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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들
찰스 부코스키 지음, 박현주 옮김 / 열린책들 / 2012년 2월
평점 :
절판
수색수색수색수색수색수색수색.......
수색 [ 水色驛 ] : 은평구 증산동 223-27번지에 있는 지하철 6호선 역 이름이다. 이 지역은 한강 하류로 수색'이란 동명에 따라 지하철 개통 때 역 이름을 붙였다.
크누트 함순 소설 << 굶주림 >> 을 읽는다. 이 책은 알라디너 수다맨 님(이하 존칭 생략)이 선물한 책이다. 우리는 허름한 종로3가 고깃집에서 낮술이라 하기에는 애매모호한 술잔을 기울이고 있었다. 그가 불쑥 책을 내밀었다. " 읽어보세요. 찰스 부코스키가 << 여자들 >> 에서 크누트 함순이 세계에서 가장 위대한 작가였다고 말했잖아요 ! " 그는 내게 동의를 구하듯 나를 바라보았다. < 여자들 >에서 찰스 부코스키가 그런 말을 했던가 ?! 기억이 나지 않았지만 의뭉스럽게 웃었다. 이 웃음은 " 나도 알고 있어, 짜샤 ! " 이런 메시지'였다. 우리는 문학판에 대해서 쪼잔한 " 뒤따마 " 를 쉴 새 없이 날렸다. 생각해 보니 지난번 술자리에서도 했던 험담'이었다. 1차에서 끝날 분위기는 아니었다.
2차는 근처 호프집으로 향했다. 2차는 김연수 작가도 참석했다. 술이 얼추 들어가자 내 앞에 앉은 수다맨이 자꾸 김연수로 보였던 까닭이다(실제로 그는 김연수 작가와 많이 닮았다). 술자리에서 오고간 말은 생각이 나지 않는다. 그때 나는 피곤했고 꽤 취했으니깐 말이다. 한때 술이라면 누구에게도 지지 않던 주량이었으나 이제는 옛말이 되었다. 우리는 각자 막차를 타고 헤어졌다. 지금 나는 찰스 부코스키 소설 << 여자들 >> 을 읽고 있다. << 굶주림 >> 을 읽다가 수다맨이 했던 말이 자꾸 생각이 났기 때문이다. 나는 읽던 책(굶주림)을 덮고 << 여자들 >> 이란 책을 펼쳐 치나스키가 말했다는 " 크누트 함순이 최고 ! " 라는 구절을 찾기 시작했다.
확인 절차만 끝나면 덮을 생각이었다. " 이 노인이 도대체 어느 구석에다 그 문장을 싸지른 거야 ? " 노란 색연필로 밑줄 친 부분을 중심으로 페이지를 넘기다가 다음과 같은 문장을 읽었다.
리디아는 종이에 그리기 시작했다. " 자, 이게 여자 보지예요. 여기 당신이 모르는 게 있을 거야. 음핵. 느끼는 데가 여기거든요. 보다시피 음핵은 숨어 있어. 그렇지만 가끔 나오지. 분홍색이고 아주 민감해요. 숨어 있을 때도 있을 테니까 찾아야 해. 그저 혀끝으로 건드리기만 하면 돼요 ( 30쪽)
나는 낄낄거리며 웃었다. 리디아, 아.... 리디아 ! 이 책을 무척 재미있게 읽었던 기억에 새록새록 났다. 어느덧, 나는 " 문장 찾기 " 따위를 멈추고 책을 다시 읽기 시작했다. 수다맨이 지적한 문장은 95쪽에 박혀 있었다. " 그녀는 이태리에서의 헉슬리와 로렌스 이야기를 했다. 무슨 똥 같은 소린가. 나는 크누트 함순이 세계에서 가장 위대한 작가였다고 말했다. 그녀가 나를 보더니 내가 그 사람 이름을 알고 있다는 데 경탄하며 동의했다. (95쪽) " 찰스 부코스키의 분신 치나스키는 크누트 함순이 가장 위대한 작가'라고 말했지만 내가 보기엔 찰스 부코스키도 만만치 않은 내공을 가진 작가'다. 부코스키에게 경배를 ! 하급 노동자 출신으로 술고래이자 섹스중독자였던 찰스 부코스키는 내게 작은 위안을 준 작가'다.
