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야구 시구에 대한 생각 : 클라라는 왜 울었을까 ?

 

 

 

- 국내 프로야구 투수 시절, 나는 머리가 길어서 사다코로 불리웠다.

피칭은 공격적이었다. 팬들은 나를 사다코 와일드 업'이라 불렀다. 

 

 

다들 아시다시피, 나는 한때 보스턴 레드삭스 팀의 맹인 투수'였다. 이 말을 들으면 소설 쓴다고 비웃는 사람도 있겠지만 엄연한 사실'이다. 거짓말이라면 손가락 하나를 바치겠다. 믿어달라 ! 자세한 내용은 링크'를 걸어둔다. ( http://myperu.blog.me/20179671080 ) 내가 메이져리그에서 거둔 성적은 17승 29패였다. 당시에는 박찬호'가 영웅처럼 숭배되던 시절이라 무명에 가까운 한국인 맹인 투수'는 안중에도 없던 모양이더라. 하지만 서운하지는 않다. 나는 레드 삭스'를 사랑했고, 낡고 좁은 펜웨이파크'에서 공을 던지는 것은 영광으로 생각했으니 말이다. 펜웨이 파크 시절 기억에 남을 에피소드'라면 스티븐 킹이 나를 저녁 식사에 초대한 일이었다. 아는 사람은 다 알겠지만 그는 보스턴 레드삭스 열혈팬'이었다. 그는 앞을 못보는 내가 투수가 된 것에 대해 호기심이 많았다. " 미스터 곰곰발 ! 앞을 못 보는데 어떻게 스트라이크존에 공을 던지죠 ? 난... 당신이 뉴욕 양키즈를 상대로 승리를 거두었을 때를 잊지 못하오. 잘난 척하는 양키 새끼들이 8월의 물렁 좆'처럼 흐물흐물 삼진을 당할 때마다 통쾌했다오. 시부랄, 눈물이 앞을 가렸다오. "

 

모두 다 궁금할 것이다. 스티븐 킹뿐만 아니라 이 글을 읽는 당신도 ! 포수는 내가 선발로 나오는 날에는 특수 제작한 글러브를 사용한다. 방울이 달린 글러브다. 그가 주먹으로 글러브를 팡팡 치면 방울 소리'가 들린다. 나는 그 방울 소리'를 향해 공을 던지는 것이다. 피나는 노력의 결과였다. 나는 킹이 던진 질문에 대한 답 대신 엉뚱한 말을 했다. " 이 식탁은 보르네오 산 100년 된 삼나무로 만들었군요. 손가락으로 탁자를 툭툭 치면 소리가 들립니다. 아십니까 ? 나무마다 소리가 달라요. 선생님은 지금 엉덩이를 뺀 채 어깨를 의자 깊숙이 기댔지요 ? 아, 하하 ! 일부러 정자세를 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소리는 정직합니다. 자세가 불편하면 소리가 성대를 거쳐 나올 때 불안정하게 되지요. 가수 지망생에게 제일 먼저 가르치는 것은 소리가 아니라 자세이지요. 선생님은 교통사고 후유증으로 인해 자세를 바로잡기가 힘드실 겁니다. 앞을 못 보는데 어떻게 공을 던지냐고 물어보셨죠 ? 그 질문에 대한 답은 이걸로 대신하겠습니다. "

 

스티븐 킹은 크게 웃었다. 그리고는 의자를 빼는 소리가 들리더니 내게 다가와 손을 잡았다. 대단하오 ! 정말 대단하오 ! 미스터 곰곰생각하는발 !!! 나는 스티븐 킹 특유의 시골 촌부 같은 목소리와 억양을 좋아했다. 그는 억만장자 스타 작가'에서 오는 허세가 없었다. 순박하고 투박한 말투였다. 그 어떤 상대를 만나도 늘 일정한 태도 말이다. 그는 나를 위해 소설'을 쓰겠다고 말했다. 내 당신을 위한 헌정 소설 하나를 쓰리다. 우리는 즐겁게 식사를 했다. 후에 그는 < 톰 고든을 사랑한 소녀 > 를 내놓았다. 그는 초판 1쇄 한정본을 나에게 선물했다.

 

< 곰곰생각하는발 ! 이 소설은 당신에게 바치오.우리가 사랑하는 보스턴 레드삭스'에 대한 이야기'라오. 그리고 펜웨이 파크에 대한 애정이기도 하오. 내가 소설에서 톰 고든'이라는 선수를 인용했지만 사실 톰 고든은 당신이었소. 여기 책과 함께 오리지날 원고는 당신에게 보내오. 이건 당신에 대한 이야기이니 말이오. 당신은 총 17승 29패에, 방어율은 4.17이었지만 그 누구보다도 훌륭한 투수였어요. 콧대 높은 양키즈를 상대했을 때 당신은 위대한 작은 거인이었소. 내가 본 최고의 경기였지. 눈물이 앞을 가렸소. 건투를 비오. 한국으로 돌아간다는 소식 들었소. 내 언젠가 당신을 보기 위해 한국을 방문하리다. 부디 몸 건강하시오.  >     

 

 - 당신의 영원한 팬 스티븐 킹

 

 

스티븐 킹이 보낸 내용을 보면 알겠지만 나는 메이져리그 선수 생활을 접고 한국으로 돌아왔다. 3차에 걸친 대수술 끝에 시력을 되찾았다. 하지만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시력을 되찾고 나서부터 내 구질은 형편없이 나빠졌다. 결국 나는 엘지 트윈스 2군을 떠돌다가 선수 생활을 마감했다. 불만은 없다. 약간의 아쉬움이 남았을 뿐이다. 그 이후 순수한 야구 팬으로써 야구 관람을 즐기게 되었다. 내가 이 글을 쓰게 된 이유는 클라라의 시구 때문이다. 클라라가 기자 간담회'에서 울었다. 사람들이 연기는 보지 않고 몸매'만 보아서 속상하다는 넋두리'였다. 재미있는 사실은 그 눈물의 간담회 이후에도 여전히 섹시 이미지'로 어필한다는 점이다. 나는 클라라의 몸매에 대해 관심이 없으니  클라라 시구에 대해서만 말하련다.

 

유니폼을 리폼해서 배꼽티로 만든 폼'이 가관이었다. 설상가상 상의는 두산 유니폼인데 하의는 엘지 유니폼이었다. 클라라는 엘지 팬일까 ? 아니면 두산 팬일까 ? 언제부터인가 시구'는 날마다 365일 내내 진행되었다. 대부분은 연예인들이었다. 팬도 아니면서 시구를 하는 것이다. 박시은 같은 경우는 각 구단을 두루 섭렵하면서 시구자로 나왔다.  시구는 365일 날마다 진행되면 안 된다. 우리는 야구를 보기 위해 야구장을 가는 것이지 쫄티에 쫄바지 입고  자기 브랜드 홍보하려는 클라라를 보기 위해 가는 것이 아니다. 팬도 아닌 연예인이 잠깐 와서 공 던지고는 경기도 안 보고 가는 것이 과연 시구자로써 자격이 있는 것일까 ? 시구'에는 문화가 있어야 하고 스토리가 있어야 하며 감동이 있어야 한다. 문득 내가 펜웨이 파크에서 경험했던 일화를 소개하며 끝을 맺을까 싶다.

 

2007년 아메리칸 리그 디비젼 시리즈 2차전에서 보스톤 레드삭스는 에인절스'와 2차전을 가졌다. 영광스럽게도 나는 2차전 산발투수였다. 보스턴 팬들은 나를 위해 패티 김이 부른 < 서울의 찬가 > 를 개사해서 부르기 시작했다. 가사는 이렇다. " 종이 울리네 / 공이 박히네 / 팬들의 함성 / 웃는 그 얼굴/ 그리워라 / 와일드업 /내 곁을 떠나지 마오. "  하지만 내 컨디션은 말이 아니었다. 5회까지 우리 팀은 어려운 경기를 펼치고 있었다. 승리는 에인절스'에게 기울고 있었다. 하지만 기회는 찾아오는 법 ! 1아웃 1-3루 상황에서 라미레즈'가 타석에 들어섰다. 와와, 와와와와 ! 하지만 기대와는 달리 그가 때린 공은 1루 파울 쪽에 높이 떴다. 영락없이 포수 글러브에 잡혀서 끝날 상황이었다.  

 

그런데 에인절스 포수가 공을 잡기 0.00001초 전에 파울 라인 관중석에 있던 꼬마가 공을 낚아서 다행히 파울 플라이 아웃을 면하고 파울이 되었다. 에인절스 입장에서는 화딱지가 날 만하지만 그것은 이미 룰로 정해져 있으니 어쩔 수 없었다. 레드삭스는 이 행운을 기회로 잡아 동점을 만들었고 결국 우승을 해서 아메리칸 리그 챔피언십 시리즈'에 진출하게 되었다. 그때 시구자로 나선 사람이 바로 공을 낚아챈 꼬마'였다. 그 꼬마 덕에 챔피언쉽 시리즈에 올랐으니 그 공을 높이 사서 시구를 부탁한 것이다. 그 후 그 소년은  Fan of the Year' 라는 별명으로 불리웠다. 이것이 바로 한국 프로야구 시구 문화와 메이져리그 시구 문화의 차이다.  

 

< 시구 > 란 구단이 자신을 응원한 팬들을 기리기 위해 만든 팬 서비스'이다. 감사의 말이요, 헌정이다. 그러니 대부분은 구단 열성팬들이 시구자로 나선다. 40년 동안 구단 마운드를 고른 구단 관리 직원이 오르는가 하면 불치병에 걸린 13세 소년을 위해 시구를 부탁하기도 한다. 물론 스티븐 킹도 시구자로 나서기도 했다. 여기에는 서사가 있고 감동이 있다. 한국 시구 문화처럼 엉망은 아니라는 말이다. 나 또한 구단 관계자로부터 이번 월드 시리즈에 보스턴 레드 삭스'가 진출하면 시구자 명단에 올리겠다는 통보를 받았다. 잊지 않고 기억한 것이다. 펜웨이 파크,  내가 사랑한 낡고 작은 야구장. 생각만으로도 떨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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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forte 2013-08-10 22: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보여주는 팬서비스와 공유하는 팬서비스 차이? ㅎㅎ
클라라인가, SNL에서 엄청 섹스어필하려고 노력하던데. 그럴꺼면 더 당당해졌으면 좋겠어요. 본인이 섹스어필을 전략으로 잡아놓고 '연기로 승부하려는데 자꾸 딴지걸어서 속상해요' 이러면 안되죠. 끝까지 더 당당하게 밀어붙여야 섹스어필의 완성이죠. 마돈나가 요조숙녀 흉내를 내던가요? 본인이 당당하니 남들도 그게 답인가보다, 그렇게 사상을 바꿔버리잖아요. 그 당당함이 없다면, 그리고 정말 본인이 억울하다고 생각된다면 섹스어필말고 정말 연기로만 승부를 하던가. 한가지만 했으면...

p.s. 본인이 빈약하다고 시기질투하는거 아님. 저얼때로 아님.

