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라는 이름의 여자


 

 

ㅡ 엽편소설

 

 

 

ㅡ 다이안 아버스


내가 사진에 대해 " 관심 " 을 가지기 시작한 때는 시간을 거슬러 도서관에서 우연히 다이안 아버스'라는 여성 사진 작가'를 발견하면서부터였다. 보는 순간, 꽂혔다 ! 이 애틋한 관심'은 롤랑바르트가 << 카메라 루시다 >> 에서 언술한 스투디움'보다는 푼크툼'에 가까운 감정이었다. < 스투디움 > 과 < 푼크툼 > 을 쉽게 풀어서 내 식대로 말하자면 < 스투디움 > 은 "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끌림 " 이고 < 푼크툼 > 은 " 아무나 공감할 수 없는 찌름 " 이다. 스투디움이 집단적 기억을 공유한 자장'이라면 푼크툼은 개인적 기억에 의지한다. 다시 오소리 깻잎 입말사전 스타일로 말하자면 스투디움은 활엽수이고 푼크툼은 침엽수'이다. 프루스트의 << 잃어버린 기억을 찾아서 >> 에서 " 마들렌 과자 " 는 푼크툼에 해당된다. 

만약에 소설 속 화자인 마르셀이 마들렌 과자를 먹고 나서 " 마디꾸나 ! " 라는 감탄으로 품평을 끝냈다면 마들렌 과자'는 단순히 스투디움으로 작동했을 텐데, 섬세한 감성을 간직한 마르셀은 단순하게 " 그래, 바로 이 맛이야 ! " 라고 끝내지 않는다. 그는 < 입 > 으로 맛을 보고 < 머리 > 로 잃어버린 기억을 되살린다. 이 기억은 집단적 공유가 아닌 사적 체험에서 비롯된 서사'다. 그러니까 마들렌 과자는 시간 여행을 할 수 있는 기계 장치의 입구'에 해당되는 셈이다. 내게 있어서 다이안 아버스 사진은 < 끌림 > 이 아니라 < 찌름 > 에 해당된다. 그 옛날, 사진에 대해 관심을 가지기 시작하면서 사진을 배울 요량으로 대학로에 위치한 사진 학원을 등록한 적이 있었는데,  이왕 배울 거라면 사진 이론부터 차근차근 제대로 배우자는 마음으로 취업 사진 분과'보다는 입시 사진 분과'에 등록했었다. 

당시 이 학원은 스파르르르르르타 식 교육으로 유명해서 기수가 정해져 있었다. 한 기수 높은 사람에게는 나이 불문하고 선배 대우를 해야 했다. 이를 어기면 하극상'으로 간주했다. 학원 복도에서 한 기수 높은 선배를 만나면 유치원생이 하는 배꼽 인사를 해야 했다. " 안냐세여 ~ " 지금 생각해 보면 원장은 참...... 좆같은 꼰대 새끼'였던 것 같다. 돈은 돈대로 내면서 욕은 욕대로 먹었으니 말이다.  이 학원은 매달 첫째 주 월요일에 사진 품평회를 열였다. 누구도 피해갈 수 없는 고욕이었다. 작업한 사진 가운데 마음에 드는 사진 3점을 골라서 작품 제목과 함께 의도를 설명해야 했다. 그리고 필름 종류, 필름 감도, 셔터 속도, 조리개 값, 렌즈 종류 따위를 공개해야 한다. 품평회는 지루하고 따분했다. 사진 대부분은 원숭이가 발로 찍은 작품이었다. 

문제는 내가 찍은 사진이 원숭이가 발로 찍은 사진'보다 나을 게 없다는 데 있었다. 나는 내 미적 감각을 신뢰했지만     평소, 사람들에게 " 예술하세요 ? " 라는 소릴 꽤 많이 듣곤 했다. 예술가 행세를 하는 것 같아 민망해서 어정쩡하게 " 예, 술 좀 합니다 ! " 라는 식으로 넘어가고는 했다          이 신뢰'가 모래 위에 지어진 집보다 허술하다는 사실을 여실히 깨닫게 해 준 품평회'였다. 크게 실망했지만 그렇다고 크게 절망하지도 않았다. 왜냐하면 내 실력이나 다른 녀석들 실력이나 모두 대동소이'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유독 두 사람이 내 눈에 거슬렸다. 그들은 " 대동소이 " 라는 표준 군집'으로부터 벗어난 존재였으니 " 군계일학 " 으로 불려도 손색이 없었다. 아니, 군계이학'이라고 표현해야 적확한 표현일 것이다. 내가 질투심을 느낀 사람은 두 사람이었다.

공교롭게도 둘 다 여자'였다. 땅바닥에 떨어진 솔방울 하나를 사진에 담더라도 그들이 찍으면 뭔가 달랐다. 나는 그들이 품평회 때 설명한 필름 종류, 조리개 값, 셔터 속도로 맞춘 후 동일한 장소에서 동일한 피사체를 찍어도 봤지만 결과물은 여전히 원숭이가 발로 찍은 사진보다 나을 게 없었다. 암실에서 필름 현상을 할 때마다 " 닝기미, 조또... 시바 " 라는 소리가 수천 번 입 밖으로 튀어나왔다. 도대체 이 실력 차'가 나는 원인은 뭘까 ? 돌이켜 보면, 내가 흥미를 가진 사진 작가는 대부분 여성 작가'였다. 다이안 아버스, 신디 셔먼, 낸 골딘'이 그들이었다. 그 옛날, 스파르르르르르타 식으로 사진을 가르쳤던 학원 품평회에서도 내가 원숭이가 발로 찍은 사진'이라고 판단했던 사진들은 대부분 남자 학원생들이 찍은 작품이었고,

" 어랏, 이것 봐라 ? " 라며 관심을 보인 사진은 여자 학원생들이 찍은 쪽이 많았다. 물론 개인적인 취향이니 이 글을 읽고 나서 성차별이라며 페니스를 발기할 필요는 없다. 사진에는 남녀 간 시선 차이'가 존재한다. 남자가 찍은 사진에는 피사체에 대한 공감 능력이 떨어지는 반면, 여자가 찍은 사진에는 피사체에 대한 공감 능력이 돋보인다. 이처럼 동일 피사체, 동일 조건에서 사진을 찍는다 해도 사진은 다 다르다. 그 차이를 설명하라고 하면 자신있게 설명할 자신은 없다. 하지만 분별은 가능하다. 얼마 전, 장사가 안 되서 생선 가게'를 접고 유품관리사'로 전향했다. 말이 좋아 유품관리사'이지 풀어 설명하자면 시신 처리반'에서 일한다. 고독사 해서 시체가 썩거나 살인 사건이 일어나 일반인들이 청소를 꺼릴 때, 

이 일을 유품관리사'가 맡아서 한다. 시신은 국가에서 처리하지만 시신이 남긴 흔적은 고수란히 내가 해야 할 몫이다. 우리는 이 죽음의 흔적을 " 데쓰 블러 " 라고 불렀다. 어제 특수 청소'를 한 곳은 13평짜리 원룸이었다. 사인은 고독사'였다. 파출소 김 순경에게 연락이 와서 급히 현장으로 달려갔다. 그는 자신의 관할 구역에서 벌어진, 특수 청소가 필요한 사건이 발생하면 제일 먼저 우리에게 연락을 했다. 세상에 공짜는 없다. 우리는 일정 금액을 소개비 면목으로 김 순경에게 지불해야 했다. 시신이 누워 있던 침대는 검게 변색되어 있었다. 데쓰 블러'는 다른 사람에 비해 크기가 작았다. 죽은 사람이 갸날픈 몸매'라는 것을 의미한다. 나는 시신이 남긴 데쓰 블러'를 닦고 유품을 정리하는 과정에서 그녀가 남긴 사진첩을 보게 되었다.

시신뿐만 아니라 유품을 정리하는 것도 유품관리사'가 해야 될 몫이었다. 대부분은 흔히 볼 수 있는 사진이었지만 폴라로이드로 찍은 사진은 은밀한 사진이었다. 사진 속에는 원룸 세입자로 보이는 20대 여성이 벌거벗은 채 방 안에서 혼자 웃고 있었다. 침대에는 사랑을 나눈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침대 시트는 흐트러져 있었고 여기저기 속옷이 녈려 있었다. 그 시트 위에 벌거벗은 몸으로 환하게 웃고 있는 여성 또한 흐트러진 시트처럼 머리카락이 헝크러져 있었다. 대번에 그 사진을 찍은 사람이 여성'이라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그 사진 속에는 찍힌 대상에 대한 공감과 연민이 뒤섞여 있었다. 나는 사진을 찍은 여성과 찍힌 여성이 서로 연인 사이'가 아닐까 라는 생각을 했다. 작업 관례상 옷은 대부분 소각되지만 사진은 유족에게 건내주는 게 일반적이었다.

