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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꾸로 읽는 세계사 - 전면개정
유시민 지음 / 돌베개 / 2021년 10월
평점 :
사회적 거리 두기를 재치 있게 표현한 영상을 본 적 있는가. 촘촘히 줄지어 있는 성냥개비들을 따라 불이 번지는 중. 줄에서 빠져나와 거리를 둔 성냥개비 하나 출현. 덕분에 불길이 멈춘다. 코로나 시작 무렵인 2020년 3월, 스페인 출신 비주얼 아티스트 후안 델컨이 인스타그램에 올린 ‘안전성냥’이라는 작품이다. 음성도 자막도 없이 한 사람이 미치는 영향의 중요성을 12초 만에 전달한다. 삶의 다른 분야에 확대 적용해도 억지스럽지 않다. 볼 때마다 여전히 감탄스러운 아이디어이다.
봄을 바라보는 달이어도 2월은 여전히 겨울에 머문다. 전국 각지에서 산불 관련 뉴스가 빈번하다. 원인은 제각각일지라도 거대한 불길은 하나같이 사소한 불씨에서 시작된다. 발화는 점에서 출발하지만 움직이는 순간 자취를 남긴다. 점으로 끝나지 않는다.
멀리서 보면 점으로 인식되는 개개의 사건들도 마찬가지인 듯하다. 번지는 불길인 듯 흐름을 만든다. 큰 사건은 작은 사건들이 사슬처럼 연결된 결과물이다. 역사에 담긴 제목의 외피를 벗겨내면 툭 터진 베개 속 좁쌀인양 사건들이 쏟아진다. 묵직한 뭉텅이도 거슬러 올라가면 무심코 넘어가기 쉬운 하나의 파편에서 시작되었으리라. 문제는 지나고 나서야 변화의 시작점을 그나마 가늠할 수 있다는 점이다. 사소함에는 결코 사소하지 않은 무게감이 있다.
『거꾸로 읽는 세계사』는 20세기 세계사에서 발생한 열한 가지 큰 사건을 다룬 보고서이다. 드레퓌스 사건, 사라예보 사건, 러시아 혁명, 대공황, 대장정, 히틀러, 팔레스타인, 베트남, 맬컴 엑스, 핵무기, 독일 통일과 소련 해체 등 역사적 사실과 그보다 작은 사건들을 연결 짓는 정보로 구성된다. 낱낱이 파헤치니 결정적인 성냥 한 개비로 작용한 인물들이 드러난다.
한 세기를 아우른 저자는 물질적 생활의 생산양식이 사회적∙정치적∙정신적 생활과정 전반을 제약한다는 마르크스의 주장을 언급한다. 자본주의와 공산주의 체제, 이와 관련된 사건들과 여러 국가를 살펴보면 어느 정도 타당성이 보이는 주장이다. 생산양식을 지배하는 건 사상이다. 생각이 우리 삶에서 커다란 비중을 차지한다는 방증이리라.
에필로그에 의하면 20세기의 가장 큰 정치적 사건은 볼셰비키 혁명이다. 기술적 사건은 핵폭탄 개발이며 혁명적 사건은 범용 디지털 컴퓨터의 발명이다. 책 안에 저자의 해석은 거의 들어가 있지 않다. 덤덤히 사건을 재구성하여 세계의 역사를 되돌아보게끔 한다. 이 책을 통해 오래된 미래를 그려본다. 생각을 강요받지 않아서일까 내용에 대한 거부감이 들지 않는다. 해석은 오롯이 독자의 몫으로 남는다. 해석은 ‘사실’이 아니라 ‘신념’의 변수라고 생각하기에 역사에 대한 해석이 달라질 수밖에 없는 이유를 여기에서 찾는다.
드레퓌스 사건에는 각기 다른 한 사람이 영향을 미치면서 전환의 변곡점이 된다. 위대한 신념은 다른 이의 삶을 바꿀 수도 있다. ‘사실’ 자체보다 자신이 ‘믿고 싶은 것’을 믿는 게 인간의 본성일까. 그 아래로 영문도 모른 채 스러지는 존재가 안타깝다.
