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수업
티븨 동물 농장 한 장면 : 단어를 40개나 알아듣는 개'가 있었다. 주인이 " 연필 " 이라고 외치면 연필을 물고 오고, " 열쇠 " 하면 열쇠를 물고 온다. 그뿐이 아니다. 바닥에 떨어진 휴지를 입에 물고는 앞발로 휴지통 발판을 꾹 눌러 뚜껑을 연 후 휴지를 버리기도 하고, 주인이 발을 씻고 나오면 수건을 대령한다. 와와, 보는 내내 감탄했다. 영리한 개와 함께 산다는 것은 요리 솜씨가 뛰어난 여자를 아내로 둔 것과 같다. 봉달이 정식 풀 네임은 봉다리만 보면 좋아서 잘 뛰네'이다 는 리트리버종 네 살짜리 수컷'이다. 사람 나이로 치면 청년이니 가장 힘 세고 총명할 때'이나 현실은 시궁창'이다. 봉달이 뇌 구조를 보면 먹는 거, 먹는 거, 먹는 거, 먹는 거, 먹는 거, 먹는 거, 먹는 거 밖에 없는 것 같았다. 봉달 씨가 인간이었다면 구순기 고착 장애 환자였으리라.
독한 마음을 가지고 훈련을 시켰다. 연필 가져와, 열쇠 가져와, 휴지는 휴지통에, 수건 가져와 ! 그럴 때마다 봉달이는...... 어느 날이었다. 타란튤라 만한 거미가 벽에 붙어 있었다. 비명을 지르자 봉달이는 본능적으로 가족이 위험에 빠졌다는 사실을 인지한 듯했다. 털이 곤두서더니 이내 경계 태세를 갖췄다. 내가 벽에 붙은 대왕 거미'를 손가락으로 지시하며 봉달이에게 소리쳤다. " 벌레 ! 벌레 !!! " 사명감이었을까 ? 봉달이는 달려와서, 말릴 틈도 없이, 거미를 냅다 삼켰다. 주인에게 위협을 가하는 놈은 모두 죽여버리겠다는 굳은 의지가 보였다. 하지만 용맹도 잠시, 개가 화들짝 놀란 몸짓을 보이더니 이내 거미를 내뱉었다. 성질 사나운 거미가 순순히 있을 턱이 없다. 거미는 고래 뱃속 요나가 아니니깐 말이다.
거미가 봉달 씨를 문 모양이었다. 입 밖으로 나온 거미는 유유자적 사라졌다. 그날 이후, 내가 봉달이에게 " 벌레 어딨어 ? " 라고 말하면 국경수비대 군인'처럼 즉각 벽을 쳐다보며 경계 태세를 갖췄다. 벽에 얼룩이라도 있으면 달려가 물어뜯으려고 한다. 그렇다, 봉달이가 태어나서 처음 배운 한국어는 < 벌레' > 였다. 아, 드디어 말귀가 트였구나. 봉달이가 벌레 다음으로 배운 말은 < 쥐 > 였다. 열린 현관문 사이로 쥐 한 마리가 방으로 들어온 모양이었다. 잠을 자려다가 이상한 소리에 불을 켰다. 조용했다. 잘못 들었나 ? 하지만 잘못 들은 것이 아니었다. 불을 켜면 조용해지고 불을 끄면 사각거리는 소리가 반복됐다. 신경이 날카로워진 나는 방을 뒤지기 시작했다. 옷 바구니를 뒤질 때였다. 무엇인가가 후다닥 소리를 내며 사라졌다.
쥐였다. 쥐는 침대 밑으로 숨었다. 화가 난 나는 마당에서 잠을 자고 있는 봉달 씨를 깨워 방 안으로 들였다. " 쥐, 잡아 !!! " 나는 날카롭고 화난 목소리로 말했다. 개는 본능적으로 주인이 무엇인가에 화가 잔뜩 났다는 사실을 간파했다. 귀를 쫑긋 세우고 코를 벌름거리더니 이내 낌새를 알아차린 모양이었다. 한밤중에 사투가 벌어졌다. 이리저리 숨는 쥐와 쥐를 잡아서 주인에게 사랑받고 싶은 개는 열심히 쥐를 쫓았다. 하지만 덩치가 작은 쥐는 덩치가 산 만할 뿐 아니라 정신력도 산만한 개를 압도했다. 쥐는 침대 밑, 거실 냉장고 뒤, 안방 장롱 밑을 돌아다니다가 결국에서 마당으로 달아났다. 그날 이후, 내가 봉달 씨에게 " 쥐 어딨어 ? " 라고 말하면 침대 밑, 냉장고 뒤를 구석구석 샅샅이 뒤진다. 두 번째 배운 한국어'였다.
