셜록 홈즈 전집 3 (양장) - 바스커빌 가문의 개 셜록 홈즈 시리즈 3
아서 코난 도일 지음, 백영미 옮김, 시드니 파젯 그림 / 황금가지 / 200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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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커 가(街)의 사냥개 :

홈즈의 숙적은 모리어티'가 아니라 코난 도일이었다.

 

 

- 전에 써 두었던 글인데 정리하면서 삭제 버튼을 누르려고 했으나 단지 이 글에 투자한 시간이 아까웠다는 이유로 옮겨본다. 분량이 많은 글을 누가 읽을까 걱정되어서 " 딱 ! " 절반 정도는 삭제하고 몇몇 부분은 글을 첨가해서 올린다. 이 글에 대한 아이디어는 대부분 피에르 바야르의 < 셜록 홈즈가 틀렸다 > 에서 빌렸다. 그나저나 이곳저곳에다 칼질을 했더니 비문이 팔 할'이다.

 

 

 

 

 

 

 

 

 

불우(不遇)가 불후(不朽)가 되는 경우가 있다. 고흐나 포우가 겪었던 불행한 삶이 대표적이다. 사후의 빛나는 명성은 생전에 겪었던 불행과 겹치면서 예술적 아우라를 발산했다. 코난 도일의 유년은 불우했다. 아버지는 알콜중독자여서 평생 정신병원을 들락날락거리다가 생을 마감했고, 어머니는 생활비를 벌기 위해서 하숙을 해야 했다. 하지만 불우한 삶은 여기까지 ! 가난한 살림에 보탬이 될까 하고 쓴 < 주홍색 연구 > 는 대중들로부터 큰 인기를 얻지는 못했지만 나중에 부와 명성을 안겨주는 계기가 되었다.  단편 형식으로 스트랜드 매거진에 연재된 홈즈의 활약은 대중들로부터 폭발적인 인기를 얻는다. 예상치 못한 명성이었다. 그것은 마치 살림살이에 작은 보탬이 되고자 곰 인형에 눈을 붙이는 부업을 하다가 느닷없이 곰돌이 인형의 달인으로 명성을 쌓는 꼴이었다.

 

명탐정 홈즈 캐릭터는 황금알을 낳는 거위'였다.  코난 도일은  명탐정 홈즈로 부와 명성을 얻었지만, 그는 자신이 창조해낸 인물에 대해 싫증을 내기 시작했다. 그는 이 남성 짝패 탐정물'을 스스로 " 초보적 형태의 소설 " 이라고 말했을 만큼 셜록 홈즈를 부끄럽게 생각했다. 그는 홈즈의 명성 때문에 자신이 진정으로 쓰고자 했던 ( 문학적 완성도가 높은 ) 역사 소설이 정당한 대우를 받지 못한다고 생각한 것이다. 자신은 대중작가'가 아니라 세익스피어 같은 대문호'가 되고 싶었던 까닭이다. 그래서 그는 문학적 완성도가 높은 작품에 집중하기 위해서 시리즈인 홈즈'를 죽이기로 한다. 코난 도일의 전기를 쓴 파트릭 아브란에 의하면 그는 소설 속 인물인 홈즈'를 지겨워 한 것이 아니라 혐오하고 경멸했다고 한다.

 

 

호시탐탐 기회를 노린 도일'은 [ 마지막 사건 ] 에서 그를 죽인다. 뭐, 작가가 소설 속 인물을 죽이겠다는 데 막을 자'가 누가 있으랴. 소설가의 지위'란 창조주요, 소설 속 가상 인물인 홈즈는 그 창조주가 만든 피조물'에 지나지 않는 것을....  하지만 일은 ( 더럽게 ) 묘하게 꼬인다. 홈즈가 죽자 영국 사회는 패닉 상태'에 빠져들기 시작했다. 거리 곳곳에 조기를 다는가 하면, 사람들은 가슴에 검은 리본'을 달아 홈즈의 죽음을 애도했다. 그뿐이 아니었다. 사람들은 영국 왕실에 편지를 써서 홈즈의 귀환을 종용했으며, 공공연하게 도일을 혐박하기 시작했다. " 흥. 도일 개새끼 ! 말미잘, 해삼, 멍게,  3일 동안 산소 공급이 안 된, 수족관에 갇혀 지낸 개불 자식 !  부와 명성을 안긴 명탐정 홈즈를 죽이다니, 배은망덕한 놈 ! 응징하리라 ! 쿠아아아앙 " 

 

 

홈즈는 어느새 실존 인물이 되어 있었다. 상황이 이렇게 전개되니 어느 누가 홈즈'를 살리려고 하는 작가가 어디에 있겠는가 ! 어찌 되었든, 코난도일은  초월적 아버지인 슈퍼스타 셜록 홈즈'를 살려야 한다는 협박에 시달렸다. 그렇다고 해서 가만히 지켜볼 코난 도일'이 아니었다. 그는 어떤 식으로든 셜록 홈즈의 명성에 얼룩을 남기고 싶어했다. 홈즈의 얼굴에 침을 뱉고 싶었고, 엉덩이를 까서 채찍을 휘두르고 싶었다. 단, 독자들이 알아차리면 안 된다. " 홈즈에게 얼룩을 남기기 " 혹은 " 홈즈에게 모욕 주기 " 는 아주 은밀한 방식으로 진행되어야 한다. 그래서 그는 홈즈에게 복수를 하기 위해서 < 바스커빌 가(家)의 개 > 를 쓴다.

 

그런데 사실 이 작품은 홈즈의 귀환이 아니라 홈즈가 죽기 전'에 벌어졌던 살인 사건'에 대한 왓슨의 회고 형식을 빌린 형태'였기 때문에 홈즈가 생환한 것은 아니었다. 홈즈는 여전히 모라이티 교수와 함께 낭떨어지에 떨어져 죽은 채였다. 그러니깐 < 바스커빌 가의 개 > 은 죽은 홈즈를 추억하는 왓슨'의 회고록인 셈이다.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성난 민심을 달래기 위한 편법에 지나지 않았다. 도일은 이미 자신의 통제 영역에서 벗어난 초월자 홈즈의 귀환을 원하지 않았다. 그래서 그는 끝까지 홈즈를 살리지 않으려고 했던 것 같다. 왜냐하면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가 역전이 되었기 때문이었다. 도일은 모짜르트가 되고 싶었지 살리에르가 되고 싶지는 않았다. 도일은 이 소설에서 , 아주 이상한 방식으로,  홈즈라는 캐릭터에게 사망선고를 내린다.

 

지금부터 이야기하는 < 바스커빌 가문의 개 > 텍스트'는 지금까지 당신이 알고 있었던 홈즈에 대한 모든 우상화 작업'을 단번에 파괴시킬 만큼 충격적이며, 무시무시하고, 어어어어어어어마어마한 음모로 가득하다. 그것은 홈즈를 바라보는  도일의 질투'가 낳은 아주 이상한 방식으로 꾸며진 복수극이었기 때문이었다. 만약 이 글을 읽는 당신이 진정한 셜록키언이나 홈즈키언이라면 읽기를 멈추어야 한다. 그것이야말로 한때 흠모했던 영웅에 대한 최소한의 배려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 작품을 통해서 홈즈가 얼마나 어리석고, 멍청한 탐정이며, 오류와 자기독선에 빠진 사람인가를 발견하게 된다. 물론, 독자들이 전혀 눈치채지 못하도록 말이다. 가능하냐구 ? 

 

가능하다 !

 

 

 

까막눈'인 나에게 원작 The Hound of the Baskervilles' 는 바스커 마을의 사냥개 / The Hound of  Basker   ville' 로 읽혔다. 그러니깐  Basker를 마을 지명으로,  villes village' 로 읽은 것이다. 이런 오해를 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바스커빌'이라는 성이 그리 흔한 이름이 아니기 때문이다. ( 등장 인물의 이름이 헨리 바스커빌 경'이다. ) 이것은 코난 도일'이 의도적으로 작명한 것이 아닐까 하는 의심을 불러오게 한다. 도일은 왜 그 흔하고 친근한 이름을 버리고 바스커빌'이라는 이름을 주요 모티브'로 삼았을까 ? 이런 고민을 하다가 보면 해답은 의외'로 쉽게 풀린다. Basker'는 가운데 철자 s'가 빠진 Ba ( s ) ker'에 대한 은유가 아닐까 ? 그리고 village street' 로 치환하는 것은 어떤가 ? 이 두 단어는 모두 지명을 지칭하는 단어가 아니었던가. 이 두 단어를 조합하면   Ba ( s ) ker  street '가 나온다.

 

결국 소설 제목 < 바스커빌 家의 개 > 가 숨겨 놓은 암호를 풀면  사람을 연속적으로 죽인 악마 같은 개(hound)가 사는 소굴은 < 베이커 街' > 라는 뜻이 된다. 베이커 거리(스트리트?!) 라면 현재 홈즈의 현 거주지가 아닌가 ! 맙소사 !!!!  코난도일은 영국인들이 셰익스피어 다음으로 숭배하는 홈즈를 사냥개 / hound '로 평가절하하는 것이다. 더군다나 사람을 물어뜯어 죽이는 무시무시한 미친 개'로 말이다. 홈즈, 도일에게 제대로 찍혔다 ! 창조주인 자신을 넘어서 초월자'가 된 홈즈를 바라보는 소설가의 증오가 이 대목에서 빛을 발한다. 이로써 아버지의 자리를 탐한 홈즈'는 도일에게 상징적 살해를 당한다. 탐정과 사냥개의 동일시'는 셜록 홈즈가 등장하는 이야기에서 자주 쓰이는 직유이다. 코난 도일의 첫 번째 홈즈 시리즈인 < 주홍색 연구 > 에서 도일의 분신인 왓슨은 홈즈의 첫인상을 이렇게 묘사한다.

 

 

( 홈즈는 ) 감탄과 중얼거림, 휘파람, 격려와 희망을 외치는 소리가 끊이지 않고 이어졌다. 그는 혈통 좋고 잘 훈련된 개를 생각나게 했다. 수풀을 가로질러 오른쪽으로 달려갔다가 다시 왼쪽으로 달리고, 흔적을 찾으면 흥분해서 줄곧 끙끙대는 개 말이다.

