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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는 사람은 다 아는 사실이지만 내 별명은 < 불광동 도깨비풀 > 이었다. 도깨비풀을 도깨비바늘'이라고도 하는데 뾰족한 갓털이 있어서 사람 옷이나 길짐승 털에 붙으면 웬만해서는 떨어지지 않는 풀이다. 학창 시절 싸웠다 하면 절대 먼저 물러나지 않는다고 해서 친구들이 지어준 별명이었다. 최영의 선생은 손으로 황소 뿔을 뽑고 미스터 존슨에게 시비를 걸었지만 나는 말보다 주먹이 먼저 나가는 스타일'은 아니었다. 정의를 위해서 불의를 참지 못했을 뿐이다. ( 내가 뽑은 것이라고는 중학교 배정표가 유일했다. ) 원 펀치 쓰리 강냉이. 그렇다, 나는 바람의 주먹'이었다. < 동사서독 > 에서 맹무살수'는 칼 솜씨'가 좋은 놈은 적의 목을 벨 때 경쾌한 바람소리'가 난다고 고백했는데, 내가 상대방 얼굴을 날릴 때에도 바람소리'가 들렸다. 그날도 나는 아현동 굴다리 아래에서 동네 양아치 16명과 싸웠다. 나는 외쳤다.
" 나는야 원 펀치 쓰리 강냉이. 한 놈 당 이빨 세 개다잉~ " 아현동 굴다리에 떼거지로 모인 양아치들은 추풍낙엽처럼 나자빠졌다. " (한)놈, (두)시기, (석)삼, (너)구리, (오)징어.... 개쉐들, 오징어 다음은 뭐다냐, 잉 ? " 내 주먹이 최홍만을 닮은 꾀죄죄한 얼굴'에 정확히 꽂히자 덩치가 곰 같은 놈은 3미터 밖으로 내동댕이쳐졌다. " 바로.... 너는 (육)개장이여 ! 알긋냐 ? 넌 (칠)면조이고, 팔에 담배빵한 새끼, 어딜 봐 이 개쉐야. 넌 (팔)각정, 글구 자네는 (구)봉서, 머리에 빵구난 넌 십... 십.... 이 씹새야, 너 때문에 막혔잖아 ! 토, 토토토토다는 놈은 용서 못해. " 바닥에 누런 이빨 서른 개'가 나뒹굴 무렵이었다. 구봉서 다음에는 십'으로 시작하는 마땅한 단어가 생각이 않았다. 뭐... 였더라 ? 문득 땡전 뉴스에서 즐겨 사용하던 용비어천가 숫자놀이가 생각났다.
(일)하시는 각하, (이) 나라의 지도자시여 ! (삼)일정신 받들어, (사)랑하는 겨레에, (오)일륙 일으켜, (육)대주에 빛나고, (칠)십년대 번영을, (팔)도강산 이루고, (구)국영단 내리니 (십).... 음, 십.... 이때'도 십'이 막혔다. 나는 싸움 중에도 이런저런 사색을 즐기고는 했다. 그때였다. 격렬한 통증이 아랫도리 급소에 전해졌다. 누군가가 발로 찼는데 경쾌한 바람소리가 들렸다. 이 싸움으로 인해 나는 불알이 터졌어. 다행히 고자 신세는 면했으나 이 사고로 남성 전립선에 이상이 생겼다. 사고 이후 갑자기 관심에도 없던 요리와 패션에 흥미를 가지게 되었다. 그 이후로 내가 휘두른 주먹에서는 바람소리'를 들을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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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신거울 앞에 섰다. 꽃남방을 입었다. 이 나이'에 꽃남방이 어울릴 수 있다는 것은 축복이다. 하지만 단추를 채우려다가 벗었다. 나탈야'가 비아냥거릴 게 분명하기 때문이다. 지난번 모임 때, 나탈야는 내 패션스타일'을 두고 " 슈퍼스타 게이 같아요 ! " 라고 말했다. 가는귀먹은 나는 슈퍼스타 K로 알아듣고는 싱글벙글했지만 이때가 기회다 싶었는지 오쉬프만젤쉬탐이 꾀죄죄하게 거들었다. 도전 게이 팝 스타, 게이비에스 등등. 얍삽한 인간들에게 화딱지가 났지만 참아야 했다. 밝은 체크무늬 남방'으로 갈아입고 녹색 가디건으로 멋을 부렸다. 여기에 붉은 타이'로 포인트를 줬다. 이탈리아 패션 장인이 한 땀 한 땀 정성을 들인 고급 실크 타이'다. 패션을 사랑하는 사람들은 옷보다 액세서리'에 신경을 쓴다. 훌륭한 투수는 스트라이크를 잘 던지는 선수가 아니라 볼을 잘 던지는 선수가 좋은 투수이듯이 패션 감각이 뛰어난 사람은 비싼 옷보다는 비싼 액세서리'에 투자를 하는 사람이다.
