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 위 아득한 밤 반짝이는 돛단섬

부드러운 햇살 품고 고이고이 접혀서

짙푸른 바람결 타고 출렁출렁 떠가네

 

내 안의 깊은 바다 오도카니 섬 하나

시린 눈물 머금고 점점 더 가라앉다

따스한 돛단섬 좇아 서서히 떠오르네

 

섬과 섬이 만나면 육지로 이어질까

당신과 나의 섬도 언젠가는 저렇게

조금씩 가까워지길 한발씩 디뎌보네

 

 

*2019. 9. 28. H 시조 백일장, 참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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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켄슈타인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94
메리 셸리 지음, 김선형 옮김 / 문학동네 / 201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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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이 공포인가. 다리 한 짝쯤은 질질 끄며 미역 줄기인 양 늘어진 머리털에서 케첩 방울 뚝뚝 떨어뜨려 주거나 나사못 서너 개 머리에 박고 튀어나올 것 같은 눈깔을 희번덕거리는 미니 식빵 두상을 보유한 괴물이 비, 바람, 번개 3종 풀세트로 장착한 오밤중에 펄럭이는 커튼에서 갑툭튀 정도는 해줘야 으헉! 등골이 오싹하리라.

풍문으로 수없이 들어 읽기도 전에 벌써 읽어버린 느낌을 주는 <프랑켄슈타인>. 공포영화는 아예 보지 않고 TV에서 비스무레한 장면이라도 등장할라치면 배경음악의 인트로 단계에서부터 어김없이 두 손으로 덮이던 얼굴. 뒤표지를 보니 작가의 의도가 적혀있다. ‘우리 본성의 알 수 없는 두려움을 일깨워 소름 돋게 만드는 이야기, 읽는 이가 겁에 질려 주위를 두리번거리고, 피가 얼어붙고 심장 박동이 빨라지는 그런 이야기를 쓰고 싶었다.’ 책장을 펼치기 전에 나란 인간은 마음의 준비부터 해야 했다.

후아~ 후아~ 심호흡 몇 번, 먼 산 몇 번 바라보다 겉장을 넘겼다. ! 이제 드루와~! 다행히 배경 그림은 없어. 꿈에 나올만한 선명함은 없다는 거지. 어여 드루와~ 라며 껄껄거리고 싶... 호루라기를 불기도 전에 심장이 부정 출발을 해 버렸나. 첫 장을 넘기기도 전에 갯벌의 맛 조개 구멍처럼 쏙 들어가 저 혼자 펄떡거리는 마음이라니!

 

하도 널리고 널려서 오히려 구미호보다 이미지가 친숙한 괴물. 섬뜩함을 스멀스멀 풍기며 책 속을 낱장 낱장을 휘젓고 싸돌아다니는 내용인 줄로만 알았더랬다. 편견이란 얼마나 두터운 안대인가. ‘같은 사건이라도 경험의 주체에 따라 전혀 다른 체험이 가능하다는 사실을 깨닫고, 따라서 모든 이야기에는 이면이 있음도 날카롭게 의식하고 있었다.(p310, 해설)’ 무서우니즘을 체험하는 줄 잔뜩 쫄며 들어갔다가 깊이 있는 뭉클함을 안고 나오다니. 허를 찔린 나는 마지막 책장을 덮고 한동안 멍했다.

소름이 돋기는 했다. 이 모든 걸 열아홉 살에 생각했다는 작가의 천재성이 확 다가와서. 그 나이에 나는 뭐했다냐. 쩜쩜쩜. 하다못해 지금의 나이에도 도달하지 못한 경지를 올려다보며 비루한 나의 글을 내려다보며 점점 쪼그라드는 자신을 붙들었다.

또 소름이 돋았다. 이제껏 프랑켄슈타인이 괴물 이름인 줄 알았던 나의 무식함에. 프랑켄슈타인이 멀쩡한 인간으로 나와서 이상하다 이상하다 했다. 뭐 과학실에서 생명체를 창조했다는 것 자체가 엄청 멀쩡하다 볼 수는 없지만. 소설의 내용을 전혀 몰랐으므로 이 인간이 나중에 윗옷 좀 가닥가닥 나풀거리면서 근육질 오빠로 변하는 줄 알았던 거다. 짐작하신 대로다. 잠시 헐크랑 헷갈렸다. 가만있자, 지킬박사와 하이드씨였나. 흐아! 더 이상의 무식은 이제 그만!

 

내가 꼽는 이 책의 매력은 크게 네 가지이다.

첫째, 놀라운 흡인력이다. 시소처럼 번갈아 솟아오르며 감정과 행위의 당위성을 어필했던 두 캐릭터, 프랑켄슈타인과 괴물. 이 둘의 결말은 과연 어떻게 될까. 끝까지 가늠할 수 없어 빨려들 듯 이야기에 집중했다. 감탄할수록 책장을 넘기는 속도는 점점 빨라졌다.

둘째, 섬세한 심리묘사이다. 이야기의 힘도 대단했지만 내내 뭉클했던 건 이름조차 없어 괴물 혹은 악마로 지칭된 캐릭터의 감정선 이었다. 그러데이션 되는 노을빛처럼 이토록 섬세한 심리 변화를 영상으로 구현하기는 어려웠으리라. 그래, 글의 힘이란 이런 거지. 문장을 통해 서서히 전달되는 마음에 동화된 나는 점점 설득되고 있었다. 점진적인 괴물의 변화에 마음이 아팠다. ‘사랑을 불러일으킬 수 없다면 공포의 근원이 될 테다.(p194)’ 이런 말을 꺼내기까지의 과정이 점층적으로 묘사되었기에 무모한 살인이 아니라는 생각이 드는 거다. 정당방위가 아니고서야 수긍이 가는 살인이란 있을 수 없지만 그의 입장에서는 그럴 수도 있겠다 싶었다.

셋째, 공간적 배경을 묘사하는 문장들이다. 작가는 따뜻한 가족에 대한 로망을 품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 책에 등장하는 가족은 크게 두 그룹이다. 그들로부터 말과 글과 인간세계를 배우며 괴물이 속하고 싶어 했던 가족과 프랑켄슈타인이 속해있던 가족이다. 구성원들은 모두 서로를 의지하고 위로해주며 온기를 나눈다. 아버지와의 친밀한 관계를 질시했던 계모로 인해 교육도 제대로 받지 못했으며 17세에 유부남과의 도피를 감행한 작가. 생후 11일 만에 사망한 첫 딸, 동복언니와 남편의 전처의 자살. 19세의 감성으로 감당하기에는 버거운 일들이었으리라. 그런 그녀에게 위안을 준 대상 중 하나는 바로 자연의 풍광이 아니었을까. ‘외경심을 불러일으키고 품위로 가득한 자연의 풍경은 언제나 마음을 경건하게 하고 삶의 덧없는 근심들을 잊게 하는 힘이 있었다.(p128)’ 알프스와 북극의 빙하와 주변 풍경들이 그림처럼 그려진다. 그녀가 묘사하는 풍경들은 BGM처럼 작품에 깔리면서 설원의 냉기가 흐르도록 한다. 작품 속에 등장한 장소들을 성지순례 하듯 가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아름답게 표현된다. 이에 대비되는 소설 속 캐릭터는 더욱 선명하게 부각된다.

