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병과 속도.
7 : 오감도 + 초록 물고기
프랑스를 대표하는 히트상품은 나폴레옹과 백화점'이다. 몽마르세, 쁘랭탕처럼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백화점이 이미 1800년대 프랑스에서 시작되었으니 백화점은 프랑스가 발명한 발명품이 틀림없다. 이러한 방식이 미래 사회를 획기적으로 변화시킬 것이란 사실을 간파한 이는 그 유명한 발터 벤야민이었다. 그래서 그는 < 아케이드 프로젝트 > 란 책을 쓰기도 했다. 백화점의 전신이 바로 아케이드'다. 백화점에서 선보인 제품 진열 방식'은 획기적이었다. 사전 식 배치가 아닌 카테고리 방식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백화점은 가나다라 순으로 배치를 하던 방식을 과감하게 던지고 비슷한 제품끼리 끼리끼리 모아서 진열을 했다. 예를 들면 3층 전체를 큰 카테고리를 패션으로 묶은 후, 여기서 다시 중간 카테고리엔 남성 의류와 여성 의류로 분류하고 여기에 작은 카테고리로 악세서리, 피혁 제품 따위로 나누는 방식이다.
말 그대로 수백 켤레의 구두를 한 공간 안에 몰아넣어서 진열하는 방식'이다. 현대인에게는 이러한 방식이 익숙한 풍경이지만 당시에는 스펙타클이었다. 무엇보다는 이러한 진열 방식은 소비자가 직접 다양한 상품을 비교 평가할 수 있어서 알뜰한 소비가 가능하다는 이점이 있었다(라고 생각할 것이다). 그런데 정말 그럴까 ? 끼리끼리 모아서 상품을 진열 방식은 도리어 과소비를 부추길 수 있다. 당신은 비교 평가가 가능하기에 알뜰한 소비를 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오히려 비교 평가가 가능하기 때문에 과소비하게 된다. 백화점 내 공간 안에 상품을 나열할 때 동일한 가격대인 상품만을 진열하지는 않는다. 만 원짜리 시계가 있는가 하면 일 억짜리 시계도 있다. " 아이쇼핑 " 이라는 흔한 말이 있듯이 눈요기'는 공짜다. 만 원짜리 시계를 보다가 십만 원짜리 시계를 보면 만 원짜리 시계는 눈에 들어오지도 않는다.
이런 식으로 결국에는 일 억짜리 시계를 구경하기에 이른다. 그렇다면 당신은 애초에 만 원짜리 시계를 살 결심을 지킬 수 있을까 ? 아마, 당신은 처음 가졌던 소비 계획을 버리고 십만 원짜리 시계나 이십만 원짜리 시계를 고른 후 일 억짜리 시계 유혹에 넘어가지 않았으니 과소비를 하지 않았다고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착각이다. 당신은 애초 계획과는 달리 구 만원을 초과한 상태다. 내가 이 지점에서 하고 싶은 말은 끼리끼리 모아두면 서로 비교하고 평가하며 경쟁한다는 점이다. 조폭 영화'가 주는 교훈은 정글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초록은 동색이라거나 가재는 게 편이라는 말이 말도 안되는 말이 되었다는 사실을 일깨워 준다는 점이다. 이제는 한국 식 장르'가 되어버린 대표적 조폭 영화들 : 비열한 거리, 넘버3, 신세계, 범죄와의 전쟁, 초록 물고기'는 그놈이 그놈인 놈들끼리 모이면 서로 편이 되기는커녕 편을 가르며 치열하게 싸우는 군상을 다룬다는 공통점이 있다.
그러니깐 가재는 게 편이라는 말은 거짓말이다. 조직 구성원들은 서로 비교 평가를 하며 배신을 때릴 뿐이다. 그들은 필요에 의해 뭉쳤지만 목표는 모두 다르다. 조폭이란 인간 불량품들만 진열한 점포의 세계'이다. 그들은 주먹으로 세를 불리겠다는 필요에 의해 의리 따위로 뭉치지만 속내는 조직 내 우두머리가 되는 것이다. 이상은 시 < 오감도 > 에서 비슷한 놈들끼리 좁은 공간에 몰아넣은 후 모더니즘적 증후'를 읽어낸다.
13人의兒孩가道路로疾走하오.
(길은막다른골목길이適當하오.)
第1의兒孩가무섭다고그리오.
第2의兒孩도무섭다고그리오.
第3의兒孩도무섭다고그리오.
第4의兒孩도무섭다고그리오.
第5의兒孩도무섭다고그리오.
第6의兒孩도무섭다고그리오.
第7의兒孩도무섭다고그리오.
第8의兒孩도무섭다고그리오.
第9의兒孩도무섭다고그리오.
第10의兒孩도무섭다고그리오.
第11의兒孩가무섭다고그리오.
第12의兒孩도무섭다고그리오.
第13의兒孩도무섭다고그리오.
13人의兒孩는무서운兒孩와무서워하는兒孩와그렇게뿐이모였소.
(다른事情은없는것이차라리나았소)
그中에1人인兒孩가무서운兒孩라도좋소.
그中에2人의兒孩가무서운兒孩라도좋소.
그中에2人의兒孩가무서워하는兒孩라도좋소.
그中에1人의兒孩가무서워하는兒孩라도좋소.
(길은뚫린골목이라도適當하오.)
13人의兒孩가道路로疾走하지아니하여도좋소.
- 이상, 오감도 시 제 1호.