 

 

 

잘난 " 홈즈에게 모욕 주기 " 는 대중이 알아차리지 못하도록 진행되었다.  홈즈'를 사악하고 불길한 식인 개'로 묘사함으로써 홈즈의 명예를 더럽힌 도일은 여기에 그치지 않고 2차 " 홈즈에게 목욕 주기 " 를 시도한다. 이 방식은 1차의 방식'보다 강도가 쎄다 !  이 상징적 거세 행위는 홈즈에게 개새끼'라고 욕하는 것과는 차원을 달리한다. 한마디로 무시무시하다 !!!!!! 우선  이 글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 바스커빌 가문의 개 > 에 대한 대강의 줄거리를 습득해야 된다. 물론, 내가 이 장'에서 사건의 개요'를 자세하게 설명할 수는 있지만, 그렇게 하면 독자는 너무 게을러진다. 그리고 나는 당신의 친절한 금자 씨'가 되고 싶은 생각'이 전혀 없다.  ( 3부를 작성하는 동안 나가서 대강의 줄거리를 읽고 오라 ! ) 

 

 

 ■

 

 

홈즈는 이 살인 사건의 핵심을 " 개'를 살인의 도구로 활용한 자 " 의 소행으로 본다. 그리고 범인으로 곤충학자 잭 스태플턴'을 지목한다. 그런데 잭 스태플턴은 도망치다가 안개 자욱한 늪에 빠져 죽음으로써 자백을 받는 데는 실패한다. " 바스커빌 가문의 개 " 사건은 이렇게 범인의 자백 없이 마무리가 된다. 대신 홈즈가 범인의 자백 대신 추리로 마무리된다. 홈즈의 발화를 빌려서 구술된 사건의 전모'는 전지전능한 힘을 발휘한다. 우리는 홈즈의 추론과 정언'을 거역할 힘도 없을 뿐더러, 그의 논리를 의심한다는 것은 반역을 꾀하는 것과 같다. 그가 하는 말은 곧 진리이므로, 잭 스태플턴'은 " 지옥의 개 " 를 이용해서 바스커빌 가문의 씨'를 말리려고 했던 악마이다. 그런데 셜록홈즈'는 매우 기초적인 수사 방향을 놓쳤다. 돌이킬 수 없는 실수를 한 것이다. 수사의 기본은 이 사건으로 인하여 이득을 보는 사람은 누구이고 손해를 보는 사람은 누구인가'를 따지는 것부터 시작된다. ( 여기서 이득이란 물적, 정신적 차원을 의미한다. )

 

다들 아시다시피, 사건으로 인하여 이득을 보는 사람이 범죄자일 확률은 매우 높다. 왜냐하면 사건 발생으로 인하여 손해를 보는 사람이 의도적으로 계획적인 범죄'를 저지르기란 상상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하지만 홈즈는 이 사실을 무시한다.  홈즈가 범인으로 몰았던, 그래서 늪에 빠져 죽게 만들었던, 잭 스태플턴은 공교롭게도 이 범행으로 인하여 이득을 볼 것이 별로 없는 사람으로 분류된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홈즈는 그를 범인으로 몰아서 죽음으로 내몬다. 자세한 설명은 후에 하겠지만 그는 절대 범인이 아니다 ! 어찌 되었든 홈즈가 사건 종결 선언을 했으므로 사건은 마무리'가 되었지만 범인은 잡는 데는 실패했다. 홈즈는 이 사건에서 치명적인 실수를 범해서 어느 범죄자의 완전 범죄를 도운 꼴이 된다. 이 얼굴 없는 살인마'는 홈즈를 이용해서 자신의 완전 범죄'를 완성시킨 최초의 살인자'이다. 과연, 숨겨진 살인마는 누굴까 ?

 

 

 

 

사건은 종결되었다. 하지만 지금부터 시작이다. 자,  홈즈가 발화하는 텍스트의 권위'를 버리자. 그가 하는 모든 말을 신뢰하지 마라.  이젠 텍스트의 권위에 도전하여 새롭게 사건을 다시 살펴볼 필요가 있다. 우선 수사의 기본적 자세를 떠올려 보자. 이 사건 ( 3명이 죽었다. 찰스 바스커빌 경, 탈옥수 셀든 그리고 잭 스태플턴 ) 그 후를 떠올려 보자. 홈즈가 떠난 바스커빌 대저택의 미래는 어떤 방식으로 전개될까 ? 어마어마한 대저택의 상속자인 젊은 헨리 바스커빌 경은 죽음의 고비를 넘기고 살아 있다. 더군다나 그는 독신'이다. 이 대부호'가 장가를 가지 않았을리는 만무하다. 그렇다면 누구와 결혼을 했을까 ? 텍스트 안에서만 고찰하자면 그 행운의 주인공은  잭 스태플턴의 아내 베릴 스태플턴'이다. 소설은 내내 베릴과 헨리 경의 은밀한 러브 라인'을 지속시킨다. 더군다나 소설에서 베릴은 치명적인 아름다움을 가진 여인으로 묘사한다. 

 

 

 

그녀는 내가 만나본 어느 영국 여성보다 더 가무잡잡한 피부에 새까만 머리, 새까만 눈동자를 가졌다. 그러나 그녀는 키가 훌쩍 컸을 뿐만 아니라 늘씬하고 우아했다. 또 이목구비가 반듯하여 민감한 입매와 아름답고 열정적인 검은 눈동자가 아니라면 차가운 인상을 줄 정도였다. 완벽한 육체와 우아한 드레스 덕분에 그녀는 인적이 드문 황무지에서 마치 기묘한 환영처럼 보였다.

 

 

베릴은 키가 크고, 늘씬하며, 우아하고, 반듯하며, 아름답고, 열정적이며, 완백한 육체를 가져서 마치 기묘한 환영처럼 보인다고 서술되고 있다. ( 사실 베릴은 살인자 스태플턴의 아내'인데 여동생'이라고 사람들을 속인다. ) 위의 인용문은 왓슨과 베릴이 처음 황무지에서 만나는 장면인데,  베릴은 느닷없이 왓슨에게 다음과 같은 경고를 한다.

 

 

 

오빠는 ( 잭 스태플턴, 사실은 자신의 남편 ) 바스커빌관의 주인으로 살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이건 경고다. 베릴이 처음 만난 왓슨에게 잭 스태플턴이 바스커빌 가문의 주인이 되고 싶은 사악한 욕망을 가지고 있다고 폭로한 참뜻은 무엇일까 ?    이것은 베릴의 입을 통해서 이 사건의 범죄자를 폭로한 것이나 다름없다.  더군다나 텍스트의 절반도 되지 않은 상화에서 소설 속 등장 인물은 미리 살인자를 폭로한 것이다.  추리소설은 진짜 범인은 은폐해서 독자들이 범인을 알아차릴 수 없도록 만드는 장르인데 이 작품은 시작부터 베릴의 입을 빌려서 잭 스태플턴이 바스커빌 가문의 재산을 노린다고 고백한다. 있을 수 있는 일인가 ?  마지막에 범인의 이름을 호명하는 것이 이쪽 업계 ( 추리소설 )의 룰임'을 감안한다면, 배릴이 누설한 폭로는 매우 이상한 방식이다. 이것은 마치 영화 식스센스 1/3 지점에서 " 브루스 윌리스는 유령이에요 ! " 라고 속삭이는, 옆 좌석의 재수없는 관객과 같다. 코난 도일은 왜 이런 무모한 발설을 했을까 ?  정답부터 말하자면 잭 스태플턴은 이 사건의 범인이 아니란 사실을 코난 도일은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 여자, 수상하다 ! 재미있는 사실은 왓슨이나 홈즈나 이 여인에 대해서는 전혀 의심을 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왜 홈즈는 이 여자를 신뢰하는 것일까 ?  단도직입적으로 말해서 이 연쇄 살인 사건으로 인해서 최대의 이익을 보는 사람은 바로 베릴 스태플턴'이다. 왜냐하면 자신이 그토록 증오하던 남편은 죽었고 ( 텍스트 안에서는 나타나지 않지만 그럴 것으로 추정되는 ) 헨리 경과의 행복한 결혼 생활이 기다리기 때문이다. 그녀는 이들의 죽음으로 인하여 엄청난 부를 축적하는 것이다. 이 사건에서 살인자의 모습을 정확하게 본 사람은 마부다. 마부는 얼굴 전체를 덮어 변장한 살인자를 유일하게 목격한 인물인데 그가 홈즈에게 설명하는 살인자의 몽타쥬는 다음과 같다.

 

 

한 마흔 살쯤 되어 보였고 나리보다 10센티미터쯤 작은 중간 키였습니다.

 

마부가 묘사하는 범인의 생김새는 무시해도 좋다. 분장한 얼굴이 마흔 정도의 남자라는 것은 역설적으로 범인이 마흔 살이 아니라는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분장이란 기본적으로 상대방을 속이는 행위로 자신의 얼굴이 가지고 있는 정보'를 상대방에게 정반대로 알릴 때 사용하는 기술이다. 남자인 경우 여장을 하고 여자인 경우는 남장을 하거나, 젊은 사람은 노인으로 분장하고 왕은 거지로 분장을 하는 식이다. 그게 바로 분장의 기술'이다. 그러므로 서른 후반에서 마흔 초입으로 보이는 사내'로 분장한 범인을 목격한 마부의 진술과는 정반대의 조건을 갖추고 있는 이가 범인일 가능성이 높다. 그렇기 때문에 " 서른에서 마흔 사리오 보였고 키가 작았으며 글발에 말끔하게 면도를 한 " 스태플턴은 분장한 범인이 아닐 가능성이 높다.  더군다나 키는 숨길 수 없는 결정적 증거이다. 얼굴을 다른 사람처럼 분장을 할 수는 있지만 키를 속일 수는 없기 때문이다. 스태플턴을 작은 키의 소유자라고 한다면 마부가 묘사하는 살인범의 몽타쥬와는 판이하게 다른 것이 아닐까 ? 

 

오히려 마부의 몽타쥬는 베릴과 비슷하다. 위에 인용된 문장을 보라. " 그녀는 키가 훌쩍 컸을 뿐만 아니라 늘씬 " 했다고 하지 않던가 ?  왜 홈즈는 잭 스테플턴과 베릴 스태플턴의 이같은 결정적 차이를 놓쳤을까 ? 결정적 증거였는데 말이다. 마부는 이 정체불명의 사람이 마차에서 내리면서 자신의 이름을 밝혔다고 말했다. 그러자 홈즈와 왓슨은 긴장을 하며 마부를 재촉한다. 그런데 마부의 입에서 나온 말은 기상천외하다

 

 

 

- 사실 그 신사 분은 자기가 탐정이라고 했습죠. 그리고 아무한테도 자기 애기를 하지 말라고 했습니다요.

- 언제 그런 말을 하던가 ?

- 갈 때 그랬습니다요.

- 다른 말은 더 안 했나 ?

- 성함을 말씀해 주셨습니다. 셜록 홈즈라고 하던뎁쇼 ?

