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낙청의 변명 : 표절과 유사
눈을 떴을 때, 어디선가 달콤한 냄새가 방 안 가득했다. 밤꽃 향기 작렬하던 내 방에서 이토록 " 허니 " 한 냄새가 나다니 ! 고개를 돌려 옆을 보니 < 그 > 가 나처럼 맥없이 맨방바닥 구석에서 쓰러져 자고 있었다. 깜짝 놀랐다. " 누구세요 ? " 내가 조심스럽게 묻자 그가 대답했다. " 전... 맥주병입니다 ! " 시바, 그렇다. 꼴뚜기처럼 팔팔한 다리로 당당하게 종로를 향했던 나는 자정 무렵 오징어가 되어 흐느적흐느적거리며 집으로 돌아왔다. 아마도 집으로 가는 길'에 샛길로 빠져 구멍가게에서 맥주 2병을 사서 집에서 마신 모양. 집에서 맥주를 마신 기억을 못하는 것을 보면 필름이 끊긴 것이다. 이럴 때마다 당황스럽다. 정신이 밖을 나간 상태에서 나쁜 짓을 하고 돌아다닌 것은 아닐까 ?
예를 들면 헤어진 애인에게 새벽 3시에 전화를 걸어 자냐, 라고 묻거나 아침 먹었어? 라고 묻는 것. 뭐, 그런 것. 슬픈 일이지만 지킬'도 내 분신이요, 하이드'도 내 분신이니 하이드는 내가 숨기고 싶은 양심일 것이다. 스스로 자책을 하며 살폈으나 별다른 해코지를 한 것 같지는 않다(해코지 하니 느닷없이 달달한 초고추장에 오돌돌한 새꼬시 씹고 싶구나). 어제 술자리 안주는 창비와 백낙청이었다. 술에 취해서 지킬과 하이드 사이를 오갔던 나는 창비와 백 선생을 가차없이 비판했다. " 시바, 집밥 백 선생은 음식 만드는 비술이라도 가르쳐주지 ! 창비 백 선생'은 한국 문단의 흑역사에 한 획을 긋는구나 ! " S는 백 선생의 비하인드 히스토리'를 자세하게 설명했다.
백 선생 집안은 대대로 빵빵했습니다. 백병원 이사장이 백 선생의 형'입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1950년대에 미국으로 유학을 갈 정도면 재력가의 후손이라는 사실은 금방 알 수 있지요. 아버지 백붕제는 조선통독부 관리였죠. 이 사실 때문에 친일인명사전에도 등재된 인물이 되셨고...... 백 선생, 대단하신 분이죠. 해방 후, 한국인이 쌀겨에 지게미 먹어 가며 주린 배를 달래던 시절에도 하버드 교정에서 닭다리 뜯으며 칼로 스테이크 썰었으니 엘리트 중에 엘리트 아니것습니까. 어디 그뿐입니까. 서른이 되지 않은 이십 대 때 이미 서울대 영문과 교수로 사회 생활을 했으니 솔까말, 삼수에 군대 갔다온 서울대 4학년 복학생 제자인 경우를 생각하면... 당시 나이 따지기 좋아하는 한국 정서로 보자면 나이 어린 사람이 나이 많은 사람을 가르치는 꼴도 발생했을 듯 ! 엄혹한 군화발 정권에서 창비는 나름 역할을 충실히 했습니다만, 글쎄요...... 그는 실패를 경험해 본 적이 없습니다. 이십 대에 교수가 되었고, 별다른 진입 장벽 없이 이십 대에 문단의 어르신이 되어 한국 문학을 호령했으니...... 한국의 싸르뜨르'라고나 할까요 ? 진보 진영이라면 한 번쯤 지하실을 다녀왔을 듯도 한데, 선생은 그 엄혹한 시절에도 지하실에 가본 적이 없었죠.
술이 들어가니 S는 말이 술술 나왔다. 내가 도마뱀처럼 잽싸게 말꼬리를 끊고 물었다. " 지하실이요 ? " 다시 S의 말이다.
