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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를 알다 해를 살다 - 생명살이를 위한 24절기 인문학
유종반 지음 / 작은것이아름답다 / 2019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이제는 보내줘야 할 시간인가. 바삭 구워진 감자 칩처럼 갈변한 잎들을 한 장 한 장 떼어냈다. 내 무심함의 소산인양 괜스레 미안했다. 새끼손톱만한 꽃 분홍으로 주방 창가를 작은 텃밭으로 만들어준 식물. 앙상하게 드러난 알몸의 나뭇가지가 흔들렸다. 과거형이 된 존재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사그라진 잎들을 아쉬워하며 며칠 동안 한 일은 하나였다. 다만 습관처럼 물을 주었을 뿐. 소용없음을 알지만 맨 땅의 메마름이 안쓰러워서였다.
상상도 하지 못한 기적은 한 달도 채 되지 않은 아침에 나타났다. 몸통에 까슬까슬한 솜털 비슷한 게 한동안 보이더니. 나의 식물은 구석구석에 연두 빛 작은 이슬을 보여주었다. 봄 이었다! 몇 년 전 주방 창가의 작은 화분에서 나는 봄을 보았다. 우주의 기운이 정말 존재하는 걸까.
며칠 전, 곡우가 지났다. 이제는 안다. 올해도 어김없이 갈색으로 변해버린 잎들이 다시 연두 빛 옷을 입고 등장하리라는 사실을. 식물이 전했던 이별의 모습이 더 이상 아쉽지 않아졌다. 미련 없이 훌훌 털어버리는 무소유. 계절의 변화에 따라 인고의 시간을 넘으면 화분 안의 생명은 다시 삶을 반복한다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지구에서 모든 에너지의 근원은 태양에너지이다. 지구와 태양의 상대적인 위치 관계가 지구 위 생명들의 삶에 영향을 미친다. 태양의 위치에 따라 1년을 24개로 구분한 결과가 절기이다. 『때를 알다 해를 살다』는 계절과 절기에 관한 이야기이다. 입동, 소설, 대설, 동지, 소한, 대한, 입춘, 우수, 경칩, 춘분, 청명, 곡우, 입하, 소만, 망종, 하지, 소서, 대서, 입추, 처서, 백로, 추분, 한로, 상강 등 계절별로 구분된 24절기를 세세하게 설명한다. 계절, 24절기의 의미와 시기, 행사, 나타나는 자연 현상, 관련 속담과 시, 함께 생각할 질문이 담긴다.
지구온난화로 인하여 몇몇 절기 관련 현상은 들어맞지 않게 되었다. 다른 나라에서만 나타나는 현상을 기술한 문장도 보인다. 그렇다면 우리나라 맞춤형의 절기 지도를 보정하여 만들면 어떨까.
겨울은 생명을 준비하는 기간, 봄은 열매를 잘 맺는 기간, 여름은 뜨거운 햇볕과 강한 비바람으로 열매를 잘 키우는 기간, 가을은 제 빛깔과 제 맛과 제 향기에 맞는 열매로 익히는 기간이다. 인생은 타이밍. 지나오는 시간이 쌓일수록 삶의 진리라는 생각이 강하게 드는 말이다. 저자는 말한다. 때는 미리 알고 준비하는 자의 것이니 누구에게나 봄은 오지만 아무에게나 봄은 아니라고. 절기를 아는 것이 나를 아는 것이라며 절기와 우리 삶을 연결 짓는다.
계절과 절기와 관련하여 제대로 알게 된 몇 가지가 있다.
첫째, 절기의 ‘기’는 때를 뜻하는 ‘期’가 아니라 기운을 의미하는 ‘氣’이다. ‘기운’이라 하니 왠지 신비롭고 묘하다. 보이지 않고 만져지지도 않지만 분명 존재하는 무엇. 기운을 연상하며 24절기를 공부하니 우주의 비밀을 들여다보는 느낌이다. 선조들의 지혜에 감탄한다.
둘째, 월별 계절의 구분이다. 2월~4월은 봄, 5월~7월은 여름, 8월~10월은 가을, 11월~1월은 겨울로 구분한다. 절기에 따르면 땅의 봄이 시작되는 시기는 3월이 아니라 입춘이 포함된 2월이다.
셋째, 입춘, 입하, 입추, 입동 등 계절의 시작을 뜻하는 ‘입’은 들어선다는 ‘入’이 아니라 세운다는 ‘立’이다. 그저 때가 되어서 맞는 것이 아니라 미리 준비해서 세운다는 의미인 거다. 절기의 깊은 뜻은 인간을 능동적인 존재로 만든다.
