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루레이] 친구
곽경택 감독, 유오성 외 출연 / 컨텐트존 / 201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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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어수선 32호


 

그라믄, 여가 북(北)이가 ?

 

 

 

" 놔라 ! 김중배의 다이아몬드가 그렇게 좋단말이냐 ? "

- 이수일과 심순애 中

 

 

 

 

 

 

 

 

 

나중에 그녀가 고백한 바에 따르자면 : 나를 보자마자 한눈에 사랑에 빠졌다고 한다. 그녀는 대학 진학에 실패해서 입시 학원에 다녔고, 나는 그 근처 영화감상실'에서 파트 타임으로 일을 했다. 당시, 나는 거친 야생마 같았다. 머리는 허리까지 길러서 묶고 다녔고, 니콘 카메라 가방은 온통 뜻을 알 수 없는 낙서들로 채웠다. 그리고 무명 T 에는 유성 매직펜으로 < 그해 가을 > 이라는 이성복 詩를 필사해서 써넣었다. " 아버지, 아버지 씹새끼. 입이 열 개라고 할 말 없어. " 내가 나타나면 동네 사람 중 열에 아홉은 수근덕거렸다. 동네 사람들 사이에서 나는 롹커'라는 소문도 있었고, 전위예술가라는 소리도 흘러다녔다. 또 누군가는 글을 쓰는 작가라고 지레짐작하는 이도 있었다. 우우, 하지 마라. 지금 생각하면 개폼'이었지만 그때는 나름 진지했다. 세상이 너무 네모반듯해서 " 아방가르드 " 하며 " 아스트랄的 "  삶을 살고 싶었다고나 할까 ? 

 

나는 자주 입방아에 올랐다. 헤어커커 미용실 주인도, 후암동 철물점 아저씨도, 순희네 식당 아줌마도, 대성 헌책방 김씨도 내 이야기를 하고는 했다. 나에 대한 소문은 학원으로도 흘러간 모양이었다. 그녀는 소문을 확인하기 위해서 내가 일하는 곳을 찾아왔다. 방긋 ! 그녀는 나를 보자마자 웃었다. 이제 갓 스무살이 지난 앳된 아가씨이니 꽃보다 예뻐 보였다. 그녀는 대뜸 영화 한 편을 추천해 달라고 말했다. 내가 그녀에게 골라준 영화는 낸시 사보카 감독이 만든 << 샌프란시스코에서 하룻밤 >> 이었다. 주연은 리버 피닉스'였다. 모든 사항을 고려한 선택이었다. 여자들은 모두 다 리버 피릭스를 사랑하니까, 리버 피닉스는 진리이니까. 여자는 영화가 끝나고 한참 있다 나왔다. 한쪽 뺨이 발그레해진 것을 보면 영화를 보다가 잠을 잔 것이 분명했다. 그녀가 말했다. " 영화 정말 재미있어요 ! "

 

그날 이후, 그녀는 매일 와서 영화 한 편을 보았고 나는 매일 영화 한 편을 추천했다. 내가 추천한 목록은 점점 심각한 영화 쪽으로 기울어졌고, 그럴수록 그녀는 비디오방을 나올 때마다 한쪽 뺨은 항상 붉게 물들어 있었다. 어느 날이었다. 영화가 끝나자 여자는 평소와는 달리 인사도 없이 황급히 떠났다. 나는 평소와 다름없이 객실 정리를 하기 위해 그녀가 머물렀던 객실에 들어갔다. 의자 위에는 작은 선물 상자와 함께 쪽지 편지가 있었다. 달달한 사랑 고백 편지였다. 그날 우리는 술을 마셨다. 그녀에게 키스를 했다. 아, 아카시아 향기. 한동안 그녀는 나를 찾지 않았다. 그렇게 세월이 흘러 겨울이 왔고, 대입 수능일이 다가왔고, 학원 수강생들은 뿔뿔이 흩어졌다. 나는 잠시 그녀가 그리워지기 시작했지만 거기까지였다. 나는 다른 여자와 사랑에 빠지기 시작했다. 몇 년이 흘렀을까 ? 그녀에게서 연락이 왔다.

 

물어, 물어, 물어서 용케 내 전화번호를 알아냈다고 했다. 전화를 타고 전해진 목소리는 힘이 없어 보였다. 아픈 목소리였다. 어색한 시간이 흘렀다. 그럴수록 간절한 마음. 보고 싶어요. 나를 위해 오실 수 있나요 ? 그녀가 말했다. 이유를 묻자 그녀는 대답하지 않았다. 불길한 예감 ! 다음날, 그녀가 알려준 주소를 찾아 가기 시작했다. 버스 안에서 내내 초조한 감정을 숨길 수 없었다. 그녀는 침대에 누워 내가 오기를 기다리리라. 내가 도착한 곳은 외진 건물이었다. 건물 앞에서 그녀가 반갑게 나를 맞았다. 짧은 인사와 눈짓. 그녀가 나를 안내했다. 내가 간 곳은 다단계 회사 사무실이었다 ! 작은 사무실 안에는 나와 같은 사연을 가진 사람들이 백여 명 정도 모여 있었다. 그곳은 정글 자본주의의 성소'였다. 다단계 최상위 임원이라는 사람이 나와서 장장 4시간에 걸친 연설을 시작했다.