곰곰생각하는발 2013-08-10 22:48   좋아요 0 | URL
아이고... 제가 바로 그 얘깁니다. 사람들이 자기 몸만 본다고 서러워서 울 정도면 섹스 어필'을 부끄러워 한다는 소리인데 이건 어불성설이죠. 에로 배우가 당당하려면 몸으로 예술을 보여주고 싶다, 라고 말해야 하는데 감독이 시켜서 했다는 식은 좀...... 전 크라라의 말이 마치 난 청순하고 싶었으나 마케팅 때문에 어쩔 수 없었다는 느낌을 받았는데 좀..... 레이디가가'를 보세요. 아무도 그런 소리 안 하지 않습니까. 저 소리 하고도, 저렇게 나와서 울고 짜다가도 다음 날 또 섹스어필로 주욱 나가니 속을 모르겠어요.. ㅎㅎㅎ

히히 2013-08-11 23: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링크 걸어논 블로그 글까지
곰곰생각하는발님!
정녕 곰곰생각하는발님!

타자을 소자로 만드는 재주를 가지고 계십니다.
저에게 간신히 머물고 있던 자신감이 시들시들해지고
지옥, 그것은 당신입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3-08-11 23:22   좋아요 0 | URL
으.. 히히 님 자신감이 무엇입니까 ? 어서 말씀해보세요.
제가 들어드리겠습니다.
히히 님을 대자'로 만들어드리겠습니다.
어서 허심탄회하게 말슴해 보시ㅔ요.

나 진짜 히히 니 내가 아는 이웃 같은데 누구십니까 ? 이제 커밍아웃 하세요.. 어서..
 
아비정전(덕슨미디어연말할인)(阿飛正傳) (Days Of Being Wild )
인피니티 / 2004년 12월
평점 :
품절


 

 

 

 

오늘 생각없이 책장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코멕 메카시의 < 모두 다 예쁜 말들 > 이 생각났다. 이유는 모른다. < 아비정전 > 을 생각하다가, 장국영을 생각하다가, 장만옥을 생각하다가, 실패한 내 연애를 생각하다가, 불현듯 < 모두 다 예쁜 말들 > 이 떠오른 것이었다. 다시 읽기 위해 찾는 것이 아니었다. 다만, 그냥... 찾고 싶었을 뿐이다. 다섯 개의 책장에서 코멕 메카시의 소설을 모두 골라냈다. < 핏빛 자오선 > < 국경을 넘어서 > < 평원의 도시들 > <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 < 로드 > . 하지만 여전히 < 모두 다 예쁜 말들 > 은 보이지 않았다. 분실한 모양이다.

 

생각이 여기까지 미치자 그동안 내가 잊고 있었던 기억이 갑자기 생각났다. 나는 천장이 낮은 옥탑에서 산 적이 있다. 그곳에서 한 여자를 오랫동안 사랑했다. 그 여자와는 헤어졌다. 그 책을 그녀가 가지고 있었다. 그녀의 책인 레비스트로스의 < 슬픈 열대 > 가 내 책장에 있는 것처럼 말이다.  기억이란 늘 이렇게 의뭉스러운 점이 있다.  생각해 보니, 이 아비정전'도 그녀와 함께 본 영화였다. 책을 다시 사야 할까 ? 고민하다가 이내 포기했다. 잃어버린 책을 다시 사는 것은 어리석다. 더군다나 그 책을 읽은 적이 있다면 더더욱 그렇다. 그리고 헤어진 여자를 그리워하는 것도 어리석다. 더군다나 헤어진 여자가 다른 사람과 사랑에 빠졌다면 더더욱 그렇다. 이젠 소년다운 고집은 버려야 한다.

 

잃어버린 것에 대한 아쉬움 때문이었을까 ? < 모두 다 예쁜 말들 > 에 대한 리뷰'를 읽어보았다. 그러다가 그 여자가 쓴 글을 우연히 발견하게 되었다. 천장이 낮은 옥탑에 살았던 남자에 대한 이야기였다. 그리고 그 사람은 코맥 메카시의 소설을 유독 좋아했다고  담담하게 기록되어 있었다. 그리고 끝으로 < 모두 다 예쁜 말들 > 은 그 남자의 책장에 꽂혀 있어야 할 책이었으나 이렇게 자신의 책장에 꽂히게 되었다고 말했다.   2009년의 리뷰였다. 범종 같은 울림이 밑바닥 깊은 곳'에서 스멀스멀 올라왔다.

 

그 밑에는 글쓴이의 동료로 보이는 사람의 덧글이 달렸다. 덧글은 2012년의 것이었다. 그러니깐 글쓴이의 동료는 3년이 지난 글에 뒤늦게 덧글을 단 것이다. " 우연히 네가 쓴 글을 보았다 " 로 시작한 글이었다. " 우연히 네가 쓴 글을 보았어. 내가 ** 샘'에게 보내던 메일 주소 아이디'와 알라딘 아이디가 똑같더라... 너무 아파서 끝까지 읽지 못했다. **샘'이 그렇게 불의의 사고로 허망하게 떠나고 나서, 나... 샘의 빈 자리'를 보며 많이 울었어. 여긴 마치 나를 위한 숨은 보물 찾기 쪽지 같아. 자주 올께. 주인 없는 집에 너무 자주 온다고 눈치를 주지는 마. 보고 싶다. 그립다... "

 

내일은 4월 1일'이다. 하루 앞당겨서 이리 쓴다. 

 

- 소년다운 고집 中

 

 

 


 

 

 

 

 

 

 

 

아비정전'을 보다.

 

 

아비정전'은  틈만 나면 보았다. 40번 넘게 본 이후로는 계산을 하지 않았다. 이젠 더 이상, 모니터로 < 아비정전 > 을 보지는 않는다. 장국영이 자살을 한 이후 < 아비정전 > 는 장국영 추모 형식이거나 혹은 왕가위 감독전 형식으로 극장 스크린'으로 상영이 되고는 했으니깐 말이다. 만우절이 되면, 그러니깐 라일락이 피는 계절이 돌아오면 < 아비정전 > 은 상영되고는 했다. 나는 그때마다 < 아비정전 > 을 보았다. 그것은 일종의 제의( 祭儀 ) 였다. < 아비정전 > 은 부두교'였고, 나는 신도'였다. 어제 cgv 압구정'에서 < 아비정전 > 을 상영했다. 물론 나는 그곳에 있었다. 그곳 극장 로비에서 우연히 옛 여자친구'를 만났다. 나는 그녀를 보았으나 그녀는 나를 보지 못한 듯했다. 한때, 우리는 같이 아비정전'을 보고는 했다. 그러니깐 그녀도 본 영화를 다시 보기 위해 이곳에 온 것이다.

 

그녀와 내가 헤어지게 된 이유는 내가 은행을 털어서 교도소에 수감되었기 때문이었다. 그 사실은 애인에게 비밀에 붙였다. 나는 쇼생크 탈출에 나오는 앤디'처럼 그녀 앞에서 감쪽같이 사라졌다. 당시에 은행'을 턴다는 행위가 법에 저촉된다는 사실을 전혀 몰랐었다. 남산 가로수 길'에 우뚝 솟은 은행나무가 서울시 소유'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될까 ? 하지만 변명은 하지 않으련다. 잘못된 것은 잘못된 것이니 말이다. 나, 곰곰생각하는발 씨는 은행나무에 달린 은행을 털다가 현행범으로 걸렸다. 장발장이 빵을 훔치다가 감옥에 갔다면, 나는 은행을 훔치다가 감옥에 간 경우다. 수감된 동안에도 < 아비정전 > 은  변두리 극장에서 상영이 되었다.

 

내가 출소한 날은 공교롭게도 만우절'이었다. 애인'에게 전화를 걸었다. 미안하다고, 정말 미안하다고. 사실 그 동안 당신 앞에서 감쪽같이 사라진 이유는 교도소에 있었기 때문이라며 용서를 빌었다. 하지만 애인은 그 말을 믿지 않았다. 만우절이니깐 ! 느낌 아니까 ~ 애인은 이미 새로 사귄 남자친구가 있었다. 친구들에게 전화를 걸어 출소했다고 소식을 알렸으나 아무도 믿지 않았다. 나는 뚜벅이처럼 도시를 걷다가 우연히 광화문 극장에서 < 아비정전 > 이 걸려 있는 모습을 보았다. 주성철 기자'가 쓴 < 장국영 > 에 대한 책 기념으로 특별 상영되는 중이었다. 나는 그날 두부 대신 팝콘을 먹으며 영화를 보았다. 영화가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애인은 떠났고, 나는 전과자가 되었으니 먹고 살 일이 막막했다.

 

전과자 신분으로 정상적인 직업을 갖기는 힘들었다. 결국 나는 범죄의 길로 빠졌다. 직업은 킬러'였다. 사람들은 나를 고스트독'이라고 불렀다. 처음 사람을 죽일 때가 힘들지 그 이후로는 쉬웠다. 느낌, 아니까 ~ 대부분은 아내의 불륜이나 남편의 외도 때문에 사건을 의뢰했다. 일말의 순정은 남았던지 다음과 같은 당부의 말은 잊지 않았다. " 고통 없이 죽여주세요. " 하지만 이와는 반대로 고통스럽게 죽여달라는 의뢰인도 있었다. 종로에서 장어집을 하는 중년 여성'이었다. 며칠 후, 사건을 의뢰한 고객의 가게에 도착했을 때 사건 의뢰인이었던 중년여성은 멍이 든 채로 아무 말 없이 나를 쳐다보았다. 남자는 술에 취해 아내에게 난동을 부린 후  바닥에 엎드려 잠에 빠져 있었다.

 

나는 잠을 자고 있는 남편의 팬티를 조심스럽게 내린 후 뱀장어를 바닥에 쏟았다. 뱀장어는 꿈틀거리더니 자고 있는 남자 항문 사이로 들어갔다. 구멍만 있으면 비집고 들어가는 습성을 이용한 창의적 살인이었다. 뱀장어는 항문을 거쳐 위로 위로 올라갔다. 남자는 잠시 황홀한 표정을 짓더니 그만 사정을 했다. 하지만 이 쾌락도 잠시였다. 그는 고통 속에서 죽었다. 죽음을 확인한 나는 장어들이 득실거리는 수족관을 엎었다. 와장창, 수조관 깨지는 소리가 들렸다. 바닥에 널부러진 뱀장어들이 이리저리 꿈틀거렸다. 그 중 한 놈은 죽은 남자의 입속으로 들어갔다.  

 

*

 

나는 주로 어두컴컴한 극장에서 의뢰인을 만났다. 일도 하고 영화도 보니 이보다 좋을 순 없다. 무엇보다도 극장 안이 어두컴컴하기에 서로 신분이 노출될 일은 없는 것이다. 마지막 의뢰인을 만난 것은 어제였다. cgv 압구정'에서 말이다. 공교롭게도 아비정전이 상영되었다. 그리고 또 공교롭게도 그곳에서 헤어진 옛 여자친구를 우연히 만났으며, 또, 또, 또 공교롭게도 의뢰인'은 바로 그녀'였다. 나 또한 그 사실을 전혀 몰랐다. 불이 꺼지자 내 옆에 누군가가 앉았다. 향긋한 향수 냄새가 났다. 익숙한 냄새였다. 프르스트가 마들렌을 통해 과거로 여행을 떠났듯이 나는 그 익숙한 향수 냄새를 통해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이 불길한,  예감은 적중했다. 의뢰인은 옛 여자친구였다. 그녀가 나를 알아볼 일은 없었다. 나는 킬러를 하기 위해 성형수술을 했고 짙은 선그라스를 끼고 있었으며 극장 안은 어두웠으니 말이다. 그녀가 말했다. " 한 사람을 죽이고 싶어요. 이 사람입니다. " 그녀가 건낸 서류봉투 안에는 낯익은 얼굴이 보였다. 바로 나였다. " 고통 없이 죽여주세요. "

 

나는 고민 없이 사건을 접수했다. 내가 사건을 접수했다는 사실은 그녀가 지목한 상대를 제거해야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단, 나는 자살이 아닌 타살이 되어야 했다. 나는 또 다른 킬러에게 사건을 의뢰했다. 이쪽 세계에서는 꽤나 성실하다는 평이 자자한 사람이었다. 그가 말했다. " 선생님, 제거 대상은 누구입니까 ? " 나는 잠시 창밖을 보다가 그에게 말했다. " 바로 나요. 나를 제거해 주십시요. 8월 20일이면 좋겠소 ! 아직 할 일들이 남았으니깐. 비혼자'이다보니 해야 될 일들이 많소. "   그래서 지금 이 글을 쓴다. 톡톡이 게임은 100회로 끝난다. 이웃들과의 약속이니 지켜야 한다. 은행 업무도 모두 마쳤다. 그동안 운영했던 네이버 블로그도 막을 내린다. 미리 양해를 구한다. 난, 프로다. 서운해하지  마라. 느낌 아니까 ~

 

 

 

 

 

 

 

http://blog.aladin.co.kr/749915104/6272451 : 소년다운 고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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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8-09 15:59   URL
비밀 댓글입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3-08-09 16:37   좋아요 0 | URL
이거 그냥 농담입니다. 블로그는 폐쇄하지는 않지만 방치할 생각입니다.
틈틈이 글은 올리겠지만 말입니다.

