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행 중 다행이다.
1. 연락처 좀 알 수 있을까요
< 내 인생 후회 목록 > 을 만들어 보았다. 내가 만약 과거로 시간여행을 할 수 있다면 제일 먼저 개 이름’부터 다시 짓겠다. 지금까지 우리 가족과 함께 살다간 개의 이름은 밍키, 똘똘이, 폴, 펄럭이, 쩍쩍이’처럼 지극히 평범한 이름이 대부분’이었다. 바로 이놈들 이름 때문에 지금의 내가 이 모양 이 꼴로 솔로 인생을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라는 생각을 했다. 장고의 귀납적 계산 끝에 얻은 결론은 지금의 내 인생이 그지깽깽이가 된 첫 번째 원인이 바로 내가 키운 평범한 개 이름 때문이라는 결론에 도달했다. 공식으로 표현하면 ( X-Y )2 = X2 + Y+ LOG 2이므로, ( 5- 2 )2 = DOG 2 . 옛 어르신 말씀 하나 버릴 것 없다. 이름이 인생을 좌우한다.
내가 키운 하얀 마르치스종인 개 이름은 <밍키> 였다. 그 시절엔 밍키’라는 이름이 유행하던 시절이었다. 개나 소나 닭이나 다 밍키였다. 암컷도 밍키고, 수컷도 밍키였다. 한밤중에 술에 취해서 동네 골목에서 고래 시늉을 내며 “밍키 !!! “ 라며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면,밍키라는 이름을 가진 수많은 개들이 온동네 떠내려가듯 짖고는 했다. 자기 이름도 아닌데 대꾸할 개가 이 세상에 어디 있겠는가 ! 그래, 그땐 너무 흔한 이름이었지. 이현정’이라는 이름만큼이나 말이다. 만약에 내가 <밍키> 라는 이름 대신 < 연락처 좀 알 수 있을까요 > 라는 다소 긴 이름으로 불렀다면 내 인생은 어떻게 되었을까 ?이런 상황은 어떤가 ? 내가 개를 끌고 공원을 산책하고 있는데 아리따운 아가씨가 개에게 관심을 보인다.
- 어머, 개 너무 귀여워요 ! 이리 온, 우쭈쭈, 우쭈쭈. 이름이 뭐예요 ?
- 연락처 좀 알 수 있을까요 ?
- ( 얼굴이붉어지며 ) 네에 ?!
- 연.락.처.좀.알.수.있.을.까.요.
- 어머.....
- 이 개의 이름이 < 연락처 좀 알 수 있을까요 > 입니다.
그런데 정말, 당신의 연락처를 알고 싶네요.
- 어머 !호호호호호호호. 개구지시다. 저... 유머 감각 있는 사람 좋아해요.
- 네에, 저는 우리집개~ 구리입니다. 펄쩍, 펄쩍, 펄쩍 !
- 호호호
- 하하하
- 우리 결혼해요 !
- 그럽시다 !
그것이 인연이 되어서 부부의 연으로 이어졌을지도 모를 일 아닌가 ? 나는 성격이 내성적이어서 마음에 드는 여성에게 단 한 번도 일명 대시’라는 행동을 해 본 적이 없다. 나란 인간은 여자가 대시할 때까지 기다리는 한심한 녀석이었다. 마음에 드는 이성이 있어도 혼자 끙끙 앓을 뿐이었다. 아, 한심해 ! 과거로 시간 여행을 떠날 수 있다면< 연락처 좀 알 수 있을까요 > 라는 마르치스와< 아름다우세요 > 라는 이름의 푸들을 데리고 날마다 공원을 산책하겠다.
- 어머, 개들 너무 귀여워요 ! 이리 온. 우쭈쭈, 우쭈쭈. 이 개 이름이 뭔가요 ?
- 아름다우세요 ?
- ( 얼굴이 붉어지며 ) 어머머! 고마워요. 저 개 이름은 뭔가요 ?
- 연락처 좀 알 수 있을까요 ?
- 어머, 정말 왜 그러세요? 호호호. 저한테 지금 대시하시는건가요 ?
- 하하하. 이 마르치스의 이름이 연락처 좀 알 수 있을까요 이고,
저 푸들의 이름이 아름다우세요 입니다. 하하하. 그런데 정말 미인이세요. 농담 아닙니다.
