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의 묘미 : 세월 호 보도와 히치콕 그리고 왕가위

 

 

 

 

영국에서 명성을 쌓던 히치콕은 바다 건너 할리우드로 갔다. 그가 할리우드 스튜디오 시스템을 통해 배운 첫 번째 교훈은 편집권이 감독이 아니라 스튜디오 입김에 의해 좌지우지된다는 점이었다. 제작자는 감독이 의도했던 것과는 다르게 편집하기 일쑤였다. 가만히 보고 있을 히치콕이 아니었다. 몸집은 곰 같았지만 생각은 여우였다. 그는 장면에 꼭 필요한 분량만 찍었다. 무슨 말인가 하면 : 100분짜리 영화를 찍으면 100분 분량의 필름만 찍어서 편집실로 보냈다는 뜻이다. ( 꼭 100분 분량의 필름만 촬영했다는 말은 아니다. ) 보통은 원활한 편집을 위해서 다양한 각도로 찍기도 하고 내용을 살짝 바꿔서 여러 번 촬영해 두면 편집 시 원하는 장면을 뽑을 수 있기에, 다른 감독들은 이러한 작업 방식을 선호하는 반면 

 

히치콕은 에누리없이 필요한 장면 분량만 찍었기에 편집권이 스튜디오에 있다고 해도 짜맞추기를 할 수 없었다. 영화 < 사이코 > 에서 처절하게 죽은 자넷 리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 히치콕 감독님의 영화는 필름 편집을 많이 하지 않는다고 했어요. 씁쓸한 경험을 통해서 깨달은 바가 있기 때문이라고 하시더군요. 영향력이 별로 없었던 시절에 감독님 뜻대로 영화를 못 만들고 다른 사람이 마음대로 필름을 잘라 버렸대요. 촬영 필름을 너무 많이 넘긴거죠. 그래서 감독님은 아주 꼼꼼하게 미리 계획을 세워서, 잘라낼 소지가 있는 부분을 아예 없애려고 했어요. 효과적인 부분만 확실히 찍으려고 했죠. ( 스티브 레벨로, 히치콕과 사이코 中 ) "

 

제작자는 히치콕의 꼼수에 주먹을 불끈 쥐었고 히치콕은 괄약근을 풀어 호탕하게 웃었다. 반면 왕가위 감독은 필름을 많이 사용하기로 악명이 높았다. 100분짜리 영화를 만들기 위해 엄청난 분량의 필름을 사용했다. 대표적인 영화가 < 동사서독 > 이었다. 몇 개월 동안 찍은 필름은 하루아침에 처음부터 다시 찍기 시작했다. 맡은 배역도  느닷없이 바뀌었다. 양가휘는 몇 개월 동안 연기했던 역할을 버리고 장국영이 맡았던 배역을 연기해야 했고 장국영도 마찬가지였다. 내용도 180도 바뀌었다. 왕가위는 이 영화에 대해 확신이 들지 않았고 우왕좌왕했고 제작비는 올라갔다. 그만큼 필름이 산더미처럼 쌓였다. 완성된 영화는 뒤죽박죽이 되었다. 장국영의 수염은 장면마다 들쑥날쑥했다. 오래 전에 촬영된 필름 분량과 섞이다 보니 엉망이 된 것이다. 그리고 주연인 줄 알았던 왕조현은 단 한 컷'만 등장한다.

 

영화는 애초에 생각했던 영화와 180도 달라졌다. 완벽하게 실패한 영화였지만 내게는 왕가위 영화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영화였다. 때론 실패가 위대한 영화를 만든다. 내가 히치콕과 왕가위 감독을 불러들여서 두 감독이 가지고 있는 작업 스타일을 비교하는 이유는 언론이 팩트'를 가지고 가위질'을 하는 과정을 설명하기 위해서다. 언론 조작은 매우 간단하다. " 가위질 " 이다. 취사선택에 따라 180도 달라진다. 언론사 데스크는 영화 편집실과 동일하다. 촬영된 장면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편집실에서 가위질로 내용을 바꾸듯이, 기자가 쓴 초고는 얼마든지 데스크에 의해 바뀔 수 있다. 아 다르고 어 다른 법이니깐 말이다. 특히 인터뷰 내용은 사실을 왜곡하기에 좋다. 세월 호 사고 유족들이 언론을 불신하는 이유는 편집이 되지 않은 현실과 언론 데스크를 통해 편집된 조작질 사이에 놓인 괴리감 때문이다.

 

박근혜 분향소 조문 장면만 해도 그렇다. 박근혜는 엄숙한 분위기에서 애도를 표하며 분향소를 한 바퀴 돈다. 슬픈 음악이 배경으로 깔린다. 뒤돌아서면 유족으로 보이는 늙은 노모가 서 있다. 그녀는 노모를 토닥이며 위로한다. 그런데 편집되지 않은 날것을 보면 실상은 전혀 다르다. 박근혜가 분향소를 두리번거릴 때 주위는 엄숙하기는커녕 거친 욕설이 오고갔다. 언론은 피맺힌 절규를 노이즈라고 판단하고 지웠다. 그리고 노컷 뉴스가 보도한 내용이 사실이라면 슬픔을 나누던 유가족은 유가족이 아니라 청와대가 섭외한 조문객이었다. 청와대는 이 사실에 대해 강력하게 부인하지만 판단은 국민이 한다. 설령, 사실이 아니라고 해도 박근혜의 조문은 예의가 없다. 어느 누구도 조문객을 위로하기 위해 분향소를 찾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명심해야 될 부분은 언론사가 제공하는 기사는 대부분 " 발췌본 " 이라는 점이다. " 발췌본 " 은 " 원본 "에서 따왔으므로 훼손이라 할 수는 없지만 이 재료를 가지고 가위질을 하면 내용은 전혀 다른 내용이 된다. 노무현 NLL발언이 대표적'이다. 새누리의 힘은 바로 편집에 있다. 재앙에 가까운 대참사 속에서도 해경은 왜 진도VTS 통신 내용 원본이 아닌 편집본을 제출했을까 ?  모를 일이다. 동영상 속 빨간 손톱이 강렬하게 기억에 남는다. 할 말이 없다. 잘빠진 사진 한 장을 위해, 그깟 사진 한 장을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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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미에르 2014-05-01 15: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전 오늘 한껀 했습니다.
이런걸 나르시즘 이라 할지는 모르겠지만 오늘 전 좀 멋진 놈이었습니다 -_-V

http://kaizi2011.blog.me/20209812436

곰곰생각하는발 2014-05-03 14:25   좋아요 0 | URL
분향소가 설치되었으니 많은 주민이 애도를 표하겠군요...

엄동 2014-05-01 15: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이게 뭔가요
뭐하는 짓인가요

곰곰생각하는발 2014-05-03 14:26   좋아요 0 | URL
희망이 없는 사회 같습니다.

만화애니비평 2014-05-03 00: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한국의 언론은 최고의 영화편집자인듯 합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4-05-03 14:26   좋아요 0 | URL
청와대와 언론에 대종상 편집상을 줘야 할 듯합니다.

samadhi(眞我) 2014-05-14 00: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무래도 저 할매는 성과급 고액연봉자가 아닐까 합니다. 멋째이 할머니가 되는 것이 제 꿈인데, 저 할매의 꿈은 무엇이었을까요? 제가 말하는 할매는 둘 다 입니다. 조문객 배우와 지시한 할매.

