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벨문학상과 출판사.

 

 

 

 

노벨 문학상 수상 작가'가 발표되었다. 풍문으로 들은 깜냥'으로 보자면 조이스 캐롤 오츠'나 토마스 핀천 그리고 필립 로스'가 눈에 익숙했으나 노벨 위원회'가 선택한 작가는 앨리스 먼로'였다. 그녀가 쓴 책을 읽어본 적이 없으니 내게는 생소한 작가'여서 달리 할 말은 없지만 문학사상사'는 무라카미 하루키'가 수상하지 못한 것에 대하여 무척 아쉬워했을 것이란 사실은 분명하다. 아무리 생각해도 문학사상사는 하루키 때문에 팔자가 핀 출판사'다. 잘 키운 스타 한 명이 연예기획사에 소속된 직원 전체를 먹여살리는 꼴이니, 하루키라면 항상 예의주시하지 않을까 ?  출판사 입장에서 보면 아이유가 부럽지 않다. 그러니 슈퍼스타 대접을 하지 않을 수 없다. 무라카미 하루키가 덥다 하면 문학사상사 싸장님이 버선발로 뛰어나와 손부채질이라도 할 태세'다.

" 하루키 님, 재즈 들으며 열기 좀 식히고 가실게여 !!! "  솔직하게 고백하자면 나는 노벨 문학상'이 북 마켓 버라이어티 쇼'라는 생각 이외에는 별다른 느낌이 들지 않는다. 헤르타 뮐러'에서 시작한 의외성은 무라카미 하루키'에서 정점을 이룬다. 노벨상이 서서히 대중성에 눈을 떠 후한 점수를 주기로 선정 기준을 변경했다면 스티븐 킹에게도 눈길을 주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 노벨상은 작품 자체에 대한 평가보다는 정치적 입장과 대륙별 지역 안배 그리고 눈에 보이지 않는 언어 세력 간의 물밑 지원'이 큰 몫을 차지하는 것 같다. 삼박자를 고루 갖춘 이가 수상할 가능성이 높다는 말이다. 이스라엘 작가 아모스 오즈'는 꾸준히 강력한 수상 후보로 거론되지만 중동 정세'를 보면 아모스 오즈에게 불리하게 적용된다. 세계 여론은 중동에서 독불장군처럼 전횡을 휘두르는

이스라엘에 대한 비판적 목소리가 높으니 앞으로 노벨상 위원회가 지역 안배 차원에서 중동 지역에 한 표를 선사한다면 아모스 오즈'보다는 반 이스라엘 중동 국가 출신 작가들이 유리하지 않을까 싶다. 이처럼 노벨상은 오로지 작품성 자체만 가지고 왕중왕전을 치르는 것은 아니란 말이다. 작품에 대한 명성만 놓고 보자면 보르헤스'가 노벨문학상을 수상하지 못한 것은 8대 불가사의 중 하나'에 속하며 평단의 전폭적인 지지로 보자면 토마스 핀천은 노벨상을 세 번은 타고도 남았을 것이다. 그리고 살만 루시디'는 어떤가 ? 노벨상이 100년이 넘었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20세기 기라성 같은 조이스, 톨스토이, 체코프, 입센, 에밀 졸라 그리고 마크 트웨인도 수상을 하지 못했다는 사실에 깜짝 놀라게 된다. 말이 나와서 하는 말이지만,

나는 새물결에서 나온 토마스 핀천의 < 중력의 무지개 > 가 십만 원에 가까운 가격으로 서점에 나왔을 때 입에서 쌍욕이 튀어나왔다. 출판사 입장에서는 소설이 지나치게 난해해서 팔리지 않을 소설이니 박리다매'보다는 후리소매(厚利小賣) 로 명품 전략'을 구사하겠다는 속셈'인데  막말로 이 바닥 상도를 감안하면 어긋나도 한참 어긋나는 전략'이다. 그런 식의 논리'라면 새물결이 보기에는 한길 그레이트북스 시리즈와 지만지 시리즈는 경영 마인드'가 형편없는 출판사'다.  어려워서 안 팔리는, 그것도 소설도 아닌 인문학 책들만 뚝심 있게 출판하니 말이다. 보아하니 < 중력의 무지개 > 는 초판 700부에 가격이 100,000원 안팎이면 손익분기점은 넘기는 모양이다.  700부가 다 팔리면 그때 가서 저렴한 가격으로 내놓겠다는 야심찬 포부를 천명하기도 했다. 

" 1000억불 수출 달성 기념 특별 세일 이벤트. " 라도 열겠다는 마인드다. 오, 맙소사 ! 책을 단순히 신라면 블랙'으로 생각하는 싸장님의 공격적 경영 전략 !  까다로운 입맛을 가진 vip를 겨냥해서 비싼 가격으로 소량을 팔겠다는 것인데, < 책 > 은 유감스럽게도 주머니가 넉넉한 사람보다는 가난한 자를 위한 필수품이 아니던가.  차라리 니체처럼 자비로 10부만 찍어서 어장 관리 차원에서 새물결 단골들에게 선물했다면 나 같은 사람은 그 마음에 감동하여 영원한 지지자'가 되었을 것이다. 좋은 책 내서 욕 먹고, 높은 가격 책정으로 계급 간 위화감만 조성하는 꼴이다. 소설 한 권 사서 읽을 돈 없을까마는 주인장 하는 꼴이 괘씸하오.  옛날에 책 도둑은 가난한 학생의 주머니 사정을 감안하여 눈 감아주는 미덕이 있었거늘.... 아이고, 배 아파서 나는 못 읽겠소 ! 

토마스 핀천에게는 미안한 소리이지만 내심 그가 떨어지기를 바랐다. 토마스 핀천 수상 소식에 희희낙락거릴 싸장님 생각을 하니 배가 아픈 탓이다. 농담이다. 그냥, 책값이 더럽게 비싸다는 소리를 구질구질하게 길게 늘어놓았다.  쓸데없이 말이 길어졌지만 앞으로 당분간은 코멕 메카시나 필립 로스 그리고 토마스 핀천 같은 북미 작가들은 수상을 하기는 힘들 것 같다. 캐나다 작가 앨리스 먼로가 이번에 수상했으니 말이다. 노벨 문학상'에 대한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가 불현듯 " 손창섭 " 이  생존해 있었다면 어땠을까, 라는 생각를 했다.  손창섭'이라고 하면 < 어 ? > 라고 반응하지만, 잉여인간이라고 하면 < 아 ! > 라고 반응하게 되는 전후세대 작가 말이다. 요즘 한창 유행하고 있는 " 잉여 " 라는 말도 따지고 보면 그 원조'가 손창섭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러니깐 우리는 손창섭이라는 위대한 작가를 소설 제목'으로만 알고 있는 것이다. 고전이라는 정의가 누구나 알고 있지만 아무도 안 읽는 책'이라고 한다면,  손창섭의 < 잉여 인간 > 이야말로 고전 중에서도 고전에 속할 것이다. 손창섭에 비하면 고은이나 황석영'은 한 수 아래'이다. 그가 절필 선언을 하지 않고 현해탄을 건너지 않았다면 한국 문학판은 180도 바뀌었을지도 모른다. 설령 그가 현해탄을 건넜다고 해도 한국 문단이 그에 대한 관심과 지지'를 꾸준히 보냈다면 머나먼 타관에서 쓸쓸히 죽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고집불통인 노 작가'는 후에 빛나는 걸작을 내놓아서 한국문단의 타는 목마름을 시원하게 해갈시켜 주었을 것이다. 손창섭 소설은 지금 다시 읽어도 여전히 파격적이다. 대한민국에 손창섭 만한 작가 없다.

어쩌면 손창섭의 죽음은 가장 강력한 노벨 문학상 후보 한 명을 잃은 것과 같다. 얼마 전 손창섭이 잡지에 발표한 단편 하나가 최근에 발견되어서 < 연인 > 이라는 문예지'에 그 단편이 실렸다는 기사를 읽은 적이 있다. 이처럼 발표된 작품도 모르고 지나갔으니 미발표 작품들도 있을 것이란 생각을 하니 답답할 뿐이다. 마음 넉넉한 출판사 하나 있어 손창섭에 대한 자료를 발굴하고 한데 모아서 고급스러운 양장본으로 손창섭 전집 하나 내줬으면 좋겠다. 토마스 핀천에 피똥 싸지 말고 손창섭에 투자하자 ! 비싸도 좋다, 구매할 의사 있다. 걸작에 대한 예감, 그 느낌 아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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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2013-10-11 06: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잉여인간, 하니까 아, 그 손창섭! 하고 알겠네요.
저 지금까지 곰곰발님이 몇몇 포스트에서 언급하신 손창섭을 염상섭이라고 생각하고 있었음요. ;;

뭐든 시상식이.. 순수하긴 참 힘들 거에요.
그래도 노벨문학상은 나중에 모종의 큰손들에 의해서 생긴 경제학상이나 세계영화제들보단 낫지 않나 싶기도 하구요.

