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는 하루종일 틀어박혀 김대식의 [어떻게 질문할 것인가]를 읽었다.

화보집처럼 만들어진 책을 별로 좋아하지 않아서 책을 처음 받고 기분이 언짢았던 책이다.

누군가는 책에 담긴 사진들을 보면서 영감을 얻고 또다른 정보를 찾아 활발한 뇌활동을 하겠지만 나같은 이는 활자로 채워지지 않은 책매무새에 마음에 주름이 가는 유형이다.

여튼 고급진 종이를 한장씩 넘기면서 읽는 김대식의 '가장 아끼는 책들'의 향연에 가슴 설렜다.

32명의 작가 혹은 저자의 책들은 김대식이 읽고, 잊어버렸다가 다시 기억한 책들로 독자를 충분히 유혹할 수 있는 책들이다.

책을 읽고나서 충만한 어떤 감정으로 한동안 여운이 맴돈다면 아마 그책은 내인생의 책이 될것이다.  

그리고 질문하는 것이다. 적절하고 좋은 질문을 내올 수 있다면 그책 역시 좋은책이고 즐거운 독서를 했을 확률이 높다.

질문을 잘 갈무리하여 주제로 삼고 질문에 대한 해석 혹은 답을 찾아가는 삶이라면 불행한 삶이진 않을 거라고 나는 오래전부터 생각해왔다.

 

32권의 대표작중 아직 읽어보지 못했는데 언젠가 꼭 읽어보고 싶은 책들을 정리해둔다. 

책들이 너무 많다. 아니, 읽지도 못하는, 읽지도 않는 책들이 너무 많다.

언젠가 읽겠지, 언젠가 필요하겠지.. 뭐 이런 구실을 대며 부지런히 구매해두기도 한다.

읽지 못하는 책들이 늘어나면서, 그러나 줄어들지 않는 새책에 대한 호기심을 어찌해보지 못한 채 책들은 여기서도 늘어가는 중인데, 이건 뭔가 잘못된 게 아닐까 생각하곤 한다.

반복해서 몇번씩 읽을만한 책과 아직 읽지못한 책 중에서 곡 읽고 싶은 책들부터 하나씩 읽어나가는 것으로 책욕심을 줄여야 하는 거 아닌가 ..그러다가 새로나온 책들중 고르고 골라 구입해 반드시 읽는 식으로 독서에 대한 규칙을 좀 정해야 하는 것 아닌가 .. 일단 갖고보자 보다는 일단 읽자로 바꿔야 하는거 아닌가.

.............. 수백번 마음먹어봤지만 여태 이모양인 건 어쩔 수 없는 것 같다.

마치 하루키의 단편 <독립기관>([여자없는 남자들]) 에 나오는 독립기관처럼, 내속에 나도 어쩌지 못하는 독립기관, 책을 읽기보다 책을 사는 지름기관이 따로 있어 그렇게 된거같다.

............. 그렇다고 내가 책을 어마무시하게 구입하는 건 아니다.

내 주머니사정이나 책을 읽는 거에 비하면 많이 구입한다는 지극히 주관적인 기준을 말함이다.

어쨌든 읽어보고 싶은 책들이다.

 

가즈오 이시구로의 [파묻힌 거인]

"과거의 죄는 잊혀야 할까"라는 질문을 하는 책이다.

김대식이 밝힌바에 의하면 이일본 출신의 작가는 '과거에 대한 너그러움'을 보여줌으로써 일본과의 과거가 해소되지 않는 우리로서는 마음이 불편하다고 언급했다.

브리튼족과 섹슨족과의 전쟁이 끊이지 않던 시절의 아서왕전설속에는 '망각이라는 안개를 뿜어내는 용'의 이야기가 나온다.

용을 깨워 안개를 피워올리자 사람들은 과거를 잊어간다.

학살과 증오, 복수로 점철된 과거의 기억을 잊기 위해, 원한과 증오, 복수라는 연쇄를 끊기 위해 불러들인 망각의 안개를 뿜어대는 용의 존재. 원한의 과거는 잊혀져야 할까.

용을 죽이려는 섹슨족 전사 위스턴과 용을 지키려는 브리튼족의 가웨인 경, 이들을 만난 어느 노부부의 '안개'에 대한 진실을 알아가는 과정과 이 노부부가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가 이야기를 끌어나가는 기둥인 모양이다.

