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 하나 부엌 하나 골목 끝에 느낌표

여섯 식구 허락된 자그마한 집이었지

흘러간 시간 거슬러 펼쳐지는 옛 풍경


치열한 하루하루 고단한 걸음걸음

시린 심장 녹여가며 자식들을 품던 당신

집이란 당신에게는 어떤 공간이었을까


당신을 담아내니 나의 글이 뜨끈해져

시큰한 코끝 위로 눈시울 뻑뻑하니 

아득한 공간 넘어와 물컹해진 나의 집


*2020. 9. 26. H시조백일장 본선, 참방(글제: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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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9-27 19:2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0-09-27 19:34   URL
비밀 댓글입니다.
 

아버지 병원 침대 어머니 간이 침대 

한 달여 매일 밤을 모로 누워 주무셨네 

여든 살 파수꾼 옆에 드릉드릉 숨소리 

 

오십 년 함께 하면 당신들 닮아질까 

쌔근쌔근 두 분 모습 물끄러미 바라보니 

숟가락 젓가락인 듯 한 벌로 다정하네 


*2020.8. H시조백일장 예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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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고 싶다는 농담 - 허지웅 에세이
허지웅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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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기가 만들어내는 소리에 강하게 끌리는 날이 있다. 음 하나하나가 심장을 톡톡 건드리면 가던 걸음을 멈추듯 빠르게 흐르던 일상이 잠시 멈춘다. 공기의 진동이 귀가 아닌 심장으로 스며드는 순간 온몸이 울린다. 내게 음악이 아름다운 건 울림이 있기 때문이다.

군더더기 없는 강인한 단조 풍의 글. 건조함 안에서 베이스 기타의 묵직한 온기가 전해졌다. 뭉클했다. 그의 전작 나의 친애하는 적과는 결이 달라진 느낌이다. 표면은 말랑해지고 내부는 단단해졌다. 이번 책은 음악처럼 다가왔다. 웅장한 오케스트라인 듯 엄청난 서사가 펼쳐지는 것도, 통통 튀는 유머로 바삭거리는 것도, 지적인 내용이 다량 방출된 것도 아닌 글에 심장이 반응했다. 심장이 평소와 다른 진폭으로 두근거렸다.

 

많은 글이 접근을 시도하면서도 표현하기 어려운 주제 중 하나는 삶과 죽음이다. 자체의 무게감에 시작도 하기 전에 짓눌린다. 용기 내어 도전한다 해도 겉핥기로 끝나거나 어정쩡한 결론으로 마무리되기 일쑤다. 삶의 가장 경이로운 극단에 대한 경험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자신의 삶이 시작되는 순간을 기억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임사체험이나 삶의 마지막을 마주하고 돌아온 경험도 드물다. 삶은 진행 중이므로 삶을 말하는 글에 결론을 내릴 수 없는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 잠시 멈춤 정도로나 마무리될까.

살고 싶다는 농담은 삶과 죽음 사이에서 주춤거리며 방황하는 사람들을 위한 글이다. 허세 부리지 않고 작가 자신의 경험을 돌아보며 담담하게 삶을 연주하는 글에서 진심이 묻어나온다. 그 문장들이 전해주는 느낌이 나는 좋았다.

 

돌아보면 나의 10대는 가난에 주눅 들어 있었다. 20대에는 거기에 외로움이 더해졌다. 30대에는 의무와 관계의 뒤틀림과 외로움을 짊어지고 혼자 밤길을 걷는 마음을 칼날처럼 품은 채 많은 날을 보냈다. 40대에는 다소 나아졌지만, 저항력이 떨어지면 찾아오는 감기처럼 종종 울적함과 억울함과 허무함이 찾아왔다.

