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이오면.

 

 

 

 

지금은 네이버 블로그 덧문을 걸어 잠궜지만 여전히 술자리'를

갖는다. 매달은 아니지만 분기'마다 만나는 꼴이다. 봄이면 꽃 핀다 만나고, 여름에는 비 온다 만나고, 가을에는 쓸쓸하다고 만나며, 겨울이 오면 눈이 온다고 만날 것이다. 그럴 때마다 < 모임 후기 > 를 썼다. 이웃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들은 모두 자신이 바라본 풍경에 대한 묘사와 해석을 내놓았다. 그래서 이 글을 쓴다. 알라딘 서재'에다 쓰는 글이지만 사실은 네이버 블로그'에 쓰는 글이다. 이웃이여, 신랄한 어투와 디스戰'에 놀라지 마시라. 戰( 싸울 전 )이 아니라 展 ( 펼칠 전 ) 이다.

 

http://amd780501.blog.me/130178941008

 

 

 

 


 

 

 

아는 사람은 다 아는 사실이지만 내 별명은 < 불광동 도깨비풀 > 이었다. 도깨비풀을 도깨비바늘'이라고도 하는데 뾰족한 갓털이 있어서 사람 옷이나 길짐승 털에 붙으면 웬만해서는 떨어지지 않는 풀이다. 학창 시절 싸웠다 하면 절대 먼저 물러나지 않는다고 해서 친구들이 지어준 별명이었다. 최영의 선생은 손으로 황소 뿔을 뽑고 미스터 존슨에게 시비를 걸었지만 나는 말보다 주먹이 먼저 나가는 스타일'은 아니었다. 정의를 위해서 불의를 참지 못했을 뿐이다. ( 내가 뽑은 것이라고는 중학교 배정표가 유일했다. ) 원 펀치 쓰리 강냉이. 그렇다, 나는 바람의 주먹'이었다. < 동사서독 > 에서 맹무살수'는 칼 솜씨'가 좋은 놈은 적의 목을 벨 때 경쾌한 바람소리'가 난다고 고백했는데, 내가 상대방 얼굴을 날릴 때에도 바람소리'가 들렸다. 그날도 나는 아현동 굴다리 아래에서 동네 양아치 16명과 싸웠다. 나는 외쳤다.

 " 나는야 원 펀치 쓰리 강냉이. 한 놈 당 이빨 세 개다잉~ " 아현동 굴다리에 떼거지로 모인 양아치들은 추풍낙엽처럼 나자빠졌다. " (한)놈, (두)시기, (석)삼, (너)구리, (오)징어....  개쉐들, 오징어 다음은 뭐다냐, 잉 ? " 내 주먹이 최홍만을 닮은 꾀죄죄한 얼굴'에 정확히 꽂히자 덩치가 곰 같은 놈은 3미터 밖으로 내동댕이쳐졌다. " 바로.... 너는 (육)개장이여 ! 알긋냐 ? 넌 (칠)면조이고, 팔에 담배빵한 새끼, 어딜 봐 이 개쉐야. 넌 (팔)각정, 글구 자네는 (구)봉서, 머리에 빵구난 넌 십... 십....  이 씹새야, 너 때문에 막혔잖아 ! 토, 토토토토다는 놈은 용서 못해. "   바닥에 누런 이빨 서른 개'가 나뒹굴 무렵이었다. 구봉서 다음에는 십'으로 시작하는 마땅한 단어가 생각이 않았다. 뭐... 였더라 ? 문득 땡전 뉴스에서 즐겨 사용하던 용비어천가 숫자놀이가 생각났다.

(일)하시는 각하, (이) 나라의 지도자시여 ! (삼)일정신 받들어, (사)랑하는 겨레에, (오)일륙 일으켜, (육)대주에 빛나고, (칠)십년대 번영을, (팔)도강산 이루고, (구)국영단 내리니 (십).... 음, 십.... 이때'도 십'이 막혔다. 나는 싸움 중에도 이런저런 사색을 즐기고는 했다. 그때였다. 격렬한 통증이 아랫도리 급소에 전해졌다. 누군가가 발로 찼는데 경쾌한 바람소리가 들렸다. 이 싸움으로 인해 나는 불알이 터졌어. 다행히 고자 신세는 면했으나 이 사고로 남성 전립선에 이상이 생겼다. 사고 이후 갑자기 관심에도 없던 요리와 패션에 흥미를 가지게 되었다. 그 이후로 내가 휘두른 주먹에서는 바람소리'를 들을 수 없었다.

 

전신거울 앞에 섰다. 꽃남방을 입었다. 이 나이'에 꽃남방이 어울릴 수 있다는 것은 축복이다. 하지만 단추를 채우려다가 벗었다. 나탈야'가 비아냥거릴 게 분명하기 때문이다. 지난번 모임 때, 나탈야는 내 패션스타일'을 두고 " 슈퍼스타 게이 같아요 ! " 라고 말했다. 가는귀먹은 나는 슈퍼스타 K로 알아듣고는 싱글벙글했지만 이때가 기회다 싶었는지 오쉬프만젤쉬탐이 꾀죄죄하게 거들었다. 도전 게이 팝 스타, 게이비에스 등등. 얍삽한 인간들에게 화딱지가 났지만 참아야 했다. 밝은 체크무늬 남방'으로 갈아입고 녹색 가디건으로 멋을 부렸다. 여기에 붉은 타이'로 포인트를 줬다. 이탈리아 패션 장인이 한 땀 한 땀 정성을 들인 고급 실크 타이'다. 패션을 사랑하는 사람들은 옷보다 액세서리'에 신경을 쓴다. 훌륭한 투수는 스트라이크를 잘 던지는 선수가 아니라 볼을 잘 던지는 선수가 좋은 투수이듯이 패션 감각이 뛰어난 사람은 비싼 옷보다는 비싼 액세서리'에 투자를 하는 사람이다.

녹색 가디건과 붉은 타이'가 조화를 이루니, 아... 감탄사가 나왔다.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 내가 점잖게 입고 나가면 나탈야와 오쉬프'가 또 지랄을 하겠지 ? 안 봐도 디브이디'다. 닝기미, ( 나탈야 말투 흉내를 내며 ) 붉은 넥타이가 게이 패션을 도드라지게 만드는구녕, 웃으면서 코 파여. 홓홓홓 아이구, 니미 뽕이닷. 나탈야, 여시 같은 것. " 그래도 어쩌랴, 미우나 고우나 이웃이니 말이다. 약속 장소인 홍대 < 그날이오면 > 에 도착했다. 모임을 주최한 나탈야와 키티'가 먼저 와서 기다리고 있었다. 꼴을 보니 남성 파티'일 가능성이 높았다. 나탈야는 내게 " 그동안 잘 지내셨습니까 ? " 라는 말 대신 " 붉은 넥타이가 게이 패션을 도드라지게 만드는구녕, 웃으면서 코 파여. 홓홓홓 " 이라고 했다. 어이가 없었다. 이 타이 하나 가격이 당신 로가디스 코트 값이올시다, 라고 말하고 싶었으나 가난을 지나치게 공격하는 것 같아서 참았다. 상대하지 않으리라. 다른 이와 즐겁게 술을 마시리라. 잠시 화장실에 간 사이 오쉬프가 왔다. 그 사이 자리'가 옮겨졌다.

오쉬프만젤쉬탐은 언제나 생글생글 웃는다. 인상 좋은 시인'이다. 그는 반갑게 악수를 건내며 말했다.  " 붉은 넥타이가 게이 패션을 도드라지게 만드는구녕, 홓홓홓 " 아휴, 시부랄 ! 시인이라는 작자가 문학적 향기가 이렇게 빈곤하냐. 오늘 모임도 수컷들뿐이었다. 페브리스 뿌린다고 수컷 냄새가 사라질까 ? 불알 안에 밤나무 하나씩 숨겨 두었으니 밤꽃 향기가 진동을 했다. 우리는 조용히 술을 마셨다. 꾀죄죄한 인간들과 술을 마시니 흥이 나지 않았다. 좌불알석'이었다. 어색한지 나탈야'가 오줌 맛이 나는 국산 맥주를 밀러 맥주처럼 맛있게 만들겠다며 재롱을 부렸다. 맥주에 젓가락을 담근 후 다른 젓가락으로 강하게 때리니 밀도가 굉장히 높은 거품이 만들어졌다. 아닌 게 아니라 마셔보니 맛이 매우 좋았다. 나는 나탈야에게 엄지를 치켜세우며 속으로 생각했다. " 굼벵이도 구르는 재주가 있다더니 나탈야'에게도 이런 제주가 있구나.

그냥 조금 더 비싼 밀러 맥주 사먹으면 되지 굳이 이럴 필요가 있을까 ? 아, 가난한 나탈야. " 백석은 나타샤 생각에 당나귀처럼 으엉으엉, 울었으나 나는 나턀야의 빈곤 때문에 눈물이 앞을 가렸다. 곧이어 달빛가루'가 나타났다. 모두가 나를 까기 위해 모임에 나온다면 달빛가루'는 순전히 내가 가진 매력 때문에 모임에 참석한다. 이 대학생이 보기엔 내가 알랭들롱처럼 잘생긴 것이다. 그는 내 옆에 바짝 붙어서 이곳저곳을 만졌다. 아마도 그가 진짜 만지고 싶었던 것은 내 불알'이리라. 남성들이 나를 향한 구애'만큼만 여성들에게 인기가 있었다면 지금처럼 이런 흐물흐물한 모임 따위'에는 참석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내가 만지고 싶었던 것은 불알이 아니라 젖가슴이었다. 서로 조롱하고 비난질로 시간과 인생을 낭비하고 있을 무렵 뒷모습에페티쉬'가 뒤늦게 도착했다. 그는 걸어다니는 백과사전'이다. 모르는 게 없다. 하지만 깊게 아는 것 같지는 않다. 어떻게 아느냐고 ? 후후, 느낌 아니까.

