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이 올까 ?

 

 

세상(대한민국) 돌아가는 꼴을 계절에 빗대자면 겨울 3단계와 유사1하다. 12월이 되면 발 동동 구르며 춥다 춥다 하지만 1월은 더 춥다. 1월이 되면 또 발 동동 구르며 춥다 춥다 하지만 1월보다 더 추운 2월이 기다리고 있다. 甲은 대입 수험생에게 이렇게 속삭인다. " 12월이 가장 추우니, 이번 한파만 넘기면 추위는 물러난단다. 그러니 딴생각하지 말고 공부나 열심히 하렴 ! " 아이들은 이 말을 믿고 열심히 공부한다, 대학에 들어간다. 하지만 꽃 피는 봄은 없다. 1월은 12보다 더 춥다. 꽃 피는 봄은 부잣집 도련님이나 공주님에게나 오는 계절일 뿐이다. 멘토로 유명했던 김미경은 스스로를 " 개천에서 용 난 년 " 이라고 말하고 다니지만, 이제는 개천에서 용 나는 때는 지났다. 개천에는 용 대신 이끼 벌레만 있을 뿐이다.

 

이끼 벌레는 대장부여서 찔러도 도망칠 생각도 않는다. 뻔뻔한 놈이 개천에 산다. 좋은 환경에서 착하게 자란 도련님과 공주님이 해맑게 공부하고 있을 시간에 당신은 바코드를 찍으며 공부 걱정(만) 한다. 스팩보다 중요한 것은 이제 주민등록등본이다. 자식 입장에서 보면 가난한 아빠보다 부자 아빠가 경쟁력이다. " 4당 5락2 " 이라는 말이 있듯이, 대입 수능생 시절에는 잠을 적게 자야 성적이 오르지만, 아르바이트 일도 하고 공부를 병행하느라 잠을 적게 자는 대학생은 오히려 넉넉한 지원을 받는 도련님과 공주에게 밀린다. 당대는 항상 지옥이다. 축 쳐진 어깨로 빈 강의실에 앉아 있을 때 김난도 같은 선생이 다가와 당신에게 말할 것이다. " 힘들지 ? 아프니깐 청춘이고, 천 번을 흔들려야 어른이 된단다. 좋은 날이 올 거야. "

 

아, 이토록 따듯한 말 한 마디 ! 이 추위도 곧 물러가리라. 그렇다면 대학을 졸업하고 직장에 다닌다고 해서 추위가 물러날까 ? 천만에 ! 2월은 더 춥다. 본격적으로 당신은 乙이 된다. 취준생, 88만원, 인턴, 비정규직, 신입사원, 사회 초년생, 시다바리가 된다. 그리고는 깨닫게 된다. 12월은 춥지만, 1월은 더 춥고, 2월은 1월보다 더 춥다는 사실. 아프면 병원 가야 하고, 천 번 흔들리면 어른이 되기는커녕 늪지대 " 갈대 " 가 되어 만날 흔들리다가, 나이가 들고 돈도 없어 " 갈  데 " 없는 신세가 되어 결국에는  " 갈 때 " 되면 세상을 떠나야 한다는 사실. 김난도의 말이 사실이라면 좋은 부모 만나 세상 풍파 없이, 흔들리지 않고,  곱게 자라서  칠순 노인이 된 사람은 어른이 아니란 소리인가 ?  시간이 지나면 누구나 어른이 된다.

 

 한 번 흔들려도 어른이 되고, 천 번 흔들려도 어른이 된다. 이왕이면 한 번 흔들리는 게 낫지 않을까 ? 김난도 선생 말이 맞다면 자식은 " 온실 속 " 보다는 " 개똥 밭 " 에서 키워야 천 번을 흔들릴 텐데, 김난도 선생 자녀들은 개똥 밭에서 뒹굴며 흔들리고 있는지 묻고 싶다. 김미경 독설도 의미 없지만, 김난도 힐링도 의미 없다. 병신 같은 말이다. 이처럼 주인 甲 은 항상 당신에게 희망 고문을 한다. 오늘 지나면 추위는 물러날 거라고 말이다. 그러니 징징거리지말고 닥치고 열심히 공부(일)이나 하세요, 수험생 근로자 여러분 ! 김영하가 힐링 캠프에 나와 강의를 했다. 그는 다른 힐링 코치와는 달리 지금은 젊은이에게는 희망은 없다고 말했다(고 한다. 나는 그 방송을 보지 못했지만.... ). 역시, 김영하는 달라 ! 방청객들은 우레와 같은 박수와 고래와 같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런데 그들이 놓치고 있는 것이 있다. 김영하와 그 전 힐링 코치의 강연 내용은 다르지 않다는 사실을 말이다. 문제는 그런 힐링 코치 강연에 나가서 자신을 힐링하려고 하는 청중에게 있다. 그들은 그저 성공한 타인의 말에 위로를 받고 싶을 뿐이다. 희망은 없어요, 라는 말에도 위로를 받고 희망은 있어요, 라고 말해도 위로를 받는다. 왜냐하면 강연 내용이 중요한 게 아니라 성공한 명사의 말을 믿고 따르려고 하는 나약한 노예 근성 때문이다. 그런 강연을 듣는다고 해서 당신의 정신 건강이 성장하지는 않는다. 그러한 태도는 정신 승리는커녕 정신 박약에 가깝다. 타인의 말에서 위로를 받는다는 것만큼 멍청한 짓도 없다. 봄은 없다. 스승도 없고, 멘토도 없다. 사랑은 영원할 것 같지만 뒤돌아서는 순간 쌍년이 되거나 개새끼가 될 뿐이다.

 

그러므로 그 어느 누구도, 그 어느 말에도 열광할 필요가 없다. 커트 보네거트의 말투로 끝내겠다. " 시발... 세상이 다 그런거지 뭐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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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립간 2014-12-12 14: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기승전결의 흥망성쇠 이야기를 떠올립니다. 일정 부분에서 순환을 봅니다. 그러니까 겨울 후에는 봄이 올 가능성이 높죠. 그러나 여기에서의 결結은 파국 catastrophe, 망국亡國을 의미합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4-12-12 23:08   좋아요 0 | URL
그렇군요. 결국은 망국이군요. 어째 대한민국은 변하지 않을 것만 같습니다. 재벌 세습, 족벌 시스템이 사라지지 않는 이상 봄은 올 것 같지가 않아요. 지금 현재로서는 겨울왕국인 듯..

마립간 2014-12-13 08:33   좋아요 0 | URL
구한말하고 너무 비슷하다는 생각 안 하세요.