 

 

이 부분은 매우 중요하다. 범인은 이미 홈즈가 마부를 찾아와서 자신에 대해 물어볼 것이란 사실을 이미 알고 있었다. 그렇다면 범인 입장에서는 자신의 모습과는 정반대인 모습으로 분장할 필요성을 느꼈을 것이다. 그렇지 않고서는 홈즈가 마부를 찾아와서 이것저것 물어볼 것이란 사실을 뻔히 알면서도 " 생얼 " 로 돌아다닌다는 것은 쉽게 납득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는 자신이 홈즈라고 조롱해서 홈즈롤 도발한다. 그는,  왜 도발했을까 ? 결과적으로 홈즈는 이 이상한 사람의 커밍아웃을 기점으로 호기심을 가진다. 결국 살인자는 홈즈를 불러들인 것이다. 다시 묻자. 왜, 그랬을까 ? 답은 하나다 !  홈즈가 개입되어야지만 자신의 범죄를 완성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홈즈의 개입은 잭 스태플턴에게 있어서 유리할 것이 하나도 없다. (그리고 자신의 죽음으로 그것을 증명해 보이기도 했다) 그러므로 잭 스태플턴은 그 마부가 본 살인자가 아니다.

 

그렇다면 결론은 서서히 하나로 좁혀진다. 그렇다, 범인은 베릴'이다. 그녀가 모든 것을 조작한 것이다. 위에서도 지적했듯이 < 분장의 기술 > 이란 자신이 가지고 있는 정보를 정반대로 알리고자 하는 속임수라면 " 마흔쯤 된 사내 " 의 반대는 " 이십대 여성 " 라는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더군다나 호리호리하고 키가 큰 신체 조건은 베릴의 신체 조건과 유사하다. 이러한 모든 정황을 보면 범인은 그녀다. 그런데 홈즈는 그 사실을 놓친 것이다. 코난도일은 이 작품을 통해서 홈즈의 치명적 실수를 유도했다. 그의 실수는 결국 무고한 사람을 죽음으로 내몰고 악당이 승리하도록 방치했다. 그럼으로써, 그는 셜록홈즈에게 2번의 상징적 살해'를 한 것이었다. 도일은 자신이 창조한 피조물이자 창조주가 되어버린 초월자'를 살해함으로써 홈즈 컴플렉스에서 벗어나고자 했다. 그리고 그는 멋지게 성공했다. 왜냐하면 홈즈가 아무리 명성을 쌓아 보아야, 그는 한갓 죄 없는 사람을 범인으로 몰아서 죽게 만든 실패한 탐정이기 때문이다. 다만 그의 셜록키언들만 모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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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립간 2014-01-29 09: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셜록키언었던 적이 없습니다. 셜록키언이 되어야 할 순간에 스피노자와 같은 생각을 가졌죠. (실재와 완전함에 대해 나는 양자가 동일한 것으로 생각한다.) 왜 현실은 소설과 다른가?

공학에서 행정이라는 단계를 거치면서 효율은 떨어집니다. 추리의 정확성이 90%단계를 7단계만 거치면 정답의 확률이 50% 아래로 내려가죠. 70%의 정확성이라면 2단계만 걸쳐도 50%아래입니다.

저는 아이와 함께 명탐정 코난 만화를 보는데, 사건의 정보로 범인을 찾을 수 없습니다. 단지 작가가 지목한 범인을 찾아내죠.

바스커빌 가문의 개 ; 다시 읽어야겠군요.

마립간 2014-01-29 09:55   좋아요 0 | URL
http://dvd.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6368804084

곰곰생각하는발 2014-01-29 12:06   좋아요 0 | URL
책을 다 읽었다고 셜록키언인가요.. 후후후후...
셜록키언은 정말 집요하게 파고드는 양반들입니다. 홈즈가 무엇을 좋아하고
몇년도에 이런 사건이 있었고.. 그러니깐 홈즈를 실존 인물처럼 느끼고 따르는 사람이
셔록키언이니 저도 셜록키언은 아닙니다. 그저 책을 다 읽은 사람일 뿐.....

홈즈'가 헛점이 많다는 것은 이미 오래 전 일이죠.
설록키언들은 오히려 숨은 그림 찾기처럼 말도 안 되는 추리를 찾아서
그것을 또 공유합니다. 그러면서 즐기시더라고요... ㅎㅎㅎㅎㅎ

이 책과 함께 바야르의 셜록 홈즈가 틀렸다, 도 함께 읽어보세요. 매우 재미있습니다.

요하네스 2014-01-29 19: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이런 글을 분량이 많다고 외면하는것은 독자로서 비도덕적이다.

이전에 발견되지 않은 실존의 다른 단면을 제시 하지 않는 문학은 비도덕적이다라는
(전집 사시는 기념으로) 쿤데라를 좀 패러디해봤습니다.


이 덧글 쓰려는데 사정이 생겨서 이제서야 축하 덧글 쓰는김에 이전글로 돌아와서 본래 목적을 달성해보았소... 페루애 보르헤스. 언젠가 허심탄회하게 긴 편지를 쓸 날을 기다려왔는데요. 다행히 요즘은 정신적 황폐화에서 좀 벗어나서 언어로 생각을 표현하는데 좀 수월해졌으니 정말 조만간 글로 그간 못드린 말씀 전해드리겠소..

구겐하임, 이 단어로 제 정체를 알아차리시다니. 그걸 기억해주시니까 정말 마음이 뿌듯하네요.

곰곰생각하는발 2014-01-29 21:10   좋아요 0 | URL
클레어 님이 글의 진가를 아시는구려. 길게 쓰다 보니 주부와 술부 호응이 전혀 맞지 않아서 고칠까 하다가 에이 귀찮아서 그냥 올렸어요. 이젠 그런 것도 귀찮아 하는 나이인가 봅니다.
좋게 보아주시니 고맙군요. 구겐하임 하면 무조건 클레어 아니겠습니까 ? ㅎㅎㅎㅎ.
다행히 정신적 황폐화에서 벗어나 안정을 찾았다고 하니 다행이구랴.
섬세한 감각의 소유자인 클레어에게는 환경이 바뀐다는 것 또한 스트레스로 작용할 겁니다.
어서 빨리 소식 전해주시구랴.... 기다립니다.

난 당신의 애독자요 !

하인츠 2014-01-29 19: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저 글 정말 좋았어요. 사실 이런 글 계속 써주셨으면 했는데

곰곰생각하는발 2014-01-29 21:11   좋아요 0 | URL
고맙소, 클레어 !

비로그인 2014-01-29 21: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헐,, 이런 비하인드가 있었군요.
워낙 오래전에 읽은 책들이라 가물가물하지만 홈즈랑 모리어티랑 폭포에 빠뜨려 죽여놓고 나중에 다시 부활시킨 단편도 기억나는데 이런 꼼수를... 기회 되면 바스커빌 가의 개 다시 읽어봐야겠습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4-01-29 21:13   좋아요 0 | URL
워낙 유명한 사건이어서 널리 퍼진 이야기입니다.
재미있는 건
뭐 거의 코난 도일을 모르는 영국인은 없었어요.
그런데 이 양반이 인기를 얻다보니 정치에 눈길을 돌려서
두 차례 선거에 나가는데 아주 초라한 득표로 떨어졌다고 하더라고요.
그러니깐 영국인은 코난도일을 존경한 게 아니라 홈즈 자체를 좋아했던 거예요.
이 일화만 보아도 코난 도일이 왜 홈즈를 증오했는 가 알 수 있습니다.
 
내 이웃의 안녕
표명희 지음 / 강 / 201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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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연과 합선 사이,

 

 

 

 

나무는 여름에는 두터운 옷을 껴입고 겨울에는 벌거숭이로 겨우살이 준비를 한다. 나무는 스스로 만들어놓은 폭염과 혹한'을 견딘다. 나는, 아... 극기에 가까운 나무의  삐딱한 " 애오라지 " 를 이해하지 못했다. 봄이 오자, 나는 자주 하늘을 바라보았다. 봄 하늘은 여름 하늘보다 눈부시지는 않았으나 선명하고 부드러우며 촉촉했다. 그리고 여름에는 나무보다는 그늘이 눈에 띄었다. 봄이 하늘을 바라보게 만든다면 가을은 바닥을 자주 보게 만드는 계절이었다. 가을이 만들어 놓은 " 바닥 " 은 봄 하늘과는 달리 건조하며 쉽게 부서지지만 바삭거리는 소리는 뜨거운 불에 딱딱하게 구운, 단맛이 없는 크래커'를 떠올리게 만든다. 봄이 카스테라'라면 가을은 비스킷 맛이다. 그리고 겨울, 비로소 벌거숭이 나무'를 보게 된다. 나무가 가장 아름다울 때는 겨울'이다. 풍요는 즐거움을 주지만 아름다움을 전달하지는 않는다. 반면 결핍은 고통을 주지만 미학을 쟁취한다. 겨울 나무는 결핍'이다.

 

그래서 < 겨울 > 이라는 단어가 < 겨우 > 라는 부사와 닮았다는 점이 마음에 든다.  봄 하늘, 여름 그늘, 가을 바닥, 겨울 나무'다. 표명희 소설집 [ 내 이웃의 안녕 ] 은 1 씨에로, 2 달팽이를 길러야 할 때, 3 쇼핑 좋아하세요 ?, 4 내 이웃의 안녕, 5 바닥, 6 소품, 7 고흐의 침실 순'으로 단편을 배치했는데,  작가가 순서를 의도적으로 배치인지는 모르겠지만 단편 속 배경은 봄, 여름, 가을, 겨울 순으로 되어 있다. 순서 상 첫 번째 단편인 < 씨에로 > 는 " 봄날 꽃구경을 나선 단체 관광객이 유난히 많은(p.12) " 계절이 배경인 것으로 보아 4,5월 즈음'이고, 독신남인 주인공이 달팽이를 기르기 시작한 날은 " 유월의 첫 휴일(p.44) " 다. 반면 < 쇼핑 좋아하세요 > 는 " 사월의 밤바람이 흠씬 몰려 " 오는 봄이 배경이지만 두 여자가 갈망하는 계절은 " 지중해와 접해 있는 남동부 발렌시아 지방은 365일 중에서도 300일 이상 태양이 눈부시게 내리쬐는 곳 ( p. 81 ) " 에 있다.

 

그래서 그들은 뜨거운 지중해에서 맛본 음식으로 대리 만족을 느낀다. 반면 < 내 이웃의 안녕 > 은 " 여름 방학이 거의 다 끝나가 ( p. 130 ) " 고 가을로 접어드는 계절이고, < 바닥 > 과 < 소품 > 은 겨울이 배경이다. 그리고 순서 상 맨 마지막 작품인 < 고흐의 침실 > 은 계절을 짐작할 수 있는 암시가 없다. 이 작품은 서술 없이 " 환 " 과 " 령 " 이 주고받는 대화 형식'인데 서체가 각자 달라서 대화라기보다는 각자의 독백처럼 보인다. 무엇보다 이름이 " 환 " 과 " 령 " 이라는 설정은 " 幻 : 헛보일 환 " 과 " 靈 : 귀신 령 " 처럼 읽혀서 소설 배경이 이승이 아닌 구천'으로 보인다. 그곳에는 봄 하늘, 여름 하늘, 가을 바닥, 겨울 나무가 없는 곳이다. 계절이 없는 곳이다. 이 순열이 의도적인지 아니면 우연의 일치'인지 잘 모르겠지만 의도적이라면 작가에게 그 의도'를 묻고 싶다.

