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나무과 오이 :
[ 책 책 ] : 冊
< 瓜 > 는 < 오이 > 라는 뜻을 가진 한자 음 < 과 > 다. 뜻은 같지만 음은 다르다. 대부분 뜻은 동일하지만 한자 음과 한글 음은 다르다. 그런데 冊 이라는 한자는 꽤 재미있다. 冊은 < 책 > 이라는 뜻을 가진 한자 음 < 책 > 이다. 이런 형태를 정확히 무엇이라고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독특한 형태'라는 사실은 분명하다. 결국 < 책 > 을 뜻하는 순우리말'은 없는 것이다. 닝기미, 이럴 줄 알았다 ! 유네스코 기록 문화 유산으로 선정된 한글'이 정작 기록 문화의 화룡점정이라 할 만한 낱말인 < 책 > 이란 순우리말'이 없다는 사실은 아이러니'다. 볼 때마다, 아...... 신기한 구석이 있는 한자'다.
책을 뜻하는< 典 > 이 낮은 책장에 책을 가지런히 꽂은 모양새'라면, < 冊 > 은 키 큰 책장처럼 보이기도 하고, 큰 책장에 책이 꽂힌 모양새'로 보이기도 하고, 옛 제본 방식으로 만들어진 책 모양'처럼 보이기도 한다. ( 옛날에는 대나무를 종이 대용으로 사용하였다고 하니 죽간 : 종이가 발명되기 전에 글자를 기록하던 대나무 조각' 을 끈으로 이어놓은 상태처럼 보이기도 한다. http://blog.aladin.co.kr/795816154/6400650 : 눈먼 올빼미'는 디자인이 독특하다. 책등을 보면 진짜 冊 처럼 보인다. ) 이래저래 여러 사물이 겹쳐진다. 재미있지 않은가 ? 개인적 취향을 고려하면 < 冊 > 과 < 書 > 는 그 느낌이 판이하게 다르다. 冊'은 책이라는 상품에 방점을 찍고, 書'는 내용/쓰기'에 방점을 찍는다. 그러니깐 책은 상품으로써의 가치를 높이기 위해 표지 디자인은 물론이고
제본 방식과 자간, 심지어는 종이 재질에도 신경을 쓴다. 그뿐이랴 ! 마케팅'에도 신경을 쓴다. 반면 書라는 한자는 외형을 중시하는 冊을 경망스럽게 보는 태도처럼 느껴진다. 書가 보기에 冊은 얼굴 치장에만 환장한 년'처럼 보인다. 점잖은 양반이라 겉으로 내색은 안 하지만 속으로는 이런 속말을 내뱉을 것이다. " 지랄이 풍년이네. 얘 ! 견적 나온다. 느낌 아니까 ~ 턱 깎고, 보톡스에 필러 때리고 고소영 애교점 찌거꾸나 ! " 이처럼 冊은 상업적인 반면, 書는 학술적인 이미지가 강하다. 그런데 나는 書 씨'가 좀 꼰대스럽다. 글 쓰는 자 특유의 으스대는 느낌을 받고는 한다. 차라리 약간 천박하지만 섹시한 冊 양'이 좋다.
책을 만드는 사람들은 원본 텍스트를 그대로 인쇄해 시장에 내놓았다고 해서 맡은 바 임무를 다했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시대에 맞는 감각을 갖추어야 한다. 이런 비유가 웃기기는 하지만 몸매가 예쁘다고 아무 옷이나 입히면 안 된다. D컵 가슴이라면 V자보다는 U자 드레스 코드도 좋고, 다리가 예쁘다면 클라라 쫄팬티 줄무늬 야구복도 괜찮다. 출판사 동문선처럼 마분지로 책 표지를 만들면 안 된다는 말이다. 기획사 동문선 소속된 인물들을 보라 ! 입이 딱 벌어질 만큼 화려하다. 그런데 그토록 아름다운 몸매(텍스트)에 입힌 옷 꼬라지를 보라 ! 오리온 초코파이 과자 상자를 뜯어서 입힌 꼴이다. 맙소사, 클라라에게 XXXL 힙합 패션복을 입히다니 ! 좋은 텍스트에 좋은 옷을 입히는 것은 출판사'가 가져야 할 마음가짐'이다.
최근에 현암사에서 나온 < 나쓰메 소세키 전집 시리즈 > 를 보면 몸매도 훌륭하지만 옷도 잘 입었어 ! 문학사상사에서 나온 < 나는 고양이로소이다 > 와 현암사에서 나온 같은 책을 비교해 보자. 고양이'는 같은 고양이인데 어째 그 고양이가 아닌 것 같다. 느낌이 하늘과 땅 차이이다. 피카소가 고양이를 그렸다는 소리는 못 들어봤으니 그 누가 흉내 낸 것이리라. 내 기준에 의하면 문학사상사'에서 나온 < 나는 고양이로소이다 > 는 도서이고, 현암사에서 나온 < 나는 고양이로소이다 > 는 책'이다. 이제는 책도 풍각쟁이처럼 몸치장에 신경을 써야 한다.
책의 명칭을 뜻하는 단어는 많다. 나열하면 이렇다. 전典, 서書, 본本, 권券, 도서圖書, 문헌文獻, 간책簡冊, 죽책竹冊, 엽책葉冊, 서책書冊, 서적書籍 그외 첩책, 접책, 보책 등이 있다. 이토록 다양한 명칭'이 있었다는 말은 곧 중국 문자 문화가 얼마나 발달했는지를 알 수 있는 대목이다. 그런데 막상 가장 화려한 문자 문화'를 자랑했던 중국은 국민 연간 독서량은 5권이 안 된다. 책을 지독하게 안 읽는 한국보다도 더 안 읽는다. 이것 또한 참... 신기한 구석이다. 화려한 문자 문화를 자랑했던 중국과 유네스코 기록 문화 유산에 한글이 등록된 대한민국은 둘 다 OECD 가입국 가운데 연간 독서량이 꼴찌'이다. 대, 다, 나, 다 !