히히 2013-08-09 16: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님은 님 블로그를 파괴할 권리가 있습니다.
허나
알라딘은 알현하게 하옵소서.

곰곰생각하는발 2013-08-09 17:09   좋아요 0 | URL
특별히 히히 님의 뜻을 받겠습니다.
오늘 나는 히히 님의 죄를 사합니다.

2013-08-09 17:3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3-08-09 17:5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3-08-09 18:17   URL
비밀 댓글입니다.

Forgettable. 2013-08-09 19: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완전 깜짝..가슴이 철렁 했네요 ㅋㅋㅋㅋㅋㅋㅋㅋ

곰곰생각하는발 2013-08-09 21:12   좋아요 0 | URL
저 가슴 철렁거리는 거 좋아합니다.... 은행을 털었다에서 철렁거리셨군요 ?

루치아 2013-08-09 20: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나참 블러그 페쇠하는줄 알고 깜 놀랐네요~~
페루에 님은 여러 이웃들이 있는한 블러그에 좋은 글 올릴 의무가 있는줄 아뢰오
내 어디에가 이런글을 읽는단 말이오
많은 팬들을 위한 팬서비스 차원에서라두 그런말 하시면 아니 아니 아니 되오^^

곰곰생각하는발 2013-08-09 21:13   좋아요 0 | URL
누구시온지 ? 하여튼... 감사합니다. 루치아 님...

루치아 2013-08-09 22: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글쎄 제가 갑자기 왜 루치아로 올려졌는지 알수없어요
저 hasankim인데 말이죠ㅠㅠ
페루에님이 붙여준 김하사인데...

곰곰생각하는발 2013-08-09 23:22   좋아요 0 | URL
아핫... 김 하사 님 !!!!! ㅎㅎㅎㅎㅎㅎㅎ.
아 누군가 했어요....
김하사 님도 알라딘 유저셨군요 ?

루치아 2013-08-09 23: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그렇습니다~~
내 댓글은 꾸준히 달진 않지만 그래도 매일들어와
글 읽는 재미가 쏠쏠 했는데...
페루에의 날카로운 문체가 맘에 들어 도독고양이 처럼
흔적 안남기고 왔다가곤 했답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3-08-10 00:15   좋아요 0 | URL
톡톡이 100회 끝나면 조촐한 모임 함 가질 생각입니다. 내방하셔서 빛내주시기 바랍니다.

iforte 2013-08-10 08: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 오늘 넘 피곤해서 하루종일 홍냐홍냐하다 정신차리고 들어와보니 댓글이 주러렁 달렸네요. 블로그폐쇄의 협박에 이리 열렬히 항의해주시는 분들이 있어 행복하시겠어요. 이번 포스팅은 완전 트와일라잇 (뱀파이어 영화 말고, 옛날 SF 티비 시리즈) 한편을 보는 느낌이 났네요. 생각난김에 트와잇라잇 시리즈나 다시 첨부터 볼까나..싶네요. 아마존 프라임멤버라 전 시리즈를 공짜로 볼수있거등요. 음화홧.....

곰곰생각하는발 2013-08-10 16:03   좋아요 0 | URL
트와일라잇'이 티븨 시리즈도 있었군요.
트와일라잇 이래저래 대중으로부터 사랑을 받는 시리즈'예요.
청소년들이 좋아할 시리즈 같아요. 적당한 로맨스에 적당한 판타지에
적당한 모험..... 전 이 영화 재미있게 보곤 해요
종종 유치해서 웃지만 하여튼 그게 하이틴 소설의 묘미 아니겠어요.
 

 

 

 

 

 

 

모두가 김연아'에 촛점을 맞추어서 기사'를 전송할 때, 한겨레'는 용감하게도 아사다 마오'에 촛점을 맞춰 기사를 실었다. 감동적인 기사였는가 ? 천만에 ! 이 기사는 내가 십 년 동안 읽은 기사 중 최악이었다. 우선 아사다 마오'의 예술성과 기술을 극찬한다. 전무후무한 요정이라는 논지'다. 그런데 갑자기 방향을 튼다. 2010 년을 이야기하는데 갑자기 선캄브리아 시대의 신화론'을 거들먹거린다. " 아사다 마오'가 비극적일수밖에 없는 이유'는 인간 대 신'의 싸움이었기 " 때문이란다. 즉, 아사다 마오는 열심히 해보았자 인간이라는 한계때문에 여신인 김연아'를 절대로 이길 수 없다는 논지'다.  문득 김일성의 신격화 작업이 생각났다. 아, 하하하. 태어나서 이런 부끄러운 기사는 처음 접한다.......( 중략 )

 

내가 보기엔 이러한 군중 심리'는  아는사람논리 - 조작과 비슷한 면'이 있다.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다 보면 자주 등장하는 것이 바로 내가 아는 사람 목록'이다. 주로 잘난 척하는 사람들이 나누는 대화법인데, 쉽게 말하자면 내가 아는 친한 친구 가운데 하나가 청와대 고위 간부'라는 식이다. 그런데 가만히 보면 이 사람이 말하는 아는 사람 목록'은 대개 자신보다 한 단계 상위 레벨'에 존재하는 사람들을 의도적으로 호명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 이야기'를 다시 뜯어보면 청와대 고위 간부 친구가 가진 지위적 레벨'을 이용하여 자기 신분도 상승시키려는 과시적 욕망이 숨겨져 있다는 점이다.  끼리끼리 논다고 하지 않았던가 ?  잘난 친구 덕을 좀 보자는 심리이다. 

 

그런데 !  이렇게 ' 내가 아는 사람'을 입에 달면서 사는 사람들 특징 중 하나가 주로 뻥이 심한 사람들이 대부분이라는 점이다. 이 점을 명심해야 한다. 이런 부류는 아는 사람 목록에 거지꼴'로 살아가는 불쌍한  친구 놈들'은 절대 호명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쪽팔리기 때문이다. 어디 그뿐인가 ?  회사 앞에서 4개월 전에 파마한 머리'로 자신을  기다리는 착한 조강지처'를 또 얼마나 부끄러워하는가 !

 

 

- 김연아가 당신들의 만병통치약이냐, 中

 

 

 

 


 

 

 

 

 

 

 

 

 

 

 

시네필的 애티튜드  

 

영화가 끝나면 엔딩 타이틀'이 끝날 때까지 앉아서 기다린다. 시네필的 애티튜드'를 과시하기 위한 것은 아니다. 스크립터 " 트루디 라미레즈 " 를 찾기 위해서이다. 헐리우드에서 30년 동안 스크립터로 일했다고 한다. 스크립터가 하는 일은 영화 속 옥의 티''가 발생하지 않도록 그때 그때의 상황을 자세하게 기록하는 일을 한다. 예를 들면 < 씬 197. 탐 크루즈 왼손으로 열쇠를 건냄. 검지에 미키마우스 반창고를 붙임 > 따위다. 미키마우스가 다음 장면에서 스크립터 실수로 돌고래로  바뀌는 불상사를 막기 위함이다. 감독은 이 기록을 참고해서 영화 속 옥의 티'가 발생하지 않도록 주의한다. 바로 이 방면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인물이 트루디 라미레즈 씨'다. 트루디 부인이 담당한 영화에는 대부분 옥의 티'가 없다고 한다.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 아이언맨 2'> 엔딩 타이틀을 보다가 그녀 이름을 발견했을 때, 나는 신나서 낄낄거렸다. 하지만 이 태도'를 오해하면 안 된다. 이 태도는 시네필적 애티튜드가 아니라 < 윌리를 찾아라 > 놀이'에 가까우니깐 말이다. 나는 불 켜진 극장에서 < 트루디 라미레즈를 찾아라 > 게임을 하고 있는 것이다.

 

내가 " 시네필的 애티튜드 " 라는 표현을 사용한 것'은 그들을 향한 조롱의 의미'이다. 패션계'에 보그 병신체'가 있다면, 영화계에도 무비 병신체'가 있었으니 하는 꼴이 광문/狂文'이다. 예를 들면 이런 문장들이다 : ㉠ 슈퍼맨'을 " 리뷰트 " 한 < 맨 오프 스틸 > 은.... ㉡  반지의제왕 이전 시대 이야기를 다룬 " 프리퀄" 시리즈 < 호빗 > 은...  ㉢ 엑스맨 시리즈 " 스핀 오프 무비 " 인 < 울버린 > 리뷰, 스포일러 있음.   이름도 길다. " 엑스맨 시리즈 스핀 오프 무비 < 울버린 > 리뷰 " 란 문장을 읽었을 때,  내 마음은 < 울어버린 > 심장'이 되었다. 오, 오오오오미. 시부럴 ! 이 시네필의 발광 다이오드적 애티튜드 극성'을 독특한 문체'라고 이해해야 할까 ? 이 문장은 마치 " 뉴 이어 스프링, 엣지 있는 당신의 머스트해브 아이템은 실크화이트 톤의 오뜨 꾸뛰르...... " 와 다를 것이 하나 없다. 저 문장은 " 멋을 아는 당신, 올봄 탐나는 옷'은.... " 이라고 하면 되듯이 스핀 오프 운운하는 문장도 그냥 " 엑스맨 외전'에 속하는 영화 " 라고 하면 된다. 좋게 말하면 < 허세 > 이고, 허세'를 구수한 통속으로 번역하자면 " 지랄하고 자빠졌네 ! " 가 될 것이다. 이러한 문장을 통틀어서 보그병신체'라고 하는 모양이다.  

 

 

 

그런데 패션계에서 유행하는 보그 병신체'와 군웅할거'를 겨룰 만한 인문 병신체'도 있다고 한다.  몇 년 전 회자'가 될 정도로 유명한 어느 프랑스 철학 전공자'가 쓴 문장이다. 재미있는 사실은 이 양반이 보그 병신체 유행에 대해서 신랄하게 비난했다는 사실이다. 다음 문장은 그가 포털 사이트 블로그에 올린 글이다. " 나의 텔로스는 리좀처럼 뻗어나가는 나의 시니피앙이 그 시니피에와 디페랑스되지 않게 하므로써 그것을 주이상스의 대상이 되지 않게 콘트롤하는 것이다. " 닝기미, 이 정도면 보그병신체와 인문병신체의 적벽대전이요, 군웅할거이며 용호쌍박'이라 할 만한 흥미진진한 바보들의 행진'이다. 보그병신체를 비판했던 그가 사용한 문장은 오히려 더 < 지랄하고 자빠졌네 문체 > 에 가깝다. 아니, 오히려 한수 위다. < 똥 싸고 자빠졌네 문체 > 다.  