넷째, 11월은 하늘의 봄이 시작하는 달이다. 저자는 11월을 자월(子月)로 설명한다. 밤11시와 새벽1시 사이도 자시(子時)라 일컫는다는 사실이 떠오르면서 살짝 소름이 돋는다.
다섯째, 계절의 시작은 겨울이다. 생명이 움트는 봄을 준비하는 계절을 시작으로 본다. 일리가 있는 관점이다. 인간의 삶 역시 봄에 태어나 가을로 마감한다. 부모님, 역사, 문화, 우주, 자연 등 존재 이전의 사건과 대상은 준비 기간이다. 나의 삶은 내가 태어나기도 전에 이미 시작되고 있었던 거다.
24절기 절기살이에 들어서면서 65쪽부터 오른쪽 위에 조그만 손톱크기의 반달무늬가 보인다. 애니메이션을 넘기듯 휘리릭 넘기면 빙글빙글 움직인다. 나름 동영상이 연출된다. 마음에 들었던 깨알 편집이다.
다만 교정과 내용면에서 두 가지 요소가 몰입을 방해했다.
첫째, 몇몇 누락과 오기이다. 차례에서부터 누락된 글자를 발견한다. 곡우에는 문장 부호가 빠지더니 망종과 하지에서는 절정에 달한다. 사소한 단어의 오류부터 문장 받침의 오기가 눈에 들어왔다. 명백히 교정을 본 사람의 책임이라 판단한다.
둘째, 반복되는 말과 구어체의 문장 표현 방식이다. 의도는 알겠는데 말이 반복되니 구성이 산만했다. 한 계절 안에서 하나의 절기에 대한 일관적인 흐름 없이 말이 이리저리 뒤섞여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문어체인 듯 조사가 생략된 문장도 등장했다. 문장의 표현 방식은 작가의 문체이니 그렇다 쳐도 반복되는 문장들로 인해 내용이 늘어진다는 느낌을 받았다.
절기를 안다는 것은 우주의 기운과 그 흐름을 현명하게 읽어 내려가는 행위이다. 그러니 몇몇 단점에도 불구하고 계절을 제대로 바라보며 삶을 돌아보게 만들어준 것만으로도 이 책의 의미는 크다.
삶의 계절은 관계를 계기로 변화하나. 크고 작은 만남이 반복되면서 어설프고 불안정했던 나의 계절은 조금씩 바뀌었다. 만남의 대상은 주로 사람이거나 책이었다. 내 삶이 통과한 계절을 돌아본다. 설렘으로 발그레하던 봄, 열정적으로 선명했던 여름, 황량한 상실감으로 터벅터벅 걷던 가을, 매서운 눈보라에 구석으로 내몰린 채 서러운 눈물이 얼어붙던 계절을 기억한다.
계절의 변화가 눈으로, 코로, 귀로, 피부로 민감하게 들어온다. 우주의 기운을 받아들이기 위해 나의 몸이 깨어나는 느낌이랄까. 누군가 빼앗긴 들 같은 마음에도 봄은 오느냐고 묻는다면? 나의 답은 ‘그렇다’이다. 계절의 순환을 반복하다보면 언젠가는 온다. 이제는 암울하게만 인식되던 겨울을 따스한 마음으로 날 수 있을 것 같다. 겨울은 다가올 봄을 품기 위해 워밍업을 하는 기간이니까. 겨울은 삶을 응축시키며 내면의 소리를 듣고 깊게 들여다보는 시기라는 저자의 말이 따스하다. 철을 공부했는데 철든 삶이 보인다.
계절의 기운에 몸을 얹은 채 자연스럽게 파도타기를 하는 자연을 바라본다. 매년 자연은 새롭다. 포슬포슬한 눈, 흙의 빛깔을 닮은 나무, 초록의 잎, 손바닥만 한 새, 연두 빛 새싹, 빛을 가둔 고드름, 사락사락 풀들, 드넓은 대지 위에 철마다 그려지는 화려한 점묘화, 우주의 기운이 집중된 열매, 수많은 생명의 꿈을 품은 땅, 가뿐히 자유로운 구름. 계절에 담기는 건 이토록 소박한 존재들이다. 자그마한 존재들의 변화로 계절은 자연스레 물들어간다.
바이킹을 제대로 즐기는 방법은 배의 움직임에 맞춰 리듬을 타는 거다. 흔들리는 컵 안에 담긴 물처럼 움직이지 않으려는 관성으로 출렁이다 넘치는 게 아니라 신발의 속도와 방향에 맞춰 하나로 움직이는 발이 되는 것.
