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가 김연아'에 촛점을 맞추어서 기사'를 전송할 때, 한겨레'는 용감하게도 아사다 마오'에 촛점을 맞춰 기사를 실었다. 감동적인 기사였는가 ? 천만에 ! 이 기사는 내가 십 년 동안 읽은 기사 중 최악이었다. 우선 아사다 마오'의 예술성과 기술을 극찬한다. 전무후무한 요정이라는 논지'다. 그런데 갑자기 방향을 튼다. 2010 년을 이야기하는데 갑자기 선캄브리아 시대의 신화론'을 거들먹거린다. " 아사다 마오'가 비극적일수밖에 없는 이유'는 인간 대 신'의 싸움이었기 " 때문이란다. 즉, 아사다 마오는 열심히 해보았자 인간이라는 한계때문에 여신인 김연아'를 절대로 이길 수 없다는 논지'다. 문득 김일성의 신격화 작업이 생각났다. 아, 하하하. 태어나서 이런 부끄러운 기사는 처음 접한다.......( 중략 )
내가 보기엔 이러한 군중 심리'는 아는사람논리 - 조작과 비슷한 면'이 있다.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다 보면 자주 등장하는 것이 바로 내가 아는 사람 목록'이다. 주로 잘난 척하는 사람들이 나누는 대화법인데, 쉽게 말하자면 내가 아는 친한 친구 가운데 하나가 청와대 고위 간부'라는 식이다. 그런데 가만히 보면 이 사람이 말하는 아는 사람 목록'은 대개 자신보다 한 단계 상위 레벨'에 존재하는 사람들을 의도적으로 호명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 이야기'를 다시 뜯어보면 청와대 고위 간부 친구가 가진 지위적 레벨'을 이용하여 자기 신분도 상승시키려는 과시적 욕망이 숨겨져 있다는 점이다. 끼리끼리 논다고 하지 않았던가 ? 잘난 친구 덕을 좀 보자는 심리이다.
그런데 ! 이렇게 ' 내가 아는 사람'을 입에 달면서 사는 사람들 특징 중 하나가 주로 뻥이 심한 사람들이 대부분이라는 점이다. 이 점을 명심해야 한다. 이런 부류는 아는 사람 목록에 거지꼴'로 살아가는 불쌍한 친구 놈들'은 절대 호명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쪽팔리기 때문이다. 어디 그뿐인가 ? 회사 앞에서 4개월 전에 파마한 머리'로 자신을 기다리는 착한 조강지처'를 또 얼마나 부끄러워하는가 !
- 김연아가 당신들의 만병통치약이냐,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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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네필的 애티튜드
영화가 끝나면 엔딩 타이틀'이 끝날 때까지 앉아서 기다린다. 시네필的 애티튜드'를 과시하기 위한 것은 아니다. 스크립터 " 트루디 라미레즈 " 를 찾기 위해서이다. 헐리우드에서 30년 동안 스크립터로 일했다고 한다. 스크립터가 하는 일은 영화 속 옥의 티''가 발생하지 않도록 그때 그때의 상황을 자세하게 기록하는 일을 한다. 예를 들면 < 씬 197. 탐 크루즈 왼손으로 열쇠를 건냄. 검지에 미키마우스 반창고를 붙임 > 따위다. 미키마우스가 다음 장면에서 스크립터 실수로 돌고래로 바뀌는 불상사를 막기 위함이다. 감독은 이 기록을 참고해서 영화 속 옥의 티'가 발생하지 않도록 주의한다. 바로 이 방면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인물이 트루디 라미레즈 씨'다. 트루디 부인이 담당한 영화에는 대부분 옥의 티'가 없다고 한다.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 아이언맨 2'> 엔딩 타이틀을 보다가 그녀 이름을 발견했을 때, 나는 신나서 낄낄거렸다. 하지만 이 태도'를 오해하면 안 된다. 이 태도는 시네필적 애티튜드가 아니라 < 윌리를 찾아라 > 놀이'에 가까우니깐 말이다. 나는 불 켜진 극장에서 < 트루디 라미레즈를 찾아라 > 게임을 하고 있는 것이다.
