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성된 책은 착상의 죽음이다
아 인간이 가진 가능성이란 게 얼마나 무한한 것인가 ! 미완성 작품, 이 작품, 아마 우리들 시대에 있어 가장 의미 있는 작품일지도 모를 이 작품......
-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단편 [ 삐에르 메나르, 돈키호테의 저자 ] 中
못 먹고 못 살던 시절, 밥상 위에서 펼쳐졌던 혈육 상잔은 대개 < 젓가락질 > 에서 시작되었다. 황우석 이전에 그림을 팔아 겨우 고기 반 근을 사들고 집에 와야 했던 가난한 아비의 두 아들이 있었으니, 소생은 어린 나이에도 고기 한 점 더 먹겠다고 뜨거운 고기를 씹지도 않고 삼키는 신기술을 몸소 터득해야 했다. 신공은 21세기 젓가락질이 아니라 20세기 화통(火筒)을 삼키는 내공에 있었다. 식도는 불에 타도 배때기에 고소한 기름은 남으리라. 소생 또한 누대가 대대로 가난한 집 자손이어서 “ 괴기 한 점 ” 앞에서는 영혼을 팔 각오가 되어 있었다. 동생과 나는 고기에 접근하는 방식이 사뭇 달랐다. 동생은 나중에 반찬이 떨어져 맨밥을 먹더라도 일단 고기부터 거덜 내고 보자는 주의였고,
나는 밥 한 숟가락에 고기 한 점씩 고르게 배분해서 밥그릇 비울 때까지 괴기 맛을 음미하자는 주의였다. 집중이냐 분배냐 ? 동생은 독식을 찬양했고, 나는 고른 분배에 방점을 찍었다. 극과 극, 상극이다 보니 형제는 밥상머리에서 흥야항야하기 일쑤였다. 결론은 울며 겨자 먹기로, 나 또한 동생의 전략을 따를 수밖에 없었다. 고기반찬이 나오면 맨밥을 먹는 날이 나날이 늘어갔다. 상투 틀 나이에도 고기에 대한 식탐이 남아 있었다면 밥상머리 앞에서 볼썽사납게 상투 잡고 “ 삐약삐약 ” 할 뻔했다. 훗날, 동생은 정치적으로 우파를 지지했고 나는 좌파를 지지했다. 어릴 때 밥상머리 행동 강령‘이 정치에도 고스란히 반영된 것이다. 우리 형제는 지난 무상급식 논란 때도 다퉜다. 허, 허허허허허허 하면서 말이다.
고기를 앞에 두고 집중이냐 분배냐를 놓고 싸우는 유치한 짓은 하지 않았다. 볼록 나온 올챙이 배를 걱정하며 동치미 국물을 깨작깨작 마셨을 뿐이다. 장족의 발전인 셈이다. 올해 독서 목표는 < 다독 > 이 아니라 < 정독 > 이었다. 씹지도 않고 삼켰던 수많은 책을 부끄러워하며, 뜨신 밥 한 숟가락 위에 고기 한 점 올려놓고 천천히 오래오래 씹어보자는 의도였다. 첫 번째 목표는 스피노자의 << 에티카 >> 를 읽는 것이었는데 일찌감치 포기했다. 만만한 줄 알았으나 만만하지 않아서 이만저만 실만(실망)한 게 아니었다. << 에티카 >> 읽기는 이만 하면 그만 ! < 에티카 읽기 > 은 내가 이 책을 읽기에는 아직 덜떨어진 놈이란 사실만 증명하게 된 계기가 되었을 뿐이었다. “ 이리하여 이 정리는 증명되었다. ”
두 번째 목표 도서는 발터 벤야민의 << 아케이드 프로젝트 >> 였다. 몇 달째 매달리고 있으나 아직 밥그릇을 다 비우지 못했다. 2500쪽 분량이다 보니 진도가 늦어지는 이유도 있지만, 그 이유보다는 < 지적 유희의 최전선 > 을 만났다는 데 있었다. 서지(書誌)의 환락가에서 노는 맛이란 이런 것이다. 읽기를 늦출수록 쾌락은 지연된다. 발터 벤야민이 주목한 아케이드는 보르헤스가 꿈꾼 “ 바벨의 도서관 ” 이며 “ 원형의 폐허 ” 이자 “ 끝없이 두 갈래로 갈라지는 길들이 있는 정원 ” 이었다. 그는 보들레르처럼 만보객‘이 되어서 거리에서 < 시대적 우울 > 을 읽어 나갔다. 다른 점이 있다면 샤를 피에르 보들레르는 거리를 걷는 사람에게 관심을 가졌고, 벤야민은 아케이드 거리 상점 쇼윈도우에 진열된 상품에 보다 더 많은 관심을 가졌다는 점이다.
■ 샤를 피에르 보들레르라는 풀네임을 발음할 때마다 라이너 마리아 릴케의 풀네임이 얼마나 우아한지를 새삼 깨닫게 된다. 문학적 위상으로 보면 둘 다 우열을 가리기 힘들지만 이름을 놓고 보면 릴케의 완승이다. 샤를 피에르 보들레르는 노회한 정치가 이름 같다. 샤를 피에르 보들레르라는 이름을 지어준 그의 아버지에게 < big 엿 > 을 !
