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튼소리 2.
1. 나이 어린 친구에게 하대하지 않는 이유
술을 마실 때, 내 또래에게는 은근슬쩍 말을 놓지만 반대로 나이가 어린 상대일수록 말을 놓지는 않는다. 그것은 내 오랜 주도'(酒道)이다. 내 또래들이야 내가 말을 편하게 하면 그들도 편히 맞짱구를 칠 수 있지만, 나이가 어린 친구들은 내가 말을 편히 한다고 해서 같이 말을 놓을 수는 없기 때문이다. 불평등 조건이 성립된다. 그래서 술을 마실 때 상대방이 나이가 어릴 수록 말을 높인다. 또 한 가지 이유는 나이 어린 친구를 하대하는 독특한 한국식 나이 서열이 꼴불견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런데 이 지점에서 오해를 하는 분이 계시다. 내가 말을 편하게 하지 않는 이유는 < 예의 > 때문이지 < 존중 > 하기 때문이 아니다. 깊게 그리고 오래 사귀고 싶은 생각이 없기에 예의를 갖추는 것이다. 나는 본질적으로 인간을 혐오하는 부류이기 때문에 늙은 것이나 젊은 것이나 모두 혐오의 대상이다. 같은 이유로 아이'를 예뻐하지만 동심을 믿지는 않는다. 나는 성악설을 믿는다.
2. 참신과 성실의 차이
벼룩 시장에 기재된 부동사 거래 매매를 보면 주거 지역은 대부분 ○○ 역에서 도보로 10분이다. 그런데 이 정보는 100% 가짜'다. 도보로 10분 거리'라는 정보는 우사인 볼트가 전속력으로 뛰어야 가능할 거리'이다. 그리고 실제로 역에서 도보로 10분 정도 걸리는 곳은 도보로 5분 거리'이거나 3분 거리'라고 광고한다. 그러니 모두 엉터리일 수밖에 없다. 생각 없이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상투적 광고 문구 속에는 한국 사회가 가지고 있는 " 초 울트라 스펙타클 스피드를 숭배하는 빨리빨리 문화 " 가 스며들어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한국은 < 10분 사회 > 이다. 식당에 들어가서 음식을 시킬 때 10분이 한계이다. 10분 이후부터는 " 늦다 " 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음식 배달을 시킬 때도 마찬가지다. 10분이 지나면 그때부터 전화를 걸어 빨리 배달해 줄 것을 주문한다.
한국에서의 기다림은 10분이 한계인 것이다. < 10분 > 이 한국인이 넉넉하게 기다릴 수 있는 시간의 한계라면, < 5분 > 은 모든 것을 준비하는 데 걸리는 시간'이다. 군대 나온 분들은 모두 공감하리라. 준비하는 데 5분을 넘어서는 순간 고문관이 된다. 체질적으로 몸짓이 느린 사람은 한국에서 살기 힘들다. 반면 < 3분 > 은 인스턴트 식품이 익는 평균 시간이다. 3분 안에 익어야 인스턴트'라 할 수 있다. 결론은 이렇다. 10분은 기다림의 한계이고, 5분은 모든 준비를 완료하는 데 걸리는 시간이며, 3분은 인스턴트 식품이 익는 시간이다. 이 범위를 넘어서면 늦거나, 게으르거나, 즉석이 아니다. 한국인이 가지고 있는 시간 개념이다. 우스개처럼 들리고, 작위적인 우격다짐처럼 보이지만 별 생각 없이 사용하는 일상적 상투어나 문장은 뿌리 깊은 습속에서 비롯되는 경우가 많다.
채용 공고는 대부분 " 참신한 (여)직원 구함 " 이거나 " 성실한 (남)직원 구함 " 이라는 문구를 쓴다. 여성에게는 참신'이고, 남성에게는 성실'이라는 단어를 사용한다. 그런데 이 평범한 일상의 사소한 차이'를 가만히 뜯어보면 꽤나 천박한 편견이 자리하고 있음에 놀라게 된다. < 참신 斬新 > 은 " 새롭고 산뜻하다 " 는 뜻을 가진 형용사'다. <- 新 > 은 새것(new)을 뜻하기에 참신하다, 라는 뉘앙스'에는 " 젊고 화사한 " 이라는 속뜻을 가지고 있다. 반면 남성 직원을 채용할 때의 기준은 < 성실 誠實 > 이다. 여기에는 나이에 대한 기준이 없다. 오로지 성실하면 되는 것이다. 왜 남성 직원을 뽑을 때는 성실'이 기준이면서 여성 직원을 채용할 때는 참신'이 기준이 될까 ? 바로 이 사소한 언어 습관 자체가 뿌리 깊은 남성 혈맹이 가지고 있는 여성 차별적 시선이 꽤 오랜 습속에서 굳어졌다는 사실을 깨닫게 한다. 그냥 성실한 여직원을 뽑아라 !
3. 중국은 토양이 나쁘다 ?!
