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의 허리 가우디의 뼈 - 탐정이 된 의사, 역사 속 천재들을 진찰하다
이지환 지음 / 부키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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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 멍들었을까. 왼쪽 팔뚝에 1cm 가량 푸르스름한 흔적이 보인다. 모르는 새 어딘가에 부딪혔던가. 마음이 인지하지 못하더라도 몸에는 고스란히 흔적이 남는다. 몸의 시그널에는 일상의 촘촘한 이야기, 분명 일어났던 이야기가 있다. 그건 아주 섬세해서 자세히 살펴보지 않으면 존재감을 드러내지 않는다. 수증기로 증발해버리지 않고 우리 몸의 어딘가에 물의 얼룩으로 쌓인다.

쌓이는 게 무서운 거다. 그리움, , 추억, 하루, 몸에 나타나는 사소한 징후나 질병이 그렇다. 커다란 한 방이면 부러지거나 무너지거나 단 한 번의 충격으로 결론이 난다. 쌓이는 건 다르다. 무시하거나 말거나 물러서지 않는 시간처럼 계속 한 방향으로 다가온다. 가뿐한 듯 날리는 나뭇잎 한 장으로 와서 고요히 쌓인다.

쌓임의 시그널은 소리가 없다. 신경 써서 들여다보지 않으면 눈치 채지 못할 정도의 변화가 서서히 스며든다. 소리 없이 내리는 눈이다. 어느 아침 온통 하얀 물감으로 채색된 세상을 맞이할 수 있다. 사람과의 이별이 힘든 것도 쌓임의 결정체이기 때문이다. 세심하게 살펴보지 않았던 순간들이 우주를 지울 듯 압도적인 존재감을 드러낸다.

 

세종의 허리 가우디의 뼈는 몸에 쌓인 질병으로 삶의 방향이 바뀐 역사적 인물들에 관한 이야기이다. 정형외과 의사인 저자의 시각은 신선하다. 질병전문가로서 인물에게 나타난 변화의 징후를 탐색한 다음 정확한 질병을 진단한다. 주어진 상황을 면밀하게 관찰하고 다각도로 파헤치며 분석하는 접근방법이 탐정 못지않게 예리하다.

똑같은 자료와 현상이라도 다루는 이의 관점에 따라 활용도가 다를 수 있다. 감자 요리가 햄버거 옆 감자튀김처럼 사이드로서의 역할만을 하느냐 메인으로 주축을 이루느냐는 요리사의 선택이다. 의사 관점에서의 외모 변화는 질병의 징후를 알려주는 시그널로 작용한다. 당시 착용했던 의복과 초상화를 통해 체형을 짐작하는 통찰력도 놀랍다.

질병은 몸이 보내는 시그널이다. 몸의 신호는 쌓임의 결과물로 드러난다. 몸이 주는 영향력을 절감한다. 우리 몸은 긴밀한 협조 체계로 상호보완적으로 움직여 결국 삶의 방향까지 바꿔놓는다. 자폐증에 대한 보상으로 놀라운 기억력을 소유하거나 예술 분야에 뛰어난 재능을 보이기도 한다. 모든 삶의 방향에는 이유가 있는 걸까.

 

자연사했거나 삶의 방향이 바뀔만한 질병에 걸리지 않았다면 이 책에 실리지는 않았으리라. 세종이 운동을 싫어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에는 척추염이, 해골과 뼈의 형상이 반영된 가우디의 건축물에는 관절염이, 도스토옙스키가 도박꾼이 된 이유에는 간질 발작이, 모차르트의 죽음에는 균에 의한 감염이, 로트레크의 키에는 유전적 증후군이, 니체의 두통과 정신 이상에는 뇌종양이, 모네 작품의 색채변화에는 백내장이, 프리다의 작품에는 그녀의 고통이, 퀴리의 죽음에는 X선과 라듐이 뿜어내는 방사선으로 인한 백혈병이, 말리의 죽음에는 피부암이 연결된다.

육체의 기형이 종종 비난의 대상이 되는 모습을 본다. 유전적 증후군도 그의 잘못이 아닌 것을. 저마다의 방식으로 통증을 포용하는 모습에 가슴이 찡하다. 통증을 승화하여 박제해버린 당당한 예술성이라니! 아픔이 담긴 작품은 촉촉하고 탄력적이다. 감상하는 이들의 심장이 몰랑해지는 이유다.

요리사의 칼자국이 도마에 남듯 캔버스에는 화가의 흔적이 남는다는 문장을 읽는다. 글도 마찬가지겠지. 나의 글 곳곳에도 내 흔적이 묻어나리라. 통증을 외면하고 싶지 않다. 그들의 의지가 스스로의 어둠을 빛으로 승화한 것처럼. 빛의 부재나 여집합이 아닌, 어둠 자체로 존재를 인정하고 싶다.

 

들어가는 말과 나가는 말의 제목에서도 직업의 특이성이 드러난다. 책의 피부를 가르며 들어가서 책의 피부를 봉합하며 나온다. 의사의 시각에서 책은 이렇게 보일 수도 있겠구나! 종류별 통증 그래프, 나이대별 통증 그래프에 대한 분석력이 탁월하다. 역시 이과 전공이야 싶다가도 책을 읽으면서 생각이 추가된다. 자연스런 전개, 뛰어난 가독성은 이과 계통 직업 종사자들이 취약한 문장력을 보인다는 통념을 깨뜨린다. 저자는 문이과 통합형의 적절한 예로 제시할만한 사람이다.

세종, 가우디, 도스토옙스키, 모차르트, 로트레크, 니체, 모네, 프리다, 퀴리, 말리. 책에서 다룬 10명의 인물들은 각기 다른 분야에서 유명한 역사적 인물들이다. 이들의 대표적인 정체성을 나열하면, , 건축가, 작가, 음악가, 화가, 철학자, 과학자이다.

저자가 선택한 이들을 분석하니 그의 관심 분야가 짐작된다. 음악가가 두 명, 화가가 세 명이다. 음악과 미술에 관심이 많은 걸까. 특히 화가가 등장인물 수의 30% 정도를 차지한다. 효과적인 상황 전달을 위해서겠지만 책 속의 유일한 컬러페이지가 화가의 색채감을 위해 특별히 삽입된 점도 미술에 대한 저자의 애정을 보여준다.

 

세상은 떨림의 집합체이다. 물질을 이루는 원자, 그 안의 소립자들도 매순간 진동한다. 실체로 존재하는 모든 대상은 진동하면서 서서히 변화한다. 공기를 울리지 못한다고 시그널이 없는 것은 아니다. 우리의 몸도, 한때 시공간의 좌표축을 공유했던 이와의 어긋남도 각기 다른 방식의 시그널을 보낸다. 세심한 시그널은 당신과 당신 주변에 소리 없이 쌓인다.

태어나고 늙고 죽는 건 어찌할 수 없다. 질병에 대해서는 인간의 의지가 개입할 수 있는 여지가 있다. 질병은 몸에 반드시 흔적을 남긴다. 고통으로 혹은 미세한 변화로 메시지를 보낸다. 인지하든 인지하지 못하든 삶은 질병으로 인해 서서히 궤적을 달리한다. 다만 몸이 보내는 시그널을 일찍 알아챈다면 조금이나마 원하는 방향으로 삶을 이끌 수 있지 않을까.

