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계 생명체 괴물 영화 베스트 10'

 

 

 

 

10. 우주생명체 블롭 ( 1988, 척 러셀 )

09. 인 투 피치 블랙 ( 2000,

08. 외계인 삐에로 ( 1988, 스티븐 치오도 )

07. 우주의 침입자 ( 1978, 필립 카우프만 )

06. 스타쉽 트루퍼스 ( 1997, 폴 베호벤 )

05. 우주 전쟁 ( 2005, 스티븐 스필버그 )

04. 스타트랙 시리즈

03. 프레데터 시리즈

02. 괴물 ( 1982, 존 카펜터 )

01. 에일리언 ( 1979, 리들리 스코트 )

 

 

 

 

 

 


 

 

한때 " 컬트 영화 " 에 대한 갈망'이 있었다. 컬트'란 특정 영화에 대한 숭배를 뜻하는데 " 이음새 없고 잘빠진 A급 주류에 대한 비주류의 삐딱한 B 서정 무비 " 라 할 수 있다. 숭배 목록에는 주로 공포 영화나 특수 효과가 조악한 괴물 영화들이 이 목록을상당수 채웠다. 대부분의 평론가들이 엄지손가락을 < UP > 이 아닌  < DOWN > 을 향해 찍어눌렀기에 구해 보기도 쉽지 않았다. 그런데 " 구해 보기 힘 " 이 드는 상황'이야말로 컬트族에게는 극복해야 할 지상 과제'처럼 느껴졌다. 쉽게 구해서 볼 수 있다면 그것은 더 이상 컬트'가 아닌 것'이다( 라고 그 당시에는 생각했다 ) 에드워드 우드의 < 외계로부터의 9호 계획 > 이라는 영화를 시네마떼크에서 드디어 보았을 때는 너무 기뻐서 눈물이 앞을 가렸다. 영화 역사상 최악의 영화로 선정된 이 영화는 정말 이보다 더 나쁠 수는 없었다.

SF 영화의 화룡정점은 우주선이나 외계인이 출몰하는 장면일 텐데 영화 속에서 등장한 우주서는, 아...... 꾀죄죄죄죄죄죄죄죄죄죄했다. 테엽 시계 부품처럼 생긴 우주선 위로 끈이 보였다. 줄에 매달린 인형극을 보고 있는 듯했다. 영화 속 우주선은 떠다니는 것이 아니라 매달린 것이다. 여기저기서 박장대소하는 소리가 들렸다. 하지만 이 웃음은 조롱이 아닌 어떤 숭고한 기쁨이었다. 나는 그만  침대에서나 내지를 법한 교성을 질렀다. 끈적끈적한 소리였다. 50년대 헐리우드에서 동시 상영용 영화로 만들어진 외계 괴물 삐 무비'는 대부분 조악했다. 스티븐 맥퀸이 출현한 58년도 영화 < 블롬 > 도 마찬가지'였다. 외계에서 유입된 끈적끈적한 액체가 닥치는 대로 사람들을 먹어치운다는 이야기인데 특수 효과가 어색하다 보니 무섭기는커녕 웃기기만 했다.

우우, 해야 할 때 와와, 했고 와와, 해야 할 때 우우, 하게 만드는 매력이 있는 영화였다. 척 러셀 감독이 만든 10.< 우주 생명체 블롬 > 은 이 엉터리 영화를 그럴 듯하게 만들었다. < 나이트메어 3 > 에서 " 펑크한 감각 " 을 선보인 척 러셀 감독은 < 우주 생명체 블롬 > 에서 정말 끈끈한 게 무엇인지를 제대로 보여준다. 바끄네 비서실장인 김기춘이 초원복집'에서 내뱉은 " 우리가 남이가 ? " 라는 끈끈한 서정 따위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끈끈하다. 역시 내 취향은 이런 쪽이다. 주목해야 될 부분은 각본이다. 낯익은 이름이 보이다. < 쇼생크 탈출 > 을 만든 프랭크 다라본트'다. 그가 작정하 고 만든 B급 취향의 영화 < 미스트 > 이전에 이미 < 우주 생명체 블롬 > 이 있었던 것이다.   09. < 인 투 피치 블랙 >08. < 외계인 삐에로 > 는 보지 않았다. 

07. < 우주의 침입자, 1978 > 는 돈 시겔 감독이 만드 걸작 < 우주의 침입자, 1956 > 를 리메이크한 영화'다. 필립 카우프만'이 만든 영화도 좋지만 원판'이 워낙에 뛰어나서 상대적으로 묻히는 감이 있다. 돈 시겔 이후로 만들어진 우주의 침입자 리메이크'는 모두 불초 소생'이라 할 만하다. 아무리 아버지(오리지날) 을 닮으려고 해서 닮을 수 없다. 원판불변의 법칙'이다. 아벨 페라라 감독이 93년도에 만든 < 바디 에이리언 > 과 2007년도에 만든 < 인베이젼 > 모두 불초라 할 수 있다. 이 영화가 나오기 전까지, 대부분의 영화는 < 적 > 은 모두 외부'에서 왔다. 그래서 이웃들은,내부에 있던 사람들은, 힘을 모아 외부에서 온 괴물'을 물리친다. 하지만 이 영화는 다르다. 적은 외부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내부에 있다. 믿었던 이웃이 바로 신체 강탈자'이다.

 06. < 스타쉽 트루퍼스 > 는 지나치게 과소평가된 영화'다. 그저 그렇고 그런 영화 취급을 했는데 이 영화는 그저 그렇고 그런 영화'가 절대 아니다. 훗날 제대로 된 평가'를 기대해 본다. 이 영화는 로버트 하인라인이 쓴 동명 소설을 바탕으로 만들었는데 당시에는 지나친 폭력성과 군국주의적 이미지 때문에 논란이 있었지만 내가 보기에는 전체주의'에 대한 조롱으로 읽힌다. 이 영화에는 군대'라면 당연히 있어야 할 전략과 전술이 전무하다. 그냥 벌레 같은 적이 쳐들어오면 떼거지로 나가서 우왕좌왕하는 게 전부'다. 폴 베호벤은 목적도 없이 우르르 몰려나가서 처참한 죽음을 맞이하게 되는 트루퍼'들을 통해 정치적 인간'이란 무엇인가, 라는 질문을 던진다. 왜 싸우는가 ? 어떤 신념을 가지고 싸우는가 ? < 스타쉽 트루퍼스 > 과 과소평가된 영화라면

05. < 우주 전쟁 > 은 과대 포장된 영화'다. 21세기 시작되면서 칸느는 집요하게 스티븐 스필버그를 정략적 이해 관계를 위해서 밀어부치는 경향이 있다. 그 노림수가 너무 뻔해서 뻔뻔해 보인다. 이 영화는 좋지도 않고 나쁘지도 않다. 이음새 없는 잘빠진 특촬과 최고의 스탭과 배우가 모여서 만든 영화이니 꾀죄죄죄죄한 에드워드 우드 영화에 비하면 반지르르르르하지만 딱 거기까지'이다. 02. < 괴물 > 은 정말 뛰어난 영화'다. < 에일리언 > 이 1979년도에 만들어진 영화라는 사실을 알게 되면 감동이 배가 되듯이, 이 영화 또한 시대적 핸디캡을 감안하면 놀라운 영화'다. 외계 생명체가 인간의 몸을 숙주로 이용한다는 신체 강탈 서사'를 차용했다. 존 카펜터는 공포 영화계의 소크라테스다. 흥미진진한 볼거리를 만들어냈다.신체는 변형되고 쪼개지며 합쳐진다. 

만약에 당신이 이 영화가 주는 교훈이 무엇이냐며 훈계를 한다면 나 또한 똑같은 방식으로 되돌려줄 수 있다. < 쉰들러 리스트 > 가 당신에게 주는 교훈은 무엇인가 ? 혹은 < 지옥의 묵시록 > 이 당신에게 끼친 영향은 ? 전쟁'은 나쁘다 ?! 어떻게 해서든 교훈을 억지로 끄집어내려는 태도'는 잰 체하는 먹물 근성'에 지나지 않는다. 현실을 날것 그대로 직시하게 만드는 영화는 좋은 영화이지만 현실을 왜곡해서 교훈을 강요하는 영화는 나쁜 영화'다. 내가 스티븐 스필버그 영화를 좋아하지 않는 이유는 지나치게 보수적인 가치로 설교를 하려 하기 때문이다. 01. < 에일리언 > 은 위에서도 언급했듯이 1979년에 만들어졌다는 사실이 기적처럼 보인다. 2013년에 만들어진 SF 영화보다 황홀하다. 여기에는 에이리언을 디자인한 HR.기거'의 공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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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14-01-08 18: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무시받고 핍박받던 토마토 괴수(?)들이 인간들을 습격하는 [토마토 대소동]도 낑겨 주세욧~ (읭?)

전 존 카펜터의 [괴물]도 좋지만 고2 때 재개봉관에서 우연히 보게된 [프린스 오브 다크니스]가 참 눅눅하니 좋더라구요. 25년이 지났고 그 동안 다시 본 적도 없는데 아직까지 장면들이 또렷한 거 보면.. 아, 이 영화는 괴수영화는 아니구낭.. ^^;

곰곰생각하는발 2014-01-08 19:09   좋아요 0 | URL
아마 이 목록은 에일리언'에 한정해서 뽑은 목록 같습니다.
토마토 공격대..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최고였져.
아, 토마토 공격대 다시 보고 싶군요. 엄청 재미있게 보았는데 말이죠....


카펜터 최고작은 아무래도 다크니스' 같습니다. 최고예요..

비로그인 2014-01-09 06:16   좋아요 0 | URL
그러고 보니 인상적인 카펜터 영화 두 편 모두 '다크니스'네요. 프린스 오브 다크니스, 인 더 마우스 오브 다크니스.. :)

수다맨 2014-01-08 22: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외계로부터의 9호 계획 유튜브에 있어서 조금 봤는데 이거 아주 골 때리네요 ㅎㅎ 비행접시 움직이는 거 보고 뿜을 뻔했습니다.

