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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루레이] 아바타
제임스 카메론 감독, 시고니 위버 외 출연 / 20세기폭스 / 2012년 6월
평점 :
품절
어수선 38호
꼬리 치는 당신
The Devil is in the details : 악마는 디테일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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짐승을 좋아하는 이유 가운데 하나는 " 꼬리" 가 달렸기 때문이다. 머리 꼭대기'에서 자라는 게 뿔이라면 엉덩이 끄트머리에서 자라는 것은 꼬리'다. 인간은 꼬리를 버리고 사람이 되었다. 문득 이런 의문이 든다. 많고 많은 기관 가운데 인간은 왜 하필 꼬리를 버렸을까 ? 꼬리는 감정에 충실한 신체 기관'이다. 화가 날 땐 꼬리를 세우고, 반가우면 꼬리를 흔들고, 무서우면 가랑이 사이로 숨긴다. 꼬리를 제2의 표정이다. 속마음을 그대로 전하는 꼬리는 의도적으로 조작을 가할 수는 없다. 그래서 짐승은 꼬리 때문에 거짓말'을 할 수가 없다. 짐승들이 평생 동안 서열 싸움'을 하는 이유는 바로 꼬리 때문이다. 우두머리'를 넘볼 놈은 꼬리를 내리지 않는다. 그것은 일종의 선전포고 ! 그날이 오기 전까지 우두머리와 도전자는 서로 마음의 준비를 한다.
그리고는 말한다. " 하와이 가라 ! " 만약에 이 말에 기가 죽는다면 꼬리를 내리고 이렇게 대답할 것이다. " 하와이 내가 간다잉. 잇힝 잇힝 ~ " 이라며 뒤로 물러날 것이다. 하지만 모두 다 하와이를 가고 싶지는 않을 터, " 네가 가라, 하와이 ! " 라고 말하는 순간 대결은 시작된다. 짐승 세계에서는 몰래 등에 칼을 꽂는 행위는 벌어지지 않는다. ( 간혹 연대'에 의해서 우두머리를 쫒아내는 경우는 있으나 어디까지나 인간의 조상인 원숭이나 하는 짓이다. ) 깨끗하다, 그들은 지저분하게 칼질하지 않는다. 이게 다 < 꼬리의 정치학 > 이 낳은 룰'이다. 그런데 인간은 이 꼬리'가 사라졌다. 솔직히 말하면 퇴화한 게 아니라 인간 스스로 잘라버린 것이다. 인간이란 지구상에서 가장 간사한 새끼들 ! 오로지 있는 그대로만을 표현해야 하는 이 지긋지긋한 꼬리를 잘라버림으로써,
거짓말을 자유롭게 할 수 있는 자유를 얻은 것이다. 속마음을 숨기고 거짓말을 할 수 있게 되자 세상은 온통 비열한 놈들이 대우를 받기 시작했다. 뻐꾸기를 날리면 사람들은 와와, 했다. 반면 말이 없는 사람들에게는 우우, 했다. 사람들은 거짓말 앞에서는 하하, 하고 진실을 말할 때는 화, 화화'를 냈다. 이 세상은 거짓말을 잘하는 사람이 영웅이 되는 사회가 되었다. 이 모든 것이 꼬리'를 잃어버렸기 때문에 발생한 불행. 꼬리가 사라지고나서부터 진정한 마초'도 사라졌다. 추잡과 주접이 난무하는 세계가 되었다. 붓으로 가족을 먹여살리기에는 터무니없이 가난한 칠쟁이였던 아버지가 유일하게 본 티븨 프로그램은 민병철 생활 영어와 동물의 왕국이었다. 나는 동물의 왕국을 다시 본다. 꼬리를 바짝 세운 늑대 두 마리가 죽을 각오로 싸운다.
하와이, 네가 가라잉 ? 컹컹. 내가 와 하와이 가노 ? 네가 가라, 하와이. 컹컹. 싸우다가 진 놈은 꼬리를 내린다. 아름다운 순간은 지금부터다. 죽일 듯이 싸웠던 승자도 상대방이 꼬리를 내리면 더 이상 물지 않는다. 그게 늑대의 처절한 룰이다. 싸움에서 이긴 놈은 상대방이 꼬리를 내리는 순간 절대 물지 않는다. 비록 그 놈이 힘을 길러서 다시 도전한다고 해도 말이다. 얼마나 멋진가 ! 그동안 나는 " 하와이 " 가 어떤 곳인가에 대해 늘 의문을 품고는 했다. 하와이'는 어디에 있는 곳일까 ? 이 의문은 곧 풀렸다. 하와이는 " HOW WHY " 였다. 박근혜에게 잃어버린 7시간을 묻는 순간 하와이 가야 한다. 하와이는 유배지'이다. 흑산의 영문 표기법이 바로 하와이'다.
