걷는 듯 천천히
고레에다 히로카즈 지음, 이영희 옮김 / 문학동네 / 201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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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백한 선입견이다. 제목에 이끌려, 표지에 이끌려 선택한 책이다. 전개될 내용이 중요하지 않았다. 마음에 평화를 주는 선물을 스스로에게서 받은 기분이랄까. 포장지에서 은은히 전해지는 정적인 고요가 그저 좋았다.

걷는 듯 천천히는 영화감독이자 TV 프로듀서인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주변을 묘사한 에세이이다.

직업의 특성 상 작가의 삶에서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영화 관련 이야기가 주를 이룬다. 영화 제작 과정에의 에피소드와 배우이야기, 그 안에서 깨닫는 인간의 본성을 서술한다.

작가의 일상 이야기는 어린 시절 부모님과의 체험이 그려진다. 그의 글을 따라가며 자연스레 나의 어린 시절을 끌어온다. 돌아갈 수 없다는 명백한 고정점에서 거슬러 올라가서일까. 내용은 하늘하늘한 표지의 색채보다 다소 짙게 다가온다. 조금은 아리고 약간은 코끝 찡한 순간이 책갈피인 듯 읽는 동안 간간이 오고 간다.

리뷰도 일정 부분은 읽은 책을 따라가는가. 잔잔한 마음으로 천천히 이 글을 적고 있다. 한 글자, 한 글자가 소박한 오솔길을 산책하는 발자국인 듯하다. 키보드로 입력할 때마다 사락사락 낙엽 밟는 소리가 나는 것만 같다.

 

작가 이력을 보니 TV 프로듀서이자 영화감독으로서 유명한 사람인가보다. 각종 국제영화제에서의 수상 경력이 화려하다. 영화 <원더풀 라이프>는 들어본 듯 익숙한 제목이다. 나는 영화에 문외한인데다 영화라는 장르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아 나머지는 제목조차 들어보지 못했다는 게 살짝 미안해진다.

책날개에 적힌 영화감독으로서의 신념이 마음에 든다. 평범한 사람들이 사는 구질구질한 세계가 문득 아름답게 보이는 순간을 그리고 싶다는 관점이 에세이에도 고스란히 반영이 된다. 일상을 이렇게 그리는 사람이 제작하는 영화라면 어떤 분위기일지 짐작이 간다. 한마디로 꾸안꾸? 내추럴 빈티지 패션의 포스를 장착했으리라.

보는 이들이 상상력으로 빈 곳을 채우는 식의 영화를 만든다는 작가를 보며 시의 속성을 떠올린다. 그의 영화는 시적이겠구나. 감상하는 이로 하여금 각자의 경험을 떠올려서 작품 속에 빠져들게 하겠구나.

그의 선배가 했다는 조언에 움찔한다. ! 영업 비밀을 들켰다. 나 역시 시를 쓸 때 사용하는 방법이기 때문이다. 누군가 한 사람을 떠올리며 프로그램을 만들라는 말이다. 시를 쓸 때마다 어떤 대상이나 장면을 떠올린다. 둘 이상의 합체로 만들어진 대상도 있다. 배우가 캐스팅되고 무대가 만들어지면 나는 그 장면을 그대로 스케치한다. 붓 대신 시를 도구로 사용할 뿐이다.

 

책속의 <배우 이야기>편에서 인상 깊었던 문장이 두 군데 있다.

첫째, 기키 기린이라는 배우가 했다는 말이다. ‘다들 배경을 연기할 수 있는 배우들이니까라는. TV에서 보았던 한 배우의 인터뷰 장면이 떠오른다. 그 배우는 존경하는 배우를 언급하면서 다음과 같이 이유를 밝힌다. 그분이 왜 대단한지 아느냐고. 그 영화에 나왔었나? 관객들이 고개를 갸웃거릴 정도로 존재감을 조절할 수 있어서라고. 모두 다 초점이 되려 하면 제대로 된 장면이 구현되지 않을 터이다. 배경으로서의 역할이 충분히 이루어질 때, 장면은 생명력을 얻으며 빛을 내리라. 가야할 때를 분명히 알고 떨어지는 낙화가 있기에 생명의 순환 고리가 흐르는 거니까.

둘째, 하시즈메 이사오라는 배우를 묘사한 작가의 말이다. ‘모든 것은 사소한 움직임과 움직임의 사이에 표현된다. 대사와 대사 사이. 움직이기 전에 멈춰 있는 약간의 시간을 늘리거나 줄이는 식으로 당황스러움과 친절함, 유머를 멋지게 나눠 연기한다.’. 배우도 충분히 멋졌겠지만 그 배우를 저리도 섬세하게 파악하는 감독의 시선 역시 못지않게 멋지지 않은가.

여백을 그리면 주제가 선명해진다. 그림자가 사물을 더욱 명확하게 드러내보이듯이. 배경처럼 존재하는 평범한 일상은 특별함의 의미를 명확하게 만들어준다. 잔잔한 물결처럼 밀려오는 파도를 계속 맞이하는 우리는 어느 순간 깨닫는다. 일상을 도움닫기로 삼아 더 나아갈 힘을 얻고 있음을.

 

사진가와의 대담 에피소드에서는 작가가 대담 전에 미리 사진집을 보다가 울었다는 내용이 등장한다. 사진 속에 그려진 감정에 작가 자신이 겹쳐서이다. ‘작품은 시간을 거치며 변화해간다. 그리고 변화한 나와 다시 만난다.’는 문장이 문학작품의 속성과도 겹쳐진다. 같은 책이건만 삶의 다른 시간대에 읽으니 전혀 다른 책으로 느껴진 경험을 한 적이 종종 있다. 삶이 가져다준 경험치가 관점의 변화를 가져왔기 때문이다. 다른 각도에서 바라보는 석고상이 전혀 다른 모습으로 스케치되는 것처럼. 다른 면이 보이는 건 당연한 결과이리라.

한 편의 문학작품에서 어떤 이와 공감대의 싱크로율을 보이는 장면을 만났다면 그 순간만큼은 같은 각도에서 대상을 바라보았다는 증거일 터이다. 이 책에서 작가의 부모님이 등장하는 장면에서 자주 걸음을 멈추었다. 여든의 고개를 넘어 천천히 삶을 걸어가시는 당신들이 자꾸 떠올랐기 때문이다. 작가가 느꼈던 감정이 어떤 질감이었을지 알 것만 같아서 공감대어린 뭉클함을 안았다.

감각을 자극하는 경험은 사람 자체보다 오래 간다. 그 때 들었던 음악, 코끝을 스치던 냄새, 입 안 가득 채웠던 맛, 손끝을 쓰다듬던 감촉. 그 순간 함께 한 이가 감각과 연결되면 그 장면의 경험은 감정으로 코팅이 되는 걸까. 사람도, 감각을 자극하던 모든 것이 지나가도 감정은 여전히 마음 깊이 남아있는 걸 보면. 잊은 듯 삶을 걸어가다 어느 순간 같은 감각의 경험과 마주하면 연결되어있던 감정이 휘리릭 올라오니 말이다.

 

시이든 수필이든 심지어 리뷰에서조차 내 글에 담기는 소재는 대부분 나이거나 나의 가족이거나 학생들이었다. 사람들이 생각보다 다른 이들에게 관심이 없다는 사실을 잘 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의 글은 이들과 동떨어지지 못한다.

국가적이고 사회적인 스케일을 전혀 찾아볼 수 없는 글이 얼마나 설득력 있게 다가갈 수 있을까. 종종 마음 한 구석에 고이는 고민이었다. <머리말을 대신하여>에 나오는 작가의 문장이 많은 위안을 준다. ‘보편성이란 무엇일까? (중략) 자신의 내면적 체험과 감정을 탐구해서 어떤 종의 보편에 닿는다면 그보다 더 좋은 것은 없다는 말에서 힘을 얻는다.

이야기보다 인간이 중요하다는 작가. 그의 곧은 심지에서 희망을 본다. 평범한 삶에서 빛의 부스러기를 발견할 줄 아는 예리한 시선이 좋다. 찬란하게 빛나지 않아도, 그대로의 모습으로도 충분히 아름다울 수 있음을 그는 당당하게 외친다. 다소 서툰 이들을 영화의 주인공으로 캐스팅하는 감독, 틀에 짜인 대본보다 날 것 그대로 드러나는 인간의 본성을 존중하는 감독, 그는 삶의 모습을 영화에 고스란히 담는 사람인 듯하다. 작가가 전하는 메시지는 뚜렷하다. 우리는 모두 주인공으로 우뚝 설 수 있다고 격려한다.

삶의 모든 걸음을 씩씩하게 나아갈 힘을 전해주는 작가의 에너지가 좋다. 그의 문장을 따라 천천히 걷다 보니 나도 할 수 있을 것만 같아서 찡했다. 책을 다 읽고 나니 뜨끈한 국밥 한 그릇을 심장으로 원 샷 한 기분이 들었다. 몰랑몰랑해진 심장이 나의 삶을 향해 천천히 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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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감 2022-04-08 15:4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나비종님, 5~7월 모임 선정도서를 가지고 왔습니다 ㅎㅎ

1. 제르미날 1~2 - 에밀 졸라
2. 햄릿 - 윌리엄 셰익스피어
3. 밤은 부드러워라 - 프랜시스 스콧 피츠제럴드

에밀졸라는 당분간 계속 독파할까 합니다 ㅋㅋㅋ
목로주점처럼 분량은 많지만 금방 읽을거라 생각해요!
셰익스피어랑 스콧 피츠제럴드 작품도 오랜만이죠?? 기대가 됩니다요!
날씨가 갈수록 좋네요. 분리수거하러 가는 발걸음마저 좋더라고요ㅋㅋㅋ
봄기운 마음껏 만끽하시길 바랄게요 ^^

나비종 2022-04-08 16:51   좋아요 1 | URL
졸라 좋습니다~ㅋㅋ
베니스와 개츠비 정도의 작가면 무난할 것 같구요.^^
셋 다 기대되는데요?ㅎㅎ

드디어 집에서 자유롭게 분리되셨군요ㅋㅋ 축하드립니다~^^
다음 달에 봬요~
 
불편한 편의점 (벚꽃 에디션) 불편한 편의점 1
김호연 지음 / 나무옆의자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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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토록 예술적이고 우아한 PPL을 본 적 있는가. 퇴근길에 편의점에 들렀다. 옥수수수염차를 샀다. 카페에 은은하게 깔리는 BGM처럼 이 소설의 모든 에피소드에 등장했던 음료를 새삼 맛보고 싶어서이다. 광동에서 김호연 작가에게 평생 무료로 제공해도 될 만큼 광고 효과가 탁월했다고 단언한다. 평소 전혀 왕래를 하지 않던 그곳을 오로지 옥수수수염차 한 병을 사기 위해서 갔으니까. 가까운 슈퍼에도 파는 그것을 굳이 먼 길 돌아 방문한 이유는 하나. 이 책을 읽고 나니 편의점을 가보고 싶은 마음이 들어서이다. 일종의 성지 순례랄까.