백 명 중 한두 명은 이렇게 말하는 사람에게 관심을 보이지 않았을까 ? 실제로 연락처를 남기는 사람도 있었으리라. 나는 내 인생이 개 이름 때문에 망했다는 사실을 미처 깨닫지 못했다. 아니, 상상도 못했다. Log2의 값이 dog라니 !하긴 누군들 알까 ? 자신의 인생을 좌지우지한 요소 중 하나가 개 이름이었다는 사실을. 아마 그 사실을 아는 사람은 이 지구 상에 단 한 명도 없을 것이다. 나, 곰곰생각하는발은 당신에게 진지하게 말한다. 지금 당신의 인생이 더럽게 꼬였다면 당신이 기른 개 이름을 떠올려보면 답이 나온다고. 곰곰발 씨, 농담도 잘 하셔, 라고 ? 천만에 ! 난 농담이 아니라 진담을 말하고 있는 중이다.
애인 없는 솔로 인생 중’에서 개 이름을 < 연락처 좀 알 수 있을까요 > 라고 짓거나 < 아름다우세요 > 라고 지은 사람이 있다면 손을 들어보길 바란다. 내 예측이 맞다면 아무도 없을 것이다. 그럴 줄 알았다. 내 예측은 빗나간 적이 없으니깐. 그래서 당신 인생이 그 모양 그 꼴이다.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 돌아가면 공부 열심히 하겠다는 결심 따위는 개나 주고, 자신이 키우는 애완견 이름부터 다시 지어라. 좋은 아내를 얻는 것은 건강을 얻는 것만큼 값진 행운이니깐.
2. 다행
도깨비 방망이’로 아이 하나를 뚝딱 만들 수 있다면, 나는 아이의 성별에 관계 없이 < 다행 > 이라는 이름을 지어주고 싶다. 김다행, 이다행, 박다행, 홍다행, 최다행, 권다행, 한다행 등등. 사람들은 꼬마 다행이’를 보고 이렇게 말할 것이다. “다행이다 !“ 슬픔에 울고 있는 사람도 다행이를 만나면 “ 다행이다. “ 라고 낮게 속삭일 것이고, 산길을 잃은 사람이 우연히 다행이를 만나도 “ 다행이다. “ 라고 말할 것이 아닌가 ? 이보다 더 좋은 이름이 있을까 ?
나는 다행이의 영문 이름을< DAHANG >이라는 표기하기보다는 < GOOD LUCK > 으로 표기하겠다. 듣기만 해도 기분 좋아지는 이름이 아닐까 ? 나는 다행이를 꼭 껴안으며 이렇게 말하겠다. “ 아빠는 다행이가 있어서 얼마나 다행인 줄 몰라. 고맙다, 다행아 !“ 영리한 다행이는 싱글파파인 나에게 이렇게 말할 것이다.
“아빠 !“
- 왜 ?
- 내가 다행이면 먼저 하늘나라 간 엄마 이름은 불행이야 ?
- (울컥) 왜 ?
- 불행 중 다행이잖아. 엄마 이름이 불행이니깐, 불행 중 다행이를 낳은 것 아니야 ?
- 그래 이눔아 ! 엄마, 아빠는 모두 불행이다. 그래도 좋다. 불행 중 다행이를 낳았으니깐. 흑흑.
- 아빠, 울어 ?
- 아니.
- 지금 흑흑 소리 내며 울었잖아.
- 아니야, 다행아 ! 내가 운게 아니라 흙이 흑흑 운거야.
- 아하, 그렇구나.흙은 흑흑 우는구나. 시부럴, 어른이 좋은 거 가르치시네. 큭큭, 농담이야 아빠 !
- 허허허. 어린 놈이 말하는 싸가지가 가관이구나. 사랑해, 다행아 !
- 크크크. 나도 아빠 졸라 존경해요 !
이 세상 모든 부모의 이름은 불행이고, 아이의 이름은 다행이다. 불행은 다행을 낳는다. 불행 중 다행이다. 아이란... 참 고마운 존재다. 불행을 불행하지 않게 만드는 유일한 존재는 다행이다. 불행 중 다행이니깐. 사랑하는 사람도 다행이란 이름으로 불린다. 내가 당신을 만난 것 또한 불행 중 다행이니깐. 그래서 난 늘 당신에게 고맙다. 다행은 불행을 위로하는 친구와 같은 존재이다. 오늘 케이블 방송에서 방영한 티븨 동물농장 속 송아지 이름이 < 다행 > 이었다. 한겨울 어미에게 버림받은 송아지였는데 한파로 얼어죽기 직전 발견되어서 이름을 < 다행 > 이라고 지었단다. 갑자기 다행이라는 이름이 참 아름다운 단어라는 생각이 들었다. 다행이라는 이름, 참... 좋다~ 람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