녹색 가디건과 붉은 타이'가 조화를 이루니, 아... 감탄사가 나왔다.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 내가 점잖게 입고 나가면 나탈야와 오쉬프'가 또 지랄을 하겠지 ? 안 봐도 디브이디'다. 닝기미, ( 나탈야 말투 흉내를 내며 ) 붉은 넥타이가 게이 패션을 도드라지게 만드는구녕, 웃으면서 코 파여. 홓홓홓 아이구, 니미 뽕이닷. 나탈야, 여시 같은 것. " 그래도 어쩌랴, 미우나 고우나 이웃이니 말이다. 약속 장소인 홍대 < 그날이오면 > 에 도착했다. 모임을 주최한 나탈야와 키티'가 먼저 와서 기다리고 있었다. 꼴을 보니 남성 파티'일 가능성이 높았다. 나탈야는 내게 " 그동안 잘 지내셨습니까 ? " 라는 말 대신 " 붉은 넥타이가 게이 패션을 도드라지게 만드는구녕, 웃으면서 코 파여. 홓홓홓 " 이라고 했다. 어이가 없었다. 이 타이 하나 가격이 당신 로가디스 코트 값이올시다, 라고 말하고 싶었으나 가난을 지나치게 공격하는 것 같아서 참았다. 상대하지 않으리라. 다른 이와 즐겁게 술을 마시리라. 잠시 화장실에 간 사이 오쉬프가 왔다. 그 사이 자리'가 옮겨졌다.
오쉬프만젤쉬탐은 언제나 생글생글 웃는다. 인상 좋은 시인'이다. 그는 반갑게 악수를 건내며 말했다. " 붉은 넥타이가 게이 패션을 도드라지게 만드는구녕, 홓홓홓 " 아휴, 시부랄 ! 시인이라는 작자가 문학적 향기가 이렇게 빈곤하냐. 오늘 모임도 수컷들뿐이었다. 페브리스 뿌린다고 수컷 냄새가 사라질까 ? 불알 안에 밤나무 하나씩 숨겨 두었으니 밤꽃 향기가 진동을 했다. 우리는 조용히 술을 마셨다. 꾀죄죄한 인간들과 술을 마시니 흥이 나지 않았다. 좌불알석'이었다. 어색한지 나탈야'가 오줌 맛이 나는 국산 맥주를 밀러 맥주처럼 맛있게 만들겠다며 재롱을 부렸다. 맥주에 젓가락을 담근 후 다른 젓가락으로 강하게 때리니 밀도가 굉장히 높은 거품이 만들어졌다. 아닌 게 아니라 마셔보니 맛이 매우 좋았다. 나는 나탈야에게 엄지를 치켜세우며 속으로 생각했다. " 굼벵이도 구르는 재주가 있다더니 나탈야'에게도 이런 제주가 있구나.
그냥 조금 더 비싼 밀러 맥주 사먹으면 되지 굳이 이럴 필요가 있을까 ? 아, 가난한 나탈야. " 백석은 나타샤 생각에 당나귀처럼 으엉으엉, 울었으나 나는 나턀야의 빈곤 때문에 눈물이 앞을 가렸다. 곧이어 달빛가루'가 나타났다. 모두가 나를 까기 위해 모임에 나온다면 달빛가루'는 순전히 내가 가진 매력 때문에 모임에 참석한다. 이 대학생이 보기엔 내가 알랭들롱처럼 잘생긴 것이다. 그는 내 옆에 바짝 붙어서 이곳저곳을 만졌다. 아마도 그가 진짜 만지고 싶었던 것은 내 불알'이리라. 남성들이 나를 향한 구애'만큼만 여성들에게 인기가 있었다면 지금처럼 이런 흐물흐물한 모임 따위'에는 참석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내가 만지고 싶었던 것은 불알이 아니라 젖가슴이었다. 서로 조롱하고 비난질로 시간과 인생을 낭비하고 있을 무렵 뒷모습에페티쉬'가 뒤늦게 도착했다. 그는 걸어다니는 백과사전'이다. 모르는 게 없다. 하지만 깊게 아는 것 같지는 않다. 어떻게 아느냐고 ? 후후, 느낌 아니까.
