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짐멜의 모더니티 읽기
게오르그 짐멜 지음, 윤미애 외 옮김 / 새물결 / 2005년 2월
평점 :
데칼코마니 : 비너스와 모나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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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네상스 회화에 흔히 등장하는 미의 여신 " 비너스 " 를 보고 성적 매력이 있다고 생각한 적은 없다. 성에 대한 호기심이 왕성했던 중학생 때에도 : 또래아이들이 벌거벗은 비너스가 등장하는 도록을 보며 침 닦고 아, 할 때 나는 입 닫고 우, 했다. 초등학생 때부터 에로 영화'를 섭렵했기에 그 나이 때는 이미 성적 권태에 빠진 상태'였다. 그렇다고 내가 죽으면 몸에서 사리가 발견될 정도로 성에 대해 무관심했던 경지에 다다른 것은 아니었다. 그저 " 비너스 " 가 못마땅했을 뿐이다. 신이 내린 완벽한 외모와 몸매를 보며 " 시바, 그래... 네 팔뚝 굵다 " 정도였다. 그러다 보니 신화 속 이야기를 주로 다루는 르네상스 회화'에 대한 감동이 없었다. 하지만 << 모나 리자 >> 는 달랐다. 이 그림이 주는 후광 효과'도 있겠지만,
<< 모나 리자 >> 에는 확실히 기기묘묘한 아우라'가 존재했다. 이 호기심은 당연히 관심으로 이어졌고 리자 부인( 제목 모나 리자'에서 모나는 유부녀를 지시하는 단어이고 리자'는 사람 이름이다 )에 대한 책이나 관련 기사'는 꼬박꼬박 챙겨 읽었다. 내가 이 그림에서 이해하지 못했던 부분은 " 풀어헤친 머리카락 " 에 있었다. 지금이야 엘라스틴 모델처럼 긴 머리카락을 찰랑찰랑거리며 거리를 활보하는 게 매력이지만, 당시만 해도 머리를 묶지 않고 풀어헤친 모습으로 밖을 돌아다니면 게으르거나 행실이 좋지 못한 여자'라고 손가락질을 받고는 했다. 풀어헤친 머리카락은 성적인 것과 관련이 있었다. 그렇기에 머리를 풀어헤친 모습을 볼 수 있는 사람은 가족들 밖에 없었다. 르네상스 시대 그려진 개인 초상화'를 보면 여성 모델들은 모두 머리를 단정히 묶거나 모자'를 썼다.
http://myperu.blog.me/20113231534 : 모나리자는 왜 머리카락을풀어헤쳤나
화가 또한 외간 남자'이니 머리를 풀어헤칠 수는 없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레오나르도 다 빈치'가 그린 << 모나 리자 >> 속 모델은 왜 머리를 묶지 않았을까 ? 이 지점에서 나는 서당 훈장에게 밥 좀 얻어먹은 개 흉내를 내기 시작했다. 다 빈치와 리자 부인은 서로 " 얼레리 꼴레리 " 하는 사이가 아니었을까. 나는 레오나르도 다 빈치를 리자 부인의 은밀한 내연남'으로 설정하고는 혼자 낄낄거렸다. 그런데 이 추론은 지금 생각해 보면 엉터리'에 가깝다. 당시 화가는 계급 서열이 높지 않았다. 그림 의뢰가 들어오면 화가가 그림 의뢰인 집에 가서 그림을 그렸다. 집에 남편이 버젓이 있는 마당에 리자 부인이 화가가 보는 앞에서 머리를 풀어헤친 채 앉아 있었다 ? 납득이 가지 않는 설정이다. 의문점은 그것만이 아니었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는 이 그림을 의뢰인에게 전달하지 않고 죽을 때까지 자신이 보관하고 있었다. 이 의문점을 한방에 해결해 주는 주장이 나왔다. 캐나다 과학자들이 적외선 촬영과 3차원 기법을 동원해 밝혀낸 바에 따르면, 초기 그림은 머리를 풀어헤친 지금의 모습과는 달리 머리를 묶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 부분에서 나는 무릎 탁, 치고 아, 했다. 모든 수수께끼'가 풀리는 대목이었다. 내가 내린 추론은 다음과 같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는 지오콘도 공작이 부인의 초상화를 그려달라는 부탁을 받고 지오콘도 공작 집에 가서 리자 부인 초상화를 그리다가 그만 사랑에 빠진다. 쉽게 말해 짝사랑이 시작된 것이다. 그는 그림 의뢰 약속을 파기한 후 집에 돌아와 머리를 묶었던 초기 그림에서 머리를 풀어헤친 지금의 모습으로 수정한다.