마침 투 플러스 원이다. 소설 속 원 플러스 원이 떠오른다. 묘하게 뿌듯하다. 한 병 사러 갔다가 얼떨결에 세 병을 득템한다. 소설을 읽고 수행평가 한 가지를 실시한 기분이다.

사실 편의점은 내게 다소 꺼려지는 장소였다. 장소의 고요함 때문일까. 계산대 앞에만 서면 일대일 면접을 하듯 긴장했다. 일회용 계산을 해치워 버리듯 후다닥 계산하지 않으면 혼날까봐 조바심 내는 아이 모드였다. 이 책을 읽기 전까지 편의점은 내 삶의 여집합의 영역에 속하는 장소였다.

한 권의 책이 발걸음을 바꾸었다. 계산대 앞에 선 사람과 계산하기 위해 밀물과 썰물처럼 오가는 사람들의 삶이 겹쳐졌다. 이전과는 다른 시선으로 그곳을 바라보게 되었다. 마음이 편해졌다.

 

소설 <불편한 편의점>은 알코올성 치매로 기억을 잃은 노숙자 독고가 편의점 주인 할머니의 파우치를 찾아준 덕분에 편의점 알바로 고용되면서 그곳을 오가는 사람들과 소통하다 기억을 찾고 자신의 길을 찾아가는 이야기이다.

등장인물은 모두 8명이다. 사회적 아웃사이더들이다. 제각기 삶의 고단함에 젖어있으며 잠시 피곤한 몸을 기대려 편의점에 들르거나 가족과의 소통에 삐거덕거리는 존재들이다. 취업을 못하고 편의점 알바를 하는 시현, 아들과의 소통이 단절된 채 편의점 알바를 하는 선숙, 딸들과의 소통에 단절된 중년의 가장 경만, 어머니와의 소통이 단절된 채 사회적 진출의 언저리에서 배회하는 민식, 폐기물인 듯 자조하며 위태위태한 흥신소를 어설프게 운영하는 노년의 곽. 더불어 작가 생활의 고민 끝에 절필을 감행하려는 인경은 작가의 자화상으로 보인다.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주제는 선명하다. 소통이다. 특히 가족의 의미를 되새기게 만든다. 혈연이나 서류상의 관계가 아니라 사회적인 관계에서도 이상적인 가족의 의미를 찾을 수 있다고 말한다. 또한 가족과의 소통 방법에 해결책을 제시하여 구성원 사이에 자연스러운 소통이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 가를 시사한다.

 

전체적인 짜임새에는 변두리에서 의기소침한 채 그저 살아내는 인간들을 작가가 어떻게 바라보느냐가 고스란히 드러난다. 한마디로 따스한 시선이다. 작가에게는 캐릭터 한 명 한 명이 정말 소중했던 듯싶다. 편의점계의 용어마다 한 사람씩 연결 지어 핀 조명을 비춘다. 한 사람씩 각 챕터의 주인공이 되어 자신의 입장을 말한다.

여기에 주인공 독고가 개입되면서 탁구 시합인 듯 유머 섞인 대화가 오간다. 등장인물들은 이제껏 부족했던 요인이 무엇이었는지를 스스로 깨닫는다. 아이러니한 건 그 과정에서 주인공 독고 역시 치유를 받는다는 사실이다. 작용과 반작용인 듯 사람과 사람 사이의 소통은 두 사람 모두에게 치료제가 된다.

꽁꽁 묶여있던 매듭이 서서히 부드러워진다. 매듭을 푸는 건 당사자의 몫일 터이다. 분명한 건 각각의 이야기 말미에는 얼어붙은 듯 보였던 차가운 매듭이 곧 풀리리라는 온기 어린 예상이 된다는 점이다.

작가는 사회적 약자의 모습을 세밀하고 날카로운 시선으로 스케치한다. 인간의 탄생 이후 가장 먼저 맺어지는 가족 관계에 초점을 맞춘다. 그들 사이에서 바람직하게 이루어져야 할 소통 방법을 묻고 있다.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처음부터 끝까지 줄곧 감탄하며 읽었다. 문학이란 이런 거지. 표현력의 지존을 드디어 만났다. 같은 말을 해도 어쩌면 이런 식으로 표현할 수 있을까. 평소 생각하던 이상적인 표현력을 장착한 문장들이 폭포수처럼 콸콸 쏟아졌다. 기본적인 유머에 적절하게 상황을 묘사하는 문장, 일회성으로 끝나지 않고 수미쌍관법처럼 앞서 나온 표현의 맥락을 이어주는 흐름, 사물의 본질에 근거한 비유가 적재적소의 상황에 들어앉는다. 놀라운 싱크로율로 문장을 구현하는 맛이 배가 된다. 논리적으로 커다란 그림을 그리는 비유이다. 화려한 수사 어구가 아니어도 문장에 생명을 불어넣을 수 있는 김호연 작가는 비유의 달인이다.

서사의 전개로 판단하건데 탄탄한 스토리이기에 영화화되어도 충분한 작품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가가 구현하는 맛깔 나는 문장의 맛은 넘사벽이기에 절반의 감동만을 가져가리라.

이를 테면 똥 냄새를 표현한 문장 같은 거다. 저자는 시적이고 탁월한 비유를 시전한다. ‘늦가을 은행나무 가로수에서 떨어진 열매가 사내와 비슷한 냄새를 풍기고 있었다.’는 문장에서 감탄한다. ‘구린 냄새가 났다가 이렇게 변모하다니! 영화화한다면 주변인들의 표정으로 분위기를 표현했으리라. 한데 그냥 은행 열매 냄새도 아니고 심지어 낭만적인 문장이다. 내내 내레이션만 깔 수는 없으니 이런 표현력이 자아내는 분위기를 영화 속 장면으로 어떻게 구현한단 말인가. 이쯤이면 작가의 뇌구조가 궁금해진다.

 

표현력과 스토리에 압도당한 나는 마지막 책장을 덮고 나서 한동안 멍한 시선으로 허공을 응시한다. 이게 뭐라고 뚫어지게 바라볼 일이냐. 써야 할 리뷰는 단 한 글자도 꺼내지 못한 나는 공부에 집중하기 어려운 아이들이 책상 정리, 주변 정리로 뒤척이듯 엄한 책표지만 물끄러미 바라본다.

인터넷에서 책을 다시 검색해본다. 책 제목을 클릭하는 순간, 갑자기 시야가 훤하다. 나의 것과 다르다. 나는 시커먼 밤인데 모니터 속은 대낮이다. 초반 29쇄로 발행된 책 vs 초반 39쇄 발행을 과시하는 책. 썰렁해 보이는 밤의 편의점 풍경 vs 40만 부 기념 벚꽃 에디션으로 모니터 화면에 활짝 피어난 봄. 단순히 밤과 낮의 차이가 아니다. 오호? 같은 그림, 다른 장면 찾기에 도전한다. 책표지를 노려보기 시작한다. 집중력과 관찰력을 요구하는 이게 은근한 도전 의식을 부른다.

첫째, 편의점 앞 의자에 앉아있는 인물이다. 원본에 있던 주인 할머니가 벚꽃 본에서는 젊은 아가씨로 변했다.

둘째, ‘,글자의 색이다. 원본에서는 약간의 금빛으로 노년의 희끗한 머리칼을 연상시킨다. 벚꽃 본에서는 꽃잎을 닮아 연한 분홍빛이다.

셋째, 편의점 앞 길고양이의 등장이다. 원본에 등장하는 생명체는 주인 할머니, 주인공 독고 두 명이다. 벚꽃 본에서는 젊은 아가씨, 주인공 독고에 길고양이가 한가로이 졸고 있다. 느긋한 봄이 덩달아 누워있는 듯하다.

한 편의 리뷰를 쓰기 위해 봄부터 소쩍새가 울어도 시원찮을 판에 두 개의 책 표지만 번갈아 노려보다 하루가 홀딱 흘러가버린다.

 

별점 다섯 개를 넘어 열 개를 매긴대도 10점 만점에 주저 없이 10점을 매길 정도로 엄지 척을 내세울 만 한 작품이다. 하지만 리뷰를 쓰는 데는 며칠 동안 고민을 했다. 한 줄 요약하면 참 좋았다.’이건만. 처음에는 더 이상의 문장이 도무지 생각나지 않는 거다. 참 좋았다, 정말 좋았다, 아주 좋았다, 너무 좋았다, 이토록 좋다니, 이리 좋으면 어쩔? 이라 쓸 수도 없고. 저자의 탁월한 표현력에 압도당한 여파가 컸던 탓이다.

이런 작품을 대상으로 어떤 리뷰를 쓸 수 있단 말인가. 메시지도 선명하고 이토록 깔끔한 표현력 앞에서 나는 실제로 본 적도 없는 나이아가라 폭포를 떠올렸다. 며칠 동안 한 글자도 쓰지 못하고 그저 멍하니 생각만 줄기차게 했다.

드디어 독서모임의 디데이! 나는 마감 당일까지 한 글자도 못쓴 작가가 되어 모니터 앞에 앉는다. 새하얀 빈문서1’을 마주한다. 무슨 말을 할까, 어디서부터 어떻게 고개만 떨구게 될 줄 알았건만. 의외로 나의 손이 마법에 걸린 분홍신이라도 신은 듯 절로 움직이는 거다. 타이핑 속도는 스타카토로 글자를 연주하듯 경쾌하게 자판 사이를 누볐다. 소설 속 작가 인경의 말처럼 어떤 글쓰기는 타이핑에 지나지 않는다.’는 게 무슨 의미인지 알 것 같았다. 심장이 두근거리면서 묘한 카타르시스가 느껴졌다.

 

아이들과의 소통이 단절된 중년이나 폐기물을 떠올리며 노년을 걸어가는 사람들은 나와는 다른 노선으로 지나가는 삶이었다. 그 모습이 조만간 내게로 와 나의 것이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잊은 듯 살아왔다.