우선 이 시는 포화 상태에 따른 폐소 공포를 다룬다. 시인 이상은 의도적으로 띄어쓰기를 생략해서 좁은 공간 안에 갇힌 아해들의 호흡 곤란을 표현한다. 골목은 포화 상태로 인하여 숨을 쉴 수 없는 공간이 되었다. " 제13의아해가무섭다고그리오 "는 모두 13음절로 되어 있는데, 이는 시인이 13인과 13음절을 의도적으로 짜맞춘 것처럼 보인다. 제 13의 음절은 빡빡히 박혀서 숨을 쉴 수 없는 형국이다. 이 형국은 과밀도 공간 안에서의 개체수 실험을 위해 유리 상자 속에 투입된 실험 쥐'와 같은 꼴이다. 이 이미지는 공장식 양계사육장 혹은 유대인들을 강제로 벌거벗겨서 가스실에 몰아넣는 홀로코스트를 연상시킨다. 이 과정에서 무서운 아해와 무서워하는 아해로 분열된다. 193년대가 파시즘이 창궐했던 시대였음을 감안하면 이 시 또한 파시즘적 공포에서 벗어날 수는 없다. (파시즘은 파쇼에서 유래되었는데 원래 이 말은 묶음, 결속, 단결'을 의미했다)
이 시에서 중요한 핵심어는 疾走(질주)에서 [疾 : 병 질'] 이라는 한자'다. 疾은 < 疒 > 은 병에 걸려서 병상에 드러누운 형국 안에 < 矢 : 화살 시 > 가 합쳐진 글자'다. 원래는 " 화살에 박힌 상처 " 를 의미했으나 넓은 의미로 쓰여서 민첩하다는 뜻과 함께 질병, 괴로움, 불구자, 해치거나 해롭게 하다, 불길하다, 증오하다, 미워하다, 시기하다의 뜻을 내포하게 되었다. 그러니깐 이 민첩한 속도는 경쾌한 속도가 아니라 불길하며 불행한 속도'다. 골목에 갇힌 아이들은 빠르게 공포가 전염된다. 시인 이상은 < 오감도 > 라는 시를 통해 질병과 속도에 대한 공포를 읽는다. 이 속도는 불길하다. 영화 < 초록 물고기 > 에서 순수했던 막동이는 끼리끼리 모인 좁은 영토 안으로 편입되는 순간 순수를 잃어버린 채 쏜살같이 악에 전염된다. 뒷골목은 건달들이 구역을 빼앗기 위해 다투는 " 막다른 골목길 " 이다.
그곳은 한번 발을 들여놓으면 " 빠꾸 " 가 불가능한 세계'다. 오로지 앞으로 " 疾走 " 해야 한다. 발을 빼는 순간, 어떤 식으로든 그에 대한 대가를 치르게 된다. 한국 식 깡패 느와르의 법칙이다. 막동이는 자의 반 타의 반 이 싸움에 개입된다. 그는 스스로 거세(손을 부러뜨리는 행위)함으로써 다른 수컷들과는 달리 " 자리 " 에 대한 욕심이 없다는 사실을 분명히 밝힌다. 배태곤에게 그것은 감동적인 충성 서약'이었다. 그는 그렇게 비열한 거리 안으로 빠르게 스며든다. 막동이는 부러진 손가락이 다 낫기도 전에 보스의 신임을 얻어 호위무사'가 된다. 하지만 깡패 영화라는 점을 감안하면 이토록 빠른 안착은 완벽한 실패를 위한 달콤한 장치에 불과하다. 불행했던 자가 그보다 더한 곤경에 빠지면 < 비극 > 이 되지만 행복했던 자가 행복을 잃어버리게 되면 지난날을 < 반성 >하는 계기가 된다.
토마스 샤츠는 < 할리우드 장르의 구조 > 에서 슈레이더의 " 필름 느와르를 특징 짓는 7가지 반복적인 테크닉 " 을 소개하면서 필름 느와르가 " 물에 대해 거의 프로이트적인 집착이 있다 " 고 지적한 바 있다. 여기서 물의 대체자는 거울, 창문, 그 외 반사하는 물체들이다. 이 영화에서도 막동이는 자주 거울을 본다. 봄/seeing'은 괴물로 변하고 있는 이중적 자아에 대한 두려움이 무의식적으로 반영된 결과'이다. 제목 < 초록 물고기 > 가 암시하듯이 막동이는 남성이 지배하는 불의 세계와는 어울리지 않는다. 그가 꿈꾸는 세상은 물이 지배하는 세계'다. 영화 속 막동이 가족이 아버지가 부재한다는 사실은 눈여겨볼 만하다. 불이 아버지가 지배하는 세계라면 물은 어머니가 관할하는 장소'다.
그가 꿈꾸는 소망은 온가족이 버드나무집에 모여 작은 식당을 차리는 것이다. 버드나무가 냇가 근처에서 자라는, 물을 좋아하는 나무라는 점을 감안하면 마당 깊고 지붕 낮은 집은 물 위에 지어진 집이다. 그렇기에 초록 물고기를 쫒는 막동이는 물 밖으로 나와 뭍에서 숨을 쉴 수 없는 존재'다. 도입부에 해당하는 기차 안 장면에서 몇몇 무리에게 집단 폭행을 당한 막동이가 물에 젖은 스카프를 얼굴 전체에 덮는데 그는 물 냄새를 맡아야 힘과 용기를 얻는 것처럼 보인다. 이 장면은 그가 처할 미래의 암울한 복선을 암시하게 된다. 영화 마지막 장면에서 칼에 찔려 죽어가는 막동이는 자동차 앞유리에 얼굴을 파묻은 채 죽어간다. 그가 내쉬는 한숨은 고스란히 유리창에 반영되어 뿌연 입김'을 남긴다.
이 유명한 장면에서 막동이는 칼에 찔려 죽는다기보다는 뭍으로 나온 물고기가 숨을 쉬지 못해 죽는 것처럼 보인다. 마지막 숨을 내쉬는 물고기처럼 간절하다.
덧.
영화 좋다, 정말 좋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