곰곰생각하는발 2014-05-14 09:36   좋아요 0 | URL
전 오히려 이 연극을 연출한 사람이 궁금합니다.
누가 이렇게 하자고 했으니 박근혜도 동의했겠지요. 길이길이 남을 명장면이에요...
 
인문/사회/과학/예술 주목 신간 작성 후 본 글에 먼댓글 남겨 주세요.

 

 

 

 

 

 

 

■ 5월 인문/사회/과학/예술 주목 신간

 

 

 

 

 

 

- 알라딘 신간 평가단 14기 활동

 

 

 

 

 

 

1. 개새끼들, 그럴 줄 알았다 !     

 

 

 

 

우선 " 고해성사 " 부터 하자. 내 독서 편력은 서평의 고수인 로자, 나귀, 파란여우 님'처럼 광범위한 독서량은커녕 대한민국 국민 평균 독서량보다 조금 많은 편'이다. 그렇기 때문에 고수인 양 뒷짐을 지며 " 어린 백셩이 니르고져 홀베이셔도 마참네 제 뜨들 시러펴디 몯한 노미하니아 내 이럴 윙하야 어엿비너겨 < 4월의 주목할 만한 도서 목록 > 를 맹가노니 어린 얄라디녀는 참고하라 ! " 라고 말할 자격이 없다. 뭘, 알아야 추천을 하고 그럴 것이 아닌가 ! 그렇다고 마음 내키는 대로 제비뽑기로 고를 수도 없는 노릇. 그래서 내가 고른 목록은 양 미간보다 좁아터진 독서 편력'을 바탕으로 선정할 수밖에 없다. 그러니까 " 아는 범위 안 " 에서만 골랐거나 특정 분야에 대한 순수한 호기심을 바탕으로 고른 결과이다. " 프랑스의 경제학자이자 철학자로 우리 시대의 대표적 탈성장 이론가인 세르주 라투슈 ( 책소개 글 ) " 가 쓴 < 낭비 사회를 넘어서 > 는 후자에 속한다. 이 글을 쓰기 전에는 이름을 들어본 적도 없는 작가'다. 그런데 이 책 목차를 훑다가 무릎 탁, 치며 아, 했다. 왜냐하면 내가 평소 생각했던 의문점들이 고스란히 제기되었기 때문이다. 옛날에는 저렴한 테엽 장치 시계'가 많았다. 하루에 한 번 시계에 밥을 주면 되니 건전지도 필요 없어서 보관만 잘하면 오래 쓸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저렴한 테엽 장치 시계'는 없다. 왜 그럴까 ? 소비자 입장에서는 제품 수명이 오래 가면 튼튼한 제품이라며 반기지만 기업 입장에서 그런 제품은 불량 제품에 가깝다. 이 책에서 저자는 기업이 " 일부러 제품 수명을 단축하거나 결함을 삽입하는 방식으로 애초 설계 시점부터 제품의 수명이 조작되는 것이다 " 라고 고발한다. 이게 무슨 개똥 같은 소리인가 ? 좀더 자세히 살펴보자. " 예를 들어 프린터에는 인쇄 매수가 1만 8000장이 넘으면 자동으로 작동을 멈추게 하는 마이크로 칩이 삽입되어 있다. 1940년 듀폰사에서 출시된 스타킹은 올이 풀리지 않고 자동차 한 대를 끌 수 있을 만큼 튼튼했지만, 자외선 차단 첨가물의 양을 조절한 이후부터 여성들은 규칙적으로 새 스타킹을 구입하게 되었다. 1881년 에디슨이 만든 최초의 전구 수명은 1500시간이었고, 1920년대 생산된 전구의 평균 수명은 무려 2500시간이었지만, 현재 우리가 구입하는 것은 제너럴 일렉트릭 등 기업 간 담합으로 1000시간 이하로 정해졌다. 수리가 불가능한 아이팟의 배터리가 제조 단계에서부터 이미 수명이 18개월로 제한된다는 것은 잘 알려진 바다. " 나는 이 문장을 읽고 나서 주먹 쥐고 일어났다. 그리고 소리쳤다. " 개새끼들, 그럴 줄 알았다 ! " ( 사회학 분야 )

 

▶ 기능이 많을수록 고장이 잘 난다

 

 

 

                                                                                                        

 

                                                       

                                

 

                  

2. 전문성과 통속성 사이

 

 

 

 

 

과학자가 실력은 없으면서 " 말빨 " 만 좋으면 위험하다. 대표적 인물이 황우석'이다. 그가 선보인 젓가락 신공은 말빨의 미학이 만들어낸 황홀한 판타지아'였다. 피디수첩'만 아니었다면 < 황우석 가전제품 신공 시리즈 2탄 > 숟가락 신공'도 선보였을 것이다. 이상적인 과학자는 오로지 연구 결과'만 가지고 평가를 받는다. 손은 가벼워도 좋지만 입은 무거워야 한다. 그들은 전문 용어와 고급 영어를 구사하며 권위 있는 과학 전문 잡지에 논문을 발표하는 방식을 선호한다. 하지만 스티븐 제이 굴드'는 대중적 글쓰기를 좋아했다. 그는 < 다윈 이후 > 머리말에서 " 내가 에세이들을 모아서 새로 펴낸 것에 대한 유일한 변명은 이 글을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 " 기 때문이라고 당당하게 고백한다.  따분한 자연 과학 이론을 쉽게 설명하기란 결코 쉽지 않다. 학자 본분에 충실하면 독자가 이해하기 힘들고, 그렇다고  독자에 촛점을 맞춰서 " 콩나물에 고춧가루 팍팍 묻혔냐이 ~ " 라며 지나치게 잔재주를 부리면 주객이 전도되어 경박하다는 소리를 듣는다. 하지만 굴드는 전문성과 통속성을 절묘하게 섞는 기술이 탁월한 과학자'다. 그는 < 내 어떻게 해서든 너를 이해시키마 - 를 주장하는 학자 > 에 속해서  " 철학, 신학, 종교, 야구, 미술, 소설, 광고, 영화, 학생들의 은어, 심지어 자신의 병까지 온갖 이야깃거리를 동원해 (책소개 글 발췌)" 독자를 이해시키려고 노력한 학자였다. 나는 그가 < 풀하우스 > 에서 " 4할 타자의 딜레마 " 로 진화의 패러독스를 설명했을 때, 그 감동을 잊지 못한다.  4할 타자의 딜레마 비유가 아니었다면 그가 주장하는 바를 이해하기는 쉽지 않았을 것이다. 사실 스티븐 제이 굴드는 뻣뻣한 동료 학자들로부터 많은 비판을 받아왔다. " 대중을 즐겁게 해주마-주의 " 는 점잖은 엘리트 뻣뻣 학자들의 심기를 건드렸기 때문이다. 하지만 20세기를 움직인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 가운데 하나였던 다윈이야말로 대중적 글쓰기에 촛점을 맞춰서 책을 썼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점잖은 엘리트 학자들의 이러한 지적질은 꼴값에 가깝다. 굴드는 전형적은 68세대'로 좌파적 신념을 가진  과학자였다. < 인간에 대한 오해 > 는 그의 정치적 성향을 잘 보여준다. 과학이 대중과 사회에 기여해야 한다는, 이 순수한 믿음은 언제나 감동적이다. ( 과학 분야 )

 

  

 

                                                                                                       

 

 

 

 

 

3. 귀환'이라는 말        

 

 

 

 

