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수선 43호
몰라 몰라 !
개복치는 한 번에 3억 개 정도의 알을 낳습니다. 그중 성어가 되는 것은 한두 마리에 불과하죠. 인류도 마찬가지 아닐까요 ?
ㅡ 박민규, 단편 몰라몰라, 개복치라니 中
사람들이 나에게 좋아하는 생선이 무엇이냐고 물으면 항상 개복치'라고 말하고 다녔다. 좋아하는 생선 요리나 회 종류를 물은 것인데 나는 알면서도 일부러 딴청을 피운 것이다. 질문을 던진 사람은 각자 달랐지만 내 말에 대한 반응은 모두 동일했다. " 개, 복, 치 ??!! " 뱃사람이 아니고서는 뭍사람이 개복치라는 물고기 이름을 알 리 없었다. 그럴 때마다 나는 친절하게 설명했다. " 개복치는 몸 길이가 4미터이고, 몸무게는 1t에서, 많게는 2t까지 나가는 거대한 물고기입니다. 그랜드 피아노 3개를 합친 것보다 무거운 녀석이죠. 생각해 보십시요. 그랜드 피아노가 바다에 둥둥 떠 있다는 사실 ! 북한에서는 이 물고기를 물복어'라고도 합니다. 뿌리를 찾아 어보를 뒤지면 복어 자손이죠. 놀랍지 않습니까 ? 이 말은 마치 코끼리 조상이 알고 보니 벼룩이라는 말과 같습니다. "
내가 흥분해서 " 흥미롭지 않습니까 ? " 라고 되물으면 듣는 사람은 흥미롭지 않은 표정으로 " 흥미롭습니다 ! " 라고 말하고는 했다. 흥, 그러거나 말거나 ! 소가죽만큼 질긴 가죽으로 외피를 둘렀다는 개복치'는 무려 3억 개의 알을 낳는다( 미국 인구수가 대략 3억이다 ). 하지만 3억 개의 알 가운데 성어가 되는 경우는 한두 마리에 불과하다. 그러니까 개복치는 1/3억이라는 아스트랄的 경쟁률을 뚫고 어른이 되는 것이다. 만약에 누군가가 당신에게 개복치 학명이 무엇이냐고 물으면 고개를 가로저으며 " 몰라, 몰라 ! " 라고 말해도 된다. 왜냐하면 개복치 학명이 몰라몰라/molamola'이기 때문이다. 라틴어'로 맷돌이라는 뜻. 그렇지만 이제는 애써 개복치에 대해 말하지 않아도 된다. 최근 큰 인기를 누리고 있는 핸드폰 게임 << 살아남아라 ! 개복치 ! >> 때문에 개복치는 인기 있는 슈퍼스타가 되었다.
게임 시작을 알라는 메인 화면은 결연한 문장으로 시작된다. " 3억 마리의 동료들은 모두 죽었다 ! " 이 비장한 생존 앞에서 달달한 웃음이 나오지만 한켠으로는 쓸쓸한 마음도 들었다. 개복치는 고물상에 버려진 고려 청자 같은 존재였다. 나에게는 슈퍼스타였지만 당신에게는 한갓 이름 없는 단역 배우에 지나지 않는. 그런 개복치가 하루 아침에 대국민 슈퍼스타가 된 것이다. 주류에 대한 반감은 자연스럽게 비주류에 대한 옹호로 이어졌다. 남들이 A급 영화를 숭배할 때 나는 B급 영화를 찬양했다. 배우도 마찬가지였다. 주연 배우보다는 조연 배우를, 조연 배우보다는 단역 배우를, 단역 배우보다는 무명 배우를. 그 가운데 내가 좋아하는 단역 배우는 해리 딘 스텐튼'이었다. 영화 << 파리, 텍사스 >> 에서의 주연을 제외하면, 그는 100여 편이 넘는 영화에서 단역 배우'로 출연한다.
단역이라고 하기에도 민망한 카메오 수준도 많았다. 노숙자, 배관공, 외계 왕발 거미 쩍쩍이'가 쏜 광선에 감전되는 지구인 4, 로스캐롤라이나 세인트 루나 마켓 엉큼 샘 생선가게에서 죽은 척하는 생태 등이 대부분이었다.

그나마 << 파리, 텍사스 >> 이후 인지도가 높아져서 왕발 거미에게 죽는 어처구니없는 배역'은 맡지는 않지만 여전히 그는 이름 없는 배우였다. 나는 이 배우'를 미치도록 좋아했다. 가끔 우연히 싸구려 블록버스터 영화에서 그를 발견이라도 하면 너무 반가워도 눈물이 나기도 했다. 나는 그를 " 3초 전문 배우 " 라는 월계관을 부여했다. 그러니깐 3초 오르가슴 배우. 그래서 집중하지 않으면 놓치는 배우. 하지만 3초보다 더 등장했으면..... 하고 바라지는 않는 배우. 본인 스스로도 3초에 만족하는 배우. 메소드 연기를 전혀 못하는 배우. 1분짜리 초단편 영화에서도 3초는 출연하는 안정적인 배우. 어쩌면 3초 짜리 초단편 영화에서도 3초는 등장할 배우. 가끔 뭐 먹고 살까, 궁금해지는 배우. 어쩌면 고흐를 닮은 배우. 외계 왕발 거미 쩍쩍'에게 감전된 배우.