한식 맛의 비결은 MSG다. 맹물에 밑재료( 파, 마늘, 양파 )없이 계란 하나에 다시다 한 스푼 넣고 끓이면 그럭저럭 괜찮은 계란탕이 된다. 가끔 나는 두 손을 모아 하느님께 감사의 기도를 올린다. " 시바... 고맙습니다. 가난한 자에게 일용할 MSG를 내려주셔서, 음식 솜씨가 없어 맛을 낼 줄도 모르지만, 별다른 양념 없이도 내 혓바닥의 아밀라아제를 분비하시사 감사하옵고, 감사하옵고, 또 감사하옵나이다.... " 하지만 대한민국 주부는 모두 이 마법의 재료를 숨긴다. 맛있으면 내 솜씨이지만 마법의 분말 스프를 넣고 끓였음에도 불구하고 맛이 없게 되면 이 모든 탓을 중국산 재료로 돌린다. 어느 순간부터 중국산은 저질 식재료의 대명사가 된다. 중국 토양은 본디 황무지여서 여기서 자라는 곡물은 모두 품질이 나쁘다고 생각한다. 그에 상응하여 국내산은 최고의 식재료라고 광고한다.
여기에는 그 특유의 남조선 국수주의가 한몫한다. 신토불이'가 이데올로기와 만나면 이 꼴이 되는 것이다. 국내에 유통되는 중국산 식재료가 맛이 없는 이유는 중국에서 자라는 곡물 자체가 품질이 낮기 때문이 아니라 국내 수입업자들이 이윤을 맞추기 위해서 값싼 곡물만 수입하기 때문에 그렇다. 쉬운 예를 들자면 이렇다 : 10월에 잡히는 전어'는 맛이 좋아 수요가 많아 가격 경쟁력이 좋아진다. 반면에 이 맛 좋던 10월 전어는 여름이 되면 비린내가 심해서 수요가 거의 없다. 수요가 없다는 사실은 결국 가격을 떨어트린다. 국내 수입업자들은 바로 8월 전어를 싸게 사서 박리다매로 시장에 유통시킨다. 그러니 국내 시장에 유통되는 중국산은 모두 맛이 떨어지는 것이다. 중국산 식재료 탓하지 말고 중국 본토에서 유기농으로 키운 비싼 채소 한 번 먹어봐라. 당신 혓바닷에 아밀라아제가 고일 것이다.
가끔 한글의 우수성을 강조하기 위해서 한자의 열등성을 강조하는 경우가 있다. 자판을 칠 때 한자 입력은 불편한 반면 한글 입력은 매우 간편하다는 이유를 들어 세종대왕을 칭송하는 데, 이 주장은 매우 웃긴 말이다. 아니, 세종대왕과 집현전 사람들은 이미 손톡톡상자(휴대폰) 자판 구조를 이미 예견하시어서 한글을 그리 만드셨다는 소리인가 ? 이 세상 모든 언어와 문자는 모두 동등하다. 언어가 과학적일 필요는 전혀 없다. 언어와 문자를 과학으로 풀어내는 놈은 사기꾼이다. 이 세상 그 어떤 언어도 열등한 가치를 가지지 않는다. 언어는 모든 이데올로기를 떠나서 언어 자체로 위대한 것이다. 제발 한글은 과학적이다, 라며 징징거리지 말자. 지랄하지 말자...
4. 패션의 정의 : 수많은 미쉐린 타이어와 스티브 잡스
언제부터인가 캐나다 구스 점퍼'가 인기'다. 이번 설에 온 조카들도 파란색 캐나다 구스 점퍼'를 입고 왔다. 새옷이었다. 입은 꼴을 보니 미쉐린 타이어'에 나오는 마스코트 같았다. 이 옷 입고 공굴리기 놀이'를 하면 영락없이 미쉐린 마스코트'다. 대한민국은 언제부터인가 모두 미쉐린 타이어 마스코트가 되어서 거리를 걸어다니기 시작했다. 입고 다니는 꼴이 가관'이다. 주거 형태는 아파트라는 집단 주거지로 모이고, 패션은 미쉐린 타이어로 뭉친다. 63빌딩보다 낮은 대한민국 도봉산이 안나 푸르나'가 된 지는 이미 오래 ! 킬리만자로 정상에 오를 때에나 입고 갈 등산 장비를 갖추고서는 도봉산을 오른다. 산 정상에 오르면 나이 지긋한 아주머니가 파란색 고무 슬리퍼를 신고 오이를 판다. 아무 등산 장비도 갖추지 않고 말이다. 한국인은 유행에 살고 유행에 죽는다. 대, 다, 나, 다 !
개성 있는 패션 감각과 유행에 민감한 감각에는 차이가 있다. 요즘 유행하는 캐나다 구스 점퍼를 입었다는 사실은 유행에 따르는 소비 형태라고는 할 수 있지만 개성 있는 패션 감각이라고는 할 수 없다. 또한 알록달록한 옷을 입는다고 해서 그 사람을 두고 개성 있는 패션 감각이라고 할 수 없다. 우리가 어떤 사람이 입은 옷차림새를 보고 알록달록하다고 느낀다는 것은 전체적인 색의 균형 감각이 깨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개성이란 그 사람만이 가지고 있는 어떤 표식'이다. 스티브 잡스의 옷차림'은 오롯이 스티브 잡스的이다. 그는 같은 옷을 수백 벌 갖추고는 365일 같은 스타일을 고수하지만 이 불변성은 스티브 잡스를 설명할 때 항상 따라다니는 고유한 패션 감각이 된다. 이런 것이 개성이 아닐까 ?