곰곰생각하는발 2013-10-11 09:33   좋아요 0 | URL
염상섭...ㅋㅋㅋㅋㅋ. 표본실의 청개구리'인데.. 사실 저도 이거 안 읽어보았네요...
노벨문학상이 보면 유럽권에는 지나치게 관대하고 북미권에는 지나치게 짭니다.
다양성 차원에서 슬슬 아시나나 아프리카 중동 간간이 넣어두지만 생색내기인 것 같고...ㅋㅋㅋ

ㄷㄷ 2013-10-11 09: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노벨문학상 관련 글이 올라올거라 예상했습니다 하하...손창섭!!!!! 제가 정말 좋아하는 작가입니다! 지금도 도서관에 가면 괜히 손창섭 코너를 스윽 둘러보곤 합니다. 잉여인간도 좋지만 사실 저는 비오는 날을 제일 좋아합니다. 신의 희작도 좋아하구요. 정말 뛰어나고 독보적인 작가인데 연구도 미흡하고 잘 알려져 있지 않아서 안타까울 따름입니다. 주변에서 소설을 추천해달라 하면 손창섭 작품들을 소개해주긴 하지만...사실 기괴한 내용들이 많아서 사람들 반응이 그닥 좋지는 않더군요...저는 오히려 이런 기괴하고 암울한 느낌이 매력이라고 생각하는데 말이죠...

곰곰생각하는발 2013-10-11 09:35   좋아요 0 | URL
무시무시한 작가죠. 이런 분위기 흔치 않습니다.
아주 기묘하게 암울하면서 뭔가 스멀스멀 기어오르는 절망을 탁월하게 묘사하는 작가입니다.
삼부녀 요 작품도 기가 막혀요. 내가 보기엔 30년은 앞을 내다볼 줄 아는 작가였습니다.

수다맨 2013-10-11 10: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일설에 의하면 손창섭이 기인 기질이 다분히 있어서 문단이랑 별로 친하지는 않았다고 합니다. 또, 그의 성격이 낯을 가리는 편이라 친구들도 별로 없었다 하구요. 다른 얘기지만, 예전에 김신용 선생도 문단에 최승호 시인 정도를 제하면 딱히 친한 사람도, 아는 사람도 없다 하더군요.
아무래도 한국은 문단에서 위치가 확고한 작가=대가=노벨상 후보작가라는 공식이 너무 굳어져 있는 듯합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3-10-11 10:49   좋아요 0 | URL
손창섭이 현대문학상과 동인문학상을 수상해을 겁니다. 당대 최고의 상을 모두 휩쓸었는데 공교롭게도 문단과는 전혀 친하지 않았습니다. 안 친한게 아니라 좀 혐오했다고 해야 하나요. 거리두기를 열심히 했죠. 아마도 문단 사회가 가지고 있는 허세오기 싸움이 싫었던 까닭인 것 같더군요. 문단에 열심인 사람치고 제대로 된 인물 없죠. 문예비평이 개판인 이유도 서로 만나서 술 마시고 떠드는데...
만날 술 마시고 하는데 안면이 있으면 냉정하게 문학에 대해 평가를 내리지 못하지 않습니까...

2013-10-11 11:0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3-10-11 11:43   URL
비밀 댓글입니다.

즐거운 인생 2013-10-11 13: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맞아요. 전 솔직히 말해 필립 로스 등이 노벨 문학상 감인가도 의아. 뭐, 그럭저럭이더만..원래 지는 못 쓰면서
타인의 글엔 엄격한 척, 잘난 척 방방 뜨는 게 독자이긴 하죠. ㅋㅋ

스티븐 킹에게 노벨 문학상 줘야 해요. 케리 같은 글 한 편 쓰면, 절필해도 아쉬울 것이 없을 것 같아요.

곰곰생각하는발 2013-10-11 18:37   좋아요 0 | URL
저도 필립 로스는 모르겠고, 핀처는 인정합니ㅏ. 캐롤 오츠도 뭐 그닥 뛰어난 것 같지는 않고.... 하지만 살만 루수디는 워낙 트러블메이커이니 고걸 인정해 줘야 할 것 같고.. 뭐 그정도죠.
제가 한림원이었다면 킹에가 노벨상 줍니다.

히히 2013-10-12 01: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출판사 싸장님을 욕보인 곰...발님을 지지합니다.

노벨상이 국위선양에 지대한 영향력을 미친다 할 지라도
예술은 오직 자신을 사르는 불씨를 꺼뜨리지 않는 자의 몫입니다.
애국자라는 명분 보다는 이기적인 욕망을 따르는 자를 사랑하겠나이다.

곰곰생각하는발 2013-10-13 07:44   좋아요 0 | URL
전 노벨상'이 대단하다고 생각해 본 적이 없어요.
그냥 운이 좋은 사람이 타는 것이려니 합니다.
 

말과 글.

 

같은 소리를 계속 반복하지만 < 한글 > 과 < 한국어 > 는 다른 차원이다. 한글날은 세종대왕이 나랏말쌈이 듕귁가 달라 서로 사맛디 아니해서 훈민정음을 반포한 날'을 기념하는 국경일'이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 한글날 > 이지 < 한국어의 날 > 은 아니란 말이다. " 한국인 98%가 틀리는 맞춤법 시리즈 " 를 살짝 비틀어서 말하자면 한국인은 98%가 한글과 한국어의 차이를 혼동한다. 한글은 문자이고 한국어는 언어'이다. 한글을 도입한 < 찌아찌아'족 > 를 예로 들어보자. 한글을 도입한 인도네시아 소수 부족인 찌아찌아 사람들이 한글을 사용하기 때문에 한국어'를 사용하는 부족이라고 할 수 있을까 ?

아니다, 인도네이사 바우바우 섬에 사는 찌아찌아 사람들은 한글을 사용하지만 찌아찌아 소수 부족어'를 사용한다. 그들은 사랑을 뜻하는 찌아찌아어인 움쌀롸꽐라꽐라'를 그저 한글로 움쌀롸꽐라꽐라'라고 쓰는 것일 뿐이다. ( 만약에 그들이 움쌀라꽐라꽐라를 버리고 사랑'이라고 말한다면 찌아찌아 사람들은 한국어를 한다고 말할 수는 있다. ) 같은 이유로 옛 조상들이 한문을 도입해서 널리 사용했다고 해서 중국어'를 사용한 것은 아니다. 낫 놓고 기억 자'를 모르는 사람도 한국어를 유창하게 할 수 있다. 그러므로 문자와 언어'를 구별할 필요가 있다. 나는 한글이 과학적이라는 데에는 동의하지만 한국어가 과학적이라는 데에는 1%도 동의하지 않는다.

언어'라는 것은 자연발생적 요소에 의해 생성된 것이지 과학적 필요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찌아찌아 부족(어)가 무문자 사회라고 해서 한국어보다 비과학적 언어이며 비문명 사회'라고 주장한다면, 나는 당신에게 이렇게 말하겠다. " 나가 뒈져라 ! " 그런 식으로 주장한다면 한문을 빌려 사용했던 한민족 또한 비과학적 언어를 사용한 비문명 국가라는 반론에 대해 딱히 이의를 재기할 수는 없을 것이다. 마빈 해리스는 무문자 사회가 문자 사회보다 열등한 언어체계를 가지고 있다는 선입견이 얼마나 터무니없는 것인가를 다음과 같이 지적한다. " 무문자 사회 주민들은 식물들의 속성을 매우 세밀하게 구별할 줄 안다.

평균 그들은 500내지 1000종을 분간해 그 이름을 알고 지낸다. 그에 비해 산업화된 도시 사람들은 보통 50 내지 100 정도밖에 알지 못할 것이다. " 이 지점에서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언어'는 비교 평가'가 불가능한 영역이라는 점이다. 그런데 한국인은 무조건 한국어는 세계에서 유래를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과학적인 언어'라고 말한다. < 넘버 3 > 에 나오는 송강호'도 이구동성으로 같은 말을 할 것이다. 누군가는 한글이 유네스코 세계 기록 문화 유산임을 예로 들며 한국어의 우수성'을 주장하는데 한글이 유네스코 세계 기록 문화 유산'이라는 정보는 틀린 정보이다. 정확히 말하자면 유네스코 세계 기록 문화 유산'에 등록된 한국 문화재 목록은 다음과 같다.  