하지만 나는 사진첩을 유족에게 인계하지 않기로 했다. 유족이 원하는 것은 사진이나 일기 따위가 아니라 돈이 될 만한 금붙이'였다. 힘든 하루였다. 집에 오자마자 깊은 잠에 빠졌다. 꿈속에서 나는 작명소를 운영하고 있었다. 한 여인이 근심에 가득 찬 모습으로 나타났다. 어디서 많이 본 얼굴이었지만 딱히 선명하게 떠오르는 얼굴이 없어서 이내 포기했다. 여자는 새로운 삶을 살기 위해서 개명하고 싶다고 했다. 내가 성(姓)이 어떻게 되냐고 물었더니 여성은 오 씨'라고 했다. 나는 그녀에게 " 오후 " 라는 이름을 제안했다. " 성이 오'이고, 이름이 후'입니다. 오후라고 급히 말하지 마시고 오와 후 사이에 쉼표를 넣어서 발음해 보십시오. 후, 라고 할 때에는 말랑말랑해진 풍선껌을 불듯이 말입니다. "

여성은 나를 쳐다보며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농담인지 진담인지 잘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었지만, 내가 진지한 표정으로 바라보자 여자는 이내 숨을 얕게 들이마셨다가 작게 속삭였다. " 오.... 후. 오, 후...... " 그녀는 후를 발음할 때 날숨을 쉬었다.

꿈에서 깼다. 오후라는 이름, 꽤 근사하다고 느껴졌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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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3-20 11:0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03-21 05:27   URL
비밀 댓글입니다.

stella.K 2015-03-20 13: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니, 이 얼마만이십니까? 왜 그동안 안 나타나셨습니까? ㅎ
좆같은 꼰대 새끼`ㅋㅋㅋㅋㅋㅋ

어쩐지 예전에 보았던 쎌카가 예사롭지 않다고 생각했어요.
전 그림 잘 그리는 사람 보다 사진 잘 찍는 사람이 부럽더라구요.
그런데 전 내가 내 사진 보는 게 어색해서 사진 찍는 거 아주 싫어합니다.
사람들은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하는데 입니다.ㅠ

유품관리사 일을 하시는군요.
그 일 쉽지 않을텐데 이 일을 하시는 특별한 이유라도 있나요?
예전에 시나리오 학원 다닐 때 같은 반 남자 아이 하나가 크리너가 나오는 스릴러물을
쓰고 있다면서 얘기해 주는데 시나리오 내용은 생각 안 나고 그런 직업도 있었구나
새삼 신기해 했던 기억이 납니다.ㅎ


곰곰생각하는발 2015-03-21 05:30   좋아요 0 | URL
뭐. 저도 좀 바쁜 척을해야 사람들궁굼해하지 않겠습니까 ?

하튼... 그 학원 원장 새끼는 정말 좆같은 꼰대 새끼`였어요.
학원이 꽤 큰 사진학원이었는데 돈 벌려고 혈안이 되었던 녀석이었습니다.
사진과 지망하는 학생들 포트폴리오 대신 작성하고 돈 받고 그랬죠. 뭐
사실 그때 ( 지금은 모르겠으나 ) 사진과 지망생들 포트폴리오는 거의 다 학원 선생들이 작성하고는 했죠.

청소를 시작하니 마음이 편합니다.
청소가 제 천직인 것 같아요. 만족스러운 삶입니다.
 
[블루레이] 괴물 - 할인행사
봉준호 감독, 송강호 외 출연 / KD미디어(케이디미디어) / 2008년 12월
평점 :
품절


 

 

 



 

 

 


 

 

 

 

 


어수선 52호



어마어마한 암컷


  

좁고 긴 공간을 병적으로 좋아해요. < 플란다스의 개 >에서 임상수 감독님이 직접 출연하셨던 화장실 장면의 경우, 폭이 좁고 긴 화장실을 찾아내라고 스태프들을 못살게 군 적도 있었어요. 왜 그런지는 저도 잘 모르겠어요. 프로이트 책에 보면 좁고 긴 공간을 선호하는 것은 성적인 욕구불만 때문이라는데, 그렇지는 않은 것 같아요.

 

- 이동진의 부메랑 인터뷰, 봉준호

 

 


최동훈 영화의 장점은 생생한 입말에 있다. << 범죄의 재구성 >> 과 << 타짜 >> 를 거치면서 배우들이 영화 속에다 쏟아내는 오고가는 말풍선은 밑바닥 현장음처럼 생생해서 대사를 " 보는 맛 " 이 있다. 영화 << 도둑들 >> 에서도 예외는 아니다. 국제 범죄 사기단'에서 한 미모를 담당하는 예니콜 전지현은 새로 합류한 팹시 김혜수'를 보며 라이벌 의식'을 느낀다. 씹던껌 김해숙이 " 우아 " 한 김혜수의 변치 않는 미모를 칭찬하자 전지현은 " 부아 " 가 치밀어서 이렇게 말한다. " 어~마어마한 쌍년 같은데 ? " 하지만 관객은 " 어마어마한 쌍년 " 이라는 부정'이 질투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여기서 프로이트의 명제를 끌어오자면 강한 부정은 곧 강한 긍정을 의미하는 법. 예니콜 전지현은 팹시 김혜수가 이 팀을 이끌어 갈 여왕벌'이 될 거라는 사실을 본능적으로 안다. 이 바닥, 다 감으로 통한다. 느낌 아니까.

내가 봉준호의 << 괴물 >> 을 이야기하면서 말머리를 최동훈 감독이 연출한 << 도둑들 >> 로 시작해서 염치가 없긴 하다만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 괴물 >> 속 이름 없는 괴물'이야말로 " 어~마어마한 암컷 " 이기 때문이다. 물건은 물건을 알아보는 법. 이상하게 생긴 괴물이 영화 초반부터 몸통을 드러낸 채 등장해서 한강 둔치를 아수라장으로 만들자 나는 속으로 외쳤다. " 어~마어마한 쌍년 같은데 ? " 이 거친 육담은 내 나름대로의 특급 칭찬이었다. 봉준호 감독은 괴수 영화 장르'가 흔히 사용하는 진부한 코드 진행을 전복한다. 감질나게 캄캄한 밤에 꼬리를 살짝 보여주는 장면으로 시작해서 끄트머리에 가서 몸통 전체를 보여주는 게 지금까지의 괴수 영화 장르가 가지고 있는 뻔한 코드 진행 방식이었는 데 반해, 봉준호는 처음부터 백주 대낮에 몸통을 보여주고 시작한다. 이러한 장치는 따분한 것은 못 견디는 관객을 위한 배려가 아니라 장르 관습에 젖은 게으른 관객 뒤통수를 치기 위한 전략으로 보인다.  

 

이 영화는 영화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이 괴물이 주인공인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영화 속 주인공은 괴물이 아니다. 괴물은 개성 강한 신 스틸러(SCENE STEALER)에 지나지 않는다. 그것은 괴수 영화 장르'가 가지고 있는 피할 수 없는 운명과도 같다.  괴물은 친구의 로맨스를 위해서 골목길에서 불량하게 껌을 씹으며 여자 앞에서 호기를 부리다가 친구에게 얻어터지는 역할을 담당하는 불량배와 같다. 봉준호 감독은 모험, 액션, 스릴러, 블랙 코미디, SF, 판타지 같은 온갖 장르를 끌어당겨서 한국인이 좋아하는 가족 드라마'를 만들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이 영화는 눈물샘을 자극해서 관객 호주머니를 노리는 통속 가족 이데올로기'보다는 정치적 함의를 내포한 풍자극 성격이 짙다는 점에서 가족 드라마'이기는 하지만 동시에 가족 드라마'와는 어느 정도 거리감을 둔 영화에 가깝다. 굳이 정의를 하자면 이 영화는 < 가족 ㅡ 드라마 > 보다는 차라리 < 식구ㅡ드라마 > 에 가깝다.

 

" 가족 " 이 수직적 서열을 강조하는 피라미드형 가계도'라면 " 식구 " 는 수평적 관계'를 지향한다. < 가족 家族 > 이 같은 핏줄에 의해서만 가족 구성원이 될 자격이 부여되는 구성체'라면, < 식구 食口 > 는 한집에 같이 살면서 끼니를 같이 하는 사람'이라는 사전적 의미'가 말해주듯이 식구는 같은 핏줄이 아니더라도 함께 살면서 밥을 나눠 먹으면 자격 조건을 갖출 수 있다는 측면에서 가족은 " 피 " 에 방점을 찍고 식구는 " 밥 " 에 방점을 찍는다. 그렇기에 < 식구 > 는 < 가족 > 이라는 단어보다 타자에 대해 친화적이며 개방적이다. 봉준호 영화는 대부분 주인공이 타자의 보호자 역할을 맡는다. << 플란다스의 개 >> 에서는 현남(배두나 분)이 독거노인을 병원에 입원시키면서 보호자가 되고, << 살인의 추억 >> 에서도 박두만 형사(송강호 분)는 고아인 용구(김뢰하 분)의 수술동의서에 보호자로 기재된다.

