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롱 워크 ㅣ 밀리언셀러 클럽 143
스티븐 킹 지음, 송경아 옮김 / 황금가지 / 2015년 11월
평점 :
헬조선의 좀비들에게 고(告)함 !
펑 ! 대한민국은 샴페인을 너무 일찍 터뜨렸다. 그때는 그 사실을 알지 못했다. 야구 경기에서 8회'가 끝났을 때 대한민국은 7 : 0 으로 이기고 있었으니까. 그러니까, 대한민국이 9회초에 8실점을 하면서 경기를 내주기란 쉽지 않다니까 ! 하지만 그것은 착각이었다. 마무리 투수가 마지막 9회'에 올라 첫 타자를 3구 삼진으로 돌려세웠을 때만 해도 승리의 여신인 나이키'는 대한민국을 향해 웃고 있는 것만 같았다. 한시름 놓을 수밖에. 캔맥주를 비울 수록 방광은 가득 차길 마련이다. 그런데 화장실에 다녀온 사이 < 일 > 이 묘하게 돌아가기 시작했다. 연속 안타를 내주면서 차곡차곡 점수를 잃더니 결국에는 역전을 허용했다. 믿기지 않는 일이지만 야구에서는 종종 있는 일이다.
김영삼이 전두환과 노태우에게 수의를 입힐 때까지만 해도 민주주의는 무난하게 안착될 것처럼 보였다. 맨주먹으로 칼을 앞세운 군인의 강철 군화를 벗겼으니 말이다. " 칼국수의 힘 " 이라고나 할까. 칼국수가 칼을 이기다니. 남은 이닝을 김대중과 노무현이 불펜 투수로 마운드에 올라 무난하게 경기를 이끌어 갈 때까지만 해도 민주주의는 완성된 것처럼 보였다. 마무리는 불펜 투수 이명박이었다. 믿을 만한 구석은 별로 없는 선수였다. 철쭉도 아니면서 들쭉날쭉한 실력을 보여서 믿음이 가는 투수는 아니었으나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투수...... 와인드업 ! 던졌습니다 !!! 와와. 대중은 환호했다. 7점 차 앞선 경기에서 마무리 투수가 첫 타자를 삼구 삼진'으로 잡은 것이다. " 웬일이니, 쭉정이인 줄 알았더니 알맹이였네...... "
하지만 이명박은 아웃카운트 하나를 잡은 이후 홈런 포함 10안타를 두들겨맞으며 강판되었고, 박근혜는 고의적으로 타자에게 헤드샷을 날려 퇴장당했다. 그리고 다음 불펜 투수는 서울대 법대를 나와 9수 끝에 사법 고시를 통과한 엘리뜨 윤석렬 선수는 똥볼을 남발하다가 역전을 허용했다. 혼이 나간 표정이었다. 경기가 끝난 후, 그는 어느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 제가 잘못 던져서 졌습니까 ? 이게 다 전 선수들이 잘못해서 진 경기입니다. 에이, 시발. 압수수색해 !!!! " " 분홍분홍 " 했던 장미빛 미래는 어느새 " 부들부들 " 한 헬조선으로 변했다. 일찍 터뜨린 샴페인은 < 민주화 > 와 < 민주주의 > 를 혼동한 결과였다. << 민주화 >> 는 과정일 뿐이지 완성이 아니지 않은가. 개천에서는 용 대신 이끼벌레가 창궐했다. 흙수저가 땅을 파서 십 원짜리 동전을 긁어모을 때 금수저는 대한민국에서 가장 전망 좋은 방을 차지하기 시작했다. 좋은 것만 먹고 좋은 것만 보다 보니 금수저는 세상을 긍정적으로 보기 시작했다. 박찬욱 감독은 부자들이 마음씨도 착하다며 설레발을 까기도 했다.
그들은 항상 웃었다. 웃을 때 고른 치아가 반짝거렸다. 금수저와 흙수저를 구별하는 표시는 샤넬이나 루이비통'이 아니었다. 그 옛날, 자가용 뒷자리에서나 볼 수 있었던 뤼비똥'은 이제는 아침 8시 지옥철에서도 심심찮게 볼 수 있었다. 웃을 때 하얗고 고른 << 치아 >> 가 금수저와 흙수저의 << 차이 >> 를 만들었다. 수정하겠다, 흙수저에게 " 치아 " 라는 낱말은 어울리지 않는 단어였다. 금수저에게는 없지만 흙수저에게는 있는 것. 그것은 바로 " 고르지 않은 누런 이빨 " 이었다. 금수저는 치아를 가지고 태어나고 흙수저는 이빨을 가지고 태어난다.