우리는 계속 맥주잔 속에 젓가락이나 숟가락을 넣고는 타종을 쳤다. 누가 봤다면 지랄한다고 했을 것이다. 웃고 떠들 무렵은 아니고 타종 치고 먼산 볼 무렵, 쥴봉이 왔다. 이 인간은 모임을 어떻게 알았는지 꾸역꾸역 찾아온다. 잘생긴 얼굴과 락커의 상징인 검은 가죽 점퍼'는 빛이 났다. 홍대 인디 밴드 최고의 미남'은 역시 어딜 가도 다른 법이다. 그가 오자 다른 이들은 모두 오징어가 되었다. 특히 나턀야는 오징어를 빼다박았다. 쥴봉과 겨룰 외모는 아무래도 나밖에 없었다. 쥴봉의 조각같은 외모'는 자주 보면 질리는, 싼 티가 났지만 내 외모는 오래 볼수록 은은하다. 그나저나 수컷 7명이 모인 것이다.  집에 가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았지만 예상하지 못한 반전이 기다리고 있었다. 즐거운인생'이 모임에 참석을 한 것이다. 내 입만 바라보던 수컷들은 아름다운 여신이 등장하자 정신 못 차리고 입에 거품을 물었다.

그녀 또한 자신을 향한 수컷들의 몰입'을 즐기는 것 같았다. 하지만 오직 한 명만은 배신을 때리지 않았다. 달빛가루, 그는 다른 사람들이 즐거운인생'에게 빠져서 안 보는 사이 더욱 더 내 몸을 애무했다. 화무십일홍이라고 했던가 ? 그 인기 오래 가지 않을 겁니다. 즐거운인생 님. 허허. 우리는 2차로 호프집에 가서 생맥주를 마셨다. 여기서도 가난한 동무들은 1130원 더 비싼 밀러 대신 젓가락으로 제조한 밀러 비스무리한 맥주를 마셨다. 아, 오줌 맛이 났다. 사실 이때부터는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내가 항상 필름이 끊기는 부분은 중간'이다. 내가 이곳에서 기억하는 것은 즐거운인생 님이 내 옆자리에 앉았다는 기억이 전부다. 아마도 이 무리 중에서 내가 제일 마음에 들었을 것이다. 다른 사내에게서는 밤꽃 향이 나고 내게서는 제라늄 향이 났을 것이다. 기왕이면 다홍치마라 하지 않았던가 !

그리고 또 하나. 나탈야는 줄봉 옆에 앉아 있었다. 빨갛게 상기된 얼굴. 그것은 취했기 때문이 아니라 설레일 때 나타나는 홍조'였다. 그가 줄봉에게 조인선과 싱크로율이 100% 라는 소리가 들렸다. 그것은 추파였다 어쩌면 나턀야는 자신의 성정체성'을 감추기 위해서 유부남이 되었는지도 모른다. 화딱지가 난 나는 딴지를 걸었다. " 그럼 한국인이 조선인 닮지 독일인 닮습디까 ? 그냥 우스면서 코 파여. " 글이 길어지면 읽는 이 지루하여 2차에 대한 스케치는 여기서 갈무리하기로 한다. 3차는 페티쉬와 쥴봉을 이끌고 양 꼬치구이집'으로 갔다. 이과두주를 마셨다. 잔뜩 취했다. 우리는 셋이서 나탈야의 깐족과 오쉬프만젤쉬탐의 능글 그리고 키티의 정력'을 두고 흉을 보았다. 5시간 동안 사정하지 않고 섹스를 한다고 자랑을 하는 남자. 지루라고 하기에도 지루한 시간이 아니었던가.

오쉬프의 능글은 더욱 가관이다. 자신을 무성애자'라고 소개하지만 사실은 작업 멘트다. 이런 식으로 다자파트린 여자가 한둘이 아님을 나는 알고 있다. 가장 많은 욕을 먹은 사람은 나탈야'였다. 깐족거리는 입말이 장난이 아니라는 둥, 깐풍기 좋아할 것 같다는 둥, 심장이 꾀죄죄할 거라는 둥. 까르르르르. 우리는 웃었다. 하지만 이 글을 쓰고 있는 와중에도 어제의 귀갓길을 생각하면 끔찍했다. 만취한 상태로 오토바이'를 탄 것이다. 죽지 않은 것이 다행이었다. 여기서 모임 후기를 끝내기로 한다. 모임이 즐거워서 찾아가는 게 아니라 모임 후기'를 위해서 어쩔 수 없이 그들을 만난다. 개그맨들이 토크쇼에 써먹을 에피소드를 찾아 강남 밤거리를 어슬렁거리듯이 말이다. 내가 " 발길질에서 바람소리가 나는 놈 " 과 싸워서 전립선을 다치지만 않았더라면 당신들은 모두 나에게 강냉이가 털렸을 것이다.

꽃남방 대신 빤스 입고 격투기 선수가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나이가 드니 내 몸은 여성化가 진행 중이다. 잔소리가 늘었고, 가슴은 A컵으로 진화했다. 어디 그뿐인가. 가는귀먹어서 < 사랑의 서약 > 이라는 제목을 < 사랑해 소야 > 라고 착각하기도 한다. " 각하, 각하가 저를 이렇게 만들었습니다 ! " 나는 어떤 식으로든 매조지'는 각하를 욕하는 것으로 마무리하는 버릇이 있다. (일)하시는 각하, (이) 나라의 지도자시여 ! (삼)일정신 받들고, (사)랑하는 겨레에, (오)일륙 일으킨 아버지를 받들어, (육)대주에 빛나고, (칠)십년대 번영을 이십일세기에 이루소서, (팔)도강산 번영 이루고, (구)국영단 내리니 (십)팔대 대통령 가는 길에 영광 있으라.  지금은 꽃남방을 즐겨 입으며 수많은 게이들로부터 갖고 싶은 " 머스트 헤브 아이템 소프트 바디 " 가 되었지만  한때 내 별명은 불광동도깨비풀 혹은 원 펀치 쓰리 강냉이'였다. 딱딱한 하드바디'였어. 상남자'였다. 기억해 달라.

 

 

 

추신 

게이들이여 ! 나는 치질로 고생하는 환자이니, 날 욕망하지는 마십시요. 내 괄약근은 흐물흐물해서 밀러 생맥주 거품처럼 밀도가 높지 않습니다. 만지면 톡 하고 터집니다. 피똥 쌉니다. 그냥 눈으로 보고 손으로 만지지는 마세요. 부탁드립니다. 아잉 ~

모임후기 35탄. ▼

 

1. 어제 모임'이 있었다. 외대 카페 < 너와 > 밖에서 안을 살피니 남자 셋'이 초라하게 술을 마시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서로 이 자리에 왜 나왔는지 후회하는 얼굴들이었다. 밤꽃 냄새 나는 밤나무 세 그루'가 불 타는 토요일 밤이 모여 있다니. 내가 안으로 들어가자 이내 분위기'는 화사해졌다. 왜 아니 그러겠는가 ! 그들은 나를 연애인 보듯 했다. 신기한 듯 토일렛'이 내 팔을 비틀었다. " 어... 인형이 아니네. "  

 

2. 술을 마시던 토일렛'이 갑자기 카페 조명이 갑자기 밝아졌다고 지적했다. 오쉬프도 동조했다. 이들의 모습을 유심히 관찰하던 준태'가 한심하다는 듯이 토일렛에게 귀엣말로 조용히 말했다. " 그건 조명의 조도 때문이 아니라 페루애의 아우라 때문에 그래요 ! "  

 

3. 오쉬프'는 여전히 나의 등장을 좋아하지 않았다. 첫 번째 모임에서도 그는 나를 향해 " 돌아이야, 진짜 이 인간은 내가 본 진짜 똘아이야 !! " 라고 외쳤을 정도였으니 말이다. 나는 아무 생각 없이 " 오쉬프 인맥 동원력이 겨우 이 정도 입니까 ? 밤나무 세 그루라니. 까르르르르. " 내 말을 듣던 오쉬프는 얼굴이 빨개지며 불끈 주먹을 쥐었다. 나는 곧바로 손을 펴 보자기'를 내밀었다. " 오쉬프 ! 내가 이 상황에서 가위'를 낼 것이라 생각했소 ? 난 가위 바위 보 게임에서 져 본 적이 단 한번도 없소 ! 왜인지 아쇼 ? 난... 항상 늦게 손을 내밀기 때문이오. 반칙이라고 ?! 후후. 순진하기는. 당신은 여전히 페어플레이 신화를 믿소 ? " 오쉬프는 내기에서 졌다. 그는 팬티만 입고 술을 마셨다.  

 

4. 내가 토일렛에게 가재' 흉내를 내보라고 제안하자 그는 검지와 중지로 가재 앞다리 흉내를 내며 루이 암스트롱 목소리를 언더 더 씨를 불렀다. 가관이군, 가관이야 ! 내가 잽싸게 주먹을 내밀었다. 이겼다. 가위를 이길 수 있는 것은 주먹이 유일하니깐 말이다.토일렛도 팬티만 입고 술을 마셨다. 준태는 냉철한 분석가답게 속지 않으려고 경계를 했다. 절대 먼저 손을 내밀지 않으리라. 토일렛이나 오쉬프보다는 똑똑한 사람이었다. 하지만 내가 누구인가. 준태에게는 손금을 봐주겠다고 제안하자 그가 넙죽 손바닥을 펴 내게 내밀었다. 그도 곧 팬티만 입고 술을 마셨다.  

 

5. 하루키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오쉬프는 하루키'라고 지칭했고, 토일렛도 하루키'라고 지칭했다. 그리고 감성적 심증보다는 과학적 실증을 중요시여기는 준태'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나는 하루키 씹새끼'라고 욕했다. 할 줄 아는 건 자위 사용법과 재즈와 와인 이야기가 전부라고 말이다.  

 

6. 김지하에 대한 이야기도 했다. 나이를 먹으면 꼰대가 된다는 이야기'가 주였다. 토일렛이 내 글을 보더니 나이가 들어서 꼰대 글이 자주 보인다고 했다. 이에 오쉬프가 데시벨 레벨 7.0' 으로 우렁차게 웃었다. 인간은 늙으면 꼰대가 된다.  