서울에 갔을 때 버스를 타고 종로의 거리를 스쳐 지나간 적이 있다. 잿빛 머리칼에 허름한 점퍼를 두른 채 삼삼오오 모여 있던 노숙자들. 회색의 비둘기 떼가 옹기종기 모여 있는 장면이 떠올랐다. 원래의 풍경처럼 거기에 당신들이 있던 듯 아무 감흥 없이 지나치던 기억도 있다.

작가는 무심코 지나치던 주변의 삶을 돌아보게 만들어주었다. 여기를 바라봐야 해. 라며 강요하지 않는다. 따스한 햇살인 듯 유머스러운 문장을 다만 그들을 향해 비출 뿐이다. 김호연의 문장에는 사람들로 하여금 자연스레 그곳으로 발걸음을 하도록 만드는 힘이 있다. 내내 웃다가 마지막 책장을 덮으면 뭉클하게 다가오는 감동은 그 힘의 여파인 것이다.

40만 부의 위용이 환한 봄빛과 어우러져 희망을 전한다. 이런 메시지를 담은 이야기가 이토록 많이 읽혔다는 것은 많은 이들의 마음속에 인간을 향한 온기가 전해졌다는 의미이기에. 작가의 문장은 독자들의 마음속에 따스한 봄꽃을 피웠으리라.

뒤죽박죽이던 머리칼도 한 방향으로 계속 빗으면 결이 생긴다. 마음의 결도 마찬가지이리라. 행동을 바꾸는 책, 발걸음을 바꾸는 책, 시선을 바꾸는 책, 노숙자가 처음부터 노숙자는 아니었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 하는 책. 작가에 이끌려 책속의 문장을 따라가니 인간을 향해 흘러가는 결이 느껴진다. 덩달아 향하고 싶어지게 만드는 결, 어쩌면 이미 향해버린 지도 모르는 결이 봄바람인 듯 살랑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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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감 2022-04-05 08:4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나비종님도 이 책 읽으셨군요. 넘 좋죠? ^^
저는 김호연 작가님이 직접 책 보내주셨어요. 어쩌다보니 인연이 되어서 ㅎㅎㅎ
요새는 벚꽃 에디션으로 새단장을 했네요. 봄이랑 딱 맞는 컨셉이라 저도 탐나네요 ㅎㅎ
책 자체가 좋은 것도 있지만 코로나가 이렇게 장기화 되는 것도 40만부에 한 이유하겠죠??
저마다 소통도 단절되고 마음에 여유들이 사라지다 보니 책을 읽으며 온정을 그리워하게 되나봐요.
저도 사람냄새가 그립다고 리뷰에 적었었네요. 그래도 나비종님과 계속 소통해서 다행이에요 ^^
벌써 꽃이 활짝 폈네요. 미세먼지도 요즘 덜해서 봄 기분이 제대로 나는데요?^^ 좋은하루 되세요!

나비종 2022-04-07 21:07   좋아요 1 | URL
예ㅎㅎ 정말 좋았습니다. 내용이면 내용, 표현이면 표현, 어느 하나 완벽하지 않은 곳이 없더라구요. 취향저격ㅎㅎ

시커먼 책을 읽고 나서 리뷰를 올리려고 책을 검색하니 이게 나오더라구요. 제가 가진 건 절판되었더군요. 작가님과 인연이 있으셨군요. 부럽습니다~^^

맞아요, 코로나.. 읽으면 마음에 따스함이 퍼지는 책입니다.^^

저도 물감님과의 소통이 이렇게 이어져서 참 좋습니다~ㅎㅎ

물감님도 봄꽃 활짝 피는 나날들 보내시기를 바랍니다~

화요일부터 동거인 확진이라 나름 부양가족 부양하느라 은근히 피곤해서 답변이 늦었습니다.ㅡㅡ;; 몸 사리는 중이예요ㅋㅋ
 
오만과 편견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54
제인 오스틴 지음, 류경희 옮김 / 문학동네 / 201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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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 머리 긴 치마를 입은 넌 나를 어떻게 상상했니. 직업이 교사라 하면 가정이나 국어 가르치시냐는 말을 수도 없이 들었다. 다소곳하게 바느질내지는 요리께나 할 것 같은 인간으로 자주 오해받아왔다. 현모양처의 모델이라나. 제일 듣기 싫었던 말은 참하다, 착하다는 말이었다.

틀을 깨고 싶다는 생각에 학생들 앞에서는 좀 더 오버했다. ‘나 원래 부끄러워서 어디 가서 말 한 마디 못하는 인간이야.’ ‘샘이요?!’ 나의 말을 농담으로 받아들일 지경까지 만들어놓았다. 부끄러워서 어디 가서 말 한 마디 못하던 시절도 있기는 했다. 몇 번의 알까기를 하고 나니 그런 성향은 먼 옛날 화석 속에 파묻혀버린다. 과격한 말을 참 우아하게도 한다며 반전매력에 끌렸다는 인간이 등장했다. 글쓰기에 몰두한 것도 첫인상을 깨기 위해 나름대로 찾은 조용한 반란이었을 지도 모른다.

 

소설오만과 편견19세기 영국 여성의 결혼과 첫인상을 주제로 전개되는 이야기이다. 알고 보니 반전남 다아시는 대놓고 오만한 첫인상을 시전한다. 첫인상이 준 편견으로 그를 섣불리 판단했던 여주인공 엘리자베스는 지혜로운 사리판단으로 그의 진면목을 발견한다. 사랑에 빠진 두 사람의 결혼은 해피엔딩이다.

소설 속에는 두 주인공 이외에도 세 쌍의 조연 남녀가 각기 다른 이유와 과정을 거쳐 결혼한다. 일부 당사자를 포함한 주변 어른들은 집요할 정도로 결혼에 집착한다. 결혼이 이토록 목맬 일인가. 어처구니없어 보이는 인물들의 행동은 시대적 배경을 알면 거부감 없이 이해할 수 있다. 당시 사회에서는 결혼이 그토록 목맬 수밖에 없던 수단이었던 거다.

 

당시 영국 사회에서 여성의 결혼은 생존과 직결되는 수단으로 비중이 컸다. 이유는 크게 두 가지이다.

첫째, 여성의 사회적 진출이 극히 제한되었다는 점이다. 성인 여성은 생계 수단으로 삼아도 될 만큼 제대로 된 직업을 갖기 어려웠다고 한다. 결혼을 통해 남편의 수입에 의존하는 게 앞으로의 삶을 영위하는 최적의 수단이 된다.

둘째, 부모의 재산을 물려받는 방법도 녹록치 않게 했던 한사상속제도이다. 소설 속에서 줄기차게 언급되는 이 제도는 많은 등장인물을 움직이는 동력으로 작용한다. 부모의 재산은 오로지 아들에게만 상속된다. 다음 세대의 상속인을 지정해놓아 몇 대를 내려가도 집안에 재산이 묶인다. 아들이 없는 집안에서는 아버지가 돌아가시면 가까운 친인척 중 서열이 높은 남자에게 유산이 상속된다나.

 

여성의 관점에서 보면 한사상속이라는 속 터지는 제도에 자립 수단도 빈곤한 처지까지 겹쳐있는 넘사벽 사회이다. 사회적 배경이 고스란히 담긴 소설은 당시의 독자들에게 촌철살인의 메시지를 건네면서 현실적으로 다가왔으리라. 결코 가벼이 넘길 수 없는 주제이기에 치밀하고도 영리한 접근 방식이 필요했을 거라 짐작한다.

소설 속 인물들의 서사는 작가 특유의 유머감각이 묻어나는 대화를 통해 흥미진진하게 전개된다. 제인 오스틴의 역량은 여기에서 빛을 발한다. 여주인공을 통해 풍자와 직설적인 대화체를 아슬아슬하게 넘나들면서 당당한 여성상의 비전을 제시한다. 분노유발자들이 곳곳에서 두더지 게임처럼 불쑥불쑥 나타나도 바로 사이다 엘리자베스가 청량하게 해결해준다. 그녀를 따라가면 이야기의 파도타기를 제대로 즐길 수 있다.

 

엘리자베스의 등장이 고구마가 아닌 사이다로 느껴지는 이유는 그녀의 합리적인 성격에 있다. 리지는 모든 상황을 객관적으로 놓고 판단한다. 그녀는 사람들의 성격에 모순이 있음을 인지하는 인물이다. 돈이 목적인 결혼과 분별 있는 결혼의 차이에 대하여 질문을 던진다. 어디까지가 신중함이고 어디서부터 탐욕일까 진지하게 분별하고자 한다. 타고난 합리성으로 그녀는 다아시나 위컴에 대하여 가져왔던 잘못된 편견이 자신의 허영심에 있다고 판단한다.

소설 속에서 허영심은 여러 인물을 통해 오만못지않게 자주 등장하며 본질을 드러낸다. 여동생 메리는 오만과 허영심의 차이를 다음과 같이 언급한다. 오만은 스스로의 평가와 관련 있고, 허영심은 타인이 우리에 대해 생각해주기를 바라는 바와 더 관련이 있다고. 언니 제인은 종종 우리를 기만하는 건 우리 자신의 허영심이라고 말한다. 여러 사람들의 의견을 종합해서 최적의 결론을 이끌어내는 엘리자베스. 그녀는 흔들리지 않는 냉철한 이성의 소유자이다.

 

합리주의자로 그녀와 쌍벽을 이루는 인물은 남주인공 다아시이다. 처음부터 끝까지 줄기차게 올곧은 성격의 소유자이다. 그 앞에서 은 없다. 페르소나 너머에 존재하는 날것 그대로의 본성을 꿰뚫는 어마무시한 이성을 장착하고 있다. 그 앞에서 겸손한 척을 하면 낭패 보기 십상이다. 겸손이란 종종 그저 의견이 없다는 소리이며 때로는 간접적인 자기 자랑에 불과하다고 말하는 인물이니까. 물끄러미 얼굴을 바라보다 모공까지 보인다며 윤두서 자화상 같은 말투를 시전할 것 같은 느낌이다. 이런 성격이 다른 이들로 하여금 오만하다는 편견을 불러온다.

다아시의 츤데레는 소설 후반부로 가면서 합당한 이유가 붙는 오만함으로 변모한다. 한결같은 면을 보면 소나무가 떠오른다. 푸르름을 고수하던 그이기에 엘리자베스에 대한 사랑을 깨닫고 거침없이 직진하는 모습이 멋져 보인다. 그의 사랑에 색깔을 입힌다면 255,0,0 의 순도 100% 빨강이 어울리리라. 빵빵한 재력은 단지 거들뿐.