곰곰발님 말씀을 들으니 스타십 트루퍼스도 새롭게 보이네요. 저는 이거 딱 미국애들 입맛에 맞는 영화라 단정했었는데, 다시 생각해 보니 거대한 풍자 같다는 느낌이 듭니다. 이 영화에 나오는 군인들, 메딕도 파이어뱃도 배틀크루져도 없는 마린에 가깝습니다. 그저 전략도, 우수한 무기도 없이 총 하나 들고 떼거지로 몰려다니다가 죽기 십상이죠.

곰곰생각하는발 2014-01-09 03:08   좋아요 0 | URL
와우, 후후후... 아마 9호 계획 풀 무비'로 깔렸을 겁니다. 저작권 해제되었으니 다 볼 수 있어요. 워낙 시나리오가 단순하니 자막 없이도 다 이해 가능합니다. 비행접시 무슨 요강 뚜껑 같죠 ? ㅎㅎㅎㅎㅎㅎ.

스타쉽'은 한때 나치 찬양이라는 비판을 받기도 했죠. 나치즘 찬양이다, 라는 거였는데 존나 웃기죠.
정반대거든요. 아마 폴 베호벤은 벌레처럼 그냥 아무 생각도 없이 우두머리의 조종에 휘둘려서
생각없이 나가서 싸우기나 하는 벌레 같은 무뇌아들에 대한 조롱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고양이라디오 2016-01-30 00: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글 재미있게 잘 읽었습니다^^ 안 본 영화들이 많네요. <에일리언>은 나중에서야 보게 되었는데, 정말 깜짝 놀라게 재밌더군요ㅎ

곰곰생각하는발 2016-01-30 17:11   좋아요 1 | URL
에일리언 보고 나서 제작년도 보면 진짜 깜짝 놀라죠. 이건 지금 만들었다고 해도 전혀 의심을 안 할 겁니다. 정말 잘만든 영화입니다. 반갑슴돠. 고양이 라디오님..

고양이라디오 2016-01-30 22:50   좋아요 0 | URL
네. 저도 그 생각하면서 봤어요. 진짜 지금 개봉해도 옛날 영화라는 생각 전혀 안날꺼 같아요.

곰곰생각하는발 2016-01-31 01:15   좋아요 0 | URL
색깔은 좀 다르지만 테리 길리엄의 << 브라질 >> 이란 영화가 있습니다. 그 영화 보십시오. 에일리언의 작품 완성도에 못지 않는 뛰어난 걸작입니다.

고양이라디오 2016-01-31 13:43   좋아요 0 | URL
좋은 영화추천까지 감사합니다^^
꼭 챙겨보겠습니다ㅎ

yamoo 2016-02-01 12: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1, 3, 4. 5, 6 봤어요~ 이블 데드나 헬 레이저도 엄청난 컬트 영화에 속하는 거 같아요. 에일리언 1, 2는 정말 그 당시 최고였다고 생각합니다. (개인적으로 최고는 79년작 스타원즈 개봉작이라 생각합니다만..) 지금 봐도 넘 재밌다는..ㅎ

곰발 님의 영화평은 언제나 맛깔스럽습니다!

30일 경부터 바빠 지금에야 이 글을 보네요~^^

곰곰생각하는발 2016-02-01 18:26   좋아요 0 | URL
바쁘면 좋죠.. ㅎㅎㅎ. 아, 헬레이져.... 최고봉입져. 최고봉 ~~
헬레져 보고 진짜 저런 얄딱구리한 영화도 있구나 했습니다.. 캬.... 헬레져 다시 보고 싶네요...
 


   

 

스티븐 킹 원작을 바탕으로 한 영화 베스트 10.

 

 

 

 

 

10. 초인 지대 ( 1983, 데이빗 크로넨버그 ) , 데드 존

09. 미래의 묵시록 ( 1994. 믹 가리스. TV시리즈 ) , 스탠드

08. 피의 피에로 ( 1990. 토미 리 월리스 TV시리즈 ) , 잇

07. 미스트 ( 2007. 프랭크 다라본트 )

06. 캐리 ( 1976, 브라이언 드 팔마 )

05. 스탠 바이 미 ( 1986, 로브 라이너 ) http://blog.aladin.co.kr/749915104/6744767

04. 미저리 ( 1990, 로브 라이너 ) http://blog.aladin.co.kr/749915104/6254801

03. 그린 마일 ( 1999, 프랭크 다라본트 ) http://blog.aladin.co.kr/749915104/6467093

02. 샤이닝 ( 1980, 스탠리 큐브릭 )

01. 쇼생크 탈출 ( 1994 , 프랭크 다라본트 )

 

 

 

중학교 때 작가 지망생'인 친구가 있었다. 조용한 아이'였다. 왕따는 아니었으나 스스로 자폐아 코스프레'를 해서 내가 " 레인맨 " 이라고 불렀다. 그 친구는 자신이 쓴 습작을 내게 보여주고는 했다. 카프카 소설을 흉내 낸 단편들이었다. 나는 그 친구가 쓴 습작을 읽어 주는 조건으로 돈가스를 얻어먹을 수 있어서 그리 나쁜 거래는 아니었다. 혓바닥에서 사르르 녹는 고기 맛은 그 친구가 쓴 문장을 압도해서 단편 소설이 눈에 들어올 리 없었다. 그래서 늘 같은 말을 하고는 했다. " 좋아, 하지만 헛점들이 보이는군. 앞으로는 좀더 분발해야 겠어 ! 그런데.... 이거, 이거 있잖아... 음, 다꽝( takuan, 澤庵) 좀 더 달라고 하면 안 되냐 ? " 레인맨은 아무 말 없이 나를 바라보다가 한 마디 했다. " 그건 다꽝이 아니라 피클'이야... "  우리는 분식집을 나와 볕 잘 드는 담벼락에 앉아서 가방에서 아무 책이나 꺼내서 맨 뒷장에 걸린 출간 목록'을 꼼꼼히 체크하고는 했다.

 

레인맨이 읽은 소설은 X자로 표시했고, 내가 읽은 소설은 O으로 표시했다. X는 O보다 많았다. 당시에 그는 책벌레였고, 나는 영화관 죽돌이'였다. " 졌어 ! " 내기에서 졌기에 티켓은 내가 끊었다. 내가 내기에서 이기기 위해서는 전략이 필요했다. 범우사 출간 목록에 나온 책만 골라서 읽기 시작했다. 고등학교를 졸업했을 때 레인맨은 범우사 세계 문학 전집 목록에 X 표시를 150개 정도 체크했고, 나는 O 표시'를 그보다 많이 했다. 딱 한번 이겼다 ! 그 친구 이름으로 소설이 나온 적이 없는 것을 보면 그는 문학의 꿈을 접고 생활 전선에 뛰어든 모양이다. 내가 소설'을 열심히 읽은 적은 그때가 유일했다. 그 이후로는 소설을 읽지 않았다. 출간 목록을 보며 내기를 할 만한 친구가 없었을 뿐더러 문학에 대한 흥미를 느끼지 못했다. 그리고 결정적인 것은 읽고 나면 곧 잊는다는 사실 때문이었다.

 

허먼 멜빌의 < 백경 > 을 고통스럽게 읽었지만 내용은 아무 것도 기억이 나지 않았다. 내가 기억하는 것이라고는 흰 고래'가 전부였다. 모비딕'은 흰 고래다, 라는 사실을 알기 위해서 몇 날 며칠을 고생해야 했던가 ? 내게 있어서 소설 따위를 읽는다는 것은 시간 낭비'에 가까웠다. 그래서 문학 작품만 빼고 나머지 분야의 책을 읽기 시작했다. 내 교양은 하늘을 찔렀다 ! 내가 문학 작품을 다시 읽기 시작한 이유는 스티븐 킹 때문이었다. 한때 공포 영화를 섭렵하겠다는 야심찬 계획을 짠 적이 있었다. 그래서 주말이 오면 공포 영화 비디오를 무져놓고 보고는 했다. 비디오 가게에서 영화를 고를 때 선정 기준은 딱히 없었다. 그냥 공포 영화 코너에 가서 일렬로 나열된 테이프 다섯 개를 꺼내서 계산을 하면 끝이었다. 그런 식으로 공포 영화 코너에 진열된 영화를 모두 털면 다른 비디오 가게'를 털었다.

 

재미있는 공포 영화가 이 할이라면 더럽게 재미없는 공포 영화는 팔 할이었다. 공포 영화를 300편 정도 보다 보니 내가 좋아하는 취향이 보였다. 내 취향을 분석하다 보니 내가 좋아하는 공포 영화 중 상당수가 스티븐 킹 소설을 원작으로 하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되었다. 그래서 그때부터 스티븐 킹 위주로 소설을 읽기 시작했다. 소설이 재미있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알게 되었다. 내 취향은 순문학이 아니라 장르 문학'이었다. 10. < 초인 지대 > 는 데이빗 크로낸버그의 초기 작품인데 그를 숭배한다면 이 영화는 보지 않는 것이 좋다.  < 비디오드롬 > 을 생각하고 이 영화를 보았다가는 당혹스러울 테지만 공포 영화를 보는 재미 가운데 하나는 < 조악함 > 이 아니었던가 ? 공포 영화란 기본적으로 메이저 리그가 아닌 마이너 리그'다. 후질수록 그럴 듯하다 ! 그게 공포 영화의 미덕'이다.

 

09. < 미래의 묵시록 > 08. < 피의 피에로 > 는 TV 시리즈이니 접어 두자. 07. < 미스트 > 를 보았을 때 머리에서 나사 하나가 빠진 듯한 격한 감동이 몰려왔다. 기립 박수'라도 치고 싶었으나 사람들은 불만이 가득한 표정으로 어이없다는 듯 투덜대기 시작했다. 결말이 당혹스러웠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이 결말이 좋았다. 스티븐 킹 또한 이 영화의 결말에 대해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프랭크 다라본트'는 확실히 스티븐 킹 소설을 재해석하는 데 있어서 탁월한 재능을 갖춘 감독이라 할 수 있다. 스탠리 큐브릭이 만든 걸작 < 샤이닝 > 에 대해서 남들이 모두 걸작이라며 엄지손가락 세 개를 추켜세울 때에도 그는 엄지손가락을 위가 아닌 아래로 내리꽂았던 킹을 생각하면 의외'다. 그런 그가 직접 영화를 감독한 적이 있다. 그 영화가 바로 < 맥시멈 오버드라이브, 1986' > 이다. 영화는 개판이었다. 그 이후, 다시는 만들지 않았다.

