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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송 (무선) ㅣ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23
프란츠 카프카 지음, 권혁준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3월
평점 :
헉! 신에게는 아직 넘기지 못한 5분의 1이 남았는뎁쇼? 이게 진정 끝? 투비컨티뉴드로 믿었던 글들이 미완성 장들의 모임이었다니! 열나게 달리다 갑툭튀한 낭떠러지를 만난 나는 진정한 부조리 앞에서 식은땀을 흘린다. 도대체 맥락 없는 내용으로 어떤 리뷰를 뽑을 수 있단 말인가!
소설『소송』은 부조리의 결정판이다. 세상의 모순을 몽땅 까발려줄 테닷! 작정하고 펜을 든 저자 앞에서 논리를 논하지 말지어다. 미완성 소설이라고는 하지만 완성작으로 발표되었대도 딱히 달라졌을 것 같지 않다. 읽기 전에 후루룩 넘겨보았을 때에는 빽빽한 게 팔만대장경 조판을 보는 듯하더니. 막상 읽어보면 책장 넘김이 생각만큼 나쁘지는 않다. 담긴 내용이 갑갑해서 그렇지 가독성은 좋은 편이다.
소송을 당한 주인공 요제프 K가 법원을 둘러싼 인물들과 만나며 소송의 그물에서 벗어나려다 끝내 죽임을 당하는 이야기. 놀라운 건 죽는 순간까지도 소송당한 이유를 모른다는 점이다. ‘왜?’에 집중하며 소설을 읽으면 낭패를 본다는 것. 언제쯤 나올까. 절반 가까이 넘어가면서도 그노무 ‘왜’를 볼 수 있으리라는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던 나. 설마 마지막에는 나오겠지. 5분의 4를 지나니 주인공 K가 개를 부르짖으며 죽는 게 아닌가. 대체 어디다 시선을 두어야 하나요.
작가는 이 소설을 통해 무엇을 말하고 싶었을까. 읽는 데 걸린 시간의 몇 배가 흐른 후에야 어렴풋이 깨닫는다. K를 둘러싼 모순된 상황 전체를 읽어야 한다는 것을. 범위를 넓히면 이유가 아예 없는 건 아니다. 보다 커다란 틀에서 찾아야 했다. 소설 안에 갇힌 소송의 이유 따위가 중요한 소설이 아니었던 거다.
꿉꿉하면서도 숨이 턱턱 막히는 공간을 오가는 K는 소송으로부터 자유로워지기 위해 안간힘을 쓴다. ‘소송’으로 표현되며 소설 전체를 끌고 가는 상황은 개인의 삶을 옭아매는 다른 무엇일수도 있다. 그를 향해 파도처럼 오가는 사람들은 저마다 K에게 미션을 던진다. 가상의 게임공간으로 투입된 K가 통과해야할 관문이랄까. 그리고 모든 상황의 뒤에는 이를 지켜보는 거대한 존재가 있다. 법원으로 대표되는 거대한 조직은 한 국가일 수도, 사회일 수도 있다. 꼭두각시를 조종하듯 K의 삶에 영향을 미치는 존재는 결국 K를 세상에서 지워버린다.
법률 세계의 오래된 격언으로 등장하는 말이 인상적이다. 가만히 있는 자는 언제든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저울 접시에 올라가 자신의 모든 죄와 함께 저울질당할 수 있다는 것. 카프카는 구성원들의 삶을 커다란 틀에 가두고 통제하려는 체제의 모순을 까발리고 싶었던 걸까. 피의자를 대변해야 할 변호사는 되레 소송에 처한 사람들을 지배하고 직무태만을 합리화한다. 번듯해야 할 것 같은 법원은 허름한 가정집 다락방에 위치한다. 최고의 우두머리로 상징되는 인물은 막연한 존재로만 묘사된다. 누구도 실체를 본 적이 없다.
나에게 특히 인상적이었던 장면이 두 군데가 있다.