 

그들은 계급을 다이아몬드로 나눴다. 화이트, 레드, 블루. 최상위 계급은 블루 다이아몬드였다. 그 옆에는 그녀가 있었다. 진행 요원이었다. 그는 자기 통장을 보여주며 매달 천만 원이 입금이 된다고 했다. 평생, 앞으로 평생, 지구가 멸망하는 그날까지 평생 ! 와, 와와 ! 사람들이 술렁거리기 시작했다. 그가 말했다. " 건달은 양심은 팔이도 쪽은 안 판다고 합니다. 하지만 나는 성공을 위해서라면 양심도 팔고 쪽도 팝니다. 그래야 성공할 수 있으니까요 !! " 연설이 끝나자 심화 학습 시간이 이어졌다. 그리고 드디어 저녁 식사 타임이 왔다. 나는 냅다 그녀에게 싫은 소리를 했다. 그리고 뒤도 안 돌아보고 그곳을 빠져나왔다. 그녀가 어느새 뛰어와 내 팔을 붙잡았다. 옥신각신 다투다가 화가 난 그녀가 말했다. " 우리 사이에 그럴 수 있어 ? " 이 말은 마치 우리가 남이가, 라는 말처럼 들렸다.

 

그녀는 성공을 위해 양심도 팔고, 쪽도 팔고, 사랑도 팔았다. 정나미가 떨어졌다. 결과적으로 그날 그녀는 나를 포섭하지 못했다.  몇 달 후, 다단계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대학생을 집중 조명하는 시사 프로그램을 보게 되었다. 좁은 방에 갇혀서 남녀가 숙식을 해결하며 사람을 포섭하기 위해 모든 연락망을 돌리는 그들을 보게 되었다. 그녀, 생각이 났다. 샌프란시스코에서 하룻밤, 늘 한쪽 뺨만 붉어진 얼굴, 달달한 편지, 한 번의 키스. 영화 << 친구 >> 를 볼 때에도 그녀 생각이 났다. 우리 사이에 그럴 수 있어 ? 영화 << 친구 >> 를 10자평으로 간략하게 요약하자면 ㅣ 우리가 남이가 ?  다. 우리가 남이냐, 라는 질문은 비단 친구나 연인 사이에서만 오가는 상투어는 아니다. 대한민국 전체는 국민을 상대로 " 우리가 남이냐 ? " 고 묻는다. 파시즘의 시작은 언제나 " 우리가 남이냐 ? " 라는 질문으로 시작한다.

 

그럴 때마다 나는 되묻고 싶다. " 시발... 그라믄 여가 北이가 ? " 속지 말자. 누군가가 당신에게 " 우리가 남이냐? "  며 의리와 정분을 강조하면, 그 사람은 좋은 사람이 아니다. 명심하자. 우리는 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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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 우리말 지킴이 최종규와 어린이가 함께 읽는 철수와영희 우리말 시리즈 1
최종규 지음, 강우근 그림 / 철수와영희 / 2014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애정을 갖는다는 것은 할 말이 많다는 소리'다. 이 책에 대해 ( 나는 완벽하게 ) 할 말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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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수선 27호

 

 

 

 

니체와 애마, 부인 

 

 

 

 

우리 청춘의 끝없는 < 아아 ! > 와 < 오오 > 뿐

ㅡ 니체, 즐거운 지식 中

 

 

사람들은 니체를 " 가까이 하기엔 너무 먼, 불온한 철학자 " 라 생각하지만  알고 보면 니체는 눈물 많고 정 많은 철학자다. 내가 아는 범위 안에서 : 니체는 철학자 가운데 가장 인간적인 철학자였다.    반면 가장 정직한 철학자는 비트겐슈타인'이라고 생각한다      그는 강했지만 동시에 한없이 약한 존재였고 가난한 자에 대한 연민을 간직했던 사람이다. " 비가 오고 있다. 나는 가난한 사람들을 생각한다.1  " 1889년 1월 3일, 학대받아 숨진 말의 목덜미에 울며 매달리던 2 니체는 거리에서 정신을 잃는다. 거리에서 병들어 죽은 말은 한때 니체의 애마'였기 때문이었다. 니체와 애마는 그렇게 서로를 부둥켜안고 울었다.  발병 후, 니체는 10년 이상을 더 살았지만 식물인간이나 다름없었다.  그러니까 니체 사망일은 1900년 8월 25일이지만 정신적 사망일은 1889년 1월 3일이다. << 이 사람을 보라 >> 는 니체가 거리에서 쓰러지기 두 달 전에 초고를 마친 작품이다.