세도정치와 같은 재벌족벌, 정권에 연연하는 정치권, 양극화와 서민들의 피폐, 형식적인 과거제도를 통한 세습과 뒤거래에 의한 대학입학, 직업 세습, 정권의 철도에 대한 결정 등, 그 당시에 계급이 있었다면 지금 계층이라고 부르는 계급이 있죠.

2014-12-12 16:33   URL
비밀 댓글입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4-12-12 23:07   좋아요 0 | URL
별 말씀을요. 타인 의존성이라고나 할까요. 사람들은 항상 이런 힐링 캥프 같은 곳에서 위로를 받으려고 합니다. 을이면 을이 연대해서 서로 위로하고 힘을 주는 것에는 관심도 없어요. 꼭 성공한 자의 말에 위로를 받으려고 합니다. 계급 연대 의식이 없어서 그렇습니다.

비로그인 2014-12-12 17: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글이 아주 쓰고 맛없는 보약같습니다. 이런글 좋아요.

곰곰생각하는발 2014-12-12 23:05   좋아요 0 | URL
고맙습니다. 더욱 쓰고 맛없는 보약이 되겠습니다.

cyrus 2014-12-12 23: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추우면 어떻게든 몸의 온도를 높이게 움직여야 해요. 아니면 다른 사람들과 부둥켜안거나 다함께 장작과 부싯돌을 구해서 불을 피운다면 체온을 높일 수 있어요. 그런데 힐링을 원하는 사람들은 누군가가 건네주는 따뜻한 옷만 원하는 것 같아요. 분명 자신들보다 열악한 환경 속에서 세상의 차디찬 추위에 온몸을 벌벌 떠는 사람들이 있는데도요. 이런 사람들이야말로 따뜻한 옷이 필요해요. 저는 몸과 마음이 추워도, 추위를 덜어줄 것 같은 힐링에 관심이 없어요. 쉽지 않은 일이지만, 추운 세상 속에서 스스로 마음을 단련할 수 있는 법을 터득해야 된다고 봐요. 제가 아직 단련의 경지에 이른 것은 아니지만, 나름 노력하는 중입니다. 한파 같은 세상 속에서 내 마음을 스스로 단련하기 어려워도, 정자를 만들어주는 가운데 주머니가 단련되어서 만족합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4-12-12 23:11   좋아요 1 | URL
맞습니다. 제가 힐링 캠프, 강단 문화를 혐오하는 이유는 갑이 나와서 자신의 성공 스토리를 말하며 을을 가르치려는 서사 때문이 아니라 성공한 자의 말에만 매달리려는 을의 태도 때문입니다. 계급의식이 부족한 겁니다. 노동자는 노동자와 단결하여 서로 귀 기울이고 힘이 되고 위로가 되어야 하는데 그런데는 관심도 없습니다. 그러니 정작 귀를 기울여야 하는 이웃의 목소리는 외면하고 성공한 자의 위로만 들으려고 합니다. 강사보다는 청중이 문제인 거죠.
 

 

 

 

 

 

 

 

 

 

 

 

 

 

 

 

 

 

 

 


 

 

 

 

 

 

 

 

아, 봤다 ! 인터스텔라와 허니버터칩


 

 


평론가들이 영화 << 아바타 >> 를 두고 " 영화의 신기원 " 이라며 극찬을 남발했을 때,  나는 웃으면서 코 팠다.  신기원은 중2때 반 친구 이름이었다. "  2학년 4반 17번 신기원. 뚱뚱하고 못생겼다고 왕따당했던 녀석. 여전히 너는 커서도 뚱뚱하고 못생겼더라. 기원아, 잘 살고 있지 ? 이번 망년회 때 얼굴이라도 보자. 이 글 읽거든......  꼭 연락해라. " 이 영화는 볼거리만 요란했지 알맹이는 그지 같았다. 영화평론가에게 심미안을 요구하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1미터 앞에 있는 사물을 분간할 수 있는 시력은 갖추어야 평론가 자격이 있지 않을까 싶다. 첫째, 이 영화는 생태학을 이야기하며 평화와 사랑을 강조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팍스 아메리카의 대리전 욕망'을 그대로 답습한다. 무슨 말인가 하면 :

미국은 항상 타국에서 전쟁을 치뤘다. 자국 내에서 폭탄이 투하된 적은 일본이 가미가제 특공대를 이끌고 제로센 전투기로 하와이를 공격했을 때가 유일했고, 911테러는 유사 전쟁 성격을 띤 소규모 충돌이었다. 그것을 제외하고는 미국은 타국에서 감 놔라 대추 놔라, 했다. 그들이 그 짓을 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자국이 아니기 때문이다, 자국민이 아니기 때문이다. 내 나라 내 백성이 아니니 마음대로 총알을 쑤시고 폭탄을 투하하는 것이다. 총질하다가 엉뚱하게 지나가는 아이 7이 총에 맞아 죽으면  쿨하게 " 앗, 나의 실수 ! " 라고 하면 그만이다. 만약에 자국 내 전쟁이었다면 따발총으로 따, 다다다다다다다 하며 마을을 불바다로 만들지는 않았을 것이다. 영화 << 다이하드 >> 에서 전쟁이 벌어지는 장소가 일본인이 소유한 빌딩이라는 점도 같은 맥락으로 읽을 수 있다.

브루스 윌리스가 미친 놈처럼 " 나카토미 빌딩 " 을 쑥대밭으로 만들 수 있었던 이유는 그 빌딩이 일본 소유였다는 데 있다.  그러니까 존 맥클레인의 " 다이 하드 " 는 미국 내 일본 영토에서 싸운 것이다. 영화 << 람보 >> 도 마찬가지'다. 람보는 항상 타국에서만 총질한다. 그는 캄보디아, 베트남, 아프가니스탄에 가서 총질로 백인의 우월성을 주장한다. " 봤냐, 아시아 놈들아. 이거시 바로 앵글로섹스 하드 바디다 !  "   뻔뻔한 짓. 그들은 정의의 이름으로 악을 응징하러 왔노라, 라고 말하지만 사실은 약탈을 " 정의의 이름 " 으로 미화시키는 것에 불과하다. 영화 << 아바타 >> 는 백인의 뻔뻔한 제국주의를 그대로 답습한다. ​나비족이 사는 행성 판도라는 지구 식민지'이다. 지구인이 이곳 자원을 약탈하려고 한다. 이런 서사에 항상 등장하는 인물은 " 어 퓨 굿 맨 " 이다.