어릴 때부터 < 귀환 > 이라는 낱말이 주는 묘한 긴장감과 사명감에 끌렸다. 사내아이'라면 당연한 " 끌림 " 이다. 영화 < 터미네이터 2 > 에서 오스트리아 사투리'를 심하게 구사하는 아놀드 슈왈츠제네거'가 자진해서 용광로 속으로 빠지면서 " 돌아온당께 ~ " 라고 말했을 때, 이 비장한 서정'에 두 주먹 불끈 쥐었다. 남자는, 그런 존재다. 황당한 소리 같지만, 내가 프로이트 정신분석학에 대해 관심을 가지게 된 결정적 계기는 " 죽은 자의 귀환 " 혹은 " 억압된 자의 귀환 " 이라는 자극적 문장 때문이었다. 사선을 넘나드는 것도 모잘라서 아예 死者가 되어서도 반드시 돌아오겠다는 처절한 욕망 앞에서 나는 다시 한번 호기심이 발동했다. 물론 여기서 죽은 자의 귀환은 내가 생각하는 그런 삐-급 서정'은 아니었지만 말이다. 할 포스터의 < 실재의 귀환 > 은 순전히 제목이 멋있어서 고른 책이었다. 철학'보다는 미학'을 더 어렵게 생각하던 내가 그때 읽기에는 내공이 필요한 책이었다. 계룡산 뜬구름 스승으로부터 " 이제 하산해도 좋다 " 라는 말을 듣기 위해서는 계단 쓸기 10년, 밥 짓기 10년이 더 필요할 시점이었다. 그 후, 10년이 지났다. 할 포스터의 신간 < 콤플렉스 > 가 출간되었다. 이젠 제대로 읽을 수 있을까 ? 원제는 < The Art-Architecture Complex (2011년) >이다. 눈치가 빠른 사람은 콤플렉스'라는 단어가 부정적으로 쓰였다는 점을 간파했을 것이다. " 귀 밝은 이라면 아이젠하워 전 미국 대통령이 퇴임식에서 ‘군산복합체(military-industrial complex)’라는 말을 매우 경계하는 의미로 사용한 데서 그 부정적 뉘앙스 혹은 경계의 의미가 시작되었음을 알아차릴 것이다. 따라서 할 포스터가 만들어낸 ‘미술-건축 콤플렉스(art-architecture complex)’라는 말 역시 최근의 건축과 미술의 만남이 반드시 바람직하기만 한 것은 아니라는 점을 암시하고 있다. ( 책 소개글에서 인용 ) " 쉽게 말하자면 미술-건축 커넥션'이다. 이 책을 읽지 않아서 모르겠지만, 아마도 건축에 과도한 디자인이 사용되는 것을 비판적으로 다룬 것 같다 (이미 그는 전작인 < 디자인과 범죄 그리고 그에 덧붙인 혹평들  Design and Crime and Other Diatribes (2002년) >에서 자본화된 디자인을 신랄하게 깐 적이 있다)  대표적인 건축물이 바로 " 동대문디자인플라자 " 이다. 이 생뚱맞은 건축물을 볼 때마다 디자인에 목숨을 걸었던 사내아이, 5세 훈이'가 생각난다. 도심 주차 공간이 부족하기로 악명 놓은 동대문에 떡하니 자리잡은 널널한 건축물을 볼 때마다 < 모자란 것 > 은 주차 공간이 아니라 5세훈이의 머릿속'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 책은 마치 5세훈이에게 바치는 " 퍽유 - 헌정문" 같다. ( 예술 분야 )

 

           

                                                                                               

 

 

4. 말아톤                   

 

 

 

 

 

우우, 이상한 일이다. 

 

이 나이 먹도록 아직도 얼룩말'이 좋다니. 아아, 나이가 들수록 자동차나 오토바이에 " 몰빵 " 하는 또래와는 달리 플라밍고, 얼룩말, 악어, 문어, 개복치, 지렁이, 하늘소 따위를 좋아했다. 철이 들지 않았다는 증거인가 ? 하긴, 영화 < 말아톤 > 에서 백만 불짜리 다리를 가진 초원이'도 얼룩말과 초코파이를 좋아했으니깐 ! 이 책을 고른 이유는 표지에 그려진 " 단지 그대가 얼룩말 " 이기 때문이다. 표범이나 기린 무늬'도 매력적이지만 얼룩말처럼 횐색과 검은색 같은 극단적인 무채색만으로 만들어진 줄무늬 형태는 얼룩말이 유일하지 않을까 싶다. 동물원에 가면 얼룩말을 유심히 보게 되는데 줄무늬에 촛점을 맞춰 집중해서 보게 되면 아, 어느 순간 현기증을 경험하게 된다(다른 사람도 그런 경험을 했는지는 모르겠으나 내 경우는 그렇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내가 연필로 그린 그림 중 상당수는 얼룩말 줄무늬의 형태였다. 이 정도면 나 또한 초원이처럼 얼룩말을 항상 예의주시한다고 할까. 얼룩말 줄무늬'는 (얼룩말에게는 치명적인) 전염병을 옮기는 흡혈 쇠파리'를 쫓기 위해 진화한 흔적이다. 쇠파리'들이 가장 싫어하는 형태가 바로 얼룩말 줄무늬'라고 한다. 실제로 말파리가 기승을 부리는 지역에 사는 얼룩말일수록 줄무늬 수가 더 많다는 내용을 읽은 적이 있다. 이 사실을 책에서 읽었는지 아니면 신문 기사를 통해 읽었는지는 불분명하다. 만약에 책을 통해 읽었다면 재닌 베니어스의 < 생체 모방 > 아니면 데이비드 버스의 < 진화 심리학 > 에서 읽었을 것이다. (아님 말고!)  출판사 사이언스는 " 필립 볼 형태학 3부작’ 중 첫 번째 권으로 " 나온 < 모양 > 에 대해서 자연계의 패턴을 흥미진진하게 다뤘다고 소개한다. 단순히 생물학에 머물지 않고 물리학, 수학으로까지 범위를 확장했다고 한다. 자화자찬이야 책소개의 특성이니 됐고 !  무엇보다도 얼룩말이 표지를 장식하니 개인적으로 뿌듯할 뿐이다. 마치 내가 아는 친구가 타임지 표지 모델이 된 듯한 기분. 여담이지만 나 또한 초원이처럼 얼룩말 줄무늬 치마를 입은 여자를 보면 엉덩이를 만지고 싶다(만지고 싶다기보다는 벗기고 싶은 마음이 더 간절하지만). 오해는 하지 말자. 내가 만지는 것은 여자의 엉덩이가 아니라 얼룩말이니깐 말이다. 혹여, 내가 얼룩말 줄무늬 치마를 입은 당신의 엉덩이를 만진다고 해서 너무 노하거나 슬퍼하지 말라. 다시 한번 말하지만 내가 만진 것은 엉덩이가 아니라 얼룩말이니 말이다. 됐고 ! 내 취향과 변명'에 대해

 

애애, 하지는 맙시다. ( 과학 분야 )

 

 

                                                                                                           

 

 

 

 

5. 만화에 대한 오해      

 

 

 

 