 

<< 괴물 >> 에서 강두(송강호 분)가 고아인 사내아이의 보호자'가 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봉준호 감독은 그 사실을 분명히 한다. 손녀이자 딸이며 조카인 13살 현서를 괴물로부터 되찾기 위해 뭉친 가족'이 하루 종일 한강 철교를 수색한 후 일터인 한강 매점에 모여 잠시 허기진 끼니'를 때우는 판타지 장면'이 등장하는데 이때 홀연히 현서가 나타나 아무렇지도 않은 듯 함께 밥을 먹는다. 이때 가족은 아무 말 없이 현서의 끼니를 챙긴다. 아빠는 삶은 달걀을 현서 입에 넣어주고, 할아버지도 만두를 집어서 현서에게 말없이 건낸다.

 

 

 

 

 

또한 삼촌도 자신이 먹던 천하장사 소세지'를 현서 입에 넣어주고 그 옆에 있던 고모는 물을 건낸다. 여기에는 조건이 없다. 그들은 끼니를 나눌 뿐이다. 이 판타지 장면은 감독이 말하고 싶은 모든 주제를 함축하고 있다. 재미있는 사실은 현서가 판타지'라는 공간을 빌려서 식구 틈에 끼어서 그들과 함께 먹는 음식'이 현서가 굶주린 사내아이'에게 먹고 싶은 음식을 물었을 때 아이가 대답했던 목록들이라는 점이다 (아이는 바나나 우유, 천하장사 소세지, 삶은 계란, 핫도그, 메추리알, 통닭, 컵라면 따위'를 상상한다). 그렇기에 이 판타지 장면은 현서와 가족이 꾸는 판타지가 아니라 굶주린 사내아이의 판타지에 가깝다. 현서와 세주(사내아이)의 대화에서 현서가 매점을 한다고 말하자 세주가 " 와, 그럼 누나는 맨날맨날 (컵라면) 먹겠네. " 라고 부러운 듯이 말한다.  


이에 현서는 " 원래 짱깨집 애들이 짜장면 더 안 먹어. " 라고 대꾸하는 장면이 나온다. 이 말은 곧 현서가 매점 음식을 좋아하지 않는다는 점을 나타낸다. 이 판타지는 세주의 욕망이 현서에게 전이된 현상으로, 현서를 지우고 그 자리에 세주'가 놓이게 될 것이란 사실을 은연 중에 암시'한 대목이다. 봉준호 감독은 가족의 의미'보다는 식구의 의미'를 묻는다. 하지만 이 영화는 가족 드라마'라는 단순한 얼개'에 얽매이지 않는다. 보다 복잡하고 섬세하며 깊고 풍부하다. 영화 << 괴물 >> 은 " 이빨 달린 질 " 이라는 뜻을 지닌 < 바기나 덴타타 > 신화를 적극 끌여들여서 무시무시한 초법적 어머니로서의 여성성'을 탐구한다. 봉준호 감독이 인터뷰에서도 밝혔듯이 좁고 긴 공간을 병적으로 집착하는 원인도 초법적 모성'에 대한 두려움이 반영된 무의식이다.

 

봉준호가 << 설국 열차 >> 를 영화화를 결심한 이유도 이와 무관하지는 않을 것이다. 폭주하는 기차는 여성 성기 내부를 닮았다. 더군다나 열차의 리더'는 여성이 아니었던가 ? 영화 << 괴물 >> 에서 괴물의 신체 부위 가운데 유독 입'을 강조한 비주얼도 여성 성기'를 연상케 한다. 영화 말미'에 송강호가 괴물이 삼킨 딸을 빼낼 때 보여주는 입속 생김새는 완벽하게 여성 질'을 닮았다.

 

ㅡ 괴물과의 사투에서 강두(송강호 분)는 괴물이 삼킨 어린 딸의 팔을 잡고 입속에서 빼낸다. 이때 괴물의 입속은 여성 성기를 닮았다


그렇기에 현서가 괴물 몸 밖으로 빠져나오는 장면은 마치 출산 장면처럼 묘사된다. 현서는 자궁으로부터 분리된다. 이를 뒷받침하는 은유가 바로 한강 철교 다리'이다. 괴물이 새끼 여성 성기 괴물이라면 한강 철교 다리 내부는 어미 여성 성기 괴물'이다. 이 영화의 진정한 주인공은 바로 철교 다리 내부이다. 이름 없는 괴물이 다리와 다리 사이에 숨는다는 점 ( 혹은 다리 속에 은신처가 있다는 점 ) 은 철교 다리'가 거대한 자궁'이라는 은유로 읽힐 수 있다. 과잉 해석이라는 비난을 무릅쓰고라도 다리( bridge ) 를 다리 ( leg )로 해석하면 재미있다. 이러한 " 바꿔치기(치환) " 는 명백한 의도를 숨기기 위한 위장'에 해당된다. 봉준호 감독이 << 괴물 >> 후속작으로 << 마더 >> 를 연출했다는 점은 그 사실을 분명히 한다. << 괴물 >> 과 << 마더 >> 는 모두 어긋난 여성성을 가지고 있다는 측면에서 일맥상통하는 구석이 있다. 프로이트는 아이가 가지는 거세 공포증이 아버지의 권위에서 비롯되었다고 주장하지만

 

공포 영화를 꼼꼼하게 살펴보면 공포 주체'는 남성성보다는 무시무시한 자궁'에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분명한 것은 자궁은 공포의 주체가 될 수 있지만 페니스는 공포의 주체가 될 수 없다는 점이다. 어느 누가 우람한 페니스를 보며 공포에 떠는가 ! 누누이 하는 소리지만 << 엑소시스트 >> , << 캐리 >>, << 에이리언 시리즈 >> 따위는 기괴한 자궁과 관련이 있다. << 엑소시스트 >> 는 산모와 태아가 분리되지 않으려는 " 코라 " 상태를 다루고 << 캐리 >> 또한 같은 맥락으로 이해할 수 있다. 그리고 에이리언 시리즈에서 가장 두려운 존재는 퀸-에이리언'이다. 덧대어 드라큘라 또한 기괴한 자궁과 관련이 깊다. 드라큘라가 주로 물어뜯는 목 neck이 자궁경부 (neck of the uterus) 를 의미한다는 점에서 흡혈귀가 흡혈을 할 때 쫙 벌린 입은 " 바기나 덴타타 " 다.

 

영화 << 괴물 >> 에서 괴물이 " 살아 숨쉬는 유기체적 기괴한 자궁 " 이라면 철교 다리 내부는 " 내부가 텅빈 공간空間으로써 " 작동한다. 이 영화는 온갖 장르를 끌여들여서 다양한 메시지를 섞지만 신기하게도 겉도는 느낌이 없다. 그것은 전적으로 봉준호'라는 감독이 가지고 있는 탁월한 조율 감각 때문이다. 이 세상 모든 감독들이 흥행성과 작품성이 모두 충족되기를 바라지만 흥행성과 작품성 모두를 성공적으로 다룬다는 것은 결코 쉽지 않다. 더군다나 엄청난 제작비가 투입된 오락 영화에서는 더더욱 그렇다. 하지만 봉준호는 보란듯이 성공했다. 송강호는 딸을 잃은 대신 아들을 얻는다. 다시 말해서 가족을 잃는 대신 식구를 얻었다. 한 핏줄에서 태어난 가족은 아니지만 한집에서 끼니를 함께 나눈다는 점에서 그들은 이제 식구'다.


 

 

 

이 영화는 모성에 의탁하지 않은 채    영화 속에서 강두 아버지와 강두 모두 부인이 없다       식구라는 대안 가족'으로 확장했다는 점에서 정치적 급진성을 확보한, 기똥차게 잘 만든 좌파 오락 영화'다 ■ 


 





+


송강호는 이래저래 < 밥 > 과 인연이 깊은 배우이다. " 먹방 " 연기의 달인은 하정우가 아니라 송강호'다. 그는 << 살인의 추억 >> 과 << 변호인 >> 에서도 " 밥의 철학 " 에 대해 말한다. 밥은 먹고 다니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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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galmA 2015-03-12 18: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봉준호의 가족-식구 분석 곰곰발님의 독특한 해석 재밌습니다. 허나 저는 생각이 다릅니다. 봉준호의 모든 영화에서 반 서구열강 의식의 투영, 배제를 통한 결과 도출이, 큰 틀에서는 제 식구, 제 가족 챙기기 대결구도라고 보니까요. 대안가족은 항상 소외된 자들끼리만 만들어지죠. 대안가족을 긍정성으로 보시는 분도 있겠지만 제겐 그래서 봉준호 영화에 화해를 읽을 수는 없더군요. 물론 모두가 행복한 평화~ 극적으로든, 현실적으로든 재미없는 영화가 될 수도 있겠죠; 또한 모든 극은 갈등의 소산이며 그 해소는 창작자의 자유일테고, 봉준호의 좌파적 정치 자유, 권력에 대한 투쟁...부정할만 한 것은 아니지만 관객으로서 봉준호의 그런 도식과 인식에 저는 질려가고 있습니다..