 

7. 내가 화장실에 가서 오바이트를 하는 사이 토일렛이 도망친 모양이었다. 이후로 나는 했던 말을 계속 반복했다. 취했다는 증거였다. 오쉬프와 준태는 짜증스러워 했다. 난 잠시 졸았다. 눈을 떴다. 그 사이 둘 다 도망갔다. 내가 눈을 떴을 때엔 카페엔 아무도 없었다. 주인과 새벽 2시까지 술을 마셨다.  

 

8. 고백하노라, 사실 나는 < 너와 > 가 외계인 소굴'이라고 생각했었다. 첫 번째 모임에서 였다. 난 언제나 술기운이 올라오면 까마귀처럼 잠시 까무라쳐서 잠을 자는 버릇이 있었다. 그날도 마찬가지였다. 정신을 차리고 눈을 떴다. 카페는 텅 비어 있었고, 앞자리에 주인이 혼자 부동 자세로 멈춰 있었다. 나는 시간이 멈춰서 세상에 멈췄다고 생각했다. 시부랄, 만날 지구 종말을 이야기하더니 드디어 지구 멸망 시계가 멈췄구나 ! 불알이 오그라들 정도로 무섭네. 잽싸게 밖을 보았다. 밖도 시간이 멈춘 상태였다. 지금 생각해 보면 말도 안 되는 망상이었다. 주인은 그냥 잠을 자고 있는 것이다. 밖의 거리 또한 고양이 한 마리 다니지 않으니 멈춰 있는 것처럼 보일 뿐이었다. 당시 내 옆에서 술을 마시던 윤슬이 보이지 않았다. 잡아먹혔나 ?! 내가 자는 사이에 주인장에게 잡아먹혔나 ? 내가 화장실 문을 힘껏 박차고 열었더니 화장실에 윤슬이 있었다. 그 또한 시간이 정지된 채 마네킹처럼 서 있었다. 화장실 문이 갑자기 열리니 깜짝 놀라서 나를 멍하니 본 것인데 나는 이것을 시간 정지'라고 판단한 것이다. 시부랄, 하루키였다면 지구 멸망 전에 이곳에서 자위를 했을 거야. 이곳을 빠져나와야 한다는 사명감이 들었다. 레드... 썬 ! 주문을 외우자 윤슬이 얼음이 풀렸다. 윤슬을 끌고 밖으로 나왔다.새벽 3시가 넘은 시간이었다. 윤슬은 꽤 짜증이 난 모양이었다. 왜냐하면 내가 넋두리처럼 " 내가 널 살렸어 ! " 라고 계속 중얼거렸기 때문이었다. 나는 윤슬에게 돈 몇 푼 쥐어주고는 먼저 택시를 타고 떠났다.  

 

9. 택시를 타고 집 앞에 내려서 편의점에 들려 도시락 하나와 맥주 한 병을 사가지고 집으로 들어왔다. 처음 계획과는 달리 맥주는 마시지 않고 도시락만 먹었다. 오쉬프가 블랑쇼 책과 비니 모자를 선물했다. 비니 모자를 쓰고 책을 읽다가 잠을 잤다. 다음에는 비니'나 책' 말고 다이아몬드 같은 현금화가 가능한 선물을 해 주었으면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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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거운 인생 2013-10-31 23: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다시 쓰세요. 저에 대한 '찬미'가 부족하지 말입니다. 기분 상했지 말입니다. ㅋㅋ

곰곰생각하는발 2013-11-01 00:02   좋아요 0 | URL
그르믄서 왜 공감을 누르셨나여 !
앞으로 자주 오시면 그때마다 즐인찬미'가 점점 오를 것입니다. ㅋㅋㅋㅋ

Forgettable. 2013-11-01 00: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점점 즐인님이 궁금해져가는 시점... 암튼 자꾸 평일 모임 하시면 제가 못가잖아요!!! 다음 모임은 토욜로! (부탁ㅋㅋㅋ )

곰곰생각하는발 2013-11-01 01:11   좋아요 0 | URL
다 유부남들이어서.... 토요일에 술 약속 잡으면 아내에게 줘터지나 봅니다.
다음에는 톨'요일로 잡겠습니다.

만화애니비평 2013-11-01 08: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 되겠어용. 다음에 제가 토요일에, 다음주 PISAF행사가 부천에서 하는데
일이 바쁘다 보니 갈 수 있을지 없을지..

곰곰생각하는발 2013-11-01 15:11   좋아요 0 | URL
추운 겨울에 44분기 미팅 있으니 그때 만애비 님 초청합니다. 먼곳에서 오시는 관계로
회비'는 무료로 제공할 터이니 맘껏 즐기다 가십시요....

나탈야 2013-11-01 09: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역시 후기는 페루애껄 봐야... 정리되는 느낌.
마치 류현진투구 이후 메팅리 코멘트를 읽어야 경기가 마무리된 느낌이랄까...

-는 개뿔.

내가 만든 거품맥주을 맛본 페루애의 눈이 풀리는 걸 내가 봤는데-
이제와서 발뺌이라니... 쯧쯧.

여튼 연말때 한번 또 봅시다. 그때 패션을 기대하겠소.

곰곰생각하는발 2013-11-01 15:13   좋아요 0 | URL
그때는 진짜 마성의 게이 패션으루다가, 준비하겠습니다. 전 히피 스타일'이 좋습니다.

참.. 고 젓가락 신공 대단하더이다. 다음에도 계속 젓가락 신공 부탁드립니다.

엄동 2013-11-01 15: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참석자에 대학생'이 껴있다는 말에
호오~

그 하나뿐인 대학생이
곰곰발님을 진득하게 애무한다는 말에
우호워오~


곰곰발님의 완벽보색패션과
이웃님들의 파안, 홍조와 능글을 못봐서 아쉽다는 ㅎㅎ

곰곰발님의 오랜 팬임에도 불구.
워낙 눌변이라 이번 4/4분기 모임에 못 꼈구녕!
아ㅡ후
걍 웃으면서 코파면 되는거였는데 훟훟훟



곰곰생각하는발 2013-11-01 15:14   좋아요 0 | URL
저도 모임 참석하면 말 거의 못합니다.
말만 하면 끊어요. 말꼬리를 잡고 끊어서 거의 문장을 완성하지 모샜어요.
엄동 님 오셔도 아무 걱정 없을 겁니다. '

yamoo 2013-11-03 22: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헐~ 나두 앤날에 네이뇬 블로그질 할 때 오프 모임 좀 했었는뎅~
엔날 생각납니다그려~

근데, 모임 분위기가 ㅎㄷㄷ 할거 같아욤..ㅋㅋ

그나저나 11월 단풍들이 쥑이게 들었던데, 보시면서 깊어가는 가을 만끽하시길~!



곰곰생각하는발 2013-11-01 22:52   좋아요 0 | URL
캐릭터 모임'인데 그냥 만나서 술 마시고 서로 흉 보다가 헤어지는 모임입니다.
제가 여기서 연기한 캐릭터는 마성의 게이' 역입니다. ㅎㅎㅎㅎㅎㅎㅎ.
다음 모임에는 야무 님도 오십시요.

2013-11-03 22:0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3-11-04 01:23   URL
비밀 댓글입니다.
 

 

엽편소설 no.4

 

 

 

 

세상의 모든 무게'를 재는 방법.

 

 

 

나는 그동안 < 무게를 잴 수 없는 것'에 대한 무게 > 를 재는 방법을 연구해 왔다. < 슬픔 >, < 한숨 >, < 절망 > 따위'를 측정하기 위해서는 특별한 저울이 필요했고  각고의 노력 끝에 특별한 저울'을 만들기에 이르렀다. 나는 저울 설계도가 도난당할 것을 두려워한 나머지 찢어버렸다. 이로써 내가 만든 특별한 저울은 세상에 하나 밖에 없는 저울이 되었다. 내가 이 저울을 사용해서 첫 번째로 잰 것은 종이에다 낙서를 하는 데 소요된 < 연필심 > 의 무게였다. 방법은 어렵지 않다. 다음과 같다.  ① 종이의 무게를 잰다.  / ② 종이 위에 연필로 낙서를 한다. / ③ 문장이 쓰여진 종이'를 다시 측정한다. /  ④ 3 에서 1 의 무게'를 뺀 나머지'가 낙서를 하는 데 사용된 연필심의 무게'이다. 그리고 < 한숨 > 처럼 손에 잡을 수 없는 비물질'에 대한 무게도 이 특별한 저울이라면 가능했다. 우선 ① 바람 빠진 풍선'을 저울에 단다. ② 그리고 삶에 지친 사람에게 풍선을 불게 한 후 그 무게'를 다시 단다.

 

② 에서 ① 를 뺀 차'가 바로 한숨의 무게'이다. 그 무렵, 나는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무게'에 대한 호기심에 충만했었고 이 세상에서 무게를 잴 수 없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고 확신에 차 있었다. 심지어는 < 영혼 > 의 무게'도 측정했으며, < 유령 > 의 무게'를 재는 데에도 성공했다. 대체로 유령은 평범한 영혼보다 무게가 많이 나갔는데 가장 무거웠던 유령'은 굶어서 죽은 귀신'이었다. 그 유령의 무게는 사막 코끼리 150마리를 합친 무게'와 같았다. 이름은 미스 벨벳 리사' 였다. 그녀는 19세기 아일랜드 더블린 출신으로 20일 동안 아무것도 먹지 못한 채 굶어서 죽었다고 했다. 말을 할 때마다 입에서는 감자 썩는 냄새'가 진동을 했었다. 나는 벨벳 리사 양을 설득한 후 씻김굿을 벌려서 무거운 영혼을 위로했다. 굿이 끝나자 그녀는 평온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오, 벨벳 리사 !  그녀에게서 제라늄 향이 났다. 나는 서재로 돌아와 내 주위를 감싸고 있는 사물들을 둘러보았다. 