 

< 미스트 > 를 본 관객들은 공포의 대상은 괴물이라거나 안개라고 말하지만 내가 보기에는 핵심은 괴물도 아니고 안개도 아니다. " 바로, 바로바로바로 인간이다 ! " 라고 내가 말할 줄 알았지 ? 아니다. 인간도 아니다. 그러니깐 이 영화에서 보여준 공포의 주체'는 빨판(영화 속에서는 괴물을 " 빨판 " 이라고 부른다) 도 아니고, 안개도 아니며, 인간'도 아니다. 핵심은 전기, 수도, 가스 따위의 공급 차단'이다. 기술 시스템으로 작동되는 도시 문명 사회'는 역설적으로 불완전한 사회'다. 만약에 문명 도시에 전기 공급이 한 달 간 중단된다면 어떻게 될까 ? 아비규환이 따로 없을 것이다. 당장 물을 퍼올리는 펌프가 멈추게 되면 지하철에 물이 넘치게 된다. 타워 팰리스의 화장실은 어떻게 될까 ? 똥이 둥둥 떠다닐 것이다. 그 아비규환의 세계'를 주제 사마라구는 < 눈 먼 자들의 도시 > 에서 생생하게 묘사한 바'가 있다.

 

초고층 빌딩은 현대 최첨단 기술의 총합이지만 그 총합의 부피만큼 재난의 사이즈도 거대해진다. 초가집이 불타면 지붕만 타지만 타워가 불타면 모두가 죽는다. 영화 < 미스트 > 는 인간과 괴물에 대한 공포에 앞서 전기와 가스 공급이 차단될 때의 쇼크를 다룬다. 06. < 캐리' > 는 지금 보아도 여전히 걸작이다.  영화 속 분할 화면'은 드 팔마의 전매특허'가 되었다. 이 시기에 만들어진  " 시스터즈 - 캐리 - 드레스 투 킬- 필사의 추적 " 으로 이어지는 초기 필모그래피'는 그가 당대 최고였음을 입증한다. 압도적이다. 프랭크 다라본트와 함께 스티븐 킹 원작을 영화로 가장 잘 다듬는 감독 가운데 한 명이 바로 로브 라이너'이다. 05. < 스탠 바이 미 > 는 군더더기 없는 훌륭한 성장 영화'다. 스탠 바이 미'가 스티븐 킹 소설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영화라는 사실을 알았을 때 깜짝 놀랐던 기억이 난다.  

 

그가 이런 달달한 소설도 쓸 수 있구나 ! 그는 공포 소설을 잘 쓰는 작가가 아니라 그냥 글쓰기 재능이 탁월한 작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 캐리 > 가 영화로 만들어진 이후로 그의 소설은 매해마다 영화화되었다. 그러므로 올해에도 헐리우드에서는 킹의 소설을 영화로 만들고 있을 것이다. 내년에도 영화가 만들어질 것이 분명하다. 경이로운 결과'다. 그리고 이 소설이 포함된 4편의 중편 < 사계 > 라는 작품집을 읽고 나서 다시 한번 놀랐다. 그때부터 킹에 대해 흥미를 가지기 시작했다. 뒤늦게 걸린 발동이었다. 장정일의 말처럼 따분해서 그냥 습작처럼 쓴 작품이 이 정도라면 한국 작가들은 넥타이 공장이나 차려야 한다. 야박하게 말해서 끽 소리 내며 죽어야 한다는 소리이다. 로브 라이너 감독이 만든 04. < 미저리  > 또한 훌륭하다. 캐시 베이츠의 압도적 연기'가 큰 몫을 차지했지만 영화는 전체적으로 짜임새가 탄탄하다.

 

" 약을 빨면서 글을 쓰는 작가 스토리 " 는 킹 소설에 자주 등장하는 캐릭터'이다. 실제로 킹은 80년대에는 글을 써야 한다는 강박에 사로잡혀서 약을 빨면서 소설을 작성했다. < 쿠조 > 라는 소설은 자신이 쓰고도 한동안 자신이 이 소설을 썼다는 사실을 모를 정도였고, < 런닝맨 > 은 3일 만에 쓰여진 장편 소설'이었다. 한국 작가들이 원고지 2장 분량 가지고 징징거릴 때 킹은 하루에 원고지 200매 분량을 써 재꼈다. < 미저리 > 나 < 샤이닝 > 은 바로 자신의 경험이 투영된 자기반영적 소설이라 할 수 있다. 03. < 그린 마일 > 은 스티븐 킹이 소설 기계'인가를 알려주는 작품이다. 내가 이 소설을 읽다가 놀란 것은 이 소설이 예수 그리스도'를 투영한 작품이기 때문이다. 모비 딕 (moby dick : 거대한 놈'이란 뜻이다) 인 흑인 J.C ( 존 커피 ) 는 Jesus Christ '다. 예수가 타인의 고통 앞에서 눈물 흘리며 기적을 행하듯,

 

흑인 죄수 또한 교도소 안에서 기적을 행한다. 예수를 교도소 안에 가두어 이야기를 끄집어내는 솜씨는 알래스카에서 냉장고를 팔 솜씨에 버금간다.그의 손을 거치면 평범한 이야기도 판타지가 된다. 대망의 1위는 예상 가능한 결과'다. 01. < 쇼생크 탈출 > 이다. 두 말 하면 잔소리이니 짧게 언급하겠다. 니체가 죽기 전에 포도주 한 잔을 마시며 쏟아냈다던 짧은 감탄사로 끝내겠다. " 아, 좋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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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1-07 11:0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4-01-07 17:41   URL
비밀 댓글입니다.

비로그인 2014-01-07 12: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대박. 넘 재미나서 순식간에 읽었어요..
아, 초인지대도 원작이 스티븐 킹이었구나요~
전 영화 초인지대가 조악하기보다 너무 점잖고 싱거운 인상으로 남아있습니다.
저야 당근 일등은 샤이닝이구요.

스티븐 킹이 큐브릭의 샤이닝을 보고 스타일 면에선 놀랍지만 자기 책의 정수를 제대로 영화에 싣는 데는 실패했다며 엄청 싫어했다죠? 특히 큐브릭이 귀신들린 저택에 관한 이야기들을 지나치게 제거, 축소한 것이 불만이었다네요.

1997년에 스티븐 킹이 직접 각본 쓰고 제작을 맡아서 샤이닝을 다시 만들었는데...
http://movie.naver.com/movie/bi/mi/basic.nhn?code=27523
결과는.. 장르 문학의 대가가 꼭 훌륭한 장르 영화인은 아니었다는.. :)

곰곰생각하는발 2014-01-07 17:59   좋아요 0 | URL
76년 이후로 매년 1편 이상이 영화로 만들어졌어니 최소 한 50편은 넘지 않겠습니까.
킹 원작을 샀다는 말은 돈이 좀 있다는 소리이니 그럴 듯하게 만들었을 것이고...
킹 원작인 영화가 굉장히 많아요.
깜짝 놀라게 됩니다.
사실 샤이닝''' 이거 공포 영화의 눈부신 걸작 아닙니까... 이 영화에 딴지를 걸다니..ㅎㅎㅎㅎㅎ
킹은 영화에는 영 소질이 없어요. 소질이 있으면 신은 불공평한거죠..

수다맨 2014-01-07 12: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언제 봐도 지리는(!) 영화가 쇼생크 탈출이 아닐까 싶어요. 이 영화 OCN으로도 보고, 언젠가 군대에서도 보고, 가끔은 인터넷으로도 보지만 질리지 않으면서, 사람을 지리게(!) 만듭니다 ㅎㅎㅎ

곰곰생각하는발 2014-01-07 18:00   좋아요 0 | URL
저도 수없이 보지만 전혀 질리거나 지루하지 않습니다.
매우 신기한 현상이네요.
오죽했으면 한 편 볼 때마다 다른 관점에서 영화를 보기 시작합니다.

키티 2014-01-07 17: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다크 하프"가 개인적으로는 연출력이 돋보입니다.

좀 재밌게 봤던건 "나이트 플라이어" 도 추춴해보구 싶고...


곰곰생각하는발 2014-01-07 18:01   좋아요 0 | URL
오 ! 맞습니다. 다크 하프'가 안 알려져서 그렇지 요거 영화 좋습니다.
아마 조지 로메로가 만들지 않았나요 ? 그렇게 알고 있는데....
제가 좋아하는 영화입니다.

tumorism 2014-01-07 19: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페루애 님, 죽음보다 무서운 비밀, 맹글러, 캣츠 아이도 재밌게 본 기억이 나네요.
저도 스티븐 킹 팬이라 그의 많은 소설을 읽어 봤고 영화화되는 것도 아무리 졸작이라도 다 보려하죠...

곰곰생각하는발 2014-01-07 20:06   좋아요 0 | URL
투모리즈님 ! 반가워요. 요즘 어찌 지내시나요. 뭐, 평소와 다름 없이 지내시겠지만... ㅎㅎㅎㅎㅎ.
킹 영화는 최소한 다 기본은 하더라고요...
올해도 킹 영화가 나오겠지요. 계산해 보니 1976년 이후로 매해 킹 소설이 영화화되었습니다.
올해도 아마 4편인가 만들어진다고 하더라고요.

전 요즘 잔뜩 기대하는 게 바로 샤이닝 2'입니다... 왜 레드럼, 레드럼.. 외치던 꼬마 대니가 어른이된 이야기라고 하네요.. 잔뜩 기대 !!!!

보슬비 2014-01-07 22: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저도 미스트 책으로 읽을때도 재미있다 생각했는데, 영화 엔딩 정말 마음에 들었어요. 약간 B급이라 예상보다 주목을 받지 못해 안타까웠지만, 저도 영화 정말 재미있게 봤답니다.^^

'샤이닝'은 최근에 다시 읽었는데 영화, 드라마, 책 다 좋았어요. 스티븐킹이 원작과 조금 달라진 영화보다 원작쪽에 충실했던 드라마를 더 마음에 들었다고 하는데, 각자 개성들이 있어서 전 다 좋았던것 같아요.

암튼.. 요즘 '언더 더 돔'도 드라마로 찍고 있는것 같은데, 나중에 기회가 되면 한번 볼예정이예요.