그러니까 이 그림은 다 빈치 혼자서 감상하기 위해 그린 음화'인 셈이다. 그럴듯한 추론이지 않은가 ? 다 빈치는 이 그림을 보며 음란한 상상을 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말입니다 ! 모라 리자'를 둘러싼 온갖 " 설설설 " 은 내가 이 그림에 매혹된 이유를 설명하지 못한다. 내 수수께끼의 핵심은 < 나는 왜 완벽한 비너스보다 불완전한 리자 부인'에게 끌리는가 ? > 에 있다. 예술이 " 미'를 향한 궁극 " 이라면 사람들은 모나 리자'보다 아름다운 비너스'에 끌려야 한다. 곰곰 생각했다. 다시 곰곰 생각했다. 내가 내린 결론은 데칼코마니'였다. 누구나 한 번쯤은 미술 수업 시간에 데칼코마니 수업을 받았을 것이다. 물감을 뿌린 후 도화지를 반으로 접었다 펼치면 완벽한 좌우 대칭이 된다. 이것을 데칼코마니'라고 한다.
비너스나 바비 인형 혹은 일본 애니 속 미녀 그림은 모두 데칼코마니형 미인'이다. 강남 성형 미인'도 전형적인 데칼코마니형 미인상'이다. 강남 성형 미인도의 핵심 기술은 " 짝짝이 " 를 " 짝짜기(캐스터네츠) " 로 만드는 데 있다. 쉽게 말해서 좌우 비대칭인 짝짝이 눈을 성형 기술로 좌우 대칭으로 만든다. 미인의 기준은 비율과 좌우 대칭'에 있다. 하지만 인간 신체는 대부분 좌우 비대칭으로 이루어져 있다. 팔 길이만 해도 그렇다. 오른팔 길이와 왼팔 길이는 서로 다르다. 여자 젖가슴도 마찬가지다. ( 아, 사랑스러운 젖가슴 ) 크기가 조금씩 다르다. 당연히 왼쪽 얼굴과 오른쪽 얼굴도 차이가 난다. 그렇기에 완벽한 대칭을 이루는 비너스, 바비 인형, 성형 미인은 인간적이지 않다.
다 빈치의 < 모나 리자 > 가 < 비너스 > 와 다른 이유는 바로 불완전한 비대칭'에 있다. 잔가시 많은 생선 살을 고르듯이 그림을 꼼꼼하게 뜯어보면 좌우가 비대칭'이라는 점을 발견하게 된다. 결국 우리가 완벽한 비너스보다 불완전한 모나 리자'에게 끌리는 이유는 모나 리자'가 보다 인간적이기 때문에 그렇다. 게오르그 짐멜도 << 얼굴의 미학적 의미 >> 라는 글에서 같은 주장을 한다.
합리주의는 대칭을 추구하는 반면에, 개별성은 언제나 비합리적인 그 무엇을, 즉 미리 결정된는 모든 원칙을 기피하는 그 무엇을 지닌다. 그러므로 얼굴의 양쪽을 대칭으로 표현하는 조각은 일반적이고 전형적인 양식에 의존함으로써 궁극적으로 개별적 차이를 기피한다. 반면에 회화는 얼굴 양쪽의 직접적인 외양을 상이하게 표현하기 때문에 ㅡ 이는 다양한 윤곽의 묘사와 명암의 배치에 의해서 가능하다ㅡ 처음부터 더 개인주의적인 특성을 보여준다.