수시로 찾아오던 크고 작은 마음의 고통이 다 지나갔나 했는데 깊은 곳에는 아직도 앙금이 남아있었나. 고통의 본질을 정면으로 응시한 문장을 보는 순간 눈물이 고였다. ‘고통이란 계량화되지 않고 비교할 수 없으며 천 명에게 천 가지의 천장과 바닥이 있기 때문이다.(p45)’ 엄마 앞에서 넘어졌다 일어난 아이가 된 듯 위안받는 느낌에 한참을 기대어있었다.

 

만약에 그때 내가 다른 선택을 했더라면 지금과 달라졌을까. 힘겨운 시간 속에서 허우적댈 때마다 수많은 만약에를 생각했다. ‘만약에의 도돌이표에 갇혀 한참 되새김질을 하던 순간의 파편들이 떠올랐다. ‘정말 바꿀 수 없는 건 이미 벌어진 일들(p194)’인데도.

내 삶을 대표할 수 있는 일곱 가지 장면을 꼽아보라는 문장 앞에서는 잿빛 감정들이 담긴 장면들이 우수수 떠올랐다. 글을 쓰레기 봉지 삼아 그렇게나 많이 버렸는데 채 버리지 못한 순간들이 아직도 남아있었나.

불행은 우리 삶의 동기가 될 수 있는가.(p254)’ 누군가 내게 이런 질문을 한다면 그렇다!’라 답할 것이다. 삶의 어두운 순간들은 내 글의 동기로 작용했으니. 글을 쓰면서 조금씩 그 순간들로부터 거리감을 가질 수 있었다.

 

살아라.(p275)’ 마지막 문장이 한 줄기 햇살처럼 날아들었다. 추천사 없이 처음부터 끝까지 온전히 작가의 문장으로만 채워진 책 역시 그의 문체만큼이나 깔끔했다. 허지웅의 문장에서는 여전히 이성적이며 지적인 매력이 묻어나왔다. 영화 속 삶을 접목하여 자신이 할 수 있는 이야기로 삶을 말하는 관점이 좋았다.

상처는 상처고 인생은 인생이다.(p256)’ 그가 쓰는 글의 장점 중 하나는 자기연민에 빠지지 않고 냉철하게 상황을 직시한다는 점이다. 내가 이렇게 아팠다고 구구절절 호소하지 않는다. 이런 점이 강한 신뢰감을 준다. ‘무엇보다 등 떠밀려 아무런 선택권이 없었다는 듯이 살아가는 게 아닌 자기 의지에 따라 살기로 결정하고 당장 지금 이 순간부터 자신의 시간을 살아내라는 것.(p274)’ 내 시간을 좀 더 잘 살아내고 싶어졌다.

 

요즘 학교에서 일주일에 한 번씩 캘리그래피를 배운다. 먹물을 이용해서 붓으로 글씨를 쓰고 조금씩 그림을 그리고 색을 입힌다. 서툰 가운데 재미있어 푹 빠져있다. 이 책의 제목 속 농담을 보니 자연스레 먹물의 묽고 진함이 연상되었다. ‘살고 싶다는말이 전해주는 파장이 화선지에 떨어진 한 방울의 먹물에서 그러데이션되는 농담과 닮은 이미지로 다가왔다.

삶은 수시로 변하는 진동수로 흘러간다. 책에도 삶처럼 진동수가 있다는 상상을 한다. 두 진동수가 만나는 순간 절묘한 공명이 일어나면 읽는 이에게 의미 있는 책으로 자리 잡는 거라고. 코드가 맞는 책을 만난다는 건 그래서 어려운 일이다. 지금 내 삶의 진동수와 일치하는 순간에 살고 싶다는 농담을 만난 걸까. 울림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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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상상력 사전
베르나르 베르베르 지음, 이세욱.임호경 옮김 / 열린책들 / 201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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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서없는 생각이 떠오를 때가 있다. 내가 생각해도 기발하다며 스스로 감탄하다 잠시 다른 생각으로 넘어가 한눈을 팔면 스르르 사라져버리는 생각 같은 거 말이다. 다시 떠오르지 않고 우쭐했던 느낌만 생생할 때면 쩝 뒷북을 치는 입맛을 다신다. 그런 경험이 몇 번 반복되자 잠을 잘 때면 핸드폰을 손닿는 곳에 두거나 외출할 때면 볼펜과 종이를 늘 챙기게 되었다. 시의 한 구절이나 기발한 문장들은 주로 자다 깨는 새벽이나 거리를 걷다가 떠오르기 때문이다.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책을 읽어본 적은 없으나 반가웠다. 워낙 유명한 작가였기에 무려 <상상력 사전>이라는 제목은 많은 기대감을 품게 했다. 한 권의 책으로 엮인 단상들이라 하니 무엇인지도 모르고 놓쳐버린 내 생각의 파편들이 남기고 갔던 아쉬운 마음이 떠올랐다.