넷째, 작가의 관점이다. 새로운 생명을 탄생시키는 과학자를 말하면서 작가는 농부의 삶을 언급한다. ‘인간을 먹여 살리기 위해 땅을 일구는 일이 인간의 죄악을 목도하고 가끔은 공범자가 되는 일보다는 훨씬 훌륭한 일이잖아. 그래서 부농의 삶이 명예는 차치하더라도, 인간의 어두운 본성을 계속 상대해야 하는 판사보다 행복한 직업이라고(p82)’ 농부라는 직업은 직업이라는 명칭을 붙이는 것조차 조심스러울 정도로 숭고한 영역의 일이라 생각한다. 없던 생명을 탄생시키는 일이니. 농사를 짓는 일은 한 사람의 힘으로는 이루어지지 않는다. 농부는 이를 무엇보다 잘 아는 사람이다. 햇살과 바람과 대지와 비와 나비와 벌과 미생물 등의 힘이 합쳐진 결과물이라는 것을, 해서 무엇보다 겸손한 마음으로 자연을 마주하는 존재, 바로 농부이다.

 

가끔 이런 상상을 한다. 사람의 영혼이 겉모습처럼 형상화된다면 어떨까. 거리에서 마주 다가오는 낯선 이들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그 영혼의 모습을 머릿속으로 스케치해볼 때가 있다. 나는 어떤 모습으로 그려질까. 보이는 모습만큼의 아름다움을 드러낼 수 있을까. 실제로 나의 미모를 드러낼 일은 없으니 마음껏 멘트를 투척한다. ! 우리 가족이나 내 얼굴을 아는 인간들만 이 글을 안 보면 된다. 보안 유지는 문제없다. 내 주변인들은 나의 공간에 별관심이 없으니. 나는 잠시 미모의 인간으로 거듭난다. 후후.

보이는 것으로 사람을 판단하면 안 돼! 말은 번드르르 하다. 걸어가다 훈훈한 인간이 말이라도 걸어올라치면 첫 마디를 꺼내기도 전에 입 꼬리가 올라가는 세속적인 인간이 당당하게 꺼낼 말은 아니지만. . 몰랑해지는 마음은 재채기처럼 당최 감출 길이 없다. 취향을 저격하는 남주인공이 등장한다는 이유 하나로 그지 같이 후진 드라마를 얼마나 숱하게 섭렵했던가. 이 책을 보며 반성한다. 겉모습만으로 괴물을 판단하고 그의 선의를 팽개치는 인간들을 보며 시각적인 요소가 대상을 성급하게 재단하는 잣대임을 새삼 깨닫는다. 괴물로 하여금 고민 끝에 한 걸음 다가가도록 용기를 준 최초의 존재가 눈이 먼 아버지라는 점은 이런 점에서 시사점이 크다. 껍데기는 가라!

 

과학자로서의 책무와 인간의 본성을 생각한다. ‘새로운 종이 생겨나 조물주이자 존재의 근원인 나를 축복하리라.(p66)’ 세상에 없던 무언가를 창조한다는 것은 얼마나 흥분되는 일인가. 학문을 연구하는 입장에서는 희열이 느껴지는 일일 터이다. 더군다나 그 대상이 생명을 지닌 존재라면 절대 신의 위치에 선 듯 우쭐했을 것이다.

영화 <쥐라기 공원>이 떠오른다. 알에서 깨어난 공룡이 맨 처음 인간을 보게 함으로써 인간에게 해를 끼질 수 없도록 한다. 또한 한 가지 성만 지닌 공룡을 탄생시키면서 생명체의 본성을 관장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결국 과학은 본성을 뛰어넘을 수 없다. 멸종으로 치 닫을 만한 극한 상황에서 일부 공룡이 성전환을 한다. 자체적으로 번식할 수 있는 통로를 찾아낸 것이다. 두 작품 속 모두 인간의 오만이 겹쳐진다.

복제인간에 대하여 수업 시간에 언급한 적이 있다. “과학기술적으로는 충분히 가능할 거다. 하지만 생명에 관한한 이건 신중하게 접근해야 할 문제다. 나사나 타이어 같은 부속품을 교체하는 개념이라면 긍정적으로 해석할 수도 있지. 병에 걸린 이들의 입장을 고려하면 대환영할 일 일거다. 하지만 쌤은 완전체로서의 정체성이 존재하는 영역은 건드리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못하는 게 아니라 안해야한다고.”

프랑켄슈타인이 자신의 행위를 돌아보며 고백하듯 하는 말은 의미심장하다. ‘열정적인 광기로 이성을 잃은 상태에서 나는 이성적인 존재를 창조했으니, 내 능력이 닿는 한 행복과 복지를 보장했어야 합니다.(p294)’

 

<스무살, 반야심경에 미치다>의 잔상이 남아서일까. 이어서 읽은 이 책 곳곳에서 동양의 연기설과 무소유의 개념을 발견하며 새삼 놀란다.

훗날 내 운명을 좌우하게 되는 그 격정의 탄생을 스스로에게 설명하다보면, 그것이 마치 산을 따라 흐르는 냇물처럼 미미하고 거의 잊힌 원천에서 솟아나는 걸 알게 된다.(p46)’ 이 문장을 본 순간 연기설이 떠올랐다. 단절적으로 존재하는 것은 없으며 반드시 원인이 있고 원인이 달라지면 결과가 변하고 저절로 일어나는 것은 없다는 개념 말이다.

작가의 남편이 쓴 시 안에는 <반야심경>의 무(無)의 개념도 등장한다. ‘인간의 어제는 결코 내일과 같지 않으리니, 변하지 않고 남는 것은 무상뿐!(p129, 퍼시 비시 셸리)’

싸늘할 때 몸을 따뜻하게 덥혀줄 불도 있고, 배가 고플 때 먹을 맛있는 음식도 있는데. 훌륭한 옷을 입고 있고, 서로 함께하고 이야기를 나누고, 날마다 애정과 친절로 가득한 표정을 서로 나누지 않는가. 그들의 눈물은 무슨 뜻일까? 정말로 고통을 표현하는 걸까?(p147)’ 최소한의 것을 소유하는 것으로 만족하는 무소유의 개념이다. 이런 관점으로 인간 세상을 바라보았던 괴물의 순수를 어떻게 생김새만으로 괴물로 바라본단 말인가.

 

선과 악이란 어쩌면 동전의 양면과 같은 속성을 지닌 것인지도 모른다. ‘타락한 천사가 사악한 악마가 되는 법이다.(p300)’ 괴물의 존재로 공포를 유발하려는 의도였다면 작가의 화살은 적어도 내게는 빗나갔다. 괴물과 인간의 심리전을 지켜보면서 인간의 본성에 더욱 소름이 끼쳤다.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인간이란 존재의 실체는 백지 상태의 괴물과 대비되며 도드라졌다. 이 책을 읽다보면 과연 어떠한 존재를 괴물로 지칭해야 할까 기준이 모호해진다. ‘! 어째서 인간은 짐승보다 훨씬 우월한 감수성을 가졌다고 자랑하는 것일까? (중략) 하지만 우리는 바람 한줄기, 우연한 한마디, 아니면 그 말로 전달되는 풍경 하나하나에 흔들리지 않는가.(p129)’ 무엇이 공포인가. 누가 괴물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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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감 2019-09-28 22: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무서운 걸 안좋아하시는 줄도 모르고 제 맘대로 선정했네요. 다행히 공포스런 내용은 아니었지만요. 나비종님도 작가의 천재성을 주목하셨군요. 천재 작가들이 세상에 수두록한데 왜 메리 셸리는 유독 특별한 느낌을 주는 걸까요. 단지 19세에 이 책을 써냈기 때문만은 아닌데 말이죠 ㅎㅎ

