 짤막한 글도 함께 곁들여있다. 그림 사이를 산책하며 그 길에 얽힌 이야기를 들었다. 이야기를 통해 나를 바라보며 이전까지 모르던 새로운 면을 발견했다. 한참을 머물며 단상에 잠기거나, 빙그레 미소를 짓거나, 동영상을 보는 듯 역동성을 느끼기도 했고, 먹먹한 마음으로 잠시 멈추거나, 색깔이 아름다워 빨려들 듯 집중했다. 그림이 건네주는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다.

그림에 관한 책이어서 일까. 저자의 글이 적힌 바탕 면과 글씨의 색도 주제에 어울리게 고심한 것으로 보인다. 1장은 사랑의 설렘을 연상시키는 분홍이, 2장은 원만하고 편안한 관계가 생각나는 초록이, 3장은 따뜻함과 차가움을 상징하는 빨강과 파랑이 조화롭게 섞인 보라가 나를 만들어간다는 이미지와 잘 부합되었다.

몇몇 그림들을 바라보는 방식이 저자와 다르다는 것을 인지하면서 내가 지닌 두 가지 성향을 깨달았다.

 

시작은 사소했다. <무자비한 미녀>(p12)에 대한 저자의 해석이 살짝 겉돈다는 느낌을 받고부터였다. 여자의 발아래 누워있는 기사의 얼굴 위에 드리워진 거미줄에 시선이 갔다. 기사는 죽었을 것으로 짐작되는데, 여자는 오히려 화려한 드레스를 입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 그래서 제목에 무자비하다는 표현을 쓴 걸까.

<은물고기>(p46)에서는 그림 상단에 표현된 은물고기와 물의 요정을 칭칭 옭아맨 머리카락 같은 대상에 대한 언급이 없다. 소위 제목인데 하며 아쉬워했다.

<샤프롱>(p72)에서 저자는 권태기를 말한다. 내 눈에는 두 남녀와 다른 곳을 바라보며 이들을 기다리고 지켜주는 듯한 신사가 더 들어왔다. 신사를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되었더라면 어떠했을까?

<알프레드 시슬리와 그의 아내>(p82)에서는 이미 아내인데 프로포즈를? 하며 고개를 갸우뚱한다.

<목욕 전에>(p126)에서 어머니로 보이는 여인은 일하고 있었다기보다는 딸을 목욕시키려고 준비 중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p150)에서 저자가 잔잔한 호수로 표현한 물은 아무리 봐도 늪이다.

<스냅 더 휩>(p172~173)은 저자의 말대로 아이들끼리 충분한 상의가 이루어지지 않은 장면이 아니라 놀고 있다는 느낌이 더 강했다. ‘스냅 더 휩이라는 옛날 놀이가 있다고 한다.

나는 의외로 제목에 큰 의미를 부여하며 집착하는 인간이었다.

 

<너무 이른>(p110)에서 저자는 대부분의 시선이 분홍드레스를 입은 여인에게 향하고 있다고 말한다. 내 생각은 다르다. 사람들의 눈동자 방향을 보면 부채를 든 여인 한 명 정도만 분홍드레스의 여인을 바라보고, 대부분은 시선의 끝이 제각각이다. 파티 시작 전에 볼 수 있는 풍경인 듯하다. 또한 몰래 파티 장 내부를 쳐다보는 두 사람의 위치에서는 중앙의 분홍 여인을 볼 만한 각도가 안 나온다고 판단된다.

<부엌에 있는 여인>(p142)은 소녀가 아닌 중년의 여인으로 추정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원제가 Women이 아닌 Girl인 것은 여인의 마음속에 있는 소녀 같은 감성을 반영하고자 하는 화가의 의도가 아닐까. 주방 창문으로 들어오는 햇살을 가리는 천이 여인의 검은 옷과 대비되어 현실을 두드러지게 한다.

<실타래 감기>(p176)에서는 실이 왼쪽 여인을 감싸고 있지 않다. 원래 끈이 옷에 달려있는 것으로 보인다. 끈의 색깔이 실보다 좀 더 짙다. 옷의 끈과 실타래의 실은 자세히 보면 어긋나있다.

<작은 도둑들>(p196)에서 저자가 엄마로 언급하는 인물은 빨간 모자를 거꾸로 눌러쓰고 있다. 물론 엄마도 젊게 살 수는 있지만, 전체적인 상황을 종합해보았을 때 언니가 담장 위로 가벼운 동생을 올려 사과 몇 개를 따고 이제 철수하려는 장면으로 보인다.

하나하나 나열하다 보니 그림을 감상하는 것이 아니라 관찰하고 분석하는 내가 보인다. 탐구활동을 하던 사고방식이 그림을 볼 때에도 적용이 되었던 걸까. 나는 그림에까지 수학적인 각도와 과학적인 관찰의 디테일을 적용하는 집요한 인간이었다.