훈민정흠하례본(1997년지정) 조선왕조실록(1997년지정) ㉢직지심체요철(2001년지정) ㉣승정원일기(2001년지정) ㉤팔만대장경(2007년지정) 조선의 궤(2007년지정) ㉦동의보감(2009년지정) ㉧일성록(2011년지정) ㉨5.18광주민주화운동기록(2011년지정) ㉩난중일기(2013년지정) ㉪새마을기록(2013년지정)

목록을 보고 눈치가 빠른 사람이라면 세계 기록 문화 유산'은 < 한글' > 이 우수하기 때문에 선정한 것이 아니라 < 훈민정흠하례본' > 이라는 기록물이 가치가 있기 때문에 선정한 것이란 사실을 깨달았을 것이다. 한자로 기록된 < 직지심체요철 > 이나 < 팔만대장경 > 만 보더라도 유네스코 기록 문화 유산 선정 기준은 한글이라는 문자의 우수성 때문이 아니라 기록물을 대상으로 한다는 사실을 쉽게 알 수 있다. 그런데 핵심은 쏙 빠지고는 훈민정음'이 등재되었다는 사실만을 놓고는 한글의 우수성을 강조한다. 요약하자면 유네스코 기록 문화 유산의 취지는 " 유네스코가 세계의 귀중한 기록물을 보존·활용하기 위해 선정하는 문화유산이다. 1997년부터 매2년 마다 선정하며, 국제자문위원회에서 심의·추천하고 유네스코 사무총장이 선정한다(두산백과) " 이다.

또 누군가는 한자에 빗대어 한글이 소리를 재현하는데 탁월하기 때문에 우월하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그런데 이러한 태도는 아전인수 격이다. 한자는 표의문자이고 한글은 표음문자'이다. 표음문자란 말소리를 그대로 기호로 나타내는 문자이니 당연히 소리'를 재현하는 데 한자에 비해 뛰어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이러한 비교는 자신에게 유리한 쪽만 보는 것이다. 장단점을 고루 평가해야 하는데 장점만 부각시키는 것은 아닐까 ? 누군가가 총알 탄 사나이인 우사인 볼트의 달리기 솜씨와 이대호의 달리기 솜씨를 비교하며 이대호라는 선수와 야구라는 스포츠를 폄하한다면 조롱거리만 될 것이 분명하다.

나는 한국어가 우수하다는 데에는 동의하지 않지만 훈민정음'이 우수하다는 데에는 동의한다. 다만 이 동의는 타 문자에 대한 우월성을 전제로 한 값은 아니다. 그저 내 모어'이니 이보다 좋을 수는 없기에 좋은 것일 뿐이다. 내가 한글 대신 훈민정음'이라고 콕 집어서 말하는 이유는 훈민정음 창제의 과학적 체계'와 사고는 인정하지만 일제 이후의 한글 정책'에는 동의하지 않기 때문이다. 한글 정책은 갈팡질팡하다가 이상하게 꼬여서 들쑥날쑥해졌다. < 짜장면 > 과 < 자장면 > 에 대한 혈투와 화해의 과정이 이해가 가지 않고, 몇 월은 되지만 몇 일'은 띄어쓰기가 되지 않아서 벌어진 " 가까이 하기엔 너무 먼 것 " 들에 대한 정의가 아리송하다.   

그리고 생뚱맞은 사이시웃 문법 정책 또한 쉽게 납득이 안 간다. 애국심을 바탕으로 한 알 수 없는 자신감'은 지나가는 개에게나 줘라. 한국인의 문화 우월주의는 교묘하게 대타자에 대한 문화 컴플렉스에서 기인하는 경우가 많다. 열등감이 허세'를 부른다는 말이다. < 입 > 으로만 세계에서 가장 과학적인 언어'라고 외치지 말고, < 발 > 로 현장을 뛰어나니며 < 손 > 으로 열심히 적어라. 그게 바로 한글 사랑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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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탈야 2013-10-10 18: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몇 일은 며칠인데
몇 월은 며둴이 아닌 이유 좀 알려주세요. (굽신굽신)

곰곰생각하는발 2013-10-10 18:35   좋아요 0 | URL
그래서 찾아보았습니다. 몇 년 몇 월하고 몇 일'의 차이는 발음의 차이라고 하네요..
뭐라뭐라 설명하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모르겠어요..

즐거운 인생 2013-10-11 01: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나탈야 님 배너 타고 직행으로 왔어요. 새삼 방가워요. 이런 좋은 글은 네이버에도 띄워서 더 널리 읽히게 해야 합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3-10-11 02:32   좋아요 0 | URL
어라 ? 여기 즐거운 인생 님 글이 또 있네요.. ㅎㅎㅎㅎㅎ. 사실 저도 한글과 한국어 헷갈렸거든요.
곰곰 생각하니 전혀 다른 차원이더라고요. 언어는 참 신기한 거예요.
어떻게 각 나라마다 언어가 탄생하게 되었을까요 ? 신기함... 신기함...

나탈야 2013-10-11 16: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말의 탄생에 대한 기원은 제가 알기론 바벨탑 사건이 유일한 기록인 걸로 알고 있어요. 참 신기하죠.
어떤 나라들은 서로 붙어있는데도 국경을 사이로 전혀 다른 언어가 싹 갈려버리니깐뇨...

신기해 신기해

곰곰생각하는발 2013-10-11 18:36   좋아요 0 | URL
저도 그게 신기합니다.... 아니 어떻게 각자 다 다른 말이 생기죠 ?
인도네시아 같은 경우는 부족어가 다 달라요. 얼마나 신기합니까....
음... 그것에 대한 책을 몇 권 좀 독파해서 나탈야 님께 알려드리겠습니다.

히히 2013-10-12 00: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무문자 민족은 두뇌가 상당히 뛰어날 것 같아요.
그들의 구비문학은 우리 머리로는 가늠할 수 조차 없지 않겠어요?

곰곰생각하는발 2013-10-13 07:45   좋아요 0 | URL
신기하죠. 문자없이도 식물을 1000종 가까이 분류 가능하다니 말입니다.
신기한 구석이 있어요.

피비 2013-10-12 21: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사람들 의외로 한글이랑 한국어 잘 구분 못해요

곰곰생각하는발 2013-10-13 07:58   좋아요 0 | URL
아이구 피비 요정 님 오셨군요 !
맞아요. 사실 저도 그 전에 이걸 구별을 못했어요...ㅎㅎ
 
농담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9
밀란 쿤데라 지음, 방미경 옮김 / 민음사 / 199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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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지 않으면 비극이 된다.

 

니체는 이런 소리를 했다. " 세상에서 인간보다 가장 큰 고통을 느끼며 살아가는 존재는 없다. 그래서 웃음을 발명할 수밖에 없었다. " 이 말은 곧 웃음'은 불행과 연관이 깊다는 소리'이다.  자주 웃는 사람은 행복한 사람이 아니라 불행한 사람일 경우가 높다. 완벽하게 행복한 사람은 웃지 않는다. 왜냐하면 웃을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심리학자 월리엄 맥두걸의 말이다.  사실 < 웃음 > 은 우리가 생각하고 있던 메커니즘'을 살짝 뒤집는다. 기대에 충족시킬 때는 < 감탄 > 이 되고, 기대 이상일 때에는 < 경탄 > 이 되지만,  기대에 못 미칠 때 < 웃음 > 이 나온다. 그러므로 웃음이란 기본적으로 실패의 결과이다. 오늘따라 이 말들이 나를 위로한다.

- 말하기의 다른 방법 중

 


 

 

< 웃음' > 이라는 속성'은 생각보다 복잡하고 예민한 구석이 있다. 나보다 나이가 많은 양반이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위해서 농담을 던졌을 때, 비록 그 농담이 철 지난 장소팔-고춘자 만담'처럼 느껴지더라도 일부러 웃는 척을 하는 행위는 기만이라기보다는 예(禮)에 속한다. 자신이 가지고 있는 성대를 울려 웃음을 만든다고 해서 딱히 손해를 보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 오히려 농담이 재미없다고 해서 정색을 하며 무표정하게 상대를 바라보는 행위야말로 솔직한 태도라기보다는 무례(無禮 )에 가깝다. 그런데 예의를 차린답시고 너무 크게 웃어버리면 실례 ( 失禮 ) 가 된다. < 후후후 > 와 < 아햏햏 > 은 한 끗 차이'이지만 가까이 하기엔 너무 먼 의미'이기도 하다.

이와 같이 < 웃음 > 은 발신자와 수신자의 지위, 웃음의 강약, 발화의 장소에 따라 복잡하게 변하는 메커니즘을 가지고 있다.  재미없는 농담에 대한 무표정은 " 솔직한 태도 " 에 가깝지만 역설적이게도 < 무례 > 가 될 수 있다. 그리고 재미없는 농담에 대한 적당한 웃음'은 " 거짓 " 이라는 형태를 취하지만 반대로 타자를 배려하려는 < 예 > 가 될 수도 있다. 재미있는 사실은 그 웃음이 지나치면 < 실례 > 가 될 수도 있다는 점이다.  말 그대로 가지고 있던 예(禮)를 놓쳐버린 꼴(失) 이다. 좋게 말하면 < 웃음 > 이라는 녀석은 성격이 예민한 것이고, 나쁘게 말하면 변덕이 죽 끓듯 해서 어느 쪽에 장단을 맞춰야 하는지 모르는 놈이다.   