 

이 작품은 자기 자신에 대한 이야기를 담았다.  소제목은 " 나는 왜 이렇게 현명한가 " , " 나는 왜 이렇게 영리한가 " , " 나는 왜 이렇게 좋은 책을 쓰는가 " 이다. 어쩌면 그는 두 달 후에 닥칠 불행을 예감하고는 주변을 정리하려고 했던 것은 아니었을까 ? 그렇기에 나는 이 작품이 유언장'처럼 보인다. 이 책 마지막은 다음과 같은 문장으로 끝난다. " 나의 말을 이해했는가 ? " 아, 이 마지막 문장을 읽다가 눈물이 난 적이 있다.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니체 !  내가 가장 즐겨 사용하는 문장 가운데 하나는 " 아, 해도 된다. 우, 하지 마라 " 라는 표현일 것이다. 사람들은 이 문장이 박민규를 흉내 낸 것 아니냐고 묻던데 이 자리를 빌려 말하자면 " 아니올시다 " 이다. 적어도 박민규 문장을 흉내 낸 것은 아니다. 김애란 문장을 표절한 것도 아니다. 이 문장은 니체의 문장을 흉내 냈다.

 

<< 즐거운 지식 >> 에는 다음과 같은 문장이 있다. " 우리 청춘의 끝없는 < 아아 ! > 와 < 오오 > 뿐 "  이 문장을 처음 접했을 때 무릎 탁, 치고 아, 했다. 무슨 뜻인지는 모르겠으나 그냥 묘한 운율이 좋았다. 잘 짜인 라임으로 이루어진 훌륭한 랩을 들었을 때 느끼는 그런 입말의 쾌감 ?! 여기서 말하는 " 아아 " 는 " A " 이고, " 오오 " 는 " O " 다. 눈치 빠른 사람은 유레카를 외쳤으리라. 그렇다, 알파와 오메가를 뜻한다. 시작과 끝이란 의미다. 우리말로 구수하게 번역하자면 " 우리 청춘의 무궁한 영광을 위하여, 지화자 !!  " 정도가 되지 않을까 ? 국내에서는 << 즐거운 지식 >> 이라는 고상한 이름으로 제목을 달았지만 원문 제목을 충실하게 따르자면 << 쾌락학 / frohliche Wissenschaft >> 이 맞을 것이다. 니체는 이 책에서 쾌快에 대해 말한다. 니체와 스피노자는 서로 닮은 구석이 있다.

 

인간이 태어나서 처음 내뱉는 소리는 < 아 > 와 < 오 > 다. 특정 언어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전세계 공통이다. 이 세상 모든 아기는 < 아 > 와 < 오 > 라고 말을 한다. 나 또한 그랬고 당신 또한 그랬어. 하지만 < 아 > 와 < 오 > 가 어른들 사이에서는 다르게 사용된다는 것을 알게 된 계기는 초등학생 때 갔던 3류 영화관에서였다. 영화관은 아버지가 일하는 곳이어서 평소 자주 드나들 수 있었고 성인 영화도 몰래 볼 수 있었다.  맙소사, 에로 영화 속 어른들이 갓난아기 때나 사용하던 언어를 사용하는 것이 아닌가 ? 아, 아아아아아. 오, 오오오오오오 !   심야에 울리는 맑고 고운 청음. 슈퍼맨도 좋아하고, 베트맨도 좋아하고, 아줌마와 아저씨도 좋아하고, 당신도 좋아하는 소리. 나는 새로운 세상에 눈을 떴다. 닥치는 대로 에로 영화를 섭렵했다. 그 당시 대표적인 에로 영화는 << 애마부인 >> 시리즈'였다.

 

여자는 항상 란제리를 입고 비만 오면 비에 젖는다. 여배우의 나체와 애마는 서로 잘 어울렸다. 보기,   좋았다. 무수한 여자 배우들이 << 아아 ! >> 와 << 오오 >> 를 외쳤다. 도대체 저 소리의 근원은 어디에서 나오는 것일까 ?  나는 우리 소리를 찾아서 길을 나섰다. 그 소리는 울울한 침엽수림 숲에 가려진 검은 동굴에서 흘러나왔다. 도대체 저 동굴 속에는 어떤 짐승이 살고 있기에 이토록 오묘하며 쫄깃하며 끈끈한 소리를 내는 것일까 ?  고민 끝에 동굴 속으로 들어갔다. 하지만 그곳은 동굴이라기보다는 탄광 갱도'였다. 막장이란 곧 끝장'을 의미했다.  더 이상 캐낼 것'이 없는 석탄 갱도.  꼭 광부들만 막장을 드나들란 법은 없다.  섹스 또한 갈 때까지 간다는 면에서 막장에 대한 은유이니까.  잘빠진 청춘 남녀가 만나 평일 사만오천 원'에 콘돔을 제공하지 않는 이화장 모텔'에서 하룻밤'을 보냈다면 ! 

 

그곳에서 사람들은 " 서로의 속 " 을 파고든다.  악수보다는 포옹을, 포옹보다는 내부를 원한다. 그런 의미에서 섹스 행위는 막장에서 석탄을 캐는 고된 일'이다.  숨 막히는 열기'에 숨을 헐떡이는 광부처럼 당신도 숨을 헐떡이며 서로의 열기에 뼈와 살이 타는 막장 체험을' 하리라. 그곳에는 오직 < 아아 ! > 와 < 오오 > 만 있을 뿐 ! " 좋아 ?  막장이나 이화장'이나 어차피 장'급이잖아." 사실, 남녀 관계'란 파고 들어가면 갈수록' 별 볼 일 없는 막장'이다. 깊게 파고들수록 위험하다. 막장은 무너지기 쉬운 곳이니까. 갇힌다. 독살에 갇힌 나를 구해줄 당신을  기다리다가. 기다리다가 지친다.  온통 캄캄한 어둠이 된다.   숨쉬기'가 힘들어지면  살아있다는 사실이 지겨워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이 막장을 포기할 수 없다. 숨이 턱까지 차오르지만 쾌'를 버릴 수는 없다.  30초만 숨 쉴 시간을 주시겠습니까 ? 