과거를 기억하지 못하는 인생이란 계속 홑겹으로 살아가는 생일 것 같다. 나이테가 생기거나 두터워지지 못하는.

 

아서왕의 전설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나 싶었다. 고작해야 성배와 성배찾기, 기네비에 공주와 란슬롯경과 아서왕의 삼각관계... 같은 영화나 드라마를 통해 겨우 알고 있는 수준 아닌가.

T.S 엘리엇의 시 <황무지>의 제목도 아서왕의 성배전설과 관계된 것이라는 것도 최근에야 알게 됐다.

[황무지]는 또 [황금가지]와 [제식으로부터 로망스로](제시 웨스턴)까지 읽어봐야 할 긴 여정을 동반하는 책이라는 것도.

마음의 불편함을 느낄지도 모르지만,  기억과 망각의 역사와 인간의 존재조건에 대해 어떻게 다루는지 이시구로의 솜씨도 보고 싶다.

 

 

 

 

 

 

 

 

 

 

 

 

 

 

 

 

유발 하라리의 [사피엔스]와 출간예정인 [호모데우스]

인류가 이정도로까지 문명을 이룰 수 있었던 이유를 찾아 과거부터 지금까지의 창의성의 역사를 되집는 책이 [사피엔스]이고 미래를 다룬 책이 [호모데우스 : 미래에 관한 찗은 역사](2015)라고 한다.

미래의 인간은 신의 지경에 이른 전지전능함을 구사할 것이라는 예언.

신의 경지에 오를 준비들은 되셨는지..

나는 아마 그전에 인간으로 죽을 것 같다.

인류와 미래에 대한 이야기는 언제나 흥미롭다.

 

 

 

 

 

 

 

 

 

 

 

 

 

 

에리히 아우어바흐의 [미메시스]는 너무나 유명한 필독서였기에 읽은 줄만 알았다, 아니 적어도 가지고는 있는 줄 알았다.

개정판을 거들떠도 보지 않았는데 내가 건너뛴 모양이다.

1946년 저작인데 현실과 진실에 대한 많은 걸 질문할 수 있게 하는 책이라고 김대식은 권한다.

미메시스의 두 계보. 현실과 진실.

 

 

 

 

 

 

 

 

 

 

 

 

 

 

그밖에 움베르토 에코의 중세에 관한 책들.

중세 1천년의 이야기.

죽음과 기호의 시대. 문명이 다시 야만으로 쇠퇴하고, 개인의 자유와 행복이 추상적인 이데올로기에 억눌리는 세상.

지금 세계는 또다른 중세로 접어들고 있는 건 아닌지 김대식은 질문한다. 중세를 그런 관점에서 다시 읽는다면 많은 걸 볼 수 있지 않을까. 중세 얘기는 이상하게 손이 잘 안가는데 중세 암흑이라는 선입견과 종교에 짓눌린 세계... 자체가 숨막히게 하는 게 있어서 들여다보려 하지 않았는데 꼭 그럴 일만도 아니다.

 

 

 

 

 

 

 

 

 

 

 

 

 

 

 

 

 

 

 

 

 

 

 

 

 

 

 

 

 

 

이스라엘 출신의 석학 아자르(아자) 가트 교수의 [문명과 전쟁 War in Human Civilization] (2008,.국내미출간)

역사학, 정치학, 군사학, 심리학, 뇌과학, 사회학, 철학, 인류학, 고고학, 인류가 알고 있는 모든 도구를 총동원해 '전쟁'이라는 미스터리를 풀어나간다고 한다. 이스라엘 정부의 국가안보 자문위원이기도 하다는데 어느 정도인지는 봐야 하겠다. 궁금은 하다. 번역본이 나올 거라 굳게 믿는다. 

 

 

 

 

 

 

 

 

 

 

 

 

 

 

그리고 내가 언젠가 초반 읽다가 작가가 고수가 아닌 것 같다고 밀쳐놓았던 류츠신의 [삼체]

총 3부작이라는데 국내는 아직 2부작까지만 나와있다.

김대식은 아자르 가트의 책만큼이나 온갖 방면에 두루 통섭하며 다루고 있는 작가의 내공에 혀를 내두르며 코앞의 것에만 매달려 있는 자신과 대한민국을 한탄했다.

