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자왕 사사키 조.
종종 내 정치적 색깔'이 무엇인지 궁금해 하는 사람들이 많다. 닭똥 같은 꾀죄죄죄죄한 교양만 있다면 이명박과 그 잔당'이 매우 부도덕한 집단이라는 사실을 쉽게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어떤 사람이 이명박과 그 잔당들에 대해 비판적이라고 해서 그 사람이 교양과 도덕을 갖춘 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새누리는 우익 집단이라기보다는 (1인)이익 집단에 가깝다. 문제는 내가 노무현 정권을 지독하게 싫어한다는 점이다. 한미 fta 진행, 노동법 후퇴 그리고 삼성을 말 그대로 글로벌하게 키운 것은 바로 노무현 정권'이었다. 허각보다 인기 없던 각하가 삼성을 " 프랜들리 " 하게 키웠다면 노무현 정권은 삼성을 " 글로벌 " 하게 키웠다. 노무현 정권 때 한미 fta를 총지휘한 통상교섭본부장 김현종은 2009년에 삼성전자 해외법무 사장을 역임했으며 중앙일보 홍석현 사장은 노무현 정권 때 주미대사'를 지낸 것을 보면
삼성의 " 또 하나의 가족 " 이 알고 보니 노무현 정권이었다는 점을 단적으로 보여준 사례라 할 수 있다. 자칭 진보 정권이라고 했던 김대중 - 노무현 정권 10년은 역설적이게도 정리해고법, 파견법, 비정규직법이라는 3대 노동 악법을 만들어 850만 비정규직을 양산한 정권이었다. 믿는 도끼에 발등 찍힌 꼴이었다. 그러다 보니 나는 새누리 지지자들에게 욕을 먹으면서 동시에 김대중-노무현 지지자들에게도 욕을 먹었다. 어디 그뿐인가 ? 문화적 취향도 마이너的이어서 셰익스피어, 하루키, 김연수, 신경숙 작가와 정성일 영화평론가와 신형철 문학평론가 그리고 최근에는 강신주의 " 철학을 빙자한 김미경 식 호통 힐링 " 을 싫어한다고 집요하게 말풍선을 띄워서 거의 모든 사람들로부터 " 재수없는 말방귀 새끼 " 라는 소리를 듣기에 이르렀다. 가재미 눈으로 나를 대하는 사람이 많아졌다는 뜻이다.
그래, 시바 ! 나 재수없는 말방귀 새끼'다. 어제였다. 비로그인으로 접속한 이가 내게 댓글 하나를 남겼다. " 드디어 너라는 놈의 정체를 알았어, 사사키 조. 크으으으으으으으으 " 그리고 덧글과 함께 영화 속 장면을 갈무리한 주소를 걸어두었다. 장면을 갈무리한 영상은 벌거벗은 남자가 야시시시시한 얼굴로 눈을 살짝 감은 모습이었다. 절정에 다다른 남자의 얼굴이었던 것이다. 사사키 조'라고 불리우는 일본 배우였다. 나는 얼굴이 한라봉처럼 샛노랗게 되어서 몸을 바들바들 떨었다. 급히 이 덧글을 지웠지만 지금도 떨리는 심장을 멈출 수가 없다. 드디어 올 것이 온 것이다. 카스테라와 크래커가 빚어낸 맛있는 불행. 아, 숨기고 싶은 내 과거, 그렇다 ! 내게는 숨기고 싶은 과거가 있었다. 내 과거를 아는 자가 폭로를 하기 전에 먼저 여러분에게 고백을 해야 할 시간이 왔다.
그가 내게 보낸 캡쳐 장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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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 사사키 조, 빤스 벗고 덤벼라 > 장면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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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사키 조, 나는 일본에서 사사키 조' 란 이름으로 활동했던 성인 av배우였다. 내가 포르노 배우가 된 계기를 말하기 위해서는 먼저 10년 전에 벌어졌던 불행했던 일로 되돌아가야 한다. 사랑하는 여자가 있었다. 그때는 피 끓는 청춘이어서 눈만 마주쳤다 하면 온몸이 딱딱해지던 시절이었다. 여자의 몸이 촉촉한 카스테라였다면 내 몸은 쎈 불에 달구어진 딱딱한 크래커'였다. 여자는 딱딱한 크래커를 먹고 싶어 했고, 남자는 촉촉한 카스테라를 뜯어먹고 싶어 했다. 시도 때도 없이 성욕이 스파크를 튀기던, 그런 세월이었다. 지금 이 글을 읽는 이들이 피 끓는 청춘이라면 애인과 함께 비디오방'을 가면 안 된다고 충고하고 싶다. 비디오방이란 혼자서 가면 집중이 잘 되지만 둘이 가면 집중이 안 되는 곳이 아니었던가 ? 나는 그녀의 촉촉한 카스테라를 먹고 싶어 했고,
여자는 내 딱딱한 크래커를 먹고 싶어 했다. 내가 먼저 말했다. " 내 근사한 크래커 줄까 ? 내 크래커를 너에게 줄 테니 넌 내게 카스테라를 주렴. 우리 서로 바, 꿔 먹을래 ? " 그렇게 우린 포장지를 벗기고 맛을 음미했다. 그게 화근이었다. 비디오방에 설치된 몰카가 그 모든 것을 지켜보고 있었다. 이 야동'은 디지털 세대 맑시스트 김본좌'에 의해 LTE보다 빠른 광속으로 퍼져나갔다. 제목은 < 정자왕 > 이라는 이름으로 알려졌다. 아마 이 글을 읽는 사람 중에 이 동영상을 본 적이 있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렇다, 그 동영상 속 사내가 바로 나다. 8월 우기에 쏟아지는 비처럼 엄청난 정액을 쏟아내던......