집어주신 네 가지의 매력에서 1~2번은 저도 너무 공감했고, 3~4번은 미처 생각지 못한 부분이라 몇가지 코멘트를 답니다. 말 그대로 두 가정이 나오는데 둘다 말로는 좋지 않았죠. 그것이 작가의 평탄치 않았던 가정사가 반영된 거라 볼 수 있겠군요. 그런 작가에게 위로가 되준건 자연의 풍광이라 하셨는데요, 제가 계속 눈에 밟히던 것이 바로 이거였습니다. 스토리나 메시지와 관련도 없는 자연 풍광의 설명이 왜 이리 자주 나오는 것인가. 이것때문에 별5개에서 1개 깎았더랬죠. 근데 제가 캐치못한 부분을 설명해주시니 작가의 의도가 납득이 갑니다. 또한 과학자와 농부의 이야기도 생각을 못했어요. 알아주지 않는 농부의 위대함은 과학자의 위대함과 같다는 메시지도 이제서야 신선하게 와닿습니다.

그리고 역시, 겉만 보고 판단하는 실수에 대해서도 언급하셨네요. 저도 그 점에 대해 생각이 많았습니다. 정치인들이 자주 써먹는 프레임 씌우기가 생각나네요. 흡연자들은 이렇다, 페미니스트는 저렇다 등등 전체를 싸잡아 결론내려버리니 해당 안되는 사람들은 억울할 뿐이죠. 괴물도 그랬을 거 같아요. 괴물이 처음 사람들에게 다가갔을때 먼저 비명지른 사람을 따라 옆사람들도 겁먹고 줄행랑쳤겠지만, 정작 괴물은 아무런 액션도 하지 않았는데 말이죠. 이처럼 선입견이란게 건강치 못한 사회를 만드는 것 같아 안타깝더라구요. 개인적으로도 반성되고요^^;

쥐라기 공원을 이 책과 접목하시다니, 대단하십니다ㅋㅋ 인간의 오만함으로 파멸에 이른 여러 작품에서, 과학이 넘볼 수 없는 영역을 건드려 재앙을 초래했다는 공통점이 아주 딱이네요! 인간은 인간을 낳고, 괴물은 괴물을 낳는다는 생각을 해본다면, 괴물을 만든 인간 또한 괴물이라 불릴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이미 우리는 인간의 추악함을 알만큼 아니깐요. 오늘도 내안의 헐크를 깨우지 않기 위해 여러가지의 마음 수련을 하며 삽니다 ㅎㅎㅎ

9월 한 달도 수고 많으셨어요. 다음 책도 좋은 리뷰 부탁드립니다 ^^

나비종 2019-09-29 00:54   좋아요 1 | URL
이것은 댓글인가 리뷰인가 댓글의 탈을 쓴 리뷰인가! 서로의 공간에 거의 리뷰 수준의 댓글을 쓰고 있군요.ㅋㅋ

무서운 걸 안좋아한다기보다 무서운 게 무서울 뿐입니다.^^; 또, 점점 크면서 귀신보다 사람이 무서워지게 되네요.
메리 셸리가 천재라 느껴지는 이유는 그 나이의 감성 이상의 깊이를 보여주기 때문이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IQ의 수치를 계산하는 식 중에 나이가 포함된다고 들었어요. 평균의 나이대보다 뭔가를 더 많이 할 수 있을 때 천재라는 말을 붙이잖아요. 미적분을 한다는 사실보다 미적분을 10세에 한다면 감탄을 하는 것처럼 말이죠.

이 책 맨 뒷부분에 나오는 메리 셸리 연보를 보면 <프랑켄슈타인>을 쓰기 시작한 이듬해에 호수와 빙하와 유럽 나라들을 여행한 기록이 출간되었다고 기록되어 있거든요. <프랑켄슈타인>은 그 다음 해에 출간되었구요. 빙하나 풍경에 대한 여행 기억이 생생해서 그것이 이 책에 유달리 많이 반영되었을 수도 있겠다 싶었거든요.
생명의 탄생은 그게 뭐든 생각할수록 너무 경이로운 현상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이런 생각을 하며 농부를 바라보면 존경하는 마음이 생긴답니다.

맞아요! 겉모습이 심리에 미치는 영향은 생각보다 더욱 크더군요. 오해와 편견의 주범입니다. 사람을 볼 때마다 드러난 것이 전부가 아니라며 내면을 받아들이려 하지만 이게 생각보다 쉽지 않더라구요.^^;

이 책에서 생물학적인 특성을 기준으로 인간과 괴물을 구분하여 지칭한다면, 독자들은 내면의 특성을 종합하여 인간인지 괴물인지 판단해야 할 것 같습니다. 작가가 의도한 점들 중 하나라는 생각이 드네요.

마음 수련ㅎㅎ 책읽고 글쓰고 토론하는 과정이야말로 매우 좋은 방법이겠죠? 다음 책을 향해서 또 부지런히 걸어가야겠습니다.^^
 
스무살, 반야심경에 미치다
김용옥 지음 / 통나무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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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탕이었던 것 같다. 무슨 뜻인지도 모르면서 <반야심경>의 무려 260개의 글자를 외우도록 끌어당기던 막강한 힘은. 아이에게 사탕은 돌멩이계의 다이아몬드다. 초등학교 고학년 즈음이었나. 몇 살 때인지 기억은 가물가물 하지만 워낙 달달 외웠던 탓에 아직도 익숙한 유행가 후렴구처럼 툭 치면 '고득아뇩다라~'가 바로 튀어나올 정도이다. 어머니께서 공양주로 일하시던 동네 절에서는 주말마다 어린이 법회를 열었다. 언니, 동생들과 법당에 들어가 절을 하고 밥을 먹고 스님의 말씀도 종종 들었던 기억이 난다. 딱히 작정하고 불교를 믿은 것은 아니었다. 어머니가 계신 거기, 절이 있었고 학교 가듯 친숙한 장소였던 까닭이다.

코를 막고 양파를 먹으면 달짝지근하고 사각거리는 그것이 양파인지 사과인지 구분하기 어렵다. 우리는 냄새와 함께 맛을 판단하기 때문이다. 코를 틀어쥔 손을 떼어내는 순간 매콤한 냄새가 훅 스치며 이런! !!” 임을 깨닫는다. 반가웠다. 이제 양파 맛이 나는 양파가 양파임을 알게 될 거라서. 단지 글자의 배열에 지나지 않던 글귀의 뜻을 알려줄 책이라는 생각에 기대가 되었다. 단순한 몸짓에 지나지 않던 그의 이름을 불러 꽃으로 피어나기 직전의 두근거림이랄까.

 

후아! 그래서 대체 반야바라밀다심경이 무슨 뜻이냐고요! 제목까지 가는 길은 멀고도 광활했다. 불교의 4법인, 연기, 동양 문명의 테마, 3, 팔정도, 사성제, 계정혜, 슐로카, 3, 금강경, 선불교, 대승불교, 삼승, 비구, 아라한, 6바라밀, 오온, 육불, 이런 십..! 영화 <알라딘>에 나올 법한 양탄자를 타고 마음은 슝 날아갈 준비를 마쳤건만 푸르르 고장 나서 불시착한 채로 비포장도로를 꿀렁거리며 지나온 기분이다. 멀미, 멀미, 이건 멀미였다. 거침없이 밀려드는 불교 지식의 쓰나미를 감당하지 못한 나는 책을 집어던지고 싶은 유혹을 언젠간 가겠지, 이 또한 지나갈 거야이제껏 없던 불심으로 뿌리쳤다. 여러 스님들과 싯달타의 이야기가 펼쳐질 때만 해도 제법 여유가 있었단 말이다. 145쪽에 와서야 반야가 지혜 혜(慧)의 음역임을 알았다. 숨이 찼다.