 

물리적 두께감에 잠시 손가락이 주춤했지만 한 편 한 편이 이어지는 내용이 아니라 읽기에는 어려움이 없었다. 열네 살 때부터 써왔다는 384가지 생각의 조각들이 담겨 있는 메모 노트이다. 꽤 유용하고 놀라운 내용이 군데군데 들어있어 신선했지만, ‘상상력이라는 말이 주는 무게감에는 미치지 못한다는 생각에 아쉬움이 컸다. 맥락 없이 번호를 붙인 전체적인 구조가 체계성과는 거리가 멀어 산만했다. 굳이 체계를 찾자면 작가의 관심 분야의 흐름 정도랄까. <스치는 생각 사전> 정도면 적당했겠다. 그랬더라면 기대감을 걷어낸 상태에서 와! 기발한 상상을 많이 했구나! 라는 감탄이 쏟아졌을 텐데. 제목이 당기는 매력이 확 떨어진다는 게 딜레마이긴 하지만. 맞춤형 제목을 갖다 붙이는 것도 상당히 어려운 작업이지 싶다.

분류하기를 좋아하는 내 성향과 동떨어져서 실제보다 작게 보이는 걸 거다. 작가 자체가 주는 기대감이 워낙 크니까. 의미가 전혀 없던 건 물론 아니라서 612쪽을 넘고 나자 방대한 저술의 기초 공사 현장을 목격하고 난 듯했다. 몇 가지 분야로 내용을 분류하니 작가의 취향을 파악할 수 있었다. 그가 저술했던 몇몇 소설의 제목이 절로 떠올랐다.

 

생물과 수학 관련 내용이 많았다. 동물 대상 실험, 동물의 습성, 생물의 진화에 얽힌 이야기가 주를 이루었다. 소설<개미>의 바탕을 짐작할 만큼 곤충들을 자세하게 관찰하고 있었다. 숫자가 드러내는 신비나 몇몇 게임들은 신기했다.

심리학에도 관심이 많았는지 집단행동 연구, 의식의 흐름, 꿈에 관련된 내용도 많았다. 특히 뇌에 대한 실험이나 뇌의 구조를 분석한 내용은 과학적인 전문성이 돋보였다. 그의 작품 <><>이 궁금해졌다.

역사적인 분야에서 최초의 무엇에 관심이 많았나 보다. 고대 문명의 발생을 접하며 세계사의 기초를 공부할 수 있었다. 과거의 인물, 왕들, 전쟁, 고대 부족에 대한 역사적인 사건을 바라보며 인류의 발자취를 가늠해보았다. 언어에도 관심이 많은 그가 고대 언어, 어원, 다양한 지명의 유래를 소개할 때면 상식이 풍부해지는 듯했다.

이러다가 체하지 싶은 생각이 들 정도로 틈만 나면 등장했던 내용은 신화였다. 평소 관심을 갖던 사람이 읽는다면 신화 속 인물에 얽힌 이야기, 인물 이름의 유래에 대한 작가의 해석이 풍부하게 담겨 있어 노다지를 발견했다며 기뻐했을 정도로 자주 나왔다. 안타깝게도 나는 우스라는 어미만 등장해도 웁스반응이 일어나는 부류라 절반에 육박하는 266쪽의 오르페우스가 등장할 때까지 네버 엔딩 스토리를 견뎌내야 했다. 책을 집어 던지고 싶던 고비를 넘어서니 그나마 나은 내용이 이어졌다.