우리는 계속 맥주잔 속에 젓가락이나 숟가락을 넣고는 타종을 쳤다. 누가 봤다면 지랄한다고 했을 것이다. 웃고 떠들 무렵은 아니고 타종 치고 먼산 볼 무렵, 쥴봉이 왔다. 이 인간은 모임을 어떻게 알았는지 꾸역꾸역 찾아온다. 잘생긴 얼굴과 락커의 상징인 검은 가죽 점퍼'는 빛이 났다. 홍대 인디 밴드 최고의 미남'은 역시 어딜 가도 다른 법이다. 그가 오자 다른 이들은 모두 오징어가 되었다. 특히 나턀야는 오징어를 빼다박았다. 쥴봉과 겨룰 외모는 아무래도 나밖에 없었다. 쥴봉의 조각같은 외모'는 자주 보면 질리는, 싼 티가 났지만 내 외모는 오래 볼수록 은은하다. 그나저나 수컷 7명이 모인 것이다. 집에 가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았지만 예상하지 못한 반전이 기다리고 있었다. 즐거운인생'이 모임에 참석을 한 것이다. 내 입만 바라보던 수컷들은 아름다운 여신이 등장하자 정신 못 차리고 입에 거품을 물었다.
그녀 또한 자신을 향한 수컷들의 몰입'을 즐기는 것 같았다. 하지만 오직 한 명만은 배신을 때리지 않았다. 달빛가루, 그는 다른 사람들이 즐거운인생'에게 빠져서 안 보는 사이 더욱 더 내 몸을 애무했다. 화무십일홍이라고 했던가 ? 그 인기 오래 가지 않을 겁니다. 즐거운인생 님. 허허. 우리는 2차로 호프집에 가서 생맥주를 마셨다. 여기서도 가난한 동무들은 1130원 더 비싼 밀러 대신 젓가락으로 제조한 밀러 비스무리한 맥주를 마셨다. 아, 오줌 맛이 났다. 사실 이때부터는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내가 항상 필름이 끊기는 부분은 중간'이다. 내가 이곳에서 기억하는 것은 즐거운인생 님이 내 옆자리에 앉았다는 기억이 전부다. 아마도 이 무리 중에서 내가 제일 마음에 들었을 것이다. 다른 사내에게서는 밤꽃 향이 나고 내게서는 제라늄 향이 났을 것이다. 기왕이면 다홍치마라 하지 않았던가 !
그리고 또 하나. 나탈야는 줄봉 옆에 앉아 있었다. 빨갛게 상기된 얼굴. 그것은 취했기 때문이 아니라 설레일 때 나타나는 홍조'였다. 그가 줄봉에게 조인선과 싱크로율이 100% 라는 소리가 들렸다. 그것은 추파였다 어쩌면 나턀야는 자신의 성정체성'을 감추기 위해서 유부남이 되었는지도 모른다. 화딱지가 난 나는 딴지를 걸었다. " 그럼 한국인이 조선인 닮지 독일인 닮습디까 ? 그냥 우스면서 코 파여. " 글이 길어지면 읽는 이 지루하여 2차에 대한 스케치는 여기서 갈무리하기로 한다. 3차는 페티쉬와 쥴봉을 이끌고 양 꼬치구이집'으로 갔다. 이과두주를 마셨다. 잔뜩 취했다. 우리는 셋이서 나탈야의 깐족과 오쉬프만젤쉬탐의 능글 그리고 키티의 정력'을 두고 흉을 보았다. 5시간 동안 사정하지 않고 섹스를 한다고 자랑을 하는 남자. 지루라고 하기에도 지루한 시간이 아니었던가.
오쉬프의 능글은 더욱 가관이다. 자신을 무성애자'라고 소개하지만 사실은 작업 멘트다. 이런 식으로 다자파트린 여자가 한둘이 아님을 나는 알고 있다. 가장 많은 욕을 먹은 사람은 나탈야'였다. 깐족거리는 입말이 장난이 아니라는 둥, 깐풍기 좋아할 것 같다는 둥, 심장이 꾀죄죄할 거라는 둥. 까르르르르. 우리는 웃었다. 하지만 이 글을 쓰고 있는 와중에도 어제의 귀갓길을 생각하면 끔찍했다. 만취한 상태로 오토바이'를 탄 것이다. 죽지 않은 것이 다행이었다. 여기서 모임 후기를 끝내기로 한다. 모임이 즐거워서 찾아가는 게 아니라 모임 후기'를 위해서 어쩔 수 없이 그들을 만난다. 개그맨들이 토크쇼에 써먹을 에피소드를 찾아 강남 밤거리를 어슬렁거리듯이 말이다. 내가 " 발길질에서 바람소리가 나는 놈 " 과 싸워서 전립선을 다치지만 않았더라면 당신들은 모두 나에게 강냉이가 털렸을 것이다.
