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어야 사는 여자

 


                                               심순애1김중배의 다이아몬드'에 눈이 멀어서  가난한 약혼자인 이수일을 버린 비정한 여자. 일베들이 보기에 심순애는 근대 이후 최초의 김치녀'이자 건축학개론판 첫사랑 쌍년'인 셈이다. 순애는 고민에 빠진다. " 사랑을 쫓자니 돈이 없고,  돈을 쫓자니 사랑이 우는구나. 수일 씨이~  몸은 떠나지만 마음만은 그대 곁에....... " 

순애는 결국 사랑하는 사람의 불타는 염통 대신 차가운 돈'을 선택한다. 벼락 같은 비수가 이수일의 염통을 관통한다. 원통할 뿐이다.  이어지는 이수일의 그 유명한 대사.  " 이런 신파 ~  놓아라,  순애 !  김중배의 다이아몬드가 그렇게 좋았더냐 ? " 이수일은 복수를 다짐한다.  " 순애, 보자보자 하니 날 보자기로 보는군. "  그는 스뎅 < 가위손 > 이 되어 돌아온다. 제2 금융권'인 산와머니(고리대금업자) 대표가 되어 돌아온 것이다. 아아. 한국 서사에서 돈 때문에 조강지남을 버리고 결혼한 여자의 일생이란 뻔한 결말, 잘되는 꼴을 본 적 있던가.  그녀는 수일 씨'를 잊지 못해 자살을 시도하고 결국 수일 씨는 순애를 용서한다는,  뭐얌. 이런 신파 ~   모두 다 이수일과 심순애가 펼치는 < 이런 신파 > 에 눈물을 쏟을 때,  

심순애의 한복 치마저고리와 이수일의 양복 바짓가랑이'에 관심을 가지는 사람이 있었으니 자신을 평화학 연구자라고 소개하는 정희진'이다. 그는 << 여성의 몸, 그리고 명칭 >> 이라는 글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남성은 구남성, 신남성으로 구별되지 않지만 여성은 구식 여성, 신여성으로 구분되는 것은, 남성이 아니라 여성의 몸을 근대와 진보를 상징하는 공간으로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수일과 심순애에서 남성은 양복을 여성은 한복을 입는다거나, 은행 같은 사무실에서 사복을 입는데 반해 여성은 유니폼을 입는 것도 같은 경우다. 여성이 남성 공동체의 상징으로 여겨지며 남성 공동체의 번영과 몰락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한다는 논리다. 마치, 민족의 전통을 외치는 사람은 남성이지만 전통을 지키기 위해 제사 음식을 준비하거나 김치를 담아야 하는 사람은 여성인 것처럼.

 


복장 문화의 변천사로 보자면 한복 입은 심순애는 구식 여성'이고 이수일은 신문물을 접한 개화파2(신식 남성)다. 여기서 심순애가 순하지만 맹한 구석이 있는, 돈에 눈이 먼 어리석은 여성 캐릭터'라는 점을 감안하면 한복 입은 심순애는 계몽(개간, 개량)의 대상인 셈이다. 다시 말해서 전근대를 상징하는 한복 치마저고리 입은 심순애는 미개한 땅인 처녀림이면서 처녀지인 셈이다. 평생을 삽질하는 데 인생을 바친 불도저 이명박 달인'이 환장할 만한 불모지다. 나무를 베고, 다리를 놓고 건물을 올려야 쓸모 있는 땅이 된다. 이 땅을 개간하는 주체는 남성이다. 그럴 수밖에 없다. 불도저(bulldozer)를 운전하는 것은 오로지 수컷3 이다. 다들 아시다시피, 악극 끄트머리에 가서 스뎅 가위손 이수일 선생은 결국 병든 심순애를 받아들인다.

