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    :   아저씨와  선생님


                                                 한국인은 밥을 좋아한다. 모 가수는 라면에 김치가 없었더라면 무슨 맛으로 라면을 먹을까, 라며 한숨을 쉬었지만 배부른 소리'다. 우리에게 밥이 없었더라면....... 아,  상상할 수 없구나.  가수 이선희는 노래 < 아름다운 강산 > 에서 밥을 대놓고 찬양했다. " 밥, 밥, 밥, 밥, 밥 ! 봐라, 봐라, 봐라, 밥 ! "  신세대 아이돌 그룹도 동참한다. 크레용팝은 << 밥밥밥 >> 에서 다음과 같이 노래한다. " 밥,밥,밥,밥,밥, 바바바밥... " 밥을 찬양한 사람은 그뿐만이 아니었다. 삼일절이면 쇼바 높이 올린 오도방을 끌고 나온 폭주족들이 분노의 도로를 질주하며 외쳤다. " 봐라, 봐라, 봐라, 밥 ! " 이처럼 남녀노소 모두 밥을 좋아한다. 밥이 한국인에게 인기 있었던 이유는 그림을 쉽게 가르쳐준다는 데 있다. 그를 따라하다 보면 근사한 그림을 완성할 수 있다. 그가 웃으면서 말한다. " 참, 쉽쥬 ? "

그림을 가르쳐주는 남자, 화가 밥 로스 씨 이야기'다. 우리는 그를 " 밥 아저씨 " 라 부른다. 밥은 밑그림 없이 바로 유화 물감으로 그림을 그렸다. 더군다나 30분 속성으로 말이다. 유화 물감 특성상 작업 시간이 길다는 점은 감안하면 놀라운 속도'다. 페인트 붓처럼 넓은 붓으로 한 번 스윽, 붓질을 하면 구름이 되고 나무가 되고 물 위의 반영이 되었다. 마술 같다고나 할까 ?  그가 항상 말하고는 했다. " 그림을 그릴 때 실패할까, 걱정하지 마세요. 다시 그리면 되니까....... " 돌이켜보면 그가 그린 그림은 < 이발소 그림 > 이었다.  제2의 피카소가 되겠다는 결심'을 가지고 열심히 밥 아저씨가 가르쳐 주는 대로 그림을 그렸다가는 좋은 화가가 될 수는 없었을 것이다. 기껏해야 이발소에 걸릴 그림이니까. 하지만 이런들 어떠하고 저런들 어떠하리 !

밥 아저씨가 가르쳐준 것은 피카소 같은 위대한 그림을 그릴 수 있는 기술이 아니라, 누구나 그림을 그릴 수 있다는 자신감이었다. 집밥 백선생은 밥 아저씨의 재림'이다. 그는 음식 만들기에 자신이 없는 88세대'에게 음식을 쉽게 만들 수 있는 비법을 가르쳐준다. 밥 아저씨'가 " 참, 쉽쥬 ? " 라고 말한다면, 백선생(혹은 백주부)은 " 그럴싸하쥬 ? " 라고 말한다. 여기서 < 참 쉽쥬 ? > 와 < 그럴싸하쥬 ? > 는 같은 말이다. 그들은 모두 < 오리지날 > 에 대한 욕심'보다는 < 복사본 > 에 만족한다. 백선생의 " 그럴싸하쥬 " 라는 표현은 원본에 대한 100% 재현이 아니라 2% 부족한 재현이지만, 이 2% 부족한 결과에 대해 스스로 만족한다. 왜냐하면 짧은 시간 안에 원본에 가까운 재현에 성공했기 때문이다.

밥 아저씨가 말하는 " 참, 쉽죠 ? " 와 같은 심리적 동인이다. 시간 대비 결과에 만족하기 때문이다. 30분을 투자해서 그럴싸한 그림이 만들어졌으니 그것에 만족한 것이다. 만약에 그가 1년에 걸쳐 그린 작품이 그저 " 그럴싸한 수준 " 에 그쳤다면 만족했을까 ? < 백선생의 집밥 음식 만들기 > 가 관통하는 것은 오리지널'에 대한 강박에서 벗어나기'이다. 그가 자주 사용하는 입말인 < 그럴싸하쥬 > 와  <고급지쥬 > 는 오리지널을 욕망하지만 그럴 수 없는 짝퉁을 위로한다. 불초(不肖)는 아버지를 닮지 않았다는 뜻이다. 불초는 자신이 이상적인 존재라 믿는 아버지(오리지널, 그럴싸한 것의 대상, 고급진 것의 대상)를 닮지 못한 아들의 한(恨)이 서린 단어다. 그래서 불초소생(不肖小生)이라는 말에는 1인자가 되지 못한 2인자의 설움이 담겨 있다.

그런데 백선생의 음식에는 그러한 열등감이 없다. 그는 처음부터 호텔 요리에 대한 욕망이 없었다. 그는 요리를 만드는 게 아니라 음식을 만든다. 음식을 만들되 요리처럼 보이게 만드는 것이 바로 백선생의 레시피'다. 먹고 사는 게 힘든 88세대'에게 이 레시피는 작은 위안을 준다. 아버지를 닮지 않았다는 게 죄는 아니다. 밥 아저씨와 백선생의 공통점은 30분 안에 그림(음식)을 완성한다는 점이다. 아, 그리고 또 하나. 실수에 대한 긍정이다. 실수해도 괜찮다. 다시 하면 되니까 ! 배움의 모든 시작은 두려움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야구에서 처음 배우게 되는 것은 기술이 아니라 두려움에 대한 극복이라고 한다. 공에 대한 두려움에서 벗어나야 비로소 기술을 배우게 된다. 그 아무리 방망이 휘두르는 기술이 뛰어나다 한들

공에 대한 두려움을 가진 타자는 결코 좋은 선수가 될 수 없다. 마찬가지다. 밥 아저씨와 백선생은 그림과 음식에 대한 두려움을 벗어나게 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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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DOKU 2015-07-23 12: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밥, 밥, 밥, 밥, 밥 ! 봐라, 봐라, 봐라, 밥 ! 에서 터졌습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5-07-23 17:40   좋아요 0 | URL
클론도 꿍따리사바라에서 밥을 좋아했다고 고백했습니다.