그나저나 저 10편중에 저는 4편만 책으로 읽어보았네요. 스탠드와 잇은 책 분량이 장난 아닌지라 마음의 준비를 하고 읽어야할것 같아요.^^

곰곰생각하는발 2014-01-08 03:17   좋아요 0 | URL
아마.... 미스트가 스케레톤 크루'에 있ㅇㅆ죠 ? 원작에서 안개'는 슈퍼마켓 안에 있는 것보다 차라리 밖에 나가는 게안전하다는 내용이잖ㅇ요. 나가는 걸로 끝나는데 영화는 학 바꾸었어요. 그런데 킹이 무지 좋아하더군ㅇ.
평상시 같으면 싫어해쓸 텐데 말이죠. 저도 스탠드는아직 안 읽고 이쓰니다. 잇은 꽤 재미있어ㅛ.

덧글을 좀 길게 달아야 하는데 자판 쓰기에 문제가 있어서 여기까지마 씁니다..

tumorism 2014-01-07 23: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 그럭저럭 잘 지냅니다. 샤이닝의 후속작, Doctor Sleep의 프랑스 출간에 맞춰 킹이 파리에 갔을 때, 오스카 와일드 비석에 키스하고 짐 모리슨을 보러 갈 거라고 한 얘기가 기억나네요. 이 무렵 데이빗 크로넨버그는 한 인터뷰에서 큐브릭은 공포의 실체를 모른다면서 영화, 샤이닝을 비판했었죠..(킹은 크로넨버그의 말에 좋아했겠어요. 킹이 가장 싫어하는 영화 중 하나잖아요.) 아무튼 소설이나 영화나 Doctor Sleep 기대됩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4-01-08 03:13   좋아요 1 | URL
크로넨버그마저 비판했군요. ㅎㅎㅎㅎㅎㅎㅎㅎ 얌생이 ~ ㅎㅎㅎㅎㅎㅎㅎ.
샤이닝'은 자전적 요소가 강하잖아요. 약에 중독되서 코피를 무진자 쏟았다고 하더라고요.
그리고 쿠조 같은 경우는 자기가 이 작품을 섰다는 것도 모르고....
그런데도 죽음에 가까운 글쓰기를 하고 있는 겁니다. 이게 샤이닝에서는 보여요.
글쓰기의 고통... 이런 게.. 공포 이런 게...
그런데 샤이닝은 좀 큐브릭스러게 갔죠...ㅎㅎㅎㅎㅎ 너무 예술적으로 잘빠져잖아요...
싫어할 만..... 저도 닥터슬립 엄청 기대하고 있습니다. 번역 작업 중이라고 하던데 아직 아 나오고 이싸 봅니다.

2014-01-08 01:3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4-01-08 03:16   URL
비밀 댓글입니다.

양손잡이 2014-02-05 05: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뒤늦게 블로그 역주행 중입니다. 글이 너무 재밌어요!
영상을 보니 <그것>을 읽을 때 공포가 되살아나는군요.
감사히 잘 읽겠습니다.
그런데, 닉네임이 너무 긴데 뭐라고 불러야 하나요.
설마, 그대로?

곰곰생각하는발 2014-02-05 12:22   좋아요 0 | URL
네에, 전 그냥 곰발' 이라거나 곰곰발' 이라고 하시면 됩니다.
사람들이 대부분 곰곰발'이라고 하더라고요.
그것 읽으셨군요 ?좋죠 ? ㅎㅎㅎㅎㅎ 킹의 걸작들은 대부분 7,80년대 작품들 같아요.
이때가 최고였죠...

고양이라디오 2022-03-31 16: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음 스티븐 킹의 영화나 소설을 고르고 있습니다. 곰발님 포스팅을 참고할 수 있어 좋네요ㅎ

곰발님이 공포영화를 통해 스티븐 킹 소설로 오시게 됐군요ㅎ <캐리>를 보고 싶은데 구하기가 어렵더라고요ㅠ <미저리>는 전체 줄거리를 알고 있어서 안 볼려고 했는데 <스탠 바이 미>의 로브 라이너 감독 영화라니 보고 싶네요.

저도 언젠가 스티븐 킹 영화 top10을 뽑아봐야겠네요. 좋은 글 감사합니다^^
 

 

아가사 크리스티'가 의도했던 바는 아니겠지만 소설은 공교롭게도 철학적 질문에 대한 답처럼 보인다. 데카르트가 "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 " 라고 주장했다면, 라캉은 " 타자가 나를 보고 있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 " 라고 주장한다. Alibi란 결국 존재 증명이다. < 나 > 라는 존재를 증명할 수 있는 것은 나의 진술이 아니라 타자의 진술에 의해서이다. 예를 들어 무인도에 고립된 로빈슨 크루소'는 존재하지 않는 사람이다. 그는 사회로부터 사라진 사람이거나, 실종된 사람, 잊혀진 사람, 죽은 사람이다. 왜냐하면 그를 본 사람이 아무도 없기 때문이다. 이처럼 그가 nothing에서 thing이 되기 위해서는 누군가에 의해 발견되어야만 가능한다. 타자가 그를 발견하는 순간 그는 살아서 돌아온 사람이 된다. 늑대인간, 설인도 마찬가지다. 그들은 누군가에 의해 발견되기 전까지는 이 세상에 없는 존재들'이다.

- http://blog.aladin.co.kr/749915104/6291705, 오리엔트 특급 살인 사건, 12명의 크레타 사람들 中

 


 

 

 

 

 

 

잘 표현된 살인'

 

 

 

 

 

< 스타워즈 > 시리즈는 한두 편 보다가 접었다. 내 취향은 아니다. 현존하는 국가 가운데 역사가 가장 짧은 나라에 속하는 미국이 < 스타워즈 > 를 통해 아스트랄的 창세기'를 기록한다는 것이 웃겼기 때문이다. < 할로윈 >이나 < 13일 밤... > 시리즈도 몇 편 보다가 접었다. 하지만 < 나이트메어 > 시리즈'는 모두 챙겨 보았다. 그렇다, 나는 나이트메어 열혈팬'이었다. 이 영화 속에 나오는 창의적인 죽음 앞에서 나는 오금이 저렸고, 사지가 절단되는 죽음 앞에서 낄낄거렸다. 시리즈 캐릭터'에 쉽게 등을 돌리던 내가 왜 이 영화 속에 나오는 프레디 크루거'에게는 흥미를 가졌을까 ? 이 글은 내가 왜 프레디 크루거'라는 살인마를 사랑하게 되었나, 에 대한 고해성사'다. 일단 이 캐릭터는 꿈속에서만 나타난다. 그러니깐 꿈속에서만 살인'이 일어나는 것이다. 알리바이'는 alius ( 다른 ) + ibi ( 거기에 ) 를 합친 것으로 " 다른 + 장소에 " 라는 뜻이다.

그러니깐 용의자가 살인이 일어난 장소'에 없었다는 사실을 증명하는 것이 알리바이'다. 현장부재증명/現場不在證明'을 위해서는 타소존재증명/ 他所存在證明'을 해야 한다. 쉽게 설명하자면 " 살인이 일어난 장소A에 내가 없었음/부재'를 증명하기 위해서는  그 시간에 내가 다른 장소에 있었음/존재'를 증명 " 하면 된다.  살인을 목격한 사람들은 모두 프레디의 현장부재증명'을 증언할 수 있다. 목격자들은 피해자가 몽유병 환자처럼 혼자서 어슬렁거리다가 죽음을 맞이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이 원칙을 적용하면 프레디 크루거는 언제나 무죄'다. 왜냐하면 프레디 크루거는 " 이곳에 없는 남자 " 이기 때문이다. 바로 이 지점에서 실존'에 대한 철학적 질문을 던질 수 있다. < 나의 실존 > 은 누가 증명하는가 ? < 나 > 인가 ?!  아니다, 나의 실존을 증명할 수 있는 이'는 오로지 타인의 진술에 의해서만 가능하다.

내가 살인 현장 A에 없었다는 사실을 증명하기 위해서는 목격자(타인)의 진술이 필요하다. < 이곳 (살인현장) > 에 없거나 < 저곳 >에 있었다는 것을 증명해 줄 타인이 필요한 것이다. 그것이 바로 실존이다. 그러므로 < 나 > 는 오롯이 타인의 응시에 의해서만 실존을 증명할 수 있다. 무인도에서 태어나 죽을 때까지 그곳을 벗어나지 않은 사람'은 이 지구상에서는 존재하지 않는 헛것'이다. 왜냐하면 그는 " 타자의 응시 " 에 노출된 적이 단 한번도 없기 때문이다. 그는 無 다. 영화 < 나이트메어 > 에서 " 프레디 " 는 이곳'에는 없고 저곳'에는 있는 캐릭터'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완벽한 알리바이'를 가진 존재'이다. 여기서 다른 장소( alius 다른 + ibi 이곳 )는 곧 이승 밖의 세계'이다. 그는 이승이 아닌 저승'에 있는 존재'다. 그가 살인을 할 때마다 눈을 반짝거리며 호탕하게 웃는 이유는 성정이 지랄같기 때문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순결하기 때문에 그렇다.

그에게는 죄의식이 없기에 죄책감'이 따르지 않는다. 그는 본성'에 가깝다. 우리가 이 영화에서 눈여겨보아야 할 대목은 프레디 크루거'를 상징하는 특징(들)이다. 그것은 불과 철'이다. 얼굴에 드리운 화상흔'은 그가 불속에서 태어나고 불속에서 죽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칼을 장착한 쇠장갑'은 중절모와 함께 그의 상징이 되었다. 결국 프레디 크루거는 불과 철이라는 원소가 결합된 존재라 할 수 있다. 바로 이 지점에서 프레디 크루거는 대장간의 신 헤파이스토스'와 연결된다. 호메로스에 따르면 헤파이스토스는 제우스와 헤라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이다. 그는 올림푸스 12신 가운데 한 명이기는 하지만 올림푸스 신 가운데 가장 볼품없었고 왜소했으며 절름발이'였다. 그는 추(醜) 를 대표하는 신'이었다. 헤파이스토스를 프레디 크루거와 동일선상에 놓고 본다면 영화 < 나이트 메어 > 는 못생겼다는 이유로 어머니인 헤라로부터 발길질을 당해 불구가 된 추(醜)의 복수라 할 만하다.