우리의 몸은 맑은 유리와 같다. 외부 환경의 변화나 외부로부터 다가오는 자극에도 분명 흔적이 남는다. 흔적을 세세히 들여다보는 건 우리의 몫이다. 눈은 마음의 지배를 받는다. 마음이 향하는 대상만이 시선 끝에 존재한다. 당신의 몸을, 당신의 주변을 가만히 들여다보라. 눈길이 머무는 곳에 쌓임의 시그널은 반드시 있다. 자세히 보고 오래 보아야 예쁘고 사랑스러운 풀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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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르미날 1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21
에밀 졸라 지음, 박명숙 옮김 / 문학동네 / 201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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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로 표현하지 않아도 감각으로 전해지는 아픔이 있다. 지친 표정으로, 노곤함이 눅진하게 들러붙은 냄새로, 촘촘하면서도 거친 소리의 질감으로 고여 있던 아픔은 실체를 드러낸다. 감각을 자극하는 아픔은 깊다. 공기를 타고 흘러와 온몸으로 스며든다.

제르미날에 빠져있던 어느 날, 라디오에서 이 책의 BGM으로 어울릴만한 음악을 듣는다. 니나 시몬의 ‘Don´t let me be misunderstood’이다. ‘baby’라는 첫 소절이 심장에 느낌표를 찍는다. 가수든 가사든 아무런 정보도 없지만 아픔이 묻어난다.

현재형이든 과거의 흔적에서 온 것이든 라디오 속 목소리가 아픔의 파도처럼 흘러나온다. 삶에서 아픔은 내면에 켜켜이 쌓이는 걸까. 바람이 불면 먼지가 일어나 듯 목소리로, 냄새로, 빛깔로 고개를 내미나. 혹은 내게 담긴 아픔이 무의식적으로 공명을 일으키는 건지도 모른다.

디제이와 게스트가 탄광 목소리라는 멘트를 주고받는다. 같은 노래를 부른 다른 가수를 일컫는 말이지만 이 목소리도 못지않게 탄광스럽다. ‘귀로 오는 게 아니라 가슴을 치는 목소리라는 게스트의 표현에 수긍한다. 남성의 것인지 여성의 것인지조차 헷갈리는 음성이 차 안을 가득 메운다. 인간 본성에 근접한 목소리가 있다면 비슷한 느낌일까.

 

에밀 졸라가 묘사하는 인간은 원초적이다. 육체마저 벗어던진 듯 내밀한 심리가 까발려진다. 심리학계의 능숙한 집도의 랄까. 인간이 두른 몇 꺼풀의 가식도 그를 만나면 적나라하게 파헤쳐진다. 당황은 독자의 몫이다.

졸라의 문체에 적응이 되어가는 중이다. 주변의 지형지물을 이용해 인물의 심리와 상황 묘사를 극대화한다. 환경과 상황과 등장인물의 삼위일체, 사물들의 짐승화가 다시 등장한다. 돌아온 석탄과 증기! 역시 그는 석탄 묘사의 달인인가. 탄가루가 묻어나는 문장에 매번 감탄한다. 뜨겁고 축축한 장마철의 공기를 분사한다. 인물의 배경은 뜨겁고 그들의 삶은 한겨울 내던져진 알몸인 듯 매섭다. 이번에는 어둠에다 깊이까지 더해진다. 온 세상 어둠을 몽땅 끌어 모아 갱도의 좁은 구멍에 우르르 쏟아 붓는다.

제르미날은 노동자계급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최초의 소설이다. 작품의 배경은 1860년대 프랑스 북부 광산 지대이다. 광부들과 부르주아 사이의 계급투쟁과 산업화 시대의 불온을 그린다. ‘제르미날은 프랑스 혁명력의 7번째 달을 의미한다. 싹이 튼다는 ‘germer’와 탄광의 ‘mine’과 공화력의 ‘al’의 복합어이다. 파종의 달, 싹트는 달을 의미한다. 대중 봉기, 폭동, 폭력, 가난, 기아 등을 내포한다. 작가는 소설을 통해 사회 변화의 진정한 잠재력은 무엇인지 세상을 향해 질문한다.

 

목로주점의 여주인공 제르베즈와 랑티에의 아들이 이 책의 주인공 에티엔 랑티에이다. 중심인물은 랑티에와 마외 씨의 딸 카트린이다. 그가 탄광촌에 들어오면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제일 먼저 마주치는 인물은 8세 때부터 50년을 탄광에서 일한 노인이다. 한 가지 직업을 50년 하면 이를 바라보는 마음은 어떨까. 대화 중간 중간 추임새인 듯 계속되는 기침이 그곳이 탄광촌임을 자각시킨다. 뱉어내는 침과 함께 피처럼 섞여 나오는 탄가루는 지나온 삶의 흔적이자 부스러지는 생명력이다.

랑티에는 거대한 어둠이 깔린 지역을 가리키며 노인에게 묻는다. 저게 다 누구 거냐고. 노인은 탄광의 주인을 알지 못한다. 한 번도 본적 없는 존재, 포식하는 신적인 존재들을 위해 세대를 거듭하며 대대로 석탄만을 캐낼 뿐이다.

소설의 주요 배경인 몽수돈으로 이루어진 산을 의미하는 가상의 도시이다. 돈을 있게 한 노동자들은 결코 그 돈을 소유하지 못한다. 현실을 역설적으로 표현한 도시명이다. 탄광촌 사람들의 목적은 오로지 하나다. 빵을 먹기 위해, 오롯이 살아남기 위해서다. 매일 새벽에 일어나서 시곗바늘처럼 일터와 집을 오간다. 만 명이 넘는 굶주린 사람들은 정체도 모르는 신을 위해 목숨을 내놓으며 일을 한다. 불행하게도 먹지 않고 살 수 있는 방법을 발명해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1부와 2부에서는 탄광촌 노동자와 부르주아의 삶이 묘사된다. 그들의 삶은 하루의 시작 시간부터 다르다. 새벽 4시에 깨어나서 탄광으로 향할 준비를 하는 사람들 주변에는 여유로운 아침 9시의 햇살을 맞는 이들이 존재한다. 졸라는 두 종류의 삶을 번갈아 등장시키며 보색 효과의 선명함을 전한다.

본격적인 서사는 갱도를 받치던 갱목이 무너지는 3부부터 전개된다. 노동자의 죽음은 4부에서 파업으로 이어진다. 랑티에는 이를 주도하는 지도자가 된다. 5부에서 노동자 무리는 거대한 행렬을 이룬다. 최소한의 생존을 위한 임금 인상이 그들의 유일한 요구이다. 치열한 군중의 흐름에도 회사 측의 양보는 없다. 6부에서는 교착 상태에 빠진 광부들의 궁핍한 삶이 그려진다. 가재도구를 하나씩 팔면서 근근이 하루를 버틴다. 동전 한 닢 쳐주려 하지 않을 살가죽만 남는다. 군대가 개입되면서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는 민중의 물결은 폭력화로 치닫는다. 탄광회사가 있는 몽수에서 무차별한 발포가 일어난다. 광부들의 패배이다.