세 번째 배운 말은 < 야옹이 > 였다. 길고양이 한 마리가 앞집 뒤켠에 새끼를 낳았다. 다섯 마리였다. 개코가 그것을 놓칠 리가 없었다. 봉달 씨는 하루 종일 앞발을 담 위에 올리고는 고양이를 감시했다. 털을 곤두세운 것을 보면 사랑보다는 미워 죽겠다는 태도처럼 보였다. 그럴 때마다 나는 " 귀여운 야옹이'야. 친하게 지내야지 " 라고 가르쳤으나 검은 개 꼬리 삼 년 묻어도 황모 못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봉달 씨를 두 달 동안 실내에 감금했다. 덩치가 산 만해서 담을 뛰어넘는 것은 불가능하지만 적어도 다섯 마리 새끼 고양이가 불안에 떨며 살지 않도록 하기 위한 배려였다. 두 달 후. 길고양이 어미는 새끼를 데리고 보다 안전한 곳으로 이사를 했다. 잘 살고 있으려나 ?
고양이 가족이 이사를 가자 자연스럽게 봉달 씨에게 내려진 주택 감금 조치도 사라졌다. 내가 봉달 씨에게 " 야옹이 어딨어 ? " 라고 말하면 봉달 씨는 담벼락에 앞발을 올려 앞집 뒤켠을 바라본다. 뿌듯한 마음이 들었다. 봉달 씨가 한국말을 세 개나 알아들으니 말이다. 이런 식으로 학습을 하다가는 3년 후에는 40개 단어를 알아듣는 천재견이 될지도 모른다. 방긋 ! 하지만 수업은 여기서 끝났다. 비 오는 날, 곰곰 생각했다. 내가 봉달 씨에게 가르친 것은 말이 아니라 증오'였다. 많고 많은 말 중에서 나는 개가 싫어하는 대상만을 가르친 꼴이 되었다. 벌레, 쥐, 고양이....... 이렇게 키우다가는 사뮤엘 풀러 영화 << 마견 >> 이나 스티븐 킹 소설 << 쿠조 >> 에 나오는 사나운 개가 될 게 뻔했다. 그래서 한국어 수업은 여기서 끝내기로 했다.
내가 어리석었다. 선생 곰곰발과 제자 봉달 씨만 탓할 일이 아니다. 증오라는 단어를 가르치기란 쉽지만 사랑이라는 단어를 가르치기는 힘들다. 헬렌 켈러'가 가장 늦게 배운 단어는 사랑에 대한 낱말이었다. 인간은 사랑보다 증오를 먼저 배운다. 그래서 어리석은 존재다. 레비스트로스는 말했다. " 세계는 인간 없이 시작되었고, 또 인간 없이 끝날 것이다. " 라고. 사랑이라는 말은 사랑에 빠진 자만이 이해할 수 있는 언어다. 허탈한 마음을 달래기 위해 롤랑 바르트의 << 사랑의 단상 >> 을 다시 읽었다. 읽을 때마다 심장이 뛴다. 아, 이토록 떨리는 사랑을 이토록 아름다운 문장으로 말하는 이가 또 있을까 ?
모든 연인은 독사에 물린 사람과 흡사하다고 알키비아데스는 말한다. " 흔히들 말하는 것을 들으면 독사에 물린 사람은 그것이 어떤 것인지, 그런 일을 겪은 사람 말고는 어느 누구에게도 들려주기를 꺼린답니다. 너무도 아픈 나머지 무슨 짓을 하든지, 무슨 말을 하든지, 이런 사람들만은 알아주고 용서도해줄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죠. "
ㅡ 사랑의 단상, 303쪽
그는 사랑하는 사람은 양심적인 사람이 아니라고 진단한다. 사랑은 비정상인 상태에 놓인 심리적 증후'다. 사랑이라는 열병을 앓으면 하루 종일 그 사람 생각만 나고, 가까이 다가가지 못하면 세상이 무너지고, 작은 일에도 눈물이 나며 아주 사소한 일에도 뛸 듯이 기쁜 상태가 된다. 평정심을 유지해야 하는 종교인에게 열병은 에볼라 바이러스만큼이나 위험해서 세속적 사랑을 멀리하게 된다. 종교인은 성인이 가르친 말씀의 결대로 살아가야 한다. 결이 난 방향으로 대패질을 해야 대팻날이 상하지 않는 법이니까. 하지만 사랑의 열병은 결 반대 반향으로 대패질을 하는 행위'다. 심장이 부서지고, 거스러미 일어도 사랑은 개의치 않는다. 비록 거스러미가 살갗에 깊이 박힌다 해도 사랑하는 사람은 견딘다. " 이따위 통증은 개나 줘 버려 ! "
달리 설명할 길은 없다. 그것이 사랑이니까. 봄바람은 항상 일정한 바향으로 불어오지만 태풍은 방향의 갈피를 잡을 수 없다. 사랑은 방향을 짐작할 수 없는 태풍과 같다. 오른 쪽으로 불어오는 세찬 바람을 피하기 위해 몸을 돌리면 어느새 맞바람이 분다. 누구는 그 사람이 가지고 있는 어둡고 슬픈 마음 때문에 그 곁을 떠나지만 또 누군가는 그 어둠에서 낭만을 읽기도 한다. " 나무의 저항은 못을 받는 장소에 따라 다르다. " 롤랑 바르트의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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