책을 읽다가 이해가 필요한 부분은 아케이드 프로젝트 해설서에 해당되는 << 발터 벤야민과 아케이드 프로젝트 / 수잔 벅 모스 지음 >> 를, 보들레르의 << 악의 꽃 >> 과 << 파리의 우울 >>을, 그 외 << 일방통행로 >> 와 데이비드 하비의 << 지리학 >> 서적을 참고하여 각주 읽듯이 번갈아가며 읽다 보니 진도가 더 느릴 수밖에. 끝이 보일 때 기운이 나는 책이 있는가 하면, 끝이 보일 때 아쉬운 책이 있다. 내 경험으로 미뤄 끝이 보일 때(마지막 페이지를 몇 장 남겨두었을 때) 힘이 솟는 책은 역설적이게도 그리 좋은 책이 아니었다. 100킬로 행군 끝에 오는 달콤한 휴식이라고나 할까 ? 고된 행군 끝에 최종 목적지가 보일 때 천 근 만 근 같던 군화가 나비 날개‘처럼 팔랑팔랑 가볍게 느껴지던 순간은 모두 다 경험했으리.
마지막 몇 페이지를 남겨두었을 때 힘이 솟는다는 것은 그 책에 대한 독서 경험이 그다지 유쾌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의미했다. 무엇을 하기에는 너무 늦거나 이른 오후 3시처럼 애매모호한 책이 있다. 읽기를 멈추고 책을 덮자니 내용이 그리 형편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인내를 가지고 읽자니 지루해서 눈꺼풀이 무거워지는 순간. 두 가지 선택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며 읽다가 어느새 끝이 보이는 책이니 즐거운 독서가 아니라는 뜻이다. 영화 << 달콤한 인생 >> 에서 양아치를 연기한 황정민 말투를 흉내 내자면 “ 독서는 고해야, 몰랐어 ? ” 반대로 끝이 보일 때 힘이 빠지는 책은 좋은 책이다. 읽는 내내 즐거웠기에 이별이 아쉬운 탓이다.
<< 아케이드 프로젝트 1,2 >> 를 읽다 보면 아, 하다가 다시 아, 아아 하게 된다. 경탄, 경탄, 경탄의 < 아 > 다. 그는 < 시시껄렁한 문화사 사료 > 에 몰두했지만 그 사유는 독특한 방식으로 정치, 경제, 문화, 예술, 역사, 철학 전 방위로 확장되었다. 그가 주목한 사료들은 거창한 것이 아니었다. 그는 주류 철학자와는 달리“ 문학의 틀을 차용하는 모든 문학 행위 ” 는 쓸모없는 것으로 간주했다( 예외가 있다면 벤야민은 보들레르에게 특별히 관심을 보였다. 보들레르에 대한 카테고리 J는 거의 책 한 권 분량이다). 대신 벤야민이 주목한 것은 광고(선전용)인쇄물, 소책자, 신문 기사, 플래카드 따위였다. 그는 망원경으로 먼 산을 보는 대신 현미경으로 < 일상에서 분열되는 틈 > 을 눈여겨보았던 것이다.
그는 인간이 고고하다는 신화를 믿지 않았다. 그런 태도는 “ 유치하다 ” 고 생각했다. 벤야민이 아케이드 프로젝트라고 부른 계획은 끝내 미완성으로 남았다. 그가 세계 각국의 도서관을 전전하며 수집한 개요, 사료, 그것에 덧대는 간단한 논평 모음을 엮은 책이 바로
< 아케이드 프로젝트 > 로,
■ < 쿨 > 하게 말하자면 : 이 책은 착상과 집필 단계 中 중간 형태인 자료 수집 단계로 냉정하게 보자면 서류 뭉치일 뿐이며 많은 부분이 원본에 의지한 사본이었다. “ 미완의 걸작 ” 이라는 표현도 어폐가 있다. 이 책은 글을 쓰다가 완성하지 못한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집필)시작도 하지 않았다. 그는 저자 수천 명의 동의도 없이 무단 발췌한 책임편집자였던 셈이다. 웃자고 하는 소리지만 저작권 소송 전문 변호사의 눈으로 보자면 이 책은 수천 명이나 되는 저자와 합의 하에 이루어진 발췌가 아닌, 무단 도용이기에 수천 명으로부터 저작권 침해 소송을 받을 운명인 책이다. 그리고 -
■ < 핫 > 하게 말하자면 : 미완성이 독특한 스타일을 만들었고, 완벽한 걸작을 낳았다. 그는 거리에서 시대적 증후를 읽고, 그 증후에 맞는 문장을 고르기 위해 도서관에서 수천 권의 책을 읽었다. 그가 선택한 문장은 출처가 다양했다. 오히려 “ 괜히 젠 체하기만 하며 일반적인 제스처만 취하고 마는 저서보다 현재 활동 중인 공동체들에 영향을 미치기에 훨씬 더 적합한, 언뜻 싸구려처럼 보이는 형식들, 즉 전단지, 팸플릿, 신문 기사와 플래카드 ( 일방통행로, 14쪽) ”에서 발췌했다. 그는 철저하게 현학을 배제하고 현장을 중시했다. 그렇게 해서 만들어진 책이 << 아케이드 프로젝트 >> 인데 말 그대로 다 된 밥에 숟가락만 올려놓았을 뿐인 책이다.