매번 쓰신 글의 주 논점을 살짝 비껴 이야기를 풀어내는 것 같아 죄송스럽긴 합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5-03-12 18:06   좋아요 0 | URL
뭐 영화를 해석하고 받아들이는 것은 엄연히 수용자의 몫이니 생각이 다르다고 비판할 생각은 없습니다.
5000만 한국인이 모두 < 괴물 > 을 칭찬한다면 그것은 프로파간다 영화`가 되겠죠. 호불호가 갈린다는 것은 의외로 그 영화가 건강하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닐까 싶습니다. 하지만 봉준호의 모든 영화에서 반서구열강 의식이 투영된다는 점에는 동의할 수가 없군요. 반서구열광의식이라기보다는 쩨쩨한 수컷에 대한 비판으로 읽혀집니다. < 마더 > 에서도 미제국주의자에 대한 신랄한 비판 정신으로 보시는 것은 아니시겠죠 ? ㅎㅎㅎ < 살인의 추억 > 도 미 제국주의에 대한 비판보다는 자기 새끼 제대로 지키지 못하는 대한민국 찌질한 수컷에 대한 반성으로 읽힙니다.

AgalmA 2015-03-12 18: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모든은 역시 조심히 써야해요...플란다스의 개, 살인의 추억, 마더...뺄 게 더 많네요ㅎ 봉준호씨에게 제게 기대만큼 쌓인 게 많았나 봅니다;

수다맨 2015-03-14 04: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살인의 추억˝이 자기 새끼 제대로 지키지 못하는 찌질에 대한 수컷이란 해석이 재밌네요.
예전에 곰곰발님 쓰신 글이 생각나는데, 형사들(김상경, 송강호)이 미국에서 유전자 검사 결과만 목 빠지게 기다리죠. 여기서 곰곰발님이 미국은 아버지, 즉 대타자라고 정의하고 나머지 사람들은 아버지의 윤허(?!)만을 기다리는 무력한 아들에 다름 아니라고 쓰셨던 게 인상 깊었습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5-03-14 06:45   좋아요 0 | URL
네, 기억하시는군요. 미제국주의에 대한 비판이라기보다는 안에서는 큰소리 치면서 밖에서 나가면 굽신거리는 못난 아비 ? 찌질한 수컷에 대한 분노 같은 게 느껴집니다. < 괴물 > 도 보면 국가`라는 찌질한 아버지는 백성`이라는 자식(변희봉 가족)을 돌보지 않잖아요. 그저 미국이라는 거대 남근 앞에서 굽신거리는 찌질한 아버지`죠. 결국은 사회적 약자들이 뭉쳐서 가족을 지키기 위한 사투를 벌이죠.. 뭐.. 그런 내용아닐까 싶습니다.
 

 

 

 

 

 

 

개그콘서트 ㅣ 서툰 사람들

 

 

 

 

 

 

 

 

보그병신체'라는 쎈 말이 유령처럼 떠돌던 때가 있었다(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니 과거완료형'은 정확한 진단은 아닌 것 같다). 패션 잡지 << 보그 >> 에서 주로 사용하는 문체에서 유래했다. 영어 단어를 소리나는 대로 적고 그 옆에 조사'만 붙인 꼴로 반은 한글이고 반은 외래어'로 구성된 독특한 문장을 말한다. 대가리와 몸통은 앵글로색슨 하드 바디인데 엉덩이에는 몽고반점이 있는 반인반수라고 할까 ? 한글이 소리 문자'라고는 하지만 " 무심한 듯 시크하게 " 웃고 넘기기엔 모양새가 좋지 않다. 특정 소수가 보그병신체를 쓰는 이유는 간단하다. 있어 보이려고 하는 " 과시욕 " 때문이다. 사실 오래 전부터 대한민국 상류 계급은 천한 것들이 사용하는 언문과 구별 짓기 위해 그들만의 언어'가 발달했다. 지금이야 미국이 한국의 " 빅 브라더 " 이니 영어를 숭배했지만,

중국이 한국의 " 따거 " 였을 때는 한자가 상류 계급에서 통용되는 언어'였다. 물고기 이름'을 봐도 그 흔적을 찾을 수 있다. 생김새가 이상한 물고기는 대부분 한글 이름이 주어지고 잘빠진 물고기 이름에는 한자어'가 사용되었다.  숭어, 민어, 전어와 같이 " ㅡ 魚 " 로 끝나는 물고기는 대부분 몸매가 유선형이고 비닐이 있는 반면,  정상적인 범주를 벗어나 이상하게 생긴 물고기는 " ㅡ 魚 " 라는 감투를 주지 않으려는 경향이 있었다. 아귀, 가오리, 갈치 따위가 좋은 예'이다. 그것들은 길거나 짧거나 납작하거나 뭉툭하거나 뾰족하거나 크거나 비늘이 없다. 옛 조상에게는 미안한 소리이지만 보그 병신체 이전에 한자 병신체'도 있었다. 솔직히 숭어, 민어, 전어'처럼 밋밋한 어감'보다는 아귀, 가오리, 쏨뱅이 같은 단어가 주는 어감이 입체적이고 개성 있어서 듣는 순간 확 와 닿는다.

비록 그 물고기를 본 적 없다고 해도 어감이 주는 낌새를 보면 대충 모양새가 그려지지 않은가 ? 보그 병신체'로 시작된 패션 과시욕은 분야를 넓혀서 온갖 " ~ 병신체 " 로 확산되었다. 그렇다면 " ○○○ 병신체 " 가 시작된 지점이 왜 하필 " 패션 " 분야 쪽에서 발생했을까 ? 옛부터 하류층과 상류층을 구별하는 손쉬운 방법은 " 패션 " 이었다. 양반 계급은 양반이 입는 옷을 입어야 하고 상놈 계급은 상놈이 입는 옷을 입어야 한다. 굳이 " 내가 양반이오 ! " 라고 외치지 않아도 옷 모양새'로 계급을 알 수 있었다. 조선 시대'에만 있던 풍속이 아니라 전세계 공통이다. 고원 지대에 살고 있는 페루 사람들은 치요'라는 모자를 통해 온갖 정보를 얻을 수 있다. 모자 생김새와 색깔을 통해 계급은 물론이고 직업과 결혼 유무까지 알 수 있다.

이처럼 옷차림은 신분을 분명하게 드러내는 기호'였다. 근대화를 거쳐 현대 사회에서 신분 제도'가 사라졌다고 해도 " 패션 " 이 가지고 있는 구별짓기ㅡ욕망'을 흔적 없이 지울 수는 없다. 인간은 패션'을 통해서 끊임없이 계급적 차이'를 만들기 위해 노력을 한다. 그렇게 해서 탄생한 것이 유행이요, 명품이다. 그러다 보니 < 보그 > 와 < 병신체 > 가 만나는 것은 견우와 직녀가 칠월칠석에 만날 수밖에 없는 운명과도 같은 것이 아니었을까 ? 강남 남자가 강남 여자를 만났으니 이상할 것 없다. < 인문병신체 > 도 < 보그병신체 > 와 다를 것 없다. 보그병신체'가 옷으로 상대와 구별짓기'를 시도한다면, 인문병신체는 자신이 알고 있는 지식 나열을 통해 상대와 구별짓기를 시도한다. 지금은 폐간되었지만 한때 전설로 떠돌았던 키노 문체는 인문학적 과잉'이 도달하는 그럴싸한 경지를 보여준다.

" 영화란 미적으로 분절화된 텍스트를 감독 특유의 들뢰즈적 미장센의 미학과 정치학적 사유를 통해 담은... "  뭔 소리인지는 도통 모르겠지만 대충 그럴싸하게 들린다. 그런데 이런 문투는 어렵지 않게 구사할 수 있다. 이런 식이다. " 영화란 동적 유기체로 통일화한 텍스트를 감독 특유의 마르크스적 사유를 통한 변증법적 논증을 통해 담은.... "  10초 만에 작성한 문장이다. 타자 실력이 뛰어났다면 3초 만에 작성했을 것이다. 이러한 보그병신체와 인문병신체'는 다수와 소통하기 위한 글쓰기'가 아니라 소수만을 위한 소통 방식으로 자신을 대중과 분리하려는 과시욕'에서 비롯된 현상이다. 요즘 내가 눈여겨보는 것은 < 푸드병신체 > 다. 이제는 잡지에서 " 쿠킹 클래스 가든 아카데미에서 스터디한 슈거 크래프트 머핀을 만들어 보자 ! " 따위 문장을 쉽게 접할 수 있다. 쉽게 말해서 달걀 과자를 만들자, 라는 소리다. 개그콘서트 코너 중 하나인 << 서툰 사람들 >> 이라는 코너는 푸드병신체가 만들어 놓은 의사 소통 단절을 다룬다.