재미있는 사실은 이수일이 심순애를 받아들이기로 한 동인(動因)이다. 이수일은 심순애'가 자살을 기도했다가 구사일생으로 목숨을 부지했다는 사실을 알고 나서부터 남산 위에 철갑을 두른 소나무 같던 마음이 버들나무처럼 야들야들 흔들리기 시작한다. 그렇다면 이수일은 김중배의 알반지에 눈이 멀어서 자신을 버린 심순애를 용서한 것일까 ?  내가 보기에는 심순애의 자살 행위는 상징적 허물 벗기'다. 허물을 벗는다는 점에서 심순애의 자살 몸짓은 개화(改化) 혹은 재생(再生)에 가깝다. 그녀는  혹독한 자기 징벌을 실천함으로써 더러운 몸( = 다이아몬드에 눈이 멀었던 그 옛날 심순애)을 버리고 새롭게 태어나고자 한다는 메시지를 이수일에게 보낸다. 우리 순애가 이렇게 달라졌어요, 수일 씨이 ~  그 옛날의 순애가 아니랍니다.

순애의 자살 시도'는 포식동물이 너무 빠르거나 강해서 도망이나 싸움에서 승산이 없을 때 죽은 체하는 기능적 방어 기제'처럼 보인다. 포식동물은 대부분 꿈틀거리며 반항하는 먹잇감보다는 죽은 먹잇감에 대해서는 감시가 소홀해지기 마련인데,  죽은 척하며 도망칠 기회를 노리는 먹잇감은 운이 좋으면 이 위기에서 벗어날 수도 있다. 그러니까 심순애의 자살 시도는 이수일이 자신을 결코 용서하지 않을 것이란 위기감이 만든 일종의 기절인 셈이다. 상대방에게 용서를 얻기 위해서는 죽으라 하면 죽는 시늉까지 하는 것이다. 이수일과 심순애를 눈물 없이는 볼 수 없는 < 신파 - 서사 > 로 보지 않고 팜므파탈이 지랄을 하는 < 악녀 - 서사 > 로 보자면 심순애는 항상 돈을 보고 짝을 선택하는 여성이다.

처음에는 김중배의 다이아몬드에 끌렸으나 김중배가 쫄딱 망하고 이수일이 신흥 부자로 새롭게 등장하자 심순애는 다시 이수일과 연결된다. 심순애의 자살 시도를 < 죽기 아니면 까무리치기 - 죽음 모방 > 으로 보자면 가능한 해석이다. << 신소설에 나타난 육체 인식과 형상화 방식 구조 >> 라는 논문으로 박사 학위를 받은 이영아가 쓴 << 육체의 탄생 >> 은 개화기 시대의 신소설'을 중심으로 < 근대의 몸 > 에 대해 분석한 책이다. 그녀는 신소설에 나타난 많은 여성 캐릭터들이 성적 위협을 받거나 자살을 시도한다고 지적한다.


해피엔딩을 맞기 위해 신소설의 여자 주인공들이 가장 자주 쓰는 방법은 자살 시도이다. 그들은 성적 위협에 처했을 때 자살을 기도해서 위기를 모면한다........ 성적 위협의 순간에 여자 주인공들은 자신의 목숨을 내놓음으로써 위기를 모면하고, 무수한 고난을 잘 극복해 낸 데 대한 보상으로 가정 내에서 자신의 위치를 되찾아 행복하게 살게 된다. ( 273, 육체의 탄생) 

 

자신의 목숨을 내놓음으로써 이수일에게 구원받는다는 점에서 " 심순애 - 몸 " 은 갱생, 개화, 개량, 개간된 신체'에 해당된다. 이런 신파의 대명사인 << 장한몽(이수일과심순애) >> 이 국내에 번안된 지 100년이 지났지만 대한민국 드라마는 여전히 신소설의 이런 신파'에서 벗어나질 못하고 있다. 드라마 속 여주인공은 여전히 계몽되어야 할 몸'이다. 사랑 혹은 복수는 반드시 변화 과정을 통과해야지만 성공할 수 있다. 영화 << 미녀는 괴로워 >> 에서 주인공 여성은 전신 성형을 통해 날씬한 미녀로 다시 태어난다. 그녀는 낡은 신체를 버리고 새로운 신체를 얻기 위해 수술대 위에 죽기 아니면 까무리치기로 눕는다. 심순애가 강물에 빠져 죽었다 살아난 것4과 같은 심인(心因)이다. 