네가 왜 거기서 나와? 헉헉 대는 습기 찬 문장으로 나를 졸라 숨 막힘을 시전하시던 졸라님을 여기서 보게 될 줄이야! 의외의 장소에서 만난 친구인 듯 반가웠다. 『인간 짐승』과 『목로주점』 안에서 거침없이 뿜어대던 포스를 좋은 데 쓰셨다. 포탄비가 쏟아지는 전쟁터 같은 상황에 떠밀리던 드레퓌스 앞에 당당하게 방어막을 만들어주셨다. 펜은 칼보다 강하다는 문장의 수행평가 버전이다.
드레퓌스의 결백은 단번에 밝혀지지 않았다. 각자의 위치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한 사람들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남편을 믿었던 아내, 자신과 무관한 이의 일임에도 불구하고 우연히 발견한 진실을 외면하지 않았던 중령, 동생의 이름을 세상에 드러내려 고군분투한 형, 대통령에게 고발이 담긴 공개서한을 발표한 에밀 졸라, 그 글을 게재한 신문의 운영자 등이다. 개별적인 한 사람으로 존재한 그들은 사소함의 힘을 믿었던 걸까. 사소함이 모여 이루어진 거대한 파도는 결국 비열한 권력 뒤에 숨었던 자들을 무너뜨린다. 어느 한 사람이라도 ‘나 하나쯤이야, 나 하나로 어떻게’라는 생각을 지녔더라면 불가능했을 터이다.
100년의 역사 한 가운데 굵직하게 자리 잡은 사건은 두 차례의 세계대전이다. 인터넷 자료를 조금 더 찾아본다. 원인과 결과를 둘러싼 인간의 탐욕을 바라본다. 깨진 유리창 이론을 떠올린다. 사소한 것들을 방치해두면 커다란 범죄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는 범죄 심리학 이론이다. 유리창을 깨뜨린 자동차를 거리에 방치했을 때 대조군과는 달리 엉망이 되었다는 실험 결과는 시사점이 크다. 제1차 세계대전의 시작도 사라예보 사건이라는 작은 불꽃이었다. 이 사건이 도화선이 되어 제국주의 국가들이 앞 다투어 이해관계를 따져보며 뛰어든 결과물이 아닌가.
개개인의 삶은 제각기 다르다. 나의 삶은 이를 운용하는 나에게 달려있다. 외부로부터 불어오는 바람이 나의 발걸음을 달라지게 만드는 순간, 그 바람은 더 이상 나와 무관하지 않게 된다. 이해관계로 얽힌 소수 인간들의 이기심이 바람으로 작용하는 거라면 동일한 유형의 사건이 반복되어서는 안 될 일이다.
세계대전에서 돈과 권력을 향한 소수 제국주의 국가들이 탐욕을 감추고 과학기술을 향해 손을 뻗었던 모습을 보며 씁쓸해진다. 전쟁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스스로 불러낸 에너지의 역습, 핵무기를 생각하면 일순 두려워진다. 과학기술은 발전하지만 인간정신은 진보하지 않는다는 레오폴트 폰 랑케의 말이 의미심장하다.
예전의 나는 민주주의의 반대말이 공산주의인줄 알았다. 정치체제인 민주와 독재, 경제체제인 자본주의와 사회주의 및 공산주의를 구분하지 못한 무지의 소치이다. 공산주의는 과격한 넘사벽에 담긴 무서운 말이었다.
잘못된 선입견을 장착한 채 사회과학서적 안에서 공산주의나 사회주의 이념을 언급한 문장들을 가끔 만났다. 제일 먼저 받은 느낌은 당혹감이었다. 공산주의의 사전적 의미가 유토피아에 가까웠기 때문이다. 동일 낱말에 대한 의미인가. 기존에 가졌던 개념과 전혀 달랐다.
제대로 바라보면서 다른 시선이 생겼다. 동시에 이상과 현실은 얼마든지 다를 수 있음을 깨달았다. 이상적인 개념이라도 추악한 본성이 개입되면 부패된 단백질인양 변질된다는 사실을 알았다. 페르소나가 셀프와 다른 것처럼.
