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들
찰스 부코스키 지음, 박현주 옮김 / 열린책들 / 2012년 2월
평점 :
절판


 

 

 

 


 

 

 

 

 

수색수색수색수색수색수색수색.......

 

 

수색 [ 水色驛 ]    :  은평구 증산동 223-27번지에 있는 지하철 6호선 역 이름이다. 이 지역은 한강 하류로 수색'이란 동명에 따라 지하철 개통 때 역 이름을 붙였다.

[네이버 지식백과]

 

크누트 함순 소설 << 굶주림 >> 을 읽는다. 이 책은 알라디너 수다맨 님(이하 존칭 생략)이 선물한 책이다. 우리는 허름한 종로3가 고깃집에서 낮술이라 하기에는 애매모호한 술잔을 기울이고 있었다. 그가 불쑥 책을 내밀었다. " 읽어보세요. 찰스 부코스키가 << 여자들 >> 에서 크누트 함순이 세계에서 가장 위대한 작가였다고 말했잖아요 ! "  그는 내게 동의를 구하듯 나를 바라보았다. < 여자들 >에서 찰스 부코스키가 그런 말을 했던가 ?! 기억이 나지 않았지만 의뭉스럽게 웃었다. 이 웃음은 " 나도 알고 있어, 짜샤 ! " 이런 메시지'였다. 우리는 문학판에 대해서 쪼잔한 " 뒤따마 " 를 쉴 새 없이 날렸다. 생각해 보니 지난번 술자리에서도 했던 험담'이었다. 1차에서 끝날 분위기는 아니었다.

 

2차는 근처 호프집으로 향했다. 2차는 김연수 작가도 참석했다. 술이 얼추 들어가자 내 앞에 앉은 수다맨이 자꾸 김연수로 보였던 까닭이다(실제로 그는 김연수 작가와 많이 닮았다). 술자리에서 오고간 말은 생각이 나지 않는다. 그때 나는 피곤했고 꽤 취했으니깐 말이다. 한때 술이라면 누구에게도 지지 않던 주량이었으나 이제는 옛말이 되었다. 우리는 각자 막차를 타고 헤어졌다. 지금 나는 찰스 부코스키 소설 << 여자들 >> 을 읽고 있다. << 굶주림 >> 을 읽다가 수다맨이 했던 말이 자꾸 생각이 났기 때문이다. 나는 읽던 책(굶주림)을 덮고 << 여자들 >> 이란 책을 펼쳐 치나스키가 말했다는 " 크누트 함순이 최고 ! " 라는 구절을 찾기 시작했다.

 

확인 절차만 끝나면 덮을 생각이었다. " 이 노인이 도대체 어느 구석에다 그 문장을 싸지른 거야 ? " 노란 색연필로 밑줄 친 부분을 중심으로 페이지를 넘기다가 다음과 같은 문장을 읽었다.

 

 

리디아는 종이에 그리기 시작했다. " 자, 이게 여자 보지예요. 여기 당신이 모르는 게 있을 거야. 음핵. 느끼는 데가 여기거든요. 보다시피 음핵은 숨어 있어. 그렇지만 가끔 나오지. 분홍색이고 아주 민감해요. 숨어 있을 때도 있을 테니까 찾아야 해. 그저 혀끝으로 건드리기만 하면 돼요 ( 30쪽)

 

 

나는 낄낄거리며 웃었다. 리디아, 아.... 리디아 ! 이 책을 무척 재미있게 읽었던 기억에 새록새록 났다. 어느덧, 나는 " 문장 찾기 " 따위를 멈추고 책을 다시 읽기 시작했다. 수다맨이 지적한 문장은 95쪽에 박혀 있었다. " 그녀는 이태리에서의 헉슬리와 로렌스 이야기를 했다. 무슨 똥 같은 소린가. 나는 크누트 함순이 세계에서 가장 위대한 작가였다고 말했다. 그녀가 나를 보더니 내가 그 사람 이름을 알고 있다는 데 경탄하며 동의했다. (95쪽) " 찰스 부코스키의 분신 치나스키는 크누트 함순이 가장 위대한 작가'라고 말했지만 내가 보기엔 찰스 부코스키도 만만치 않은 내공을 가진 작가'다. 부코스키에게 경배를 ! 하급 노동자 출신으로 술고래이자 섹스중독자였던 찰스 부코스키는 내게 작은 위안을 준 작가'다.

 

그는 그와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소녀에게나 어울릴 법한,  " 백혈병 " 으로 세상을 떠났다. 그렇게 술을 퍼마시고도 간은 멀쩡했던 것이다. 만약에 당신이 스스로를 우아하며 고상한 독자'라고 생각한다면 이 책은 안 읽는 것이 좋다. " 본격 성애 소설 " 이라고 해도 어느 정도는 문학적 정제 작업을 거치게 마련인데, 찰스 부크스키 소설에는 그런 게 없다. 무슨 말인가 하면 " 촉촉하고 검은 동굴 " 이라는 표현은 찾아보기 힘들다는 말이다. 그냥 보지, 자지, 털, 똥구멍 따위가 페이지마다 등장한다. << 여자들 >> 은 그 정점에 위치한다. 섹스, 섹스, 섹스, 섹스, 섹스, 섹스, 섹스, 섹스, 섹스, 섹스.... 온통 섹스뿐이다. 하지만 이 소설을 성애 소설'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다.

 

부코스키 소설에서 섹스 판타지'는 존재하지 않는다. 섹스는 낭만적이지 않다. 후끈 달아오르기는커녕 오히려 슬프다. 그가 " 천한 여자일수록 더 좋다. 그렇지만 여자들, 좋은 여자들만 보면 겁이 났다(109쪽) " 라고 고백하는 부분에서는 이상하게 울컥하게 만든다. 문학이 세상을 바꾸는 시대는 지났다. 문학은 위대하지도 않고 천박하지도 않다. 내가 정성일이라는 영화평론가를 혐오하는 까닭은 그가 가지고 있는 고상한 열정 때문이다. 그는 영화가 세상을 바꿀 것이라고 말했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현대 예술은 실패했다. 

