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의 아토포스
진은영 지음 / 그린비 / 201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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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찬 앞에서 굶주림을 논하기


옛날에는 동전을 닦았다면 요즘은 책을 닦는다. 말 그대로 책 겉표지를 닦고 있다. 6월에 이사 예정이어서 시간 날 때마다 미리 조금씩 조금씩 책장을 정리할 필요가 있었다. 처음에는 강력 세제에 물을 타 마른 수건으로 묻힌 다음 표지를 닦았는데 부작용이 발생했다. 그러니까, 음, 그거시, 뭐냐, 흠흠, 그러니까, 음, 그거시, 뭐냐, 거시기, 흠흠 ...... 책'에서 피가 나는 것이 아닌가 ? 한겨레 출판사에서 출간된 홍세화의 << 빨간신호등 >> 이란 책을 온힘을 다해 박박 닦고 있는 데 갑자기 빨간 피가 묻어나기 시작했다. 얼룩이려니 생각하고 더욱 힘차게 닦았는데 오히려 더 번지는 것이었다. 책이, 상처입은 것일까. 알고 보니 강력 세제의 세척력이 강해서 빨갛게 인쇄된 글자가 녹아서 번진 것이었다.

 

실수를 반면교사 삼아서 여러 세정액으로 실험한 결과(빨래비누,샴푸,린스,클렌징폼,비누 따위), 책을 닦는 데 가장 적합한 세제'는 빨래비누'였다. 특히 거품이 많아서 책을 닦는 맛이 탁월했다. 머리를 감을 때 거품이 많아야 머리를 감는 느낌이 나듯이 말이다. 그렇다, 나는 타고난 남자 아저씨'였던 것이다. 따로 준비한 마른 걸레로 거품을 제거하고 나면 하얗게 오른 표지가 뙇 ! 시바, 이 맛에 책을 닦는다. 책만 닦지는 않는다. 책을 닦고 나면 책을 펼쳐 내용을 훑는다. 이런 표현이 외설스러울지는 모르겠지만 : 내 독서 행위와 섹스 행위'는 묘하게 닮은 구석이 있다. 하드커버인 경우는 포장지가 양장본을 감싸는 경우가 많은데 읽기 전에 항상 벗겨서 안을 살펴보는 버릇이 있다.

 

포장지를 벗겨내는 행위는 마치 브래지어의 훅을 딸 때 느끼게 되는 손맛과 비슷하다. 출렁거리는 속살을 보게 되면 아, 하게 된다. 그 다음은 속을 보기 위해 책을 펼친다. 독서는 몰입이 주는 쾌감에 속한다. 정신이 산만한 사람이 독서를 따분하게 생각하는 이유는 몰입의 기술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속을 샅샅이 훑을 때 느끼게 되는 쾌감은 짜릿하다. 섹스도 몰입이 주는 쾌감에 속한다. 속을 샅샅이 핥을 때 느끼게 되는 쾌감은 말 안 해도 다들 아시리라. 모르면 당신은 뽀로로요, 텔레토비'다 (너무 많이 알면 빨갱이다).  행복한 독서와 즐거운 섹스의 공통점은 속을 제대로 파악할 때 비로소 아, 아아아아아 하게 된다는 점이다. 이 자리가 책의 에로스에 대해 설명하는 자리는 아니니 다음 기회로 미루기로 하고 본론으로 들어가자.

 

책의 씻김굿 작업 틈틈이, 그 전에 시간이 부족해서 발췌독을 했던 진은영의 << 문학의 아토포스 >> 를 다시 읽기 시작했다. 발췌독에 따른 오독일 가능성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때나 지금이나 이 책을 읽고 나서 드는 독후(讀後)한 감(感)은 괜한 군걱정이라는,  씁쓸한 느낌'이었다. 물론 이 책이 교양 수준이 높은 고급 독자를 겨냥했다는 것을 감안한다 해도 쓸데없는 지식인의 과도한 자의식이 깨알처럼 박혀 있어서 읽는 내내 불편했다. 기형도의 시어'를 빌리자면 < 깨 > 란 내부의 빈곤을 숨기기 위해서 뿌리는 저렴한 음식 데코레이션이 아닐까 ? 유시민도 << 글쓰기 특강 >> 에서 잠시 이 책을 언급한 모양이다( 나는 읽지 않았다. 지나가는 바람이 귀뜸을). 그는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 글쓴이 자신은 분명하고 확실하게 이해하고 있지만 독자는 이해하지 못하는 개념을 너무 많이 썼다(249쪽) "

 

 

자기 생각은 없고 온통 바깥 세계에서 빌려온 사유로 내부 세계를 진단한다. 12월에 내리는 함박눈처럼 낯선 외국인 이름이 쏟아져내릴 때는, 아 ! ......  아찔한 맛도 선사한다. 이 장탄식은 내 무식이 탄로났을 때 느끼게 되는 좌절감 비스무리한 탄식이었다. 랑시에르의 사유 없이는 당대를 분석할 수 없는 것일까, 리오타르 없이는 숭고한 대상을 언급할 수는 없는 것일까, 알파벳으로 구성된 단어의 조합 없이는 단 한 문장도 완성시킬 수 없는 것일까 - 궁금하다. 이 책 제목인 << 문학의 아토포스 >> 에서 " 아토포스 " 를 대체할 마땅한 표현이 없기에 인용했다고 쳐도, 굳이 " 시대착오 " 라고 하면 될 것을 " 아나크로니즘 " 이라는 단어를 사용하는 자세는 지적 허세'로 보인다. 내부의 빈곤을 감추기 위해서 깨를 뿌리지는 마시라. 맛으로 승부합시다(소제목만 나열하기로 한다 : 5장 미학적 아방가르드의 모럴, 6장 문학의 아토포스, 7장 시, 숭고, 아레테, 8장 니체와 문학적 코뮤니즘, 9장 문학의 아나크로니즘) !

 

이 책은 마치 서양식 만찬을 즐기면서 한국의 결식 아동에 대해 심오한 토론이 벌어지고 있는 현장처럼 보인다. 캐비어 좌파의 만찬이라고나 할까 ?  수사는 화려한데 메시지는 없다. 구호는 거창한데 진심은 느껴지지 않는다. 대한민국 당대를 이야기하면서 막상 끌어다 쓴 글감은 현해탄과 태평양 너머의 재료뿐이다. 그는 낮은 눈높이가 중요하다고 말하면서 정작 자신은 뜬구름 위에서 뒷짐 지며 아래를 내려다보는 시선이다. 설상가상, 신형철은 이 책에 대한 발문을 썼는데 " 이미 거의 아름답다고 해야 할 정도로 명징한 논증을 구사하고 있 " 다며 칭찬을 아끼지 않는다. 하기사, 그가 써온 평론치고 달달하지 않은 글이 있었던가 ? 목수가 도끼를 든 장인이라면 문학평론가는 화살을 든 장인이다. 신형철이라는 스타 평론가의 연장통이라 할 만한 화살통 안에는 온통 달달한 큐피드의 화살뿐이다.

 

정작 평론가가 갖추어야 할 날카롭고 정직한 화살촉은 없다. 이 발문은 마치 진은영이 본문에서 신형철의 평론 << 아름답고 정치적인 코뮌 >> 을 언급한 것에 대한 화답처럼 보인다. 좋은 게 좋은 것이라는 동업자 정신이 한국 문학을 깊은 수렁에 빠지게 한 꼴이 아닐까 ? 시를 읽지 않거나 문학 평론을 읽지 않는 시대를 한탄하기에 앞서 독자와 소통하려는 진지한 자세에 대한 언급이 선행되어야 하는 것은 아닐까 ? 진은영과 신형철의 글을 읽다 보면 담담하고 소박하지만 강직하며 날카로운 비판 의식을 가진 이명원의 글을 읽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다. 이명원은 << 마음은 소금밭인데 오랜만에 도서관에 갔다 >> 에서 이렇게 말한다.

