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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문화의 수수께끼 ㅣ 오늘의 사상신서 157
마빈 해리스 지음 / 한길사 / 1992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단백질 로드 :
애타게 동물성 단백질을 찾아서
< 올드보이 > 에서 최민식이 질리도록 먹었던 군만두'는 서비스 메뉴'였을 것이다. 이런저런 추론을 해보면 유지태는 최민식을 사설 감옥'에 보내면서 날마다 밥값을 지불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 밥값은 사설 감옥 직원들의 공돈으로 주머니 속으로 들어가고 대신 서비스'로 나온 군만두를 주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 그러니깐 최민식은 15년 동안 직원들이 점심을 시켜 먹고 남은, 서비스로 나온 만두만 먹다가 속 터져버린 이야기다. 만약에 최민식에게 군만두 대신 딤섬을 點心 으로 내놓았다면 그토록 비극적이지는 않았으리라. 짬뽕이 맵고 자극적이었다면, 김이 모락모락나는 딤섬'은 담백하고 순한 맛있었다. 인생도 마찬가지다. 젊을 때는 자극적인 것을 탐하다가 늙으면 순한 맛에 매료된다.
- 보수란 무엇인가, < 짬뽕과 딤섬 > 중
아버지의 여름 밥상은 언제나 단촐했다. 밥은 늘 찬물에 말고 잡수시고 반찬은 마늘이나 고추를 된장에 찍어 드시는 정도가 전부였다. 소고기나 닭고기를 좋아하지도 않으셨고, 그렇다고 해서 채식주의자'는 더더욱 아니셨다. 여름 식단만 놓고 보면 영양 불균형'처럼 보이지만 사계절 전체를 놓고 보면 꼭 그렇지도 않다. 아버지는 가을에서 봄까지 삼시 세 끼 보신탕'만 드셨다. 남들은 삼복에 단고기'를 즐겨 먹었지만 아버지는 특이하게도 여름 삼복에는 단고기를 멀리 했다. 여름을 견디기 위해서는 겨울에 몸 보신을 해야 여름을 이길 수 있지, 여름에 먹는 보양식은 헛것이라는 소신을 가지고 있는 독특한 노인이었다. 아버지의 고집 덕에 집에서 키우던 개들는 삼복을 무사히 넘겼지만 소설(小雪)을 넘기지는 못했다. 개들은 김장철과 무서리 내리는 초설 사이에서 비명횡사하고는 했다.
그리고 입춘이 오기 전에도 똑같은 일이 다시 한 번 반복되었다. 삼복을 거쳐 첫눈 무서리를 견딘, 마지막 남은 황구는 결국 입춘을 통과하지는 못했다. 학교에서 돌아오면 마당에서 뛰놀던 황구는 보이지 않았다. 훵했다. 든 자리는 몰라도 난 자리는 표가 난다고 하지 않았던가 ! 하지만 꽃 피는 봄이 오면, 어미 젖을 갓 뗀 황구 새끼 서너 마리가 개집을 차지하고는 했다. 어머니는 종종 자식들에게 쇠고기 육계장이라고 말은 하고는 밥상에 올렸으나 쉽게 먹지는 못했다. 그것이 단고기'라는 사실을 알아차리는 것은 쉬운 일이었다. 그때 이후로, 나는 단고기'를 먹지 않기로 단단히 결심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내 입맛에 맞지 않았기 때문이 아니라 매우 맛이 좋았기 때문이었다. 나는 < 맛이냐 > 아니면 < 의리냐 > 를 놓고 잠시 고민을 했지만 결국 의리'를 선택하기로 했다. 나는 단고기'를 먹지 않지만 그렇다고 보신탕 문화가 야만적'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보신탕 문화'를 수치스럽고 혐오스러운 식문화'라고 주장하는 태도는 꼴사나운 짓처럼 보인다. 하지만 김홍신 작가처럼 " 조국과 민족의 무궁한 영광을 위하야, 안으로는 자주 독립과 밖으로는 민주 번영에 이바지하기 위해서 " 보신탕 문화를 민족의 자금심 따위'로 숭상하려는 태도 또한 꼴사납기는 마찬가지였다. 벼 농사 중심인 한국과 중국'은 동물성 단백질'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국가였다. ( 마빈 해리스의 주장을 전제로 한다면 ) 콩이나 다른 채소에서도 식물성 단백질을 섭취할 수는 있으나 동물성 단백질을 대체할 만큼의 영양가 있는 것은 아니다. 소는 농사를 짓는 데 매우 중요한 일꾼이었고, 닭은 날마다 달걀을 공급하는 짐승이었으니 잔칫날이 아니고서는 함부로 죽일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서민들에게 만만한 것은 개'였다. 개는 중요한 동물성 단백질 공급원이었다. < 삼복 > 할 때 복이 사람 人과 개 犬이 합쳐져서 伏(복)으로 쓰이는 꼴을 보면, 복날에는 반드시 개를 잡아먹는 풍속이 대중적으로 널리 퍼진 모양이다.