TV 속에서 클립 영상으로 보던 저자는 거침없는 인물의 표상이었다. 그의 책은 처음 접한다. 강연 투로 서술된 책속의 문장들은 거침이 없었지만 혼자만 거침없고 장황하다는 느낌이다. 종교와 철학과 문화에 대한 방대한 지식을 보유하신 분이라는 것은 잘 알겠는데 그 서술방식이 나와는 잘 맞지 않는다. 예컨대 나는 한 걸음씩 계단을 오르기를 원하는데 저자는 한달음에 올라갔다 다시 내려와서 설명하고 다시 불쑥 올라가는 방식이다. 다소 어수선하게 오르락내리락하는 저자의 걸음을 따라가다 지쳐버린다.

 

기다리던 부분은 4<반야바라밀다심경> 주해가 시작되는 201쪽부터 등장하였다. 하아! 이 스무 장을 보기위해 200쪽의 걸음을 동동거리며 기어왔던가. 막상 해설은 명쾌하고 이해하기 쉬웠다. 그것도 배경지식이라고 꾸역꾸역 종이에 메모하면서 공부한 효과가 마지막 장에 와서 효과를 발휘했다. 이러려고 그렇게나 열심히 불교의 흐름과 용어를 펼쳐놓으셨던가. 머쓱해졌다.

<반야바라밀다심경>600권이나 되는 방대한 저술의 핵심을 260개의 문자로 요약한 단행본이다. ‘심경은 핵심을 요약한 경전이란 뜻이다. 이 책에 나온 것은 삼장법사 현장이 저술한 것이다. ‘반야지혜를 의미하는 음역이며, ‘바라밀다극치, 완성을 의미한다. 합치면 지혜의 완성이다. 반야경은 대승불교의 출발이다. ‘대승큰 수레로 대중을 향해 열려있는 불교이다. 대승불교는 보살의 불교이다. ‘보살보리살타의 줄임말이다. 지혜와 깨달음을 의미하는 보리와 본질, 실체를 의미하는 살타가 합쳐진 말로 깨달음을 지향하는 사람, 그 본질이 깨달음인 사람이다. 이는 수행자에 국한된 소승불교가 대중에게로 확대됨을 의미한다. 당신도 보살이 될 수 있다는 말이다. <반야심경>의 지향점은 무(無)이다.

 

책속에 언급된 일화와 이론들을 읽어가는 과정에서 일상에 바로 적용하여 지혜롭게 살아갈 수 있는 팁을 몇 가지 얻었다.

첫째, 경허 스님의 이야기를 통한 방하착(放下着)’이다. 정작 여인을 업고 개울을 건넌 스님은 여인을 내려놓았는데, 이를 지켜본 사미승은 그 생각을 계속 내려놓지 못하며 생각으로 여인을 업고 가는 셈이 되었다는 메시지이다.

유난히 피곤한 하루였다. 종일 실험 평가를 하느라 5분도 쉬어보지 못했다. 화학 실험이라 안전사고가 일어날까 예민했고 빈 시간이면 다음 반 실험을 위한 준비에 분주했다. 피곤의 극치는 마지막 반에서 터졌다. 평소 수업 태도가 그지 같아서 들어가기 전에 몇 번 릴렉스를 한 다음 들어가는 반이다. 역시나 나머지 반들에게서는 일어나지 않던 일이 발생한다. 지금 생각하면 사고를 일으킨 것도 아니고 단지 내말대로 실험하지 않은 것뿐인데. 순회하는 내 눈에 띤 장면은 지시약을 1방울 넣으라는 나의 주의사항을 깔끔하게 저버리고 뚝뚝 떨어지는 방울들과 보란 듯이 보라색과 진청색으로 그득 채워진 홈판 이었다. 원래대로라면 희미한 파스텔 톤으로 눈물 몇 방울 정도의 양이 들어있어야 할 그곳이, 보여서는 안 되는 색깔을 띤 단청 색 찰랑거리는 오줌단지가 되어버린 거다. 이거 누가 그랬어! 늘 그렇듯 결과는 있으나 원인 제공자는 밝혀지지 않는, 심증은 있으나 물증이 없는 상황이다. 사실 아이들 입장에서는 누가 그랬다고 말하기도 어려웠을 거다. 조원 전체를 태도에서 감점을 한다고 버럭 하니 몇 마디씩 변명이 쏟아진다. 심증 가던 그 아이는 바로 옆의 조였다. 아이의 문장 하나가 마음에 꽂힌다. 아이들이 방해된다고 만져보지 못하게 해서 떨어뜨려보고 싶어서 한 방울 넣어본 거예요. 족히 10방울은 넘어 보이는 색깔을 현미경 수준으로 축소한 아이의 마음이 순간 사실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색깔 확인은 다 한 거야? . 얼른 뒷정리 해.

퇴근 후 집에 돌아오니 아까의 버럭이가 스멀스멀 되살아났다. 경허 스님의 내려놓음이 생각났다. 그 순간까지 버럭이를 놓지 못하고 업고 왔구나. 뭐 좋은 거라고 붙들고 있나, 얼른 내려놓아야지. 마음이 편안해졌다.

둘째, 연기(緣起)에 대한 이해가 깊어졌다. 싯달타 깨달음의 핵심이다. ‘어떠한 사물도 그것 자체로 단절적으로 존재하는 것은 없으며, 반드시 원인이 있으며 그 원인의 변화가 오면 결과는 반드시 변하게 마련입니다.(p123)’ 사랑이나 사람이 변하는 것도 연기의 관점에서 바라보니 자연스러운 현상으로 받아들여졌다. 변하지 않는 것이 오히려 이상한 일이었던 거다. 저절로 일어나는 것은 없는 것이었던 거다. 의식하지 못한 원인들이 계속 쌓이고 쌓인 것이 갑작스럽다고 느껴지는 결과로 나타난 것이다. 조금 더 세심하게 잘 바라봐야함을 깨달았다. 분명 최초의 한 방울이 있었을 거다. 그걸 인지하지 못했던 것을. 일상에서 일어나는 일이나 주변 사람들과의 관계도 마찬가지일 터이다.

셋째, 저자의 표현대로 하면 나는 좆도 아니다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자기 비하와는 전혀 다른 의미일 터이다. 나를 바라보며 겸손해지고 욕심을 버리라는 의미라 해석한다.

 

<반야심경> 해설을 음미해보니 나의 생활 패턴에 대한 학문적인 지지 기반이라도 얻은 듯 뿌듯하다. 어렴풋이 해답을 얻었다. 비행기를 타고 뿌연 구름 속을 지나며 여기로 가는 게 맞나 싶은 생각이 드는 순간 시야가 탁 트이며 맑아진 공간으로 들어와 버린 느낌이랄까.