 

내가 다니던 회사 영업 이사는 대한민국에서 < 아아 > 와 < 오오 > 를 가장 예술적으로 만든 에로 전문 영화 감독이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이 만든 < 아아 > 와 < 오오 > 를 무척 부끄러워했다.  어느 날, 나는 술자리에서 고백했다. " 감독님, 저는 어릴 때 감독님이 만든 영화 보면서 자랐습니다. << 남자의 국물 >> , << 당신의 전립선은 안전합니까 ? >> , << 상처적 치질 >> 는 예술이었습니다. " 감독은 부끄러운 듯 소주를 한 잔 입 안으로 털더니 낮게 말했다. " 아, 아아.... 그래 ? 오, 오오.... 반가운 소리군 ! "

 

 

 

 

 

 

http://myperu.blog.me/220170852376

 

 

  1. 니체, 즐거운 지식
  2. 롤랑 바르트, 카메라 루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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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자는 지옥이다

 

 

 

타자는 지옥이다

 - 사르트르

 

 

 

 

 

 

 

 

 

 

 

 

 

제철'이라는 말이 있다. 영국 식으로 말하자면 " 리즈 시절 " 이고, 중국 식으로 말하자면 " 화양연화 花樣年華 " 다. 꼰대가 즐겨 사용하는 " 왕년에 ~ " 라는 말은 " 제철 " 의 과거형'이다.   오해는 하지 마시라. 제철 씨 배다른 형이 왕련 씨'라는 말은 아니니까. 철 지난 제철이 왕년이다. 가을이 제철인 생선이 있다. 바로 전어'다. " 봄 도다리 가을 전어 " 라는 말이 있듯  가을이 오면 사람들은 전어 구이'를 생각하고는 침이 고인다. 맛은 잘 모르겠다. 잔가시 많은 생선을 좋아하지 않아서 일부러 찾는 생선은 아니다. 사실, 가을은 남자의 계절이기도 하다. 알베르 까뮈처럼 바바리 깃 세우고 담배 한 대 피우면 가을 남성 패션 간지 모드는 완성된다. 구둣솔 같은 촘촘하게 박힌 수염이 거뭇거뭇 보이면 더욱 멋있다. 여기에 가을비'라도 내리면 금상첨화'다. 평소 꾀죄죄한 오징어였던 당신도 가을이 되면 꼴뚜기처럼 보이리라.


어머머, 평소 흐느적흐느적 걷던 저 남자 장딴지를 봐 ! 탱탱한, 아......  꼴뚜기 다리 같아.  그렇다, 찐따들은 가을을 노려야 한다. 올 가을에는 경동 보일러 대신 바바리코트 하나 장만해야 겠어요.  마른 오징어 다리처럼 부실한 다리는 바바리코트가 감싸줄 것이다. 곰곰 생각하면 : 남성 또한 가을이 제철인 생명체'다. 어찌된 영문인지는 모르겠으나 나는 봄이 오면 자주 집을 나갔다. 좋게 말하면 두 발로 걸어서 집을 나간 것이고 나쁘게 말하면 장롱 속에 꽁꽁 숨겨둔 돈을 훔쳐서 야반도주를 했다. 불심검문에 걸려서 서울로 압송된 적도 있다. 봄이 오면 미치는 거라, 꽃 피는 봄이 오면 미치는 거라 ! 내 몸 속에 여성 DNA가 숨겨져 있던 것일까 ?  그랬던 내가 이제는 봄을 타지 않는다. 봄은 불임의 계절이 되었다. 가을이 좋다. 어떤 이에게 가을은 전어의 계절이지만 내게는 가을 야구가 시작되는 계절이다.

 

올가을, 엘지 트윈스는 기적을 이뤘다. 시즌 초반  승률 5할에 못 미치는 -13으로 곤두박질치더니 김기태 감독이 돌연 자리에서 물러났다. 배를 버리고 달아난 경상우수사 배설 장군 같은 캐릭터'였다. 철딱서니 없는 아이가 헤살 부리는 것 같았다. 일해라절해라    이래라저래라의 오타    참견하는 수장이 없으니 노를 젓던 병졸은 당황하여 우왕좌왕했다. 일을 하지도 않았고 절을 하지도 않았다. 성적은 점점 바닥을 향해 내려갔다. 이때 양상문이 김기태 후임 감독으로 부임했다. 그는 일해라절해라 참견을 하기 시작했다. 비로소 선수들은 일도 하고 절도 했다. 성적은 수은 온도계처럼 서서히 오르기 시작했고 결국 5할 승리를 근접했다.  2014년 10월 8일 기준 엘지 트윈스는 60승 61패로 1승만 더하면 승률 5할이 된다. 두산 팬은 우우, 했지만 엘지 팬은 와와, 했다. 나머지는 에에, 했다. 언제부터인가 엘지 팬들은 양상문 리더십에 대해 말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골수 엘지 팬인 나는 양상문 리더십이 불편했다.

