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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이웃의 안녕
표명희 지음 / 강 / 2014년 1월
평점 :
절연과 합선 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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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는 여름에는 두터운 옷을 껴입고 겨울에는 벌거숭이로 겨우살이 준비를 한다. 나무는 스스로 만들어놓은 폭염과 혹한'을 견딘다. 나는, 아... 극기에 가까운 나무의 삐딱한 " 애오라지 " 를 이해하지 못했다. 봄이 오자, 나는 자주 하늘을 바라보았다. 봄 하늘은 여름 하늘보다 눈부시지는 않았으나 선명하고 부드러우며 촉촉했다. 그리고 여름에는 나무보다는 그늘이 눈에 띄었다. 봄이 하늘을 바라보게 만든다면 가을은 바닥을 자주 보게 만드는 계절이었다. 가을이 만들어 놓은 " 바닥 " 은 봄 하늘과는 달리 건조하며 쉽게 부서지지만 바삭거리는 소리는 뜨거운 불에 딱딱하게 구운, 단맛이 없는 크래커'를 떠올리게 만든다. 봄이 카스테라'라면 가을은 비스킷 맛이다. 그리고 겨울, 비로소 벌거숭이 나무'를 보게 된다. 나무가 가장 아름다울 때는 겨울'이다. 풍요는 즐거움을 주지만 아름다움을 전달하지는 않는다. 반면 결핍은 고통을 주지만 미학을 쟁취한다. 겨울 나무는 결핍'이다.
그래서 < 겨울 > 이라는 단어가 < 겨우 > 라는 부사와 닮았다는 점이 마음에 든다. 봄 하늘, 여름 그늘, 가을 바닥, 겨울 나무'다. 표명희 소설집 [ 내 이웃의 안녕 ] 은 1 씨에로, 2 달팽이를 길러야 할 때, 3 쇼핑 좋아하세요 ?, 4 내 이웃의 안녕, 5 바닥, 6 소품, 7 고흐의 침실 순'으로 단편을 배치했는데, 작가가 순서를 의도적으로 배치인지는 모르겠지만 단편 속 배경은 봄, 여름, 가을, 겨울 순으로 되어 있다. 순서 상 첫 번째 단편인 < 씨에로 > 는 " 봄날 꽃구경을 나선 단체 관광객이 유난히 많은(p.12) " 계절이 배경인 것으로 보아 4,5월 즈음'이고, 독신남인 주인공이 달팽이를 기르기 시작한 날은 " 유월의 첫 휴일(p.44) " 다. 반면 < 쇼핑 좋아하세요 > 는 " 사월의 밤바람이 흠씬 몰려 " 오는 봄이 배경이지만 두 여자가 갈망하는 계절은 " 지중해와 접해 있는 남동부 발렌시아 지방은 365일 중에서도 300일 이상 태양이 눈부시게 내리쬐는 곳 ( p. 81 ) " 에 있다.
그래서 그들은 뜨거운 지중해에서 맛본 음식으로 대리 만족을 느낀다. 반면 < 내 이웃의 안녕 > 은 " 여름 방학이 거의 다 끝나가 ( p. 130 ) " 고 가을로 접어드는 계절이고, < 바닥 > 과 < 소품 > 은 겨울이 배경이다. 그리고 순서 상 맨 마지막 작품인 < 고흐의 침실 > 은 계절을 짐작할 수 있는 암시가 없다. 이 작품은 서술 없이 " 환 " 과 " 령 " 이 주고받는 대화 형식'인데 서체가 각자 달라서 대화라기보다는 각자의 독백처럼 보인다. 무엇보다 이름이 " 환 " 과 " 령 " 이라는 설정은 " 幻 : 헛보일 환 " 과 " 靈 : 귀신 령 " 처럼 읽혀서 소설 배경이 이승이 아닌 구천'으로 보인다. 그곳에는 봄 하늘, 여름 하늘, 가을 바닥, 겨울 나무가 없는 곳이다. 계절이 없는 곳이다. 이 순열이 의도적인지 아니면 우연의 일치'인지 잘 모르겠지만 의도적이라면 작가에게 그 의도'를 묻고 싶다.
우선 이 작품집이 가지고 있는 미덕은 가족 서사에 기대서 징징거리지 않는다는 점이다. 내가 한국 작가가 쓴 단편집을 읽을 때마다 늘 불쾌했던 이유는 윤대녕 식 자아 찾기 여행 서사나 가족 트라우마를 집요하게 건드리는 서사 때문이었다. 여행을 통해서 잃어버린 자아를 찾는다는 윤대녕 식 이상향'은 거창한 것을 건드려야 그럴듯한 소설이 되지 않을까 라는 착각에서 비롯되었고, 같은 이유로 주인공의 공포와 불안 그리고 고독은 폭력적인 아버지와 무능한 어머니 혹은 무능한 아버지와 억척스러운 어머니 때문이라며 징징거리는 서사 또한 잘못된 버릇'에서 비롯된 것처럼 보였다. 다행스럽게도 표명희는 < 내 가족의 탄생 > 이 아닌 < 내 이웃의 탄생 > 에 대해서 말한다. 가족에 얽매이지 않고 이웃과 얽힌다는 측면에서 이 소설은 그만큼 가치가 있다.
