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는 파면됐다. 그러나 박근혜는 여전히 청와대에 있다. 

(* 대통령 박근혜 탄핵결정문에는 선고일시를  2017. 3. 10. 11:21로 명시했다. 이는 최초의 대통령 탄핵이라는 사례를 두고 효력발생 시간까지를 표현한 것이란 해석이다. 이정미 재판관이 판결문을 읽어가다 한번 시계를 본 적이 있다. 이는 정확히 시간을 맞추려 했던 모양이다. 이제야 그 몸짓이 이해가 된다. 그러므로 박근혜는 바로 파면됐다. 그런데 박근혜는 2017년 3월 11일 오후 12시 25분이 된 지금까지 아직도 청와대에 있다.)

사저가 준비가 안되어 있다는 핑계. 

지금까지도 박근혜는 아무런 말이 없다. 

아, 진짜 괴물이다, 청와대에서 농성할지도 모른다고 예상했는데 진짜 최악이다.

관저를 비롯해 청와대는 개인의 집이 아니다. 

파면이라는 처분을 받았음에도 그에 저항하는 몸짓. 

염치나 품격도 보여주지 못하는 대통령을 우리는 가졌었다. 

아니, ... 친일을 했던 이들, 독립군을 잡으러 다니던 일본군 장교를, 심지어 그 딸을 대통령으로 가졌었다. 

이 더러운 사슬을 압도적인 편견을 가지고 단호하게 끊어야 한다. 

















북플의 별점으로 별 다섯개를 줬다가 한개를 뺐다. 

세월호에 대한 결정은 옳지 않다. 

물론 보충의견으로 냈지만 단호하게 파면 이유로 삼았어야 했다. 

아쉽다. 

'성실의무를 위반하였지만 ... 의식적으로 방임하거나 포기한 경우에 해당한다고 보기는 어렵다, 니?   

중대본에 다녀온 후에도 저녁회의 등에도 참석하지 않은 박근혜. 중대본 다녀온 후에도 그날 저녁부터 다음날까지 박근혜는 세월호에 관한 한 아무일도 하지 않았다. 

이런데도 의식적으로 방임하거나 포기하지 않았다고?

여론이 들끓고 다음날에도 상황이 나아지지 않자 팽목항에 가서 또 연극을 한다. 시술받은 얼굴을 하고서. 

이게 국민의 신임을 배반하지 않았다고 말할 수 있는가? 

보충의견으로 붙을만한 사안인지 나는 여전히 아쉽다. 



 대통령 박근혜 탄핵 결정문 중, 김이수.이진성 재판관 보충의견



세월호 참사 관련 소추사유에 관한 보충의견


피청구인의 생명권 보호의무 위반을 인정하지 못하는 것은 다수의견과 같다. 우리는 피청구인이 헌법상 대통령의 성실한 직책수행의무 및 국가공무원법상 성실의무를 위반하였으나, 이 사유만으로는 파면 사유를 구성하기 어렵다고 판단한다.


1. 성실한 직책수행의무 위반이 탄핵 사유가 되는지


○ 헌법이나 법률에 따라 대통령에게 성실한 직책수행의무가 구체적으로 부여되는 경우, 그 의무 위반은 사법심사의 대상이 될 수 있으므로 탄핵 사유를 구성한다. 대통령도 헌법 제69조의 성실한 직책수행의무와 국가공무원법 제56조의 성실 의무에 위반한 경우에는 헌법과 법률이 정하는 책임을 물어야 한다.


○ 국가주권 또는 국가의 핵심요소나 가치, 다수 국민의 생명과 안전 등에 중대한 위해가 가해질 가능성이 있거나 가해지고 있는 ‘국가위기’ 상황이 발생한 경우, 대통령은 시의적절한 조치를 취하여 국가와 국민을 보호할 구체적인 작위의무를 부담한다. 이처럼 대통령에게 구체적인 작위의무가 부여된 경우 성실한 직책수행의무는 법적 의무이고, 그 불이행은 사법심사의 대상이 된다.