일련의 사건들을 바라보면서 정치의 중요성을 절감한다. 전쟁도 정치의 연장이며 과학도 정치와 연결되면 흑화 될 수 있다. 경제도 정치와 무관하지 않다. 히틀러는 이름만으로 많은 것이 설명되는 인물이다. 이 책을 읽다보니 그의 정치와 주변 사람들이 보인다. 저마다의 이유로 악의 구현에 동참한 사람들 역시 수많은 죽음에 대한 책임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모든 악의 연대’라는 부제가 설명하듯 색깔만 다른 욕망의 릴레이가 그와 같은 인물을 완성한 거라고 감히 말하고 싶다.
팔레스타인은 지금까지도 이어지는 분쟁의 중심지이다. 그 옛날 히틀러에게서 유대인을 향하던 화살촉이 유대인에게서 팔레스타인을 향하고 있다. 학교 폭력이나 가정 폭력에서도 그런 사례를 종종 본다. 학대를 받았던 아이들이 어른으로 자라서 또 다른 이들을 학대하는 경우이다. 베트남 전쟁에 참전한 한국 군인들이 현지 민간인을 대상으로 저질렀다는 만행도 결국 마찬가지 아닌가. 피해자가 가해자가 되는 아이러니라니!
많은 행위 안에 이런 속성이 드러난다. 사랑을 받아본 사람이 사랑을 줄 수 있다는 말이 있는 것처럼 말이다. 아프리카에서 시작된 인류의 DNA가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고 들었다. 인간의 행위 역시 생물학적 연결성을 갖는 걸까. 불교에서 말하는 업보처럼 투 비 컨티뉴드를 구현하는지도 모른다. 잔인한 싱크로율이다.
어느 누구에게도 다른 인간을 학대할 권리는 없다. 맬컴 엑스를 언급한 사건에서 흑인노예를 정의한 짧은 문장을 보는 순간 소름이 돋는다. 노예는 ‘말하는 가축’이었다나. 하아~ 생물학적 근거가 전혀 없음에도 불구하고 인종을 구분하여 짓밟는 집단을 경멸한다. 절망스러운 건 이 책의 앞 부분에 종합적으로 그려진 11개 사건의 연대 구분이다. 그림에 나타난 그래프의 길이이다. 짧은 실선 좌우로 날개처럼 뻗어있는 점선은 차별적인 학대가 여전히 끝나지 않았음을 나타낸다. 인간 기저에 깔린 본성일까. 끈질긴 이어짐이 징하다.
삶은 학문이 아니다. 대공황은 ‘경제학’과 ‘경제를 살리는 일’이 별개임을 보여준다. 이론과 실제는 다른 방향을 가리킬 수 있다. 벤젠 고리인 듯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불행들. 몇 몇 문장으로 표현된 당시 상황을 가늠하니 갑갑해진다. 시장이 인간의 ‘필요’가 아니라 지불능력이 있는 소비자의 ‘수요’에 응답한다는 내용에 공감한다. 전쟁에서 가장 큰 피해를 보는 쪽은 매번 힘없는 백성이다. 경제적 붕괴 상황에서 가장 큰 피해를 보는 쪽 역시 힘없는 노동자이다. 더욱 답답해진다.
러시아 혁명부터 중화인민공화국의 탄생, 베트남에서 일어난 혁명들과 독일 통일, 소련 해체 과정에서 발생한 혁명들을 돌아보며 ‘바뀜’을 생각한다. ‘예전과는 다른 사람들이 예전과는 다른 명분을 내세워 예전과는 다른 방식으로 인간을 억압하고 착취했다’는 문장은 많은 시사점을 준다.
이상적인 이론을 토대로 시작되었어도 시간은 종종 본질을 흐리게 만드는가. 결정적인 한 사람에 의해 바뀔 수도 있지만 이상적인 한 사람의 힘만으로 바뀌지 않는 것도 세상이다. 여러 명이 참가한 계주처럼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던 이상은 어느 순간 배턴을 떨구기도 한다. 다른 빛깔로 반복적으로 구현되는 억압과 착취의 현장을 바라본다. 다시 가슴이 답답해진다. 혁명으로도 바꿀 수 없는 생물학적 본성이 존재하는 걸까봐 문득 겁이 난다.