손님이 " 탄두리 치킨 " 을 주문했는데 음식점 종업원이 " 단 둘이 치킨 " 으로 잘못 알아듣거나 " 어니얼링 " 달라고 주문했는데 " 어느 언니 찾으시냐고 " 되묻는 식'이다. << 서툰 사람들 >> 은 매 코너'를 한글로 소리나는 대로 적은 서양 요리 이름 가지고 언어 유희 개그'를 펼친다. 이명박 대통령 각하 님의 부인이시고 여사이시며 한때 0부인이었던 김윤옥 씨'가 한식세계화를 천명한 후 " 푸드 문화 " 는 문화 생활 곳곳에 스며들었다. 지역 농산물이라고 하면 될 것을 굳이 " 로컬 푸드 " 라고 하거나 요리사'란 이름 대신 쉐프'라는 이름이 자연스러운 것으로 보아 푸드병신체'도 일상적으로 쓰이는 용어'가 되었다. 이제는 고급 음식점에서 " 쉐프 " 에게 " 요리사 " 라고 했다가는 따귀를 맞을지도 모른다.

<< 서툰 사람들 >> 은 큰 웃음을 주지는 않지만 일상 생활 속에 스며든 허영과 과시 문화'를 비판한다는 점에서 영리한 코너'다. 보그병신체, 인문병신체, 푸드병신체'가 가지고 있는 공통점은 " 과시욕 " 이다. 이러한 문투를 사용하는 사람은 계급어'를 통해 상대와 구별 짓기'를 시도한다. 말귀를 알아들으면 동료애를 느끼고 말귀를 못 알아듣고 반문하면 서툰 사람'이 된다. 복장 문화'가 계급을 나타내는 쪽으로 진화했듯이 음식 문화'도 계급을 드러낸다. " 음식에 대한 선호도는 교육 수준과 출신 계급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1  일일 노동자'는 짜장면에 대해 말할 수는 있지만 푸아그라(foie gras)에 대해 말할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 말이다. 테이블 매너'가 상류 계급 사회에서 시작되었다는 점은 음식과 계급의 문제를 잘 보여준다.


푸드병신체'를 비난할 생각은 없으나 짜장면을 먹고 있는 사람에게 푸아그라에 대해 말하는 자세는 비난받아야 한다. 그것은 기아 상태에 빠진 아프리카 난민에게 비만은 몸에 좋지 않아요, 라고 말하는 것과 비슷하니 말이다. " 푸아그라 " 하니 느닷없이 야시엘 푸이그'가 생각난다. 봄이다, 야구가 시작되는 계절'이다. 토요일 주말 야구 중계 보면서 짜장면을 먹는 재미도 쏠쏠하다. 푸아그라 요리에 대해 할 말이 없어서 야구 보면서 짜장면 먹는 풍경으로 끝내는 것을 보면 나는 하층민이다, 시바 ■  

 









 

  1. 부르디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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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립간 2015-03-11 10: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립간 병신체 ; 1) 3개 정도의 외국어는 해야 한다. 2) 악기 3개 정도는 다뤄야 한다. 3) 스포츠 종목도 3개 정도는 해야 한다. 4) 유클리드 <원론>, 사서삼경, 플라톤의 <국가> ... 등을 읽었다. 5) 상대성 이론, 불확성성의 원리, 불완전성의 정리, 엔트로피 등의 내용을 안다. 6) 1년 독서가 50권 정도는 되어야 한다.

마립간 완전 병신체 ; 4)의 책들 중 원서로 읽은 것이 있어야 한다. 6) 1년 독서가 100권은 되어야 한다. 그리고 그중 시집이 포함되어 있어야 한다. 7) 각 책들은 3번씩 독서를 했다. * 1)~6)를 가난함에도 할 수 있다.

(1)의 전제 조건에 모국어를 잘할 것. 한국인은 한국어에)

저는 bourgeois를 꿈꿀 것입니다.^^

마립간 2015-03-11 10:57   좋아요 0 | URL
의복병신체, 음식병신체, 주택병신체, 자동차병신체, 해외경험병신체 ... 이것들은 돈이 너무 크게 작용하잖아요. 하수들.

곰곰생각하는발 2015-03-11 11:15   좋아요 0 | URL
마립간 님, ㅋㅋㅋㅋㅋㅋ 숫자 3에 강박이 있으시군요 ? ㅋㅋㅋㅋㅋ
저는 1개 국어라도 잘하자-주의자`여서 항상 외국어에 약합니다.
누가 저보고 쁘디부르주아`라고 비판한 적이 있었는데
처음에는 그게 더럽게 기분 나쁘더라고요.
그런데 하층민이 되고나서 괜히 화냈다 싶습니다. 이젠 저도 쁘띠부르주아가 희망입니다.

마립간 2015-03-11 11:38   좋아요 0 | URL
마립간 병신체는 인문학 병신체의 한 종류라고 볼 수 있는데, 3가지에 집착하는 이유는 3개씩이 겉치장 하기는 힘들기 때문이죠. 병신체의 강조점이 내용 없는 겉치장에 있다고 생각하니까요. 한 개든 여러 개든, 제대로 한다면 `병신체`의 꼬리표를 떼어줄 수 있지 않을까요?

상류층이나 하층민이냐는 저의 관심 밖입니다. * 조건이 붙어있는 이유이기도 하죠.

2015-03-11 11:0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03-11 11:1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03-11 11:2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03-11 11:3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03-11 11:34   URL
비밀 댓글입니다.
 

 

 

 

홍시보다 곶감 

사람들은 글 잘 쓰는 사람을 부러워한다. 머릿속에서는 온갖 화려한 스펙타클이 난무하지만 막상 그것을 꺼내 글( 혹은 말 )로 표현하려고 하면 아무것도 생각이 나지 않는다. 검은 도화지에다 검정 크레파스로 그림을 그리는 꼴이니 그림이 나올 리 없다. 더군다나 요즘은 SNS 같은 " 개인 글쓰기 소통 창구 " 가 있으니 더욱 글쓰기에 대한 갈망을 느낀다. 그럴 때 찾는 책이 << 문장 강화 훈련 >> 이나 << 글쓰기 교본 >> 따위'다. 물론 그들이 글쓰기 요령을 배워서 " 문학 " 을 하겠다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 문학적인 (유려한) 글 " 을 쓰고 싶다는 욕망은 가지고 있다. 가계부를 쓰기 위해서 글쓰기 요령을 배우는 이는 없지 않은가 ? " 시발, 갑자기 눈물이 났엉. ㅠㅠ " 라는 표현보다는 " 한겨울에 언 수도가 봄볕에 녹아 느닷없이 녹물을 쏟아내듯, 눈물이 터졌다. " 가 더 근사하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는 없다.

나도 작문 실력을 향상시키기 위해 << 문장 강화 훈련 >> 이나 << 글쓰기 교본 >> 따위 책을 꽤 많이 읽었다. 읽을 때마다 무릎 탁, 치며 아, 했다. 읽을 때는 내 작문 실력이 귀여니 소설에서 김훈 소설로 " 점프 컷 " 되리라는 달콤한 상상을 하며 읽었다. 책을 읽고 나서 실력이 향상되었는지 알 수 있는 가장 빠른 방법은 읽은 책에 대한 독후감을 그 자리에서 바로 써보는 것이다. 그런데 웬걸 ?!  실력이 " 점프 컷 " 하기는커녕 문장을 " 전부 cut " 해야 하는 상황에 이르렀다. 시발, 갑자기 눈물이 났엉. ㅠㅠ  좀 묵혔다가 세월이 흘러야 제대로 된 실력이 나올까 ?  그럴 가능성도 없었다. 책을 덮고 나면 3초 후에 내용을 잊어버리는 닭대가리형 인간이었으니 먼 훗날을 기약하는 것은 언감생심이었다.

툭 터놓고 말해서 나에게 글쓰기 관련 책은 글쓰기 향상에 도움이 되지 않았다. 결론은 귀에 박히도록 듣던 말이 진리'였다. " 많이 읽고, 많이 쓰고, 많이 생각하라 ! " 작문 실력 향상을 위한 길라잡이 책 한 권 읽었다고 몸에 축적될 리 없다. 그래도 작문 실력을 최대한 빠른 시간 안에 향상시키고 싶다면 글쓰기 교본'보다는 시집'을 읽는 게 도움이 된다. 만약에 글쓰기 교본이 작문 실력을 1% 향상시킨다면 시집은 실력을 10~ 20% 향상시킬 수 있다. 내 실력이 늘었다는 소리가 아니라 글쓰기 향상을 위해서는 글쓰기 교본보다는 시집 읽기가 효과가 좋다는 소리다. 산문이 원석이라면 운문은 보석'이다. 시는 원석'에 지나지 않는 돌덩어리를 깎고 깎고 깎고 깎은 후에 얻게 되는 작은 결정체'다.  