  

나는 한글 순혈주의자'가 아니다. < ~ 의 > 라는 조사를 사용하면 오염된 문장이라는  주장에는 1%도 동의하지 않는다. 언어는 시대에 따라 변화한다. 살기 위해서 끊임없이 오염된다. 저잣거리 풍경과 섞이기도 하고 근대에 와서는 일본어와 서구 언어에 오염되기도 한다. 순혈주의자들이 주장하는 말이 옳다면 우리는 여전히 " 나랏 말쌈이 듕국과 달라 서로 사맛디 아니 하다 " 하고 써야 한다. 그런 언어는 불가능하다. 외부 문명과 차단된 부시맨 언어'라며 모를까, 언어적 장벽이 무너진 지금은 타 언어와 몸을 섞을 수밖에 없다. 그것은 언어가 가지고 있는 생명력이다. 다만 < ~ 의 > 라는 조사를 사용하면 오염된 문장이라는 주장에는 동의하지 않지만 남발하면 보기 흉하다는 데'에는 동의한다. 보그 병신체와 인문 병신체'는 남발해서 탈이 난 경우'이다. 

 

 

 

보그 병신체와 인문 병신체'가 가지고 있는 문제점은 잘못된 언어를 선택해서 활용했다는 측면'보다는 나랏 말쌈'은 무시하면서 알파벳 앞에서는 질질 싸는, 사대주의적 노예 근성'에 있다. 예로 든 < 인문병신체 문장 > 에서 " 리좀 " 은 잘못 선택된 언어 활용이 아니다. 들뢰즈가 < 천 개의 고원 > 에서 사용한 < 리좀 > 을 단순하게 < 뿌리 > 라고 번역한다면 그것이야말로 잘못된 예'이다. 왜냐하면 리좀'이란 용어는 그렇게 단순한 개념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것은 창조자'에 대한 예의'이다. 하지만 텔로스, 리좀, 시니피에, 시니피앙, 디페랑, 주이상스'를 무분별하게 병신처럼 나열하는 태도는 한글에 대한 예의와 독자에 대한 예의'가 없는 경우이다. 싸가지가 없는 문체'다.  

 

만약에 저 문장이 원문이 있는 문장을 번역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오버'였다면 단순한 실력 탓을 할 수 있겠지만 저 문장은 글쓴이의 단순한 생각을 옮긴 것이다. 텔로스는 단순하게 < 목적 > 이라고 쓰면 된다. 성에 차지 않는다면 < 내가 지향하는 궁극적 목적 > 이라고 하면 된다. 내가 보기엔 서구에 대한 사대주의적 노예 근성'처럼 보인다. < 텔로스 > 라는 말이 나와서 하는 말이지만 " 키노 시네필의 텔로스'는 < 카이예 뒤 시네마 > 인 듯하다. " 키노 시네필은 Cahiers du Cinéma'가 선정한 위대한 영화 목록을 무조건 숭배하는 경향이 높다. 아니, 노골적이다. 모 영화평론가가 뽑은 영화 목록은 Cahiers du Cinéma 가 뽑은 영화 목록과 90% 겹친다. 키노 시네필'도 마찬가지다. 어느 순간부터 스티븐 스필버그의 < 우주전쟁 > 은 저주받은 걸작이 되어서 사람들이 < 우주 전쟁 > 을 위대한 걸작 목록에 선정하지 않으면 가차없이 시네필 자격을 박탈한다. 

 

 

지나치게 보수적이며 헐리우드적인 시각'을 가진 오락 영화 흥행 보증 수표 감독을 열렬하게 옹호하는 태도'는 의아할 정도'다. 왜냐하면 그동안 시네필들은 스필버그에 대해 엿 먹어라 자세'를 줄곧 유지했기 때문이다. 누군가가 " 쥬라기 파크 " 가 재미있다고 침을 튀기며 말을 하면 대뜸 " 죽으라, 팍 !! " 이라며 성을 내던 이들이 말이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바뀌기 시작했다. Cahiers du Cinéma 가 스필버그의 < 우주전쟁 > 을 2000년대 가장 위대한 걸작 목록'에 뽑으면서 시작된 국내 시네필들의 열애'다. 90년대 시네필의 통과 의례'가 안드레이 타르코프시키였다면 이제 2000년대 시네필의 통과 의례는 스티븐 스필버그'가 되었다. 나는 < 쥬라기 공원 > 은 좋아하지만 < 우주 전쟁 > 은 시큰둥하게 보았다. 다코다 패닝이 시간 날 때마다 내지르는 쇳소리(비명)가 어찌나 내 고막을 괴롭혔는지,  이 소녀가 내지른 지랄은 " 다 큰 애 패닉 ",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여전히 비명소리가 최고의 공포 효과'라고 믿는 스필버그가 안쓰러울 뿐이었다.  

 

 

 

2000년대'를 대표하는 SF 영화가 < 우주전쟁 > 이라면 프랭크 다라본트가 만든 < 미스트 > 는 걸작이 될 것이고 < 디 워 > 는 수작이 될 것이다.  Cahiers du Cinéma 특유의 작가주의 정책을 감안하면 이 선택을 철회할 가능성은 제로다. 이제 스필버그 영화는 스필버그가 만들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모든 영화가 위대한 걸작에 오를 것이다. 후지거나 말거나 말이다.  그들이 스필버그에게 보내는 사랑은 특급 사랑이다. 태평양을 건너 대서양을 건너 인도양을 건너서라도 무조건 무조건 달려갈 것이다. Cahiers du Cinéma 식 작가주의 정책이 위험한 이유는 영화'란 개인 기록 경기'가 아니라 여럿이 한 팀이 되는 팀 경기'이기 때문이다. 소설과 영화'는 다르다.  

 

도스토예프스키의 모든 소설에 대하여 열광할 수는 있으나 스필버그의 모든 영화에 대해서는 열광할 수는 없다. 소설은 소설가 혼자 창작하는 창착물이지만 영화는 많은 분야 전문가들이 모여서 만드는 협동 작업이다. 스필버그가 만든 < 우주 전쟁 > 이 걸작이라고 해서 다음 작품도 걸작이 탄생하리라는 기대는 어리석다. Cahiers du Cinéma 작가주의 노선'이 어리석은 까닭이다. 임권택 영화'를 작가주의 노선으로 접근하면 위험하다. < 길소뜸 > 과 < 취화선 > 은 좋은 영화이지만 < 서편제 > 와 < 노는 계집 창 > 그리고 < 하류 인생 >, < 천년학 > 과 < 달빛 길어올리기 > 는 참담할 정도로 실패한 영화'다. < 서편제 > 는 존속살해와 근친 욕망이 섞인 나쁜 영화이며, < 달빛 길어올리기' > 는 지역 특산물 홍보 영화 같다. 그리고 < 하류 인생 > 은 부부 강간'을 죄의식 없이 미화한 통속극 같다. 

 

 

 

시네필'은 항상 자신이 선정한 베스트 목록을 나열하지만 대부분은 자신이 선택한 것이 아니라 타자'가 만들어놓은 밥상에 숟가락만 얹는다. Cahiers du Cinéma 가 < 우주전쟁 > 좋다고 하면 좋다는 식'이다. 정성일이 임권택 좋다고 하니 내 인생의 영화 목록에 임권택 영화 하나를 선택한다. 결국 자기가 만든 목록은 영화 전문가 집단'이 만들어놓은 목록들을 짜집기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이 목록이 전문가 집단과 일치하면 할수록 시네필的 애티튜드는 하늘을 찌른다. 하지만 명심해야 될 것은 그 목록은 내것이 아니다. 그들 권위에 기대어서 자신과 그들을 같은 레벨로 묶으려는 얄팍한 술수에 지나지 않는다. 그것은 마치 < 내가 아는 사람 > 논리와 비슷하다.  

 

" 내가 아는 사람 중에 누구누구... " 에서 < 누구 > 라고 지목된 대상은 늘 말하는 화자'보다 지위가 높다. 내가 아는 사람 중에 서울대 병원 의사가 있다거나, 내가 아는 친한 사람 중에 청와대 고위 공무원이 내 친구라는 식'이다. 결국 말하는 화자/A'는 내가 아는 높은 족속/B'을 열거함으로써 신분 상승을 꾀한다. 대한민국 사회는 끼리끼리 어울리는 사회가 아니었던가 ? 내가 아는 놈이 높은 레벨에 있다는 사실은 자신도 그 부류에 속한다는 것을 은연 중에 증명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식으로 말하는 놈은 대부분 거짓말에 능숙한 놈들이다. 이런 사람은 결코 착하지만 가난한 친구에 대한 이야기는 하지 않는다. < 내가 아는 목록 > 에 그들은 없다.

 

 

 

보그 병신체, 인문 병신체'를 쓰는 사람들은 내가 아는 사람 심리'를 이용한다. 나보다 우월한 교양 주체의 어깨에 기대어 신분을 상승하려는 욕구이다. 그래서 한국인은 혈연도 아니면서 혈연인 척한다. 김연아는 국민 여동생'이 된다. 황 씨 성을 가진 사람도 김 씨 성을 가진 연아를 자기 여동생이라 하니 족보가 심히 불온하기는 하지만  그것은 크게 문제될 것이 없다. 여동생'이니 아는 사람 단계'보다 한 단계'가 높다. 연아가 빛날수록 오빠도 빛난다. 이 유사 블러드 후드'는 패밀리 혈연 동맹을 넘어 국가 파시즘'이 된다. 김연아에 대한 비판은 내 가족에 대한 모욕이다. 그 순간, 김연아는 건드릴 수 없는 성역이 된다. 나는 김연아를 내 동생이라고 우길 생격이 전혀 없다. 왜 ? 내 동생이 아니니깐.

 

내가 아는 사람들은 대부분 빙딱'이었다. 본드 불고 환각에 빠져서 바지에도 똥을 싼 놈도 있었고, 서울역에서 러미날 먹다가 뼈가 녹아서 다리가 잘린 놈도 있었으며, 아리랑치기'를 하던 놈은 집행유예 기간 중 자전거를 훔치다가 걸려서 교도소에 갔다. 스펙 좋은 놈은 한놈도 없다. 내 주위 사람들은 최상위 그룹인 프로 스펙스'는커녕 그냥 스펙스'도 별로 없다. 하지만 그들이 별 볼 일 없다고 해서 쪽팔리다고 생각한 적은 없다. 난 늘 그들에 대해서 이야기 하니깐 말이다. 돌이켜보면, 그동안 많은 책을 읽었으나 깨달음을 얻게 해주는 것은 본드 불고 바지에 똥 싼 놈이거나 러미날 먹고 다리 잘린 놈이었다. 대한민국은 잘난 놈에게서 배워라, 라며 수많은 멘토'를 쏟아내지만 잘난 멘토에게서 우리가 배울 것은 아무것도 없다. 성공 노하우를 배우는 것보다 실패한 이유를 찾는 것이 빠르다. 성공은 우연이 지배한다. 실패를 부끄러워할 필요는 없다. 내가 영화 배우라면 성공한 자'보다는 실패한 루저'를 연기하겠다. 전봇대 밑에서 똥 싸는 장면. 나, 이거 할게요. 느낌 아니까 ~  똥 싸다 주저앉아도 돼죠 ?  좋다, 좋다, 딱 좋다, 괜찮다.