○ 대통령의 성실한 직책수행의무 위반에 대해 탄핵 사유가 되는 법적 책임을 인정하기 위해서는, 첫째, ‘국가위기’ 상황이 발생하여야 하고(작위의무 발생), 둘째, 대통령이 국가의 존립과 국민의 생명, 안전을 보호하는 직무를 성실히 수행하지 않았어야 한다(불성실한 직무수행).


2. 피청구인이 성실한 직책수행의무를 위반하였는지


가. 작위의무의 발생

○ 476명이 탑승한 세월호는 좌현으로 전도된 후 빠른 속도로 기울다가 전복되었다. 이는 다수 국민의 생명과 안전에 중대한 위험이 가해지거나 가해질 가능성이 있는 국가위기 상황에 해당함이 명백하므로, 피청구인은 시의적절한 조치를 취하여 국민의 생명, 신체를 보호할 구체적인 작위의무를 부담하게 되었다.


나. 불성실한 직무수행의 존재

(1) 위기상황의 인식

○ 해양수산부는 09:40경 위기경보 ‘심각’ 단계를 발령하였는데, 해양사고(선박) 위기관리 실무매뉴얼은 최상위 단계인 ‘심각’ 단계의 위기경보 발령 시에는 대통령실(위기관리센터)과 사전 협의하도록 하고 있다. 따라서 국가안보실은 09:40 이전 상황의 심각성을 알았고, 피청구인이 집무실에 출근하여 정상 근무를 하였다면 09:40경에는 상황의 심각성을 알 수 있었다고 봄이 타당하다.


○ 피청구인이 10:00경 보고받은 내용을 보면 피청구인은 늦어도 10:00경에는 매우 심각하고 급박한 상황이라는 점을 인지할 수 있었다고 봄이 상당하다.


○ 피청구인은 언론사의 오보 때문에 상황을 정확하게 파악하기 어려웠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피청구인이 오보들을 보고받았다고 볼 자료가 없고, 청와대는 해당 보도가 해경에서 확인하지 않은 보도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따라서 위 오보는 피청구인이 10:00경 심각성을 인식하였으리라는 판단에 방해를 주지 아니한다.


○ 피청구인은 당일 13:07경 및 13:13경 ‘190명이 추가 구조되어 총 370명이 구조되었다’는 내용의 보고를 받아 상황이 종료된 것으로 판단하였다고 주장한다. 피청구인이 위 보고를 받았다 하더라도, 104명의 승객이 아직 구조되지 못한 상황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으므로 상황이 종료되었다고 판단하였다는 주장을 받아들일 수 없고, 상황의 심각성을 인식한 시점을 오후로 늦출 수 없다.


○ 따라서 피청구인은 늦어도 10:00경에는 세월호 사건의 심각성을 인지하였거나, 조금만 노력을 기울였다면 인지할 수 있었을 것으로 판단된다. 15:00에야 상황의 심각성을 인지하였다는 피청구인의 주장은 받아들일 수 없다.


(2) 피청구인의 대처

○ 국가위기 상황의 경우, 대통령은 즉각적인 의사소통과 신속한 업무수행을 위하여 청와대 상황실에 위치하여야 한다. 그럼에도 피청구인은 사고의 심각성 인식 시점부터 약 7시간이 경과할 때까지 별다른 이유 없이 집무실에 출근하지 않고 관저에 있으면서 전화로 원론적인 지시를 하였다.


○ 피청구인은 10:15경 및 10:22경 국가안보실장에게, 10:30경 해경청장에게 전화하여 구조에 최선을 다하라는 취지의 지시를 하였다고 주장하나, 통화기록을 제출하지 않았으므로 위와 같은 통화가 실제로 있었다고 보기 어렵다. 당시 해경청장은 09:53경 이미 특공대 투입을 지시하였다고 하는데, 피청구인이 실제로 해경청장과 통화를 하였다면 같은 내용을 다시 지시할 수 없을 것이므로, 해경청장에 대한 특공대 투입 등 지시를 인정할 수 없다.