꿍따리 사밥밥, 사밥밥..

수다맨 2015-07-23 13: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백종원을 그다지 좋아하지는 않지만ㅡ정확히 말하면 티브이를 거의 보지 않기 때문에 그가 정확히 무엇을 만드는지도 잘 모릅니다ㅡ오늘날 대중들이 그에게 열광하는 이유를 단지 미식에 대한 무지나, 자극적 음식에 대한 말초적 열망으로 돌리는 태도는 확실히 문제가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차라리 백종원이 어떻게 대중들의 `유사 엄마`가 되었고, 다수 대중이 값비싼 고급 음식보다 간단하면서도 (그럭저럭) 만족스러운 끼니 해결을 얼마큼 바라는지 분석하는 게 더 중요한 과제가 아닐까 싶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요리를 만드는 게 아니라 음식을 만들`며, `음식을 만들되 요리처럼 보이게 만드는 것`이라는 말씀은 정곡을 찌르는 진단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5-07-23 17:42   좋아요 0 | URL
사실 한식대첩 같은 요리는 그림의 떡이죠.
요리하기 위해서 문어 60만 원 주고 사오면 그림의 떡 아니겠습니까.
입에 침이 고이기는 하지만... 어디까지나 비현실....

백선생은 고걸 충족시켜주는 묘한 공감이 있습니다. 요리가 쉬워진다고나할까요....ㅎㅎ

요리와 음식을 구별했는데 요리는 뭔가 좀 고급스러운 레스토랑 느낌이고 음식은 집에서 먹는 일상적 먹거리`이고요...
 
[블루레이] 동사서독 리덕스 - Wong Kar Wai Collection Vol.6
왕가위 감독, 장만옥 외 출연 / 이오스엔터 / 2014년 11월
평점 :
품절


 

 

 

 

 

 


 



 



동사서독   :   사막이 비록 죽은 짐승

모래알을 넣어주는 바람 뿐이라 해도

 




 

복사꽃을 본 지 오래되어서 다음해 맹무살수의 고향에 갔다. 하지만 그곳엔 복사꽃은 없었다. 복사꽃은 처음부터 없었다는 걸 떠날 때에야 깨달았다. 복사꽃은 그 여자의 이름이었다. 그녀의 눈물을 보고 나서야 황약사가 날 찾아왔던 이유를 알았다.

 

- 동사서독, 구양봉(장국영)의 독백 中

 
 


 

주요 등장인물

▶ 구양봉(장국영) : 일명 서독. 백타산의 고수였으나 지금은 사막의 살인청부 알선자이자 은둔자로 산다. 실연의 아픔을 지니고 있다.
▶ 황약사(양가휘) : 일명 동사. 매해 봄이 되면 동쪽에서 말을 타고 찾아오는 구양봉의 친구. 기억을 지워주는 술 취생몽사를 들고 와서는 저 혼자 마시고 떠나버린다.
▶ 모룡연/모룡언(임청하) : 황약사를 사랑했던 여인. 하지만 버림받은 뒤로는 두개의 분열된 인물, 오빠 모룡연, 여동생 모룡언으로 살고 있다. 두 인격체가 번갈아 구양봉을 찾게 된다.
▶ 맹무살수(양조위) : 한때는 무림 고수였으나 지금은 눈이 멀어져가고 있는 맹인 무사. 마적 떼와 상대하다 결국 죽는다.
▶ 완사녀(양채니) : 동생이 억울한 죽임을 당하자 구양봉을 찾아와 원수를 갚아달라고 청하는 가난한 여인.
▶ 홍칠공(장학우) : 완사녀의 청을 받아 복수를 해주고 홀연히 떠나가는 협객. 훗날 구양봉과 맞서게 된다


[네이버 지식백과] 동사서독 [東邪西毒] (세계영화작품사전 : 무협 영화, 씨네21)에서 발췌



왕가위 영화 가운데 제일 많이 본 영화는 << 아비정전 >> 이었다. 40번 넘게 보았는데 어느 순간부터 질리기 시작했다. 그것은 마치 연애 기간이 4년 차에 접어든 연인들이 느끼게 되는 권태와 닮았다. 40번 넘게 보다 보니 단점이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처음에는 당혹스러웠다. 하지만 받아들이기로 마음을 먹자 결정은 신속했다.

히틀러가 자주 사용했다는 입말을 빌리자면 : 얼음처럼 차갑게, 그리고 번개처럼 재빨리1 << 아비정전 >> 과 결별하였다. " 안녕, 아비정전 ! 개똥에 쌈 싸 드셔 ~ " 내가 보기에는 왕가위 감독이 연출한 영화 가운데 완성도가 가장 뛰어난 작품은 << 화양연화 >> 였고, 완성도가 가장 떨어진 작품은 << 동사서독 >> 이었다.2  << 열혈남아 >> 와 << 아비정전 >> 으로 승승장구해서 자신만만했던 왕가위 감독이 사막에서 영화를 찍는다는 것이 재앙에 가까우리라는 사실을 깨닫는 데에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왕가위 감독은.......  많이 당황하셨어요. 사막 한가운데 세트를 세운 지 어언 2년,  랭보의 표현을 빌리자면 지옥에서 보낸 한철이었으리라. 시나리오는 즉흥적으로 바뀌기 일쑤였고, 배우들은 영화를 찍으면서도 줄거리를 이해하지 못했다.