우린 정신없잖아.

박근혜 구속도 시키고 재판과정도 지켜봐야지, 대선도 치뤄야지, 대선 이후 정치도 지켜봐야지...

할게 너무 많아.

난 시민의회에 관심이 많다.

시민의회를 구성하는 거다. 의회의원들은 추첨으로 뽑는 거다. 시민의원들이 현안을 어떻게 누구의 도움을 받으며 할 것인가가 관건인데 하나씩 만들어나가면 되지 않을까.

정치권에만 맡기는 게 아니라, 추첨에 의해 뽑힌 시민의원들이 직접 법안을 만들기도 하고 정부 감시도 하는거다.

임기며 권한이며 규정들은 같이 머리맞대고 만들면 좋지 않을까.

매주 열리는 집회에서 매주 한가지씩 생각할 질문들을 제기하고 한주일 또는 몇주일 고민해서 서로 발언하는 것은 어떨까.

자꾸 광장을 감정을 배설하는 공간으로, 국회야말로 무슨 정의롭고 제대로된 이성적 공간으로 대립시키는데 웃기는 소리다.

더이상 지금의 대의제로는 개혁이 씨도 안먹힐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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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이런, 이런.... 내가 완전히 오해했다. 

금정연, 정지돈의 [문학의 기쁨]이 한국소설, 한국문학에 대한 대담으로 엮인 문학평론서인줄 알았다. 

대담이긴 한데 서로 만나 이야기를 한 후 각자 글을 쓴 것을 엮은 것이다. 

형식도 대단히 '전위'적이어서 기본 대담도 있고, 서간형식으로 서로 교환한 글도 있으며, 시나리오 형식도 있다고 한다.

 

대담의 주제는 한국작가의 신작을 대상으로 한 글들과 새로운 문학은 가능한가, 그리고 새로운 문학은 가능한가라는 질문은 가능한가. 

한국문학의 현재를 다루고 새로운 문학의 가능성이라는 묵직한 주제를 가능한 가볍게, 해찰하듯이, 투덜이처럼 이야기하려 애쓴 것 같다. 그래도 만만치는 않을 듯싶다.

몇페이지 읽다가 웃고 말았다. 



금정연이(아니라 정지돈) 무라카미 하루키를 싫어하는데, 하필 내가 [무라카미 하루키를 읽는 오후]를 들먹이며 [문학의 기쁨]으로 포스팅을 했으니.... 이렇게 민망할 수가 없다. 하하하하하

금정연이 프로불만러인듯한데(투덜이 ㅋㅋ) 간단히 몇페이지 훑어보니 누구도 싫고 싫어하고.. 가 몇번 나온다. ㅎㅎㅎ

그래도 처음 생각했듯이 책 컨셉은 흥미롭다. 재밌게 읽을 것 같다.

 

"들어가며" 한페이지에 슬라보예 지젝, 정신분석, 토머스 드 퀸시가 언급되는 책이다.

수많은 인물과 작품들이 소환되는 책이니 미리 각오를 좀 해둘 필요는 있을 것 같다.

 

그렇게 싫어하는 무라카미 하루키와 그의 작품을 주제로 다룬 [오후]를 [문학의 기쁨]과 나란히 붙여놓지는 않겠으나, 새로 나온 책이 있길래 그책을 여기에 붙이는 정도는 괜찮겠지?

민음사의 세계시인선 리뉴얼에 [황무지]도 새롭게 단장하고 나왔다.

4월에 나온다더니 생각보다 일찍 나왔다.

[오후]에서 고야마 데쓰로가 쓴 하루키와 T.S.엘리엇과의 연관성을 소개하는 글은 새로운 호기심을 불러 일으킨 글이다.

아마 이번에도 [황무지]를 이해하며 읽을 것 같지는 않지만 어렸을 때 도무지 몰랐던 그 시들이 이번에는 어떻게 다가올지 그것도 매우 궁금하다.

 

 

 


 

 

 

 

 

 

 

 

 

 

 

아, 그리고 저 페이지에서 언급한 세 권이 책은 이렇다.