 

 


문학의 자율적인 체계를 지닌 예술이라는 통념에 대해서는 줄기차게 강조하는 평론가들이, 제도화된 영역에서의 문학평론가라는 것이 분명한 직업이며, 그에 걸맞는 치열한 직업윤리가 동반되어야 한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편의적으로 눈을 감는 경우가 자주 발생하기 때문이다. 함량 미달의 작품들에 대해서도 이런저런 친소관계나 이해관계, 혹은 경영상의 이유 때문에 대단한 작품인 양 뻥튀기 하기를 마다하지 않으며, 일반 독자들이 읽어보아도 한갓 연애담이나 성 경험 고백서에 불과할 작품들을 초월적이니 비의적이니, 혹은 존재론적 고뇌니 하는 거창한 수사로 포장하는 미학적 사기가 횡행화고 있기 때문이다.......  문학평론가들이 이 집단적인 거간꾼의 자세에서 탈피해야 한다

 

- 마음은 소금밭인데, 113쪽


<< 문학의 아토포스 >> 을 읽다가  책을 덮고,  << 마음이 소금밭인데 오랜만에 도서관에 갔다 >> 를 발췌독으로 다시 훑는다. 느끼하지 않아서 좋다. 칼칼한 김칫국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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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다맨 2015-05-01 11: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서양식 만찬을 즐기면서 한국의 결식 아동에 대해 심오한 토론이 벌어지고 있는 현장˝, 아 진짜 이 책에 대한 가장 정확한 평이 아닐까 싶습니다. 개인적으로 ˝문학의 아토포스˝는 2014년에 나온 책 중 최악의 리스트에 올라갈 만한 책이라고 봅니다. 저는 무슨 평론화된 조경란을 보는 것 같았습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5-05-01 12:05   좋아요 0 | URL
제가 쓴 문장이지만 스스로 만족하고 있습니다. 정말 이 책 읽고 나서 딱, 드는 생각이 저거 였습니다.
서양식 만찬을 즐기면서 독거 노인이나 결식 아동 가정에게 김장을 보낼 계획을 하는것 같은 그런 느낌...

stella.K 2015-05-01 13: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곰발님은 안 좋은 책에 대한 리뷰도 외설과 예술을 오가며 잘 쓰시는 것 같아요.ㅋ
저는 안 좋아하는 책은 아예 리뷰를 불허하거나 하게되면 직설적으로 까던가 그러는데...ㅠ
저는 이 책 별로 끌리지 않았는데 내용도 내용이지만 책 표지가 맘에 안 들더군요.
표지가 확실히 그 책을 읽을 것인가 말 것인가를 좌우하게 되는 것 같아요.

저는 피 흘리는 책은 또 첨 보겠습니다. 그런데 세제가 문제였군요.
그런데 곰발님은 책을 정말 사랑하시는가 봅니다. 전 아무리 좋아해도 세제로 닦을 생각은
못하거든요. 전 말로만 책 좋아하지 가만 보면 방치하는 거나 다름이 없어요.
방치는 무관심 보다 더 안 좋은 거 같아요.ㅠ

곰곰생각하는발 2015-05-01 13:08   좋아요 0 | URL
오죽했으면 닦겠습니까. 이사할 때마다 폭우가쏟아져서
아주 책이 뗏국물이 철철 흘렀습니다.
이사할 때가 되니 시간 날 때마다 먼지 좀 털어낼 겸 해서
닦고 있습니다. 포장이사는 그냥 포장만 하지 먼지까지 털지는 않지 않습니까....

빨래비누물에 마른 걸래로 묻혀서 함 닦아 베숑..보세요.
의외로 짜릿합니다.
ㅋㅋㅋ

비로그인 2015-05-01 16: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닦기를 이렇게 에로틱하게 표현하신것에 꽂혔습니다!! 저도 중고책 표지를 자주 닦는데 이젠 닦을때마다 곰발님 글이 생각나겠네요 ㅋㅋ 평가하신 책은 읽어보질 못해서 패스 ... 전 소양이 부족해서 곰발님 글을 읽으면 항상 주변얘기나 특정표현에만 집중하게 되네요...근데 그게 더 재밌어요...
눈높이가 낮은(다른) 사람에게도 재밌게 읽히는 글을 써주시는게 너무 좋아요.

곰곰생각하는발 2015-05-01 17:28   좋아요 0 | URL
제가 한 < 닦기 > 합니다. 제가 워너비 님보다 지적 수준이 더 낮을 겁니다. ㅎㅎㅎㅎ
제 아이큐가 98인가 그렇습니다.
또래애들이 두 자리 아이큐라고 더럽게 놀리고는 했는데 말이죠.. ㅋㅋ

닦는 게 취미라서 그러는데 뭘로 닦으십니까 ?

비로그인 2015-05-01 20:48   좋아요 0 | URL
가전기구 닦으려고 한박스 사놓은 유한그린텍의 <마법의 항균 청소박사>요.ㅎㅎ
마치 책 제목같은데 그냥 물티슈같은겁니다. 이걸 조금 말려서 닦으면 책이 많이 안젖고 시커먼 때가 잘지워지더라구요.

곰곰생각하는발 2015-05-02 07:32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고급 정보로군요. 당장 닦아보도록 하겠스비다.

dddddd 2019-11-04 20: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책도 안봤는데 리뷰 글 너무 재밌게 읽었습니당

WifeOf센프라우드 2023-04-27 12: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이큐가 98이셔서...
 

 

 

 

 

 

동전 : 새것과 낡은 것

 

 

 

 

새것(new)은 낡은 것(old) 때문에 고통받는다

 

- 맑스, 자본론 서문 中

 


 

 