 

모든 것들, 세상의 모든 것들, 손으로 잡을 수 있는 것과 만질 수 없는 모든 것에게는 고유한 무게'가 존재했다. 존재는 무게'다 !  " 그래, 하품은 3그램, 빗은 900 그램, 백열 전구의 끊어진 필라멘트 선은 1그램......  "  나는 사전에 나오는 단어 순서대로 무게를 재기 시작했다. 그것은 내가 생전에 이룩해야 할 거대한 도전이요, 과제였다. 나는 < 낱말 무게 사전 > 을 집필하는 데 모든 것을 걸었다.  모든 진행 과정이 순조로울 수만은 없었다. 가장 애를 먹었던 낱말은 " 유리창떠들썩팔랑나비의 더듬이 한 쪽 " 이었다. 채집 과정도 힘들었을 뿐만 아니라 유리창떠들썩팔랑나비'에게서 더듬이 한 쪽을 뽑는 작업은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었다. 이런 식으로 작업을 하다 보니 30년이란 세월이 흘렀다. 어느새 나는 국어사전 맨 마지막에 기록된 < 힘 >이란 단어'를 끝으로 길고 긴 여정을 끝낼 수 있었다.

 

 아, 이로써 이 세상의 모든 것을 재는 데 성공했구나 ! 내가 무게를 측정하지 않은 사물은 존재하지 않는다. " 바빌로니아 사람들이 바벨탑을 짓다고 무너졌다면, 나는 잴 수 없는 무게를 재서 금자탑을 이뤘구나 ! " 그러나 기쁨도 잠시, 이 세상에 하나뿐인 저울을 무심히 바라보다가 그만 얼굴이 하얗게 질리고 말았다. 저울 자체의 무게'를 측정하지 않은 것이다. 정작 무게를 재는 저울의 무게'는 재지 않았던 것이다. 세상에서 단 하나뿐인 이 저울을 어떻게 잰다는 말인가 ? < 저울 > 은 모든 것을 잴 수는 있지만 정작 자기 자신에 대한 무게'를 잴 수는 없었다. 나는 이 역설 앞에서 무릎을 꿇었다. 그 이후 나는 세상 모든 것의 무게를 재려는 욕망이 사실은 아무런 의미가 없는, 부질없는 짓'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헛되고, 헛되고, 헛되고, 헛되도다 ! 나는 식음을 전폐하고 자리에 누웠다.

 

그렇게 며칠이 지났을까 ? 숨을 쉴 때마다 내 입에서 감자 썩는 냄새'가 났다. " 닝기미, 생각해 보니..... 감자 썩는 냄새'의 무게도 재지 않았군. 맙소사 ! 세상의 모든 무게를 쟀다고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내가 잰 무게는 티끌'보다 작은 것이었어. 에라이.... " 나는 힘없이 웃었다. 그때 폴 오스터'가 내 침실을 방문했다. 그는 헝크러진 머리에 몰골이 형편없었지만 눈빛만큼은 매섭게 빛났다. 헤비스모커'였던 그는 내 침대 곁에 의자를 끌고와 앉자마자 연신 담배 연기'를 내품으며 내 건강이 회복되기를 기원했다. 나는 웃으면서 폴에게 말했다. " 야, 시방새야 ! 여긴 금연이라네.. 허허허 " 그는 현재 영화 시나리오 한 편을 쓰고 있는 중이었는데 줄거리가 성겨서 애를 먹고 있다고 했다. 웨인 왕'이라는 감독과 함께 < 스모크 > 라는 영화 시나리오를 집필한다고 했다. 하지만 영감이 떠오르지 않는다고.

 

내 침실은 폴 오스터가 내품은 담배 연기로 자욱했다. 속이 타들어가는 모양이었다. 내가 폴 오스터에게 말했다. " 자네, 담배 연기의 무게를 재는 방법을 아나 ? " 폴 오스터의 눈동자가 반짝였다. 내가 말했다. " 담배 연기의 무게를 재는 것은 영혼의 무게를 재는 것과도 같아. 먼저 피우지 않은 담배의 무게를 저울에 잰다네. 그리고는 그 담배를 피우면서 저울에 재를 털고 다 피운 꽁초도 올려놓은 뒤 다시 무게를 재는 거야. 처음 무게와의 차이가 바로 연기의 무게라네.한때 나는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무게'를 달고 싶었다네. 하지만 부질없는 짓이었어. ” 나는 창밖을 바라보았다. 내 몸에서 제라륨 향이 나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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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립간 2013-10-30 15: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스스로 무게를 잴 수 없는 저울 ; 러셀의 역설이군요. - 역시 수학과 친하신 곰곰발님이십니다.
http://blog.aladin.co.kr/maripkahn/6650239

곰곰생각하는발 2013-10-30 16:49   좋아요 0 | URL
아, 저는 수학과는 정말 친하지 않는 놈이라 생각했는데....
이런 반전이 숨어있을 줄은 꿈에도 몰랐습니다.

2013-10-30 16:2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3-10-30 16:5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3-10-31 09:2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3-11-01 03:0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3-11-01 13:1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3-11-01 15:15   URL
비밀 댓글입니다.
 

 

 

 

물밑 작업

 

 

 

가을에서 겨울로 계절이 바뀌는 시절이 오면, 나무는 모든 걸 내려놓는다. 한여름 울울했던 삼림의 기억'은 묻어 둔 채 추운 겨울을 맞이하기 위해서 나무는 옷을 벗어 벌거숭이'가 된다. 이 혹한의 겨울'을 견딜 수 있을까 ? 모두가 겨울잠을 잘 때 나무는 홀로 깨어서 황홀했던 여름 한때를 기억한다. 잊지 않기 위해서, 나무는 깨어 있는 것이다. 날카로운 촉보다 매서운 바람이 기생충보다 깊이 몸속을 파고들 때에도 나무는 오직 여름'만을 기억한다. 이파리 돋고 꽃 필 때까지 깨어 있으라, 다시 만나기 위해서 깨어 있으라. 나는 앙상한 것(들)을 사랑했다. 겨울나무와 섹스가 끝난 후 깃털처럼 가볍게 졸고 있는 애인의 마른 어깨를 사랑했다.

 

- 가을에서 겨울 中 

 

 

 

 


 

 

 

 

 

 

리명박 각하께서 < 국민과의 대화 > 에서 로봇물고기'에 대해 언급한 적이 있었다. 사대강 수질 관리용 로봇 물고기'를 개발하여 한강'을 비롯한 대운하가 지나는 물길'에 로봇 물고기'를 풀어 넣겠다는 야심찬 계획이었다. 로봇의 임무는 수중 생태계 감시, 오염원 추적, 보호어종 감시'였다. 노무현이 집권 초기에 진행한 토크쇼 < 검사와의 대화 > 는 검사들이 개겨서 노무현이 이 정도면 막가자는 거지요 ? 라고 할 정도로 우중충하게 끝났지만 이명박이 진행한 토크쇼 < 국민과의 대화 > 는 처음부터 끝까지 화기애애했다. 각하가 내세운 비전에 의하면 하늘엔 조각구름 떠 있고, 강물에 유람선이 떠 있고, 강속엔 로봇 물고기가 떠 있는 구상이었다. 아아... 아름다운 우리 조국이로구나. 청사진은 화려했고 딴지를 거는 사람은 없었다. 각본대로 짜맞춘 티가 났다. 내 눈에는 이 화기'가 애애'하기보다는 애매'했다. ( 각하의 청사진이 뻥이었다는 사실을 우리는 모두 알고 있다. 조각구름은커녕 뜬구름 잡는 소리가 팔 할이었고, 강물에는 유람선 대신에 굴착기로 강바닥이나 긁었으며, 강속에 녹조만 가득했다. )

 

그리고 얼마 후 청와대로부터 아름다운 미담이 흘러나왔고, 언론은 받아쓰기'를 했다. 리명박 각하'께서 강에 띄울 로봇 물고기의 크기가 크면 작은 어류들이 놀랄 테니 사이즈'를 줄이라고 말씀하셨다고 한다. 참모진들이 기술적인 이유를 들어 난색을 표하자,  리명박은 정색을 하며 각 기능별로 나누어 분리하면 크기'를 줄일 수 있지 않느냐며, 크기를 줄일 것을 요구했다는 내용이 담긴 미담'이었다. 쉽게 말해서, 다랑어 크기의 1인 로봇피쉬 감시체계에서 벗어나 연어급 5인 1조 편대유영'으로 감시하겠다는 발상이다. 이 미담이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분명했다. " 대통령은 세심'하고 참모는 소심'했다!" 하지만 내가 보기에는 둘 다 한심'했다.  아, 이 촌스러운 손장난.  습관적인 자기 만족.  리버-월드'를 군대식 사열'로 재편하겠다는 놀라운 발상'에 난 두 손 두 발 다 든 적이 있다.  " 니미럴, 물고기'가 기러기냐 ?  편대유영으로 돌진하게 ?  하여튼, 낚시하다가 내 눈에 띄면 밟아버린다. "  

 

그런데 밟아버리기 전'에 한 가지 자문을 구하고 싶었다. 이 행위'가 범죄'라면 불법 수렵 채취에 의거한 민법 조항입니까? 아니면 군 시설 파괴 행위에 따른 군법 조항입니까 ? 당시에 거론되었던 물고기 5인조 편대 유영론'은 맨땅에 헤딩하는 꼴이나 다름없었다.   ‘로봇 플랫폼 설계 제작’ ‘자율 유영 충전기술’ ‘수중 유영기술’ ‘수중 위치인식 및 통신기술’과 같은 원천 기술이 전무한 마당에 무슨 수중로봇 상용화'인가 말이다. 그것은 마치 인공위성을 쏘아올린 적도 없는 세력이 스타워즈 전략 운운하는 꼴과 다르지 않았다. 각하와 청와대'가 가지고 있는 초일류 원천기술이라고는 < 물밑 작업 > 이 유일했다. 유감스럽게도 이 물밑 작업은 그 물밑 작업이 아니었다. 물밑에서 해야 할 일을 뭍 위에서 하면 치사한 모략과 더러운 술책이 되는 법이다. 결국 리명박 4대강 SF 판타지아'는 말 그대로 판타지'에 불과했던 것으로 끝났다. 한 남자의 에스에프적 상상력'은 결국 환경 재앙으로 이어졌으니 강물은 악취를 풍기며 썩어가기 시작했다.