돈바스 기사들이 속속들이 올라온다. 나무위키에 수록된 ‘돈바스 전쟁’관련 내용의 최근 수정 시각이 실시간에 가깝게 업데이트된다. 『거꾸로 읽는 세계사』가 아니었더라면 눈길조차 주지 않았을 기사들이다. 제목을 읽는 것을 넘어 클릭하고 몇몇 지역들을 지도에서 검색하는 나. 불과 몇 달 전만 해도 상상할 수 없던 변화이다.
사건 발생 시기를 간략한 멘트와 함께 연대표처럼 정리한 그림을 각각의 장 앞에 배치한 구성이 좋았다. 역사에 무지한 나에게 좋은 지도가 되었다. 각주가 해당 페이지 하단에 위치한 점에서는 편집자의 친절함이 엿보였다. 깊은 밤 뒤척이는 불면증 인간인양 일일이 책을 들썩일 필요가 없었다. 세심한 배려가 고마웠다.
애니메이션 <명탐정 코난>은 사건을 바라보는 현명한 시각을 알려준다. ‘이 살인 사건에서 가장 많은 이득을 보는 사람이 누구일까요. 그를 주목하면 동기를 유추할 수 있습니다.’라고. 러시아-우크라이나의 대치 상황에서 내가 주목하는 점은 주변국들의 반응이다. 왜 그런 반응을 보일 수밖에 없는가. 이득을 보는 쪽은 어디인가. 일련의 사태들을 어떤 관점에서 바라볼지 어렴풋한 기준이 세워진다.
전쟁 상황에는 인간의 욕망이 결합된다. 얼마나 교묘하게 폭력의 당위성을 확보하느냐. 위장술의 차이만 있을 뿐이다. 새삼 놀랍지도 않다. 20세기 이전의 전쟁에서도, 다가오지 않았으면 하는 미래의 어느 시기라도 별반 다르지는 않으리라. 한결같은 탐욕이 예측된다는 점을 다행이라 해야 하나. 우스운 한편 씁쓸하다.
모든 시작은 단순하다. 하나의 점에서 시작되었으리라. 실체를 지닌 것이든 인간의 감정처럼 무형의 것이든. 그토록 찬란하고 창대해질 줄 짐작조차 하기 어려웠으리라. 드라마 <기상청 사람들>에서는 삶과 자연이 보이는 ‘시그널’을 언급한다. 주인공의 내레이션이 인상적이다. ‘신호는 단순하다. 때로는 소리로, 때로는 색깔과 진동으로 이 세상에 안전한 것은 없다고 계속해서 내게 신호를 보낸다.’
드라마 설정과 연관되지만 인간의 역사에 동일 문장을 적용해도 전혀 이질감이 느껴지지 않는다. 세계사의 결정적인 장면들을 보며 삶을 돌아보는 시간을 갖는다. 내 삶의 결정적인 장면들은 무엇이었을까. 몇몇 선명한 점들이 되감기한 필름 위에 찍힌다.
기록되는 하나의 문장은 많은 동기를 딛고 피어난다. 한 인간의 역사에서든 세계로 확장하든 일련의 사건들을 따라가면 공통점이 보인다. 시작은 사소했다는 점이다. 에필로그에 언급된 문장처럼 어떤 중대한 사건도 독립해서 일어나지 않는다. 세계적인 전쟁에서조차 시간을 거슬러 가면 작은 불씨가 존재한다. 거대한 나무도 하나의 씨앗에서 시작되지 않는가. 줄기가 자라고 잎이 달리고 꽃이 피고 열매가 매달리기까지. 사건과 그 결과는 별개의 것이 아니다. 하나의 사건은 점이 아니라 선으로 놓이기 때문이다.
하늘에서 뚝? 그 어떤 것에도 ‘갑자기’는 없다. 하나의 빗방울은 도깨비방망이로 뚝딱 만들어져 나의 얼굴에 떨어지는 것이 아니다. 수많은 증발과 응결, 충돌이 반복된 결정체이다. 한 송이 꽃을 피우기 위해 봄부터 소쩍새는 그렇게 울어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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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70, 피의 일요일 설명: 페테르부르트 → 페테르부르크
p277 그림: 1964년과 1963년의 사건 배치 순서가 연도순으로 바뀌면 좋겠음
p337, 마지막 줄: 38년 → 28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