결국에는 구양봉을 연기했던 양가휘가 황약사가 되고, 황약사를 연기했던 장국영이 구양봉으로 배역이 바뀌는 극단적 상황에 이르렀다. 이처럼 선장이 길을 잃으니 불만 섞인 목소리가 여기저기서 튀어나왔다. 누군가 말했다. " 왕가위 씨, 개똥에 쌈 싸 드셔 ~ "    출처를 확인할 수는 없으나 미루어 짐작컨대 배우 왕조현이 아닐까 싶다. 주연인 줄 알고 촬영에 참여했으나 알고 보니 엑스트라에 불과했으니까. 이 영화가 불균질적인 텍스트인 것은 감독이 의도했다기보다는 실패에 따른 결과'처럼 보인다.  배우들은 시도 때도 없이 자주 바뀌는 쪽대본으로 인하여 영화에 대한 몰입이 불가능했고,  배역이 바뀌는 바람에 그동안 찍었던 엄청난 분량의 필름은 쓸모가 없어졌다. 감독은 고민에 빠졌다. 그가 선택한 것은 편집의 묘미'였다.

이것저것 넣다 보니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닌 국물 맛이 되자, 최후의 수단으로 라면 스프'로 맛을 잡은 꼴이다. 나에게 영화 << 동사서독 >> 은 실패한 영화'였지만 역설적이게도 바로 그 실패가 주는 " 아우라 " 로 인하여 걸작이 되었다. 실패가 반드시 나쁜 결과를 초래하는 것은 아니다. 실패한 발명품이 나중에는 위대한 발명품이 되듯이 영화도 종종 그런 경우가 있다.  좋은 예가 바로 << 사냥꾼의 밤, 1955 >> 이다. 배우였다가 처음으로 영화를 연출한 찰스 로튼'은 욕심으로 인하여 이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저것도 아닌 애매모호한 영화를 만들었지만 바로 그 점이 이 영화를 위대하게 만들었다. 단정적으로 말해서 << 동사서독 >> 은 실패한 영화이면서 동시에 위대한 영화'다. 이 영화에서 나를 사로잡는 인물은 양조위가 연기한 < 맹무살수 > 였다.


맹인 무사3인 그는 복사골'이라는 장소에 갈 여비를 마련하기 위해 마적 떼와 싸운다. 하지만 하늘은 그를 돕지 않는다. 구름이 태양을 가리자 한치 앞이 어둠이다. 사실, 시력을 잃어 가는 그가 마적 떼와 싸우기로 한 결의는 무모했다기보다는 차라리 자살 행위에 가까웠다. 왜냐하면 처음부터 이 싸움은 이길 수 없는 싸움이었기 때문이다. 무사는 싸우다가 죽기로 결심한 것이다. 그는 칼이 빠른 왼손잡이 도적에게 목이 베인다. 칼 솜씨가 좋은 무사는 적의 목을 벨 때 경쾌한 바람소리를 내는 법. 맹무살수도 한때는 무림 고수여서 적의 목을 벨 때 바람소리를 듣고는 했다. 하지만 그는 도적 떼에게 목이 베이면서 그 소리를 듣는다. 솜씨 좋은 칼잡이가 자신의 목을 벤 것이다. 이 장면에서 나는......  아,  했다. 그는 왜 복사꽃 흐드러진 복사골을 가려고 했을까 ?

 

다음해, 구양봉(장국영)이 복사골'에 갔을 때, 그는 그곳이 복사꽃이 피는 장소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맹무살수가 그리워했던 곳은 장소'가 아니라 여자'였다. 도화桃花(복사꽃)'라는 이름의 아내. 내가 이 장면을 좋아하는 이유는 " 處4의 애상 " 에 있다. 사랑할 때는 보이지 않으나 헤어지고 나면 보이는 것이 바로 < 장소 > 다. 이별 전과 이별 후의 장소는 같지만 동시에 같지 않다. 다시 찾은 장소는 텅 빈 기표로 작용한다. 그 장소는 그(혹은 그녀)와 함께 있을 때에만 의미를 갖는다. 아무리 쾌적한 환경이라 해도 그(혹은 그녀) 없이 홀로 있는 그 장소는, 아이고.... 의미 없다. 그러므로 < 사랑 > 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단어는 < 장소 > 다. 맹무살수가 도화(桃花 : 복사꽃) 라는 이름 대신 복사골이라는 장소를 언급한 것은 그가 그녀를 떠났기 때문이다5 

 

이 장소는 맹무살수에게는 상처'다. 상처(傷處)라는 단어에서 처가 한자로 處인 이유이다. 그 공간을 채울 수 있는 실내장식은 아무것도 없다. 오직 사랑하는 사람만이 채울 수 있는 곳이다. 그렇기에 가장 좋은 가구는 사랑하는 사람'이다. 영화 << 동사서독 >> 에서 사막은 텅 빈 장소'에 대한 은유다. 이들은 모두 사랑하는 사람을 잃고 정처 없이 떠돈다. 사막의 반대말은 정처'다. 이처럼 정처(定處 : 일정한 장소)가 없다는 것은 슬픈 일이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었다는 의미이니까. 나는 이 폐허'가 좋다. 사막이 비록 " 죽은 짐승 귀에 모래알을 넣어주는 바람 뿐6 " 이라 해도 말이다.




  


 

  1. '얼음처럼 차갑게'와 ' 번개처럼 재빨리'는 히틀러가 좋아하는 표현들이었다(히틀러에 붙이는 주석, 제바스티안 하프너
  2. < 타락천사 > 와 < 중경삼림 > 은 작품이라기보다는 소품에 가까우니 제외하도록 하겠다
  3. 맹인 검객이라기보다는 점점 시력을 잃어가는 무사다
  4. 處 : 곳 처
  5. 도화'라는 여인은 바람둥이 황약사(양가휘)와 바람을 피운다. 맹무살수는 그 사실을 견딜 수 없어서 정처 없이 사막을 떠돈다. 맹무살수가 도착하기 전 도적 떼'를 소탕한 이'가 바로 황약사'였다. 그러니까 도적 떼의 2차 공습은 복수를 위해서였다.
  6. 뼈아픈 통증, 황지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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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윗듀 2015-07-22 09: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보고싶던 영화였는데, 잘 읽었습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5-07-22 14:45   좋아요 0 | URL
오, 그렇습꺄... ? 영화 죽이니까 꼭 보셥셔..

heterotopia 2015-07-22 11: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타락천사>는 소품이라 생각하지만, 그래도 왕가위스럽구나라고 생각했던 작품이었던 것 같아요. 공교롭게도... 전 <중경삼림>을 왕가위 영화 중에서 가장 좋아해요. (물론 1부 말고 2부만...) 그나저나 동사서독은 아직 안 봤네요. 동사서독과 동사서독 리덕스는 사뭇 느낌이 다르다는데, 시간만 되면 두 편 다 보고 싶은 생각도 들구요...