밀란 쿤데라의 < 농담 > 은 " ...... " 이라고 해야 하는 사회에서 " 아햏햏 " 이라고 웃어서 인생 좆된 케이스'이다. 루드빅은 평소 관심이 있던 마르게타에게 추파를 던진다. " 낙관주의는 인류의 아편이다 !  건전한 정신은 어리석음의 악취를 풍긴다.  트로츠키 만세 ! "  평소 무뚝뚝한 성격인 마르게타'에게 농담 한 마디 한 것뿐인데 그는 이 농담 때문에 강제수용소에 끌려가 중년이 되어서야 풀려나온다. 내가 만약에 소설 속 주인공인 루드빅'이었다면 " 낙관주의는 인류의.... " 따위의 문장을 작성하기보다는 차라리 " 내 마음을 몰라주는 마르게타 때문에 내 마음도 마르겠다 ! 아햏햏. " 이라고 써서 엽서를 보냈을 것이다.  루드빅은,  유머감각이 부족한 것이다 ! 하지만 중요한 것은 유머 감각이 쩔다와 구리다의 차이'가 아니다.

농담에 대해 웃지 않는 사회'가 문제'인 것이다. 농담에 대해서 정색하는 사회'는 병색이 완연한 사회이다. 루드빅이 " 낙관주의는 인류의 아편 "이라고 실없이 말했다면, < 장미의 이름 > 에 나오는 호르헤 수도사는 " 웃음은 인류의 아편 " 이라고 진지하게 말한다. 그래서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 제2권 < 희극론 >에 독을 묻혀서 그 책에 읽는 이'를 독살한 것이다. 종교'란 기본적으로 신과 율법에 대한 공포와 두려움'이 강할수록 강력하게 작동하기 때문이다. 호르헤 수도사'는 웃음이 종교적 힘'을 약화시키는, 근엄에 똥침을 날리는 손가락이라고 생각한 모양이다. 누구나 동의하겠지만 호르헤 수도사'는 너무 웃지 않아서 미친 것이다.

< 농담 > 의 배경이 되는 경직된 사회와 < 장미의 이름 > 에 등장하는 호르헤 수도사'는 웃음을 부정적 기운으로 간주했지만  아시다시피 웃음'이란 生의 활력소'다. 그렇다고 해서 웃음을 만병통치약이라고 주장하는 것 또한 경계해야 한다. 왜냐하면 웃음'이란 부족해도 문제가 되지만 넘쳐도 문제가 되기 때문이다. 웃음이 지나치면 쾌락주의'에 빠지기 쉽다. 가장 좋은 웃음은 < ...... > 와 < 아햏햏햏 > 사이에 놓인 웃음일 것이다. 웃음이 가지고 있는 기능 가운데 중요한 것은 바로 공감'이다.  좀더 유식하게 말하자면 저자와 독자 간의 상호 교류'이다. 독자가 책에서 마음에 드는 문장을 골라 밑줄을 긋는다는 것은 저자의 생각에 동의한다는 의사 표시이며 지지'이다.

웃음도 마찬가지다. 웃음은 농담을 하는 사람에 대한 작은 동의이며 손해 볼 것 없는 지지'이다. 그러므로 책에 밑줄 긋는 연필과 조용한 웃음은 동의어'다. 오래전, 호르헤 수도사'처럼 웃지 않는 친구를 둔 적이 있었다. 시립 도서관에서 오고가다 만난 사이였다. 그는 세상 사람들이 주머니에 칼을 숨기고 다닌다고 생각하는 사람이었다. 문학적 수사'가 아니다. 그는 정말로 사람들이 주머니에 칼을 숨기고서는 호시탐탐 자신을 찌를 궁리만 한다고 생각했다. 불안한 마음과 초조한 눈빛은 항상 그의 영혼을 갉아먹었다. 그는 날마다 마르는 고사목 같았다. 내가 웃음이 없던 그를 끌고 간 곳은 수요일이면 영화를 상영해주던 도서관 시청각실'이었다. 상영 영화는 < 라임라이트 > 였다.

채플린 영화가 그를 웃게 만들 거란 막연한 생각을 했기 때문이었다. 나는 그가 웃는 모습을 보고 싶었다.  하지만 그는 영화 상영 내내 웃지 않았다. 그리고 나 또한 웃지 않았다. 웃기는커녕 펑펑 울었다. 분장을 지운 광대의 얼굴만큼 슬픈 얼굴'이 또 있을까 ? 찰리 채플린'이 카메라를 응시하며 분장을 지울 때, 무표정한 얼굴로 정면을 바라보았을 때, 절뚝거리며 마임을 선보일 때, 무성영화 배우가 토키 영화'에 나와 말을 걸 때, 노인이 된 버스터 키튼의 둥근 어깨를 보았을 때, 그럴 때마다......  슬펐다.  채플린은 독백처럼 말한다. " 웃지 않으면 비극이 되지...... " 이 대사가 왜 그렇게 내 심장을 찔렀는지는 잘 모르겠다. 광대'에게 있어서 " 비극 " 이란 관객이 웃지 않을 때이니,

저 대사'는 잊혀져간 늙은 광대의 고해성사 같아서 슬펐다. 영화가 끝나자 사람들이 칼을 주머니에 숨기고 다닌다고 생각하는 친구가 내게 물었다. " 코미디 영화인데 왜 울어요 ? " 곰곰 생각했으나 딱히 떠오르는 답이 없어서 그 친구에게 되물었다. " 코미디 영화인데 너는 왜 웃지 않니 ? " 그친구도 곰곰 생각하는 눈치였다. 그리고는 말했다. " 영화는 재미있었어요 ! 다만 웃고 싶지 않았을 뿐이에요. 웃은 지 꽤 오래되어서 그 느낌 자체를 잃어버렸어요. " 웃음을 잃어버리면 쉽게 절망하고 슬퍼한다. 그리고 슬픔을 버리면 쉽게 웃을 수 있지만 웃음은 한 번 잃어버린 웃음을 다시 찾는 데에는 아주 오랜 시간이 걸린다. 어떤 사람은 웃음이 없는 세월을 버티지만 누군가는 버티지 못하고 낙엽처럼 떨어진다.

채플린이 말한 극중 대사'처럼 인생이란 웃지 않으면 비극이 된다. < 농담 > 을 읽다가 문득 웃지 않아서 웃음을 잃어버렸다던 친구가 생각났다. 그는 다시 웃음을 찾았을까 ? 아니면 버티지 못하고 쓰러졌을까 ? 소식이 끊긴 지 꽤 오래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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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다맨 2013-10-09 21: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예전에 잘 알던 선생님이 이런 말씀을 해주셨습니다. '사람들이 보통 채플린의 작품 하면 '모던 타임즈'부터 말하지만 나는 '라임 라이트'를 떠올린다. '모던 타임즈'가 시대에 대한 비판적 자의식으로 만든 작품이라면, '라임 라이트'는 쌓이고 쌓여 발효된 예술가의 내공으로 빚어낸 작품이다'
지금은 어렴풋이 기억나긴 하는데, '라임 라이트'에 이런 대목이 있었지요. 늙은 광대는 한물간 개그를 하는데 고용된 관객들은 그것을 보면서 웃음을 보내지요. 광대는 무언가 이상하다는 걸 알지만 그래도 즐겁게 공연을 마무리하지요. 때로는 그 가짜 웃음이야말로 어떻게 보면 진짜로 좋아서 나오는 웃음보다 더 값지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3-10-10 09:13   좋아요 0 | URL
저는 시티라이트와 라임라이트를 좋아합니다. 쌍라이트'죠.. ㅎㅎㅎㅎ
라임라이트는 채플린이 스스로 이제는 자신의 시대가 끝났다는 사실을 자각하고 만든
유서와 같은 작품이죠. 이 영화에는 그 위대한 버스터 키튼도 나옵니다.
아, 이 위대한 코미디언'은 정말 노인이 되었더군요.
두 위대한 코미디언이 한자리에 모인다는 것 자체가 감동이었습니다.


2013-10-10 01:34   URL
비밀 댓글입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3-10-10 09:14   좋아요 0 | URL
손창섭... 저도 누구 소개로 받아보고는 그만 뻑이 갔죠......
책 너무 처분하지 마세요.. 나중에 후회합니다..ㅎㅎㅎㅎㅎ

네에 가까운 날에 한번 봅시다.

엄동 2013-10-10 11: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죽지못해 살고
울지못해 웃지만.

무례나 실례가 아니라면
이 퍽퍽한 세상에 웃음만큼
쉬 업될 수 있는 도구는 없을 겁니다

그것의 파워는
때때로 양 엄지를 추겨세울만큼
폭발적거덩요 흐흐흐흐

곰곰생각하는발 2013-10-10 14:02   좋아요 0 | URL
이제 슬슬 엄동설한 님의 계절이 돌아오는 군요.
겨울 말입니다. 조금 지나면 겨울이겠지요 ?
전 딱히 웃지는 않는데...
하여튼 웃어서 나쁠 것은 없겠더라고요.
웃음에 필요한 근육을 사용하면 뇌가 멍청해서
실제로도 기쁜 감정이 생긴다고 해요.
억지로 웃어도 말이죠..
하여튼 인간의 뇌란 늘 멍청합니다.

