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을 여행 전문가로 만들어 주겠다.  

 

 

당신은 해외 여행을 간 적이 없습니다. 해외 여행은커녕 비행기 한 번 타 본 적 없으며 그 흔한 제주도조차 간 적이 없습니다. 남들이 배낭을 메고 안나 푸르나를 오를 때, 당신은 짐통을 지고 공사판 계단을 오릅니다. 하지만 슬퍼하지 마십시요. 무거운 벽돌을 지고 계단을 오르는 행위와 안나푸르나를 오르는 행위에는 공통점이 많습니다 : 첫째, 다리가 천근만근입니다.  둘째, 어깨가 무겁습니다. 셋째, 거칠게 숨을 쉽니다. 넷째, 정상에 다다를수록 한 길 높이가 천 리 같듯이, 벽돌을 지고 내려야 할 5층 계단에 다다를수록 한 계단이 천 개의 계단 같습니다. 당신은 지금 계단을 오르는 것이 아니라 히말라야 안나푸르나'를 오르고 있습니다. 주위 사람들이 배낭을 메고 유럽 자유 여행을 떠났다며 자랑을 하거든 기 죽지 마세요. 당당하게 말하십시요.  

 

히말라야 안나푸르나 정상'에 오른 적 있다고 말입니다. 이 거짓말을 부끄러워할 필요 없습니다. 디테일하게 말씀하십시요. 정상에 오를수록 다리가 후들거리고, 무거운 짐은 땀에 젖어 더욱 무겁고, 들숨과 날숨에서 고통이 느껴졌으며, 한 길은 천 길처럼 멀더라, 라고 말하세요. 고통을 이야기할 때는 이마에 있는 三자 주름에 힘을 주어서 미간 사이에 川으로 만들어 주십시요. 효과 좋습니다. 얼굴에 새겨진 三과 川 은 당신이 내뱉는 말에 신뢰를 줍니다. 물론 조심해야 될 부분도 있습니다. 三과 川을 많이 사용하는 사람은 얼굴 표정이 풍부하다는 것을 의미하는데, 얼굴 표정이 풍부한 사람은 대부분 사기꾼'일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 사기꾼 > 에 대한 정의는 다음과 같습니다.  

 

" 사기꾼은 타인에게 신뢰를 주기 위해서 남들보다 성실한 모습을 보여주려고 꽤나 노력하는 사람이다. 사람들은 사기꾼이 < 말' > 로 사람을 홀린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사기꾼은 < 신뢰 > 를 가지고 사람을 홀린다. 말로 사기 치는 놈은 하수인 반면, 고수는 말보다 신뢰를 주는 표정으로 사기를 친다. 고수는 三과 川'를 자주 사용한다. 정직한 사람은 타인에게 신뢰를 주기 위해 三과 川'를 자주 사용하지 않는다. 그러니깐, 무슨 말인가 하면 정직한 사람은 뜨거운 심장으로 말하고, 사기꾼은 화려한 얼굴 표정으로 말한다는 것이다. 표정이 자유롭다는 것은 개새끼들이 즐겨 사용하는 수작이다. 화려한 얼굴을 믿지 마라. 초라한 얼굴을 믿어라. 구멍은 치명적이지 않던가 ? 어깨에는 구멍이 없으나 얼굴에는 수많은 구멍이 있다. 눈 구멍, 콧구멍, 입 구멍, 입 구멍. 구멍은 모두 유혹이며 동시에 성감대이다. 뒤에 있는 유일한 구멍은 똥구멍이 유일하다. " 

 

여러분은 거짓말이 나쁘다고 생각하시나요 ? 그렇지 않습니다. 누군가에게 거짓말'은 꼭 필요한 원기옥이요, 박카스이며, 레드불'입니다. 낚시와 연애'의 공통점은  거짓말을 잘할수록 좋은 결과'를 얻는다는 점입니다. 거짓말을 잘하는 낚시꾼은 정직한 낚시꾼'보다 더 큰 물고기'를 잡을 확률이 팔 할입니다. 송사리 잡고는 고래 잡았다고 하니 이길 방법이 없습니다. 연애도 마찬가지입니다. 거짓말을 잘하는 남자가 정직한 남자보다 미인을 얻을 확률이 더 높고, 여자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거짓말은 달콤하고 진실은 언제나 외면하고 싶죠. 인간의 본성입니다. 거짓말을 너무 부정적으로만 생각하진 맙시다. 허허.  

 

이 글은 여행을 즐기는 사람을 향한 조롱'이 아닙니다. 여행은 우물 안 세상'에서 벗어나기 위한 매우 좋은 방법입니다. 여행을 좋아하는 사람치고 나쁜 사람 없습니다. 그렇다고 여행을 떠나지 못하는 자신을 탓하지는 마십시요. 안나푸르나에 오르고 싶은 사람은 벽돌을 지고 공사 현장 계단을 오르면 체험할 수 있습니다. 인도 여행을 하고 싶으나 경비와 시간'이 없다면 후암동이나 양동을 추천합니다. ( 지금도 이곳에 할렘이 조성되어 있나 모르겠군요. 90년대까지는 가능했습니다. ) 대한민국에서 가장 높은 곳이 백두산이라면 가장 낮은 곳은 양동이었습니다. 낮은 사람이 모여서 만든 습지'였습니다. 이곳에 어린 앵벌이들이 있었습니다.  

 

이제 대한민국 국민은 모두 산악인'이 되었습니다. 중고등학생은 기능성 섬유인 고어텍스로 만든 노스페이스'를 입고 도시'에서 살아갑니다. 노스페이스는 노스페이스'로 뭉칩니다. 꽤 고급스러운 취향의 공유입니다. 그들은 안나푸르나를 오르듯 치열하게 1등이라는 고지'를 향해 행진 합니다. 학창시절은 이제 살얼음판이 되었습니다. 어디 어린 놈뿐이겠습니까 ? 아이들이 노스페이스로 뭉친다면, 성인'은 블랙야크'로 모입니다. 그들은 머리어깨무릎발무릎발, 머리어깨무릎발무릎발, 머리 ! 어깨 ! 발 ! 무릎 ! 발에 모두 등산 장비'를 갖추고 주말마다 떼거지로 모여서 도봉산에 오릅니다. 철저한 중무장은 마치 히말라야 악마의 3봉우리'를 오를 기세이지요. 그들은 도봉산에 올라 불륜을 저지릅니다.  남자는 씩씩한 척하고, 여자도 씩씩(sick sick)한 척 합니다. 

 

미끄럼 방지를 위한 아이젠을 착용했음에도 불구하고 여자는 얕은 둔덕을 오르지 못하고, 남자는 손을 뻗어 여자를 끌어올립니다. 전기가 찌릿한가요 ? 손만 잡고 가만히 있는 사이가 순정이라면 손만 잡았다는 이유로 하는 사이는 통정이 되겠군요. 그들은 손을 잡는 행위를 허락이라고 생각하는 모양입디다. 허허허허허.  서울 올림픽 때 급조된,  이태원 성인 나이트 클럽에서 놀 것 같은 간지'를 선보였던 코리아나는 손에 손 잡고 벽을 넘었지만, 산악 동호회 남녀 회원들은 손에 손 잡고 선을 넘어서 우리 모두 하나되는 모텔에 갑니다. 대부분 산 아래 있는 모텔 이름은 알프스'이거나 아마존 호텔 혹은 하와이죠. 아마존에 간 적 없다면 아마존 모텔에서 땀 뻘뻘 흘리며 섹스를 했던 경험을 살려서 거짓말을 해 보십시요. 뒹굴었다고, 검은 동굴을 경험했으며, 숲은 울창했다고, 동굴에서 < 아 ! > 소리를 지르면 저 멀리서 < 아 ! > 소리가 되돌아온다고, 축축하며 촉촉하다고, 계곡을 지나 오르니 두 개의 봉우리'를 만났다고, 아, 아아아 아름다웠다고, 그 두 봉우리 모두 정상에 올라 깃발을 꽂았노라 ! 라고 말하면 됩니다. 당신의 경험담에 모두 속을 겁니다.  

 

자, 이제 마무리합니다. 인도에 간 적 없다면 양동을 떠올리고, 아마존과 같은 오지'를 간 적 없다면 아마존 모텔을 생각하십시요. 스위스 모텔을 생각하십시요. 안나푸르나는 공사판 높고 높은 계단을 생각하세요. 이러한 메뉴얼을 습득하시면 당신은 훌륭한 여행 전문가가 될 수 있습니다. 기 죽지 마십시요. 내 말 명심하세요. 노스페이스와 블랙야크가 지배한 대한민국 국민은 모두 위대한 산악인'이며 영혼이 자유로운 여행자'라는 사실을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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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forte 2013-08-04 21: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ㅎㅎㅎ 예전에 한 프랑스 자전거 투어프로그램 소개글을 읽다가 한국사람들, 제발 한국서 입듯이 선수옹 복장 쫙 빼입고 오지 말아달라는 경고를 보고 푸악 터진적이 있었는데.. 그때만큼 터져주네요.
그나저나, 여행하지 않은곳에 대해 말하는법인가, 뭐 그런 책을 사놓고는 같은 저자가 쓴 읽지않은 책에 대해 말하는법을 먼저 읽고서 망연자실, 새 책을 펴보지도 않고 구석에 쳐박아 두었는데... 언제 정말 심심해서 실신할때쯤 한번 꺼내봐야 겠네요. 물론, 곰발님글보다 재미가 확 떨어지겠지만서두...ㅎㅎ

iforte 2013-08-04 21:48   좋아요 0 | URL
아... 새로 대문사진 바뀌었네요. 마치 인도의 한 내공깊은 수행자 같다는..... 따로 인도 갈것없이 곰발님네 놀러와 사진 구경하고 '나 인도가서 고행승 만나뵙고 큰 깨달음 얻고 왔어'라고 해도 무방할듯요. ㅋ

곰곰생각하는발 2013-08-04 22:29   좋아요 0 | URL
ㄱㄱㄱㄱㄱ 그렇지 않아도 오늘 국도 타고 왔는데 한 무리의 사이클 동호회 무리가 쫘악 등장했는데
힘이 든지 엉덩이를 들고 가더라고요.
근데 이거 제가 착각한 건지 잘 몰라도
팬티를 안 입었더라고요. 땀에 젖었는데 적나라하게 복숭아가 보여서 쪽팔려서 죽는 줄 알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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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지 않은 책.... 고거 보다 홈즈가 틀렸다, 가 좋습니다. 햄릿을 수사한다도 재미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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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에 수건 좀 두르면... 누구는 예수라 하고 누구는 사다코( 링 귀신 ) 라고 하고,ㅎㅎㅎㅎ

iforte 2013-08-04 22:58   좋아요 0 | URL
ㅍㅎㅎㅎㅎㅎㅎㅎ 아이고.... 주말에 못볼껄 보셨네요. 상상하기도 뻘쭘하니.... ㅋ
예수님이나 사다코나, 다 '령'이네요. 한밤중에 쏘다니지 마세요. 여럿 멀쩡한 사람 천국구경 시키지 마시고. ㅎㅎㅎㅎㅎ

언급하신 책들도 같이 구매해놨죠. 운동할때 트레드밀위에서 읽으려고.... 영 운동할 시간이 안난다는.... ㅠㅡㅠ

곰곰생각하는발 2013-08-04 23:42   좋아요 0 | URL
오, 이 비야르 책 다 가지고 계시군요. 저도 대부분 다 가지고 있어요. 읽지 않은 책,... 고게 재일 재미없고 나머지는 흥미진진해요..... ㅎㅎㅎㅎㅎ. 제일 재미없는 책부터 보신 것 같습니다.