 

 

 

 

 

 

 

 

 

 

 

 

 

 

 

전위적이고 난해한책(으로 알려진) 김태용의 [벌거숭이들]

탄탄한 서사와 문장으로 인정받는(다는) 최진영의 [구의 증명]

문단과 상관이 없이 독립출판으로 시작해 기성출판사에서 책을 낸 한승재의 [엄청멈충한]

 

물론 세 권다 읽어보지 못한 소설들.

제목으로는... 끌리는 소설이 없다. ... 제목이 전부가 아니니까.

한국문학을 너무 쉽게 포기해버렸는데 어디 다시한번 읽을만한지 한번 골라볼 생각이다. 

체호프-레이먼드 카버류가 우세종을 획득한 한국소설이라...

정지돈은 2014년 한해동안 사백편의 한국단편소설을 읽고 [문학동네]의 리뷰좌담을 진행한적이 있는데 이를 그는 '사백번의 구타'라고 칭했다 하하하하 '정말이지 끔찍한 경험'이었다고.

오래전에 어떤 모임을 기획하고 그때 거기서 몇년에 걸친 문학잡지 당선작들을 읽었던 적이 있다. 

사백편까지는 아니고 고작 몇십편을 읽었기에 구타당하지도 않고 그다지 끔찍하지는 않았지만 재미있는 경험은 아니었다.

하나같이 비슷한 형식을 갖추고 있어서 특히 엔딩에서의 하나같이 비상하는 추상적 결말들은 나로서는 다소 요령부득이었다.

질리는 경험이긴 했다.

아마 많이 달라졌을거야.

평론마저도 재미없다면그건 진짜 문제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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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이 감정을 뭐라 표현할 수 있을까. 

슬픔이자 어떤 그리움같은 한탄, 옆으로 누운 채 상처투성이인 배를 보는데 ... 아, 이런 감정은 참 착잡하다라는 말 외엔 달리 표현할 능력이 없다. 
구멍이 150개 넘게 뚫려 있는 배. 세우지도 못하고 누운 채 인양되는 배. 당장 조사위가 꾸려지지 않아서 감추고 훼손한 당사자들이 후다닥 조사하겠다는 가여운 배. 우린 왜 이다지도 가여운가. 
구난까지 민간업체에 맡겼던 황당한 일을 목도했던 그 일을 잊지 말아야 하는데. 구조는 안하고 구난업체부터 불러 독점 권리를 주려했던 그 저간의 사정은 여전히 밝혀지지 않았다. 더이상 우리가 가여워져선 안된다. 
............................

............................

최근에 흥미롭게 봤던 [무라카미 하루키를 읽는 오후] 여운이 여전한데 비슷한 컨셉의 책이 나왔다. 
평론가 금정연과 작가 정지돈의 대담으로 엮은 한국소설에 관한 수다, 한국소설 평론. [문학의 기쁨]
금정연은 알지만 정지돈은 모르는 작가다, 흠,,;;;;
한국소설을 거의 읽지 않는 나로서는 두 사람의 얘기를 통해 다른 책들 다 팽개치고 당장 두 사람의 대화 속에 나온 한국소설을 손에 쥐고 문학의 기쁨을 만끽할 수 있다면 이책은 찬양받아야 할 거다. 
그러나 여전히 한국소설이 읽고 싶지 않을 땐 ... 어쩔 수 없지. 한동안도 한국작가의 책을 손에 쥘 일이 많지 않을 것 같다. 
궁금하다. 몹시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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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가와 유타카와 고야마 데쓰로의 대담으로 엮은 무라카미 하루키 작품론 [무라카미 하루키를 읽는 오후]를 무척 흥미롭게 읽었다. 


가라타니 고진의 [역사와 반복], 고모리 요이치의 [무라카미 하루키론]의 하루키 비평서( 하루키 작품 비평서 책 한권을 더 봤던 것 같은데 당장 기억이 나지 않는다) 외에 작품론이나 비평론을 별로 읽어본 적이 없는 것 같은데 [오후]는 하루키 작품을 좀더 풍성한 얘깃거리를 가지고 볼 수 있게 하는데 큰 도움이 되는 책이다.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를 이번에 다시 읽었는데, 출간 당시 그저 쉽게 읽었던 것에 비하면 생각할만한 몇가지를 건졌다고 할까.  

덩달아 [여자 없는 남자들]에 실린 첫단편 <드라이브 마이 카>도 내친김에 다시 읽었는데 스치고 지나간 몇가지들도 다시 되새기게 됐다. 