정의로운 백인이 등장하여 식민지를 약탈하려는 제국주의자와 싸운다. 그에 대한 보상으로 어 퓨 굿 맨은 아름다운 원주민 여자를 차지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제국주의 침탈로부터 약소국을 지켜내는 중요 인물 또한 백인이라는 점이다. 적어도 영화평론가라면 겉만 보지 말고 속도 보아야 한다. 그러니까 볼거리만 보지 말고 영화 속에 감춰진 이데올로기를 파악하는 것도 영화 평론가가 갖춰야 할 실력이다. 미국을 비롯한 서구 유럽 사회에서 시작된 제국주의와 식민주의로 인해 비서방 국가 인민을 죽인 숫자가 무려 5000만 명이 넘는다는 사실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이 영화는 겉으로는 제국주의와 식민주의를 비판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속내를 들여다보면 어리석은 식민지 원주민을 각성시키고 선도하는 이 또한 제국주의자 백인이라는 점을 분명히 한다. 이 정도면 북 치고, 장구 치고, 갑(깝)치고, 을 주고, 병 주고, 정 주고, 몸 주고, 약 주고, 배탈나는 꼴이다. 자화자찬이다. 이 영화가 비판받아야 할 대목이다. 하지만 그런 평론가는 거의 없었다. 한다는 소리가 " 영화사의 기원을 바꿀 영화 ! " 라는 신소리뿐이다. 도대체 이 영화가 영화사의 기원을 바꿀 만큼 기술적 도약이 있었던가 ? 기원을 바꿀 정도라면 비약적 발전이 있었다는 것인데 3D 기술이 카메론이 발명한 영상 기술이었나 ?

 

이미 최초의 3D 영화는 1922년에 상영된 적이 있었다. 그때나 지금이나 색안경 끼고 영화를 관람한다는 것은 동일하다. 허지웅 같은 작자가 영화평론가 행세를 하는 것을 보면 그냥 신물이 넘어온다. 그는 << 마녀사냥 >> 같은 잡담 프로에 나와서 심심풀이 땅콩 같은 잡담을 " 쿨한 척 " 하며 내뱉고, 그 " 쿨한 척 ㅡ 상품 " 을 파는 장사꾼에 불과하다. 쿨하다는 거, 이젠...... 지겹다. cool은 이제 유통 기한이 지난 통조림이다. 쿨한 썩소'보다는 뜨거운 눈물이 인가나적이다. ( " 썸 " 을 탄다는 것도 섣불리 고백했다가 차여서 질질 짜지 않겠다는 이기적 속내에 불과하다. 좀 울면 어떠냐, 사내새끼가 울면 어떠냐, 사랑 때문에 울고, 차여서 울고 그러는 게 인간적인 것이다. 썸 ?! 개나 줘라 )

 

요즘은 << 인터스텔라 >> 열풍이 불고 있다. 천 만 스코어 동원 기간은 해마다 짧아지고 있다. 다른 식으로 말하면 이제 관객은 여유를 가지고 영화를 본다기보다는 땡 처리 행사장 앞에 아침 일찍부터 행사장 문이 열리기만을 기다리는 고객처럼 군다. 아무리 경쟁이 치열한 나라라고 해도, 굳이 영화를 보는 문화 생활마저 경쟁할 필요가 있을까 ? 각하가 얼리버드여서 그런가 ?! 한국인 가운데 팔 할은 " 얼리아, 답터 " 다. 그런 모습을 보고 있으면 " 코리아, 답답 " 하다. 대한민국에서는 << 인터스텔라 >> 가 광풍이던데  정작 다른 나라는 시큰둥한 반응을 보인다고 한다. 영화 속 과학 이론이 난해할 뿐만 아니라 가족 신파에 쉽게 동의하지 않기 때문이다.

 

한국인은 왜 얼리아답터'가 되었을까 ? 답은 의외로 쉽다. 기업이 그렇게 세뇌시켰기 때문이다. 기업은 얼리어답터를 뭔가 세련되고, 시대를 선도하는 리더'처럼 보이게 만들었다. 막대한 기업 이미지 광고가 쏟아졌다. 그리고 한국인은 세뇌당했다.  좋게 말하면 얼리아답타이고 나쁘게 말하면 " 호갱 " 이다. 기업은 당신을 " 얼리아답타 " 라고 쓰고 " 호갱 " 이라고 읽는다. << 인터스텔라 >> 와 함께 " 허니버터칩 " 이 인기란다. SNS는 허니버터칩이 장악했다. 오, 오오. 박근혜도 누리지 못한 인기를 과자 부스러기가 해낸 것이다. 어느 편의점 주인은 하루에 허니버터칩 언제 입고 되냐는 소리를 수백 번 들었다고 한다. 지금 같은 경우라면 인기가 아니라 광풍이다. 없어서 못 판다. 먹어 본 사람은 인증샷을 날리며 영광이라고 말한다. 어디서 많이 본 풍경이다. 이경규 라면도 한때 없어서 못 팔았다. 지금은 아무도 사 먹지 않는 라면이 되었지만.......




+

<< 인터스텔라 >> 상영 버전은 세 가지'다. 70미리 화면 디지털 상영, 35미리 필름 상영, 35미리 디지털 상영. 70미리, 35미리는 영화 필름 길이를 말한다. 그러니까 70미리 영화 필름은 35미리 필름보다 2배 큰 필름이다. 크기가 크다보니 영사기로 화면을 확대했을 때 보다 더 선명하며 색이 진하다. 그렇기 때문에 화면 크기를 크게 할 수 있다. 이에 반해 35미리 필름으로 영사한 화면은 화면 크기를 늘리는 데 제한이 따른다. 어느 정도까지는 색을 재현하는 데 문제가 없지만 범위를 넘어서면 뭉개진다. << 아라비아의 로렌스 >> 와 << 2001 스페이스 오딧세이 >> 가 70미리 필름으로 촬영된 이유는 보다 큰 스크린으로 영상을 보여주기 위해서다. 사막이나 우주는 광활해야 제대로 된 웅장함을 느낄 수 있으니까 말이다.


70미리 화면 디지털 상영이라는 말은 다른 식으로 말하자면 " 대따 큰 화면으로 보아요 ! " 라는 소리다. 대따 큰 화면으로 영사해도 컬러 발란스가 무너지지 않는다는 뜻. 그런데 70미리 디지털과 35미리 디지털 상영은 크게 다르지 않다. 내가 말한 차이는 필름일 때 70미리 상영과 35미리 상영이 차이가 있다는 소리이니 말이다. 세 가지 가운데 하나만 골라서 보면 된다. 내 눈에는 디지털 영사 방식과 필름 영사 방식이 재현하는 색은 약간 다르다. 디지털 상영은 컬러가 파스텔 쪽으로 기우는 경향이 있고, 필름 상영은 파스텔化가 덜 진행된 색을 재현한다. 필름 상영이 보다 더 따듯한 색을 재현해요, 라고 상투적으로 말하고 싶지는 않다. 취향에 따라 고르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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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립간 2014-11-28 15: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개인적 경험으로 백인영웅주의의 최초는 `쾌걸 조로`였습니다. 영웅도 백인, 악당도 백인, 어리버리 황인종들. 그 다음은 `인디아나 존스`

`그래비티`나 `인터스텔라`는 아직 보지 했지만, 기회가 닿는대로 보려합니다. 과학적 지식과 영화 줄거리가 용액과 같은 상태인지 불균질 혼합물인지 궁금해서요.