종종 학교 앞에서는 뜨내기장사 좌판'이 열리고는 했다. 주로 병아리를 팔거나 동전 따위를 윤이 나게 닦을 수 있는 연마제를 팔았다. 또래아이들은 병아리와 연마제 가운데 하나를 선택하라면 열에 아홉은 병아리를 가지고 싶어 했는데 나는 연마제가 탐이 났다. 그 연마제로 거무죽죽하고 구리구리한  십 원짜리 동전을 닦으면 아, 구리가 러, 블리 황금으로 변하는 것이 아닌가 !  마치 이집트의 연금술사'가 된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 맛에 미친 나는 동전이란 동전은 죄다 닦았다. 동전을 닦는 대신 학문을 닦거나 항문을 (제대로) 닦았다면 치질로 고생하고 있는 지금의 나'는 달라졌을 것이다. 사소한 일에도 부들부들 하는 성격은 웬만한 일에는 그냥 웃어넘기는 유들유들한 성격이 되었을 것이고, 대장항문과 여의사의 손가락이 내 항문을 파고들며 " 그래도 곰곰생각하는발 씨'는 다른 건 몰라도 항문 하나만큼은 참... 예술이네요.
국화무늬 똥구멍이라는 게 그리 흔한 게 아니 거든요. < 잘생긴 똥구멍 대회 > 라도 열리면 1등은 따논 당상인데 아쉽네요. 당신 똥구멍은... 그래요, 키스를 부르는 똥구멍이에요. 호 ! 호 ! 호 ! " 라는 어색한 칭찬은 받지 않아도 되었으리라. 전생에 지은 죄가 많아서 내 얼굴은 < 못생겨서 죄송합니다- 수준 > 인데 아무도 볼 수 없고 아무나 보여줄 수도 없는 항문은 가히 < 미색이 출중하야 누구나 心이 동하는 똥구멍 > 이었으니 이 무슨......  개 같은 운명이란 말인가 !  하여튼, 어린 나는 동전 닦는 재미로 질풍노도의 시기'를 견딜 수 있었다. 나중에는 다년간 축적된 기술을 바탕으로 쾌락을 극대화하는 전략을 구사하게 되었다. 동전을 닦을 때 제일 좋은 소재는 낡은 백양 메리야스 런닝 샤쯔'였다. 손수건 크기로 넉넉하게 천 조각을 만들어 연마제를 묻힌 동전을 감싼 다음에 문지른다. 그런 다음에 백양 메리야스 런닝 샤쯔 조각을 조심스럽게 열면 그 속에 " 둥근 해가 떴습니다 ! "
마술사가 된 느낌이 들었다. 실제로 나보다 어린 꼬맹이에게 선보이면 아이들은 신기해서 와와, 했다. 구리구리한 동전이 블링블링한 동전으로 재탄생하였으니 놀라지 않을 리 없었다. 이 맛에 동전을 닦았다. 그러다 보니 십 원짜리 동전을 발행년도별로 모으는 취미로 발전했다. 1967, 1968, 1969, 1970, 1971, 1972, 1973, 1974, 1975, 1976, 1978........ 동전을 모으면서 새롭게 알게 된 사실은 흔한 것과 귀한 것이 있다는 점이었다. 특히 1966년 동전과 1977년 동전'을 발견했을 때는 기뻐서 똥 쌀 뻔했다. 3000조각 직소퍼즐의 잃어버린 마지막 한 조각을 발견한 느낌이었다. 나는 방바닥에 1966년에 발행된 십 원짜리 동원을 시작으로 년도별로 나열하기 시작했다. 그동안 1977년 동전이 없어서 동전 기차놀이를 할 수 없었는데 드디어 1977년이라는 객차 한 칸'을 마련한 것이다. 눈물이 앞을 가렸다. 그날, 나는..... 울었다.
하지만 이 환희'는 오래 가지 못했다. 내가 애지중지 모았던 동전은 어처구니없게도 짜장면과 교환되어 있었다. 어머니가 내 책상을 정리하면서 서랍 속 동전을 모두 처분한 것이다. 내게는 귀한 동전이었으나 어머니가 보시기에는 " 동전 나부랭이 " 에 지나지 않았던 것이다. 특히 어머니가 동전을 거론하면서 " 동전 나부랭이.... " , " 지저분하게...... " , " 아무 데나 나뒹구는..... "  따위로, 내가 신주 단지로 모셔온 십 원짜리를 비하할 때는 참을 수가 없었다. 나는..... 거무죽죽한 짜장면을 먹으면서 울,  었다. 내가 퉁퉁 부은 얼굴로 질질 짜자 어머니가 큰소리로 말씀하셨다. " 어린 놈의 새끼'가 하라는 공부는 안 하고 동전이나 닦고..... 동전 닦는다고 돈이 나오니 밥이 나오니.  커서 구두닦이 할래 ? " 그래서 준비했다. " 어머니 ! 십 원짜리'라고 무시하지 마십시오. 돈이 되고 밥이 된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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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후, 세월이 흘렀다. 지금은 머리가 커서 동전 따위를 닦거나 하지는 않는다. 동전을 발행년도별로 모으는 일도 하지 않는다. 동전 기차 놀이'는 이제 추억 저 편'으로 보냈다. 그런 것은 어릴 때나 하는 짓이니 말이다. 하지만 내가 동전을 닦고 발행년도별'로 동전을 모으는 과정에서 깨달은 것 가운데 하나는 같은 값이라고 해서 다 같은 값은 아니라는 점이었다. 십 원짜리, 흔하고 흔한 동전이지만 그 속에도 진주는 있는 법. 흔한 것이 반드시 천한 것은 아니라는 사실. 그리고 흔한 것이 귀한 것일 수도 있다는 어떤 희망. 십 원짜리 동전을 보면 종종 러시아 작가 고리키'가 생각난다. 그가 썼던 희곡 << 밑바닥 >> , 소설 << 소시민들 >> 이라는 작품이 생각나기 때문이다. 10원짜리 동전을 사람으로 치자면 소시민들이요, 계급 피라미드'로 보자면 밑바닥'이 아닐까 싶다.

 

세월호 이후, 변한 것은 없다. 시민을 십 원짜리 동전쯤'으로 여기는 오 만원짜리, 오만한 정치 권력 집단은 여전히 승승장구한다. 그들은 국민을 1997년도 십 원짜리 동전으로 생각한다. 흔하고 흔한 것으로 말이다. 3000만 원짜리 " 비타 500 c " 를 사서 마시는 족속이다 보니 십 원짜리 동전이 눈에 들어올 리 없다. 그들 주머니에 동전은 없다. 4천 3백만 원짜리 명품 가방은 있지만 4천 3백 2십 1만 9천 8백 3십 원짜리 명품 가방은 존재할 수 없는 법. 가격표가 < - 00,000원 > 으로 끝나지 않고 < - 09,980원 > 으로 끝나는 상품은 대부분 서민용 상품'이다. 하지만 십 원짜리 동전이라고 모두 다 흔하디 흔한 동전은 아니다. 가진 것 없이 태어난, 십 원짜리 동전 계급으로 태어났다고 해서 천한 것은 아니다. 안도현 시인이 " 연탄재 함부로 차지 마라, 시밤바들아 ! " 라고 했듯이, 나도 이렇게 외치고 싶다. 십 원짜리 동전 함부로 차지 마라. 누군가에게는 귀한 동전이지 않느냐.

이상한 일이다. 박근혜와 집권 여당의 지지않는 승승장구'를 생각하다가 문득 그 옛날 동전을 닦던 어린 시절이 떠올랐다. 돌이켜보면 내가 어릴 때 동전을 닦던 취미'는 일종의 계급 투표 : 각 사회 계급이 자신의 계급적 이익을 대변하는 대표자에게 투표하는 정치적 선택   였던 셈이다. 연마제를 묻혀 더러운 동전을 새 동전으로 만드는 마술 같은 희열은 내 계급에 대한 지지가 아니었을까 ? 대한민국 사람들이 각자 동전을 닦았다면 지금의 대한민국은 탄생하지 않았을 것이다. 대한민국은 십 원짜리 계급이 십 원짜리 동전을 무시한다. 노동자는 노동자를 지지하지 않고 여성의 적은 어느새 여자가 되었다. 서비스의 질을 들먹이며 진상을 부리는 고객 가운데 상당수는 서비스업 노동자'라는 통계는 씁쓸한 여운을 남긴다.

 

1970년에 발행된 10원짜리 동전은 56만 원에 거래되고 있다. 십 원짜리 동전이 오만 원짜리 지폐'보다 비싼 경우'다. 그러니 십 원짜리 군단이 오만 원짜리 오만한 군단을 이길 수 있다는 희망을 버리지는 말자. 다윗은 골리앗을 이기는 법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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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15-04-30 10: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동전 닦기를 이렇게 해석하시다니!! 너무 재밌게 읽었습니다. 한국인들은 자신의 계급을 대변하는 자에게 투표하지않고 본인이 지향하는 계급을 위해 투표하는것같아요...
다들 상위 1%를 지향하고 살기에 이런결과가 나온걸까요...

곰곰생각하는발 2015-04-30 15:11   좋아요 0 | URL
어제 투표 결과 보고
문득 제 어릴 적 신기한 약으로 동전을 새것으로 만들던 때가 생각났습니다.
맞습니다. 자신의 이익을 대변할 수 있는 집단을 선택하는 게 아니라
자신의 욕망이 투영된 집단에게 투표하려는 경향....
참... 암담하죠..

stella.K 2015-04-30 12: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러게요. 10원짜리도 소중한 건데...
지금 10원짜리 동전 크기가 옛날 5원짜리만 하잖아요.
그 많던 동전들은 다 어디로 갔단 말입니까?ㅠㅠㅠ
저 1966년 짜리 보니 감회가 새롭네요.
저런 거 잘 모아두면 피가되고 살이되는 건데...
말에 의하면 10원짜리 동전 3개를 녹여야 하나 나온다고 하던데
우리가 10원짜리를 너무 우습게 보는 것 같습니다.
나 어렸을 때 10원 들고 가면 크림빵이나 건빵 한봉지 살 수 있었어요.
그 돈맛을 알 무렵 금방 저것들이 30원이 되고, 100원이 되는 걸 지켜봐야 했었죠.
돈 귀한 줄 모르는 건 옛날이나 지금이나 똑같은 것 같아요.
없는 사람에겐 여전히 귀한 건데 말입니다.ㅠㅠ

곰곰생각하는발 2015-04-30 15:10   좋아요 0 | URL
5원짜리동전을 전 본 기억이 없어요. 이번에 알았습니다.
도표 보고어라 5원짜리 동전도 있었나 했습니다.
근데 요즘도 1원짜리 동전이 있네요. 신기하네....
1원은 도대체 어디 다 쓰는 것일까요 ?

마립간 2015-04-30 13: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페이퍼의 긍정적인 메세지는 충분히 이해갑니다만,

어느 페미니스트?가 사회적으로 정의된 10원짜리의 귀천을 거부한다. 이런 주장도 가능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5-04-30 15:07   좋아요 0 | URL
어느 페미니스트의 양성평등 주장인가요 ? ㅎㅎ.