꽃남방 대신 빤스 입고 격투기 선수가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나이가 드니 내 몸은 여성化가 진행 중이다. 잔소리가 늘었고, 가슴은 A컵으로 진화했다. 어디 그뿐인가. 가는귀먹어서 < 사랑의 서약 > 이라는 제목을 < 사랑해 소야 > 라고 착각하기도 한다. " 각하, 각하가 저를 이렇게 만들었습니다 ! " 나는 어떤 식으로든 매조지'는 각하를 욕하는 것으로 마무리하는 버릇이 있다. (일)하시는 각하, (이) 나라의 지도자시여 ! (삼)일정신 받들고, (사)랑하는 겨레에, (오)일륙 일으킨 아버지를 받들어, (육)대주에 빛나고, (칠)십년대 번영을 이십일세기에 이루소서, (팔)도강산 번영 이루고, (구)국영단 내리니 (십)팔대 대통령 가는 길에 영광 있으라. 지금은 꽃남방을 즐겨 입으며 수많은 게이들로부터 갖고 싶은 " 머스트 헤브 아이템 소프트 바디 " 가 되었지만 한때 내 별명은 불광동도깨비풀 혹은 원 펀치 쓰리 강냉이'였다. 딱딱한 하드바디'였어. 상남자'였다. 기억해 달라.
추신
게이들이여 ! 나는 치질로 고생하는 환자이니, 날 욕망하지는 마십시요. 내 괄약근은 흐물흐물해서 밀러 생맥주 거품처럼 밀도가 높지 않습니다. 만지면 톡 하고 터집니다. 피똥 쌉니다. 그냥 눈으로 보고 손으로 만지지는 마세요. 부탁드립니다. 아잉 ~
모임후기 35탄. ▼
1. 어제 모임'이 있었다. 외대 카페 < 너와 > 밖에서 안을 살피니 남자 셋'이 초라하게 술을 마시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서로 이 자리에 왜 나왔는지 후회하는 얼굴들이었다. 밤꽃 냄새 나는 밤나무 세 그루'가 불 타는 토요일 밤이 모여 있다니. 내가 안으로 들어가자 이내 분위기'는 화사해졌다. 왜 아니 그러겠는가 ! 그들은 나를 연애인 보듯 했다. 신기한 듯 토일렛'이 내 팔을 비틀었다. " 어... 인형이 아니네. "
2. 술을 마시던 토일렛'이 갑자기 카페 조명이 갑자기 밝아졌다고 지적했다. 오쉬프도 동조했다. 이들의 모습을 유심히 관찰하던 준태'가 한심하다는 듯이 토일렛에게 귀엣말로 조용히 말했다. " 그건 조명의 조도 때문이 아니라 페루애의 아우라 때문에 그래요 ! "
3. 오쉬프'는 여전히 나의 등장을 좋아하지 않았다. 첫 번째 모임에서도 그는 나를 향해 " 돌아이야, 진짜 이 인간은 내가 본 진짜 똘아이야 !! " 라고 외쳤을 정도였으니 말이다. 나는 아무 생각 없이 " 오쉬프 인맥 동원력이 겨우 이 정도 입니까 ? 밤나무 세 그루라니. 까르르르르. " 내 말을 듣던 오쉬프는 얼굴이 빨개지며 불끈 주먹을 쥐었다. 나는 곧바로 손을 펴 보자기'를 내밀었다. " 오쉬프 ! 내가 이 상황에서 가위'를 낼 것이라 생각했소 ? 난 가위 바위 보 게임에서 져 본 적이 단 한번도 없소 ! 왜인지 아쇼 ? 난... 항상 늦게 손을 내밀기 때문이오. 반칙이라고 ?! 후후. 순진하기는. 당신은 여전히 페어플레이 신화를 믿소 ? " 오쉬프는 내기에서 졌다. 그는 팬티만 입고 술을 마셨다.