일부 광부들의 삶은 도돌이표를 찍는다. 여전히 먹을 것은 없고 죽을 수 있는 행운도 찾아오지 않는다. 하지만 아직 끝난 건 아니다. 마지막 7부에서 무정부주의자인 기계공에 의해 갱도가 붕괴된다. 살기 위해 갱도로 내려갔다 갇힌 사람들이 하나 둘 죽음을 맞는다. 두 주인공 역시 갱도에 갇힌다. 열흘 만에 주인공만 산 채로 구조되어 탄광촌을 떠난다.

 

깊이 554m, 하강 시간 단 1. 적치장 4군데, 첫 번째 작업장은 지하 320m 지점. 탄광에서 수직으로 파내려간 갱도인 수갱이다. 원시의 탄광은 고대인들이 언급했던 4원소가 구현된 공간이다. 탄광의 주변을 관통하는 강인 ’, 지하에서 뿜어져 나오는 뜨거운 열기 ’, 음습하면서도 열기를 훅훅 전하는가 하면 어느 순간 냉기를 뿜어내는공기’, 시커먼 석탄 덩이로 이루어진 ’. 4가지 기본 원소로 둘러싸인 세계에서 인간은 한없이 쪼그라든다.

지하의 광부들이 본능을 드러내는 일은 헐벗은 아담과 이브의 모습처럼 자연스럽다. 고된 노동 끝에 찾아오는 밤은 어린 여자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고통에 시달릴 생명을 잉태하는 시간이다. 원시의 공간에 포획된 노동자들은 생명의 가느다란 끈을 놓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쓴다. 자아실현의 고차원적인 욕구 따위는 없다. 빵이라도 배부르게 먹을 수만 있다면. 굶주림의 경계에서 아슬아슬 줄타기를 하는 탄광촌 사람들에게 고단함보다 두려운 건 실업이다.

탄광촌 아이들은 10대에 다다르기도 전에 본능을 인지한다. 바닥부터 쌓이는 삶의 바탕을 너무 이른 나이에 체득한다. 탄광촌 노동자들에게 아이들은 생계 수단에 다름 아니다. 새로 태어나는 아이들은 대대로 이어지는 노동자의 대열에 합류해야 존재의 의미를 갖는다. 결혼 역시 생계 수단의 이동과 연결 지어 결정된다.

 

240번 탄광촌에 거주하는 그들의 일터인 르 보뢰탄광은 집어삼키다, 탐욕스럽게 먹다라는 의미의 불어에서 유래한다. 탄광은 탐욕스러운 짐승이다. 짐승의 구불구불한 창자로 매일 새벽 사람들이 먹이처럼 빨려 들어간다.

작가는 탄광 속에 들어간 인간들을 개미로 묘사한다. 개미굴에서 본능적으로 움직이는 곤충들에게 여유 있는 햇살은 꿈에서조차 등장하기 어렵다. 땅속에 끌려들어간 말 역시 죽어서야 밖으로 나올 수 있다. 말이 태양을 기억해내기 위해 헛되이 애를 쓴다는 문장이 마음을 찌른다. 거대한 개미집에서 노동자들은 고목을 갉아먹는 벌레처럼 대지 곳곳에 구멍을 낸다.

갱은 날마다 왕성한 식욕으로 인간 가축의 고깃덩이를 삼키고 뱉는다. 갱의 하루치 식량은 700명에 가까운 광부들이다. 땀 냄새 훅훅 끼얹어지는 현실감에 숨이 막힌다. 한 사람이 거의 통과할만한 비좁은 공간, 깊은 어둠, 뜨겁다 차갑다 도무지 중간이 없는 온도 차, 갱내 가스로 인해 턱턱 막히는 숨, 운하의 흐름과 인접해있어 중간 중간 고여 있는 물웅덩이, 모래성의 아래 부분을 파내는 것처럼 언제 무너질지 모르는 공간이다.

땅 속 깊이 갇힌 광부의 삶은 상상 그이상이다. 소설 집필을 위한 경험이 묻어난 글이라지만 사진을 보듯 생생하다. 끝까지 긴장감을 놓지 못하게 만든다. 서사를 끌어가는 작가의 필력에 엄지척이다.

 

삶이 아픔일 때 꿈틀대는 건 인간의 본능이다. 소설 속 인물들을 움직인 동기는 오로지 배고픔이었다. 한 번도 다른 삶을 꿈꿔보지 못한 채 대대로 내려앉은 체념의 외피를 걷어내려는 몸부림이다. 변화를 이끄는 지도자들의 모습은 다양하다. 과격하거나 온건하거나 두 가지가 복합적으로 혼재해있다. 각기 나름의 입장으로 타당성을 어필한다. 어떤 방식이 옳은가는 2차적인 문제이다. 중요한 건 움직임 자체일 테니까. 작가는 마지막까지 희망을 놓지 않는다. 그들의 혁명은 끝난 것이 아니다. 소설 제목이 의미하듯 변화는 끊임없이 싹을 틔운다.

탄광촌 사람들의 삶에서 석탄의 화학적 구조가 연상된다. 석탄은 나름 규칙적인 면이 보이나 납작하게 눌린 구조를 지닌다. 같은 탄소 성분이라도 다이아몬드와 다르다. 석탄과 다이아몬드. 두 물질은 오로지 구조적인 차이로 인해 전혀 다른 결과물로 존재한다. 이집트의 파라오인 듯 오만하게 군림하는 다이아몬드는 정사면체 구조를 지닌다. 이들의 결정 구조는 상반된 인간의 삶을 닮았다.

900~1300도의 고열과 3만 기압을 견뎌야만 석탄은 다이아몬드로 변한다. 탄광촌 노동자들에게 삶은 그렇게 견디는 시간의 집합체였을까. 내내 석탄으로 살다 끝내 불태워져 사그라지는 삶에 담긴 아픔은 어떤 물리량으로 존재할까. 삶 자체가 아픔이 될 때 그것은 어떤 형태로 전해질까. 석탄 빛깔을 닮은 어둠이 유난히 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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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감 2022-06-01 14:0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환경과 상황과 등장인물의 삼위일체, 사물들의 짐승화‘ 맞는 말씀입니다. 원초적이면서 문학적이기도 한 글을 이리도 잘 쓰는 작가라니, 참 대단합니다. 어찌보면 탄광 배경 때문에 스토리가 제한적일듯한데도 참 잘 풀어나가더라고요. 아니면 노동계층의 작품을 쓰기 위해 탄광을 택한 것일까요? 여튼 이번에도 클라쓰에 박수를... ㅎㅎ

심리뿐만 아니라 독자의 생각과 가치관과 윤리관 등등 모조리 까발려지는 듯해요. 저역시 하나의 노동자다 보니까 여러가지로 공감하면서도 괜시리 민망함이 드는거 있죠 ㅋㅋ

4가지 원소라니, 역시 과학인의 접근다워요. 기본 원소가 존재하는 원시 공간에서 인간의 날것이 드러나고 있다는 게 신기하기도 하고 당연한건가 싶기도 하고요. 끊임없이 굶주림과 싸우는 노동자들과, 사람들을 집어삼키는 탐욕가득한 탄광 짐승의 대립/공존을 그려낸 졸라의 뇌구조가 너무 궁금합니다. 파종의 달이라는 제목도 센스있어요^^ 졸라가 비평가로도 활동했던데, 그의 비평글은 얼마나 신랄했을지 ㅋㅋㅋ