그는 역사가 진보한다는 말은 새빨간 거짓말이라고 생각했다. 다만 덧씌워졌을 뿐이다. 수많은 인용문으로 채워진 이 책은 그렇게 완성되었다.
니체 또한 “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은 없다 ” 고 생각했다. 우리가 새로운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사실, 낡은 것 위에 덧씌워진 환(등)상일 뿐이다. 그것은 일종의 패로디‘였다. 니체는 20세기를 두고 “ 패로디가 시작된다 ” 고 말했다. 니체가 말한 패로디와 벤야민이 주목한 몽타주는 서로 겹친다. 패로디와 몽타주는 모두 지난 재료를 가지고 도용, 모방, 복사해서 새로운 이미지를 창조한다.
그는“ 완성된 책은 착상의 죽음 ” 이라고 썼다. 그는 << 일방통행로 >> 에서도 이와 비슷한 문장을 쓴 적이 있다. “ 작품은 구상의 데스마스크’이다. ” 이 문장을 오랫동안 들여다보았다. < 착상 > 이란 상상 속에서 원고지 칸을 채우는 과정이고, < 완성된 책 > 은 착상(아이디어)를 머릿속에서 밖으로 빼낸 결과이니 귀뚜라미와 연가시의 관계가 아닐까 ? 이 세상 모든 < 완성된 책 > 은 머릿속에서 기생하며 영양분을 빼앗아 먹다가 때가 되면 세상 밖으로 나온 연가시 성충이다. 착상은 숙주이고 완성된 책은 기생충인 셈이다. 이 책을 읽는다는 것은 뒤죽박죽 정리되지 않은 발터 벤야민의 머릿속을 들여다본다는 것을 의미한다. 어쩌면 그는 자신이 세운 프로젝트가 완성되지 못한 채 “ 거대한 착상 ” 으로만 존재하게 되리라는 사실을 직감했을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완성의 한 형태라는 사실도 ! 유태인이었던 발터 벤야민은 히틀러를 피해 프랑스와 스페인 국경 마을에서 탈출을 시도하다가 좌절되자 스스로 죽음에 이르는 약물인 모르핀을 과다 투여한 후 죽었다(1940년). 그가 국경 마을 여인숙에서 남긴 것이라고는 “ 사무용 가죽가방, 남자용 손목시계, 파이프, 사진 여섯 장, 엑스레이 사진, 안경, 편지들, 내용이 기록되지 않은 잡지들과 기타 문서들, 그리고 약간의 돈(발터 벤야민과 아케이드 프로젝트, 수잔 벅 모스 452쪽)“ 이 전부였다. 아쉽게도 종이뭉치는 남아 있지 않다. 자살 시도는 처음이 아니었다. 1931년에도 자살을 시도했으며 1932년에도 다시 한 번 자살을 시도했으나 실패했다. 아케이드 프로젝트를 착수한 해가 1927년이었으니 그는 이미 수차례 계획을 포기했던 셈이다.
<< 히틀러에 붙이는 주석 >> 에서 제바스타인 하프너는 현대를“ 좋든 싫든, 오늘 이 세계는 히틀러의 작품이다 ” 라고 지적했는데, 이 지적은 고스란히 << 아케이드 프로젝트 >> 라는 책에도 해당된다. “ 좋든 싫든, 오늘날에 미완성으로 남은 < 아케이드 프로젝트 > 는 히틀러의 작품이다. ” 히틀러가 아니었다면 벤야민은 지금과는 다른 형태의, 구성과 카테고리 순서가 바뀐 연가시 성충을 내놓았을 것이다. 그렇다면 < 완성된 책 > 은 미완성으로 끝난 지금의 책보다 더 완벽한 형태를 갖추게 될까 ? 쉽게 내릴 수 없는 “ 결론 ” 이다 ■
덧대기 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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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케이드 프로젝트 >> 는 몽타주 기법을 적극 끌어들인 책이다. 존 하츠필드는 서로 다른 사진 이미지를 연결해서 새로운 이미지-메시지를 만든다(그는 기존 이미지 1 + 2 를 합쳐서 새로운 이미지를 창출한다). 여기에 모호한 메시지를 대중에게 선명하게 부각시키기 위해 텍스트 3를 삽입한다. << 아케이드 프로젝트 >> 도 인용문 1 과 인용문 2를 이어붙인 후 발터 벤야민의 코멘트 3를 합성해서 새로운 이미지를 창출한다. 이 책은 레터(letter) 몽타주 기법으로 만들어진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