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은,
겨드랑이 속으로 숨어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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팀 아이텔 / Untitled (Observer) / Oil on canvas / 35x30cm / 2011
어느 블로거 曰 : 우파는 주로 자기계발서를 읽고, 좌파는 인문사회학'을 주로 읽는(다고 한)다. 하지만 요즘 잘나가는 몇몇 인문학(자의 책)이 답을 제시하지 못한 채 진영 논리에 빠져서 구룡산 뜬구름 위에서 뒷짐만 진다고 비판한다. 비전을 제시하지 못하면 자기계발서'랑 다른 게 뭔가, 라는 주장이다. 개인적 판단을 전제로 하자면, 원래 철학이란 질문을 던지는 학문이지 답을 제시하는 학문이 아니다. 답을 구할려면 책을 읽지 말고 성경이나 불경을 읽어야 한다. 만약에 어떤 인문학서가 명쾌하게 답을 제시했다면 그것은 인문학서가 아니라 자기계발서'다. 자기계발서만큼 답을 분명하게 제시하는 책은 없다. 자기계발서의 특징은 실천하기 무척 어려운 것을 어이없을 정도로 쉬운 것처럼 말한다. ( ※ 지금 다시 읽어 보니 내가 그 블로거가 쓴 글을 오독한 거 같다. 그도 나와 같은 생각이다. )
" 남들보다 10분 일찍 일어나서 날마다 영단어 5개 외우면 10년 후 토익 만점 - 어때요, 참 쉽죠잉 ? " 은 명쾌한 답을 제시하는 것 같지만 터무니없는 말일 뿐이다. 하루에 영어 단어 5개 외우는 게 어려운 일은 아니다. 하지만 문제는 " 예외 상태 없는 지속적 추진력 " 이다. OECD국가 중 연평균 근로시간 1위 국가에서 일하는 한국 노동자'에게 아침에 10분 일찍 일어나서 영단어 5개 외우라는 조언은 뻔뻔해 보인다. 그것은 한 달 내내 강도 높은 잔업량 때문에 밤 12시가 넘어서야 일을 끝마친 봉제공장 여성 노동자에게 사장이 " 일찍 들어가서 편히 쉬어 ! " 라고 말하는 것만큼이나 뻔뻔한 말이다. 하지만 자기계발서는 교묘한 수법을 동원해서 미션임파서블한 과제를 매우 쉬운 과제처럼 선동한다. 영어 단어 10만 개를 알아야 유창한 고급 영어를 할 수 있다는 말 대신 하루에 영어 단어 5개씩 외워서 10만 단어를 채우라고 한다.
눈 가리고 아, 웅하는 식이다. 자기계발서는 어떻게 해서든 선명한 답을 제시해야 한다. 그래서 실천하기 어려운 해결책을 쉬운 답'처럼 포장을 한다. 자기계발서에는 답은 있다. 다만 실천이 어려울 뿐이다. 그렇기 때문에 답을 제시하지 못하는 인문학은 자기계발서'와 다를 것이 없다는 말은 오류'다. 모 블로거는 강신주를 비판하면서 마르크스'라는 지식 상품을 팔지만 답을 제시하지는 못한다는 측면에서 자기계발서와 같다고 말하지만, 내가 보기에는 강신주는 답을 선명하게 제시한다는 측면에서 완벽한 자기계발서'다. 다만 그가 제시한 대안을 실천하기에는 아스트랄하다. 자본주의를 거부하라, 라는 말은 아사 직전에 놓인 아프리카 아이들에게 비만은 몸에 나쁘다고 격정적으로 말하는 것과 유사하다. 그가 말하는 바는 명쾌하다.