내가 " 시네필的 애티튜드 " 라는 표현을 사용한 것'은 그들을 향한 조롱의 의미'이다. 패션계'에 보그 병신체'가 있다면, 영화계에도 무비 병신체'가 있었으니 하는 꼴이 광문/狂文'이다. 예를 들면 이런 문장들이다 : ㉠ 슈퍼맨'을 " 리뷰트 " 한 < 맨 오프 스틸 > 은.... ㉡ 반지의제왕 이전 시대 이야기를 다룬 " 프리퀄" 시리즈 < 호빗 > 은... ㉢ 엑스맨 시리즈 " 스핀 오프 무비 " 인 < 울버린 > 리뷰, 스포일러 있음. 이름도 길다. " 엑스맨 시리즈 스핀 오프 무비 < 울버린 > 리뷰 " 란 문장을 읽었을 때, 내 마음은 < 울어버린 > 심장'이 되었다. 오, 오오오오미. 시부럴 ! 이 시네필의 발광 다이오드적 애티튜드 극성'을 독특한 문체'라고 이해해야 할까 ? 이 문장은 마치 " 뉴 이어 스프링, 엣지 있는 당신의 머스트해브 아이템은 실크화이트 톤의 오뜨 꾸뛰르...... " 와 다를 것이 하나 없다. 저 문장은 " 멋을 아는 당신, 올봄 탐나는 옷'은.... " 이라고 하면 되듯이 스핀 오프 운운하는 문장도 그냥 " 엑스맨 외전'에 속하는 영화 " 라고 하면 된다. 좋게 말하면 < 허세 > 이고, 허세'를 구수한 통속으로 번역하자면 " 지랄하고 자빠졌네 ! " 가 될 것이다. 이러한 문장을 통틀어서 보그병신체'라고 하는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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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패션계에서 유행하는 보그 병신체'와 군웅할거'를 겨룰 만한 인문 병신체'도 있다고 한다. 몇 년 전 회자'가 될 정도로 유명한 어느 프랑스 철학 전공자'가 쓴 문장이다. 재미있는 사실은 이 양반이 보그 병신체 유행에 대해서 신랄하게 비난했다는 사실이다. 다음 문장은 그가 포털 사이트 블로그에 올린 글이다. " 나의 텔로스는 리좀처럼 뻗어나가는 나의 시니피앙이 그 시니피에와 디페랑스되지 않게 하므로써 그것을 주이상스의 대상이 되지 않게 콘트롤하는 것이다. " 닝기미, 이 정도면 보그병신체와 인문병신체의 적벽대전이요, 군웅할거이며 용호쌍박'이라 할 만한 흥미진진한 바보들의 행진'이다. 보그병신체를 비판했던 그가 사용한 문장은 오히려 더 < 지랄하고 자빠졌네 문체 > 에 가깝다. 아니, 오히려 한수 위다. < 똥 싸고 자빠졌네 문체 > 다.
나는 한글 순혈주의자'가 아니다. < ~ 의 > 라는 조사를 사용하면 오염된 문장이라는 주장에는 1%도 동의하지 않는다. 언어는 시대에 따라 변화한다. 살기 위해서 끊임없이 오염된다. 저잣거리 풍경과 섞이기도 하고 근대에 와서는 일본어와 서구 언어에 오염되기도 한다. 순혈주의자들이 주장하는 말이 옳다면 우리는 여전히 " 나랏 말쌈이 듕국과 달라 서로 사맛디 아니 하다 " 하고 써야 한다. 그런 언어는 불가능하다. 외부 문명과 차단된 부시맨 언어'라며 모를까, 언어적 장벽이 무너진 지금은 타 언어와 몸을 섞을 수밖에 없다. 그것은 언어가 가지고 있는 생명력이다. 다만 < ~ 의 > 라는 조사를 사용하면 오염된 문장이라는 주장에는 동의하지 않지만 남발하면 보기 흉하다는 데'에는 동의한다. 보그 병신체와 인문 병신체'는 남발해서 탈이 난 경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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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그 병신체와 인문 병신체'가 가지고 있는 문제점은 잘못된 언어를 선택해서 활용했다는 측면'보다는 나랏 말쌈'은 무시하면서 알파벳 앞에서는 질질 싸는, 사대주의적 노예 근성'에 있다. 예로 든 < 인문병신체 문장 > 에서 " 리좀 " 은 잘못 선택된 언어 활용이 아니다. 들뢰즈가 < 천 개의 고원 > 에서 사용한 < 리좀 > 을 단순하게 < 뿌리 > 라고 번역한다면 그것이야말로 잘못된 예'이다. 왜냐하면 리좀'이란 용어는 그렇게 단순한 개념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것은 창조자'에 대한 예의'이다. 하지만 텔로스, 리좀, 시니피에, 시니피앙, 디페랑, 주이상스'를 무분별하게 병신처럼 나열하는 태도는 한글에 대한 예의와 독자에 대한 예의'가 없는 경우이다. 싸가지가 없는 문체'다.
