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호, 영화배우 한가인과 술을 마셨다!!!
![](http://imgnews.naver.com/image/396/2012/02/12/20120212000831_0.jpg)
구청에서 버려진 자전거를 수리해서 구청 시민들에게 무료로 나눠준다고 해서 찾아갔다. 구청 앞마당’엔 다양한 종류의 자전거’가 일렬로 나열되어 있었다. 짐자전거도 있고, 사이클도 있고, 산악용 자전거도 있었다. 나는 그중에서 제일 후줄근한 자전거 하나를 골랐다. 형편없는 자전거였다. 산악용 자전거도 아니고 짐자전거도 아닌 애매모호한 자전거였다. 80년대 디자인의 자전거였다. 외모로 평가하자면 박색이요, 곰보, 얼꽝이었다. 나는 이 자전거에게 < 애매모호 > 라는 이름을 지어주었다.
내가 이 자전거를 선택한 이유는 디자인이 후줄근하고 너무 낡아서 길거리에 방치를 해도 동네 아이들이 훔쳐가지 않을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지금 살고 있는 집은 달동네로 계단을 34개나 올라가야 하기 때문에 자전거를 끌고 올라가 마당에 둘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래서 자전거는 늘 계단 초입의 전봇대에 매어 두었다. 말이 잠금 장치이지 손으로 힘껏 당기면 풀렸다. 하여튼...... 못난이 중고 자전거 하나가 생겼다.
한 달 전이었다. 날씨가 좋아서 자전거’를 타기 위해 내려갔더니 전봇대’ 옆에 자전거가 있어야 하는데 보이지 않았다. 이런 자전거를 훔치는 사람도 있던가 ? 이상한 놈이로군. 흠흠. 하지만 더 이상한 일은 다음 날 벌어졌다. 잃어버렸던 자전거가 제자리’에 있는 것이다. 더군다나 잠금장치가 채워진 채로 말이다. 귀, 신이 곡할 노릇이군. 누가 이 낡은 자전거의 잠금장치를 해제한 후 타고 다니다가 다시 제자리에 놓은 것. 그런 날이 계속 이어졌다. 누군가가 < 애매모호 >를 날마다 애용하고 있는 것이었다.
수수께끼’는 이내 풀렸다. 왜냐하면 길을 가다가 우연히 이 자전거를 발견했기 때문이었다. 자전거는 굿모닝마트 앞 자전거 거치대 안에 있었다. 피식. 디자인이 너무 촌스러워서 타고 다니는 것이 부끄러울 지경이었다. 아이고, 누가 요즘 이런 자전거를 타고 다니는가 !ㅎㅎ. 아마도... 나이 지긋한 동네 어르신이나 할머니가 타시고는 얌전히 제자리에 놓고 가시는 것이리라. 귀여운 자전거 도둑이 아닌가 ?피식.
자전거 도둑의 얼굴을 보기 위해서 마트 입구 벤치에 앉아 봄 볕을 쏘이고 있는데 우연히 그곳에서 영화배우 한가인을 봤다. 영화 촬영이 있는 날인가 ?우와, 정말 예뻤다. 화장을 하지 않은 얼굴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태어나서 그토록 예쁜 여자’는 처음 보았다. 눈부시게 아름다웠다. 넋을 놓고 보고 있는데 한가인이내쪽으로 다가왔다. 점점. 점점점, 점점점점더 ! 그러더니 내 자전거의 잠금장치를 푼 후 안장 위’에 올라타는 것이 아닌가 ?뭐지 ?! 몰래 카메라인가 ?한가인이 내 자전거를 훔친 도둑 ?
물론 영화배우 한가인이 내 자전거’를 훔쳤을 리는 없을 것이다. 한가인을 닮은 여자가 내 자전거를 훔쳤을 것이다. 하여튼 여자가 떠나기 전에 말을 걸어야 한다. 왜 내 자전거를 훔쳤소 ?당신은 묵비권을 행사할 수 있으며 변호사를...아니지. 혹시 죄송하지만... 아니지. 내가 왜 죄송해야 하지 ?! 잠시 곰곰 생각하느라 가만 앉아 있는 사이 한가인이, 아니 한가인을 닮은 여자가 먼저 나에게 말을 걸었다. “ 혹시, 이 자전거 주인이세요 ?“ 나는 수줍게 네, 라고 답했다. 한가인을 닮은 여자는 한가인만큼이나 예뻤다.