 

각하가 입만 열었다 하면 튀어나왔던 < 녹색 성장' > 은 알고 보니 < 녹조 현상 > 이었다. 물길을 막으면 유속이 느려지니 녹조가 발생하는 것은 당연한 결과'였다. 느리게 흐르는 물은 섞는다, 라는 상식은 환경 전문가'가 아니더라고 쉽게 알 수 있는 사실'이었다. 그리고 사대강 정비 사업'이 홍수를 예방하기 위한 치수 정화'였다는 말도 새빨간 거짓말에 속한다. 강바닥을 파서 물을 담는 그릇을 넓히는 작업'은 수위를 높일 뿐이지 홍수에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1리터 용량인 수조를 2리터 용량인 수조로 바꿨다고 해서 수조'에 물이 가득 차 있다면 효과가 없다. 물이 가득 찬 수조는 1리터 용량이나 2리터 용량이나 빗물을 받아 저장할 수 없다. 홍수 예방 효과를 얻기 위해서는 강물을 비워야 하는데 비우기는커녕 고여서 수위만 높아졌을 뿐이다. 대부분의 홍수 피해는 강이 범람하기 때문이 아니라 물이 빠질 수 있는 하수 시설이 제대로 되지 않았기 때문에 발생하게 된다.

 

각하가 치수 정책에 신경을 썼다면 강바닥을 건드리는 것보다는 하수공사에 신경을 썼어야 옳다.  사대강 사업은 치수정책에서도 재앙이었고, 정화 사업 측면에서도 재앙이었다. 이래저래  걷잡을 수 없는 환경 재앙이었다. 하물며 환경과 생태 전문가'들은 이 위험성'을 일반인이 생각하는 우려보다 더욱 심각하게 받아들였을 것이 분명하다. 하지만 꼭 그런 것은 아니었던 모양이다. 각하 정권 때 국토해양부 4대강살리기추진본부 환경부본부장' 자리에 오른 인물은 차윤정'이라는 사람이었다.  혹시 그 사람 ?!  혹시는 역시나 였다. < 신갈나무투쟁기 > 로 환경 분야에서 명저로 이름을 날린 저자와 같은 사람'이었다. 개인적으로 이 책은 생태 환경을 다룬 < 현산어보를 찾아서 > , < 개미제국의 발견 > 과 더불어 가장 아끼는 책'이었다. 이 책을 읽고 나서부터 나무에 대해 호기심을 가지기 시작한 나로써는 차윤정의 선택을 이해할 수 없었다. 최근에 " 4대강복원범국민대책위원회 " 가 이명박 전 대통령을 비롯한 4대강 사업 추진세력을 검찰에 고발키로 했는데,  

 

4대강범대위'가 선정한 스페셜 급 찬동인사에는 이명박 전 대통령을 비롯해 권도엽 전 국토해양부 장관, 김건호 한국수자원공사 사장, 심명필 전 4대강 추진본부장, 박석순 국립환경과학원 원장, 박재광 미국 위스콘신대 교수, 이만의 전 환경부 장관, 이재오 새누리당 국회의원, 정종환 전 국토해양부 장관 그리고 차윤정 전 4대강 추진본부 환경부본부장'도 포함되어 있었다. 그녀는 환경부본부장을 임명받기 전에 한국일보 칼럼'에 이런 글을 기고하셨다고 한다. ‘흐르는 강물처럼’이라는 글에서 사대강 발상을 강하게 비판하면서  “한강 유역에 사는 식물종만 해도 대략 700여종, 수서곤충은 100여종, 민물고기 50여종, 그리고 새도 50여종이나 된다. 그러나 우리가 기술하는 강의 정보란 여울, 소(沼), 습지, 연못, 수충부, 모래 톳, 수로, 유속, 유량 등 많아야 20개 정도다. 그나마 이 속성들 사이의 생태적 관계는 미처 파악하지 않았을 뿐더러 통합적으로 논의하지도 않는다"며

 

한국일보 2009.10.11 사설 칼럼, 차윤정 < 흐르는 강물처럼 > 전문 ▼

 

약 4,700년 전 바빌로니아의 도시국가 우룩(Uruk)을 지배하고 있던 길가메시(Gilgamesh)는 제국을 건설하기 위해 남부 메소포타미아의 광활한 숲을 개간하기를 원했다. '숲으로의 여정(The Forest Journey)'으로 알려진 '길가메시 대서사시(Epic of Gilgamesh)'는 그가 숲을 점령해나가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그러나 문자로 기록된 인류 최초의 영웅 서사시에는 불행히도 인류를 향한 오랜 생태적 저주가 담겨 있다.

길가메시 이전에 한번도 인간이 들어가 본 적이 없는 어둡고 신성한 숲은 수메르의 신 엔릴(Enlil)이 지키고 있었다. 병사들은 이 신성한 정령들의 숲에 들어가기를 꺼렸으나 길가메시는 죽음으로 위협하며 병사들을 숲 안으로 내몰았다. 수많은 병사가 숲과의 싸움으로 목숨을 잃었으나 결국 숲은 인간에게 길과 대지를 내주었다. 이때 죽음에 임박한 엔릴은 길가메시와 그의 군대에게 다음과 같은 저주를 내린다.

'너희가 먹는 음식, 너희가 마시는 물 모두 불이 삼키리라 (May the food you eat be eaten by fire; may the water you drink be drunk by fire)'

지금의 이라크를 포함한 중동지역의 사막이나 준사막 지역은 아직까지 고대의 저주에 걸려있어 그 속의 인간은 고통스럽다. 우리에게 이런 저주의 역사가 전해지지 않았음이 얼마나 다행인지. 국토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산을 엎어 경작지를 만들고 도시를 만들어 짧은 혜택을 누릴 수 있었겠지만, 도전과 개척 정신이 부족했다는 비난이 있을지라도 지금의 남겨진 자연유산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오랜만에 김포공항을 나가기 위해 강을 따라 도로를 내달린다. 막 가을로 접어드는 유유한 강물과 강변의 사람들이 평화롭다. 늘어진 나무들과 가벼워진 갈대이삭들이 더 없이 사랑스러운 거대 도시의 한 조각. 서울, 너는 정말 아름다운 강을 가지고 있었구나.

산이 정적이라면 강은 동적이다. 물이 휘몰아치는 굽이에는 너른 모래 톳을 만들어 힘을 흩어버리고 땅을 파고드는 곳에서는 자갈을 쌓아 상처를 보듬는다. 강은 스스로를 통제하기 위해 이리저리 몸을 비틀어 지상에는 역동적이고 아름다운 선이 만들어진다. 그 구비마다 수많은 생물이 틈을 메우며 생존하다. 그 안에 사람도 있다.

한강 유역에 사는 식물종만 해도 대략 700여종, 수서곤충은 100여종, 민물고기 50여종, 그리고 새도 50여종이나 된다. 그러나 우리가 기술하는 강의 정보란 여울, 소(沼), 습지, 연못, 수충부, 모래 톳, 수로, 유속, 유량 등 많아야 20개 정도다. 그나마 이 속성들 사이의 생태적 관계는 미처 파악하지 않았을 뿐더러 통합적으로 논의하지도 않는다. 이제 강을 수로와 수심과 수변으로만 다듬는 '사업'을 한다고 예산까지 구체화하였다. 뭘 어떻게 해서 자연의 이름다운 강보다 더 아름다운 강을 만든단 말인가.

작은 샘에서 시작되는 강의 긴 여정과 그 여정이 다듬어 왔던 생물과 풍광의 역사가 어찌 4,700년보다 짧을까. 강의 의미가 단순히 사람의 풍광만으로 정의될 수 있다면 그나마 다행이겠다. 그러나 강은 산보다 더 정교하고 엄격한 자연이요, 환경이다. 산의 파괴가 그토록 오랜 시간 저주를 풀지 않는데, 정복당한 물이 내릴 저주란 얼마나 끔찍할지, 좀 더 심각한 고민이 필요하지 않을까. 자연은 투자의 대상이 아니라 보호의 대상이다.

 

펼친 부분 접기 ▲

 

"이제 강을 수로와 수심과 수변으로만 다듬는 '사업'을 한다고 예산까지 구체화하였다. 뭘 어떻게 해서 자연의 아름다운 강보다 더 아름다운 강을 만든단 말인가" 라고 했던 그녀가 연봉 7천만 원짜리 1급 공무원이 되고 나서 한다는 소리가 늙은 강'을 젊은 강으로 복원하자, 였다. 내 귀를 의심했다. 어떻게 자연을 늙은 것과 젊은 것'으로 정의내릴 수 있으며,  설상가상 신이 선사한 자연'을 늙었으니 바꿉시다, 라고 주장할 수 있을까 ? 차윤정은 칼럼'에서 서울의 한강을 바라보며 " 너는 정말 아름다운 강 " 이라고 하던 찬탄은 관직을 얻자마자 " 늙은 강 " 이라는 탄식으로 바뀐다. 그사이 차윤정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 오염된 강은 있을 수 있어도 늙은 강'은 존재하지 않는다.  환경 생태학자'가 할 소리가 아니다. 밥벌이를 위해서 동태찌개와 생태찌개'를 팔 수는 있어도,

 

밥벌이를 위해서 숨탄것이 살아가야 하는 생태(지식')을 팔아서 관직을 얻는 것은 곤란하지 않을까 ? 잘못된 행정 결정은 단순히 전봇대'를 뽑으면 되돌릴 수 있지만 잘못된 환경 정책 결정은 숨탄것들에게는 돌이킬 수 없는 치명적인 재앙이 된다. < 땅 > 이 몸이라면 < 강 > 은 핏줄이자 젖줄이다. 강이 죽으면 숲도 죽는다. 숲에 대해 해박한 학자'가 그 사실을 모를 리 없다. 정복당한 물이 내릴 저주를 두려워했던 저자'가 물을 정복하기 위한 환경 재앙 사업에 앞장섰다는 사실이 아이러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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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비 2013-10-29 04: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졸렬하네요. 이명박이나 차윤정이라는 사람들

저는 물질로 존재하는 단어들은 생각과 감정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요. 나무나 전봇대 같은 것들이요..그래서 저는 가끔 길 걷다가 길에 아무도 없으면 괜히 나무한테 인사도 하고 말도 걸어요. 우리가 안볼 때는 나무들도 서로 몰래 속닥거릴지도 몰라요. 강물은 나무처럼 하나의 개체가 아닌 유동적인 것이지만
분명히 강물도 자신을 살려준다면서 자신의 몸을 마구 파헤치고 몸뚱이를 자르고 막고 이상한 것들을 설치하면서 오히려 아프게 만든 사람들로 분노와 슬픔을 느꼈을 거에요..지금도..