 

가장 인상 깊었던 건 새의 <>이 지닌 구조를 과학적으로 분석한 내용이었다. ‘알 껍데기는 밖으로부터 오는 힘에 대해서는 알을 품는 어미의 무게를 견딜 수 있을 만큼 단단하고, 안으로부터 오는 힘에 대해서는 새끼가 쉽게 깨고 나올 수 있을 만큼 약하다.(p354)’라는 내용으로부터 알끈과 공기 주머니의 역할에 대한 문장을 보며 감탄했다. 내가 이러려고 타들어 가는 신화의 사막을 건너왔구나 싶었다. 본 적도 없는 오아시스를 발견하면 이런 기분이 들까. 과학적인 원리도 놀라웠지만, 자아의 거듭남 내지는 심리적인 탄생이라는 관점에서 바라본 이 문장은 곱씹을수록 의미심장했다.

타성은 점차적으로 경화증을 가져온다. 때로는 자기가 정말로 원하는 것과 반대가 되는 것을 해보는 것이 유익할 수도 있다.(p418)’는 문장이 담긴 <반대로 하기>에서는 직접 행동을 변화시키고 싶어졌다.

기하학적 형태를 이용한 <심리 테스트>의 해설 부분을 가리고 직접 해보고 나서는 살짝 소름이 돋았다. 테스트 결과를 적어본다. 자신을 사랑스러운 사람으로 보고, 남들이 자신을 따뜻한 집 같은 사람으로 보고 있다고 생각하고, 인생을 전반적으로 조화롭게 보고, 자신의 영적인 측면을 투명하게 보고, 가족을 반듯하게 보고, 향긋한 애정관을 가진 사람이 바로 나라는 인간이다. 다소 뻘쭘. 흐흐흐.

 

그것이 무엇이든 처음부터 있었던 건 아니었으리라. 다양한 분야의 기원을 찾아 연어처럼 거슬러 올라가던 그의 문장을 따라와 보니 의미심장한 깨달음을 얻는다. 모든 것은 필요에 의해 만들어졌고 이 또한 순식간에 사라질 가능성이 충분히 있음을. 나를 둘러싼 우주도 그 안에 담긴 나도 물론이다. 언제 변할지 모를 존재라는 생각을 하며 이전보다 더욱 선명하게 나를 인식하니 의식이 붕 뜨는 기분이다. 숨을 쉬고 손가락을 움직이는 사소한 행동조차 솜털의 움직임처럼 예민하게 느껴진다. ‘그대가 이 책의 한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무한소의 어딘가에 새로운 우주가 생겨날지도 모른다. 그대 알고 있는가? 그대의 힘이 얼마나 어마어마한지를.(p280)’ 몰랑몰랑해진 세상에서 나의 상상력도 한 뼘 정도는 자라났을까.

 

 

p103, 10째 줄: 질투심의 ~

p69, 밑에서 5째 줄의 포보스(공포)와 데이모스(근심)’/ p103, 밑에서 10째 줄의 포보스(불안)과 데이모스(공포)’는 어떤 해석이 맞는지?

p240, 3번째 단락 5째 줄: 얀 반 아이크 ~ 에이크

p311, 밑에서 8째 줄: 선장을 ~

p344, 7째 줄: 이누이트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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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지 소녀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76
앨리스 먼로 지음, 민은영 옮김 / 문학동네 / 201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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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 많이 왔는데 거긴 괜찮아, 엄마?

우리는 집에만 있는데 뭘. 넌 출근하는데 어렵지 않았어?

지난주 금요일에 방학식 해서 오늘은 집이야.

다행이네. 요즘에도 바쁘냐?

일이 끊이지 않네. 그래도 틈틈이 책 읽으며 쉬고 있어.

지난번에 아팠던 건?