박에 나갈 때는 항상 머리를 묶죠. 그게 사람들에 예의이니 말이죠..ㅎㅎㅎ
저런 머리하고 나가면 돌팔매 당할 것같습니다....ㅎㅎ

히히 2013-08-05 13: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남들은 자신을 넓히는 것을 여행의 처음으로 두고 있지만
타자와의 그물에 이기적이고 싶을 때 미치도록 숨박꼭질하고 싶습니다요.
오직 자신을 향해 좁히는 것이 여행이지요. 제가 그렇다구요.

지나온 발자국 위에 수북히 쌓인 눈이 겁나 앞만 보고 올랐던 어머니의 산
장터목에서 겨우 눈을 부치고
새벽밥 지어 새끼입을 채우는 어미처럼
나의 안구을 촉촉하게 채워주던 안개여 내 영혼의 배설물이여!

탄성이 절로 나오게 하는 것은
우듬지 그늘막없이 한여름을 견디고
차라리 찬 서리을 반기며 한 여름의 고통을 가려주는 새하얀 雪을 품은 백의고사목!
눈의 찬란함에 눈물흘렸으나 고사목의 인내를 아로새기며 하산하는 자는 슬프다.
다행히도 땅거미가 나의 참담함을 부드럽게 흐려놓는다.

모든 행복 뒤에는 동등한 양의 고통이 숨어 있나니
그것을 받아들이자, 고사목인생이여!

그 옛날 장터목에서 찍은 사진들을 보면
아직도 눈 아래 깔려있던 구름을 잊을 수 없습니다.
그 감성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이외수와 중첩됩니다. 제가 좋하하는 작가는 아닙니다.
남자라면 파르라니 깍은 머리 꼭 하고 싶습니다.
곰...발님도 어울리지 싶은데...결국 가위가 문제군요.
사진에서는 코 끝이 매력적인 분이십니다.
말이 느리다하시니 그것 또한 능력이십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3-08-05 14:02   좋아요 0 | URL
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
저도 이외수 작가는 제 취향이 아닙니다.
머리는 집에서만 풀고, 구멍가게를 갈 때에는 항상 묶고 다니죠.
머리는 묶어서 상투를 틀어요. 머리를 몇 번 접고 묶으면 상투 비슷하게 되더군요.
이번 달 안으로 머리를 자를 생각입니다. 가윗소리가 무서워서 못 깎고 있었는데
아무래도 너무 길렀어요....


 

 

 

 

박상륭의 < 열명길 > 을 읽고 감명했다는 독자를 만날 때 문학평론가들에게는괴로워질 것이다. 소설의 첫머리에서 존 레논을 듣고 인생이 바뀌었다는 문장을 볼 때 음악평을 쓰는 내친구는 괴로워진다는 말을 한다. 소설의 이곳저것에서 < 블레이드러너 > 를 논하고, 이유 없이 타르코프스키의 영화 장면이 인용되고, 내가 본 그 영화에 대해서는 이라는 문장으로 시작하는 지루한 영화론을 읽어야 할 때, 나는 그냥 소설을 덮어 버린다.... ( 중략 ) # 사람은 자기가 잘 알지 못하는 것을 쓰면 안 된다.

 

영문과 교수들께서 먼저 영화에 대해서 입을 열기 시작했다. 아마도 프레드릭 제임슨이 용기를 주었을 것이다. 제임스 조이스를 이야기하던 그 혀로 삼류 헐리우드 영화를 진지하게 이야기하기 시작했을 때 처음에는 그냥 농담인 줄 알았다. 소설가들이 영화의 기법을 소설에 도입하겠다고 나섰을 때 그냥 웃자고 하는 이야기라고 받아넘겼다. 시인들이 영화의 제목을 빌려 왔을때 그건 한 번 하고 말아야 할 유머에 지나지 않는 것이었어야만 했다. "

 

- 도둑질하고, 도둑질당하고 ( 왜 한국 문학과 한국 영화는 서로 우정을 나눌 수 없는가

 

 

 

우리는 소설을 읽고 난 다음 아무렇게나 말하지 못한다. 조이스나 프루스트 같은 미로를 헤치고 나온 다음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으면서 그저 할 수 있는 일은 친구들의 이름이 적힌 수첩을 들추면서 우리의 하루를 돌아볼 뿐이다. 세잔의 그림을 보고 난 다음 그 감흥을 아무렇게나 말하지 못한다. 브루크너의 제 8교향곡 3악장 아다지오에 대해서 방금 듣고난 다음에도 다시 한 번 더 듣고 말하겠다고 대답을 미룬다. 베케트의 무대는 거의 등장인물이 없는데도 무언가 보지 못한 것이 거기 있다고 생각하게 만든다. 그런 영화는 보고 나오면, 그 영화가 난니 모레티건, 허우 샤오시엔이건, 제임스 캐머린이건, 데이비드 린치건, 임권택이건, 그게 누구의 영화건, 누구라도 영화관 문을 나서면서 방금 보고 나온 것에 대해서 금방 입을 연다.

 

- 필사의 탐독, 취화선

 

 

 

그는 사람들이 자기가 잘 알지 못하는 것을 쓰면 안 된다고 했는데, 사실 이 말은 틀린 말이다. < 폭풍의 언덕 > 은 불꽃 같은 사랑을 경험하지 못한 작가가 쓴 책이었다. 에밀리 브론테는 그 흔한 사랑 한 번 못하고 서른에 결핵으로 죽었다. 그리고 히치콕은 경찰이 무서워서 평생 운전면허증도 없었던 사내였다. 히치콕은 오히려 범죄의 세계를 잘 몰랐기 때문에 위대한 작품이 탄생한 것은 아닐까 ? 우리는 누구나 그 영화에 대해 말할 자격이 있다. 입장료를 내고 영화를 보았으며 티븨 수신료를 매달 내면서 < 주말의 명화 > 를 시청했다. 이 정도면 자격이 있는 것이 아닐까 싶다. 영화는 오로지 평론가의 몫인가 ? 웃으며 코 판다. 잇힝 ~

 

그가 가진 태도는 접어두고서라도 일단 쓸데없이 긴 나열, 불분명한 주어 설정, 그리고 미완성으로 끝나는 술어들의 나열은 읽기를 방해한다. 문장이 틀어지면 삭제하고 다시 써야 하는데 그는 삭제 대신에 완성되지 않은 문장을 그냥 쉼표로 남겨두고는 다시 다음 문장을 쓰기 시작한다. 결국은 완성되지 않은 문장들이 둥둥 떠다니다가 뜬금없이 마침표로 끝난다. 그것은 빵 봉지'를 뜯어 빵을 한 입만 베어물고는 식탁 위에 놓은 채 다시 다음 빵 봉지를 뜯어 한 입 베어무는 꼴과 다르지 않다. 먹다 만 빵들이 탁자 위에 널려 있다간 엄마한테 혼나요. 그는 개성적 문체라기보다는 차라리 세계 인명 사전식 보그체'에 가깝다. 끝없이 물고 늘어지는 수많은 이름들의 인용의, 인용의, 인용의, 인용이다.

 

 

- 정성일 문체 비판 中

 

 


 

 

 

 

 

 

 

 

당신'을 영화 전문가로 만들어 주겠다.

 

 

- 포스트 키노 키드의 불알을 쪼그라들게 만드는 메뉴얼 

 

 

영화 관람 행위를 교양 필수 과목으로 생각하시는 분들을 위해 준비했습니다. 포스트 키노 키드'와 같은 전문가'가 되고 싶으시죠 ? 하지만 그 수많은 정성일 영화 목록을 다 채우다가는,  당신은 연애도 한번 못하고 모니터 앞에서 늙어 죽을 것이 분명합니다. 그렇다고 섣불리 안 본 영화를 보았다고 말했다가는 수많은 포스트 키노 키드(들)의 집요한 질문에 당신의 < 발광 다이오드的 극성' > 은 이내 < 발열 요오오드的 산성 > 으로 조롱받을 것이 분명합니다. 다이오드'에서 요오오드'로 위상이 떨어질 생각을 해보십시요. 앞이 깜깜합니다. 그래서 준비했습니다. 다음과 같은 메뉴얼'만 습득하십시요.  

 

1. 제임스 카메론을 경멸하십시요 : 키노 키드'들은 당신의 발광 다이오드적 극성'을 시험하기 위해 제임스 카메론 영화에 대해 질문을 던질 것입니다. 이럴 땐 과감하게 이렇게 대답하십시요. " 캬 ! 카메론'를 내게 묻는 거요 ? " 그리고 마지막에 화룡정점을 찍으십시요. " 카메론 영화는 초기작이 좋습니다. " 잘나가는 헐리우드 감독'에게는 무조건 최근작을 칭찬하지 말고 초기작에 대한 애정을 보이십시요. 백 프로 효과 봅니다.