 

작가들에게는 문제가 있다. 작가는 자기 글이 출판되어 많이 팔리면 자기가 위대한 사람인 줄 안다. 자기가 쓴 글이 출판되어 중간 정도 팔려도 자기가 위대한 줄 안다. 자기가 쓴 글이 출판되어 아주 조금 팔려도 자기가 위대한 줄 안다. 자기가 쓴 글이 출판되지 않고 자가 출판할 돈도 없으면, 자기가 진정으로 위대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솔직히 말하자면 위대함이라고는 거의 없다. 존재가 너무도 미미해서 보이지도 않을 정도다. 하지만 가장 최악의 작가는 자신감은 철철 넘치되 자기 의심은 전혀 없는 사람이다. 어쨌든 작가들은 피해야 할 존재고 나는 그들을 피하려고 노력하지만 당최 가능하지가 않았다. 작가들은 일종의 형제애, 어떤 친교를 원했다. 그런 감정 중 어느 것도 글쓰기와 관련이 없고 타자 치는 데 도움이 안 됐다. (199쪽)

 

 

사실 이 리뷰 제목은 " 수색수색수색수색수색수색수색... " 이 아니라 " 섹스,섹스,섹스,섹스,섹스,섹스... " 였다. 온통 섹스 이야기뿐이니 이 책에 어울리는 리뷰 제목으로는 손색이 없다. 제목을 작성하고 나서 낮게 읊조렸다. 섹스, 섹스, 섹스, 섹스, 섹스, 섹스, 섹스..... 그런데 어느 순간 섹스, 섹, 스섹, 스섹, 스섹, 스섹, 수색, 수색, 수색이 되었다. 하아, 이것 참 ! 수박수박수박'을 연속적으로 발음하면 나중에 박수박수박수가 되는 꼴이다. 지하철 6호선에는 수색역이 있다. 물 수(水) 빛 색(色) 이다. 물빛, 속초에 있을 때 한 여자를 오랫동안 기다렸다. 그 여자는 오지 않았다.

 

 

 

■ http://blog.aladin.co.kr/749915104/6644930 : << 팩토텀 >> 치나스키, 놀이하는 인간.

■ http://blog.aladin.co.kr/749915104/6244583 : << 우체국 >> 이 세상 모든 똥구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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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혁 2014-06-22 11: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This is 페루애. 이것이 바로 페루애님의 글이군요.

3년전 리즈 시절의 필력을 보게되어 즐겁게 읽었습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4-06-22 13:40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언제 호수집에서 한잔 합시다..

수다맨 2014-06-22 14:0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사드 같은 이들을 제하면 부코스키 소설만큼 섹스 얘기 많이 나오는 소설도 드문데, 이게 조금도 음란하지가 않고 오히려 슬퍼요. 섹스를 하면 할수록 욕구가 채워지는 게 아니라 더욱더 고독의 늪으로 빠진다고 해얄까요....
이런 터프하고, 겉멋 없고, 비타협적이고, 반노동주의적인 작가는 아마 둘도 없을 겁니다. 한국은 아직도 문학적 고상이 남아서 그런지 노벨상 작가는 우대해도, 셀린느나 부코스키 같은 작가에 대해선 냉연한 태도를 보이죠. 이게 참 문젭니다. 저는 김연수의 모든 소설들을 준다고 해도 부코스키 "여자들"과 바꾸지 않을 겁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4-06-22 14:05   좋아요 0 | URL
아니 어떠게 김연수와 부코스키를 비교합니까. ㅎㅎㅎㅎ김연수에게는 영광이겠으나 부코스키 팬들에게는 경멸입니다. 다시 읽어도 재미있더군요. 그냥 인용문만 찾을까 하고 읽다가 읽다 보니 재미있어서 끝까지 다시 읽었네요. 역시 부코스키'란 생각이 듭니다.

르미에르 2014-06-22 15: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수색역 잘 알죠.
한때 은평구 살았음.

곰곰생각하는발 2014-06-22 21:33   좋아요 0 | URL
수색은 막상 물이 없어요. 저도 은평구에서 자랐습니다. 반갑군요..

수다맨 2014-06-22 18: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성일이 켄 로치의 "스위트 16"에 관한 평을 썼던 적이 생각납니다. 그런데 (제 생각일지 모르지만) 그 글이 정성일이 썼던 글 중에서 무척 쉬웠던 것 같아요. 본인이 켄 로치 팬클럽의 회원(?!)이라는 속내를 밝히기도 했고, 그에 대한 비판적 의견(영화적 기교가 없고 새로운 미학과 우리가 알지 못한 세계를 보여주지도 않는다)도 물론 있었죠.
그런데 정성일의 그 쉬운 글을 보면서 느낀 게, 이런 평론가들은 남들이 이해하기 어려운 작품을 좋아한다는 생각이 듭니다. 어렵고 복잡한 작품들을 만나야, 자기가 아는 지식들을 동원해서 꿈보다 해몽이 화사한(?) 글을 쓰거든요. 오히려 말하고자 하는 바가 강하고 명확한 작품을 만나면, 자기가 할 말이 없어서 쩔쩔매는 꼴이라고 해얄까요.

곰곰생각하는발 2014-06-22 21:43   좋아요 0 | URL
제가 늘 하는 소리가 평론가들은 데이빗 린치 영화를 분석할 때는 쉽게 작업하지만 디워 같은 영화를 분석할 때는 애를 먹습니다. 할 말이 없거등요. 남들이 이해하지 못하는 작품을 써야 그럴싸하고, 그걸 또 영화 감독이나 소설가가 이용하기도 합니다. 내가 보기엔 정성일이야말로 속물근성의 전형처럼 보입니다. 인명사전식으로 주구장창 서양 철학자 이름을 나열합니다. 복수는나의힘에서 보여준 그 나열은 전설이 되었습니다만.... ㅎㅎㅎㅎ

만화애니비평 2014-06-22 19: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수색수색 섹스섹스 오덕오덕!!!

곰곰생각하는발 2014-06-22 21:44   좋아요 0 | URL
댓글 내용이 불분명하군요... ㅎㅎㅎ

todd 2014-06-23 14: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사람의 몸이나 섹스라는 것에 어떠한 판타지가 끼어들지 않을때 야하게 느껴지지 않는 기이한 현상이 일어나더라구요. ㅎㅎ 이 책 재미있을거 같네요~~ 얼마전에 님포매니악이라는 영화를 봤는데 남성 성기가 아주 클로즈업으로 나열되는데.. 당황스러웠던 기억이 있어요 ㅎㅎ

곰곰생각하는발 2014-06-24 12:25   좋아요 0 | URL
저도 로망스'라는 영화를 봤는데 그게 신기하게도 하나도 야하지 않더란 말입니다.
결국 중요한 것은 성기 노출 따위가 아니란 거죠.
무엇을 보여주는냐가 중요한 게 아니라 왜 감추느냐가 중요한 게 아닐까 생각합니다.
구한말 사진 보니 그때 우리 조상들은 가슴을 다 드러내놓고 거리를 다녔더라고요.......

