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험사회, 스타일, 시인
▷ 위험사회 : 그들을 부러워하지 말지어다
초가집에서 큰불이 나는 경우는 없다. 초가삼간 다 타봐야 빈대 몇 마리 죽을 뿐이다. 큰불은 대궐이라는 조건을 충족시킬 때 발생한다. 층이 쌓일수록, 그리고 높이가 높을수록 그 건물의 리스크도 그것과 비례한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광고는 청개구리와 비슷한 구석이 있어서 결핍을 숨기기 위해 되레 선빵을 먼저 날린다. 새우깡이라는 과자 이름은 새우깡이 없다(결핍)는 사실을 숨기기 위한 광고 전략이다. 마찬가지로 붕어빵이라는 이름도 붕어가 없다는 결핍을 숨기기 위한 전략이다. 마찬가지로 마천루 광고는 하나같이 편리와 안전을 강조하지만 앞에서 살펴보았듯이 광고가 청개구리 속성을 가지고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마천루가 불편과 위험이 도사리는 곳이라는 것을 알아채야 한다. 그러니까 하이테크 방제 시설과 보안 시설을 갖췄다고 광고하는 건물은 정반대로 가장 위험한 공간인 셈이다. / 주제 사마라구 소설 << 눈먼 자들의 도시 >> 는 도시가 마비되면 살기에 가장 불편한 곳이 마천루라는 사실을 보여준다. 그곳은 전기만 끊겨도 지옥이요, 변기에 물이 공급되지 않아도 지옥이 되는 곳이다. 변기가 막힌 채 타워팰리스에서 열흘만 견뎌 보시라. 하여 그들을 부러워하지 말지어다. 또한 영화 << 다이 하드 >> 는 최첨단 방제 시설과 보안 시설을 갖춘 초고층 빌딩에 인간 " 버그 " 가 침입하면 속수무책으로 위험에 노출된다는 사실을 보여준다1). 결과적으로 외부 침입을 철저하게 차단하는, 나카토미 빌딩이 자랑하는 하이테크 방제 시스템은 경찰의 빌딩 내 진입을 차단함으로써 테러범을 보호하고 인질을 더욱 곤경에 빠지게 한다. 안전하다는 것은 위험하다는 증거다.
▷ 박근혜의 침대 : 자세가 태도를 결정한다
총은 위험한 무기이고 칼은 조심스러운 도구다(불도 마찬가지이다). 총과 칼을 다루는 사람은 운전면허를 갓 딴 초보운전자와 비슷해서 처음에는 이 위험한 도구를 섬세하게 다루기 때문에 사고가 나지 않지만, 어느 정도 익숙하게 숙련되었다고 방심하는 순간에 안전사고가 자주 발생하게 된다. 그렇기에 칼(총, 불)을 손에 익힐수록 조심스럽게 다루어야 한다. 스타일이라는 단어의 어원이 끝이 뾰족한 촉이나 칼에서 비롯되었다는 점은 감안한다면 스타일을 어떻게 사용하는가에 따라서 무기가 되기도 하고 도구가 되기도 한다. 좋은 스타일, 좋은 디자인, 좋은 문장은 여러 구성 요소를 조심스럽게 다룰 때 발생하는 아우라'다 / 스타일이란 까다로운 녀석이다. 과잉을 강조하게 되면 키치가 되고 결핍을 강조하면 컬트가 된다. 한껏 멋을 내겠다고 온갖 악세서리를 몸에 걸치고 천안 삼거리를 워킹하는 사람은 << 세상에 이런 일이 >> 에 나오기 딱이다. 스타일 결핍보다 촌스러운 것은 스타일 과잉이 아닐까 ? 다시 한 번 말하자면 스타일이란 녀석은 꽤나 까다로운 녀석. 결핍을 보완하되 과잉으로 빠지지 않아야 하지만 그렇다고 과잉을 보완하는 방식으로 결핍을 꺼내들면 촌스러워진다(스타일이란 기본적으로 과시적 욕망인 과잉에 기초한다). 그러니까 과잉을 기초로 하되 과잉처럼 보이지 않는 방식이 세련된 스타일이라는 것이다. 좋은 예가 애플사에서 출시된 아이폰이다. 얼핏 보기에 아이폰은 디자인이라고 말하기 민망할 정도로 밋밋한 디자인이다. 그냥 납작한 직사각형 모양이다. 하지만 바로 아이폰의 디자인 결핍이야말로 가장 세련된 스타일 과잉의 예이다. 왜냐하면 복잡한 디자인보다 훌륭한 디자인은 심플한 디자인이기 때문이다. 좋은 예가 루이비통 가방이다. 남대문 짝풍 루이비통과 진품의 차이를 비교하면 이해가 쉽다. 짝퉁 루이비통은 누가 봐도 루이비통 가방이라는 정보를 외부인에게 제공한다. 