본능 앞에서 어떤 방식이 옳은가는 2차적인 문제. 그렇죠. 일단 내가 살기 위해서 저절로 나오는 행동 자체인데, 여기서 누군가는 이성적일테고 누군가는 본능대로 움직일테죠. 졸라의 작품에는 온갖 반응을 보이는 인물들이 참 많이도 나와요. 저는 무대 사이즈가 큰 걸 싫어하는데도 졸라의 책은 잘 읽혀져요. 그래서 숨이 턱턱 막히는데도 자꾸 손이 가네요 ㅎㅎ

다이아몬드로 변하기 위해 고통의 시간을 보내는 석탄같은 노동자들의 삶. 멋진 표현입니다! <데미안>으로 바꿔말하면, 알을 깨고 나오기까지의 시간일려나요 ^^ 이 과정을 과격하게 지날지 온건하게 지날지는 각자의 판단이겠어요. 여러가지로 좋은 시각을 열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5월 너무 고생하셨어요. 아픈곳 빨리 나으시고, 6월에 또 만나요 ^^

나비종 2022-06-02 19:05   좋아요 2 | URL
그의 책을 읽을 때마다 활유법의 달인임을 절감하게 됩니다. 열받은 기차가 그토록 스팀을 뿜어대며 뱀처럼 꿈틀거리더니, 졸라의 손을 거치니 갱도가 금세 짐승의 창자 내지는 개미굴이 되어버리는 걸 보면 말이죠. 원초적이면서도 문학성에다 스토리까지 탄탄한 작품을 보면서 넘사벽의 작가 포스를 느꼈습니다. 폐소공포증이었다던데 탄광을 답습하다못해 직접 들어가보았다니 리얼리티를 구현하기 위한 집념이 존경스럽더군요.

맞아요! 생각과 가치관과 윤리관을 고스란히 드러내는 냉철한 통찰력이 대단합니다. 졸라의 작품에는 100%의 선인도 100%의 악인도 존재하지 않잖아요. 인간 내면에 존재하는 모순적인 양면성이 작품에서 온전히 까발려지는 모습을 보며, 당시 사람들은 졸라를 적으로 두었더라면 빠져나갈 구멍이 없었겠다 싶었어요. 막무가내의 비판이 아니라 근거를 두고 점점 파고드는 방식에 피가 말랐을테죠?ㅎㅎ


나비종 2022-06-02 19:23   좋아요 2 | URL
댓글을 쓰다 잠시 아아를 마시려는데 팔꿈치로 엔터키가 눌려지는 바람에...^^;;;

물,불,공기에 대한 졸라의 표현이 워낙 리얼한 바람에 4원소가 절로 떠오르더라는..ㅋㅋ 원시적인 공간에서라면 인간의 본질적인 원시성이 자연스럽게 드러나지 않을까요? 졸라의 뇌구조라...ㅎㅎ 천재의 뇌구조, 정말 궁금해지는데요?
제목도 깔끔한 게 작명 센스도 탁월하구요.
비평 대상은 아마 죽을 맛이지 않았을까요? 졸라 정도라면 펜이 칼이라는 표현이 적절하게 어울리지 싶어요.^^

살기 위해 본능에 따르는 건 전류가 흐르는 방식과 비슷하다는 생각을 해요. 전류는 갈래길을 만났을 때 저항이 큰 길로는 가려고 하지 않거든요. 쉬운 길로, 빠른 길로 흐르고자 하는 건 물질이나 인간이나 마찬가지인가 봅니다. 여기에 인간에게는 융통성이 있다는 점이 다르겠죠. ‘그럼에도 불구하고‘라는 용기가 변수로 작용하니 어디로 튈 지 모르는 인간 존재는 참 흥미로운 대상입니다.
저 역시 물감님처럼 방대한 대서사시는 체질에 안맞는데 졸라는 그런 면에서 졸라 묘한 작가예요. 완전 팬되었어요~~ㅎㅎ

극한의 배고픔에 도달해본 적이 없는 노동자인지라 감히 고통을 논하기에는 역부족이지만 이런 작품을 계기로 그들의 삶을 조금이나마 제대로 바라볼 수 있게 되어서 좋았어요. 맞아요. <데미안>의 알까기요. 얼마 전에 읽었던 <바람이 분다, 살아야겠다>에 이런 말이 나오거든요. 누구도 자신 앞의 똥을 대신 치워주지 않는다구요. 가만히 곱씹어보면 맥락이 통하더라구요. 혁명도 누군가 대신 해주는 게 아니라 스스로의 삶을 위해서는 자신이 꿈틀거리고 움직여야 한다는 거죠.

6월부터 다시 화이팅하려구요. 물감님도 건강 조심하세요~^^*
 
바람이 분다, 살아야겠다 - 철학자 강신주 생각과 말들 EBS 인생문답
강신주.지승호 지음 / EBS BOOKS / 202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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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서 나왔는지도 모를 물방울들이 송골송골 컵 표면에 맺힌다. 주르르 흘러내리더니 유리컵을 둘러싼 물 받침이 된다. 컵 안에서 나오지 않았으니 분명 공기 중에 있던 수증기일터이다. 투명하게 숨어있던 존재들이 실체를 드러내는 시간이다.

강신주의 책이 그렇다. 그의 문장을 따라가면 우아하게 덮여있던 가식이 적나라하게 드러나 흘러내린다. 잘 숨겨왔던 혹은 있었는지도 몰랐던 욕망들이 눈앞에 펼쳐진다. 촌철살인의 문장은 도무지 숨을 곳을 주지 않는다. 휴식을 취하듯 느린 호흡으로 읽어지지 않는다. 쨍한 유리컵에 얼음 꽉꽉 채운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닮았다. 냉철한 이성으로 혈 자리를 정확하게 지압하는 문장에 움찔하면서도 마지막 책장을 덮고 나면 후련해진다.

책장 곳곳에 그의 책이 꽂혀있다. 그의 문장은 매번 그래왔다. <감정수업>에서는 49가지 감정을 디테일하게 정의하더니 <다상담>에서는 위안을 주다가 <매달린 절벽에서 손을 뗄 수 있는가?>에서는 정면으로 화두를 던진다. 그의 철학이 얼마나 옳은지 논거가 타당한지는 상관없다. 중요한건 그의 문장들을 통과하면 생각이 많아지고 위안을 받으며 세상이 다르게 보인다는 사실이다.

 

바람이 분다, 살아야겠다는 전문 인터뷰어 지승호와 철학자 강신주가 여덟 번에 걸쳐 세상과 사람과 삶에 대하여 나눈 문답이 담긴 책이다.

전체적인 흐름을 보며 인터뷰어의 중요성을 깨닫는다. 어떤 질문을 하느냐에 따라 인터뷰이의 답변이 달라지므로 결국 전체적인 내용이 달라지니 말이다. 질문의 내용도 중요하지만 어떤 방식으로 주제에 접근하느냐에 따라 다양한 방식의 답변이 구현되니 인터뷰어의 역할이 크다. 그의 질문 방식은 몇 가지 면에서 내 스타일이다. 첫째, 문장에서 겸손함이 배어나온다. 둘째, 인터뷰이가 저술한 도서를 숙지한 상태에서 질문한다. 셋째, 논지를 정확하게 판단하며 다음 질문을 이끈다. 이런 점에서 지승호는 출판사의 탁월한 선택이라고 본다.