 

2. 1단계를 통과했다고 방심하면 안 됩니다. 헐리우드 감독은 모두 후졌다고 말하는 순간 포스트 키노 키드'는 당신을 의심의 눈초리'로 바라봅니다. 헛점을 잡는 순간, 그들은 " 발광 다이너마이트的 발성 " 으로 < 고래 > 도 아니면서 고래고래 큰 소리로 조롱을 할 것이며, < 노벨 > 도 아니면서 노발대발할 것이며, < 해 > 도 아니면서 해해 웃을 것입니다. 당신이 지지할 감독은 지나치게 상업적인 감독도 경계해야 하지만 그렇다고 이미 입증된 감독을 거론하는 것도 패착이 될 수 있음을 명심하십시요. 당신이 < 코헨 형제 > 를 좋아한다고 해서 키노 키드'들이 감동할까요 ? 이럴 때 준비했습니다. 꼭 명심하십시요. 다음과 같은 말을 하십시요. " 난, 시나리오 작가 데이빗 마멧의 작품을 좋아하오. " 곳곳에서 장탄식이 흘러나올 것입니다. 데이빗 마멧, 탁월한 선택 아니겠습니까 ? 혹은 촬영 감독 고든 윌리스'를 거론하는 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그들은 디테일을 좋아합니다. " 그의 카메라는 빛을 포착한다기보다는 어둠을 사로잡습니다 ! " 촬영감독과 각본가를 좋아한다는 것은 고수라는 의미'를 그들에게 전달할 것입니다. 포스트 키노 키드는 당신의 선택에 불알이 쪼그라들 것입니다.  

 

3. 안드레이 타르콥스키'를 좋아한다고 말하지는 마십시요 : 21세기 키노 키드들은 타르코프스키'를 한물 간 감독 취급을 하니깐 말이죠. 타르코프스키'보다는 < 아핏차퐁 위라세타쿤 > 을 뽑으십시요. 무조건, 무조건입니다. 2시간 내내 영화를 보며 졸았다고 해도 무조건 아핏차퐁 위라세타쿤'이 좋다고 하십시요. 팔 할은 먹고 들어갑니다. 단 이름을 거론할 때는 말을 더듬거리면 안 됩니다. 아, 아아..아차퐁 라세타쿤.... 이런 식으로 더듬거리면 차라리 거론하지 않는 것이 낫습니다. 외우십시요. 달도 아니면서 달달 외울 필요가 있습니다. 그 사람의 풀네임을 쉼표 없이 부를 때 당신은 발광 다이오드적 극성을 얻을 겁니다. 문학을 좋아하는 이'에게 릴케'라는 호명보다는 라이너 마리아 릴케'라고 호명하는 목소리에 관심을 가지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4.  여기에 의외의 카드를 꺼낼 필요가 있습니다 : 매우 대중적인 영화 한 편을 거론하고는 이 영화가 내 인생의 영화라고 주접을 떨어보십시요. 잘 먹힙니다. 예를 들면 이소룡 영화라거나 주성치 영화가 좋다는 식입니다. 아, 아아아아아핏차퐁 위라세타쿤을 말하던 그 혀로 주성치 영화가 좋다거나 강우석 영화가 좋다고 해보세요. 당신은 편식 없이 골고루 음식을 섭취하는 착한 어린이가 됩니다.  여기에 개인적 서사를 살짝 넣으면 달달한 칵테일이 만들어집니다. 딱 한번 보았으면서도 수십 번 보았다고 말하세요. 끝입니다.

 

5. < 카이예 뒤 시네마 잡지 > 에 거론된 영화를 주의 깊게 볼 필요가 있습니다 :  하지만 당신은 몰라도 됩니다. 쫄지 마십시요. 키노 키드들이 카이예 잡지를 들먹이며 알지도 못하는 영화를 말할 때 당신은 그저 먼곳을 응시하며 딱 한 마디'만 하십시요. 백 프로 효과 봅니다. " 좋은 영화는 우리 몸에 좋은 보약과 같지요. " 라거나 " 몸에 나쁜 음식은 달고, 몸에 좋은 음식은 입에 쓰죠. 영화도 마찬가지입니다. " 라고 말이죠. 이 말은 키노 키드들이 좋아하는 만병통치약입니다. 무조건 이 말 하면 다 본 것 같은 착시 효과를 주니 자주 써먹으십시요. 명심해야 될 것은 안 본 영화를 이야기할 때는 < 창 > 을 하는 사람이 아닌 < 북 > 을 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점입니다. 그들이 말할 때 얼씨구, 옳다구나, 그렇지와 같은 흥을 돋궈주는 역할로 물타기를 하십시요.

 

6. 너무 외국 영화'만 거론했나요 ? 이럴 땐 임권택 한번 건드려야죠. 무조건 좋다고 말하십시요. 한국적 미학을 완성했다고 그냥 말하십시요. 닝기미.. 한국 영화 보고 한국적 미학이라는데 무슨 말이 필요합니다. 안 그러면 따귀를 맞을 테니깐..... 한국 영화를 거론할 땐 항상 < 한국적 미학 > 을 거론하세요. 봉준호 영화의 장점은 무엇입니까 ? 한국적 미학을 완성한 감독이죠. 김기영 감독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세요 ? 한국적 미학을 완성한 감독이죠.

 

7. 영화 이야기만 한다고 완성되는 것은 아닙니다. 키노 키드들이 그토록 좋아하는 서양 어르신 이름을 쉴 새 없이 나불거릴 필요가 있습니다. 방도는 없어요. 그냥 외우십시요. 특히 들뢰즈 인용을 많이 하십시요. 꽤 좋아할 겁니다. 발터 벤야민도 아도르노와 함께 언급하시면 효과가 2배로 뜁니다.  지첵에 대한 언급을 가급적이면 피하는 것이 좋습니다. 요즘 너무 인기가 높다보니 지첵'에 대해서 말하면 키노 키드들은  그들을 속물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습니다. 그냥 간간이 조르주 아감벤을 입에 담으세요. 환장합니다. 아감벤 철학이 쉽지는 않으니 그냥 < 호모 사케르 > 만 달달 외우세요.  

 

이상 위의 메뉴얼을 숙지하시면 당신은 영화 전문가'가 됩니다. 명심하십시요. 타르코프스키'보다는 아핏차퐁 위라세타쿤'입니다. 그의 풀네임은 당신에 대한 믿음을 한층 업그레이드시킬 것입니다. 그리고 채플린보다는 키튼입니다. 세계 영화 베스트 텐'을 언급할 때에도 오손웰즈의 < 시민케인 > 이 좋다고 말하지 말고 < 악의 손길 > 이 좋다고 말하세요. 그래야 있어 보입니다. 그리고 일본 영화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거든 무조건 아키라'보다는 오즈'가 좋다고 말하세요.  키노 키드'에게는 오즈는 神과 같습니다. 정성일이 말했죠. < 동경이야기 > 를 하나를 보고 오즈'가 좋아졌다고 말하는 것은 새빨간 거짓말이라고 말이죠. 그러니 키노 키드 앞에서 < 동경이야기 > 는 금지어'입니다. 차라리 < 꽁치의 맛 > 이나 < 태어나긴 했어도 > 를 언급하세요. 그냥 안 보았어도 언급하십시요. 그들은 당나귀처럼 응앙 응앙 울 것입니다. 하여튼 이렇게 말하세요. " 오즈는 동양적 세계관을 담고 있죠. 좁고 낮은 다다미'는 넓고 높은 우주적 세계관을 담고 있습니다. " 이 얼마나 명쾌합니까. 이 메뉴얼을 숙지하셔서 포스트 키노 키드 불알을 쪼그라들게 만드십시다. 영화라면 자기가 최고라고 생각하는 그들의 얼토당토 목금토일요일은 짜파게티'를 자빠트립시다. 

 

 

 


 

 

 

 

요약 >  

 

1. 잘나가는 상업 영화 감독'은 신랄하게 비판하라. ( 관객 500만 넘으면 무조건 비판한다. 반드시 비판한다. 좋게 봐도 비판한다. 대중성은 적이다. )

2. 일반적으로 알려진 명감독의 대표작'보다는 잘 알려지지 않은 작품을 선택하라. 

3. 무조건 초기작이 좋다고 우겨라. 초기작은 순수하고, 최근작은 타락했다고 말하라. 

4. 영화 잡지 많이 읽고 거기에 인용된 횟수에 따라서 영화를 인용하라. 

5. 아핏차퐁 위라세타쿤'을 더듬거리지 말고 자연스럽게 말하라. 이름이 긴 감독은 무조건 습득하라.  

6. 안 본 영화도 본 영화처럼 말하라. 맞장구'를 쳐라. 

7. 한번 본 영화도 서른 번 보았다고 우겨라.  

8. 감동했다, 라고 말하지 말고 아프다, 고 말하라. 이로써 당신은 모두가 부러워하는 영화 전문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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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8-01 05:3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3-08-01 05:31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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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8-01 06:4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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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8-01 06:5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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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8-01 12:47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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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8-04 14:59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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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애니비평 2013-08-01 08: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덕적으로 적어도 나름..ㅎㅎ

곰곰생각하는발 2013-08-04 15:00   좋아요 0 | URL
만애비 님 부산은 덥다하던데.. 고생이 많습니다.확실히 강원도는 시원해요.
밤에 잘 때는 오히려 추움... 지금 집인데 더움...

yamoo 2013-08-01 11: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저게 통한다는 말이지요?! 우와!! 저, 이런거 그대로 따라합니당~ ㅎㅎ
아주 좋은 정보네요. 그대로 실행에 옮깁니다요..ㅋ

근데, 포스트 키노 키드들은 누구를 가리키는 말인가요? 일간지나 포털에 영화 비평이나 칼럼 쓰는 사람들을 말하는 것인지..

곰곰생각하는발 2013-08-04 15:01   좋아요 0 | URL
이야 야무 님이군요.....
포스트 키노 키드'가 딱히 전해진 건 없어요.
왜 그런 친구들 있잖습니까. 영화가 세상을 구원하리라, 라는 그 이상한 믿음...ㅎㅎㅎㅎ
그런 친구들 보면 좀 답답합니다. 그냥 영화를 좋아하면 되지 굳이 영화가 세상을 구원할 거라는
허세는 좀 그래요.. 후훗..

2013-08-01 22: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ㅋ 재밌네요. 전 좀전까지도 아핏차퐁 위라세타쿤을 '아팟차퐁 위타세라쿤'이라 읽고 있었어요. (상당히 정교한 오독이죠?ㅎㅎ) 이제 적어도 이 사람 이름 유려하게 외기는 할 수 있을 듯요. 오늘부로.ㅋㅋㅋ

만화애니비평 2013-08-02 08:34   좋아요 0 | URL
그 섬인가요!!!