○ 피청구인 주장의 최초 지시 내용은 매우 당연하고 원론적인 내용으로서, 사고 상황을 파악하고 그에 맞게 대응하려는 관심이나 노력을 기울이지 않았기에 구체성이 없는 지시를 한 것이다. 결국, 피청구인은 위기에 처한 수많은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보호하기 위한 심도 있는 대응을 하지 않았다.


○ 국가위기 상황에서 대통령이 상황을 지휘하는 것은 실질적인 효과뿐만 아니라 상징적인 효과도 갖는다. 실질적으로는, 경찰력, 행정력, 군사력 등 국가의 모든 역량을 집중적으로 발휘할 수 있어 구조 및 수습이 빠르고 효율적으로 진척될 수 있다. 상징적으로는, 국정의 최고책임자가 재난 상황의 해결을 최우선 과제로 여기고 있다는 점을 보여줌으로써 구조 작업자들에게 강한 동기부여를 할 수 있고, 피해자나 그 가족들에게 구조에 대한 희망을 갖게 하며, 결과가 좋지 않더라도 최소한의 위로를 받고 재난을 딛고 일어설 힘을 갖게 한다.


○ 진정한 국가 지도자는 국가위기의 순간에 신속하게 상황을 파악하고 대처함으로써 피해를 최소화하고 피해자 및 그 가족들과 아픔을 함께하며, 국민에게 어둠이 걷힐 수 있다는 희망을 주어야 한다. 국정 최고책임자의 지도력을 가장 필요로 하는 순간은 일상적인 상황이 아니라, 국가위기가 발생하여 그 상황이 예측할 수 없는 방향으로 흘러가고, 이를 통제, 관리해야 할 국가 구조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을 때이다. 세월호 참사가 있었던 2014. 4. 16.이 바로 이러한 경우에 해당하는 것이었다.


○ 그러나 피청구인은 그날 저녁까지 별다른 이유 없이 집무실에 출근하지도 않고 관저에 머물렀다. 그 결과 유례를 찾기 어려운 대형 재난이 발생하였는데도 그 심각성을 아주 뒤늦게 알았고 이를 안 뒤에도 무성의한 태도로 일관하였다.


○ 국민의 생명과 안전에 급박한 위험이 초래된 국가위기 상황이 발생하였음에도, 그에 대한 피청구인의 대응은 지나치게 불성실하였다. 그렇다면 피청구인은 헌법 제69조 및 국가공무원법 제56조에 따라 대통령에게 구체적으로 부여된 성실한 직책수행의무를 위반한 경우에 해당한다.


3. 결론


○ 대통령이 국민으로부터 부여받은 민주적 정당성과 헌정질서의 막중함을 고려하면, 대통령의 성실의무 위반을 파면 사유로 삼기 위하여는 당해 상황에 적용되는 행위의무를 규정한 구체적 법률을 위반하였거나 직무를 의식적으로 방임, 포기한 경우와 같은 중대한 성실의무 위반이 있어야 된다고 봄이 상당하다.


○ 피청구인은 국가공무원법 상의 성실의무를 위반하였으나 당해 상황에 적용되는 행위의무를 규정한 구체적 법률을 위반하였음을 인정할 자료가 없고, 위에서 살핀 것처럼 성실의무를 현저하게 위반하였지만 직무를 의식적으로 방임하거나 포기한 경우에 해당한다고 보기는 어렵다.


○ 그렇다면 피청구인은 헌법상 대통령의 성실한 직책수행의무 및 국가공무원법상 성실의무를 위반하였으나, 이 사유만 가지고는 국민이 부여한 민주적 정당성을 임기 중 박탈할 정도로 국민의 신임을 상실하였다고 보기는 어려워 파면 사유에 해당한다고 볼 수 없다.