 

툭 까놓고 말해서 : 양상문 식 선수 운용 방식을 좋아하지 않는다. 비록 그가 부임한 이후 4강 진입이 가능해졌다 해도,  결과가 좋다고 해서 과정을 무시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선발 투수는 최소 5이닝을 마무리해야 승리 조건을 갖춘다. 10 : 0으로 이기고 있는 상황에서 5이닝을 매조지하지 못하고 물러나면 팀이 10 : 0으로 경기를 이겼다고 해도 승리 투수가 될 수 없다. 그렇기에 감독은 선발 투수에 대한 배려 차원에서, 투수가 한순간에 와르르 무너지지 않는 이상, 최소 5이닝은 소화할 수 있도록 해준다. 하지만 양상문은 선발 투수에 대한 배려가 전혀 없다. 선발 투수가 무실점으로 호투를 한다고 해도 위기에 봉착하면 5이닝을 채우지 못한 상태에서 투수 교체를 하는 경우가 빈번하다. 결과적으로 냉정한 승부는 통했고, 엘지는 좋은 결과를 얻었고, 승리는 차곡차곡 쌓였다. 해피엔딩 ?! 글쎄다, 나는 잘 모르겠다.

 

사람들은 입만 열었다 하면 결과보다 과정이 중요하다고 말하지만 현실적 이익 앞에서는 과정보다는 결과를 중시하는 쪽으로 손을 잡는다. 덕장이라면 죽이 되든 밥이 되든 5이닝을 채워 승리 투수가 될 자격을 선발 투수에게 주어야 한다. 투수 교체에 대한 선택은 5이닝 이후이지 5이닝도 채우지 않은 선발 투수를 내리는 것은 승부수가 아니다. 양상문 감독은 팀 승리를 위해서라면 개인의 욕심을 버려야 한다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그런데 이러한 말은 그동안 우리가 많이 듣던 소리다. 박정희 정권 이후, 국가는 항상 국민에게 희생을 강요했다. 부국강병을 위해서 국민은 모든 자유를 내려놓아야 했다. 여공들은 피임약을 먹어가면서까지 철야 야근을 해야 했고    박정희 시대를 지나 전두환 정권 때도 여성 노동자들은 피임 약을 먹으며 강제로 생리를 피했다. 생리통으로 인한 생산성 저하를 우려했기 때문이다.      전태일은 근로기준법 준수를 요구하며 자기 몸에 불을 붙였다.


곳곳에서 노동자 권리를 외쳤지만 그럴 때마다 국가는 국가라는 팀을 위해서 선수 개개인은 희생을 감수해야 한다는 소리만 했다. 대한민국 국가대표팀이 4강에 들어야 모두 모두 모두 좋은 것 아니냐는 논리였다. 그러니까 대한민국은 승률 5할을 유지하기 위해서 시도 때도 없이 선발 투수를 아무 때나 내린 것이다. 달면 삼키고 쓰면 뱉았다. 나는 양상문 감독을 볼 때마다 국가가 국민을 세뇌시켰던 大을 위한 희생이 떠오른다. 대한민국은 여전히 이 논리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복지보다 우선하는 것은  경제 성장 담론이다. 내가 감독이라면 마운드에 올라 이렇게 말하겠다. " 그까이꺼 !  져도 된다. 너에게는 5회까지 던질 자격이 있다. 맘껏 던져라 ! " 내 말에 마음이 여린 투수는 눈물이 앞을 가릴 것이다. 투지가 불끈 솟을 것이다. 그리고는 힘껏 공을 뿌릴 것이다. 비록 만루 홈런을 맞더라도 어쩔 수 없다.


4년 만에 1승을 따낸 투수가 있었다. 값진 승리였다. 1승을 따내기 위해서 4년이란 시간이 흐른 것이다. 동료 선수와 가족들이 축하 인사를 전했다. 그는 방긋 웃으며 화답했다.  그리고 집에 들어가 펑펑 울었다고 한다. 집에 가서 펑펑 운 사내가 바로 나'다. 아는 사람은 알고, 모르는 사람은 모르는 사실이지만 나는 2003년부터 2006년까지 보스턴 레드삭스 마이너리그 투수로 뛰었다. 당시 나는 앞을 보지 못하는 장님이었다. 무조건 레드삭스 스카우터를 찾아갔다. " 공을 던지고 싶습니다 ! " 스카우터가 이상한 낌새를 차린 것은 대화를 나눈 지 5분이 지나서였다. 그가 말했다. " 혹시....  앞을 못 보시나요 ? " 나는 장님이라고 말했다. 침묵이 꽤 길게 이어진 것을 보면 놀란 눈치였다. " 앞을 못 보신다면 캄캄한 밤에 공을 던지는 기분일 텐데 두렵지 않습니까 ? " 나는 대답했다.