행인 1 2014-06-24 18: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네이버로 얼른 돌아오세요!

곰곰생각하는발 2014-06-25 01:14   좋아요 0 | URL
허어,,, 술 한 잔 사시면 돌아가리다 1.

행인 2 2014-06-24 21: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네이버로 얼릉 돌아오시욧! 2

곰곰생각하는발 2014-06-25 01:15   좋아요 0 | URL
허어,,, 술 한 잔 사시면 돌아가리다 2.

봄밤 2014-06-25 14: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읽어보겠습니다. 잘 모르고 지나쳤었는데 말예요.

곰곰생각하는발 2014-06-26 12:09   좋아요 0 | URL
찾아보려다가 아예 읽기 모드로 바꾸면 안 됩니다...
 
힘내라 브론토사우루스 스티븐 제이 굴드 자연학 에세이 선집 3
스티븐 제이 굴드 지음, 김동광 옮김 / 현암사 / 2014년 4월
평점 :
품절


 

 

 

 

 

 


 

 

 

매미와 함께 피어싱'

 

 

그녀는 어딘지 모르게 깊고 어두운 구석이 있었다. 청순가련한 여자이기보다는 스모키 화장과 피어싱이 잘 어울리는 팜므파탈에 가까웠다. 매력 있는 여자였다. 손창섭의 단편 << 인간 동물원 초(抄) >> 를 읽어보라고 한 이도 그녀'였다.  어느 날. 그녀는 툭, 지나가는 말을 내게 던졌다. " 매미는 5년 동안 땅속에 살다가 세상 밖으로 나오면 고작 열흘 남짓 살다 죽잖아요 ? 매미는 땅속에 있을 때가 행복했을까요 ? 아니면 나무에 매달려 있을 때가 행복했을까요 ? " 정확한 기억은 아니지만 또래끼리 사소한 논쟁이 있었던 모양이었다. < 짧고 굵게 : 빛나는 태양 아래서 죽느냐 > 아니면 < 길고 가늘게 : 어둠 속에서 사느냐 > 가운데 어느 삶이 더 가치있는가, 라는 질문이었다.

 

나는 곰곰 생각하다가 땅속에서 산다고 해서 불행한 삶은 아닐 거라고 두리뭉실하게 말했다. 성의 없는 답변이었다. 성의가 없었다, 라기 보다는 대답이 궁했다는 편이 맞을 것이다.  스티븐 제이 굴드의 과학 에세이 모음집 << 힘내라, 브론토사우르스 >> 에 삽입된 " 밝게 빛나는 커다란 땅반딧불 애벌레 " 라는 긴 제목을 단 에세이를 읽다가 문득 그녀가 지나가는 말로 툭, 던진 그 질문이 생각났다. 

 

 

인간 존재의 여러 측면 중에서, 성장과 발생이라는 생명 주기보다 더 기본적인 것은 거의 없다. 많은 사람이 어린 시절을 찬미하지만, 서양인들은 일반적으로 아이들을 덜 발달한 불완전한 성인으로 간주한다. 성인보다 작고 연약하고 무지한 존재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성인이 되는 것이 최종 목표고, 어린 시절은 위를 향한 경로일 뿐이다. ( 360쪽 )

 

 

 

그 짦음은 성충에게만 따라다니는 속성일 뿐 그보다 훨씬 오래 사는 애벌레 역시 전체 생명 주기에 포함되어야 한다. 그렇다면 17년을 사는 매미는 어떤가 ? 매미의 애벌레가 영광스러운 며칠을 끈기 있게 기다리며 오랜 기간 아무 일도 하지 않고 지내는 것은 아니다. 애벌레는 지하에서 활동적인 삶을 영위한다. 물론 그중에는 긴 수면기도있지만, 여러 차례 허물을 벗으며 왕성하게 성장하는 기간도 포함된다. (366쪽)

 

 

17년 매미'는 말 그대로 17년 동안 땅속에서 굼벵이로 있다가 세상 밖으로 나와 매미 성충으로써 열흘 남짓 살다가 죽는다. 무엇보다도 곤충류에 속하는 매미가 개나 고양이 같은 포유류'보다 더 오래 산다는 사실이 놀랍다. 그런데 17년 매미에 대한 놀라움'은 애매모호한 구석이 있다.  그것은 곤충이 17년이나 살 수 있다는 사실 때문이기도 하지만 지상에서 열흘 밖에 살지 못한다는 사실 때문이기도 하다. 17년이라는 " 지난한 세월 " 에 놀라고,  10일이라는 " 허무한 세월 " 에도 놀라게 된다. 전자는 굼벵이에 방점을 찍은 것이고, 후자는 매미에 방점을 찍은 것이다. 만약에 당신이라면 어느 쪽에 방점을 찍을 것인가 ?

  

아마도 그녀는 굼벵이'보다는 매미'가 되고 싶었을 것이다. 젊었을 때에는 불꽃처럼 살다가 허무하게 사라지는 生을 동경하게 되는 법이니까 ! 어느 날, 그녀는 날카로운 " 무엇 " 으로 온몸을 자해했다. 살은 부풀어올랐고, 핏방울이 맺혔다. 음각으로 판 상처는 공교롭게도 양각으로 이루어진 흉터가 되었다. 신기하게도 나는 그 무수한 상처를 보며 안도했다. 그 상처는 죽음에 대한 욕망보다는 생에 대한 의지'처럼 보였기 때문이었다. 그때 내가 이 책을 읽었더라면 그녀에게 논리정연한 대답을 했을 것이다. 굼벵이의 최종 목표는 매미'가 아니라고, 굼벵이는 매미에 비해 덜 발달한 존재가 아니라고, 날개는 진화의 최종 목표가 아니라고.

 

날개를 가진다는 것이 진화의 최종 목표라면 인간을 포함한 포유류는 조류보다 덜 진화한 존재'가 된다. 진화를 설명하기 위해서는 " 반드시 날개가 필요하지는 않다. " 매미는 날개를 얻기 위해, 독수리도 아니면서, 17년 동안 땅속에서 " 독수공방 " 했을까 ? 17년 매미는 개나 고양이보다 오래 사는 곤충이다. 그러므로 열흘 살다가 죽는다, 라는 말은 잘못된 표현이다. 매미는 17년을 살았다. 매미가 완전체'라면 굼벵이도 완전체'다. 스모키 화장과 피어싱이 잘 어울리는 그녀는 어느덧 세월이 흘러 나이를 먹었다. 나는 그녀가 쓴 우울한 문장을 매우 좋아했다. 좋은 작가'가 되리라 믿는다.