그는 매끈하게 잘빠진 이승'에 딴지를 걸기 시작한다. 캐니(CANNY)한 이승에 대한 언캐니의 역습'이다. 그런 관점에서 보면 영화는 상당히 재미있다. 나는 항상 살인마 프레디'를 응원했다. 잘빠진 이승은 재미가 없었고, 캐니한 사회 또한 이음매 없는 평화로운 세상이어서 똥침을 날리고 싶었다. 그래서 나는 프레디를 통해 대리만족을 느꼈다. 그는 맞춤형 살인'을 창시한 캐릭터'라 할 수 있다. 천식을 앓고 있는 사람은 몸속 공기를 모두 흡입해서 호흡 곤란으로 죽이고, 마약을 하는 자에게는 헤로인을 과다 투여해서 죽인다. 어디 그뿐인가 ? 폭주족을 상대할 때는 오토바이 몸체가 되어서 죽음의 질주를 함께 한다. 잘 표현된 살인 앞에서 나는 오금이 저렸다. 잘난것들과 엄친아'가 모든 사랑을 독차지하는 이승에서 한 번쯤은 추한 것이 지랄을 하는 것에 대해 눈감아 줄 필요'가 있다.  " 잘생긴 것들아 ! 너희들도 한 번 된통 당해봐라 !!! 예쁘면 모든 게 다 용서되냐 ? 신발들아 ! 췌.... "

< 나이트메어 > 는 영화 < 링 > 과 묘하게 닮은 구석이 있다. 잠을 뜻하는 < 수면 睡眠 > 에서 " 眠 " 은 잠을 잔다는 뜻도 있지만 본다는 뜻도 있다. 그러니깐 < 나이트메어 > 에서 십대 청소년들이 잠을 잔다는 것은 다른 것을 " 본다 " 는 의미이기도 하다. 바로 이 지점에서 두 영화는 일맥상통하는  구석이 있다. 영화 < 링 > 에서 혼령이 깃든 비디오 테이프를 통해 목격하는 것이 이승 너머의 것이었듯, 영화 < 나이트메어 >에서 잠이라는 통로를 통해 목격하는 것 또한 이승 너머의 것'이었다. 악몽은 일종의 모니터링'이다. 그들은 모두 억울하게 죽은 자가 꿈이라는 소재로 만들어진 스크린(모니터)를 통해서 죽음'을 재현한 연극을 감상하고 있는 것이다. 이 죽음'은 전염성이 강한 독성'이다. 전자는 프레디라는 남성과 불이 결합한 공포를 다룬다면, 후자는 사다코라는 여성과 물이 결합한 공포를 다룬다.

바로 이 지점에서 프레디'가 헤파이스토스와 유사하다는 지적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 나이트메어 > 와 < 링 >의 구조적 유사성'을 연결시키면 < 링 > 의 사다코'는 판도라와 유사하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판도라는 헤파이스토스가 물과 흙을 섞어 형상을 만든 인류 최초의 여자'였다. 다들 아는 내용이지만 인류의 재앙은 판도라의 상자에서 비롯된다. 그런데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상자는 사실 상자가 아니라 항아리'였다. 둥그런 항아리 말이다. 엘 그레코가 조각한 한 쌍의 남녀는 에피메테우스와 판도라인데 엘 그레코는 에피메테우스의 손에 둥근 항아리를 들게 해서 판도라를 표현했다. 영화 < 링 > 에 나오는 사다코는 판도라'와 유사한 점이 많다. 우물은 항아리와 유사하고, 헤파이스토스가 물과 흙으로 형상을 빚었다는 부분은 우물 속 검은 물과 진흙과 겹친다. 우물은 판도라의 항아리'이다. 그들은 모두 보면 안 되는 것을 본 것이다.

 

 

 

 

 

 

+

http://blog.aladin.co.kr/749915104/6265610 : 애타게 공포영화를 찾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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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구일턴 2014-01-06 16: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이트메어에서 느끼는 공포감은 잠에서 깨어나지 못하는 공포감이 더 큰거 같아요

곰곰생각하는발 2014-01-06 16:49   좋아요 0 | URL
맞습니다. 오호,,, 심오한 통찰이십니다.

rtour 2014-01-06 17: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 시발것들이 뭡니까. 점잖은 동네에서. 양 손 들고 반성하세욧.

곰곰생각하는발 2014-01-06 17:02   좋아요 0 | URL
여긴 너무 점잔빼는 사람들이 많아서 충격 효과를 넣었으나 즐인 님이 지적하니 고치도록 하겠습니다. 전 팔랑귀이니까요...

비로그인 2014-01-06 17: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우~ 곰곰발님도 멋지고 잘났다해야 좋아하심서.. :)

아, 진짜 나이트메어 시리즈 잼났어요(5편까지. + 뉴나이트메어). 솔직히 13일의 금요일은 상대가 안됐음요. 단, 정사씬들은 13일.. 쪽이 훨씬.. (읭)

곰곰생각하는발 2014-01-06 17:38   좋아요 0 | URL
정사씬은 정말 13일 쪽이 퀄리티가 좋았죠. 13일은 그냥 막 그냥 이래저래 막그냥하는 영화고
나이트메어 보면 은근 문학적입니다.
이 영화를 달리 보면 죽음본능에 대한 해석으로도 보이고....
하여튼 악당 가운데 프레디처럼 강렬했던 캐릭터도 별로 없었었든 합니다.
이 양반이 무조건 강한 것도 아니에요. 가끔 여자들에게 어청 맞기도 하거든요...
하여튼 정말 독ㅌㄱ한 캐릭터입니다...


+

하긴 저도 누가 잘났다고 칭찬하면 좋더라고요..ㅎㅎ

비로그인 2014-01-06 17:50   좋아요 0 | URL
정말요. 이 글 읽으니까 더 와닿습니다.
그러고 보면 그 표정과 제스쳐도 프레디 크루거는 독특한 유머 감각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더 재밌었고.. 반면 제이슨은 정말 무지막지한 싸이코패스 불사 괴수였죠.
1편부터 차근차근 다시 보고 싶어져요.
케이블에서 심야시간대에 방영하기 딱,인데 왜 이런 좋은 시리즈를 잘 안 해주는지..

곰곰생각하는발 2014-01-06 18:34   좋아요 0 | URL
영화 링'은 나이트메어의 속편 같습니다. 그리고 링에서 나오는 사다코'는
판도라와 겹쳐요. 판도라는 인류 최초의 여성인데
바로 헤파이토스가 물과 흙으로 만들었죠.
더군다가 판도라의 상자는 사실은 둥근 항아리'예요.
둥근 우물과 항아리는 겹칩니다. 내용 추가했습니다.


+

에스 클레이븐 감독이 원라 영문학 교수였습니다.
아마 신화적인 것을 꽤나 많이 넣었을 겁니다.

비로그인 2014-01-07 08:11   좋아요 0 | URL
프레디와 사다코 모두 온갖 신화적 텍스트들로 둘러진 사후세계의 마스터들... 그렇네요.
근데 우리 사다코 양은 유머 감각이 없어서 넘 섬뜩해요. ㄷㄷㄷ
[링] 보고 정말 일주일 넘게 후유증을... 저도 영화 통해서 그 비디오를 봤으니까요. (읭?)

그러고 보면 프레디는 원래 자체가 악,인데.. 사다코는 초능력자 어머니를 자살로 몰고간 세상에 대한 원한을 불특정 다수에게 앙갚음하면서 [라센]에선 자기 복제로 세계 정복(?)까지 노리고... 영화 보고선 서점에 가서 몇 시간이고 선 채로 책을 읽었던 기억이 나네요. [루프]를 읽다 말았는데 다시 거슬러 읽자니 옛날 후유증이 도질 것 같아서 영 꺼려지는.. ^^;

(+) 계정 만들고 로그인해서 덧글 달면 답글 달기도 바로바로 연이어 될 줄 알았는데 원 덧글에서 계속 이어가여 하네요. 답글 알림도 없어서 일일이 들러 확인해야 하고... 정말 기능상으론 알라딘 영 꽝인 듯!

곰곰생각하는발 2014-01-07 20:03   좋아요 0 | URL
네이버가 파리바게트'라면 알라딘은 민식이네 도너츠 가게'죠.
네이버 쓰다가 이거 쓰니 엄청 불편합니다.
근데 생각해 보니 네이버 따위를 쓰지 않았다면
알라딘 시스템도 꽤 나름 편리한 거 아니었나 싶습니다.. 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
이젠 전 여기 익숙해졌습니다.

그나저나 링 시리즈 좋아하시는군요 ?
저도 책으로 다 읽었고 영화도 부천 영화제에서 자정부터 시작하는 링 특별 상영이 있어서
고거 보았습니다. 그냥 1편만 좋아요. ㅎㅎㅎㅎ


rtour 2014-01-06 21: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런 깊은 뜻까지 생각 안했지만, 이블 데드1과 나이트메어 1은 내 인생의 공포 영화.

곰곰생각하는발 2014-01-07 04:14   좋아요 0 | URL
이블데드....ㅎㅎㅎㅎㅎ 정말 어마어마한 걸작입니다.
이블데드 왜 그러게 재미있던지...... 이게 80년도인가 그쯤 나온 영화인데 지금 나온 영화보다 재미있습니다. 샘 레이미 확실히 재미있는 감독입니다.

행인 2014-01-07 00: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프레디가 여자들에게 엄청 두들겨 맞는 것이 몇 편인지 알려주시길 바랍니다. 무척 기대되요 ㅋㅋ 스트레스 받는 주말에 볼려고요.

곰곰생각하는발 2014-01-07 04:15   좋아요 0 | URL
사실 저도 이 시리즈가 다 짬뽕이 되어서... 긁적긁적.....

아마 3편인가 그럴 거예요.
 

 

 

 

 

 

잘 표현된' 잡담(들)

 

 

 

1. 변절과 전향

새해가 시작되면 늘 새로운 다짐을 하고 계획을 세운다. 금연, 금주, 책 100권 돌파, 몸무게 10kg 줄이기 등등. 이런 계획은 실현 가능하다. 그런데 실현 불가능한 계획을 세우는 사람이 있다. 매사에 부정적 사고를 가지고 있던 이가 긍정적 사고를 갖자, 라거나 천성이 게으른 자가 부지런한 사람이 되자고 계획이 좋은 예이다.  그것은 금연이나 금주보다 지키기 어려운 약속이다. 왜냐하면 천성'은 변하지 않기 때문이다. 부정적 사고를 가진 이가 긍정적 마인드를 가진 사람으로 개조될 가능성은 희박하다. 검은 개 꼬리 십 년 땅에 묻어도 검은 개 꼬리이듯이 인간 본성'은 바뀌지 않는다. 인생역전 스토리를 다룬 티븨 프로그램에서 내성적인 성격을 가진 사람이 외향적 성격으로 바뀌었다는 소리를 자주 듣는데 사실 변한 것이 아니라 변한 척을 하는 것뿐이다. 내성적인 사람이 외향적인 사람 흉내를 낸 것뿐이다.