" 두려운 건 내가 아니라 타자입니다. 타자 입장에서 생각해 보십시요. 두 눈 부릅뜨고 던져도 헤드샷     투수가 던진 공이 타자 헬멧을 맞히는 경우      이 빈번한데 두 눈 감은 맹인 투수가 96마일'짜리 공을 던진다고 생각해 봐요. 야구 전문 기자 레너드 코페트가 쓴 << 야구란 무엇인가 >> 라는 책 첫 장 타격 부분 첫 구절은 이렇게 시작됩니다. < 타격을 말할 때에 가장 먼저 꺼내들어야 할 화두가 두려움이다. 투수가 던진 공이 몸을 향해 날아오면 누구나 '피해야 한다'는 무의식적인 반사 동작을 일으킨다 >  날아오는 공에 대한 두려움을 극복하는 것이 열쇠입니다. 타석에 들어선 타자는 늘 두려움과 싸웁니다. 사실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타자는 늘 지옥이었지요. 그래서 사르트르는 이런 말을 했습니다. 타자는 지옥이다 ! "   세월이 흐른 후 그 스카우터는 내게 말했다. " 만약에 당신이 장님이 아니었다면 돌려보냈을 것이오. "


레드삭스 팀에서의 내 성적은 통산 49승 51패, 방어율 3.99이었다. 잘 던진 것도 아니고 못 던진 것도 아니었다. 그리고 잘 던진 날도 있었고 못 던진 날도 있었다. 하지만 못 던졌다고 해서 5회 이전에 마운드를 내려간 적은 없었다. 잘 던지고 진 날도 있었고, 못 던졌는데 동료 선수 도움을 받아 승리를 얻은 경우도 있었다. 그게 인생이다.  선수 생활을 하면서 번 돈은 모두 라스베가스 도박장에서 날렸다. 나는 빈손으로 고국에 돌아왔다. 내가 고국으로 돌아왔을 때 이명박이 정권을 잡더니 이내 박근혜 언니가 빛나는 졸업장을 타셨다. 사람들은 한 자리 얻기 위해 한아름 꽃다발을 선사하며 새 나라의 새 일꾼이 되겠다고 괄약근 꽉 조이며 굳은 맹세를 했다고 한다. 앞을 볼 수 없으나 짐작컨대  꼴불견이었으리라. 내가 앞을 못 보는 장님이라는 사실에 안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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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곰생각하는발 2014-10-09 12: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앞으로 알라딘 활동을 줄이기로 했습니다. 주로 네이버에서 활동합니다.

만화애니비평 2014-10-09 12: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시 돌아오는 겁니까~

곰곰생각하는발 2014-10-09 14:03   좋아요 0 | URL
저야 뭐 항상 왔다갔다 하지낳습니까... 아, 이거 왜 자꾸 자판이 이상ㅔ낳

수다맨 2014-10-09 13: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실 대한민국 오야붕들 리더십이라는 게 덕장의 그것이라기보다는 성과 나올 때까지 아랫사람들 지독하게 들볶고 조지는 데 있는 것 같습니다. 이건 어째 예나 지금이나 안 바뀌는 것 같네요.

곰곰생각하는발 2014-10-09 14:03   좋아요 0 | URL
저는 저번에 4회에 리오단 1실점 하고 위기였을 때 투수 교체하는 거 보고 욕했습니다. 아무리 승리가 중요하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선발이면 대량 점수를 주지 않는 이상은 믿고 가야 하는데 너무 막대하는 느낌같은생각이들어서 말이죠....

samadhi(眞我) 2014-10-16 02: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선발을 불펜처럼 쓰는 감독들 무척 싫어하고 신뢰하지 않습니다. 그럼 머더러(울 형부가 자주 쓰는 말) ˝선발˝이라는 말을 붙이냐는 거죠. 투수 출신 감독이 오히려 적절한 투수 교체를 더 못하는 것 같아요. 선똥렬도 그렇고. 사실상 아마추어나 다름없는 한화를 빼고 2년 연속 꼴찌를 한 기아빠로서, 언제나 타이거즈에게 조공(선수들^^ 이용규, 김상현, 박기남, 이대형...)해 주는 ˝사랑해효 엘지~˝가 부러울 줄이야줄이야. (엘지팬은 이 얘길 들으면 마음이 상할지도 모르지만. 우리에게 엘지는 늘 고마운 존재지요.)

 

 

 

 

 

 

 

 

 

 

 

 

 

 

 

 

 

 


 


 

 

마지막 수업

 

티븨 동물 농장 한 장면 : 단어를 40개나 알아듣는 개'가 있었다. ​주인이 " 연필 " 이라고 외치면 연필을 물고 오고, " 열쇠 " 하면 열쇠를 물고 온다. 그뿐이 아니다. 바닥에 떨어진 휴지를 입에 물고는 앞발로 휴지통 발판을 꾹 눌러 뚜껑을 연 후 휴지를 버리기도 하고, 주인이 발을 씻고 나오면 수건을 대령한다. 와와, 보는 내내 감탄했다. 영리한 개와 함께 산다는 것은 요리 솜씨가 뛰어난 여자를 아내로 둔 것과 같다. 봉달이      정식 풀 네임은  봉다리만 보면 좋아서 잘 뛰네'이다        는 리트리버종 네 살짜리 수컷'이다. 사람 나이로 치면 청년이니 가장 힘 세고 총명할 때'이나 현실은 시궁창'이다. 봉달이 뇌 구조를 보면 먹는 거, 먹는 거, 먹는 거, 먹는 거, 먹는 거, 먹는 거, 먹는 거 밖에 없는 것 같았다.  봉달 씨가 인간이었다면 구순기 고착 장애 환자였으리라.

