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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플 라이프
허안화 감독, 유덕화 외 출연 / 이오스엔터 / 2013년 5월
평점 :
혀(舌)를 말하다
한동안 안 먹었으면 아예 먹지 마. 몸에 좋은 것도 아닌데
ㅡ 심플라이프, 허안화
꼬리에 꼬리를 무는 궁금증은 " 바닥 " 이라는 낱말에서부터 시작되었다. 불을 끄고 침대에 누웠다가 문득 바닥'이라는 단어가 생각난 것이다. 내가 시장 바닥에서 일한 지도 어언 2년. 나는 바닥을 생각하다가 박형준 시인이 떠올랐다. 시 << 생각날 때마다 울었다 >> 에는 바닥'이라는 낱말이 유독 많이 나온다. 시 전문이다.
생각날 때마다 울었다
박형준
그 젊은이는 맨방바닥에서 잠을 잤다
창문으로 사과나무의 꼭대기만 보였다
가을에 간신히 작은 열매가 맺혔다
그 젊은이에게 그렇게 사랑이 찾아왔다
그녀가 지나가는 말로 허리가 아프다고 했다
그는 그때까지 맨바닥에서 사랑을 나눴다
지하 방의 창문으로 때이른 낙과가 지나갔다
하지만 그 젊은이는 여자를 기다렸다
그녀의 옷에 묻은 찬 냄새를 기억하며
그 젊은이는 가을밤에 맨방바닥에서 잤다
서리가 입속에서 부서지는 날들이 지나갔다
창틀에 낙과가 쌓인 어느날
물론 그 여자가 왔다 그 젊은이는 그 때까지
사두고 한 번도 깔지 않은 요를 깔았다
지하방을 가득 채우는 요의 끝을 만지며
그 젊은이는 천진하게 여자에게 웃었다
맨방바닥에 꽃무늬 요가 퍼졌다 생생한 요의 그림자가
여자는 그 젊은이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사과나무의 꼭대기,
생각날 때마다 울었다
이 詩에서 < 맨바닥 > 대신 < 바닥 > 에서 사랑을 나눴다거나, < 맨방바닥 > 대신 < 방 > 에 꽃무늬 요가 퍼지다 라고 했다면, 이 시가 보여주는 처량한 서정'은 획득하지 못했을 것이다. 특히 < 맨방바닥 > 은 변변한 세간살이 하나 없는 텅 빈 < 방 > 을 여러 번 강조한 결과'다. 가난한 방을 강조하기 위해 방바닥'을 선택했던 시인은 성에 차지 않는지 맨방바닥'이라고 다시 한 번 강조한다. 담담하게 " 사랑해. " 라고 고백했다가 다시 " 너무 사랑해 ! " 라고 말했다가 성에 안 찼는지 다시 " 너무너무 사랑해 !!! " 라고 고백하는 꼴이다. 이렇듯 < 맨- > 이라는 접두사'는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는 시적 화자의 경제적 빈곤을 강조한다. < 맨- > 이 사전적 의미로 " 다른 것은 없다 " 는 뜻이라면, < 밑- > 은 보다 낮은 곳을 강조한다. 바닥보다 더 낮은 곳이 밑바닥이다.
두 단어 모두 결핍'에 대해 말하지만 그 결핍에 다다르는 서정은 사뭇 다르다. 전자는 경제성에 방점을 찍는다면 후자는 정치성에 방점을 찍는다. 그러다가 내 잡념은 흘러흘러 손바닥, 발바닥에 이르게 되었고 결국에는 혓바닥'까지 오게 되었으니, 손등 아래가 손바닥이고, 발등 아래가 발바닥이니 혓바닥은 혀 아래 부분이겠구나. 하지만 내 생각은 틀렸다. 혓바닥은 " 혀의 윗면 " 이란다. 시바, 쓴웃음이 나왔다. 한글 체계는, 역시...... 일관성이 없어 ! 여기까지는 좋았다. 나는 점점 문학적 상상에서 인문학적 상상으로 빠지기 시작했다. 자, 에헤라 쿵 에헤라 쿵 ! 저쪽으로 노를 저어봅시다. 진보가 새로운 것이나 변화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는 자세이고 보수가 전통적인 것을 옹호하고 유지하려는 자세'라고 한다면,
신체 부위 가운데 혀는 상당히 보수적이라 할 수 있다. < 혀 > 가 새로운 것을 추구한답시고 날마다 새로운 식재료로 새로운 요리를 만들어 먹다가는 죽기 딱'이다. 대부분의 식물은 독소를 가지고 있어서 옛사람들은 먹어도 되는 것과 먹으면 안 되는 것을 구별하였다. 이름에 < 참 - > 이 들어가는 것은 사람이 먹을 수 있는 식재료'다. " 참-" 이라는 접두사가 " 먹을 수 있는 " 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으니까 말이다. 예를 들어 참나리는 식용이 가능하지만 개나리를 잘못 먹으면 배앓이를 할 수 있다. 참나무도 마찬가지다. 갈참나무, 졸참나무, 물참나무 따위에서 열리는 열매를 통틀어서 도토리'라고 하는데 도토리는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이지 않은가. 참나무'라는 낱말은 이 나무에서 열리는 열매는 먹어도 좋소, 라는 옛 사람의 메시지인 셈이다.