 

우선 이 작품집이 가지고 있는 미덕은 가족 서사에 기대서 징징거리지 않는다는 점이다. 내가 한국 작가가 쓴 단편집을 읽을 때마다 늘 불쾌했던 이유는 윤대녕 식 자아 찾기 여행 서사나 가족 트라우마를 집요하게 건드리는 서사 때문이었다. 여행을 통해서 잃어버린 자아를 찾는다는 윤대녕 식 이상향'은 거창한 것을 건드려야 그럴듯한 소설이 되지 않을까 라는 착각에서 비롯되었고, 같은 이유로 주인공의 공포와 불안 그리고 고독은 폭력적인 아버지와 무능한 어머니 혹은 무능한 아버지와 억척스러운 어머니 때문이라며 징징거리는 서사 또한 잘못된 버릇'에서 비롯된 것처럼 보였다. 다행스럽게도 표명희는 < 내 가족의 탄생 > 이 아닌 < 내 이웃의 탄생 > 에 대해서 말한다. 가족에 얽매이지 않고 이웃과 얽힌다는 측면에서 이 소설은 그만큼 가치가 있다.

 

한국 사회에서 중요한 것은 가족이 아니라 이웃이다. 우선 노래 한 곡 듣고 가자 ! " 투 에니 원'이 부릅니다. 아이 돈 케어.... 번역하면 < 배 째라, 시바 !  > 입니다. "

 

 

신경숙이 " 엄마를 부탁해 ! " 라며 엄마'라는 존재를 우황청심환 같은 만병통치약이라고 선전할 때 당신은 책을 덮어야 한다. < 엄마 > 라는 존재는 절대 당신을 " 케어 " 하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엄마의 케어가 아니라 사회의 케어(사회 안전망)다.  그러므로 신경숙의 < 엄마를 부탁해 > 는 가짜 위로'다.  김애란이 < 두근두근내인생 > 에서 망친 것은 문장이 아니라 가족 판타지에 지나치게 의존했기 때문이다. 표명희 소설 속 인물들은 모두 독신이며 실직의 공포를 안고 살아가거나 실직 혹은 미취업 그리고 시한부 삶에 처해 있다. 하지만 이 위기를 가족'에 기대지 않는다. 왜냐하면 이 위기'는 결코 가족애가 해결해 주지 않는다는 사실을 작가는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이 상황은 마치 전기 회로의 두 점 사이가 절연(絶緣)이 잘 안되어서 필라멘트가 깜빡깜빡거리는 것과 같은 상황이다.

 

정신이 오락가락하는 라디오는 등짝을 힘차게 내리치면 한동안은 정상적으로 작동하지만 이 응급 처방전은 자칫 잘못하면 합선으로 이어져서 스피커가 터지는 꼴을 당하게 된다. 소설 속 인물들은 모두 이웃들과 절연'된 상태이다. 하지만 이웃과의 접속을 적극적으로 욕망하는 것은 아니다. 그들은 모두 절연에서 오는 캄캄한 고독에 대한 두려움에서 벗어나려고 하지만 그렇다고 지나치게 밝은 백열등을 원하는 것 같지는 않다. 등장 인물들이 절연을 두려워하면서도 쉽게 접속을 허용하려고 하지 않는 이유는 잘못 연결되어서 합선이 되면 어쩌나 하는 두려움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모두 < 切 : 끊을 절 > 과 < 合 : 합할 합 > 사이에서 절충을 원한다. 그래서 그들은 조심스럽게 맛이 간 텔레비전을 소심하게 톡톡 친다. 단편 < 내 이웃의 안녕 > 에서 207호는 107호와 연결( 합선 ) 되기를 원치 않지만 조심스럽게 그의 안녕을 걱정한다.

 

그것은 같은 처지에 처한 자의 공감 때문이다. 이번 소설집에서 가장 탁월한 < 쇼핑 좋아하세요 ? > 도 소극적 접속에 해당된다. 지영은 남이 힘들여서 장을 본 카트'를 슬쩍해서 계산을 치루고 가져간다. 값을 치루었으니 도둑이라 할 수는 없지만 염치없는 짓은 분명하다. 지영은 남이 쇼핑한 목록으로 생활하면서 그 사람의 취향을 공유한다. 이 기괴한 취향은 절연에서 오는 캄캄한 어둠을 진정시키는 효과가 있다. 현대인의 소외와 고독을 탁월하게 형상화한 작품이다. 반면 < 소품 > 의 주인공은 선과 선이 연결되는 것 자체를 거부한다. 한겨울 보일러가 고장난다. 영화 스텝 생활로 애오라지 살아가는 그에게 보일러 수리비는 부담이 크다. 그는 보일러가 단락이 된 원인을 윗층에서 떨어지는 물 때문이라고 판단하지만 딱히 윗층의 누수가 원인은 아닌 것 같다. 하지만 수리비를 떠넘기기 위해서 그는 윗층을 방문한다. 그는 이웃과의 분쟁을 원치 않지만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윗층에 사는 사람은 친절하고 예의바르다. 윗층 세입자는 추위에 떨고 있을 그를 위해 전기 난로를 빌려주겠다고 제안하지만 그는 이웃의 온정을 냉정하게 거절한다. 이 접선 제의( 전기 난로를 빌려주겠다는... ) 를 받아들이면 보일러 수리비를 떠넘기기 곤란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그는 이웃과의 접선보다는 보일러 속에서 " 시커멓게 탄 자국이 보이는 " 선이 제대로 접속되기를 원한다. 이처럼 소설 속 주인공들은 이웃과의 접속을 소극적으로 원하거나 아니면 아예 거부한다. 하지만 시끌벅적한 소통을 강조하는 휴머니즘에 기댄 주책없는 위로나 대책 없이 냉혹한 태도를 마치 쿨하다고 판단하는 신세대 작가의 인식'보다는 솔직하다는 측면에서 이 소설은 가치가 있다. 소설집 < 내 이웃의 안녕 > 은 씨에로(Cielo, 스페인어로 하늘이란 뜻이다)로 시작해서 고장나 보일러'로 끝난다. 그것은 봄 하늘'에서 시작해서 겨울 나무'에서 멈춘다( 계절이 없는 고흐의 침실'이란 작품은 제외하자).

 

다시 한번 말하지만... 봄에는 하늘이 잘 보이고, 여름에는 그늘이 눈에 띄며, 가을에는 바닥이 선명하다. 그리고 겨울이 오면 나무가 보인다. 겨우살이를 해야 하는 사람들에게 있어서 나무는 불 같은 존재(땔감)다. 나무는 물을 흡수하지만 불로 죽는 존재다. 겨울 나무가 가장 아름답다. 어쩌면 나무에게 있어서 겨울은 자신이 살아온 삶에서 가장 아름다웠던 화양연화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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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크아이즈 2014-01-28 12: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표명희 작가에다 곰발님의 리뷰이기 때문에 무조건 공감 날리고 휘리릭~~
덤으로 <나무에게 있어 겨울은 자신의 삶에서 가장 화양연화>라는 말도 주워 담습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4-01-28 12:07   좋아요 0 | URL
표명희 작가를 아시는군요. 전, 한국 문학 잘 안 읽어서 몰랐는데
이 작품집 좋더군요. 거창하지 않아서 좋습니다.

2014-01-28 12:36   URL
비밀 댓글입니다.

수다맨 2014-01-28 13: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겨울 나무가 가장 아름답다... 아 이 말은 가슴을 울리네요. 영화나 드라마를 볼 때면, 젊은 여배우의 미끈한 얼굴보다 때로 나이든 여배우의 이마 주름이 더 아름답게 보입니다. 곰곰발님도 예전에 이런 비슷한 말씀을 하셨던 적이 있으셨죠.

어쨌거나, 저도 표명희의 소설을 읽어야겠습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4-01-28 16:46   좋아요 0 | URL
가끔 수잔 새런든이나 아.. 이름은 까먹었지만 007 시리즈에 나오시는 공공칠 여상사'
보면 주름이 참 아름다우며 연기의 팔 할은 주름에서 나온다는 생각을 자주하게 됩니다.
배우에게는 정말 소중한 건 주름이죠. 그런데 신기하게도 한국 배우들은
젊어보일려고 발악을 한다 말이죠. 이해 불가능입니다.
찰리 채플린이 가장 위대할 때는
웃을 때 주름이 질 때죠. 라임라이트에서 화장을 지운 그가
카메라 정면을 응시할 때, 그 얼굴에서 주름의 흔적을 볼 때
저 그만 빵 터져서 울었습니다.

엄동 2014-01-28 14: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봄하늘과 여름그늘 겨울나무. 캬.

가을은 청명한 하늘을 자랑하는 계절이라고만
막연히 생각했었는데.

그렇네요 바닥"이 있었네요.
아련하게 물드는 가을숲의 바닥"에는
퍼석퍼석 . 가을을 앓게 만드는 무언가가 있지요

장작불 탁탁 튀는 소리 들으며
나무타는 냄새를 맡고 싶게 하는 글이예요



쨌거나, 저도 표명희의 소설을 읽어봐야겠습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4-01-28 16:49   좋아요 0 | URL
제가 늘 주장하는 게 가을과 겨울은 시각적이기보다는 청각적 계절이라는 거죠.
딱딱하지만 조건 없이 부서져서 만들어지는 그 소리들 ( 낙엽, 장작 타는... 그런 것들 )
은 그 무엇보다 담백합니다. 정말 맛으로 따지면 크래커 같아요.
크래커는 달지 않아서 질리지 않죠.

크라운 참 크래커처럼 말입니다.

이 소설집 읽어보세요. 추천합니다.

제가 무슨 책장사도 아니니 주례사 비평이 아님을 다들 아시리라 믿숩니다 ~

비로그인 2014-01-29 01: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가장 좋아하는 계절이 겨울인데 따뜻한 느낌도 들고 하늘도 정직해서 별들이 잘 보이기 때문이에요

곰곰생각하는발 2014-01-29 12:11   좋아요 0 | URL
겨울.... 저도 겨울 좋아합니다. 여름보다는 말이죠.
여름은 도저히 견딜 수가 없음. 모기가 없으면 견디겠으나...
 
