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녀들 / 희곡, 장 쥬네 > , < 의식 / 영화, 로렌스 하비 > , < 심연 / 영화, 니코 파파타키 > , < 피부 속의 악마 / 소설, 플레트 우디예 > , < 의식 / 영화, 오시마 나기사 > , < A Judgement in Stone / 소설, 루스 렌델 > , < 이 집 안의 내 자매 / 소설, 웬디 케슬먼 > , < 자매여 내 자매여 / 영화, 낸시 메들러 > , < 의식 / 영화, 클로드 사브롤 > , < 버터플라이 키스 / 영화, 마이클 원터보텀 > 의 공통점은 ? 정답은 1933년에 벌어진 파팽 자매 사건'을 직간접적으로 다룬 소설과 영화들이라는 점이다.
1933년 2월 2일. 대저택에서 아내와 딸이 죽은 채 발견된다. 경찰이 현장에 도착했을 때 눈동자는 뽑힌 상태였고, 팔과 다리는 잘린 채 바닥에 나뒹굴었다. 나중에 밝혀진 사실이지만 눈동자는 피해자들이 살아 있을 때 뽑힌 것으로 밝혀졌다. 그 집에서 일하는 하녀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들은 침대에 죽은 듯 누워 있었다. 다만 그들은 죽은 듯이 누워 있었을 뿐 죽지는 않았다 ! 왜냐하면 하녀인 크리스틴 파팽과 레아 파팽 자매가 범인이었기 때문이었다. 파팽 자매는 별다른 저항없이 침대에 누워서 경찰이 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살해 동기'는 밝혀지지 않았다.
이 사건은 워낙 강렬해서 그 후 수많은 작가들에 의해 만들어졌다. 국내에 < 활자 잔혹극 >이라는 기상천외한 제목으로 출간된 루스 렌델의 < 석상의 심판 > 또한 이 사건을 바탕으로 해서 만들어진 소설이다. 주인공 유니스'는 자신이 글을 읽지 못하는 문맹이란 사실을 부끄럽게 생각한다. 이러한 비밀'이 커버데일 가족에 의해 밝혀지자, 그녀는 가족을 몰살한다. 장정일이 발문에서 지적했듯이 소설은 문맹의 위험성과 함께 소통 없는 탐서'가 가지는 위험성도 함께 고찰한다. 사실 이 소설에서 제일 으시시한 인물은 유니스가 아니라 탐서가 자일즈'다.
한마디로 이 소설은 기똥차다, 환장한다, 끝내준다, 질질 싼다, 환상적이다 !!! 아마도, 이 불길한 예감이 맞을 것 같지만, 올해 읽은 소설 가운데 최고는 이 소설이 되지 않을까 싶다. 이상문학상 수상집 10권 읽는 것보다는 차라리 이 책 한 권을 읽는 것이 더 유익해보인다. 단연, 최고다 ! 내 < 촉 > 은 틀린 적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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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 Judgement in Stone > 를 국내에서는 < 스톤家의 심판 > 으로 소개되었는데 왜 이런 제목이 붙었는지 당최 이해가 가지 않는다. 등장 인물 그 어느 누구도 스톤'이란 성을 가진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차라리 < 돌의 심판 > 이라고 하거나 < 석상의 심판 > 이 정확할 것 같다. 소설에서 중요한 모티브로 작동하는 < 돈 조반니 > 줄거리를 보면 망나니 돈 조반니'가 동상을 집에 초대하는 장면이 나오기 때문이다. 또한 소설 속 유니스'가 돌처럼 냉정하고 감정 없는 캐릭터인 것을 보면 < 돌처럼 냉정한, 감정없는 여자의 복수 > 란 뜻인 것 같다. 그런데 이 제목을 다른 시각으로 해석할 수도 있다. 내가 보기엔 이 제목은 하나님의 말씀을 적은 십계명이 새겨진 석판에 대한 속뜻'처럼 읽힌다. 그러니깐 < 돌에 새겨진 심판 > 이 의미하는 것은 결국 십계명'이 아닐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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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욕 먹을 각오로 쓴다 ! > 시리즈 제 3 탄.
- 독서, 허영의 불꽃
책을 읽지 않는 사회에서 독서 행위'는 미덕'이 되었다. 책을 읽는다는 것은 < 속물 > 적인 것과는 거리가 먼 < 교양 > 이 되었다. " 책 읽는 사람, 근사하다 ! " 읭 ?! 그런데 책을 많이 읽는 사람일수록 ( 나쁜 쪽으로 ) 고집이 세다. 가장 지저분하게 끝나는 술자리'는 글빨 좀 되는 사람들이 모이는 자리이다. 시작은 수수하나 끝은 시시하거나, 미미하거나, 지저분하다. 서로 잘났다고 언성을 높아다가 싸움박질로 끝나고는 한다. 홍상수 식 작문으로 표현하자면 " 소주의 힘 " 이거나 " 막걸리의 힘 " 이다. 사실 책을 많이 읽는 사람'이 교양 있고, 이해심이 많으며, 지식이 풍부해서 큰 사람이 될 것 같지만 그것은 정말 오해입니다아아앙. 읭?