아픈 네개의 강들이 불쌍해요


곰곰생각하는발 2013-10-29 12:35   좋아요 0 | URL
심장이 쫄깃해야 하는데 흐물흐물한 인간형이죠.
강을 직선으로 펴는 작업을 하는 것을 보고 정말 기가 막혔습니다.
강은 구불구불해야 되거든요. 그래야 유속이 서로 다르니 다양한 어종이 살 수 있고 퇴적을 막기도 하니깐 말이죠. 강을 직선으로 펴는 것은 환경에, 아니 책 한두 권만 읽어도 나오는 상식 아닙니까....
각하는 물을 많이 담을 요량으로 강바닥을 팠는데...
이게 결정적입니다. 보는 깨부슈면 되지만
바닥은 그동안 자연적 흔적에 따라 다양한 퇴적층이 형성된 관계입니다.
이걸 뒤엎으니 문제가 심각한 것... 모래를 다시 덮는다고 되는 성질이 아니잖아요...
하여튼 환경 재앙입니다.

저도 종종 나무와 말을 하고는 합니다. 묘하게 감동적일 때가 있죠. 피비양 님 !!
 

 

 

 

 " 꼴찌를 위한 변명 " 시리즈 2탄

 

 

 

 

힘줄과 고독

 

 

당신이 결혼 따위 생각하지 않는 여자였으면 좋겠어 우리 그냥 연애만 하자 사랑이 현실에 갇히는 건 끔찍해 결혼은 천민들의 보험일 뿐이야 진부해 그냥 연애만 하자 서로의 눈을 바라보자구 구속하는 일 따위 구역질난다 서로의 사생활을 존중해야지 밤에 내게 전화하는 건 구속받는 기분이어서 싫더라 주말에 약속 잡는 사람들 정말 이해할 수 없어 정서적 난민 같아 주말엔 책을 읽고 음악을 들어야지 당신은 내게 뭔가 요구하지 않을 사람 같아서 참 마음에 들어 상대방을 배려하지 않는 사랑은 폭력이야 천박해 그러니 우리 쿨하게 연애하자구 참, 내가 전화 받기 곤란할 만큼 바쁜 사람이란 거 알지 ? 전화는 항상 내가 먼저 할게 사랑해 이런 느낌 처음인 것 같다 우리 좀더 일찍 만날 걸 그랬지 ?

 

- 유부남 전문, 시집 상처적 체질

 

 

 

 


 

 

 

마초란 근육 있는 남자'다. 시인 류근'은 마초다. 잘생긴 얼굴에 상대를 홀릴 만한 말'을 가졌으니, 그의 바짓가랑이'를 잡고 눈물바람을 낸 여자 많았을 것이다. 고래 힘줄 같은 정력으로 잘록한 허리를 거칠게 휘어감으면 여성들은, 아... 탄산음료 같은 황홀한 탄성이 쏟아지리라. 시에 등장한 사내는 사랑이 현실에 갇히는 건 " 끔찍해 " 하고, 결혼 제도는 " 진부해 " 하며, 서로의 사생활은 " 존중해 " 야 된다고 주장한다. 여기까지는 쿨하고 리버럴해서 좋다. 하지만 주말에 약속을 잡는 사람들 정말 " 이해 " 할 수 없다고 할 때부터 뭔가 좀 이상하게 흘러간다. 상대방을 배려하지 않는 사랑은 폭력이어서 " 천박해 " 라고 하더니 전화 받기 곤란할 만큼 바쁜 사람이라고 자신을 소개한 시적 화자'는 이내 전화는 자신이 항상 먼저 하겠다며 " 사랑해 " 라고 매조지한다. 이쯤에서 우리는 곧 이 욕망이 매우 뻔뻔하다는 사실에 웃고 만다.  결혼 제도가 진부다고 말하는 남자는 유부남이다. 한때 마초였던 꼰대의 희망사항이었던 것이다.

 

이두박근, 삼두박근 같은 힘줄은 주로 연애'를 할 때나 사용될 뿐이지 정의의 문제'와는 무관한 근육'이다. 행동하는 양심'은 두근두근'에서 나온다. 염통에서 나온다는 말이다. 염통이 쫄깃쫄깃해야지, 변두리 회 센터 수족관 속 개불처럼 흐물흐물하거나 이명박 각하처럼 꾀죄죄하면 생산할 수 없는 것이 바로 행동하는 양심이다. 이처럼 힘줄'을 너무 단련하면 이두박근'은커녕 이명박근(혜)이 되기 십상이다. 이상적인 < ① 마초' > 는 고독해야 한다. 힘줄과 고독이 6 : 4 정도로 배합되면 좋다. 여기에 염통이 가지고 있는 양심'을 적절하게 사용하면 그보다 섹시할 수 없다.  그런가 하면 < ② 속물' > 은 힘줄은 있는데 고독은 없는 놈이다. 여자와 술을 마실 때마다 외롭다며 술잔을 한입에 터프하게 터는 놈은 진짜 마초가 아니다. 외로움'이란 피동적 결과이고 고독'은 자발적으로 선택'한 결과이다. 속물이란 외롭다는 핑계로 여성이 가지고 있는 모성 본능을 자극하려는 계략일 뿐이다. 이상적인 마초는 여자를 지키려고 하고 찌질한 속물은 여자를 건드리려고만 한다.

 

그런데 이 속물'보다 한발 더 나아가는 부류가 있다. < ③ 꼰대'>남근도 근육이라고, 괄약근도 힘이라고 믿는 무리'이다.  힘줄(力)을 칼(刀)처럼 휘두르는 인간이다. 반면 힘줄도 없고 연어처럼 펄떡이는 염통도 없는 무리는 잉여 인간이 된다. < ④ 잉여' >란 자신이 가지고 있는 결핍을 숨기거나 보상받기 위해서 허세와 뻥으로 망가진다. 나는 아무래도 힘줄도 없고 심장박동도 약한 무리에 속하는 부류인 듯싶다. 사실 내게도  남근과 괄약근'이라는 미약한 근육'이 있었으나 이제는 그나마도 쓸모가 없게 되었다. 부실한 괄약근은 치질'을 낳았다. 대장항문과 의사 선생'은 늘 다음과 같은 처방을 내리고는 했다. " 치질이란 게 그렇습니다. 허허, 너무 오래 양반다리'를 하고 앉아 있지 마세요 ! 의자에 오래 앉아 있는 것도 치질을 악화시킵니다. 아참, 그리고 오래 서서 있으면 치질에는 정말 최악이란 사실도 알고 계시죠 ? "

 

앉으나 서나 치질 생각에 고통스러웠던 나는 속으로 쌍욕을 했다. " 씹새끼.... 바닥에 앉아도 안 된다, 의자에 앉아도 안 된다, 서서 있어도 안 된다 ?! 아예, 공중부양을 해라고 해라, 인간이 붕어 새끼냐, 시바 !! " 의사는 내 속도 모르고 열심히 전문 지식을 뽐냈다. " 치질와 요통은 직립을 하게 된 인간에게 생긴 병이지요. 더군다나 치질은 의자에 앉아서 오랫동안 생활을 해야 하는 현대인에게는 운명적인 병입니다. 치질로 인해 괄약근이 망가졌다고 해도 선생님에게는 우람한 남근이 있으니 너무 상심 마십시요. 뭐라고요 ?! 전립선 기능 저하라고요 ? (혼잣말로) 가지가지하는구나. 맙소사. 그래도 시도 때도 없이 케겔 운동을 하는 것을 잊으시면 안 됩니다. 당신 앞에 벌거벗은 여자가 앙탈을 부려도 남근에 힘 주지 마세요. 지금 당장 중요한 것은 괄약근이지 남근이 아니니깐 말이죠. "

 

어찌 되었든 나는 괄약근마저 없는 인간이었다. 류근이 유근( 有筋 : 힘줄 근 ) 이라면, 나는 괄약근도 망가지고 거시기도 부실하니 무근( 無筋 : 힘줄 근 )이면서 동시에 무근( 無根 : 뿌리 근 )이었다. 시바, 뒷방 늙은이처럼 이게 무슨 지랄병인가. 의사 선생이 하는 말을 듣고 있자니 인간에게 꼬리'가 달렸다면 치질로 인한 질병은 사라지지 않았을까 ? 라는 생각을 잠시 하게 되었다. 꼬리 근육을 열심히 움직이면 당연히 괄약근 운동에 도움을 주어서 치핵이 밖으로 튀어나오는 불행은 없었을 것이 아닌가. 마초와 꼰대'는 < 쪽 > 을 중요시한다. 양심은 팔아도 쪽 팔린 건 못 참는 부류가 바로 그들이다. 그들은 쪽 팔리면 하와이 간다. 그들에게 어울리는 사자성어는 < 어두육미 > 다. " 성님, 그래도 생선은 대가리가 맛있지라, 잉. " 힘을 숭배하는 자들이 이구동성으로 외치는 것이 바로 대가리 찬양‘이다.