첫째, ‘변호사’라는 제목에서 등장한 장면이다. 거대 조직의 정체성을 날카롭게 직시하는 문장들이 있다. 작가는 법원 조직과 그 안에서 영향을 받는 사람들을 언급한다. 유일하게 올바른 길은 현실의 상황을 받아들이는 법을 배우는 것이라 말한다. 터무니없는 일이 있더라도 조용히 있어야 한다고. 거대한 법원 조직은 영원한 부유 상태에 있어 누군가 독자적으로 무언가를 바꿔버리면 자신만 추락하게 될 뿐이라고. 조직의 모든 것은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으므로 사소한 장애는 다른 곳에서 손쉽게 보완하여 이전과 다름없는 상태를 유지한다는 것이다. K를 둘러싼 인물 대부분이 어떻게든 법원과 연결되어 있다는 점은 조직의 연결성을 상징하는 것으로 여겨진다.
관성처럼 이어져오는 편견이란 얼마나 강한 힘을 지니는가. 거대 조직은 조직의 룰을 합리적이라는 틀로 세운다. 잔혹동화에 등장하는 맞춤형 침대처럼 인간의 키를 틀에 맞추려 한다. 답정너다. 주인공 K는 끝내 그 침대에 눕게 된다.
둘째, ‘종말’이라는 제목으로 서술된 결말은 소리 없는 아우성을 연상케 한다. 내가 주목한 부분은 약하고 여위어 보이는 어떤 이의 등장과 그의 행동과 이를 본 K의 생각과 리액션이다. 여기에는 짙은 상징성이 내포되어 있다고 본다. K가 겪은 혼란과 부조리가 종합 서술된 장면이라고 생각한다.
문제의 그 어떤 이는 K를 향해 양팔을 뻗는다. 그 액션이 정확히 어떤 의미인지 K로서는 알 도리가 없다. 어떤 이가 너무 멀고 높은 곳에 있기 때문이다. 데칼코마니처럼 두 손을 쳐들고 도와달라는 듯 손가락을 펼치는 K의 리액션은 거대 조직의 늪으로 소멸되기 직전의 마지막 불꽃같은 안간힘이다.
K가 내뱉은 물음표의 폭풍 랩에서 이 소설의 정체성이 보인다. ‘누굴까? 친구일까? 좋은 사람일까? 관련된 사람일까? 도와주려는 사람일까? 한 사람일까? 아니면 전체일까? 아직 도움이 가능한 것일까? 생각해내지 못한 반대 변론이라도 있는 걸까? (중략) 그가 한 번도 보지 못한 판사는 어디에 있는 것일까? 그가 아직 이르지 못한 상급 법원은 어디에 있는 것일까?’
찬물을 파란색으로, 더운물을 빨간색으로 표시하는 방식은 언제부터 시작되었을까. 덕분에 우리는 푸른 별이 붉은 별보다 뜨겁다는 사실을 믿기 힘들지 않은가. 뜨겁게 불타는 별을 품고 있는 영하 270도의 우주, 빛이 강할수록 더욱 진해지는 그림자. 세상의 많은 것들이 모순적인 형태로 우리를 둘러싸고 있다.
뜨거우면서 차가울 수 있는가. 말도 안 되는 소리라며 비웃던 때도 있었다. 아이스크림 튀김을 알기 전까지는 말이다. 과학적으로도 완벽한 원리를 생각하다보니 오늘은 다른 점이 눈에 들어온다. 모순처럼 보이는 현상을 과감하게 시도해볼 생각을 한 누군가는 세상의 본질을 알았으리라고.
합리적이라는 말은 이상향에 가까운 개념인걸까. 드라마에서나 등장하는, 이상을 열망하는 인간의 손끝에서 흘러나오는 꿈같은 존재처럼 말이다. 행동경제학에서 연구하는 인간들은 버젓이 비합리적으로 행동한다. 고전경제학을 뛰어넘어 행동경제학이 주목받는 이유는 현실의 모습에 가깝게 인간의 행동을 예측하는 거라고 들었다. 우리의 입안을 즐겁게 하는 수많은 겉바속촉이 존재하듯 세상은 온통 부조리투성이이다. 카프카는 이러한 사실을 본능적으로 깨달은 작가가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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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342, 밑에서 2째줄: 후기구조조의 → ~주의
p354, 밑에서 3째줄: 펠리치 → 펠리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