4. 내가 토일렛에게 가재' 흉내를 내보라고 제안하자 그는 검지와 중지로 가재 앞다리 흉내를 내며 루이 암스트롱 목소리를 언더 더 씨를 불렀다. 가관이군, 가관이야 ! 내가 잽싸게 주먹을 내밀었다. 이겼다. 가위를 이길 수 있는 것은 주먹이 유일하니깐 말이다.토일렛도 팬티만 입고 술을 마셨다. 준태는 냉철한 분석가답게 속지 않으려고 경계를 했다. 절대 먼저 손을 내밀지 않으리라. 토일렛이나 오쉬프보다는 똑똑한 사람이었다. 하지만 내가 누구인가. 준태에게는 손금을 봐주겠다고 제안하자 그가 넙죽 손바닥을 펴 내게 내밀었다. 그도 곧 팬티만 입고 술을 마셨다.
5. 하루키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오쉬프는 하루키'라고 지칭했고, 토일렛도 하루키'라고 지칭했다. 그리고 감성적 심증보다는 과학적 실증을 중요시여기는 준태'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나는 하루키 씹새끼'라고 욕했다. 할 줄 아는 건 자위 사용법과 재즈와 와인 이야기가 전부라고 말이다.
6. 김지하에 대한 이야기도 했다. 나이를 먹으면 꼰대가 된다는 이야기'가 주였다. 토일렛이 내 글을 보더니 나이가 들어서 꼰대 글이 자주 보인다고 했다. 이에 오쉬프가 데시벨 레벨 7.0' 으로 우렁차게 웃었다. 인간은 늙으면 꼰대가 된다.
7. 내가 화장실에 가서 오바이트를 하는 사이 토일렛이 도망친 모양이었다. 이후로 나는 했던 말을 계속 반복했다. 취했다는 증거였다. 오쉬프와 준태는 짜증스러워 했다. 난 잠시 졸았다. 눈을 떴다. 그 사이 둘 다 도망갔다. 내가 눈을 떴을 때엔 카페엔 아무도 없었다. 주인과 새벽 2시까지 술을 마셨다.
8. 고백하노라, 사실 나는 < 너와 > 가 외계인 소굴'이라고 생각했었다. 첫 번째 모임에서 였다. 난 언제나 술기운이 올라오면 까마귀처럼 잠시 까무라쳐서 잠을 자는 버릇이 있었다. 그날도 마찬가지였다. 정신을 차리고 눈을 떴다. 카페는 텅 비어 있었고, 앞자리에 주인이 혼자 부동 자세로 멈춰 있었다. 나는 시간이 멈춰서 세상에 멈췄다고 생각했다. 시부랄, 만날 지구 종말을 이야기하더니 드디어 지구 멸망 시계가 멈췄구나 ! 불알이 오그라들 정도로 무섭네. 잽싸게 밖을 보았다. 밖도 시간이 멈춘 상태였다. 지금 생각해 보면 말도 안 되는 망상이었다. 주인은 그냥 잠을 자고 있는 것이다. 밖의 거리 또한 고양이 한 마리 다니지 않으니 멈춰 있는 것처럼 보일 뿐이었다. 당시 내 옆에서 술을 마시던 윤슬이 보이지 않았다. 잡아먹혔나 ?! 내가 자는 사이에 주인장에게 잡아먹혔나 ? 내가 화장실 문을 힘껏 박차고 열었더니 화장실에 윤슬이 있었다. 그 또한 시간이 정지된 채 마네킹처럼 서 있었다. 화장실 문이 갑자기 열리니 깜짝 놀라서 나를 멍하니 본 것인데 나는 이것을 시간 정지'라고 판단한 것이다. 시부랄, 하루키였다면 지구 멸망 전에 이곳에서 자위를 했을 거야. 이곳을 빠져나와야 한다는 사명감이 들었다. 레드... 썬 ! 주문을 외우자 윤슬이 얼음이 풀렸다. 윤슬을 끌고 밖으로 나왔다.새벽 3시가 넘은 시간이었다. 윤슬은 꽤 짜증이 난 모양이었다. 왜냐하면 내가 넋두리처럼 " 내가 널 살렸어 ! " 라고 계속 중얼거렸기 때문이었다. 나는 윤슬에게 돈 몇 푼 쥐어주고는 먼저 택시를 타고 떠났다.
9. 택시를 타고 집 앞에 내려서 편의점에 들려 도시락 하나와 맥주 한 병을 사가지고 집으로 들어왔다. 처음 계획과는 달리 맥주는 마시지 않고 도시락만 먹었다. 오쉬프가 블랑쇼 책과 비니 모자를 선물했다. 비니 모자를 쓰고 책을 읽다가 잠을 잤다. 다음에는 비니'나 책' 말고 다이아몬드 같은 현금화가 가능한 선물을 해 주었으면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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