우치다 다츠루의 [하루키씨를 조심하세요]가 하루키의 '아버지'를 새롭게 볼 수 있게 언급했듯이 하루키에게 '아버지'란 의미들이 갈수록 커져가는 건 분명 있는 것 같다. 

[색채가 없는]은 아버지 세대와 그 자식 세대를 의식하고 쓴 소설 같다는 생각도 이번에 하게 됐다. 

(가령 처음 읽을 때 하루키 소설 중 가장 부유한 주인공 등장에 의아해했다. 주인공의 나이가 청년을 벗어나 중장년에 이르면 어느 정도 사회적 안정 궤도에 오르면서 경제적 안정도 이룬다고 하루키는 생각하는 것일까, 라는 아주 멍청한 생각을 하고 지나갔더랬다. 이제와보니 부유한 주인공 다자키 쓰쿠루와 그 아버지(세대)에 걸쳐 말하고자한 것이 있었으리라 짐작할 수 있었다. 그러니 매우 세밀하게 소설을, 작품을 대해야 하는거다, 모름지기.) 

그건 하루키가 시대에 대한 발언을 하고 있다는 것과 같다. 

최신작 [기사단장 살인]은 난징학살사건 언급한 걸 두고 일본 우익이 욕하고 있다는 뉴스가 먼저 터졌고 

심지어 노벨상 타려고 중국에 아부한다는 모욕까지 얹혀져 소설 자체보다 더 큰 화제가 됐던 모양이다. 

그런 의미에서도 기대작이다. 

사실 이건 하루키에겐 중요한 문제일 것이다. 자신에게 부족한 걸 잘 알고 계속 도전하는 영민한 작가이므로 새소설에서 뭔가 시도한 게 있을 것 같다고 짐작할 뿐이다. 



[색채가 없는]이나 <드라이브 마이 카>에서 이번에 주목한 점은 인간관계에 대한 아릿한 생각이랄까. 

[색채가 없는]은 과거에 자신을 죽음 문턱까지 이르게 한 깊은 상처를 극복했다고 믿으며 살아가지만 마음에 이미 큰 벽이 생겨버린 경우 어떻게 살아가야 하느냐를 질문했다. 

원래 단편으로 생각했던 이 소설은 사라라는 인물의 명령 "당장 나고야로 돌아가 십팔년전(!)에 그곳에서 대체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아봐야 한다"고 말하면서부터 완전히 궤도를 달리하게 됐다고 하루키는 말한다([직업으로서의 소설가], 251)

하루키 스스로도 생각하지 못했던 말이 작중 인물 사라를 통해 발설됐고 소설은 장편으로 새롭게 달려야 했다. 

결국 그곳으로 돌아가봐야 한다. 


왜 다섯명의 조화가 하필 두 여자의 성적 판타지에 의해 깨져야 하는지 이해되지 않고, 불만스럽지만, 어쨌든 하루키 세계에서는 그렇게 됐다. 

핀란드까지 가서 이뤄지는 두 사람의 포옹이 치유가 되는 건지 위로가 되는 건지 그 역시 언뜻 잘 이해가지 않지만 생각해보려 한다. 


<드라이브 마이 카> 역시 자신의 내면을 마주하는 일에 대해 생각해보게 한다. 

어떻게 보면 닭살돋는 듯한 말의 향연이 이어지지만 한편으론 과연 그런가, 타인을 진정으로 이해한다는 건 가능한 일인가, 

신의 내면과 마주한다는 것은 어떤 것인지, 그리고 마지막으로 드라이버 와타리 미사키처럼 머리굴려봤자 해결되는 게 없으므로 꿀꺽 삼키고 살아가면 되는 방식도 있다. 

자신에게 뭔가 '맹점'이 있다며 자책하고 전전긍긍하지 말라고 충고할 수도 있다. 


언제나 인간관계에서 어려움을 겪었던 나로서는 이제와 이렇게 보니 가슴에 닿는 게 있다. 

흔히 하루키의 쿨함을 새로운 시대, 상실의 세계 젊은이들의 특징처럼 얘기했던 적이 있었다. 