260개의 문자 중 자주 등장하는 한자는 공(空)과 무(無)이다. 몇 번이나 나올까 헤아려본다. 공은 7, 무는 21번이다. 흥미로운 점은 초반에는 공이 계속 등장하다 무가 나타나면서 릴레이 바턴을 이어받은 듯 공이 없어진다는 점이다. 무소유와도 연결이 되는 없을 無. 글자의 의미와 느낌이 참 좋다.

어느 순간부터 갖고 싶은 것이 떠오르지 않는다. 50대에 들어서면서 심장 언저리를 맴도는 생각이다. 물건을 볼 때면 이것도 결국 사라질 거라는 생각이 드는 거다. 무소유를 지향하기로 했어. 나를 위한 물건을 사는 일이 줄었다. 지금 가진 옷, 구멍 날 때까지 입을 거야. 주변인들에게 웃으며 말하는 나. 옷을 사지 않으니 마음이 편해진다. 그나마 소비하는 분야가 책인데 지금 책장에 꽂힌 책이라도 다 읽자 하니 현저하게 구입량이 줄었다. 허무함이라 표현하기에는 부족한, 홀가분하다는 느낌이 섞여 점점 자유로워지는 기분이 든다.

 

사물에도 기가 있어 색으로 표현된다면 어떨까. 손길이 닿은 횟수만큼 다른 색으로 진화하는 거다. 손이 많이 닿은 물건일수록 찬란하고 화려한 빛을 뿜어내고 전혀 닿지 않는 것은 흑백으로 음영 처리되어 콕콕 집어내어 버릴 수 있도록. 무소유의 관점에서 집안을 바라보니 버릴 것이 하나 둘 눈에 들어온다. 몇 년 간 손길이 닿지 않은 것을 찾으면 되는 거다. 서른 한 가지도 넘게 골라내는 재미가 붙는 중이다. 버리니까 공간이 생기고 공간이 생기니까 숨통이 트인다. 물건 대신 공간을 얻는다. 새로운 공간이 신선한 공기로 채워져 덩달아 가벼워진다.

삶은 수학이 아니다. 3-3=0 이라는 수식의 수학적 결론은 0이지만 삶에서는 + 가 제로로 되는 과정이 고스란히 흔적으로 남는 까닭이다. (無)로 돌아가는 과정이란 이런 걸까. 매순간 변화하는 나에게서 무언가를 더하거나 덜어내면서 0으로 가까워지려는 노력을 하는 과정 말이다. 감당하기에 버거운 물건들을 소유했다는 생각이 드는 요즘은 물건을 덜어낼 시기이다. 조금 더 과감하게 버릴 생각이다. 감정이 될 수도 있고 관계이거나 사물이 될 수도 있는 무언가를 향한 치열한 영점 조절을 해볼 작정이다.

 

 

p112, 8째줄 : 못했다는데 못했다는 데

p130, 밑에서 3째줄 : 영예 명예

p169, 2째줄 : 있어났는데 일어났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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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화령 2019-12-27 23: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대단하십니다.제대로 읽고 제대로 이해하셨네요. 끝까지 정독했습니다.🙏

나비종 2019-12-28 09:50   좋아요 0 | URL
두께가 만만한 책이었는데 내용은 만만하지 않았습니다. 읽는 데 어찌나 오래 걸리던지요.^^; 하지만 몇 번의 역경을 넘기면 마음에 남는 것들이 있습니다. 무로 돌아가신 도깨비님처럼ㅎㅎ
 
더불어숲 - 신영복의 세계기행, 개정판
신영복 글.그림 / 돌베개 / 201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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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기가 나는 책이 있다. 천천히 읽다보면 향기 속으로 빨려 들어가 흠뻑 젖는 책. 마지막 책장을 덮고 일상으로 걸어 나오는 순간 코끝으로 깊숙이 스며들던 향기가 오래 맴 도는 책이다. 그의 책에서는 나무 향이 난다.

그의 책들은 매번 읽는 데 걸리는 시간보다 더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든다. 때론 불편하고 가슴 아프지만 잊은 듯이 그 앞에서 서성이는 나를 본다. 일상의 관성에 마음을 내맡긴 채 심장이 굳어가는 줄도 모르고 바쁘게 종종거리다 이 책을 만났다. 심장이 차츰 몰랑거린다. 분명 달달한 문장들은 아니다. 나를 들썩이게 하는 힘은 어디에서 오는 걸까.

 

여행 관련 콘텐츠들이 쏟아지는 세상이다. 요즘 TV에서 나오는 예능프로그램은 크게 세 가지 부류라던가. ‘여행하기, 먹기, 여행가서 먹기라는 우스갯소리도 들린다. 불과 몇 년 전보다 여행을 향한 관심들이 부쩍 높아졌다. 여행에 대한 책들도 많이 등장했다. 여행을 하는 근본적인 이유부터 여행지에서의 먹거리, 볼거리, 즐길 거리가 듬뿍 담겼다. <감옥으로부터의 사색>, <담론>, <강의>, <처음처럼>으로부터 얻은 작가의 이미지에서 여행을 떠올리기는 어렵다. 그의 책은 여행의 무엇을 소개해줄까.

책날개를 넘기니 세계지도가 펼쳐진다. 각 대륙에 분포한 54개의 장소들이 빨강, 초록, 파랑, 보라, 회색빛 LED전구를 심어놓은 듯 점점 박혀있다. 우와! 참 많은 곳을 기행 하셨구나. 위키 백과적인 지식만이 실려 있지는 않을 텐데. 맛 집이나 여행 경비를 절약하는 방법 등을 소개하실 리도 만무하다. 이 많은 장소에서 그가 보고 느낀 것은 무엇일까. 점점 더 궁금해진다.

 

1부는 콜럼버스의 우엘바 항구에서 출발한다. 원주민과 신대륙 발견에 대한 역사의 서술은 강자의 논리를 숙고하게 만든다. 땅을 소유하고자하는 인간의 욕심은 집착에 가까우리만큼 집요하다. ‘대륙의 발견이라는 말은 얼마나 폭력적인가. 원래부터 그 땅에 거주하던 원주민들의 존재를 투명하게 만드는 잔인한 관점이다. 이러한 관점 바꾸기를 말하는 것부터 그의 세계여행은 시작된다.

그의 여행지를 따라가며 세계사에 등장하는 전쟁들을 새삼 들추어본다. 스페인 내전, 페르시아 전쟁, 펠로폰네소스 전쟁, 30년 전쟁, 베트남 전쟁, 2차 세계대전, 프랑스 혁명, 피의 강 전투 등 전쟁의 현장들이 다른 의미로 자리한다. 전쟁으로 스러져 흙이 된 사람들의 존재가, 무심코 잊혀져있던 과거의 그들이 저자의 발밑에서 조심스레 고개를 든다.

유럽 여행을 그려볼 때면 알프스 산맥의 광활한 순백, 에펠탑의 화려한 조명, 그리스 로마 시대 유적지의 찬란함, 루브르 박물관에 걸려있을 압도적인 미술품 등이 궁금했다. 그는 여행지의 풍경이 아니라 그곳에 존재했던, 앞으로 존재할 인간을 본다. 성채와 신전들 아래 묻힌 수많은 주검들을, 콜로세움에서 혈투하던 동물과 사람들을 떠올린다. 만리장성의 거대함을 보고 감탄하기보다 건축물이 만들어지기까지 그 속에 담긴 무수한 인간의 희생을 본다. ‘건물을 바라볼 때는 크기를 보기 전에 먼저 그것이 무엇을 위한 건물인가, 누구를 위한, 누구의 건물인가를 먼저 물어야 한다고 했습니다.(p148)’ 건물 이전에 그 건물을 세운 사람들과 그 안에 존재했을 사람들을 망각한 채 껍데기만 보려한 거다, 나는.

