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이 스포츠를 소비하는 방식
신체 검사는 합격 판정을 받았지만 " 기타 등등 " 으로 군 면제를 받은 사람을 대상으로 한 3주간 군사 훈련'을 < 실미교육 > 이라고 한다. 이 " 기타 등등....... " 에는 전과 기록 때문에 군 입대를 할 수 없는 사람도 다수 포함된다. 그래서 실미교육을 받는 사람 중에는 조폭이 입소하기도 했다. " 정신 바짝 차려라 ! 이놈들은 민간인이 아니다.... " 중대장이 사뭇 경직된 목소리로 말했다. 시바, 좆됐구나 ! 나는 마른 침을 삼켰다. 실미 교육을 담당해야 할 내무 반장 역을 맡았기 때문이다. 내게 배당된 내무반 훈련생은 총 16명이었는데 전과 기록을 가진 사람은 3명이었다. 셋 다 조폭이었다. 그 가운데 한놈이 유독 눈에 띄었다. 스티븐 킹 소설 << 그린 마일 >> 에 나오는 흑인 죄수와 판박이였다.
헬스로 다진 몸이 아닌, 말 그대로 지하 세계에서 뒹굴다가 다듬어진 거구'였다. 기록표를 보니 이십대 후반이었다. 나는, 압도당했다. 내색은 하지 않았다. 내무반에 들어가 큰소리로 외쳤다. "사복을 벗고 훈련복으로 갈아입는다. 실시 ! " 다음에 나올 말은 이미 정해져 있었다. 동작 그만 ! 그것 밖에 못하겠습니까 ? 라고 말한 후, 대가리를 바닥에 박는다, 실시 ! 라고 말하면 끗 ! 그런데 나는 예정된 시나리오대로 하지 못했다. 킹 소설에 나오는 흑인 죄수를 닮은 그가 옷통을 벗었을 때 깜짝 놀랐다. 말로만 듣던 " 칼빵 " 이었다. 오, 오오. 온몸이 칼자국이었는데 흉터가 부풀어올라서 선들이 어지럽게 새겨져 있었다. 칸딘스키 회화를 보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나는 다시 침을 꿀꺽 삼켰다. 하지만 그는 훈련 과정 내내 별다른 말썽을 부리지 않았다. 조폭들은 명령에 살고 명령에 죽는 놈이라서 오히려 군사 시스템에 잘 적응했다. 3주차 훈련이 끝나갈 무렵, 나는 그에게 몸에 새겨진 " 칼빵 " 에 대해 물어보았다. 그가 어눌하게 대답했다. " 나 같은 놈에게는 칼자국이 훈장입니다. 교도소에서도 칼빵 많은 놈은 함부로 대하지 못합니다. " 그는 칼자국 흉터의 길이와 개수로 자신이 얼마나 무시무시한 놈인가를 증명했다. 코맥 메카시가 말했다. 흉터에는 신비한 힘이 있다고, 흉터는 과거에 있었던 일이 사실이라는 것을 증명한다고. 조폭이 " 칼빵 " 으로 자신의 가치를 증명한다면 프로 선수는 " 몸값 " 으로 자신이 가지고 있는 가치를 증명한다.
몸값이 곧 서열'이다. 대한민국 월드컵 축구팀이 왜 16강에 진출하지 못했는가, 라는 의문점은 몸값을 보면 답이 나온다. 실력만 놓고 보면 한국은 16강에 진출할 가능성은 낮았다. 성적이 56등인 꼴찌'에게 10등을 바랄 수는 있다. 하지만 무리'다. 이럴 때 한국인이 항상 내세우는 것은 모자란 실력은 정신력으로 채우면 된다는 논리'다. < 헝그리 정신 > 을 강조한다. 헝그리는 만병통치약'이다. 열악한 운동 환경 따위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송강호 말마따나 " 내가 현정화라면 현정화야. 씹떼끼야.... " 다. 대한민국 꼰대가 대한민국 젊은이에게 하는 소리'다. 헝그리 정신을 이명박 식으로 말하자면 배부른 소리'이고, 박근혜 스타일로 각색하자면 제2의 새마을 운동 정신'이다.