아, 김지하가 백 선생'을 비판할 때 사용한 말이 바로 지하실이었습니다. 이런 말을 했죠. 무슨 까닭인지 그의 입은 계속 벌려져 있는 상태다. 그렇게 벌린 입으로 과연 지하실 고문을 견뎌냈을까 ? 그런데 하나 묻자. 백낙청은 지하실에 가 본 적이 한 번이라도 있었나 ? 뭐... 이런 뉘앙스였습니다. 오오오오호츠크해 시밤바들아, 내가 지하실에서 온갖 고문을 당하며 똥 오줌 지릴 때 관악산 봉천동 도련님은 뭐했냐, 라는 것인데... 후후, 이런 태도도 얼라들이나 하는 짓이기는 한데 사실 그 지적이 그닥 틀린 것은 아니었습니다. 창비와 문단은 자꾸 창비'를 진보 진영의 공공재인 양 찬양하지만 옛말입니다. 조선의 흔한 회사죠. 창비 지분을 보면 본인과 부인의 지분을 합치면 거의 40%에 가깝습니다. 그냥 주주가 아니라 대빵 대주주요, 싸장님이 아니라 왕 회장님이신 셈이죠. 창비는 그냥 이윤 창출이 최대 목적인 흔한 회사일 뿐입니다. 연예기획사가 될 성싶은 떡잎을 발굴하고, 스타 만들기에 공을 들이듯이 창비 입장에서 신경숙은 될성부른 나무였습니다. 창비 2008년 매출액이 127억 원이었는데 엄마를 부탁해가 대박을 터뜨린 후 2009년 매출액은 192억으로 껑충 뛰었습죠. 그리고 신경숙이 대한민국 대표 문화 상품으로 각인되었던 2011년에는 300억 원을 돌파했다고 합디다. 창비 입장에서 보면 신경숙은 문학 동네의 아이유였습니다요. 아, 백낙청 얘기는 여기까지 하기로 합시다. 자, 술이나 술술 마시자고요. 선생님 ! 아, 하세요. 개똥에 쌈(을) 싸 드리겠습니다. 아 ~
나는 S가 아, 하라고 해서 아무 생각 없이 아, 했다. 여기까지가 내가 그날 기억하는 술자리에서 오고가는말풍선 놀이의 재현이다. 한나 아렌트가 지적한 것처럼 인간은 잘못을 감추기 위해 언어를 재배치하는 습성을 가지고 있다. 특히 먹물은 더더욱 그렇다. 백 선생과 창비'는 < 표절 > 이라는 독한 말( 剽 협박할 표 竊 훔칠 절 ) 을 < 문자적 유사성 > 으로 재배치하여 순화하는 작업에 착수한다. 그래야지 본질은 흐려지고 본말이 전도될 수 있기 때문이다. 백낙청과 창비'가 노린 꼼수는 < 표절 > 을 < 유사성 > 으로 순화해서 본질을 흐리고 본말을 전도하기 위해서다. < 유사하냐 > 아니면 < 유사하지 않느냐 > 는 말장난이다. 설령, A와 B가 유사하다고 해도 A와 B는 동일한 것이 아니다. < 유사 > 는 A와 B가 다르다는 가정에서 출발하는 가정이다.
그렇기에 유사하다고 결론을 내려도 결국에는 같은 것은 아닌 것이 된다. 이처럼 언어'란 발화자에게 유리하도록 의도적으로 선택된 것들이다. 한나 아렌트가 아이히만 재판에서 눈여겨본 점은 아이히만이 사용하는 언어'였다. 그는 학살을 < 최종해결책 > 으로 순화했고, 이송을 < 재정착 > 이라는 말로 합리화했다. 그는 시종일관 행정용어 따위의 관청용어(Amtssprache ) 만 사용했고, 실제로 아이히만은 재판정에서 " 관청용어만이 나의 언어 ! " 라고 고백하기도 했다. 아이히만이 홀로코스트를 자행하고도 별다른 죄의식을 느끼지 못한 데에는 죄의식을 지우는 언어 규칙'에 있었다. 그것은 학살이 아니라 솔루션(그는 법정에서 학살을 파이널 솔루션'이라고 말했다)이었다 !