○ 국가 최고지도자가 국가위기 상황에서 직무를 불성실하게 수행하여도 무방하다는 그릇된 인식이 우리의 유산으로 남겨져 수많은 국민의 생명이 상실되고 안전이 위협받아 이 나라의 앞날과 국민의 가슴이 무너져 내리는 불행한 일이 반복되어서는 안 되므로 피청구인의 성실한 직책수행의무 위반을 지적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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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3월 10일 오후 4시.


오전 11시 25분경에 박근혜 탄핵인용이 결정된 후 지금까지 박근혜는 말이 없다.

이 지경까지 오게 된 데에 대해 주권자에 대한 사과나 반성, 아스팔트 위에서 왕을 지키는 왕당파마냥 태극기를 흔들어대며 흥분한 자기를 지지한 자들을 위한 단 한마디도 아직 나오지 않았다. 


박정희 박근혜의 종말을 고해야 한다. 

더이상 박정희가 부활하지 않도록 확실히 이 사회를 바꿔야 한다. 


[무라카미 하루키를 읽는 오후]에서 이런 구절을 봤다. 

[해변의 카프카}(나는 이 소설을 재밌게 읽었지만 하루키의 역사인식에 만족하지는 못한다) 중에서 정확히 어떤 부분인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나카타 입에서 나온 꿈틀거리는 길쭉하고 허연 물체를 호시노 청년이 죽여야 할 때, 검은 고양이 토로가 말했다는 부분에 나오는 말이다. 


"압도적인 편견을 가지고 단호하게 죽여야 한다."


이것이 우리가 앞으로 가져야 할 태도라고 생각한다. 

또다시 시민을 시험하는 국면들이 수없이 나올 것인데, 그때마다 구태와 적폐를 다시 쌓아올릴 단초를 아예 '압도적'으로 '단호하게 죽여야 한다.'

박근혜는 죄값에 따라 구속되어야 하고 재판받아야 하며 징역살아야 한다. 

또 그 잔당들도 역사의 뒤로 사라져야 한다. 

이 일은 '압도적인 주권자의 뜻'에 따라 '단호하게' 이뤄져야 한다. 

온정적으로 불쌍하게 여기거나 어정쩡하게 다루다 마는 것은 반동을 불러올 뿐이라는 걸 너무나 숱하게 당해왔기에, 반복하지 않아야 한다. 

그럴 단호함이 있는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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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키와 T.S. 엘리엇과의 관계를 밝혀주는 고야마 데쓰로의 칼럼만으로도 이책을 읽는 기쁨을 만끽할 수 있다.
오래전에 절판된 엘리엇의 [황무지]는 민음사(!)의 세계시인선 리뉴얼 선집으로 4월 출간 예정이다. 조금 기다리면 4월의 황무지를 읽을수 있겠다.

[무라카미 하루키를 읽는 오후], 달달한 에세이같은 제목을 달고 있지만 이책은 오랜기간 하루키와 교류하며 그와 그의 작품을 인터뷰하고 취재해온 기자와 하루키 책 편집자와의 대담으로 이뤄진 하루키 작품론이다. 꽤나 성실하게 꼼꼼하고 예리하게 그리고 무엇보다 풍부하고 흥미로운 해석을 하고 있다. 처음 알게 된 정보도 제법된다. 물론 이들의 해석에 수긍할지 아닐지는 읽는이가 판단할 일. 나는 흥미롭게 읽었다. 
하루키 작품해설서나 비평서를 몇권 본적은 있으나 죄다 본게 아니라 공통적으로 지적될 수 있는 건진 모르겠으나 여러모로 신선하다.

하루키의 소설외의 글들, 음악이나 달리기 기타등등 읽지못한 저서들도 읽어보고 싶다.