제니와 심순애는 잠시 까무라쳤다가 눈을 뜬다. 쉽게 말해서 이런 식의 캐릭터 여성들은 죽기 아니면 까무리치기라는 점에서 죽어야 사는 여성들이다. 여성들이 해피엔딩을 맞이하기 위해 자살이라는 극단적 죽음 모방을 통해 남성에게 용서를 구하고 구원을 받는다면, 남성들은 해피엔딩을 얻기 위해 이처럼 위험한 도박을 하지는 않는다. 사내새끼의 허물은 굳이 벗을 필요까지는 없다. 사내새끼의 허물은 " 살다 보면 그럴 수 있는 실수 " 이기 때문에 굳이 갱생이 필요한 것은 아니다. " 앗, 나의 실수 ! " 그냥 미안하다고 말하면 된다. 이처럼 똑같은 잘못을 해도 그 잘못에 대한 반성 레베루는 남성과 여성이 전혀 다르다. 남성은 말 한 마디로 천냥 빚을 갚을 수 있지만 여성은 말로는 빚을 갚을 수 없다. 

죽는 시늉이라도 해야 한다.  니미... 이런 신파 ~ 한국 여성은 죽어야 산다 ■ 

 

 



 

  1. 주인공 이수일은 일찍이 부모를 여의고 아버지의 친구인 심택의 집에서 자라나 고등학교까지 마친 뒤 심순애와 혼인을 약속한다. 어느 정월 보름날, 심순애는 김소사의 집으로 윷놀이를 갔다가, 거기에서 대부호의 아들인 김중배를 만난다. 심순애에게 매혹된 김중배는 다이아몬드와 물질 공세로 심순애를 유혹하였고, 심순애의 마음은 점점 이수일로부터 멀어져간다. 이 사실을 알게 된 이수일은 달빛 어린 대동강가 부벽루에서 심순애를 달래보고 꾸짖어도 보았으나, 한 번 물질에 눈이 어두워진 여자의 마음을 돌릴 수 없었다. 울분과 타락 끝에 고리대금업자 김정연의 서기가 된 이수일은 김정연의 죽음과 함께 많은 유산을 받게 된다. 이런 소용돌이 속에서 자신의 과오를 뉘우친 심순애는 대동강에 투신자살하려다가 이수일의 친구인 백낙관에게 구출된다. 결국, 두 사람은 백낙관의 끈질긴 설득으로 다시 결합하여 새 출발을 하게 된다.
    [네이버 지식백과] 장한몽 [長恨夢]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2. 장한몽은『매일신보』에 연재된 신문소설로서 전편[上]이 1913년 5월 13일부터 10월 1일까지, 속편[中·下]이 1915년 5월 25일부터 12월 26일까지 연재되었다.
    [네이버 지식백과] 장한몽 [長恨夢]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3. bull : 황소
  4. 침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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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madhi(眞我) 2015-11-29 18: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주석까지... 논문입니까? ㅋㅋ 논문 잘 읽었어요. 연구 조금 더 보태서 학위 받으셔야겠소. ㅎㅎㅎ 여성학 연구에도 일가견이 있을 듯해요. 서민씨랑 두 분은 잘 해내실 듯합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5-11-30 13:53   좋아요 0 | URL
주석이 있어야 뭔가... ㅎㅎㅎㅎ 그럴 듯하지 않습니까.... ㅎㅎㅎㅎㅎㅎ.

cyrus 2015-11-29 20: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루크레치아는 로마 황제의 아들 섹스투스에게 능욕당하고 복수를 결심하고 자살했어요. 루크레치아의 남편이 이 사실을 알고, 반란을 일으켜서 공화정을 세우게 되죠. 그녀의 억울한 희생이 로마의 역사를 바꿨어요. 나중에 중세의 역사가들은 그녀를 여걸로 평가합니다. 그녀의 고귀한 희생이 강조되다보니 여성에게 가해지는 남성의 성적 폭력의 위험성에 대한 인식이 밀려나고 말았어요. 남성 역사가들은 섹스투스의 강간이 ‘살다 보면 그럴 수 있는 실수’로 여겼을 거예요. 억울한 여성은 죽어야 사는 것 같습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5-11-30 13:57   좋아요 0 | URL
오, 섹스투스 하시길래 지어낸 농담이구나 했는데 섹스투스가 원래 있는 인물이군요.
종종 한국 현대사도 보면 자살에 따른 파장이 어마어마했죠.
군사정권이 무너진 이유도 몇몇의 자살 파장이 큰 영향을 미쳤다 생각되더군요...