용의자 X의 헌신 - 제134회 나오키상 수상작 탐정 갈릴레오 시리즈 3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양억관 옮김 / 현대문학 / 2006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진실은 때때로 범죄에 악용된다.

 

 

 

 

 

습관적으로 거짓말을 하는 블로거'가 있었다. 그는 자신이 내뱉은 거짓말을 그럴싸하게 꾸미기 위해서 다시 거짓말을 했고, 또다시 그 거짓말을 거짓말로 변명을 하다 보니 결국에는 끝없이 거짓말을 하게 되어서 나중에는 걷잡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추측건대, 별 볼 일 없는 대학을 졸업해서 조그마한 디자인 회사를 다니며 잡무에 시달리던 그는 어느 순간부터 꾀죄죄죄죄죄죄한 현실로부터 도피하기 위해서 화려한 꿈을 꾸기 시작한 것 같았다. 그는 처음에 별 생각없이 블로그에 서울대 미대를 졸업했다고, 푸념 섞인 낙서처럼 휘갈겼는데 이 거짓말이 결국은 걷잡을 수 없을 만큼 커지기 시작했다. 그는 최초의 거짓말이 들통나지 않도록 거짓말에, 거짓말에, 거짓말에, 거짓말에, 거짓말을 늘어놓다 보니 판이 커져버렸다. 서울대 대학원을 졸업한 그는 이십대에 이미 20명 남짓한 직원을 거느린 디자인 회사를 차렸으며, 미술관 큐레이터와 도슨트를 겸하며, 대학 강단에서 강의를 하고, 모 아이돌 그룹을 프로듀싱한 프로듀서이자 스스로도 음반을 낸 적이 있는 전직 가수'라고 자신을 소개하기 시작했다. 

 

여기에 가구 공예가로도 이름을 떨쳤고, 군에 있을 때에는 아프간 전투에 착출되어서 전쟁에서 혁혁한 공을 세워 육군 참모총장 표창장을 받기에 이르렀다. 이 모든 일이 서른을 넘기지 않은 나이에 이룩한 업적이었다. 사람들은 제주도에서 잡히는 8월 은갈치'보다 더 은은한 스펙에  넋이 나가서 그를 칭송하기에 이르렀다. 박근혜가 100개의 형광등을 켜 놓은 듯한 아우라라면 그 블로거는 형광등 백만 스물 한 개를 켜놓은 아우라였다. 그를 따르는 이웃은 항상 와와, 했다. 간혹 나 같은 삐딱이'가 우우, 하면 그를 추종하는 세력들이 몰려와서 에에, 하며 조롱했다. < 우우 > 했던 소수와 < 와와 > 했던 다수와 맞짱을 떴다가는 < 에에 > 당하기 일쑤였던 것이다. 그런데 재미있는 사실은 사람들이 거짓말쟁이 블로거의 화려한 경력을 나이와 비교하면 앞뒤가 맞지 않는다는 사실을 쉽게 간파할 수 있음에도 그 사실을 알아채지 못했다는 점이다. 한번의 재수 끝에 대학과 대학원을 졸업했으니 26세요,

 

여기에 병역은 병장으로 제대했으니 3년 더하면 얼추 29세가 될 터인데,  28세 때 이미 디자인 회사를 설립하고, 대학 강단에서 강의를 하고, 연예 기획사를 설립해서 2장의 앨범을 내기까지, 아.... 그리고 여기에 가구 공예가'로 대활약을 펼쳤다는 것을 포함하면 앞뒤가 맞지 않는다. 내가 < 와와 > 무리와 < 에에 > 무리에게 이 사실을 조목조목 비판하면서 했던 말이 바로 " 앞뒤가 맞지 않는 말 " 이라는 말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 앞뒤가 맞지 않기 때문에 거짓말 " 이라는 주장은 하지 않을 것이다. 앞뒤가 맞지 않지만 그것이 진실인 경우도 종종 있고 앞뒤가 맞지만 거짓인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돌이켜보면 그는 거짓말에 능숙했다기보다는 오히려 어설픈 거짓말쟁이에 가까웠다. 히가시나 게이고의 대표작 < 용의자 x의 헌신 > 에서 독자는 이미 범인이 누구인지를 알고 있다. 히가시노 게이고는 소설 초반부에 전남편을 죽인 야스코'가 얼마나 마음이 여리고 착한 여자였는가를 자세하게 묘사한다. 그녀는 성정이 고우며, 거짓말을 잘하지 못하고, 무서움을 많이 타는 여자'다.

 

그녀는 필립 말로우 소설에 등장하는 팜므파탈과는 거리가 멀어도 너어어어어무 멀다. 독자는 건들면 톡 하고 터질 것만 같은 심장을 가진 그녀가 매의 눈과 개의 코'를 가진 형사들이 쏟아낼 혹독한 과정들( 심문, 뒷조사, 알리바이..... ) 을 무사히 통과할 수 있는가에 관심이 쏠린다. 그녀는 과연 허술한 알리바이를 얼마나 치밀하게 은폐시킬 수 있을까 ?  그런데 우려와는 달리 그녀는 형사들의 심문뿐만 아니라 거짓말 탐지기가 동원된 거짓말 테스트도 무사히 통과한다. 거짓말로써 형사를 속일 수 있다는 것은 그럴 수 있다고 치자. 하지만 거짓말 테스트는 어떻게 할 것인가 ? 거짓말 테스트 장치는 거짓말을 감지하는 것이 아니라 감정의 증후를 감지하는 것(폴 에크먼, 텔링 라이즈. 71)으로써, 거짓말 시 감지되는 발한, 호흡, 혈압의 변화'를 통해 거짓말 유무를 밝힌다는 측면에서 그녀는 자기 신체마저도 속인 것이 된다.

 

형사들이 그녀를 심문하는 과정에서 " 앞뒤가 맞지 않는 " 말을 발견하지 못했다는 점은 결국 그녀가 " 앞뒤가 맞는 말 " 로 형사를 설득했다는 것이 된다. 바로 이 지점에서 나는 소설 중간에 히가시노 게이고가 짠 트릭'을 쉽게 간파했다. 간단하다 ! 그녀는 거짓말을 한 것이 아니라 진실만을 말했다 라고 가정하면 모든 의문점이 술술 풀린다. 이 소설은 독자들이 믿어 의심치 않는 " 살인자는 반드시 거짓말을 한다 " 는 익숙한 코드를 역이용한다. 히가시노 게이고'는 범인인 그녀가 형사를 속이기 위해서 거짓말을 하면 들통이 나지만 진실을 말하면 형사를 속일 수 있는, 매우 이상한 장치를 고안했다. 그녀가 진실만을 말하니 그녀의 증언은 앞뒤가 맞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천재 수학자인 용의자 x는 그녀를 위해 수학 공식 대신 완전 범죄 공식을 만든 것이다.

 

형사는 거짓말에 능숙한 범인이 내놓는 " 앞뒤가 맞는 말 " 이 사실은 " 앞뒤가 맞지 않는 말 " 이라는 것을 밝혀야 한다. 트릭이란 기본적으로 " 앞뒤가 맞지 않는 말 " 을 " 앞뒤가 맞는 말 " 로 둔갑시키는 속임수'이니 말이다. 추리 소설은 뒤죽박죽인 트릭을 질서정연하게 되돌리는 장르'이다. 하지만 독자가 항상 뒤죽박죽인 트릭을 간파하지 못해서 골탕을 먹는 이유는 뒤죽박죽인 트릭'이 매우 정교하게 질서정연한 모습을 갖추고 있기에 독자에게 쉽게 들통이 나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독자는 매번 속는다. 우리는 흔히 거짓말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고 생각하지만, " 보통 사기꾼들은 자신이 하는 말의 앞뒤가 어긋나지 않도록 완벽하게 이야기를 꾸민다. 오히려 정직한 사람들이 조금씩 앞뒤가 안 맞는 말을 한다. ( 폴 에크먼, 텔링 라이즈, 063 ) "  가수 이은하가 < 아리송해 > 라는 노래를 부르면서

 

" 사랑하기 때문에 헤어져야 한다는 너의 그 말이 아리송 " 하다고 고개를 갸우뚱했지만 우리는 이 말이 진실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 사랑을 노래한 수많은 문학 작품에서 사랑하기 때문에 사랑하는 사람 곁을 떠나야 하는 이야기'는 이미 익숙한 서사가 아니었던가 ?  논리적 수식으로 보았을 때 이 말은 앞뒤가 맞지 않지만 진실에 가깝다. 이처럼 진실은 깍쟁이처럼 앞뒤가 딱딱 맞기 보다는 어딘지 모르게 아귀가 맞지 않는 구석도 있다는 점을 명심할 필요가 있다.  < 용의자 x의 헌신 > 은 " 앞뒤가 맞는 말 " 이 거짓말일 수도 있는 말이며, 진실은 때때로 누군가를 속여서 이득을 취하기 위한 도구로도 쓰인다는 사실을 일깨워준다. 진실은 아름답거나 선명할 수도 있으나 동시에 아리송한 것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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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미에[르 2014-01-27 12: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전 현실에서 그런 새끼 만난적이 있음.
스튜디오 지하의 창립 멤버이며...은위의 원작자 최종훈 작가를 지가 키웠고...
울 나리 만화 SF의 시작은 자신으로 부터 시작되었으며...

한때 인세로 하루 술값을 몇백씩 쓸만큼 벌었다고 했죠.
지금은 사기를 당해 처지가 곤궁하고...
진주에서 제일 큰 식당을 하는 아버지가 계신데...
계모의 반대로 후원을 못받는다고...

불쌍해서 3달 방세 내줬음.

공황장애 전단계더라고요...;;

곰곰생각하는발 2014-01-28 06:40   좋아요 0 | URL
그런 새끼 많죠. 온라인이나 오프라인이나...
결론은 그거 아닙니까.
나 왕년에 잘나갔다....
왕년에, 라고 말하는 사람치고
단언건대 잘나간 놈 별로 없었을 겁니다.
현재의 별 볼 일이 과거의 별 볼 일입니다.

엄동 2014-01-27 17: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얇은 두께는 아닌데 한큐에 읽기 좋은 소설이죠

와와" 무리를 두었던 그 블로거의 결말은 어찌 되었는가요

코가 길어져도 너무 길어졌을껀디

곰곰생각하는발 2014-01-28 06:38   좋아요 0 | URL
리뷰에 참고하려고 이 책 찾는데 어디 박혀 있는지 도통 보이지가 않네요.. 흠...
코가 너무 길어져서 제가 잘랐습니다.

만화애니비평 2014-01-28 13: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왕년이나 지금이나 오덕을 향해 달려가는 덕력 보유자오!