2015-04-30 13:5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04-30 15:12   URL
비밀 댓글입니다.

수다맨 2015-05-01 01: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쩌면 이번 선거를 정부 여당이 승리함으로써 성완종 게이트나, 세월호 사건에 대한 진상 조사가 제대로 이뤄지지 못할 거라는 예감조차 듭니다. 또한, 해고 요건을 완화하고 비정규직을 늘리려는 정부의 노동 정책이 더더욱 가속화될 것도 같구요.
야권의 계파 갈등이나 미흡한 전술/전략도 문제이긴 합니다만, 그래도 다수 사람들이 정부 여당에 표를 주는 행위는 전혀 옳게 보이지 않습니다. 결국 표를 주는 대가로 돌아오는 것이라곤 부정부패의 심화와 부의 일방향적 편중에 불과할 텐데 말이지요. 그래도 믿을 건 여당이란 생각이 사람들 맘속에 제법 뿌리 깊게 박혀 있는 것 같습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5-05-01 05:41   좋아요 0 | URL
여당은 지역색을 이용할 수록 유리하죠. 서울, 경기를 뺀 전북+전남+강원+충남+충복+제주를 다 합친 인구보다 경북+경남˝ 인구가 더 많습니다. 경상도 전라도 구조`로 가면 단연히 경상도 압승... 문제는 이런 지역색을 야당도 바란다는 점이죠. 국회의원이 가장 시급한 것은 배찌아니겟습니까. 서로 안전빵하려고 전라 경상 구도를 만드는 것이란 생각이 드네요,
 

 

 

 

 


궁금해 죽겠네

 


 

 

 



                       막히면 탈난다. 의사가 아니더라도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다. 더군다나 종편의 탄생은 건강 정보'가 범람한 계기'가 됐다. 가끔 종편 오락 프로를 보면 약 파는 약장수 프로그램 같다는 느낌이 든다. 가시오, 라고 하면 가시오가피'가 불티나게 팔리고, 오시오, 하면 오시오가피가 불티나게 팔린다. 건강하기 위해서는 막히면 뚫어야 한다. 뚫어야, 산다 ! 좋은 예로 변비'를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다가는 큰코다칠 수 있다. 변비 때문에 죽을 수도 있으니 끙끙 앓는 것보다는 차라리 방귀 뀌고 성질내거나 똥 싸고 성질내는 놈이 건강한 놈이다. 그만큼 막히는 구석 없이, 조이는 부분은 그때그때 풀어줘야 건강하게 오래 산다. 체질적으로 궁금한 것은 못 참는 성격'이다 보니 내 머릿속은 항상 만성 변비'인 상태'다. 누구는 이 궁금증을 바탕으로 전구를 만들어서 억만장자가 되었는데 내 궁금증은 대부분 생뚱맞은 것들이 대부분이었으니....... 

곰곰 생각하면 " 궁금해 죽겠다 ! " 는 말은 생각'이 꽉 막혀서 이도저도 못하는 상황이다. < 변비 > 가 똥이 밖으로 튀어나오지 못하고 괄약근 끝에서 머문다면, 생각이 날듯 날듯 날듯 날듯 날듯 하다가 날지 못하는 타조 같은 < 생각 > 은 머리 밖으로 튀어나오지 못하고 혓바닥 끝에서 맴돈다. 내가 진짜 궁금한 것은.... 아니다, 못 들은 것을 해달라.  궁금해 죽겠지 ?  자음 < ㄹ > 은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빠지다가, 다시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돌아가고, 결국에는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삐친다. < 갔다ㅡ 왔다 ㅡ 갔다 > 를 반복하는 형태'다. 이런 형태를 한자에서는 갈지자형(之)이라고 하고 영어로는 zigzag 라고 한다. 공교롭게도 한글 ㄹ, 한자 之, 알파벳 z는 모두 비슷하다. 특히 ㄹ 은 뫼비우스의 띠'처럼 회귀적 성격을 가진다.

그래서 < ㄹ > 은 之 보다는 回 와 더 닮았다. 억지로 끼워 맞추기 위한 고집'이 아니다. < ㄹ > 은 막히지 않고 순환하는 이미지'를 가지고 있다. 그래서 운동성을 강조하거나 생동하는 이미지를 강조하는 단어에는 ㄹ 받침이 많다. 바람은 ? 솔솔 불어오고. 수학 문제는?  술술 풀리고. 강물은 ? 졸졸 흐르고. 구슬은 ? 돌돌 구른다. 반면 < ㄹ > 이 절반으로 쪼개져서 < ㄱ > 이 되면 어둡고, 무겁고, 정지된 느낌으로 순환되지 못한 채 막힌 형상이다. 뭐랄까, 거무죽죽하고 칙칙하며, 적막하고 적적한 느낌. 벌써 이 문장 안에서도 < ㄱ > 은 강박적으로 반복되지 않은가 ?  누군가 앙칼진 말방구로 " 아예 추리소설을 써라, 소설을 ! " 이라고 비아냥거린다면 회심의 카드를 내놓을 수밖에 없다. < ㄱ > 은 폐쇄음'이다.

자세히 설명하자면 :  폐에서 나오는 공기를 일단 막았다가 그 막은 자리를 터뜨리면서 내는 소리'가 폐쇄음이다. 그러니까 ㄱ 은 " 순간의 질식 " 을 경험한 적이 있는 글자'다. ㄱ 은 숨통이 막히는 경험, 이 트라우마를 간직한 채 살아가는 다크한 존재'다. < 죽다 > 라는 낱말에는 숨통이 막힌 상태를 보여준다. 이 숨통을 틔우면 ㄹ 이 된다. < 살다 > 라는 단어를 보면 답은 명확해진다. 살다'에서 < 살 - > 은 원래 움직임을 뜻하는 동사로 어떤 동작이 반복됨을 나타내는 말이라고 한다. 그러니까 산다는 것은 구르는 바위를 짊어지고 산정상을 향해 올라야 하는 시지푸스적 운명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 삶 > 과 < 사람 > 이 < 살- > 과 닮았다는 게 과연 우연일까 ?  한글을 만든 사람들은 인간이 일상의 반복'에 갇힌 존재라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었다.

카뮈는 << 시지프스 신화 >> 에서 구구절절 인간의 비극적 운명에 대해 말했지만 한글을 만든 사람은 < 살 - > 이라는 단 한 글자'로 그 사실을 증명했으니, 카뮈가 이 사실을 알았다면 한국인으로 귀화하지 않았을까 싶다. < 살다 > 와 < 죽다 > 라는 말이 나와서 하는 말이지만 한국인은 삶보다는 죽음을 앞세우는 경향이 있다. " 삶과 죽음 " 을 한자로는 生死라고 하고, 영어로는 life and death 라고 하지만  한국말은 " 죽살이 " 였다. 어순이 다른 나랏말과는 다르다. 死 에 대한 강박은 다양한 흔적을 남겼다. 죽기 살기로, 죽자 사자, 죽었다 깨어나도, 죽고 못 살다, 죽을 둥 살 둥, 죽지도 살지도 못한다. 심지어는 용용 죽겠지 ?! ( 우리 민족은 장난삼아 놀리는 말에도 죽을 수 있다니, How fragile we are ! 1 )  

외세의 잦은 침략과 탐관오리의 횡포 때문에 죽지 못해 살았던 옛사람들을 생각하면 수긍이 가는 대목'이다. 옛사람 생각'을 하다가 눈물 닦고 주먹 쥘 때, 문득 그들은 살다와 죽다를 반대말'이라 생각하지 않고 같은 말'로 여겼다는 생각이 들었다. < 죽다 > 를 다른 말로 표현하면 < 돌아가다 > 가 아닌가 ? 그러니까 " 돌아가다 " 는 gone 가 아니라 return 인 셈이다. 한국인에게 죽음은 자신이 웅크리고 있었던 태초로 돌아가는 것. 옛사람은 프로이트 이전에 이미 인간의 욕망에는 " 타나토스 " 가 자리잡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한국 지식인들이 지식인이랍시고 유학 가서 카뮈를 연구하고 프로이트 학파를 연구했지만 등잔 밑이 어둡다고 한글 구조만 제대로 파악했어도 지성사에 길이 남을 위대한 학자가 되지 않았을까 ?

