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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 따위 엿이나 먹어라
마루야마 겐지 지음, 김난주 옮김 / 바다출판사 / 2013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지상의 방 한 칸‘이 이토록 간절할 때’는 크리스마스 때‘가 아닌가 싶다. 김애란 단편 < 성탄특선 >에서 연인은 기분 좋게 술 한 잔 하고, 벌거벗은 몸으로 서로 엉키려고 하는 순간, 방이 없다 ! 엄기영 앵커’가 “ 참, 어처구니없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 라는 통속적 멘트를 날리기도 전‘에, 이미 모텔 간판’은 불이 꺼진 지 오래이다. 대한민국 연인들은 모두 벌거벗은 채 전투 중이다. 이때‘가 바로 < 정기 大방출 > 이 아니라 < 정액 大방출 > 이 시작되는 기간'이다. 정액들의 엑소더스다. 모두, 하고 있습니까? 모두 탈출 하셨습니까 ? 소설 속 연인‘은 모두 다 하고 있을 때 하지 못하는 커플이다. 열 군데 넘게 돌아다닌 모텔 방은 이미 벌거벗은 어처구니들로 가득 찼고, 호텔은 지나치게 비싸며 여인숙'은 정액을 고급스럽게 대방출하기에는 너무 왁자지껄하다. 김애란은 이번 소설집에서 < 자기만의 방 > 을 이야기한다. 사랑스럽고, 편안하며, 방음 잘 되어서, 신나게 응, 응, 응, 아흥'을 당당하게 샤우팅으로 내지를 수 있는 그런 단단한 방'이 필요하다고.....
- 소설집 < 침이 고인다 > , 우우 하지 맙시다. 와와 합시다 中
여인숙과 비디오방.
호텔에서도 뒹굴어 보았다, 모텔에서도 뒹굴어 보았다, 유스호스텔에서도 뒹굴어 보았다, 여관에서도 뒹굴어 보았고 여인숙에서도 뒹굴어 보았다. 숙박업소 명칭은 좋은 매트리스'와 나쁜 매트리스'가 만든다. 숙박비가 비쌀수록 매트리스 속 스프링 복원력은 뛰어났다. 반면 숙박비가 저렴한 곳은 매트리스가 늙은 여자의 마른 젖가슴처럼 움푹 파여 있었다. 그것을 제외하고는 별다른 불편은 없었다. 어차피, 눈만 붙이면 될 것 아닌가 ! 성공한 자는 호텔에서 머물 것이고, 실패한 자는 여인숙에서 쪽잠을 잘 것이다. 잠을 자야 한다는 간결한 목적으로 보자면 호텔이나 여인숙이나 도 긴 개 긴'이다. 문득 < 성공 > 과 < 실패 > 에 대한 사전적 정의'가 궁금해졌다. 형설시공사에서 나온 " 깻잎 오소리 입말 사전 " 을 찾아보았다. 이 사전'은 헌책방에서 우연히 발견했는데 사전이 꽤나 재미있어서 자주 들여다본다. 이 사전'에 의하면 성공과 실패'에 대한 정의는 다음과 같다.
성공(成功) [ 명사 ] 여인숙→여관→유스호스텔→모텔→호텔
실패(失敗) [ 명사 ] 호텔→모텔→유스호스텔→여관→여인숙
- 깻잎 오소리 입말 사전, 소율 著
무슨 뜻인가 한참 생각했다. 그리고는 아, 했다. 풍찬노숙 끝에 돈을 벌어서 나중에는 호텔'에서 뒹굴며 아침이 되면 조식을 먹고 당당하게 나오는 것이 성공이고, 실패는 처음에는 으리으리한 7성급 호텔에서 뒹굴다가 끝에 가서는 돈이 없어서 여인숙에 머무는 인생 말로'를 뜻했다. 성공과 실패'에 대한 뜻풀이'를 이런 식으로 할 줄은 꿈에도 몰랐다. 보통 뜻풀이사전(들)'은 " 목적하는 바를 이룸 " 이라거나 " 일을 잘못하여 뜻한 대로 되지 아니하거나 그르침 " 이라고 하는데 오소리 사전'은 달랐다. 태진아 노래방 기기 성우'였다면 저자인 소율'에게 " 어디서 쫌, 놀아보셨군요 !!! " 라고 외쳤을 것이다. 숙박업체에서 꽤나 뒹군 경험이 아니고서는 나올 수 없는 뜻풀이'었다. 나는 소율에게서 강한 동료애'를 느꼈다. 그나 나나 모두 색기 있는 풍각쟁이'였다.
참고로 오소리 입말 사전에서는 < 허풍선이 > 를 " 여인숙에 머물면서 주위사람들에게는 호텔에 머물고 있다고 말하는 자 " 이고, < 구두쇠 > 는 " 호텔 생활을 하면서 주위사람들에게는 여관에 머물고 있다며 앓는 소리'를 하는 사람 " 이라고 적혀 있다. 아, 했다. 사전'을 읽다가 감동한 적은 이 사전이 유일했다. 이래저래 < 여인숙 > 이라는 단어는 바닥 인생'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낱말'이다. 하지만 나는 여인숙이란 단어가 서정적 감수성'을 간직하고 있어서 좋다. " 여인 - " 이라는 어감이 주는 느낌과 " - 숙 " 이라는 여자 이름의 통속적 보편성'이 묘하게 어우러져서 아름다웠다. 그래서 그럴까 ? 시인은 호텔, 모텔, 여관'이라는 낱말보다는 여인숙'이라는 단어를 시어로 자주 사용한다. 여인숙은 복고적 향수를 자극한다. 나는 여인숙에서 많이 뒹굴었다.