5. 콩나물에 대하여 : 백화점과 재래시장
콩나물은 저렴한 식재료로써 서민의 대표적 먹거리이자 알뜰 주부인가 아닌가를 판가름하는 리트머스로 작용한다. 사실 콩나물이야말로 드라마 최다 출연 기록'으로 기네스북에 오를 만한다. 일일 가족 드라마'에서 콩나물은 빠지지 않고 등장한다. 신스틸러 scene stealer 다. 극본을 쓰는 작가는 알뜰 주부나 억척 아줌마를 표현하기 위해서 콩나물을 등장시킨다. 그녀들은 시장에서 한 줌 더 달라고 실갱이를 벌인다. 안 주면 빈 틈을 노려 한 줌 훔쳐서 도망친다. 정확히 말하면 절도인데 이것을 덤 문화'라고 우긴다. 내가 시장에서 생선을 팔다 보니 시장 돌아가는 꼴을 아는데, 콩나물을 파는 사람은 100% 밑지고 판다. 두부처럼 정량이 없으니 사람들이 한 줌 한 줌 걷어가다 보니 항상 손해를 본다는 것이다. 이 말은 콩나물을 파시는 할머니에게 직접 들은 소리'이다. .그런데 과연 이러한 드라마 속 억척 주부 풍경이 미덕이 될 수 있을까 ?
허리가 구부러진 할머니가 파는 콩나물을 덤이라는 이유로 자꾸 더 달라고 요구해서 결국에는 손해를 보게 만든다면 이게 과연 미덕인가 ? 반면 백화점에서 팔리는 콩나물은 같은 콩나물이라고 해도 재래시장보다 비싸게 팔린다. 재래시장에서 덤을 요구하며 억척스럽게 생활하던 주부도 백화점에서 콩나물을 살 때는 기가 죽어서 흥정을 하지 않는다. 그런 분들에게 꼭 한마디하고 싶다. 에누리는 백화점 가서 합시다 !
6. 눈 맞추기
실제로 인간은 타인과 눈을 30초 이상 맞추지 못한다. 학술적 근거에 의한 주장이 아니라 내 경험이다. 취미 삼아 사람들 얼굴을 그려주고는 했는데 스케치를 위해서 눈을 마주치면 서로 민망해서 30초 이상을 버티지 못한다. 반드시 시선을 외면하게 된다. 짐승도 마찬가지다. 짐승에게 있어서 시선을 외면하지 않는다는 것은 싸우겠다는 메시지로 읽힌다. 인간도 이와 비슷한데 화가 나면 눈을 동그랗게 뜨고 얼굴을 들이밀게 된다. 시선을 회피하지 않는다는 것은 싸우겠다는 의지'이다. 자화상은 대부분 정면을 바라본 자세를 취해서 그림을 감상하는 사람과 마주보게 되는 구조를 가지고 있다. 그래서 피카소의 자화상을 볼 때 관객이 느끼는 감정은 긴장감이다. 실제로도 피카소는 타인에 대한 지배욕으로 악명이 높았던 사람이다. 반면 고흐의 자화상은 정면을 응시한다기보다는 살짝 다른 쪽을 바라본다. 관객은 당연히 이 그림 속 사내와 정면으로 마주치지 않기에 편안하게 그림을 감상할 수 있다. 고흐는 성직자가 되고 싶었을 정도로 이타적 인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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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연인 관계인 남녀는 24시간 서로 눈을 맞추며 바라보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그것은 착각이다. 내 말이 거짓말이라면 지금 당장 사랑하는 사람과 자연스럽게 30초 이상 눈을 맞춰봐라. 어색하다. 사랑하는 사이는 서로 마주보며 맺는 관계가 아니라 가자미처럼 흘깃흘깃 옆을 훔치며 맺는 관계이다. 이 동영상 속 여자는 행위예술가'이다. 현대의 단절과 그에 따른 고독'을 주제로 낯선 이와 1분 간 눈빛을 주고 받자는 기획으로 만들어진 퍼포먼스이다. " 고독한 현대인이여, 소통하라 ! " 가 이 퍼포먼스의 주제였다. 공격 본능을 제거한 상태에서 상대방과 눈을 맞추면 어떤 감정이 생길까 ? 여기에 머리 위로 올린 안경 하며 캔버스 신발로 포인트를 준 백발의 노신사가 등장한다. 행위예술가인 여자가 눈을 떠 이 노신사를 바라보는 순간, 뜨거운 눈물을 흘린다. 30년 전에 헤어졌던 남자친구였던 것이다. 그녀가 먼저 남자의 손을 잡는다. 남자가 낮게 속삭인다. " 내 돈 갚어 ! " 구경꾼들은 그것도 모르고 감동해서 박수를 친다. 잘... 알지도 못하면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