- 게오르그 짐멜, 얼굴의 미학적 의미 중
짐멜의 말을 적용하자면 비너스는 합리성'를 대표하는 미인이고, 모나 리자'는 비합리성을 대표하는 미인'이다. 이 사실을 내 식대로 말하자면 비너스는 " 짝짜기 " 이고 모나 리자는 " 짝짝이 " 다. 송강호가 장동권보다 매력적인 이유는 바로 비합리성이 주는 개별성(개성)에 있다. 송강호는 얼굴이 좌우 비대칭'이기 때문에 송강호가 카메라 정면을 응시하게 되면 비대칭적 얼굴이 도드라진다. 영화 << 살인의 추억 >> 에서 송강호는 자주 카메라 정면을 응시하게 되는데 그럴 때마다 관객은 이 비대칭 구조로 이루어진 얼굴에 압도당하게 된다. 인간의 시각적 정보는 동일성'보다는 차이'에 각인되기 때문이다. 정상적인 걸음걸이보다 절룩거리는 걸음걸이'가 머릿속에 오랫동안 남는 이유이기도 하다. 차이에 대해 민감하게 반응하는 이유는 야생의 흔적'이다. 사자가 들소 무리를 사냥할 때 제일 먼저 보는 것은 무리 가운데 걸음걸이가 이상한 들소'다.
대한민국이 성형 미인 천국이 된 이유는 바로 맹목적 합리주의를 추구한 결과'이다. 한국 사회'가 강박적 합리주의에 빠졌다는 것은 미국식 자본주의보다 더 자본주의화'되었다는 점을 분명히 한다. 조지 리처가 << 맥도날드, 맥도날드화 >> 에서 지적한 합리주의'는 효율성, 예측가능성, 계산가능성, 통제가능성'이다. 쉽게 말해서 합리주의는 앞으로 일어날 모든 상황에 대한, 예상가능한 모범 답안을 만드려는 욕망이다. 여기에는 과학 중심 주의'가 똬리를 틀고 있다. 합리주의는 전지전능한 힘으로 시스템을 콘트롤할 수 있다고 믿는다. 청기 올리라고 하면 청기를 올릴 수밖에 없는 시스템을 만드는 게 합리주의'다. 만약에 청기 올리라고 했는데 백기 올리는 놈은 예외 상태에 놓이게 된다. 쉽게 말해서 이상한 놈 되기 일쑤'다. 그러한 합리주의적 태도는 노조 파업을 다루는 언론의 자세를 보면 알 수 있다. 노조가 파업을 하면 언론은 앵무새처럼 파업 시 경제손실액을 계산한다. 그들은 파업을 단순히 효율성, 예측가능성, 계산가능성 문제로만 접근하는 것이다. 한국 사회는 미국보다 더 미국적 합리주의에 빠져 있다.
인간 존재는 " 합리적 " 이기보다는 " 비합리적 주체 " 다.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는 속담은 인간이 가지고 있는 불완전성'을 알기 쉽게 설명한다. 그렇기에 불완전한 비합리적 주체'를 규격이 정해진 쇠 틀 안에 가두려고 하면 할수록 반발력이 커질 수밖에 없다. 우리가 맹목적으로 추구하는 합리성'은 우리가 알고 있는 것만큼 훌륭한 가치가 아닐 수도 있다. 송강호의 얼굴을 보면 답이 나온다. 좋은 연기'는 비대칭적 얼굴에서 나온다 ■
- 어원)알나리깔나리 : 아이들이 서로 놀리는 말. '알나리'는 나이가 어리고 키가 작은 사람이 벼슬을 했을 때 농담 삼아 '아이나리'라는 뜻으로 이르던 말이며, '깔나리'는 꼬마나리를 빠르게 덧붙인 말이라고 한다. 얼레리 꼴레리'같은 말은 다 '알나리깔나리'가 변해서 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