웃을 때 백옥 같은 하얀 치아가 가지런히 보였다. 천사가 따로 없군 ! 그녀가 말했다. “ 화 나셨다면 죄송해요. 누가 전봇대에 자전거를 자물쇠로 채우고는 버린 것이나 다름없는 방치를 했다고 판단했었거든요. 그래서 자전거를 빌리고는 다시 그 자리에 가져다 놓았어요. 저에겐 꼭 필요한 자전거이거든요. “ 아, 네에. 나는 수줍어서 별 말도 못했다. 여자가 말했다. “ 제가 실례를 범했으니 좋으시다면 시원한 맥주 한 잔 하실래요 ?“ 물론, 나는 좋았다. 좋은 정도가 아니라 입이 찢어지는 줄 알았다.
자전거 도둑과 나는 동네 아사히 생맥주 집’에 가서 아사히 맥주를 마셨다. 어찌나 달던지 !한가인을 닮은 자전거 도둑’은 얼굴뿐만 아니라 마음도 고왔다. 아마, 한가인이라고 해도 사람들은 믿을 것이다. 내가 그 자전거 이름이 < 애매모호 > 라고 말하자 여자는 박장대소했다. 유머 감각 있으시다 !까르르르르. 이때다 싶어서 앞으로 개를 키우면 반드시 개 이름을 <연락처좀알수있을까요> 라거나 < 아름다우세요 > 라고 지을 것이라고 말했다. 왜요 ? 라고 여자는 궁금한 듯 물었다. “ 하하하. 개를 데리고 공원을 산책하면 개를 사랑하는 여성분들이 오셔서는 꼭 이런 질문 하잖아요. 이름이 뭐에요 ? 이렇게 말이죠. 그러면 전 이렇게 대답합니다. 연락처좀알수있을까요 ? 아름다우세요. “한가인을 닮은 도둑은 정말 신나게 웃었다. 여기 생맥둘이요 ! 여자가 맥주를 추가 주문했다. 대화가 흥미롭다는 증거다. 여자가 물었다.
- 혹시 집에서 개는 안 키우세요 ?
- 두 마리 키우고 있습니다. 이름이 < 다행 > 이와 < 덕분 >에 입니다.
- 다행이와덕분에 ?!
- 네, 다행과 덕분. 개 이름을 부르면 늘 즐거워요. 덕분에 재미있게 놀았어, 참 다행이다 등등.
- 아, 감동적인 이름이네요. 저 지금 감동해서 눈물이 흐를 뻔 !작명술의 달인이세요.
- 하하하.
- 호호호.
자전거 주인과 자전거 도둑은 그렇게 화기애애하게 술을 마셨다. 취기가 어느 정도 오를 때 내가 도둑에게 말했다. “ 아름다우세요. 미인이십니다. 주변 사람들이 한가인 닮았다는 소릴 자주 하지 않나요 ?“ 여자는 생글생글 웃으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 한가인 닮았다는 소릴 들어 본 적은 없어요 !
- 왜요 ?
- 내가 바로 한가인이니까요 !! 까르르르르.
- 네에 ??! 농담도 잘 하십니다. 까르르르르.
- 농담 아니에요. 우르사 웅담입니다. 까르르르르.
- 전 곰곰생각하는발입니다. 까르르르르.