 

 

 

 

http://myperu.blog.me/20101624376 : 김연아가 당신들의 만병통치약이냐 ?

 

http://youtu.be/v37VMMWDC8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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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forte 2013-08-08 22: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곰발님 특유의 해학과 신랄함이 가히 폭발할 참입니다. ㅎㅎ 커피마시며 읽다가 몇번 뿜을뻔 했다죠.
결국 주체적인 사색과 의견 없이 글을 쓰는것이 문제겠죠. 생각이 새롭지도 않고, 해석이 창의적이지도 않고, 탄탄한 경험적 논리가 받쳐주는것도 아니고, 그러다보니 결국 기댈곳은 위대하신 지도자들의 말을 빌어다 쓰는것 외에 방법이 없겠지요.
주제와 다소 어긋나지만, 며칠전에 트윗에서 누군가 인문학자는 일반인이 쓰는 쉬운 언어로 글을 쓰면 사상의 깊이를 더하기가 어렵다고 쓴게 기억나네요. 음... 버트란트 러셀이 글을 쉽게 썼다고해서 글 내용이 쉬운건 아닐텐데요. 프랑스나 독일쪽 학자들 글을 읽다가 영미학자들 글을 읽으면 글이 난해하지 않고 뜻이 분명하게 전달되는 듯요. 아마 몸에 벤 문화의 차이인듯 싶어요. 혹자는 위대한 사상가의 글은 중의적으로 해석되어 무한한 독해 가능성을 열어놔야 한다고 생각하고, 또 그런 관점에서 러셀의 글을 폄하하기도 하는것 같아요. 제 생각에는, 어떤 분야의 글을 쓰냐에따라 보다 더 적합한 문체들이 있는거지 반드시 한가지가 다른 것보다 더 낫다고는 말할 수 없는듯 싶네요. 뜻이 분명하게 전달되는 글도 그 사상이 심오하다면 새로운 논의의 가능성을 열어줄수 있으니까요. 아무튼, 요지는 어렵게 쓰건 쉽게 쓰건 간에, 전달하려는 내용이 우선 주체적이고, 창의적이어야 할듯요. (남들 다 말한걸 굳이 덧붙일 필요는 없으니까요). 그런 연후에 그 사상을 가장 효과적으로 옮길수 있는 문체로 표현이 되어야 할듯요. 물론, 내용이 표현보다 더 중요하다고 하는게 아니고요. 둘다 중요한데, 가장 효과적으로 뜻을 전달할 조합이 있다는거죠.

이런... 또 흥분해서 남의 집에와서 패악질하고 가네요. 다큰애 패닉 일어나겠네요. ㅎㅎㅎ

iforte 2013-08-08 21:32   좋아요 0 | URL
그렇긴해도, 현실적으로는 해석하기가 어려울수록 위대한 사상가로 추앙받는것 같죠? 가령 니체의 후기 글들에 대해 어떤이는 진짜 미쳐서 비정상적인 상태에서 비정상적인 글을 쓴걸 사람들이 정상적으로 해석하려고 애쓴다고 주장하잖아요. 어쨌든, 글을 중의적으로 어렵게 써놓으면 그거 해석하는 후대 학자들을 먹여살리는 꼴이니 존경받아 마땅하긴해요. 그사람 없었으면 여럿 굶어죽잖아요. ㅋㅋㅋ

곰곰생각하는발 2013-08-08 22:43   좋아요 0 | URL
아 포르테 님 ! ㅎㅎㅎㅎㅎ. 다 큰 애 패닉'에서 한참 웃다가... 아니 내가 왜 웃지 했습니다.
다코다 패닝과 다 큰 애 패닉' ..... 제가 지어낸 말이지만 꽤 웃긴데요 ? 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
제가 항상 주장하는 건 하나예요. 쉽게 말하라 !

다만 철학은 어렵게 말해야 해요. 전 그게 정답이라고 생각합니다. 스님이 착한 놈이 좋은 놈이다, 라고
말하면 그건 화두'가 아니잖아요. 철학적 질문은 어려워야 한다고 믿습니다.


다만 그것을 수용하는 놈들이 굳이 그럴 필요 있느ㅑ는 거죠. 하여튼 저는 인문병신체 쓰는 놈들 보면 속에서 울화통이 터져요. 저도 얼마든지 그렇게 쓸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건 좀 반칙이란 생각이 들거든요. 어렵게 말하지 않아도 대충의 철학적 개념에 대해서 설명할 수 있습니다.


+

니체가 미친 것은 확실해요.
니체가 마지막에 가서는 정말 문장이 자뻑이 되어갔거든요. 나는 왜 위대한가, 나는 왜 이 위대한 책을 쓰나.... 이런 분위기였죠. 전 니체가 미치고 나서 침대에 누워서 쓴 글을 잘 안 읽으려고 하는데 이해를 못해서가 아니라 뭔가 읽고 나면 굉장히 슬퍼요. 니체가 위대한 이유는 아마 지극히 인간적인 광대여서 그럴 겁니다.

전 니체가 너무 정색을 하고 말했다면 그에게 흥미를 못 느꼇을 거에요. 니체의 매력은 허술입니다.
하지만 매우 튼튼하죠. 가장 위대한 철학자'예요....

2013-08-09 06:4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3-08-09 10:0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3-08-09 20:0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3-08-09 21:15   URL
비밀 댓글입니다.

다크아이즈 2013-08-09 06: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일찍 일어나 꼼꼼하게 읽은 보람이 있습니다.
속이 후련합니다.
보그병신체는 글쓰기 기초 강좌에서 늘 예시로 들고 있어요.
(여기서 만나니 더 반갑다는^^*)
인문허세체는 보그병신체보다 더 심각하게 봐야된다고 생각합니다.
보그체로 문장 공부하는 사람 없지만 허세체는 글로 먹고 사는 사람들끼리의 문제인데
개념없는 스승 만나면 후학들이 영향을 받잖아요.
정민 선생이 알아먹기 쉽게 쓰는 건, 대학원 시절 만난 그의 스승 덕도 있다고 봅니다.
군더더기 없애는 법부터 혹독하게 현장학습시킨 그의 스승이 존경스럽더군요.

곰발님, 곰발님, 곰발님^^* (이하 생략 속에 많은 찬양구가 들어있스므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3-08-09 09:13   좋아요 0 | URL
저도 같은 생각입니다. 보그병신체'는 이미 이런 문장을 쓰면 안 된다는 사실을 다들 알고 이습니다.
그런데 인문허세체'는 그런 생각을 안 해요.
인문허세체의 화룡점정은 종종 문학평론집에서 많이 발견합니다.
대부분 대한 국문과 교수들인데 문장을 보면 기가 찰 때가 많아요. 기초적 바탕도 없습니다.
그것을 후학이 그대로 따라하니 문제라 봅니다. 위의 예시문은 사실 과장이 좀 되었지
거의 다 저런 식이잖아요.

히히 2013-08-09 13: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이 세상 모든 종류의 학자들 중에서
자기들이 하고 있는 짓을
일반인들이 알아듣기 쉽게 설명할 줄 모르는
유일한 집단이 철학자다.
나는 칠순 노모에게도 내 학문을 이해시킬 수 있다."

즐겨 훔쳐보는 어느 분의 블로그글입니다.
마지막 행에서 성품이 읽어지고
저의 유무식과 상관없이 그 분 글은 어렵지 않습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3-08-09 16:39   좋아요 0 | URL
어렵지 않게 말을 전달하는 사람이 달인이죠.
종종 시골 노인들이 하는 말을 듣다 보면 가끔 감탄을 하는 경우가 있ㅇ요.
별 생각없이 듣다가
집에 와서 다시 곱씹으면 완전 라캉 이론을 이야기하고 있던 겁니다.
아마 그 촌부가 글을 썼다면 라캉 같은 철학자가 되었을 거예요..ㅎㅎㅎㅎ
 

 

 

 

 

 

 

 

 

 

 

 

 

 

 

 

 

 

 

10년 전이었다. 도서관에서 우연히 < 자기 앞의 생 > 이란 책을 발견했다. 내가 그동안 이 책을 읽지 않은 이유는 아동 청소년 책'처럼 보였기 때문이었다. 당시에 나는 꽤나 어려운 소설을 읽었다. 로브그리예, 사르트르, 까뮈, 제임스 조이스와 같은 읽기 어려운 소설을 읽는다는 것을 자랑'으로 삼던 시절이었다. 마치 구하기 힘든 영화'만 찾아다니는 컬트 마니아의 영화 목록'처럼 말이다.  " 이런 내가 그 흔해빠진 청소년 소설 나부랭이'를... "  그냥 가벼운 마음으로 < 자기 앞의 생 > 을 읽었다. 그러다가 그만 눈물을 쏙 빼게 되었고, 그 후 며칠 동안 도서관에 비치된 로맹가리/에밀아자르의 소설'은 모두 읽게 되었다.  너무 급히 읽은 탓일까 ? 내가 읽은 로맹 가리의 소설들은 각자의 소설'이 아닌 6권'으로 된 한 편의 장편 소설'로 기억되었다. 말이 좋아 " 기억 " 이지, 사실은 " 뒤죽박죽 " 이었다

 

 

-10년 전에 읽은 책 中

 

 

 

 

애란 장편소설 < 두근두근내인생 > 에 대한 반응이 좋다. 독자는 물론이거니와 평단 또한 칭찬 일색이다. 놀라 다시 본다, 라는 성석제의 기막힌 40자 평이 있는가 하면 요즘 잘 나가는 젊은 평론가는 역시 김애란이라며 엄지 세 개‘를 올린다. 하지만 이 착한 가족극은 몇몇 눈에 띠는 장점에도 불구하고 단점이 많은 작품이다. 그녀가 내놓은  단편집에 비하면 이번 장편소설은 기대 이하’다 ! 소설 속 주인공은 모두 피터팬 증후군을 앓고 있는 환자‘처럼 보인다. 주인공 부모에게는 세월에 따른 자각의 과정이 없다. 17살 때 고속버스에 올라타서 34살 때 버스에서 내려온 인물 같다.

 

문제는 고착으로 인하여 이 아이들의 사회성‘이 결여되었다는 점이다. 사회성이 결여되었으니 등장인물들은 모두 명랑하고, 유쾌하며, 긍정적이다. 사회에 대한 인식은 계급에 대한  자각을 경험하게 되는데 이 명랑한 아이들에게는 그러한 성숙한 비판의식이 존재하지 않는다. 그냥 대책 없는 무비판성‘은 작가로써 치명적 결점이다. 그녀는 거리’를 은폐한다. 꼴랑 보여주는 것은 골목길이다. 거리가 사회화된 영역이라면 골목길은 사회화가 거세된 낭만적 장소이다. 심각할 때는 심각할 줄 알아야 하는데 심각할 때도 주인공들은 웃는다. 으, 하하하하하 !  내가 보기엔, 김애란의 < 두근두근... > 은 3분 발성법으로 1시간짜리 창‘에 도전한 느낌’이 든다. 그것은 마치 3분짜리 콩트를 60분 분량으로 늘린 것 같은 느낌이라는 말이다.  

 

 

- 두 권의 소설, 삼부녀와 두근두근 내 인생 中 

 

 

 

 


 

 

 

 

 

 

 

두 편의 소설 : 자기 앞의 生 vs 두근두근 내 인생.