마립간 2013-10-10 11: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흔하게 주위 사람들에게 던지는 질문입니다. 사랑 한번 못해 본 사람이 더 부정적일까요, 사랑에 실패한 사람이 더 부정적일까요?

곰곰생각하는발 2013-10-10 14:03   좋아요 0 | URL
항상 아리송한 질문을 저에게 던져주시는 마립간 님.. ㅋㅋㅋㅋ
사랑 한번 ㅗㅅㅎ못해본 사람은 부정적이기보다는 어떤 판타지가 작동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제 입장에서만 말하자면 실패하면 사랑은 더욱 부정적으로 다가오는 거 가틉니다.

마립간 2013-10-11 12:13   좋아요 0 | URL
엄격히 말해서 다른 분에게 드렸던 질문은

(객관적 입장에서)사랑 한번 못해 본 사람이 더 불행하냐, 아니면 사랑에 실패한 사람이 더 불행하냐 입니다. ; 전자를 지지하는 사람은 사랑의 실패에 대한 아픔을 잘 모르는 사람일 수 있고, 후자를 지지하는 사람은 삶의 긍정이 약한 사람일 수 있죠.

물론 저는 아직 결론을 못 내린 상태입니다. 요즘 행복에 관해 생각하고 있기에 나름 정리가 될 때까지 불행대신에 부정적이다라는 단어로 대신했습니다. 곰곰발님은 제3자의 평가가 아니라 당사자의 입장에서 판단을 해서 제가 조금 당황하고 생각을 다시 정리하게 되었습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3-10-11 18:40   좋아요 0 | URL
예 맞아요. 위의 정의는 순전히 제 경험담입니다...ㅎㅎㅎㅎㅎㅎ
저도 그것에 대해서는 좀 생각을 해봐야겠네요.
좀 생각을 하고서 정리를 하도록 하겠습니다...

즐거운 인생 2013-10-11 01: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어째 네이버에 있을 때보다, 점잖은 동네로 이사해서 그런가 예전보다 글이 더 정제된 느낌이네요.
더 잘 쓴다구요!

곰곰생각하는발 2013-10-11 02:30   좋아요 0 | URL
즐거운 인생 님 감사합니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즐인 님이 그리 말씀하시니 기분이 방방 뜨는군요.
여기는 그래도 신경이 좀 쓰이더라고요. 네이버야 그냥 거의 막 갈긴 글인데 여긴 뭔가 한번 들여다보고
그러더라는거죠.. ㅎㅎ. 나탈야 베너 효과 좋은데요 ~

히히 2013-10-12 00: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가장 황홀한 쾌락과 가장 감미로운 기쁨을 느꼈던 시기라고 해서
가장 감동적인 것은 아닙니다.
그 강렬함 때문에 인생에서는 듬성듬성 생겨난 자국에 지나지 않습니다.
환희의 절정 다음에 뒤따르는 참담함을 경험한 자라면
단조롭고 사심없는 상태의 연속성에서 행복을 느낄것 입니다.
<감탄>에 집착하지 마시고 <웃음>을 쌓아서 광자가 됩시다.
미쳐야 행복하지요.

곰곰생각하는발 2013-10-13 07:57   좋아요 0 | URL
인생은 섹스와 같은 것 같습니다.
하고 나면 뭔가 나른하고 허탈한 그런 느낌..
맞아요, 쾌락과 기쁨은 하나의 과정이지
지속은 되지 않습니다.
 

말하기의 다른 방법'

 

 

미국 캘리포니아 대학에서 연구한 자료에 따르면, 사람은 하루에 평균 무려 200번, 시간으로 따지면 약 8분에 한번 꼴로 거짓말을 한다고 한다. 만약 이 질문에 오늘 하루 동안 단 한 번도 거짓말을 한 적이 없다고 대답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사회생활에 문제가 있거나 거짓말쟁이일 확률이 높다고 봐야할 것이다. 이처럼 우리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 생각보다 훨씬 많은 거짓말을 하며 살아간다.

- 텔링 라이즈, 출판사 책 소개 글 中

 

 

 

 

 

 


 

 

소리 없이 눈으로만 가만히 웃거나 목소리가 매력적인 사람을 부러워한 적은 있어도 말을 잘하는 사람을 부러워한 적은 없다. 인간 거짓말 탐지기 박사인 폴 애크먼은 < 텔링 라이즈 > 에서 인간은 입만 열면 거짓말을 하는 존재'라고 주장한다. 약 8분에 한 번 꼴로 거짓말을 하고 10분에 한 번 꼴로 섹스'를 생각한다고 하니,  인간이란 입으로는 거짓말을 하고 뇌는 온통 섹스 생각뿐이다. 앉으나 서나 당신(과의 화끈한 섹스) 생각뿐이다. 스스로를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보기에는 이 데이터가 지나치게 허무맹랑할지 모르지만,  하루에 평균 8분마다 거짓말을 하고 10분마다 섹스를 생각하는 나는 수긍이 가는 대목이다.  왜냐하면 이 글을 작성하는 짧은 순간에도 거짓말과 음란한 생각을 했기 때문이다.

나는 < 텔링 라이즈 > 를 읽지 않았으나 읽은 척하며 말했고,  lie가 그 lie가 아님을 알면서도 자꾸 그 lie가 생각나서 불현듯 이화장 모텔 침대에 눕던 어떤 밤이 생각났다. 이 짧은 시간에 말이다. 촉촉하고 검은 동굴 속으로 탐험을 하고 있을 때 땀방울이 내 등골을 타고 움푹 파인엉덩이 골에 또르르 떨어지던, 아... 황홀한 밤 !  남자란, 그런 존재'다. 그러니깐 당신이 스타벅스에서 굉장히 잰틀하고 교양있는 남자와 1시간 동안 문학에 대한 열정을 나눌 때 남자는 평균 7번의 거짓말을 하면서 중력을 무시한 싱싱한 노른자위 같은 젖가슴과 촉촉한 동굴에 대한 생각을 하면서 당신을 벌거숭이로 만든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과학적 데이터만 놓고 본다면 말이다. 이처럼 신체 기관 가운데 가장 교활하며 모순적인 기관은 < 입 > 과 < 뇌 > 다. 오히려 < 말 > 보다 항상 앞서서 곤란을 겪는 < 거친 주먹 > 은 이들에 비하면 정직한 쪽에 속한다.

말이 많다는 것은 말이 없는 사람보다 거짓말을 더 많이 하는 사람이니 말을 잘하는 사람을 믿으면 안 된다. 할 말 안 할 말 가려해야지 할 말 안 할 말 다 하면 곤란하다. 할 말은 과천 경마장으로 보내고, 안 할 말은 마굿간으로 보내야 하며, 말 밖에 믿을 게 없다는 말하는 인간은 나중에는 전재산을 탕진하고는 경마장 볕 잘 드는 곳에서 쪼그려앉아 쪽잠을 잘 것이다. " 말을,  믿지 마세요 ! " 그래서 나는 " 말 한 마디에 천냥 빚을 갚는다 " 따위의 속담을 믿지 않는다. 말 한 마디에 천냥 빚을 갚을 능력을 가진 놈은 팔 할이 사기꾼'이다. 냉정한 소리 같지만 그 아무리 좋은 사람이라고 해도 기본적으로 51%만 믿고 나머지 49%는 의심을 가져야 하지 않을까 싶다. 곰곰발, 누누이 이야기하지만 모든 것은 한끗 차이. 호(好) 와 오(惡) 에 대한 기준도 결국은 한끗 차이'이다.

아시다시피 인간은 처음부터 < 말 > 을 했던 존재는 아니었다. 하지만 말을 배우지 못한 원숭이 조상들이 " 집단 내 의사소통 " 이 불가능했던 것 또한 아니었다. 말을 대신한 얼굴 표정은 가장 강력한 표현 수단이었고, 말이 아닌 소리를 동반한 손짓과 발짓으로 이루어진 몸짓은 언어 없이도 충분히 의사소통을 가능하게 만들었다. 프란스 드 발은 < 침팬지 폴리틱스 > 에서 인간 뺨치는, 권모술수에 능한, 침팬지의 줄서기와 뒤통수 정치학'을 제대로 보여준다. 눈짓과 몸짓 몇 가지 표현만으로도 복잡하고 치밀한 계획'이 이루어진다는 사실을 증명한다. 정말 무서운 분'들이시다. 이후 " 털 있는 원숭이 " 에서 " 털 없는 원숭이 " 로 진화한 인간이 말을 배우기 시작하면서 < 얼굴 표정과 몸짓 기호 > 대신 < 언어 > 가 의사를 전달하는 가장 중요한 표현 방식'이 되었다.

