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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언컨대, 책은 가장 완벽한 물질입니다 !
옛날에 시나리오 쓴다고 끄적거렸던 구상 중 하나가 인피( 人皮 ) 로 양장본을 만드는 어느 미친 애서가 이야기'였다. 조나단 드미 감독이 만든 < 양들의 침묵 > 을 보고 나서 너무 감동한 나머지 급조한 스토리'였다. 영화 속 주인공인 재단사 ⑴ 제임 검브가 쇠가죽 대신 사람 가죽으로 < 옷 > 을 만들어 입었다면 내가 구상한 애서가는 쇠가죽 대신 인피'로 < 책 > 에 옷을 입힌다. 그는 인쇄된 텍스트를 새롭게 필사하여 사철 제본 방식의 하드커버로 만들어서 사람 살가죽을 입히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그는 원본을 그대로 필사하는 것이 아니라 단어를 바꾸고 새로운 에피소드를 첨가한다. 지금 생각해 보면 이 내용은 보르헤스를 흉내 낸 것이다. 그러니깐 이 세상에는 없는 유일무이한 단 하나의 책이 완성되는 것이다. 그는 ⑵ 제 2의 삐에르 메냐르'였다.
⑴ 원래는 제임스 검브'인데 병원 담당 계원의 실수로 - s'를 누락하고 기재해서 James가 아닌 jame이 되었다는 에피소드가 원작 소설에는 자세하게 나온다. 한국에는 동사무소 직원이 그 일을 한다면 미국에는 병원 담당 계원이 그 일을 한다. 그러니깐 jame은 알파벳 s 가 결핍된 이름'이다. 그는 성정체성에 문제가 있다. http://blog.aladin.co.kr/749915104/6261722
⑵ 삐에르 메나르'는 보르헤스 단편에 나오는 인물로 세르반테스의 < 돈키호테 >의 몇몇 장을 마침표 하나, 쉼표 하나까지 그대로 다시 쓴다. 결국 피에르 메나르는 세르반테스의 < 돈키호테 >를 능가하는 작품을 선보인다. 우리가 보기엔 명백한 표절이지만 보르헤스'는 다시 쓰기'를 창조적 행위'로 보았다. 이처럼 보르헤스의 세계를 관통하는 것은 " 필경의 풍경 " 이다. 옛날에는 도서관 사서와 수도사가 필경사 역할을 했다는 점을 감안하면, 보르헤스야말로 가장 성공한 필경사'였다. 보르헤스'는 서른 중반이 넘어서 도서관 사서가 되었다.
이 엽기적 서사가 꽤 마음에 들어서 불을 끄고 침대에 누워 공상을 하다가 결국은 애서가의 직업을 문학평론'을 하는 미치광이 교수로 정했다. 당시 내가 제일 싫어하는 인간군이 바로 교수와 문학 평론가'였다. 알전구 십오 촉 불빛이 새어나오는 지하실에서 사람 살가죽을 벗겨내서 무두질을 하고 있는 꼰대를 상상하니 통쾌한 거라. 당시 나는 < 엘 포토 / 알레한드로 조도로프스키, 1971 > 나 < ⑶핑크플라밍고 / 존 워터스, 1972 > 와 같은 old하지만 odd한 영화에 환장하던 때'여서 불 끄고 침대에 누워 공상을 하는 날이 많을수록 서사는 점점 정교해지는 것이 아니라 개판이 되어갔다. 결국 이 미치광이 대학 교수'는 자신이 살해한 희생자의 살가죽으로 만든 책을 보고 자위'를 하게 이르렀다. 그리고는 항상 화장실에 가서 똥을 누는 것이다.
⑶ 존 워터스 감독은 포르노'보다 더 포르노 같은 영화를 원했다. 그 결과가 바로 < 핑크 플라밍고 > 였다. 세상에서 가장 역겨운 영화를 만들겠다는 신념으로 만들어진 이 영화는 감독이 내뱉은 호언장담'처럼 가장 역겨운 영화'가 되었다. (실제로 영화가 상영되기 전 극장 로비'에서는 구토용 봉지를 나눠주었다고 한다.) 남자 항문을 클로우즈업으로 보여준 후 립싱크하는 장면과 주인공 디바인이 개똥을 진짜로 먹는 장면은 명불허전'이다. 이 영화는 퍽유 시네마의 원조'였다. 디즈니 애니메이션 영화 < 인어 공주 > 에 나오는 마녀 우르슬라'가 바로 디바인'을 모델로 한 캐릭터'다.