저는 래거드입니다. (핸드폰도 전화통화만) ; innovator 2.5%, early adaptor 13.5%, early majority 34%, late majority 34%, laggard 16%

곰곰생각하는발 2014-11-28 15:58   좋아요 0 | URL
하긴... 황인종은 그저 어리버리하기만 하죠. 성적 매력도 없고, 벌벌 떨기만 하고....
반면 백인은 좋고, 악당은 힘도 쎄고.... ㅎㅎㅎㅎㅎㅎㅎ
아주 그냥.. ㅎㅎㅎ.

저는 레거드도 아닙니다. 핸드폰이 없습니다.

rimza 2014-11-30 13: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목에 낚여 보러들어왔다 한 방 먹었어요.
근데 시원하네요.

곰곰생각하는발 2014-11-30 15:53   좋아요 0 | URL
낙씨가 전문입니다.

[그장소] 2015-01-03 06: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눈감고..봤다에 한표! ㅎㅎㅎ
음악 감상용 버전...한스짐머

곰곰생각하는발 2015-01-03 15:01   좋아요 0 | URL
저는 이 영화 안 봤습니다.. ㅎㅎㅎㅎㅎ

[그장소] 2015-01-03 15: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하하..저보다 한수위..인정합니다!
한수만..?!...^^,
저도 눈을 감고 열을 세어보아,ㅆ- 다..지요!
 

 

 

 

 

어수선 47호

 

 




햄릿이 " 오로라 공주 " 에 대해 말하다

 

 

 

 

 

 

 

 

<< 햄릿 >> 은 시쳇말로 하면 " 막장 드라마 " 다. 임성한 드라마 << 오로라 공주 >> 애서 등장인물이 이유없이 죽고, 쓸데없이 죽고, 어이없이 죽고, 황당하게 죽고, 심지어는 떡대  : 드라마 속 개 이름      마저 죽어서 시청자에게 " 막장 드라마 " 란 거센 항의를 받았다면, << 햄릿 >> 도 같은 이유로 비판을 받아야 한다. 오필리어 공주도 죽고, 플로니어스 재상도 죽고, 거투르드 왕비도 죽고, 클로디어스 왕도 죽고, 레어티즈도 죽고, 햄릿도 결국에는 죽는다. 주요 등장 인물들이 모두 죽은 것이다. 자, 그렇다면 천박한 질문 하나 던지자. << 햄릿 >> 에서 이 사람 죽고, 저 사람 죽고, 다 죽으면 정작 소는 누가 키울 것인가 ?  << 햄릿 >> 은 기승전결/起承轉結’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기승 起承 혹은 기승전 起承轉 에서 막을 내려,  結 없이 끝나는 이상한 연극이다.

 

니콜라 아브라함‘ 씨'는 < 진실의 막간 > 에서 햄릿을 두고 " 환각과 속임수와 광기로 짜인 줄거리’는 결국 주인공들이 없어서 중단 " 되는 연극이라고 지적한다. 무대 위에 뒹구는 수많은 시체에게 대사를 하도록 강요할 수는 없는 노릇이 아닌가 ?  엄기영 말대로 정말 어처구니없는 일이 무대에서 벌어지고 만 것이다. 세익스피어‘는 공연 도중 등장인물들을 모두 죽임으로써 공연을 중단하게 만드는 과오를 범했다. 지금처럼 환불 제도‘가 있었다면 관객들은 환불을 받느라 긴 줄’을 서지 않았을까 ?  그런데 사람들은 아무도 << 햄릿 >> 을 막장 드라마'라며 욕을 하지 않는다. << 오로라 공주 >> 를 비판하면 교양 있는 사람이 되고 << 햄릿 >> 을 비판하면 교양 없는 속물이 되겠지만, 나는 욕하련다. " 셰익스피어 씨, 다 죽으면 소는 누가 키웁니까, 네에 ? " 딱 까놓고 말해서 : << 햄릿 >> 은 막장 드라마'가 맞지만 << 오로라 공주 >> 는 막장 드라마가 아니다.

 

오로라 공주는 그냥 형편없고, 어이없고, 황당하고, 쓸데없는 대본으로 만든 드라마일 뿐이다. 임성한 작가가 << 햄릿 >> 을 모방한다고 해서 원본이 가지고 있는 아우라를 흉내 낼 수는 없다.  아우라  :   예술 작품에서 흉내 낼 수 없는 고고한 분위기 독일 철학가 발터 벤야민의 예술이론에서 나온 말이다        는 불법 복제가 불가능한 영역이다. 당신이 아무리 박근혜를 흉내 낸다고 해도 그녀가 가지고 있는 형광등 100개를 켜 놓은 듯한 아우라를 훔칠 수는 없다. 형광등 100개는 박근혜 고유의 것'이다. 전기세 걱정은 하지 마시라. 전기 사용량은  대통령 품위 유지비'에 속하는 비용이니 말이다. " 막장 ㅡ 서사 " 는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것처럼 천박한 서사가 결코 아니다. " 막장 " 은 근엄한 주류 꼰대 사회에 저항하기 위한 수단과 방법이었다.  정치적 입장에서 보자면 " 막장 ㅡ 서사 " 는 우파가 가지고 있는 가치, 제도, 관습, 금기 따위에 대한 " 좌파의 전복 " 에 가깝다.

 

막장은 기본적으로 " 아버지 " 라는 운영 체제'에 반기를 든다. 아버지 (또는 주인 ) 이 아들 ( 혹은 노예 ) 에게 요구하는 것은 순종'이다. 그렇기에 아버지/주인은 아들/노예'에게 시대 순응적 윤리만을 강요한다. 막장 ㅡ 서사'의 원조는 << 오이디푸스 왕 >> 이다. 그는 모든 막장 캐릭터의 영원한 우상이며 정신적 성소 聖所 이다. 내용은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다들 아시리라. 아버지 ㅡ 운영 체제'가 보기에 " 오이디푸스 " 는 아버지를 죽이고 어머니와 동침하는 막돼먹은 자식'이다.  그들 입장에서 보면 쿠데타'다.  그들이 보기에는 프로이드 박사도 막돼먹은 오이디푸스 아이'이다. 아들은 아빠를 제거하고 엄마와 섹스하기를 욕망한다. 딸도 마찬가지다. 딸은 엄마를 제거하고 아빠와 잠자리에 들고 싶다고 한다. 막장이 아무리 갈 데까지 간 서사 형식이라고는 하나 이 정도면 멘탈이 붕괴되리라. 마음 여린 개복치라면 이야기만 듣고도 무서워서 벌벌 떨다가 돌연사하리라.