그런데 하루키의 쿨함이 내면을 충분히 들여다보지 않은 채 시스템과 적당히 거리둔 채 그럭저럭 살고자 했던 (그럴 수 있다고 믿었기에) 지난날이 빚 독촉처럼 귀환한 게 아닌가 싶을 정도다. 


<드라이브 마이 카>를 읽다가 생각난 건 줄리언 반스의 [플로베르의 앵무새]다. 

<드라이브>의 가후키는 아내와 사별했다. 

아내는 아이를 잃은 뒤 바람을 폈다. 

가후키는 내색하지 않은 채 살아갔다. 연기를 한 셈이다. 아내가 죽은 후 가후키는 아내의 내연남 중 한명과 가까워진다. 

몇차례의 만남 후 가후키는 자신이 진정으로 아내를 이해하지 못했음을 한탄한다. 아내를 이해하지 못한 채 진심은 "깊은 바다 밑에 가라앉은 작고 단단한 금고처럼" 알 수 없게 되어버렸다. 

가후키는 어떻게 해야하나.


[플로베르의 앵무새]의 주인공 퇴임한 의사 브레이스웨이트 역시 아내와 사별했는데 아내가 바람을 피웠고 자살했다. 

브레이스웨이트는 플로베르의 [보바리 부인]을 쫓아가 본다. 마담 보바리의 부정에 대해서. 

"과거는 포착될 수 있는가"라는 화두를 안고. 과거는 해명되고 포착될 수 있는 것인가. 

여기에도 그런 질문이 따른다. 아내의 진실은 무엇인가? 아내는 왜 부정을 저질렀을까? 자기와의 관계는 무엇이었는가? 아내는 왜 자살했을까? ..... 


두번이나 읽었는데 또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다시 봐야 할 것 같다. 비교해 볼만하지 않을까. 문득 떠오르는 생각이었다. 















































결국 나다. 

억압된 것은 반드시 귀환한다. 

언젠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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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책이 나온다는 건 진즉에 알았지만 책에 대한 신뢰가 안가서 망설이고 있었는데 읽어볼 필요가 있을 듯 싶다. 

오늘 프레시안에 관련 기사가 있어 읽어봤는데, 기자(이대희)는 이책을 '악의 연대기'라고 규정했다.


<또 하나의 가족-최태민, 임선이, 그리고 박근혜>(조용래 지음, 모던아카이브 펴냄)는 한국 현대사 무대를 되돌릴 수 없는 어딘가로 옮긴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그리고 박근혜 대통령 탄핵의 핵심인 최순실의 의붓조카 조용래(최순실의 의붓오빠 조순제의 아들)가 쓴 악의 연대기다. 


이 악의 연대기에 연루된 사람들의 얘기가 아마도 대하드라마로 나올 수 있을 것 같다. 

다양하고도 유형으로 분류할 수 있을만한 캐릭터들의 향연일 것 같고 등장하는 사건들도 멜로, 심리스릴러, 코미디, 법정, 수사극... 뭐 복합장르에 가깝지 않을까 싶다. 


([또 하나의 가족] 박근혜, 최태민의 또 하나의 가족)


박근혜는 분석해보고 싶은 인간이다. 

그녀의 인생사도 그렇지만 그녀의 정신, 심리, 행동역학같은 게 너무 궁금하다. 

앞으로 읽을만한 박근혜 분석서나 평전이 많이 나오기를 기대한다. 궁금한 인물로는 갑이다. 


최태민이라는 인물 역시 못지않게 드라마틱한 인물이다.

그닥 멀지 않은 과거에는 동네에서 흔치않게 볼 수 있었던 남자였을 거다. 

집구석은 가끔 들어오고 어디를 싸돌아다니며 뭔짓을 하고 다니는지 도통 파악이 안되는 남자들. 

그들의 바람기는 뜬금없이 배부른 여자를 데리고 들어오거나 아니면 아예 애와 함께 낯선 여자를 데리고 들어오거나 근본을 모르는 아이를 데리고 들어오든지 여튼, 부인으로선 감당하기 힘든 짐을 떠넘기고 자신은 행방조차 모르게 떠나는.. 그렇고 그런 서사들. 


임선이는 최태민의이 다섯번째 부인으로 알려져 있다.  

임선이는 최태민의 빈자리를 지키는 억척스런 여자였던 것 같다. 