대한민국만큼 만화를 천대하는 나라도 없다. 이 나라에서 < 만화 > 는 달고나, 쫀드기, 눈깔사탕이다. 불량식품이라는 말이다. 프랑스나 미국이 만화에 대해 깍듯이 예의를 갖추는 것에 비하면 학대 수준'이다. 학벌 사회이다보니 여성가족부와 교육부 꼰대들은 만화와 게임을 (박근혜의 처절하고 너절한 말투를 흉내 내자면) 성적을 갉아먹는 암덩어리 같은 존재요, (강마에 어록을 빌리자면) 똥덩어리 같은 존재'라고 생각한다. 착각은 자유이니 그럴 수 있다. 똥 묻은 개가 겨 묻은 개를 나무랄 수 있는 사회가 대한민국이니 말이다. 그들은 만화를 암적인 존재라고 판단하면서도 극장에 가서 " let it go " 를 따라 부르며 펑펑 운다. 만화는 서자'다. 아버지를 아버지라 하지 못하고 형을 형이라 하지 못하는 ! 그나마 알라딘이 신간평가단을 분류 별로 나누면서 인문 사회 과학 분야에 만화 분야를 포함한 것에 대해 박수를 보내고 싶다.  내가 보기에 리차드 아피냐네시가 글을 쓰고 스와바 하라시모비치가 그린 < 늑대인간 > 은 인문, 예술, 만화의 얼큰한 짬뽕이다. 왜냐하면 프로이트의 논문 < 늑대인간 > 을 만화로 각색했기 때문이다. " 맙소사, 이런 식의 퓨전'이라니 ! " 개인적으로 열린책들에서 출간한 " 프로이트 전집 " 가운데 가장 흥미로웠던  책이 < 늑대인간 > 과 < 꼬마 한스와 도라 > 였다. 출판사에서 제공한 미리보기 기능으로 그림체를 보니 어두컴컴한 느와르 장르 영화를 보는 듯한 착각이 든다. 누누이 주장하지만 프로이트는 의사라기보다는 위대한 탐정에 가깝다. 그리고 그의 논문들은 학술서라기보다는 탐정소설에 가깝다. 폄하가 아니다. 나에게 프로이트는 가장 위대한 추리소설가'다. ( 교양 만화 분야 )

 

 

http://blog.aladin.co.kr/749915104/6417133 ㅣ 섹스, 만화책 그리고 짬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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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립간 2014-04-30 15: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곰곰발님, 저와 비슷한 독서 취향은 ... 아니고 공통분모가 있죠^^

<바른 마음> 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01163675

인기 서재에 기대어 댓글로 한 권도 더 추천합니다. 추천 이유는 ; 제목이 멋져서요.


곰곰생각하는발 2014-04-30 15:35   좋아요 0 | URL
정말 직설적인 제목이군요. 근 10년 동안 이렇게 스트레이트한 제목은 처음입니다.
흥미롭습니다. 바른마음이라... 박근혜에게 한 권 선물하고 싶군요.

곰곰손 2014-04-30 21: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올~도도한곰발이 웬겸손? 위대한개츠비 빼곤 안읽은 책이 없으면서.ㅎㅎ
굴드는 예전부터 읽어보고싶었음.

곰곰생각하는발 2014-05-01 06:29   좋아요 0 | URL
누가 보면 내가 비로그인으로 들어와서 자화자찬하는 지킬앤드하이드 같다고 의심할 거 같다.
사실 나 문학책 거의 안 읽는다. 그냥 누가 좋다고 하는 것만 읽는 편...

수다맨 2014-05-01 01: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왠지 곰곰발님 출판사 취직하셔도 좋을 것 같습니다 ㅎㅎ 책 소개 문구를 기가 막히게 잘 쓰시는 것 같아요. 로쟈님 같은 분들이ㅡ대외적 이미지도 있고 해서ㅡ 어쩔 수 없이 진지 모드로 가던데, 곰곰발님은 거침없이 하실 말씀을 하시니 그저 문장이 아주 쫄깃합니다. 특히 "개새끼들 그럴 줄 알았다"는 문장을 읽고 나니 입에서 다디단 꿀맛이 흐르는군요ㅇㅎㅎ

곰곰생각하는발 2014-05-01 06:31   좋아요 0 | URL
아니 왜 그러냐면 가전제품이 확실히 옛날에 비해 엄청 수명이 단축되었습니다.
옛날에는 냉장고 사면 20년 쓰고 그랬다고 하더라고요.
지금 있는 김치 냉장고 3년인데 2번 고장나서 수리비만 20만 원 나왔습니다.
핸드폰 보세요. 밧대리 때문에라도 다른 폰 사게 되는데 그게의도적이라 생각해 보십시요...

2014-05-01 11:3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4-05-01 16:20   URL
비밀 댓글입니다.

rendevous 2014-05-01 13: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번에 들었던 어떤 강연에서 어떤 교수가 추리 소설, SF소설 등을 싸잡아서 '장르 문학' - 본격 문학에 안티테제로 취급하는 걸 보고 심기가 심히 불편했더랬죠. 최근에 작가란 무엇인가 움베르토 에코 인터뷰를 보니 그 나라의 문학 수준을 알려면 추리 소설을 보면 된다, 가 추리 소설의 위상과 가치에 근접한 인식일 텐데...

곰곰생각하는발 2014-05-01 16:21   좋아요 0 | URL
맞습니다. 에코가 그런 소릴 했어요. 장르 소설이라는 늬앙스 자체가 자기들은 중심부이고 너희들은 변두리다, 라는 속내가 읽히죠. 자기들이 하면 순수문학이고 다른 것은 장르 문학으로 구분하는... 약간 사이코 같죠..

만화애니비평 2014-05-01 15: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외로워도 슬퍼도 오덕은 안 울어!

곰곰생각하는발 2014-05-01 16:22   좋아요 0 | URL
오덕은 울어도 됩다. 그래야 진정한 오덕이 됩니다.
 

 

 

 

 

 

 

좋은 세월은 가고 나쁜 세월은 오고......

 

 

 

 

 

 

< 시티즌 X > 라는 케이블 티븨용 영화'가 있다. 티븨 영화'치고는 스테븐 레아, 도날드 서덜랜드, 막스 폰 시도우 같은 훌륭한 배우뿐 아니라 무엇보다도 제프리 드먼 ( 살인자 역 ) 이라는 조연급 배우를 좋아해서 보게 되었다. 내용은 소련에서 실제로 벌어진 연쇄살인사건을 다루었는데 범인은 12년 동안 52명을 살해했다.  그가 바로 " 안드레이 치카틸로 " 다.희생자 수는 치카틸로의 자백에 근거한 수치이니 실제로는 더 많은 사람이 희생되었으리라 짐작된다. 희생자들은 대부분 여성과 아이들이었다. 영화는 기대했던 것 이상이었다. 카메라는 스릴러 장르가 가지고 있는 " 겉멋이 잔뜩 든 잔재주 " 를 버리고 무뚝뚝하게 사건을 나열한다. 이 과정에서 당과 정부 그리고 기관의 무능이 여실히 드러난다. 이 영화가 " 비판의 촛점을 맞춘 부분은 바로 무능한 조직 " 이다.

 

안드레이 치카틸로가 첫 번째 살인을 저질렀을 때 잡았더라면 그 수많은 희생자'는 없었을 것이다. 첫 번째 살인의 경우 : 안드레이 치카틸로는 유력한 용의자로 지목되었지만 경찰이 엉뚱한 사람을 범인으로 지목해서 풀려나왔다. 또한 당은 연쇄살인이 더러운 자본주의의 산물이라고 주장하며 애써  이 사건들을 하나로 연결 지으려는 시도를 하지 않았다. 개별적 사건으로 정리되니 사건은 점점 미궁 속으로 빠지게 되었다. 같잖은 대의명분과 무능력이 수많은 희생자를 양산한 것이다. 세월 호 침몰 사고 보도를 보고 있자니 제일 먼저 떠오른 영화가 바로 < 시티즌 X > 였다. 박근혜는 세월 호 늙은 선장의 도피를 살인 행위에 비유했는데 언론에서도 지적했듯이 핵심을 잘못 짚었다.