기득권은 자신이 누리는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언어를 새롭게 배치한다. 노동자를 근로자로 바꾸는 것이 대표적이다. 노동자( 勞 動 : 움직일 동 者 )는 몸을 움직여 일을 하는 일꾼'이지만 근로자( 勤 : 부지런할 근 勞 者 )는 " 열심히 " 몸을 움직여 일을 하는 태도에 방점이 찍힌다. 그러니까 < 근로자 > 는 단순히 몸을 움직여 일을 하는 차원이 아니라 반드시 " 열심히 " 몸을 움직여야 한다. " 적당히 " 움직여서 품삯을 받으려고 하면 근로자가 될 수 없다. 쉽게 말해서 자본가가 보기에 머리에 쟁반 하나 들고 음식 배달을 하는 아주머니는 시간만 때우다가 품삯만 받아가는 게으른 일꾼'이다. 한국인은 머리에 쟁반을 열 개 쌓고 음식을 배달해야 비로소 찬양받는다. 기득권이 < 노동자의 날 > 을 < 근로자의 날 > 로 바꾼 이유이다. 그런 이유로 SBS 프로그램 << 생활의 달인 >> 은 노동'을 예찬하는 방송이 아니라
근로'를 예찬하는 자본가의 욕망을 반영하는 방송이다. 자본가가 보기에 한 사람이 세 사람 몫을 한다는 것은 칭찬받아 마땅한 일이다. 이처럼 언어는 정치적이다. 언어는 기득권의 이윤에 부합되도록 조정되고 나열된다. 그래서 언어의 배치를 통해 그 사회에 침투된 욕망을 읽을 수 있다. 백낙청이 < 표절 > 을 < 문자적 유사성 > 이나 < 무의식적 베껴쓰기 > 로 재배치한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신형철이 신경숙 사태에 붙여 입장을 표명한 글에서도 < 표절 > 이라는 단어가 한군데도 없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는 왜 표절 논란에 대한 입장에서 표절이란 단어를 의식적으로 노출시키지 않았을까 ? 누누이 하는 말이지만 비린내가 심한 생선이나 질이 떨어지는 육류일수록 독한 양념이 많이 들어가는 법. 가장 비싼 한우 꽃등심은 양념 없이 먹어야 제맛이다.
언어라고 다를 것 없다. 화려한 언변은 종종 궤변을 감추기 위한 위장술이다. 말발 화려한 인간, 믿지 마시시라라. 그나저나 속이 쓰리니 해장술이나 해야 될 것 같다 ■
백낙청 씨, 색칠 공부 좀 하세요 ! ▼
두 사람 다 실로 건강한 젊은 육체의 소유자였던 탓으로 그들의 밤은 격렬했다. 밤뿐만 아니라 훈련을 마치고 흙먼지투성이의 군복을 벗는 동안마저 안타까워하면서 집에 오자마자 아내를 그 자리에 쓰러뜨리는 일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레이코도 잘 응했다. 첫날밤을 지낸 지 한 달이 넘었을까 말까 할 때 벌써 레이코는 기쁨을 아는 몸이 되었고, 중위도 그런 레이코의 변화를 기뻐하였다.
- 미시마 유키오 '금각사, 우국, 연회는 끝나고' 중에서
두 사람 다 건강한 육체의 주인들이었다. 그들의 밤은 격렬하였다. 남자는 바깥에서 돌아와 흙먼지 묻은 얼굴을 씻다가도 뭔가를 안타까워하며 서둘러 여자를 쓰러뜨리는 일이 매번이었다. 첫날밤을 가진 뒤 두 달 남짓, 여자는 벌써 기쁨을 아는 몸이 되었다. ( 여자의 청일한 아름다움 속으로 관능은 향기롭고 풍요롭게 배어들었다. 그 무르익음은 노래를 부르는 여자의 목소리 속으로도 기름지게 스며들어 이젠 여자가 노래를 부르는 게 아니라 노래가 여자에게 빨려오는 듯했다.) 여자의 변화를 가장 기뻐한 건 물론 남자였다.
- 신경숙 '전설' 중에서
( 여자의 청일한 ..... 빨려오는 듯했다 ) 라는 문장을 빼면 신경숙의 표절 부분은 한 문장이 아니라 여러 문장 전체를 표절한 것이다. 백낙청 씨, 색칠 공부 좀 하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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