많이 나아졌어. 이제는 아이스크림도 먹을 수 있어.

엊그제는 **이가 다녀갔어. 출장 왔다가 잠시 들른 거라고.

걔네도 빨리 이사해야 할 텐데. 거긴 워낙 집값이 비싸서.

둘이 살아도 화장실 하나면 불편한데 넷이서 얼마나 불편할까. 예전엔 푸세식 화장실 하나를 몇 집이서 어떻게 이용했나 몰라.

오늘처럼 비 많이 오면 넘칠 것처럼 출렁거렸잖아. ~~

부모님과 함께 지나온 가난은 예전에 보았던 영화 속 장면처럼 가볍게 주고받을 수 있는 이야기가 되었다.

 

어머님이 자장면을 싫다고 하신 건 아니었지만 어려서부터 우리 집은 가난했었다. 그래서 가난에 대한 문학 작품을 접할 때면 유난히 예민해졌다. 조금 더 기대하게 되거나 조금 더 실망하곤 했다. 이 책은 후자에 가까웠다. 가난의 의미를 다시 한번 생각하는 시간을 가지게 되었으니 아예 의미가 없던 건 아니었지만 소설 자체로는 나에게 아무런 감흥도 주지 못했다.

부와 가난의 차이는 뭘까. 예전에 비해 물질적으로 훨씬 풍요로워진 지금, 소모하는 물질만을 따진다면 그리 많은 차이는 없다. 그렇다면 그 차이는 어디에서 오는 걸까. 손안에 빵이 없는 건 같은데 안 사는 경우와 못 사는 경우의 차이. 할 수 있는데 안 하는 것과 하고 싶은데 못하는 것. 분명 다르다. 전자에는 여유가, 후자에는 박탈감이 흐른다. 생활의 많은 면에서 이런 경우의 수가 적용된다면 영혼이 잠식되어 빈곤감을 느끼게 될 소지가 생길지도 모르겠다. 그게 어릴 적의 나에게는 매사 선뜻 나서지 못하는 소심한 성격으로 나타나곤 했다. 가능성의 수의 차이. 가난과 부의 결정적인 차이에 대한 나름의 결론이었다.

 

거지 소녀는 주인공 로즈의 가난했던 어린 시절부터 중년에 이르기까지의 삶을 피카레스크식 구성으로 그려낸 소설이다. 10편의 단편들은 각각 독립적인 소주제를 지니면서 전체적으로 긴밀하게 연결된다. 가난을 무대로 다양한 상황들이 픽션과 다큐를 넘나들듯 펼쳐진다.

뒷면의 겉표지에 쏟아지는 각종 찬사의 글은 기대감을 품기에 충분했다. 더군다나 무려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의 작품이라니! 한데 다 읽고 나니 힘이 빠졌다. 재미도 없었고 단편도 어미가 불분명한 말을 들은 듯 결말이 어정쩡했다. 장편으로 보았을 때도 도무지 어느 부분에서 감탄해야 하는지 난감했다. 동화 <벌거벗은 임금님>이 생각났다. 남들 다 입었다고 외치지만 나는 그러고 싶지 않았달까. 나와는 맞지 않는 소설이라고 굳이 고상하게 포장한다.

가정폭력, 계모, 학교 내 성폭력, 성추행, 불륜. 분명 자극적이고 드라마틱한 요소가 넘치는 소재로 가득했건만. 상황을 담담하게 그려내는 작가의 문체 때문일까. 작가가 독자에게 하고 싶은 말은 무엇이었을까. 장마철에 사회면이 빽빽한 신문지를 씹어먹은 기분이다. 그래서 뭐 어쩌라고.

 

표제작 <거지 소녀>에 등장하는 번 존스의 <코페투아왕과 거지 소녀>라는 그림은 가난에 관한 많은 사유를 불러일으킨다. 가난에 잠긴 소녀는 왕을 바라보지 않는다. 그녀는 어디를 응시하는 걸까. 가난 밖에 있는 왕은 어느 정도까지 소녀를 이해할 수 있을까. 왕관을 버리고 사랑을 선택한 왕과 거지 소녀의 이야기. 해피엔딩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에필로그도 동화같이 그려질 수 있을까.