철학을 공부하기 위한 첫걸음마는 소크라테스가 아니라 한글부터 떼야 한다 ■



 

 

 

 

 

덧대기

죽다'의 비속어로 쓰이는 표현은 뒤지다' 또는 뒈지다'이다. '뒈지다' 는 '두어'+'지다'가 합해져서 이루어진 말로 '두어지다'의 줄임말로 볼 수가 있다. '두어지다'에서 '두어'의 원형은 '뒷다'로 '뒷'은 뒤(하)->뒷 으로 히읗 종성체언이 변형된 것이다. (참고:釋譜詳節석보상절 6-2, 히읗 종성은 기역소리로 나는 경우가 있다.) 그렇다면 '뒤'가 뜻하는 것은 무엇인가. '뒤'는 방위로는 북쪽을 뜻하고, 계절로는 겨울을, 동물로는 곰을, 별로는 북두칠성을, 소리로는 우면조를, 성으로는 여성을 상징한다. 여성이나 곰으로 상징되는 '뒤'는 이 글의 앞부분에서도 언급했다시피 땅과 연관지어 진다. 땅은 인간이 태어난 곳이며, 또 인간이 되돌아 갈 곳이기에 땅으로의 회귀라는 관점에서 본다면 '죽다'는 '뒤'에서 발전되었음을 보여주고 있다. 또한 우리 민족에게 북두칠성에 대한 별 신앙은 원시신앙을 연구하는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문화 인류학에서는 우리 민족이 북쪽의 별 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이유를 고아시아족의 원 거주지가 시베리아 부근이었기 때문이라고 풀이하고 있다. 그런 이유로 '별'이 쓰인 흔적을 여러 곳에서 찾아볼 수 있다. 유명한 산의 봉우리 가운데 비로봉이라는 봉우리를 많이 보는데, 이 비로봉이라는 말이 별의 방언형인 '빌'에서 비롯된 말이라 하겠다. 그리고, 자기의 소원대로 되기를 바라며 기도한다는 뜻의 '빌다'라는 말도 '별'에서 발전 되었음을 보여주고 있다. 두고 온 고향 하늘 위의 별을 그리워하는 마음이 담겨 있다고나 할까. 이처럼 우리 민족에게 있어서 '뒤'는 시간적으로는 지나온 과거이며, 공간적으로는 두고 온 고향(시베리아 부근)을 나타내고 있다. 그래서 '뒤지다'라고 하면 우리의 원거주지였던 곳으로 되돌아갔다는 말이 된다. 즉, 현재의 삶이 아니라 과거의 삶으로 되돌아 갔다는 말이다. 죽음을 끝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또 다른 시점에서의 삶으로 보고있는 것이다. '죽었다'의 존칭어로 쓰이는 '돌아가셨다'라는 말을 보더라도 이상의 학설이 충분한 설득력을 가진다고 생각한다.

 


 

  1. 스팅의 노래 fragi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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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 너는 누구냐 ?



 

 

 




                           글쓰기 요령을 가르치는 책에서 바른 문장을 만들 때 접미사 < -적的 > 은 가급적 사용하지 말라고 조언한다. 말이 나와서 하는 말이지만 글쓰기 강사는 " 가급적 " 대신 " 되도록 " 이나 " 될 수 있는 대로 " 따위로 순화해서 사용하라고 덧붙인다. " ~的 " 이 일본어식 표현법'이라는 것. 그런데 문제는 일상 대화'에서 " ~ 적 " 을 필요로 하는 표현이 굉장히 많다는 데 있다. " 그는 인간적이다 ! " 라는 말을 다른 말로 바꿀 만한 마땅한 표현이 없다. 的을 사용하지 말라고 하니 " 的 " 만 쏙 빼서 " 그는 인간이다 ! " 라고 말하면 대뜸 " 그러면 우리는 짐승이었냐 ? " 라는 앙칼진 말방구가 되돌아올 것이 분명하다. 그렇다고 그는 순둥이다, 라고 할 수도 없는 노릇. 생각해 보면 < 인간 > 과 < 인간적 > 은 다른 의미'다 . 

 

그 차이'를 딱히 설명할 길은 없으나 < 인간 > 과 < 인간적 > 은 같은 것 같으면서도 같지 않고, 그렇다고 같지 않다고 자신있게 말하기에는 마땅한 명분이 없었다. 바로 이 애매모호한 정체성이 내 뇌하수체를 통해 시냅스로 거쳐 전두엽을 자극했다. 전두엽에 나에게 명령한다. 주먹 꽉 쥐고 괄약근에 힘 줘라잉 ~ 적을 알아야 승리를 할 수 있는 법. 그래서 나는 너에게 묻는다. " 的, 너는 누구냐 ? " 적은 쉽게  정체를 드러내지 않았다. 그럴수록 미치도록 잡고 싶었다, 미치도록 잡고 싶었다, 미치도록 보고 싶었다. 그 마음이 너무 간절해서 만나면 밥은..... 먹고 다니냐, 라는 따스한 말 한 마디를 건내고 싶은 심정이었다. 하지만 간절한 바람과는 달리 세월은 속절없이 흘러 어느덧 공소시효 만료를 앞두게 되었다.

 

입은 한여름 가뭄에 갈라진 논바닥처럼 쩍쩍 마르고, 똥줄은 다이너마이트 심지'처럼 타들어가기 시작했다. 이 초조한 마음,  어찌 글로 다 표현할 수 있으리오. 밀어서 잠금 해체의 열쇠'를 제공한 이는 뜻밖에서 배우 이병헌'이었다. 공소시효 만료를 하루 앞둔 어느 날,  이병헌의 카톡 내용이 내 눈에 포착된 것이다. 로, 맨, 틱, 성, 공, 적!   형사로서 쏴싸싸아아아아아아아아한 느낌이 왔다. 박하사탕을 톡하고 씹을 때 뒤통수가 밝아지는 느낌처럼 말이다. 영화 << 살인의 추억 >> 에서 송강호가 직감이라고 부르는 그 feel이 온 것이다. 아기 다리 고기 다리던 적을 외나무 다리에서 만나다니,  이 얼마나 극적인 만남이었나. 눈물이 앞을 가렸다. 나는 특별수사본부팀'에 마지막 전보를 쳤다. 밤 11시 53분이었다. 드,라,마,틱,성,공,적.  

 

" 로맨틱하다 " 는 " 낭만적인 구석이 있다 " 는 뜻. 곰곰 생각하면 < -的 > 은 영어의 < - tic > 과 꽤 닮았다. 이병헌은 -tic 과 -的이 (얼굴은 다르지만 한 뿌리에서 자란) 이란성 쌍둥이'라는 사실을 본능적으로 깨닫고 있었다. < roman > 이 순도 100% 로망'이라면 < romantic > 은 순도 60%쯤 되는 로망'이다. 낭만적인 구석'이라는 표현이 말해주듯이 구석은 쪼가리의 심리적 은유'다. < 성공적 > 도 마찬가지'다. 이 단어 또한 성공 100% 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이병헌이 " 로맨틱 성공적 " 이라고 말한 데에는 미완성으로 남은 로맨틱과 성공적을 로망과 성공'으로 완성하자는 힘찬 결의'가 담겨 있다고 보아야 한다. 다들 아시겠지만 그는 결국 < 로맨틱- > 에서 < 틱 > 을 제거하지 못했고, < 성공적- > 에서 < 적 > 을 떼어내지는 못했다. 

 

그러니까 명사에 붙은 < -적 > 은 그 명사와 유사한 성격을 띠지만 오롯이 그 명사 자체가 될 수는 없다. 안드로이드 로봇이 인간의 형상과 매우 닮았다고는 하나 결국 인간일 수는 없는 노릇'처럼 말이다. 그런 점에서 아버지를 아버지라 할 수 없고 형을 형이라 할 수 없었던  홍길동 선생은 길동 아범 가계도에 편입될 수 없는 " brotherhoodtic " 이요, 혈연적 관계'이며, 불순물이었다.  이처럼 < -적 > 은 대상을 흉내, 모방, 시늉을 내거나 척하는 혹은 티를 내는 성향이 있다. 우리가 어떤 인물에 대해 " 그는 귀족적이다. " 라고 말한다면 그 말에는 실제로 귀족도 아니면서 귀족인 척한다, 혹은 귀족인 티를 낸다는 속내가 숨겨져 있다는 사실을 간파해야 한다. " 그는 귀족이다. " 라고 하지 않고 " 그는 귀족적이다. " 라고 말하는 이유는, 자명한 사실이지만, 그가 귀족이 아니라는 데 있다.