곰곰생각하는발 2014-01-28 16:52   좋아요 0 | URL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내가 오덕이란 단어가 나올 줄 알았습니다. 만애비 님 아예 이 참에 닉네임을 오덕왕'이라고 하는 건 어떻습니까 ?

만화애니비평 2014-01-29 08: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냥 오덕왕보단 오천황으로 !

곰곰생각하는발 2014-01-29 12:45   좋아요 0 | URL
음... 그래도 오덕'이라는 이름이 들어가니 오덕왕이 더 낫지 않겠습니까?
 

 

 

 

알라딘 번개 모임 후기 2 부.

 

표명희와 기형도 씨.

 

 

 

 

   

 

 

 

 

 

http://blog.aladin.co.kr/749915104/6845977 1 부 : 표명희와 장개동 씨.

 

내가 경찰서에서 하루 종일 조서를 작성했다고 하니 의아해하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문제는 좀 복잡하다. 자신을 기형도라고 속여서 내 피 같은 돈을 갈취한 장개동'이 불쌍하여 경찰서를 나서는 길에 사식으로 돼지 국밥'을 넣어주었다. 죄를 미워하되 사람은 미워하지 말라는, 말도 안되는 말랑말랑한 신파 때문이 아니다. 죄를 미워하면 반드시 그 인간도 미워해야 옳다. 하지만 죄를 미워한다고 해서 밥 먹을 자격도 없는 놈이라고 하는 건 옳지 않다. 그래서 돼지 국밥을 넣어준 것이다. 그는 왜 기형도를 사칭했을까 ? 하긴, 허무맹랑한 부활론'에 깜빡 속은 내가 잘못이지. 그때였다. 경찰서 문을 나서려는 찰나 누가 다급하게 불렀다. " 이봐요, 투 베어 원 풋 ( 곰곰발 ) !!! " 뒤돌아보니 강력계 최만식 경사'였다. " 이봐요, 투베어원풋 ! 일이 묘하게 꼬였수다. 장개동, 그 자식.. 장개동이 아니올씨다. "

이 무슨 뚱딴지 같은 소리인가. 장개동이 장개동이 아니라면 장개동은 헛것이란 말인가 ? 최만식 경사를 주위를 살피더니 내게 귓속말로 속삭였다. " 그 사람, 기형도가 맞습니다. 지문 조회한 결과, 그는 20년 전에 사망한 기형도'로 나왔습니다. 그... 러니깐, 그는 장개동인 척 연기를 한 것이죠잉 ! " 최만식 경사의 말은 이명박이 터진 입으로 자신을 도덕적으로 완벽한 인간이라고 고백했을 때보다도 더 충격적이었다. 푸베어원풋 씨 ! 조서를 다시 작성하셔야 할 것 같습니다. 기형도 시인은 일이 확산되는 걸 원치 않습니다. 나는 뭍 위에 오른 문어처럼 다리에 힘이 없어서 흐느적흐느적 다시 경찰서 안으로 들어갔다. 기형도는 마침 국밥을 먹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문득 그의 시 < 장미빛인생 > 에서 마지막 연에서 " 나는 인생을 혐오한다 " 라고 끝맺던, 어떤 혈서 같은 고백이 떠올랐다.

눈물이 앞을 가렸다. 담당 형사가 잠시 외근 중이라 나는 경찰서 안에서 그가 오기를 기다려야만 했다. 문득 전날 선물 받았던 표명희의 소설 < 내 이웃의 안녕 > 이란 소설집이 생각났다. 마음이 싱숭생숭해서 책을 읽을 마음은 안 생겼지만 소설 표제작으로 쓰인 " 내 이웃의 안녕 " 이란 단편을 읽어보기로 했다. 첫 문장은 다음과 같이 진행된다.

307호, 위층 사람들이 이사를 왔다. 그들이 오면서 새로운 사실이 하나 밝혀졌다. 이전에 살았던 사람은 담배를 피우지 않았다는 것. ( 단편 내 이웃의 안녕 中, 109 )

 

나는 책을 읽으면서 마음에 드는 문장이 나오면 노란 색연필로 밑줄'을 굿는 버릇이 있는데 소설 첫 문장부터 마음에 들어서 밑줄을 친 적은 김훈의 < 칼의 노래 > 이후 오랜만이었다. 그만큼 느낌이 좋았다는 소리다. 소설 속 화자인 207호는 307호에 새로운 사람이 이사를 오면서 새로운 사실 하나를 깨닫게 된다. 새로 이사온 사람이 끽연가'라는 점이다. 307호에 새로운 사람이 이사를 오면서부터 그때부터 담배 연기 냄새가 207호로 스며드는 것이니 합당한 추론이다. 재미있는 사실은 207호 남자는 새로 이사를 온 307호 남자를 통해서 그가 담배를 피운다는 사실을 인식하는 것이 아니라 거기에 있는 사람(새로 이사를 온 사람)을 통해서 거기에 없는 사람(이전에 살았던)이 비흡연자'라는 사실을 먼저 언급한다는 점이다. 어떤 대상을 통해서 타자의 부재'를 인식하는 방식은 부재를 통해서 존재를 인식하는 방식'이기도 하다.

거울 속 나(존재)를 통해서 죽은 아버지(부재)를 떠올리는 것과 마찬가지로 부재하는 자는 끊임없이 존재하는 자와 연결된다. 그러므로 마르크스의 말처럼 산 자는 죽은 자 때문에 고통 받고 그 역도 마찬가지'다. 빈곤에 의한 개인의 자살은 개인적 죽음이 아니라 공동체적 위협이 되어 사회적 문제가 되는 것이다. 207호 남자가 307호의 흡연을 통해 지금 거기에 없는 남자의 비흡연'을 먼저 언급하는 인식은 지금 거기에 있는 이웃에 대한 무관심'을 의미하지만 역설적이게도 거기에 없는 자에 대한 인식을 내포하고 있다는 측면에서 희미하나마 공동체 의식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기도 하다. 207호 사는 남자 이름이 " 빈 " 이라는 것은 그 또한 비워질 수 있는 존재'라는 것을 의미한다. 작가 표명희는 이 짧은 첫 문장에서 모든 것을 압축해서 보여준다.

이 사실만 보아도 내공이 만만치 않다는 것을 깨닫게 해준다. 다들 아시다시피 첫 문장이 좋으면 결과가 좋은 법이다. 다만 우려되는 것은 아파트라는 집단 주거 형태를 통해서 현대인의 소통 단절을 다룬 작품은 많다는 점이다.  결국 익숙한 코드 진행은 뻔한 이야기여서 지루해질 수밖에 없다는 단점을 가지고 있지만, 이 단편은 그런 약점을 보완하기 위해서 몇 가지 반전을 준비한다. 새로 이사를 혼 307호는 담배를 피우는 사람이 아니다. 207호는 107호를 의심하기 시작한다. < 의심 > 이란 의심을 할 수록 점점 확증으로 견고해지는 법 ! 그것은 마치 야한 생각을 할 수록 견고해지는, 딱딱해지는 페니스와 비슷하다. 의심과 비슷한말은 의혹이 아니라 발기하는 페니스'다. 그리고 < 페니스 > 의 반대말은 종교적 < 믿음' > 이다.  207호 남자는 담배 연기 냄새를 통해서 107호의 존재와 부재를 인식한다.

 담배 연기'라는 무형의 물질성'을 통해 107호를 인식하게 되는 방식은 지극히 유물론적'인데 작가 표명희는 바로 그 점을 지적하고 있다. 하지만 여기서 끝이 아니다. 207호 남자는 담배 연기 냄새 대신 시체 썩는 냄새를 맡는다. 그는 107호의 고독사를 의심하지만 아파트 경비의 증언에 의하면 107호는 야반도주를 했다고 한다. 107호는 텅 비어 있는 것이다. 207호는 거기에 없던 자를 통해 거기에 없던 자의 존재를 인식했듯이, 107호 또한 거기에 없던 부재를 통해 거기에 있던 존재를 인식하게 된다. 바로 이때 새로 이사를 온 307호 여자가 207호 남자를 방문한다. 담배 연기 냄새 때문에 머리가 아프다는 하소연이다.

■ 형설 시공사에서 출간된 오소리 깻잎 입말 사전'에 의하면 의심의 비슷한말은 남근이다. 의혹을 받고 있는 대상의 허물을 벗기고자 하는 욕망이 바로 의심인데 의심이란 그 대상의 허물을 벗기고자 할수록 점점 확증으로 변해 견고해진다. 남근도 마찬가지다. 수컷이란 대상을 벌거벗겨서 온갖 음란한 생각을 하게 되는데 그런 생각을 하면 할수록 페니스는 의심처럼 점점 견고해진다. 딱딱해진다. 그러므로 의심과 남근은 유사한 구조를 가진 단어'다. 반면 남근의 반대말은 믿음'이다. 믿음이란 그 대상을 생각하면 할수록 점점 숭고해진다. 발기가 페니스로 유입된 피의 혈량이라면 숭고한 믿음은 심장으로 피가 유입된다. 심장이란 혈액을 몸 전체로 보내는 역할을 하는 근육 기관이고 페니스가 발기하는 현상은 피가 유입된 결과이다. 그래서 옛부터 성직자들은 숭고한 심장을 지키기 위해서 금욕적 삶을 살아야 했다. 피가 남근에 쏠리면 그만큼 심장은 차가워진다. < 오소리 깻잎 입말 사전 > 은 꽤나 엉터리인데 저자인 소율의 마법 같은 입질'을 듣다 보면 설득 당하게 된다. 믿음의 반대말은 발기'다.

 

어찌된 일인지 207호의 손에는 연기가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담배가 쥐어져 있다. 이 지점에서 작가 표명희가 전달하고 싶은 메시지는 명확해진다. 그것은 " 부재의 전이 " 이다. 이 부재는 실직과 고독 그리고 빈곤이 야기한 표류하는, 인성이 물성으로 전이하는 현상과 맞물린다. 107호 남자가 실직과 빈곤으로 인해 어느 순간 사라졌듯이 실직과 곧 닥쳐올 빈곤으로 앞날을 걱정하는 207호 남자도 107호 남자와 유사한 과정을 겪게 된다. 그리고 그러한 전이는 207호에서 307호로 전이될 것이다. 이 단편은 꽤나 복잡한 듯한 관계를 매우 치밀하지만 간략한 수식으로 보여준다. 영리한 설정이다.

