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티븐 킹 원작을 바탕으로 한 영화 베스트 10.
10. 초인 지대 ( 1983, 데이빗 크로넨버그 ) , 데드 존
09. 미래의 묵시록 ( 1994. 믹 가리스. TV시리즈 ) , 스탠드
08. 피의 피에로 ( 1990. 토미 리 월리스 TV시리즈 ) , 잇
07. 미스트 ( 2007. 프랭크 다라본트 )
06. 캐리 ( 1976, 브라이언 드 팔마 )
05. 스탠 바이 미 ( 1986, 로브 라이너 ) http://blog.aladin.co.kr/749915104/6744767
04. 미저리 ( 1990, 로브 라이너 ) http://blog.aladin.co.kr/749915104/6254801
03. 그린 마일 ( 1999, 프랭크 다라본트 ) http://blog.aladin.co.kr/749915104/6467093
02. 샤이닝 ( 1980, 스탠리 큐브릭 )
01. 쇼생크 탈출 ( 1994 , 프랭크 다라본트 )
중학교 때 작가 지망생'인 친구가 있었다. 조용한 아이'였다. 왕따는 아니었으나 스스로 자폐아 코스프레'를 해서 내가 " 레인맨 " 이라고 불렀다. 그 친구는 자신이 쓴 습작을 내게 보여주고는 했다. 카프카 소설을 흉내 낸 단편들이었다. 나는 그 친구가 쓴 습작을 읽어 주는 조건으로 돈가스를 얻어먹을 수 있어서 그리 나쁜 거래는 아니었다. 혓바닥에서 사르르 녹는 고기 맛은 그 친구가 쓴 문장을 압도해서 단편 소설이 눈에 들어올 리 없었다. 그래서 늘 같은 말을 하고는 했다. " 좋아, 하지만 헛점들이 보이는군. 앞으로는 좀더 분발해야 겠어 ! 그런데.... 이거, 이거 있잖아... 음, 다꽝( takuan, 澤庵) 좀 더 달라고 하면 안 되냐 ? " 레인맨은 아무 말 없이 나를 바라보다가 한 마디 했다. " 그건 다꽝이 아니라 피클'이야... " 우리는 분식집을 나와 볕 잘 드는 담벼락에 앉아서 가방에서 아무 책이나 꺼내서 맨 뒷장에 걸린 출간 목록'을 꼼꼼히 체크하고는 했다.
레인맨이 읽은 소설은 X자로 표시했고, 내가 읽은 소설은 O으로 표시했다. X는 O보다 많았다. 당시에 그는 책벌레였고, 나는 영화관 죽돌이'였다. " 졌어 ! " 내기에서 졌기에 티켓은 내가 끊었다. 내가 내기에서 이기기 위해서는 전략이 필요했다. 범우사 출간 목록에 나온 책만 골라서 읽기 시작했다. 고등학교를 졸업했을 때 레인맨은 범우사 세계 문학 전집 목록에 X 표시를 150개 정도 체크했고, 나는 O 표시'를 그보다 많이 했다. 딱 한번 이겼다 ! 그 친구 이름으로 소설이 나온 적이 없는 것을 보면 그는 문학의 꿈을 접고 생활 전선에 뛰어든 모양이다. 내가 소설'을 열심히 읽은 적은 그때가 유일했다. 그 이후로는 소설을 읽지 않았다. 출간 목록을 보며 내기를 할 만한 친구가 없었을 뿐더러 문학에 대한 흥미를 느끼지 못했다. 그리고 결정적인 것은 읽고 나면 곧 잊는다는 사실 때문이었다.
허먼 멜빌의 < 백경 > 을 고통스럽게 읽었지만 내용은 아무 것도 기억이 나지 않았다. 내가 기억하는 것이라고는 흰 고래'가 전부였다. 모비딕'은 흰 고래다, 라는 사실을 알기 위해서 몇 날 며칠을 고생해야 했던가 ? 내게 있어서 소설 따위를 읽는다는 것은 시간 낭비'에 가까웠다. 그래서 문학 작품만 빼고 나머지 분야의 책을 읽기 시작했다. 내 교양은 하늘을 찔렀다 ! 내가 문학 작품을 다시 읽기 시작한 이유는 스티븐 킹 때문이었다. 한때 공포 영화를 섭렵하겠다는 야심찬 계획을 짠 적이 있었다. 그래서 주말이 오면 공포 영화 비디오를 무져놓고 보고는 했다. 비디오 가게에서 영화를 고를 때 선정 기준은 딱히 없었다. 그냥 공포 영화 코너에 가서 일렬로 나열된 테이프 다섯 개를 꺼내서 계산을 하면 끝이었다. 그런 식으로 공포 영화 코너에 진열된 영화를 모두 털면 다른 비디오 가게'를 털었다.
