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것과 '한 것.

 

 

문학사상사'가 무라카미 하루키'를 잡은 것은 출판사 입장에서 보면 로또 당첨이나 마찬가지'였다. 잘 키운 스타 하나'가 연예 기획사 전체를 먹여살리는 것과 같다. 한때 하루키는 문학사상사가 심혈을 기울인 울트라 슈퍼스타'였다. 마음의 양식인 책을 논하는데 느닷없이 생긴 꼴'을 이야기해서 미안하지만, 책 만듦새'가 박색이어서 사고 싶지 않은 것들이 동문선과 문학사상사'에서 나온 책들이다. ( 잠시 샛길로 빠지자 ! 출판사 동문선 표지 디자인은 말할 것도 없고 마분지를 뜯어다가 페이지로 활용한 듯한 두꺼운 종이 재질은 제본에 사용된 종이 종류가 무엇일까, 라는 궁금증을 유발하게 만든다. 농담이 아니라 종이학을 만들기엔 두껍고 딱지를 만들기엔 딱이다, 딱이다, 딱이다.  대다나다 ! )

" 발간 후 20년간 지속적인 베스트셀러 " 라는 띠지 광고를 사용하는 < 상실의 시대 > 는 유감스럽게도 디자인은 변함이 없다. 좋게 말하면 꿋꿋하고 나쁘게 말하면 방치'다. 신경 안 써도 알아서 잘 팔리니 굳이 판매 전략따위를 고민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눈 코 입도 그리기 싫어서 실루엣만 그려넣은, 이 촌스러운 디자인'은 < 해변의 카프카 > 에서도 그대로 쓰인다. 마치 지우개를 사용해서 사람 모양으로 지운 것 같다. 이 정도 실력을 선보이려면 초등학생의 미적 감각이라면 충분하다. < 해변의 카프카 > 라는 책'이 나와서 하는 말인데 제 13장 " 절대 고독의 세계 " 에서 주인공은 텅 빈 도서관 열람실에서 나쓰메 소세키 소설을 읽고 있다.

그는 소세키 전작'을 읽을 요량으로 전집'에 도전하는 것이다. 나는 이 < 13장 > 을 읽으면서 꽤나 오랫동안 웃었다.  페이지 열댓 정도 되는 분량에서 사용된 단어를 보면 일본 소설이 아니라 서양 소설 같다는 착각이 든다. 샌드위치, 훈제 연어와 크레송, 슈베르트, 로드스타, 와인'이라는 단어가 쉴 새 없이 쏟아진다. 등장인물들은 대부분 " ① 커피포트에 담은 블랙 커피를 머그잔에 따라 마시 " 며 스포츠카를 몬다. " ② 브레이크와 엑셀을 교대로 밟는 횟수가 많아지고, 기어가 세컨드와 서드 사이를 왔다갔다 " 하며 운전을 하는데 " ③ 오른손은 핸들 위에, 왼손은 짧은 시프트놉 위에 있다 " 는 문장을 보면 반은 일본어와 반은 영어'다. 전형적인 보그 병신체'다 !   

나는 하루키 문장을 볼 때마다 장근석이 작성한 싸이월드 미니 홈피 글이 생각난다." 르망에서의 레이싱은 내게 큰 익사이팅한 흥분감을 주었고, 테라스에 누워 앙드레 가뇽의 연주를 플레이하는 것를 들으며 마신 와인은 나를 은은하게 만들었다. 다시 한 번 파리에 간다면 한 손에는 와인병을 들고 다른 손에는 뉴스페이퍼를 들고 샹젤리제 스트리트 거리를 워킹하며 뉴욕 헤럴드 트리뷴이라고 샤우팅하며 외치고 싶다 " 길거리에서 병나발 부는 풍경을 이렇게 근사하게 묘사하는 (장)근석이의 근성에 찬사를 보내고 싶을 지경이다. " 글로리 오브 영광 " 이다. 내가 하루키 문장과 장근석 문장이 닮았다고 우기니 하루키 팬 입장에서는 기분이 나쁠지는 모르겠지만 물론 차이도 크다.

당시 장근석은 철없을 때 쓴 글인 반면  하루키는 철들고도 그렇게 쓴다 ! 아이구야, 맙소사......  하루키 소설을 읽을 때마다 자꾸 덜 익은 열무김치에 고추장 넣고 비빈 비빔밥 생각이 간절하다. 사람들은 하루키 소설 문장을 무국적 글쓰기'라고 하지만 내가 보기엔 잡것, < 雜 > 이다.  하여튼 문학사상사 책 표지 디자인은 하루키 문장만큼이나 구리고 후지다. 문학사상사에서 나온 소세키의 대표작 < 나는 고양이로소이다 > 와 민음사에서 출간된 같은 책을 비교 평가'하면 답이 나온다. 그 고양이가 그 고양이이나 어째 그 고양이가 그 고양이와는 다르다. 문학사상사 표지 주인공은 고양이가 아니라 전설 속에서 등장하는 해태' 같다. 내게는 출판사 < 문학사상사 > 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인물이 바로 무라카미 하루키'인 반면,

 출판사 < 범우사 > 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인물이 콜린 윌슨'이다. 그가 24살 때 쓴 < 아웃사이더 > 는 압도적 걸작'이었다. 변변한 학벌이 없는 그가 24살에 작성한 이 평론집은 기적에 가까웠다. 그가 앙리 바르뷔스의 < 지옥 > 을 이야기하면서 인용한 문장이 좋아서 나는 이 문장을 아이스크림도 아니면서 달달 외우고는 했다. " 나는 이렇다 할 재능도 없고 이룩해야만 할 사명도 없으며, 반드시 전달하지 않으면 안될 감정도 없다. 나는 가진 것도 없으며 무엇을 받을 만한 가치도 없다. 그런데도 나는 무언가 보상'을 바라고 있다. " 아내가 예쁘면 처가댁'을 향해 절을 한다고 했던가 ?!  범우사에서 출간된 책들도 디자인이 그닥 마음에 들지는 않지만 양서'를 많이 보유했던 성실한 출판사'로 기억하고 있다. 종종 헌책방에서 일반적인 판형보다 약간 작은 범우사 책을 발견하게 되면 짝사랑했던 옛 애인을 만난 것 같아 기분이 좋아진다.

데이비드 린의 < 아라비아의 로렌스 > 를 볼 결심을 하게 된 이유도 < 아웃사이더 > 때문이었다. 어찌나 입에 침이 마르도록 T.E 로렌스에 대한 칭찬을 했던지 안 보고는 못 견딜 지경이 되어 결국 추운 겨울에 < 아라비아의 로렌스 > 를 보게 되었는데, 아.... 시부랄 ! 이 영화는 타르코프스키의 < 거울 > 과 함께 내 인생에서 가장 위대한 영화'가 되었다. 이 영화를 보고 나서 로렌스가 쓴 < 지혜의 일곱 기둥 > 도 때마침 출간되었기에 미리 사두었었다. 이래저래 < 아웃사이더 > 를 길라잡이 삼아서 책에서 다룬 책을 찾아서 읽었다. 그런데 젊은 듣보잡 콜린 윌슨의 벼락 같은 성공'은 문학판 꼰대들에게 제대로 찍힌 모양이었다.

못 배운 놈이 쓴 글이 배운 놈이 쓴 글보다 월등히 훌륭한 성과물을 냈으니 꼰대들 심기가 불편했으리라. 꼰대가 할 수 있는 것은 쪼잔한 복수가 고작.  < 아웃 사이더 > 이후의 작품들에 대하여 그들은 철저하게 콜린 윌슨을 무시했다. 콜린 윌슨이 못 배웠다고 무시당한 케이스였다면, 한국에는 무학에 가까운 김기덕'이 배운 놈들에게 무시당했다.  그것 외에도 둘은 묘하게 통하는 부분이 있다. 콜린 윌슨 또한 김기덕처럼 살인과 섹스에 관심이 많았다. 나는 콜린 윌슨의 이상한 행보가 무척 마음에 들었다. 하지만 지금은 아쉽게도 내 수중에 콜린 윌슨이 쓴 책은 한 권도 없다. 공교롭게도 그가 쓴 책을 사람들에게 빌려주었는데 한 권도 회수하지 못한 까닭이다. 내 친구들아, 이 글을 읽고 있다면 내 메시지를 잘 들으렴 !