그는 그와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소녀에게나 어울릴 법한, " 백혈병 " 으로 세상을 떠났다. 그렇게 술을 퍼마시고도 간은 멀쩡했던 것이다. 만약에 당신이 스스로를 우아하며 고상한 독자'라고 생각한다면 이 책은 안 읽는 것이 좋다. " 본격 성애 소설 " 이라고 해도 어느 정도는 문학적 정제 작업을 거치게 마련인데, 찰스 부크스키 소설에는 그런 게 없다. 무슨 말인가 하면 " 촉촉하고 검은 동굴 " 이라는 표현은 찾아보기 힘들다는 말이다. 그냥 보지, 자지, 털, 똥구멍 따위가 페이지마다 등장한다. << 여자들 >> 은 그 정점에 위치한다. 섹스, 섹스, 섹스, 섹스, 섹스, 섹스, 섹스, 섹스, 섹스, 섹스.... 온통 섹스뿐이다. 하지만 이 소설을 성애 소설'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다.
부코스키 소설에서 섹스 판타지'는 존재하지 않는다. 섹스는 낭만적이지 않다. 후끈 달아오르기는커녕 오히려 슬프다. 그가 " 천한 여자일수록 더 좋다. 그렇지만 여자들, 좋은 여자들만 보면 겁이 났다(109쪽) " 라고 고백하는 부분에서는 이상하게 울컥하게 만든다. 문학이 세상을 바꾸는 시대는 지났다. 문학은 위대하지도 않고 천박하지도 않다. 내가 정성일이라는 영화평론가를 혐오하는 까닭은 그가 가지고 있는 고상한 열정 때문이다. 그는 영화가 세상을 바꿀 것이라고 말했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현대 예술은 실패했다.
작가들에게는 문제가 있다. 작가는 자기 글이 출판되어 많이 팔리면 자기가 위대한 사람인 줄 안다. 자기가 쓴 글이 출판되어 중간 정도 팔려도 자기가 위대한 줄 안다. 자기가 쓴 글이 출판되어 아주 조금 팔려도 자기가 위대한 줄 안다. 자기가 쓴 글이 출판되지 않고 자가 출판할 돈도 없으면, 자기가 진정으로 위대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솔직히 말하자면 위대함이라고는 거의 없다. 존재가 너무도 미미해서 보이지도 않을 정도다. 하지만 가장 최악의 작가는 자신감은 철철 넘치되 자기 의심은 전혀 없는 사람이다. 어쨌든 작가들은 피해야 할 존재고 나는 그들을 피하려고 노력하지만 당최 가능하지가 않았다. 작가들은 일종의 형제애, 어떤 친교를 원했다. 그런 감정 중 어느 것도 글쓰기와 관련이 없고 타자 치는 데 도움이 안 됐다. (199쪽)
사실 이 리뷰 제목은 " 수색수색수색수색수색수색수색... " 이 아니라 " 섹스,섹스,섹스,섹스,섹스,섹스... " 였다. 온통 섹스 이야기뿐이니 이 책에 어울리는 리뷰 제목으로는 손색이 없다. 제목을 작성하고 나서 낮게 읊조렸다. 섹스, 섹스, 섹스, 섹스, 섹스, 섹스, 섹스..... 그런데 어느 순간 섹스, 섹, 스섹, 스섹, 스섹, 스섹, 수색, 수색, 수색이 되었다. 하아, 이것 참 ! 수박수박수박'을 연속적으로 발음하면 나중에 박수박수박수가 되는 꼴이다. 지하철 6호선에는 수색역이 있다. 물 수(水) 빛 색(色) 이다. 물빛, 속초에 있을 때 한 여자를 오랫동안 기다렸다. 그 여자는 오지 않았다.
■ http://blog.aladin.co.kr/749915104/6644930 : << 팩토텀 >> 치나스키, 놀이하는 인간.
■ http://blog.aladin.co.kr/749915104/6244583 : << 우체국 >> 이 세상 모든 똥구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