가방에 대문짝만 하게 루, 이, 비, 통이라는 로고가 박혀 있기 때문이다. 디자인도 비교적 화려하다. 반면, 진품은 상품 로고의 크기가 작을 뿐만 아니라 디자인도 비교적 심플하다. 루이비통 가방 중에서도 가장 비싼 제품은 무인상품 디자인을 닮았다. 로고는 가방을 열어야 비로소 보인다. 가방 안에 로고가 박혀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가방을 열어 명함을 주고받는 이들만이 그 가방이 루이비통이라는 사실을 안다. 홍라희 여사가 굳이 자신이 들고 다니는 가방이 루이비통이라는 사실을 서민들에게 과시할 필요는 없으니깐 말이다. 쉽게 말해서 끼리끼리 놀겠다는 심산이 반영된 디자인이다 / 좋은 문장도 과잉을 기초로 하지만 결핍처럼 보이게 만드는 문장이 좋은 문장이다. 멋진 문장을 완성하겠다고 부사, 조사, 접속사, 감탄사 따위를 남발하는 문장은 모자, 목걸이, 스카프, 팔찌, 카우보이 혁대, 체인 따위를 모두 두른 과잉 패션과 같다. 아따, 멋쪄부러 ~ 환장하게 멋쪄부려 ~ 페루애, 멋쪄부러잉~ 그러나 액세서리는 각자 훌륭한 패션 조미료 역할을 담당하지만 액세서리들의 총합이 시너지 효과를 발생시키는 것은 아니다. 50도인 물과 50도인 물이 합치면 물 온도가 100도가 되지는 않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자기는 한껏 멋을 낸다고 하지만 그가 걷는 길은 쁘레따뽀르떼가 아니라 세상에 이런 길 위를 걷는다 / 패션에서 결핍보다 촌스러운 것이 과잉이라는 사실은 멀리 볼 것 없다. 내 꼬락서니를 보면 답은 나온다. 좋은 패션은 기꺼이 불편을 감수하겠다는 다짐에서 시작된다. 그것은 미학적으로 뛰어난 의자가 사실은 불편한 의자인 것과 같다. 몸뻬가 촌스러운 옷의 상징인 이유는 몸뻬가 너무 편하다는 데 있듯이 컴퓨터 의자가 싼 의자의 상징인 이유 또한 그 의자가 너무 편하다는 데 있다. 지위가 높은 사람일수록 불편한 의자에 앉는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 불편은 지속적으로 뇌에 자극을 주기 때문에 태도와 자세를 의식적으로 생각하게 된다. 그래서 시시각각 교정이 가능하다. 내가 인간 관계에서 불편을 최고의 미덕으로 여기는 이유이다. 자세를 잊는 순간, 우리는 세상에 이런 길을 걷게 된다 / 가구 중에서 가장 편한 것은 침대요, 가장 편한 장소는 화장실이다. 21세기 성인 중에 " 우선 눕고 볼 일 " 과 " 우선 누고 볼 일 " 에 집착하는 인물이 있다. 바로 침대의 여왕, 박근혜'다. 침대는 자세를 허물어뜨린다는 점에서 나쁜 자세를 유도한다. 좋은 자세가 좋은 태도를 유지한다. 그런 점에서 그가 사람을 대하는 태도가 좋을 리가 없다.
▷ 시 : 무학의 힘
시인이 많은 사회일수록 좋은 사회 같지만 사실은 시인이 없는 곳이 낭만적인 사회다. 대한민국 출판 시장에서 해마다 새 시집이 쏟아지고 있지만 그것은 문학이 부흥하고 있다는 증거가 아니라 반대로 문학이 쇠락하고 있다는 매우, 매우, 매우, 매우, 매우 명징한 증거다. 십자가가 많을수록 부흥하고 있다는 증거가 아니라 구원이 불가능한 사회라는 것을 암시하듯이 말이다. 인류 역사상, 가장 시적인 언어를 구사하는 부족은 인디언이었다. 언어는 있으나 문자는 없는 인디언 부족은 < 친구 > 라는 말을 " 내 슬픔을 함께 지고 가는 자 " 라고 부른다. 여기에 수우 족은 < 12월 > 을 " 나무껍질이 갈라지는 달 " 이라고 부르고 < 1월 > 을 " 해에게 눈을 녹일 힘이 없는 달 " 이라고 부른다. 그리고 사람 이름은 " 오줌을 눌 때 휘파람 소리가 나는 자 " 라고 부르는 식이다(참고로 내 인디언식 이름은 어쩌다 낳은 한숨이다). 이 정도면 박목월도 울고 갈 서정이다. 