그래서 나는 종교 간증 서사'를 믿지 않는다. 깡패 새끼는 죽을 때까지 깡패 새끼로 남는다. 양은이파 조양은은 교도소에서 신을 영접한 후 새사람이 되었다고 간증 집회에서 고백했지만 결국은 칼질하는 본성을 버리지 못하지 않았던가 ? 종종 좌파였던 이가 극우 인사로 활동하는 모습을 보고는 한다. 사람들은 이것을 두고 " 변절 " 이라고 욕할 것이다. 하지만 386 운동권 진영의 화려한 변신은 변절이 아닌 전향'에 가깝다. 변하는 것(變 : 변할 변) 이 아니라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방향을 선회한 것(轉 : 선회할 전)일 뿐이다. 날카로운 매의 눈은 세월이 흘러 썩은 동태 눈깔이 된 것이다. 시력이 떨어졌다고 해서 그 눈동자가 옛날과 다른 눈동자일 가능성은 없지 않은가 ? 인간은 절대 천성을 버리지 못하는 짐승이라는 사실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우스개가 있다. 그것은 동굴에 새겨진 낙서'다.

수천 년 전에도 " 요즘 젊은것들은 싸가지'가 없어 " 라는 낙서가 있다고 하지 않았던가. 젊은것들은 예나 지금이나 싸가지가 없는 것이다. 그리고 100년 후의 젊은이'도 요즘 젊은이처럼 싸가지가 없을 것이다. < 종교 > 의 핵심은 인간'에게서는 가능성을 발견할 수 없기에 신에 의지하는 것이고 언어, 문학, 역사, 철학 따위를 연구하는 < 인문학 > 은 인성 (人) 을 탐구하는 학문이 아니라 인간 속에 숨겨진 수성 ( 獸 ) 을 탐구하는 영역에 가깝다. 결론은 인간에게서는 희망은 없다는 사실이다. 지구 생태계를 위한 가장 좋은 결론은 인간의 멸종이다. 만약에 인간을 위해서 만물이 사라질 것인가, 아니면 만물을 위해서 인간이 사라질 것인가에 대해 고민을 한다면 당신은 뻔뻔한 사람이다. 시간 개념을 인간 중심으로 보지 말고, 우주적 관점에서 보면 인간이 지구에서 사라지는 것이 가장 현명한 대안'이다.

 

2. 편리함과 불편함

스티브 잡스가 검은 쫄티에 청바지'를 입고 서민 코스프레를 선보일 때마다 문득문득 방정희가 떠오르고는 했다. 낮에는 논바닥에서 막걸리를 마시다가 밤에는 아방궁에서 수입 위스키'를 마시던 그 기만의 서민 흉내 말이다. 스티브 잡스는 스티브 잡스일 뿐이지 스티브 잡스가 체 게바라'가 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스마트폰은 세상을 편리하게 만든 발명품이 아니라 불편하지도 않았던 것들을 불편하게 만들어서 나쁜 것으로 인식하게끔 만들었을 뿐이다. 옛날에는 운전자가 지도를 보고 목적지를 찾아가는 것을 당연한 것으로 여겼지만,  GPS가 생기면서 지도를 보고 목적지를 찾아가는 행위'는 마치 어리석거나 불편한 것으로 생각하기에 이르렀다. 이제는 전화를 받지 않으면 전화를 받지 않는다고 화부터 낸다. 이게 스마트폰이 당신에게 선사한 편리한 세상'인가 ? 스마트폰은 일상을 편리하게 만드는 만능 기계'가 아니다.

우리가 이 매혹적인 기계'에게 홀딱 반하는 이유는 기계에게 인간이 속았기 때문이다. 위에서도 지적했다시피 스마트폰은 불편하게 생각하지 않았던 것들을 불편하게 만들어서 상대적으로 반사이득을 취한다.

 

3. 슈트와 양복.

방송에서 손님으로 등장한 어느 출연자가 멋진 양복을 입고 등장하자 고정 출연자1이 그에게 양복이 멋지다며 인삿말을 건냈다. 그러자 평소 옷맵시에 신경을 쓰는 고정 출연자2'가 이런 말을 했다. " 무식하게 양복이 뭡니까 ? 이런 옷은 슈트'라고 해야지... "  그 말에 사람들은 모두 낄낄 웃었다. 돌아가는 꼴을 보니 < 양복 > 이라고 하면 촌스럽고, < 슈트 > 라고 해야 세련된 언어'로 인식되는 듯했다. 보그-병신체'가 어제 오늘의 일'은 아니지만 천박한 취향이 고급으로 둔갑하는 걸 보면 한심하다는 생각이 든다고 쓰면 대뜸 꼰대가 어디서 훈계조로 가르치려고 하느냐고 중뿔나게 나서겠지 ? 그래서 이렇게 말하겠다. " 슈트'라는 말을 사용하는 것을 두고 비판할 생각은 전혀 없다만 자신의 언어 감각을 두둔하기 위해서 < 양복 > 이라고 말한 사람을 무식한 사람 취급하는 꼴은 비판받아야 한다. "

사실 < 우리말을 사랑하자 > 따위'를 말하기 위해서 이 글을 쓰는 것은 아니지만, 말이 나온 김에 솔직하게 고백하자면, 나는 무조건 순우리말이 좋으니 번역투 문장이나 한자로 만들어진 단어를 몰아내자는 주장을 좋아하지 않는다. 언어는 기본적으로 오염되고, 그 오염된 언어가 살아남는다. 현대어는 순혈이 아니라 혼혈'에 가깝다. 한자가 섞이고 일본 문장 구조가 섞이고 외래어가 섞인다. 그게 언어의 운명이다. 한글만이 처한 상황은 아니라는 말이다. 이 세상 모든 언어는 서로 섞인다. 그래서 나는 한글 순혈주의자가 주장하는 것을 그리 좋아하지 않는다. 한글에서 한자를 배격하자는 주장은 지나친 애국주의'가 아닐까 싶다. ( 됐고 ! )

요즘은 양복과 슈트'를 구분하려는 경향이 있다. < 양복 > 은 서울 구경하기 위해 상경한 시골 영감이나 늙다리 아저씨들이 입는 옷처럼 인식되고, < 슈트 > 는 젊거나 빳빳하고 화려한 명함을 소유한 자들이 입는 옷으로 인식되는 경향이 있다. 요즘은 사람들이 부쩍 양복'이라는 말 대신 슈트'라는 말을 자주 사용한다.  방송 출연자가 " 이런 옷은 양복이 아니라 슈트라고 해야지 " 라고 말하는 태도에는 취향의 구별짓기'가 엿보인다. 요약하자면 양복은 乙이고, 슈트는 甲이다. 그러니깐 갑에 대한 속물적 욕망과 허세'가 양복과 슈트를 구별짓기하는 것이다. 사실 옷차림'으로 서열을 정하는 사회는 신분 사회'이다. 옛날에는 옷차림으로 신분을 알 수 있었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그렇다. 옷의 종류뿐만 아니라 색깔로도 구분을 지었다. 페루의 < 치요 > 라는 모자는 그 색깔에 따라서 결혼 유무, 직업, 나이, 지위 따위를 알 수 있었다.

모자 색깔만 가지고도 개인 정보를 대충 알 수 있었으니 걸어다니는 빅 데이터'라고 할 수 있다. 한국인이 양복과 슈트라는 단어로 甲과 乙을 구별하려는 것은 정치적 퇴행을 보여준 것이기도 하다. 슈트에 대한 집착은 영화 < 아이언맨 > 에서 본격적으로 다루어진다. (그 이전에 이미 ~ 맨'으로 끝나는 만화 속 영웅은 모두 슈퍼 슈트를 착용한 인물들이다) 명품 슈트는 이제 강철로 만든 만능 슈트로 변형된다. 이 슈트'만 입으면 어마어마한 힘이 생기는 것이다. 진정한 갑 (甲 : 갑옷 갑) 이다. 그래서 제목 또한 " 아이언맨 " 이 아니었던가. 이번에 새롭게 개봉할 < 로보캅 > 도 양복이 아닌 슈트'에 대한 대중의 욕망을 반영한다. 이 갑옷'에 대한 욕망은 甲이 되고 싶은 乙의 속물 근성에 기반한 속내이지만 다른 식으로 보자면 이제는 평범한 양복을 입고 생활해서는 결코 乙을 벗어날 수 없다는 불안이 반영된 것이라고도 볼 수 있다.

옛날에는 양복과 중산층을 하나로 묶었지만 이제는 양복 = 중산층' 이란 공식은 깨졌다. 그래서 현대인은 슈트를 원하는 것은 아닐까 ? 너무 무리한 해석일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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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14-01-05 21: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1. 엄훠, 읽다보니 막 설득되는.. 암튼 못말린다는.. ^^
음. 아무래도 요즘 곰곰발님은 촉촉한 연애가 필요해요. 망각의 순간이 좀 많아지게~

2. 무지무지 공감! 아, 이 짧고 굵은 글은 퍼가고 싶어요.

3. 아무렇게나 캐주얼하게 입을 수 있는 지금의 일을 사랑해요. (읭)

곰곰생각하는발 2014-01-05 23:15   좋아요 0 | URL
1. 제가 사이비 교주'에 적합한 인물 같습니다. 친구가 나보고 사이비 교주 하면 아주 잘 할 거라고 부추겼는데
내가 내가 " 부추냐 ! 날 부추기게.... " 이렇게 결론이....

2. 스마트 폰이 생기고부터 스마트폰 기능으로 인해 그 기능의 혜택을 못 받는 건 전부 불편하거나 뭔가 손해보는 느낌이 들기 시작했어요..

3. 그럼요. 한여름에 양복 입고 출근하는 거 보면 좀 불쌍합니다.