만약에 저 문장이 원문이 있는 문장을 번역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오버'였다면 단순한 실력 탓을 할 수 있겠지만 저 문장은 글쓴이의 단순한 생각을 옮긴 것이다. 텔로스는 단순하게 < 목적 > 이라고 쓰면 된다. 성에 차지 않는다면 < 내가 지향하는 궁극적 목적 > 이라고 하면 된다. 내가 보기엔 서구에 대한 사대주의적 노예 근성'처럼 보인다. < 텔로스 > 라는 말이 나와서 하는 말이지만 " 키노 시네필의 텔로스'는 < 카이예 뒤 시네마 > 인 듯하다. " 키노 시네필은 Cahiers du Cinéma'가 선정한 위대한 영화 목록을 무조건 숭배하는 경향이 높다. 아니, 노골적이다. 모 영화평론가가 뽑은 영화 목록은 Cahiers du Cinéma 가 뽑은 영화 목록과 90% 겹친다. 키노 시네필'도 마찬가지다. 어느 순간부터 스티븐 스필버그의 < 우주전쟁 > 은 저주받은 걸작이 되어서 사람들이 < 우주 전쟁 > 을 위대한 걸작 목록에 선정하지 않으면 가차없이 시네필 자격을 박탈한다.
지나치게 보수적이며 헐리우드적인 시각'을 가진 오락 영화 흥행 보증 수표 감독을 열렬하게 옹호하는 태도'는 의아할 정도'다. 왜냐하면 그동안 시네필들은 스필버그에 대해 엿 먹어라 자세'를 줄곧 유지했기 때문이다. 누군가가 " 쥬라기 파크 " 가 재미있다고 침을 튀기며 말을 하면 대뜸 " 죽으라, 팍 !! " 이라며 성을 내던 이들이 말이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바뀌기 시작했다. Cahiers du Cinéma 가 스필버그의 < 우주전쟁 > 을 2000년대 가장 위대한 걸작 목록'에 뽑으면서 시작된 국내 시네필들의 열애'다. 90년대 시네필의 통과 의례'가 안드레이 타르코프시키였다면 이제 2000년대 시네필의 통과 의례는 스티븐 스필버그'가 되었다. 나는 < 쥬라기 공원 > 은 좋아하지만 < 우주 전쟁 > 은 시큰둥하게 보았다. 다코다 패닝이 시간 날 때마다 내지르는 쇳소리(비명)가 어찌나 내 고막을 괴롭혔는지, 이 소녀가 내지른 지랄은 " 다 큰 애 패닉 ",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여전히 비명소리가 최고의 공포 효과'라고 믿는 스필버그가 안쓰러울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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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대'를 대표하는 SF 영화가 < 우주전쟁 > 이라면 프랭크 다라본트가 만든 < 미스트 > 는 걸작이 될 것이고 < 디 워 > 는 수작이 될 것이다. Cahiers du Cinéma 특유의 작가주의 정책을 감안하면 이 선택을 철회할 가능성은 제로다. 이제 스필버그 영화는 스필버그가 만들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모든 영화가 위대한 걸작에 오를 것이다. 후지거나 말거나 말이다. 그들이 스필버그에게 보내는 사랑은 특급 사랑이다. 태평양을 건너 대서양을 건너 인도양을 건너서라도 무조건 무조건 달려갈 것이다. Cahiers du Cinéma 식 작가주의 정책이 위험한 이유는 영화'란 개인 기록 경기'가 아니라 여럿이 한 팀이 되는 팀 경기'이기 때문이다. 소설과 영화'는 다르다.
도스토예프스키의 모든 소설에 대하여 열광할 수는 있으나 스필버그의 모든 영화에 대해서는 열광할 수는 없다. 소설은 소설가 혼자 창작하는 창착물이지만 영화는 많은 분야 전문가들이 모여서 만드는 협동 작업이다. 스필버그가 만든 < 우주 전쟁 > 이 걸작이라고 해서 다음 작품도 걸작이 탄생하리라는 기대는 어리석다. Cahiers du Cinéma 작가주의 노선'이 어리석은 까닭이다. 임권택 영화'를 작가주의 노선으로 접근하면 위험하다. < 길소뜸 > 과 < 취화선 > 은 좋은 영화이지만 < 서편제 > 와 < 노는 계집 창 > 그리고 < 하류 인생 >, < 천년학 > 과 < 달빛 길어올리기 > 는 참담할 정도로 실패한 영화'다. < 서편제 > 는 존속살해와 근친 욕망이 섞인 나쁜 영화이며, < 달빛 길어올리기' > 는 지역 특산물 홍보 영화 같다. 그리고 < 하류 인생 > 은 부부 강간'을 죄의식 없이 미화한 통속극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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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네필'은 항상 자신이 선정한 베스트 목록을 나열하지만 대부분은 자신이 선택한 것이 아니라 타자'가 만들어놓은 밥상에 숟가락만 얹는다. Cahiers du Cinéma 가 < 우주전쟁 > 좋다고 하면 좋다는 식'이다. 정성일이 임권택 좋다고 하니 내 인생의 영화 목록에 임권택 영화 하나를 선택한다. 결국 자기가 만든 목록은 영화 전문가 집단'이 만들어놓은 목록들을 짜집기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이 목록이 전문가 집단과 일치하면 할수록 시네필的 애티튜드는 하늘을 찌른다. 하지만 명심해야 될 것은 그 목록은 내것이 아니다. 그들 권위에 기대어서 자신과 그들을 같은 레벨로 묶으려는 얄팍한 술수에 지나지 않는다. 그것은 마치 < 내가 아는 사람 > 논리와 비슷하다.