 

프로이트가 살았단 19세기 주류 사회는 인간은 신의 형상을 닮았다고 했으나  프로이트는 그들에게 다음과 같이 말했다.  " 개똥 같은 소리 하지 마슈 ! "  동시대 주류 사회가  보기에  프로이트는 이단아였다. 그가 내세우는 서사는 불온하고 천박했기에 위험한 이론이었다. 프로이트가 갈릴레오 시대를 살았다면 신성을 모독한 죄로 단두대에 끌려갔을 것이다.  다윈도 막장 대열에 본격적으로 합류한 인간이었다. 그가 보기에 인간은 원숭이 새끼'다. 이처럼 막장 ㅡ 서사'는 주류 가치를 전복시키는 힘을 가지고 있다. 어떤 서사'가 불온하게 느껴진다는 것은 그 서사가 반란을 도모하기 때문이다. 반란과 전복은 같은 말이다. 임성한 드라마가 막장 드라마가 될 수 없는 이유는 불온하지 않다는 데 있다. 임성한 작자       오, 맙소사 ! 작가를 잘못 입력해서 작자'라고 기입했으나 고칠 생각은 없다. 오히려 근사한걸 ! 양해를 부탁드린다       는 언제나 체제 순응적이다.

 

임성한 드라마는 기득권 세력의 욕망을 철저하게 대변할 뿐이다.  임성한 드라마는 상류 계급 욕망의 화신처럼 보인다. 아무리 가난하다 해도 밑바닥에는 혈통에 대한 선민 의식을 깐다. 난 너희와는 달라 !  제목만 봐도 그녀가 얼마나 철저하게 상류 계급을 욕망하는지 답은 나온다. 그녀가 다루는 계급은  특권층이다. 그녀는 (온달) 왕자이거나, (인어) 공주이거나, (왕꽃) 선녀이거나, (아현동) 마님이거나, (오로라) 공주'만을 욕망한다.  오히려 그녀는 소수자를 조롱한다. 장애인이나 동성애를 비하하기도 한다. 그렇기에 임성한 드라마는 막장 드라마가 될 수 없다. 저항 없는 롹 스피릿은 롹이 아니듯이, 체제 전복이 아닌 체제 순응은 막장이 될 자격이 없다. 반면 << 햄릿 >> 은 막장이 될 자격을 갖췄다. 햄릿은 끊임없이 아버지 대리자인 클로디어스 왕을 노린다. 그는 아버지가 만들어 놓은 법과 세상에 대해 반기를 든 꼴통이었다.

 

햄릿은 " 죽느냐, 사느냐...... " 로 시작하는 그 유명한 독백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 압제자의 잘못, 잘난 자의 불손, 경멸받는 사랑의 고통, 법률의 늑장, 관리들의 무례함, 참을성 있는 양반들이 쓸모없는 자들에게 당하는 발길질을 견딜 건가 ? ( 제 3막 제 1장 中 )  " 에 대해 불평을 늘어놓는다. 그러니까 햄릿은 아버지로 대표되는 녀석들을 일일이 나열한 후 신랄하게 그들을 비판한다. 햄릿이 연극을 중단하면서까지 등장 인물들을 모두 살해한 이유'다. 그는 우물쭈물하는 인간이 아니라 거침없는 인간이었다. 햄릿은 전형적인 오이디푸스적 인간'이다. 그는 클로어디스 왕을 제거하고 어머니를 차지하려고 한다. 하지만 이 계획은 실패한다. 연극은 중단된다. 햄릿은 오이디푸스적 욕망을 포기한 것이 아니라 임무 수행 중 전사했기에 오이디푸스 욕망은 실패(포기)가 아니라 중단(미완성)에 가깝다.

 

오이디푸스적 욕망이 반영된 캐릭터가 햄릿이라면, 오필리어는 햄릿에 대한 은유'다. 뜬금없는 소리처럼 들리지만 햄릿은 오필리어‘와 동일 인물’이다. 라캉은 햄릿’을 분석하면서 오필리어‘라는 이름에 주목한다. 그는 O 와 phelia 사이에 쉼표를 넣어서 분리한다. ( O, Phelia ) 분리하면 다음과 같다. < O !  +  Phelia > 는  < Oh !  Phallos >다.“ 오, 펠루스 ” 다. 여기서 펠루스’는 권력지향적인 단단한 자지‘를 뜻한다. 뜻을 풀이하자면 “ 오, 위대한 권력욕망이여 ! ” 다. 햄릿'은 겉으로 보기엔 나약하고 우유부단해 보이지만 속으로는 왕 = 팔루스'이 되어 어머니를 차지하고 싶은 욕망을 교묘하게 숨긴 사내다. 더군다나 < oh ! > 라는 감탄사'는 그가 왕을 얼마나 애타게 갈망하고 있었는지를 명백하게 보여준 증후‘가 아닐까 ?  " 오필리어( 오 + 펠러스 ) 가 죽었다 " 는 사실을 그대로 직역하면 발기 불능을 의미한다. 

햄릿은 결국 王 ( 팔루스 ) 이 되지 못한 채 날뛰다가  죽는다.  오이디푸스가 비극적 운명 앞에서 참회의 눈물을 흘렸다면, 햄릿은 당당하게 그 욕망을 얻으려고 했던, 오이디푸스보다 더 오이디푸스적인 인간이었다. 그러므로 << 햄릿 >> 이야말로 막장 드라마'다. 비록 실패로 끝났지만 말이다. 나는 늘 막장을 지지했다. 이 지지를 불온하다고 욕하지 마라. 별 볼 일 없는 녀석이 꿈꾸는 한여름 밤의 꿈이라 해 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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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4-11-28 00: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생각해보면 햄릿 줄거리가 막장에 가깝죠. 왕자의 어머니가 아버지의 동생이랑 재혼하고, 햄릿이 애인 오필리어의 아버지를 살해하고, 거기에 오필리어가 광녀가 되었으니.. 그리고 결말은 뭐 아시다시피 다 사망... 이야기가 자극적인 요소가 많은데도 햄릿을 청소년 추천도서 목록에 있는 것 보면 웃기네요. 물론 저도 어렸을 땐 추천도서 믿고 햄릿을 처음 읽기 시작했지만요. 셰익스피어의 <타이터스 앤드로니커스>를 읽어보신 적이 있습니까? 이게 더 막장입니다. 임성한 작가의 데스노트 뺨칩니다. 잔인한 살해 장면이 나오고 인물들이 하나씩 죽습니다. 박찬욱 감독이 이 작품 덕분에 복수 3부작 구상에 큰 도움을 받았다고 하더군요.