※ 한때, 나는 침대가 " 삐걱 " 하는 소리를 1분에 3000번이나 낸 적도 있었다. 엄청난 스피드'를 자랑하고는 했다. 지금 이 자리를 빌려 당시 내가 머물던 객실 옆에 투숙했던 이'에게 사과의 말을 전한다. 하지만 지금은 늙어서 삐걱거리는 소리가 스무 번 정도 나면 많이 나는 축에 속한다. 당신도 늙어봐라, 시바.
사랑하는 여자와 함께라면 탄력을 잃은 매트리스 스프링'은 문제가 되지 않았다. 삐걱거리는 침대 소리'는 오히려 우리를 흥분시킬 뿐이었다. 땀이 등골을 타고 또르르 내려와 엉덩이 골에 고일 때, 아... 좋았다. 그뿐이었다. 그 시절에는 집'보다는 방'이 좋았다. 숨어 있기 좋은 방 말이다. 내가 그 여자를 처음 만난 곳도 비디오방'이었다. 당시 나는 서울역 근처 비디오방'에서 아르바이트를 했었다. 그녀는 손님이었고 나는 종업원이었다. 그녀가 내게 처음 던진 말은 " 고무인간의 최후란 영화 있나요 ? " 였다. 일 년 후, 우리는 비디오방에서 뒹굴었다. < 비디오방 > 에 대한 뜻풀이는 다음과 같다.
비디오-방 video 房 [ 명사 ] : 혼자 가야 몰입이 잘 된다. 둘이 가면 영화는 안 보고 빤스와 브라자'만 서로 만지작거리다가 나오기 일쑤다. 그러니까 비디오방은 혼자 가면 몰입이 잘 되고, 둘이 가면 산만해지는 장소'다. 비디오방은 본디 고독한 장소다.
관련어휘
비슷한말 ㅣ 달방
반대말 ㅣ 여인숙
- 깻잎 오소리 입말 사전, 소율 著
그렇다, 혼자 가면 몰입이 잘 되지만 둘이 가면 산만해지는 곳이 바로 비디오방'이다. 반면 여인숙은 혼자 가면 산만해지고 둘이 가면 몰입이 잘 되는 곳이다. 나는 속초 여인숙 달방'에서 홀로 1년을 살았다. 그때 깨달았다. 멀리서 보면 희극이지만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듯이, 둘이 머물면 행복하지만 혼자 머물면 불행해지는 곳이 달방'이란 사실을 ! 어떤 이'는 이 글을 읽고 투덜댈 것이다. 마루야마 겐지의 < 인생 따위 엿이나 먹어라 > 에 대한 리뷰는커녕 온종일 숙박업소 유람기'에 대한 이야기만 하니 화딱지가 날 만하다. 하지만 노여워 마라. 화가가 바람을 그리기 위해서는 바람에 흔들리는 꽃을 그려야 하듯이, 나는 이 책을 이야기하기 위해서 숙박업소와 비디오방'에 대한 이야기'를 한 것이다.
마루야마 겐지는 말한다. 짐승으로 태어났으나 인간으로 죽기 위해서는 고독해야 된다고 말이다. 고독한 인간만이 참된 삶을 살게 된다고. 그래야 가와이 간지'라고. 방 네 개에 파우더 룸이 딸린 58평짜리 집을 탐하지 마라. 3평짜리 비디오방이면 족하다. 외로움은 타자를 향한 그리움이지만 고독이란 자기 자신을 향한 어떤 몰입이다. 마루야마 겐지'가 하고 싶은 말일 것이다. 칭찬이란 플로베르의 만연체처럼 길게 늘어지면 추해지는 법이고, 헤밍웨이의 건조체처럼 간단명료하면 깔끔한 법이다. 이제부터 < 인생 따위 엿이나 먹어라 > 에 대한 리뷰를 작성하겠다.
이 책, 좋다 !
덧.
이 글을 읽고 책을 살 결심을 했다면 반드시 thanks to 를 눌러라. 나에게 100원 떨어진다. 내가 한 달에 땡스투'로 벌어들이는 돈이, 놀라지 마시라 ! 자그만치 한 달 수입이 평균 1000원'이다. 1000만 원이 아니다. 말 그대로 천 원이다. 어마어마하다, 시바. < 덧 > 을 붙이지 않았다면 멋진 리뷰가 되었을 텐데 덧대서 구질구질한 문장이 되었다고 ? 이 리뷰에 thanks to가 몇 개나 달리나 두 눈 부릅뜨고 지켜보겠다. 나... 원래 그런 놈이다. 나란 남잔 쪼잔한 남자. 나만 그런 게 아니다. 남자란 다 그런 존재다. 히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