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개는 안녕하십니까 : 집주인과 히틀러
이사를 했다. 전에 살던 빌라는 반년을 채 채우지 못했다. 정확히 5개월(이사 온 지 3개월 만에 다른 집을 샀으니 엄밀히 말하자면 3개월만 산 꼴이다)을 살다 떠나게 되었다. 이사 시 비용과 절차에 소요되는 허드렛일을 생각하면 낭비에 가깝지만 어쩔 수 없었노라고 스스로 자위해 본다. 지금 키우는 개는 골든 리트리버'다. 산책을 시키다 보면 늘상 듣는 소리가 " 황소 만하다 " 는 말이다. 몸무게가 30kg이 넘으니 남들이 보기에는 덩치가 크고 위협적으로 보일 것이다. 이사를 오기 전에 살던 곳은 넓은 마당과 터앝이 갖추어진 주택이었다. 문제는 평수를 절반으로 줄여서 마당이 없는 빌라로 이사를 오게 되었다는 점이다.
태어날 때부터 흙냄새를 맡아야 괄약근과 방광을 풀었던 개'는 그 버릇을 버리지 못했다. 배변 시트에 배변 촉젠 물약을 뿌려도 이게 뭥미 ??! 나는 근심에 쌓였다. 개가 그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더니 말했다. " 괄약근이 찢어지고 방광이 터지는 한이 있어도 똥개처럼 방안에서 똥오줌을 쌀 수는 없제 ! 내가 누구여. 스코트랜드, 그 넓고 넓은 광야에서 새 잡고 연어 잡던 놈이여. " 개는 자신의 화려한 족보를 내세우며 천한 것들이나 하는 짓은 할 수 없다고 당당하게 외쳤다. 사나이답게 흙에다 쌀 수 있는 자유를 달라. 괄약근은 인권이다, 괄약근은 인권이다, 나에게 괄약권( - 權) 을 다오 ! 어쩔 수 없이 개를 끌고 아침 저녁으로 산책을 가야 했다. 특히 비가 오는 날은 온동네의 구경거리였다.
" 어머, 어머어머머머머 ! 저 사람 좀 봐. 장대비가 내리는데 개를 끌고 산책을 다니네. 비 맞은 뭣같네. 광남(狂男) 아니야 ? " 그러던 어느 날, 집주인이 사전 약속도 없이 찾아왔다. 일요일 아침 정각 10시였다. 주인은 당당하게 등산을 마치고 오는 길에 들렸단다. 세입자가 집을 잘 사용하고 있나 들어와서 집을 구석구석 살펴보아야 겠다는 것이었다. 쉽게 말해서 교사가 학생에게 숙제 검사를 하겠다는 소리였다. 신종 갑질인가 ? 기분이 나빠진 나는 타인의 집을 방문할 때에는 반드시 사전에 약속을 정하고 오라고 했다. " 그게 예의입니다. " 나는 입국 허가를 불허했다. 그렇게 현관문 앞에서 실랑이를 펼치고 있을 때 개가 나타나 컹, 짖었다. 우렁찬 개소리. " 개를 키우세요 ? " 집주인의 안색이 180도 달라졌다.
다음날, 여자가 복덕방으로 나를 불러냈다. " 개를 키우면 집에서 냄새가 나요. 이사하실 때 장판과 도배를 하셔야 한다는 조항을 계약서에 명기하세요. 다시 계약서를 작성하시죠. " 살다 살다 살다 살다가 그런 소리는 처음 들었다. 개를 키운 대가로 이사 갈 때 세입자가 장판과 도배를 해놓고 가야 한다 ? 바닥에 이태리 대리석을 깔았다면 이해는 간다만 이 세상에서 가장 싸구려 비닐 장판을 깔고 나서 그리 말씀하시니 어이가 없었다. 심사가 뒤틀린 나는 이렇게 말했다 : 나는 주인의 위압적인 말씀에 감읍하야 계약서를 다시 작성할 만큼 어리석은 백성은 아니며 집주인이 갑이라고 생각하지도 않고 세입자가 을이라고도 생각하지 않는다. 거지같은 집구석에 대해 애정을 가지고 있지 않아서 내 집을 내 몸 같이 알뜰히 챙길 마음은 추호도 없다.