 

2부에서 저자는 할리우드 스타들의 이름을 읽으며 스타의 꿈이 좌절된 더 많은 사람들을 생각한다. ‘우리는 그것이 무엇을 성취할 수 있는 기회이며 어떤 가능성을 열어 주는 꿈인가를 물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p214)’, ‘꿈보다 깸이 먼저라고 생각합니다.(p218)’ 꿈을 바라보는 관점이 어떠해야하는지 곰곰 생각해본다.

마야, 아스텍, 잉카 문명의 고대인들이 인간을 희생으로 치른 의식들은 무엇을 위한희생이었을까. 인간의 구원이 오로지 인간의 희생으로서만 가능하다던 그들의 믿음은 맹목적이었다. 하지만 오늘날 행해지는 그보다 더한 세상의 모습들을 보면 과거의 그들이 마냥 미련했다 치부하기는 어렵다.

건물을 지탱하는 힘은 보이지 않게 묻혀있는 기초공사의 탄탄함에서 온다. 사람들도 마찬가지이리라. ‘진정한 변화는 지상의 변화가 아니라 지하의 변화라야 합니다.(p253)’ 지하에 해당하는 사람들은 대중이라 불리는 집단일 터이다. 먹이피라미드로 보면 생산자인 식물이 같은 맥락일까. 나무 한 그루는 힘이 없는 듯 보이지만 나무와 나무가 더불어 모인 숲은 막강한 존재가 된다. <더불어 숲>이라는 책의 제목이 사뭇 의미심장하다. 울창한 숲이 되려면 나무와 나무들이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 숲을 연상하며 손과 손을 잡고 있는 사람들과의 관계를 떠올린다. 작가의 글에 BGM처럼 흐르는 인간이라는 음악이 어우러져 숲을 이루는 장면은 상상만 해도 마음을 따뜻하게 만들어준다.

예전에는 빠른 게 좋았다. 이제는 느린 게, 기계보다는 사람의 손길이 닿은 대상들이 좋다. 그의 문장은 느림의 미학을 구체적인 비유로 보여준다. ‘자동차를 타고 빠른 속도로 지나가는 사람에게 1m의 코스모스 길은 한 개 점에 불과합니다. 그러나 천천히 걸어가는 사람에게는 이 가을을 남김없이 담을 수 있는 아름다운 꽃길이 됩니다.(p370)’ 느리고 향긋한 가을 길의 풍경을 상상한다. 천천히 호흡을 한다. 마음이 화해지면서 평온해진다.

 

차례 자체가 화두이면서 한 줄의 경구 같다. 차례만 따로 천천히 읽어보아도 마음이 정갈해진다. 1부와 2부는 어찌 보면 대조적이다. 1부가 서사시라면 2부는 서정시의 색채가 짙다. 1부는 땅, 전쟁, 역사, 과거를, 2부는 하늘, 관계, 문화, 미래를 떠올리게 한다. 여행지마다 이러한 요소를 중심으로 이야기와 생각이 펼쳐진다. 1부를 지나 2부까지 모두 건너니 오롯이 현재가 남는다.

꽉 차지 않은 여백이 좋다. 그의 글이 건네는 여백은 깊고 넓다. 엽서 그림들도 의미심장한 아름다움으로 다가온다. 그 안으로 포옥 들어간 나는 문장 사이사이에 나의 생각을 채우며 그를 따라 걸었다.

여행은 돌아옴이었습니다. 자기의 정직한 모습으로 돌아오는 것이며 우리의 아픈 상처로 되돌아오는 것이었습니다.(p14)’ 막연하게 꿈꾸던 여행에 구체적인 그림을 그려준 책이었다. 새로운 장소에서 무엇을 보고 느낄지, 가슴에 신선한 공기를 품고 돌아와 어떻게 현재를 걸어가야 할지 이끌어주었다.

2020일의 시간과 함께 흘러들어왔을 방대한 지식을 그는 결코 앞세우지 않았다. 담담하게 과거와 미래를 아우르며 스스로의 울림을 지닌 내용은 편지글 형식의 친근함과 함께 마음 깊이 스며들었다. 그게 공명이 되어 나의 마음을 흔들었던 걸까. 흔들리는 나무가 된 나. 이 글을 읽고 그의 책을 펼칠 당신 역시 흔들리는 나무가 된다면. 이렇게 흔들리는 나무들이 어느 순간 더불어 숲을 이루는 걸까.

그의 여행기는 달랐다. 그는 여행지와 사람을, 역사와 문화를, 개별적인 존재와 관계를 연결하여 나에게 목적어를 넘겨주었다. 현재에 있는 나는 무엇을 볼 것인가. 목적어를 안게 된 나의 고민이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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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감 2019-09-27 12: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잘지내시나요, 나비종님? 오랜만에 들렀습니다^^ 감성이 한층 더 깊어진 리뷰로 잠시 마음에 쉼을 얻고 갑니다.

저도 이제는 신식을 좋아하지 않아요. 아날로그가 더 그립고 클래식한게 저랑 맞더라고요. 젊은 나이지만 마음은 아재가 되었나봅니다ㅎㅎ

요즘에 도통 독서를 못했는데 그나마 나물모임덕에 끈을 놓지는 않았어요. 얼마나 다행인지요. 그래서 나비종님과 빨리 책 수다를 떨고 싶어지네요^^

나비종 2019-09-28 01:24   좋아요 1 | URL
신영복 선생님의 글은 부드러운 휴식처럼 읽는 이를 편하게 만드는 힘이 있죠. 그런 글의 향기가 제 리뷰에 조금 묻어나왔나 봅니다.^^

아날로그의 매력에 점점 빠져들게 됩니다. 이메일이란 게 처음으로 등장했을 때 0.1초만에 상대에게 전달되는 그 스피드함에 감탄을 한 기억이 납니다. 한데 요즘에는 어쩌다 천연기념물 보듯 드물게 눈에 띄는 빨간 우체통을 보게 되면 누군가에게 손편지를 쓰고픈 생각이 들곤 해요. 상대에게 전달될 순간을 상상하며, 다시 상대의 마음이 전해져오는 시간까지의 기다림이 정말 행복하고 설렜거든요.ㅎㅎ

저역시 요즘 이래저래 좀 바빴는데 나물과의 소박한 약속 덕분에 무사히 읽어냈어요. 이 댓글 달고 얼른 물감님 방으로 놀러가야겠습니다!^^
 
당신이 옳다 - 정혜신의 적정심리학
정혜신 지음 / 해냄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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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숍에서 책 읽고 있어.”

혼자?”

.”

오랜만에 친구에게서 안부 전화가 걸려왔다.

집에서 읽지, 왜 혼자서 그러고 있어.”

집은 노동의 공간이라 집중이 잘 되지 않아. 3 둘째가 밤 10시 반 넘어서 집에 오니까 겸사겸사 기다리는 거야.” 가뿐한 듯 말을 보탰다.

집에서 나는 밥통이다 세탁기였다 가전제품이 되는 기분이 들어. 정서적인 교류 없이 왔다갔다 기능을 하는 인공지능이랄까. 그래서 집에서 나오는 거야. 여기서는 커피 값만 지불하면 존중받는 느낌을 받으니까. 아무도 나에게 무언가를 요구하지 않는 공간이지. 억지로 마음을 끌어올리지 않아도 되고.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점점 가라앉다 방바닥이 되어버릴 것 같거든. 나는 지금 안간힘을 쓰는 중이야.’ 누구에게도 가닿지 못하는 말은 마음속에서 소용돌이치다 모습을 감추었다.