누누이 하는 말이지만 : 시는 한 페이지를 채 채우지 못한 짧은 분량이지만 그 과정을 보면 쓰고, 찢고, 쓰고, 찢는 과정을 반복한 후 얻게 되는 결정체'다. 이 과정에서 쓸데없는 형용사, 부사, 접속사, 조사 따위는 모두 제거된다. 껍데기는 가고 알맹이만 남은 것이요, 단감이 가을 내내 말라서 곶감이 되는 과정'이다. 부피는 줄어들었지만 단맛은 오히려 강하다. 시를 읽는 것보다 더 좋은 글쓰기 수업은 없다. 점심밥 한 끼 아껴서 시집 한 권 사서 읽으면 당신의 작문 실력은 향상될 수 있다. 속담에 " 잘 싸우는 장수에게는 내버릴 병사가 없고, 글 잘 쓰는 사람에게는 내버릴 글자가 없다 " 는 말이 있다. 구구절절 옳은 소리'이다. 수전 손택이나 황현산 산문을 읽으면 그들이 얼마나 많은 글자를 깎고 오랜 시간 가을 볕에 말렸는지를 알 수 있다.

홍시는 맛있다. 하지만 문장은 홍시처럼 물렁물렁한 맛이 나면 안 된다. 문장은 곶감처럼 쫀득쫀득해야 제맛이다. 홍시보다는 아, 곶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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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15-03-09 18: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시바, .갑자기 눈물이 났엉. ㅋㅋㅋㅋㅋㅋ
격하게 동감합니다!!!
저는 사춘기 때 시를 잠시 좋아하다가 시가 뭐가 좋지...?
뭐 그러고 살았습니다. 시가 아니어도 내가 읽고 싶은 책이 워낙에 많은지라.
그런데 최근 김경주의 `내가 가장 아름다울 때...` 어쩌고 하는 희곡집을 읽으면서
시를 읽어야겠구나 하는 생각이 다시 들더군요.
그책은 여러모로 저한테 힘이 됐죠.ㅎ

곰곰생각하는발 2015-03-09 19:15   좋아요 0 | URL
가끔 진심이 중요하지 기교는 필요없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는데
왜 그런 소릴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사람은 문학을 읽을 때 당연히 문학이 기교 면에서 훌륭하기 때문입니다.
하여튼....

스텔라 님이 그토록 극찬하시니 내가 가장 아름다울 때 함 읽어봐야겠네요..
요즘은 도서정가제가 되어서 직접 서점 가는 날이 많아졌습니다.

2015-03-10 19:3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03-11 04:24   URL
비밀 댓글입니다.

비로그인 2015-03-09 18: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시발, 넘 웃겨서 눈물이 났엉 ㅜㅜ
재밌는 글 잘 읽었습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5-03-09 19:13   좋아요 0 | URL
저는 재미있으면 장땡 ㅡ 주의자`여서 재미있으시다니
다행입니다.

수다맨 2015-03-09 19: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독(多讀), 다작(多作), 다상량(多商量)이라는 게 참 말은 쉬운데 막상 행하기는 어려운 원칙이 아닐까 싶습니다!

언젠가 한겨레에서 김훈의 작업실을 영상으로 취재한 적이 있는데, 막상 그의 집 서재에는 문학책이 별로 없더라구요. 그보다는 수기에 가까운 기록문이나 동서양 고전, 기계나 기술에 관련된 서적들이 굉장히 많았던 것이 생각납니다. 그러고 보니 김훈은 다양한 서적을 읽으면서 거기에서 문장 쓰는 동력을 얻는 것 같더라구요. 이런 자세는 참 배울 점이 많다고 느꼈습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5-03-11 04:23   좋아요 0 | URL
다독은 가능한데 다작 다살양 이거 누가 합니까.. 작가 아니고서는...
가장 좋은 방법이 읽기를 꾸준히 쓰는 건데 이것도 쉬운 게 아닙니다.
김훈은 주로 사전을 가지고 있죠. 사실 글 쓸 때 가장 자주 찾는 게 사전이죠. 사전 보면 장르가 참 많아요.
국어 사전만 해도 유의어 사전도 있고 반의어 사전도 있고... 하여튼 여러 개여서 깜작 놀란 적도 있습니다.

iforte 2015-03-09 20: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을 덮고 나면 3초 후에 내용을 잊어버리는 닭대가리형 인간이었으니˝ 대목에 이르러 ˝ 시발, 갑자기 눈물이 났엉. ㅠㅠ ˝에 급 감정이입했으요. ㅋ

곰발님 글도 이미 곶감이라는요.

곰곰생각하는발 2015-03-11 04:21   좋아요 0 | URL
고맙습니다. 곶감이라니....
제가 곶감을 상당히 좋아합니다. 요거 쫀쫀하게 잘 말려야지 맛있지. 그냥 흐물흐물 말리면 맛이 없어요.
요즘 나온 곶감은 다 흐물흐물합니다. 그럴 때는 곶감을 다시 볕에 말려서 먹으면...

아. 혹시 미국에도 곶감 이런 거 있나요 ? 포도나 체리 말리는 거 보면 감도 말릴 것 같은 데 말이죠..

iforte 2015-03-13 13:57   좋아요 0 | URL
ㅎㅎ 네. 곶감 있어요. 국내에서 수입되는건 다 있어요. 요새는 농협, 수협 제품들도 들어오더라고요. 가격이 비싸서 못사먹지요. ㅠㅠ
한국 사람 먹거리로치면 한국이 천국이죠. 어흑.. 갑자기 서러워지네요. 먹고픈것들이 줄지어 생각나고 말이죠. :)

곰곰생각하는발 2015-03-14 06:53   좋아요 0 | URL
하긴 과일 말리는 것은 전세계 공통일 겁니다. 생선 절임도 세계 공통이잖아요. 옛날에는 냉장고가 없었으니 한철에 잔뜩 출하되는 먹거리를 좀더오래 먹기 위해 온갖 아이디어를 냈을 겁니다. 곶감도결국은 좀더 오래 저장해서 먹을려고 해서 나온 게 곶감이잖아요. 같은이유로 김치 같은 채소 절임`도 전세계 공통입니다. 김치가 한국만의 위대한 유산이라고 생각하는데 사실 채소절임은 전세계 문화의 공통점 음식 저장 방식이죠. 김치가 틀별히 위대한 문화라는 건 아니라는 말입니다. 김치 문화는 너무 위대한 것으로 호들갑 떠는 것도 좀 그래요.. ㅎㅎㅎ. 김치도 넓게 보면단순한 채소절임인데 말입니다.

yamoo 2015-03-09 23: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시발, 갑자기 눈물이 났엉. ㅠㅠ <- 전 이런 글을 쓸 수밖에 없습니다. 왜냐, 시를 싫어하거든요~ 너무나 이상한 시들을 많이 봐서 그런가...그래서 그런지 제 글은 대체로 ˝시발, 갑자기 눈물이 났엉. ㅠㅠ ˝라는 데서 벗어 날 수가 없습니다..시를 읽어야 문장을 잘 쓴다니, `시발, 갑자기 눈물이 날라고 그러넹~ㅠㅠ`라고 표현할 수밖에 없습니다. 시를 읽기도 싫고 앞으로 읽을 계획도 없으니...그럴수밖에요~ 에휴~

덧.
근데, 전 왤케 시발, 갑자기 눈물이 났엉. ㅠㅠ 라는 표현에 꽂히죠...이런 문장이 시적 표현 아닌감요?? 흠...닭이 더 뭐라 말하겠습니까만은..^^;;

곰곰생각하는발 2015-03-11 04:19   좋아요 0 | URL
ㅎㅎㅎㅎ.... 체질적으로 맞지 않으셔서 그렇습니다. 사실 저도 문학과는 거리가 먼 체질입니다. 저도 주로 문학보다는 인문사회학 쪽으로 읽으니 말이죠. 그리고 문학 작품을 읽는다고 해도 전 주로 추리소설을 읽습니다.
인문학 서적 때문에 골치 아픈데 굳이 소설마저 골치 아프게 생각할 필요가 없어서요.
하지만 개인적으로 시집을 읽으면서 시인이 가지고 있는 독특한 표현에 감탄한 적은 있습니다.

cyrus 2015-03-09 23: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글을 잘 쓰고 싶은 사람들이 흔한 착각이 다독, 다작, 다상량은 열심히 하는데 퇴고를 제대로 안 하는 겁니다. 저도 예전에 삼다 원칙만 믿고 글 잘 쓰려고 노력한 적이 있어서 뼈아픈 교훈을 얻었어요. 잘 쓴 글이라 믿었는데 저보다 글 잘 쓰는 사람한테 지적을 많이 받으면서 퇴고의 중요성을 알게 되었어요. 글을 쓰는 과정에 꽤 많은 에너지를 소모하면 퇴고하는 과정이 귀찮게 여겨져요. 글을 다 쓰고 나면 자신 스스로 만족하게 생각해요. 그런데 그런 착각이 망신의 지름길이 되더라고요. 저도 실제로 망신을 당해봤고, 글 쓰기 좋아하는 주변 사람들의 경험을 옆에서 많이 봐서 퇴고의 중요성을 잊지 않습니다.