하지만 시대가 변했다. 현대는 동물성 단백질 과잉 섭취의 시대이다. 옛날에야 질 좋은 동물성 단백질을 섭취하기 위해 개를 잡아먹었지만 지금은 얼마든지 값 싼 고기를 얻을 수 있으니 굳이 애완동물인 개를 식용으로 사용하면서까지 먹을 필요는 없는 것이다. 그 이유로 나는 단고기 식용에 반대한다. 문화인류학자인 마빈 해리스는 < 음식 문화의 수수께끼 > 에서 동물성 단백질 공급원을 찾기 위한 인류의 노력을 다룬다. 흥미진진하다. 그는 힌두교 사람들이 쇠고기를 먹지 않는 이유와 이슬람 사람들이 돼지고기를 먹지 않는 이유'를 단백질 공급 루트'로 설명한다. 그가 내세운 가설은 이렇다. 쟁기와 수레를 끄는 < 소 > 는 인도 사람에게 있어서 노동력을 제공하고, 우유를 공급한다. 그리고 똥은 화력 좋은 연료로 쓰인다. 짚, 왕겨, 나뭇잎, 풀을 뜯어먹고 나서 싸는 똥이니 좋은 연료일 수밖에 없다. 더군다나 인도 소는 인간이 먹지 못하는 것만 골라서 먹으니 식량 경쟁을 할 필요가 없다.
여러모로 보나 소를 죽여서 동물성 단백질을 섭취하는 이득보다는 소를 보호해서 얻는 이득이 월등히 많은 것이다. 효율 대비 측면에서 보자면 소를 죽이지 않는 것이 경제적이다. 그래서 소를 보호해야 할 필요가 있었고 결국에는 소를 숭배하는 문화가 탄생한 것이다( 라고 마빈 해리스는 주장한다. ) 이슬람 문화권이 돼지를 혐오하는 이유도 같은 맥락으로 설명할 수 있다. 돼지는 무더위에 약해서 이슬람 문화권 기후에 맞지 않다. 돼지는 몸에 열이 오르면 물이나 진흙 속에 뒹굴어서 열을 식혀야 하는데 물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사막을 횡단하는 유목민 입장에서 보면 돼지'는 이래저래 키울 수가 없다. 설령 악조건을 이기고 키운다고 해도 손실을 벌충할 만한 요소가 없다. 소, 염소, 닭, 낙타, 양 등은 고기뿐만 아니라 가죽은 물론이고 동물성 단백질인 우유와 달걀을 생산하며 보온을 위한 털과 쟁기를 끄는 노동력'을 제공하지만 돼지는 고기 공급 이외에는 얻을 것이 없다.
돼지를 키워서 투자 대비 비싼 동물성 단백질을 얻느니 차라리 투자 비용이 저렴하며 동물성 단백질뿐만 아니라 다른 부산물을 얻을 수 있는 다른 짐승을 키우는것이 낫다. 못 먹는 감 찔러나 본다는 속내일까 ? 이슬람교 사람들은 돼지를 더럽고 혐오스러운 짐승으로 취급하기 시작했다. 이처럼 힌두교가 < 숭배'> 라는 방식으로 소고기를 금지시켰다면 이슬람교는 < 혐오 > 라는 방식으로 돼지고기 식용을 금지시켰다. 마빈 해리스는 이런 식으로 말고기, 개고기에 이어 결국에는 식인 문화'에까지 접근하게 된다. 하지만 마빈 해리스의 동물성 단백질 인류사'는 여러 측면에서 도전을 받고 있다. 그는 동물성 단백질'을 인간에게 없어서는 안될 절대 반지'처럼 설명하지만 대부분의 영양학자들인 단백질에 대한 가치와 필요성을 마빈 해리스가 지나치게 과장했다고 주장한다.
사실 단백질은 중요한 영양소 가운데 하나일 뿐이지, 굳이 동물성과 식물성을 나눌 필요는 없다. 채식주의자는 간단한 동물성 단백질 섭취만으로도 건강하게 산다. 설령 우유와 계란마저 먹지 않는 완전 채식주의자라 하더라도 건강을 해칠 정도는 아니다. 채식주의를 실천하는 승려'를 보면 답이 나온다. 그렇다고 해서 마빈 해리스의 주장이 모두 엉터리라고도 할 수 없다. 문화 인류의 역사'란 딱히 한 가지 조건으로만 이루어진 결과가 아니기 때문이다. 수많은 요소들이 얽히고설켜서 지금의 문화 인류사'를 만든 것이다. 제레미 다이아몬드가 총, 균, 쇠'가 이동하는 경로에 따라 독자를 지식의 고고학으로 안내한다면, 마빈 해리스는 식신로드 여행을 떠나자고 제안한다. 마빈 해리스는 독자를 들었다 놨다 하는 정도까지는 아니더라도 제레드 다이아몬드처럼 대중적인 문장력을 갖춘 뛰어난 사람임에는 틀림없다.
이 책을 읽다가 문득 박찬욱 감독의 < 올드보이 > 가 생각났다. 사설 감옥에서 15년 동안 군만두만 먹은 사나이 ! 어쩌면 그는 야채로만 속을 꽉 채운 야채 만두를 꾸역꾸역 먹다가 드디어 속이 터진 것은 아니었을까 ? 그가 원한 것은 유지태를 향한 복수였지만, 사실 그에게 당장 필요했던 것은 동물성 단백질'이었으리라. 일단... 먹고 나서 복수하자 ! 이처럼 인간에게 있어서 거창한 결심보다 앞서는 것은 항상 식욕이다. 다, 먹고 살자고 하는 일. 그나저나 인간이 소처럼 짚, 왕겨, 풀 따위를 먹었다면 에너지 걱정은 덜었을 것이다. 인간이 싼 똥을 연료로 사용할 수 있으니 말이다. " 여보 ! 올겨울에는 부모님 댁에 똥을 놓아드려야 겠어요 ! " ( 아, 인간이란 자원을 낭비만 할 뿐이니, 소똥만도 못한 존재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