얼른 읽고 집에 들어가.”

그래.”

마음 따뜻한 친구지만 내 마음을 공감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었다.

 

버티는 중이었다. 맨발로 얼음 바닥을 걷는 마음은 종종 휘청휘청 시렸다. 인간은 원래 고독한 존재야. 스스로 다독일 때면 감각이 마비된 듯했지만 탄성력을 지닌 채 되돌아오는 냉기를 안아야 했다. 책을 읽고 시를 쓰고 다시 책을 읽고 글을 썼다. 글쓰기 대회에 참여하며 나의 존재를 활자로 확인했다. 책을 읽는 동안에는 고요하고 따뜻한 공기가 온몸을 휘돌고 지나갔다. 글을 쓰며 마음에 박힌 가시를 하나 둘 빼내었다. 하지만 마음의 허기를 채우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낮 동안 웃고 말하는 가면을 쓰던 나는 퇴근 후 말간 민낯으로 가라앉은 마음을 마주했다. 역류성 식도염이라도 걸린 듯 가슴 깊숙이 고여 있던 물컹함이 목구멍으로 치밀어 올랐다. 커피숍으로 가는 길은 따끔한 자유였다. 껄끄러움이 먼지처럼 눈가에 고여 물기가 어렸다.

 

5교시에 들어가 보니 여학생들 대부분이 자리에 없다. 하나 둘 들어오는 아이들의 표정이 어둡다.

무슨 일 있었니?”

점심시간에 배드민턴 반 대항을 했는데 졌어요.” 남학생들이 답을 해준다.

훌쩍거리며 다시 울먹이는 몇몇 여학생들. 맨 마지막에 자리로 돌아온 A의 눈이 뻘겋다. 본인 생각에 억울한 상황이 있었던 거다. 수업을 진행하는 내 눈치를 보며 뒷자리 친구에게 억울함을 토로한다.

‘CPR의 핵심은 타이밍이다.(p304)’ 수업보다 더 중요한 긴급 상황이 발생했음을 직감했다. 잠시 수업을 멈추고 아이에게 다가갔다.

“**가 많이 속상한가보네. 무엇 때문에 이렇게 속상했을까?”

제가 한 시합은 이겼는데요, 친구에게 체육복 바지를 빌려주고 저는 친구 치마를 입고했는데 그게 짧아서 움직이기가 불편했는데 선생님이 자꾸친구에게 했던 말을 반복하는 A.

아이의 대답에 집중하고 궁금해 하는 태도가 어떤 좋은 질문보다 더 좋다.(p275)’ 가만히 옆에 서서 A의 말을 들어주었다. 본인의 옷까지 빌려주고 불편을 감수했는데도 그 노력을 인정받지도 못하고 진행 과정에서 서운한 일이 있었나보다. 다시 생각해도 속상한지 A가 눈물을 뚝뚝 흘린다. 예전의 나라면 아마도 진행하는 선생님 입장에서 말하고, 시합을 하다보면 질 때도 있는 거지 승부에 연연하지 마라 정도의 말을 하고 수업을 진행했을 터이다.

누군가의 고통에 눈길을 포개는 이들의 섬세한 뜨거움이 필요하다.(p12)’ ‘공감 과녁의 마지막 동그라미는 존재가 느끼는 감정이나 느낌이다.(p145)’ 이 문장이 떠오른 나는 A의 마음을 공감하는 말을 건넨다.

저런! **샘이 이런 마음도 몰라주고. **가 많이 속상하고 억울했겠구나.”

어깨를 감싸고 토닥이며 A가 친구들에게 디테일한 상황을 다시 설명하는 시간을 지켜보았다. 충조평판(충고 조언 평가 판단)을 하지 않고 단지 아이의 울컥함을 다독이기만 했다.

! 저 화장실 좀 다녀올게요.”

잠시 후 A가 한결 차분해진 어조로 말한다.

그래! 세수도 좀 하고. 어유! **가 많이 속상해서.”

결과적으로 아이의 마음이 낸 문제를 맞힌 셈이 되었다. 이전보다 아이들의 마음을 향해 한 발자국 더 들어간 느낌이었다.

 

6교시에는 한창 수업을 하는데 B가 벌떡 일어나서 아무 말 없이 뒷문을 열고 나가려한다.

갑자기 어디 가니?”

그제야 물을 뜨러 간다며 500mL 빈 페트병을 흔든다.

아니, 허락을 받고 나가야지 갑자기 그렇게 나가려하면 어떻게 해? 이따 쉬는 시간에 가!” 예전의 나라면 아마도 살짝 황당해하며 조금 높아진 톤으로 이랬을 거다. ‘필요한 건 네가 그랬다면 뭔가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너는 옳다는 자기 존재 자체에 대한 수용이다.(p50)’ 순간 이 문장이 떠오른다.

잠깐 복도로 나와 볼래?” 부드럽게 말했지만 나머지 아이들은 쟤 또 시작이라는 표정이었다. 그런 종류의 행동을 자주 하며 수업의 흐름을 깨뜨리는 아이였다.

물을 뜨러 가고 싶다면 선생님한테 허락을 먼저 받았어야 하지 않을까?” B의 눈을 가만히 응시하며 말을 했다.

샘 말씀하시는 도중 끊길까봐 말씀이 다 끝난 다음에 허락을 받으려했어요.”

그랬구나. 샘이 잠깐 오해를 한 거네. 미안하다. 얼른 다녀오렴.”

B를 보내고 교실로 들어와서 수업을 계속 진행했다. 평온한 표정으로 다시 들어온 나를 조금은 의아하게 쳐다보는 시선이 느껴졌다.

위기를 모면하려 둘러댄 말이었는지, 말한 대로의 마음이었는지 진실은 B만이 알 것이다. 이 작은 경험에서 나는 세 가지를 얻었다. B의 말이 사실이었다면 내가 B에게 입혔을 지도 모를 상처를 주지 않게 된 것이다. 관성대로 B는 원래 저렇게 버릇없는 아이라 규정짓고 판단하는 실수를 저지르지 않은 거다. B의 말이 거짓이었더라도 목이 말랐을 아이가 엄청난 잘못을 저지른 것은 아니니까 귀여운 거짓말로 치부하면 그만이다. 무엇보다 나의 감정이 하나도 상하지 않은 점이 내가 얻은 가장 큰 이득이었다.

 

제목이 따뜻해서 집어 들었다. 영감자 이명수가 표현했듯 읽는 책이 아니라 행하는 책(p7)’이다. 번드르르하고 거만한 전문가의 냄새 없이 당장 적용할 수 있는 실전지침서라서 좋았다. 두 명의 학생에게 적용해본 결과, 생각보다 효과가 커서 놀랐다. 막연하게 가정했던 효과 이상이었다. 소박한 집 밥 같은 치유라는 적정심리학은 맞춤형 옷인 듯 어울리는 말이었다. 아이들을 상담하는 노하우를 제대로 전수받은 느낌이다. 그동안 교사로서의 나는 상처 입은 아이들의 마음에 심리적 CPR은 하지도 않고 시술부터 하려고 달려든 셈이다. 마음을 어루만지며 공감하는 행동을 제일 처음 했어야 했는데 말이다.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다 요즘 왜 지치는지 알았다. ‘누군가를 공감하기 위해 누가 재가 돼버리는 것은 공감이 아니라 감정 노동이다.(p264)’ 나는 감정노동을 하고 있던 거다. 주변 사람들과의 대화에서 나는 듣고 위로해주고 답을 제시해주는 축에 속한다. 그들은 자신의 얘기를 하느라 나의 마음이 어떠한지 관심이 없다. 대화를 끝낸 상대방은 뭔가를 잔뜩 얻은 듯 뿌듯한 표정으로 돌아간다. 그들이 떠난 후 혼자 남은 나는 종종 공허함을 느꼈다. 그게 지겹다는 생각이 들어 먼저 연락을 하지 않게 된 거다.