털을 갓 벗은 인간은 언어'에 점점 익숙해지면서 그 옛날 통용되었던 얼굴 표정과 몸짓 기호'를 까먹기 시작했다. 오랜 타관 생활에 모국어를 잊게 되는 디아스포라의 운명'처럼 말이다. 언어는 가장 강력한 표현 수단이 되었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뇌를 통해 입으로 쏟아내는 말은 뻥이 팔 할이었으니 정확한 의사 표현은커녕 혼란만 가중시키는 꼴이 되었다. < 말 > 은 결과적으로 사기꾼과 모사꾼, 카사노바와 철면피, 독재자와 간신 그리고 " 왕년에 ~ " 를 입에 달고 사는 수많은 꼰대를 양산했다. 누가 나에게 꼰대를 알기 쉽게 정의 내리라고 하면 이렇게 묘사하겠다 :  [ 누렇게 변색된 백먕 메리야스 사이로 설핏 보이는, 축 늘어진 거무퉤퉤한 젖꼭지'는 그가 왕년에 별 볼 일 없는 수컷이었다는 사실을 증명하지만,  골목길을 지나가는 아가씨 엉덩이를 보자마자 아랫도리가 꼿꼿하게 서 있는 모습에 성욕만큼은 왕년과 다르지 않음에 스스로 기뻐하는 존재. ]

결국 말은 인간을 만물의 영장'으로 만들었지만 반대로 가장 믿을 수 없는 짐승으로 만들기도 했다. 말은 가장 정확한 정보를 제공하는 기호이면서 동시에 가장 정확하지 않은 정보'를 제공하는 기호'이다. 반면 얼굴 표정이나 몸짓 기호'는 말에 비해 정확한 정보'를 제공한다. 야구에 빗대서 말하자면 말은 타자를 속이기 위한 변화구에 가깝고, 표정과 몸짓은 직구'에 가깝다. 표정은 거의 모든 것을 제공한다. 예를 들어 모나리자의 미소'는 가짜에 가깝다. 왜냐하면 가짜 미소'는 비대칭을 이루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흔히 썩소'라고 말하는 한쪽만 올라간 입꼬리'는 가짜 미소'다. 이처럼 가짜 감정'을 연기할 때는 표정이 비대칭적인 구도가 된다.  예를 들면 가짜-분노'에서는 왼쪽 눈썹이 더 낮게 내려가고, 가짜-혐오 표정에서는 코주름을 잡을 때 더 왼쪽으로 기울어지는 경향이 있다고 한다.  

모나리자의 미소가 가짜 미소라는 증거는 비대칭성 이론'을 제외하더라도 눈을 보면 알 수 있다. 진짜 웃음과 미소'가 사용하는 얼굴 근육은 눈 부위 근육과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진짜 미소를 관장하는 근육이 작동되면 자연스럽게 눈 근육에 영향을 준다. 반면 가짜 미소'는 입꼬리를 움직이는 근육만을 사용할 뿐이기 때문에 눈' 근육에는 영향을 주지 않는다. 미소 짓는 척 할 뿐이다. 모나리자 그림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입은 미소를 짓고 있는데 눈은 웃고 있지 않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인지과학자들이 보기에는 모나리자의 미소는 억지 웃음'에 가깝다. 하지만 모나리자를 탓할 수는 없는 노릇이 아닐까 ?  모나리자는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 김치 ~ " 하라고 요구하니,  그저 " 김치 " 라고 말했을 뿐이다. 얼굴 표정은 말할 필요도 없고, < 손짓 > 또한 얼굴 표정만큼이나 중요한 정보를 제공한다. 

모나리자는 전형적인 오른손잡이'일 확률이 높다. 오른손잡이'일 경우, 가짜미소를 흉내 낼 때 왼쪽 입꼬리'가 올라가는 경향이 있다고 한다. 이를 뒷받침하는 증거는 또 있다. 좌뇌사용자/오른손잡이'는 손깍지를 하거나 팔짱을 낄 때 오른손 엄지와 오른팔이 위로 올라간다. 그림 속 손의 위치를 보면 오른손이 왼손 위에 올려져 있다. 이 사실만 보더라도 그녀는 지독한 좌뇌 사용자'라는 계산이 나온다. 이처럼 손짓은 매우 많은 정보를 제공한다. 근심이 가득할 때 우리는 주로 손으로 뺨을 만지게 되는데 그러한 행동은 엄마가 아이를 어루더듬었던 스킨십의 체온을 무의식적으로 재현한 것이다. 위로 받고 싶은 심리 때문이다. 그런가 하면 거짓말이 들통날까 봐서 당황스러울 때 우리는 흔히 손으로 코를 만지거나 입을 자주 만지게 되는데 이러한 행동은 주로 얼굴 표정을 상대가 알아차리지 못하도록 가리기 위한 무의식적 반응이다.

이처럼 팩트는 말이 아니라 한순간에 지나가는 표정과 몸짓'으로 감지된다. 그래서 나는 인간이 내뱉는 말'을 믿지 않게 되었다. 언제부터인가 나는 함민복이 믿는 말랑말랑한 힘 대신 딱딱한 유물론자가 되었다. 이 세상에는 스승도 없고, 멘토도 없다. 그리고 달달한 사랑도 떨리는 고백도 믿지 않게 되었다. 여기서 콜린 윌슨의 말투를 빌리자면, "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달달한 사랑과 떨리는 고백을 간절히 원한다. 니체는 이런 소리를 했다. " 세상에서 인간보다 가장 큰 고통을 느끼며 살아가는 존재는 없다. 그래서 웃음을 발명할 수밖에 없었다. " 이 말은 곧 웃음'은 불행과 연관이 깊다는 소리'이다.  자주 웃는 사람은 행복한 사람이 아니라 불행한 사람일 경우가 높다. 완벽하게 행복한 사람은 웃지 않는다. 왜냐하면 웃을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심리학자 월리엄 맥두걸의 말이다.  

사실 < 웃음 > 은 우리가 생각하고 있던 메커니즘'을 살짝 뒤집는다. 기대에 충족시킬 때는 < 감탄 > 이 되고, 기대 이상일 때에는 < 경탄 > 이 되지만,  기대에 못 미칠 때 < 웃음 > 이 나온다. 그러므로 웃음이란 기본적으로 실패의 결과이다. 오늘따라 이 말들이 나를 위로한다. 나는 평소 웃을 일이 없으니 시바 존나 행복한 사람이구나. 으하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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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amoo 2013-10-08 12: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말하기의 다른방법...잘 읽었어요. 곰발님에게 베르그손의 <웃음>을 강추드립니당~ㅎㅎ
뭐, 이미 읽으셔따면 패쑤~

곰곰생각하는발 2013-10-08 14:29   좋아요 0 | URL
베르그송... ㅎㅎ. 좋은가요 ? 딱딱할 거 같아서...
왠지 웃음을 철학적으로 풀면 뭔가 좀 우울할 것 같습니다....

엄동 2013-10-08 18: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쓸데없이 말이 많은 사람들
할말 못할말 못가리는 사람들
이유없이 말(만) 잘하는 사람들
저도 참 싫어하는데요 ㅋ

좋은 사람들 만나고 술 몇잔 들어가면
그 말이 참 많아지는 것도 접니다.
아부부부부

그러고보니 어릴 땐.
누구를 만나든 초면에
방싯방싯하며 끊기지 않는 대화를
유도하기도 했었던거 같은데.

지금은 그냥 '천사의언어=침묵' 오알 '최대한 닥치리'
라는 생각으로 있지 말입니다.

꽤나 잘하는 거짓말도 이젠 귀찮아지고요 훗


(그나저나 마지막 문단, 좋네요~ 으하하하하 ㅎㅎㅎ)

곰곰생각하는발 2013-10-09 03:02   좋아요 0 | URL
관심없는 자리에서 오고가는 말만큼 따분한 것도 없죠.
회사 회식 자리'라던지...
상사가 웃기지도 않은 말을 해도 껄껄껄 웃어야 할 때의 그 묘한 허무감...
ㅎㅎㅎㅎ
전 자리가 불편하면 아예 말을 안해요. 옆 테이블 보고 막 그럽니다...
아마 상대방은 화딱지 날 거임...

으하하하.. 요거 김애란이 즐겨쓰는 표현이빈다.

2013-10-08 23:5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3-10-09 02:56   URL
비밀 댓글입니다.

히히 2013-10-09 00: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세상과 비정규직의 관계는 착취
세상과 연대의 관계는 힘
세상과 대선후보자의 관계는 악수
세상과 베트콩의 관계는 매복
세상과 쥐의 관계는 덫
세상과 술의 관계는 개
세상과 철학의 관계는 의문
세상과 예술의 관계는 광기
세상과 갈대의 관계는 흔들림
세상과 잡초의 관계는 무관심
세상과 눈물의 관계는 정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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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과 말의 관계는 손해
세상과 나의 관계는 위장 - 8분마다 말입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3-10-09 02:59   좋아요 0 | URL
하이쿠의 대가'시군요. 세상과 갈대의 관게는 흔들림이라는 표현이 좋군요.
세상과 잡초의 관계는 무관심이라...
이것 또한 좋습니다. 히히 님 덧글을 모아서 나중에
책 하나 내면 좋겠습니다. 잘 팔릴 것입니다. 장담함 !
 