![](http://image.aladin.co.kr/Community/paper/2013/0917/pimg_749915104898199.jpg)
瓜 : [ 오이 과 ]
< 위저드 베이커리' > 를 쓴 구병모 작가'가 이번에 < 파과 > 라는 소설을 내놓은 모양이다. 처음에 나는 < 파괴 > 라고 읽었다. ' 제목 한 번 진부하군 ! ' 이라고 하려다가 다시 보니 제목이 < 파과 > 였다. " 파라과이'를 줄인 말도 아니고.... 음, 제목 한 번 생경스럽군 ! " 사전을 찾아보니 파과(破果)다. 흠집이 난 과실'이라는 뜻이다. 아마 구병모 작가'가 아니었다면 대한민국 국민 대부분은 파과'라는 뜻을 모르고 지나갈 뻔했다. 이 자리를 빌어 고맙다는 말을 하고 싶
지는 않다. 순우리말도 아닐 뿐더러 흔히 사용하는 생활 입말도 아니니 굳이 어색한 한자 조합으로 이루어진 < 파과 > 를 굳이 쓸 일'은 없을 것이다. 제목은 소설을 압축하는 상징성을 갖추고 있으니 작가가 소설 제목으로 < 파과 > 라고 하는 이유가 있을 터이지만, 굳이 이처럼 생경스러운 제목을 선택한 이유가 있을까 싶다. 제목 자체만 놓고 보면 뭔가 꼰대스럽다. 그래서 이 책은 읽지 않기로 했다. 책은 읽지도 않은 채 소설 제목만 가지고 시비를 거는 경우는 알라딘 서재 역사상 최초이지 싶다. 소설 제목을 짓는 것은 소설가 마음이듯이 제목만 가지고 빈정 상해서 책을 안 읽겠다고 우기는 것도 독자 마음이다. 사전을 뒤지다가 재미있는 단어를 알게 되었다.
破果에서 果가 아닌 [ 오이 과 ] 를 사용한 파과(破瓜) 다. 破瓜之年'을 줄인 말이다. 두 가지 뜻으로 쓰이는데 그 뜻이 전혀 다르다. 하나는 ① 나이 16세인 여자를 뜻하고 다른 하나는 ② 나이 64세인 남자'를 뜻한다. 이유는 다음과 같다. 오이 과瓜'를 쪼개면 八 이 두 개'가 나오는데 이를 더하면 16이니 < 16세 소녀 > 를 뜻한다. 그런데 대상이 남성일 때는 이상한 논리가 적용된다. 여성에게는 8+8 = 16이란 공식을 선언하고, 남성에게는 8 × 8 = 64'라는 편법을 사용한다. 여성은 더하고 남성은 곱한다 ! 한참 웃었다. 이 남근 중심적 사고'라니..... 파과'는 또 다른 뜻도 있는데 " 성교에 의하여 처녀막이 깨진 상황 " 을 그리 부르는 모양'이다.
또, 웃었다 ! " 재미, 아... 있다 ! " 지금이야 결혼 적령기'가 20대 후반에서 30대 초'로 늦어졌지만 옛날에는 결혼 적령기를 16세로 보았다. 그 옛날, 춘향이 나이'가 16세였으니 지금의 기준으로 " 머리에 피도 안 마른 년이 발라당 까졌어... " 라고 비난하면 안 된다. 그 시절에는 16세에 임신을 하고 아이를 낳았다. < 로미오와 줄리엣 > 에서 줄리엣도 나이가 얼추 15세 정도는 되었을 나이이다. 우리가 흔히 혼기가 꽉 찬 딸을 두고 " 과년한 딸... " 이라고 부르는데, 이때 < 과년 > 은 결혼하기에 적당한 여자의 나이'를 뜻한다. 여기서 < 과 > 가 바로 < 瓜 : 오이 과 > 다. 이 말을 뒤집어보면 여자는 16세에 첫 번째 섹스를 경험'을 하게 된다.
아, 아아아아아아 ! 16세 소녀와 오이(瓜) 그리고 과일(果) 라니.... 사실 오이는 테스토스테론이 왕성할 시기인 16세 소년이 꿈꾸는 음란한 판타지'에 자주 나오는 과일'이다. 솜털 보송보송한 소년들이 여성이 자위하는 모습을 상상할 때 딜도 대용으로 등장하는 대표적 물건이 오이가 아니었던가 ? 오이는 확실히 성적인 오브제'이다. < 오 > 와 < 이 > 는 그 모양이 촉촉하고 검은 동굴을 연상케 하고, 또한 깊고 푸른 밤 운우지정을 떠올리게 만드나니, 아아아아아아 ... 자꾸 이상한 상상을 하게 만드는구나.
< 파과지년' > 이라는 사자성어에는 16세 소녀와 64세 노인'을 동일한 카테고리로 묶는 것을 보면 늙은 수컷의 성적 욕망이 읽힌다. 당시 이러한 합궁은 양반 사회에서는 흔한 조합이 아니었던가 ! 이러한 흔적 때문이었을까 ? 비속어로 " 여자를 따먹다 ! " 로 치환하는 식욕과 성욕의 혼합은 이미 오래 전부터 이어져 내려온 삐딱한 남근적 판타지'였던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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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blog.aladin.co.kr/749915104/6403155 : 욕망하는 알파'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