 

사람이 변한 건 아니리라. 사람의 성격만큼 고치기 어려운 것도 드물다고 하니까. 타고난 기질이 변하기는 하는 걸까. 종종 생각한다. 사람들 사이의 관계가 변하는 건 상대를 바라보는 관점이 달라졌기 때문이라고. 과거가 달라지는 것이 아니라 과거를 바라보는 시각이 달라지는 것처럼 말이다.

편견을 바꾼 엘리자베스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그 사람을 알면 알수록 더 나아진다는 말은, 그 사람의 생각이나 매너가 나아졌다는 의미가 아니라 그의 성격을 더 잘 이해하게 됐다는 의미라고.

다양한 성격의 인물들을 바라보니 요즘 유행한다는 MBTI 성격유형검사가 생각난다. 나는 대략 ISFJ에 가깝다. 등장인물들의 성격을 떠올려본다. 엘리자베스는 ESTJ, 다아시와 베넷씨는 ISTJ. 제인은 ISFP, 빙리는 INFP. 리디아, 위컴, 콜린스, 샬럿, 베넷 부인 등 5명은 모두 ENFP. 캐서린 드 버그 부인은 INTJ. 작가가 설정한 성격이나 이 글을 읽는 당신의 관점과 어긋나기도 할 테지만.

 

몇몇 부부들의 MBTI를 분석해본다.

엘리자베스와 다아시는 외향성과 내향성을 제외하고 나머지 성향에서는 공통점이 많다. 그래서 서로를 바라본 다음부터는 대화가 물 흐르듯이 자연스러운 느낌이 든 건가?

제인과 빙리는 둘 다 내향적이고 감각과 직관에서만 차이가 있으며 나머지는 공통점이 많다. 부드럽게 어울리는 커플로 본다.

콜린스와 샬럿, 리디아와 위컴 부부는 모두 한통속. 똑같은 인간들이 끼리끼리 만난 커플이랄까?

베넷씨와 베넷부인은 이토록 다를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정반대의 성향이다. 맞는 게 단 한 가지도 없다. 물과 기름? 둘 중 누가 더 안쓰러운 상황일까. , 나름 추구하는 방향에 집중하며 따로 또 같이 잘 지내는 것 같기도 하고.

이 와중에 저들 중 누구와도 겹치지 않는 고고하신 캐서린 부인은 홀로 꼿꼿하시다.

 

인간은 0.3초만으로 상대에 대한 호감과 비호감을 판단하며 3초 정도면 첫인상을 결정한다고 한다. 아무런 정보 없이도 의견을 달리 할 수 있는 건 배경지식처럼 이미 심어져있는 편견의 역할이 크리라. 어설픈 정보와 결합한 첫인상 역시 편견을 심어놓는다.

드라마 <스물다섯, 스물하나>속에서는 편견을 떠올리게 만드는 가슴 아픈 상황이 등장한다. 같은 행동을 해도 전교 1등은 공부를 잘한다는 이유로 면죄부를 받는다. 꼴등은 사소한 행동조차 매번 혼이 나는 이유가 된다. 현실의 사회에서도 편견이 작용하는 사례가 흔하다. ‘얼굴도 예쁜데 공부도 잘하네.’얼굴이 못생겼으면 공부라도 잘해야지.’로 뉘앙스가 달라진다. 일반적인 미적 기준에 부합되는 외모의 소유자에게 많은 이들은 관대한 듯하다.

 

휘리릭 1분 듣기로 전체를 판단했다가 가끔 낭패를 본 기억이 있다. 첫인상은 1분 듣기와 같은 의미가 아닐까. 절대적으로 신뢰하지 말아야 할 맛보기 음악처럼 말이다. 제인 오스틴의 소설은 인간이란 존재를 쉽게 판단하는 어리석음을 향해 경고의 메시지를 보낸다. 인간은 곰국처럼 우려야 깊은 맛을 내는 존재라는 사실을 일깨운다.

좋은 첫인상을 주는 사람이고 싶은 건 인지상정이다. 임팩트 있는 첫인상도 물론 중요하지만 첫 인상이 가져오는 편견에 쉽게 빠지지 않도록 항상 긴장할 필요가 있다. 첫인상을 깨기 위해서는 200배 이상의 강렬한 인상을 주어야 한다던가. 바라보는 입장을 바꾼다면 200배 이상의 노력을 해야 한다는 의미이기도 하리라. 짧은 머리에 찢청이 나의 첫인상이고 싶은 마음도 있어서 출근 따위는 없는 인간인양 이 새벽까지 두 눈 부라리며 글을 쓰는 중이다. 언제쯤이면 까도 까도 끝없는 매력의 양파 글이 될까. 지금 이 순간~마법처럼~?♪ㅎㅎ

 

 

몇 번 읽어도 이해가 되지 않아 잠시 원문이 궁금했지만 그냥 지나간다. 봐도 모를 것이기 때문에..

p382 중간: 오천 파운드의 유산~

p384 중간: 죽은 뒤에는 오십 파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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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감 2022-03-22 17:0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매력 중에 매력은 역시 반전매력인가 봅니다. 과격한 말을 우아하게 한다는 건 어떤것인지 그려지지가 않는데요? ㅎㅎ 저도 나름 반전 매력이 있습니다. 평소에는 말을 아끼는 편이지만, 실은 꽤 수다쟁이라서 다들 신기해하거든요. 그러면 반응이 딱 갈리는데, 떠날 사람은 보내주고 남는 사람은 좋아해주고 뭐 그런거죠ㅋㅋㅋ

이 책은 제가 썩 좋아하지 않는 장르와 소재인데 대만족하며 읽었어요. 결혼에 목숨거는 당시 사회배경을 알고 나니 완전 꿀잼 관전하게 되더라고요. 여러가지로 억압되고 억눌려있는 여성들 가운데 마이웨이하는 엘리자베스의 존재감이 참 대단했어요. 그렇다고 막 걸크러쉬를 외치는 것도 아니라서 남녀 독자들이 다 좋아하지 않을까 싶어지네요ㅎㅎ

사이다 같은 행동들도 미워할 수가 없는 게 다 분별있는 판단과 행동에서 비롯된 거라 좋더군요. 편견에 빠져버린 본인의 잘못을 빠르게 인정하는 모습도 보기 좋았구요. 보통은 자존심 상해서 억지주장을 밀어붙이거나 그냥 돌아서거나 하는데. 또, 그 시대의 허영심을 꼬집기란 결코 쉽지 않았을텐데. 저자의 넓은 아량이 느껴져요. 모든 면에서 <설득>보다도 우수하더라는..^^

관점이 바뀌었단 말씀에 동의합니다. 저도 사람은 변하지 않는다고 생각해요. 성격이 얼마나 어떻게 다른지 잘 증명해줄 mbti분석이 있네요! 다아시의 오만함을 빙리는 아무렇지 않아했죠. 콜린스의 비호감도 샬럿에겐 문제되지 않았고요. 참 재미있었습니다 ㅎㅎ 저는 이부분에 대해서 짚신도 다 짝이 있다는 표현을 적었어요. 성향이 같든 다르든 서로의 시각이 일치하는 게 중요하겠구나 싶어요. 서로의 호감/비호감 신호가 오가는 게 뭐 이렇게 재미있는지...ㅋㅋ

대면일 때는 못느끼다가 비대면일 때에 매력을 발견하기도 하더라고요. 얼굴도 모르는 사람의 글에서도 매력이 느껴지니까요 ㅎㅎ 저도 한번 마음이 돌아서면 정말 끝인 편인데, 이 책을 보고서 반성하게 됩니다... 여튼 이번에도 좋은 독서였어요. 이번 1분기 모임은 전부 대성공이군요 ㅋㅋㅋ다음 선정도서들도 다 좋았으면 합니다^^ 3월 마무리 잘 하세요!!

나비종 2022-03-22 20:52   좋아요 1 | URL
ㅋㅋ 반전매력, 쩔죠~ 이 원리가 적용된 최고의 스킬이 유머잖아요. 사람은 생각지 않은 갑툭튀에 웃게 된다고 하더라구요. 아직은 심히 어설퍼서 좀 더 내공을 쌓아야 하지만 첫인상과 다른 면이 발견되는 캐릭터라는 말을 가끔 듣습니다.ㅎㅎ
<과격한 말을 우아하게 하는 예> 해맑고 부드럽게 웃으면서 ˝닥쳐~˝ ˝꺼져~˝ 뭐 이런 거?
저는 평소 과묵한 편입니다. 말보다는 글로 대화할 때 더 편안함을 느끼는 성격이구요.
수다쟁이 물감님도 잘 그려지지는 않습니다.ㅋㅋ 글이 매력적인 사람이 의외로 말을 적게 하는 경우를 많이 봤거든요~^^

저도 결혼이라는 주제는 비선호 장르인데 이 작품은 경쾌해서 좋았습니다. 엘리자베스는 제인 오스틴이 추구한 이상적인 캐릭터 아니었을까요?
맞아요. 막무가내 센언니가 아니라 합리적이라서 매력적이었어요. 순리대로 갈등을 풀어나가는 점이 마음에 들었어요. 편견을 가졌었음을 인정하는 과정도 깔끔했구요.^^

네! 저도 <설득>보다 좋았어요. 좀 더 명확한 흐름이 느껴져서 상쾌했거든요. 안개 낀 게슴츠레함은 딱 질색이라~ㅎㅎ

갈수록 느껴요. 사람, 참 안 변하는 존재라구요. 특히 본질로 파고들수록 고갱이가 바뀌는 건 드물다는 생각을 종종 했어요.
MBTI로 나름 분석해봤는데 판단이 애매한 인물도 있었지만 대략 파악해서 사랑의 작대기를 그어보았어요. 등장하는 부부 사이가 더 잘 이해되었다는ㅎㅎ
시각의 일치. 정말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가수 이효리가 예능 프로그램에 나와서 했다는 말이 기억나네요. 세상에 좋은 사람은 없다. 나랑 잘 맞는 사람이 있을 뿐이라는 말이요.^^

대면일 때보다 비대면일 때가 상대방에게서 더욱 내면에 가까운 모습을 보게 되는 경우가 많다는 생각이 들기도 해요. 상대방의 스캔하는 시간이 조금 더 길어진달까요. 초고속 카메라를 느리게 재생하는 것처럼요.ㅎㅎ
맞아요. 얼굴도 본 적 없고 대화 한 마디 나눠보지 못한 사람의 글에 끌리는 신비라니요~ 제인 오스틴, 포에버~ㅎㅎ
시간이 조금 더 흐르니까 한번 돌아섰던 마음이 가~~~끔은 서서히 모가지를 돌리기도 하더라구요.ㅎㅎ
올레~ 1분기의 성공을 자축합니다~ㅋㅋ 2분기도 열심히 픽업해주세요~ 멋진 고전 헌터로 거듭나소서~ 꽃을 시샘하는 바람의 마수에 걸려들지 마시구요, 잘 지내세요~^^*
 
거꾸로 읽는 세계사 - 전면개정
유시민 지음 / 돌베개 / 2021년 10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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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적 거리 두기를 재치 있게 표현한 영상을 본 적 있는가. 촘촘히 줄지어 있는 성냥개비들을 따라 불이 번지는 중. 줄에서 빠져나와 거리를 둔 성냥개비 하나 출현. 덕분에 불길이 멈춘다. 코로나 시작 무렵인 20203, 스페인 출신 비주얼 아티스트 후안 델컨이 인스타그램에 올린 안전성냥이라는 작품이다. 음성도 자막도 없이 한 사람이 미치는 영향의 중요성을 12초 만에 전달한다. 삶의 다른 분야에 확대 적용해도 억지스럽지 않다. 볼 때마다 여전히 감탄스러운 아이디어이다.