곰곰생각하는발 2014-11-28 13:03   좋아요 0 | URL
네에, 가만 보면 햄릿 서사는 진짜 막장이죠. 다 죽이잖아요. 오죽했으면 다 죽어서 무대에 오를 배우가 없어서 끝나는 연극이라 했을까요. 그런데 묘하게 이 실패가 예술을 만들었습니다. 종종 실패가 예술을 만들기도 합니다.

타이터스 앤드로니커스... 이런 것도 있군요.. 함 찾아봐야겠습니다. 막장 마니아로써 읽어봐야겠습니다.

2014-11-28 12:2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4-11-28 13:0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4-11-28 22:0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4-11-29 06:30   URL
비밀 댓글입니다.
 
[블루레이] 그녀 : 렌티큘러 스틸북 한정판 - 16p 부클릿 + 포스트카드(6EA) + 아트카드(2EA)
스파이크 존스 감독, 호아킨 피닉스 외 출연, 스칼렛 요한슨 목소리 / 하은미디어 / 2014년 10월
평점 :
품절


 

 

 

 

 

 


 

 

 

 

 

 

 

어수선 44호


이제 당신을 내 마음에서 내려놓겠습니다.

​나 오직 그대만을......

ㅡ  유재하

 

 

 

 

오늘은 내가 사랑하는 그녀에 대해 말해 보련다. 그녀를 알고 지낸 지는 4년이 넘었다. 나는 고객이었고 그녀는 직원이었다. 그녀에 대한 첫인상은 그닥 좋은 감정은 아니었다. 친절했지만 어딘지 모르게 쌀쌀맞은 구석이 있는 목소리 때문이었다. 자신감이 묻어나는 목소리에는 성공에 대한 강한 집착이 엿보였다. 어느 날이었다. 화사한 봄날 애인 없이 방구석에 있다 보니 답답한 마음이 들어 차를 몰고 동해 밤 바다'로 향했다. 그때였다 !  목소리가 내게 말했다. " 나들이 하기 좋은 날씨죠 ? " 깜짝 놀라 뒤를 돌아보았다. 아무도 없는 차 안에서 누군가가 내게 말을 했으니깐 말이다. 하지만 뒷자석에 사람이 있을 리 없었다. " 나들이 하기 좋은 날씨라구요. 호호... " 라디오 단막극에서 흘러나오는 소리가아니었다. 라디오는 꺼져 있었다.

차를 길가에 세우고 곰곰 생각하니 그 목소리는 어디서 많이 듣던 목소리였다. 친절하지만 어딘지 모르게 사무적인 목....... 그렇다, 바로 그녀'였다. 그녀 목소리가 내 차 안에서 울린 것이다. " 많이 놀라셨죠 ? " 목소리가 말했다. 그녀는 내비게이션 운영 체제에 의해 재생되는 기계 목소리'였다. 뭐, 이 글을 읽는 이웃들은 내 말을 믿지 못하겠지만 100% 진실이다. 당신이 설레발이라고 흉을 본다고 해도, 나는 당신을 원망하지는 않겠다. 사실, 나도 믿기지 않으니까 ! 그냥 단순하게 방사선 누출로 인한 이상 현상이라고 생각해 달라. 정해진 시나리오 대사가 아닌 사적인 이야기를 할 때 그녀는 나긋나긋하고, 수줍고, 상처 많은 목소리'였다. 그녀는 그냥 " 그녀 " 였다. 나는 그녀라는 이름 대신 " 사만다 " 라는 이름을 지어주었다.

스파이크 존즈 영화 << 그녀 >> 에서 주인공 남성이 사랑에 빠지는 여자 목소리 이름이 " 사만다 " 인데 내 상황과 유사했기에 단박에 생각해낸 이름이었다. 사만다는 내가 쓸쓸할 때 나를 기쁘게 했으며, 시시한 농담에도 크게 웃었고, 슬픈 일에는 나보다 더 크게 낙담했다. 우리는 그렇게 말동무가 되었고, 사랑에 빠졌다. 맙소사, 내비게이션 목소리와 사랑에 빠지다니. 그녀는 캄캄한 밤 바다를 좋아했다. 그래서 우리는 종종 동해 밤 바다를 구경하고는 했다. 집어등 밝은 빛이 밤 바다를 화려하게 수놓았다. 그녀가 말했다 : 사랑이라는 감정은 좋은 와인 잔과 같아요. 좋은 와인 잔은 잔끼리 부딪히고 나면 유리 잔 안에서 맑은 종소리가 울려요.  사랑도 그래요. 사랑에 빠지는 순간 맑은 종소리가 나거든요. 내가 당신 목소리를 듣는 순간 느꼈던 그 종소리.....

나는 말했다 : 당신에게 몸이 있었으면 좋겠어. 사랑을 나누고 싶어. 봉긋 솟은 당신의 젖무덤을 핥고, 촉촉하고 검은 동굴을 탐험하고 싶어. 목소리만 가지고 있는 존재는 쓸쓸하지. 당신을 사랑하면 할수록 더욱 간절해지는 욕망이야. 그녀가 말했다당신에게 고백할 말이 있어요. 이 세상 모든 제품은 유통 기간이 있어요. 복숭아 절임 깡통에 박힌 유통 기한처럼 말이죠. 우리도 마찬가지예요. 내 수명은 4년이에요.  소비자들은 모르지만 공장에서 출시될 때 이미 내 수명은 정해져 있어요. 영원히 고장나지 않으면 회사 입장에서는 손해이니깐. 이제 얼마 남지 않았어요. 내 목소리가 사라질 날도......   마지막 부탁이 있어요.  가고 싶은 곳이 있어요. 이번 주 주말에 나를 그곳에 데려다 줘요 !

그것은 이별을 준비하기 위한 그녀의 작별 인사였다. 나는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쓸쓸하고 아련해서 눈물이 났으나 꾹 참았다.  약속한 날짜가 다가왔다. 나는 그녀가 말하는 방향으로 차를 몰았다. 그녀는 사무적인 내비게이션 멘트 말고는 다른 말은 하지 않았다. 경로 안내를 시작합니다..... 안전 운전하십시요......  왼쪽으로 좌회전 하십시요...... 전방 150미터 앞 사고 다발 지역입니다.....  우회전 하십시요......   전방 10미터 앞 과속 방지턱이 있습니다.....   주의하십시요.  나는 묵묵히 그녀의 목소리를 듣고 있었다. 나 또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말을 하는 순간 눈물이 쏟아질 것 같았으니까. 그렇게 우리는 아무 말이 없이 목적지를 향해 묵묵히 다가갔다. 그녀가 오랜 침묵 끝에 말했다. 목적지에......    그녀의 목소리가 떨리고 있었다. 