곰곰생각하는발 2015-07-22 14:44   좋아요 0 | URL
타락인가 중경인가 아마도 한 작품이 동사서독 촬영이 길어지자 스트레스 받은 감독이 제작비도 충당할 겸해서 만든 영화입니다. 열흘 대충 만들어서 작품 냈는데 그게 대박인 경우... < 동성서취 > 란 영화도 제작비 벌기 위해서 사막에 가둔 배우들을 이용해서 코미디 영화 하나 만든 것입니다. 그것도 제작비 좀 벌어둘려고 했는데 흥행대박 쳤더군요...


리덕스는 너무 설명조`여서 마치 소설 뒤에 있는 작품 해설 보는 느낌이어서 좀 그렇습니다.
리덕스 말고 원판 보십셔...



heterotopia 2015-07-22 15:26   좋아요 0 | URL
예, 참고하겠습니다.

포스트잇 2015-07-22 13: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간의 영화제작상황 얘기를 알고 별 기대하지 않고 보러 갔다가.. 뻑 갔던 영화에요.
이것 저것 넣었다가 안되자 `라면스프로 맛을 잡은`이라는 표현이 어쩜 그리도 딱인지. 기가막히십니다. ㅎㅎ
`라면스프`라는 게 곰발님이나 저같은 사람을 후벼파는 신파 가루더라도 왕가위는 참으로 고급지게 만들더이다.
마지막은 또 어떻구요.
장만옥 얘기는 안하셨네. 장만옥의 부분이 처음엔 허접한 건가 느꼈다가 나중에 다시 생각해보니 영화의 끝에 넣은 이유가 이해되고 영화의 `라면스프` 끝맛 같았네요. ㅎㅎ
다시 보면 우습지 않을까 싶기도 하지만 ..다시 보고 싶네요.

곰곰생각하는발 2015-07-22 14:48   좋아요 0 | URL
고급지게 만들더군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럴싸하쥬 ?

사실 이 영화는 엉망이죠. 장국영 수염 보면 알아요. 어느 때는 수염 길렀다가 다음 장면에는 수염이 없기도 하고... 그게 왜 그러냐 하면 장국영이 처음에는 황약사 했다가 배역을 바꿔 구양봉을 연기했는데 두 캐릭터가 한쪽은 수염이 있었고 한쪽은 수염이 없는 쪽이었다고 하네요... 편집 과정에서 이 둘을 섞었습니다.

양철나무꾼 2015-07-22 17: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글이 이렇게 멋지면 어쩌란 말입니까여?
전 그래도, 아직도, `망기타`땜에 타락천사 애정합니다~ㅅ!

곰곰생각하는발 2015-07-23 09:49   좋아요 0 | URL
글이 좀.... 고급지쥬 ?

물고기자리 2015-07-22 19: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동사서독을 분명 봤을 텐데 기억이 나질 않네요. 제가 김용 소설은 전 시리즈를 다 읽어서 구양봉, 황약사라는 이름만 들어도 반갑거든요^^ 특히 양조위의 연기와 눈빛을 좋아하는데 다시 한 번 봐야겠어요. 화양연화는 정말 멋진 영화죠. 지금도 가끔씩 보는데 훔쳐보는 듯한 카메라 구도와 음악, 색감 등.. 아름다운 영화라고 생각해요~

곰곰생각하는발 2015-07-23 09:49   좋아요 0 | URL
오, 김용 소설 전작주의자시로군요.
 

 

 

 

 







가족끼리 왜 이래


                               남들이 안 볼 때 몰래 버리고 싶은 것 ?   지저분한 쓰레기나 병든 애완동물이 아니다. 기타노 다케시의 정의'에 의하면 그것은 " 가족 " 이다. 말에 뼈가 있는 소리이다(말에 살이 있다고 하면 이상하잖아). 대한민국은 지나치게 가족'이라는 가치를 과대평가하려는 경향이 있다. 모든 문제는 < 가족 간 사랑 > 으로 극복할 수 있다고 주장하니 가족 로맨스는 만병통치약인 셈이다. 하지만 약의 효능이 뛰어나다고 해서 과용하다가는 낭패를 볼 수 있다. 병원 처방전에 따라야지 효과 좋다고 한입에 열 알씩 털어 넣다가는 약물 과용으로 죽을 수도 있다. < 가족 - 치유력 > 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만큼 뛰어난 약효를 발휘하는 알약이 아니다. 아동 학대와 가정 폭력은 대부분 가족 구성원이 중심이라는 점이 그 사실을 입증한다. 가족이라는 이유로 행하는 희생 강요과 내정 간섭은 폭력'이다.

이제는 한국 사회도 가족이라는 가치를 과소평가해야 할 때가 왔다. 오해는 하지 마시라. 한쪽으로 너무 높이 치솟은 불균형을 균형이 잡히도록 바로잡자는 의미에서 과소평가 작업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소리이니까. 이제는 가족끼리 너무 붙어 있지 말고 어느 정도 거리 두기'를 해야 한다. 찰떡 같이 붙다 보면 나중에는 개떡이 된다. 심각한 가정 불화 가운데 상당 부분은 부부 간 관계보다는 시댁과의 불화가 원인인 경우가 많다. 가족 바깥 세력(부부 관계 이외에는 모두 바깥 세력이다)이 가족을 분열시키는 것이다. 이럴 때는 과감하게 불화의 주범인 외세(外勢)와 잠시 결별할 필요가 있다. 화난 어조로 " 가족끼리 왜 이래 ? " 라는 말은 폭력이다. 가족 구성원으로 이루어진 가정은 공동생활이 이루어지는 최소 단위이다. 그리고 사회생활의 연장선이다. 