" 내가 아는 사람 중에 누구누구... " 에서 < 누구 > 라고 지목된 대상은 늘 말하는 화자'보다 지위가 높다. 내가 아는 사람 중에 서울대 병원 의사가 있다거나, 내가 아는 친한 사람 중에 청와대 고위 공무원이 내 친구라는 식'이다. 결국 말하는 화자/A'는 내가 아는 높은 족속/B'을 열거함으로써 신분 상승을 꾀한다. 대한민국 사회는 끼리끼리 어울리는 사회가 아니었던가 ? 내가 아는 놈이 높은 레벨에 있다는 사실은 자신도 그 부류에 속한다는 것을 은연 중에 증명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식으로 말하는 놈은 대부분 거짓말에 능숙한 놈들이다. 이런 사람은 결코 착하지만 가난한 친구에 대한 이야기는 하지 않는다. < 내가 아는 목록 > 에 그들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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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그 병신체, 인문 병신체'를 쓰는 사람들은 내가 아는 사람 심리'를 이용한다. 나보다 우월한 교양 주체의 어깨에 기대어 신분을 상승하려는 욕구이다. 그래서 한국인은 혈연도 아니면서 혈연인 척한다. 김연아는 국민 여동생'이 된다. 황 씨 성을 가진 사람도 김 씨 성을 가진 연아를 자기 여동생이라 하니 족보가 심히 불온하기는 하지만 그것은 크게 문제될 것이 없다. 여동생'이니 아는 사람 단계'보다 한 단계'가 높다. 연아가 빛날수록 오빠도 빛난다. 이 유사 블러드 후드'는 패밀리 혈연 동맹을 넘어 국가 파시즘'이 된다. 김연아에 대한 비판은 내 가족에 대한 모욕이다. 그 순간, 김연아는 건드릴 수 없는 성역이 된다. 나는 김연아를 내 동생이라고 우길 생격이 전혀 없다. 왜 ? 내 동생이 아니니깐.
내가 아는 사람들은 대부분 빙딱'이었다. 본드 불고 환각에 빠져서 바지에도 똥을 싼 놈도 있었고, 서울역에서 러미날 먹다가 뼈가 녹아서 다리가 잘린 놈도 있었으며, 아리랑치기'를 하던 놈은 집행유예 기간 중 자전거를 훔치다가 걸려서 교도소에 갔다. 스펙 좋은 놈은 한놈도 없다. 내 주위 사람들은 최상위 그룹인 프로 스펙스'는커녕 그냥 스펙스'도 별로 없다. 하지만 그들이 별 볼 일 없다고 해서 쪽팔리다고 생각한 적은 없다. 난 늘 그들에 대해서 이야기 하니깐 말이다. 돌이켜보면, 그동안 많은 책을 읽었으나 깨달음을 얻게 해주는 것은 본드 불고 바지에 똥 싼 놈이거나 러미날 먹고 다리 잘린 놈이었다. 대한민국은 잘난 놈에게서 배워라, 라며 수많은 멘토'를 쏟아내지만 잘난 멘토에게서 우리가 배울 것은 아무것도 없다. 성공 노하우를 배우는 것보다 실패한 이유를 찾는 것이 빠르다. 성공은 우연이 지배한다. 실패를 부끄러워할 필요는 없다. 내가 영화 배우라면 성공한 자'보다는 실패한 루저'를 연기하겠다. 전봇대 밑에서 똥 싸는 장면. 나, 이거 할게요. 느낌 아니까 ~ 똥 싸다 주저앉아도 돼죠 ? 좋다, 좋다, 딱 좋다, 괜찮다.
http://myperu.blog.me/20101624376 : 김연아가 당신들의 만병통치약이냐 ?
http://youtu.be/v37VMMWDC8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