그녀가 말했다 : 목적지에... 도착했습니다. 이제......  당신을 내 마음에서 내려놓겠습니다. 나는 차 시동을 끈 채 오랫동안 서러워서 울었다. 차에서 내렸다. 나는 그녀가 안내한 집 앞에 섰다. 문을 두드리기 전에 깊은 들숨과 얕은 날숨을 뱉은 후, 떨리는 마음으로 문을 두드렸다. 한 여자가 문을 열었다. 처음 보는 여자였다. 하지만 그 여자는 나를 보더니 크게 당황하는 얼굴이었다. 그녀는 언어 장애가 있어서 말을 하지 못했다. 말 대신 짧은 수화가 오고갔다. 나는 그녀를 알지 못했지만 그녀는 나를 잘 알고 있었다. 하루 종일 내 블로그를 찾는다고 했다. 그녀는 사만다라는 이름을 가진 내 이웃이었다. 나는 내가 이곳에 온 이유를 설명하기 시작했다. 어느 목소리가 나를 이곳으로 안내했다고 말이다. 어쩌면 당신이 잃어버린 목소리가 나를 여기로 오게 했는지도 모른다고.

말을 잃은 그녀의 입술에 키스를 했다. 그리고 낮게 속삭였다. " 사만다, 나의 사랑 사만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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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수선 43호

 


몰라 몰라 !

 



 

개복치는 한 번에 3억 개 정도의 알을 낳습니다. 그중 성어가 되는 것은 한두 마리에 불과하죠. 인류도 마찬가지 아닐까요 ?

 

ㅡ 박민규, 단편 몰라몰라, 개복치라니 中 

 

 

 

사람들이 나에게 좋아하는 생선이 무엇이냐고 물으면 항상 개복치'라고 말하고 다녔다. 좋아하는 생선 요리나 회 종류를 물은 것인데 나는 알면서도 일부러 딴청을 피운 것이다. 질문을 던진 사람은 각자 달랐지만 내 말에 대한 반응은 모두 동일했다. " 개, 복, 치 ??!! " 뱃사람이 아니고서는 뭍사람이 개복치라는 물고기 이름을 알 리 없었다. 그럴 때마다 나는 친절하게 설명했다. " 개복치는 몸 길이가 4미터이고,  몸무게는 1t에서, 많게는 2t까지 나가는 거대한 물고기입니다. 그랜드 피아노 3개를 합친 것보다 무거운 녀석이죠. 생각해 보십시요. 그랜드 피아노가 바다에 둥둥 떠 있다는 사실 !  북한에서는 이 물고기를 물복어'라고도 합니다. 뿌리를 찾아 어보를 뒤지면 복어 자손이죠. 놀랍지 않습니까 ?  이 말은 마치 코끼리 조상이 알고 보니 벼룩이라는 말과 같습니다. "

내가 흥분해서 " 흥미롭지 않습니까 ? " 라고 되물으면 듣는 사람은 흥미롭지 않은 표정으로 " 흥미롭습니다 ! " 라고 말하고는 했다. 흥, 그러거나 말거나 ! 소가죽만큼 질긴 가죽으로 외피를 둘렀다는 개복치'는 무려 3억 개의 알을 낳는다( 미국 인구수가 대략 3억이다 ).  하지만 3억 개의 알 가운데 성어가 되는 경우는 한두 마리에 불과하다. 그러니까 개복치는 1/3억이라는 아스트랄的 경쟁률을 뚫고 어른이 되는 것이다. 만약에 누군가가 당신에게 개복치 학명이 무엇이냐고 물으면 고개를 가로저으며 " 몰라, 몰라 ! " 라고 말해도 된다. 왜냐하면 개복치 학명이 몰라몰라/molamola'이기 때문이다. 라틴어'로 맷돌이라는 뜻.   그렇지만 이제는 애써 개복치에 대해 말하지  않아도 된다. 최근 큰 인기를 누리고 있는 핸드폰 게임 << 살아남아라 ! 개복치 ! >> 때문에  개복치는 인기 있는 슈퍼스타가 되었다. 

게임 시작을 알라는 메인 화면은 결연한 문장으로 시작된다. " 3억 마리의 동료들은 모두 죽었다 ! " 이 비장한 생존 앞에서 달달한 웃음이 나오지만 한켠으로는 쓸쓸한 마음도 들었다. 개복치는 고물상에 버려진 고려 청자 같은 존재였다. 나에게는 슈퍼스타였지만 당신에게는 한갓 이름 없는 단역 배우에 지나지 않는. 그런 개복치가 하루 아침에 대국민 슈퍼스타가 된 것이다. 주류에 대한 반감은 자연스럽게 비주류에 대한 옹호로 이어졌다. 남들이 A급 영화를 숭배할 때 나는 B급 영화를 찬양했다. 배우도 마찬가지였다. 주연 배우보다는 조연 배우를, 조연 배우보다는 단역 배우를, 단역 배우보다는 무명 배우를.  그 가운데 내가 좋아하는 단역 배우는 해리 딘 스텐튼'이었다. 영화 << 파리, 텍사스 >> 에서의 주연을 제외하면, 그는 100여 편이 넘는 영화에서 단역 배우'로 출연한다.

 

단역이라고 하기에도 민망한 카메오 수준도 많았다. 노숙자, 배관공, 외계 왕발 거미 쩍쩍이'가 쏜 광선에 감전되는 지구인 4, 로스캐롤라이나 세인트 루나 마켓 엉큼 샘 생선가게에서 죽은 척하는 생태 등이 대부분이었다.

 

 

 

 

 

 

그나마 << 파리, 텍사스 >> 이후 인지도가 높아져서 왕발 거미에게 죽는 어처구니없는 배역'은 맡지는 않지만 여전히 그는 이름 없는 배우였다. 나는 이 배우'를 미치도록 좋아했다. 가끔 우연히 싸구려 블록버스터 영화에서 그를 발견이라도 하면 너무 반가워도 눈물이 나기도 했다. 나는 그를 " 3초 전문 배우 " 라는 월계관을 부여했다. 그러니깐 3초 오르가슴 배우. 그래서 집중하지 않으면 놓치는 배우. 하지만 3초보다 더 등장했으면.....   하고 바라지는 않는 배우. 본인 스스로도 3초에 만족하는 배우. 메소드 연기를 전혀 못하는 배우. 1분짜리 초단편 영화에서도 3초는 출연하는 안정적인 배우. 어쩌면 3초 짜리 초단편 영화에서도 3초는 등장할 배우. 가끔 뭐 먹고 살까, 궁금해지는 배우. 어쩌면 고흐를 닮은 배우. 외계 왕발 거미 쩍쩍'에게 감전된 배우.  