누구에게도 나의 무거움을 보여주지 못하고 혼자서 견디다 결국 연락을 하게 되는 두 사람이 떠오른다. 평소 연락을 자주 하는 대상은 아니지만 가만히 분석해보니 공통점이 보인다. A는 매번 대화의 끝에 “**은요?”라며 나의 마음이 어떤가 묻는 이다. B는 나의 존재가 얼마나 의미 있고 소중한 지 표현해주는 사람이다. 나의 능력을 높이 평가해주는 B와 대화하다보면 내가 썩 괜찮은 인간인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

그들은 모두 나의 이야기를 궁금해 하며 듣고 싶어 했다. 일방통행이 아니라 그들의 이야기에 내 이야기가 적절히 섞여 들어가 대화가 이루어진다는 생각이 든다. 말을 주고받는 상황이 된다. ‘내 존재 자체에 반응한 사람이니 그 사람만이 내 삶에 의미 있는 사람이 된다.(p68)’ ‘요즘 마음이 어떠냐는 질문은 바로 그곳, 그녀 존재의 핵심을 정확하게 겨냥한 말이다.(p103)’ 내가 듣고 싶은 말은 이거였나. 요즘 넌 어때? 네 마음은 어때? 라는.

 

어젠 좀 울적했어. 글짓기 대회 결과가 나왔는데 떨어져서 좌절했어.”

뭐 그런 걸 가지고 좌절씩이나 하냐?” 안부전화를 건 그 친구는 웃으며 가볍게 넘겼다.

사실 내 마음은 내가 한 말보다 더 의기소침한 상태였는데.

글짓기대회에 도전하는 내 심리를 생각해본다. 이 책을 읽다보니 답이 보였다. ‘자기 존재가 집중 받고 주목받은 사람은 설명할 수 없는 안정감을 확보한다.(p45)’ 인정받고자 하는 욕구가 생각보다 강해졌던가보다. 불안하게 흔들리는 마음을 안정적인 곳에 기대고 싶었나.

총량 불변의 법칙은 여러 모로 적용되는 규칙으로 보인다. 어느 한 쪽이 많아지면 다른 쪽은 상대적으로 줄어든다. 백혈병에 걸려 암세포인 백혈구 수치가 증가하면 정상 백혈구나 적혈구나 혈소판의 자리가 줄어든다고 한다. 그래서 면역기능이 떨어지고 빈혈 등이 생기는 거라 들었다. 사람의 마음도 마찬가지일지도 모르겠다. 채워지지 않는 외로움을 인정 욕구로 채우고 싶었던 마음처럼.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시리고 황량한 적막함이 출렁거리는 마음을. 매일 밤 울고 싶은 마음으로 잠들곤 했던 시간들을. 먹고 살기도 버거운 세상에 멀쩡한 직업 있고 그럭저럭 사는데 이런 감정은 사치이지 않나. 사람들이 했을 법한 말을 스스로 내안으로 던져 넣었다.

‘‘사람의 마음은 항상 옳다는 명제는 언제나 옳다.(p162)’ ‘모든 감정에는 이유가 있고 그래서 모든 감정은 옳다.(p218)’ ‘타인을 공감하는 일보다 더 어려운 것은 자신을 공감하는 일이다.(p274)’ 누구보다 나의 마음을 잘 아는 내가 나의 마음을 거부하고 있었던 거다.

드라마 <멜로가 체질>의 세 여자 주인공 중 한 명은 죽은 연인을 잊지 못해 다른 이에게는 보이지 않는 연인의 환영과 계속 대화를 하면서 지낸다. 주변 친구들은 자살까지 시도했던 그녀의 모습을 그저 마음 아프게 지켜보기만 한다.

어제는 그녀가 본인의 상황을 인지하고 친구들에게 손을 뻗는 장면이 등장했다. “나 힘들어!” 그녀의 투명한 연인에게 건네는 말인 줄 알고 친구들이 아무 반응을 보이지 않자, 다시 그녀가 말한다. “너희들에게 하는 말이야. 나 힘들어!” 그제야 그녀에게 울컥하며 다가선 친구들과 그녀의 남동생은 서로를 부둥켜안고 눈물을 흘린다. 친구들은 그녀에게 말한다. “고마워, 힘들다고 말해줘서 정말 고마워.”

카카오 톡의 프로필 뮤직을 이하이의 <누구 없소>로 바꿨다. ‘누구 없소/ 나를 붙잡아줄 님은 없소/ 눈을 씻고 찾아봐도 보이지가 않는데/ 어디 있소~’ 매력적인 목소리와 가사 내용이 와 닿아서. 표현하는 것만으로 마음이 한결 나아졌다.

 

책속에서는 당신이 옳다란 문장이 몇 번이나 등장했다. ‘심리적 목숨을 유지하기 위해 끊어지지 않고 계속 공급받아야 하는 산소 같은 것이 있다. ‘당신이 옳다는 확인이다.(p48)’ 아무리 반복해도 지나치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엄마 손은 약손, 엄마 손은 약손~ 아픈 배를 문지르는 엄마의 손길을 느낀 아이처럼 내 마음은 그녀의 문장들에 반응했다. ‘네가 그렇게 힘들었는데 내가 몰랐었구나.(p9)’ 책속에서 저자가 슬며시 걸어 나와 나를 향해 말을 건네는 것 같았다. 이런 말을 듣고 싶었던 거로구나. 순간적으로 목이 메었다.

가느다란 선으로 그려진 책속의 그림이 적절하게 어울렸다. 두 사람이 안고 있는 장면을 묘사한 한붓그리기다. 소제목 옆에 간단한 테두리로 있는 그림은 차라리 장식에 가까웠지만 책장을 넘길 때마다 울컥했다.

안는다는 것은 참으로 뭉클한 스킨십이다. 저마다의 정체성으로 따로 뛰던 하나의 심장은 두 사람이 마주 보고 안는 순간 심장이 존재하지 않는 다른 이의 가슴을 데워준다. 두 사람이 마주하는 경계에서 심장은 두 개로 뛴다. 내 심장이 두근거리는 건지 당신의 심장이 펄떡이는 건지. 공명하는 울림은 구분하기 어렵다. 구분할 필요도 없는 순간이 된다.

책장을 넘길 때마다 이 그림들과 정혜신의 문장들이 뜨끈한 차 한 잔이 되어 나의 숨결을 데워주었다. 마음을 정면으로 들여다본 내 눈엔 계속 눈물이 스몄지만 내내 따뜻한 다독거림을 느끼며 위안을 받았다. 두 개의 심장을 느껴본 시간이었다.

 

 

p109, 1째줄 : 숨길 숨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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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9-07 09:1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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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9-07 20:42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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