 

사고 책임자를 단순하게 무책임한 선원과 구원파 탓으로만 몰고가는 것은 또 다른 재앙이 될 수 있다. 시간을 되돌려보자. 이 사건이 벌어지게 된 결정적 계기는 이명박 정권이었다. 이명박은 정권은 여객선 운항 연한을 25년에서 30년으로 규제를 " 프랜들리 " 하게 완화'함으로써, 청해진 해운이 폐기처분되어야 할 낡은 배( 18년 사용 ) 를 헐값에 사들여서 국내에서 뱃길 장사를 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 만약에 25년으로 규제가 묶여 있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 100억짜리 낡은 배'를 사서 5년 안에 본전을 뽑는 일이란 쉽지 않으니 애초에 세월 호를 구입하지 않았을 것 아닌가 ! 이래도 규제'가 암덩어리'라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을까 ?

 

세월 호는 2014년 4월 16일에 침몰했지만 사실 그 불씨는 이미 2009년에서부터 서서히 시작되었다고 보아야 한다. 그것은 마치 치키틸로가 1990년에 잡혔지만 그 시작은 첫 번째 살인이 이루어진 1978년부터 시작된 것과 같다. 이명박 정권이 규제를 완화하지 않았다면 세월 호는 없었을 것이다. 무책임한 선장과 선원'보다 이 사고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할 사람들은 세월 호를 띄울 수 있는 여건을 만든 이'들이다. 해피아, 해수부 마피아들이 그들이다. 하지만 2009년이 비극의 시발점'이었을까 ? 그렇지 않다. 방향타를 좀더 먼 곳으로 돌리면 1990년 세모 유람선 사고와 1987년 오대양 집단 자살 사건에 도달하게 된다. 전두환 정권과 " 프랜들리 " 한 관계에 있었던 유병언'은 증거불충분으로 풀려난다. 그때 제대로 수사를 하고 엄중한 처벌을 내렸다면 세월 호는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각각의 개별적 사건들이 모여서 거대한 참사를 양산했다.

 

사고를 낸 사람은 세월 호 선장과 선원들이지만 제1 주범은 세월 호'라는 배를 띄울 수 있게 만든 관료 사회의 암묵적 동의와 뒷거래'다. 이 악순환은 과연 뿌리 뽑을 수 있을까 ? 사건만 터지만 성금부터 헌납하는 사회는 과연 건강한 사회일까 ? 국가가 해야 할 일을 왜 국민이 나서서 금붙이를 내놓고 성금을 모금하는 것일까. 피해자에게 보상해야 할 보상금을 걱정할 정도로 대한민국은 그토록 가난한 나라였던가 ? 슬픔에 대해 애도하는 것은 인간이 갖추어야 할 당연한 도리이지만 슬픔 때문에 냉정을 잃으면 안 된다. 용서는 의미없다. 가끔은 지독해야 한다. 복수가 가장 아름다울 때는 지독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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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립간 2014-04-28 13: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투표를 하는 정도의 복수지만, 어떻게 지독하게...
구한말 세도정치에서 친일파로, 친일파에서 친독재개발로, 이제는 스스로가 권력을 행사하는 기득권 집단에게

게다가 역사 왜곡으로 미화를, '우리는 차별에 찬성합니다' 책에서 쓰여진 바와 같이 우리 세대보다 더 희망이 보이지 않는 (괴물인지 아닌지 모르겠지만) 다음 세대.

곰곰생각하는발 2014-04-28 14:01   좋아요 0 | URL
만날 용서만 하고 응징은 하지 않으니 이 꼴이 되는 겁니다.
용서- 코스프레'는 친일파들이 가장 좋아하는 퍼포먼스 아니겠습니까.
독일을 본받아야죠. 범죄에 자비란 없습니다.

유유 2014-04-28 14: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저... 서민인 저도 적은 돈이나마 기부를 했는데, 기부를 하면서도 이상하더라구요.. 다들 열심히 기부 많이들 하고 있잖아요, 연예인들도 몇천 몇억... 그거 왜 우리가 하고 있지? 싶더라구요. 그 돈이 아까워서가 아니라... 왜 아직도 다들 진도 체육관에서 열악한 환경에서 몇날며칠을 대기하고 있는지... 시신도 임시 안치되질 않나... 열받네요.

곰곰생각하는발 2014-04-29 02:08   좋아요 0 | URL
아픔을 나눈다는 의도는 알겠는데 이젠 국민소득 3만 불을 내다보는 자칭 경제10위권 국가 아닙니까.
옛날에는한푼두푼모아서 성금을 냈다 하지만 지금도 여전히 그런 식으로 해야 하는지 의문입니다.
뭔가 잘못되면 국가가 사비를 털어 배상금을 내야지요. 그게 맞는 것 같습니다.

세이지& 2014-04-28 15: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규제는 자동제어장치입니다..
앞날과..전체를 위한..

곰곰생각하는발 2014-04-29 02:09   좋아요 0 | URL
세이지 님 가만 보니 낯익은 닉네임 같습니다만...
기억이 가물가물하네요...

엄동 2014-04-29 16: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모든것들이 참

무의미하고

모든일들에 참

무기력합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4-04-30 05:04   좋아요 0 | URL
분통이 터집니다. 도대체 어디까지 적폐를 도려내야 제대로 될지 의문입니다.
박근혜부터 도려내야죠. 적폐의 첫 번째는 박근혜입니다.
 
[반란의 도시]를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반란의 도시 - 도시에 대한 권리에서 점령운동까지
데이비드 하비 지음, 한상연 옮김 / 에이도스 / 2014년 3월
평점 :
절판


 


 

 

 

 

공간은 정치적이다 !

 

 

 

우리는 일상 속에서 알게 모르게 정치적 행위에 동참하게 된다. 페이스북이나 블로그에 작성된 글에 대하여 " 좋아요 " 나 " 공감 " 을 클릭하는 행위도 정치적이며, 해경이 세월 호 승객 구조 현황을 설명하면서 지상 최대의 작전 운운할 때 " 개똥 같은 소리하고 자빠졌네... " 라고 소리치는 것도 정치적 행위'다. 그리고 육식을 버리고 채식을 선언하는 순간도 정치적 행위'에 포함된다. 둘 중 하나를 선택하는 과정은 기본적으로 이데올로기적'이다.  그런데 " 공간'은 정치적이다 " 라는 말에는 고개를 갸우뚱하게 된다. 생각하는 동물인 인간이 정치적이라는 말에는 쉽게 동의할 수 있으나 무생물인 공간을 두고 정치적 결과'라는 말에는 쉽게 동의하기가 어렵다. " 공간은 정치적이다 " 라는 말은 르페브르'가 한 말이다. 르페브르 선생이 한 말을 들어보자.

 

공간은 정치적이다. 공간은 이데올로기나 정치와 무관한 과학적 대상이 아니다. 그것은 항상 정치적이며 전략적이었다... ( 중략 ) 우리가 보기에 공간은 동질하게 보이고, 순수한 형태로 완전히 객관적인 것처럼 보이지만, 그것은 사회적 산물이다. 공간의 생산은 특정 상품의 생산과 유사하다.