봄을 바라보는 달이어도 2월은 여전히 겨울에 머문다. 전국 각지에서 산불 관련 뉴스가 빈번하다. 원인은 제각각일지라도 거대한 불길은 하나같이 사소한 불씨에서 시작된다. 발화는 점에서 출발하지만 움직이는 순간 자취를 남긴다. 점으로 끝나지 않는다.

멀리서 보면 점으로 인식되는 개개의 사건들도 마찬가지인 듯하다. 번지는 불길인 듯 흐름을 만든다. 큰 사건은 작은 사건들이 사슬처럼 연결된 결과물이다. 역사에 담긴 제목의 외피를 벗겨내면 툭 터진 베개 속 좁쌀인양 사건들이 쏟아진다. 묵직한 뭉텅이도 거슬러 올라가면 무심코 넘어가기 쉬운 하나의 파편에서 시작되었으리라. 문제는 지나고 나서야 변화의 시작점을 그나마 가늠할 수 있다는 점이다. 사소함에는 결코 사소하지 않은 무게감이 있다.

 

거꾸로 읽는 세계사20세기 세계사에서 발생한 열한 가지 큰 사건을 다룬 보고서이다. 드레퓌스 사건, 사라예보 사건, 러시아 혁명, 대공황, 대장정, 히틀러, 팔레스타인, 베트남, 맬컴 엑스, 핵무기, 독일 통일과 소련 해체 등 역사적 사실과 그보다 작은 사건들을 연결 짓는 정보로 구성된다. 낱낱이 파헤치니 결정적인 성냥 한 개비로 작용한 인물들이 드러난다.

한 세기를 아우른 저자는 물질적 생활의 생산양식이 사회적정치적정신적 생활과정 전반을 제약한다는 마르크스의 주장을 언급한다. 자본주의와 공산주의 체제, 이와 관련된 사건들과 여러 국가를 살펴보면 어느 정도 타당성이 보이는 주장이다. 생산양식을 지배하는 건 사상이다. 생각이 우리 삶에서 커다란 비중을 차지한다는 방증이리라.

에필로그에 의하면 20세기의 가장 큰 정치적 사건은 볼셰비키 혁명이다. 기술적 사건은 핵폭탄 개발이며 혁명적 사건은 범용 디지털 컴퓨터의 발명이다. 책 안에 저자의 해석은 거의 들어가 있지 않다. 덤덤히 사건을 재구성하여 세계의 역사를 되돌아보게끔 한다. 이 책을 통해 오래된 미래를 그려본다. 생각을 강요받지 않아서일까 내용에 대한 거부감이 들지 않는다. 해석은 오롯이 독자의 몫으로 남는다. 해석은 사실이 아니라 신념의 변수라고 생각하기에 역사에 대한 해석이 달라질 수밖에 없는 이유를 여기에서 찾는다.

 

드레퓌스 사건에는 각기 다른 한 사람이 영향을 미치면서 전환의 변곡점이 된다. 위대한 신념은 다른 이의 삶을 바꿀 수도 있다. ‘사실자체보다 자신이 믿고 싶은 것을 믿는 게 인간의 본성일까. 그 아래로 영문도 모른 채 스러지는 존재가 안타깝다.

네가 왜 거기서 나와? 헉헉 대는 습기 찬 문장으로 나를 졸라 숨 막힘을 시전하시던 졸라님을 여기서 보게 될 줄이야! 의외의 장소에서 만난 친구인 듯 반가웠다. 인간 짐승목로주점안에서 거침없이 뿜어대던 포스를 좋은 데 쓰셨다. 포탄비가 쏟아지는 전쟁터 같은 상황에 떠밀리던 드레퓌스 앞에 당당하게 방어막을 만들어주셨다. 펜은 칼보다 강하다는 문장의 수행평가 버전이다.

드레퓌스의 결백은 단번에 밝혀지지 않았다. 각자의 위치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한 사람들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남편을 믿었던 아내, 자신과 무관한 이의 일임에도 불구하고 우연히 발견한 진실을 외면하지 않았던 중령, 동생의 이름을 세상에 드러내려 고군분투한 형, 대통령에게 고발이 담긴 공개서한을 발표한 에밀 졸라, 그 글을 게재한 신문의 운영자 등이다. 개별적인 한 사람으로 존재한 그들은 사소함의 힘을 믿었던 걸까. 사소함이 모여 이루어진 거대한 파도는 결국 비열한 권력 뒤에 숨었던 자들을 무너뜨린다. 어느 한 사람이라도 나 하나쯤이야, 나 하나로 어떻게라는 생각을 지녔더라면 불가능했을 터이다.

 

100년의 역사 한 가운데 굵직하게 자리 잡은 사건은 두 차례의 세계대전이다. 인터넷 자료를 조금 더 찾아본다. 원인과 결과를 둘러싼 인간의 탐욕을 바라본다. 깨진 유리창 이론을 떠올린다. 사소한 것들을 방치해두면 커다란 범죄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는 범죄 심리학 이론이다. 유리창을 깨뜨린 자동차를 거리에 방치했을 때 대조군과는 달리 엉망이 되었다는 실험 결과는 시사점이 크다. 1차 세계대전의 시작도 사라예보 사건이라는 작은 불꽃이었다. 이 사건이 도화선이 되어 제국주의 국가들이 앞 다투어 이해관계를 따져보며 뛰어든 결과물이 아닌가.

개개인의 삶은 제각기 다르다. 나의 삶은 이를 운용하는 나에게 달려있다. 외부로부터 불어오는 바람이 나의 발걸음을 달라지게 만드는 순간, 그 바람은 더 이상 나와 무관하지 않게 된다. 이해관계로 얽힌 소수 인간들의 이기심이 바람으로 작용하는 거라면 동일한 유형의 사건이 반복되어서는 안 될 일이다.

세계대전에서 돈과 권력을 향한 소수 제국주의 국가들이 탐욕을 감추고 과학기술을 향해 손을 뻗었던 모습을 보며 씁쓸해진다. 전쟁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스스로 불러낸 에너지의 역습, 핵무기를 생각하면 일순 두려워진다. 과학기술은 발전하지만 인간정신은 진보하지 않는다는 레오폴트 폰 랑케의 말이 의미심장하다.

 

예전의 나는 민주주의의 반대말이 공산주의인줄 알았다. 정치체제인 민주와 독재, 경제체제인 자본주의와 사회주의 및 공산주의를 구분하지 못한 무지의 소치이다. 공산주의는 과격한 넘사벽에 담긴 무서운 말이었다.

잘못된 선입견을 장착한 채 사회과학서적 안에서 공산주의나 사회주의 이념을 언급한 문장들을 가끔 만났다. 제일 먼저 받은 느낌은 당혹감이었다. 공산주의의 사전적 의미가 유토피아에 가까웠기 때문이다. 동일 낱말에 대한 의미인가. 기존에 가졌던 개념과 전혀 달랐다.

제대로 바라보면서 다른 시선이 생겼다. 동시에 이상과 현실은 얼마든지 다를 수 있음을 깨달았다. 이상적인 개념이라도 추악한 본성이 개입되면 부패된 단백질인양 변질된다는 사실을 알았다. 페르소나가 셀프와 다른 것처럼.

일련의 사건들을 바라보면서 정치의 중요성을 절감한다. 전쟁도 정치의 연장이며 과학도 정치와 연결되면 흑화 될 수 있다. 경제도 정치와 무관하지 않다. 히틀러는 이름만으로 많은 것이 설명되는 인물이다. 이 책을 읽다보니 그의 정치와 주변 사람들이 보인다. 저마다의 이유로 악의 구현에 동참한 사람들 역시 수많은 죽음에 대한 책임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모든 악의 연대라는 부제가 설명하듯 색깔만 다른 욕망의 릴레이가 그와 같은 인물을 완성한 거라고 감히 말하고 싶다.

 

팔레스타인은 지금까지도 이어지는 분쟁의 중심지이다. 그 옛날 히틀러에게서 유대인을 향하던 화살촉이 유대인에게서 팔레스타인을 향하고 있다. 학교 폭력이나 가정 폭력에서도 그런 사례를 종종 본다. 학대를 받았던 아이들이 어른으로 자라서 또 다른 이들을 학대하는 경우이다. 베트남 전쟁에 참전한 한국 군인들이 현지 민간인을 대상으로 저질렀다는 만행도 결국 마찬가지 아닌가. 피해자가 가해자가 되는 아이러니라니!

많은 행위 안에 이런 속성이 드러난다. 사랑을 받아본 사람이 사랑을 줄 수 있다는 말이 있는 것처럼 말이다. 아프리카에서 시작된 인류의 DNA가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고 들었다. 인간의 행위 역시 생물학적 연결성을 갖는 걸까. 불교에서 말하는 업보처럼 투 비 컨티뉴드를 구현하는지도 모른다. 잔인한 싱크로율이다.