재미있는 공포 영화가 이 할이라면 더럽게 재미없는 공포 영화는 팔 할이었다. 공포 영화를 300편 정도 보다 보니 내가 좋아하는 취향이 보였다. 내 취향을 분석하다 보니 내가 좋아하는 공포 영화 중 상당수가 스티븐 킹 소설을 원작으로 하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되었다. 그래서 그때부터 스티븐 킹 위주로 소설을 읽기 시작했다. 소설이 재미있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알게 되었다. 내 취향은 순문학이 아니라 장르 문학'이었다. 10. < 초인 지대 > 는 데이빗 크로낸버그의 초기 작품인데 그를 숭배한다면 이 영화는 보지 않는 것이 좋다. < 비디오드롬 > 을 생각하고 이 영화를 보았다가는 당혹스러울 테지만 공포 영화를 보는 재미 가운데 하나는 < 조악함 > 이 아니었던가 ? 공포 영화란 기본적으로 메이저 리그가 아닌 마이너 리그'다. 후질수록 그럴 듯하다 ! 그게 공포 영화의 미덕'이다.
09. < 미래의 묵시록 > 과 08. < 피의 피에로 > 는 TV 시리즈이니 접어 두자. 07. < 미스트 > 를 보았을 때 머리에서 나사 하나가 빠진 듯한 격한 감동이 몰려왔다. 기립 박수'라도 치고 싶었으나 사람들은 불만이 가득한 표정으로 어이없다는 듯 투덜대기 시작했다. 결말이 당혹스러웠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이 결말이 좋았다. 스티븐 킹 또한 이 영화의 결말에 대해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프랭크 다라본트'는 확실히 스티븐 킹 소설을 재해석하는 데 있어서 탁월한 재능을 갖춘 감독이라 할 수 있다. 스탠리 큐브릭이 만든 걸작 < 샤이닝 > 에 대해서 남들이 모두 걸작이라며 엄지손가락 세 개를 추켜세울 때에도 그는 엄지손가락을 위가 아닌 아래로 내리꽂았던 킹을 생각하면 의외'다. 그런 그가 직접 영화를 감독한 적이 있다. 그 영화가 바로 < 맥시멈 오버드라이브, 1986' > 이다. 영화는 개판이었다. 그 이후, 다시는 만들지 않았다.
< 미스트 > 를 본 관객들은 공포의 대상은 괴물이라거나 안개라고 말하지만 내가 보기에는 핵심은 괴물도 아니고 안개도 아니다. " 바로, 바로바로바로 인간이다 ! " 라고 내가 말할 줄 알았지 ? 아니다. 인간도 아니다. 그러니깐 이 영화에서 보여준 공포의 주체'는 빨판(영화 속에서는 괴물을 " 빨판 " 이라고 부른다) 도 아니고, 안개도 아니며, 인간'도 아니다. 핵심은 전기, 수도, 가스 따위의 공급 차단'이다. 기술 시스템으로 작동되는 도시 문명 사회'는 역설적으로 불완전한 사회'다. 만약에 문명 도시에 전기 공급이 한 달 간 중단된다면 어떻게 될까 ? 아비규환이 따로 없을 것이다. 당장 물을 퍼올리는 펌프가 멈추게 되면 지하철에 물이 넘치게 된다. 타워 팰리스의 화장실은 어떻게 될까 ? 똥이 둥둥 떠다닐 것이다. 그 아비규환의 세계'를 주제 사마라구는 < 눈 먼 자들의 도시 > 에서 생생하게 묘사한 바'가 있다.