 

" 힘내라, 팜므파탈이여 ! " 검은 터널은 끝에 가서야 환해지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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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rgettable. 2014-06-21 01: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애벌레의 삶도 삶의 일부라는 걸 예전엔 전혀 인지조차 하지 못했는데.. 이젠 오히려 애벌레에게 더 공감을 하게 된다는건 나의 젊음도 스러져간다는 걸까요 ㅎㅎㅎ

그것의 삶도 그리 나쁘지만은 않을 것이라는 건 그렇게까지 두루뭉실한 대답은 아니었던 것 같네요!

곰곰생각하는발 2014-06-22 09:26   좋아요 0 | URL
저도 항상 매미와 굼벵이를 따로 따로 구분한 것 같습니다.
그래서 매미는 열흘 밖에 못사는 녀석이라며 안타까워하고는했습니단ㄷ.ㄷ
생각해 보니 곤충치고는 정말 장수하는 짐승 아닙니까. 17년을 살다니...

마립간 2014-06-21 10:0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굼벵이의 목표가 매미라면, 삶의 목표는 죽음이죠. 이런 시각이 어떤 이에게는 굼벵이와 삶을 긍정하게 만들고, 어떤 이에게는 굼벵이와 삶을 부정하게 만듭니다.

동양에서는 태어나자마자 1살입니다. 0이라는 숫자개념이 없어 만들어진 오류이지만, 어머니의 뱃속의 1년을 삶으로 인정하지 않은 오류와 상쇄되어 ; 어머니 뱃속에서 1년을 살고 나오는 개념으로 재해석될 수 있게 되었죠.

곰곰생각하는발 2014-06-22 09:28   좋아요 0 | URL
그르네요.... 굼벵이 목표가 매미'라면 결국 죽음에 목적이네요.
0이라는 숫자는 알고 보니 인도에서 나왔더라고요. 반면 서양은 0이라는 숫자를 끝끝내 반대하다가
결국 받아들였다라고 하더군요... 근데 태어나자마자 1살인 게 맞는 것 같습니다. 아이 뱃속에 있는 것을 포함하니깐 말이죠..

곰곰손 2014-06-21 16:11   좋아요 1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 음각으로 판 상처는 공교롭게도 양각으로 이루어진 흉터가 되었다. ]



아바보ㅡ
이런 문장은 대략 너밖에못쓴다는ㅡ

짜증난다ㅡ ㅎㅎ

넘좋아서

곰곰생각하는발 2014-06-22 09:29   좋아요 0 | URL
허어, 낮부끄럽게 이게 무슨 칭찬이냐.... 근데 문장이 나쁘지는 않네..ㅎㅎ

만화애니비평 2014-06-21 23: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곰발님 즐거운 주말 되세용

곰곰생각하는발 2014-06-22 09:29   좋아요 0 | URL
뜬금없이 갑자기 웬 인사입니까..ㅎㅎ 만애비 님도 ....

엄동 2014-06-23 11: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저 말 좋아해요
터널은 끝에 가서야 환해진다는.

..
그치만
인생도 때론
매미의 그것과 비슷하죠

아 환해진지 얼마다 됐다고
다시 터널 속으로 진입합니까. 허무하게

곰곰생각하는발 2014-06-24 12:26   좋아요 0 | URL
엄동 님 오랜만이군요. 교통사고 후 별탈 없으십니까 ?
앞으로 비만 오면 허리가 쑤실 겁니다. 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


터널은 끝에 가서야 한해진다는 말은 최승자 시에서 읽었습니다.
갑자기 최승자 시인 괜찮은지 궁금하네요.
현대 시인 중 독보적 자리를 갖는 분이기도 한데 말입니다.
 

 

 

 

 

나도 잘 몰라 

 

 

 

 

우스꽝스러운 남자가 무대에 등장한다. 그는 연신 손으로 " 마빡(이마) " 을 친다. 사내는 자신을 골목대장 마빡이'라고 소개한다. 아하, 그래서 손으로 연신 마빡을 치는구나 ! 마빡이가 자기 마빡을 치는 행위는 자기 이름을 알리기 위해서다. 연상 작용을 활용한 자기 PR, 영리한 셈법이다. 다음은 얼빡이'가 등장한다. 그는 팔을 힘껏 휘둘며 자기 이마를 때린다. 마빡이보다 얼빡이(김시덕 분) 행동이 더 힘들어 보인다. 그런데 얼빡이는 왜 손으로 마빡을 치며 등장하는 것일까 ? 자기 이름을 알리려면 마빡'보다는 얼굴 뺨을 때려야 하는 것 아닌가  ? 뭐, 이마도 얼굴에 속하니 그리 생뚱맞지는 않다만 !  이때 대빡이가 등장한다. 그 또한 다른 동료와는 달리 팔을 위아래로 흔들며 등장한다.

 

팔을 휘젖는 품새'가 힘차서 노동 강도로 보자면 가장 힘든 자세'다. < ~빡이 3형제 > 는 투렛증후군 환자처럼 특정 행위'를 쉬지 않고 반복하다 보니 힘들어서 쓰러지기 일보직전이다. 무대 위 바보(들)은 콩트고 나발이고 빨리 끝났으면 싶다는 속내를 솔직하게 고백한다. 관객이 박수치며 박장대소하는 것도 반갑지 않다. 시간만 연장될 뿐이니깐 말이다. 하지만 끝날 기미는 보이지 않는다. 갈빡이'가 등장한다. 그 또한 의미를 알 수 없는 반복 행위를 하며 쓸데없는 말을 쏟아낸다. 관객은 웃는데 왜 웃는지는 모른다.  그냥 웃기니까 웃는다. 개그콘서트 코너 << 마빡이 >> 는 " 내용 " 이 없는 콩트'다. 상황극이 아니다 보니 줄거리'도 없다. 줄거리가 없다 보니 메시지도 없다. 하지만 관객은 빵, 터진다. 바보는 관객인가 마빡이인가 ?