원래 탐욕스러운 성정을 가졌든지, 놓인 처지에 따른 강한 의지의 산물이었든지 물불 안가리고 돈을 긁어모았던 것 같다. 

그렇게 건사하던 집안에 최태민은 박근혜를 데리고 들어온다. 

















가계도에 따르면 저자 조용래는 임선이의 첫번째 남편 조동진과 사이에서 낳은 조순제의 아들이다. 

아버지의 잘못과 죄를 알지만 부정당한 아버지가 불쌍해서 이책을 쓰게 됐다는 걸 감안하고 읽으면 될듯하다. 

그리고 직접 보고 들은 게 많지 않고 대개는 전해 듣거나 2,3차 자료를 통해 서술된 듯하니 그점도 고려하면 좋을듯하다.







임선이는 박근혜를 전폭적으로 지원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임선이는 무슨 생각을 한 것일까. 

주변의 알만한 이들은 최태민과 박근혜 사이를 남녀관계로 알고 있었다. 임선이는 최태민의 부인이다. 

과거엔 흔한 일이었을까. 남편의 애인이 막강한 독재자의 딸이라면 달리 생각할 수도 있는 것인가. 

그 독재자가 어느날 갑자기 총에 맞아 죽고 딸은 부모없이 혼자되어 돌아왔는데 그녀를 대상으로 임선이는 무슨 꿈을 꾸었던 것일까. 남편의 연인과 그녀의 비지니스. 

박근혜의 권력욕을 그녀가 정치계에 들어올 때 너무 소홀히 봤었던 건 아니었던가. 

그저 아버지의 제사를 지내기 위해서 대통령이 되고자 했던거라고 생각했던 건 아닌가. 

한나라당 대표가 됐을때도 잘 몰랐다. 야당의 무기력이 그녀를 돋보이게 하는 것일 뿐이라고 생각했다. 

대통령 후보가 되었을 때도 야당이 너무 못하는 틈을 그녀가 잘 이용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문득문득 한편으론 그녀의 정치력을 과연 야당 어느 누가 따라갈 수 있는가 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권력욕까지는 생각하지 못했다. 

그녀가 대통령이 되고서야 그녀는 보통 사람이 생각할 수 있는 수준을 상회하는 것인지 한없이 낮게 눈을 떨어뜨려야 보이는 것인지 가늠이 잘 안될만큼 보통 사람의 상식을 넘어서 있음을 알게 됐다. 

탄핵 이후 행동은 더더욱 이해부득이다. 

과연 검찰에 가서 그녀는 어떻게 조사를 받을 것인지 .. 궁금해 죽을 지경이다. 

그녀는 자신을 궁지에 몰아넣는 추궁을 당해본 적이 있었을까. 대선 경선과 TV토론? 검찰 수사가 그 수준은 아닐 것이다.

질문에 질문에 꼬리를 무는 질문 공세를 그녀는 어떤 식으로 헤쳐갈 수 있을까. 

헌재에서 자신의 운명을 건 재판이 벌어지고 있는데 자신의 대리인단조차 제대로 만나지 않는 그녀는 정말... 


여튼 읽을만한 관련 도서들이 많이 나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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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곰생각하는발 2017-03-15 20: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임선이에게 박근혜는 황금알을 낳는 거위였겠죠..

포스트잇 2017-03-15 20:10   좋아요 0 | URL
네, 임선이의 비즈니스죠. 임선이도 참 독특한 인물이에요..드라마틱해요

레삭매냐 2017-03-16 09: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길라임을 지원한 임선이의 모습에서
전국시대 조나라의 포로로 잡혀 있던 진나라
자초를 지원한 거상 여불위가 떠올랐습니다.

역시 예나 지금이나 권력을 추구하는 금권의
정경유착은 사라지지 않을 것 같아 보이네요.

포스트잇 2017-03-16 15:25   좋아요 0 | URL
여불위..그렇군요.
여불위에 비하면 임선이가 더 흥미로워요. ㅎㅎ
길라임은 임선이에겐 남편이 데리고 온 여자였을 거니까요.
최태민과 임선이는 길라임을 두고 어떤 계산과 계획을 했던걸까요. 둘은 처음부터 끝까지 같은 생각을 가졌을까...케이퍼 장르일수도 있고 파볼만한 얘기에요.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