인간의 삶도 비슷하리라. 계절이 품고 있는 온도와 습도를 온몸으로 받아들이면 계절과 한 몸인 듯 삶을 즐길 수 있지 않을까. 봄처럼 마냥 설레는 시간만을 보내는 게 아니라 여름의 뜨거움도 감내하고 미련 없는 가을의 무소유도 닮아가며 시린 겨울을 향해 가슴을 내밀면 더 이상 서럽거나 외롭거나 억울하지 않으리라.
“얼굴이 활짝 피었어요.” 작년에 같은 사무실을 썼던 동료가 인사말을 건넨다.
“나만 행복해서 어떻게 하지.” 환하게 웃으며 답한다.
지금은 어느 때인가. 나는 어느 계절을 지나고 있나. 무엇을 알고 살아야하는가. 나의 열매는 익어가는 중인가. 지나온 어느 때보다 지금의 나는 더욱 생기 있는 계절을 지나는 중이다. 지금은 확실히 봄이다.
나의 봄을 누리기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다. 이 봄이 영원하지 않겠지만 아쉽지는 않다. 다가올 여름, 가을, 겨울을 당당하게 지나면 다시 또 봄이 오리라는 사실을 알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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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락, 조사 생략>
p21, 대설 다음에 ‘동지’(인터넷 책 소개에는 제대로 되어있음)
p157의 밑에서 5째줄, p179의 4째줄, p185의 중간(새로워진다): 마침표 누락
p159의 밑에서 2째줄(말씨 몸씨): 쉼표 누락
p162, 2번째 단락 3째줄(45 50일): ‘~’표 누락
p176, 밑에서 3째줄: 한 해 가장 길다. → 한 해 중 ~
p178, 아침 기온 20도 이상 올라간다. → 아침 기온이 ~
p184의 6째줄(담석), p184의 중간(자로), p185의 5째줄(왕채), p185(창포비녀), p186(사전): 밑줄 누락
<오기, 오류>
p138, 꽃이 피다. → ~ 핀다.
p177, 2째줄: 시작되기도 하다. → ~ 한다.
p179, 3째줄: 된다). → 된다.)
p179, 밑에서 5째줄: 일임). → 일임.)
p183, 밑에서 5째줄: ‘*보리가 익는 철’중복 표기
p212, 3째줄: 운다다. → 운다.
p217, 밑에서 7째줄: 매단 체 → ~ 채
p229, 4째줄: 코스모스 가 → 코스모스가
p230의 절기 시: 이슬 노래 → 이슬
p230, 김동균 작곡 → 김동호 ~
p247, 6째줄: 쌀 한 말 → ~ 알
<제안>
절후 현상과 절기 현상을 합쳐서 기술했어도 좋았을 듯. 절후가 5일 간격으로 절기를 세 등분한 개념이지만 내내 그 절기 안에 속해있으므로 중복된 내용이 간간이 등장함. 현상들을 한 공간에 모아 놓고 표로 구분했으면 어땠을까.
p81, 밑에서 10째줄: 남반부 → 남반구(지구는 타원체이므로 남쪽 부분을 가리키는 ‘부’보다는 ‘구’라는 표현이 좀 더 정확함)
p176, 밑에서 9째줄: 북반부 → 북반구
p182, 하지 행사에 단오절, 단오선 등장 → 이건 망종 행사에 적합할 듯
p223, 입추와 처서를 설명하는 부분이므로 ‘6. 찬 이슬과 서리의 의미는’의 내용은 백로, 한로, 상강에서 다루는 게 적합해 보임
p205의 2번째 단락과 p224~225의 내용 중복: 진정한 행복은 좋은 관계를~
p243의 (揠苗助長)은 한자 앞에 음(알묘조장)도 달았으면(무식하지만 집요하기도 한 나는 이거 알아내려고 별짓을 다함)
<이해가 잘 안감>
p124~125, 춘분(3월 20일쯤) 속담에 2월이 등장한 건 음력 2월을 의미하는 건가?
곡우에 비가 오면 농사에 좋지 않다.(p137)와 곡우에 비가 오면 풍년이 든다.(p139)는 정반대의 문장인데...
p139, 청명 속담에 봄비 내용이 맞나?(청명은 하늘이 맑고 날씨가 좋은 절기라면서...)
p176, 밑에서 2째줄: 소서부터~ (하지 관련 내용을 설명하다 갑자기 소서 등장)
p254, 3째줄: (소아: 무엇?)... 무엇?이 무엇일까? <시경>의 <소아편>을 의미하는 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