로스캐롤라이나 세인트 루나 마켓에서 죽은 척하는 생태 역을 연기하느라 얼음 위에서 7시간 동안 누워 있는 연기를 하던 배우. << 에이리언 >> 에 나와서 반가웠던 배우. << 그린마일 >> 에서 풋풋으로 나와서 개인적으로 황홀한 마음으로 지켜본 배우. 하지만 나는 영어를 쓸 줄 몰라서 단 한 번도 팬레터를 보내지 못했던 배우. 더러운 야구모자가 잘 어울리는 배우. 초라한 배우. 노숙자 연기가 자연스러운 배우. 핸드페인팅 하자고 미 영화협회에서 전화가 올 것 같지는 않은 배우. 몇 년 뜸하게 지내면 죽었는지 살았는지 걱정되는 배우. 그러나 죽어도 연예 잡지에 이름이 오르지는 않을 것 같은 배우. 하지만 나에게는 117분 내내 등장하는 브레드 피트보다 훨씬 멋진 배우. 아무 이유 없이 그냥 좋은 배우. 시인에게 왜 사냐고 물으면 그냥 웃는 것처럼 사랑이라는 감정도 이유 없이 " 그냥 " 좋은 것이다.
사랑에 이유가 있다면 그것은 심장보다는 계산적인 뇌가 움직인 결과다. 이유가 없는 사랑이 진짜 사랑이다. 하여튼 나는 상영 시간 120분 가운데 3초, 필름 프레임으로 따지자면 " 72프레임 " 을 보기 위하여 그 사람이 출연한 영화를 보러 간 적도 있다. 그 행위는 3초의 오르가슴을 느끼기 위해서 120분 동안 무릅이 까지도록 엉덩이를 올렸다가 내렸다가를 반복하는 행위와 같았다. 그는 형광등 백한 개를 켜 놓은 듯한 아우라를 가진 배우였다. 해리 딘 스탠튼과 함께 내가 눈여겨본 단역 배우는 문창근이었다. 연기를 잘 했던 배우도 아니고, 좋은 영화에 나왔던 배우도 아니며, 약방의 감초 역을 했던 배우도 아니다. 오히려 연기를 못했던 배우였고, 언제나 형편없는 영화에 나왔던 배우였으며, 편집 당해도 아무도 알아채지 못하는 배우였다.

난, 그 배우가 그냥 좋았다. 그는 기골이 장대한 사내였다. 키는 컸고, 등은 굽었으며 광대뼈가 유난히 도드라진 얼굴이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거인증을 앓고 있었던 것 같다. 그래서 그랬을까 ? 그는 늘 악당이나 동네 건달, 마을 산적, 멍청한 도깨비를 연기했다. 발음도 정확하지 못해서 대사 전달력에서는 낙제 점수’였고, 연기도 형편없었다. 오로지 그는 자신이 가지고 있는 특이한 신체조건만 가지고 연기를 하는 배우 같았다. 하지만 그는 이러한 악당 역’을 잘 소화하지 못했다. 배우란 기본적으로 가면으로 연기를 해야 하는 운명을 가진 광대인데, 그는 가짜 가면 놀이'를 힘겨워 했다. 천성이 착한 사람이었다. 그는 가면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가면을 사용하지 않는 사람이었다. 이상하게도 나는 너무 어린 나이’에 그 사실을 알아차렸다. 나는 그를 보면서 늘 이런 생각을 했었다. 엑스트라가 되지 말 것,
인기 없는 악당 연기를 하지 말 것, 차라리 매력있는 악당을 연기할 것, 발음을 똑바로 할 것, 사람들과 관계를 맺을 때에는 늘 가면을 쓸 것, 무능하게 살지 말 것, 그러니깐 내 아버지처럼 살지 말 것 ! 누가 나에게 엑스트라'를 제안하면 거절했다. 주인공이고 싶었으니까 ! 가끔은 사회 생활을 하면서 매력있는 악당 역'을 연기하기도 했다. 발음은 되도록이면 또박또박 토해냈다. 가면을 썼다. 무능했지만 무능하지 않은 것처럼 연기했다. 굽은 등을 곱게 폈다. " 저는 새우가 아니라 갈치입니다 ! " 세상, 참 쉬웠다. 연기는 너무 완벽해서 무엇이 페이큐이고 무엇이 다큐인지를 구별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지만 그럴수록 내 삶은 퍽유'가 되었다. 이렇게 쉬운 연기를 그는 왜 하지 못했을까 ? 그러던 어느 날, 우연히 다이안 아버스 사진집을 보았는데 그녀가 찍은 사진에는 그 배우와 유사한 사람들이 많았다. 기골이 장대한, 광대뼈가 유난히 두드러진, 등이 새우처럼 굽은 !
그 배우 이름은 문창근‘이다. 2005년 뇌경색'으로 사망했다. 다음날 " 개성파 배우 문창근 뇌경색으로 사망 " 이라는 짧은 기사'가 신문에 실렸다. 누군가는 알아주었으면 한다. 당신들을 브레드 피트나 장동건보다 더 멋진 배우'라고 기억하는 사내가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왜 그들을 좋아하냐고 묻는다면 이렇게 대답하겠다.
" 몰라몰라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