 

그렇기에 가족 구성원의 사적 영역을 존중할 필요가 있다. sbs 오락 프로그램 동상이몽이 논란이 되고 있는 모양이다. 딸에게 과도한 스킨십을 시도하는 아버지가 방송을 탄 모양이다. 내용인 즉 :  고등학생인 딸이 아버지의 과도한 스킨십(포옹, 키스 요구, 허벅지 만지기, 침대에 함께 눕기 따위) 에 대해 분명하게 거부 의사를 밝혔음에도 불구하고 아버지는 이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한다. 얼굴에 " 가족끼리 왜 이래 ? " 라는 표정이 역력하다. 본인 입장에서는 < 애끓는 가족 로맨스 > 일 뿐인데 딸이 < 에로스, 가족 로맨스 > 로 받아들이는 것에 대해 서운한 모양. 그런데 이 아버지가 내뱉는 항변을 듣다 보면 착각도 유분수라는 생각이 든다. 자신의 스킨십이 딸을 향한 극진한 부성애 표현이라는 말은 " 미이즘(me-ism) " 에 불과하다. 자기중심주의 사고'다. 설령,  그러한 스킨십이 백 퍼센트, 레일, 진짜, 오리지날 부성애라고 해도 받아들이는 사람이 불쾌하다면 그것은 폭력이 될 수 있다. 그는 자기중심주의에서 벗어나 타자의 입장에서 불쾌를 공감할 필요가 있다. 

딸이라서 만진다는 말과 딸 같아서 만졌다 라는 말은 다른 듯하지만 본질은 같은 말이다.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캐디와 피가 섞인 딸은 모두 타자의 몸이다. 내 몸이 아닌 이상은, 내 핏줄이라 하더라도 타자의 몸이다. 그는 그 사실을 깨닫지 못하고, 인정하지 않으려 한다. 누군가가 이 방송을 보고 나서 짧은 감상평을 날렸다. 자기는 조카가 귀여워서 자주 만지는데 커서 거부하면 슬플 것이라고 말이다. 하지만 다 커서 삼촌의 스킨십이 싫다고 할 때까지 자신은 꿋꿋이 만지겠다는, 핏발 선 넋두리였는데 그 결연한 의지 앞에서 할 말을 잃었다. 시바. 왜 사니 ?  라고 묻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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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넷 2015-07-21 14: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신적으로 신체적으로도 성인을 앞두고 있으면 자녀라도 기본매너는 지켜야죠. 저런 스킨십은 너무 과도하네요 으;;;

곰곰생각하는발 2015-07-21 14:47   좋아요 0 | URL
딸이 거부 의사를 밝히면 딱 그것으로 그만두어야지요. 저건 무슨 놈의 고집인지... 나중에 문제가 되니 연출이었다고 하는 모양이던데 그렇다고 바탕이 바뀌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samadhi(眞我) 2015-07-21 14: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등학교 때 자기 딸이 초등 5학년인데 그때까지 같이 목욕한다며 자랑하던 선생이 어찌나 역하던지... 그런 사람은 유독 솔직하기까지 하더라구요.

곰곰생각하는발 2015-07-21 15:03   좋아요 0 | URL
하긴 가족이 다 벗고 목욕을 하는 사람도 있더군요. 이 무슨 놈의 공동체 정신인지는 모르겠으나.... ㅎㅎㅎㅎㅎ 당최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싫다고 하면 싫은 거지.. 왜 자신의 부성애를 딸이 인정해 다오... 흑흑흑... 이런 태도를 보이는 걸까요 ? 사랑에 대한 표현이 굳이 스킨십만으로 이루어지는 것인지 의문입니다.

2015-07-21 15:05   URL
비밀 댓글입니다.

samadhi(眞我) 2015-07-21 15:07   좋아요 0 | URL
자기 내부의 폭력성을 그런 식으로 만만하다 생각되는 자기 식구에게 내보여도 된다고 믿는 거겠죠. 가장을 쉽게 폭로하기 어려우니까요.

samadhi(眞我) 2015-07-21 15:09   좋아요 0 | URL
우웩 토할 것 같아요.

2015-07-22 03:06   URL
비밀 댓글입니다.

지금행복하자 2015-07-21 16: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부모가 해도 싫으면 스탑!! 다 큰 자식이 부모에게 스킨십을 해도 부모가 싫다면 스탑!! 스탑을 스탑으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이유가 뭘까요.
스탑은 스탑!! 그 자체라구요~

곰곰생각하는발 2015-07-22 03:08   좋아요 0 | URL
무조건 상대방이 거부 의사를 표명하면 거기서 끝내야죠. 이걸 가지고 트집 잡으면 골치 아픕니다. 나는 너를 사랑한다. 너는 왜 나를 사랑하지 않는냐.. 이거 좀 어디서 많이 본 서사 아닙니까...

cyrus 2015-07-21 18: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예전에 ‘안녕하세요’ 프로그램에서도 딸에게 뽀뽀하고, 안아주는 것을 좋아하는 아버지가 나온 적이 있어요. 동일 인물은 아닌 것 같고, 도를 넘은 스킨십을 자식을 향한 애정으로 착각하는 아버지가 또 있다는 사실에 충격입니다. 이런 내용을 방송에서 보여주는 것이 불편해요. 가족 성 범죄자들이 이런 이유를 내세워 자신들의 범행을 부인할 우려가 있다고 봐요.

곰곰생각하는발 2015-07-22 03:10   좋아요 0 | URL
좆밥들이 지랄인 풍년인 세계에 살다 보니 기고만장해진 것 같습니다.
스킨십 과도한 새끼치고 좋은 놈 못 봤습니다.