- 르페브르, 공간의 생산

 

르페브르가 보기에 < 공간 > 은 자본주의의 산물이다. 왜냐하면 공간이란 이윤 창출과 노동 착취에 의해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자본가는 목 좋은 곳(중심부)에 집중적으로 자본을 투자하여 지대와 임대료를 높인 후 원래 그곳에서 살던 원주민을 가차없이 주변부로 내쫓는다. 전망 좋은 곳은 모두 자본가가 차지하게 된다. " 강남 " 과 " 강북 " 은 그런 식으로 만들어진 공간'이다. 원주민이 살던 곳에서 쫓겨나 피난길에 오르는 과정은 다음과 같다.

 

현대 대도시가 성장하면서 일부 지역, 특히 도심 지역에는 인위적 가치가 부여된다. 이 가치는 시간이 흐르면서 점차 높아진다. 도심 지역에 들어선 건물은 시간이 흐르면서 토지의 가치를 높이기보다는 떨어뜨린다. 주변환경이 변하면 어울리지 않게 되기 때문이다. 이제 그런 건물은 철거 되고 다른 건물이 세워진다. 도심 지역에 위치한 노동자 주택에서도 같은 일이 벌어진다. 아무리 인구가 과밀한 지역의 노동자 주택이라 해도 임대료는 일정한 최고한도를 넘어서 상승하지 못한다. 설령 상승한다 해도 그 속도는 매우 완만하다. 이제 이런 노동자 주택이 철거되고, 그 자리에 점포, 상품창고, 공공건물이 들어산다.

 

놀랍게도 위 단락( 파란색 문장)은 엥겔스가 1872년에 쓴 < 주택 문제에 대하여 > 에서 지적한 내용'이다. 140년 전이나 지금이나 변한 게 없다. 문제는 자본의 공간 약탈뿐만 아니라 정치 행정'에서도 중심에서 벗어난 변방은 차별 대우를 받는다는 데 있다. 강남구 국회의원 김종훈 의원 나리 선생님께서 말씀하신 " 저기, 저어기 어두컴컴한 " 비-강남은 개차판 대우를 받는다. 좋은 예가 cctv 설치'다. 5세 훈이'는 강남의 자랑스러운 아들답게 cctv를 부자 동네인 강남에 우선적으로 집중 설치했다. 표를 몰아준 강남 3구에 대한 보은 차원이었으리라. " 도둑놈이 부잣집 털지, 가난한 흥부집 터는 거 봤냐 ? " 라는 자세'라고 할까 ?  그런데 치안 사각지대는 부자 동네'보다는 가난한 동네에 몰려 있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흥부가 사는 동네에 cctv를 집중 배치해야 되는 게 순리 아닐까 ?

 

방범 장치가 강남에 집중되다 보니 강도들은 상대적으로 cctv가 설치되지 않은 강북으로 이동했다. 대표적인 인물이 바로 유영철이었다. 유영철은 강남에 비해 치안과 방범이 부실한 강북을 작업실로 선정한 것이다. 공간이 정치적이라는 사실을 실감하게 되는 대목이다. 이후, 서울시에서 부랴부랴 강북에 cctv를 대대적으로 설치하자 쥐새끼 같은 범죄자들은 다시 cctv가 없는 곳으로 옮겼다. 어디로 갔을까 ? 서울 외각 지역'이다. 강호순은 이곳에 터를 잡고서 더러운 욕망을 채웠다. 결국은 자본이 집중적으로 투입된 공간의 치안 때문에 변두리는 점점 치안의 사각지대가 되어 버렸다. 이들에 의한 희생자는 대부분 가난한 이들이었다. 이 얼마나 정치적인가 !

 

데이비드 하비는 < 반란의 도시 >에서 " 르페브르의 구상(도시권) " 을 확장하고자 한다. " 나는 르페브르의 결론에 기본적으로 동의하지만, 그의 결론을 한층 더 선명하게 부각하고자 한다. ( 16쪽 ))  " 하비는 모든 도시 구성원들은 계급과 상관없이 도시에 대한 권리, 즉 " 도시권 " 을 가진다고 주장한다. 노동권이 노동자의 권리라면 도시권은 도시 노동자의 권리로써 " 도시인의 행복추구권 " 이다. 이 책에서 하비는 자본이 원주민을 내쫓고 공간을 약탈하는 과정을 추적한다. 파리 코뮨, 1942년 뉴욕에서 시작된 미국 대도시 재편성 프로젝트, 2008년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를 통해 자본의 도시화'를 폭로한다. 이 목록에는 악명 높은 서울의 재개발도 포함된다.

 

하비는 말한다 : " 1980~90년대 서울에서도 건설회사와 토지개발업자가 험상궂은 용역깡패를 동원해 달동네 주택을 대형 해머로 때려 부수고 주민을 몰아내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1950년대부터 가난한 사람이 거주하던 고지대 토지가 1990년대에 이르로 가치가 높아졌기 때문에 빚어진 일이다 ( 51쪽 ) " 하비는 이러한 도시화에 대해 회의적이다. " 극적인 도시화는 인간의 행복에 기여했는가 ? ( 27쪽 ) " 그는 도시화가 " 도시노동자를 아노미와 소외, 분노와 좌절이 만연한 세상 " 을 만든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태도는 < 도시권 > 이 기본적으로 < 행복추구권 > 과 일맥상통하는 개념이란 사실을 말해준다. 왜냐하면....

 

10년 전 행동 과학자, 신경학자, 심리학자(프린스턴대학의 한 노벨상 수상자를 포함하여)이 모여 행복의 지수를 측정하고 행복의 원인을 규명하려는 실험을 진행했다. ( 중략 ) 그렇다면 이 실험 결과는 어땠을까 ? 새삼스러울 것도 없이 모든 사람이 섹스를 통해 더 큰 행복감을 느끼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 다음으로는 하루의 일과를 끝내고 동료나 친구와 한잔 걸치는 것이 큰 점수를 얻었다. ( 중략 ) 행복하게 사는 방법은 아주 간단하다. 집에서 그리 멀지 않은 안정적인 일터에서 즐겁게 일하고 동료들과 한잔 걸친 후 집에 가서 섹스를 하는 것 ! 행복의 비밀은 바로 여기에 있었다 !

 

- 행복은 어디에 있는가, 리처드 스코시

 

 

< 행복은 어디에 있는가 > 라는 책에서 인상적인 부분은 < 행복의 조건 > 중 " 집에서 그리 멀지 않은 " 이라는 단서가 포함되어 있다는 점이다. 실험대상자 인터뷰에 의하면 출퇴근 왕복 2시간 이상이 걸리면 행복하지 않다고 생각한단다. 자동차 문화가 발달한 나라'에서도 이 지경이라면 지옥철이라는 대중 교통을 이용해야 하는 한국인은 어떨까 ? 부동산 개발과 약탈의 경제에 의해 도시에서 변두리로 쫓겨난 도시 노동자가 느끼는 행복 지수는 얼마나 될까 ? 재개발 사업은 필연적으로 도심과 함께 inner city ( 황폐화한 도심 빈곤 지대 ) 를 양산한다. 한국에서는 가난한 사람일수록 출퇴근 시간이 오래 걸린다. 치솟는 집값 때문에 가난한 도시 노동자는 점점 도심 외각 변두리'로 옮긴다. 그만큼 출퇴근 시간은 길어진다. 전설적인 노동 시간에 더해져서 전설적인 출퇴근 시간을 더하면 가난한 도시 노동자에게 대한민국은 지옥이나 다름 없다.