표맥(漂麥) 2015-11-29 23: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첫사랑 쌍년`에서 빵! 터졌습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5-11-30 13:58   좋아요 0 | URL
건축학 개론에 보면 왜 나오는 대사 아닙니까... ㅎㅎ. 개인적으로 이 영화를 별로 안 좋아합니다만.. ㅎㅎㅎㅎ
 
부러진 화살 - 대한민국 사법부를 향해 석궁을 쏘다 우리시대의 논리 12
서형 지음 / 후마니타스 / 201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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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은 무섭다 ,           고 ?!



                                                                법은 무섭다. " 하룻강아지 < 법 > 무서운 줄 모른다 " 는 소리가 괜히 나온 말이 아니다. 사람들은 흔히 법 무서운 줄 모르는 인간을 하룻강아지'라며 비웃지만,  글쎄올시다. 내가 보기에는 < 법 무서워하는 놈 > 보다 < 법 무서운 줄 모르는 놈 > 이 더 " 인간 " 적인 경우가 많다. 말놀이'나 하자고 이 리뷰를 쓰는 것은 아니다. 말놀이 구경은 과천 경마장으로 가시라.

정신이 제대로 박힌 사회'라면 사회 구성원들이 굳이 법을 무서워할 필요는 없다. 쉬운 비유를 들자면 행복이 가득한 집에 사는 아이들이 부모를 무서워하지 않는 것과 같은 이치'다. < 법 > 이라는 것은 사회 질서를 유지하기 위한 " 최후의 수단 " 이지 " 최우선 선택 " 이 결코 아니다. 하다 하다 하다 하다 안 될 때 법의 손길을 빌리는 것이 정상이다. 즉, 법은 뱀 꼬리가 되어야지 용 머리가 되면 안 된다는 소리이다.  한국 사람들이 툭 하면 " 법대로 해 !!!! " 라고 소리치는 것은 이 나라가 분쟁을 해결할 수 있는 다양한 제도와 수단이 마련되지 않은 사회라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준 예이다. 실제로 대한민국은 전세계에서 고소/고발이 가장 많은 나라 가운데 하나라고 한다.  툭 하면 명예훼손'이다. 이처럼 법을 앞세우는(법이 용 머리가 되는, 법대가리) 국가는 집구석이 엉망인 나라'다. 

사실 전과자는 법 무서운 줄 모르는 부류보다는 법을 무서워하는 쪽에 더 가깝다. 고기도 씹어 본 놈이 맛을 안다고 한 번 군대 갔다온 놈이 두 번 다시는 군대에 가지 않으려는 심리와 비슷하다고나 할까 ? 그들은 교도소 생활이 끔찍하다는 사실을 그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다. 그래서 나는 법 무서운 줄 모르고 싸우는 놈보다 법 무서워하는 놈이 더 " 개불 " 같다. 자고이래로  법 무서운 줄 모르고 저돌적으로 싸운 하룻강아지들에 의해 사회는 발전했다.  영화 속 영웅들은 대부분 자신의 투쟁이 법적 불이익을 당할 것이란 사실을 너무나 잘 알고 있지만 공공의 이익을 위해 법대가리를 상실한 채 맞짱을 뜬 사람들이다. " 야, 이 오호츠크 시밤바에서 쌍끌이 어망에 잡힐, 법대가리를 상실한 새우젓 같은 놈들아.  다 덤벼라 ~ 크아아아아앙...... " 

반대로 불의 앞에서 새우처럼 등 굽히고 눈 감은 동조자들은 그 누구보다도 법의 처벌을 두려워하는 자들이다. 그렇지 않은가 ?  누군가는 박정희 때문에 이만큼 먹고 사는 것이라며 두 주먹 불끈 쥐겠지만, 사실 이만큼 먹고 사는 것은 법 무서운 줄 알면서도 법 무서운 줄 모르고 덤볐던 민주화 주역의 희생이 밑거름이 되었다면 사실을 부정할 수는 없다. 지금은 386 늙은이'라는 조롱을 받지만 이들이 흘린 피가 강철 군화를 벗겼다는 점을 무시하면 안 된다.  요즘 엉뚱한 세력들에게 호명되어 곤란을 겪고 계시는 유관순 누나'도 따지고 보면 법을 무서워하지 않고 용감하게 싸웠던 영웅이 아니었냔 말이다.  유관순 누나가 법적 처벌을 두려워했다면 거리에 나와 대한독립 만세를 외치지는 않았을 것이다.