이들이 나누는 일상 대화를 상상하면 아찔하다. " 내 슬픔을 함께 지고 가는 자여, 눈 녹일 힘이 없는 달이 차면 오줌을 누면 휘파람 소리가 나는 자와 함께 술이나 한 잔 하세 " 인디언 사회에서는 만득이도, 삼식이도, 영구도 모두 시인이다. 시는 언어는 있으나 문자는 없는 세계에서 빛이 난다. 그렇기에 문자를 배우기 전의 아이들이 말할 때 시적 아우라가 발생하는 이유이다. 시의 본질은 무학이다. 하여 나는 이토록 가방끈이 긴 세대가 이토록 많은 시인을 배출하고 있다는 점이 영 못마땅하다. 인디언의 시적 언어에 감탄한 여행객이 그들에게 물었다고 한다. " 이곳에서 가장 유명한 인디언 시인은 누구인가요 ? " 그 질문에 대한 대답은 " 시인이 뭐요 ? "
1) 존 맥클레인, 크리스마스 때만 되면 죽도록 고생하는 사나이. 실벳탸 스텔론이 용병이 되어서 베트남에서 싸울 때 브루스 윌리스는 형사가 되어서 뉴욕에서 흰 쫄티와 맨발로 악당과 싸운다. 전자는 해외 용병이고 후자는 자치 경찰'이다. " 아사리판 나와바리. 오오, 오호츠크 시밤바들아 " 이 두 마초가 닮은 점은 타자의 사유지 에서 폼 나게 총싸움(질)을 한다는 점이다. 한 방 쏘면 해결될 걸 열 방 쏜다. 어차피 그들은 돌아갈 고향이 있으니 싸움터가 심해 밑바닥 뻘보다 더 참혹한 폐허’가 되어도 신경 쓰지 않는다. 쏘가리도 아니면서...... 닥치는 대로 쏜다.
미국이 내세우는 전쟁 전략은 언제나 동일했다. " 남의 나라에서 폼 나게 싸우기 " 다. 미국 본토’가 < 적 > 으로부터 공격을 받았던 경우는 일본 가미가제 공격과 알카에다 공격이 유일했다. 가미가제가 모더니즘적 증후라면 9.11테러는 포스트모더니즘적 증후였다. 언제나 그렇듯이 나카토미 전투는 미국이 아시아에서 펼치는 대리전 이다. 영화 속에서 브루스 윌리스는 고개 숙인 남자'가 될 판이다. < 그 > 는 직장에서는 ① 골치 아픈 동료였고, 아내에게는 ② 무능한 남편이었으며, 딸에게는 ③ 유령'이나 다름없는 아저씨에 불과하다. 가정은 위기일발 상황에 놓여 있다. 나카토미 회사에서 능력을 인정받은 아내는 자신의 이름을 숨긴 채 처녀적 이름으로 직장 생활을 한다.
그러니깐 아내는 < 홀리 맥클레인 > 이라는 이름을 지우고 결혼 전 이름인 < 홀리 제네로 > 로 처녀 행세를 하는 것이다. 맥클레인 형사는 나카토미 빌딩 로비에 있는 방문자 명단에서 아내가 처녀적 이름을 사용하고 있다는 사실에 눈살을 찌푸린다. 맥클레인 가문을 부끄러워하는 아내. 설상가상, 참기름처럼 생긴 회사 동료가 아내인 홀리를 " 홀리 " 는 더러운 꼴도 본다. 맥클레인'이라는 이름은 말 그대로 아내로부터 제거(거세)된 상태'다. 지금 그의 페니스는 발기와 거세 사이에 있는 것이다. 잘린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꼴린 것도 아닌 상태. 마치 휴대폰 표시창에 방전을 알리는, 깜박거리는 아이콘’처럼 말이다. 그는 자신의 남근이 죽지 않았다는 사실을 증명해야 한다. 존 맥클레인 형사, 추락한 자존심을 세울 수 있습니꺄 ?
이 영화에는 재미있는 역설이 돋보인다. 전쟁터의 주요 무대인 < 나카토미 빌딩 > 은 하이테크 벙커로 최고의 방재와 보안 시설을 자랑하는 건물이다. 그런데 테러리스트는 오히려 디지털화된 보안 시스템 때문에 보호받는다. 경찰은 나카토미 하이테크 보안 시스템 때문에 건물 내부로 진입할 수 없다. 빌딩 철문은 먹이를 문 악어의 입처럼 열릴 줄을 모른다. 다시 말해서 : 적의 침입을 방어하기 위해 만든 철통 보안 시스템이 역설적으로 적을 보호하게 된다는 이야기'다. 이 역설은 안전을 강화하기 위해 만든 하이테크가 오히려 위험을 강화하는 역기능으로 발전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증명한다. 기술 발전은 리스크의 파이'를 키운다. 초가집이 불타면 단순한 화재가 되지만 초고층 빌딩이 불타면 재앙이 되는 법이니깐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