2013-08-02 12:13   좋아요 0 | URL
쏘리~ 그 섬 아닙니다. (아시는 분이냐는 말씀이죠? -아닙니다.) -흔한 이름이군요... 아무렇게나 지은 닉넴이라 그런가...ㅋ

곰곰생각하는발 2013-08-04 15:02   좋아요 0 | URL
전 여전히 못 왜우겠어요. 전 자꾸 아랏찻퐁이라고 생각이 나네요...
이름 진짜 못 외우겠어요. 압바스 키아로스타미도 쉽게 외우겠는데 아.. 이 양반은 강적이에요...

히히 2013-08-02 18: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괜스레 ...
쪼다가 행복하다니까요.

곰곰생각하는발 2013-08-04 15:02   좋아요 0 | URL
쪼다 만세 !!!!
 

 

 

 

 

 

 

 

오래 전, 여행을 떠났다.

 

 

 

1. 거제 편

 

친애하는 이웃 한 분이 여행담을 재미있게 올려서 그 글을 보며 낄낄거리며 웃었다. 개똥이 많은 유럽 거리'보다는 아시아 오지'를 찾아 떠나는 분인데, 그 여장부 같던 성격도 고산병 앞에서는 맥을 못추는가 싶다.산소 마스크에 의지해서 골골거리는 모습을 보니 기분이 좋은 거라. 당신의 불행은 나의 행복이었던 것이다. 그녀가 방긋 웃으며 " 씐나는 여행이었어요 ! " 했다면 시큰둥했을 것이다. 으하하하. 그녀의 글'을 읽다가 문득 나도 여행담'을 재미있게 쓰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 세계 각국 > 이라는 타이틀 대신 국내 여행기'이다. 통영 거제'에 머문 시간은 4개월 남짓'이다. 원래는 고로쇠'가 나오는 3월 말에서 4월 중순'( 2월 말에서 3월 중순'인가.. 헷갈린다. ) 까지 거제에 머물며 일'을 할 생각이었으나 내가 머문 집 어머니( 서울역에서 알게 된 형'의 어머니다. ) 가 내가 떠나는 날이 되면 늘 우시는 바람'에 보름, 보름, 보름을 연기하다가 결국 그리 되었다.  

 

어머님은 나이 칠순으로 허리'가 기억자'로 구부정한, 말 그대로 시골 꼬부랑 할머니'였고, 아버님은 경상도 남자 특유의 기골이 장대한 어른이셨다. 재미있는 사실은 아버님 밥상에는 날마다 굴비 한 마리'가 놓여 있었다는 점이다. 말로만 듣던 영광 굴비'다. 살림이 넉넉한 집안'이라고는 하지만 그 비싼 영광 굴비'를 온가족이 365일 먹을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 밥상에서는 암묵적 동의가 침묵으로 전해지고 있었다. 식구들은 아무도 그 굴비에 손을 댈 수작을 부리지 않았다. 지금 이 고백을 하자니 벌써부터 얼굴이 붉어지지만 나는 그 사실을 정말 몰랐다. 굴비가 그렇게 맛있다는 사실도 그때 처음 알았다. 영광 굴비가 아버님에게만 올리는 진상'이라는 사실을 몰랐던 나는 그 진상을 탐했으니 그야마로 진상이었다. 나는 아버님과, 아... 경쟁적으로 굴비를 탐했으니 조선 시대였다면 사형'이 아니었을까 ? 거제도 형님'도 태어나서 단 한번도 건드리지 못했다는 굴비의 몸통을 나는 찌른 것이다. 그 사실은 한참이 지난 후에야 알게 되었다.  

 

칠순이 훌쩍 넘은 아버님은 일본 후쿠시마 저 먼 곳에서 온듯한 히피 청년에게 손수 굴비 살을 뜯어서 내 밥 위에 올려주셨다. " 맛있나 ? 마이 묵어라 ! " 짐승들 사이에서 먹이를 나누는 것은 동료애의 표현이니, 아마도 아버님이 내 밥 위에 굴비 살을 뜯어 올려놓으신 것은 내가 마음에 들었다는 표현이셨을 것이다. ( 거제도 형이 서울에서 고생할 때 내가 이 형을 보살핀 덕을 톡톡히 보는 중이었다. 부잣집 막내였던 형은 식당밥을 못 먹겠다며 투덜대길래 집에 데려와 삼겹살 몇 번 구워주거나, 함께 장을 봐서 집에 돌아와 함께 요리를 했다는 거짓말이고 내 어머니에게 부탁을 해서 종종 초대를 하고는 했다.  그 사실을 거제 부모님에게 과장되게 말한 모양이었다. ) 사실 나는 그 굴비가 조기'인 줄 알았다. 식당에서 신물이 나도록 먹던 그 조기 말이다. " 여기 조기는 맛있네요. 쩝쩝 ! 식당에서 먹을 때는 쩝쩝 ! 맛이 없어서 안 먹고는 했는데 말이죠. 쩝쩝. 비린내도 하나도 안나고. 쩝쩝. 여기 조기는 크네요. 쩝쩝..... "  

 

아버님은 칠순이 넘은 나이셨지만 청년 못지 않은 힘을 가지고 계셨다. 40킬로 고로쇠 물통을 들고 산 밑을 내려오면 하늘이 노랗게 보였으나 아버님은 땀 한 방울 흘린 적 없다. 아버님과 종종 팔씨름을 하기도 했지만 그때마다 나는 발랑 뒤로 넘어가고는 했다. 연기가 아니라 정말 힘이 장사였다. 그렇게 나는 그곳에서 4개월을 보냈다. 개구리가 울고, 비가 온 다음 날에는 도로에 개구리가 자동차에 깔려서 수백 마리가 죽었다. 그 비린내를 아직도 잊지 못한다. 그렇게 고로쇠 체취가 다 끝나갈 무렵, 어머님은 늘 내가 머문 사랑채에 오셔서 나를 보내는 게 서운하다는 소리를 하셨다. 그리고는 늘 우셨다. 고생만 시켰다는 둥, 며칠 머물면서 거제도 구경도 하고, 맛난 해물도 해주겠다고 하셨다. 그 눈물이 아름다워서 나는 보름을 더 보냈고, 약속한 날이 되어서 배낭을 싸면 어머니는 어김없이 사랑채로 오셔서 군고구마를 내오며 우셨다. 그렇게 2개월은 어머님과 함께 보냈고, 60마리가 넘는 굴비'를 과감하게  건드렸다.  

 

어느 날, 어머님이 아침에 다시 찾아오셨다. " 아가, 힘든 부탁하나 해도 되나 ? 우리 부부 사진 좀 찍어도고. 갈 때 되지 않았나. 영정 사진 부탁한데이 ! " ( 사투리를 흉내 낼 수가 없어서 엉터리 사투리를 선보이니 통영 사투리에 능한 분 있으면 덧글로 남겨주시기 바란다. ) 어머님은 한 시간 동안 몸 치장을 하셨다. 그 사이, 아버님은 양복을 차려입고는 이곳저곳을 돌아다니시며 주문을 하셨다. 내가 아버님에게 조심스럽게 말했다. " 어머님하고 같이 찍으셔야죠 ? " 그 소리에 아버님은 큰 소리로 말씀하셨다. " 뭐하러 같이 찍노 ! 죽을 때 훈자 죽어삘 낀데, 독사진 찍어야지. 가족 사진은 마이 찍었다. 영정사진은 독사진이라. 참 재밌제 ?  가족 사진 아무리 많이 찍어도 결국 죽을 땐 독사진이 필요한 기라. 그기 인생 아니겠노.  " 아버님은 제일 먼저 대문 앞 명패 옆에 서서 찍기를 원하셨다. 무뚝뚝한 표정이었으나 어떤 자부심이 느껴졌다. 아버님이 이곳저곳을 돌며 사진을 찍을 무렵 어머님이 나타나셨다.

 

한복을 입고 나오셨는데 그 모습이 내 눈에는 슬펐다. 아름다움과 죽음이 겹쳐지면 비장해지는 법이다. 어머니는 이곳저곳에 앉아서 사진을 찍었다. 찍을 때마다 나는 조금씩 무너졌다. 나를 완벽하게 무너뜨린 곳은 장독대'였다. 어머니는 기억자로 구부러진 몸으로 내 손을 잡더니 집 뒤에 놓인 장독대로 나를 끌고 갔다. 정오가 지난 오후 2,3시'였다.  " 여기 이 시간엔 볕이 잘 든다. 아가, 내 여기서 사진 하나 찍어도고. 할베 보니 대문 앞 명패 앞에서 찍어달라고 했제 ? 내는 여기가 좋다. " 서른 개 남짓한 장독대'에 어머니는 의자를 끌고 와 앉으셨다. 작고, 작고, 작은 몸이었다. 그때 난 울음이 터졌다.

 

뷰파인더'를 통해 본 어머님은 늙은 여인이 아니라 한 개의 항아리'처럼 보였다. 그러니깐 나는 인물 사진을 찍은 것이 아니라 풍경 사진을 찍고 있는 것이었다. 아, 그때 알았다.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풍경은 산과 바다와 나무 그리고 꽃이 아니라 사람이라는 것을 말이다. 저 수많은 옹기들. 짜고 맵고 독한 것을 품고 살아가는 옹기들. 간장은 옹기에 오래 담길수록 단내가 난다는 소리를 들은 적 있다.  몸으로 숨을 쉬어 독한 것을 내보낸 결과이다. 사진 속 어머님은 옹기'였다. 쉴 새 없이 찍었다. 100컷이 넘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내가 떠나던 날도 어머님은 우셨다. 우리 언제 또 보노 ? 어머님은 지병이 있으셨고 늘 아프셨다. 나는 다음 해 여름이 되면 꼭 찾아뵙겠다는 약속을 했으나 지키지 못했다. 몇 년 후 거제도 형으로부터 아버님이 돌아가셨다는 소릴 들었다. 그리고 다시 몇 년 후 어머님이 돌아가셨다. 어머님이 돌아가셨다는 소릴 들었을 때 첫 번째로 들었던 생각은 그 많은 항아리'들이었다. 자세히 세어보면 하나가 더 늘었을 것이다. 그리  생각하니 그렇게 슬프지 않았다. 나는 거제도에서 100마리가 넘는 귀한 굴비를 건방지게 먹었고, 살아서 숨을 쉬며 말을 하는 예쁜 항아리'를 만나기도 했다. 구부러진 항아리가 말을 하다니 !  거제는 아름다운 곳이다.  