" 개새끼들앙, 내 책 빌려갔으면 얼렁 돌려줘라 !  " 읽은 책을 다시 사야 한다는 것이 찜찜해서 계속 미뤘으나 적어도 < 아웃사이더 > 는 구매를 해야 할 것 같아서 일단은 보관함에 넣어두었다. 그리고는 여러 책을 한꺼번에 구매할 요량으로 날을 기다리고 있었는데 어제 우연히 하루키에 대한 리뷰를 작성하려고 책장을 뒤지다가 그만 < 아웃사이더 > 가 꽂혀 있는 것을 발견했다. 하, 신기했다. 몇 년 동안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어서 분실된 것으로만 알고 있었는데 책장 모퉁이에 얌전히 꽂혀 있다니. 지금 < 아웃사이더 > 를 읽고 있는 중인데 여전히 끝내준다 ! 콜린 윌슨이 내린 아웃사이더에 대한 정의는 " 헛것 " 을 보는 능력을 갖춘 사람'이다. 아웃사이더는 너무 깊게 너무 많은 것을 본다.

인사이더'가 가시적 영역 안에서 사물과 현상을 바라본다면, 아웃사이더는 비가시적 영역에 떠도는 무수한 헛것'들을 본다. < 광인 > 은 그런 의미에서 전형적인 아웃사이더'이다. 롤랑 바르트는 < 사랑의 단상 > 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 나는 한결같이 나 자신이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나는 미치는 것이다. 나는 변하지 않기(consiste) 때문에 미치는 것이다. " 광인이란 헛것을 보는 존재인데 롤랑 바르트적 시선으로 보자면 정상적인 존재는 잡것 雜'에 가깝고,  비정상적인 존재는 본질 純'에 가깝다. 변하지 않는 존재가 광인'이다. 그들은 비가시적인 것들과 대화를 하고 바라본다.  < 헛것 > 이야말로 비가시적 영역의 대표적 존재가 아닐까 ? 아웃사이더'라는 제목을 내 식대로 정하자면 " 시력이 징허게 좋은 녀석들 "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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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다맨 2013-09-27 21: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덕분에 콜린 윌슨이라는 멋진 저자를 알게 되었네요. 꼭 읽어보겠습니다.
곰곰발님 쓰신 글 보면서, 문득 에릭 호퍼가 생각났습니다. 에릭 호퍼야 주류로부터 크게 무시 받은 것 같지는 않습니다만, 그 역시 변변한 학벌 없이 꾸준한 독서와 고된 육체 노동을 하면서 학문 활동을 이어 나갔죠.
어쨌든 한국이나 미국이나 배운 분(먹물)들이 하는 짓은 하나같이 비슷한 듯합니다. 누군가를 배제시키고, 무시하려는 모양새가 때로는 정치인의 그것보다 더 얍삽하게 느껴지네요.

곰곰생각하는발 2013-09-28 01:54   좋아요 0 | URL
뭐 워낙 뛰어난 책이어서 제가 아니어도 누군가가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찬을 했을 겁니다.
올라온 서평을 보니 역시 칭찬이 자자하군요... 흠흠.
에릭호퍼도 그렇고 콜린 윌슨도 그렇고... 출판사들은 책을 출간할 때
선입견 같은 것은 없었나 봐요. 대한민국이었다면 그렇게 순수하게 책을 출간했을까 의문입니다.
맹신자들도 참 좋더군요....

iforte 2013-09-27 23: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또다시 오랫만예요! 모처럼 아침에 휘닥 서재글 읽을 시간이 났네요. 덕분에 훗날 읽을 요량으로 지혜의...을 영문판 킬들버전으로 사두었네요. 단돈 2불에 전권을 말이죠. 해외에 있어 좋은 점은 싼값에 영문판 책들을 구매할 수 있다는거죵. 언제 읽을지는 모르겠지만 암튼, 일단은 사두는걸로. 곰발님 추천해서 독이 되는 일이 있겠지 싶어서요. 알라딘은 매상 올려주는 곰발님께 포상금, 뭐 이런거 안주나? ㅋㅋㅋ
또 쟐 계시구요. 담에 또.... 헤헤....

곰곰생각하는발 2013-09-28 01:57   좋아요 0 | URL
하상 오랜만에 오시니 더욱 반갑네요. 포르테 님.
불철주야 열심히 공부하시다가는 이거 최우등으로 졸업하시는 거 아닙니까 ?
그나저나 미국은 전자책이 굉장히 다양해요. 값도 싸고 말이죠. 2불이라니.....
이 어마어마하게 두꺼운 책이 2불이라니...흑흑...
생각해보면제가 꽤 삐끼를 잘하는 거 같아요. 사서 안 읽으면 뭔가 손해보는 것처럼 글을 쓰잖아요..ㅎㅎㅎㅎ

포스트잇 2013-09-28 10: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라비아의 로렌스', 충무로 옛 대한극장에서 마지막(?)으로 70mm 상영을 했죠. 데이비드 린 감독...사막에서 몸에 착 달라붙는 하얀 티를 입고 서있던 모습이 생생하군요. 제가 본 린 감독의 영화들은 다 걸작들이라고 생각합니다^^. '라이언의 딸'은 특히. 오랜만에 추억을 떠올리며...


소세키의 '나는 고양이로소이다'를 구매하려고 둘러보다가, 콜린 윌슨까지 만나네요. '정신 기생체' 2/3 정도 보다만 게 전분데 '아웃사이더'도 꼭 보고 싶네요. 땡스투~

곰곰생각하는발 2013-09-28 16:13   좋아요 0 | URL
아라비아의 로렌스'는 정성일 말마따나 정망 극장 가서 보아야 합니다. 트랜스포머 이런 건 그냥 모니터로 봐도 되요. 그러나 정말 아라비아는 길쭉한 스크린으로 봐야 사막의 풍경을 제대로 볼 수가 있어요....

정신기생체는 ㅁ 제미가 없나 봐요 ? 전 안 읽었습니다. 콜린윌슨은 소설가 타입은 아닌 거 같아요..ㅎㅎㅎ
아웃사이더 꼭 읽어보십시요.. 격이 확실히 다릅니다.

yamoo 2013-09-28 23: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재밌게 잘 읽었어요!ㅎ 범우사를 보니, 반갑네요. 제가 처음으로 전집류를 사서 읽은 게 범우사 입니다. 특히 범우고전선과 범우사상신서는 줄기차제 사 모았지요. 프롬 책이 많이 번역되어 한 두 권 사다 보니 거의 다 사서 읽게 되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범우문고본도 아주 즐겨 애독하던 문고본인데 책값이 2천원을 넘기면서 안사게 됐습니다..ㅎㅎ 콜린윌슨의 <아웃사이더>도 범우사상신서 중 한권있지요. 아웃사이더 읽고 <잔혹>과 <살인의 철학>, <우주의 역사>를 차례로 구입했네요^^

근데, 정말 문학사상사는 책 표지 디자인에 신경을 써야할 듯해요. 몇 권을 가지고 있는데, 정말 디자인이 헬이라는^^;;

시간이 오래 지나서야 알게 됐지만, 범우사 번역이 그리 좋지가 않더군요. 특히나 모노의 <우연과 필연>은 오역과 비문이 넘실되는...그야 말로 최악이었지요..ㅎㅎ 문예출판사 사상신서도 모았었는데, 범우사보다 번역이 더 헬이었습니다..ㅎ

곰곰생각하는발 2013-09-29 00:42   좋아요 0 | URL
야무님 덧글 읽으니 옛생각이 막 나는군요. 중학교 때 이상한 놈을 친구로 두었는데
그놈이 그렇게 책을 미친듯이 읽더군요. 그때 그놈은 이미 니체를 읽고 있었는데
그것에 영향을 받아서 저도 경쟁적으로 책을 읽고는 했죠.
그때 주로 읽은 책이 바로 범우사 책입니다. 범우고전과 범우사상신서'.....
그때는 범우사가 지금의 민음사 레벨이었을 것니다.
책 끝에 보면 목록 나오잖아요 ? 그거 서로 읽은 것 체크해서 적게 읽은 놈이
짜장면 내기'를 자구 해서 전 범우사를 독파했습니다. 제 누나 세대들이
삼중당 세대였다면 제 또래는 범우사 세대였던 것 같아요. 지금은 민음사 세대라고 해야 할까요 ?
그때 닥치는 대로 범우사만 읽어서 번역이 후졌나 안 후졌나는 아예 생각이 안 나네요..ㅎㅎㅎㅎ
그냥 친구놈 이겨보겠다고 범우사 책만 읽었던....ㅎㅎㅎㅎㅎ

가끔 헌책방 가면 범우사 책을 만나게 되는데 자꾸 사고 싶어요. 같은 책이있지만서도 말이죠...
하여튼 야모님 덧글 보니 갑자기 옛 생각이 나네요..

콜린 윌슨'이 문학보다는 잡학으로 빠졌는데 전 이 행보가 꽤 마음에 듭니다.
살인의 추억도 좋앗고 ( 아니 철학..) 현대ㅏㄹ인백과, 불가사의 대백과 그런 책들도 아주 흥미쥔쥔하게 읽었습니다.요즘은 어째 범우사가 없는 거 같아요 ? 망했나 ?! 갑자기 급 궁금해지네요..