코페투아왕이나 소설 속 패트릭은 모두 가난 밖에 있는 인물들이다. ‘그들은 타인의 뜻에 따르고 자신을 갈고닦으며 세상의 호의를 얻어야 했던 적이 없었고 앞으로도 그러할 것이었다. 부유하기 때문에 가능했다.(p145)’,‘누군가가 어떤 사람을 원하게 되는 것은 그 사람이 무엇을 해서가 아니라 그 사람 안에 무엇이 있어서인데(p147~148)’ 그들이 가난한 그녀들 안에서 발견한 것은 무엇이었을까. 다름에서 오는 호기심과는 무관한 감정이라 말할 수 있을까.

 

가난한 이는 물리량에 주눅이 든다. 물질 자체의 값어치보다 겉으로 드러나는 요인들에 의해 영향을 받는다. ‘어디를 가나 크기가 눈에 띄었고 특히 인상적인 것은 두께였다. 수건과 러그, 나이프와 포크 손잡이의 두께, 그리고 침묵의 두께.(p157)’,‘장소가 사람을 질식시킬 수 있다는 것을(p157)’ 소매가 짧아진 길이의 옷이라든지 코끝 시린 방 안의 온도라든지. 그 기억은 생각보다 오래가서 종종 울컥함과 함께 떠올랐다.

정규직으로 28년을 넘게 일해온 나는 엄청난 부는 아니지만 적어도 먹고 살 걱정은 하지 않는 만큼은 되었다. ‘왜 자신은 항상 잘못된 자리에 있는 것 같은지 의문이 들었다.(p237)’,‘떠나온 삶과의 간극(p334)’이 커서 한동안은 남의 자리에 앉은 듯 어색했다. 지금은 편안하다. 가난으로부터 떠나왔다고 확실하게 말할 수 있다. 그렇게 말할 수 있는 판단 지표를 나는 물리량에 대한 느낌에서 찾는다. 옷을 전혀 사지 않는 지금, 15년이 지나 목이 다소 늘어진 티셔츠를 입고 다녀도 전혀 서글프지 않다. 구멍 난 양말을 통해 드러나는 엄지발가락에서 수치스러움이 느껴지지 않던 순간, 나는 가난으로부터 빠져나왔음을 느꼈다.

 

가난을 다룬 소설을 읽을 때마다 어린 시절을 꺼내어본다. 소설 속 상황들이 비빌 번호라도 된 듯 자연스럽게 내가 겪었던 갈등, 눈물, 슬픔, 좌절, 선택의 봉인이 풀린다. 그런 순간들이 지금은 감사하다. 굳은살처럼 마음을 단단하게 해주었으니. 그 이전에는 상처가 있고 이는 아픔을 전제로 하니 굳이 돌아가고 싶지는 않지만.