어느 누구에게도 다른 인간을 학대할 권리는 없다. 맬컴 엑스를 언급한 사건에서 흑인노예를 정의한 짧은 문장을 보는 순간 소름이 돋는다. 노예는 말하는 가축이었다나. 하아~ 생물학적 근거가 전혀 없음에도 불구하고 인종을 구분하여 짓밟는 집단을 경멸한다. 절망스러운 건 이 책의 앞 부분에 종합적으로 그려진 11개 사건의 연대 구분이다. 그림에 나타난 그래프의 길이이다. 짧은 실선 좌우로 날개처럼 뻗어있는 점선은 차별적인 학대가 여전히 끝나지 않았음을 나타낸다. 인간 기저에 깔린 본성일까. 끈질긴 이어짐이 징하다.

 

삶은 학문이 아니다. 대공황은 경제학경제를 살리는 일이 별개임을 보여준다. 이론과 실제는 다른 방향을 가리킬 수 있다. 벤젠 고리인 듯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불행들. 몇 몇 문장으로 표현된 당시 상황을 가늠하니 갑갑해진다. 시장이 인간의 필요가 아니라 지불능력이 있는 소비자의 수요에 응답한다는 내용에 공감한다. 전쟁에서 가장 큰 피해를 보는 쪽은 매번 힘없는 백성이다. 경제적 붕괴 상황에서 가장 큰 피해를 보는 쪽 역시 힘없는 노동자이다. 더욱 답답해진다.

러시아 혁명부터 중화인민공화국의 탄생, 베트남에서 일어난 혁명들과 독일 통일, 소련 해체 과정에서 발생한 혁명들을 돌아보며 바뀜을 생각한다. ‘예전과는 다른 사람들이 예전과는 다른 명분을 내세워 예전과는 다른 방식으로 인간을 억압하고 착취했다는 문장은 많은 시사점을 준다.

이상적인 이론을 토대로 시작되었어도 시간은 종종 본질을 흐리게 만드는가. 결정적인 한 사람에 의해 바뀔 수도 있지만 이상적인 한 사람의 힘만으로 바뀌지 않는 것도 세상이다. 여러 명이 참가한 계주처럼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던 이상은 어느 순간 배턴을 떨구기도 한다. 다른 빛깔로 반복적으로 구현되는 억압과 착취의 현장을 바라본다. 다시 가슴이 답답해진다. 혁명으로도 바꿀 수 없는 생물학적 본성이 존재하는 걸까봐 문득 겁이 난다.

 

돈바스 기사들이 속속들이 올라온다. 나무위키에 수록된 돈바스 전쟁관련 내용의 최근 수정 시각이 실시간에 가깝게 업데이트된다. 거꾸로 읽는 세계사가 아니었더라면 눈길조차 주지 않았을 기사들이다. 제목을 읽는 것을 넘어 클릭하고 몇몇 지역들을 지도에서 검색하는 나. 불과 몇 달 전만 해도 상상할 수 없던 변화이다.

사건 발생 시기를 간략한 멘트와 함께 연대표처럼 정리한 그림을 각각의 장 앞에 배치한 구성이 좋았다. 역사에 무지한 나에게 좋은 지도가 되었다. 각주가 해당 페이지 하단에 위치한 점에서는 편집자의 친절함이 엿보였다. 깊은 밤 뒤척이는 불면증 인간인양 일일이 책을 들썩일 필요가 없었다. 세심한 배려가 고마웠다.

애니메이션 <명탐정 코난>은 사건을 바라보는 현명한 시각을 알려준다. ‘이 살인 사건에서 가장 많은 이득을 보는 사람이 누구일까요. 그를 주목하면 동기를 유추할 수 있습니다.’라고. 러시아-우크라이나의 대치 상황에서 내가 주목하는 점은 주변국들의 반응이다. 왜 그런 반응을 보일 수밖에 없는가. 이득을 보는 쪽은 어디인가. 일련의 사태들을 어떤 관점에서 바라볼지 어렴풋한 기준이 세워진다.

전쟁 상황에는 인간의 욕망이 결합된다. 얼마나 교묘하게 폭력의 당위성을 확보하느냐. 위장술의 차이만 있을 뿐이다. 새삼 놀랍지도 않다. 20세기 이전의 전쟁에서도, 다가오지 않았으면 하는 미래의 어느 시기라도 별반 다르지는 않으리라. 한결같은 탐욕이 예측된다는 점을 다행이라 해야 하나. 우스운 한편 씁쓸하다.

 

모든 시작은 단순하다. 하나의 점에서 시작되었으리라. 실체를 지닌 것이든 인간의 감정처럼 무형의 것이든. 그토록 찬란하고 창대해질 줄 짐작조차 하기 어려웠으리라. 드라마 <기상청 사람들>에서는 삶과 자연이 보이는 시그널을 언급한다. 주인공의 내레이션이 인상적이다. ‘신호는 단순하다. 때로는 소리로, 때로는 색깔과 진동으로 이 세상에 안전한 것은 없다고 계속해서 내게 신호를 보낸다.’

드라마 설정과 연관되지만 인간의 역사에 동일 문장을 적용해도 전혀 이질감이 느껴지지 않는다. 세계사의 결정적인 장면들을 보며 삶을 돌아보는 시간을 갖는다. 내 삶의 결정적인 장면들은 무엇이었을까. 몇몇 선명한 점들이 되감기한 필름 위에 찍힌다.

기록되는 하나의 문장은 많은 동기를 딛고 피어난다. 한 인간의 역사에서든 세계로 확장하든 일련의 사건들을 따라가면 공통점이 보인다. 시작은 사소했다는 점이다. 에필로그에 언급된 문장처럼 어떤 중대한 사건도 독립해서 일어나지 않는다. 세계적인 전쟁에서조차 시간을 거슬러 가면 작은 불씨가 존재한다. 거대한 나무도 하나의 씨앗에서 시작되지 않는가. 줄기가 자라고 잎이 달리고 꽃이 피고 열매가 매달리기까지. 사건과 그 결과는 별개의 것이 아니다. 하나의 사건은 점이 아니라 선으로 놓이기 때문이다.

하늘에서 뚝? 그 어떤 것에도 갑자기는 없다. 하나의 빗방울은 도깨비방망이로 뚝딱 만들어져 나의 얼굴에 떨어지는 것이 아니다. 수많은 증발과 응결, 충돌이 반복된 결정체이다. 한 송이 꽃을 피우기 위해 봄부터 소쩍새는 그렇게 울어야 하는 것이다.

 

 

p70, 피의 일요일 설명: 페테르부르트 페테르부르크

p277 그림: 1964년과 1963년의 사건 배치 순서가 연도순으로 바뀌면 좋겠음

p337, 마지막 줄: 3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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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레바퀴 아래서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02
헤르만 헤세 지음, 한미희 옮김 / 문학동네 / 201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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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한 방황은 없었다. 학창 시절을 돌아본다면 나는 순하고 착한 아이였다. 공부를 뛰어나게 잘하지도 않았지만 딱히 못하지도 않았다. 어른이 정해준 길을 따라 비교적 순응하며 성장했다. 가지 말라는 길은 가지 않았고 하지 말라는 일은 하지 않았다. 노선이 정해진 수레바퀴를 따라 한 치의 어긋남도 없이 그저 걸었다. 십대를 이런 모습으로 지나왔다. 방황은 오히려 이십대 후반 이후에 겪었으니 십대가 당면한 혼란을 완벽하게 이해하지는 못한다.

교사 집단의 정체성도 나와 별반 다르지 않은 듯하다. 공부로 말하면 잘하는 축에 속했겠지만 특출 나지는 않았을 애매함, 수레바퀴 아래보다는 위에서 수레와 함께 굴러가는 축에 속했을 집단이다. 개별성을 차치하고라도 다소 어정쩡한 이들이 영혼을 돕고 가르치는 교사가 된다. 교사로서 한계를 느끼게 만드는 요인이다.

물론 직접 겪어야 공감이 가능한 건 아니다. 책이나 뉴스를 접하면서도 얼마든지 공명할 수 있다. 설령 비슷한 경험을 직접 했다하더라도 개개의 상황은 다를 테니 학생에 대하여 완벽한 감정이입은 불가능하리라.

다만 아이들의 영혼을 향해 얼마나 가까이 다가가느냐, 그들을 바라보는 거리의 문제라고 본다. 이런 이유로 나는 교사에게 필요한 주요 덕목으로 용기기다림을 꼽는다. 영혼과의 거리를 좁히는 데는 다가가는 용기가 필요하며 아이들의 영혼이 꽃피기 위해서는 저마다의 시간이 필요하니까.

 

소설수레바퀴 아래서는 주변의 기대를 한 몸에 받으며 어른들이 정해준 길로 삶의 수레바퀴를 굴리던 주인공 한스가 신학교에서 정반대의 성향을 가진 친구 하일너를 만나면서 자신의 정체성을 인지하고 방황하는 과정을 그린 이야기이다.

주변인들은 신학교 입학시험을 준비하는 아이에게 상반된 반응을 보인다. 데미안을 연상시키는 구둣방 주인은 시험에 떨어진다 해도 부끄러울 것이 없으며 하느님은 모든 영혼에 특별한 의도를 갖고 계신다고 격려한다. 나머지 인물들에게 한스가 시험에 떨어진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학교의 선생님들, 목사님, 아버지에 이르기까지 그에게 갖는 기대감은 아이의 영혼을 무겁게 조인다.

주인공 한스는 끝내 수레바퀴 아래에’ 깔린다. 차라리 바퀴가 굴러가는 길을 벗어나 다른 길로 뛰쳐나갔더라면, 혹은 스스로의 의지로 굴러갔더라면 달라질 수도 있었으리라. 그가 수레바퀴에 깔린 이유는 주변에 떠밀려 바퀴가 지나는 길에 힘없이 서 있었기 때문이다.

다니던 학교의 교장 선생님은 아이의 죽음을 바라보며 갑..기 불행이 연이어 닥쳤다고 말한다. 삶의 마침표가 과연 갑자기 찍힌 걸까. 바퀴가 지나는 길에 길들여진 주인공은 길에서 벗어날 방법을 알지 못한다. 그저 바퀴만을 바라본 채 오랜 시간 구르다 서서히 힘을 잃는다. 뒤늦게 주변을 둘러보나 궤도를 벗어날 용기조차 내지 못한다. 바퀴와 함께 굴러가지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바퀴를 놓지 못했으니 끼어들어가 짓눌리게 되었으리라.