나는 그 동영상으로 인해 직장도 그만 두어야 했고, 심지어는 대인기피증에 시달려야 했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길 바랐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 모시모시 ? 유, 곰곰발 선생 ?! 나, < 정자왕 > 봐써. 재미써, 재미써, 재미써. 선생님 정자 콸 ~ 콸 ~ 스고이 ! 선생 페니스 가와이 !!!! " 전화를 건 사람은 일본 AV업계 서열 2위인 식스나인 어덜트 무비社'의 사장 오이치 사토 씨(동경 오토모토 거주, 53세)였다. 그가 떠듬거리며 한 말을 종합하자면 cum계열 포르노를 공략해서 시장 점유율을 높이겠다는 야심찬 계획을 진행 중에 있는데 이 cum계열 포르노 주인공으로 나를 채용하고 싶다는 것이었다. " 선생님 정자 콸콸콸, 너무 많아. 너무 많아. 판타스틱해 ! " 당시 먹고 사는 길이 막막했던 나는 그 길로 현해탄을 건너 포르노 배우가 됐다.
그때 사용했던 내 이름이 바로 사사키 조였다. 오이치 사토 씨는 나를 보자마자 신체 검사를 했다. 사토 씨'가 말했다. " 선생, 포르노 배우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아시오 ? 사정 시간 ?! 그건 약물로도 가능하니 필요 없소. 모양도 그닥 중요한 것은 아니오. 제작자 입장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부분은 바로 항문이오. 색과 모양새를 보는데 국화 무늬를 최고로 친다오. 그 누가 항문 모양에 신경을 쓰는 사람이 어디 있겠소. 하지만 포르노에서는 항문이 주인공이지. 냄새나고 더럽다며 누구나 부끄러워하지만 이곳에서는 항문이 예쁜 사람이 주인공이라오. 축하하오, 선생 ! 당신 항문은 아름다운 국화 무늬구려. 허허허. " 내가 나온 포르노는 < 정자왕 시리즈 28탄 > 까지 나왔고 < 소방관 시리즈 > 는 19탄까지 만들어졌다. 그 외 총 4930편의 영화를 찍었다.
대부분 제목이 사사키 조'라는 간판을 달고 나왔다. " 사사키 조, 거침없이 쏜다 " , " 사사키 조와 함께 하는 크림 거품 목욕 " , " 소방수 사사키 조, 차갑게 식은 불씨를 살리다. " 따위였다. 하지만 너무 혹사한 나머지, 어느 순간부터 수도꼭지를 틀어도 물이 나오지 않는 상태가 되었다. 단백질 보충에 도움이 될까 하고 계란 노른자를 하루에 백 개씩 먹어지만 정액은 더 이상 만들어짖 않았다. 말 그대로 씨가 마른 것이었다. 급히 병원을 찾았더니 의사는 다음과 같은 진단을 내렸다. 전립선 기능 저하에 따른 발기 부전과 동시에 치질'이라는 선고였다. 눈물이, 아...... 앞을 가렸다. 오이치 사토 씨'는 냉정한 사람이었다. " 맙소사, 사사키 조 !! 이제 당신은 거품 빠진 누런 맥주 신세야. " 나는 그 길로 버려졌다. 설상가상 내가 모은 돈은 모두 주식에 투자했는데 일본 경제 장기 침체로 인해 종이 조각이 되어 한 푼도 건지지 못했다.
곰곰발 매혈기'는 이렇게 비극적으로 끝났다. 내가 출현한 영화들은 일반적으로 유통되는 포르노는 아니었다. 일본 내 숙박업소 네트워크에서만 상영되는 포로노였기에 한국인이 내 정체를 알고 있으리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그러데 누군가가 내 정체를 알아버린 것이다. 누구였을까 ? 새누리 지지자였을까 ? 아니면 노무현, 김대중 지지자 중 한 명이었을까 ? 김연수, 신경숙, 강신주 지지자 ?! 여튼 다 털어놓으니 속이 후련하다. 나 곰곰생각하는발, 아니 사사키 조'였던, 나는 한때 포르노 배우였다. 당신들의 손가락질 겸허히 받아들이겠다. 건투를 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