속물과 잉여'

  

 

 

 

 

 

 

 

 

< 속물과 잉여 > 라는 책이 나와서 출판사가 제공하는 책 소개 글을 읽다가 문득 생각나는 것이 있어 적는다. 나는 그동안 주로 네이버 블로그'에 글을 꾸준히 올렸었다.  텃새보다는 철새에 가까운 인간인 나는 이 짓'도 슬슬 짜증이 나기 시작했다. 사이버 공간은 온통 허세를 가장한 < 잉여 > 와 친절을 가장한 < 속물 > 로 가득했다.  ( 내 이웃들은 대부분 솔직하고 매력있는 사람들이었다. 오프에서도 자주 만난다. ) 속물'이 통속과 신파로 버무려진 골뱅이와 소면'이라면 잉여는 엽기와 자학으로 욕망을 드러낸다. 잉여의 약빨'이란 소주 한 병 사서 안주 없이 병나발 불면 해결되는 빈곤형 자학에 가까우니 손해볼 것은 없다.  잉여는 자신을 소진시키는 집단이다. 그것은 일종의 정신적 매혈'이다. 잉여는 허삼관'이다.

내가 네이버 블로그'라는 사이버 공간에서 만난 놈 가운데 가장 이상한 놈은 서른이 채 되지 않은 어느 디자인 회사 ceo였다. 그의 이웃들은 그가 나열한 스펙'에 열광했다. 내가 그 사람이 가진 스펙을 나열하면 이 글을 읽는 당신 또한 반하지 않을 수 없다. ① 포르쉐를 몰고다니는 디자인 회사 ceo인 그는 틈틈이  ② 대학 출강을 나가는 미술 강사다. 여기서 끝이냐 ? 아니다. 그는 ③ 모 미술관 큐레이터도 겸하며 ④ 전시회도 꾸준히 여는 현역 화가이기도 하다. 더군다나 ⑤ 책을 출간한 적이 있는 작가이니 대,다,나,다. ⑥ 그리고 연예 기획사 대표로 모 아이돌 그룹을 야심차게 선보이기도 했다. ⑦ 더욱 놀라운 사실은 자신을 음반 제작자이면서 스스로 음반을 낸 적이 있는 가수라고 소개한 점이었다. 그가 서른이 되기 전에 이룩한 왕국이었다. 웃으면서 코 팠다.

이 정도면 쓰리 잡'이 아니라 텐잡이'였다. 가지도 아니면서 가지가지하는 꼴이다.  또 하나 ! 이 골드 스펙'에 화룡정점을 찍는 것이 있었으니 자신을 해외 파병 군인이라고 소개한 대목이었다. 그는 아프가니스탄 전투에 참가하여 수류탄 던지고 돌격 앞으로를 외치며 전쟁터에서 혁혁한 공을 세워 전역할 때에는 육군참모총장 표창장을 받았다며 자랑스럽게 무용담을 블로그에 올리기도 했다. 이제 태평양에서 새우 잡고 중국 가서 탁구만 치면 포레스트 검프'형 스펙이 될 지경이었다. 잉여가 만들어낸 과잉'이었다. 평소 < 부러우면 지는 거다 > 가 생활 신조'인 나는 지지 않기 위해서 그가 올린 글에 대해 조목조목 반박을 했다.  자기가 만든 작품이라는 의자'는 알고 보니 어느 유명한 디자이너가 만든  작품이었고, 글과 그림은 이곳저곳에서 온통 베낀 것들이었다.

그리고 대한민국 육군은 해외에 공병대를 파병한 적은 있어도 전투병을 파병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으니, 그 거짓말을 굳이 증명할 필요는 없었다. 도대체 그는 국군이었을까, 미군이었을까 ? 그는 결국 산더미처럼 쌓인 거짓말에 대한 해명을 할 수가 없어서 블로그를 폭파하고 존나 멋지게 바람과 함께 사라졌다. 그런가 하면 어떤 이상한 년은 인지도가 낮은 여자 배우 사진을 대문에 걸어놓고 그 배우 행세'를 하다가 걸리기도 했다. 나중에 밝혀진 사실이지만 몸매가 환상적인 여자 배우 사진을 도용한, 자칭 대기업 연구소 선임 연구원이라고 주장하는 그녀는 블로그 이웃 남자들을 유혹해서 벌거벗은 사진을 서로 주고받으며 사이버 섹스'를 했다는 점이 밝혀져 곤혹을 치르기도 했다. " 당신의 뜨거운 불기둥 때문에 내 사타구니 사이로 애액이 흘러서 넘쳐요 !  "

따위를 남발하면서 말이다. < 애액 > 이라는 단어에서 한참을 웃었다. 얼마만에 들어보는 단어인가 ! 중학교 때 세운 상가'에서 몰래 구입했던 빨간책에서나 보았던 단어였는데, 평소 존나 교양 있는 척을 하며 바로크에서 로코코까지의 예술사를 꿰뚫고 있던 입에서 이 단어가 튀어나올 줄은 꿈에도 상상을 못했다. 아마도 애액이 흘러넘쳤던 그녀는 여자를 가장한 " 네카마 " 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이 둘의 공통점은 " 속물을 동경하는 잉여 인간 " 이었다. 사이버 공간에서 911 포르쉐를 타고 출퇴근하던 이'는 현실에서는 365 편의점에 앉아서 벼룩 시장 구인 코너를 꼼꼼하게 체크했을 것이고, 상상 속에서는 c컵 가슴에 44사이즈 몸매'였던 그녀는 현실 속에서는 a컵 가슴에 77사이즈였을 것이다. 쌓이는 것은 밀린 고지서과 동창생들이 보내오는 청첩장'일 것이다. 

그런데 재미있는 일이 벌어졌다 ! 그/그녀'와 관계를 맺은 이웃들은 새빨간 거짓말이 들통났음에도 불구하고 몇몇 이탈자를 제외하고는 더욱 공고히 뭉쳐서 우상을 섬겼다. 어떤 놈은 인간에 대한 예의 운운하며 죽기살기로 대들었다. 전혀 예상치 못한 반응'이었다. 거짓말이 탄로가 나면 믿음은 산산조각이 나야 정상인데  오히려 강하게 뭉쳐서 공격적 성향을 보인 것이다. 믿숩니까 ? 라고 외치면 일제히 믿숩니다 ! 라고 외쳤다. 곰곰 생각했다. 결론은 인지부조화'였다. 새빨간 거짓말로 자신을 속인 이웃을 비판하게 되면 결국 그 비판은 부메랑이 되어 자신에게 돌아온다. 왜냐하면 새빨간 거짓말을 한 그들을 비판하게 되면 결국은 새빨간 거짓말에 속은 자신 또한 어리석은 사람이 된다는 결론에 도달하기 때문이다. 여기서 < 불일치 > 가 발생하게 된다.  

그래서 그들은 자신이 믿었던 행동이 어리석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 거짓말쟁이'를 오히려 옹호해서 < 불일치 > 를 < 일관성 > 으로 바꾼다. 황우석 사태'가 전형적인 인지부조화 현상'이다. 황빠'들은 황우석을 옹호했다기보다는 황우석에게 속은 자신을 옹호하기 위해서 비겁한 변명을 한 것이다. 이처럼 잉여는 체제 내' 에 포섭되지 않을 때 발생하게 된다. 프로이드의 지적처럼 강한 부정'은 곧 긍정을 다른 식으로 표현한 것이다. 잉여는 겉으로는 체제 내에 소속된 꼰대와 속물의 경직과 우아함을 자유분방한 방식으로 조롱하지만 속내는 부러움'이다. 잉여가 최종적으로 지향하는 바는 속물이다. 그들은 현대판 완장인 사원증'을 차고 싶은 것이다. 그런데 이 지점에서 역설이 존재한다. 단물 쏙 빠진 속물이 최종적으로 지향하는 바 또한 잉여'이기 때문이다.

속물은 돈 많이 벌어서 빌딩 사고, 그 빌딩에서 나오는 돈으로 띵가띵가 놀면서 잉여로운 삶을 사는 것이 목표다. 잉여는 적당히 바쁘게 사는 것이 목표이고, 속물은 한가하게 사는 것이 목표이니 이 둘은 기묘한 짝패'이다. 한쪽은 놀고 싶은데 먹고 살려니 시간이 턱없이 부족하고, 다른 한쪽은 먹고 살기 위해서 일하고 싶은 데 갈 곳'이 없으니 다르지만 동시에 닮았다. 바로 이 지점에서 우리는 속물과 잉여 모두를 이해할 필요가 있다. 둘 다 " 먹고 살기 위한 " 몸짓이니 말이다. 알고 보면 속물과 잉여는 모두 생존자본주의정글'에서 살아남기 위한 부스러기에 지나지 않는다. 