히히 2013-09-29 23: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저는 소설을 읽다 보면
작가가 자신의 능력을 갱신하기 위하여 죽을 똥 살 똥 쓴 글인지
고상함을 읽지않고 동정어린 눈으로 세상을 초연히 대하고 있는 글인지는
분간이 되더라구요.
일체의 사물을 이해한 뒤에 오는 편안한 글이 좋더이다.

곰곰생각하는발 2013-09-30 17:29   좋아요 0 | URL
일체의 사물을 이해한 뒤에 오는 편안한 글을 쓰는 작가의 작품은
무엇이 있을까요. 소개를 좀 시켜주십시요..

엄동 2013-10-01 15: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루키와 장근석 ㅋㅋㅋ

그리고 그들의 보그병신체! ㅋㅋㅋㅋ

아 재미져요 증말~

곰곰생각하는발 2013-10-01 18:03   좋아요 0 | URL
근석이와 하루키 팬들이 보면 속 뒤집어질 이야기입니다..ㅎㅎㅎ.
 

 

 

 

칼과 꽃   

 

 

 

 

 

 

 

  

 

 

내가 가장 좋아하는 순우리말'이 < 꽃잠 > 이다. 결혼한 신랑 신부가 처음으로 함께 자는 잠'이 바로 꽃잠이다. 아, 좋다 ! < 첫날밤 > 을 꽃잠'이라고 한 조상의 심성'이 아름답도다. 이 꽃잠'에는 " 깊이 든 잠 " 이라는 뜻도 있으니 꽃잠의 반대말은 쪽잠'이거나 칼잠'이라 할 수 있다. 침대는 가구가 아니라 과학이라고 우기는 에이스 침대에서 편안한 잠을 자면 꽃잠이고, 나처럼 수면제에 의지해서 잠을 자면 불편한 잠이 된다. 꽃잠과 칼잠이다.  불면증 때문에 날마다 단잠 아닌 쪽잠'을 자는 내게 발리'에서 돌아온 친구는 황홀했던 꽃잠에 대해 설명하고는 했다. 놀라운 사실은 첫날밤이 곧 첫경험'이라는 것이었다. 그런데 그보다 더욱 놀라운 사실은 첫날밤이 곧 첫경험인 아내'가 황홀한 오르가슴'도 느꼈다는 것이다. 나는 " 여자가 첫경험 때 오르

가슴도 느끼는 경우는 홈런성 타구가 내야 뜬 공'으로 아웃되는 것만큼이나 드물다네. 사랑하는 남편을 위해 아내는 종종 연기를 하고는 하지 ! " 라고 말할까 하다가 남의 집 속사정에 지나치게 오지랖을 떠는 거 같아서 대신 아양을 떨며 덕담을 던졌다. " 첫날밤이 곧 첫경험이라니, 더군다나 첫경험'에서 서로 황홀한 < 아 > 를 쏟아내다니 대다나다 ! 너희들 천생연분이다 . 아, 아름다운 신혼이구나. "  남근에도 뼈가 있다고 믿을 정도로 순결한 놈 !  말이 좋아 순수'이지 나쁘게 말하게 존나 무식'한  것이다. 남성들은 생각보다 여성의 몸에 대한 지식이 부족하다. 남자로 태어났으니 생래적 한계'를 가지고 있을 터이지만 그래도 몰라도 너무 모른다. 나 또한 남성이니 여성의 오르가슴'에 대해 알 턱이 없다. 솜씨 좋기로 소문난 논픽션 작가 메리 로취

가 쓴 < 봉크 > 는 남성들이 여성의 성'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이 거의 없다는 사실을 가르쳐준다. 우선 페니스 삽입만으로 오르가슴에 도달하는 여성은 전제의 20~30% 밖에 안 된다. 이 말은 변강쇠'라고 해도 질 삽입 섹스'만으로는 여성을 오르가슴에 도달하게 만들지 못한다는 뜻이 된다. 여성의 주요 성감대는 < 질' > 보다는 양이 아니라 < 클리토리스' > 다. 쉽게 말해서 꼬마 페니스'라고 생각하면 된다. 실제로 클리토리스는 남성 성기처럼 흥분하면 피가 쏠려서 평소보다 2배 정도 팽창한다고 하니 동종 기관인 것은 확실하다. 발기한 남근을 뜻하는, 라캉이 매우 좋아하는 단어인 phallus 는 발기한 남근'과 여성 음핵(클리토리스) 모두를 뜻한다.  2,30%의 여성이 질 삽입 섹스로도 오르가슴에 도달할 수 있다면 70%에 달하는 대부분의 여성들

은 클리토리스를 자극해야 오르가슴'에 도달한다. 그리고 질 오르가슴은 사실 클리토리스 자극에 의한 오르가슴이다. 여성 성기는 모양이 모두 천차만별인데 음핵과 질 사이의 간격도 개인 차에 따라 제각각 다르다. 음핵과 질 사이가 가까운 사람은 페니스 삽입 섹스 시 클리토리스를 마찰시키기 때문에 그에 따른 자극으로 오르가슴에 도달하는 것이다. 평균 질과 음핵 사이가 2.5센티미터 안이면 페니스 삽입 섹스만으로도 만족을 느낄 수 있지만 밖이면, 음..... 성적 만족을 느끼기 쉽지 않다. 실제로 나폴레옹의 후손인 마리 보나파르트'라는 여성은 질과 음핵 간의 거리가 너무 멀어서 오르가슴을 느낄 수 없다고 판단하여 간격을 좁히는 수술을 한 기록이 있다. 하지만 이 수술은 그리 만족스러운 결과를 얻지는 못했다고 한다. 그녀는 내내 우울했다. 시

대를 잘못 만난 탓이다. 만약에 마리 보나파르트가 베티 도슨과 동시대 사람이었다면 베티 도슨'이 쓴 < 네 방에 아마존을 키워라 > 에서 해답을 얻었을 것이 분명하다. 베티 도슨'은 자위'로 여성을 해방시키자고 주장하는 성 교육자이다. 그녀가 여성 해방을 위해 적극 권장한 것이 바로 클리토리스를 자극하는 자위'다. 베티 도슨은 그러니깐.... 여자 하루키'다 ! 그녀는 지금도 지구 반대편에서 바디섹스워크숍'에서 수많은 수강생을 상대로 자위로 명상하는 법'을 가르치고 있을 것이다. 농담이 아니라 실제로 그녀는 자위를 하면서 명상할 때 만트라를 주문처럼 외운다고 한다.  자위를 뜻하는 masturbation 과 명상을 뜻하는 meditation 이 발음상 비슷하니 얼렁뚱땅 그럴싸하게 만든 것 같다. 이 자위 명상 이론'은 빌헬름 라이히'가 만든 오르곤 축적

기'만큼이나 생뚱맞다. 그녀가 진정한 페미니스트'인지 아니면 힐링 코치로써의 장사꾼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이 책은 여성 성기'가 매우 다양하다는 정보를 제공했다는 점만으로도 읽어볼 만한 책이다. 포르노에서 흔히 보여주는 성기'는 모두 엇비슷하지만 사실 이 세상에는 800만 가지의 모양새를 가진 여성 성기'가 존재한다. 지금 이 글을 쓰면서 수많은 여성의 성기를 생각하니, 아...... 후끈 달아오른다. 아, 촉촉하고 검은 동굴 !  재미있는 사실은 여성 성기를 정확히 볼 수 있는 사람은 여성이 아니라 남성'이라는 점이다. 그런데 정작 남성은 여성의 성'에 대해 아무것도 모른다. 더군다나 대한민국 남성은 포르노 구매율 세계 1위 강국인데 정작 여성 오르가슴에 대해서는 거의 모른다. 물개 응응 먹거나 뱀 잡아먹고 사정 시간만 연장하면 최고의 퀄

리티'라고 생각한다. 어디서 본 것은 있어서 G스폿 공략을 하거나 클리토리스를 거칠게 마찰시키는데 사실 이런 식으로는 여성을 만족시킬 수 없다. 성 만족도'를 보면 게이 커플과 레즈비언 커플이 압도적으로 높게 나온다. 그들은 섹스 시 서로 의견을 교환하며 상대방이 좋아하는 성감대를 희롱한다. 느리고 부드럽게 말이다. 진정한 운우지정'이라 할 만하다. 한국 사회는 여성이 자위하는 것을 금기시하는 경향이 있는데 그럴 필요 없다. 당신을 만족시킬 수 있는 것은 남근이 아니라 클리토리스'다. 설이 길어졌다. 칼잠은 인생을 불행하게 만들고 꽃잠은 인생을 행복하게 만든다. 깊이 든 잠'은 몸에 좋은 음식과 같고  만족스러운 섹스가 끝난 후 깊이 든 잠'은 몸에 좋은 보약과 같다. < 잠 > 이라는 1음절 앞에 < 꽃 > 이라는 식물성이 더해지면 행복

