僾
어렴풋할 애
1. 어렴풋하다
2. 방불하다(거의 비슷하다)
3. 흐느껴 울다
4. 숨다
숨어서 흐느껴 울 애
내 첫 번째 닉네임'은 " 페루애 " 였다. 여기서 -애'는 한자로 < 僾 : 어설프다, 흐느껴 울다, 숨다 > 라는 뜻으로 人 + 愛 가 결합한 모양새다.
이 한자'를 처음 보았을 때 무릎 탁, 치고 아, 아아 했다. 그리워하는 것이다. 가까이 하기엔 너무 먼 당신을 생각하니 흐느껴 울고 싶다. 이 처절한 비통이 < 僾 > 라는 한자에 담겨 있다. 그것은 이루어질 수 없는 것, 그래서 이루어지지 않은 첫사랑, 혹은 짝사랑하는 대상 곁을 남모르게 서성거렸던 날들에 대한 아픈 기억이 아닐까 ? 사랑'은 < 명사 > 가 아니라 < 동사 > 라는 말도 있지만, 내가 보기에 사랑은 < 명사 > 도 아니고 < 동사 > 도 아니다, < 부사 > 에 가깝다. 이해하기 어렵다면 " 부사의 종류 " 를 나열하다 보면 이해가 빠르다. 오로지, 다만, 애오라지, 결코, 마땅히, 매우, 반드시, 차마, 너무, 아무쪼록, 부디..............................
누군가를 사랑하게 되는 순간, 러브레터 속 문장은 이러한 부사들로 채워진다. 부사는 감정적 대응의 결과물'이다. " 열병 " 은 무미건조한 일상의 문장에서 균형을 잃은 부사를 호명한다. 내가 < 僾 > 라는 한자'를 처음 보았을 때 떠오른 이미지'는 짝사랑하는 사람 앞에 서지 못하고 주변을 맴도는, 어떤 신파극의 한 장면이었다. 숨죽여 바라보다가, 흐느껴 울다가, 어느덧 세월은 흘러 어렴풋해지는 통속과 신파의 애상 말이다. 그는 사랑하는 사람에게 보내는, 부치지 못한 편지에 수많은 문장을 썼다 지우고 썼다 지웠을 것이다. 내가 아는 범위 안(독서 경험)에서 문장 속에 부사가 가장 많이 사용된 문학 작품은 슈테판 츠바이크의 << 모르는 여인으로부터의 편지 >> 였다.
낯선 여인'이 바람둥이 소설가에게 보낸 스물다섯 장의 애절한 편지는 < 결코 저를 모르는 당신께 > 라는 문장으로 시작해서 < 부디 안녕히 ! > 로 끝난다. 이 < 결코 > 와 < 부디 > 라는 부사'에는 < 애증僾憎 흐느껴 울 애, 미워할 증 > 이 엿보인다. 낯선 여인은 짝사랑(愛)하는 사람(人) 때문에 멀리서 연정을 품었으리라, 흐느껴 울었으리라. 낯선 여인은 편지를 통해 애절한 짝사랑을 고백하지만 이 고백은 사랑을 숨긴 증오'였다. 편지를 다 읽고 난 소설가 R은 회한에 사무친다. 편지 속에 " 사랑하는 당신....... " 이라는 문장이 반복될 수록 R은 보다 더 고통스럽다. 사랑의 반대말은 미움'가 아니라 사랑'이었다. 이 소설이야말로 제대로 된, 아름다운 신파'였다. 슈테판 츠바이크의 << 모르는 여인으로부터의 편지 >> 는 신파'가 예술이 될 수 있다는 점을 명확하게 보여준 소설이었다.
페루애란 닉네임은 운명적으로 싸구려 신파의 과잉 - 격정 - 서정 - 맬로 - 스펙타클 - 하이 퀄리티 - 새드 - 할리퀸 - 로망스 스토리'를 담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나는 최루성 멜로 분위기와는 달리 싸움닭 기질이 농후해서 자주 구설수에 오르곤 했다. 페루애라는 드라마는 < 멜로 > 보다는 < 법정 드라마 > 장르에 가까웠던 것이다, 시바 ! 천성적으로 불알후드의 밤꽃 작렬하는 개수작을 경멸했던지라 그들에게 지랄을 하다 보니 적(敵)이 생기기 시작했고, 적은 페루애'를 오해하기 시작했다. " 페루애, 남미새끼 ! 너희 나라로 짜져 ! " 밤꽃 작렬하는 불알후드들은 페루애'에서 < 僾 : 어렴풋할 애 > 를 < 童 : 아이 동 > 로 오해한 것이다. 김칫국에 밥 말아 먹고 자란 놈이라고 커밍아웃하고 싶었지만 굳이 그럴 필요는 없었다.
대한민국에 대한 애정'이 없으니 남미 새끼'라는 말에도 그닥 불쾌한 마음은 들지 않았다. 나 또한 지지않고 친애하는 적에게 앙칼진 말방구를 띄웠다. " 그래, 나 옥수수에 야마 고기 먹고 자란 남미 인디언 새끼'다 ! 갈라파코스 섬 2대 추장이신 " 날마다 까진 무릎 "의 증손자이며 " 어쩌다 낳은 한숨 " 의 셋째 아들이 바로 나'이올시다. 됐냐 ? " 결국 나는 한국이 싫어서 이름을 " 곰곰생각하는발 " 로 개명하기로 했다. 이름을 지으면 의미 부여'를 하는 습관이 있어서 오이디푸스에 대한 오마쥬'라고 우기고 싶다. 오래 걸으면 항상 발이 붓고는 했는데, 오이디푸스가" 부은 발 " 이란 뜻이니 일맥상통하는 구석이 있다 ㅡ 하겠다.
둘 중 어느 이름으로 불러도 좋다. 당신이 내 이름을 부른다면 나는 당신에게 다가가 꽃이 되겠다. 꽃 둏고 여름 한 신록이나 가뭄으로 논바닥이 쩍쩍 갈라져 농부들은 흉년을 걱정하는 지금이다. 하지만 정치권은 지랄이 풍년이다. 21세기 대한민국 정치는 어느덧 씹할 세기'로 추락한 느낌이 든다. 18세기 같은 21세기'를 버틴다는 것은 슬픈 일이다. 친애하는 이웃이여, 그리고 친애하는 나으 불알후드여 ! ( 당신의 강철 자지를 변두리 횟집 수족관에 갇힌 꾀죄죄한 개불 같다고 조롱한 점, 이 자리를 빌려 사과하련다. 당신의 지적 옳다. 이젠 내 기억을 내가 믿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 몸성히성히성히성히성히~ 잘 계시라. 그리 멀지 않은 먼 훗날, 나는 말 타고 비단 구두 한 켤레 사가지고 당신에게 가리라. 부디 건강들 하시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