사실 퇴고가 귀찮기보다는 타인의 지적으로 인해 퇴고를 하게 될까봐 두려워하는 경향이 강해요. 잘 썼다고 믿었던 글인데 타인이 그 글의 부족한 점을 제대로 짚어내면 자존심 상하니까요. 제가 2년 전에 모 일간지 대학생 칼럼을 선정하는 페이스북 페이지의 멘토가 되어서 대학생들이 올리는 글을 첨삭하는 일을 한 적이 있어요. 멘토가 첨삭하라고 권하는 댓글이 없으면 학생들은 자신의 글을 스스로 고치치 않더군요. 일부 학생들은 제가 퇴고해야 할 사항을 댓글로 남기면 수긍하기는커녕 반박하기도 합니다. 글 잘 쓰고 싶은데 결과물이 신통치 않으니 열등감만 생기고, 타인이 자신의 글을 자꾸 지적하니까 짜증이 날 법하죠. 그들의 심정은 이해할 수 있어요. 한때 저도 그랬으니까요. 그런데 자존심을 버리고 퇴고를 해야만 글의 원석을 갈고 깎아 화려한 보석으로 만들 수 있어요. 저는 퇴고도 창작의 과정이라고 생각해요.

곰곰생각하는발 2015-03-11 04:17   좋아요 0 | URL
그럼요. 그럼요. 좋은 책은 반드시 좋은 편집자가 있기 마련입니다. 문학도 영화와 같아서 결국은 편집의 묘미 아니겠습니까. 퇴고 과정이 무지 중요하지요.

제가 말한 다독, 다작, 다상량은 기본이 되어야 한다는 말이지 3다`가 곧 글솜씨를 말할 수는 없죠. 그런 식이라면 독서왕이 가장 문장력이 뛰어나야 하는데 그렇지는 않잖아요. ㅎㅎㅎ. 결국 기술적 보완이 필요한 부분이 글쓰기 같습니다.

2015-03-10 19: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좋은 시집 좀 추천해주십사... 책을 많이 읽지 않은 사람도 읽을 수 있는 쉬운 어휘로 이뤄진 시집이면 더욱 감사하겠습니다. 이런 저런 시집을 많이 사봤는데 소화할 수 있는 시집은 좀처럼 없더라구요.

어떻게 생각하실지 모르겠으나, ˝나쁜 소년이 서있다˝ 정도의 문장이면 저도 읽고 이해를 하겠는데... 김경주시집은 말할 필요도 없고, 웬만한 시집은 다 어렵더라구요.

김사인 선생님인가? 가만히 좋아하는 이것도 괜찮더라구요. 아무튼 이정도 수준의 어휘로 읽을 수 있는 시집 좀 추천 부탁드립니다.

p.s. 가재민가? 하는 시로 유명하신 분 있잖습니까? 저는 그 시집도 어렵더라구요. 박태준인가?? 아무튼 저한테 그 시집도 어려웠습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5-03-11 04:15   좋아요 0 | URL
가재미 추천하려고 했는데 느닷없이 가재미가 나와서 당황했습니다. 제가 뭐 시를 알겠습니까. 의미를 파악하려 하지 말고 그냥 이해 못해도 계속 읽다 보면 뭐 얻어가는 게 있지 않겠씁니깡.
함민복 시집이나 윤희상 시인 시집 추천합니다. 쉽습니다. 류근의 상처적 체질도 웃고 넘길 수 있어요.


윤희상 시집이 좋겠네요. << 이미 서로 알고 있었던 것처럼 >> 추천 ! 요것 읽어보시고 나중에 덧글 좀 달아주십셔..

2015-03-11 17:59   좋아요 0 | 수정 | 삭제 | URL
윤희상 시집을 초큼^^* 읽고 왔는데요. 저한테는 좀 버겁다는 느낌였습니다.... 좀 더 솔직히 말하자면 너무 힘이 들어간 느낌이랄까? 물론, 제가 시를 이해하는 능력이 극히 떨어지는 관계로 그렇게 느꼈을 공산이 크다 생각합니다. <생각날때마다울었다> 는 시를 처음 접했을 때는 이게 무슨 소리야?? 싶었는데, 신형철씨란 분의 해석을 듣고 나니 ˝와, 이건 냬 얘기잖아˝싶어 몇 번이고 반복해서 찾았던 기억이 있거든요.

p.s. 문정희씨 (응)이란 시집이 전시되어 있어서 잠시 들춰 봤는데, 저는 이 분 시가 더 와 닿는 느낌였습니다. 다루는 이야기는 저랑은 별 상관이 없어 보였으나, 뭔가 시원시원한 느낌였습니다. 맛깔나는 표현들이 심심찮게 보였는데, 이 게 또 별 힘들이지 않고 쓴 듯한 느낌이라 그게 참 좋더라구요.


곰곰생각하는발 2015-03-11 21:13   좋아요 0 | URL
어, 이 시집 시집치고는 무척 쉬운 시집입니다. 이 시가 좀 독특한데 이야기하듯 쓰여 있어서 이해하는 데 별 무리는 없을 겁니다. 그냥 자기 이야기를 풀어놓는 듯한 이야기 시`라고나 할까요.
시라는 분야가 당연히 어렵죠. 형이상학입니다.

생각날 때마다 울었다`가 흠 님 이야기로군요. 흠....
이 시는 참 좋죠. 근데 시집 자체는 그닥 확 와닿지는 않더군요. 하여튼 자기에게 와 닿는 게 무조건좋은 시입니다.

문정희 시인 시`가 여장부같은 맛이 나죠. 그럼 문정희 시인 시로 시작해 보세요.
 
[VCD] 남극일기
대경DVD / 2005년 9월
평점 :
품절


 

 

 

 

 


 

 

 

 

 

 

남극일기 : 집으로 가는 길


 

 

분리 불안 장애'는 일상 생활에서 쉽게 볼 수 있다. 아이가 유치원에 가지 않기 위해 떼를 쓰며 울거나 주인이 외출을 하면 불안해서 짖거나 주변 물건을 물어뜯는 개도 분리에 따른 불안 심리 상태다.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건강한 사람'도 성장 과정에서 애착 대상( 주로 엄마)과 떨어지게 되면 심리적으로 불안을 느끼게 된다.  만약에 세 살짜리 아이'가 엄마와 헤어질 때 기뻐서 발광한다면 오히려 그 아이 행동이 이상 심리 증후'가 아닌지 의심을 해야 한다. 영화 << 엑소시스트 >> 는  겉으로는 " 엑소시즘 " 을 전면에 내세우지만 그 심리적 밑바닥은 " 분리 불안 공포 " 이다. 다시 말해서 소재는 " 엑소시즘 " 이지만 주제는 " 분리 불안 장애 " 라는 말이다. 12살 소녀 리건은 첫 생리'를 시작하면서 귀신 들린 연기'에 몰입한다.

귀신 들린 연기'를 밑바닥 깊숙히 자리잡은 심리를 숨기기 위한 모방, 흉내, 시늉이라고 한다면, < 첫ㅡ생리 > 시점과 < 신경증 > 은 깊은 관계가 있다.  생리는 난자가 배란이 되어 임신이 가능한 가임기 여성ㅡ몸'이 되었다는 현상이므로 육아를 담당하는 어머니 입장에서 보면 육아 기간이 끝났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제 리건도 어머니와 동일한 가임기 여성'이다.  리건의 신경증은 바로 어머니의 육아'로부터 독립해야 한다는 부담감에서 시작된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그녀는 이제 " baby " 가 아니라 " girl " 이다. 이때부터 리건은 극단적인 분리 불안 장애'를 겪는다. 그녀는 자기 몸이 가임기 여성'이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하기 위해 " 퇴행ㅡ모방 " 을 한다.  제일 먼저 선보인 퇴행 모방은 어른들이 다 모인 자리에서 보란듯이 그들 앞에서 오줌을 싸는 일'이다.