 

 

 

흉터에는 신기한 힘이 있지. 과거가 진짜 있었던 일이라는 것을 일깨워주거든. 흉터를 얻게된 사연은 결코 잊을 수 없지. 안 그런가?

 

- 모두 다 예쁜 말들 中

 

 

내가 문학에 대해 일관되게 유지했던 냉정한 태도'를 종합해서 판단하자면, 에밀 아자르 혹은 로맹 가리의 소설은 내 취향'이 아니올시다, 이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다. 에밀 아자르 혹은 로맹 가리'가 쓴 소설을 대부분 열심히 읽었으니 말이다. 더군다나 눈물 콧물 다 짜내며 읽었으니 로맹 가리는 내 문학적 취향에서 예외'라고 해 두자. 모든 < 취향 > 에는 이해 못할 구석이 존재하는 법. 그렇다고 해서 내가 아자르 식 성장 스토리'를 모두 좋아하는 것은 아니다. 글빨 하나만큼은 끝내줬던 김애란'이 제 2의 에밀 아자르 혹은 로맹 가리'를 꿈꾸며 야심차게 준비한 첫 번째 유사 아자르 성장 소설인 < 두근두근 내 인생 > 은 눈 뜨고 코 베일  정도'로 후져서 하품이 나왔다.  < 모모' > 나 < 아름' > 이나 둘 다 어른이 되어버린 아이'가 주인공으로 나오지만 < 두근두근 내 인생 > 에서 보여준 아름이'는 설정만 아이'일 뿐이지 어른'이나 마찬가지'이다. 아름이처럼 지나치게 깔끔한 성장통은 뭔가 수상한 성장통'이어서 읽는 내내 울화통이 터진다.

 

반면 모모'는 불안한 성장통을 겪는다. 이 불안정한 성장통은 마치 흰자위는 푸석푸석 익었지만 노른자위'는 채 익지 않은"  계란후라이 " 상태와 같다. 어느 부분은 푹 익고 어느 부분은 설익었다. 우리가 겪은 성장통은 대부분 이런 식이다. 조숙과 미숙이 겹쳐지는 과정이 질풍노도의 시기'가 아니었던가 ? 말이 나왔으니 하는 말이지만, 아...... 나는 < 후라이 > 라는 잘못된 외래어 표기'가 주는 50년대 올드한 느낌'을 좋아한다. < 프랑스 > 라는 단어가 주는 느낌보다 < 불란서 > 라는 단어가 주는 그 촌스러운 50년대 근대적 언어 감각을 좋아한다.이처럼 < 프라이 > 가 이음새 없이 봉합된 깔끔한 흉터'라면 < 후라이 > 는 어깨에 남은, 촌스러운 불주사 흉터 같다. 이 불주사 흉터'는 공감과 위로를 전달하는  아이콘'이다. 쉽게 말해서 블로그 < 공감 > 버튼이요, 트위터 < 무한 RT 요망 > 메시지요,  페이스북 < 좋아요 > 버튼'이다.

 

우연히 타인의 어깨에서 발견하게 되는 불주사 흉터'는 말로 설명을 할 수는 없으나 뭔가 인간적이라는 느낌을 받는다.  미스코리아 출신 미녀의 어깨에 남은 불주사 흉터'는 잘난 년이나  못난 년이나 모두 촌년이라는 묘한 위로'를 선사한다. 그것은 얼룩'이요, 금이다. 로맹 가리 소설 속 아이들은 그러한 공감과 위로'를 독자에게 전달한다.  남의 이야기이지만 내 이야기'이다. 불주사 도장이 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도 시대적 아픔 ( ? ) 을 공유할 수 있는 것과 같다. "  맞아, 맞아. 불주사, 그땐  너무 아팠어 !  " 하지만 김애란이 < 두근두근.... > 에서 보여준 아름이'에게는 불주사 흉터'가 없다. 그냥 아름이가 불쌍할 뿐이다. 그는 17살'이란 타이틀만 얻었을 뿐 지리산 안골 계곡에서 100년 동안 수양에 매진한 도사 같다. 그는 " ~ 했도다 ! " 대신 " 했어염 ! " 이라고 혀 짧은 소리를 할 뿐이다. 그가 독자에게 주는 위로'는 말뿐이다.  

 

나는 아이'다운 아이'에게 끌리지 않는다. 같은 이유로 어른다운 어른'에게도 마음이 동하지 않는다. < ~ 답다 > 라는  이데올로기는 가부장 중심 사회가 만든 폭력적인 시선일 뿐이다. 아이는 아이다워야 하고, 어른은 어른다워야 하며, 여자는 여자다워야 한다는 사고'는 주인이 노예를 길들이기 위한 술책에 지나지 않는다. 아이답다는 기준은 무엇일까, 어른답다는 기준은 무엇일까 ? 다시 한 번 묻자. 아름답다는 기준은 무엇인가, 정말 여자답다는 기준은 무엇인가 ? 계통과 계열을 분리하고 솎아서 동종의 군집을 만다는 상상력은 폭력'에 가깝다. 아이는 아이답지 않아도 된다. 어른은 장난감을 가지고 놀아도 되고, 여자는 길거리에서 담배를 피워도 된다.

 

내가 관심 있게 지켜보는 사람은 < 아이어른'> 이거나 < 어른아이' > 이다. 이상적인 인간형은 어릴 때는 < 아이어른 > 이었다가 어른이 되면 < 어른아이 > 가 되는 사람이다. 반면 어릴 때는 아이다운 아이였다가 어른이 되면 어른다운 어른 ( 남자다운 남자가 되거나 여자다운 여자가 되는 ) 이 되는 사람은  답답하고 갑갑한, 지나치게 체제순응적 인간이다.  말뿐인 말장난이 아니다. 빈말도 아니다. 말뿐인 말장난을 원하거든 텅 빈 마굿간으로 가라. 이 세상 모든 아웃사이더'는 자신이 가진 몸보다 정신이 너무 빠르거나 늦은 경우이다. 오후 3시처럼 말이다.  성장과 성숙'은 비슷한 말 같지만 다른 말이다. 오히려 반대말'이다.

 

누가 성장의 반대말은 무엇이냐고 묻거든 병신처럼 < 저성장 > 라고 말하지 마라. 이 뻔한 답변은 당신이 눌변'이란 사실을 당신 스스로 대변할 뿐이다. 성장은 몸이 커지는 것을 말하고, 성숙은 심장이 커지는 것을 말한다. 그러니깐 전자는 < 밖 / 껍데기 > 를 보는 시선이며, 후자는 < 안  / 내면 > 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시선이다. 결국 성장 이데올로기란 과정은 무시하고 결과라는 껍데기'만 중시하는 가치'다. 이명박이 졸라 천박한 이유는 바로 성숙'보다 성장'을 중요한 가치로 인식하기 때문이다. 21세기 대한민국 사회에서 중요한 것은 경제 성장이 아니라 사회적 성숙이다.

 

■ 같은 이유로 이 시대에 중요한 것은 대한민국 국민에 방점을 찍는 애국심이 아니라 세계 시민에 방점을 찍는 인류애'다. 잘 갖춰진 인류애'라면 애국심은 개나 줘도 된다. 누누이 말하지만 애국심은 타자'에게는 파시즘이 될 수 있다.

 

키 큰 남자와 식스팩에 젖가슴이 터지는 여자는 껍데기에 미친 년이고, * C.S.I 에 무조건 페니스가 발기하는 놈도 껍데기에 미친 놈이다. 그들은 모두 외양만을 본다. 모모는 몸은 느리게 성장했으나 심장은 빠르게 성숙한 아이'이다. 흰 자위는 푹 익었으나 노른자위는 설익은 계란 후라이'의 시기'이다.  이 불균형'은 고독'을 낳는다. 아이다운 아이는 < 고독 > 을 모르고, 어른다운 어른은 < 순수 > 를 잃어버린다. 그러니깐  어른다운 아이'가 고독을 느끼고, 아이다운 어른이 순수를 간직한다.  모모는 어른 흉내를 내지만 이 위악은 한계를 지닌다. 모모는 자신의 욕망에 충실한 것이다. 하지만 아름이'는 가짜다. 아름이는 어른이 요구하는 이상적 아이'에 가깝다. 그러니깐 김애란은 어른의 욕망을 아이'에게 투영한 후 낄낄거리거나 흑흑거리며 즐기는 것이다.  " 아름 " 을 " 아름답게 " 만들면  그것은 매우 뻔뻔한 어른의 욕망'이다. 타인의 고통'은 결코 아름답다고 말하면 안 된다. <  두근두근 내 인생 > 이란 소설이 존나 후진 이유이다.

 

■  CSI 형 체형 : C컵 가슴에 S 라인 그리고 I 처럼 늘씬한 몸매'를 가진 여성을 말한다. 내가 막 지어내 조어인데 마음에 든다. AbO형 체형 : A는 하체 비만이고, b는 복부비만이며, o는 총체적 비만인 체형을 가진 사람을 말한다. 이것도 내가 막 지어낸 조어인데 마음에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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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rgettable. 2013-08-07 09: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님이랑 좋아하는 책 겹치는 날이 생각보다 좀 빨리 왔군요?! 흐흐 최근들어 고개 끄덕거림지수와 방긋지수가 높아지는 걸 보면 길들여지는건가.... 싶습니다; ㅋㅋ

곰곰생각하는발 2013-08-07 10:56   좋아요 0 | URL
에밀아자르 소설 좋아하시는군요 ? 방긋 !! 정말 저는 여러 장르를 편식없이 보느 편이라 겹치는 게 많을 거임이다..ㅎㅎㅎㅎㅎㅎ. 포 님을 알게되어서 영광일 뿐이죠.

히히 2013-08-07 13: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로맹가리의 [새들은 페루에 가서 죽다]는 완전 곰...발님 취향이라 생각했습니다.
근데 작가가 취향이 아니올시다니 의외입니다.
이 책의 주인공들이 내 안에 없다는 것은 순전히 거짓말입니다.
남들이 내숭을 떨며 미친년이라고 퍼부어도
잠복하고 있는 본성입니다.
그 균들이 발광하지 못하게
나날이 몸사리고 있습니다.
결국 응달의 것들이 성숙의 자양분이 되는군요.

[자기앞의 생]도 당연히 제 편이겠지요?
찍뽕해놓고 못읽은 책이 상당합니다.
곰...발님 덕분에 재차 확인하네요.

곰곰생각하는발 2013-08-07 13:18   좋아요 0 | URL
어라 ? 나 방금 글 수정하고 있는데 덧글이 달렸네요.
제가 말한 내 취향이 아니란 말은 로맹가리의 어린이 성장 소설을 말하는 겁니다.
새들은 페루애서 죽다는 성장 소설이 아니잖아요.
전 성장 소설'을 그닥 좋아하진 않아요. 이 장르에 대한 선입견은 없는데
유년과 눈물을 섞는 것을 그리 좋아하진 않는다는 말...

그런데 로맹가리의 성장 소설'은 뭔가 찌르는 구석이 있습니다.
그 원인을 아직 정확히 파악하지는 못했습니다만......


아마도 아이어른과 어른아이'가 잔뜩 등장해서 좋아하는 것 같습니다.
전 어른이 장난감 가지고 노는 모습을 보면 묘하게 감동적일 때가 있어요.
제가 다케시 영화를 좋아하는 이유도 놀이하는 어른이 등장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히히 2013-08-07 13: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예전에 본 [미세스 다웃파이어]의 로빈윌리엄스 역활이 상당히 마음에 들더라구요.
코믹영화를 보고 울음을 펑펑 터트린 작품입니다.
제 시대의 아버지는 전혀 그렇지 않았으니까요.
아이가 되어준 로빈윌리엄스를 한동한 좋아했더랬습니다.