멘토와 힐링을 가장한 감성팔이 책이나 자기계발서'가 꾸준하게 주장하는 것은 " 나에게 채찍을 휘두르자 ! " 이다. 이들 책이 가지고 있는 공통된 주장은 모든 문제는 < 모자란 내 탓 > 에서 시작된다.  당신이 그 모양 그 꼴인 이유는 5분 늦게 일어나기 때문이고, 한 숟가락을 더 떠먹기에 다이어트에 실패하는 것이고, 사람을 다루는 처세가 부족하기에 비정규직이 되었다고 가르친다. 사회와 제도의 구조적 모순을 지적하기에 앞서 내 탓을 하자는 것 ! 기득권이 보기에 이보다 좋은 조언도 없다. 이런 메시지'가 박정희 정권'이후로 계속 지속되다 보니 이젠 세뇌'에 가까운 정언이 되어 버렸다. 그래서 한국인은 < 네 탓 > 을 어른스럽지 못한 부끄러운 태도라 생각하고 < 내 탓 > 을 당연한 도리와 반성'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 내 탓 > 이 지나치면 자학이 되고 자학이 깊어지면 우울증이 된다.

우울'이란 화를 외부 대상에게 쏟지 못하고 자기 자신에게 향할 때 생기는 병이다. 자기 자신을 향한 공격이 우울증'이고, 그 처벌 수위가 높아지면 자살이 된다.  대한민국이 자살률 1위인 까닭은 바로 < 내 탓 > 을 강요하는 사회 탓'이 크다. 차라리 < 내 탓 >  보다는 < 네 탓 > 을 선택하는 것이 현명하다. 내 탓'은 지배 계급이  퍼트린 노예 이데올로기에 지나지 않는다. 그렇다고 남에게 피해를 줘도 된다는 말은 아니다. < 악랄 > 하게 살면 안 되지만 < 지랄 > 하며 사는 것에 대해서는 용서할 필요가 있다.  계급 연대'가 필요하다. 그래서 나는 나를 죽이겠다고 협박하고 고소하려 했던 포르쉐 쌍놈과 44사이즈 쌍년을 용서하기로 했다. 나는 당신보다 더한 잉여킹'이니깐 말이다. " 하여튼.... 씨발것들아, 잘 먹고 잘 살아라 ! " 이 말은 진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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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2013-10-07 04: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디자인 회사 CEO 겸 작가 겸 강사 겸 큐레이터 겸 가수라는 블로거는 모르는 사람인데도 정말 혀를 내두르겠네요.
애액 얘기 했다던 블로거는 누군지 알 것 같고...
여러 이웃들께 대충 주섬주섬 얘기 듣긴 했는데 이렇게 정리해서 읽으니까 처음엔 허~ 하고 놀라다가 나중엔 고개를 끄덕이게 됩니다. 참.. 이건 사이버 공간에서의 욕망에 대한 논문감이네요. 씁쓸하기도 하구요.

곰곰생각하는발 2013-10-07 14:39   좋아요 0 | URL
조금만 생각하면 이게 말이 안 된다는 걸 바로 알거든요. 대학졸업하고 군대까지 나오면 27 정도 될 터인데 2년 동안 이룩한 꼴이 굉장합니다. 2년 안에 회사를 차리고, 큐레이터를 겸직하고 음반을 제작하고, 스스로 가수가 되고, 책도 쓰고, 미술 작품도 하고... 뭐... 이거 슈퍼맨이죠.
이걸 그 이웃들은 병신처럼 철썩같이 믿더란 말입니다.

히히 2013-10-07 23: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그 년놈의 속물들 때문에 마이 당항하셨어요~?
그러길래 허삼관아버지께서
'좆 털이 눈썹보다 나기는 늦게 나도 자라기는 길게 자란다'고 하질 않던가요?
<지랄>하며 사는 쌍년놈을 용서하신 민주 곰...발님을 토닥입니다.
"이 신발끈들아, 좀 말고 잘 살아라!" 이 말은 관심이다. 오카이?

수십 번을 생각해도 '히히' 이상의 포장은 없는 사람입니다.
님처럼 장문의 글로 묘기를 부릴 재주가 없어서 선택한
제 나름의 처세술이거니 치부하시고 어여삐 너겨주시와용.

곰곰생각하는발 2013-10-08 00:46   좋아요 0 | URL
전형적인 잉여가 과해서 과잉이 된 판타스틱이고
과잉이 넘쳐서 진정 잉여가 된 예입니다.
적당한 거짓말은 아름답죠.
하지만 아주 작정하고 하는 거짓말은 불쾌합니다.
위의 두 녀석들은 그 선을 전혀 이해하지 못했어요.
둘의 공통점은 거짓말 탄로나니 블로그 폭파하더니 다시 10흘 안에
새로운 블로그 만들어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ㅎㅎㅎㅎㅎㅎ
이해 불가능...

yamoo 2013-10-08 12: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재밌게 잘 읽었습니다~ 곰발님의 글은 역쉬나 재미납니다~ 좀더 강도높은 비판도 좋은데 말이죠^^ 추천 쾅!

전 맨날 지랄하면서 살기 때문에...ㅋㅋ

곰곰생각하는발 2013-10-08 14:29   좋아요 0 | URL
이 둘의 공통점은 둘 다 블로그 폭파를 했다는 점이고
또 공통점은 폭파한 지 열흘 안에 다시 개설했다는 점입니다.
여전히 설레발과 허세를 부리더군요.....

여울 2013-10-08 15: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소설보다 더 소설같은 현실이네요. 정신없이 읽었습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3-10-09 02:31   좋아요 0 | URL
하여튼... 정말 환상적인 사건들 많이 일어납니다.

iforte 2013-10-08 22: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여전히 글'빨'로 사람 혼을 쏙 빼놓는 곰발님이세요. 정신없이 일하다 잠시 쉬려고 들렸는데 또 정신없이 읽고야 말았네요.
공감, 또 공감합니다. 사실 실제로 '포르쉐'타는 인간을 둘이나 봤는데요, 둘다 하루에 잠은 거의 3-4시간 자는지, 아마 것도 다 못자고 일만 하더군요. 당연, 주말이라곤 아예 존재하지 않죠. 이런 사람들이 인터넷에서 자신 내력 자랑할 틈은 절대 없을듯요. 그래서 전 그냥 포르쉐 안타고, 그냥 잠 다 자고, 속물과 잉여 사이 어디쯤 어중간히 걸치고 편안히 발뻗고 살렵니다, 앞으로도, 쭉~~ ㅍㅎㅎ

곰곰생각하는발 2013-10-09 02:29   좋아요 0 | URL
여긴 한글날이어서 휴일인데 그쪽은 평일이겠군요.
슬슬 비도 오고 오늘은 술 마시기 좋은 날이네요.
그 녀석 어찌나 포르쉐 자랑을 하던지...
라면 사러 가는 데 포르쉐 몰고.. 아니다, 라면인가 만두인가 하여튼 먹고 싶다고
포르쉐 몰고 동네 가게 새벽에 가서 먹고 왔다... 이런 얘길 참 잘하더라고요..ㅎㅎㅎㅎㅎ
얼마나 가지고 싶으면 거짓말을 지어낼까 싶다가도
저런 맨탈이면 정말 저 녀석이 벼락부자가 되면 정말 가관이겠구나, 그런 생각도 들고...

속물과 잉여 사이에 있는 게 제일 좋은 선택입니다.
내가 포르쉐 새끼'랑 한판 붙은 이유가 사실은 용산 집창촌 직업여성을 몰래 찍어서
자기 블로그에 사진을 공개한 것 때문이었습니다. 몰카로 찍고서는 공개하며 밑에 단 글은
용산 창녀들... 이런 제목 달고... 아는 분이 신고를 했는데 그 사진 찍힌 사람이 직접 신고를 해야지
다른 사람이 신고를 하면 성립이 안 된다고 하더라고요... 하여튼 기본적 멘탈에 문제가 이는 놈이었음..

즐거운 인생 2013-10-11 01: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대략 여기서도 잘 지내고 계시구만요. 이러면 안되는 데. 킁
오늘은 이만하고, 또 나탈리 님 배너타고 놀러 올께요~

곰곰생각하는발 2013-10-11 02:33   좋아요 0 | URL
ㅎㅎㅎㅎㅎ... 여기 너무 따분합니다. 거친 맛이 없어요...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네이버가 트랜스포머를 상영하는 상영관이라면 여긴 무성영화 틀어주는 거 가틈..

강냉이 2013-11-16 21: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글 제 블로그에 퍼가도 될까요

곰곰생각하는발 2013-11-17 03:48   좋아요 0 | URL
네에, 퍼가셔도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