독서 행위가 인격을 높인다는 말은 과장이 심하다. 물론 독서를 통해서 세상을 보는 바른 눈을 가지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들도 많다. 오로지 지적 허세'를 위한 도구로 사용하는 사람들도 있다. 멀리서 볼 것도 없다. 나부터가 그렇다. 책 좀 읽었다고 아는 척을 한다. 내가 지금 쓰고 있는 문장의 지랄같은 허세를 보라. 읭 ?! 사실 가장 꼴사나운 판은 평단'이다. 강준만은 이들을 문학 권력'이라고 지적한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작가'는 문단 권력이 만든다. 문단 권력자'의 이해타산'에 의해 발굴되는 것이다. 이들이 큰소리 땅땅 칠 수 있게 만드는 것은 바로 < 등단 제도 > 때문이다.
■ 이런 지적 허세'는 글을 쓰는 작가라고 해서 다르지 않다. 대한민국 에세이 가운데 구 할은 자기 자랑'이다. 소소한 일상 예찬처럼 보이지만 핵심은 " 당신들이 놓친 것을 나는 간파했네 ! " 다. 김미경 자기계발서와 신달자 에세이는 동일하다. 그런가 하면 모 시인'은 블로그에 자신의 글이 올라왔다는 이유로 법적 대응 운운한 사례도 있다. 출처를 밝혔음에도 말이다.
한국 문단에서 등단을 통하지 않고 작가 행세'를 하면 개무시당한다. 문단 권력자들은 웃으면서 코 판다. 그런데 지금 우리가 대가'라고 칭송하는 세계적 작가들은 등단을 마친 사람들일까 ? 나는 셰익스피어가 등단을 통해 작가 생활을 했다는 소릴을 들어본 적이 없다. 도스토예프스키는 ? 카프카는 ? 보르헤스는 ? 들어본 적이 없을 것이다. 당연하다. 등단 제도 자체가 없기 때문이다. 등단 제도'가 있는 나라는 일본과 한국이 유일하다. 이런 것을 닮을 필요 없다. 못된 것만 배운다고 일본과 한국에만 있는 것이 또 하나 있다. 보증 제도'다. 반드시 없애야 할 악법이 보증 제도인데 유감스럽게도 한국은 못된 것만 배운다. 아비가 진 빚은 자식이 갚아야 한다. 채권자 甲 에게는 정말 환상적인 제도'다. 乙에게는 개같은 제도이지만 말이다.
■ 서평가의 리뷰를 읽는 것은 즐겁다. 왜냐하면 거기에는 순수한 열정이 보이기 때문이다. 좋아서 하는 것이다. 그런데 같은 이유로 문학평론가의 리뷰는 불쾌하다. 왜냐하면 그 글들에서 권력 욕망을 읽기 때문이다. 서열과 자기 과시'가 읽힌다. 문학평론가가 쓴 평론보다는 서평가가 쓴 글이 담백하다.
이 글을 읽는 알라디너들은 기분이 나쁠 것이다. 하지만 이 글은 나 스스로를 향한 반성문'이기도 하다. 닥치는 대로 읽었다. 그런데 < 나 > 라는 인간은 교양이 쌓이기는커녕 삐딱하게 세상을 보기만 했다. 그것은 타자에 대한 어떤 우월성이었다. 입만 살았지 발은 죽었다. 김수영 시인이 보았다면 냅다 내게 따귀를 때렸을 것이다. 김수영은 말했다. 책만 읽고 행동하지 않는 것은 읽지 않는 것만도 못하다고 말이다. 우리는 책상 앞에 앉아서 교양 있는 척 허세를 부리지만 막상 철탑 노동자를 위해 싸울 생각을 하는 사람은 별로 없다. 진정성'은 입'이 아니라 발'에서 나온다.
■ < 활자 잔혹극 > 에서 주인공인 유니스'가 보이는 심리 상태는 사실 탐서가'에게 적용할 만하다. 예를 들면 책을 많이 읽는다고 자부하는 사람일수록 자신이 읽지 않은 책'에 대하여 부끄러워 하는 경향이 있다. 탐서가들은 자신이 고전을 읽지 않았다는 사실을 부끄럽게 생각한다. 그래서 종종 거짓말을 하고는 한다. 독서광들이 세르반테스가 쓴 < 돈키호테 > 를 읽은 적이 없다고 고백하는 것은 유니스가 문자를 읽지 못해서 오는 < 수치 > 와 비슷하다. 그래서 읽은 척을 한다. 루스 렌델은 이 소설에서 유니스(문맹자)와 자일즈(탐서가)를 비슷한 유형으로 설정한다. 장정일의 표현을 빌리자면 " 현실과 소통을 거부하는 탐서 " 는 문맹과 다르지 않다.
내 어머니는 국민학교 졸업장이 전부'다. 성경책을 필사하는 데 평균 2년이 걸렸다. 초등학생 같은 글씨체'가 부끄러워서 한 글자 한 글자 펜 글씨로 써내려가다 보니 세월이 그리 흘렀다. 그렇게 해서 모인 성경 필사본이 4권이다. 당신이 읽은 유일한 책은 성경책이 전부였다. 어머니는 시장에 가면 물건값을 흥정하지 않는다. 덤을 주면 거절한다. 값을 흥정해야 될 곳은 백화점이지 시장이 아니라는 것이다. " 가난한 시장 상인들 도와주지는 못할망정 흥정을 하다니.... 오히려 떵떵거리며 큰소리로 흥정해야 될 곳은 백화점이란다. 이 에미'는 못 배웠지만 적어도 그 정도는 안다. " 그 말은 마치 공산당 선언문'에 나오는 노동자여 단결하라, 처럼 들린다.
물론 어머니가 < 자본론 > 을 읽었을 리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