한국 사회에서 중요한 것은 가족이 아니라 이웃이다. 우선 노래 한 곡 듣고 가자 ! " 투 에니 원'이 부릅니다. 아이 돈 케어.... 번역하면 < 배 째라, 시바 ! > 입니다. "
신경숙이 " 엄마를 부탁해 ! " 라며 엄마'라는 존재를 우황청심환 같은 만병통치약이라고 선전할 때 당신은 책을 덮어야 한다. < 엄마 > 라는 존재는 절대 당신을 " 케어 " 하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엄마의 케어가 아니라 사회의 케어(사회 안전망)다. 그러므로 신경숙의 < 엄마를 부탁해 > 는 가짜 위로'다. 김애란이 < 두근두근내인생 > 에서 망친 것은 문장이 아니라 가족 판타지에 지나치게 의존했기 때문이다. 표명희 소설 속 인물들은 모두 독신이며 실직의 공포를 안고 살아가거나 실직 혹은 미취업 그리고 시한부 삶에 처해 있다. 하지만 이 위기를 가족'에 기대지 않는다. 왜냐하면 이 위기'는 결코 가족애가 해결해 주지 않는다는 사실을 작가는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이 상황은 마치 전기 회로의 두 점 사이가 절연(絶緣)이 잘 안되어서 필라멘트가 깜빡깜빡거리는 것과 같은 상황이다.
정신이 오락가락하는 라디오는 등짝을 힘차게 내리치면 한동안은 정상적으로 작동하지만 이 응급 처방전은 자칫 잘못하면 합선으로 이어져서 스피커가 터지는 꼴을 당하게 된다. 소설 속 인물들은 모두 이웃들과 절연'된 상태이다. 하지만 이웃과의 접속을 적극적으로 욕망하는 것은 아니다. 그들은 모두 절연에서 오는 캄캄한 고독에 대한 두려움에서 벗어나려고 하지만 그렇다고 지나치게 밝은 백열등을 원하는 것 같지는 않다. 등장 인물들이 절연을 두려워하면서도 쉽게 접속을 허용하려고 하지 않는 이유는 잘못 연결되어서 합선이 되면 어쩌나 하는 두려움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모두 < 切 : 끊을 절 > 과 < 合 : 합할 합 > 사이에서 절충을 원한다. 그래서 그들은 조심스럽게 맛이 간 텔레비전을 소심하게 톡톡 친다. 단편 < 내 이웃의 안녕 > 에서 207호는 107호와 연결( 합선 ) 되기를 원치 않지만 조심스럽게 그의 안녕을 걱정한다.
그것은 같은 처지에 처한 자의 공감 때문이다. 이번 소설집에서 가장 탁월한 < 쇼핑 좋아하세요 ? > 도 소극적 접속에 해당된다. 지영은 남이 힘들여서 장을 본 카트'를 슬쩍해서 계산을 치루고 가져간다. 값을 치루었으니 도둑이라 할 수는 없지만 염치없는 짓은 분명하다. 지영은 남이 쇼핑한 목록으로 생활하면서 그 사람의 취향을 공유한다. 이 기괴한 취향은 절연에서 오는 캄캄한 어둠을 진정시키는 효과가 있다. 현대인의 소외와 고독을 탁월하게 형상화한 작품이다. 반면 < 소품 > 의 주인공은 선과 선이 연결되는 것 자체를 거부한다. 한겨울 보일러가 고장난다. 영화 스텝 생활로 애오라지 살아가는 그에게 보일러 수리비는 부담이 크다. 그는 보일러가 단락이 된 원인을 윗층에서 떨어지는 물 때문이라고 판단하지만 딱히 윗층의 누수가 원인은 아닌 것 같다. 하지만 수리비를 떠넘기기 위해서 그는 윗층을 방문한다. 그는 이웃과의 분쟁을 원치 않지만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윗층에 사는 사람은 친절하고 예의바르다. 윗층 세입자는 추위에 떨고 있을 그를 위해 전기 난로를 빌려주겠다고 제안하지만 그는 이웃의 온정을 냉정하게 거절한다. 이 접선 제의( 전기 난로를 빌려주겠다는... ) 를 받아들이면 보일러 수리비를 떠넘기기 곤란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그는 이웃과의 접선보다는 보일러 속에서 " 시커멓게 탄 자국이 보이는 " 선이 제대로 접속되기를 원한다. 이처럼 소설 속 주인공들은 이웃과의 접속을 소극적으로 원하거나 아니면 아예 거부한다. 하지만 시끌벅적한 소통을 강조하는 휴머니즘에 기댄 주책없는 위로나 대책 없이 냉혹한 태도를 마치 쿨하다고 판단하는 신세대 작가의 인식'보다는 솔직하다는 측면에서 이 소설은 가치가 있다. 소설집 < 내 이웃의 안녕 > 은 씨에로(Cielo, 스페인어로 하늘이란 뜻이다)로 시작해서 고장나 보일러'로 끝난다. 그것은 봄 하늘'에서 시작해서 겨울 나무'에서 멈춘다( 계절이 없는 고흐의 침실'이란 작품은 제외하자).
다시 한번 말하지만... 봄에는 하늘이 잘 보이고, 여름에는 그늘이 눈에 띄며, 가을에는 바닥이 선명하다. 그리고 겨울이 오면 나무가 보인다. 겨우살이를 해야 하는 사람들에게 있어서 나무는 불 같은 존재(땔감)다. 나무는 물을 흡수하지만 불로 죽는 존재다. 겨울 나무가 가장 아름답다. 어쩌면 나무에게 있어서 겨울은 자신이 살아온 삶에서 가장 아름다웠던 화양연화인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