 

미래 권력에게 줄 서기 위해서 안달이 난 사람들은 대가리'라는 우상을 숭배하는 자들이다.  하지만 신체 가운데 가장 많은 구멍’이 쏠린 부분 또한 대가리라는 점‘을 반드시 기억할 필요가 있다. 파리가 죽은 자의 내부에 제일 먼저 접촉하는 부분이 대가리다,  얼굴이다, 구멍이다.  파리는 눈, 코, 입, 귀’를 통해 내부로 잠입하여 금쪽같은 새끼를 낳는다. 그러므로 대가리는 부패의 위풍당당 개선문‘이다. 그래서 권력이란 지독한 냄새를 풍기는 것이 아닐까 ? 방향을 설정하는 것’은 물고기의 대가리이지만 추동하는 힘‘은 꼬리’에서 나온다. 꼬리를 흔들지 않으면 진전은 없다 ! 언행일치‘란 대가리로 방향을 설정하고 꼬리로는 물살을 힘껏 가르는 행동을 의미한다. 하지만 지식인 대부분은 머리로 방향을 설정하는 능력은 탁월하지만 꼬리를 치는 힘’은 부족하다. 막상 행동해야 될 시기‘가 오면 꼬리를 내린다. 

 

만약에 인간에게 꼬리가 달렸다면 인류는 어떻게 진화되었을까 ?  얼굴은 거짓말을 하지만 꼬리는 거짓말을 하지 못한다. 얼굴은 감정을 숨기기 위해서 고개를 외면하거나 웃는 시늉을 해도, 꼬리는 감정에 충실한 나머지 모든 감정이 들통난다. 무서우면 꼬리를 내리고, 기분이 좋으면 꼬리를 흔들며, 화가 나거나 싸움을 하려고 하면 꼬리를 높이 쳐든다. 그러니깐 꼬리는 감정을 숨길 줄 모르는 < 다혈질 이드‘ > 이고, 얼굴은 참고 참고 또 참는 < 캔디형 초자아’ > 다.   동료 직원에게 성적 호감을 느낀 여직원이 속마음을 숨긴 채 “ 전, 당신에게 전혀 관심이 없어요 ! ” 라며 내숭을 떤다고 치자.  하지만 꼬리는 어떻게 할 것인가.  한여름에 부채질하는 노인의 부채처럼 꼬리’가 한들한들 흔들린다면 ? 

 

혹은 상사가 실없이 던진 농담에 박장대소하는 박 대리의 꼬리‘가 물에 젖은 양말처럼 우울하게 축 늘어져 있다면 ?  전철 안에서 예쁜 여자를 보고 꼬리가 발딱 선다면 ? 꼬리는 감정을 숨기려고 해도 숨길 수 없는 골치 아픈 요물이지만 달리 생각하면 이 솔직한 기관은 꽤나 매력적이다. 인간에게 꼬리가 달린다면 < 내숭의 사회 > 는 사라질 것이다. 누가 적이고 누가 동지인지는 명약관화하니 인류는 보다 솔직한 사회가 되었을 것이 분명하다. < 알고 보니 당신은 나의 배경을 사랑한 것이지 나를 사랑한 것이 아니었소 > 류’의 신파 멜로 드라마‘는 제작되지 않았을 것이다. 꼬리를 보고 사랑을 찾는 사회.  왠지 모르게 꽤 근사하다는 생각을 한다. 언젠가 꼬리/꼴등’도 대우받는 사회가 올까 ?  그랬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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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2013-10-27 17: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아, 쫄깃쫄깃하다..!
간만에 곰곰발님 글 다운 글을 접한 기분.. :)

시도 재밌네요. 맨 처음에 저 '유부남'이란 단어가 뭔가.. 했다능.
유부남,은 제게 참 낯선 단어에요. 하하.

곰곰생각하는발 2013-10-27 21:09   좋아요 0 | URL
심장이 쫄깃쫄깃한 인간이 진짜 인간이지요.
심장이 이명박처럼 흐물흐물한 인간이 가장 제 입장에서는 쫌 그렇습니다.....ㅎㅎㅎㅎㅎ

류근 시 의외로 재미있게 읽협니다. 재미있어요...ㅎㅎㅎㅎㅎㅎ.

나탈야 2013-10-28 09: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이명박근...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http://www.phpschool.com/gnuboard4/bbs/board.php?bo_table=talkbox2&wr_id=874574

곰곰생각하는발 2013-10-28 21:50   좋아요 0 | URL
이명박근.... ㅋㅋㅋ 센스가 좀 돋보이죠 ? ㅎㅎ.
그나저나 따님과 고구마 캐셨던데 남은 것 좀 같이 먹읍시다 ~
내일 모레 모임 때는 게이스럽게 입고 가겠습니다.

엄동 2013-10-28 10: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동감입니다

곰곰발님 글도 찰져서 쪅쪅 달라붙지만

저 류근님 정말 웃기네요

와놔 유부남들이란! ㅋㅋ


곰곰생각하는발 2013-10-28 21:52   좋아요 0 | URL
유근 시집 꽤 웃깁니다.
이 시 말고도 다 흥미쥔쥔합니다.

즐거운 인생 2013-10-29 14: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잘 읽었어요. 곰곰발 님은..님은..님은 언어 유희의 대가!
갑자기 류근의 상처적 체질을 사서 볼까나..싶은 마음이 마구 듭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3-10-29 18:49   좋아요 0 | URL
아프로는 유희왕이라 불러주세요.
류근 시집 말랑말랑하고 좋습니다.
 

 

 

 

 

 

 

 

 

전국노래자랑'은

이 시대의 레지스탕스가 되었나 !

 

 

미스터 방긋에게서 배운 두 번째는 바로 이용복의 노래 < 줄리아 > 였다. 어느 날 이 친구는 노래방에서 줄리아'라는 노래를 10월에 핀 코스모스처럼 한들한들 불렀다. 듣도 보도 못한 노래'였다. 물어보니 어릴 때 자기 아버지가 운전하던 차 안에서 늘 듣던 노래라는 것이다. 이용복 핫 골든 베스트 테이프' 속에 이 노래가 있어서 아버지 차를 탈 때마다 듣는다는 것이다. 친구의 노래 실력은 < 전국노래자랑'> 에 나가면 최소한 인기상'은 따논 당상'이었다. 나는 이 노래를 듣자마자 사랑에 빠졌다. 친구들에게는 라디오헤드나 모비 혹은 레드 핫 칠리 페퍼스의 노래를 즐겨 듣는다고 말은 했으나 사실은 뽕짝의 피가 흐르고 있었던 것이다.  

 

- 줄리엣이 아니라 줄리아 中

 

 

각하 정권 때 유행하던 것이 바로 서바이벌 오디션 프로그램'이었다. 그 시절, 대중으로부터 가장 많은 사랑을 받은 오디션 프로그램은 < 슈퍼스타 K > 였다. 각하는 단 한 명의 우승자가 모든 것을 독차지하는 승자 독식 방식'은 그가 평소에 생각했던 철학과 잘 맞아떨어져서 삼성에서 무료로 제공한 벽걸이 티븨'로 이 방송을 즐겨 보고는 했다. 그에 반해 < 전국노래자랑 > 은 흥미롭지가 않았다.  대상, 최우수상, 우수상 2명, 장려상 2명, 아차상 2명, 인기상 3명 그외 기타 등등'으로 상금을 골고루 나누는 방식을 각하는 체질적으로 혐오했다. 각하는 시대가 바뀌었다고 생각했다. 쌍팔년도처럼 일 잘하는 놈이나 못하는 놈이나  모두 끌어안고 나아가는 방식'은 현대적 경영 방식과 어울리지 않는 방식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는 된 놈'하고 될 놈'만 밀어주는 것이야말로 정글 자본주의'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유일한 방식이라고 판단했다.

 

그래서 열심히 < 슈퍼스타 K > 를 시청했다고 한다. 이 대회 우승자는 모두 승승장구했다. 서인국은 배우로써 크게 성공했고, 가난한 수리공이었던 허각 또한 대중으로부터 많은 사랑을 한몸에 받아서 한때는 허각에 대한 호감도가 각하'보다 높았던 적도 있었다.  여기저기서 " 각하보다 허각 ! " 이라는 우스개'가 통인동 거리에 떠돌았다고 한다. 이 소문을 알음알음 전해 들은 각하는 " 허걱 ! " 하며 쓰린 마음을 달랬다는 비하인드 스토리'가 암암리에 전해지기도 했다. 지금은 아무도 믿을 사람이 없겠지만 그에게도 잘나가던 시절이 있었으니 그가 " 믿습니까 ? " 라고 외치면 사람들은 " 믿습니다 !!!!  " 라는 말하고는 했다. 하지만 지금은 < 믿습니까 ? > 라고 물으면 < 믿습니다 ! > 라는 대답 대신에 < 밉습니다 ! > 가 되어 돌아온다.  꾀죄죄한 몰락이었다.

 

하지만 익명을 요구한 최측근에 의하면 각하는 지금도 " 밉습니다 ! " 를 " 믿습니다 ! " 라고 잘못 알아듣는다고 한다. 낫 놓고 기역 자'를 모를 수는 있다. 그러나 믿음과 미움'을 혼동하면 아니 되옵니다. 퇴임 후 찾아온 각하의 꾀죄죄한 몰락과 함께 < 슈퍼스타 K > 도 옛 명성을 되찾지는 못하고 추락하는 모양새'다. 몰락은 아니지만 우려할 만한 하락이 지속되었다. < 슈퍼스타K > 는 < 전국노래자랑 > 를 벤치마킹해서 현대 감각에 맞는 세련된 디자인으로 새롭게 재탄생한 오락 프로그램'이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두 프로그램은 사뭇 다르다.  슈퍼스타 K 는 < 도전 > 에 방점을 찍고, 전국노래자랑은 < 참가 > 에 방점을 찍는다. 그러니깐 < 슈퍼스타 K > 에는 도전자는 있으나 참가자'는 없다. 같은 이유로 < 전국노래자랑 > 에는 참가자가 있을 뿐 도전자'는 없다.