 

< 반란의 도시 > 에서 아쉬운 점이 있다면 : 시작은 창대했으나 끝은 미미했다는 점이다. 이 책 마지막 장인 7장 제목이 " 월스트리트를 점령하라 " 인데, 이 장은 다른 장에서와는 달리 어조가 사뭇 격정적이다. 월가 시위에 " 필 " 받아서 선동적으로 쓴 글 같다. 르페르브의 구상'을 학문적으로 정립하려는 시도가 느닷없이 삼일 독립 선언문 낭독 같은 비장한 느낌을 준다. 그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간단하다. 공장 노동자 중심인 투쟁에는 한계가 있으므로 도시 노동자로 그 범위를 확대해서 자본과 싸워야 한다는 것이다. " 만국의 노동자여, 단결하라 ! " 라는 데 그 누가 돌을 던질까마는, 급히 매조지해서 용두사미로 끝나는 것 같은 아쉬움이 든다. 됐고 ! 하여튼... 만국의 노동자여, 단결하자 ! 그 길밖에는 없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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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립간 2014-04-28 11: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58201657

'건축, 권력과 욕망을 말하다' 제가 별 5개 준책 입니다. 이미 읽으셨는지 모르겠지만, 책 내용에 공감할 부분이 많을 것입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4-04-28 12:28   좋아요 0 | URL
고맙습니다. 좋은 책 소개해 주셔서 말입니다. 참고하도록 하겠습니다. 별 다섯이라... 귀중한 정보로군요..

rendevous 2014-05-12 02: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바리케이드를 설치하지 못하도록 파리의 도시계획을 세웠다는 구절을 보고 뜨끔 했더랬죠. 함돈균 평론가의 글이었던 것 같긴 한데 청와대는 높은 곳에서 아래를 내려다 보지만 영국의 건물은 평등한 위치에 자리잡고 있다는 걸 지적했던 게 기억납니다. 타워팰리스 같은 곳이나 으리으리한 집에서 살면 사람들이 '미개해'보일 지도 모르겠습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4-05-12 10:36   좋아요 0 | URL
독재자의 특징이 대부분 거대한 것을 좋아합니다. 히틀러가 대표적이었죠. 그는 바그너의 웅장한 무대극을 그대로 도시 계획에 옮긴 이였습니다. 아마, 히틀러가 성공했다면 거대한 고딕 도시가 생겼을 겁니다. 크고, 높고, 그런 것들....
 
[투명사회]를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투명사회
한병철 지음, 김태환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1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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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이 없는 건물은 있지만

문이 없는 건물은 없다.

 

 

※ 어제 급히 < 투명사회 > 리뷰를 올렸는데 생각해 보니 성의 없이 쓴 티'가 " 확 나서 " 다시 읽으니 " 화나서 " 다시 쓴다.

 

 

 

이 세상 모든 종교는 " 위에서 다 내려다보고 계십니다 ! " 라는 말씀을 신도들에게 전파한다.  " 그분이 다 보고 계십니다 " 라는 말은 곧 " 그분은 다 알고 계십니다. " 라는 뜻이 된다. 종교가 가진 위엄'은 바로 " 투시 / 투과(성) " 에 있다. 부처님과 하느님은 겉을 꿰뚫어 속을 속속들이 보는 능력을 가진 존재'다. " 남산 위의 저 소나무 철갑을 두른 " 다 한들, 신 앞에서는 벌거벗은 초라한 소나무에 지나지 않는다. 신 앞에서 시력 자랑하지 마라. 신은 " X- (ray) eye " 다. 모든 인간은 신 앞에서 벌거숭이가 된다. 이 투시'를 푸코'는 약간 다른 각도로 비튼다. " (하느님의) 내려다보심 " 과 " (부처님의) 손바닥 안 " 을 하드코어 - 느와르 - 와이어리스 - 바디 투 바디 - 감옥 - 아크로바틱 - 악숀 - 무우비 버젼으로 변형하면 < 판옵티콘 > 이 된다. 

 

판옵티콘이란 원형감옥 core에 위치한 높이 솟은 탑의 감시창에서 감시자가 죄수들을 감시하는 시스템으로 pan은 < 모두 >, optic은 < 본다 > 는 뜻이니 한국말로 번역하자면 요즘 불티나게 팔리는 차량 블랙박스 " 다본다 " 라고 할까 ?  판옵티콘은 소수가 다수를 감시하는 시스템이다. 그런데 사회학자 토마스 마티센'은 현대의 감시 체제'가 판옵티콘에서 시놉티콘'으로 이동했다고 말한다. 그러니깐 " 소수가 다수를 감시하는 체제 " 에서 " 다수가 소수를 주시하는 체제 " 로 전환되었다는 것이다. 소셜 미디어'가 그것을 가능하게 만들었다. " 신상털기 " 가 좋은 예'이다. 옛날에는 선그라스 낀 7급 공무원이 < 그 짓 > 을 하더니 이제는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나서서 < 그  짓 > 을 한다. 그들은 스스로 감시하면도 동시에 감시당한다. 가해자이면서 피해자'요, 파놉티콘 수감자이면서 빅브라더'이다.

 

a를 b가 감시하고, b를 c가 감시하고, c는 a가 감시한다. 21세기 디지털 시민 사회에서 시민은 자경단 역할을 자임한다. 현대 사회는 더 이상 정보를 수집하기 위해 선그라스를 낀 특수 요원을 파견하지 않는다. 개인이 자발적으로 흘린 정보를 기관은 그저 수집할 뿐이다. 현대 사회에서 개인이 소비하는 형태 : 전화 통화, 검색어 기입, 이메일, 신용카드 기록, 페이스북 좋아요 클릭 유형, CCTV, 동의서 작성 행위는 온갖 개인 정보를 타인에게 공개하는 꼴이 된다. 문제는 이 정보'가  쉽게 털린다는 점이다. 마음만 먹으면 누구나 접근 가능한 투명성은 이제 공포로 다가온다. 한병철은 < 투명사회 > 에서 투명한 사회는 신뢰 사회가 아니라 새로운 형태의 감시 사회'라고 주장한다.

 

그는 " ' 투명성이 신뢰를 만듭니다 ' 라는 구호는 사실 ' 투명성이 신뢰를 철폐합니다 ' 로 바뀌어야 한다. ( 98쪽 ) " 라고 주장하며 오히려 불투명성'이 필요한 사회라고 지적한다. 이 책에서 한병철이 말하는 " 투명성 " 은 잠금 장치는 있지만 커튼이 없는 투명한 창문과 같다. 잠금 장치가 있다고는 하나 커튼이 없으니 속이 속속들이 다 보인다. 비밀은 쉽게 폭로된다. 사실 < 알 권리 > 보다 중요한 것은 < 알려지지(보이지) 않을 권리 > 이다. 그런데 현대 사회'는 알려지지 않을 권리는 무시한 채 알 권리만 강요한다. 소비자는 무조건 약관에 동의해야 한다. 당신이 약관에 동의한 정보는 장사꾼들에게 팔린다. 장사꾼이 당신에 대해 모르는 것이 있다면 신음소리뿐이다. 오르가슴 시 당신은 아, 소리를 내는지 오, 소리를 내는지 이것도 저것도 아니라면 애, 매모호한 소리를 내는지 그 사실만 모를 뿐이다.  