결혼을 하고 보니 제 남편이 아이가 아니라 다행입니다. ㅋㅋㅋ
이것이 현실입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3-08-07 16:26   좋아요 0 | URL
아, 그랬군요. 저도 로빈 윌리암스 좋아했죠.
전 아내가 할머니 같으면 좋을 것 같아요.

iforte 2013-08-07 22: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음.... 소설이랑 당최 담 쌓은 일인인지라... 아웃사이더가 된 느낌이네여.
아아.... 그냥 놀러왔다가 자취만 남기고 갑니다, 오늘은.. ㅡ.,ㅡ;;;

곰곰생각하는발 2013-08-08 00:52   좋아요 0 | URL
포르테 님 오셨군요. 방석 놓을까 하고 왔더니 벌써 가셨네요... 후후...

iforte 2013-08-08 04:50   좋아요 0 | URL
방석....ㅋ
방석 깔아주셨어도 아마 꼼틀꼼틀, 하늘보고 땅보고, 얼굴 안마주치려고 뻘쭘 앉아있었을꺼예염. 전에도 언급했듯, 읽지 않은 책에 대해 말하기 위해서는 엄청난 독서 내공이 필요한데.... ㅎㅎ... 전 문학동네에 가끔 출현하는 문씨네 딸, 외한 이라고.....ㅋ
곰발님과 언면 트고 지내는것만도 (만난적은 없으니 안면이랄수 없고..) 무한한 가문의 영광이라는.......
 

 

 

군 제대 후 아파트 공사 현장에서 6개월 동안 일한 경험에 비추어보면 당신이 사는 천장은 온통 나무토막, 빵 봉지, 우유 펙, 스티로폼'이 섞인 칸막이라고 보면 된다. 왜냐하면 시멘트 공구리 비용을 아끼기 위해서 공사 현장에 널부러진 온갖 것들을 다 채운 후 공구리'를 치기 때문이다. 농담이라고 ?! 맙소사. 당신이 그런 소리를 한다는 것은 곱게 자랐다는 것을 의미한다. 막노동을 해본 사람이라면 모두가 알고 있는 사실을 당신만 모르는 것이니 말이다. 더 충격적인 장면도 본 적 있다. 인부들이 바빠서 현장에서 싼 똥을 치우지도 않고 공구리를 친 경험도 있다. 그러니깐... 음, 윗층과 아랫층 사이엔, 나와 당신 사이엔 누군가의 똥이 있다.

그렇다면 왜 대한민국에서는 아파트'가 세련된 주거 환경'이 되었을까 ? 답은 의외로 간단하다. 건설업자들 입장에서 보면 가장 많은 이윤을 남기는 것이 바로 아파트 건설이다. 땅 위에 집을 짓고, 그 집 위에 다시 집을 짓는다. 여기에는 아파트 생활'을 현대적인 문화 생활 이미지'로 세뇌시킨 국가 정책도 큰 몫을 차지했다. 박정희가 보기엔 이 좁아터진 땅덩어리에서 아파트보다 효율적인 주거 환경'은 없기 때문이다. 

특히 한국인은 개인보다는 집단 속일 때 안정을 찾는 민족이지 않던가 ? 그들은 < 집단 - 속 > 과 < 집 - 단속 > 을 동일한 것으로 간주한다. 그들은 아파트가 안전한 주거 공간이라고 생각한다. 할렘을 의미했던 주거 공간이 대한민국에 수입되면서 고급화로 둔갑한 이유에는 국가와 짜고 친 건설업자의 숨은 공로가 있었던 것이다. 공로라기보다는 음모에 가깝지만 말이다. 하여튼... 눈물이 앞을 가린다.

 

- 공간은 정치적이다 中

 

 


 

 

 

 

대한민국 군집생태학 : 바캉스와 아파트 그리고 산악회. 

 

내가 자주 한국인 비판'을 해서 듣는 당신은 질릴 만도 하지만 한국 문화'는 까도 까도 대책이 없는 양파'와 같다. 배 부른 소리하고 자빠졌네, 라고 말해도 어쩔 수 없다. 한국인 특유의 군집성'은 여러 가지'를 생각하게 만든다. 한국인은 남들이 하면 자기도 따라하는 습성을 가졌다. 태어날 때부터 그런 습성을 가진 것은 아니니 정확히 말하자면 이 습성은 < 천성 > 보다는 < 습속 > 에 가깝다. 그러니깐 " 군집생태학 " 은 독특한 남조선 사회 규범이 만든 현상이다. < 있어 > 보일려고 군집, 생태, 습속'을 거들먹거렸지만 다른 식으로 말하자면 떼거지 근성'이다. 무정부주의적 개인주의자들에게 이 사회는 답이 없어서 답답한 사회이며,  갑이 왕초 노릇을 해서 갑갑한 사회'이다. 

 

바캉스 문화'는 갑갑하며  답답한 군집성'을 제대로 보여준다. 물에 발 한번 적시겠다고 해운대 바다'에 뛰어드는 모습은 기이한 풍경을 연출한다. 백 만 인파가 한꺼번에 몸을 담그니, 그들 인파 중엔 몰래 물속에서 오줌을 싸는 얌체'도 있을 터,  어쩌면 해운대 바닷물이 유독 소태인 이유는 오줌 때문인지도 모른다. 내가 방관자 입장에서 이 글을 쓰는 것이 아니다. 스스로에 대한 비판이다. 며칠 전 가족 여행'을 떠났다. 서울에서 출발해서 목적지에 도착할 때까지 네비게이션 여자'는 6시간 동안 목이 터져라 외쳤다. 어찌나 친절한지 전방이 과속 방지 턱이 있다고 알려주시기도 하고, 단속 카메라가 있으니 주의하실 필요가 있다고도 말씀하셨다. 내 아들이 있다면 며느리 삼고 싶었다. 요 며칠 사이로 700만 인파가 바캉스를 떠났다고 하니 대이동이라고 하는 편이 정확한 표현이다. 가족은 목적지에 도착하기 전에 이미 8월 한여름 빨랫줄 위에 걸린 빨래처럼 바짝바짝 말랐다.  

 

고생해서 도착했으니 제대로 놀아야 한다는 강박'이 생긴 것일까 ? 강행군은 이제부터'였다. 첫째 날은 a 계곡에서 놀았다. 둘째 날이 되면 본격적으로 놀기로 한다. 아침 6시에 아침을 먹고 9시에 b 계곡에 가서 놀고, 오후에는 c 박물관으로 간다. 휴가지에서 할 일은 많고 시간은 없다.  셋째 날도 아침 6시에 밥을 먹고 9시에 d 휴양림으로 떠난다. 잠시 후, 나비 전시관에서 하루를 마무리한다. 이런 일은 계곡 반복된다. 이것은 휴가(休暇) 가 아니라 수행( 遂行)이다. 수행을 그대로 뜻풀이 하자면 " 생각하거나 계획한 대로 일을 해냄 " 이다. 그러니깐 내 가족'은 휴식을 하려고 온 것이 아니라 주어진 임무'를 완수하기 위해 업무를 수행한 것이다. 고생해서 왔으니 볼거리 잔뜩 보고 가자는 주의'다.  

 

본다는 것은 인간이 가지고 있는 여러 감각 가운데 하나일 뿐이지, < 본다는 행위 > 자체가  < 여행의 모든 것 > 이라고 판단하면 오산이다. 계획대로 진행되는 코스 여행'에서 얻은 만족은 말 그대로 자신이 계획한 임무'를 얼마만큼 실천했는가, 에서 오는 만족일 뿐이다. 즉, 휴가'가 아니라 일의 연장'이다. 그 사실'을 알아야 한다. 최근 며칠 사이에 떠난 700만 인구'는 남이 바캉스를 떠났으니 그냥 따라하다가 도로에서 좆망한 경우'다. 남들 다 하는데 안 하면 소외감을 느끼니 떠난 것이다. 여기에서도 군집 본능은 작동을 한다.  

 

군집 본능이 제대로 작동하는 곳은 < 아파트 > 다. 어느 유명한 프랑스 사회학자'가 엄청난 규모를 자랑하는 강남 아파트 단지'를 보고 던진  " 여기가 한국의 할렘가'입니까 ? " 라는 질문'은 서구 사회에서는 아파트'라는 집단 주거 형태'가 실패한 주거 공간이라는 사실을 말해준다. 이 집단 주거 공간은 서구 주류 사회에 안착하지 못했고, 그 빈터를 가난한 사람들이 모여 살게 된 것이다. 아파트'는 실패한 도시 행정의 표본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한국 사회'에서 아파트'는 부를 상징하는 주택이 되었다. 백성은 정부와 건설업자이 배포하는 농간'에 속았지만 사실 속은 것만은 아니다. 한국인 특유의 떼거지 근성'이 아파트 현상을 부추긴 측면이 강하다. 한국인은 집단 속에 있어야 보호를 받는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강하다. 주거 공간에서 가장 중요한 기능은 안전'이다. 한국인에게 있어서 아파트는 < 집 - 단속 > 과 < 집단 - 속 > 욕망을 모두 충족시키는 주거공간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아닐까 ? < 집단 - 속 > 이 가장 안전한 < 집 - 단속 > 이라고 판단하는 것 같다.

 

아파트'가 집단 속'에서 보호를 받으려는 어른 욕망'이라면 노스페이스 교복化는 애들 욕망이다. 아파트와 노스페이스'는 같은 말이다. 누가 당신에게 아파트와 같은 뜻을 가진 문장을 고르라고 하면 < 집단 주거 공간 > 대신 자신있게 < 노스페이스 > 라거나 < 블랙야크 > 라고 당당하게 말하라. 물론 교육부가 원하는 정답은 아닐 수 있으나 내가 보기엔 아파트와 노스페이스'는 동일어'다. < 블랙 야크 > 의 청소년 버전인 < 노스페이스 > 또한 집단 속'에 안착함으로써 보호를 받으려는 심리가 작동한 결과이다. 애들은 왕따를 당하지 않기 위해 노스페이스를 입는다. 같은 이유로 < 노스페이스 > 의 19금 버전인 < 블랙 야크 > 도 같은 심리가 작동한다.  그들은 혼자 산에 오르지 않는다. 산악회'로 뭉친다. ( 김영삼이 만든 히트 상품은 금융실명제가 아니라 산악회'다. )  

 

산에서 명함을 주고받을 수는 없으니 등산복은 명함을 대신한다. 머리어깨무릎발무릎발'에 장착한 풀 옵션 등산 장비'는 그 사람의 명함을 대신한다. 선수는 척보면 안다. 장비를 보면 관우나 유비를 생각해야 하나, 몇몇 산악회 속물들은 장비'를 보면 그 사람이 가진 재산 보유 현황을 파악하기에 정신이 없다. 비싼 놈에게 끌리는 법. 88올림픽 때 급조된 코리아나는 손에 손 잡고 벽을 넘지만,  산악회 속물들을 손에 손 잡고 선을 넘어서 우리 모두 하나 되는 모텔에 간다. 이처럼 한국인 특유의 체면과 허세 그리고 군집성이 결합하여 탄생한 것이 깔맞춤 등산 패션이다. 정작 환경'에는 전혀 관심이 없는 사람들이 만들어놓은 군집생태학이다. 