<맨얼굴의 철학 당당한 인문학>에서도 그들의 대화를 좋은 느낌으로 지켜보았다. 이번에도 그들은 나를 실망시키지 않았다. 프롤로그에서 그는 강신주 선생님의 건강이 나빠졌음을 언급하면서 스스로 조울증으로 인한 알코올의존증이었음을 밝힌다. 선뜻 꺼내기 어려운 말을 당당하게 하는 모습이 멋져보였다. 인터뷰어 지승호를 인터뷰하는 책이 나오면 어떨까. ‘지승호라는 사람이 궁금해진다.

 

마음 한구석 찜찜하지만 대놓고 물어보기엔 다소 새삼스러울 질문이 있었다. 강신주의 글은 나의 의문에 대한 답을 명쾌하게 제시한다.

첫째, 스스로를 진보적 지식인이라 칭하면서 외제차를 타고 비싼 옷을 사 입거나 어려운 이들에 대한 기부를 유도하면서 정작 본인은 아무 것도 안하는 사람을 진정한 진보인이라 할 수 있는가. 그런 모습을 마주칠 때면 모순이란 말을 떠올렸다. 이런 유형의 사람을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 건지 헷갈렸다. 사생활의 영역이니 별개의 것으로 여겨야 하나. 낮은 곳에 있으려 한다는 말 앞에서 되묻고 싶었다. 강신주는 말한다. 그런 사람은 진짜 진보인이 아니라 진보팔이라고.

둘째, 경제활동을 하지 않는 건 종교인의 당연한 권리인가. 서민들은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노동을 한다. 반면 대부분의 종교인들은 스스로 노동을 하여 먹을 것을 구하지 않는다. 불공이나 기도를 노동이라 칭하지는 않으니까. 정신적으로 높은 경지에 도달하여 득도하는 게 진정 타인을 위하는 것일까. 작가는 불교 세계에서 밥을 남기지 않는 이유로 나를 수긍케 한다. 다른 이의 노력으로 생계를 유지하므로 시주를 하는 이에게 고마움을 가져야 한다는 것. 밥을 남기지 않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고.

 

강신주의 문장에는 사랑자유가 묻어있어서 좋다. 뜨거운 사랑이 아니라 가을하늘을 닮은 사랑이다. 쨍한 푸르름의 직진성이다. 하늘 가득 드넓은 햇살이 펼쳐지는 장면이 연상된다. 그의 글을 읽다 보면 사랑과 자유가 동일한 개념으로 겹친다. 사랑과 연대는 자발적인 자기희생을 요구한다는 것, 사랑을 하려면 자기 삶의 주인이 되어야 가능하다는 것, 사랑을 하면 내 것을 기쁘게 덜어낼 수 있다는 것, 자유로운 사람만이 사랑할 수 있다는 것.

이런 사랑을 하고 싶다. 상상만 해도 마음이 탁 트인다. 하늘은 더불어 있는 것이지, 누가 소유하는 공간이 아니라는 그의 말처럼 작가가 말하는 사랑에 근접한다면 하늘의 느낌을 닮아갈 듯하다.

사람의 문맥을 읽는다는 제목부터 좋았다. 사람이 마치 책인 듯이 여기는 시각에 크게 공감한다. 어떤 텍스트를 읽는다는 것은 콘텍스트까지 이해하겠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이 부분을 지나면서 주변인들을 둘러보았다. 다양한 종류의 책들이 나의 주변을 둘러싸고 있다. 나는 주변 사람들을 얼마나 잘 읽고 있을까. 나를 볼 때는 객관적으로 바라보고, 대상을 볼 때는 주관적인 시선이 필요하다는 문장을 마음에 새긴다.

 

작은 자본가에 대하여 말한 문장들 앞에서는 생각이 많아진다. 스펙을 상품명세서라 말하는 철학자의 시선이 냉철하다. 노동자의 삶을 예전의 노예와 비교한 말은 매우 직설적이다. 타율적 노예인가, 자발적 노예인가의 차이일 뿐이라고. 출퇴근 노예가 노동자라는 말과 생산의 자유는 없고 소비의 자유만 있을 뿐이라는 말에 순간 웃기면서도 씁쓸한 마음으로 공감이 갔다.

허용된 자유는 기만일 뿐이라는 말에 아하! 무릎을 친다. 내게는 이런 자유만 허용될 뿐이야. 간혹 했던 생각의 모순성이 까발려졌다. 자유 자체가 허용과 상반된 의미라는 걸 깊이 생각하지 못했던 거다.

뜨끔한 문장을 또 발견한다. 최악은 세상이 막연히 좋아질 거라고 생각하는 것이고, 두 번째는 절망하는 것이고, 가장 바람직한 태도는 분노하고 바꿔버리는 거라고. 이건 아닌데 싶으면서도 막상 행동으로 옮기지 못하는 소심함에 스스로 작아지는 기분이다. 작가는 말한다. 아무도 내 앞에 있는 똥을 치워주지 않는다고, 스스로 치워야 한다고. 적절한 비유로 와 닿는 문장이다.

 

나는 배려의 아이콘이었다. 웬만하면 다른 사람의 의견에 따르며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거절은 사전 속에나 존재하는 말이었다. 오로지 YES만을 부르짖는 인간. 언심(言心)일치라면 크게 상관은 없을 터이다. 문제는 마음속으로는 거절을 외치지만 그 마음을 차마 말로 뱉지 못했다는 데 있었다.

기꺼운 거절이 마지못한 승낙보다 나을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 건 수많은 책 덕분이다. ‘, 그건 아냐~’ 라는 메시지가 파도처럼 마음을 들락거리면서 나의 성격은 노을빛으로 점차 변하게 된다. 배려를 몽땅 수거한 건 아니지만 때로는 부드럽게 거부할 줄 아는 인간으로 서서히 거듭나는 중이다. 비중 있는 기여를 한 작가 강신주의 역할이 크다.

이 책을 마주하면서 다시 한 번 나를 객관적으로 분석해본다. 자기가 원하는 것을 하는 사람을 주인이라고 하고, 남이 원하는 것을 하는 사람들을 노예라고 부른다는 문장에 뜨끔하다. 예전의 나는 진정한 배려 인간이 아니었다. ‘기꺼이 기쁜 마음으로가 빠져 있었으니 노예와 같은 삶이었던 거다. 칼바람 쌩쌩 부는 냉철인까지는 아니더라도 요청을 수락하기 전에 스스로 묻는다. 진정 기쁜 마음으로 할 수 있는가. 그렇다는 답변 앞에서 움직이려 노력한다.

 

먹을 것에 그다지 의미를 부여하지 않았다. 종종 핸드폰을 충전하듯 밥을 먹었다. 음식은 에너지 발생을 위한 수단에 지나지 않았다. 끼니를 때운다는 말은 적어도 내게는 적절한 표현이었다. 생각이 많아졌다. ‘혼자서 끼니를 때우기 위해 먹는 것은 사료라는 말이 날카롭게 다가왔다. 음식은 나누고 함께할 때만이 비로소 음식다워진다는 발터 벤야민의 말이 마음에 남는다. 커피 카피가 떠오른다. 네가 그냥 커피라면 난 티오피~. 사료와 음식의 차이는 이런 것이리라. 요즘은 고속 충전하듯 밥을 밀어 넣던 식습관을 릴렉스하는 중이다.