북플로 쓰다보니 편하지 않다.

드디어 내일. 12시간, 아마 인용결정 발표까지는 13시간 정도 남은거같다. 믿고는 있으나 상식적이지 않은 일들이 너무 많아서 완전히 놓지는 못하고 있다.
부디 책만 좀 맘편히 보게 해다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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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음사에 또 한번 속았다.
광징히 기분이 나쁘다.
저자 김대식의 글이 나쁘다는게 아니라 이렇게 책을 만든 출판사를 욕하고 싶다. 너무 알량하잖아.

양장본 포토북에 가깝다.
이런 형식의 책을 내가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강신주의 [감정수업]에서 맛봤던 기분나쁨을 오랫만에 다시 느낀다.
김대식의 글은 읽을만할거라고 믿는다. 좀더 글을 모아서 책을 냈으면 좋았을뻔했다.

2017년 3월10일 오전 11시를 앞두고 액땜했다 생각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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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국이 어떻게 될지, 사실 한치앞을 확신할 수 없다. 

탄핵이 3월 둘째주안에는 이뤄질 거라고 어느 정도 일정이 나와있지만 ... 무슨 일이 생길지 알 수 없다. 

오늘 아침에는 기어이 대선 주자들에도 헌재 재판관들에게도 경호를 강화한다는 소식까지 들려온다.

백색테러도 일어나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다고 생각한다. 저들의 말과 행동이 심상치 않다. 조심해서 나쁠 게 없다. 


너무나 분명해 보이는 사안이 누군가에게는 그렇지 않은 모양이다.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구나 라고 그 사람의 생각과 표현의 자유를 인정하기엔 도저히 이해되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 

그래서인지 요새 부쩍 현실을 분석하고 해석하거나, 현실인식에 도움이 될만한 책들을 찾는 것 같다. 

내마음이 그렇다. 


유시민의 [국가란 무엇인가]를 구입했다. 

국가를 주제삼은 국가론 교양서로 읽을만 할 것 같아서다. 

더불어 최근에 나온 책들 중 관심가는 정치, 사회과학쪽 책들을 장바구니에 담으며 도서관에 들어오면 읽어야겠다고 미뤄둔다.

유시민의 책 말미에 붙은 주를 보다가 참고문헌을 골라봤는데 인물의 전기를 참고한 것은 주로 브리태니커 사전이었다. 

지식검색을 할때 주로 구글링하거나 포털검색, 위키피디아 등을 이용해왔는제 의외로 브리태니커를 이용해본적이 없다. 

모르고 있었다. 이번에야 아, 검색기능 하나를 놓치고 있었구나 깨달았다. 맹하다.  


SF 바람이 며칠 계속 불더니 결국 아서 클라크의 [스페이스 오디세이] 시리즈와 몇권의 SF도 구입했다. 

[파운데이션] 시리즈도 그동안 구입하지 못했던 이빠진 것 같던 누락책들을 구입했다. 


그러나 정작 손에 들고 읽고 있는 건 슈테판 츠바이크의 평전들이다. 

왜 갑자기 오래전에 읽었던 몽테뉴에 관한 짧은 평전 [위로하는 정신]을 읽을 생각을 했던가. 

나보코프의 소설 [절망]을 읽고 이 소설이 도스토예프스키의 [분신]에 도전한 소설 어쩌구 하는 평을 보고 도스토예프스키의 소설을 읽어야겠다고 생각했고, 박형규가 번역한 [이중인격]을 읽기 시작했고, 갑자기 도스토예프스키 관련 책을 찾다가 츠바이크의 평전시리즈를 보게 됐고, 츠바이크 책 리스트를 보다가 문득 가지고 있던 [위로하는 정신]이 눈에 들어왔고 읽기 시작했는데 뜻밖에도 아주 흥미로웠다. 예전에 읽을 때 나는 무슨 생각을 했던가. 아무 생각이 나지 않았다. 