 

 

세월 호 침몰 사고 보도를 통해서도 드러났듯이 언론은 " 알 권리 " 를 내세워 지나치게 피해자를 벌거벗긴다. 그것은 폭력이다. 거리 두기'를 무시한 카메라는 칼이나 다름없다.  이렇게 해서 만들어진 " 타인의 고통은 " 은 기사에 실려서 " 클릭 " 된다. 그리고 클릭 수에 따라 수익이 창출된다. 전형적인 어뷰징'이다. 세월 호를 보도한 카메라는 영화 < 피핑 톰 / 마이클 파웰, 1960 > 에 나오는 살인 카메라 장치'다. 카메라는 찍는 게 아니라 찌른다 !  한병철은 과잉(포지티브)에 대항하기 위해서 결핍(네거티브)를 옹호한다. < 투명사회 > 에서 보여주는 문제 인식은 곧 전작인 < 피로사회 > 와도 일맥상통한다.  피로사회와 투명사회 속 구성원들은 모두 스스로에게 채찍을 휘두르는 피가학적 이상 행동을 보인다. " 아이구야, 아프구나 ! " < 피로사회 > 가 행복에 대한 강박에 시달려서 스스로를 피로하게 만들었듯이,

 

< 투명사회 > 인 디지털 판옵티콘 시대는 불특정 다수와 커뮤니케이션(친밀성)를 맺기 위해서 개인의 프라이버시를 폭로해서 시장에 내놓는 이상한 사회'로 발전했다. 공유하지 않으면 우정 따위는 없어.   원래 손가락이라는 의미를 가진 라틴어 digitus에서 나온 디지털은 가상의 창문(원도우)으로 이루어진 세계'다. ( 커튼이 없다는 가정에서 ) 창문은 문과는 달리 닫아도 밖에서 안을 들여다볼 수 있는 장치'다. 그러므로 원도우 체제는 잠금 장치가 없는 문보다도 더 투명하다. 여기에는 오로지 노출과 관음만 존재한다. 알프레드 히치콕 감독이 54년에 만든 위대한, 위대한, 위대한, 위대한 걸작 < 이창 / rear window > 은 21세기 디지철 창문(윈도우)의 세계를 적확하게 예언한다. 개인적으로 이 영화에 대해 할 말은 많으나 자세한 내용은 다음으로 미루기로 한다.

 

< 이창 / rear window > 를 통해서 개인의 사생활이 실시간으로 노출된다면, 21세기  " digital window " 는  이제 트위터, 블로그, 페이스북이 되어 실시간으로 온갖 정보를 제공한다.  어제 타임라인을 엿보니깐 어떤 새끼는 지금 자신이 똥싸고 있다는 사실을 실시간으로 남기더라 ! 똥을 몇 가닥으로 나눌지 고민이라는 친절한 멘트와 함께 말이다. 이제는 모든 것을 투명하게 폭로해야지만 친밀한 관계가 되었다. 영화 제목도 의미심장하다. < rear > 은 < real > 과 형태상 유사하지만 의미는 전혀 다르다. ( 햄릿이 한국인이었다면 이렇게 말했을 것이다. " R이냐 L이냐, 그것이 문제로다 ! " 내 귀에는 rear이나 real 모두 [ríər] 로 들린다. ) 우리는 디지털 윈도우 세계'가 " real " 하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 rear "다. 그러니깐 디지털 원도우는 실제가 아니라 욕망을 배설하는 뒷간(rear)에 불과하다. 

 

< 깃발 > 은 사람이 눈으로 직접 < 바람 > 을 볼 수 있도록 고안한 발명품이다. 엘리어트 카네티가 한 말'이다. 만약에 바람이라는 자연 현상이 일어나지 않았다면 필요 없는 물건이다. 가까운 미래에 당신이 화성으로 이사를 가게 되는 경우가 생긴다면 바람에 휘날리는 태극기나 깃발 따위는 가지고 가면 안 된다. 그곳에는 바람은 존재하지 않으니 말이다. 바람은 선-존재이고 깃발은 후-존재이다. 창문과 문의 관계도 마찬가지다. 창문이 없는 건물은 있을 수 있지만 문이 없는 건물을 있을 수 없다. 깃발이 휘날린다는 사실은 바람이 존재한다는 정보를 제공하듯이, 창문이 있다는 사실은 그 건물에 반드시 문이 있다는 정보를 제공한다. 선-존재는 문이고, 창문은 문을 위해 존재하는 후-존재'다.

 

현대 사회는 창문( 알 권리와 투명성 역할)의 개방성을 강조하지만 정작 중요한 것은 문( 보이지 않을 권리와 불투명성 역할)이 가지고 있는 폐쇄성'이다. 비밀을 보장하는 문이 없다면 창문이 아무리 전망 좋고 투명하다 한들 무슨 의미랴. 창문은 있으나 문이 없는 건물은 기형적 구조'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문은 선-존재이고 창문은 후-존재'이다. 부정성의 철학자 한병철은 이 책에서 창문이 가지고 있는 포지티브'보다 문이 가지고 있는 네거티브에 주목한다. 코페르니쿠스적 발상이다. 마르셀 프루스트가 홍차와 함께 마들렌을 권했다면 나는 < 투명사회 > 와 함께 영화 < 이창 > 을 권한다. 책 한 권과 영화 한 편, 좋은 궁합 아닌가 ?

 

 

 

 

 

덧대기 : 이 책은 철학 에세이'이지 철학서'가 아니다. 철학서에 촛점을 맞추면 내용이 아쉽고, 에세이로 보자면 충분하다. 나는 이 책을 에세이'라는 측면에서 평가했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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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2014-04-26 11: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투명성의 방향이 완전 뒤집혀 거꾸로 된 세상이에요. 또한 그 방향이 제대로 잡힌다한들 말씀대로 문이 없으면!

여튼 요즘 곰곰발님 성정에 맘고생 몸고생 많으셨을 줄 압니다. 건강 챙기시길.

곰곰생각하는발 2014-04-27 05:41   좋아요 0 | URL
새벽 님 오랜만이군요. 국가적 재난이고 국가적 애도 기간이죠. 어처구니없는 일을 매년 봅니다.
변하는 것은 없고 답답하군요....

마립간 2014-04-26 11: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파트 베란다의 큰 유리로 된 (커튼이나 블라인드가 필요한) 미닫이 ; 창일까요. 문일까요?

곰곰생각하는발 2014-04-27 05:40   좋아요 0 | URL
당연히 창입니다. 큰 창입니다. 문의 기본적 성격은 불투명성이죠. 문은 무조건 안이 보이지 않아야 합니다.

수다맨 2014-04-27 14: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곰곰발님 한동안 안 보이셔서 걱정했습니다^^;;;
요즘 이 정권 하는 짓 보고 있으려니 정나미가 다 떨어져서요. 사악한 것을 넘어 이제는 무능과 허위의 극치로 가는 것 같더군요. 이런 인간들이 위정자라니 이제는 한숨만 나옵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4-04-28 12:29   좋아요 0 | URL
분노 이런 거 보다는 솔직하게 고백하면 그냥 죽이고 싶습니다. 분노는 그래도 어느 정도의 생각함'이 있기에 가능하지만.... 선원들보다 더 얄미운 것들이 있죠..

만화애니비평 2014-04-28 13: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래서 제 덧글이 없는군요!

곰곰생각하는발 2014-04-28 13:22   좋아요 0 | URL
알라딘은 덧글 확인이용이하지가 않습니다. 사랑을 전합니다.

rendevous 2014-05-12 01: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최인훈의 시대만 해도 남한은 밀실이었는데 이거야 뭐... 순결한 전자광장이여!

곰곰생각하는발 2014-05-12 10:37   좋아요 0 | URL
최인훈이 바랐던 것은 광장 그러니깐 열린 사회'였죠. 그런데 시대가 많이 변했습니다.
이제는 열린 구조에 의한 개인 침해가 문제가 되는 사회가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