 

나는 누구인가 ? 이러한 형이상학적 질문은 예수, 부처, 마호메트'만 하는 게 아니다. 달동네 골목길에서 해 질 때까지 놀던 아들이 아버지에게 묻는다. " 아버지, 나는 누구예요 ? " 아버지는 웃으며 아들에게 말한다. " 몰라서 물어 ? 나도 잘 몰라 ! 아행행해ㅎ허허햏ㅎ히햏힣ㅎ해히힣해햏ㅎ.... " 하지만 아들은 알고 있다. 나는 " 공짜/空- " 다. 이동통신 016 Na 광고다. 한국 방송 광고 역사상 가장 심오한 철학적 질문을 담고 있는 < 016 - Na > 는 (당시 한국 사회가 받아들이기엔) 지나치게 심오하고 오묘했다. 아버지가 웃자 시청자도 웃었다. 왜 ? 나도, 너도, 바둑이도, 고양이도 잘 모르기 때문이다. 난들 나를 모르는데 넌들 나를 알겠느냐 ? 아들은 의미심장한 미소를 던지며 놀다 오겠다고 말한다.

 

아마, 아들은 " 동쪽 " 으로 갔을 것이 분명하다. 왜 ?!  " 몰라서 물어. 사실 나도 잘 몰라 ! " 아햏햏 아버지는 세상에 공짜'가 어디 있냐며 아햏햏, 웃으셨지만 세상은 공짜/空자가 지배하는 세계'다. < 마빡이 > 나 < 016 광고 > 속 na는 모두 空이다. 지금 관객은 의미가 없는 것처럼 보이는 반복 행위'를 본다. 그동안 우리가 무의미'를 보거나 의식하지 못한 이유는 무의미를 볼 기회(무의미를 인식할 기회)가 없었기 때문이다. 프로이트가 위대한 점은 무의식을 발견한 것이다. 생각과 행동을 지배하는 것은 의식이 아니라 무의식이다. 의식은 무의식에 비하면 " 빙산의 일각 " 이다. ( 빙산의 일각'이라는 관용구 대신 남산의 팔각(정)이라는 표현은 어떨까 ? ) 인간은 자신의 생각과 행동을 의식이 통제한다고 믿지만 사실 일상 대부분은 무의식이 통제한 결과'다.  

 

불교는 無와 空을 발견한 종교'다. 아라비아숫자 < 0 > 이 인도에서 발견되었다는 점은 의미심장하다. " zero " 라는 말의 어원도 인도어'에서 비롯됐다. < 0 > 은 인도어로 空을 뜻하는 " 수냐(sunya) " 다. 이 말이 아랍으로 건너오면서 시프르(sifr)가 되었고, 서양으로 건너오면서 라틴어 제피루스(zephirus) 가 되었다. 또한 숫자를 뜻하는 프랑스어 시프르(chiffre)는 0을 뜻하는 수냐'에서 따왔다. 이 정도면 숫자의 아버지는 1,2,3,4,5,6,7,8,9가 아니라 0이다. 우우, 하지 마라. 와와, 해라. 무는 힘이 세'다. 영화 << 배트맨 >> 에서 악당으로 나오는 " 조커 " 는 카드놀이에서 무소속'이다. 그는 스페이스 군단도 아니고, 다이아몬드 군단'도 아니다. 물론 하, 하하하하트 군단 소속도 아니다. 그는 독자/獨自이며 고아/孤兒다. 짐승의 썩은 고기만을 찾아다니는 하이에나가 아니라 눈 덮인 킬리만자로의 표범이 되고 싶었으리라. 소속이 없다 보니 계급도 없다. 스페이드 1보다 낮은 숫자'다.

 

결국 조커는 0에 가까운 존재'다. 하지만 0은 무시무시한 증식과 동시에 완벽한 소멸을 보여준다. 1 더하기 1은 2이지만, 1이라는 숫자 옆에 0이 놓이면 10이 된다.  반면 10 x 10 = 100이지만 1000000000000000000 x 0 = 0이다. " 오, 한순간에 새됐어 ! " 0은 상대가 어마무시한 골리앗이라 해도 단번에 쓰러뜨리는 힘과 지략을 겸비한 다윗이다. 블랙홀과 빅뱅 현상도 특정 대상을 0으로 나눈 결과'다. 왜냐고 묻지 마라. 우주 물리 과학자들이 그렇다면 그런 거다. 우주를 지배하는 것은 0이다. 0은 無이면서 無限( ∞ ) 이다. 영화 속 조커는, 그런 존재'다 ! 조커는 무의식'이며 무소속이고 무의미하면서 어디에도 없지만 어디에나 있다. 나는 공짜'다. 정종철이 << 골목대장 마빡이 >> 에서 주장하듯이 na는 무서운 놈이다. 웃지 마라, 이 콩트는 무서워야 끝난다.

 

끝으로 오세훈에게 한마디 하련다. 공짜 점심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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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2014-06-15 20: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저 광고 다시 보니 정말 웃깁니다. 요즘은 저런 광고가 못 나올 것 같아요.
나오게 되면 이병헌 같은 배우가 나와서 각 잡고 "단언컨대 0은 가장 완벽한 숫자입니다.." 그럴 거 가틈.

곰곰생각하는발 2014-06-16 19:02   좋아요 0 | URL
개인적으로 가장 인상에 남는 광고였습니다. 이 광고가 언제 나왔는지 모르겠지만
마빡이 유행해서 이 광고가 나왔나 ?! ㅎㅎㅎㅎ.
0은 정말 신기합니다. 두고두고 생각할 숫자입니다.

엄동 2014-06-16 21: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폰으로는 동영상이 안보이는군요
잘계셨지요?
출근길 신호대기중에
뒤에서 받히는 바람에 일주일간 병원 신세를 졌어요
아직도 등허리가 뻐근뻐근하네요
차조심하세요 몰때도 거닐때도.

곰곰생각하는발 2014-06-17 10:40   좋아요 0 | URL
교통사고는 후유증 조심해야 한다 하는데
조심하십시요. 앞뒤 범퍼에 스프링을 달아농으세요.
튕겨나가게... 그래도 댓글 다시는 거 보니
다행이군요....

만화애니비평 2014-06-18 09: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세훈씨 잘 있습니까? ㅎㅎㅎ

살인의 추억 송강호 씨의 대사가 생각나는군여

밥은 먹고 다니냐?

아마 밥 대신 고기를 먹지 않을까 합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4-06-18 18:38   좋아요 0 | URL
5세 아마, 어디서 대학 강의하고 있을 겁니다. 요즘 추세가 국회 떨어지면 대학으로 빠지더라고요...
보고 싶네요. 5세 훈이의 하얗고 고른 이,빨 !!!! 스마일'에 꿈뻑 죽던 유권자들......

2014-06-18 15:4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4-06-18 18:39   URL
비밀 댓글입니다.
 

