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라는 이름의 여자
ㅡ 엽편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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ㅡ 다이안 아버스
내가 사진에 대해 " 관심 " 을 가지기 시작한 때는 시간을 거슬러 도서관에서 우연히 다이안 아버스'라는 여성 사진 작가'를 발견하면서부터였다. 보는 순간, 꽂혔다 ! 이 애틋한 관심'은 롤랑바르트가 << 카메라 루시다 >> 에서 언술한 스투디움'보다는 푼크툼'에 가까운 감정이었다. < 스투디움 > 과 < 푼크툼 > 을 쉽게 풀어서 내 식대로 말하자면 < 스투디움 > 은 "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끌림 " 이고 < 푼크툼 > 은 " 아무나 공감할 수 없는 찌름 " 이다. 스투디움이 집단적 기억을 공유한 자장'이라면 푼크툼은 개인적 기억에 의지한다. 다시 오소리 깻잎 입말사전 스타일로 말하자면 스투디움은 활엽수이고 푼크툼은 침엽수'이다. 프루스트의 << 잃어버린 기억을 찾아서 >> 에서 " 마들렌 과자 " 는 푼크툼에 해당된다.
만약에 소설 속 화자인 마르셀이 마들렌 과자를 먹고 나서 " 마디꾸나 ! " 라는 감탄으로 품평을 끝냈다면 마들렌 과자'는 단순히 스투디움으로 작동했을 텐데, 섬세한 감성을 간직한 마르셀은 단순하게 " 그래, 바로 이 맛이야 ! " 라고 끝내지 않는다. 그는 < 입 > 으로 맛을 보고 < 머리 > 로 잃어버린 기억을 되살린다. 이 기억은 집단적 공유가 아닌 사적 체험에서 비롯된 서사'다. 그러니까 마들렌 과자는 시간 여행을 할 수 있는 기계 장치의 입구'에 해당되는 셈이다. 내게 있어서 다이안 아버스 사진은 < 끌림 > 이 아니라 < 찌름 > 에 해당된다. 그 옛날, 사진에 대해 관심을 가지기 시작하면서 사진을 배울 요량으로 대학로에 위치한 사진 학원을 등록한 적이 있었는데, 이왕 배울 거라면 사진 이론부터 차근차근 제대로 배우자는 마음으로 취업 사진 분과'보다는 입시 사진 분과'에 등록했었다.
당시 이 학원은 스파르르르르르타 식 교육으로 유명해서 기수가 정해져 있었다. 한 기수 높은 사람에게는 나이 불문하고 선배 대우를 해야 했다. 이를 어기면 하극상'으로 간주했다. 학원 복도에서 한 기수 높은 선배를 만나면 유치원생이 하는 배꼽 인사를 해야 했다. " 안냐세여 ~ " 지금 생각해 보면 원장은 참...... 좆같은 꼰대 새끼'였던 것 같다. 돈은 돈대로 내면서 욕은 욕대로 먹었으니 말이다. 이 학원은 매달 첫째 주 월요일에 사진 품평회를 열였다. 누구도 피해갈 수 없는 고욕이었다. 작업한 사진 가운데 마음에 드는 사진 3점을 골라서 작품 제목과 함께 의도를 설명해야 했다. 그리고 필름 종류, 필름 감도, 셔터 속도, 조리개 값, 렌즈 종류 따위를 공개해야 한다. 품평회는 지루하고 따분했다. 사진 대부분은 원숭이가 발로 찍은 작품이었다.
문제는 내가 찍은 사진이 원숭이가 발로 찍은 사진'보다 나을 게 없다는 데 있었다. 나는 내 미적 감각을 신뢰했지만 평소, 사람들에게 " 예술하세요 ? " 라는 소릴 꽤 많이 듣곤 했다. 예술가 행세를 하는 것 같아 민망해서 어정쩡하게 " 예, 술 좀 합니다 ! " 라는 식으로 넘어가고는 했다 이 신뢰'가 모래 위에 지어진 집보다 허술하다는 사실을 여실히 깨닫게 해 준 품평회'였다. 크게 실망했지만 그렇다고 크게 절망하지도 않았다. 왜냐하면 내 실력이나 다른 녀석들 실력이나 모두 대동소이'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유독 두 사람이 내 눈에 거슬렸다. 그들은 " 대동소이 " 라는 표준 군집'으로부터 벗어난 존재였으니 " 군계일학 " 으로 불려도 손색이 없었다. 아니, 군계이학'이라고 표현해야 적확한 표현일 것이다. 내가 질투심을 느낀 사람은 두 사람이었다.