수다맨 2014-01-06 01: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처음에 슈트라는 말뜻을 잘 몰랐습니다. 요즘은 다들 저 말만 쓰더군요. 내실은 없는데 허세만 늘어나는 시대가 온 것 같습니다.
언어는 오염되어야한다, 아 이 부분은 고종석의 평소 지론을 떠올리게 하네요. 맞습니다. 우리말만 사용하자, 영어/한문 쓰지 말자는 거 또다른 순혈주의입니다. 배타적 민족주의와 다를 게 없습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4-01-06 02:55   좋아요 0 | URL
고종석 글 좋아합니다. ㅎㅎ. 고종석이 좋아서 그의 지론을 좋아한다기보다는 사실 그것은 지극히 당연한 소리이기 때문에 옹호하는 겁니다. 이 세상에는 오염되지 않은 언어는 없어요. 섞여서 보편성을 획득하는 것을 피가 섞인 문장이라며 배타적으로 바라보는 것은 굉장히 위험한 거죠. 사라들은 한글을 한자보다 우수한 문자라고 생각하는데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동등합니다. 사람들은 코카콜라 영어 발음을 정확히 구사하지 못해서 가구가락'이라고 하는 걸 보니 한글에 비해 많이 떨어진다고 생각하는데 .. 이 기준을 잣대로 평가하는 건 정말 무식한 견해죠.
한글은 표음문자이고 한자는 표의문자이기 때문에 발생하게 되는 차이입니다. 표음문자만의 장점이 있고 단점이 있듯이, 표의문자도 장점과 단점이 있는 거 아니겠습니까. 한글 순혈주의자 논리대로라면 갓 쓰고 수염 길러야죠...

요즘 유행하는 쉐프, 파티쉐, 헤어드레서, 슈트... 이런 말을 보면 사대주의적 근성이 보입니다. 종미주의라고나 할까요. 같은 외래어인데 다깡이라고 하면 무지 무식한 금기처럼 말하면서 슈트라는 말은 너무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구조. 이건 종미죠...

만화애니비평 2014-01-06 09: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인기 좋은 대통령이란 결국 술을 좋아해야 합니다. 낮에는 남자와 마시고, 밤에도 남자와 마시는데 대신 옵션으로 여대생이나 혹은 평범한 여자가 필요합니다. 무엇을 위해 부르는 것일까요..ㅎㅎ

곰곰생각하는발 2014-01-06 13:11   좋아요 0 | URL
글세요... 전 여자와 술을 마셔본 적이 없습니다. 여자와 술 한 잔 마시는 게 소원입니다.

프레이야 2014-01-06 11: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 가다마이는 어떻습니까? 저도 언어순혈주의는 좀 거부감이 일더군요. 속물적취향이 고급으로 둔갑하고 불편하지 않았던 것이 스마트하지못한 것으로 돼버리고ᆞᆢ모두 동감입니다. 대세,라는 단어에 그런 조짐이 엿보여서 전 요즘 대세,라는 말도 불편하더군요.

곰곰생각하는발 2014-01-06 13:16   좋아요 0 | URL
가다마이... ㅎㅎㅎㅎㅎ, 이 소리 정말 오랜만에 들어보는군요. 가다마이'라...
갑자기 궁금해서 마이'를 찾아봤더니 일본말이군요. 몰랐씁니다. 영어인 줄 알았습니다...ㅋㅋㅋ

엄동 2014-01-06 13: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슈트"라고 했다가
수트"라며, 슈트"가 뭐냐며
한소리 들은적 있었어요
차암나.
밧데리나 배터리나.

제2.항
"스마트폰은, 불편하지도 않았던 것들을 불편하게 만들어서 나쁜 것으로 인식하게끔 만들었을 뿐이다"
라는 말이 참 와닿네요 공감하고요
제 점수는요.

낄낄낄

곰곰생각하는발 2014-01-06 16:50   좋아요 0 | URL
수트'라고 해야 하나요 ? 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 하여튼....
수트는 뭔가 좀 수공예적 느낌이고 슈트는 뭔가 좀 철공소적 느낌이 나긴 하네요...ㅋㅋㅋㅋㅋㅋㅋ

근데 점수가 낄낄낄'이면 몇 점이란 말입니까.
 
좀비 - 어느 살인자의 이야기
조이스 캐롤 오츠 지음, 공경희 옮김 / 포레 / 2012년 4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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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물과 짐승'을 바라보는 두 가지 시선

 

 

 

『좀비』는 악인의 입장에서 서술된 일지다. 그렇다고 독자에게 악덕을 설득하거나 악행에 대해 변명하지는 않는다. 악을 권하지 않는다는 소리다. 그러니까 보기보다 위험한 책은 아니다. 차라리 『좀비』는 독자로 하여금 잠시 그 악인이 되어보도록 한다. 이건 추천장도 아니고 사용설명서도 아니고 초대 편지도 아니다. 입체영상을 보게 해주는 안경 같은 것이다. 이걸 쓰면 사이코패스의 눈으로 세상과 사람들, 그리고 자기 내면을 관찰할 수 있다. 어쩌면 반대가 맞을지도 모르겠다. 이미 입체로 존재하는 세상이 이 안경을 끼면 평면으로 보인다. 사이코패스의 시선은 매우 폭력적으로 세계를 단순화하니까. 조이스 캐럴 오츠의 짧고 멋 안 부리는 문장 덕에 우리는 너무나 손쉽게 연쇄강간살인범이 될 수 있다. 그냥 미끄럼 타고 내려가듯 악의 심연에 뚝 떨어진다. 악은 이토록 쉽고 간결하고 명쾌한 것이던가, 어리둥절해질 지경이다. 악의 화신이 된다는 건 전혀 어렵지 않더라. 타인들을 입체로 보지 않는 것, 오로지 자기만 들여다보는 것, 제 욕망만을 보는 것. 단순화, 평면화, 내면화, 그리고 단절.

- 박찬욱, < 좀비 > 책 소개 글 中

 

개인적으로 박찬욱 감독을 사적인 자리에서 본 적이 있다. 내가 " 아는 형이 아는 형 " 이 바로 박찬욱'이었다. 내가 아는 형'은 영화 감독이었고, 내가 아는 형이 아는 형 또한 영화 감독'이었다. ( 그 당시에는 영화 감독이 아니라 감독 지망생'이었다. ) 내가 " 아는 형이 아는 형 " 을 다시 만난 것은 아는 형의 병원 장례식장'에서였다. 내가 아는 형은 너무 이른 나이에 화재로 세상을 떠났다. 내가 아는 형'을 화마를 잃어버린 내가 아는 형이 알고 있던 형'은 내가 아는 형의 부재 앞에서 슬퍼했다. 그 이후에도 몇 번 박찬욱을 우연히 만났지만 아는 척을 하지는 않았다. 자격지심이라고 해도 좋다. 나는 원래 사람들에게 아는 척을 안 하기로 유명해서 싸가지없는 놈이란 소릴 자주 듣던 터였다. 그냥 질투와 무관심이 반반 섞인 태도라 생각하면 된다. 하지만 박찬욱 영화'를 싫어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열광적인 팬 가운데 한 명'이다.

< 복수는 나의 것 > 은 내가 한 손에 뽑는 걸작 리스트'다. 봉준호 감독의 < 살인의 추억 > 에서 송강호가 박해일에게 " 밥은 먹고 다니냐 ? " 라는 명대사를 날렸듯이, 송강호는 < 복수는 나의 것 > 에서 신하균의 손과 발을 밧줄로 꽁꽁 묶어서 강 속 깊숙이 끌고간 후 이렇게 말한다. " 내가 너 미워하는 거 아니란 거 알지 ? " 그리고는 물속으로 들어가 칼로 밧줄로 묶인 발목 힘줄을 끊는다. 둘 중 어느 것이 더 좋으냐고 묻는다면 잠시 망설이게 된다. 그냥 둘 다, 좋다 ! 사실 박찬욱은 영화 감독이 되지 않았어도 재주가 많아서 다른 밥벌이로 성공했을 것이다. 그는 글재주가 뛰어나서 글을 써서 먹고 살 수 있는 능력을 갖춘 사람'이다. 솔직히 말해서 박찬욱의 글'은 정성일보다 예리하고 신형철보다 뛰어나다. 신간을 소개할 때 명사의 추천글'만큼 뛰어난 광고 효과는 없기 때문에 대형 출판사에서 신간을 내면 어김없이 유명 인사의 추천글'을 내놓는다.

그런데 추천글을 읽다 보면 책을 읽지 않고 추천사를 쓴 것은 아닐까 하는 의심을 갖게 하는 글이 많다. 그것은 마치 유명인의 이름만 빌린 " 간장 게장 홈쇼핑 " 광고처럼 보인다. (삐에르 바야르의 지적처럼) 책을 읽지 않고도 책에 대해 말할 수 있다 하지만 책을 읽지 않고서 추천사를 남발하면 안 된다. 전자는 읽지 않은 책에 대해 말할 수 있는 요령에 대한 것이지만 후자는 도덕적인 문제에 해당된다. 설령 책을 다 읽고 나서 추천사를 쓴다고 해도 남발하는 것은 좋아보이지 않는다. 요즘 신간에서 가장 흔하게 볼 수 있는 이름이 신형철 평론가'다. 이런 말이 싸가지없게 들리겠지만 문학평론가는 칭찬 일색인 100평 추천글을 써서 돈을 버는 직업이 아니라 긴 호흡으로 문학을 분석하는 직업이다. 100자 이내로 핵심을 찌르는 문장은 카피라이트'에게는 훌륭한 덕목이지만 평론가에게는 독이 된다.

누누이 말하지만 평론가는 100미터 단거리 선수가 아니라 마라톤 선수에 가깝다. 과유불급이라 하지 않았던가 ? 지나친 100자평으로 칭찬 릴레이'를 잇는 것은 재능을 낭비하는 결과를 초래할 뿐이다. 나는 출판사 소개글에 인용된 명사의 추천글'을 거의 믿지 않는데 박찬욱이 < 좀비 > 에 대해 쓴 짧은 추천글'은 무릎을 칠 만큼, 아....  좋았다 ! " 입체영상을 보게 해주는 안경 같은 것이다. 이걸 쓰면 사이코패스의 눈으로 세상과 사람들, 그리고 자기 내면을 관찰할 수 있다. 어쩌면 반대가 맞을지도 모르겠다. 이미 입체로 존재하는 세상이 이 안경을 끼면 평면으로 보인다. 사이코패스의 시선은 매우 폭력적으로 세계를 단순화하니까. " 이 문장은 조이스 캐롤 오츠의 < 좀비 > 를 매우 압축적으로 표현한다. 이 책을 읽은 독자는 박찬욱이 쓴 문장을 읽으며 무릎을 치게 될 것이다. 이처럼 박찬욱은 영화뿐만 아니라 글도 잘 쓰는 팔방미인'이다.