빌헬름 엔젠이 < 그라디바 > 에서 선보인 우아하며 신비한 에티튜드와 E.T.A 호프만이 < 모래사나이 >에서 묘사한 그로테스크 그리고 에코의 < 장미의 이름으로 > 가 보여준 아우라를 극복하겠다는 야심찬 계획은 주변인의 몰이해로 인하여 접어야 했다. " 현대인의 헬 오브 지옥 " 을 보여주겠다는 야심찬 대서사는 결국 폭파하게 되었으니...... 나는 한동안 < 현대인의 상실 > 과 < 현대인의 불안 > 을 달래기 위해서 종로 쓰리 스트리트 펍'을 드나들며 기무치와 다꽝을 새컨드 안주 삼아 보드카와 압생트를 마시며 종로 파이브 스트리트 거리를 런닝하며 뛰고는 했다. 그리고는 컴 백 홈 해서 커피포트에 담은 블랙 커피를 머그잔에 따라 마시며 자위를 했다.
나는 이내 신음소리를 토해 냈다. " 위스키...위스키.... " 하루키 식 위로의 방식'이었다. 시대를 너무 앞선 서사'였을까 ? 나는 미치광이 교수가 우아한 양장본 만듦새를 보며 자위를 하거나 똥을 싸는 행동이 이해가 가는데 다른 이'는 그것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모양이었다. 하루키의 주인공들이 자위하는 것은 너그럽게 용납을 해주면서 왜 미치광이 교수가 책 표지를 더듬으며 자위하는 행위는 인정을 안하는 것이더냐. 응?! 무두질과 용두질을 교묘하게 섞는 잔재주가 기특하지 않은가 ? 나는 무동력 배 위에서 시니컬하게 외치던 신구 할아버지'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 늬들이 게 맛을 알어 ? " 하여튼 미완성으로 끝나버린 이 미치광이 교수의 은밀한 사생활은 결말이 다음과 같다.
연쇄 실종 사건을 담당하던 형사는 주요 용의자 가운데 하나였던 미치광이 대학교수의 서재를 구경하게 된다. 낡은 책은 모두 가죽 양장본으로 새롭게 탄생하여 책장에 꽂혀 있다. 형사는 그중에서도 새롭게 제본된 토마스 핀천의 < 브이 > 를 보게 된다. 아, 이 책을 여기서 보게 되다니 ! 쇠가죽으로 헌책을 새롭게 제본하는 것이 취미라는 대학교수. 형사는 책을 살피다가 가죽 양장본 표피'에 새겨진 독특한 무늬'를 보게 된다. 검은 얼룩 옆에 독특한 무늬가 새겨져 있는 것이다. 별 생각 없이 서재를 떠나는 형사 ! 형사는 경찰서로 돌아와 그동안 실종된 여성들 자료를 스크랩한 서류철을 꺼내 살핀다. 이때 형사는 갑자기 피해 여성의 스냅 사진 한 장에 집중하게 된다.
원피스를 입고 바다에 뛰어드는 피해 여성의 뒷모습이다. 매의 눈을 가진 형사는 그 사진에서 중요한 단서를 포착한다. 그것은 흉터였다. 실종된 여성의 날개죽지에 새겨진 점 옆에 있는 독특한 화상 흉터 모양 ! 캬 !!! 토마스 핀천의 < 브이 > 양장본 표지에서 발견한 무늬'와 똑같은 것이었다. 대충, 뭐... 그런 내용이었다. 내가 이런 구상을 하게 된 이유는 미술 전시회에서 본 고서'가 가지고 있는 아름다움 때문이었다. 사철 제본 방식에 가죽으로 제본한 양장본'은 그 무수한 세월이 흘렀음에도 불구하고 21세기 책 디자인'보다 우아하고 아름다웠다. 킨들의 역습'에도 불구하고 내가 종이책'이 몰락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주장하는 근거'에는 책 자체가 아름다운 오브제이기 때문이다. (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요즘은 책을 사철 방식이 아닌 무선 제본'으로 만든다. 책을 만드는 비용 때문에 선택되었다는 것은 알지만....... )
사철 방식으로 만들어진 하드보일드한 하드커버'는 확실히 아름답다. 내가 가지고 있는 책 가운데, 만듦새만 가지고 평가했을 때, 가장 마음에 드는 책은 하서 출판사가 내놓은 세계추리소설전집'이다. 초판 발행이 1974년으로 당시 가격이 1700원이다. 사철 제본 방식에 하드 커버'다. 앞 커버와 뒷 커버에는 그 어떠한 인쇄도 없다. 그냥 가죽 느낌이 나는 붉은 종이로 압착시켰고, 책등에만 금박으로 제목이 박혔다. 제목 또한 클래식해서 < 쟈칼의 날 > 이 아니라 < 재코올의 날 > 이라고 새겨져 있다. 책 크기는 8,90년대 잘나가던 범우사 크기'다. 아름다움에 압도당한 나는 당장 구입했다. 단돈 2000원에 말이다. 세월이 지나고 유행이 지나면 모든 물건은 촌스러워지는 것이 당연한데 책 디자인만큼은 옛날 디자인'이 훨씬 아름답다.