 

정답이 되는 삶의 궤도가 과연 존재하는가. 방학 중에도 미리 공부해둘 것을 제안하는 어른들은 말한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궤도를 벗어나기 쉽다고. 어쩌다 좋아하는 낚시나 산책을 할 때조차 양심의 가책을 느끼게끔 만드는 궤도가 아이의 삶에 어떤 의미를 갖는 걸까. 그에게 수학 공부와 수업은 평탄한 국도를 걷는 것이다. 탁 트인 전망을 볼 수 있는 산을 갑자기 만나는 일은 일어나지 않는 삶이다. 어른들이 정해놓은 노선을 따라 가는 아이는 자신의 삶이 어디를 향해 흘러가는지 인지하지 못한다. 그저 앞으로, 앞으로만 나아갈 뿐이다. 어엿한 남자가 되는 친구 하일너처럼 자신의 길을 찾기 위해 사회적 편견에 당당하게 맞서지 못한다.

시험 전후에는 그리도 불안해하더니 막상 2등으로 입학시험에 합격했다는 결과가 나오니 1등을 못해서 분하다고 말하는 주인공. 인간의 마음이란 참, 이리도 간사한 것을. 아이는 동급생들을 앞지르고 싶어 하는 데도 왜 그래야 하는지 스스로 알지 못한다. 그가 품고 있는 바람이 자신에게서 우러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소설 제목이기도 한 스프링벅은 아프리카에 사는 양의 이름이다. 무리가 커지면 풀을 뜯기 위해 앞서거니 뒤서거니 마구 뛰다가 나중에는 원래의 목적을 잊는다고 한다. 오로지 앞서겠다는 일념으로 그저 뛴다나. 해안 절벽이 나타나도 가속도에 의해 앞만 쫓다 끝내 바다에 빠지고 만다는 동물이다. 한스의 모습에서 스프링벅이 겹쳐진다.

 

목적이 없었다. 한스 친구 하일너의 말처럼 나 역시 공부가 좋아서 한 건 아니었다. 내게 공부란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그저 하는 거였다. 물음표가 존재하지 않는 영역이었다. 배우는 내용이 과연 타당한가, 이게 왜 이래야 하냐며 의문을 제기하는 친구들을 종종 한심한 시선으로 보았다. 왜 시간 낭비를 하지? 그냥 무조건 외우면 되잖아. 질문은 나에게 시간 낭비와 동등한 행위였다.

공부가 기쁨이던 순간이 있었던가. 자발적인 공부는 테두리 밖의 일이었다. 공부의 신남은 교사가 되어서도 한참이 지나서야 알게 된다. 디지털카메라로 접사를 찍으며 야생화의 이름을 검색할 때 가슴이 뛰었다. 교과서에 등장한 성도가 새벽녘 아파트 옥상 위에서 실물로 펼쳐졌을 때, 무서움과 추위 따위는 한순간에 증발했다. 이 모든 순간에게는 공통점이 존재했다. 자발적이었다.

신학에 대한 관점을 서술한 내용에서 글쓰기의 자발성을 떠올린다. 헤세는 예술이라고 할 수 있는 신학학문이라고 할 수 있는 신학을 비교한다. 비평과 창작, 학문과 예술을 언급하면서 전자는 항상 옳지만 어떤 이에게 도움을 주지는 못하며 후자는 영원에 대한 예감, 믿음, 사랑, 위로, 아름다움의 씨앗을 뿌린다고 말한다. 문학이야말로 글을 도구로 하는 자발적인 창작 예술 행위 아닌가.

새로운 시도는 크고 작은 고통을 수반한다. 소설 데미안에 등장하는 것처럼 알을 깨고 나오려면 고통을 감내하는 용기가 필요하다. 글을 쓸 때마다 고통과 환희의 순간을 선물로 맞이하는 것처럼. 자발성은 진통제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라는 접속사를 건네주며 영혼의 성장 통을 감내하게 만들어준다.

 

여름에 피는 다양한 꽃들의 이미지를 검색하면서 읽었다. 천천히 여름을 호흡하는 느낌이 좋았다. 헤세의 문장은 서두르지 않는 속도감을 갖는다. 차분해지는 마음으로 이야기를 따라간다. 시간에 천천히 색깔이 입혀진다. 간간이 흔들리는 꽃들, 물고기의 움직임, 주변 풍경들에 대한 담담한 묘사가 고요히 흡수된다.

작가의 문장을 감각적으로 비유한다면 단연 시각적이다. 그에 의하면 노란 햇빛이 이끼 위에 내려앉아 반짝이는 모습은 따뜻한 얼룩이 된다. 금빛 띠와 얼룩 몇 개가 방에 흘러들어와 잠든 소년들의 꿈 옆에 가만히 눕는다. 새로운 행복이 갓 담근 포도주처럼 발효하여 피와 생각 속을 돌아다닌다고 표현하는 감성이라니! 단순한 풍경 묘사에 그치지 않고 주인공의 심리와 더불어 중의적으로 이미지를 그린다.

헤세는 시험 전후의 불안함을 한스가 바라보는 풍경의 변화로 표현한다. 주변의 환경조차 심리를 투사하는 매개체로 활용한다. 시적인 묘사는 주인공의 상황과 어우러지면서 심리를 고스란히 반영한다. 그토록 아름다운 풍경이 펼쳐지는데 아이의 삶은 나무도막이 하나씩 빠져나가는 젠가의 본체처럼 위태롭다. 작가의 묘사를 따라가며 생각한다. 세상에 절대적으로 아름다운 풍경은 존재하지 않는지도 모른다고. 풍경의 아름다움은 상대적인 건 아닐까. 풍경이 아름다워 보이는 건 이를 아름답다고 여기는 시선 혹은 심리가 투영되어서일 테니까.

 

사회에서 필요로 하는 사람을 기르는 것은 학교가 추구하는 주요한 목적이다. 한데 우리는 이보다 앞서야 할 전제를 종종 망각한다. 인간의 존재 이유는 무엇인가. 근본적인 질문에 대한 답변은 바다 아래 잠겨있는 90%의 빙산처럼 묵직하다. 사람들은 눈에 보이는 10%만 바라보며 종종 그 답을 잊는다. 인간은 존재 자체로 의미를 갖는다는 사실을 말이다.

교사를 향한 작가의 문장이 짐짓 날카롭다. 교사의 직무란 소년들의 거친 힘과 자연의 욕망을 제어해 뿌리부터 송두리째 뽑아버리고 국가가 인정하는 차분하고 절도 있는 이상을 심어주는 거라는 것. 소년의 내면에 존재하는 것을 깨뜨리고 위험한 불꽃은 끄고 밟아버려야 한다는 것. 맡은 반에 천재 한 명이 있는 것보다 차라리 멍청한 바보 몇 명이 있는 것이 낫다고 생각한다는 것. 교사들은 항상 살아 있는 학생을 볼 때와는 전혀 다른 눈으로 죽은 학생을 바라본다는 것. 평소 별생각 없이 학생들에게 상처를 주면서도, 죽은 학생을 보면 모든 생명과 젊음이 다시 돌아오지 않으며 소중한 가치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잠시나마 뼈저리게 느낀다는 것이다.

한스의 수학교사는 비례식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인생에 아무 도움도 안 될 것 같지만 비례식이 논리적인 능력을 키워주고 명확하고 냉철하고 효과적인 사고력의 토대를 만들어준다는 이유를 그럴 듯하게 포장한다. 예전의 나 역시 과학 공부의 중요성을 비슷하게 어필하곤 했다. 당연한 듯 내뱉던 말들이 품었던 폭력성을 발견하고 흠칫한다. 학창 시절에 읽었더라면 주인공의 시점만을 좇았으리라. 교사의 관점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기에 소설 속 교사들의 모습에서 나를 돌아본다.

 

116년 전에 출간된 책이 우리의 현실과 괴리감 없이 읽힌다. 뽑히지 않을 뿌리처럼 사회 깊숙이 박혀 아이들을 옭아매는 덩굴로 자라나는 상황을 생각하니 소름이 돋는다. 작가의 문장력에 감탄하면서도 한 세기가 지나도 여전히 이어지는 모습에 마음이 복잡해진다.

주인공의 걸음을 따라가며 김 필의 노래 <그 때 그 아인>을 떠올린다. ‘가슴에 박힌 선명한 기억/ 나를 비웃듯 스쳐 가는 얼굴들/ 잡힐 듯 멀리 손을 뻗으면/ 달아나듯 조각난 나의 꿈들만/ (중략) / 지나온 모든 순간은 어린/ 슬픔만 간직한 채 커버렸구나/ (중략) / 아직 허기진 소망이/ 가득 메워질 때까지/ 시간은 벌써 나를 키우고/ 세상 앞으로 이젠 나가 보라고/ 어제의 나는 내게 묻겠지/ 웃을 만큼 행복해진 것 같냐고/ 아주 먼 훗날 그때 그 아인/ 꿈꿔왔던 모든 걸 가진 거냐고.’ 자신의 상황을 서서히 인지해가던 한스를 생각한다. 느릿느릿 아이를 잠식했을 무게감을 가늠해본다. 책 제목에도 나오는 것처럼 <지금 알고 있는 걸 그때도 알았더라면> 달라졌을까. 한스도, 한스를 바라보는 내 자신도. 마음 한 켠이 뜨끈해진다.

단 하나의 좁은 길밖에 없던 소년의 모습에서 외바퀴 수레를 떠올린다. 외바퀴 수레는 혼자서 적은 힘을 들이면서도 좁은 길을 효율적으로 나아간다. 안정성이 떨어진다는 단점만 극복한다면 말이다. 사회와 학교의 요구에 흔들리며 균형을 잡지 못한 영혼은 끝내 앞으로 나아가지 못한다. 어른들이 조금 더 기다려줄 수는 없었을까. 아이 스스로 균형을 잡고 걸어갈 길을 선택할 때까지. 그랬더라면 좁은 길임에도 불구하고 몇 번을 넘어졌대도 아이는 결국 수레를 굴리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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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파엘 2022-02-12 21:1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정말 공감이 되는 말씀입니다. 학생들을 위해 교사의 다양성도 중요하다고 생각하는데, 최근에는 교사양성과정 마저도 다양성과는 반대되는 방향으로 결정이 되어서 씁쓸한 마음이 있습니다. 교사교육에 대해서 고민이 정말 많이 되네요. 좋은 글 감사합니다 ^^

나비종 2022-02-12 23:16   좋아요 2 | URL
공감해주시니 반가우면서도 ‘나만 그렇게 생각하는 건 아니구나‘싶어서 씁쓸하기도 합니다.