그러다 보니 사람들은 늘 먹던 것만, 늘 먹던 것만, 늘 먹던 것만, 늘 먹던 것만, 늘 먹던 것만 × 100 을 먹게 된다. 음식 맛'이란 당대 먹을 수 있는 식재료로 만들 수 있었던 음식을 반복적으로 먹은 결과 얻게 된 중독'이다. 그렇게 본다면 맛이 있기 때문에 그 요리를 자주 먹는다기보다는 그 요리를 자주 먹었기 때문에 맛있다고 생각되는 경우도 발생하게 된다. 세계 악취 음식인 쿠사야(말린 생선. 일본), 취두부(삭힌 두부, 중국), 키비악(바다표범 뱃속에서 삭힌 쇠오리. 그린란드), 에피쿠어(3년 간 숙성시킨 치즈. 뉴질랜드), 삭힌홍어(대한민국), 스르스트뢰밍(삭힌 청어. 스웨덴)를 처음 먹어본 사람은 입에 침이 고이기는커녕 헛구역질이 나서 침을 뱉기 일쑤'다. 이런 음식은 자주 먹어야 비로소 그 맛을 알 수 있다.
혓바닥이 이처럼 보수적이다 보니 음식 문화'도 국수주의 성향을 띠는 것일까 ? 한국인에게 < 김치 > 는 나랏 말쌈이 듕국과 달라 서로 사맛디 아니한 때'부터 시작해서 안으로는 자주 독립을 밖으로는 민주 번영에 이바지하던 때'까지 이어져온 위대한 유산'이기에 자부심이 하늘을 찌른다. 김치 없이는 못 사는 나라'가 대한민국이라고 선전하지만, 글쎄.... 요즘 아이들이 과연 김치 없인 못살까 ? 웃어른들은 요즘 아이들이 김치를 싫어한다고 땅이 꺼져라 한숨을 쉬지만 김치가 한국인의 정체성을 확고하게 만들어 주는 것은 아니다. 당대에 유행했던 언어도 시간이 지나면 사어'가 되듯이 음식도 같은 운명에 처한다. 김치를 폄하할 생각은 없지만 김치'는 세계 어느 곳에서나 쉽게 접할 수 있는 " 야채 절임 " 이다.
한국에서만 발달한 위대한 음식 문화 유산이 아니라는 점이다. 이러다가는 " 새우깡 " 마저 세계 문화 유산으로 지정해 달라고 떼쓸 판이다. 미안하돠, 새우깡은 일본 과자'가 원조다. 한국인은 일본 사람들이 " 김치 " 를 " 기무치 " 라고 표기하는 것에 대해 강한 반감을 가지고 있으면서, 정작 한국 사회는 한국인에게 " 오뎅(おでん) " 을 " 어묵 " 으로 부르라고 강요한다. 오뎅을 오뎅이라고 했다가는 " 쪽바리 ! " 라는 소릴 듣기 쉽다. 한국인이 " 오뎅 " 을 " 어묵 " 으로 부르기를 강요하는 데에는 " 오뎅 " 이 일본 요리'에 속하기 때문이다. 그 색깔을 은폐하기 위해서 한국인은 오뎅을 어묵'이라고 부른다. 내가 하면 로맨스이고, 남이 하면 불륜인 셈이다. 먹을 땐 개도 안 건드린다는 데, 우리... 음식 문화 가지고 국뽕 놀이'는 하지 맙시다.
김치는 김치이고, 오뎅은 오뎅일 뿐이다. 맛있으면 장땡이다. 독도 문제로 싸우더라도 음식 문제'로 싸우지는 맙시다. 음식 가지고 장난치지 말자는 소리다. 놀라 자빠질 일이지만 : 사실 인간의 혀(입맛)은 수많은 짐승 가운데 쥐'와 가장 유사하다고 한다. 인간이 좋아하는 음식은 대부분 쥐도 좋아한다는 사실 앞에서 무릎 탁, 치고 아, 해야 한다. 사람과 쥐는 모두 달콤한 먹이에 대한 맛을 좋아하는 쪽으로 진화했고, 쓴 음식물과 신 음식물을 싫어하는 경향을 보인다. 왜냐하면 그런 음식물에는 독소가 들어 있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생각해 보니 쥐가 김치'를 맛있게 먹는다는 소리는 들어본 적이 없다. 그뿐이 아니다. 사람과 쥐'는 새것 공포증(NEOPHOBIA)이라는 적응이 다른 짐승에 비해 발달했다.