 

 

 

 

 

 

 

 

 

 

 

 

 

 

 

 

 

 

 

 

 


 

 

 

편하게 있어도 되지만......

 

 

 

http://youtu.be/uW-sjI2wB6k

 

 

사내(社內) 인트라넷'에 < 익명 자유 게시판 > 이 도입된 적이 있다. 보스는 낮에는 진보요, 밤에는 보수 꼴통 마초'가 되는 " 지킬 박사와 하이드 " 형 인간이었다. 많은 참모진이 " 익명 게시판 " 을 반대했지만, 보스는 직원이 익명으로 글을 쓸 수 있는 권리와 자유를 옹호하며 " 익명게시판 " 을 " 직장 내 신문고 " 로 육성하겠다는 야심 찬 결의를 했다. 직접 백성(평직원)의 말을 듣겠다는 소리'다.  " 사내 직원들이여, 눈치 보지 말고 편안하게 글을 올리쇼 ! " 당시 사내 커뮤니티 관계망은 오로지 실명 인증을 통해서만 글을 쓸 수 있다 보니 불만 사항이 있어도 불만을 자유롭게 말할 수 있는 이는 없었다. 그런데 직원들은 생각보다 익명게시판에 불만을 쏟아내지 않았다. 오히려 아부가 늘었다.

 

어떤 놈은 안으로는 자주 독립을, 밖으로난 민주 번영에 이바지하겠다는 소리와 함께 조직의 강성대국을 위해서 이 한 몸 바치겠다는 말로 매조지하는  습자기 같은 간신도 있었다. 형광등 백한 개를 켜놓은 듯한 아부'는 나중에 술자리 안주가 되어 조롱을 받곤 했다.  가끔 술자리 뒷담화 타임에 불콰하던 얼굴이 불쾌한 표정으로 바뀌는 이도 있었다. 익명이다 보니 누가 누구인지 그 누가 알겠는가 ? 다음날 익명 게시판에는 " 회사 험담이나 하는 족속들 " 이라는 글이 올라오고는 했다. 우리는 불콰했던 얼굴이 불쾌한 표정으로 변했던 김 대리'를 의심했다. 어느 날이었다. 익명 게시판에 평소 마초 꼴통 면모를 보였던 닉네임 뽀로로 님이 독도를 다케시마'라고 우기는 일본을 " 쪽빠리 " 운운하며 맹렬히 비난하는 글을 올렸다.

 

당시, 한국과 일본은 독도 문제를 놓고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었다. 나는 그 글에 댓글을 달았다. " 뽀로로 님, 흥분하지 마십시요. 밑도 끝도 없이 무조건 비난하기에 앞서 독도 역사를 공부할 필요가 있습니다. 뽀로로가 반론을 제기했다. " 곰곰생각하는발 님, 친일파 근성은 버리시죠 ? " 나 또한 반박 댓글을 달았다. " 뽀로로 님, 잘하면 대나무 깎아 죽창 만들 기세로군요 ! " 오고가는말풍선이 길어지자 사태는 걷잡을 수 없이 커졌다. 며칠 후, 총무부로부터 메일이 하나 도착했다. 익명 게시판을 소란스럽게 만들지 말라는 경고였다. 익명 게시판'이라더니 사실은 거짓말이었다. 추적하면 다 나오는 시스템이었다. 이런, 슈발 ! 추측컨대, 나와 말싸움을 벌렸던 이는 사장이었던 모양이다. 몇 달 후 익명 게시판'은 소리 소문 없이 사라졌다.

 

개그콘서트 << 편하게 있어 >> 는 " 공적 영역에서 사적 영역으로 이동했을 때. 송대리가 겪게 되는 곤경 " 에 대한 이야기'다.  콩트 설정을 살펴보니 김과장은 고래도 아니면서 고래인 척 고래 흉내를 내는 술고래'다. 그에게 송대리'는 일 잘하는 쎈쓰쟁이요, 믿고 의지하는 아랫사람이다. 3차는 자기 집'이다. 그는 송대리에게 말한다. " (내 집이라 생각하고) 편하게 있어 ! " 송대리 입장에서 보면 편할 리 없다. 김과장이 편하게 있어, 라고 말하는 순간 그곳은 불편한 장소가 된다. 왜냐하면 송대리와 김과장은 공적 영역에서 맺어진 관계이기 때문이다. 공적 관계인 송대리가 사적 공간인 김과장 집에 침범하는 순간 사회적 거리'는 무너진다. 윗사람과 아랫사람 사이에는 보이지 않는 거리'가 존재한다.

 

사회학자 어빙 고프먼은 << 상호작용 의례 >> 에서 " 중간 계급이 사는 도심 지역에서 하위 계급이 사는 농촌 지역으로 갈수록 좌석 사이의 간격이 좁아진다 (73쪽, 아카네) " 고 지적한다. " 상위 계급일수록 접촉 금기의 범위가 더 넓고 정교하다 " 권력과 자리가 높을수록 가까이 하기엔 너무 먼 거리'가 탄생한다. 권력과 거리는 비례한다. 백악관 청소부가 오바마와 아무리 친하다 한들 오바마에게 다가가 팔짱을 낄 수는 없다. 하지만 오바마는 청소부에게 다가가 팔짱을 낄 수 있다. 거리를 침범했으니 무례한 태도일까 ? 그렇지 않다, 오히려 오바마는 수평적 마인드를 가진 지도자'라는 칭찬을 받을 것이다. 문제는 윗사람은 아랫사람에게 허락없이 친밀감을 표현할 권리가 있지만 아랫사람은 그럴 권리가 없다는 점이다. 그게 바로 권력의 맛, 아니겠습니까 ?

 

김과장(윗사람)이 송대리(아랫사람)을 자기 집으로 데리고 간 태도는 송대리에 대한 민음과 신뢰를 바탕으로 한 친밀감 표현이지만, 송대리 입장에서는 여간 불편한 게 아니다. 편하게 있어, 라고 말하는 관계는 대부분 불편한 관계'다. 편한 사이는 결코 편하게 있어, 라는 말 따위는 하지 않는다. 마치 사랑하는 사이는 미안하다는 말을 하지 않는 것과 같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는 눈에 보이지 않는 공간이 존재한다. 설정에 따라 공적 공간에서는 편하지만 사적 공간 안으로 들어가면 불편해지는 관계가 있다. 개그콘서트 << 편하게 있어 >> 는 서로 친한 사이'라고 해도 공적 공간에서 느끼는 친밀도와 사적 공간에서 느끼는 친밀도가 서로 다르다는 사실을 말해준다.