신규 교사 때에는 교과 내용을 가르치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여겼습니다. 경력이 쌓일수록 다른 게 마음에 들어오더군요. 저를 바라보는 아이들이 배우는 것이 제게서 흘러나오는 말뿐은 아니라는 사실이요. 행동과 말투, 소소한 사건들에 대한 저의 반응이 강하게 흡수되는 경우를 자주 만나게 되었거든요. 어쩌면 비언어적인 영향력이 보다 중요할지 모르겠습니다.
대상과 마주보는 자리에 서야하는 직업은 장르를 불문하고 어렵다는 생각이 듭니다. 지.켜.보.고.있.다! 잖아요~^^; 저의 어떤 점을 바라볼지 예측하기 어렵거든요. 사람은 자신이 보고 싶은 것만 보게 되니까요.

간혹 제 관점대로 바뀌어가는 학생들을 보면 교사의 시선이 정말 중요하다는 생각을 하거든요. 교사의 다양성이 중요하다는 말씀에 공감합니다. 다양한 교사들에 둘러싸여 성장해야 학생들이 건강한 영혼의 소유자가 된다고 생각하거든요. 햇빛이 되는 교사가 있는가 하면, 바람이, 비가, 흙이 되어 영향을 미친다면 아이들은 무럭무럭 자랄 수가 있겠죠~ㅎㅎ

교사양성이나 임용과정에서도 교사로서의 자질을 명확하게 판별하기 어려우니 갑갑합니다. 교육의 대상이 ‘사람‘이다보니 과연 이 교사의 자질이 교육에 적합할지 판단하기가 상당히 애매하단 말이죠. 정량적인 능력을 넘어서는 정성적인 분야이니까요. 중요성은 인지하지만 측정이 거의 불가능하달까요. 쩜쩜쩜.

어쨌든 비슷한 고민을 하시는 분의 말씀을 들으니 힘이 납니다. 좋은 글이라는 기분 좋은 댓글을 달아주셔서 감사합니다~^^*

물감 2022-02-21 18:32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저도 되게 겁많고 순진해서 참 말 잘듣는 아이였어요. 지금도 부모님은 저보고 사춘기가 없었다고 그러시거든요. 근데 이런 애들이 정말 늦바람 드는게 무섭더라고요. 딱히 탈선하지는 않았지만 마음속에서 화산이 폭발하고 태풍이 불고 쓰나미가 일고... 그동안 눌려있던 열등감이 터지면서 분노와 증오가 쏟아졌어요. 성적이 좋았던 한스와는 케이스가 다르지만, 나 자신을 드러내지 못한 데에서 오는 회의의 크기는 같다고 느꼈어요. 그래서 이 책은 내 어린 시절의 관점으로 읽든, 성인된 현재의 관점으로 읽든 공감할 수 밖에 없는 아름다운 작품이었습니다.ㅎㅎ

말씀하신대로 수레바퀴의 길 밖에 있었더라면 깔리지 않았을텐데, 한스에게는 그 길만이 전부였으니 옆 길을 생각지 못한 게 당연했겠네요. 갑자기 그게 생각나요. 다리 한쪽을 묶어둔 새끼 코끼리가 다 커서도 도망칠 생각을 못하게 되는. 고정관념과 갇힌 사고로 인해 성장이 멈춘 사람들이 얼마나 많을까요. 아이들의 무한한 가능성을 막아버린 어른들과 우리 사회에 얼마나 책임을 돌려야 하는 걸까요. 어렵네요^^;

저는 주인공 주변에 어른다운 어른이 없어서 안타까웠어요. 비록 어른들이 정해놓은 노선을 따라 목적없이 걷더라도, 아이들에게 인간적으로 다가와주었다면 그렇게까지 이탈하진 않았을거라 생각해요. 이래서 인적성 검사를 필히 해야됩니다... ㅎㅎ 공부의 신남을 늦게라도 알게 되신 나비종님은 알을 깨고 나오는 데 성공하셨군요. 기존의 틀을 깨기란 참 대단한 용기가 필요함을 나비종님의 이야기를 보며 또한번 실감했습니다^^ 저는 아직 깨야할 알들이 많이 남았거든요 ㅋㅋㅋ

다섯째 문단의 글이 너무 좋아요. 헤세의 시작적 문장을 따라 나비종님의 글도 시각적으로 바뀌었네요 ㅎㅎㅎ 한스의 눈에 들어오는 아름다운 자연과, 한스의 위태로운 영혼이 참 대조적이군요. 제가 생각 못하고 넘어간 부분이에요. 물론 아름다움은 상대적입니다. 저도 방황하던 시절에는 그 화창한 봄날조차 썩어 있다고 생각했거든요. 한 영화의 유명 대사처럼, 거 죽기 딱 좋은 날씨네~ 하면서요 ㅋㅋㅋㅋㅋ

아무래도 나비종님은 교사시니 또 다른 시각과 관점으로 읽으셨겠어요. 아이들의 안정된 장래가 우선일까, 건강한 정서가 먼저일까 하는 고민도 있을거 같고요. 행복은 성적순이 아닌건 맞는데, 한국사회는 점점 고학력/고스펙을 원하고 있으니 말이에요. 그래서 어쩔수 없이 학생들의 불꽃을 꺼뜨려야 할 때도 있을 것 같습니다. 생각해보니 교사입장에서도 수레바퀴에 깔릴 수 밖에 없는 상황이 있겠는데요? 아이고.

어른들은 아이들의 방황이 끝나고 돌아올 때까지 기다려줘야 한다고 생각해요. 목적지를 잃고 해메는 이들에겐 어딘가 머물만한 곳이 있어야 하잖아요. 저는 침대의 편안함보단, 공원에 정자처럼 가볍게 쉴 만한 곳이 필요했거든요. 여튼 좋은 어른 되기도 어렵고, 어려서 정신건강 챙기기도 쉽지 않네요 ㅋㅋㅋㅋ 이번에도 너무 좋은 독서였습니다. 지금 밖에 눈이 날리네요. 바람도 엄청 불고요. 몸조심하시고 남은 2월, 즐거운 시간 되세요^^

나비종 2022-02-21 18:57   좋아요 3 | URL
저는 소심하고 겁 많고 어디 가서 말 한 마디 못하는 아이였습니다. 학교에 가서 한 마디도 안했던 어린 시절을 기억하는 친구는 교사가 되었다고하니 네가?! 이런 반응을 보이더라구요. 부모님께 반항해본 적이 없는 사춘기였죠, 저 역시. 가난해서 주눅들어있던 마음이 열등감으로 변화된 시기도 있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그 정도면 비교적 잘났던 아이였는데 말이죠.ㅋㅋ
글을 쓰면서 그동안 담아만 두었던 자아가 조금씩 흘러나오고 있습니다. 글을 쓰면 자신을 직시하는 시간이 힘들 때도 있는데 동시에 카타르시스도 느껴지거든요. 조금씩 과거의 앙금이 풀리는 느낌이 있습니다. 물감님의 심정을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느낌 아니까~~ㅋㅋ^^;

코끼리 말씀들으니까 벼룩의 높이 제한 실험도 생각나네요. 높이가 제한된 수조 안에서 뛰게 하면 나중에 뚜껑을 오픈해도 밖으로 튀어나가지 못한다는 실험이요.
아이들의 가능성을 막지 않으려면 어른이 먼저 제대로 된 어른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폭넓은 시선으로 아이들을 포용할 수 있어야 한다구요. 시간이 어른의 절대적인 척도는 아닌 것 같거든요. 나이가 들어도 여전히 유아기적 사고를 벗어나지 못하는 어른이들이 많으니까요.

공부가 정말 신이 나는 행위더라구요. 공부든 뭐든 ‘자발성‘이 가장 이상적인 추진력이라고 생각해요. 교사를 대상으로 하는 강연이 많이 어렵다는 말이 있거든요. 의무적인 연수가 많아서 자발성이 제로인 상황이라.ㅎㅎ
물감님의 알까기를 응원합니다~^^

그러게요. 헤세의 문장들이 시적인데다 시각적인 요소가 짙어 덩달아 그래보고 싶었나봐요^^
아름다움이 상대적인게 문학작품을 읽을 때에도 그대로 적용이 되어서 간혹 작가에게 미안할 때가 있어요. 기분좋을 때 읽었을 때와 기분 드러울 때 읽었을 때가 별점이 다르고 리뷰를 쓰면서도 마지막 문장의 마침표가 찍힐 때까지 작품에 대한 평가가 오르락내리락해서요. 헤세의 작품처럼 저에게 퍼펙트한 5점을 제외하고 제가 리뷰를 쓴 작품들도 다시 읽어보면 그렇게까지 5점이 아닌 것도 많거든요. 그래도 수정은 하지 않습니다. 그 당시의 진실을 그대로 보존하고 싶은 마음에.^^;

저는 건강한 정서를 우선으로 생각합니다. 그건 코어와 같은 거거든요. 그 어떤 상황의 허들이든 넘을 수 있는 근육의 힘 같은 거죠.ㅎㅎ 그래서 제가 맡은 반의 성적이 그닥인 걸까요. 아이들이 제 시간을 편하게 생각하고 좋아하기는 하는데 성적으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수레바퀴에 깔릴 수 밖에 없는 상황에 종종 갈등을 합니다, 그래서ㅎㅎ

맞습니다. 아이들에게 방황의 기회를 줘야한다고 생각해요. 내가 방황해보니까 이렇더라...는 바보같은 조언이거든요. 바탕이 다르고 재료가 다른데 무조건 불이 붙는 건 아니니까요. 나는 종이라 금방 불이 붙었는데 그 아이는 알고 보니 유리면 어떻해요?ㅋㅋ
공원의 정자처럼 가볍게 쉴 만한 곳... 상상만 해도 편안해지네요.^^
모처럼 물감님과 별점이 일치하는 작품을 공유해서 기분좋은 독서였습니다.
밖이 캄캄해져서 눈발이 날리는 지는 모르겠습니다. 얼른 마무리하고 귀가해야겠네요~ 물감님도 짧은 2월, 굵고 의미있게 마무리하세요~^^*

mini74 2022-03-08 17:5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우와 댓글도 리뷰같아요. 나비종님 당선 축하드립니다. 글을 읽으니 당연한 결과인듯 합니다 ~~

나비종 2022-03-08 18:50   좋아요 1 | URL
감사합니다~ 자연스럽게 읽히는 좋은 작품을 만난 덕택입니다. 학생에 관한 소설이다보니 제 입장에서는 더욱 가까이 와닿은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