하고,  반대로 < 칼(갈치)' > 이라는 동물성'이 더해지면 불행해진다. 그거시 바로 인생이다. 칼과 꽃, 인생 한 끗발'이라는 말이다. 21세기 대한민국 비정규직 노동자는 대부분 갈치처럼 칼잠을 잔다. 서서 잠을 잔다. 미래는 불투명하고 현재는 불공정하다. 이 생각 저 생각 하다보면 새벽 늦게까지 잠을 못 이루니 늘 쪽잠을 자기 마련'이다. 이제는 상류와 삼류'를 구별하는 기준은 잠과 이(치아) 를 보면 답이 나온다. 꽃잠을 자느냐 칼잠을 자느냐에 따라 상류와 삼류로 나뉘고, 치아가 가지런하고 미백인 사람은 상류이고 누렇고 덧니 난 이빨은 삼류가 된다. 당신의 이는 치아인가 이빨인가 ? 이것 또한 한 끗발이라. 인생은 이래저래 한 끗발이다. < 자위 > 에 대한 이야기를 하다가 느닷없이 노동'에 대해 일갈하니 " 고갱님, 마마마많이 당황하셔쎠요 ? "

하지만 독자여, 이해해 달라.  난 원래 그런 남자다. 그냥 섹스와 노동'에 대한 글이라고 기억하자. 요즘은 세상이 하, 수상하여 노동이라는 낱말을 자주 사용하면 국정원에서 감찰을 하니 섹스와 근로'라고 정정하겠다. 이 글은 섹스와 근로'에 대한 이야기'다.

 

 

 

 

 http://blog.aladin.co.kr/749915104/6397588 : 칼잠에 대한 이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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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동 2013-09-27 11: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간만에 정독했네 ㅋㅋ :D


어여쁜 꽃잠"이라는 단어로 시작해

오르가슴"과 자위"에 이르기까지!
(오 미쁘기 그지 없습니다)


'맨처음'을 의미하는 꽃등"에

'봄철추위'의 꽃샘"과 '봄바람'의 꽃바람"까지.


처음의 순수하고 투명한 느낌의 "꽃" 단어에

꽂히는 금요일이네요, 꽃곰발님 ㅋ

곰곰생각하는발 2013-09-27 15:39   좋아요 0 | URL
간만에 정독이시군요. 앞으로는 자주 정독 바랍니다.
농담이고요. 섹스의 순우리말이 밤일'이니 섹스 이야기하면서
노동으로 끝맺는 것도 그리 나쁘지는 않군요..
허허...
그나저나 어제는 정말 좀 춥더군요. 씐납니다.
저는 추운 날이 좋거든요. 아주 잘 견딥니다.

만화애니비평 2013-09-28 14: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인지 그녀인지 알 수 없는 분이 문득 생각납니다.. 혹은 2개 다 가질 수 있는??

곰곰생각하는발 2013-09-28 16:16   좋아요 0 | URL
그 새끼 여전히 뻥카 치며 잘 놀고 있더군요.... 이런 쌍놈들 때문에 네이버를 떠나게 됩니다.

히히 2013-09-29 23: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애미가 새끼 젖을 물리며 칼잠을 자도 꽃잠을 잔 듯이 개운하기도 합니다.
타인의 칼잠을 나의 꽃잠으로 미화시키는 저는
진정으로 인생이 무엇인지 깨닫지 못하는 머저리입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3-09-30 17:30   좋아요 0 | URL
아닙니다. 히히 님이야말로 벼린 칼 끝처럼 날카로운 시선을 가지고 있습니다.
덧글 세계의 셰익스피어님..
 

 

 

 

 

벽과 바닥 그리고 천정'에 대한 고정관념.

  

 " 아침에 눈 뜨자마자 제일 먼저 보이는 사람이 당신이었으면 좋겠어... " 라는 달달한 대사'를 드라마에서 종종 듣고는 한다. 멋진 프로포즈이기는 하나, 사람이 처음 본 대상과 애착 관계를 형성하는 거위 새끼도 아니고 뭔 놈의 < 눈 뜨자마자 타령 > 인가 ! 신혼 3년만 지나봐라. 제일 먼저 보게 되는 것은 알람 시계'다. 나 또한 아침에 눈 뜨자마자 보게 되는 것은 시계'였다. 불면증은 내 오랜 병, 새벽이 되어서야 가까스로 잠이 드니 다음날 출근 걱정에 깊은 잠을 잘 수도 없다. 아침에 천근만근 내려앉은 눈을 뜬다는 것은 차라리 고통에 가까웠다.  1분이라도 더 자고 싶다는 욕심에 벽에 걸린 시계를 자주 보게 되는데 방 구조상 상체를 일으켜  세우거나 몸을 비틀어야 시계를 볼 수 있었다.

몸이 너무 피곤하다 보니깐 사소한 움직임조차도 고통스러웠다. 곰곰 생각했다. 눈 뜨면 시계를 바로 볼 수 있는 위치는 어디일까 ? 다음날, 벽에 걸린 시계를 떼어다가 침대 머리맡 바로 위 천정에 걸어 고정시켰다.  액자를 벽에 걸듯이 말이다. 눈 뜨면 가장 먼저 보이는 것은, 아... 시계'였다. 상체를 일으켜 세울 필요도 없고, 탁상용 시계를 찾아 손을 더듬거릴 필요도 없었다. 이불 속에서 꼼짝하지도 않은 채 눈만 뜨고도 시계가 보였다.  친구 놈은 발리로 신혼 여행 다녀와서 < 꽃잠 > 잔 얘길 하는데 나란 놈은 이곳에서 < 쪽잠 > 에 대해 말해야 하다니 감개가 존나 무량하다.  친구가 결혼을 하여 아침마다 퉁퉁 부은 아내의 얼굴을 질리게 볼 동안 나는 시계만 질리게 보았다. 

▷ 꽃잠 : ( 순우리말 ) 결혼한 신랑 신부가 처음으로 함께 자는 잠.

아침에 눈 뜨자마자 제일 먼저 보이는 사람이 당신이었다고 고백했던, 멋진 프로포즈로 로맨틱 가이'라는 칭찬을 받던 친구는 우스갯소리를 했다. " 신혼은 딱 1년이더군. 아침에 눈 뜨자마자 마누라 얼굴이 보이면 화딱지가 나기 시작해.  부엌에서 아침 준비를 해야 할 시간에 마누라가 침대에서 자고 있다고 생각해 보라고. 그날 아침 밥은 물 건너 간거지. 침대에서 눈 뜨자마자 아내 얼굴이 보이면 그때부터는 불행한 결혼 생활'이 시작되는 거라네. " 아침에 눈 뜨자마자 시계와 마주치는 나는,  아침에 눈 뜨자마자 침대에서 잠을 자고 있는 잠꾸러기 아내를 둔 친구의 말을 듣고는 박장대소했다. 그래도 눈 뜨자마자 파란 하늘이 보이는 사람'보다는 행복할 것이다. 

오래 전, 술에 취해서 화물차 트럭 위에서 파란 방수포를 이불 삼아 잠을 잔 적이 있다. 그날 아침에 눈을 떴을 때 보이던 파란 하늘을 아직도 기억한다. 정말..... 판타스틱했다. 시계를 천정에 걸어두는 것은 생각보다 근사하다. 훌륭한 인테리어 배치'가 된다. 뭔가 아방가르드的이지 않은가 ! 물론 부작용도 따른다. 첫날 눈을 떴을 때는 천정을 벽이라고 생각하고는 서서 잠을 잤다고 착각했다. " 가지가지하는구나. 아... 이제는 내가 몽유병'을 앓고 있구나 ! " 하지만 이 문제는 시간이 해결해 줄 것이다. 여러분들도 한번 시도해 보기를 바란다. 시계는 항상 벽에 걸어두어야 한다는 고정관념을 버리고 천장은 반드시 조명 기구만 달아야 한다는 생각을 버리면 좋은 인테리어 공간을 만들 수도 있다.

▷ 에피소드 : 나는 망할랑 말랑 한 독립문의 허름한 산부인과'에서 태어났다. 간호사가 세상에 막 태어난 내 다리를 거꾸로 붙잡고는 말랑말랑한 엉덩이를 때렸다. 나는 우렁차게 울었다. 울음소리를 듣자 모두들 기뻐했다. 신생아의 울음소리'가 크면 클수록 건강하다는 신호이기 때문이다. 내가 망할랑 말랑 한 산부인과 분만실에서 배운 것은 내가 울면 사람들이 즐거워한다는 것이었다. 그 이후 나는 사람들을 기쁘게 하기 위해 힘차게 울었으나 그럴 때마다 사람들은 난처한 표정을 짓고는 했다. 내가 세상에 태어나서 처음 배운 것은 인간의 배신'이었다. 사람들은 울음'을 좋아하지 않는다.