들머리가 길었다. 본론으로 들어가자. 여기 " 법대가리 " 를 상실한 채 사법부와 맞짱을 뜬 인물이 있다. 석궁 테러 사건으로 유명한 김명호 교수'다. 법원 판결에 불만을 품고 담당 부장 판사에게 테러를 가했다는 게 사건 요지'이다. 르포 작가인 서형의 << 부러진 화살 >> 은 석궁 테러 이후의 재판 과정을 담은 재판 기록문이다. 일단 이 사건은 매우 특이하다. 법정 드라마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풍경이 아니다.  포부 당당하던 고래도 법정에 서면 새우가 되는 것이 인지상정이거늘 김명호 교수는 당최 쫄 기미가 없다. 쫄기는커녕 재판 중에 판사와 검사를 직무 유기, 직권 남용, 공직자 윤리 강령 위반 따위로 고발한다. 판사가 보기엔 똥 싼 놈이 성 내는 꼴이리라. 하지만 피고인이 보기엔 법대로 해야 할 집단이 법대로 하기는커녕 오히려 법을 무시하고 법을 지키지 않는 것처럼 보인 것이다.

이 당찬 " 빅ㅡ엿 " 에 엄숙해야 할 재판정은 블랙 코미디'가 되었다. 뜬구름 위에서 뒷짐 지며 아래 세상을 내다보며 훈수나 두던 어르신이 알고 보니 쫄아서 앵앵거리고 있으니 말이다. 태산처럼 높은 고래인 줄 알았는데 모기였다니 ! 골치 아팠을 것이다. 오죽했으면 사건 담당 판사가 재판 도중 그만두는 사태가 발생했을까. 깐죽거리는 피고인에 질려버린 그는 속으로 이렇게 외쳤을 것이다. " 이런 된장...... " 그는 사표를 제출하고는 대형 로펌인 << 김에는 간장(김앤장) >> 으로 갈아탄다.  여러모로 골 때리는 사건이었다. 나중에는 재판 참관인들이 판사들을 향해 계란을 던지는 사태가 발생하기도 했다. 사건 기록을 보다 보면 판사들도 시정잡배와 다를 것이 없다는 생각이 든다. 이 사건은 마치 프랑크 카프라의 한국판 << 김명호 씨, 법정에 가다 >> 처럼 읽힌다.

이 책 말미에 딸린 부록(판결문 전문)을 읽다 보면 사법부의 쩨쩨한 복수심이 읽힌다.  제 식구는 말하지 않아도 알아서 챙기는 법 조직'이 가만히 있을 리는 없다. 판사는 김명호 교수에게 4년의 실형을 선고했다. 그들 입장에서는 통쾌한 복수인지는 모르나 내가 보기에는 치졸한 복수처럼 보인다. 석궁을 들고 부장 판사네 집을 찾아간 것에 대해 옹호할 생각은 없지만 내가 그를 지지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사법부가 < feel > 과 < fact > 를 혼동하는 어처구니없는 태도를 보였다는 데 있다. 짜고 치는 고스톱은 노름판에서나 벌어져야지 신성한 재판에서 벌어진다는 것은 그리 유쾌한 일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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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돼지 2015-11-28 13: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금 밥 먹으로 가야해서 일단 `좋아요` 해놓고 갔다와서 읽을게요^^