하지만 월드컵은 < 정신력 > 만 가지고 할 수 있는 경기가 아니다. 축구는 정신력, 근력, 순발력, 지도력 따위가 종합적으로 작동할 때 좋은 성적이 나온다. 정신력은 많은 요소 가운데 하나이지 절대 요소가 아니다. 정신력은 한국인에게만 있나 ? 실력을 갖췄는데 정신력마저 뛰어나다면 ?! 누누이 말하지만 실력은 정신력보다 좋은 기술'이다. 대한민국은 선수들이 좋은 환경에서 운동할 수 있도록 기반 시설과 제도 따위를 지원하기보다는 정신력'만을 강조하는 경향이 있다. 스포츠 육성 정책은 < 될 놈 > 을 밀어주어야 하는데, < 된 놈 > 만 밀어준다. 검증된 놈에게만 과도하게 몰빵하는 구조'다. 이 과정에서 될 놈과 되지 못한 놈은 철저하게 소외된다. 국가는 된 놈에게 온갖 선물을 주고는 생색을 낸다. " 봤냐, 우리 전하는 성적 좋은 놈에게는 그만한 대가를 지불하거등 ! "
스포츠 세계에서도 승자 독식 현상은 그대로 재현되었다. 실력보다는 정신력을 강조하는 오랜 전통은 박정희 정권에서 가훈으로 작용했고 이명박근혜 키드는 계승 발전한다. 좋은 환경이 마련되어야 좋은 실력이 나오는 법인데, 실력을 위해서 환경 개선을 주문하면 허, 허허허허헝그리 정신을 내세운다. 내, 내내내내가 현정화라면 현정화야. 이 씹떼끼야 ! 내, 내내내 말 잘 들어. 게으른 놈에게는 내일의 태양은 뜨지 않아 ! 대한민국은 헝그리 정신과 의리'가 지배하는 사회'다. 하지만 헝그리 정신을 강조하는 것은 비단 고용주만이 아니다. 고용주에 세뇌된 노동자도 현정화, 현정화, 현정화 한다. 현정화 정신는 곧 대한민국 현대화 과정이 되었다.
한국 선수들의 정신력 부족을 탓하기 전에 열악한 운동 환경에 대한 지적이 선행되어야 한다. 그게 이치에 맞다. 안선주라는 프로골프 선수가 있다. 그녀는 일본프로여자골프에서 활약하는데 놀랄 만한 성적을 기록 중이다. 그녀가 한국프로여자골프에서 뛰지 않고 일본을 선택한 이유가 한국 기업으로부터 후원을 받을 수 없었던 데 있다고 고백했다. 안선주는 실력은 탁월했지만 뛰어난 미녀는 아니었다. 후원 명목으로 성형을 강요한 기업도 있었다. 대한민국 스포츠의 현실이다. 김연아에 대한 열광에는 그녀가 가지고 있는 미모가 크게 작용했다는 사실을 부정하면 안 된다. 김연아와 안선주가 " 체인지 " 했다면, 지금처럼 당신은 김연아에 열광할 수 있을까 ? 모순을 직시하자. 개그콘서트 << 끝사랑 >> 에 나오는 정태호 말투를 빌려 말하자. " 그거 사랑 아니야 ! "
현정화 정신을 강조한 현대화 과정에서 군사부일체는 늘 정신력을 강조했다. 여성 노동자는 생리통 약과 잠을 쫒는 약을 먹으며 철야 근무를 했고, 이에 환경 개선을 주문하면 빨갱이'가 되었다. 그들이 보기에 노동 환경 개선 주장은 헝그리 정신이 부족한 탓이라고 생각한다. 군사부일체에게 있어서 노동자 몸은 연소되어도 되는 주체'였다. 고용주는 현정화 정신을 숭배했다. 우리는 항상 환경과 구조적 문제점을 말하기보다는 헝그리 정신만 강조하게 되었다. 이 자리에서 밝히지만 " 라면 먹고 금메달 딴 선수는 현정화가 아니라 임춘애입니다, 형님 ! " 이에 대한 형님의 반응은 뻔하다. " 나가 있어 !!!! " 그래도 나는 말하련다. " 임춘애입니다, 형님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