누군가는 분만실에서의 풍경을 어떻게 기억하느냐고 묻고는 한다. 맞는 말이다. 최초의 기억'은  4살 이후라고 한다. 나는 엄마 뱃속에서 4년 동안 살았다. 내가 태어났을 때는 이미 4살이었다. 나는 내 엉덩이를 때린 간호사를 아동학대죄로 경찰에 고발했다. 다음날, 한국일보 < 표주박 > 코너에 조그마한 기사가 실렸다. " 신생아, 자신을 아무 이유 없이 때린 간호사 고발 ! " 조선일보는 보다 자극적인 제목으로 < 세상만사 >에 기사를 실었다. " 신생아 간호사 고발 사건 일파만파 ! 아동 성추행으로 확산 조짐. " 이 이야기'는 모두 100% 실화다. 모르면 당신은...... 간첩이다.

그러므로 나는 남자이지만 산부인과에 대한 이야기를 할 자격이 있다. 늬낌 아니까.

■  하이파이브 / 김선우 

 

 

하이파이브/ 김선우

 


1년에 한번 자궁경부암 검사 받으러 산부인과 갈 때

커튼 뒤에서 다리가 벌려지고

차고 섬뜩한 검사기계가 나를 밀고 들어올 때

세계사가 남성의 역사임을 학습 없이도 알아채지

 

여자가 만들었다면 이 기계는 따듯해졌을 텐데

최소한 예열 정도는 되게 만들었을 텐데

그리 어려운 기술도 아닐 텐데

개구리처럼 다리를 벌린 채

차고 거만한 기계의 움직임을 꾹 참아주다가

 

커튼이 젖혀지고 살짝 피가 한 방울,

 

이 기계 말이죠 따듯하게 만들면 좋지 않겠어요?

처음 본 간호사에게 한마디 한 순간 손바닥이 짝 마주쳤다

두 마리 청개구리 손바닥을 짝 마주치듯 맞아요, 맞아!

저도 가끔 그런 생각을 한다니깐요. 자요, 어서요, 하이 파이브!


- 시집 『 나의 무한한 혁명에게 』(문학과지성사, 2012)

 

펼친 부분 접기 ▲

내가 산부인과 의사'라면 벽에다가 좋은 마감재'를 사용하기 보다는 차라리 그 비용을 천정 마감재에 사용했을 것이다. 산부인과에서 진료를 받아본 여성들은 모두 공감하리라. 시집 『 나의 무한한 혁명에게 』 에서 김선우 시인'은 산부인과 진찰실'에서 " 차고 섬뜩한 검사기계가 나를 밀고 들어올 때 / 세계사가 남성의 역사 " 로 쓰여졌다는 사실을 절실히 깨닫는다. " 여자가 만들었다면 이 기계는 따듯해졌을 텐데 / 최소한 예열 정도는 되게 만들었을 텐데 / 그리 어려운 기술도 아닐 텐데 " 말이다. 출산의 공간인 산부인과는 정작 여성을 위한 배려가 없다. 산부인과 의사가 산모의 고통을 이해하기 위해서 진찰대에 누워 30분 정도만 천정을 바라보았다면 이내 생각이 달라졌을 것이다. 

그리고 산부인과에 다녀본 경험이 있는 아내에게 물어보았다면 " 차고 거만한 기계의 움직임 " 이 불쾌하다는 정도는 쉽게 얻을 수 있는 정보일 텐데도 산부인과는 여전히 여성을 이해하고 배려하는 노력이 부족한 공간이다. < 바닥 > 을 경험하지 못한 자가 < 천정 > 을 볼 턱이 없다. 여성이 남성보다 인간적인 이유는 바닥에서 뒹굴며 고통을 이겨낸 경험이 남성보다 더 많기 때문이다.  만약에 당신이 바닥의 고통에 대해 말을 했을 때,  애인이 군대 유격장에서 뒹군 경험을 빗대어 그 고통을 공유하려고 한다면 그런 남자와는 헤어지는 편이 낫다. < 측은지심 > 은 < 역지사지' > 에서 나온다. 바닥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바닥이 되어야 한다. 여성은 남성보다 인간적이다.

괴테는 이런 소리를 했다. " 언젠가 여성은 세상을 구원할 것이다. " 개인적으로 괴테 문학을 좋아하지는 않지만 그가 말한 이 경구는 좋아한다. 바닥에서 뒹굴며 고통을 참아야 하는 산모를 위해서 희멀건 천정에 멋진 그림을 그려넣는 것은 어떨까 ? 천정에 아기 천사'나 구름 위에서 굽어보시는 자상한 성모 마리아'를  그려넣었다면 진료실 침대에 누운 여성들은 부끄럽고 떨리는 마음을 조금은 진정시켰을 것이다. 그리고 병원 매출에도 영향을 미쳤을 것이 분명하다. 산모의 눈높이에서 그 마음을 이해하고 배려하려는 섬세한 의사라면 훌륭한 의사이니 산모들 사이에서 입소문이 나지 않을까 ? 산부인과 얘기가 나와서 하는 말이지만 산부인과에 갈 때 신경을 써야 하는 부분은 < 팬티 > 가 아니라 < 양말' > 이다.

산모들은 팬티를 벗고 환자복으로 갈아입은 상태에서 진찰실에 눕게 되니 정작 중요한 것은 양말이다. 의사는 발 거치대에 올려진 양말을 본다. 그러니 양말 바닥에 밥풀이 짓눌려 있는 상태로 산부인과를 찾지는 말자. 그렇다면 바닥에 신경을 써야 할 병원은 어디일까 ? 대장 항문과'다. 산부인과의 반대말이 대장 항문과'이다. 산부인과 환자는 천정을 보고 대장항문 클리닉을 찾는 치질 환자는 바닥을 본다. 바닥에 미키마우스 그림이라도 그려져 있다면 위로가 되었을 것이다. 어떻게 아냐고 ? 늬낌 아니깐 ! 치질 전문 병원을 방문하던 날,  나는 새벽 일찍 목욕탕에 가서 하루 종일 엉덩이만 닦았다. 너무 집중한 나머지 목욕탕에 있던 사람들이 인상을 찡그리고 있었다는 사실도 뒤늦게 알게 되었다.

" 성정머리 없는 놈들, 너희들도 대장 항문 클리닉 한 번 가봐라 ! " ○○○ 의사 선생님이 말씀하셨다. " 오, 아름다운 항문을 가지고 계시는군요 ! 보기 드문 국화 무늬'입니다. "  국화 무늬에 위안을 삼는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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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2013-09-23 04: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아 정말... ㅎㅎ 이 글 산부인과, 대장항문과 종사자들이 꼭 좀 봤으면 좋겠습니다. ^^

곰곰생각하는발 2013-09-23 11:28   좋아요 0 | URL
치과 천정에 미키마우스 그림 좀 그려넣옸으면 좋겠어요.
애들이 보면 울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그나저나 새벽 님 정말 잠이 없으시군요. ㅎㅎㅎ.

엄동 2013-09-23 10: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누워본 자만이 알 수 있을 공포를 위로하며

슬며시 손내미는 아기천사와 미키마우스라. 우앙굿


산부인과에도 대장항문과에도

여지껏 누워보질 못했지만.

매우 귀여운 생각이십니다 ㅎㅎ


명절연휴 후 후폭풍이 센 오전입니다.

아침에 '눈뜨자마자' 얼마나 오늘이 싫던지 아후우

곰곰생각하는발 2013-09-23 11:27   좋아요 0 | URL
설한 님 오셨군요. 뭐.... 대장항문과는 바닥에 반드시 미기마우스가 그려져 있어야 합니다.
얼마나 삭막하던지......
사실 산부인과는 여성 중심적 디자인이 되어야 하는데
사실 남성 중심적 디자인으로 가득합니다.

그나저나 오늘은 모두 지긋지긋한 하루가 되겠군요...
연휴 길면 좋을 것도 없어요..ㅎㅎ

잉크냄새 2013-09-23 13: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천정에 형광 별자리를 붙여야지 생각은 했는데 실행에 옮기지는 못했군요.

천정과 바닥의 인테리어는 멋진 발상입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3-09-23 15:55   좋아요 0 | URL
형광 별자리... ㅎㅎㅎㅎㅎ. 한때 유행하기도 했죠. ㅎㅎㅎㅎㅎㅎ.

J 2013-09-23 21: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 형광 별자리 만드는 걸 실제 실행하기도 했는데, 큰 곰자리, 작은곰자리, 백조자리, 독수리자리, 쌍둥이자리 까지 정확하게 모두 방천장에 있기를 원했었지요. 그렇게 욜리 팔아파하며 삼일동안 만들고나서 불을 딱 끄고 자리에 누우니 지독히 눈이 나빠서 안경을 쓰지 않으면 별의 자세한 위치가 보이지 않았어요. 안경을 써야만 보였지요. 잘 때 안경쓰고 잠을 자는 사람이 어디있습니까? 사서개고생이었다는...