곰곰생각하는발 2015-11-29 16:26   좋아요 0 | URL
점심 너무 오래 드시는 거 아닙니까 ? ㅎㅎㅎㅎㅎㅎ

붉은돼지 2015-11-30 14:33   좋아요 0 | URL
아~~ 이제 점심 다 먹었습니다....^^ 한끼 떼우는 것도 쉽지 않군요...
제가 몇년 전에 한 일년정도 육아와 살림을 좀 한 적이 있었는데요..삼시 세끼 이거 무섭더군요..
아침먹고 돌아서면 점심이고 점심먹고 돌아서면 저녁이더이다..
하루종일 삼시 세끼 생각으로 분주하고 바쁘더군요...
살림이라는 것도 해도해도 끝이없고 했는 일 또 하고 또 한일을 또또하고 티가나는 것도 아니고
광이 나는 것도 아니고 ...뭐랄까 참 허무하더군요...
주부우울증 걸릴 뻔 했어요....

samadhi(眞我) 2015-11-29 18: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각설을 보니 생각나는데요. 저도 얼마 전에 일하는 곳에서 사장이랑 같이 일하는 언니랑 세월호 얘기, 최루탄직사에 쓰러진 백남기 씨 얘기하며 사람들을 마구 죽이는 정권 어쩌고 열을 냈더니 사장왈, ˝공권력에 도전˝하면 안 된다고 합니다. 어디서 많이 들어본 문구. 차마 정당이라 부르기 부끄러운 똥누리당이 늘 하는 말이거나 봐주기 힘든 신문 쪼가리들이 주로 해대는 대사 같지요. 그 말 듣고 말문이 막혀서. 헉. 그러면서 저더러 흥분하지 말랍디다. 아니 사람이 그렇게 많이 죽었는데 그럼 흥분 안 합니까. 하고 말았는데요.

제가 유시민이나 손석희처럼 똑똑하지 못 해 흥분하지 않고 조용히 에둘러가며 비웃어가며 가볍게 찌르는 말 몇 마디를 못 하고 있더라구요. 씨도 안 먹히는 이런 사람들에게 ˝이해˝라는 걸 시키려면(그럴 수가 있긴 할지 모르겠지만) 정말 똑똑해져야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곰곰생각하는발 2015-11-30 14:00   좋아요 0 | URL
그득권에 세뇌를 제대로 시켰죠.
공권력이 마치 신성불가침인 것처럼 말이죠. 자기는 수많은 사람들의 잘못된 공권력에 대해 싸우고 희생한 결과, 그 결과의 자유를 실컷 누린 새끼였으면서 정작 그들에게는 지나치게 비판적이죠...
답이 없죠. 이런 놈들에게 아무리 설득하려 해도 절대 설득할 수 없습니다.

seokgung 2015-12-11 22: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법을 밥 먹듯이 위반하는 인간들에게 석궁 든 것이 뭐가 잘못인가?
법치국가라고 떠들면서 어리석은 민중들을 우롱하며 법을 정면으로 위반하는 판사년놈들에게 `법 지키라`며 국민저항권을 행사한 건데...
그런 석궁사건의 의의를 부정하거나, 재판테러 저지른 판사년놈들의 말 `테러`를 그대로 옮기는 인간들은 법치민주주의 국가에 살 자격없는 노예근성에 찌든 돌대가리다.
=> http://kin.naver.com/qna/detail.nhn?d1id=6&dirId=61303&docId=160796195&qb=67aA65+s7KeEIO2ZlOyCtA==&enc=utf8§ion=kin&rank=40&search_sort=0&spq=1&sp=4&pid=SRucZspySEhssuhX60ssssssst8-095852&sid=gmM9snkGf5nR9gRhiQJRfQ%3D%3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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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븐 킹 지음, 송경아 옮김 / 황금가지 / 201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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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조선의 좀비들에게 고(告)함 !


                                                                                  펑 !   대한민국은 샴페인을 너무 일찍 터뜨렸다. 그때는 그 사실을 알지 못했다. 야구 경기에서 8회'가 끝났을 때 대한민국은 7 : 0 으로 이기고 있었으니까. 그러니까, 대한민국이 9회초에 8실점을 하면서 경기를 내주기란 쉽지 않다니까 ! 하지만 그것은 착각이었다. 마무리 투수가 마지막 9회'에 올라 첫 타자를 3구 삼진으로 돌려세웠을 때만 해도 승리의 여신인 나이키'는 대한민국을 향해 웃고 있는 것만 같았다. 한시름 놓을 수밖에. 캔맥주를 비울 수록 방광은 가득 차길 마련이다. 그런데 화장실에 다녀온 사이 < 일 > 이 묘하게 돌아가기 시작했다. 연속 안타를 내주면서 차곡차곡 점수를 잃더니 결국에는 역전을 허용했다. 믿기지 않는 일이지만 야구에서는 종종 있는 일이다.