공교롭게도 둘 다 여자'였다. 땅바닥에 떨어진 솔방울 하나를 사진에 담더라도 그들이 찍으면 뭔가 달랐다. 나는 그들이 품평회 때 설명한 필름 종류, 조리개 값, 셔터 속도로 맞춘 후 동일한 장소에서 동일한 피사체를 찍어도 봤지만 결과물은 여전히 원숭이가 발로 찍은 사진보다 나을 게 없었다. 암실에서 필름 현상을 할 때마다 " 닝기미, 조또... 시바 " 라는 소리가 수천 번 입 밖으로 튀어나왔다. 도대체 이 실력 차'가 나는 원인은 뭘까 ? 돌이켜 보면, 내가 흥미를 가진 사진 작가는 대부분 여성 작가'였다. 다이안 아버스, 신디 셔먼, 낸 골딘'이 그들이었다. 그 옛날, 스파르르르르르타 식으로 사진을 가르쳤던 학원 품평회에서도 내가 원숭이가 발로 찍은 사진'이라고 판단했던 사진들은 대부분 남자 학원생들이 찍은 작품이었고,
" 어랏, 이것 봐라 ? " 라며 관심을 보인 사진은 여자 학원생들이 찍은 쪽이 많았다. 물론 개인적인 취향이니 이 글을 읽고 나서 성차별이라며 페니스를 발기할 필요는 없다. 사진에는 남녀 간 시선 차이'가 존재한다. 남자가 찍은 사진에는 피사체에 대한 공감 능력이 떨어지는 반면, 여자가 찍은 사진에는 피사체에 대한 공감 능력이 돋보인다. 이처럼 동일 피사체, 동일 조건에서 사진을 찍는다 해도 사진은 다 다르다. 그 차이를 설명하라고 하면 자신있게 설명할 자신은 없다. 하지만 분별은 가능하다. 얼마 전, 장사가 안 되서 생선 가게'를 접고 유품관리사'로 전향했다. 말이 좋아 유품관리사'이지 풀어 설명하자면 시신 처리반'에서 일한다. 고독사 해서 시체가 썩거나 살인 사건이 일어나 일반인들이 청소를 꺼릴 때,
이 일을 유품관리사'가 맡아서 한다. 시신은 국가에서 처리하지만 시신이 남긴 흔적은 고수란히 내가 해야 할 몫이다. 우리는 이 죽음의 흔적을 " 데쓰 블러 " 라고 불렀다. 어제 특수 청소'를 한 곳은 13평짜리 원룸이었다. 사인은 고독사'였다. 파출소 김 순경에게 연락이 와서 급히 현장으로 달려갔다. 그는 자신의 관할 구역에서 벌어진, 특수 청소가 필요한 사건이 발생하면 제일 먼저 우리에게 연락을 했다. 세상에 공짜는 없다. 우리는 일정 금액을 소개비 면목으로 김 순경에게 지불해야 했다. 시신이 누워 있던 침대는 검게 변색되어 있었다. 데쓰 블러'는 다른 사람에 비해 크기가 작았다. 죽은 사람이 갸날픈 몸매'라는 것을 의미한다. 나는 시신이 남긴 데쓰 블러'를 닦고 유품을 정리하는 과정에서 그녀가 남긴 사진첩을 보게 되었다.
시신뿐만 아니라 유품을 정리하는 것도 유품관리사'가 해야 될 몫이었다. 대부분은 흔히 볼 수 있는 사진이었지만 폴라로이드로 찍은 사진은 은밀한 사진이었다. 사진 속에는 원룸 세입자로 보이는 20대 여성이 벌거벗은 채 방 안에서 혼자 웃고 있었다. 침대에는 사랑을 나눈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침대 시트는 흐트러져 있었고 여기저기 속옷이 녈려 있었다. 그 시트 위에 벌거벗은 몸으로 환하게 웃고 있는 여성 또한 흐트러진 시트처럼 머리카락이 헝크러져 있었다. 대번에 그 사진을 찍은 사람이 여성'이라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그 사진 속에는 찍힌 대상에 대한 공감과 연민이 뒤섞여 있었다. 나는 사진을 찍은 여성과 찍힌 여성이 서로 연인 사이'가 아닐까 라는 생각을 했다. 작업 관례상 옷은 대부분 소각되지만 사진은 유족에게 건내주는 게 일반적이었다.
하지만 나는 사진첩을 유족에게 인계하지 않기로 했다. 유족이 원하는 것은 사진이나 일기 따위가 아니라 돈이 될 만한 금붙이'였다. 힘든 하루였다. 집에 오자마자 깊은 잠에 빠졌다. 꿈속에서 나는 작명소를 운영하고 있었다. 한 여인이 근심에 가득 찬 모습으로 나타났다. 어디서 많이 본 얼굴이었지만 딱히 선명하게 떠오르는 얼굴이 없어서 이내 포기했다. 여자는 새로운 삶을 살기 위해서 개명하고 싶다고 했다. 내가 성(姓)이 어떻게 되냐고 물었더니 여성은 오 씨'라고 했다. 나는 그녀에게 " 오후 " 라는 이름을 제안했다. " 성이 오'이고, 이름이 후'입니다. 오후라고 급히 말하지 마시고 오와 후 사이에 쉼표를 넣어서 발음해 보십시오. 후, 라고 할 때에는 말랑말랑해진 풍선껌을 불듯이 말입니다. "
여성은 나를 쳐다보며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농담인지 진담인지 잘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었지만, 내가 진지한 표정으로 바라보자 여자는 이내 숨을 얕게 들이마셨다가 작게 속삭였다. " 오.... 후. 오, 후...... " 그녀는 후를 발음할 때 날숨을 쉬었다.
꿈에서 깼다. 오후라는 이름, 꽤 근사하다고 느껴졌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