연쇄 살인자의 일기처럼 쓰여진 이 소설을 읽다 보면 문장이 너무 단순해서 조이스 캐롤 오츠가 쓴 것이 맞는가, 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도스토옙스키적 구원의 세계도 없고, 사드적 지옥의 현현도 없다. 망설임도 없고 후회도 없고 죄책감도 없다. 그냥 뾰족한 꼬챙이로 뇌를 쑤신다. 그런데 이 묘사를 조이스 캐롤 오츠는 대수롭지 않게 담담하게 묘사한다. 여기에는 죄의식이 없다. 왜냐 ? 지금 우리가 읽고 있는 것은 범죄자의 시점이지 관찰자의 시선이 아니기 때문이다. 사회적 개입으로 이루어진 해석'이 배제된 채 이루어진 < 날것'> 은 박찬욱이 지적했던 것처럼 매우 단순하다. 이 소설은 역설적이게도 악이라는 욕망을 < 지속 > 시키기 위해서 < 선 > 을 이용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폭로한다. 소설 속 주인공은 자신이 행한 범죄를 감추기 위해서 끊임없이 착한 척'을 한다.

 그러니깐 우리가 일상에서 흔히 접하게 되는 선'은 악'을 은폐하기 위한 위선(僞善)이 되기도 한다는 점을 이 소설은 가르쳐 준다. 주인공은 괴물'이 아니라 짐승 같은 인간이다. 괴물과 짐승은 본질적으로 다르다. 짐승은 위선적이고 괴물은 위악적이다. 짐승 같은 인간은 대부분 자신의 악마적 본성을 숨기기 위해서 선한 척을 하지만, 괴물은 악마적 본성을 숨기기 위해서 적어도 선한 척을 하지는 않는다. 홍상수의 < 생활의 발견 > 이라는 영화에서 서로 각자 다른 인물들은 동일한 대사를 쏟아낸다. 그들은 모두  " 우리 더 이상 괴물은 되지 말자 ! " 고 말한다. 그런데 홍상수는 괴물과 짐승의 차이를 잘 모르는 것 같다. < 괴물 > 이란 생김새가 괴상하게 생긴 것을 의미하고, < 짐승 > 은 야만적인 인간을 비유적으로 뜻하는 단어이다.

그러니깐 "괴물" 이 시각적 편견에 기대어 대상을 관찰한 결과라면, "짐승(같은 인간)" 은 내면적 통찰에 의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무슨 말인고 하니 : 프랑켄슈타인' 박사가 만든 무명씨'를 괴물'이라고 말할 수는 있으나 짐승'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그들은 단지 생김새가 추할 뿐이다. 정작 나쁜 놈은 생김새는 멀쩡한데 내면이 추한 놈'이다.  지킬 박사의 이중적 자아인 하이드 씨'는 짐승이라고 말할 수는 있으나 괴물'이라고 말하면 안 된다.  내가 늘 주장하지만 괴물'은 잃어버린 휴머니티'를 복원하기 위해 나타나는 존재'이다. 얼핏 보기에 괴물은 무시무시한 악당처럼 보이지만 그것은 신과 괴물'이 짜고 친 고스톱'이다. 골목길에서 만난 불량배를 멋지게 소탕해서 여자의 관심을 받는 남자 이야기'는 알고 보면 친구들과 짜고 친 고스톱이 아니었던가. 마찬가지다.  괴물은 불량배 역할을 하는 그 친구 역할이다.

고질라가 열불나서 " 이... 시부랄 놈들아 ! 다 부셔버리겠어 ! " 라거나  용가리가 " 용가리 통뼈 맛 좀 봐라. 인간 사람 새끼들아 ! " 라며 도시 전체를 공포의 소용돌이로 몰고 가지만, 사실 괴물들은 신이 내린 미션'을 수행하기 위해 내려온 액션 배우에 불과하다. 왜냐하면 한번 잃어버린 휴머니티'는 이런 식의 재난 퍼포먼스'가 아닌 이상은 복원하기가 힘들기 때문이다. 고질라, 죠스, 용가리와 쮸쮸, 티라노 공룡'은 눈물을 삼킨 채 위악적 캐릭터를 소화한다. ( 혜성 충돌, 쓰나미, 화재 등도 괴물이라 할 수 있다. 다만 무생물이다. 불춤과 물쇼는 이들의 특기이다. ) 용가리는 꼬리로 63빌딩을 내리치며 눈깔을 부리부리하게 뜨지만 속으로는 슬퍼서 운다.  인간은 이처럼 재난이 몰려오면 그때부터 정신을 차린다. 불이 빌딩을 덮칠 때, 물이 도시를 점령할 때 비로소 가족이라는 가치를 깨닫는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게 인간의 속성이 아니었던가.  카메라가 살아남은 가족끼리 꽉 쥔 손'을 클로우즈업해서 보여주다가 이내 물러나면 폐허의 잔재가  보인다. 이 폐허는 다시 복원될 것이다.  파괴는 괴물이 하지만 건설은 이명박이 할 것이다. 그리고 재난이 끝나면 콘돔은 불타나게 팔릴 것이다. 산부인과 사업도 번창할 것이다. 이처럼 가족을 구원/복원'하는 것은 인간이 아니라 괴물'이다. 명심하도록. 괴물은 악당 캐릭터를 연기하는 마음 여린 액션 배우다. 반면 짐승 같은 인간'은 악을 지속시키기 위해서 선을 행한다. 그러므로 선'은 두 가지 가운데 하나다. 선한 선이거나 선을 가장한 악이거나 !  사실 선은 잘 표현되지 않는다. 어떤 선행이 지나치게 선명하거나 잘 표현된다는 사실은 선이 아니라 위선'일 확률이 높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홍상수의 말은 틀렸다. 괴물 같은 짐승은 짐승 같은 인간'에 비하면 선한 자'다.

그러므로 인간을 파멸시키는 것은 괴물 같은 짐승이 아니라 짐승 같은 인간이다. < 자연 > 의 반대말은 < 인간 > 이지만 < 인간 > 의 반대말은 < 인간 > 이다. 인간을 파괴시키는 것은 오로지 인간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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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레이 2014-01-04 19: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인간을 파괴시키는 것은 오로지 인간이다, 인간의 반댓말을 인간이라는 말 좋네요. 오랜만에 오소리 입말 사전 보는 느낌이에요

곰곰생각하는발 2014-01-04 20:03   좋아요 0 | URL
깻잎 오소리 입말 사전에서 발췌했습니다. 미리 작성해 놓으니 필요할 때마다 긁어다 쓰는데 무지 좋아요.어서 오소리 입말 사전을 완성해야 하는데... 쩝...

까레이 2014-01-04 21: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소리 입말 사전 완성 기대하겠습니당ㅋㅋ 진짜 재밌게 봤어요ㅋㅋ

곰곰생각하는발 2014-01-04 21:46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어서 사전을 완성해야 겠어요.. ㅋㅋㅋㅋ

비로그인 2014-01-05 06: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곰곰발님 내공이 느껴지는 통찰.. 정말요. 인간에게 필요한 것도, 인간을 파괴하는 것도 오직 인간 뿐.

곰곰생각하는발 2014-01-05 13:07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지구를 위해서는 인간만 꺼져주면 되죠. 다른 건 필요 없습니다.
인간이 사라지면 자원 고갈도 없고, 공해도 없고, 각자 알아서들 살아갈 겁니다.
인간만 꺼져주면 됩니다. 그게 진리라고 생각해요.
많은 이들은 인간에게서 구원을 찾지만, 인간이 누굴 구원할 만큼 훌륭한 인자'가 아닙니다.
인간이라는 종은 멸종되어야 함..

비로그인 2014-01-05 13:17   좋아요 0 | URL
읭~ 전 그 정도까진 아니구요~
어찌 보면 노아의 방주 은유가 차선책일 수 있겠다. 그 정도에요.

음. 요즘 곰곰발님 뭔 일 있으셨나 보다.
타르코프스키 작품들을 좋아하시는 분이시라.. 요 말씀은 완전히 믿진 않을래요. :)

곰곰생각하는발 2014-01-05 14:45   좋아요 0 | URL
헤헤... 제가 오버했군요. 요즘 자주 오버해요.. 헤헤헤헤헤...
전 오래부터 인간이 사라져야 지구 생태계가 건강을 찾자 않나 싶습니다.
제가 너무 멀리갔어요.... 헤헤헤..

행인 2014-01-05 14: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곰발님 잘 읽었습니다. 이 책 보고 싶네요. 괴물이 액션연기하면서 속으로 울고 있다는 말이 너무도 인간적이네요 코믹하기도 하고요 ㅋㅋㅋ
요즘 드는 생각인데 싸이코패스는 죄책감이 없는것 같아요. 진정. 저처럼 회창한 일욜 오후 덜 떨어진 인간들은 심지어 guilty pleasure 따위가 있다는데 말이져..먼소리하다 갑니다 .. (터벅터벅)

곰곰생각하는발 2014-01-05 14:46   좋아요 0 | URL
당연히 사이코 패스는 죄책감이 없죠. 최책감 있으면 사이코패스할 자격이 없습니다.
요 책, 분량도 적고 읽기도 편하고 쉽고 그래요....
읽기 딱입니다.....

행인 2014-01-05 14: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분량도 적고 읽기도 편하고 쉽고 ㅋㅋㅋ
고맙습니다. 새해엔 책도 읽겠습니다 아, 알라딘 상 받으신 것 축하드려요 늦었지만 :)

곰곰생각하는발 2014-01-05 15:57   좋아요 0 | URL
ㅎㅎㅎㅎㅎㅎㅎ.... 분량도 적도, 읽기 편하고, 쉽고.. 이 3고'가 소설의 미덕이죠. 대하소설은 아주 질색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