간혹 음식을 먹을 때 숙연해진다. 우리가 먹는 모든 음식이 한때는 생명이었다는 생각이 들어서이다. 채식주의자라 외치면서도 가끔은 삼겹살이 땡기고 식물만을 먹는 것은 괜찮나 헷갈렸다. 식물도 생명이니까. 살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다른 생명의 삶을 취해야하는 건 필연이건만. 강신주의 문장에서 명쾌한 답을 얻는다. 최소한의 폭력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는 것. 음식을 남기지 않아야 하는 이유와도 연결이 된다. 죽음도 이런 관점이라면 더 이상 다른 생명에게 폭력을 행사하지 않는 것이니 오히려 마음이 편안해지는 거라고.

 

팬데믹, 언택트, 스마트폰 사회경제학, 스펙, 가족공동체, 기브 앤 테이크 등 사회에서 일어나는 현상들을 바라보니 돋보기로 어떤 대상을 관찰하는 장면이 떠오른다. 선명한 상을 보기 위해서는 정확한 초점을 맞추기 위해 왔다 갔다 거리 조절의 과정이 필요하듯 무엇이 중요한지 어떤 각도에서 현상을 바라봐야 하는지 중심을 잡을 수 있어서 좋았다.

누군가를 만난다는 건 그 존재 자체를 오감을 통해 만나는 것이라는 말, 인간이 가진 최고의 감각이 촉감이라는 말에 공감한다. 사랑의 관계에 대한 관점도 신선하다. 사랑은 같은 곳을 바라보며 함께 걷는다는 말을 별생각 없이 받아들여 왔다. 작가의 말은 다르다. 서로 얘기하고, 산책하고, 너와 내가 마주 보는 관계가 사랑의 관계라는 것. ‘사랑의 속성을 다시 한 번 톺아본다.

강연에 대해서는 강연 이후의 시간에 진정한 강연이 시작된다는 말에 크게 고개를 끄덕인다. 수업 관련 연수를 받으며 잠시 쉬는 시간에 이루어졌던 대화에서 꿀팁을 얻은 기억이 많기 때문이다. 짧은 시간동안에 오고 갔던 말들이 정말 도움이 되었다. 본 강연은 단지 소스를 제공하고 거들뿐이었다.

 

다른 이들을 따뜻하게 해주는 글을 쓰고 싶다고 종종 말해왔다. 나의 글은 누구를 위한 따뜻함인가. 예컨대, 거리를 걷다보면 폐지를 줍는 노인들이 자주 눈에 들어온다. 폐지 줍는 노인에 대한 시를 여러 편 짓는다. 당신들의 고단한 삶을 시로 그린다. 한데 정작 폐지 줍는 노인들은 나의 시를 읽을 일이 거의 없다는 게 팩트이다. 생계가 힘들면 인권도 의미가 없다는 작가의 말에 공감한다. 당장 오늘 하루의 생계에 에너지를 쏟아 부어야 하는 절박함 앞에서 시는 설득력을 잃는다.

나의 시는 누구를 위한 것인가. 나는 이런 생각도 해, 이런 시각으로 소위 사회적인 약자들을 바라보고 있다는 무의식적인 자기만족 내지는 자기 과시가 아닌가. 이런 고민에 대한 답은 스스로 찾아가야 하리라.

더 이상 쓰지 못하면 작가는 살아도 죽은 것이고, 설령 살아 있다고 해도 그의 마지막 책은 묘지명이 되고 만다는 문장을 읽고 글을 쓰는 미래를 상상해본다. 프로가 되든 아마추어로 살든 지금처럼 같은 결로 글을 쓴다면 나의 마지막 문장은 무엇이 될까. 깊어지고 넓어지는 사유로 계속 다듬고 나면 어떤 문장이 남을까. 막연하면서도 설렌다.

 

강신주의 글은 다른 방향을 보게 한다. ‘변화에 대한 관점도 그중 하나다. 사람들이 조화보다 생화에 더 끌리는 이유도 본능적인 이끌림일까. 시들어가는 꽃을 보며 허무하다 여겼던 관점이 그렇게 변해가니까 더욱 소중하다는 생각으로 변한다. 같은 맥락으로 나이 들어가는 것도 마찬가지이겠지. 불로장생의 삶을 살아간다면 오늘의 삶도 크게 의미 없으리라. 어차피 영원히 이어질 내일이 다가올 테니. 우리의 삶이 제한되어있기에 오늘 하루가 그만큼 소중한 것인지도 모른다. 같은 모습으로 제한된 삶이 주어진다면 지루할 수도 있겠다. 늙어가는 모습으로 변주를 준다고 생각하면 아쉽지 않다. 다만 건강한 몸으로 살아가려 노력해야 하리라.

작가는 멋진 철학자이다. 익숙했던 것을 낯설게 만들고, 낯선 것도 익숙하게 만드는 것이 철학자의 역할이라는 생각을 그대로 실천하고 있기 때문이다. 책 사이사이에 간간이 끼워진 사진을 보며 안타까웠다. 많이 야윈 작가의 얼굴을 보며 예전의 강연 동영상 몇 개를 찾아본다. 다시 돌아와 세월이 담긴 모습을 물끄러미 응시한다. 생명체가 변화하는 건 당연한 현상이리라. 느낌 탓일까. 표정에서 깊이가 보이는 듯하다.

 

바람이 분다, 살아야겠다는 폴 발레리의 시 <해변의 묘지>의 마지막 구절이다. 빙산의 꼭대기만 바라보고 빙산 전체를 판단하지 말지어다. ‘바람이 분다, 살아야겠다.’의 의미를 너무 얕게 알아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많이 들어본 말이었기에 낯설지 않았던 문장이다. 깊은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지도 모른 채 평범한 직역만을 알아왔다. 에필로그에서 제목을 보고 뒤에 이어지는 문장을 읽는 순간, 거대한 쓰나미급 물결이 심장을 훑고 지나갔다.

바람이 분다......살아야겠다! / 세찬 바람이 내 책을 펼쳤다가 닫고, / 파도의 포말들이 바위 틈에서 작열한다! / 날아 흩어져라, 찬란한 모든 페이지들이여!’ 문장들을 연결해서 음미하니 훨씬 더 깊었다. ‘바람이 분다살아야겠다사이에 있는 말줄임표에서부터 많은 말들이 담겨있음을 깨달았다. 무덤들 앞에서 바람을 맞는 시인. 말줄임표 끝에 살아야겠다는 말이 나오기까지 어떤 생각을 했을까.

철학자 강신주가 어떤 마음으로 이 시를 적었는지, 왜 이 책의 제목을 저렇게 정했는지를 가늠해본다. 사랑과 자유와 인간의 삶을 말하던 책 속의 문장들과 잘 어울린다. 바람이 불 듯 다가온 문장들을 통과하고 나니 어떤 방향을 향해 걸어가야 할지 시야가 선명해진다. 흩어질 나날, 찬란한 내 삶의 페이지들이 포말처럼 뿜어져 나오는 장면을 상상하는 순간 울컥해진다.