 

만약에 그가 실제로 귀족이라면 " 귀족적 " 이라는 말은 모독에 가까운 소리'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오자. 우리가 어떤 대상을 향해 " 인간적 " 이라고 말하는 속내에는 속으로는 그렇지 않으면서 겉으로는 됨됨이가 훌륭한 척( 혹은 티)을 한다는 뜻으로 해석될 수도 있다. 누군가 당신에게 인간적이라며 귓바람 불며 달달한 알랑방귀를 뀌면 환희의 휘파람 대신 분노의 주먹을 날릴 필요가 있다. 시간 날 때마다 누누이 하는 말이지만 주변사람들로부터 " 인간적 " 이라거나 " 인간성 " 이 좋다는 소리를 과하게 듣는 사람은 의심을 해보는 것이 좋다. 정치가가 가장 인간적일 때는 선거 때이다. 누군가는 이완구가 세월호 유가족 앞에서 흘린 눈물을 인간적이라고 생각했을지 모르지만 나는 그 눈물이 역겨웠다. 싸구려 신파극을 보고 있는듯한 느낌 ?!

 

자연스럽게 웃는 것보다 쉬운 연기가 바로 눈물 연기'다. 하늘 높은 관직에 있던 정치가들이 선거 때만 되면 스스럼없이 시장 상인들과 노숙자와 함께 한마음이 되는 풍경은 꽤나(?) 인간적이었다. 또한 사기꾼은 사기 행각이 발각되기 전까지는 인간성 좋고, 매너 좋고, 친절한 인간인 척하거나 그런 인간인 티를 내는 법이다. 그렇기에 나는 인간적인 인간'은 일단 의심부터 하게 된다. 사실 인간이라는 동물에게서 배울 것은 그닥 많지 않다. 그건 그렇고, 적을 쫓는 과정에서 새로운 사실 하나를 알게 되었다. 고급 정보'다. 잠시 고민하다가 함께 나누기 위해 정보를 공유한다. < -的 > 은 반드시 한자로 구성된 명사 뒤에만 쓰일 수 있다. < 인간적이다 > 라는 표현은 가능하지만 < 사람적이다 > 라는 표현은 쓸 수 없으니까. 이 정도면 나는 관대하다. 휴머니스틱humanistic 성공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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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애니비평 2015-04-27 13: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람적이다 보단 사람(의)적이다가 옳을듯

곰곰생각하는발 2015-04-28 04:12   좋아요 0 | URL
만애비 님 정점 언어유희`에 맛을 들이신 듯...

돌궐 2015-04-27 14:1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비슷한 맥락에서 `마음적으로`란 말도 어색한 표현인데, 참 많이들 쓰시죠.
이수열, <우리말 바로쓰기>에 보면 `-적`의 쓰임에 대해 다양한 예들을 들고 있는데요,
적을 안써도 되는 경우도 분명 있는 거 같습니다. 그런데 저는 쓴다고 해도 굳이 반대할 이유는 없다고 봅니다. 문장의 분위기나 흐름에 따라 글쓴이가 선택하면 되는 것이죠.
참고하시라고 아래에 내용을 옮겨 봅니다. 옛날에 썼던 초록에서 복사했습니다.^^

(1) 마음적
중국어에서는 `~적`이 체언을 속격과 형용사형, 부사형으로 표현하는 데 필요한 형태소지만, 우리말에는 관형격 조사 `의`가 있고 용언의 관형사형, 부사형 활용어미가 풍부하므로 `문학적, 예술적 가치`, `국제적 문제`, `적극적이다`, `공적으로` 등 `~적`을 쓰지 않을 수 없는 개념어말고는, 모두 우리말의 고유한 조사와 활용어미를 올바르게 써서 품위 있게 표현해야 한다.

(2) 합목적적, 유목적적
교육을 연구한다는 사람들이 즐겨 쓰는 말로 `합목적적 행동`, `유목적적 활동` 등으로 표현한다. `합목적적`은 `목적에 맞는`으로, `유목적적`은 `뚜렷한 목적이 있는`이라고 하면 된다.

(3) 그 밖의 아무렇게나 쓰는 다양한 보기
* 전국적으로 비가 내립니다.
→ 전국에 / 전국에 걸쳐

* 개성적인 문장
→ 개성 있는 / 개성이 드러난 / 개성을 드러낸

* 자의적으로 행동한다.
→ 자의로 / 제 마음대로

* 점차적으로 변한다.
→ 점차 / 점점 / 천천히

* 연속적으로 일어나는 사건
→ 연속해서 / 연속 / 잇따라

곰곰생각하는발 2015-04-28 04:12   좋아요 0 | URL
이런 댓글 만나면 뭐라.... 로또 맞은 듯한 느낌이 듭니다.
이수열 님 이름 들으니 문득 제 블로그 이웃 중 한분이 생각납니다.
이분이 기자이신데 편지 한 통을 받았습니다.
뭔가 하고 보니 이수열 님이 보내신 것인데
문법적으로 문제가 있는 것을 빨간 펜으로 수정한......

그래서 제가 그거 잘 보관하라고 했습니다.
이수열 그 분이 그분 맞죠 ?

붉은돼지 2015-04-27 15: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재미있는 글 잘 읽었습니다. 곰발님은 정말 글을 맛깔스럽게 쓰시는 것 같아요^^

마지막에 `적`은 반드시 한자 명사 뒤에만 쓰인다고 하셨는데....
위 돌궐님 말씀마따나 `마음적으로`라는 말이 있잖아요
저는 개인적으로 이 `마음적으로` 라는 말이 상당히 마음에 듭니다. 거기에 ˝~다가˝를 붙이면 금상첨화
무식한 인간이 유식한 척 하는 듯한 그 어감, 세상을 아래로 보는 듯한 그 느낌...
어쨋든 어색한 듯 하지만 웃기고 재미있는 표현이라는 생각입니다. ^^

곰곰생각하는발 2015-04-28 04:10   좋아요 0 | URL
사전에 올라온 수많은 적`을 살펴보니
연속적, 점차적, 개성적, 성공적 따위는 관형사로 인정을 해서 사전에 삽입되어 있는데
마음적은 없네요. ㅋㅋㅋㅋ 우리가 흔히 쓰는 잘못된 사례가 아닌가 싶습니다.
사전 찾아보니 심적`은 있네요.

cyrus 2015-04-27 20: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적`하면 이제 이산타의 `너 로맨틱 성공적`이 떠올려요. 문제의 카톡이 공개되면서 이산타는 대중의 적이 되었죠. ㅋㅋㅋ

곰곰생각하는발 2015-04-28 05:15   좋아요 0 | URL
로맨틱 성공적`이 있군요. 마, 맞다맞다 !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이거 얼릉 본문에 삽입하겠습니다. 아, 로맨틱 성공적을 왜 몰랐지 ? 수정하고 나니 글이 찰지네요..ㅎㅎ

오쌩 2015-04-28 01: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별상관은 없지만,
저는 일본식 표현이라고 쓰지말라는 조언들에 대해 반항하고 싶어요ㅎ
영어표현이나 단어들을 보면 불어나 독어에 영향을 많이 받았어요.
그렇다고 배척하지 않아요.
스페인 포루투갈어 이태리어 역시 서로 견련관계로 섞이고 이를 인정하는데..

우리나라랑 역사적으로 밀접한관계에 일본에 영향을 받는건 당연한거 아닌가요.
저는 여러가지 언어의 표현방식이 뒤섞이게 될때 또다른 문체와 감각적 표현을 만들어낼 수 있다고 생각해요.

