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하기의 다른 방법'
미국 캘리포니아 대학에서 연구한 자료에 따르면, 사람은 하루에 평균 무려 200번, 시간으로 따지면 약 8분에 한번 꼴로 거짓말을 한다고 한다. 만약 이 질문에 오늘 하루 동안 단 한 번도 거짓말을 한 적이 없다고 대답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사회생활에 문제가 있거나 거짓말쟁이일 확률이 높다고 봐야할 것이다. 이처럼 우리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 생각보다 훨씬 많은 거짓말을 하며 살아간다.
- 텔링 라이즈, 출판사 책 소개 글 中
소리 없이 눈으로만 가만히 웃거나 목소리가 매력적인 사람을 부러워한 적은 있어도 말을 잘하는 사람을 부러워한 적은 없다. 인간 거짓말 탐지기 박사인 폴 애크먼은 < 텔링 라이즈 > 에서 인간은 입만 열면 거짓말을 하는 존재'라고 주장한다. 약 8분에 한 번 꼴로 거짓말을 하고 10분에 한 번 꼴로 섹스'를 생각한다고 하니, 인간이란 입으로는 거짓말을 하고 뇌는 온통 섹스 생각뿐이다. 앉으나 서나 당신(과의 화끈한 섹스) 생각뿐이다. 스스로를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보기에는 이 데이터가 지나치게 허무맹랑할지 모르지만, 하루에 평균 8분마다 거짓말을 하고 10분마다 섹스를 생각하는 나는 수긍이 가는 대목이다. 왜냐하면 이 글을 작성하는 짧은 순간에도 거짓말과 음란한 생각을 했기 때문이다.
나는 < 텔링 라이즈 > 를 읽지 않았으나 읽은 척하며 말했고, lie가 그 lie가 아님을 알면서도 자꾸 그 lie가 생각나서 불현듯 이화장 모텔 침대에 눕던 어떤 밤이 생각났다. 이 짧은 시간에 말이다. 촉촉하고 검은 동굴 속으로 탐험을 하고 있을 때 땀방울이 내 등골을 타고 움푹 파인엉덩이 골에 또르르 떨어지던, 아... 황홀한 밤 ! 남자란, 그런 존재'다. 그러니깐 당신이 스타벅스에서 굉장히 잰틀하고 교양있는 남자와 1시간 동안 문학에 대한 열정을 나눌 때 남자는 평균 7번의 거짓말을 하면서 중력을 무시한 싱싱한 노른자위 같은 젖가슴과 촉촉한 동굴에 대한 생각을 하면서 당신을 벌거숭이로 만든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과학적 데이터만 놓고 본다면 말이다. 이처럼 신체 기관 가운데 가장 교활하며 모순적인 기관은 < 입 > 과 < 뇌 > 다. 오히려 < 말 > 보다 항상 앞서서 곤란을 겪는 < 거친 주먹 > 은 이들에 비하면 정직한 쪽에 속한다.
말이 많다는 것은 말이 없는 사람보다 거짓말을 더 많이 하는 사람이니 말을 잘하는 사람을 믿으면 안 된다. 할 말 안 할 말 가려해야지 할 말 안 할 말 다 하면 곤란하다. 할 말은 과천 경마장으로 보내고, 안 할 말은 마굿간으로 보내야 하며, 말 밖에 믿을 게 없다는 말하는 인간은 나중에는 전재산을 탕진하고는 경마장 볕 잘 드는 곳에서 쪼그려앉아 쪽잠을 잘 것이다. " 말을, 믿지 마세요 ! " 그래서 나는 " 말 한 마디에 천냥 빚을 갚는다 " 따위의 속담을 믿지 않는다. 말 한 마디에 천냥 빚을 갚을 능력을 가진 놈은 팔 할이 사기꾼'이다. 냉정한 소리 같지만 그 아무리 좋은 사람이라고 해도 기본적으로 51%만 믿고 나머지 49%는 의심을 가져야 하지 않을까 싶다. 곰곰발, 누누이 이야기하지만 모든 것은 한끗 차이. 호(好) 와 오(惡) 에 대한 기준도 결국은 한끗 차이'이다.