 

 

 

 

2. 군산 편

 

군산은 볼것이 거의 없다. 특별한 유적지도 없다. 고군산군도나 선유도가 군산시'에 포함되기는 하지만 엄밀히 말하면 그냥 동떨어진 섬'일 뿐이다. 남해 푸른 바다'를 생각하며 군산 서해 바다'에 갔다가는 그 짙은 흙빛 탁류'에 기겁을 할 것이다. ( 그리고 철새도래지'도 있다만 이곳에서 시간에 맞춰 철새떼를 보기란 하늘에 별 따기'보다 어렵다. ) 군산 사람들은 서해 바다'를 똥물'이라고 불렀다. 이 지역은 공장이나 회사가 거의 없는 지역이라, 이곳 사람들은 대부분 가난했다. 80년대 풍경이 고스란히 재현되었고, 일제 시대 건물들도 눈에 띠었다. 젊은 사람들은 군산을 지겨워했다. 모두 이곳을 빠져나가길 원했고, 남겨진 사람들은 대부분 젊고 아름다운 여자들이었다. 나는 이곳이 무척 마음에 들었다. 살아보기로,  마음 먹었다.  

 

내가 이곳에서 오랫동안 머물 수 있었던 이유는 < 얼음맥주집 > 때문이었다. 얼음이 잔뜩 담긴 파란 플라스틱 통'에 맥주를 넣어 테이블 아래 놔두었다. 따로 시킬 필요가 없다. 먹고 싶으면 테이블 아래 놓인 얼음 통을 열어서 맥주를 꺼내면 되니깐 말이다. 안주 값은 없다. 맥주 3병에 만 원이고, 소주 1병은 오천 원이었다. 소주 3병을 마셔야 만 원이었다. 안주값이 없으니 혼자 만 원만 내면 배가 터지도록 맥주를 마실 수 있었다. 안주는 당신이 생각하는 것보다 풍부했다. 온갖 해산물이 무제한적으로 나온다. 심지어는 고등어조림도 나오고 갈치 조림도 나온다. 종종 병어회'도 나온다. 대기업들이 착한 가격 운운하는데 여기 안주 인심에 비하면 그들 대기업의 설레발은 병심 같다.  

 

나는, 약간의 과장을 보태서, 1년 365일 < 얼음맥주집 > 을 찾았다. 하루에 한두 끼면 되니, 집에서 음식을 하는 것보다 이곳에서 사먹는 것이 훨씬 경제적이었다. 솔직히 말해서 구멍가게에서 맥주 3병에 프링글스 하나면 이미 만 원을 넘지 않던가 ? 쉬지 않고 찾아가니 단골'이 되었다. 나는 항상 맥주를 마셨는데 안주로 고등어조림이 나오면 밥을 달라고 했다. 그러면 주인은 내 테이블에 앉아서 같이 밥을 먹기도 했다. 천국이 따로 없었다. 이곳에서 나는 매우 특별한 대우를 받았다. 환갑을 바라보는 두 자매'가 장사를 하는 가게는 내가 오면 늘 백숙 한 마리'를 내오고는 했다. 안주에는 없는, 개별적으로 파는 백숙이어지만 내가 오면 늘 백숙'을 내오셨다. 자매 가운데 큰 언니'는 욕을 잘했는데 항상 이런 말을 하고는 했다.  

 

" 여기 군산 사내 놈들은 다 뱃놈이어서 시커멓고, 우락부락한당께. 승질은 을메나 지랄 같어. 뱃놈 밥 먹듯 한다고 말이제, 산더미 같은 밥 먹고, 남아도는 힘 어디다 쓰것남 ? 밤 되면 지 마누라 엉덩이 만지는 기 낙이제. 흐메, 스무 살 꽃다운 나이로 시집 와서 날마다 밤마다 괴롭히는데 못 살 것드라. 새벽부터 시어미 지랄하고, 낮에는 성질 급한 남편이 때리고, 밤에는 괴롭히는데 날마다 눈물 바다였제. 흐메... 지금 생각해도 눈물이 앞을 가린다야 ?  우리 예술하는 총각 보소. 어쩜 이리 피부 곱소 ! 양놈처럼 허연 남자가 좋더라, 난... 내 젊었으면 이 총각에게 시집 간다 ! "  

 

이 욕쟁이 할머니의 편애'에 몇몇은 불편한 심기를 고백하기도 했다. " 아니 차별도 적당히 해야제. 저 총각에게는 백숙 내고, 우린 만날 완두콩 삶은 것만이오 ! " 그럴 때마다 할머니는 버럭 소리를 지르고는 했다. 내 주량은 딱 맥주 3병이었다. 맥주에 백숙 하나 먹어봐라. 아무리 더 마시고 싶어도 배가 불러서 먹질 못한다. 나는 돈 만 원 내고 백숙'에 게장까지 먹고 가는 게 늘 미안해서 맥주 3병을 더 시키고는 했다. 그리고는 병뚜껑을 다 딴 채로 일어나서 계산을 하고는 했다. 나중에는 일부러 딴 맥주 3병 값을 받을 수 없다고 해서 옥신각신하다가 결국에는 타협점을 보았다. 3병은 따지 않고 집에 가져가는 것이었다. 집으로 가져가는 맥주 3병에 대해서도 욕쟁이 큰 언니'는 병 당 2000원 씩만 받으려고 했으나 내가 한사코 강력하게 주장하는 바람에 맥주 3병에 만 원을 지불했다.  

 

그런가 하면, 또 다른 얼음맥주'은 50대 여주인이 운영했는데 꽤 매력적인 얼굴과 육감적인 몸매, 특히나 창을 잘했다. 절창에 가까웠다. 이 집은 늘 50대 남자들로 바글바글했다. 홀로 산 지 꽤 되었던지라 흑심을 품고 오는 사람이 대부분이었다. 술 장사 하다보면 이런저린 일이 생기는 법, 여주인은 속이 상할 때면 늘 나를 불렀다. 내가 가면 혼자 있었다. 손님들이 주는 맥주를 한 잔 두 잔 마시다보면 그 시간에는 취하는 법. 여주인은 내가 가면 본격적으로 술을 마시기 시작했다. 취하면 내 옆에 앉아서 내 허벅지'를 만지고는 했다. 내가 가게를 정리하고 술값이라도 내려고 하면 화를 내고는 했다. " 내가 그깟 매상 올리기 위해 자네를 불렀당까 ? 알면서 모르는 척하는 것이오 ? 아니면 진짜 몰라서 모르는 것이오 ? 응 ? 왜 내 맘 모르는 척한당께 ? "  

 

이후 이 주인은 물장사'를 접고, 은파 유원지에 있던 카바레'를 접수했다. 말 그대로 카바레'다. 천장에 알록달록한 커다란 알전구'가 어두컴컴한 공간에 빛을 쏘면 무대 위에서는 요상한 분위기가 연출이 되었다. 오픈 하고 나서 여주인은 나를 초대했다. 내가 간 날을 기억한다. 벚꽃 흐드러지게 피는 봄날이었다. 밖은 봄날이었으나 안은 캄캄했다. 그도 그럴 것이 카바레는 지하에 있었기 때문이었다. 술은 < 얼음맥주집 > 에서 팔던 것보다 비쌌다. 아주 작은 맥주 한 병에 5000원이었고 과일 안주는 3만 원이었다. 여주인은 손님이 원하면 무대에 올라 춤을 추었다. 그 춤이 지루박인지 차차인지는 잘 모르겠다. 술에 취한 남자들은 여주인 품에 안긴 것만으로도 황홀한 표정을 지었다. ( 지금 판단하건대, 춤 신청이 들어온다고 해서 무조건 춤을 췄던 것은 아닌 것 같다. 비싼 안주를 주문하면 서비스 차원에서 손 잡고 한번 땡겼던 것 같다. )

 

그 표정은 어린애와 같았다. 여주인의 커다란 젖가슴은 남자를 갓난이로 만드는 힘이 있었다. 가끔은 진짜 춤꾼이 나타나 춤을 신청하고는 했다. 중절모에 백구두는 이미 그가 고수란 사실을 말해주었다. 그는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 춤 한 번 신청하오 ! 그게 끝이었다. 다른 사내들과는 달리 여주인을 건드려보겠다는 수작이 보이지 않았다. 사무라이도 그렇다. 칼 솜씨 좋은 사무라이'는 말이 없다. 사무라이'란 말로 자신의 솜씨를 말하지 않고 칼로 말하나.  일 획'으로 자신을 증명할 뿐이니 말이다. 사람들은 그들의 춤을 넋 놓고 바라보았다. 아, 저 여주인의 육감적 몸매. 엉덩이가 실룩거릴수록 카바레 안은 정적이 흘렀다. 오직 연주 음악만이 들려올 뿐이었다.  

 

카바레를 열고 나서도 여주인은 계속 내게 연락을 하곤 했다.  여주인은 항상 취해 있었고 내가 술값을 계산하려고 하면 화를 내며 똑같은 말을 하고는 했다. " 내가 매상 땜시 자넬 부른 줄 아나 ? " 결국 나는 늘 이 여주인에게 공짜를 술을 얻어먹은 셈이었다. 그 많은 술값을 갚지도 못하고  나는  군산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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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노아 2013-07-31 09: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두편의 분위기가 확 다르네요. 앞 이야기 읽다가 잠시 울컥!
곰발님은 혹시 출간된 책 없나요? 본업작가인데 이름 숨기고 필명으로 활동하는 것 아닌가 마구 의심이 드네요. ^^

곰곰생각하는발 2013-07-31 10:24   좋아요 0 | URL
ㅎㅎㅎㅎ 노코멘트 하겠습니다. 깊이 알면 모두 다치세요 !

iforte 2013-08-01 01: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쳐도 좋으니 알고파요. 곰발님, 정체가 뭐요?? @-@
ㅎㅎㅎㅎㅎㅎㅎㅎㅎ

곰곰생각하는발 2013-08-01 06:50   좋아요 0 | URL
아닙니다. 정말 크게 다치십니다. 국정원이 접수할 지도 모릅니다.

iforte 2013-08-01 12:50   좋아요 0 | URL
오홋. 국정원.... 오메, 기가 팍 죽네요. 국정원에서 조사, 감시대상 들어가는 건 상관없는데, 제 비방 트윗 남길까봐서요. 안되겠구낭. 그냥 포기할께요. 헤헷....