들어가는 말풍선이 길었다. 본론으로 들어가자. 스티븐 킹이 리처드 바크만이라는 이름으로 내놓은 << 롱 워크 >> 는 훌륭한 소설이다. 킹의 말을 곧이곧대로 믿고, 그가 고등학교 졸업반일 때 이 소설을 썼다면 대한민국 소설가는 넥타이 공장이나 차려야 한다. 목 메 죽어야 한다는 소리'다. 심하다고 ?! 내가 한 소리가 아니다. 비난의 화살은 모두 장정일에게 ! 장정일이 독서일기이 적어놓은 표현이니까. 경기 룰은 간단하다. 10대 참가자 100명이 오래달리기(걷기)를 한다. 최종 우승자 1인이 모든 부와 명예를 차지한다. 단, 걷기를 멈추면 죽는다. 대회를 진행하는 군인이 그 자리에서 총으로 즉결처형하는 방식이다. < out > 이 아니라 < kill > 이다. 이 죽음의 레이스'에 참가하는 사람은 누구일까 ? 물어볼 필요도 없다. 아메리칸 금-포크 자식들이 상금을 노리고 목숨을 담보로 죽음의 레이스 경기에 뛰어들 놈은 없으니깐 말이다. 흙-포크'들이 한탕을 노리고 이 경기에 뛰어든다. 생존 확률은 1/100이지만, 어쩌라고 ?
내가 이 소설을 읽으며 깜짝 놀랐던 것은 킹이 선보이는 " 디스토피아적 우화 " 의 우아한 상상력 때문이 아니었다. 이 소설은 우화가 아니라 현실을 냉정하게 반영하고 있었다. 롱 워크 게임은 스포츠 파시즘과 연결되어 있다. 승자독식, 1등만 알아주는 더러운 사회에 대한 통렬한 반영이다. 특히 한국 사회는 스포츠 파시즘이 일상 생활 곳곳에 침투되어 있다. 탕 ! 경기가 시작되고 나서 첫 번째 총성( 주 : 여기서 총성은 경기의 시작을 알리는 출발 신호가 아니라 말 그대로 총살을 의미한다)이 울렸을 때( 총성이 울렸다는 것은 누군가가 낙오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낙오는 곧 죽음이다) 그 게임의 승자는 99명이었고 패자는 1명이었다. 탕 ! 다시 총성. 두 번째 총성이 울렸을 때 승자는 98명으로 줄어들었고, 패자는 한때 승자 중 1명이었다. 이런 방식으로 한때 승자였으나 패자가 된 사람이 하나둘 사라지게 된다.
즉결 처형'은 조용하게 진행된다. 킹은 < 헝거게임 > 이나 < 베틀로얄 > 처럼 야단법석을 떨며 경기를 진행하지 않는다. 바로 그 점이 이 소설이 가지고 있는 품격'이다. 이 소설은 킹의 기존 소설에 비해 재미는 1/2로 줄어들었지만 메시지는 강력하다. 만약에 이 경기'가 헬조선에서 벌어진다면 참가하는 사람이 있을까 ? 상금을 노리기 위해 목숨을 내놓고 하는 경기에 말이다. 헬조선에서 하루에 스스로 목숨을 끊는 자살자는 대략 40명. 그들은 대부분 경제적 빈곤에 시달리는 사람들이다. 1년이면 15,000명이 자살을 하는 사회. 어디 그뿐인가 ? 죽지 못해 사는 사람은 널리고 널렸다. 사업에 실패해서 빚더미에 오른 자도, 비정규직 노동자도, 갑질에 분노하는 을도 이 경기에 뛰어들 것이다. 특별한 기술이 필요한 것도 아니다.
걷기만 하면 된다. 멈추지 않으면 된다. 상대방과 경쟁할(싸울) 필요는 없다. 상대가 지쳐서 쓰러지기를 바랄 뿐이다. 타인의 고통이 나에게는 기회가 되는 사회. 경주마에게 씌우는 눈가리개를 사람에게 씌우는 사회. 옆사람의 손을 잡으며 " 연대" 를 이야기하면 " 고대" 를 무시하냐며 좌빨로 모는 사회. " 이대 " 로는 살 수 없다고 거리에서 노동자들이 시위를 하면 공공질서를 " 숙대(쑥대) " 밭으로 만들었다며 손가락질하는 사회. 공산당이 싫어요, 라고 말했다가 눈알이 파이고 입이 찢어졌다는 서사를 아이들에게 가르치는 사회. 일제의 쌀 수탈을 수출이라고 주장하는 사회. 티븨만 돌리면 먹방만 방영되는 사회. 흙수저 자식새끼들은 굶어죽는데 금쪽이들만 부탁한다고 신소리만 하는 사회. 이 삭막한 도로 위에 흙수저와 흙포크가 출발선에 서 있다. 앞은 볼 수 있으나 옆은 볼 수 없는 말 눈가리개를 쓰고 초조하게 출발 신호를 기다리고 있다. 신호가 떨어지면 걷기 시작한다.
서바이벌 게임이 시작된다. 생존확률은 1/100 % 내가 잘한다고 우승을 할 수 있는 구조가 아니다. 흙수저로 태어나 할 일도 많지만 오늘도 걷는다. 탕 ! 생존확률 1/99 % 탕 ! 다시 울리는 총성. 생존확률은 1/98 % 앞만 보고 가련다. 탕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