 

눈에 들어오는 그림들을 골라본다. <밀짚모자>(p28), <>(p150), <첼리스트>(p158), <스케치- 두 명의 인도 무희>(p226), <장갑을 낀 젊은 여인>(p240)이 마음에 들었다.

메모를 해놓은 다음 빠른 속도로 주르륵 다시 한 번 넘겨본다. 공통된 특징이 보인다. 마음에 든 그림을 이루는 주된 색상이 초록, 노랑, 빨강인 거다. 졸지에 신호등을 좋아하는 인간이 되어버렸다. <>에서 구스타프 클림트의 몽환적인 초록과 <장갑을 낀 젊은 여인>에서 타마라 렘피카의 정돈된 초록이 좋다. <첼리스트>에서는 악기와 첼리스트의 옷과 배경이 파스텔 톤으로 채색되어 깊이감이 느껴진다. <스케치-두 명의 인도 무희>는 무희들이 입고 있는 옷 색깔이 마음에 든다.

가장 마음에 드는 그림은 <밀짚모자> 이다. 선명하게 붉은 입술을 제외하고는 빈티지 신호등을 보는 듯 짙은 초록, 노르스름한 모자, 불그스름한 꽃잎의 조화가 좋다. 여인이 입고 있는 하얀 옷은 화이트초코가 대패삼겹살처럼 얹힌 케이크를 연상시킨다. 꽈배기 도넛이 생각나는 머리카락의 컬도 좋다. 전체적으로는 그림 속 여인이 매끈한 대리석으로 만든 조각상처럼 느껴져 미켈란젤로의 <피에타><다비드>상이 떠오른다.

타마라 렘피카의 그림이 두 점이나 마음에 드는 걸 보면 내가 이런 분위기를 좋아하는 인간인가 보다. 아니면 요즘 이런 색상에 끌리는 시기일 수도 있겠다. 카카오스토리에서 색깔로 알아보는 현재의 심리 상태를 테스트해 본 적이 있다. 그 때 그 때의 마음에 따라 유난히 눈에 들어오는 색깔이 다르다는 것이다. 요즘 나의 마음은 어떤 상태일까.

 

일반적인 책과는 달리 차례에 나열된 소제목들이 길다. 차례를 천천히 읽는 것만으로 생각할 거리가 많다. 표지에는 오늘이 외롭고 불안한 내 마음이 기댈 곳이라는 글귀가 있다. 차렵이불 정도의 가뿐함을 지닌 본문의 글들은 따스하고 부담이 없었으나 기대했던 무게감보다 다소 가벼운 감이 있었다. 중력이 지구의 1/6인 달에 가면 이런 기분일까. 곁에 있는 저자의 글이 내 정서의 코드와 맞지 않는다는 느낌이 들었다. 크게 감동을 느끼거나 쉽게 몰입할 수 없었다. 이보다 더 짙은 내용의 글을 좋아한다는 사실을 알았다. 뒤늦게 깨닫게 된 나의 두 가지 성향도 크게 작용했을 것이다.

휴식이란 하지 않으면 안된다가 사라져버린 상태다. 휴식이란 다름 아닌 행위의 부재를 의미한다.(오쇼 라즈니쉬, p207)’ 가장 인상 깊었던 문장이다. 이 문장을 천천히 음미해본다. 그림을 감상하면서도 편안하게 휴식을 취한다는 기분을 느끼지 못했던 것은 끊임없이 작품을 분석하려 들었기 때문이었을까. 때로는 느슨해질 필요도 있는데.

 

표지의 그림을 한참 바라본다. 오디션 프로그램에 자주 등장하는 말처럼 그림에 대한 해석은 취향의 차이로 받아들여야함을 깨닫는다. 곰곰 생각해보면 관점의 차이는 제각기 다른 사람들 사이에서 당연한 일일 터이다. 표지에 나있는 창문을 통해 <봄의 연인>(p217)에 등장하는 두 연인을 집중적으로 보는 사람도 있겠고, 바닥의 연두 빛과 활짝 흐드러진 벚꽃을 주로 보는 나 같은 사람도 있을 것이다. ‘맞다, 틀리다의 문제가 아니라 같다, 다르다의 문제인 거다. 저자의 해석이 틀렸던 것이 아니라 나와 관점이 맞지 않았던 것이다. 어쩌면 다른 날 다른 시각에 저자의 글을 읽는다면 지금과는 다른 느낌을 받을 지도 모르겠다.

그림은 내 취향을 알려준 작은 데이터였다. 그림 안에 내가 있었다. 그림을 통해 나를 바라보았다. 그림은 색깔이 있는 거울이었다.

 

 

*오타: p174의 그림 제목 Wihp Whi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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