히히 2013-08-02 16: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훔치고 싶은 여행담입니다.

고딩때 친구 예닐곱을 이끌고 지리산 청학동 밑 어귀에
텐트치고 불지피고 기타(피아노 잘치는 놈에게 억지로 교습소를 다니게 했슴) 치고 비바람이 치던 바다 잔잔해져 오면 ~~~
다음해에는 진주에서 온 그룹사운드동아리 고3오빠들(맥주병인 인어공주 3명을 건져낸 공으로 왕자로 승격됨)이랑
불지피고 기타치고 볼이 발갛게 익어서 별이 쏟아지는 해변으로 ~~~
그때 오빠들의 대학(ㅜㅜ)에 지대한 영향력을 발휘한 펜팔편지들이 아직도 잘 보관되고 있습니다.
이 놈의 손들은 당시에 깨나 용감했던 대장의 혈기를 기억이나 하고 있을라나요?

태양이 물러나면 철학이 찾아옴을 온 몸으로 체험한 밤이였습니다.
그곳은 별이 배를 덮은 듯이 가깝게 내려왔고 계곡물소리는 목소리를 천박하게 만들었으며
까만밤에 오감으로 들어오는 모든 것은 사색이 되었습니다.
그런 브레이크가 필요한 나날들의 연속입니다.
그러고 보니 그땐 세상이 맑아 저도 투명했습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3-08-04 15:05   좋아요 0 | URL
그 오빠들 잘 있으려나요 ? ㅎㅎㅎㅎㅎ.
항상 비바람이 치던 바다.. 참.. 요즘도 그런 노래 부르며
바닷가에서 노나 모르겠어요.
우리 조카들 보니 계곡 놀러가서 핸드폰으로 게임만 하더라고요...


편지를 버리기 힘든 물건이에요. 매우 독특한 힘이 있습니다.
버리기도 힘들지만 팔지도 못하죠.
불에 태울 뿐입니다. 편지 매력 있어요..
 

 

 

 

 

 

역병은 늘 사회에 가해지는 징벌로 간주된다. 에이즈를 둘러싼 은유도 일종의 징벌로 부풀려짐에 따라, 사람들은 에이즈가 필연적으로 전 세계에 확산될 것이라는 주장에 길들여졌다. 성 관계를 통해 감염되는 질병은 전통적으로 이런 식의 대접을 받기 마련이다. ...... ( 중략 ) 파국을 가져오는 유행병들을 도덕적 방종이나 정체의 쇠퇴를 알려주는 징표로 해석하는 이런 방식은, 죽음의 질병을 외래의 산물(또는 결멸받고 있는 사람들이나 공포를 안겨줬던 소수자들)과 결부시켜 왔던 19세기에는 흔한 일이었다...... 질병을 죄인이나 가난한 사람들과 결부시키는 이런 반응은 언제나 중간 계급의 가치에 부응하는 것이었다. 알코올 중독자들은 특히 규칙적인 습관, 생산성, 감정에 대한 자제심을 결여하고 있다고 여겨졌다. 나중에 가서는 건강 그 자체가 이런 가치들과 동일시됐는데, 이 가치들은종교뿐만 아니라 상인들의 요구에도 부응하는 것이었다. 건강은 미덕의 증거였으며, 질병은 타락의 증거였던 셈이다.

 

- 에이즈와 그 은유, 수전 손탁

 

 

 


 

 

 

 

 

 

최병승, 천의붕 그리고 성재기. 

 

 

 

남성연대 대표 성재기'가 실종되었다는 글 밑에 누군가가 인과응보'라는 덧글을 달았다. 사자성어'를 써가며 논리를 펴는 것을 보면 배운 티'가 났다. 좋게 말하면 인과응보'이지만 속뜻은 < 죽어도 싸다 > 는 논리'이다. 내가 반론을 제기했다.  " 한 인간의 불행한 사고를 두고 인과응보'라는 말을 사용하는 것은 천박한 짓이니 입 닥치고 똥이나 싸시오 ! " 이에 따른 예상 가능한 답변, " 혹시 남성 연대 회원이니 ? 개 마초 꼴통 수컷이구나 ?  " 나는 한순간에 성재기 지지자'가 되었다.  < 적대적 대상 > 이라면 죽음마저도 조롱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태도'는 혐오스럽다. 노무현 서거 때 보여주었던 각하의 유유자적과 한 인간의 죽음 앞에서 인과응보'를 거들먹거리는  태도는 비슷하다. 다르지 않다.  자신이 증오하던 대상이 죽었을 때에는, 굳이 그 죽음 앞에서 애도'를 보일 필요는 없겠지만,  적어도 예의'는 갖추어야 한다. 인간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 죽음에 대한 예의' 말이다.

 

나는 성재기가 주장하는 말에 동조한 적은 단 한번도 없다. 얼토당토 않는 말이 대부분이었다. 성불평등 순위가 조사대상 137개국 가운데 107위'인 최하위국가에서 남성 권리'를 주장하는 것은 모순이다. 더 큰 모순은 남성 권리를 주장하기 위해서 여성'을 라이벌'로 세웠다는 점이다. 얼토당토 목금토, 일'요일은 당연히 짜빠께띠'다. 징징거리는 서사'다. IMF 이후 언론은 집요하게 고개 숙인 남성 사회'를 다루기 시작했다. 문제는 고개 숙인 남성'을 다루면서 그 원인으로 여권신장'을 지목했다는 점이다. 상대적 박탈감이라는 그 흔한 클리세'를 흩뿌리면서 말이다. 성재기가 선택한 전략과 언론 데스크를 장악했던 4,50대 남성 꼰대'가 퍼트린 < 고개 숙인 남성 동정론'> 에 대한 접근법'은 매우 흡사했다.  

 

당당한 여성'의 위풍당당은 고개 속인 남성 심리를 위축시키는 데 큰 몫을 차지했다는 논조는 거짓말이다. 당당한 여성'은 남성들이 쫒겨난 틈새 자리'를 노린  결과'가 아니다. 더군다나 당당한 여성은 몇몇 특권을 가진 성공한 직업여성'에 대한 이야기일 뿐, 대부분의 여성은 IMF로 인해 남성들보다 더 큰 고통'을 받아야 했다. 남성의 고통 지수가 4라면 여성은 7이 될 수밖에 없다. 한국 사회에서는 남성이 고통받으면 여성은 더욱 고통받는 구조다. 이 사실을 모르고 있었을까 ? " 언론이여, 시부랄... 입 닥치고 똥이나 싸라 ! " 한국 언론이 제대로 작동된 적은 한번도 없다. 각하와 근혜 정권에서만 언론은 불공정 보도'를 했던가 ? 눈물이 앞을 가린다.

 

성재기'는 남성 권리'를 주장하기에 앞서 성적 소수자인 여성 인권'부터 말해야 옳다. 그것은 정규직 노동자가 비정규직 노동 환경은 무시하면서 자신이 소속된 집단의 노동 환경에만 큰 목소리'를 내며 징징거리는 것과 다르지 않다. 하지만 그의 주장을 무시하면 안 된다. 새 소리'가 아름다운 이유는 천둥소리'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수잔 손탁이 한 말 ( 손탁은 " 건강은 미덕의 증거이고, 질병은 타락의 증거 " 라는 일반적 믿음에 대해 신랄하게 비판한다. ) 을 살짝 비틀어서 " 행복은 미덕의 결과이고, 불행은 타락의 결과 " 라는 일반적 믿음은 헛소리'에 가깝다. 쉰소리다.

 

불행은 인과응보'에 따른 필연적 결과'가 아니다. 불행한 삶을 산 사람은 반드시 타락한 삶을 산 것에 대한, 신이 내린 정당한 복수가 아니다. 불행은  사회적 < 증후' > 로 읽어야지 착하게 살지 못한 사람에 대한 명징한 < 증명' > 으로 읽으면 안 된다는 소리'이다.  불행이 타락의 결과라면 쿠데타로 수많은 시민을 학살한 전두환이 누린, 이토록 판타스틱한 극락은 무엇으로 설명할 것인가. 그가 대한민국에서 누린 천수는 바르게 살아온 날들에 대한 선물이었을까 ? 잘잘못을 떠나서 성재기, 살아서 돌아왔으면 싶다. 종적을 감춘 것도 쇼'였다고 하더라도 그것에 대한 비난을 나는 하지 않겠다. 그러니 살아서 돌아오라.  

 

최병승과 천의붕'이란 사람이 있다. 아무도 모르리라 ! 어쩌면 모를 수밖에 없다. 모든 언론이 외면했으니 말이다. 비가 오면 날씨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피해 상황을 전달하고, 장마철에 대비한 위생 관리'에 대해 친절하게 가르쳐준다. 뉴스 대부분은 생활백서'에 할애된다. 살모낼라 균에 대한 척결 의지와 웰빙과 웰-다잉에 대한 이야기'가 주를 이룬다.  참... 친절하다. 이러다가는 방송국에서 시청자 똥구멍까지 닦아줄 심산이다. 방송은 대중을 위한 기쁨조인가 ? 심지어는 영국 왕세자비'가 득남을 했다는 소식을 비중 있게 다룬다. MBC는 왕세자비 신생아의 체중에 대해서도 언급한다. 다음 날에도 왕세자비에 대한 훈훈한 이야기를 전한다. 남의 나라 갓난이'에 대해서는 그토록 관심을 가지던 언론은 정작 굶어서 죽을 각오를 하고 오른 두 명의 철탑 노동자'에 대해서는 그 어떠한 언급도 하지 않는다. 상황에 따라서 침묵은 금이 되지만 때론 악'이 되기도 한다.

 

당신은 오로지  자신이 누릴 < 행복 > 에 대해서만 관심이 있다. 블링과 힐링'이 목표다. 중국 영화 감독 장률은 인터뷰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 중국의 오늘은 어둡다. 미래는 모르겠다. " 내가 하고 싶은 말도 같은 말이다. " 한국의 오늘은 어둡다. 미래는 모르겠다. " 만약에 한참 세월이 흘러...  그때 그 철탑 노동자'가 투신해서 자살했다는 소식을 접하게 되면 당신은 다음과 같은 생각을 할 것이다. " 저 사람들에 비하면 내 삶은 행복하구나. " 타인의 불행에서 위로'를 얻는 것, 그것은 내적 성찰'이 아니라 이기심'이다. 연민'을 느끼는 것이 나쁘다고는 할 수 없지만 그보다 가치 있는 것은 고통을 공유하는 것이다. < 측은지심 > 은 연민'이 아니라 < 역지사지 >에 가깝다.