자세히 보니...... 자전거 도둑은 한가인을 닮은 여자가 아니라 한가인’이었다. 그래, 한가인이야 !어라 ?! 이게 무슨 일이지 ?한가인은 계속 까르르르 웃었다. 여자가 말했다. “ 제가 왜 이 낡은 자전거’가 필요한지 아시나요 ? 낡고 볼품없는 당신의 자전거는 저에게 있어서 일종의 가면과 같은 기능을 하는 물건이에요. 마법의 자전거죠. 이 자전거를 타고 다니면 사람들은 저를 못 알아본답니다. 한가인이 설마 이렇게 낡은 자전거를 타고 대낮에 모자와 선그라스도 없이 돌아다니겠어 !한가인을 닮은 여자겠지. 이런 마음인 거죠. 오히려 제가 자전거 없이 선그라스를 끼고 모자를 푹 눌러 쓰고 돌아다닌다고 생각해 보세요. 위장은 오히려 제가 한가인이란 사실을 돋보이게 할 뿐이죠. 호호호호. 아시다시피, 유명인이 되면 사생활이 없게 되잖아요. 가끔 자유롭게 거리를 걷고 싶어요. 자유인으로 말이죠. 이 자전거가 저를 자유롭게 해준답니다. 일종의 투명 망토죠. 이건 비밀입니다. 자전거 도둑과 자전거 주인만이 알고 있는 비밀. 아셨죠 ?“
한가인과 난 아사히맥주집을 나와서 자전거를 매어 두는 전봇대’까지 함께 걸었다. 그녀는 유쾌한 여자였다. 종종 훔치러 오겠어요 !네에. 대환영입니다. 언제든지 훔치세요. 하하하. 호호호. 배우 한가인과 나는 그렇게 헤어졌다. 아마 이 글을 읽는 여러분은 내가 소설을 쓰고 있다고 생각할 것이다. 혹은 지랄하고 자빠졌네, 라며 웃을 것이다. 그럴 만도 하다. 한가인이 자전거 도둑이라는 둥, 한가인과 함께 아사히생맥 6잔을 마셨다는 둥, 30분 동안 거리를 산책했다는 둥의 이야기를 믿을 사람은 아무도 없기 때문이다. 물론 입장을 바꾸고 본다면 나 또한 우스갯소리’라고 생각할 것이 분명하다. 또 어쩌면 내가 착한 자전거 도둑에게 속은 것인지도 모른다. 나는 진짜 한가인이 아니라 스스로를 한가인이라고 착각하는 정신 나간 가짜 한가인의 판타지에 속은 것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저런들 어떠하고, 이런들 어떠하랴. 그 여자는 눈부시게 아름다웠다는 사실은 변함이 없으니 말이다. 나는 한가인과 술을 마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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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필로그
어제 토크쇼’에 한가인이 출연했다. < 건축학개론 > 의 흥행돌풍으로 인해 그 영화에 출연한 배우 몇몇이 나온 것이다. 시시껄렁한 잡담이 이어졌다. 내 눈엔 한가인만 보였다. 그 자전거 도둑은 정말 한가인이었을까 ? 아니면 한가인을 닮은 여자였을까 ? 그 여자의 말은 정말 농담이 아니라 우르사웅담이었을까 ? 화장을 한 얼굴과 화장을 안 한 얼굴을 비교하니 자전거 도둑의 말은 진담 같기도 하고 농담 같기도 했다. 내 코가 석 자인데 지금 내가 이런 일에 신경 쓸 시간이 없지. 티븨를 끄려고 할 때 모니터 속 한가인이 하얗고 고른 치아’를 보이며 말했다.
“ 어제 강아지를 하나 입양했어요. 아직 이름은 정하지 않았지만 < 다행 > 이나 < 덕분 > 둘 중 하나를 고를까 해요. 어떤 이름이 좋을까요 ?“ 그날 나는 한가인이 앉은 자전거 안장에 앉아서 밤 벚꽃 길을 달렸다. < 애매모호 > 는 관절염에 걸렸는지 연신 삐끄덕삐끄덕 소리를 냈다. 한가인은내년에도 벚꽃이 피는 봄이 오면 자전거 도둑이 되어서 내가 사는 동네를 찾아올 것이다. 그리고는 전봇대에 묶인 자전거를 풀어 자유롭게 자전거를 탈 것이다. 잠시 동안 배우 한가인은 배우 한가인을 닮은 여자가 되어서 꽃처럼 사푼사푼 거리를 걸을 것이다. 내년에도 한가인과아사히 생맥주를 마시고 싶다. 한가인파이팅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