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야 식당 : 純하리?
- 현장을 뛰어다니며 만든 글이 아니라 책상 앞에서 문장을 만드니 위로는 졸라 뽕끼 작렬하는데 와 닿지가 않는다. 발성이 어버버버버한 배우만을 탓할 일은 아니다. 88세대를 위로한답시고 내놓은 작가의 대사나 통곡을 강요하는 연출가나 도긴개긴이다. 영혼 없는 위로와 힐링'이 삐딱하게 빠지면 좆되는 경우를 지금 당신은 보고 있습니다. 밝은 방송, 좋은 방송. 에쑤비에스....
내가 혐오하는 것 가운데 하나가 “ 순혈주의 ” 다. < 혈통 > 과 < 뼈대 > 라는 “ 포대기 신파 ” 에 질려버렸다. 내 새끼를 위해서라면 그 어떤 일도 할 수 있다는 억척 어멈 모성 신화는 한국 사회의 병폐’다. < 억척 > 은 미덕이 아니라 부덕에 속한다. 좋게 말하자면 순혈이고 나쁘게 말하자면 우생학‘이다. 과도한 애국심은 타자에게는 공포와 폭력이 될 수 있다는 점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이 < 순혈 > 은 순수, 전통, 원조, 재래’라는 단어로 변형되어 혼용, 개량, 외래라는 단어와 반대 개념으로 사용된다. 그런데 100% ~ , 전통 방식, 원조 맛집 따위로 간판을 내건 광고일수록 가짜인 경우가 많다. 장충동 왕족발 거리’를 걷다 보면 원조가 아닌 음식점이 없다. 원조란 으뜸이라는 차원을 떠나서 “ 오리지널 ” 이란 의미인데,
도대체 이 수많은 원조는 어떻게 설명되어야 할까 ? 우리가 흔히 사용하는 < 전통 > 이란 말도 따지고 보면 재래와 외래가 서로 섞이는 현상에 대한 신경질적 반응이라 할 수 있다. “ 전통 ” 이라는 명사가 붙는 순간 프리미엄이 더해진다. 종종, < 전통 시장 > 이라는 낱말 조합을 보면 의아한 생각이 든다. 시장은 시장일 뿐이지, 도대체 전통 시장‘이라는 말은 무슨 의미일까 ? 전통 음식’이라는 말도 이상한 조합이다. < 전통 > 이 < 옛것 > 이라는 의미라면 전통 음식은 옛날부터 내려온 음식‘이라는 뜻인데, 요즘은 전통 음식이 건강 음식으로 통용된다. 하지만 이 지점에서 모순이 발생한다. “ 식사하셨어요 ? ”가 안부를 묻는 인사말이 될 정도로 굶주린 사회’에서 어렵게 구한 식재료로 만들었던 옛 음식‘이 과연 웰빙 음식’이 될 수 있을까 ?
못 먹던 시절에 먹던 개떡은 웰빙 푸드‘가 아니라 그 시절에는 구황 음식이었을 뿐이다. 모든 것은 시간이 지나면서, 재래와 외래가 교류하면서 섞인다. 그것은 타락이 아니다. 한자로 구성된 한글 단어‘를 타락한 언어로 인식하는 태도도 삐뚤어진 근성이다. 모든 언어는 오염된다. 그 오염은 타락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어휘를 풍부하게 만든다. 영어가 언어 권력으로 군림하는 원인에는 라틴어를 적극 끌어들여서 어휘력을 풍부하게 만들어진 점을 부인할 수 없다. 한글도 마찬가지다. 한자의 유입은 한글을 오염시킨 것이 아니라 어휘를 풍부하게 만들었다. 음식도 마찬가지다. 재래의 식재료와 외래의 식재료가 섞여서 새로운 요리로 발전했다. 맥적은 너비아니로, 너비아니는 불고기로 조금씩 변화했다.