만화애니비평 2015-07-22 09: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랑과 집착은 닮으면서도 다른 미묘한~ 그것이죠

곰곰생각하는발 2015-07-22 14:51   좋아요 0 | URL
요즘 사랑하는 사람은 있으신가요 ?

만화애니비평 2015-07-22 16: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여전히 아스카짜응이죠
 


백주부와 배트맨

                                      난세의 영웅'이라는 말이 있듯이 태평세월에서는 영웅'이 있을 수 없다. 영웅은 세상'을 어지럽히는 악당의 패악질에 의연히 일어나 그들과 싸우는 존재다. 그러니 악당이 아니었다면 영웅이 나서서 그들과 싸울 이유는 없다. 역설적이지만 영웅이 자주 탄생하는 사회는 좋은 사회가 아니다.

그런데 영웅이 많은 사회보다  더 안 좋은 사회는 " 영웅을 갈망하는 사회 " 다. 한국 사회'가 그렇다. 세상은 악당들이 장악했는데 맞짱을 뜰 영웅은 보이지 않는다. 그러다 보니 대중은 영웅을 열망하게 된다. 따지고 보면 열망은 결핍의 결과인 셈이다. 진짜 영웅이 없다 보니 가짜 영웅'이라도 만들어야 한다. 그래야지 쩨쩨한 결핍'이라도 메울 수 있으니까. 비록 그것이 " 헛것 " 이라고 하더라도 심리적 포만감은 발생한다. 환자가 가짜 약을 진짜 약이라고 믿고 먹으면 진짜 약의 효능이 발생하는 심리적 < 뻥 > 을 플라시보 효과'라고 하는데 대중이 진짜 영웅 대신 허수아비'를 내세우는 것도 이와 비슷하다.  대중은 가짜 영웅에게서 위로를 받는다. 영웅이란, 그래요...... 그런 존재'입니다.

요즘 한국 사회가 내세우는 가짜 영웅은 아빠와 엄마'가 대세'다.  흔한 말 가운데 하나가 아빠는 나의 영웅'이란 표현이 아니었던가 ! 슈퍼맨이 없으니 아빠가 영웅이 되어 바지 입고 그 위에 파란 빤스를 걸친다. 신파와 통속이 대세인 한국 사회이니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 아빠는 나의 영웅. 내가 시간 날 때마다 신경숙의 << 엄마를 부탁해 >> 를 까는 이유는 당대를 비판적으로 바라보기는커녕 대중의 허기'를 채우기 위해 가짜 영웅을 들러리'로 내세웠다는 데 있다( 예상치 못한 흥행을 거둔 << 7번 방의 기적 >>도 포함된다. 이 영화는 < 엄마를 부탁해 > 의 아빠 버전이다. 이 영화에서 아빠는 바보이지만 영웅으로 등장한다). 결국 신경숙은 책을 팔기 위해 가짜 약을 판매한 것이다.

신경숙은 약장수다. 여기에 문단은 북 치며 화답을 하니 " 날이면 날마다 쏟아지는 대중소설이 아니에요. 백 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 어, 어어어어어마어마한 걸작입니다. 자, 애들은 가라. 애들은 가라...... "  얼쑤, 니미.... 지랄이 풍년이다. 그런데 말입니다. 여기서 드는 의문 하나. 과연, 악당 때문에 영웅이 탄생하는 것일까 ? 내가 보기에는 악당 때문에 영웅이 탄생하기도 하지만, 반대로 영웅 때문에 악당이 탄생하기도 한다. 좋은 예가 " 일베의 탄생 " 이다. 일베는 좋은 아빠'에게 반기를 든 후레자식들이다. 그들은 386 혹은 486세대로 대표되는 좋은 아빠의 허위'를 보고 자란 세대'다.  자신이 믿었던 영웅의 이중인격을 지켜본 것이다. 정의로운 척하지만 사실은 헛것인 존재. 일베는 진짜 아빠에게서 위선을 본다. 조커가 배트맨에게서 느끼는 혐오와 같다.

팀 버튼의 << 배트맨 >> 시리즈와 크리스토퍼 놀란의 << 배트맨 >> 시리즈는 같은 이야기를 가지고 다르게 접근한다. 팀 버튼이 연출한 << 배트맨 >> 은 악당을 물리치기 위해 배트맨이 등장하지만,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이 연출한 << 배트맨 (이하 다크 나이트) >> 은 배트맨을 물리치기 위해 악당이 등장한다. 그게 그거 아니냐고 반문하겠지만 전혀 다른 접근법이다. 전자는 악당을 제거하기 위해 영웅이 탄생하게 되지만 후자는 배트맨을 제거하기 위해 악당이 탄생하게 된다. 다시 말해서 전자에서 원인이 악당이고 결과가 영웅의 탄생인 반면, 후자에서는 원인이 배트맨이고 그 결과가 악인의 탄생인 셈이다.  그러니까 영화 << 다크 나이트 >> 에서 악인들이 고담을 쑥대밭으로 만든 원인은 " 배트맨 " 때문이다.

배트맨이 존재하지 않았다면 고담은 평화로운 도시'가 되었을 것이다. 일베와 조커가 겹치는 대목'이다. 한국은 아비 없는 사회다. 후레자식들은 좋은 아빠인 척하는 진짜 아빠 대신 가짜 아빠'를 내세운다. 진짜 아빠는 영웅이 아니라 후줄근한 아저씨'라는 사실을 간파한 후다. 백선생(백종원)과 차주부(차승원)가 좋은 예'이다. 그들은 아빠로서 자식에게 권위를 내세우지 않는다. mbc프로그램 << 마이 리틀 텔레비전 >> 에서 백선생은 네티즌의 온갖 지적에 대해 권위를 내세워서 상대방을 윽박지르지 않는다. 초고추장'에게 사과하라는 네티즌의 황당한 주장에도 이렇게 말한다. " 초고추장 님, 미안해유. 헤헤헤 "  그리고 백선생은 자기가 만든 요리'가 진짜 으뜸 요리'라고 강요하지 않는다. 무심한 듯 시크하게 " 그럴싸하쥬? " 라고 말할 뿐이다. 