 

나와 말싸움을 했던 뽀로로 님은 익명게시판을 통해 온라인 야자 타임'을 도입하여 편하게 말할 수 있는 자유를 도입했지만 한계에 봉착했다. 그는 아랫사람에게 다가가 팔짱을 끼는 몸짓을 근사한 태도라 생각했지만, 막상 아랫사람이 윗사람에게 다가가 팔짱을 끼는 것은 용서할 수 없었던, 없었던, 없었던 것이다. 윗사람이 아랫사람에게 예의상 던지는 " 편하게 있어 ! " 라는 말에는 생략된 부분이 있다. " 편하게 있어,   도 되지만 예의는 반드시 지켜야지 ? " 인간 관계에서 중요한 것은 입 밖으로 나온 말이 아니라 입 속으로 삼긴 말(생략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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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립간 2014-06-14 08: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같은 글을 읽고 곰곰발님과 같은(?) 결론에, 같지 않은(?) 결론이군요.

저는 이와 같은 생각을 떠올렸습니다. ; 인간 사회 관계에서 중요한 것은 입 속으로 삼긴 말(생략된 말)이 아니라 입 밖으로 나온 말이다.

저도 이 글에도 동의 합니다. ; 인간 관계에서 중요한 것은 입 밖으로 나온 말이 아니라 입 속으로 삼긴 말(생략된 말)이다.

인간 사회 관계 - 공적 영역, 인간 관계 - 사적 영역, 또는 양자를 포괄한 영역 ; 위 글의 인간 관계가 공적, 사적을 포괄한 의미라면 그것은 개인의 가치관 선택이 아닐까요.

곰곰생각하는발 2014-06-14 22:04   좋아요 0 | URL
저는 좀 프로이트적으로 생각해서 쓴 문장입니다. 물론 프로이트 이론 중 프로이트는 " 말실수 " 가 갖는 의미를 크게 보았지만, 프로이트 정신분석은 대체로 발화된 의미보다는 생략된 언어'를 찾는 과정이라고 생각합니다. 프로이트가 이런 말을 했죠. 당신을 증오한다는 당신을 사랑한다, 라는 말이다... 이런 비스무리한 말 말이죠. 입 밖ㅇ로 나온 말은 증오한다인데, 사실 여기서 생략된 말은 사랑한다는 말이었죠. 그런 의미입니다.헤헤...
 

 

 

 

 

 

 

 

 

 

 

 

 

 

 

 

 

 

 

 

 


 

 

 

 

 

 

개그 콘서트 1 : 생활의 발견 + 나쁜 사람 http://blog.aladin.co.kr/749915104/6419243 :

개그 콘서트 2 : 두 분 토론 http://blog.aladin.co.kr/749915104/6420323 :

개그 콘서트 3 : 깐족거리 잔혹사 http://blog.aladin.co.kr/749915104/6943434 :

 

 

 

 

 

 

 

그 옷은 우리와 어울리지 않아 ! *

 

* 퍼트리샤 하이스미스 단편, 당신은 우리와 어울리지 않아

 

대학로 로맨스는 2009년 개그 콘서트 대박 코너 가운데 하나였던 << 분장실의 강 선생님 >>과 웃음 코드가 동일하다. 분장-쇼'라는 측면에서 < 대학로 로맨스 > 는 < 분장실의 강 선생님 > 속편이다. 강유미와 안영미가 대학로 연극 선후배 관계로 설정되었다면, 서태훈과 허안나'는 연인 사이로 나온다. 여기에 안영미가 실감나게 연기한 밉상 진상 선배 캐릭터는 정승환이 맡았다. 이 콩트에서 정승환과 허안나는 매회마다 엽기적 분장-쇼'를 선보인다. 그들은 가가멜, 마녀, 스머프, 까마귀, 두더지, 물개, 돼지머리, 두꺼비'가 되어 관객 앞에 나타난다. 강유미 - 안영미 짝패'에 비해 관객을 들었다 놨다 들었다 놨다 하는 강력한 카리스마는 없지만 그럭저럭 배역을 잘 소화한다. " 빠앙~ " 터지지는 않지만  " 푸우~ " 웃게 만드는 힘은 있다.

 

웃음을 유발하는 코드는 엉터리 분장/복장'인데 한눈에 봐도 겉과 속이 다른, " 속보이는 " 재현이다. 그것은 " 맞지 않는 옷 " 이다. 사람이 개나 돼지 복장을 한다는 점에서 크로스 드레서 Cross-Dresser 다. 젠더 위반 복장은 대상을 우스꽝스럽게 만드는 데, << 록키 호러 픽쳐쇼 >> 나 << 헤드윅 >> 에 나타난 드렉퀸'은 사회에 불온한 존재처럼 보인다. 콩트 속 허안나는 서태훈에게 이별을 통보한다. 늘씬한 체격에 잘생긴 서태훈은 이별 통보에 밤잠을 설친 듯하다. 그는 애인이 일하는 극장으로 헐레벌떡 달려와 전화를 건 후 여자를 기다린다. 이때 여자는 예상을 깬 " 파격 " 패션으로 무대에 등장한다. 그녀는 애벌레이거나 까마귀 복장을 하고 있다. 종(인간)을 위반했다는 점'에서 허안나는 크로스-드레서'다. 그녀는 어울리지 않는 옷(맞지 않는 옷)을 입었기에 우스꽝스럽다

 

관객은 이별 장면에서 허안나의 통보'가 " 자격지심 " 에서 비롯된 것이란 사실을 깨닫게 된다. 그녀는 하. 찮. 은. 존. 재. 다 ! 하층민이다. 직장 선배 정승환도 마찬가지'다. 분장쇼에 동원된 대상은 인간보다 열등한 자격을 가진 족속이다. 그들은 하나같이 부자연스러운 행동으로 관객을 웃긴다. 움직이지 않고 꿈틀거린다. 걷는다기보다는 흐느적거린다. 팔과 다리는 대부분 없거나 혹은 지나치게 길거나 짧다. 퇴화의 증후'이다. 여기에는 낯선 타자성에 대한 거부, 인간 실격, 계급 강등 혹은 계급 갈등이 자리잡고 있다.  당신이 이 콩트를 보며 실없이 웃는 이유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비정상성에 대한 차별이 작동한 결과'다. 그곳은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가 발견한 " 토끼굴 속 크로스 드레서 세상 " 이다. 서태훈은 소년 앨리스'이고, 정승환과 허안나는 트위들덤과 트위들디'다.