와일드하게 살다 계약 기간이 끝나면 와일드하게 떠나겠다. 계약서에 명시되지 않는 모든 행위는 법적 테두리를 벗어나지 않는 범위 안에서 정당하며 그 권리는 세입자에게 있다. 내가 당신에게 지불한 전세금은 그 기간 안에 그 공간을 자유롭게 활용할 수 있는 법적 장치임을 이 자리를 통해 밝히는 바이다 ㅡ 뭐, 이런 내용이었다. 여자는 계약 위반이라고 했다. 집 계약을 할 때 개를 키운다는 사실을 숨겼다는 것이었다. 나는 또박또박 반박했다. 그 사실을 숨긴 적은 없다. 집주인이 개를 키우냐는 소리를 한 적이 없기에 말하지 않았을 뿐이다. " 비트겐슈타인이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질문을 하지 않는 이상 말 할 필요 없다 ! " 여자가 흥분해서 말했다. " 저 개, 당장 처분하세요 !!! " < 처분 > 이라는 단어가 내 귀에 박히자,
나는 그만 이성을 완전히 상실했다. " 처분 " 이라는 단어는 나치가 유태인을 학살할 때 쓰던 관청용어'였다. 이 단어는 아이히만이 재판을 받을 때에도 즐겨 사용하던 낱말이었다. 그는 < 학살 > 을 < 처분 final solusion > 이라고 순화했다. 육두문자를 쏟아내기 시작했다. " 처분 ??! 야, 오호츠크 시밤바 새우젓 같은 *아 ! 내 집 현관문 벨을 누르는 순간부터 무단 주거 침입으로 간주해서 경찰에 신고할 테니 알아서 해라. 너는 숨탄것에게 그렇게 쉽게 처분이라는 소리가 나오냐 ? 오냐. 개똥으로 벽을 바르고 바닥은 개 오줌으로 방수를 하마. 이 개#$%#^%&&%& ! " 여자가 협박죄와 모욕죄로 고소하겠다고 하자, 나는 살인 교사 강요죄로 맞고소하겠다고 했다. 나는 카프카의 << 심판 >> 에 나오는 k처럼 말했다 :
재판장 나으리 ! 저 고상하고 아리따우신 중년여성이 살인을 교사 및 강요하였습니다요. 나으리가 보시기에 저 여자 입술이 앵두처럼 보일지 모르지만 제 눈에는 닭 똥구멍 같습니다. 처분이라니요, 처분이라니요 ! 내 식구나 다름없는 자식에게 처분이라니요. 눈물이 앞을 가립니다. 존경하는 배심원 여러분 ! 누군가 여러분 자식에게 처분하라는 소리를 들으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 저, 오호츠크 시밤바를 정의의 이름으로 처분해야 하지 않을까요 ?
복덕방을 나와 씩씩거리며 씩씩하게 거리를 걷고 있는데 우연히 전에 살던 집 매매로 알게 된 B복덕방 주인과 마주쳤다. " 곰곰발 씨, 안색이 무지개 색이네요. 무슨 일 있으셨나요 ? " 나는 자초지종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골든 리트리버, 찢어질 괄약근, 곧 터질 방광, 괄약권, 집주인, 처분, 오호츠크 시밤바, 똥으로 벽을 세우고 오줌으로 방수를 하마........ 복덕방 주인이 듣다가 손뼉을 치며 말했다. " 내가 지금 막 집을 내놓은 집을 다녀오는 중입니다. 급하게 집을 내놓는 바람에 3,4천은 싸게 살 수 있습니다. 이런 집은 다음날이면 바로 나갑니다. 지금 살고 있는 집 전세금에 몇 천 더 얹으면 집을 살 수 있어요. 우선 넓은 테라스가 있어서 개를 키우기에 안성맞춤입니다. 한번 가 보실래요 ? "
홧김에 가겠다고 길을 나섰지만 집을 살 마음은 1%도 없었다. 남편과 대판 싸운 아내가 설겆이를 내팽개친 채 대낮에 백화점 아이쇼핑을 하는 심리와 유사하다고나 할까 ? 이사 온 지 3개월 만에 무슨 얼어죽을 이사냐. 집주인이 아무리 지랄을 해도 그 집(계약 기간)에 대한 권리는 법적으로 내게 있다는 사실을 그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던 터였다. 그냥, 기분 전환이나 할겸 집 구경이나 하자. 그런데 웬걸 ?! 1%의 가능성이 99%를 이겼다. 테라스 공간이 무척 마음에 들었다. 터앝을 만들고 넓은 평상을 놓아도 좋을 공간이었다. 이곳에 개를 키우면 안성맞춤'이었다. 다음날, 계약을 했다. 집을 중개한 사람은 B복덕방 L씨였지만, 엄밀히 말하자면 봉달 씨'였다. 괄약권을 스스로 해결한 것이다. 사연을 알고 있는 복덕방 L씨는 매매 수수료를 받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그 돈으로 개에게 소고기를 사줬다.
히틀러가 키우던 개 이름이 블론디'였다. 세퍼트 종이었다. 히틀러는 수많은 사람들에게 " 처분 " 이라는 관용어를 사용했지만, 자신이 키우는 개에게는 단 한번도 그 단어를 사용한 적은 없었다 한다. 전운이 기울자 히틀러는 독약 캡슐을 블론디'에게 먹인다. 회한이 섞인 히틀러의 오열이 벙커에 울려퍼졌다. 애견에 대한 슬픔과 자신에 대한 연민이 섞인 울음이었으리라. 그리고 자신과 아내도 이 캡슐을 먹고 자살한다. 벙커에 있던 사람들은 히틀러의 죽음보다, 에바의 죽음보다, 개의 죽음에 더 많은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그들은 그러한 방식으로 처분되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