 

이러한 군집 욕망'은 매우 위험하다. 왜냐하면 파시즘은 이 군집성'을 토대로 뿌리를 내린다. 2002년 월드컵 광장 응원 문화'가 보여준 열기'는 대한민국 사회'가 파시즘에 매우 쉽게 무너질 가능성이 있다는 사실을 여실히 보여준다. 이 자발적 동원력은 우려할 만한 현상'이다. 그들은 집에서 몇몇과 함께 응원을 하기보다는 광장으로 나온다. 집단의 힘'을 과시하고 싶은 까닭이다. 획일화된 응원과 거대한 함성이 주는 웅장함을 맛 본 이들은 이 군집의 형태에 중독될 것이다. 나는 붉은 악마가 보여주는 이 군무'를 보면 항상 레니 리펜슈탈의 < 의지의 승리 > 가 생각난다. 묘하게 닮은 구석이 있다. 이상적인 사회'는 건강한 개인주의'가 발달한 사회'이다.  

 

여기서 개인주의와 개인 이기주의'를 혼동하면 안 된다. 개인주의는 공동체를 중시하는 토대 위에서 개인의 자유를 존중하는 태도이지만 개인 이기주의'는 자기 이익만을 생각하는 태도이다. 이러한 이기주의'가 집단化가 진행되면 집단-이기주의'로 빠지게 된다. 이 집단 이기주의'가 확장된 버전이 국가 이기주의'이다. 국수주의, 나아가 전체주의'가 태동하게 된 시작은 바로 이기주의'이다. 반복해서 말하자면 개인이기주의는 집단 이기주의로 빠지고, 이 집단과 군집은 결국 국가 이기주의'인 국수와 전체주의'를 만든다.  

 

집단/전체/국가'가 쏟아내는 획일된 메시지'가 실감이 나지 않는다면 좋은 예'가 있다. 베토벤의 아름다운 명곡 < 엘리제를 위하여 > 는 국가 폭력에 의해 난도질 당한 명곡이다. 음악 다방이나 인테리어가 그럴싸한 경양식집에서 언제나 단골 메뉴처럼 흘러나왔던 < 앨리제를 위하여 > 는 어느 순간 청소차나 분뇨차'를 떠올리게 만든다. 국가의 강요된 메시지'가 만든 진풍경이다. 점심 시간에 이 클래식이 흘러나온다면 당신은 식욕을 잃을 것이 분명하다. 베토벤 할아버지'가 살아계셨다면 한국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을 것이 분명하다. 이처럼 국가 권력은 베토벤을 바보로 만들기도 한다. 이 얼마나 무서운 세뇌'인가 ? 이 얼마나 간단한 세뇌인가 ?  

 

싹수가 노랗다면 뽑는 것이 제격이듯이, 잘못된 습속부터 바로잡아야지 건강한 사회'를 만들 수 있다. 김수영 시인이 말했다. " 나는 왜 작은 일에 분개하는가 ? " 맞는 말이다. 작은 일에 분개해야 한다. 가짜 정치인은 늘 큰 일'에만 목소리를 높인다. 하지만 그러한 것은 모두 가짜'다.  내가 안철수를 지지하지 않는 이유는 거대 담론만 가지고 원론적인 말만 하기 때문이다. 안철수는 바다가 아닌 작은 냇가'에서 놀 필요가 있다. 바다에서 거창하게 다량어'를 잡을 생각 말고 냇가에서 가재를 잡을 생각을 해야 한다. 모든 불행은 작은 것에서부터 시작되는 법이다.  우리 모두 쪼잔한 사람이 되자. 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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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애니비평 2013-08-05 16: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작년 대선 때 다른 부서 빌어먹을 부서장이 학생들 급식 무료화에 대해 하자는 말에 대해 제가 반박하자, 노스페이스도 다 교복으로 줘야 하냐는 말도 같지도 않은 개소릴 하더군요.
물론 저도 그 전에 나이 먹은 사람들 투표하면 안 된다고 했습니다. 우리 집에서 부모님은 나이 60 넘으면 판단력이 흐려지고, 70 넘으면 아무 도움되지 않아, 결국 우리나란 노인들에 의해 망할겁니다. 세금이 없어서 세금 거둘 놈은 따로고 먹는 놈은 따로고, 세금도둑이 세금을 걷으려 하면 개지랄하니..코미디가 따로 없군요. 저도 나이 70 이상이면 투표하지 않고, 그저 놀로다닐 겁니다. 어허라 디야~

곰곰생각하는발 2013-08-06 00:38   좋아요 0 | URL
그래도, 투표권은 있으니 노인들도 투표는 해야지요....
젊은 사람이 노인'을 부양해야 되는 책임은 건강한 사회'예요...ㅎㅎㅎㅎㅎㅎㅎㅎ
그래도 희망은 보입니다. 골수 새누리 지지자였던 어머니가
이번 선거에서는 다른 후보를 지지했으니 말이죠.
그렇게 희망을 쌓아야겟지요. 뭐.. 후훗.

히히 2013-08-05 17: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지금 신랑의 노스페이스 19금 블랙야크를 사러 백화점으로 갑니다.
저는 등산복이나 체육복은 그 목적과 상관없이는 절대 입지 않지만
아들(신랑-핸드폰 저장이름)은 편하게 잘 입으니
괜히 비싼옷 사놓고 안입는 것 보단 즐기는 옷을 안겨주는 게 상당히 경제적이죠.
사내들은 소속을 싫어하지는 않는 듯 합니다.
가끔씩은 부부라는 명목 아래 그 집단의 영향력을 피할 수 없다는 억울함이 있습니다.
다음주에 갈 여행(? 관광)도 같은 맥락이구요.
해마다 가던 캠핑을 포기하고 가려니 딸들에게도 미안코
비싼 비행기삯 들여 떼거지로 몰려다닐 생각하니 히히도 불쌍코...
다음 번에는 여름휴가는 피해달라고 부탁했습니다.
세모녀는 야영지에서 밤마다 즐겼던 숯불구이가 그립습니다. T T

곰곰생각하는발 2013-08-06 00:36   좋아요 0 | URL
남편을 아들이라고 하시는군요 ? ㅎㅎㅎㅎㅎ. 좋은데요. 큰 아들 ? ㅎㅎ.
맞아요. 남자는 뭔가 소속감을 필요로 하죠.
어디로 가시나요 ?
하여튼 시원한데 있다 막 돌아다니시지 마시고 구름 그늘진 곳에서
시원한 음료수 마시면서 낮잠 자다오시는 여행 하며 좋을 것 가타요...

iforte 2013-08-05 23: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짝짓기 놀이가 생각나네요. 다함께 빙빙 돌다가 리더가 호명하는 숫자를 만들기 위해 그룹을 만들어야만 살아남는. 이왕이면 멋져보이는 그룹에 꽉 매달리고 싶은 심리가 있지 않나싶네요. 위너 그룹에서 떨궈져나온 루저가 되고 싶지는 않은 강한 열망이랄까...
요거요거 극복하는거, 어렵지 않아요. 그냥, 전교생을, 다른 이웃들을, 다른 직장 동료들을 다 왕따시키면 되요. 흠흠... 갠적으로도 별로 어떤 그룹에도 속하고 싶거나 누구를 따라하고 싶은 맘이 조금도 없다는.... 그래서 제 전속 디자이너도 보통 사람들은 구경할수도 없다는 그 유명한, 무명씨라는.....ㅋ

+
웃자고 에피소드 하나 올리자면, 예전에 대학시절 과 애덜이랑 단체로 클럽에 갔는데, 한 아해가 최신상 속옷을 입고왔다고 자랑을 하더라고요. 그때 수입이 겨우 시작되던 해외유명브랜드였는데, 지금 돈으로 따지면 거의 4~5백만원은 되었죠, 속옷가격만. 저는 그 친구 맘상할까봐 부러운 표정을 지어주긴 했지만 속으론 딴생각했죠. '미친거아냐? 그 비싼걸 왜 속에다 입어? 겉옷 위에 껴입지.' 그때 깨달았죠. 슈퍼맨이 왜 팬티를 옷위에 입었는지....ㅎㅎㅎㅎㅎ

2013-08-06 00:34   URL
비밀 댓글입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3-08-06 00:53   좋아요 0 | URL
문득 포르테 님 프로필 그림을 보니 제가 써두었던 에곤 쉴레 그림에 대한 낙서가 생각나 옮겨봅니다.





에곤 쉴레 : 명태와 낙엽.


싱싱한 생물'일 때는 보이지 않으나 말리면 결'이 생긴다. 바짝 마른 살결은 결에 따라 나무의 섬유질처럼 찢어진다. 너의 몸은 이제 딱딱한 나무가 되었구나 ! 잘 말린 북어 이야기'다. 에곤 쉴레'의 그림을 보면 < 북어 > 가 제일 먼저 떠오른다. 수분은 염분이 되어서 바짝 마른, 몸에 짠물 베인 푸석푸석한 생. 물고기가 나무가 될 때까지 얼마나 많은 고름을 짜냈을까 ? 내가 처음 쉴레의 그림을 보았을 땐 쉴레'를 이해하기에는 너무 어린 나이였다. 고통을 읽지 못했다. 그때 나의 생은 찰랑찰랑 했으니 말이다.



첫사랑은 지나갔고, 짝사랑은 해본 적이 없었다. 창밖을 보다가 어두운 골목길을 지나가는 어느 여자의 초라한 둥근 어깨'를 사랑하게 되었고 우리는 사랑'에 빠졌다. 몸을 섞을 때마다 터지는, 아 ! 난...... 그 무중력을 사랑했다. 무호흡을 사랑했다. 짠물이면서 촉촉한 사랑. 두 마리 물고기'가 심해 뻘에서 놀았다. 독살인지도 모르고 말이다. 상황이 그러했으니 바짝 마른 몸으로 고통을 직시하는 쉴레'를 이해하기란 불가능했다. 그렇게 쉴레는 잊혀져 갔다. 내가 다시 실레의 그림을 보기 시작했을 때 나는 많이 지쳐 있었다. 헤어지고 만나고, 헤어지고 만나고를 반복하다가 결국은 헤어졌다. 그 사이 나는 유령을 만났고, 주저흔을 남겼다.



산 밑에서는 바닥이 보이지 않는 법. 산기슭 벼랑 끝에 서야 비로소 바닥'이 보인다. 쉴레의 그림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을 때, 나는 벼랑 끝에 서 있어서 바짝바짝 마르는 그 기분을 알고 있었다. 한때는 수신창에 내 번호만을 기다리던 그녀가 언제부터인가 내 번호'만을 거부했다. 그럴 때마다 나는 낙엽처럼 바짝바짝 말랐다. 쉴레의 그림에서는 바짝 마른 낙엽 떨어지는 소리가 들린다. 가을은 쉴레의 그림을 보기에 좋은 계절이다. 그림 속 남자와 여자'는 늦가을 밤나무의 잎처럼 뾰족한 촉을 세운 채 마르고 있었다. 마를 수록 살갗은 투명해진다. 실핏줄이 엉켜 있다. 쉴레의 저 그림은 벌거벗은 얼굴이 아니라 살갗이 벗겨진 얼굴이다. 그래서 나는 그의 그림이 늘 고통스럽다. 내가 알던 공장 노동자'가 생각났다. 원진레이온, 맨손으로 독극물을 만져서 살이 벗겨진 손. 그녀의 손은 살갗이 벗거져서 지문이 없었다. 몇 번의 자살 시도 끝에 생을 마감했다. 이런 저런 생각들이 지나간다.



2013-08-06 01:3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3-08-06 11:47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