그 다음은 끊임없이 먹은 것을 입 밖으로 게운다. 먹은 것을 채 삭이지 못하고 입 밖으로 내놓는다는 점을 과시해서 자신이 " 유아식 " 에 의존해야 하는 아기'라는 점을 분명히 한다. 분리 불안 공포'를 좀더 과도하게 " 점프 컷 " 을 하자면 리건은 만삭인 어머니 뱃속에 있는 태아 상태'다. 어머니는 자궁 밖으로 다 큰 아이를 밀어내려고 하고, 아이는 자궁에서 벗어나지 않기 위해 저항하는 순간이다. 반면, 영화 << 캐리 >> 는 << 엑소시스트 >>  와는 정반대'이다. 이 영화에서 분리 불안 장애'를 겪는 사람은 딸이 아니라 어머니'다. 캐리 또한 리건처럼 (나이에 비해 늦은) 첫-생리를 시작하는 것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캐리는 처음에는 생리 혈'을 받아들이지 못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그 사실을 받아들인다. 캐리는 이제 어머니로부터 분리'를 희망한다.

 

영화 << 엑소시스트 >> 와 << 캐리 >> 가 어머니와 딸의 관계를 다루었다면, 영화 << 사이코 >> 는 어머니와 아들 사이에 형성된 " 케미 " 를 다룬다. 노먼 베이츠는 망상을 통해 어머니의 죽음을 유예시켜서 어머니와의 분리'를 지연시킨다. 어머니는 이미 오래 전에 죽은 몸이지만 그는 이 사실을 부정한 채 살아 있는 존재'로 인식한다. 어머니는 화면 밖 목소리'로만 존재한다. 이 영화에서 눈여겨보아야 할 점은 " 식욕 " 에 대한 강박'이다. 미라처럼 비쩍 마른 노먼 베이츠는 어머니의 목소리를 빌려 행실이 좋지 못한 여자를 " 더러운 식욕 " 이라고 비난하거나, 거실에 장식된 박제된 새를 이야기하면서 " 새는 엄청나게 먹어대거든요. " 라고 비난한다. 재미있는 사실은 살해된 여성의 이름이 " 마리온 크래인 " 이라는 사실'이다. crane'은 학'이라는 뜻이다.

결국 그가 마리온 크레인'에게 쏟아낸 새에 대한 비난은 고스란히 그녀를 향한 비난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미라와 박제가 속이 텅빈 기표하는 점에서 그는 어머니 육체와는 정반대에 속하는 엄청나게 먹어대는 풍만한 육체를 비난함으로써 어머니에게 지지'를 호소한다. 그는 자신의 이상형이 풍만한 여성이 아니라 미라나 박제처럼 바짝 마른 여성'이라는 점을 분명히 하는 행위'다. 노먼 베이츠는 항상 엄마에게 칭찬받기를 원하는 " 인정 욕구 " 에 시달리는 미성숙한 아이'이다. 그는 행실이 좋지 못한 암컷을 제거한 후 흔적을 없애기 위해 그녀를 자동차와 함께 늪에 빠뜨리는데, 늪은 끈적끈적하고, 질척거리며 시커멓다는 의미에서 아브젝션의 모태'라 할 수 있는 거대하며 기괴한 자궁'에 대한 은유로 작동한다.


 

 

 

 

영화 << 남극 일기, 2005 >> 는 탐험대 대원 유지태(민재 역) 가 크레바스(눈에 덮여 보이지 않는 빙하지대의 갈라진 틈)에 떨어져 추락할 위험에 빠지지만 대원들의 도움으로 가까스로 위기를 모면하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위 화면을 자세히 보면 여성 음부를 닮았다는 점을 깨닫게 된다. 크레바스'가 여성 음부 이미지'를 차용한다는 점 그리고 균열로 인해 빙하 표면에 생긴 갈라진 틈'이라는 점에서 탐험대를 위협하는 " 크레바스 ㅡ 공포 "는 줄리아 크리스테바'가 여성성'을 설명하면서 끌어들인 " 아브젝션 " 개념과 유사하다. 이 개념이 " 밀려남과 밀어냄을 동시에 포함하는 단어이며 쪼개지고 갈라지고 분열된다는 의미1 " 를 나타나기에 < 크레바스 ㅡ 공간 > 은 아브젝션의 성소인 < 코라 ㅡ 공간 > 과 동일하다. 갈라진 틈'은 집어삼키는 기괴한 자궁'이자 모태'인 장소이다. 

프로이트'는 < 언캐니 unheimlich > 개념을 설명하면서 " 낯선, 기괴한, 이상한 " 이라는 뜻으로 사용되는 unheimlich'의 언어 구조에 대해 관심을 보였는데, 그는 접두사 < un- > 을 < heimlich > 를 억압한 증거로 보았다. 그러니까 낯선 대상은 사실 한때 친숙한 것의 변형이라는 말이다. 좋은 예가 < 언캐니 밸리 효과 > 이다. " 로보트학자인 모리 마사히로 씨가 발표한 이론으로 인형, 만화 캐릭터, 그림, 로보트과 같은 인공체들이 인간을 닮아갈수록 호감은 상승하지만 인간과의 유사점이 어떤 특정한 정도를 넘어서면 호감도가 급격하게 추락하는 현상을 말한다. ( 네이버 지식백과에서 인용) 프로이트는 heimlich : 집과 같은, 친숙한' 에서 < heim > 이 " 집 " 이란 사실에 주목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노이로제 환자들은 여자의 성기가 그들에게는 왠지 이상하게 두려운 것으로 느껴진다고 종종 호소하곤 한다. 그러나 이때의 두려운 낯설음의 감정은 여자의 성기가 인간이 태어난 옛 고향heimlich을, 다시 말해 우리 모두가 태초에 한번은 머물렀던 장소를 상기시키기 때문에 생긴다. 흔히 우스개 소리로 우리는 < 사랑은 향수병 heimweb > 이라고 말하지 않은가. 어떤 이가 잠을 자면서 꿈속에서조차 < 여기는 내가 잘 아는 곳인데, 언젠가 한번 여기에 살았던 적이 있었는데>라며 장소나 풍경에 대해 생각을 할 때 이 꿈에 나타나는 공간이나 풍경은 여인의 성기나 어머니의 품으로 대치해서 해석을 할 수 있다. 두려운 낯설음의 감정은 따라서 이 경우에도 집das heimische인 것이다. 그것은 아주 오래된 것이지만 친근한 것이고, 친근한 것이지만 아주 오래된 것이다. unheimlich(두려운 낯설음)의 접두사 un은 이 경우 억압의 표식이 될 것이다.

 

- 프로이트, Das Unheimlich(1919) 열린책들 < 창조적 작가와 몽상 > 중

 

 

그렇기에 << 남극 일기 >> 에서 말하는 " 도달불능점 " 이라는 장소는 아주 오래된 것이지만 친근한 것이고, 친근한 것이지만 아주 오래된 집(모태)이며, 친숙한 장소이지만 기억에서 잊혀진 낯선 장소이며, 지도에는 있지만 지도 없이는 결코 도달할 수 없는 " 생명의 근원 " 인 자궁에 대한 은유라 할 수 있다. 

내용은 간단하다. 송강호(최도형 역)를 탐험 대장으로 한 남극 탐험대 6인은 도달불능점'이라는 곳을 정복하기 위해 모험을 시작한다. 이곳은 6개월은 낮만 계속되고 6개월은 밤만 계속되는 곳'으로 지형적 특성을 보여줄 만한 높이의 고저가 없다. 그저 새하얀 평원이 끝없이 펼쳐질 뿐이다. 그들이 정복하고자 하는 곳은 가장 높은 정상이 아니라 가장 먼 평원의 한 점이다. 그곳은 남위 82도 8분, 동경 54도 58분에 위치한 곳으로 지도에는 있지만 지도 없이는(나침판 없이는) 절대로 발견할 수 없는 곳이다. 이곳은 계곡도 없고 골짜기도 없고 나무도 없고 꽃도 없고 호수도 없다는 점에서, 또한 영하 80도에 달하는 혹한 때문에 바이러스가 살지 못한다는 점에서 끝없는, 끝없는, 끝없는, 끝없는, 끝없는, 끝없는 우주를 연상케 한다. 

 

 

이들은 탐험 과정에서 하나 둘 실종되거나 사고로 죽는다. 하지만 불가능한 조건에도 불구하고 탐험대장 송강호는 직진 본능을 버리지 못한다. 그는 15층 아파트에서 떨어져 죽은 아들에 대한 죄책감으로 인해 환영에 시달리다 미쳐간다. 그는 왜 지도에는 있지만 지도 없이는 갈 수 없는 한 점'에 집착하는 것일까 ?  어쩌면 탐험 대장 최도형이 보이는 집착은 돌이킬 수 없는 후회가 만든 퇴행인지도 모른다. 노먼 베이츠가 어머니에게서 분리되는 것에 대한 공포를 가지고 있다면 탐험대장 최도형'은 도달불능점이라는 코라( 모태와 태아가 분리되지 않은 영역)에 도달하기 위해 강한 집착을 보인다는 측면에서 둘 다 동일한 심인'이 작동한 결과'다 ■


 





 

  1. 줄리아 크리스타바의 경계선의 철학, 고갑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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