아시다시피 인간은 처음부터 < 말 > 을 했던 존재는 아니었다. 하지만 말을 배우지 못한 원숭이 조상들이 " 집단 내 의사소통 " 이 불가능했던 것 또한 아니었다. 말을 대신한 얼굴 표정은 가장 강력한 표현 수단이었고, 말이 아닌 소리를 동반한 손짓과 발짓으로 이루어진 몸짓은 언어 없이도 충분히 의사소통을 가능하게 만들었다. 프란스 드 발은 < 침팬지 폴리틱스 > 에서 인간 뺨치는, 권모술수에 능한, 침팬지의 줄서기와 뒤통수 정치학'을 제대로 보여준다. 눈짓과 몸짓 몇 가지 표현만으로도 복잡하고 치밀한 계획'이 이루어진다는 사실을 증명한다. 정말 무서운 분'들이시다. 이후 " 털 있는 원숭이 " 에서 " 털 없는 원숭이 " 로 진화한 인간이 말을 배우기 시작하면서 < 얼굴 표정과 몸짓 기호 > 대신 < 언어 > 가 의사를 전달하는 가장 중요한 표현 방식'이 되었다.
털을 갓 벗은 인간은 언어'에 점점 익숙해지면서 그 옛날 통용되었던 얼굴 표정과 몸짓 기호'를 까먹기 시작했다. 오랜 타관 생활에 모국어를 잊게 되는 디아스포라의 운명'처럼 말이다. 언어는 가장 강력한 표현 수단이 되었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뇌를 통해 입으로 쏟아내는 말은 뻥이 팔 할이었으니 정확한 의사 표현은커녕 혼란만 가중시키는 꼴이 되었다. < 말 > 은 결과적으로 사기꾼과 모사꾼, 카사노바와 철면피, 독재자와 간신 그리고 " 왕년에 ~ " 를 입에 달고 사는 수많은 꼰대를 양산했다. 누가 나에게 꼰대를 알기 쉽게 정의 내리라고 하면 이렇게 묘사하겠다 : [ 누렇게 변색된 백먕 메리야스 사이로 설핏 보이는, 축 늘어진 거무퉤퉤한 젖꼭지'는 그가 왕년에 별 볼 일 없는 수컷이었다는 사실을 증명하지만, 골목길을 지나가는 아가씨 엉덩이를 보자마자 아랫도리가 꼿꼿하게 서 있는 모습에 성욕만큼은 왕년과 다르지 않음에 스스로 기뻐하는 존재. ]
결국 말은 인간을 만물의 영장'으로 만들었지만 반대로 가장 믿을 수 없는 짐승으로 만들기도 했다. 말은 가장 정확한 정보를 제공하는 기호이면서 동시에 가장 정확하지 않은 정보'를 제공하는 기호'이다. 반면 얼굴 표정이나 몸짓 기호'는 말에 비해 정확한 정보'를 제공한다. 야구에 빗대서 말하자면 말은 타자를 속이기 위한 변화구에 가깝고, 표정과 몸짓은 직구'에 가깝다. 표정은 거의 모든 것을 제공한다. 예를 들어 모나리자의 미소'는 가짜에 가깝다. 왜냐하면 가짜 미소'는 비대칭을 이루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흔히 썩소'라고 말하는 한쪽만 올라간 입꼬리'는 가짜 미소'다. 이처럼 가짜 감정'을 연기할 때는 표정이 비대칭적인 구도가 된다. 예를 들면 가짜-분노'에서는 왼쪽 눈썹이 더 낮게 내려가고, 가짜-혐오 표정에서는 코주름을 잡을 때 더 왼쪽으로 기울어지는 경향이 있다고 한다.