 

그리고 또 하나. 전국노래자랑 참가자는 꾀꼬리 같은 노래 실력을 자랑하기 위해 무대에 오르지만 슈퍼스타K 도전자들은 노래 실력을 인증 받고 싶기 때문에 무대에 오른다. 엇비슷해 보이지만 서로 다르다. 우리는 슈퍼스타 K에서 도전자들이 “ 도전 ! ” 이라며 손을 들어 외치는 순간, 숨을 죽이고 바라보게 된다. 몰입, 그렇다 ! 이상하게도 도전'이라고 외치고 나서 노래를 하는 순간, 우리는 뚫어지게 그들을 바라볼 수밖에 없다. 그것은 마치 천 원짜리 지폐 다발로 만들어진 십만 원짜리 돈 묶음'을 셀 때의 몰입과 같다. 세는 도중 누가 말이라도 걸어서 방심하면 처음부터 다시 세어야 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반면 우리는 일요일 아침이면 송해 할아버지가 진행하는 전국노래자랑'을 몰입에 가까운 몰아의 상태로 티븨를 시청하지는 않는다.

 

관심을 끌기 위해서 악기들이 빰빰빠 빠라빠빠, 빠빠라빠빠 빠빠' 라며 서영춘 성대모사로 호객행위'를 해도, 시작하기도 전에 텔레비젼 앞에 질펀하게 앉아서 기다리는 열혈 관객은 없다.  똥줄이 타는 것은 순번표를 받아든 대기자들과 그 가족들뿐 ! 볼만한 구경거리가 없어서 이리저리 채널을 돌리다가 문득 얻어걸리게 되거나, 그래도 일요일 아침에는 전국노래자랑'이라며 시청하게 되는 쓸데없는 의리'와 습관적인 노스텔지어'가 작동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전국노래자랑'을 < 읍내 대항전 > 수준이라거나 슈퍼인 척하는 구멍가게'라고 놀리면 송해 할아버지'가 서운해 하신다. 조곤조곤 따지고 들어가면, 이 프로그램에는 의외의 반전이 당신을 기다린다. 하아!  이거 심오하다. 궁금하신가 ? ( 이하 슈퍼스타 K는 슈퍼로, 전국노래자랑은 전국'으로 표기하겠다. 갑자기 급 귀차니즘이 발동. )  

 

핵심은 < 땡의 미학' > 에 있다. 슈퍼와 전국의 공통점은 땡'을 친다는 것이다. 슈퍼가 뽀다구나게  또르르르 슬롯머신 흉내를 내는 디지털 점수판으로 바뀌었어도 결국은  “ 실로폰 손으로 톡 톡 프로그램 ”의  디지털 업그레이드 버전에 지나지 않는다. 땡 없는 오디션을 상상할 수 있겠는가 ?  어쩌면 우리는  마지막까지 억척스럽게 살아남은 1등'을 보기 위해서 < 슈퍼스타K > 를 보는 것이 아니라 누가 떨어졌나를 보기 위해서 채널을 고정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너무 시니컬한 냉소인가 ?  좋다 ! < 슈퍼스타K' > 는 아니라고 치자. 하지만 < 전국노래자랑' > 은 정말 탈락자'를 놀리기 위한 고약한 프로그램이라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다. 어설프게 노래 부르다가 땡, 하는 실로폰 소리'가 들리면 얼마나 즐거웠던가 ! 우리가 전국노래자랑'을 보게 되는 이유는 최후의 1등'을 보기 위해서가 아니라 땡처리 꼴등'을 보기 위해서가 아니었던가?

 

" 약자를 응원해주지는 못할 망정 깔깔거리며 놀리다니, 고약한 프로그램일세 ! " 그러다가 문득 이런 생각이 드는 것이다.  ( 이런 걸 두고 반전이라고 하는 거다. 그래, 그거였어. )  < 슈퍼스타K > 가 승자가 주인공인 뻔한 프로그램이라면 < 전국노래자랑' > 은 패자가 주인공'인 반전이 있는 프로그램이었던 것이다. 그래서 땡처리 탈락자들은 떨어져도 수퍼스타 탈락자처럼 찌질하게 울지 않는 것이다.  왜 ?  진짜 주연 배우'는 그들이니깐 !  그렇다, 진짜 주인공은 그들이었다. 오히려 쟈니 리의 < 뜨거운 안녕 > 을 불러서 우승을 차지한 ' 김영화 ( 목포 양포리, 자영업 36 ) 씨는 주인공이 아니라 엑스트라'에 불과했다. 주인공인 줄 알았는데 가짜였고, 진짜는 어설픈 시늉을 흉내 낸 땡처리'였던 것이다.

 

의외의 반전이다. 유주얼서스팩트'에 나오는 찌질한 겁쟁이 절름발이 용의자처럼,  전국노래자랑 땡처리 탈락자'는 절뚝거리며 무대에서 내려오는 순간 느닷없이 정면을 응시하며 알 듯 모를 듯한 미소를 지으며 패션모델처럼 우아하게 걷는다. 아, 아아아아아. 그렇다. 전국노래자랑'은 수많은 루저'를 위해서 존재하는 빛나는 프로그램이었던 것이다.  지하실 십오 촉 알전구 밑에서 등사기로 각하 퇴진 구호가 박힌 찌라시를 만드는 지하조직이었던 셈이다. 1등만 알아주는 더러운 세상'에게 딴지를 걸기 위해서 꼴등도 주인공이 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프로그램이었던 것이다. 아, 이 깊은 뜻. 곰삭은 웅숭깊은 맛 ! 샤방샤방한 노래방 전투.  총칼 대신 노래'로 전복을 꾀하는 아마츄어 땡처리 딴따라들 ! 가는 길에 영광 있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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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rgettable. 2013-10-25 16: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훈훈하다! 곰곰발님은 이시대 우리 루저들을 위한 홍길동 같은 분이세요! ㅋㅋ

오늘도 무릎을 딱 치고 한수 배워갑니다.
하루에 님 페이퍼 하나씩만 읽어도 똑똑해지는 기분ㅋㅋ

곰곰생각하는발 2013-10-25 17:00   좋아요 0 | URL
앞으로 루저 대변인으로 열심히 대변하겠습니다.
윤창중에게 대변인이란 이런 것이다. 알려주고 싶네요...
창중 선생님이 여자 엉덩이를 어루만질 때 저는
대중의 마음을 어루만지는 대변인이 되겠습니다.

saint236 2013-10-25 16: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믿습니다라는 말대신 밉습니다...대박...ㅎㅎ

곰곰생각하는발 2013-10-25 16:59   좋아요 0 | URL
믿습니다 멘트 좀 센스 있었죠 ? 헤헤..

나탈야 2013-10-25 17: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간만의 따뜻한 포스팅이군요.
냉소적 시선도 좋지만, 무언가에 대한 따뜻한 시선도 무척 중요합니다.
앞으로 더욱 기대하겠습니다.

-는 저랑 어울리지 않는 댓글이구여.

저의 궁금증이나 해결해 주세요.
송해할아버지 은퇴하시면 전국노래자랑이 과연 살아남을 수 있을까여?

(궁금)

곰곰생각하는발 2013-10-25 17:05   좋아요 0 | URL
송해 할아버지 은퇴하시면 오히려 네거티브 전략으로 가면 성공할 수 있습니다.
왜 JTBC가 욕 먹는 강용석 끌어들여서 성공했듯이
송해 할아버지 대신 윤창중'을 사회자로 쓰면 의외로 성공할 듯합니다.
앞으로는 창중 선생님은 손으로 펜을 잡고나 엉덩이를 잡을 수 없으니 마이크나 잡아야죠..
별수 있겠습까..

마이크 잡는 맛도 꽤 훌륭한 그립감 아니겠습니까....

엄동 2013-10-26 10: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일등만 기억하는 퍽퍽한 세상에서
여전히 사람냄새를 풍기며 맛깔나는 즐거움을 주는
전국노래자랑'은 우리집 큰어른도 참 좋아하시는 프로그램이죠

이를 "땡의미학"으로 훈훈하게 풀어주신
곰곰발님의 글을 보니

추운날 온장고 속의 호빵을 집어들었을때 처럼
땃땃해지네요. 맴이

곰곰생각하는발 2013-10-26 13:24   좋아요 0 | URL
송해 할아버지 뭐..... 평생 직장 얻은 셈이죠....
야외로케 이게 쉬운 건 아닐 텐데...
왜 주부들의 로망이 송해'라고 하잖아요.
정년 지나도 꼬박꼬박 돈 벌어오지,
거의 집에 안 들어오지,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노이에자이트 2013-10-27 13: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제 70년대 노래는 장르 불문하고 트로트 취급 받는 시대죠.이용복도 별명이 한국의 레이 찰스일 정도로 팝송을 잘 불렀는데...포크 계열 가수였고요.<줄리아>도 트로트가 아닌데...
곰발 님도 이용복 노래 좋아하나요?

곰곰생각하는발 2013-10-27 21:12   좋아요 0 | URL
아, 이용복의 줄리아'가 뽕짝은 아니군요. 가만 들어보니 하긴 뽕짝은 아니네요.
흔히 흘러간 노래하면 무조건 뽕짝 하니 그리 생각한 모양이에요.
사실 전 이용복 잘 모릅니다. 아니 거의 모릅니다.
친구가 노래방에서 불러서 이 노래만 기억합니다....

수다맨 2013-10-27 18: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주부들의 로망이 송해라는 댓글에서 크게 웃었네요^^
어제 경향신문에 실린 기사를 보았는데 지상파 3사의 아이돌 뮤직프로그램 시청률을 모두 합쳐도 전국노래자랑보다 낮다고 하더군요. 곰곰발님 말씀처럼 다른 프로그램에서는 1위가 누가 될 거냐가 궁금한데, 전국노래자라은 누가 땡을 맞을 것이냐가 제일 궁금하지요. 패자의 존재를 이만큼 상큼하게 다루는 프로그램도 드문 것 같습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3-10-27 21:11   좋아요 0 | URL
저도 주부륻의 로망이 송해라는 말 듣고 한참 웃었어요....
그런데 맍는 소리 같긴 해요. 주부들이 정년퇴임한 남편이 집에 하루종일 있으면 그게
엄청난 스트레스가 된다고 하더라고요...
차라리 날마다 등산을 다니면 더 좋다고....
송해 할아버지는 팔순이 되어도 정년퇴임 안 하시고 밖에 돌아다니시면서
돈을 버시니 좋을 것 같긴 합니다...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