곰곰생각하는발 2015-04-28 04:07   좋아요 0 | URL
그래서 가끔 한자로 구성한 한글 낱말`을 끔찍하게 생각하는 사람들 보면 좀 무섭다는 생각이 듭니다.
영어의 예`에서도 알 수 있듯이 그것을 언어 오염으로 인식하지 말고 풍부한 어휘를 늘려준다는 측면에서 보면 언어의 발전에 도움이 될 터인데 마치... 보면 때려잡자 한자 단어... 뭐, 이런 느낌입니다.
저는 사람들에게 오뎅`으로 불러도 된다고 말하고 다닙니다. 원조에 대한 예의 아니겠스비까.
태권도 보십시오. 원조에 대한 예의로 다른 나라 사람 모두 차렷, 쉬어.. 이런 구호로 부르잖습니까.

다만 문법적 틀에서 일본식 표현법을 과도하게 사용하는 것은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적당히 쓰면 충분히 아름다운 문장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심플 라이프
허안화 감독, 유덕화 외 출연 / 이오스엔터 / 2013년 5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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혀(舌)를 말하다                                               


 

한동안 안 먹었으면 아예 먹지 마. 몸에 좋은 것도 아닌데

ㅡ 심플라이프, 허안화

 

 

 

꼬리에 꼬리를 무는 궁금증은 " 바닥 " 이라는 낱말에서부터 시작되었다.  불을 끄고 침대에 누웠다가 문득 바닥'이라는 단어가 생각난 것이다. 내가 시장 바닥에서 일한 지도 어언 2년. 나는 바닥을 생각하다가 박형준 시인이 떠올랐다. 시 << 생각날 때마다 울었다 >> 에는 바닥'이라는 낱말이 유독 많이 나온다. 시 전문이다.


 



 

 생각날 때마다 울었다

        

                                박형준

 

 

 

그 젊은이는 맨방바닥에서 잠을 잤다

창문으로 사과나무의 꼭대기만 보였다

 

가을에 간신히 작은 열매가 맺혔다

그 젊은이에게 그렇게 사랑이 찾아왔다

 

그녀가 지나가는 말로 허리가 아프다고 했다

그는 그때까지 맨바닥에서 사랑을 나눴다

 

지하 방의 창문으로 때이른 낙과가 지나갔다

하지만 그 젊은이는 여자를 기다렸다

 

그녀의 옷에 묻은 찬 냄새를 기억하며

그 젊은이는 가을밤에 맨방바닥에서 잤다

 

서리가 입속에서 부서지는 날들이 지나갔다

창틀에 낙과가 쌓인 어느날

 

물론 그 여자가 왔다 그 젊은이는 그 때까지

사두고 한 번도 깔지 않은 요를 깔았다

 

지하방을 가득 채우는 요의 끝을 만지며

그 젊은이는 천진하게 여자에게 웃었다

 

맨방바닥에 꽃무늬 요가 퍼졌다 생생한 요의 그림자가

여자는 그 젊은이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사과나무의 꼭대기,

생각날 때마다 울었다


 


​이 詩에서 < 맨바닥 > 대신 < 바닥 > 에서 사랑을 나눴다거나, < 맨방바닥 > 대신 < 방 > 에 꽃무늬 요가 퍼지다 라고 했다면, 이 시가 보여주는 처량한 서정'은 획득하지 못했을 것이다. 특히 < 맨방바닥 >  은 변변한 세간살이 하나 없는 텅 빈 < 방 > 을 여러 번 강조한 결과'다. 가난한 방을 강조하기 위해 방바닥'을 선택했던 시인은 성에 차지 않는지 맨방바닥'이라고 다시 한 번 강조한다. 담담하게 " 사랑해. " 라고 고백했다가 다시 " 너무 사랑해 ! " 라고 말했다가 성에 안 찼는지 다시 " 너무너무 사랑해 !!! " 라고 고백하는 꼴이다. 이렇듯 < 맨- > 이라는 접두사'는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는 시적 화자의 경제적 빈곤을 강조한다. < 맨- > 이 사전적 의미로 " 다른 것은 없다 " 는 뜻이라면, < 밑- > 은 보다 낮은 곳을 강조한다. 바닥보다 더 낮은 곳이 밑바닥이다.  

두 단어 모두 결핍'에 대해 말하지만 그 결핍에 다다르는 서정은 사뭇 다르다. 전자는 경제성에 방점을 찍는다면 후자는 정치성에 방점을 찍는다. 그러다가 내 잡념은 흘러흘러 손바닥, 발바닥에 이르게 되었고 결국에는 혓바닥'까지 오게 되었으니, 손등 아래가 손바닥이고, 발등 아래가 발바닥이니 혓바닥은 혀 아래 부분이겠구나. 하지만 내 생각은 틀렸다. 혓바닥은 " 혀의 윗면 " 이란다. 시바, 쓴웃음이 나왔다. 한글 체계는, 역시......    일관성이 없어 !  여기까지는 좋았다. 나는 점점 문학적 상상에서 인문학적 상상으로 빠지기 시작했다. 자, 에헤라 쿵 에헤라 쿵 ! 저쪽으로 노를 저어봅시다. 진보가 새로운 것이나 변화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는 자세이고 보수가 전통적인 것을 옹호하고 유지하려는 자세'라고 한다면,

신체 부위 가운데 혀는 상당히 보수적이라 할 수 있다. < 혀 > 가 새로운 것을 추구한답시고 날마다 새로운 식재료로 새로운 요리를 만들어 먹다가는 죽기 딱'이다. 대부분의 식물은 독소를 가지고 있어서 옛사람들은 먹어도 되는 것과 먹으면 안 되는 것을 구별하였다. 이름에 < 참 - > 이 들어가는 것은 사람이 먹을 수 있는 식재료'다. " 참-" 이라는 접두사가 " 먹을 수 있는 " 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으니까 말이다. 예를 들어 참나리는 식용이 가능하지만 개나리를 잘못 먹으면 배앓이를 할 수 있다. 참나무도 마찬가지다. 갈참나무, 졸참나무, 물참나무 따위에서 열리는 열매를 통틀어서 도토리'라고 하는데 도토리는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이지 않은가. 참나무'라는 낱말은 이 나무에서 열리는 열매는 먹어도 좋소, 라는 옛 사람의 메시지인 셈이다.

그러다 보니 사람들은 늘 먹던 것만, 늘 먹던 것만, 늘 먹던 것만, 늘 먹던 것만, 늘 먹던 것만 × 100  을 먹게 된다. 음식 맛'이란 당대 먹을 수 있는 식재료로 만들 수 있었던 음식을 반복적으로 먹은 결과 얻게 된 중독'이다. 그렇게 본다면 맛이 있기 때문에 그 요리를 자주 먹는다기보다는 그 요리를 자주 먹었기 때문에 맛있다고 생각되는 경우도 발생하게 된다. 세계 악취 음식인 쿠사야(말린 생선. 일본), 취두부(삭힌 두부, 중국), 키비악(바다표범 뱃속에서 삭힌 쇠오리. 그린란드), 에피쿠어(3년 간 숙성시킨 치즈. 뉴질랜드), 삭힌홍어(대한민국), 스르스트뢰밍(삭힌 청어. 스웨덴)를 처음 먹어본 사람은 입에 침이 고이기는커녕 헛구역질이 나서 침을 뱉기 일쑤'다. 이런 음식은 자주 먹어야 비로소 그 맛을 알 수 있다.

혓바닥이 이처럼 보수적이다 보니 음식 문화'도 국수주의 성향을 띠는 것일까 ?  한국인에게 < 김치 > 는 나랏 말쌈이 듕국과 달라 서로 사맛디 아니한 때'부터 시작해서 안으로는 자주 독립을 밖으로는 민주 번영에 이바지하던 때'까지 이어져온 위대한 유산'이기에 자부심이 하늘을 찌른다. 김치 없이는 못 사는 나라'가 대한민국이라고 선전하지만,  글쎄.... 요즘 아이들이 과연 김치 없인 못살까 ? 웃어른들은 요즘 아이들이 김치를 싫어한다고 땅이 꺼져라 한숨을 쉬지만 김치가 한국인의 정체성을 확고하게 만들어 주는 것은 아니다. 당대에 유행했던 언어도 시간이 지나면 사어'가 되듯이 음식도 같은 운명에 처한다. 김치를 폄하할 생각은 없지만 김치'는 세계 어느 곳에서나 쉽게 접할 수 있는 " 야채 절임 " 이다. 