초고층 빌딩은 현대 최첨단 기술의 총합이지만 그 총합의 부피만큼 재난의 사이즈도 거대해진다. 초가집이 불타면 지붕만 타지만 타워가 불타면 모두가 죽는다. 영화 < 미스트 > 는 인간과 괴물에 대한 공포에 앞서 전기와 가스 공급이 차단될 때의 쇼크를 다룬다. 06. < 캐리' > 는 지금 보아도 여전히 걸작이다. 영화 속 분할 화면'은 드 팔마의 전매특허'가 되었다. 이 시기에 만들어진 " 시스터즈 - 캐리 - 드레스 투 킬- 필사의 추적 " 으로 이어지는 초기 필모그래피'는 그가 당대 최고였음을 입증한다. 압도적이다. 프랭크 다라본트와 함께 스티븐 킹 원작을 영화로 가장 잘 다듬는 감독 가운데 한 명이 바로 로브 라이너'이다. 05. < 스탠 바이 미 > 는 군더더기 없는 훌륭한 성장 영화'다. 스탠 바이 미'가 스티븐 킹 소설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영화라는 사실을 알았을 때 깜짝 놀랐던 기억이 난다.
그가 이런 달달한 소설도 쓸 수 있구나 ! 그는 공포 소설을 잘 쓰는 작가가 아니라 그냥 글쓰기 재능이 탁월한 작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 캐리 > 가 영화로 만들어진 이후로 그의 소설은 매해마다 영화화되었다. 그러므로 올해에도 헐리우드에서는 킹의 소설을 영화로 만들고 있을 것이다. 내년에도 영화가 만들어질 것이 분명하다. 경이로운 결과'다. 그리고 이 소설이 포함된 4편의 중편 < 사계 > 라는 작품집을 읽고 나서 다시 한번 놀랐다. 그때부터 킹에 대해 흥미를 가지기 시작했다. 뒤늦게 걸린 발동이었다. 장정일의 말처럼 따분해서 그냥 습작처럼 쓴 작품이 이 정도라면 한국 작가들은 넥타이 공장이나 차려야 한다. 야박하게 말해서 끽 소리 내며 죽어야 한다는 소리이다. 로브 라이너 감독이 만든 04. < 미저리 > 또한 훌륭하다. 캐시 베이츠의 압도적 연기'가 큰 몫을 차지했지만 영화는 전체적으로 짜임새가 탄탄하다.
" 약을 빨면서 글을 쓰는 작가 스토리 " 는 킹 소설에 자주 등장하는 캐릭터'이다. 실제로 킹은 80년대에는 글을 써야 한다는 강박에 사로잡혀서 약을 빨면서 소설을 작성했다. < 쿠조 > 라는 소설은 자신이 쓰고도 한동안 자신이 이 소설을 썼다는 사실을 모를 정도였고, < 런닝맨 > 은 3일 만에 쓰여진 장편 소설'이었다. 한국 작가들이 원고지 2장 분량 가지고 징징거릴 때 킹은 하루에 원고지 200매 분량을 써 재꼈다. < 미저리 > 나 < 샤이닝 > 은 바로 자신의 경험이 투영된 자기반영적 소설이라 할 수 있다. 03. < 그린 마일 > 은 스티븐 킹이 소설 기계'인가를 알려주는 작품이다. 내가 이 소설을 읽다가 놀란 것은 이 소설이 예수 그리스도'를 투영한 작품이기 때문이다. 모비 딕 (moby dick : 거대한 놈'이란 뜻이다) 인 흑인 J.C ( 존 커피 ) 는 Jesus Christ '다. 예수가 타인의 고통 앞에서 눈물 흘리며 기적을 행하듯,
흑인 죄수 또한 교도소 안에서 기적을 행한다. 예수를 교도소 안에 가두어 이야기를 끄집어내는 솜씨는 알래스카에서 냉장고를 팔 솜씨에 버금간다.그의 손을 거치면 평범한 이야기도 판타지가 된다. 대망의 1위는 예상 가능한 결과'다. 01. < 쇼생크 탈출 > 이다. 두 말 하면 잔소리이니 짧게 언급하겠다. 니체가 죽기 전에 포도주 한 잔을 마시며 쏟아냈다던 짧은 감탄사로 끝내겠다. " 아, 좋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