 

 

p37, 밑에서 7째줄: 환경 문제 에 ~ 문제에

p116, 밑에서 6째줄: 기배계급은 지배~

p208, 마지막 줄: 메를리 퐁티 메를로~

p240, 3째줄: 빈인빈 빈익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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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발의 아이가 신호등 앞에서

시선을 벗어난 양 춤을 춘다.

수요일 오전, 체육복을 입은 채

시간과 공간을 불쑥 찢고 나와

무작정 학교 밖을 향해 내달렸을까.


목적지를 잃은 걸음이 잠시

신호등 앞에서 쉼표로 머무는 동안

아픈 음악이 흘러나오는 듯

세상 안에서 세상을 벗어난 듯

파르르 앙상한 손끝이 출렁인다.


경계 모호한 노란불을 닮은 걸음이

위태위태한 삶의 거리로 이어지기까지

숨 차오르는 일상 속 서툰 심장은

초록과 빨간불 사이를 허덕이며

무수한 깜빡임을 반복했으리라.


불현듯 심장에 작은 신호등이 켜진 날

날아드는 유성의 자유를 잠시나마 품었기를.

몇 번이나 망설였을 눈물 고인 신호등이

무심하게 점멸하는 거리의 신호등과 함께

상처 입은 몸부림이 되어 흐늘거리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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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를 알다 해를 살다 - 생명살이를 위한 24절기 인문학
유종반 지음 / 작은것이아름답다 / 2019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이제는 보내줘야 할 시간인가. 바삭 구워진 감자 칩처럼 갈변한 잎들을 한 장 한 장 떼어냈다. 내 무심함의 소산인양 괜스레 미안했다. 새끼손톱만한 꽃 분홍으로 주방 창가를 작은 텃밭으로 만들어준 식물. 앙상하게 드러난 알몸의 나뭇가지가 흔들렸다. 과거형이 된 존재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사그라진 잎들을 아쉬워하며 며칠 동안 한 일은 하나였다. 다만 습관처럼 물을 주었을 뿐. 소용없음을 알지만 맨 땅의 메마름이 안쓰러워서였다.

상상도 하지 못한 기적은 한 달도 채 되지 않은 아침에 나타났다. 몸통에 까슬까슬한 솜털 비슷한 게 한동안 보이더니. 나의 식물은 구석구석에 연두 빛 작은 이슬을 보여주었다. 봄 이었다! 몇 년 전 주방 창가의 작은 화분에서 나는 봄을 보았다. 우주의 기운이 정말 존재하는 걸까.

며칠 전, 곡우가 지났다. 이제는 안다. 올해도 어김없이 갈색으로 변해버린 잎들이 다시 연두 빛 옷을 입고 등장하리라는 사실을. 식물이 전했던 이별의 모습이 더 이상 아쉽지 않아졌다. 미련 없이 훌훌 털어버리는 무소유. 계절의 변화에 따라 인고의 시간을 넘으면 화분 안의 생명은 다시 삶을 반복한다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지구에서 모든 에너지의 근원은 태양에너지이다. 지구와 태양의 상대적인 위치 관계가 지구 위 생명들의 삶에 영향을 미친다. 태양의 위치에 따라 1년을 24개로 구분한 결과가 절기이다. 때를 알다 해를 살다는 계절과 절기에 관한 이야기이다. 입동, 소설, 대설, 동지, 소한, 대한, 입춘, 우수, 경칩, 춘분, 청명, 곡우, 입하, 소만, 망종, 하지, 소서, 대서, 입추, 처서, 백로, 추분, 한로, 상강 등 계절별로 구분된 24절기를 세세하게 설명한다. 계절, 24절기의 의미와 시기, 행사, 나타나는 자연 현상, 관련 속담과 시, 함께 생각할 질문이 담긴다.

지구온난화로 인하여 몇몇 절기 관련 현상은 들어맞지 않게 되었다. 다른 나라에서만 나타나는 현상을 기술한 문장도 보인다. 그렇다면 우리나라 맞춤형의 절기 지도를 보정하여 만들면 어떨까.

겨울은 생명을 준비하는 기간, 봄은 열매를 잘 맺는 기간, 여름은 뜨거운 햇볕과 강한 비바람으로 열매를 잘 키우는 기간, 가을은 제 빛깔과 제 맛과 제 향기에 맞는 열매로 익히는 기간이다. 인생은 타이밍. 지나오는 시간이 쌓일수록 삶의 진리라는 생각이 강하게 드는 말이다. 저자는 말한다. 때는 미리 알고 준비하는 자의 것이니 누구에게나 봄은 오지만 아무에게나 봄은 아니라고. 절기를 아는 것이 나를 아는 것이라며 절기와 우리 삶을 연결 짓는다.

 

계절과 절기와 관련하여 제대로 알게 된 몇 가지가 있다.

첫째, 절기의 는 때를 뜻하는 가 아니라 기운을 의미하는 이다. ‘기운이라 하니 왠지 신비롭고 묘하다. 보이지 않고 만져지지도 않지만 분명 존재하는 무엇. 기운을 연상하며 24절기를 공부하니 우주의 비밀을 들여다보는 느낌이다. 선조들의 지혜에 감탄한다.

둘째, 월별 계절의 구분이다. 2~4월은 봄, 5~7월은 여름, 8~10월은 가을, 11~1월은 겨울로 구분한다. 절기에 따르면 땅의 봄이 시작되는 시기는 3월이 아니라 입춘이 포함된 2월이다.

셋째, 입춘, 입하, 입추, 입동 등 계절의 시작을 뜻하는 은 들어선다는 이 아니라 세운다는 이다. 그저 때가 되어서 맞는 것이 아니라 미리 준비해서 세운다는 의미인 거다. 절기의 깊은 뜻은 인간을 능동적인 존재로 만든다.

넷째, 11월은 하늘의 봄이 시작하는 달이다. 저자는 11월을 자월(子月)로 설명한다. 11시와 새벽1시 사이도 자시(子時)라 일컫는다는 사실이 떠오르면서 살짝 소름이 돋는다.

다섯째, 계절의 시작은 겨울이다. 생명이 움트는 봄을 준비하는 계절을 시작으로 본다. 일리가 있는 관점이다. 인간의 삶 역시 봄에 태어나 가을로 마감한다. 부모님, 역사, 문화, 우주, 자연 등 존재 이전의 사건과 대상은 준비 기간이다. 나의 삶은 내가 태어나기도 전에 이미 시작되고 있었던 거다.

 

24절기 절기살이에 들어서면서 65쪽부터 오른쪽 위에 조그만 손톱크기의 반달무늬가 보인다. 애니메이션을 넘기듯 휘리릭 넘기면 빙글빙글 움직인다. 나름 동영상이 연출된다. 마음에 들었던 깨알 편집이다.

다만 교정과 내용면에서 두 가지 요소가 몰입을 방해했다.

첫째, 몇몇 누락과 오기이다. 차례에서부터 누락된 글자를 발견한다. 곡우에는 문장 부호가 빠지더니 망종과 하지에서는 절정에 달한다. 사소한 단어의 오류부터 문장 받침의 오기가 눈에 들어왔다. 명백히 교정을 본 사람의 책임이라 판단한다.