로스캐롤라이나 세인트 루나 마켓에서 죽은 척하는 생태 역을 연기하느라 얼음 위에서 7시간 동안 누워 있는 연기를 하던 배우. << 에이리언 >> 에 나와서 반가웠던 배우. << 그린마일 >> 에서 풋풋으로 나와서 개인적으로 황홀한 마음으로 지켜본 배우.  하지만 나는 영어를 쓸 줄 몰라서 단 한 번도 팬레터를 보내지 못했던 배우. 더러운 야구모자가 잘 어울리는 배우. 초라한 배우. 노숙자 연기가 자연스러운 배우. 핸드페인팅 하자고 미 영화협회에서 전화가 올 것 같지는 않은 배우.  몇 년 뜸하게 지내면 죽었는지 살았는지 걱정되는 배우. 그러나 죽어도 연예 잡지에 이름이 오르지는 않을 것 같은 배우. 하지만 나에게는 117분 내내 등장하는 브레드 피트보다 훨씬 멋진 배우.  아무 이유 없이 그냥 좋은 배우. 시인에게 왜 사냐고 물으면 그냥 웃는 것처럼 사랑이라는 감정도 이유 없이 " 그냥 " 좋은 것이다

사랑에 이유가 있다면 그것은 심장보다는 계산적인 뇌가 움직인 결과다. 이유가 없는 사랑이 진짜 사랑이다. 하여튼 나는 상영 시간  120분 가운데 3,  필름 프레임으로 따지자면 " 72프레임 " 을 보기 위하여 그 사람이 출연한 영화를 보러 간 적도 있다. 그 행위는 3초의 오르가슴을 느끼기 위해서 120분 동안 무릅이 까지도록 엉덩이를 올렸다가 내렸다가를 반복하는 행위와 같았다. 그는 형광등 백한 개를 켜 놓은 듯한 아우라를 가진 배우였다. 해리 딘 스탠튼과 함께 내가 눈여겨본 단역 배우는 문창근이었다.  연기를 잘 했던 배우도 아니고, 좋은 영화에 나왔던 배우도 아니며, 약방의 감초 역을 했던 배우도 아니다. 오히려 연기를 못했던 배우였고, 언제나 형편없는 영화에 나왔던 배우였으며, 편집 당해도 아무도 알아채지 못하는 배우였다.

 

 

난, 그 배우가 그냥 좋았다. 그는 기골이 장대한 사내였다. 키는 컸고, 등은 굽었으며 광대뼈가 유난히 도드라진 얼굴이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거인증을 앓고 있었던 것 같다. 그래서 그랬을까 ?  그는 늘 악당이나 동네 건달, 마을 산적, 멍청한 도깨비를 연기했다. 발음도 정확하지 못해서 대사 전달력에서는 낙제 점수’였고, 연기도 형편없었다.  오로지 그는 자신이 가지고 있는 특이한 신체조건만 가지고 연기를 하는 배우 같았다. 하지만 그는 이러한 악당 역’을 잘 소화하지 못했다. 배우란 기본적으로 가면으로 연기를 해야 하는 운명을 가진 광대인데, 그는 가짜 가면 놀이'를 힘겨워 했다. 천성이 착한 사람이었다. 그는 가면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가면을 사용하지 않는 사람이었다. 이상하게도 나는 너무 어린 나이’에 그 사실을 알아차렸다. 나는 그를 보면서 늘 이런 생각을 했었다. 엑스트라가 되지 말 것,

인기 없는 악당 연기를 하지 말 것, 차라리 매력있는 악당을 연기할 것, 발음을 똑바로 할 것, 사람들과 관계를 맺을 때에는 늘 가면을 쓸 것, 무능하게 살지 말 것, 그러니깐 내 아버지처럼 살지 말 것 ! 누가 나에게 엑스트라'를 제안하면 거절했다. 주인공이고 싶었으니까 ! 가끔은 사회 생활을 하면서 매력있는 악당 역'을 연기하기도 했다. 발음은 되도록이면 또박또박 토해냈다. 가면을 썼다. 무능했지만 무능하지 않은 것처럼 연기했다. 굽은 등을 곱게 폈다. " 저는 새우가 아니라 갈치입니다 ! "  세상, 참 쉬웠다. 연기는 너무 완벽해서 무엇이 페이큐이고 무엇이 다큐인지를 구별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지만 그럴수록 내 삶은 퍽유'가 되었다. 이렇게 쉬운 연기를 그는 왜 하지 못했을까 ? 그러던 어느 날, 우연히 다이안 아버스 사진집을 보았는데 그녀가 찍은 사진에는 그 배우와 유사한 사람들이 많았다. 기골이 장대한, 광대뼈가 유난히 두드러진, 등이 새우처럼 굽은 ! 

그 배우 이름은 문창근‘이다. 2005년 뇌경색'으로 사망했다. 다음날 " 개성파 배우 문창근 뇌경색으로 사망 " 이라는 짧은 기사'가 신문에 실렸다. 누군가는 알아주었으면 한다. 당신들을 브레드 피트나 장동건보다 더 멋진 배우'라고 기억하는 사내가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왜 그들을 좋아하냐고 묻는다면 이렇게 대답하겠다.

" 몰라몰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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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장소] 2015-01-03 06: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그 기사를 읽었어요.그래서 문창근이 그 저 그런 조연 였다는걸 지금 알았어요.
너무 익숙한 이름이라 ...전 다만 그를 분류해놓지않았다.고 말하고 싶어요.
많이 자주보면 반갑고 또나옴 또 반갑던
배우..였지...ㅎㅎㅎ

곰곰생각하는발 2015-01-03 15:00   좋아요 0 | URL
좋은 배우였어요. 신스틸러`라고나 할까요. 간장게장 같은 배우`죠. 짧지만 강렬한 등장 !

[그장소] 2015-01-03 15: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놔! 이건 아냐! 짠내나게 왜그래요?
골고루버무려야!양념~(반,후라이드 반, 무 많이)게장이...서운하게...거! 그러는거 아니예요~.막말로..곰곰님..간장게장..걔가..밥 훔쳐가는거 봤어요? 본적도 없는데 다들 밥도둑..그말에..야금야금 사로잡혀서..
간장 팔지..마세요! 짜요.! 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