곰곰생각하는발 2013-09-24 15:24   좋아요 0 | URL
가람 님은 워낙 별자리에 관심이 있으시니 천정에 형광 별자리가 잘 어울립니다.
저도 어느 집 갔더니 형광 별자리를 했더라고요.
근데.... 지저분하더이다. 별은 하늘에서 봐야지 천정에서 보면 안 됨...ㅎㅎ

히히 2013-09-23 22: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옛날(유년기) 살던 집엔 천정 중앙에 50x50cm의 아크릴(?)창이 있었어요.
아마도 채광때문에 만든 모양인데
저에게는 그 목적과 상관없이
때론 조심스럽게 때론 파닥거리던 빗소리를 잊을 수가 없어요.
흐릿하여 별구경은 하늘의 별따기였습니다.
다음에 집을 지을 때 저의 추억을 주문하였으니
신랑이 소홀히 넘기진 않겠지요.

곰곰생각하는발 2013-09-24 15:26   좋아요 0 | URL
신기하군요. 살다살다 그런 집은 처음 보는데요.
가끔 멋진인테리어 집 소개할 때 언덕에 최고의 건축가가 설계한
집에서 종종 그런 구조를 보는데... 아마 전 주인이
천문학에 관심이 많았나 봅니다.

만화애니비평 2013-09-24 21: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시계하니 우리 어머니 생각납니다. 집에 가면 온 방에 시계가 있고, 심지어 큰방에 시계가 2개가 있습니다. 시계를 좋아한다고 하지만, 저는 개인적으로 탁상시계의 쨰각거림이 싫고, 전자시계의 붉은 빛이 번쩍이는 것도 싫어합니다. 제일 좋은 것은 핸드폰 알람 정도입니다. 시계에 너무 집착하면 시간에 집착하게 되니 말이죠. 안 그래도 조급증에 성격이 불같읁데 말이죠

곰곰생각하는발 2013-09-25 15:34   좋아요 0 | URL
시계가 온 방에 있다라..... 제 집에는 시계가 없습니다. 탁상 시게가 있을 뿐...
천정에 달아놓았던 시계 이야기'도 이미 오래 전 이야기... 방엔 각각 탁상 시계가 있을 뿐입니다.
요즘 논문 쓰시느라 고생이 많으십니다. 건투를 비니다...

응화 2013-09-25 12: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벽과 바닥, 그리고 천정에 대한 고민은 아마
유럽의 성당들을 인테리어하던 건축분야의 마에스트로들이 가장 많이 하지 않았을까요.
르네상스... 낭만과 지독함이 공존하지만 실용성보다 아름다움의 중요함을 알았던 시대니까요.

곰곰생각하는발 2013-09-25 15:36   좋아요 0 | URL
고딕 성당 그림을 보고 싶군요... 천정 높이 그려진 거 보면 느낌이 다르겠죠 ?
종이책에 인쇄된 거 말고 진짜 가서 보면 웅장할 것 같습니다.
빛과 높이가 만들어낸 신성함이 묘할 거 같습니다.
 
멜랑콜리아
라스 폰 트리에, 샬롯 갱스부르 (Charlotte Gainsbourg) 외 / 익스트림 / 2012년 9월
평점 :
품절


 

 

 

 

지구는 사악하다.

  

< 멜랑콜리아' > 라는 행성이 지구를 향해 다가온다. " 다가온다 " 라는 동사가 밋밋해서 상황 파악이 안 된다면 " 돌진한다 " 라고 정정하자. 일주일 후면 지구는 행성과 충돌하여 산산조각이 날 것'이다. 이번에는 " resetting" 되는 것이 아니라 아예 " nothing " 인 상태가 된다.  < 인류 > 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 지구 > 라는 행성 자체가 우주에서 사라지는 것이다. 신이 깜짝 이벤트로 준비한 " 노아의 방주 " 따위는 없다는 말이다. 만약에 당신'이라면 지구 종말 일주일 전'에 무엇을 할 것인가 ? 죽기 전에 해야 할 것'을 작성해 보자. ① 최고급 호텔'에서 사랑하는 사람과 밤을 보낸다. ② 제비집 요리와 불도장 그리고 거위 간 요리'를 주문한다. ③ 마당에 사과나무를 심는다 ④ 기타 등등......

하지만 이러한 버킷 리스트'는 한갓 희망사항에 불과할 것이 뻔하다. 당신은 최고급 호텔에 투숙할 수도 없고, 제비집 요리'는커녕 그 흔한 닭똥집 요리'조차 구경도 하지 못할 것이다. 왜냐하면 내일이면 지구가 멸망한다고 하는데 어느 미친 놈이 일터에 나와서 일을 할까 ? 그러므로 통장에 남은 돈을 펑펑 쓰다가 죽겠다는, 웃으면서 코 파며 잇힝 하는 버킷 리스트'는 다시 생각해 보아야 한다. 이럴 땐, 차라리 무라카미 하루키가 즐겨 사용하는 방식이 현명할 지도 모르겠다. 그는 사과나무를 심는 대신 자위'를 할 것이 분명하다. " 미안해, 아야코 양 ! 당신의 섹스 제안을 정중히 거절하겠어. 난... 조용히 < 심슨가족' > 을 보면서 자위나 하겠어. " 결국 이 기간 동안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딱히 없다. 

지구 멸망을 다룬 대부분의 영화들은 < 그날 > 이 다가올수록 두려움에 떨며 아름다운 지구를 다음 세대에게 물려주지 못한 죄책감을 호소하지만 쾌활한 멜랑콜리인 내가 상상하는 < 그날 > 은 꽤나 명랑'하다. 누군가에게 마지막 일주일'은 봄 방학' 같지 않을까 ?  입시 지옥에 시달리는 학생들에게는 공부할 필요가 없으니 공부를 잘하는 놈이나 못하는 놈이나 달콤한 휴식이 되고, 암 환자들은 신이 내린 결정에 대하여 겉으로는 내색은 하지 않지만 속으로는 웃으면서 코 팔 것이다. " 나만 억울하게 죽는 게 아닌 게야.... 히히히 ! " 그리고 비정규직 노동자들도 그리 아쉬울 것 없다. 동일 환경 동일 노동에서 받는 대가'는 정규직의 절반이니 비정규직이라는 이름은 21세기 新 홍길동'이다. 서자'다.

희망이 거세된 노동만큼 힘든 것도 없다. 乙은 희망이 없다. 귀신을 잡는 해병대'와 (갑에게) 멱살을 잡힌 乙'의 공통점은 ? 영원하다는 점이다. 한 번 < 해병 > 은 영원한 해병이듯이, 한 번 < 을 > 은 영원한 을'이다. 그리고 뚱뚱한 여성들이여 ! 그날이 다가오면 다이어트'에 대한 고민을 할 필요도 없다.  지구 종말 시계는 44사이즈를 위해서 死死( 죽을 각오로 굶는 )하는 당신을 잠시나마 구원할 것이다. 배가 터지도록 먹어도, 아...... 좋아 ! 칼로리 제로 다이어트 콜라는 개나 주고 오리지날 코카콜라를 마시자 ! 일주일 후면 모든 것은 사라지나니 비만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된다. 인류 멸망'을 비극으로 보는 관점은 지극히 편협한 시각이다. 인류의 멸망은 오히려 지구 생태계에 두 번 다시 없는 기회를 제공한다.

폐허가 된 아스팔트에서 고사리가 필 때 지구는 다시 시작될 것이다. 세계는 인간 없이 시작되었고, 또 인간 없이 끝날 것이다. 한 사람을 죽이면 살인자가 되고 많은 사람을 죽이면 전사가 되듯  많은 사람들이 죽으면 재난이 되지만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이 죽으면 신이 내린 한 수'가 된다. 나라면 < 그날 > 사랑하는 사람과 콘돔이 필요 없는 섹스를 하겠다 ! 지구가 불타 사라지기 전에 먼저 정염에 불타 죽으리라. 젖가슴을 욕심껏 움켜쥐고 거칠게 입 맞추리라. 평소 짝사랑하던 사람을 찾아가 고백을 해도 좋을 것이다. 상대가 거절하면 어떠랴 ! 퇴짜 맞고 돌아오는 길에 분풀이로 종로 3가 8차선 도로에다 똥을 싸도 좋다. 행운이라는 것은 신이 평소에 편애하던 놈들에게 내리는 선물이지만 죽음은  모두에게 내리는 평등이다.