내가 이 단편을 다 읽을 즈음에 조서 담당 형사가 도착했다. 나는 담당 형사에게 선처를 부탁했다. 나는 담당 형사에게 그가 내 카드를 훔친 것이 아니라 내가 쓰라고 주었다고 거짓말도 했다. 형사는 이 뻔한 거짓말에 감동을 해서 울먹이기 시작했다. 나는 담당 형사를 위로하기 위해 어깨를 토닥이며 외쳤다. " 우리 모두 이웃이잖아요 ! " 여기저기서 울지 마 ! 울지 마 ! 울지 마 ! 라는 응원이 들렸다. 최만식 경사도, 마약 담당 오종팔 경위도, 강력계 반장 최고환 씨도 울지 마, 를 외치다가 그만 울음이 터졌다. 마치 요실금 환자가 야금야금 몸 밖으로 내보내듯, 그들 눈에도 눈물이 살짝 번지는 것이었다.  결국 기형도는 내 선의 때문에 풀려나왔다. 그는 지금 내 방에서 하룻밤을 묵고 있다. 적어도 내 이웃인 기형도 씨는 오늘 하루 동안만큼은 " 안녕 " 하다. 적어도 오늘 하루만큼은 말이다. 그가 담배를 피우고 있다. 시취가 풍겨서 나는 잠시 미간을 찡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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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14-01-26 06: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지막 문장에서 흠칫했어요. 읽다보니 담배가 땡기네요

곰곰생각하는발 2014-01-26 07:16   좋아요 0 | URL
우현 님 항상 이 시간에 퇴근하시는 거 같습니다 ?

비로그인 2014-01-26 07:54   좋아요 0 | URL
저녁 여덟 시 반에서 아침 여덟 시 반까지 일해요. 오늘은 휴일이라 내내 잤어요.

르미에르 2014-01-26 07: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이 글이 구라인 증거.
서울에 사식으로 돼지국밥을 넣어줄만한 경찰서 없음.

돼지국밥은 서울에서 레어템.

곰곰생각하는발 2014-01-26 07:16   좋아요 0 | URL
왜 서울을 얕잡아보십니까 ! 국정원에 고발하겠습니다.

르미에르 2014-01-26 09: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하이고...국정원...하나도 겁안남.

일본 어디 닌자가문에 단체로 연수라도 좀 보내고 싶네요 -_-;
미행만 하면 들켜...어휴 어디 쪽팔려서...;;

얼마자 감시자들을를 봤는데 당췌 영화에 몰입이 안되서 짜증나 죽는줄 알았음.

곰곰생각하는발 2014-01-26 14:24   좋아요 0 | URL
국정원을 2차 디스하시는군요.
에르 님을 국보법으로 다스려야 할 것 같습니다.
감시자들... ㅋㅋㅋㅋㅋㅋㅋㅋㅋ, 여기 나온 국정원은 뭐 세계 최강이죠.
현실은 시궁창인데 말입니다.
마치 유니클로가 세계 명품인 것처럼 선전하는 꼴...

마지막행인 2014-01-26 13: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 오소리 깻잎 입말 사전 > 은 꽤나 엉터리인데 저자인 소율의 마법 같은 입질'을 듣다 보면 설득 당하게 된다. 믿음의 반대말은 발기'다.




그럼 오소리 깻잎 입말 사전에 발기한다. 고 하면 오소리 깻잎 입말 사전을 믿는 건가요 의심하는 건가요.
모순이 생기네요.

오시리 깻잎 입말 사전이 모순임을 밝힙니다.

총총.

(아, 그 행인 맞음요 헷갈리실까바 ㅋㅋ)


곰곰생각하는발 2014-01-26 14:31   좋아요 0 | URL
제가 가지고 있는 책은 오서리 입말 사전이고,
오시리 입말은 짝퉁입니다.
오시리 입말 사전은 모순입니다.

깊이 파면 다치는 관계로 자세한 내용 언급은 피하겠습니다.

도망가는행인 2014-01-26 14:49   좋아요 0 | 수정 | 삭제 | URL
때리실라고요? 훌쩍.


멀리가야지.

멀리 안 나오셔도 됩니다.

총총총...





곰곰생각하는발 2014-01-27 03:39   좋아요 0 | URL
요즘은 날이 풀려서 나들이 하기에 좋은 날씨이니 대문까지
마중나갑니다.

mira 2014-01-26 16: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훈훈하게 끝나는군요. 독특한 글 읽기 너무 좋네요.

곰곰생각하는발 2014-01-27 03:40   좋아요 0 | URL
이것저것 섞는 게 제 취향이라서요...
어느 것이 뻥이고 어느 것이 진실인지 가려서 읽을 필요가 있습니다.
 

 

 

 

 

 

알라딘 번개 모임 후기.

 

표명희와 장개동 씨.

 

 

 

소주 5병 + 생맥 500cc 7잔 + 빼갈 한 병

모임평 ㅣ 다시는 이들과 함께 술을 마시지 않는다.

모임 만족도  ☆☆☆☆★

 

 

 

 

 

 

 

 

 

약속 장소에 일찍 도착해서 낙원동 일대를 이리저리 둘러보았다. 이천 원짜리 국밥을 파는 곳이 있고, 삼천 원짜리 안주를 파는 포장마차도 있고, 오천 원짜리 이발소'도 있고, 만 원짜리 딴스홀'도 있었다. 그리고...... 기형도 시인이 심야 극장에서 영화를 보다가 급사한 옛 파고다 극장은 다른 장소가 되어 있었다. 당시 파고다 극장은 동성애자들이 은밀하게 모이는 " 만남의 장소 " 로 유명한 곳이어서 기형도의 죽음'을 두고 말이 많았다고 한다. " 동성애 " 란 말이 나와서 하는 말이지만 동성애를 반대하는 사람들이 하는 주장에 동의하지 않지만 그렇다고 동성애를 지지하는 사람들이 습관적으로 내뱉는 말투에도 동의하지 않는다. 동성애 문화를 지지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이성애자가 동성애 문화를 이해해야 한다고 말하는데 이 말투에는 이성애자가 동성애자에게 베푸는 같잖은 " 관용 " 과 " 배려 " 가 스며들어 있다.

그런데 과연 동성애 문화를 이해와 배려 차원에서 접근하는 것은 옳은 것일까 ? 동성애자의 항문 섹스'가 이해와 배려가 필요한 부분이라면 이성애자의 질 섹스'도 이해와 배려가 필요하다. 동성애 문화를 < 스페셜 > 이 아닌 < 노멀 > 로 인식할 필요'가 있다. 이리저리 돌아다니다 보니 약속 시간이 되어서 바삐 되돌아갔다. 아, 무도 없었다. 그리 당혹스러운 일도 아니다. 약속을 받아 논 알라디너는 " 수다맨 " 이 유일했기 때문이다. 수컷 둘이서 술을 마셔야 한다는 생각을 하자 도망치고 싶었지만 그럴 수는 없는 노릇 ! 수다맨을 기다리며 벽에 걸린 골뱅이를 유심히 바라보고 있는데 느닷없이 t가 왔다. 알라딘 번개 공지를 보고 무작정 왔단다. 놀랄 일도 아니다. 그는 항상 온다는 약속 없이 그냥 온다. 그리고 나 또한 그가 온다는 약속을 하지 않았음에도 그가 온다는 약속을 했다고 사람들에게 말하고는 했다.

우린 서로 한마디도 없이 술을 마셨다. 그는 내 동의도 없이 맥주잔에 소주를 털었다. 우린, 그런 사이'다. 그때 수다맨이 왔다. 내 예상을 완전히 뒤집은 비주얼이었다. 문학과 인문학적 깊이'로 보아 조용한 선비 스타일이라 생각했는데, 맙소사 ! 그는 앳된 용모를 간직한 도령 스타일'이었다. 꽃미남이었다. 피부가 어찌나 곱던지......  수다맨은 자리에 앉자마자 문학을 말하기 시작했다. 김연수를 아주 신랄하게 깠는데 사실 그의 외모는 김연수를 닮았다. 그렇게 우린 수컷 셋이서 술을 마셨다. 수다맨은 홀린 듯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흠모의 눈빛이었다. " 마성의 게이 " 캐릭터 역할로 인기가 있었던 나는 이 멜랑꼴리를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였다. 느낌 아니까 ! < 마성의 게이 > 란 별명은 수컷인 내가 여성들에게는 인기가 없지만 남성들에게는 절대적 지지'를 받기 때문에 생긴 별명이었다. 특히 동성애자들 사이에서는 연애인 취급을 받아서 그들은 호시탐탐 내 몸을 탐했으나 나는 단 한번도 내 몸을 허락하지 않아서 그들은 나를 Virgin Islands ' 출신이라고 불렀다. 

근혜가 형광등 백 개를 켜 놓은 아우라'라면 나는 핵 발전소 핵 융합 시 발생하는 섬광 같은 아우라'를 발산했다. 원빈 곁에서는 모두 오징어가 되듯이, 어느새 수다맨과 t는 꾀죄죄죄한 오징어가 되어 있었다. 아, 불쌍한 사람들......  하여튼 수컷 셋이서 술을 마시는 일은 아주 지겨운 일이었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수컷 넷이서 술을 마시지 않았다는 점이다. 불행 중 다행'이라고 할까 ? 불행을 견디는 가장 좋은 방법은 더 불행한 경우를 떠올리는 것이다. 수컷 셋이서 버텨야 하는 이 자리를 버티기 위해서는 수컷 넷이서 술을 마시는 것을 상상하면 위로가 된다. 그런..... 기술이 필요하다. 바로 그때 k가 태연스럽게 와서 자리에 앉았다. 이 분도 약속을 정하고 온 사람이 아니다. 나만 빼고 모두 다 화들짝 놀랐다. 그의 등장에 모두들 인상을 찡그렸다.

주도(酒徒)의 주도(酒道) 랄까 ? 모임을 주도(主導) 한 나는 그를 반갑게 맞이했다. 좋은 사람과 함께 마시는 술이 가장 좋은 안주라고 ?! 개 같은 소리는 지나가는 민들레에게는 줘라. 술을 마셔야 하는 자리에서도 편을 갈라 술을 마시는 것은 지겹다. 그것은 민주적이지 않다. 수컷 넷이서 골뱅이와 노가리'를 안주 삼아 조용히 술을 마셨다. 무협소설( 정치 소설이었나 ?! ) 을 쓰고 있는 중이라시던 k가 느닷없이 내게 책을 한 권 선물했다. 표명희의 소설집 < 내 이웃의 안녕 > 이라는 신간이었다. 신간이니 새책이라 생각했지만 알고 보니 새책이 아니었다. 책을 넘기다가 책 간지'에 쓰여진 메모'를 발견했기 때문이었다. 그 흔한 감상문이리라. 나는 내색을 숨친 채 눈 미간에 川자를 그리며 메모를 읽다가 깜짝 놀랐다. 표명희 소설가'가 직접 내게 보낸 메시지였다. 눈물이 앞, 을 가렸다.