요즘에 나오는 책 디자인은 화려하기만 했지 깊이가 없다. 빈 공간이 생기면 어떻게 해서든 광고 문구를 넣어야 직성이 풀리는 모양이더라. 단언컨대 책 표지에 설레발치는 문구가 화려하게 박힌 책치고 좋은 책 없다. 누누이 말하지만 누구나 다 읽는 베스트셀러는 역설적으로 가장 많이 버려지는 책'이라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농담이 아니다. 한때 오프라 윈프리'로부터 열광적 찬사를 받았던 < 시크릿 > 이란 책을 검색해서 중고 서적으로 매매되는 현황을 살펴보면 답이 나온다. 책 주인이 간직하지 않고 버려서 중고 장터에 매물로 쏟아진 분량이 600권이 넘는다. 없어서 못 파는 게 아니라 있어도 안 팔린다. 요즘 아파트 거래 현황 같다.
마빈 해리스의 < 문화 유물론 > 이란 책을 구입하고 싶어서 몇 년 동안 중고 장터를 뒤져보았지만 팔겠다는 사람이 단 한 명도 나오지 않아서 내 속을 태우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그러니깐 베스트셀러는 가장 많이 팔리는 책이면서 동시에 가장 많이 버려지는 책이다. 그래서 나는 베스트셀러는 가급적이면 읽지 않는다. 인기 있을 때는 단물만 쏙 빼먹고는 늙었다 싶으면 내다 파는 인간이 되고 싶지는 않기 때문이다. 어쩌면 나는 보수주의자인지도 모른다. 책 만듦새'에 있어서 만큼은 옛날 방식이 좋다. 황화 현상으로 인해 누렇게 ⑷ 변색된 펄프는 색 바랜 수묵화를 보는 듯하다. 그리고 6,70년대 종이 재질이 주는 거친 촉감은 굉장히 자극적이다. 요즘 책에 쓰이는 희멀건 종이를 보면 병색이 완연한 폐병 환자 같아서 병실에 간 기분이 든다.
⑷ 왠지 종이보다는 펄프'라고 쓰고 싶다. " 보그 병신체 " 라는 비아냥거림을 감수하고서라도 말이다. 펄프'라는 발음이 주는 느낌이 좋다. 늬낌 아니까 !
이래저래 옛 책이 좋다. 그리고 세로쓰기로 인쇄된 방식도 길을 들이면 읽기 편하다. 사람들은 세로 읽기'가 불편하다고 고백하는데 사실 그 말은 뻥에 가깝다. 속독의 경우는 가로쓰기 방식이 편하지만 속독이 아니라면 세로쓰기 방식으로 인쇄된 책을 읽는데 아무 불편이 없다. 내가 출판사 사장이라면 만화책처럼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읽는 방식으로 인쇄된 책을 출간하겠다. 왜 ?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읽는 방식은 너무 흔하잖아 ! 끝을 맺을 시간이 왔다. 요즘 유행하는 이병헌 말투를 빌려서 작별 인사를 고하겠다. 이병헌은 이런 말을 했다. " 메탈에게도 영혼이 있다면, 물불을 두려워 않고 뛰어드는 용기와 시련에도 상처받지 않는 강인함, 차갑지만 약한 자를 감싸안는 따듯함을 가졌을 것입니다. 단언컨대, 메탈은 가장 완벽한 물질입니다. "
나는 이렇게 말하겠다. " 책에게도 영혼이 있다면, 물과 불을 두려워하여 뛰어들 용기도 없고 (분서갱유라는) 시련에 상처받는 나약한 심성을 가지고는 있지만, 한 번 뿔나서 심장이 불타면 활도 아니면서 활활 잘 타는, 물과 불을 두려워하면서도 때론 물불 가리지 않고 다 태우는 성깔을 가졌을 것입니다. 단언컨대, 책은 가장 완벽한 물질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