영화 < 멜랑콜리아 > 는 " 그날 " 을 다룬다. 하지만 라스 폰 트리에 감독이 하고 싶은 말은 < 그날 > 이 아니라 < 그녀 > 에 대한 이야기'다.  행성과 지구 간의 충돌'은 곁가지 서사' 에 불과하다.  좀더 정확히 말하자면 이 영화는 < 여성 멜랑콜리와 히스테리'에 대한 보고서 > 이다. 영화는  " 1부 저스틴 "에 대한 이야기와 " 2 부 클레어 " 에 대한 이야기로 나뉜다. 결혼 피로연의 주인공인 저스틴은 전형적인 우울증 환자'다. 신부의 무관심과 무기력은 결국 파혼으로 끝을 맺는다. 그 어느 누구도 멜랑꼴리한 저스틴'( 웃다가 울고, 울다가 웃는... ) 을 이해하기란 불가능하다. 우울증'이란 타자에 대한 공격을 멈추는 대신 화살의 촉을 자기 자신에게 향하는 형태이다. 자신에 대한 징벌이 우울증'이다.

슬픔을 사람들과 나누면 애도'가 되지만 슬픔을 버리지 못하고 혼자서 속으로 간직하면 우울'이 된다. 그러니깐 우울이란 슬픔을 나누지도 못하고 소화시키지도 못한 체증 상태'다. 목구멍에 걸린 것인 생선 가시가 아니라 멜랑콜리'다. 저스틴'은 내부의 문제에 몰입하다 보니 외부(타자)에게 관심을 두지 못한다. 이 우울증은 타자에 대한 무관심으로 일관하고 이 무관심은 곧 무기력'을 동반한다. 불면과 기면 그리고 체증에 따른 식욕 감퇴와 구토가 이어진다. 프로이트는 마지막까지 여성이라는 성'에 대한 정의를 내릴 수가 없어서 쩔쩔맸는데 그가 최종적으로 내린 결론은 nothing이었다. 그것은 단순한 무책임이 아니다.  그가 보기에 여자는 알 수 없는, 아...... 그런 존재'다. 앞이 캄캄한 구멍'이다.

반면 클레어'는 동생과는 달리 타자와 맺는 사회적 관계를 중요시한다.  화려한 결혼 피로연'은 부르주아인 클레어의 욕망과 겹친다. 그녀는 결혼 피로연'이 성공적으로 치뤄지기를 간절히 원한다. 겉으로 보기에는 동생을 위한 따스한 배려와 근심 같지만 사실은 부르주아의 과시적 이기와 사려 깊은 욕심'일 뿐이다. 저스틴이 내부의 문제 때문에 " 멜랑꼴리 " 하다면, 클레어는 우울증을 앓는 동생의 모습이 피로연 참석자들에게 들통날까 봐서 " 히스테리 " 에 빠진다. 우울증에 걸려서 이상행동을 보이는 동생을 이해하지 못하던 클레어'는 멜랑콜리아'라는 행성이 지구를 향해 돌진할수록 불안에 빠진다. 궁극에 다다를수록 클레어는 이성을 잃고 저스틴은 오히려 차분히 이성을 찾는다.

이 지점에서 저스틴과 클레어는 겹친다. 클레어가 보이는 이상 불안 증세(2부)는 저스틴이 앓던 증후(1부)와 비슷해 보인다. 이처럼 멜랑콜리와 히스테리는 유사해 보이지만 닮은 만큼 다르다. < 멜랑콜리 > 는 잃어버린 대상에 대한,  원망에 따른 자기 징벌과 포기에 가깝지만 < 히스테리 > 는 욕망하는 대상에 대한 신경질적인 공격과 불완전한 집착에 가깝다. 두 자매는 본질적으로는 유사 형질을 가지고 있지만 계급에서 차이'를 만든다. 그들은 유사한 불안에 시달리지만 서로를 이해하지는 못한다. 잃어도 아쉬울 것 하나 없는 저스틴과 부와 명예를 잃어버리기엔 너무 많은 것을 가진, 부르주아인 클레어'는 무기력하게 종말을 지켜볼 뿐이다. 이 얼마나 아름다운 평등인가 !

나는 극중 저스틴의 대사에 공감한다. 지구는 사악하다. 없어져도 된다. 지구를 향해 돌진하는 멜랑콜리아'라는 행성은 니체의 망치'다. 망치로 지구를 부순다.

 

 

 

 

+

이 영화는 추석 연휴 기간 동안 < 한국 영상 자료원 > 에서 상영하기에 보았는데 필름 영사 방식이 아닌 디지털 영사 방식이었다.  아, 개같은 디지털 영화들 ! 디지털 상영은 작은 모니터를 극장 스크린으로 옮긴 것에 불과해서 영화를 보는 재미를 반감시킨다. 필름 특유의 색감과 스크레치 그리고 미세하게 떨리는 프레임과 소음을 디지털 영화는 재현이 불가능하다. 디지털 영화가 선명한 화질 면에서는 뛰어나지만 나머지 부분에 대해서는 그닥 매력적이지 않다. 오히려 필름'은 디지털'이 가지지 못한 영역을 구축한다. 필름 상영은 디지털 상영보다 단점보다는 장점이 많다.  필름 상영으로 보았다면 더 좋았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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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다맨 2013-09-23 03: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행운과 죽음을 절묘하게 비교하는 대목에서 무릎을 치네요^^ 죽음이야말로 어찌 보면 기본소득보다 더 평등한 것이 아닐까 합니다. 저 역시 세상의 종말보다는 일상의 불안을 더 두려워합니다. 차라리 한큐(!)에 인류가 몰살되는 것이, 일상의 갖가지 감정들을 감내하는 것보다 나아 보일 때가 있습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3-09-23 04:02   좋아요 0 | URL
수다맨 님도 항상 이 시간에 글을 남기시니 저처러 불면증인가 봅니다.
멜랑콜리아 보니 한 큐에 모든 게 사라지더군요. 제가 보기엔 축복 같습디다...
이 영화를 너무 뒤늦게 보았습니다....

마노아 2013-09-23 13: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슬픔을 사람들과 나누면 애도'가 되지만 슬픔을 버리지 못하고 혼자서 속으로 간직하면 우울'이 된다. 그러니깐 우울이란 슬픔을 나누지도 못하고 소화시키지도 못한 체증 상태'다.
*
이 문장은 시처럼 들려요.
요새 황금의 제국을 재밌게 보고 있는데 (현재 21회 보는 중) 어떻게 해도 올라갈 수 없는 자본주의의 정점을 보는 기분이거든요. 지구 멸망 얘기를 듣고 보니 그 드라마가 퍼뜩 떠올랐어요.

곰곰생각하는발 2013-09-24 15:29   좋아요 0 | URL
< 황금의 계곡 > 하니 가진 자'들에 대한 비판이겠네요.
가진 자들이 아주 악랄하게 나오는 모양이죠 ? 요즘 드라마 확실히 선과 악이 구별되어 있습니다.
별로 바람직한 방향은 아닌 거 같지만...ㅋㅋㅋㅋ.

애도 행위는 확살히 슬픔을 사람들과 함께 나누는 행위입니다. 그래야지
죄책감에서 벗어나거든요. 우울은 이 슬픔에 개인의 마음 속에 고착된 형태입니다.

히히 2013-09-23 23: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죽음이 개별성을 지닐 때 슬프고 억울한 것이지
지구 종말에 불안할 필요는 없지 않나요?
차라리 혼자 살아 남는 게 억울하지.

곰곰생각하는발 2013-09-24 15:31   좋아요 0 | URL
사실 야금야금... 지구가 불텅이가 되어서 고통스럽게 오랜 기간에 걸쳐 멸망한다면
두렵지만 이처럼 갑자기 몇 초 안에 꽝 해서 사라진다면 즐겁지 않을까 싶어요.
얼마나 공평합니까...

전쟁터에 있는병사가 가장 두려운 것은 무리 중 가장 먼저 죽는 게 아니라
무리 중 가장 늦게 죽을 때'라고 하더라고요..
 

개와 배추.

  

 

 

 

 

 

 

< 터앝 > 이라는 낱말'을 아는 사람은 별로 없을 듯싶다. 사전적 정의에 의하면 " 집의 울안에 있는 작은 밭 " 이 터앝'이다. 반대로 울타리 밖에 있는 밭은 < 텃밭 > 이다. 쉽게 말해서 마당 안(울타리 안)에 있는 밭은 < 터앝 > 이고, 마당 밖에 있는 밭은 < 텃밭 > 이다. 지금이야 자투리땅에 남새를 키우는 밭을 통틀어 " 텃밭 " 이라고 부르지만은 그 옛날 조상들은 < ~ 앝 > 과 < ~ 밭 > 을 확실히 구분한 모양이었다. < 야생의 사고/레비스트로스 > 에서 지적했듯이 < 언어 > 와 < 사회 > 는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 문명 사회'에서 보면 미개인 사회'에 가까운 태와족 언어'에는 초목의 잎사귀 형태를 나타내는 말이 40개나 되고, 옥수수의 각 부분을 나타내는 말은 15개나 된다.