이 모습을 k는 흐뭇한 듯 바라보았다. 사연인 즉, k와 표명희 소설가'는 아는 사이'였던 것이다. 그리고 놀라운 사실은 표명희 소설가 또한 나를 알고 있다는 사실'이다. k는 그녀에게 책을 받아 내게 준 것이다.  k가 거짓말을 하지 않았다는 전제에서 말하자면 표명희 작가가 나의 애독자'라는 것이다. 나는 너무 감동해서 폭풍 같은 눈물을 흘렸다. 애독자는 나인데 소설가가 나의 애독자라 하니 그 소박한 겸손함에 오열을 했다. 술자리에는 수컷 넷이 전부였지만 표명희 작가야말로 이 자리를 빛내준 분이었다. 우리는 기분 좋게 한 잔 한 후 2차로 중국집에 가서 빼갈에 짜장면과 깐풍기를 먹었다. 취기가 올라오기 시작했다. t가 3차로 대학로 도어즈에 가서 음악을 듣자고 했으나 수다맨의 집이 먼 관계로 우리는 뿔뿔이 헤어졌다. 오징어 셋을 떠나보내고 혼자 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리다가 우연히 기형도를 닮은 사람을 보았다.

술에 취한 김에 용기를 내어 그에게 말했다. " 죄송합니다. 불 좀... " 그가 잔잔한 미소를 지으며 라이터를 빌려주었다. 내가 말했다. " 혹시... 기형도 닮았다는 소릴 듣지 않나요 ? " 그가 나를 유심히 보더니 말했다. " 술 한 잔 하시겠습니까 ? " 우리는 근처 술집으로 향했다. 어두운 거리에 있다가 밝은 실내로 들어오니 그의 얼굴이 또렷이 보였다. 맙소사, 그는 정말 기형도'였다 ! 그는 촉촉한 눈으로 먼 곳을 응시하며 말했다. " 자발적 유배'이지요. 에우리디케를 찾기 위해 죽음의 땅으로 떠난 오르페우스적 여행을 떠나기로 마음 먹었습니다. 어느 순간부터 더 이상 시를 쓸 수 없는 시간이 오더군요. 그것은 사망 선고나 다름 없었습니다. 시인이 아닌 삶은 생각할 수도 없었죠. 그래서 새롭게 태어나기로 했습니다. 제가 한때 신문사 기자 생활을 했으니 동료들에게 부고 기사를 내도록 했죠. 그래서 서류상 저는 죽은 시인'이 되었습니다. 아, 참.... 곰곰발 씨 ! 저는 당신의 열렬한 애독자'입니다. 당신 글을 읽으면 똥 쌀 정도로 재미있더군요. 전 당신의 애 ! 독 ! 자 ! "

나는 그 말에 태풍 같은 눈물을 흘렸다. 감동한 나는 최고급 룸살롱으로 가 그를 모셨다. 강남에서 제일 잘 나간다는 텐 프로 두 명을 불렀다. 기형도 시인은 굶주렸다는 듯이 파트너의 젖가슴을 움켜쥐었다. 저러다가는 300cc 실리콘이 터져서 흘러내릴지도 모릅니다, 기형도 씨 ! 항간에 떠도는 " 기형도 시인 동성애자 " 라는 소문은 말 그대로 소문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물어볼까 하다가 접었다.

 

지금 이 글은 경찰서에서 작성하는 것이다. 눈을 뜨니 경찰서였다. 나는 그새 사기 사건의 피해자'가 되어 있었다. 자신을 기형도라고 소개한 자는 기형도가 아니라 전과 15범의 장개동'이란 인물이었다. 내가 술에 취해 테이블 위에 쓰러진 틈을 타 지갑 속 신용 카드를 훔쳐서 다른 술집에서 사용했다가 잡혔다는 것이었다.  사실 그가 훔친 신용 카드는 체크 카드였다. 통장에 삼만 팔천 오백 원이 전부인 체크 카드였다. 내 주제는 무슨 신용 카드인가 ! 술값을 내지 못한 그는 술집 주인의 신고로 경찰에 잡히게 된 것이었다. 때마침 장개동이 수갑을 찬 채 구치소로 끌려가고 있었다. 나는 그에게 달려들어 멱살을 잡고 말했다. 밥은... 먹고 다니냐.  나는 지금 후암 파출소에서 표명희의 < 내 이웃의 안녕 > 을 읽고 있다. 눈물이 앞, 을 가린다. 표명희 님의 애독자로써 두 개의 곡을  띄운다.  " Kirsty McGee가 부릅니다. Sandman ! 앤드........ Dumb ways to dies ! "

 

 

http://blog.aladin.co.kr/749915104/6847111 ㅣ 2부 표명희와 기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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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rgettable. 2014-01-25 15: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올ㅋ 피부 고운 도령ㅋㅋ ♥️ 아 역시 전 술마신 얘기가 제일 재밌습니다. ㅎㅎ

곰곰생각하는발 2014-01-25 15:49   좋아요 0 | URL
이거 지금 파출소에서 쓰나라 정신 없어서... ㅋㅋㅋㅋㅋㅋ.
수다맨 님 정말 꽃미남 스타일처럼 생기셨습니다. 김연수랑 거의 90% 싱크로율....
정작 본인은 김연수를 싫어하지만 말입니다.. 허허허허허...

르미에르 2014-01-25 15: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비도 오는데 염장 지대로 지르시네 -__;

곰곰생각하는발 2014-01-25 15:52   좋아요 0 | URL
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 무슨 염장입니다. 어서 골뱅이에 술 한 잔 하십시요. 이런 날 술 마시기 좋습니다.

유다 2014-01-25 15: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아 미치겠다. 기형도 귀신 만난게 오히려 더 현실적일 것 같아요. 눈뜨니 경찰서가 뭐람ㅋㅋㅋ거기다가 어디 전봇대 뽑다 잡혀온 것도 아닌, 사기 피해자로!

곰곰생각하는발 2014-01-25 15:56   좋아요 0 | URL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어허... 이분 참....
저 지금 파출소에서 컴 빌려서 쓰고 있습니다. 장개동 이 자식 때문에 말이죠.
잠시 대화를 나눴는데 자기도 한때 시인 지망생이었다고 하더라고요.
이명박 때 실직하고 나서 먹고 살려고 사기꾼이 되었다고... 눙물...

다크아이즈 2014-01-25 20: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ㅋㅋ 이러니 제가 어찌 곰발님을 좋아하지 않을 수 있겠어요!
그나저나 표명희 작가님이 곰발님을 아신다니 역시 글 잘쓰는 작가들 눈에도 곰발님이 예사롭지 않게 보이나봐요.
표명희 작품집 나왔군요. 단단한 문장으로 일가를 이룬 그미의 소설집 사야겠어요.^^*

곰곰생각하는발 2014-01-26 02:48   좋아요 0 | URL
네에. 저 지금 야금야금 읽고 있는데 표명희 작가는 정말 문장이 단단하더군요.
내 이웃의 안녕'이란 단편을 읽는 데 꽤 흥미진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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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나저나... 이 곡 좋지 않나요 ?

행인7 2014-01-25 21: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샌드맨 뮤비 좋으네요. 무한 반복중..
저렇게 초현실 적 꿈은 꿔 본 적은 없는데, 소복 뒷 모습 컷 만 빼곤 맘에 듭니다.
여자 눈빛도 좋으네요 투명한 슬픔.
특히 공중에 목 매달고 있는 씬...아주 좋아요 ㅋㅋㅋ



곰곰생각하는발 2014-01-26 02:46   좋아요 0 | URL
음악 좋죠 ? 전 이런 분위기의 노래가 좋습니다.
전 꿈을 꾸면 항상 맨발이에요. 도시 한복판에 늘 맨발로 서 있는...
그래서 사람들에게 들키지 않기 위해 별짓을 다하다가 슬퍼지는.... 그런 맨발......


소년에로학난성 2014-01-26 03: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와 곰발님, 저 어제 보고서 제출하고 새벽 4시 30분에 도어즈 앞 지나치면서 곰발님 생각했는데 소오름...

곰곰생각하는발 2014-01-26 05:19   좋아요 0 | URL
그래요 ? 아, 그러면 연락을 하지 그랬어요 ? ㅎㅎㅎㅎㅎㅎㅎ. 아니, 근데 왜 새벽에 대학로에 있었쑤 ?
도어즈 가시면 항상 저를 생각해 주십시요. 자그마한 사내가 혼자 강냉이에 병맥주 마시며
음악을 듣고 있었다고 말이죠....

Nina 2014-01-26 06: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아, 샌드맨.. 그걸 새해 되자마자 블로그에 올렸나, 그랬는데 연초부터 왠 우울 쩌는 노래냐고 구박 받았는데,
좋아해주시는 분이 있으니 기분 좋군요. ㅎㅎ
새해라고 꼭 밝은 분위기, 힘차고 신명나는 것만 올리란 법 있냐며 묵살했지만
암튼 이 가수의 서늘한 목소리와 분위기가 맘에 들더라구요. 왠지 가사에선 인생 무념무상도 느껴지고, 애잔한 것이..

곰곰생각하는발 2014-01-26 05:25   좋아요 0 | URL
이 가수 목소리가 참 좋습니다.이런 목소릴 좋아해요.
뭔가 좀 쓸쓸하고 , 분위기 있습니다. 이소라처럼 말이죠.
전 이상하게 자우림의 김윤아가 정말 노래를 잘한다고는 생각하는데
마음을 울리는 목소리는 아닙니다. 제 취향에는 이소라 목소리가 좋은데 이 가수도 목소리가
느낌 있어요..

만화애니비평 2014-01-26 10: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죽는 바보도 가지가지...아무튼 경찰서에서 고생이 많습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4-01-26 14:26   좋아요 0 | URL
왜 다들 기형도 시인의 생환에 대해서는 아무 말씀이 없으시는 거죠 ?

수다맨 2014-01-26 14: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고등학교 다닐 때부터 김연수 닮았다는 소리 많이 들었습니다 ㅎㅎㅎ
그나저나 저는 곰곰발님 인상이 와일드(?!)하실 줄 알았는데 너무 부드러우셔서 놀랐습니다. 그럼에도 아우라가 남다르시더군요.

곰곰생각하는발 2014-01-26 14:28   좋아요 0 | URL
옆모습이 상당히 닮으셨습니다...ㅋㅋㅋㅋㅋㅋ 내가 김연수 닮았네요, 라고 말할려고 했는데
그때 수다맨 님이 느닷없이 김연수를 까서.. 입을 다물었습죠.
저 부드러운 남자입니다... ㅋㅋㅋㅋ.
하여튼 다음에는 찜질방 하나 잡고 술 마시자고요.
원래 새벽 5시까지 마시고는 했는데 그날 저도 몸이 피곤하고 그래서.......

엄동 2014-01-27 18: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역시 깨알같은 후기

한박자 쉬고 바로 후기2로 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