20세기 전쟁을 겪으며 런던으로 피신했다가 남미 브라질로 유랑한 츠바이크 말년이 여러 작업을 하면서도 특히 이 16세기 종교전쟁 시기에 머물렀다는 것이 인상적이었다. 한편으로 칼뱅, 루터, 토르케마다가 있고 다른 편에 에라스무스, 몽테뉴, 카스텔리오가 있었다. 

확신에 찬 신념을 타인에 대한 압박과 학살로 관철시킨 이들에 맞서 관용과 포용으로 싸웠던 이들. 일단 구도는 그렇다. 

16세기에 벌어진 종교개혁이니 종교전쟁을 제대로 이해하고 있지 못하다. 고작해야 학교 다닐때 외웠던 수준인데 그나마도 이젠 잊어버렸다. 막연히 종교개혁이라고 불리면서 개혁적 측면만을 받아들였고 그뒤로 관심갖지 않았다. 

(그리스로마신들이 아니라) 종교에 대한 얘기를 좋아하지 않는다.  

개혁인가 신앙을 빙자한 광신과 불관용이었던가. 새삼 진지한 주제였다는 생각이든다. 이참에 개략적으로 들여다봐야겠다.


몽테뉴에 대한 회고로 시작하는 츠바이크의 서문에는 몽테뉴의 [수상록]이 그의 말년에, 유럽에서가 아니라 브라질에서야 비로소 자신에게 그 의미를 드러냈다고 고백한다. 

서문은 읽어볼만하다. 


츠바이크는 몽테뉴를 "아직은 젊어서 경험이 부족하거나 좌절을 겪은 적이 없는 사람은 그를 제대로 평가하거나 존중하기가 어렵다" 말한다. 


이런 집단 광증의 시대에 가장 내밀한 자아에 충실하기 위해선 얼마만한 용기와 정직성과 단호함이 필요한지를, 그리고 이 거대한 파멸의 한가운데서 정신적. 도덕적 독립을 흠없이 지키는 일보다 세상에 더 어렵고도 심각한 일이 없음을 알게 되는 것이다. 

인류의 품위나 이성에 대해 스스로 의심을 품고 그것에 대해 절망해봐야 비로소, 그런 전체적인 무질서 한가운데서도 모범적으로 똑바로 서 있는 어떤 개인을 진짜로 찬양할 수 있게 된다. (서문 중에서)



아직 [수상록]을 읽어본 적이 없고 가지고 있지도 않다. 

나는 아직 젊고 경험이 부족한 모양이다. 이쪽이냐 저쪽이냐를 선택해야 할 비극적 상황에서 나는 '옳은 쪽'에 서서 장렬하게 싸우는 이를 지지할 것 같다. 자신을 피로 더럽히더라도 대다수 인민을 위해 싸우는 자를 지지할 것 같다. 

자신의 고고함을 지키기 위해 대다수 인민을 적에게 던져주는 자를 옹호할 수는 없을 것 같다. 

'체념과 물러섬의 대가 몽테뉴'를 아직도 잘 모르겠다. 

그래서 [수상록]을 언제 읽을 수 있을지 아직은 모르겠다. 


인류에게 절망해 고개를 돌려 남미 대륙 브라질에서, 가지고 있는 자료도 변변치 않은 채 자신의 작업을 했던 츠바이크가 왜 '물러섬의 대가' 몽테뉴를 탐구대상으로 삼았는지, '도덕적 독립을 흠없이 지키는 일'에 그토록 끌렸는지 그 마음이 다가온다. 그는 브라질에서 자살했다. 


나는 아직 그의 에라스무스([에라스무스 평전])도 카스텔리오([다른 의견을 가질 권리])도 읽지 못했다. 

그들의 생애는 또 어떠했는지, 칼뱅과 루터는 또 어떠했는지 궁금해진다. 

나의 독서 계획은 늘 엉뚱한 데로 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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