모나리자의 미소가 가짜 미소라는 증거는 비대칭성 이론'을 제외하더라도 눈을 보면 알 수 있다. 진짜 웃음과 미소'가 사용하는 얼굴 근육은 눈 부위 근육과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진짜 미소를 관장하는 근육이 작동되면 자연스럽게 눈 근육에 영향을 준다. 반면 가짜 미소'는 입꼬리를 움직이는 근육만을 사용할 뿐이기 때문에 눈' 근육에는 영향을 주지 않는다. 미소 짓는 척 할 뿐이다. 모나리자 그림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입은 미소를 짓고 있는데 눈은 웃고 있지 않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인지과학자들이 보기에는 모나리자의 미소는 억지 웃음'에 가깝다. 하지만 모나리자를 탓할 수는 없는 노릇이 아닐까 ? 모나리자는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 김치 ~ " 하라고 요구하니, 그저 " 김치 " 라고 말했을 뿐이다. 얼굴 표정은 말할 필요도 없고, < 손짓 > 또한 얼굴 표정만큼이나 중요한 정보를 제공한다.
모나리자는 전형적인 오른손잡이'일 확률이 높다. 오른손잡이'일 경우, 가짜미소를 흉내 낼 때 왼쪽 입꼬리'가 올라가는 경향이 있다고 한다. 이를 뒷받침하는 증거는 또 있다. 좌뇌사용자/오른손잡이'는 손깍지를 하거나 팔짱을 낄 때 오른손 엄지와 오른팔이 위로 올라간다. 그림 속 손의 위치를 보면 오른손이 왼손 위에 올려져 있다. 이 사실만 보더라도 그녀는 지독한 좌뇌 사용자'라는 계산이 나온다. 이처럼 손짓은 매우 많은 정보를 제공한다. 근심이 가득할 때 우리는 주로 손으로 뺨을 만지게 되는데 그러한 행동은 엄마가 아이를 어루더듬었던 스킨십의 체온을 무의식적으로 재현한 것이다. 위로 받고 싶은 심리 때문이다. 그런가 하면 거짓말이 들통날까 봐서 당황스러울 때 우리는 흔히 손으로 코를 만지거나 입을 자주 만지게 되는데 이러한 행동은 주로 얼굴 표정을 상대가 알아차리지 못하도록 가리기 위한 무의식적 반응이다.
이처럼 팩트는 말이 아니라 한순간에 지나가는 표정과 몸짓'으로 감지된다. 그래서 나는 인간이 내뱉는 말'을 믿지 않게 되었다. 언제부터인가 나는 함민복이 믿는 말랑말랑한 힘 대신 딱딱한 유물론자가 되었다. 이 세상에는 스승도 없고, 멘토도 없다. 그리고 달달한 사랑도 떨리는 고백도 믿지 않게 되었다. 여기서 콜린 윌슨의 말투를 빌리자면, "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달달한 사랑과 떨리는 고백을 간절히 원한다. " 니체는 이런 소리를 했다. " 세상에서 인간보다 가장 큰 고통을 느끼며 살아가는 존재는 없다. 그래서 웃음을 발명할 수밖에 없었다. " 이 말은 곧 웃음'은 불행과 연관이 깊다는 소리'이다. 자주 웃는 사람은 행복한 사람이 아니라 불행한 사람일 경우가 높다. 완벽하게 행복한 사람은 웃지 않는다. 왜냐하면 웃을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심리학자 월리엄 맥두걸의 말이다.
사실 < 웃음 > 은 우리가 생각하고 있던 메커니즘'을 살짝 뒤집는다. 기대에 충족시킬 때는 < 감탄 > 이 되고, 기대 이상일 때에는 < 경탄 > 이 되지만, 기대에 못 미칠 때 < 웃음 > 이 나온다. 그러므로 웃음이란 기본적으로 실패의 결과이다. 오늘따라 이 말들이 나를 위로한다. 나는 평소 웃을 일이 없으니 시바 존나 행복한 사람이구나. 으하하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