 

독한 마음을 가지고 훈련을 시켰다. 연필 가져와, 열쇠 가져와, 휴지는 휴지통에, 수건 가져와 ! 그럴 때마다 봉달이는......          어느 날이었다. 타란튤라 만한 거미가 벽에 붙어 있었다. 비명을 지르자 봉달이는 본능적으로 가족이 위험에 빠졌다는 사실을 인지한 듯했다. 털이 곤두서더니 이내 경계 태세를 갖췄다. 내가 벽에 붙은 대왕 거미'를 손가락으로 지시하며 봉달이에게 소리쳤다. " 벌레 ! 벌레 !!! " 사명감이었을까 ? 봉달이는 달려와서, 말릴 틈도 없이, 거미를 냅다 삼켰다. 주인에게 위협을 가하는 놈은 모두 죽여버리겠다는 굳은 의지가 보였다. 하지만 용맹도 잠시, 개가 화들짝 놀란 몸짓을 보이더니 이내 거미를 내뱉었다. 성질 사나운 거미가 순순히 있을 턱이 없다. 거미는 고래 뱃속 요나가 아니니깐 말이다.

 

거미가 봉달 씨를 문 모양이었다. 입 밖으로 나온 거미는 유유자적 사라졌다. 그날 이후, 내가 봉달이에게 " 벌레 어딨어 ? " 라고 말하면 국경수비대 군인'처럼 즉각 벽을 쳐다보며 경계 태세를 갖췄다. 벽에 얼룩이라도 있으면 달려가 물어뜯으려고 한다. 그렇다, 봉달이가 태어나서 처음 배운 한국어는 < 벌레' > 였다. 아, 드디어 말귀가 트였구나. 봉달이가 벌레 다음으로 배운 말은 < 쥐 > 였다. ​열린 현관문 사이로 쥐 한 마리가 방으로 들어온 모양이었다. 잠을 자려다가 이상한 소리에 불을 켰다. 조용했다. 잘못 들었나 ? 하지만 잘못 들은 것이 아니었다. 불을 켜면 조용해지고 불을 끄면 사각거리는 소리가 반복됐다. 신경이 날카로워진 나는 방을 뒤지기 시작했다. 옷 바구니를 뒤질 때였다. 무엇인가가 후다닥 소리를 내며 사라졌다.

 

쥐였다. 쥐는 침대 밑으로 숨었다. 화가 난 나는 마당에서 잠을 자고 있는 봉달 씨를 깨워 방 안으로 들였다. " 쥐, 잡아 !!! "  나는 날카롭고 화난 목소리로 말했다. 개는 본능적으로 주인이 무엇인가에 화가 잔뜩 났다는 사실을 간파했다. 귀를 쫑긋 세우고 코를 벌름거리더니 이내 낌새를 알아차린 모양이었다. 한밤중에 사투가 벌어졌다. 이리저리 숨는 쥐와 쥐를 잡아서 주인에게 사랑받고 싶은 개는 열심히 쥐를 쫓았다. 하지만 덩치가 작은 쥐는 덩치가 산 만할 뿐 아니라 정신력도 산만한 개를 압도했다. 쥐는 침대 밑, 거실 냉장고 뒤, 안방 장롱 밑을 돌아다니다가 결국에서 마당으로 달아났다. 그날 이후, 내가 봉달 씨에게 " 쥐 어딨어 ? " 라고 말하면 침대 밑, 냉장고 뒤를 구석구석 샅샅이 뒤진다. 두 번째 배운 한국어'였다.

 

세 번째 배운 말은 < 야옹이 > 였다. 길고양이 한 마리가 앞집 뒤켠에 새끼를 낳았다. 다섯 마리였다. 개코가 그것을 놓칠 리가 없었다. 봉달 씨는 하루 종일 앞발을 담 위에 올리고는 고양이를 감시했다. 털을 곤두세운 것을 보면 사랑보다는 미워 죽겠다는 태도처럼 보였다. 그럴 때마다 나는 " 귀여운 야옹이'야. 친하게 지내야지 " 라고 가르쳤으나 검은 개 꼬리 삼 년 묻어도 황모 못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봉달 씨를 두 달 동안 실내에 감금했다. 덩치가 산 만해서 담을 뛰어넘는 것은 불가능하지만 적어도 다섯 마리 새끼 고양이가 불안에 떨며 살지 않도록 하기 위한 배려였다. 두 달 후. 길고양이 어미는 새끼를 데리고 보다 안전한 곳으로 이사를 했다. 잘 살고 있으려나 ?     