 

꽃잎은 무겁기 때문에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가볍기에 바람에 날린다. 바람보다 가벼운 존재만이 흔들리고, 떨어지며, 날린다. 그러므로 꽃이 지는 풍경을 두고 < 낙화 > 라고 하면 안 된다. 그것은 낙화가 아니라 < 비화/飛花 > 이다. 먼지는 바람보다 가볍기에 날리는 것이니, 같은 이유로 바람은 바위보다 무거운 비행기'보다 더 무거운 존재'다. 그러므로 모래알이나 바위나 물 속에 가라앉기는 마찬가지다.  행복과 불행, 미덕과 타락'도 매한가지다. 또한 인간에 대한 귀함과 천함도 그렇다. 하늘 아래 새로운 것 없고, 사람 사이에 높고 낮은 것 없다. 두 명의 노동자가 있다. 그들은 철탑에 올랐다. 목숨을 걸지 않고서는 오르지 못하는 길'이다. 누군가는 그들이 선택한 불행을 통해서 위안을 삼을 것이다. 고통을 외면된,  타인을 향한 위로'는 가짜다.  

 

살아서 내려왔으면 싶다. 살아서 돌아오라. 최병승, 천의붕 그리고 성재기'는 돌아오라. 이 세상에는 죽어도 싼 놈은 없다. 정치적 성향이 다르다고 배제하는 태도는 나쁘다. 이 세상에 잡초'란 이름을 가진 풀은 없다. 당신이 잡초라고 부르는 풀은 모두 이름을 가지고 있다. 하여튼 살아서 돌아오라, 오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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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13-07-29 18: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난 처음 이 글을 읽고 성재기란 이름이 먼저 눈에 들어왔고, 네가 웬일인가 했어. 안좋아하잖아 너..
그런데 나중부터 최병승, 천의붕,이란 노동자 분들 얘기를 이어 하길래..

아.. 이런 얘기가 하고 싶었구나.. 참 가슴이 뭉클하더군.
내가 자주 컬럼을 읽는 분이 있는데, 어느날 이분이 생소한 이름들을 자신의 블로그에 나열을하는 거야.
알고보니 최병승, 천의붕, 그 분들처럼 그렇게 철탑 올랐던 분들이거나
투신한 분들의 이름, 이십여명..
이런 표현 부끄럽지만 숙연해지더라.. 정말 훌륭하고 위대한 분들.
우리가 더더 관심을 가지고 기억해야 해.


글고 나 이제 잘꺼얌 !!!

곰곰생각하는발 2013-07-29 20:46   좋아요 0 | URL
항상 이 시간이면 자는구나. 이것도 습관이 되면 그리 나쁘지는 않을 거야.
성재기 결국은 사망 기사가 떳더구나.
뭔가 상당히 씁쓸하다.

iforte 2013-07-29 23: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예전에 어디서 읽었는데, 한국인 인질이 알케이다반군에의해 처형되기 전에 살려달라고 울부짖었다죠. 그걸 본 일본인들은, 죽는것을 겁내는 한국인들은 비겁하다고 평했답니다. 그에 어떤 분이 댓글을 다셨죠. 한국인은 죽는것을 두려워할지언정, 일본인처럼 왜 죽는지도 모르고 죽으려 하지는 않는다고. 영문도 모른채 할복자살하는 것을 대단한 명예로운 일처럼 생각하는 일본인을 비꼬아서 말이죠. 영문도 모른채 죽는거나, 엉뚱하고 (목숨에 비하면) 사소한것을목숨과 맞바꾸어도 좋을 명분인양 곡해하여 죽는 것과 무슨 차이가 있겠습니까? 타인의 죽음을 놓고 왈가왈부하는 것도 좋지 않겠지만, 지나치게 죽음으로 모든 행위를 미화하는 것도 좋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즉, 망자에 대해서는 적절한 애도를, 그러나 그의 판단과 행동에 대해서는 냉철한 비판을 하는게 당연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런점에서 곰발님 글은 적절한 균형적 관점을 가지고 씌여졌다고 생각해요. 완전 동의합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3-07-30 07:46   좋아요 0 | URL
댓글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맞는 말이에요. 죽음'에는 그럴 듯한 명분도 있어서는 안 되며, 그럴싸한 변명도 있으면 안 되죠. 죽음 그 자체'를 보아야 한다고 봅니다. 성재기는 결국 돌아오지 못했더군요. < 쇼 > 이기를 바랐으나 결국은 안타까운 사고로 이어졌습니다. KBS가 그가 떨어지는 모습을 촬영했다고... 국민 세금으로 만든 국영방송의 모습입니다.

죽음이 명예가 되는 사회'는 대부분 전체주의 국가에서 자주 보이는 현상입니다. 무사는 싸우다가 죽는 것을 명예로 생가하고 도적떼는 싸우다가 죽으면 개인의 불행이라 생각합니다. 전자'가 굉장히 근사하고 멋있어보일지는 모르지만 결과적으로는 둘 다 똑같은 죽음입니다. 오히려 죽음을 미화한다는 측면에서 전자가 더 위험한 것은 아닐까 생각해요.

히히 2013-07-30 01: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더 나쁜 인생을 살지 않을 수 있는 것은
불행한 삶 일지라도 드러나지 않은 삶에 충실하게 살다 간 사람들 덕입니다.
허나 우리의 행복을 위하여 그들이 불행의 탑을 지켜야 한다면
이것은 어면한 부조리입니다.
정의로운 죽음이니,
천벌 받은 죽음이니...
차라리 명이 다 됐다는 말이 제일 위로가 됩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3-07-30 07:52   좋아요 0 | URL
그럼요. 철탑에 오르는 노동자가 없어야 좋은 사회입니다.
도시 디자인 좋다고, 가장 긴 다리를 보유한 나라라거나, 아시아에서
가장 높은 빌딩을 가진 나라가 살기 좋은 것은 아니죠.
이번 희망버스를 폭력 집단으로 매도하는 언론을 보면
참.. 할 말이 없습니다.

만화애니비평 2013-07-30 08: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차라리 mb와 29만원이 그랬다면 덩실하겠으나, 그도 어떻게 보면 정신적 피해망상자죠...
그도 사회적 약자이면서 그 약자의 근본이 어디서부터인가 생각하지 않은 게
고인의 실수죠. 적어도 그 양반은 사리사욕을 채우지 않은 점에선 인정해야죠...

곰곰생각하는발 2013-07-30 11:26   좋아요 0 | URL
동의합니다. 다양성의 한 부분이죠. 무시할 수 없는 주장입니다.
 

 

 

행복 사회 : 나는 행복에 반대한다. 

 

 

 한국 사회 진단 시리즈

 

1. 갑질 사회 : http://blog.aladin.co.kr/749915104/6366382

2, 벼락 사회 : http://blog.aladin.co.kr/749915104/6368210

3. 낙지 사회 : http://blog.aladin.co.kr/749915104/6370810

4.10분 사회 : http://blog.aladin.co.kr/749915104/6395891

 

현대인은 < 행복 > 에 목숨을 건다. 희망사항을 물어보면 대부분 < 행복 > 하게 사는 것을 뽑는다. 이영애'가 잔잔한 미소를 지으며 냉장고 앞에서 " 여자라서 행복해요 ! " 라고 말했을 때 < 행복-바이러스 > 는 순식간에 퍼졌다. 여자라서 불행한 대표적인 성불평등 국가'인 대한민국에서 이영애가 여자라서 행복하다고 했을 때, 우리는 이미지'가 어떻게 현실을 조작하는가를 목격하게 된다.

 

■ 세계경제포럼(WEF) 은 대한민국 성평등 지수를 135개국 가운데 108위로 뽑았다. 하위권에서도 최하위권으로 나이지리아나 수단보다 낮거나 비슷한 수준이며 아랍권 국가보다도 낮다.  

 

하지만 조작한 이영애식 행복론은 사스'보다 전염성이 더욱 강하다. 사람들은 행복한 여자'가 되기 위해 피나는 공부를 하고, 알파벳 S를 만들기 위해 알파벳 A,D,H,I 는 하루 종일 다이어트에 목숨을 건다. 알파벳 I는 볼륨을 위해서 가슴에 말랑말랑한 참외 두 개'를 넣고, 알파벳 A는 하체 비만 때문에 하루 종일 뛴다. 그런가 하며 D는 뱃살을 빼기 위해 윗몸일으키기를 하다가 현기증이 나고, H는 허리를 바짝 졸라매서 맞지도 않은 44사이즈'를 억지로 입는다. 걸을 때마다 괄약근에서 방귀'가 피식 하고 아, 나올 것 같아. 그리고 연애할 대상으로는 행복한 가정'을 위해 신입 연봉을 3,800으로 시작한 수컷을 찾기를 원한다. 결혼을 하고 나서도 그들은 행복한 가정을 위해 피나는 노력을 한다. " 행복 " 이라는 가치는 그럴 만한, 충분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 행복 > 이라는 가치'는 중요하다. 하지만 내가 말하고 싶은 말은 대단히 중요한 가치'는 아니라는 말이다. 행복은 과연 삶의 목표로 삼을 만큼 절대적 가치'를 가지고 있을까 ? 인생의 목표를 행복하게 사는 것'에 맞추면 오히려 비극이 될 수 있다. 행복에 대한 집착은 종종 파국을 맞이한다. 과유불급'이라는 말이다. 김미경의 < 언니의 독설 > 스타일과 김난도의 < 아프니깐 청춘 > 그리고 혜민 스님의 <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 > 이 지향하는 것은 행복하게 사는 것이다.  

 

김미경은 악착같이 살아서 행복한 삶을 획득하라고 하고, 김난도는 고진감래'라고 말한다. 그러하니... 청춘이여 ! 고생은 사서 해라. 좆빠지고 피똥 싸는 걸 두려워 마라 ! 그런가 하면 혜민'은 < 불행 > 은 좌파들이 항상 징징대는 구조적 문제 때문이 아니라 마음속 문제 때문에 발생한다고 단정한다. 쉽게 말해서 88만원 비정규직 노동자가 불행한 것은 불합리한 비정규직 노동 구조 탓 때문이 아니라 만족을 모르는 삐딱한 마음 탓이라고 말한다. 마음만 고쳐먹으면 행복은 바로 당신 앞에 있습니다 ! 정규직과 비교하지 마세요. 맞벌이로 바쁘시죠 ? 더 많은 스킨쉽을 위해 한 시간만 일찍 일어나서 눈을 맞춥시다. 참, 쉽죠 ?