영화 << 아바타 >> 에는 인간 형상을 한 꼬리 달린 나비( Navy ) 족이 나온다. 내용은 간단하다. 지구인은 나비 족이 살고 있는 행성 판도라'를 식민지로 만들려고 하고, 아름다운 나비 족 여성 네이티리'와 사랑에 빠진 지구인이 그들을 위해 싸운다는 내용이다. 제국주의에 대한 자기 반성을 담았다는 측면에서 영화 << 미션 >> 과 비슷한 구조'다. 내가 놀랐던 부분은 이 영화에 쏟아진 성찬이었다. 평론가들은 모두 이구동성으로 새로움과 미래 영화의 모범이라는 답안을 내놓았다. " 영화사의 기원을 바꿀 영화 ! " 라는 설레발 앞에서는 할 말을 잊게 만든다. 심지어 소금왕, 모두까기, 츤데라'라는 별명을 가진 박평식 평론가마저 별점 8점을 준 것을 보면 무엇에 홀린 모양이다. 내가 보기엔 이 영화 서사는 지극히 진부한 제국주의자의 반성을 답습하는 수준에 그칠 뿐더라
3D 는 미래 영화의 모범이 될 수 없다. 3D가 미래 영화의 모범이라는 말은 마치 입체BOOK이 앞으로 나아갈 책의 미래'라고 말하는 것과 같다. 이 영화가 형편없다는 소리는 아니다. 이 영화에 쏟아진 성찬이 작품성에 비해 지나치게 과장되었다는 소리'다. << 아바타 >> 는 그저 그렇고 그런 영화였다. 재미있게 잘 만든 영화이지 걸작은 아니다. 내가 이 영화에서 주목한 점은 " 꼬리 " 였다. 내 눈에는 눈부신 입체 영상과 기술 발전 따위는 보이지도 않고 오로지 나비 족 꼬리'만 보였다. 제임스 카메론 감독은 꼬리에 대해 그닥 신경을 쓴 것 같지는 않다. 디즈니 애니메이션'보다 꼬리에 대한 상식이 부족해 보였다. 영화 속 지구인이 판도라 행성에 사는 나비 족을 미개한 종족으로 보는 이유는 꼬리가 달렸기 때문이다. 지구인에게 있어서 꼬리는 원시적 형태에 불과한 것처럼 보인다.
하긴 대한민국만 해도 저잣거리 입말은 온통 " 꼬리 " 에 대해 부정적이다. 꼬리가 길다, 꼬리를 감추다, 꼬리를 내리다, 꼬리를 밟히다, 꼬리를 사리다, 꼬리를 숨기다, 꼬리를 자르다, 꼬리를 치다, 꼬리가 드러나다. 그 外 기타 등등. 똥 묻은 개가 겨 묻은개 나무라는 식이다. 인간이 타락한 이유는 꼬리가 사라졌기 때문이다. 꼬리는 정직한 기관이다. 대가리는 방향을 설정하지만 추동의 힘은 꼬리에 있다. 니체는 이런 말을 했다. " 착한 자는 진실을 말하지 않는다. " 얼핏 수긍하기 힘든 대목이다. 하지만 < 착한 자 > 을 < 착해 빠진 놈 > 으로 바꾼 후 다시 읽으면 이해가 간다. " 착해 빠진 놈은 진실을 말하지 않는다. " 니체는 정확히 보았다. 착해 빠진 놈은 진실을 말하지 않는다. 추악한 진실‘을 폭로하는 것은 언제나 악마였다.
영화 << 올드보이 >> 에서 최민식’에게 진실을 폭로한 자’는 착한 사람이 아니라 오직 복수에 눈이 먼 유지태'였다. 천사는 아름다운 진실’을 고백할 뿐 더러운 진실‘에는 침묵한다. 반면 악당은 추악한 진실’을 폭로한다. 스타워즈에서 악의 구현체인 다스베이더는 정의를 위해 싸우는 아들에게 충격적인 고백을 한다 : “ 내가 네 애비다 ! ” 이처럼 폭로는 메두사의 얼굴‘처럼 강력하다. 악당 입장에서 보면 죽기 살기로 싸우지 않고도, 폭로 한 마디‘에 상대방을 제압할 수 있으니 꽤 훌륭한 창이요, 활이다. 이보다 더 좋은 무기가 어디에 있겠는가 ! 천사는 악마를 파멸시킬 수는 있으나 인간을 파멸시킬 수는 없다. 천사는 인간을 천국으로 인도하거나 위로할 수는 있어도 인간을 파멸시켜서 지옥으로 끌고 갈 수는 없다.
그 일은 악마가 한다. ( 꼬리 달린 인간을 무조건 악마라고 규정한다면 나는 악마를 지지하겠다 ) 그게 바로 천사가 가진 한계이다. 한편 악마는 주로 거짓말로 상대방의 영혼을 파괴하지만 종종 진실’을 폭로함으로써 영혼을 파괴하기도 한다. 그렇기에 악마란 거짓말만 하는 존재가 아니라 진실을 말하는 존재이기도 하다. 역설적인 결론이지만 정의롭고 평등한 사회‘를 위해서는 비열하고 악랄한 인간 앞에서 아무 말도 못하는 천사보다는, 그런 놈들을 파멸시켜서 지옥으로 데리고 갈 악마‘가 더 필요하다는 점이다. " 악마는 디테일에 있다 " 는 말이 있다. 꼬리 달린 존재를, 꼬리 치는 팜 파탈을 우습게 보지 말기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