시대에 따라 그 시대에 손쉽게 얻을 수 있는 식재료로 요리를 만든다. 그것을 두고 과연 오염이나 타락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 " 맥적 " 이 타락한 결과물이 " 불고기 " 일까 ? 웃긴 일. 하하, 비웃어도 된다. 이제는 순수한 사람에 대한 대중적 집착도 버려야 한다. 만화 << 심야 식당 >> 을 원작으로 한 드라마가 동명의 SBS드라마 << 심야 식당 >> 이다. 관건은 일본 요리 중심인 원작을 어떻게 << 식객 >> 처럼 한국 요리'를 풀어서 설명하느냐는 것이다. 에둘러 말하지 말고 서들러 말하자면 첫 단추부터 망한 것처럼 보인다. 두 번째 에피소드는 " 메밀전 " 이었다. 왕년에 잘나가던 여배우였던 심혜진이 메밀전을 앞에 두고 이렇게 말한다. " 맞벌이 부모를 둔 덕에 동생들이 배가 고프다고 투덜대면 늦은 저녁 밤, 메일전을 부쳐 먹고는 했지요. 그때 먹었던 메밀전 맛을 잊지 못해요. 마스터가 요리한 메밀전은 깊고 따스한 맛이에요. "
크게 웃었다. 앞뒤 사정 모르는 아이들이 이 방송을 본다면 메밀 가루를 밀가루처럼 흔히 얻을 수 있는 식재료로 오해했을 것이다. 발로 현장을 취재하지 않고 책상머리 앞에서 글을 쓰면 이 꼴이 된다. 드라마 작가는 메밀이 꽤 손이 많이 가는 식재료라는 사실을 모르는 모양이다. 김치전이라면 이해는 간다만 메밀전이라...... 원작도 마찬가지지만 드라마 속 심야 식당은 순수한 사람 집합소'다. 그래도 원작은 만화이니 이해가 가는 대목이지만 현실을 반영해야 하는 드라마는 사정이 다르다. 순수한 사람에게 눈길이 한 번 더 가는 것은 인지상정이지만 심야 식당 주소를 서울시 종로구 순하리'로 설정하는 것은 현실 감각이 떨어진다. 이제는 그 순수함에 대한 찬양을 버려야 한다. 순수에 대한 찬양도 알고 보면 순혈의 변형이기 때문이다.
나는 오염된 맛이 좋다. " 마스터, 요리를 망칠 땐 마법의 라면 스프가 있답니다 ! " 언제부터인가 먹방과 요리 대결 프로그램이 대세가 되었다. 삼시 세 끼'로는 해결될 수 없는 마음의 허기가 있기 마련이다. 요리 방송 열풍은 한국 사회가 허기 사회라는 점을 증명한다. 아니, 아사(餓死) 상태의 기아(飢餓) 사회'라는 말이 더 적확한지도 모르겠다. 쓸쓸한 일이다. 허기 사회 앞에서 MSG가 아닌 싱싱한 식재료로 국물 맛을 내는 음식점을 찾아나서고, 밀가루가 섞이지 않은 메밀국수를 찾아나서고, 100% 도가니로 만든 수육을 찬양하는 것은 배부른 소리 같다. 이따위 순혈 예찬은 지나가는 민들레에게 주시라. 배려심 많은 사람이면 좋지만 배려심이 없는 사람이어도 좋다. 긴 생머리에 눈깔 곱게 내리까는 순종적인 여자가 아닌 약간 타락한 여자여도 좋다.
그리고 매사에 삐딱해도 되고, 아기 엄마가 보는 앞에서 지구가 내일 멸망했으면 좋겠다고 고백하는 철없는 넋두리에도 비판은 하지 말자. 타락한 사회에서 착한 사람으로 살기를 강요하는 것이야말로 웃긴 일이 아닐까 싶다. 진흙 속에 핀 연꽃이 되라고 하기 전에 연꽃이 필 수 있는 아름다운 연못을 먼저 만들어 달라고 지적하자. 언제까지 우리가 성골(聖骨)의 시다바리나 하는 착한 성골(成骨)이 되어야 할까. 적, 당히... 눈치껏, 각자, 알아서, 삐뚤어지시라 !
덧대기
그래도 소주는 빨간 두꺼비'가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