  

결국 사랑을 되찾는 것으로 콩트는 끝을 맺지만 이 해피엔딩은 어딘가 의심스럽다. " 레벨 " 을 강조하는 정상 가족은 과연 " 급 " 이 다른 크로스 드레서'를 받아들일 수 있을까 ? 대한민국 사회는 " 변형된 타자 ( 어울리지 않는 옷을 입은 ) "  대해 지나치게 신경질을 부린다. 순혈에 대한 집착은 한국 사회를 " 병맛 " 으로 만들었다. 이종 간 교접 행위로 인해 피 섞이면 곤란하다는 논조'다. 한국 사회는 단일 민족이요, 순혈 사회'이니깐 말이다. 한국 주류 사회에서 동남아 이주노동자는 대부분 우스꽝스러운 복장을 한, " 급 " 이 다른 며느리'다. 대한민국 정상 가족이 이들을 가족 구성원으로 받아들이기에는 교양이 부족하다. 이러한 공격은 외국인뿐만 아니라 특정 소수 내국인에게도 향한다. LGBT가 그들이다.

  

정상 가족 신화는  LGTB를 이종 교잡에서 태어난 사생아로 낙인 찍는다. 오로지 공격과 비웃음뿐이다. 제2의 윤창중이 되실 문창극 선생님은 퀴어 문화 축제에 대해 이렇게 말씀하셨다. " 퍼레이드를 왜 하나, 자기가 좋아한다면 그냥 좋아하면 되지, 왜 홀딱 벗고 퍼레이드 하나 ! " 틀린 말은 바로잡아야 한다. 홀딱 벗지는 않았다. 빤스는 입었다. 빤스 입고 돌아다니는 게 퇴폐'라면,  빤스 벗고 덤빈 윤창중 선생님은 퉤퉤퉤퉤퉤퉤퉤퉷폐'다. 축제는 일탈이다. 한국 사회가 이 정도 일탈도 포용할 줄 모른다면 그런 사회는 밴댕이 소갈딱지'요, 아주공갈염소똥이다. 그들이 퀴어 퍼레이드에서 보여주고 싶었던 것은 패션-쇼'가 아니라 " 차이에 대한 긍정 메시지 " 다.  한국 사회에서 " 복장 " 은 단정해야 한다. 어울리지 않는 옷을 입은 무리는 왕따 당한다. 노스페이스가 유행하면 노스페이스를 입어야 하고, 레깅스가 유행하면 레깅스를 입어야 한다. 

 

변신은 순혈과 혈맹 사회가 허용하는 범위 안에서만 가능하다. 유행은 언제나 이 범위 안에 있을 때에만 유효하며 안전하다. 배꼽티와 미니스커트가 아무리 급진적이라 해도, 사실은 허용 범위 안에서만 불온한 척할 뿐이다. 퀴어 문화 축제'에서 동성애자들이 분장한 크로스 드레서'는 맞지 않는 옷이 아니다. 오히려 사회가 요구하는 성 역할에 충실하기 위해서 양복과 넥타이로 치장한 복장이 그들에게는 어울리지 않는 옷이었다. 변신은 무죄라고 했던가 ? 하지만 틀렸다. 대한민국에서 변신은 유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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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2014-06-12 06: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스머프, 가가멜 편은 저도 봤지요.
개그 콘서트,는 참 대단한 프로.. 각자의 층위에서 여러 유머 코드에 폭소, 쓴웃음 갖가지 반응이 나오는 것 같습니다.
심지어 울집 꼬맹이들도 즐겨 본다지요.

곰곰생각하는발 2014-06-12 15:32   좋아요 0 | URL
이거 은근 재미있습니다. 전 티븨를 안 보는데, 그냥 하루 몰아서 왕창 보는 스타일입니다.
제가 이 프로 보면서 느낀 것을 옷을 잘못 입으면 웃긴다는 거죠.
퀴어페스티발에서 동성애자들은 웃긴 옷을 입은 게 아니라 자신의 정체성을 알리기 위해 입은 옷입니다.
넥타이를 버리고 용기를 내서 빤스 입고 멋을 낸 것이라는 측면에서 보면 알맞은 옷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호모포비아들은 우스꽝스러운 옷을 입었다고 눈살을 찌프리죠....

하여튼 개그 컨서트는 재미이씀..

마립간 2014-06-12 16: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한국 사회의 지배층과 비슷한 지도층/상류층도 일탈을 하죠. 단지 권력과 돈에 의해 보안이 철저히 유지됩니다. 물론 100% 보안이 유지될 수 없으므로 틈새로 새어 나오기도 합니다. 별장 성접대와 같이. 이들의 속내는 권력도 돈도 없으면서 무슨 일탈을... 이라고 할지도 모르겠군요.

제가 일탈을 하지 않는 것은 일탈을 하지 않은 것이 아니라 권력과 돈이 없어 못하는 것일 수 있습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4-06-12 15:35   좋아요 0 | URL
권력이 커질수록 법적 예외조항들이 생겨나게 됩니다.
특히 후진국일수록 그렇잖습니까.
심판의 잣대가 기울어져 있다는 것 자체가 문제죠. 타 문화, 타자성에 대해서 좀 간섭하지 말았으면 합니다.
남의 성생활에 이래라 저래라 하는 게 우스움..

마립간 2014-06-12 16:45   좋아요 0 | URL
그러니까 수평적 가치관(남의 성생활, 타 문화)과 수직적 가치관(사적 도덕성)을 혼동하고 있는 것이죠.

곰곰생각하는발 2014-06-12 17:12   좋아요 0 | URL
오, 그런 것 같습니다. 수평적 기준과 수직적 기준을 혼동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자기 앞가림도 못하는 주제에 그들은 이런 말을 하더군요. 동성애는 결과적으로 후세에 인간 유전자를 전달하지 못하기 때문에
잘못된 것이다. 아니....ㅎㅎㅎㅎ 그냥 자기 앞가림을 제대로만 해도 좋은 세상이 오는데 앞으로 10000년 후를 걱정하는 게 좀 그렇습니다.

pastafor루루 2014-06-12 23: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루루님 글은 너무 재미있고 좋아여
월간 페루애
주간 페루애
일간 페루애
이런 걸룽 아침마다 배달오면 좋겠땅 ~0~
종이로도 읽고시퍼여

곰곰생각하는발 2014-06-13 15:54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다음에는 페루애의 아침편지'를 발송해 드리겠습니다.
식후 3회 발송 조치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