 

그런데 행복은 효율 대비 성과'에 비하면 효율성이 낮은 에너지'다. 노력한 만큼 얻을 수 있는 값은 낮다. 차라리 행복'을 포기하고 자유를 누리는 것이 효율 대비 성과가 높다. 행복하기 위해서 안달이 난 사람보다는 게으른 만족자'가 더 큰 행복을 얻을 수 있다는 말이다. 내가 행복'이라는 가치에 대해 시큰둥하는 이유는 < 행복이란 녀석은 불행이라는 녀석 몸에 붙어서 피를 빨아먹는 거머리 > 와 같기 때문이다. 불행한 사람이 단 한 명도 없는 곳에서는 당연히 행복한 사람이 있을 수 없다. 행복이란 상대적 개념이다. 나는 단 한번도 천국에 있는 천사들이 행복하다는 소리를 들어본 적이 없다. 만약에 < 천사라서 행복해요 ! > 라고 주장하는 천사'가 있다면 그 천사는 당신을 검은 허방 속에 빠트리기 위한 악마'일 가능성이 높다. 당신이 행복한 이유는 누군가가 불행하기 때문이다. 행복은 불행의 피'를 빨아먹는다. 행복하지 않다고 해서 불행한 것이 아니다. 하지만 현대 사회는 행복하지 않은 상태를 불행하다고 진단한다. 당신이 올린 행복한 표정은 누군가를 우울하게 만든다. 행복은 이기적이다.

 

추운 겨울날 낙원동 낡은 극장에서 < 분노의 포도 /존 포드 > 를 보고 나오다가 문득 철탑 노동자'를 생각한 적이 있었다. 바람은 낮은 데'에서는 울지 않고 높은 곳에서만 우는 짐승이어서 철탑 아래 나는 그 울음을 듣지 못하고, 철탑 위에 오른 노동자는 그 울음을 듣는다. 아득해졌다. 이 추운 겨울 밤, 그들은 누구를 위해 싸우는 것일까 ? 흔들리는 철탑 위에서 그들은 얼마나 외로웠을까 ? 철탑 위에 오른 노동자의 불행은 결국 철탑 아래 노동자에게는 행복이 될 수 있다. 목숨 걸고 싸운 철탑노동자 때문에 노동 환경'은 조금씩 나아질 것이니 말이다.  

 

행복보다 중요한 가치'는 불행'이다. 행복은 뻐꾸기 알'이다. 현대인은 행복에 대한 강박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다. 행복을 쫒지 말고 자유로운 영혼을 쫓아야 한다. 행복을 굳이 버릴 필요는 없지만 신주단지처럼 애지중지할 필요는 없다. 이 세상 모든 예술가는 대부분 불행했다. 늙어 병든 말의 목덜미에 매달려서 말에 대한 연민 때문에 미쳐버린 니체도, 자신의 귀를 자른 고흐도, 눈 덮인 킬리만자로 정상에서 굶어죽어가는 표범도 모두 불행했다. 그들이 행복했다면 그저 평범한 삶을 살았을 것이다. 불행을 부끄러워하지 마라. 적어도 불행은 행복처럼 염치없는 놈은 아니지 않은가 ! 나는 내 주저흔을 부끄러워한 적이 없다. 내 불행 때문에 당신이 웃을 수 있다면 기꺼이 납보다 어두운 낯으로 당신을 볼 것이다. 내가 한때 사랑했던 당신, 행복해라. 나는 당신을 위해 주저흔을 남겼다.

 

 

 

 

 

 

 

+

 

나는 말재주도 없지만 글 재주도 없다. 하지만 말은 제주도'에 많고, 귤도 제주도에 많다. 재주는 곰이 부린다지만, 사실 제주는 말이 많은 고장이지 않은가 ? 제주도에 곰이 살고 있다는 소리는 들어본 적이 없다. 그리고 나는 말이 많은 사람을 좋아하지는 않지만 말이 많은 제주는 좋아한다. 아... 이런 식의 말장난'을 좋아한다. 윗 글의 주제는 행복을 버리고 불행하게 살라는 말이 아니다. 불행하게 살다간 고흐란 사나이도 있었는데,  아.. 어쩌란 말이냐, 따위가 아니다. < 전시된 행복 > 에 대한 비판이다. 자신의 행복을 전시하려는 욕망'은 타자에 대한 배려가 부족한 것이다. 이웃이 초상을 당했다면 최소한 웃음소리가 밖으로 새어나가지 못하게 하는 것이 도리이다. 크게 울고 작게 웃어야 한다. 무조건 행복을 쟁취해야 된다는 욕망은 결국 쾌락주의와 맥을 같이 한다. 행복과 쾌락은 사촌지간'이다.  

 

우리가 종종 자유와 행복을 혼동한다. 자유(로운 삶이나 정신)를 얻으면 자동적으로 행복을 부수적으로 따라온다. 하지만 행복을 얻었다고 해서 반드시 자유를 얻는 것은 아니다. 집단과 규율 속'에서 행복을 얻는 사람도 있기 때문이다. 현대인에게 필요한 것은 행복이 아니라 자유로운 정신'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 행복 = 자유 > 라고 착각한다. 오히려 이러한 전시성 행복'은 기복(신앙)과 유사하다. 한국 기독교가 비판받는 대목은 이기적인 기복 신앙 때문이다. 현대인이 강박적으로 행복을 쟁취하려는 태도는 기독교 기복신앙을 닮았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중요한 것은 행복을 얻는 것이 아니라 자유로운 영혼이 되는 것이다. 하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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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노아 2013-07-28 00: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불행을 부끄러워하지 마라. 적어도 불행은 행복처럼 염치없는 놈은 아니지 않은가 ! 나는 내 주저흔을 부끄러워한 적이 없다. 내 불행 때문에 당신이 웃을 수 있다면 기꺼이 납보다 어두운 낯으로 당신을 볼 것이다. 내가 한때 사랑했던 당신, 행복해라. 나는 당신을 위해 주저흔을 남겼다.// 이 부분이 유독 좋으네요. 문학적이고요.

곰곰생각하는발 2013-07-28 06:35   좋아요 0 | URL
맞아요. 문학적 표현입니다. 곧이곧대로 믿으시는 분도 계시더군요.

새벽 2013-07-28 01: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여자라서 햄볶아요... 잊고 있었는데 그게 이영애였군요.
저보고 부제를 따라면 행복의 역설. 정말 자유로운 게 행복일텐데 왜 행복 때문에 목 매게 됐을까 몰라요.

곰곰생각하는발 2013-07-28 06:34   좋아요 0 | URL
사람들은 행복과 자유를 동일어'라고 생각합니다.
지적했듯이 사실 구속과 규율 속에서 행복을 느끼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니까 행복은 자유와 동일어가 아니죠.
행복을 지나치게 강요하는 사회가 되었어요.
행복을 위한 스팩을 이러한 것이다. 라고 강요하죠.
결국 행복은 이기적인 기복'과 성격이 유사합니다. 그러한 전시성 행복'말입니다.

행인 2013-07-28 20: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우울의 기저논리는 분노 입니다...

신경전달 물질의 논리는 단지 그 결과만을 이야기 하지 원인은 배제되었지요.

분노의 타겟이 자신에게 향했을 때, 우울 기전이 생기는 건데_ 주로 심하게는 자살충동 까지 되지요.

여기서, 먼저 분노의 발생 기원을 찾는 것이 의미 있을 것 같습니다. 행인 왈. _

참고로 저는 MDD 이전 까지 상황까지 가 봐 왔었고,
극복했던 지라 드리는 말씀입니다.

(프로필 사진 좀 바꿔주십사...)
실물보다 훨씬 떨어지는 사진을 왜 올리시는지요 ?? ㅎㅎ





곰곰생각하는발 2013-07-28 20:49   좋아요 0 | URL
행인 님'이군요. ㅎㅎ. 실물이 훨씬 낫다는 소리는 많이 들으나 마땅히 대체할 것을 못 찾았습니다. 강아지 같은 거 올리는 건 너무 뻔하잖아요. 반갑네요. 행인 님 ? ㅎㅎㅎㅎㅎ.
매우 정확하신 지적이군요.
맞아요. 신경잔달 물질은 원인이 배제되어 있죠.
그런데 원래부터 뇌 이상이 있는 사람도 있어요. 분노가 나를 향할 때' 자살이 되는 거고, 타인을 향할 때는 살해가 되는 것.... 잘 극복하도록 하겠습니다.

2013-07-28 23:0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3-07-29 06:3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3-07-29 08:4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3-07-29 11:03   URL
비밀 댓글입니다.

히히 2013-07-28 23: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지금 읽고 있는 책에서요
니체는 정신의 마지막, 즉 인간이라면 반드시 도달해야 하는 단계를 '아이'의 정신이랍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옳다고 해도 거기에 현혹되지 않는
자유인의 솔직함과 당당함! 이것이 바로 '동심'이라 하십니다.
행복이 자유는 아닐지 몰라도
자유는 행복 아닌가여?

징그럽게 화사하던 꽃이 가고 번들대는 푸르름 덕을 톡톡히 본 하루였습니다.
동네 가까이 맑은 물이 헤엄치기 좋게 구비 돌아 아이들은 마냥 즐겁습니다.
그들 표정 덕분에 더운 여름이 흥분되구요.

곰곰생각하는발 2013-07-29 06:42   좋아요 0 | URL
니체... 참 인간적인 인간이죠. 무척 인간적인 인간입니다.
자유는 행복입니다. 행복을 얻으려고 하지말고
자유를 얻으려고 하면 행복은 1+1행사에 딸려나오는 보너스죠.

전 아이들을 좋아해요.
실컷 놀고 왔을 때 목덜미에 땀이 고인 걸
무척 좋아해요. 내 조카들 실컷 놀다가
내 팔 베고 잠이 들 때 조카들 땀냄새가 전 그렇게 좋더라고요.
그 시큰한 냄새 말입니다.

하지만 전 아이'에게 희망을 걸지는 않습니다. 아이가 순수하다고는 생각하지 않아요.
모두 고통을 안고 살아가는 주체'일 뿐이란 생각을 하네요..하하하..

2013-07-29 05:1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3-07-29 06:46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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