한국에서만 발달한 위대한 음식 문화 유산이 아니라는 점이다. 이러다가는 " 새우깡 " 마저 세계 문화 유산으로 지정해 달라고 떼쓸 판이다. 미안하돠, 새우깡은 일본 과자'가 원조다. 한국인은 일본 사람들이 " 김치 " 를 " 기무치 " 라고 표기하는 것에 대해 강한 반감을 가지고 있으면서, 정작 한국 사회는 한국인에게 " 오뎅()  " 을 " 어묵 " 으로 부르라고 강요한다. 오뎅을 오뎅이라고 했다가는 " 쪽바리 ! " 라는 소릴 듣기 쉽다. 한국인이 " 오뎅 " 을 " 어묵 " 으로 부르기를 강요하는 데에는 " 오뎅 " 이 일본 요리'에 속하기 때문이다. 그 색깔을 은폐하기 위해서 한국인은 오뎅을 어묵'이라고 부른다. 내가 하면 로맨스이고, 남이 하면 불륜인 셈이다. 먹을 땐 개도 안 건드린다는 데, 우리... 음식 문화 가지고 국뽕 놀이'는 하지 맙시다.

김치는 김치이고, 오뎅은 오뎅일 뿐이다. 맛있으면 장땡이다. 독도 문제로 싸우더라도 음식 문제'로 싸우지는 맙시다. 음식 가지고 장난치지 말자는 소리다. 놀라 자빠질 일이지만 : 사실 인간의 혀(입맛)은 수많은 짐승 가운데 쥐'와 가장 유사하다고 한다. 인간이 좋아하는 음식은 대부분 쥐도 좋아한다는 사실 앞에서 무릎 탁, 치고 아, 해야 한다. 사람과 쥐는 모두 달콤한 먹이에 대한 맛을 좋아하는 쪽으로 진화했고, 쓴 음식물과 신 음식물을 싫어하는 경향을 보인다. 왜냐하면 그런 음식물에는 독소가 들어 있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생각해 보니 쥐가 김치'를 맛있게 먹는다는 소리는 들어본 적이 없다. 그뿐이 아니다. 사람과 쥐'는 새것 공포증(NEOPHOBIA)이라는 적응이 다른 짐승에 비해 발달했다.

말 그대로 새로운 음식'에 대한 거부 반응을 뜻한다. 어린아이'들은 처음 보는 음식에 대한 거부 반을을 자주 드러내는데 쿠키를 본 적도 없고 먹어본 적도 없는 아이들은 거무퉤퉤하고 딱딱한 쿠키 앞에서 인상을 찡그릴 것이 분명하다. 쥐도 마찬가지'다. 평소 의심이 많은 쥐는 먹어본 적이 없는 새로운 먹이'는 아주 소량만 맛을 본다. 음식에 독소가 있는지 아닌지를 확인하기 위해서다. 만약에 어떤 먹이'가 몸을 아프게 했다면 다시는 그 음식을 먹지 않는다. 영리한 전략인 셈이다. 사람도 같은 반응을 보이는 경우가 많다.  어릴 때 특정 음식을 먹고 크게 탈이 난 적이 있는 사람은 커서도 그 음식에 대해 거부 반응을 보인다. 음식물 혐오'는 특히 임신한 여성에게서 많이 나타난다. 입덧이 대표적 경우'다.

입덧에 대한 여러 가설 가운데 가장 그럴듯한 가설은 < 입덧 > 이 임신 기간 동안 기형 유발 물질'을 체내에 흡수하지 못하게 하려는 반응이라는 주장이다. 임신한 여자가 거부감을 느끼는 음식은 독소가 많이 함유된 음식이라는 뜻이다. 이를 뒷받침하는 것이 첫 3개월 동안 입덧을 경험하지 않은 여자는 입덧을 경험한 여자보다 자연 유산할 확률이 3배가 높다는 통계가 있다. 입덧은 주로 곡류 음식'보다는 피비린내나는 육류 음식에 집중적으로 나타나는데 임신한 여자가 곡류보다 육류에 대해 크게 거부 반응을 보이는 이유는 고깃덩어리에 병원균과 기생충이 많다는 데 있다. 임신 초기에는 이러한 독소가 아이에게 치명적일 수 있다. 그렇기에 몸이 반응하는 대로 먹는 것은 나쁘지 않다. 다이어트'를 해본 사람은 알겠지만

다이어트를 하게 되면 달달한 것에 대한 유혹이 유독 강하게 작용한다. 열량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철분이 부족하면 몸은 재빨리 철분을 섭취할 수 있도록 혓바닥에 신호를 보낸다. 뜻하지 않은 결과지만 캄캄한 허공에 배를 띄워 노櫓 를 젓다 보니 여기까지 왔다. 잡설을 늘어놓다 보니 마무리는 근사하게 매조지하고 싶었으나 마땅히 떠오르는 글감이 없다가 문득 < 舌 > 이라는 한자를 바라보다가 소 혓바닥 요리'가 생각났다.   < 舌 > 이라는 한자에서 干 : 방패 간'을 牛 : 소 우'로 착각해서 순간 소 혓바닥이 생각났다. 착각에서 비롯된 연상 작용인 셈이다    허안화 감독이 연출한 << 심플라이프 >> 에는 영화 프로듀서인 유덕화가 입주 가정부'에게 소 혓바닥 요리'를 먹고 싶다고 투덜대는 장면이 나온다. 늙은 가정부는 유덕화 집안에서 4대째 가정부로 일하고 있다.

 

말이 가정부이지 가족'이나 다름없다. 늙은 가정부는 투덜대는 유덕화를 달래며 어릴 때 소 혓바닥 요리를 먹고 나서 크게 배앓이를 했기에 그 요리를 먹으면 안된다고 말한다. 그러던 어느 날, 늙은 가정부가 중풍으로 쓰러진다. 그는 고용주로써 최선을 다하기 위해 그녀를 요양원에 입원시키고 비용을 지불한다. 이제 혼자가 된 집주인. 그는 가정부가 했던 " 집안일 " 을 하면서 깨닫게 된다. 하나부터 열까지 가정부의 손길이 닿지 않은 공간이 없다는 사실, 집에 들인 가장 좋은 인테리어'는 사람이라는 사실. 늙은 가정부가 자신을 돌보았듯이, 이제 사내는 중풍으로 쓰러진 가정부를 돌보기 시작한다. 고용주와 피고용주의 관계가 아닌 사람과 사람으로 말이다. 그녀는 유덕화의 보살핌 아래에서 서서히 죽어간다. 이 영화를 아직 보지 않았다면 추천한다.

 

 

낮은 자세로 담담하게 삶을 성찰하는 카메라'가 일품이다. 그 집에 있어서 가장 좋은 인테리어 소품은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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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다맨 2015-04-26 13: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곰곰발님 연상은 언제 보아도 흥미롭습니다. 재미를 불러일으키는 환유적 글쓰기라고 해야 할까요. 박형준의 시에서 시작한 글이 어느새 심플 라이프로까지 이어졌네요. 보진 않았지만, 이 영화는 묵묵한 헌신과 존엄한 죽음을 아주 담담하게 그려낸 영화같네요.

곰곰생각하는발 2015-04-26 14:31   좋아요 0 | URL
일부러 좀 다르게 보자 그런 정신으로다가...
다 비스비스하게 이해하면 재미없잖습니까...
참.. 이 영화 꽤 좋습니다. 국제시장 류의 신파와는 비교를 할 수 없습니다.
시간 되시면 보십시오. 허안화 이 감독 참... 좋은 감독이에요.. 홍콩의 오즈`라고나 할까요 ?ㅎㅎ

2015-04-27 12:5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04-28 05:17   URL
비밀 댓글입니다.

AgalmA 2015-04-28 02: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비누 갉아먹던 쥐는....

곰곰생각하는발 2015-04-28 05:16   좋아요 0 | URL
그건, 그러니깐.. 음... 그게... 비누 맛있습니다. 안 먹어보셨군요 ? ㅎㅎㅎ

프레이야 2015-05-01 08: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참 좋게 보았던 영화 중 하나입니다. 마지막 두 문장도 공감하구요.

곰곰생각하는발 2015-05-01 13:14   좋아요 0 | URL
네. 감성팔이 영화가 넘쳐나서 짜증났ㄴ느데 이 영화는 참.... 섬세하게 감성을 조율하더군요.
감동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