둘째, 반복되는 말과 구어체의 문장 표현 방식이다. 의도는 알겠는데 말이 반복되니 구성이 산만했다. 한 계절 안에서 하나의 절기에 대한 일관적인 흐름 없이 말이 이리저리 뒤섞여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문어체인 듯 조사가 생략된 문장도 등장했다. 문장의 표현 방식은 작가의 문체이니 그렇다 쳐도 반복되는 문장들로 인해 내용이 늘어진다는 느낌을 받았다.

절기를 안다는 것은 우주의 기운과 그 흐름을 현명하게 읽어 내려가는 행위이다. 그러니 몇몇 단점에도 불구하고 계절을 제대로 바라보며 삶을 돌아보게 만들어준 것만으로도 이 책의 의미는 크다.

 

삶의 계절은 관계를 계기로 변화하나. 크고 작은 만남이 반복되면서 어설프고 불안정했던 나의 계절은 조금씩 바뀌었다. 만남의 대상은 주로 사람이거나 책이었다. 내 삶이 통과한 계절을 돌아본다. 설렘으로 발그레하던 봄, 열정적으로 선명했던 여름, 황량한 상실감으로 터벅터벅 걷던 가을, 매서운 눈보라에 구석으로 내몰린 채 서러운 눈물이 얼어붙던 계절을 기억한다.

계절의 변화가 눈으로, 코로, 귀로, 피부로 민감하게 들어온다. 우주의 기운을 받아들이기 위해 나의 몸이 깨어나는 느낌이랄까. 누군가 빼앗긴 들 같은 마음에도 봄은 오느냐고 묻는다면? 나의 답은 그렇다이다. 계절의 순환을 반복하다보면 언젠가는 온다. 이제는 암울하게만 인식되던 겨울을 따스한 마음으로 날 수 있을 것 같다. 겨울은 다가올 봄을 품기 위해 워밍업을 하는 기간이니까. 겨울은 삶을 응축시키며 내면의 소리를 듣고 깊게 들여다보는 시기라는 저자의 말이 따스하다. 철을 공부했는데 철든 삶이 보인다.

계절의 기운에 몸을 얹은 채 자연스럽게 파도타기를 하는 자연을 바라본다. 매년 자연은 새롭다. 포슬포슬한 눈, 흙의 빛깔을 닮은 나무, 초록의 잎, 손바닥만 한 새, 연두 빛 새싹, 빛을 가둔 고드름, 사락사락 풀들, 드넓은 대지 위에 철마다 그려지는 화려한 점묘화, 우주의 기운이 집중된 열매, 수많은 생명의 꿈을 품은 땅, 가뿐히 자유로운 구름. 계절에 담기는 건 이토록 소박한 존재들이다. 자그마한 존재들의 변화로 계절은 자연스레 물들어간다.

 

바이킹을 제대로 즐기는 방법은 배의 움직임에 맞춰 리듬을 타는 거다. 흔들리는 컵 안에 담긴 물처럼 움직이지 않으려는 관성으로 출렁이다 넘치는 게 아니라 신발의 속도와 방향에 맞춰 하나로 움직이는 발이 되는 것.

인간의 삶도 비슷하리라. 계절이 품고 있는 온도와 습도를 온몸으로 받아들이면 계절과 한 몸인 듯 삶을 즐길 수 있지 않을까. 봄처럼 마냥 설레는 시간만을 보내는 게 아니라 여름의 뜨거움도 감내하고 미련 없는 가을의 무소유도 닮아가며 시린 겨울을 향해 가슴을 내밀면 더 이상 서럽거나 외롭거나 억울하지 않으리라.

얼굴이 활짝 피었어요.” 작년에 같은 사무실을 썼던 동료가 인사말을 건넨다.

나만 행복해서 어떻게 하지.” 환하게 웃으며 답한다.

지금은 어느 때인가. 나는 어느 계절을 지나고 있나. 무엇을 알고 살아야하는가. 나의 열매는 익어가는 중인가. 지나온 어느 때보다 지금의 나는 더욱 생기 있는 계절을 지나는 중이다. 지금은 확실히 봄이다.

나의 봄을 누리기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다. 이 봄이 영원하지 않겠지만 아쉽지는 않다. 다가올 여름, 가을, 겨울을 당당하게 지나면 다시 또 봄이 오리라는 사실을 알기 때문이다.

 

 

<누락, 조사 생략>

p21, 대설 다음에 동지’(인터넷 책 소개에는 제대로 되어있음)

p157의 밑에서 5째줄, p1794째줄, p185의 중간(새로워진다): 마침표 누락

p159의 밑에서 2째줄(말씨 몸씨): 쉼표 누락

p162, 2번째 단락 3째줄(45 50): ‘~’표 누락

p176, 밑에서 3째줄: 한 해 가장 길다. 한 해 중 ~

p178, 아침 기온 20도 이상 올라간다. 아침 기온이 ~

p1846째줄(담석), p184의 중간(자로), p1855째줄(왕채), p185(창포비녀), p186(사전): 밑줄 누락

 

<오기, 오류>

p138, 꽃이 피다. ~ 핀다.

p177, 2째줄: 시작되기도 하다. ~ 한다.

p179, 3째줄: 된다). 된다.)

p179, 밑에서 5째줄: 일임). 일임.)

p183, 밑에서 5째줄: ‘*보리가 익는 철중복 표기

p212, 3째줄: 운다다. 운다.

p217, 밑에서 7째줄: 매단 체 ~

p229, 4째줄: 코스모스 가 코스모스가

p230의 절기 시: 이슬 노래 이슬

p230, 김동균 작곡 김동호 ~

p247, 6째줄: 쌀 한 말 ~

 

<제안>

절후 현상과 절기 현상을 합쳐서 기술했어도 좋았을 듯. 절후가 5일 간격으로 절기를 세 등분한 개념이지만 내내 그 절기 안에 속해있으므로 중복된 내용이 간간이 등장함. 현상들을 한 공간에 모아 놓고 표로 구분했으면 어땠을까.

p81, 밑에서 10째줄: 남반부 남반구(지구는 타원체이므로 남쪽 부분을 가리키는 보다는 라는 표현이 좀 더 정확함)

p176, 밑에서 9째줄: 북반부 북반구

p182, 하지 행사에 단오절, 단오선 등장 이건 망종 행사에 적합할 듯

p223, 입추와 처서를 설명하는 부분이므로 ‘6. 찬 이슬과 서리의 의미는의 내용은 백로, 한로, 상강에서 다루는 게 적합해 보임

p2052번째 단락과 p224~225의 내용 중복: 진정한 행복은 좋은 관계를~

p243(揠苗助長)은 한자 앞에 음(알묘조장)도 달았으면(무식하지만 집요하기도 한 나는 이거 알아내려고 별짓을 다함)

 

<이해가 잘 안감>

p124~125, 춘분(320일쯤) 속담에 2월이 등장한 건 음력 2월을 의미하는 건가?

곡우에 비가 오면 농사에 좋지 않다.(p137)와 곡우에 비가 오면 풍년이 든다.(p139)는 정반대의 문장인데...

p139, 청명 속담에 봄비 내용이 맞나?(청명은 하늘이 맑고 날씨가 좋은 절기라면서...)

p176, 밑에서 2째줄: 소서부터~ (하지 관련 내용을 설명하다 갑자기 소서 등장)

p254, 3째줄: (소아: 무엇?)... 무엇?이 무엇일까? <시경><소아편>을 의미하는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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