옥수수를 대체할 수 있는 단어'라고는 " 강냉이 " 가 전부인 21세기 문명인이 보기에는 옥수수의 각 부분을 세분화한 말'은 화려하고 섬세하다. 이 사실은 태와족과 옥수수 간의 밀접한 밀월 관계를 잘 보여준다. 필요는 특정 분야의 언어'를 세분화한다. 레비스트로스는 " 어떠한 분류도 혼돈보다는 낫다/야생의 사고,68 " 고 말했다. 반복해서 말하지만 태와족 원주민은 옥수수를 15개로 분류한다. 반면 현대 도시인은 옥수수를 단순히 < 강냉이 > 라는 1개의 말밖에는 없다. 우리는 여름 휴가철 냇가에서 옥수수를 뜯거나 극장에서 팝콘을 먹으며 " 옥수수, '남자에게 참 좋은데, 말로 표현할 방법이 없네... " 라는 장탄식을 내뱉을 수밖에 없다. 그 답답함 이해한다. 늬낌 아니까 ! 

도시 현대인에게는 " 그게 그거 ! " 이지만 태와족 원주민에게는  " 그게 그게 아닌 게 " 다.  그러니깐  전자는 " 하나를 열 다섯으로 나눈 결과 " 이고, 후자는 " 열 다섯'을 하나로 통합 " 한 결과이다. 과학이라는 분야가 기본적으로 분류를 통해 차이와 유사'를 도출한다는 측면에서 보자면 태와족 원주민은 현대인보다 과학적 사고'를 하는 사람들이다. 여기서 내가 하고 싶은 말은 문명 사회보다 비문자 혹은 비문명 사회'가 더 과학적 사고를 갖춘 시스템이라는 것이 아니다. 문명과 야만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말하고 싶을 뿐이다. 문명 사회는 비문명 사회를 과학적이지 않기 때문에 야만적이라고 주장하지만 레비스트로스가 증명했듯이 그 주장은 틀렸다.

< 터앝 > 과 < 텃밭 > 도 마찬가지이다. 현대인이 보기에는 터앝과 텃밭은 " 그게 그거(유사) " 처럼 보이지만 옛 조상들은 분류할 필요(차이) 가 있었을 것이다. 터앝과 텃밭'은 한국 사회가 뿌리 깊은 농경 사회였음을 증명한 예이다. 입말이 길어졌다. 마당 한켠에 작은 터앝'이 있다. 터앝이라고 하기에는 자투리 공간이라고 해두자 ! 하지만 어머니에게는 이곳은 터앝인 모양'이다. 내가 이 터앝을 보고 깨달은 것은 < 흙 > 이라는 존재의 위대함'이었다. 몇 년 전 봄날,  마당에서 싱크대 서랍'을 정리하다가 뒹구는 콩 몇 알을 아무 생각 없이 터앝에 버린 적이 있었다. 그런데 그해 여름 콩잎이 삐죽 고개를 내밀더니 이내 콩줄기가 거침없이 자라기 시작했다.

어느 날 < 콩 > 이 내게 와서 " 방세를 얼마를 내면 좋을까요 ? " 라고 묻길래 콩알만 한 놈 꼴이 하도 우스워서 콧방귀를 뀌었던 적이 있었는데, 콩 씨 가족은 그해 콩 300개를 내놓았다. 콩 입장에서 보면 남의 집 터앝에 전세를 얻어 사는 꼴이니 방세'라도 내고 싶었던 모양이다. 터앝 주인인 우리가 한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비료를 준 것도 아니고 제초를 한 것도 아니며 물을 주지도 않았으나 콩은 땅을 빌린 값을 톡톡히 한 것이었다. 아스팔트와 콘크리트가 전부인 열악한 환경을 제공했음에도 불구하고 콩은 감사의 뜻을 전한 것이다. 주렁주렁 열린 콩을 볼 때마다 나는 콩의 보은에 울컥했다. 풀의 힘이다. 그것만이 아니었다. 요즘 불면증으로 고생하는 바람'은 컨디션 난조에도 불구하고

꽃씨를 물고 와 흙에게 주었다. < 흙 > 은 바람 잘 날'도 없으면서 꽃씨를 옮겨다주는 바람의 성실한 마음이 고마웠다(고 한다. ) " 고마워, 바람 ! 하루 빨리 불면증에서 벗어나길 바라. 언젠가는 바람 잘 날이 아닌 바람 잔 날'이라는 소식을 전해주는 날이 오겠지?  " 흙은 좋고 나쁨을 떠나서 숨탄것이라면 차별 없이 모두 품었다. 버려진 자투리땅에 이름 모를 꽃이 피었고, 나비가 찾아왔으며, 지렁이가 고슬고슬한 똥을 누기 시작했다. 메뚜기도 방문했다. 서울이라는 아스팔트 정글'을 생각하면 기적과도 같은 일이었다. 그것은 흙의 힘이다. 그들이 가진 생명력을 볼 때마다 레비스트로스가 < 슬픈 열대 > 에서 말한 경구가 떠올랐다." 세계는 인간 없이 시작되었고, 또 인간 없이 끝날 것이다. "

빚 지고는 못 사는 콩 씨네 가족과 흙이 가지는 포용력'은 인간이 가진 성질머리를 압도한다. 당신이 교양머리가 있는 인간이라면 적어도 아이들에게 흙은 더러운 것'이라고 가르치면 안 된다. 올해에는 콩 대신 배추를 심었다. 하지만 자라지 못해 시들시들하다. 재작년과는 판이하게 다르다. 재작년에는 어머니가 배추 다섯 포기를 심었는데 무서운 속도로 자라서 시장에 내다 팔아도 될 정도로 잘 컸다. 잘 컸어 ! 처음에는 식용으로 키울 요량이었다. 집에 리트리버 종 개 한 마리'를 키우는데 어머니는 틈틈이 개를 배추 앞으로 끌고 와 무릎 꿇게 하고는 단단히 충고했다. 콩은 전세(비)를 내고, 상추는 월세'를 냈으나 개는 기세등등하여 텃세'만 부렸다. 성정머리 없는 놈 !

하루가 멀다 하고 싹이 나오자마자 뜯거나 짓밟는 짓을 하기에 내린 잔소리'였다. 땅을 빌린 세입자는 모두 그 값을 치뤘다. 그런데 기적이 일어났다. 개는 그 이후 단 한번도 배추를 뜯거나 짓밟지 않았다. 주인의 말을 알아들은 것일까 ? 아, 배추는 무럭무럭 자라나기 시작했다. 어머니는 마음을 바꿔 관상용으로 키우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온 동네 사람들에게 자랑을 하기 시작했다. 잘 자라는 배추와 말귀가 트인 개에 대한 사연을 이야기하면 사람들은 이구동성으로 < 동물농장 > 에 나갈 사연이라고 추켜세웠다. 그럴 때마다 어머니는 기세등등해졌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마당에서 어머니가 욕하는 소리가 들렸다. " 이 개놈의 새끼가 미쳤나벼 ! 

검은 개 꼬리 십 년 묻어도 검은 개 꼬리라더니만 으이구, 밤새 지랄 발광을 다 했슈. "  마당에 나가보니 배추 하나는 뿌리가 뽑혀 마당에 뒹굴었고, 뽑히지 않은 배추 위에는 개가 똥을 쌌다. 30kg 정도 되는 놈이 싼 똥은, 아.... 아름다웠다. 어머니는 그 이후 배추와 개의 기특한 사연에 대한 이야기는 하지 않으셨다. 한가위'다. 깊은 밤, 풀 자라는 소리가 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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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2013-09-20 21: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어, 정말 그러고 보니 콩들은 전세를 내고 상추들은 월세를 내고 암탉들은 일일세를 내고 개는 텃세를 부리고 그러는 셈이네요. (읭?)


곰곰생각하는발 2013-09-20 22:59   좋아요 0 | URL
아, 이 덧글 정말 춘천살인'이네요. 이거 너무 좋은 문장이어서 제가 허락 없이 좀 본문에 삽입시키겠습니다.
새벽 님 알고 보면 마치 이문열 같습니다.. 허허..

새벽 2013-09-21 03:29   좋아요 0 | 수정 | 삭제 | URL
으악! 곰곰발님, 하필 제가 별로 좋아하지 않는 작가를.. -_ㅜ
허긴 그마저 사실 감지덕지이지만요. 하하 ;;

전 이문열, 이외수보다 곰곰발님이 더 좋아요.(더 탁월한 작가라고 생각)

히히 2013-09-23 23: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겨울에 언 땅이 녹아
지천에 흙냄새가 봄을 보챌 때는
감히 밀쳐내지 못하고
봄바람나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