바로 이 점'이 2,30대 시청자를 사로잡은 비결이다. 이 매력적인 가짜 아빠는 자식들에게 완벽한 것을 요구하지 않는 것이다. 그냥 " 그럴싸하면 된 " 다고 말하며 가끔은 " 있어보이려고 " 하는 욕망을 탓하지 않는다.  위에서도 지적했듯이 열망은 결핍의 증후이다. 한국 대중이 백선생과 차주부에게 열광한다는 사실은 좋은 아빠와 좋은 엄마가 없다는 데 있다. 악식가 황교익은 백선생을 엄마를 대체한 캐릭터라고 지적했지만, 내가 보기에 백선생은 아빠의 대체자'다. 시청자는 진짜 아빠와 가짜 아빠를 교환하고 싶어 한다.  가짜 아빠는 나긋나긋하다. 자식에게 완벽한 것을 요구하지 않는다. 그는 " 괜찮쥬..... 완벽한 놈이 되기보다는 그냥 그럴싸한 놈이 되는 게 속 편한겨. 그려, 안 그려 ? " 라고 묻는다.

시청자들이 이 방송에서 욕망하는 것은 위장(의 포만)이 아니라 위로'다. ​그럴싸하쥬, 라는 유행어'는 시청자를 위로한다. 스펙을 완벽하게 갖추어야만 취업을 할 수 있고 결혼을 할 수 있는 세대'에게 이 " 그럴싸함 " 은 설탕처럼 달콤하다. 어때유, 이 글 괜찮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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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로 2015-07-20 12: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주 괜찮아유~~~~ㅋㅎㅎㅎㅎㅎ

곰곰생각하는발 2015-07-20 12:18   좋아요 0 | URL
곰구만유(고맙구만유)

stella.K 2015-07-20 13: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 그건 난 잘 모르겠고~~오. 아무튼 난 백종원이 좋긴 헙디다.
지는 <마이 리틀...>을 한번인가 두번뿐이 못 봤고, 집밥 보면 그건 남자들을 위한
요리 프로란 생각이 들긴해요.
소유진이 시집 잘 간 것 같아요.^^

곰곰생각하는발 2015-07-21 11:55   좋아요 0 | URL
백종원의 장점은 오리지널을 강조하지 않는다는 점이죠.
없으면 없는 대로, 실수하면 실수한 것대로 만드는 레시피가 인기입니다.
 

 

 

 

 

옛날 어머니 손맛



                                        동네마다 맛집 하나 정도는 있다. 내가 전에 살던 곳에서는 " 닭내장탕 " 이라는 생소한 음식을 단일 메뉴로 내놓는 식당이 있었는데, 식신원정대(꽤 많은 미디어에서 이 집을 소개하고는 했다)에서 다녀간 후 더욱 유명해진 곳이다. 이 집에서 닭내장탕을 먹은 사람들은 이구동성으로 << 옛날 맛 >> 과 << 어머니 손맛 >> 을 외치고는 했는데,        뭔가 작위적인 냄새가 나고는 했다. 치킨의 향미 가운데 팔 할이 기름 맛이라면  ○○ 년 전통을 자랑하는  음식점에서 내놓는 대표 음식의 팔 할은 옛날(어머니) 맛'이다. 일단 사람들은 건강에 대한 관심이 높아져서 조미료가 들어가지 않은,   그래서 감칠 맛이 부족하고 혀끝에서 겉도는 거친 식감을 보이는 음식에 대해 신뢰를 보낸다.

 

< 웰빙 > 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다 보니 감칠 맛이 부족하고 혀끝에서 겉도는 음식을 웰빙 음식으로 생각한다.  입에 좋은 것은 쓰다는 믿음이 작용한 탓이다. 이 믿음에 부합하는 것이 바로 " 사랑과 정성 " 으로 만든 집밥이다. 건강을 생각해서 조미료를 전혀 사용하지 않다 보니 맛은 텁텁하고 쌉싸래하며 슴슴하지만 사랑과 정성이 담긴 건강 음식이라 생각하고 참고 삼킨다. 참고 견디면 아침에 황금 똥을 누리라 !  그런데 이런 주장을 보고 들을 때마다 가난한 사람들은 상대적 박탈감에 빠지게 된다. 사는 게 지쳐서 요리에 많은 시간을 할애할 수 없는 주부들은, 혹은 하루종일 서서 일하는 마트 노동자 주부는 조미료를 대체하기 위한 레시피는 그림의 떡'이다. 조미료 사용을 게으른 레시피로 취급하는 태도는 가난한 자를 불편하게 만든다.

 