 

고양이 가족이 이사를 가자 자연스럽게 봉달 씨에게 내려진 주택 감금 조치도 사라졌다. 내가 봉달 씨에게 " 야옹이 어딨어 ? " 라고 말하면 봉달 씨는 담벼락에 앞발을 올려 앞집 뒤켠을 바라본다. 뿌듯한 마음이 들었다. 봉달 씨가 한국말을 세 개나 알아들으니 말이다. 이런 식으로 학습을 하다가는 3년 후에는 40개 단어를 알아듣는 천재견이 될지도 모른다. 방긋 !    하지만 수업은 여기서 끝났다. 비 오는 날, 곰곰 생각했다. 내가 봉달 씨에게 가르친 것은 말이 아니라 증오'였다. 많고 많은 말 중에서 나는 개가 싫어하는 대상만을 가르친 꼴이 되었다. 벌레, 쥐, 고양이.......    이렇게 키우다가는 사뮤엘 풀러 영화 << 마견 >> 이나 스티븐 킹 소설 << 쿠조 >> 에 나오는 사나운 개가 될 게 뻔했다. 그래서 한국어 수업은 여기서 끝내기로 했다.

 

내가 어리석었다.  선생 곰곰발과 제자 봉달 씨만 탓할 일이 아니다. 증오라는 단어를 가르치기란 쉽지만 사랑이라는 단어를 가르치기는 힘들다. 헬렌 켈러'가 가장 늦게 배운 단어는 사랑에 대한 낱말이었다.  인간은 사랑보다 증오를 먼저 배운다. 그래서 어리석은 존재다. 레비스트로스는 말했다. " 세계는 인간 없이 시작되었고, 또 인간 없이 끝날 것이다. " 라고.  사랑이라는 말은 사랑에 빠진 자만이 이해할 수 있는 언어다.  허탈한 마음을 달래기 위해 롤랑 바르트의 << 사랑의 단상 >> 을 다시 읽었다. 읽을 때마다 심장이 뛴다. 아, 이토록 떨리는 사랑을 이토록 아름다운 문장으로 말하는 이가 또 있을까 ? 

 

 

모든 연인은 독사에 물린 사람과 흡사하다고 알키비아데스는 말한다. " 흔히들 말하는 것을 들으면 독사에 물린 사람은 그것이 어떤 것인지, 그런 일을 겪은 사람 말고는 어느 누구에게도 들려주기를 꺼린답니다. 너무도 아픈 나머지 무슨 짓을 하든지, 무슨 말을 하든지, 이런 사람들만은 알아주고 용서도해줄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죠. "

 

ㅡ 사랑의 단상, 303쪽

 그는 사랑하는 사람은 양심적인 사람이 아니라고 진단한다. 사랑은 비정상인 상태에 놓인 심리적 증후'다. 사랑이라는 열병을 앓으면 하루 종일 그 사람 생각만 나고, 가까이 다가가지 못하면 세상이 무너지고, 작은 일에도 눈물이 나며 아주 사소한 일에도 뛸 듯이 기쁜 상태가 된다. 평정심을 유지해야 하는 종교인에게 열병은 에볼라 바이러스만큼이나 위험해서 세속적 사랑을 멀리하게 된다. 종교인은 성인이 가르친 말씀의 결대로 살아가야 한다. 결이 난 방향으로 대패질을 해야 대팻날이 상하지 않는 법이니까. 하지만 사랑의 열병은 결 반대 반향으로 대패질을 하는 행위'다. 심장이 부서지고, 거스러미 일어도 사랑은 개의치 않는다. 비록 거스러미가 살갗에 깊이 박힌다 해도 사랑하는 사람은 견딘다. " 이따위 통증은 개나 줘 버려 ! "

 

달리 설명할 길은 없다. 그것이 사랑이니까. 봄바람은 항상 일정한 바향으로 불어오지만 태풍은 방향의 갈피를 잡을 수 없다.  사랑은 방향을 짐작할 수 없는 태풍과 같다.  오른 쪽으로 불어오는 세찬 바람을 피하기 위해 몸을 돌리면 어느새 맞바람이 분다. 누구는 그 사람이 가지고 있는 어둡고 슬픈 마음 때문에 그 곁을 떠나지만 또 누군가는 그 어둠에서 낭만을 읽기도 한다. " 나무의 저항은 못을 받는 장소에 따라 다르다. " 롤랑 바르트의 말이다.

 

 

 

 http://myperu.blog.me/220139822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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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다맨 2014-10-05 17: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제 잘 들어가셨습니까? 제가 술에 좀 취해서 실수를 많이 한 것 같습니다. 혹여나 결례를 끼쳤다면 죄송하게 됐습니다.
크리스토퍼 란스마이어의 ˝최후의 세계˝와 줄리언 반스의 ˝플로베르의 앵무새˝ 잘 받았습니다. 다음에는 제가 다른 선물을 준비해가겠습니다 ㅎㅎㅎ

곰곰생각하는발 2014-10-05 21:02   좋아요 0 | URL
ZZZZZZZZZZZZZZZZZZZZZZZ 아니 그게 무슨 결례입니까.....
술 마시고 넘어질 수도 있는거지...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하여튼 전 2차는 사실 잘 기억이 안 납니다.
최후의 세계와 플레베르 앵무새 무척 좋습니다. 잘 읽으시기 바립니다.

푸르푸르 2014-10-17 14:50   좋아요 0 | URL
실수 안하셨습니다 혹시 이번주 토요일도 시간 괜찮으시면 나오세요
페루애님이랑 또 한잔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