과소비를 조장하는 자본주의에 빠지면 비만이 된다, 살을 빼야 건강해진다, 루이비똥은 열량이 높은 과자'다. 과식의 주범인 냉장고를 버려라, 라고 말하면서 그 사이, 고개를 숙인 후, 방심한 틈을 타 주먹으로 어퍼컷을 팍, 끝 ! 문제는 대한민국 민중은 과체중'이 아니란 말이다. 상대적 빈곤에 시달리는 사람들에게 부자병에 걸리지 말라고 하면 쉰소리가 된다. 아프리카 난민에게 필요한 것은 말이 아니라 빵'이다. 강신주는 노숙자를 수치심을 모르는 존재'라고 정의를 내렸지만 노숙자는 수치심이 없는 존재가 아니라 영토성'을 잃어버린 존재'다. 그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 수치심 >을 찾아주는 일'보다는 < 곁 > 을 회복하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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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식적인 하루의 시작은 아침이 아니라 자정 이후'다. 우리는 흔히 아침이 시작되어야 새로운 하루가 시작된다고 착각하는데 사실이 아니다. 어제 밤 12시 정각에 당신은 무엇을 하고 있었나 ? 술을 마시고 있었다면 음주로 새날을 알딸딸하게 시작했고, 잠을 자고 있었다면 하루의 시작을 잠으로 시작했으며, 섹스를 하고 있었다면 섹스로 보람찬 하루 일을 시작했다. 그리고 아침에 눈을 뜨면 이미 새로운 하루가 꽤 많이 지난 상태'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결국 하루란 밤에서 시작해서 밤으로 끝난다. 확장하면 인생이란 밤으로 시작해서 밤으로 끝난다. 이처럼 밤은 인생의 전부'다. 낮은 밤에 비하면 스끼다시'다. 그래서 이선희는 < 아름다운 강산 > 이라는 노래에서 아름다운 강산을 예찬하면서 노래 중간에 " 밤밤밤... 밤밤... 밤밤밤밤. 봐라, 봐라, 봐라 밤 !!!! "
이라는 강한 후크송'을 선보이지 않았는가 말이다. 이선희는 " 보아라, 이 찬란한 밤을 ! " 이라고 외친다. 그녀는 밤이 하루를 시작하는 활력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 밤은 오묘하다. 이처럼 시작점을 어디에 두느냐에 따라서 의미는 차이가 난다. 사실 < 밤 > 은 억울한 측면이 있다. 공포 영화의 배경이 되면서 밤은 불길한 것으로 인식되고는 하지만 동전은 양면이라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밤이 아니었다면 수많은 문학작품은 탄생하지 못했다. 감성팔이 자기계발서'를 쓰는 작가에게 요구되는 감성은 인간에 대한 믿음, 사랑 따위'다. 그런데 역설적이게도 문학이나 인문학을 하는 사람에게 요구되는 감성은 인간을 어느 정도 경멸할 줄 아는 " 다크하며 삐딱하며 삭힌 홍어처럼 훅, 뚫는 " 서정'이다. 인문학은 사실 인간을 탐구한다기보다는 인간이 짐승이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경고하는 영역'이다.
밤은 아름답다. 밤이 선생이다. 밤밤밤 밤밤, 밤밤밤, 봐라 봐라 봐라 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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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은 한자 공부'를 한다. 아침에 일어나 하루에 한자 5개를 외우면 공자가 된다는 자기계발서에 홀려서 세운 계획은 아니다. 외운다기보다는 감상을 하는 쪽이다. 이 페이퍼를 쓴 이유는 [ 夜 : 밤 야 ] 라는 한자 때문이다. 조합을 보면 夕 : 저녁 석 + 亦 : 겨드랑이 액'으로 이루어진 형국'이다(라고 네이버 옥편이 친절하게 설명한다). " 저녁과 겨드랑이 " 의 조합은 쉽게 납득이 가지 않지만 이 이질적인 조합이 묘하게 시적'이다. 시적 긴장은 이렇게 서로 다른 오브제가 충돌할 때 발생하게 된다. 저녁과 겨드랑이라. 곰곰 생각한다. 하루를 사람 몸 부위로 비유를 하자면 < 밤 > 은 겨드랑이'에 해당된다는 소리'다. 겨드랑이'는 곁'이다. < 앞 > 이 공적인 인간 관계를 다루는 장소라면, < 곁/옆 > 은 사적인 관계로 이루어진다. 앞에 있는 사람에게는 말을 하지만 곁에 있는 사람에게는 속삭이게 된다.
모든 속삭임은 곁에서 나온다. 그래서 곁을 지키는 사람은 사랑하는 사람이 차지해야 할 자리'이다. 현대인은 편을 만드느라 곁을 잃어버린다. < 뒤 > 에는 많은 " 편 " 이 서 있지만 정작 < 옆 > 에는 " 곁 " 을 지키는 사람이 별로 없다. 밤은 그런 당신의 곁을 채우는 역할을 한다. 그렇다, 밤은 당신의 곁'이다 ! 그래서 밤은 속삭인다. 夜 라는 글자'는 참 많은 감성을 품었다. 동틀녁, 밤은 겨드랑이 속으로 숨어든다. 잠시, 사라졌다가 해질녁이 되면 다시 돌아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