백주부의 집밥이 인기를 얻는 이유는 맛을 내기 위해 조미료와 설탕에 의지할 때 오는 죄책감을  백선생이 덜어주기 때문이다. 차주부(차승원)의 << 삼시세끼 >> 가 인기 있었던 이유 가운데 하나는 조미료에 대한 신뢰였다. 그는 마법의 가루를 신뢰했다. 이처럼 백선생과 차주부는 이들에게 구세주다. 이러한 선입견을 심어준 방송이 << 이영돈의 먹거리 x파일 >> 이다. 이 방송은 아예 조미료를 사용하는 음식을 쓰레기 음식으로 규정한 후, 조미료를 쓰지 않는 음식을 파는 식당을 찾아나선다. 웰빙에 대한 관심이 높은 시대를 반영한 히트 상품인 경우다. 이 방송이 유포한 것은 옛날 맛에 대한 판타지'다. 일종의 강박적 순혈주의'인 셈이다. 예를 들면 : 시중에서 파는 밀과 밀가루를 섞는 메밀 국수 요리'를 가짜라서 설정한 후,  100% 메밀로만 만든 국수를 파는 식당을 찾아나선다는 식이다. 그것이 옛날 시골집에서 먹던 맛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날마나 끼니 걱정을 해야 했던 사람들은 왜 100% 메밀로 만든 국수를 먹었을까 ? 건강을 생각해서 ?!  답은 간단하다. 옛날에는 밀가루가 귀했다 !  일반 식당에서 메밀과 밀가루를 섞는 이유는 손님을 속이기 위해서가 아니라 메밀이라는 재료가 끈기'가 없기에 밀가루가 사용된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속사정은 생략한 채 100% 메밀로 만든 국수를 찾아나선다. 순혈에 대한 맹신이 혓바닥도 속이는 것이다. 툭, 툭툭.... 끊어지는 면발'에 침이 고이는 경우는 과연 몇 %나 될까 ? 음식에서도 혼혈에 대한 혐오가 반영된다는 사실은 유괘하지 않다. 혈통이나 뼈대부터 따지는, 이 지긋지긋한 순혈주의'가 100% 라는 이상한 맹신을 낳았다. 우리가 찬양했던 옛날 맛은 최고의 레시피가 아니라 부족한 식재료로 맛을 낸 레시피'였다.

시장이 반찬이라고 허기에 침이 고이면 모든 음식은 맛있다. 그러므로 우리가 생각하는 옛날 맛과 어머니 손맛은 맛이 있기 때문에 맛이 있다고 기억하는 것이 아니다. 옛것은 다 좋은 것이 아니다. 옛것 가운데 좋은 것은 취하고 나쁜 것은 버려야 한다. 옛날 맛이라거나 어머니 손맛으로 극찬을 받았던 << 닭내장탕집 >> 은 작년에 문을 닫았다. 개 사료용 닭내장을 사용했으며 닭 내장의 비린내를 잡기 위해 인체에 치명적인 카바이드'로 세척을 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당신이 그토록 찬양했던 옛날 맛은 개 사료용 닭내장과 석유 화학 약품이 만든 합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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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15-07-20 13: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금은 그 선전이 없어진 것 같은데 작년까지만 해도
<미원> 선전에 미국에서 한식으로 성공한 어떤 여자가 나와서
이 화학조미료에 대한 인식을 바꿀려고 했었죠.
미원은 사탕수수로 만든 거다. 이곳 미국에선 보편적으로 모든 음식에
미원을 쓰는데 한국은 안 그런 것 같더라. 이렇게 맛이 좋은데 왜 안 쓰는지 모르겠다.
뭐 그런 선전을 했었죠. 이젠 먹힐만도 할 텐데 그 선전 오래 가지 못하고 자취를 감췄습니다.

저희집은 이 미원이 초기에 나왔을 때부터 지금까지 계속 먹고 있습니다.
그 선전 아십니까? 잘 기억은 안 나는데,
˝미원, 미원, 미원 우리 우리 엄마뽐내는 요리 솜씨도 할머니 미원 미원이죠.
우리들은 건강한 미원 가족!˝
뭐 그런 노래가 뇌리에 박힐 때부터요. 김창숙인가? 영화 배우 문희 한창 젊고 황정순이 시어머니로 나올 때부터
말입니다. 곰발님 아시려나요? 흐흐.
어쨌든 앞으로도 끊을 생각이 없어요. 전 미원 사랑합니다.ㅋㅋ

곰곰생각하는발 2015-07-20 07:21   좋아요 0 | URL
미원 같은 조미료가 이미 1908년부터 팔렸더군요. 깜놀 ~
그 당시부터 조미료가 맛을 한층 엎그레이드시킨다고 대대적인 선전을 한 모양입니다.
이거 ... 알고 보니 다 조미료 맛이잖습니까.
일본산 조미료 쓰다가 한국 미원을 쓰기 시작한 해가 1955년인가 6년인가 하죠...
그러니깐 나이 좀 있는 양반들이 어머니 손맛이라고 한 것은 대부분 미원 맛이죠....
미원은 안 넣어야 그 옛날 맛을 복원하는 게 아니라는 말입니다.


그나저나.... 그 광고는 모르겠습니다. 미원하면 김혜자 아닌가요 ? 아니구나 다시다지...

samadhi(眞我) 2015-07-19 22: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청국장 맛이 끝내주는 식당에 아무리 많은 사람들이 비법을 알려달라고 해도 가르쳐 주지 않던 할머니가 마지막에 며느리에게만 살짝 비법을 유언하시기를, ˝미원 두 숟갈 반˝이다. 라고 했다는 ˝와탕카˝ 만화를 보고 깔깔댔었죠. 저는 정말 맛있는 식당 가면
˝흠, 조미료 배합이 훌륭한 걸˝ 하고 감탄합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5-07-20 07:22   좋아요 0 | URL
미원이 56년부터 국산으로 팔렸고, 그 전에는 일본 제품이었다고 하니 이미 미원의 역사는 오래된 것입니다.
5,60년대 맛을 그 옛날 맛이라고 하면... 그때도 미원 맛 아니겠습니까...

수다맨 2015-07-20 01: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예전에 친구가 착한 식당이라며 어느 분식집에 데리고 간 적이 있어요. 조미료를 일절 쓰지 않는다고 해서인지 김밥이나 떡볶이 가격을 다른 식당보다 두 배는 더 받더군요. 그래서 비싼 값은 하겠지, 하면서 먹었는데 솔직히 너무 맛이 없더군요. 대체 `착한` 이라는 수식어를 뺀다면 암것도 없는 식당이란 생각만 들었습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5-07-20 07:23   좋아요 0 | URL
미원 많이 넣으면 그렇지 적당히 넣으면 나쁠 것 뭐가 있겠습니까. 이런 판타지는 개나 줘야 함....
노력 나쁘지 않죠.. 사실.... 저희 집도 미원을 사용 안합니다.
단 한번도 맛있다고 느낀 적 없습니다. 저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