소설을 읽는 내내 가난했던 시절이 생각났다. 10여 년 이어지던 아버지의 실직, 닥치는 대로 일을 하셨던 어머니, 대학교 1학년 때까지 살았던 단칸방, 방문을 열면 훅 들어오던 바깥 공기, 밖과 별반 온도 차이가 없던 방에서 얼어버린 걸레, 천장에서 떨어지던 빗물을 받기 위해 놓였던 방안의 그릇, 결혼하기 전까지 한 번도 가져보지 못했던 나만의 방, 실업계 진학을 고민했던 중학교 3학년, 과외 아르바이트로 한 번도 제대로 쉬어보지 못했던 대학 때의 주말들을. 그 중심에 자리한 부모님을 떠올렸다. 어려운 시절을 함께 지나온 형제들에게 끈끈한 유대감을 품게 해주셨고, 물리량에 압도당하지 않는 유머 감각으로 자식들을 놓지 않으셨던 당신들로 인해 나는 웬만한 시련에는 비틀거리지 않고 가난의 비를 맞고 있는 이들의 심정을 조금 더 이해할 수 있는 심장을 갖게 되었다. 나에게는 52년간 읽어온 나의 부모님이 가난에 관한 최고의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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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감 2020-07-31 09:2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제가 생각한 ‘가난‘소재의 줄거리가 아니어서 좀 실망했어요. 게다가 연작소설이라 시간과 배경이 그냥 휙휙 점프해버려서 곳곳의 구멍들이 되게 아쉽더라고요. 역시 저는 장편이 더 잘맞다는걸 또한번 느꼈습니다ㅎㅎ
‘할 수 있는데 안 하는 것과 하고 싶은데 못하는 것.‘ 이 말에 너무 공감합니다. 하나 더 붙이면 ‘하고 싶고 할수도 있는데 못하는 것‘이 저의 모습이랄까요. 뭘 선택하든 단가를 따져보게 되더라고요. 비용, 시간, 에너지, 리스크, 영양가, 이득 등등. 그러다보니 손해를 안보려고 선뜻 나서질 못해요. 포기하면서 나름의 타협을 한달까요. 어쩌면 저는 이런 내용들을 작품에 기대했었나 봅니다.

말씀하신 가난의 물리량이 참 흥미로워요. 낡은 옷만 걸쳐입어도 수치스럽지 않다는 건 스스로에게 당당하기 때문이라 보여집니다. 어릴때 늘 유행만 쫓는 친구들을 보면서 저는 너무 한심해했었거든요. 무조건 비싼 걸 사야 자신의 가치가 올라간다고 여기는 부류가 되고 싶지 않았어요. 개성도 전혀 없고요. 어린 나이에 저도 나비종님과 비슷한 생각을 가졌던거 같아요. 남이 나를 어떻게 평가하느냐 이전에 내가 나를 어떻게 평가하느냐가 더 중요하다고 믿었고, 그 믿음대로 행동하니 자존감이 생기더라고요. 제 인생에서 값진 교훈 중 하나였습니다. 그 덕분에 이렇게 책리뷰도 쓰고 나비종님과도 알게되어서 대화를 나누고 있네요 ^^

작품성으로는 나쁘지 않았지만 완성도면에서는 영 거시기했던 책이었는데 무사히 완독하셔서 축하드립니다. 다음에는 더 괜찮은 작품을 선정해볼게요! 7월도 이제 몇시간 안남았는데 마무리 잘 하시고 좀더 나은 8월을 맞이하시길 바랄게요! 고생하셨습니다^^

나비종 2020-07-31 10:45   좋아요 1 | URL
서술 방식의 차이에서 오는 이질감같기도 해요. 제가 원한 건 하늘에서 땅까지 강하게 내리꽂는 소나기 내지는 가느다랗더라도 한 줄로 이어지는 빗줄기 같은 거였나 봅니다. 작가는 천천히 내리는 눈발처럼 하늘하늘 담담하게 글을 써내려갔는데 말이죠.
무언가를 하기까지는 한 사람의 온 에너지가 간절하게 모여야 된다고 생각해요. 하고 싶고 할 수도 있는데 못하는 것이 있다면 무의식적으로 하고 싶다는 마음이 덜해서가 아닐까요. 그렇게까지 하고 싶지는 않다, 그 정도로 사고 싶지는 않다, 뭐 이런^^

자존감. 살아가면서 매우 중요한 요소인 것 같아요. 세상에서 나를 가장 사랑하고 존중해야 하는 사람은 바로 나여야만 한다고 생각해요. 그걸 깨닫기까지 참 오래도 걸리더라구요.^^

어떤 작품을 선정하셔도 최상의 의미를 끌어내는 능력의 소유자라 작품 선정은 필꽂히시는대로 하셔도 아~~~무 상관없습니다만ㅋㅋ
물감님도 어제보다 나은 오늘을 맞이하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