말 그대로 새로운 음식'에 대한 거부 반응을 뜻한다. 어린아이'들은 처음 보는 음식에 대한 거부 반을을 자주 드러내는데 쿠키를 본 적도 없고 먹어본 적도 없는 아이들은 거무퉤퉤하고 딱딱한 쿠키 앞에서 인상을 찡그릴 것이 분명하다. 쥐도 마찬가지'다. 평소 의심이 많은 쥐는 먹어본 적이 없는 새로운 먹이'는 아주 소량만 맛을 본다. 음식에 독소가 있는지 아닌지를 확인하기 위해서다. 만약에 어떤 먹이'가 몸을 아프게 했다면 다시는 그 음식을 먹지 않는다. 영리한 전략인 셈이다. 사람도 같은 반응을 보이는 경우가 많다. 어릴 때 특정 음식을 먹고 크게 탈이 난 적이 있는 사람은 커서도 그 음식에 대해 거부 반응을 보인다. 음식물 혐오'는 특히 임신한 여성에게서 많이 나타난다. 입덧이 대표적 경우'다.
입덧에 대한 여러 가설 가운데 가장 그럴듯한 가설은 < 입덧 > 이 임신 기간 동안 기형 유발 물질'을 체내에 흡수하지 못하게 하려는 반응이라는 주장이다. 임신한 여자가 거부감을 느끼는 음식은 독소가 많이 함유된 음식이라는 뜻이다. 이를 뒷받침하는 것이 첫 3개월 동안 입덧을 경험하지 않은 여자는 입덧을 경험한 여자보다 자연 유산할 확률이 3배가 높다는 통계가 있다. 입덧은 주로 곡류 음식'보다는 피비린내나는 육류 음식에 집중적으로 나타나는데 임신한 여자가 곡류보다 육류에 대해 크게 거부 반응을 보이는 이유는 고깃덩어리에 병원균과 기생충이 많다는 데 있다. 임신 초기에는 이러한 독소가 아이에게 치명적일 수 있다. 그렇기에 몸이 반응하는 대로 먹는 것은 나쁘지 않다. 다이어트'를 해본 사람은 알겠지만
다이어트를 하게 되면 달달한 것에 대한 유혹이 유독 강하게 작용한다. 열량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철분이 부족하면 몸은 재빨리 철분을 섭취할 수 있도록 혓바닥에 신호를 보낸다. 뜻하지 않은 결과지만 캄캄한 허공에 배를 띄워 노櫓 를 젓다 보니 여기까지 왔다. 잡설을 늘어놓다 보니 마무리는 근사하게 매조지하고 싶었으나 마땅히 떠오르는 글감이 없다가 문득 < 舌 > 이라는 한자를 바라보다가 소 혓바닥 요리'가 생각났다. < 舌 > 이라는 한자에서 干 : 방패 간'을 牛 : 소 우'로 착각해서 순간 소 혓바닥이 생각났다. 착각에서 비롯된 연상 작용인 셈이다 허안화 감독이 연출한 << 심플라이프 >> 에는 영화 프로듀서인 유덕화가 입주 가정부'에게 소 혓바닥 요리'를 먹고 싶다고 투덜대는 장면이 나온다. 늙은 가정부는 유덕화 집안에서 4대째 가정부로 일하고 있다.
말이 가정부이지 가족'이나 다름없다. 늙은 가정부는 투덜대는 유덕화를 달래며 어릴 때 소 혓바닥 요리를 먹고 나서 크게 배앓이를 했기에 그 요리를 먹으면 안된다고 말한다. 그러던 어느 날, 늙은 가정부가 중풍으로 쓰러진다. 그는 고용주로써 최선을 다하기 위해 그녀를 요양원에 입원시키고 비용을 지불한다. 이제 혼자가 된 집주인. 그는 가정부가 했던 " 집안일 " 을 하면서 깨닫게 된다. 하나부터 열까지 가정부의 손길이 닿지 않은 공간이 없다는 사실, 집에 들인 가장 좋은 인테리어'는 사람이라는 사실. 늙은 가정부가 자신을 돌보았듯이, 이제 사내는 중풍으로 쓰러진 가정부를 돌보기 시작한다. 고용주와 피고용주의 관계가 아닌 사람과 사람으로 말이다. 그녀는 유덕화의 보살핌 아래에서 서서히 죽어간다. 이 영화를 아직 보지 않았다면 추천한다.
낮은 자세로 담담하게 삶을 성찰하는 카메라'가 일품이다. 그 집에 있어서 가장 좋은 인테리어 소품은 사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