김영삼이 전두환과 노태우에게 수의를 입힐 때까지만 해도 민주주의는 무난하게 안착될 것처럼 보였다. 맨주먹으로 칼을 앞세운 군인의 강철 군화를 벗겼으니 말이다. " 칼국수의 힘 " 이라고나 할까. 칼국수1가 칼을 이기다니. 남은 이닝을 김대중과 노무현이 불펜 투수로 마운드에 올라 무난하게 경기를 이끌어 갈 때까지만 해도 민주주의는 완성된 것처럼 보였다. 마무리는 불펜 투수 이명박이었다. 믿을 만한 구석은 별로 없는 선수였다. 철쭉도 아니면서 들쭉날쭉한 실력을 보여서 믿음이 가는 투수는 아니었으나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투수...... 와인드업 ! 던졌습니다 !!!  와와. 대중은 환호했다. 7점 차 앞선 경기에서 마무리 투수가 첫 타자를 삼구 삼진'으로 잡은 것이다. " 웬일이니, 쭉정이인 줄 알았더니 알맹이였네...... "

하지만 이명박은 아웃카운트 하나를 잡은 이후 홈런 포함 10안타를 두들겨맞으며 강판되었고,  박근혜는 고의적으로 타자에게 헤드샷을 날려 퇴장당했다. 그리고 다음 불펜 투수는 서울대 법대를 나와 9수 끝에 사법 고시를 통과한 엘리뜨 윤석렬 선수는 똥볼을 남발하다가 역전을 허용했다.  혼이 나간 표정이었다. 경기가 끝난 후, 그는 어느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 제가 잘못 던져서 졌습니까 ? 이게 다 전 선수들이 잘못해서 진 경기입니다. 에이, 시발. 압수수색해 !!!! "  " 분홍분홍 " 했던 장미빛 미래는 어느새 " 부들부들 " 한 헬조선으로 변했다. 일찍 터뜨린 샴페인은 < 민주화 > 와 < 민주주의 > 를 혼동한 결과였다. << 민주화 >> 는 과정일 뿐이지 완성이 아니지 않은가. 개천에서는 용 대신 이끼벌레가 창궐했다. 흙수저가 땅을 파서 십 원짜리 동전을 긁어모을 때 금수저는 대한민국에서 가장 전망 좋은 방을 차지하기 시작했다. 좋은 것만 먹고 좋은 것만 보다 보니 금수저는 세상을 긍정적으로 보기 시작했다. 박찬욱 감독은 부자들이 마음씨도 착하다며 설레발을 까기도 했다. 

그들은 항상 웃었다. 웃을 때 고른 치아가 반짝거렸다. 금수저와 흙수저를 구별하는 표시는 샤넬이나 루이비통'이 아니었다. 그 옛날, 자가용 뒷자리에서나 볼 수 있었던 뤼비똥'은 이제는 아침 8시 지옥철에서도 심심찮게 볼 수 있었다. 웃을 때 하얗고 고른 << 치아 >> 가 금수저와 흙수저의 << 차이 >> 를 만들었다. 수정하겠다, 흙수저에게 " 치아 " 라는 낱말은 어울리지 않는 단어였다. 금수저에게는 없지만 흙수저에게는 있는 것.  그것은 바로 " 고르지 않은 누런 이빨 " 이었다. 금수저는 치아를 가지고 태어나고 흙수저는 이빨을 가지고 태어난다. 


들어가는 말풍선이 길었다. 본론으로 들어가자. 스티븐 킹이 리처드 바크만이라는 이름으로 내놓은 << 롱 워크 >> 는 훌륭한 소설이다. 킹의 말을 곧이곧대로 믿고, 그가 고등학교 졸업반일 때 이 소설을 썼다면 대한민국 소설가는 넥타이 공장이나 차려야 한다. 목 메 죽어야 한다는 소리'다. 심하다고 ?!  내가 한 소리가 아니다. 비난의 화살은 모두 장정일에게 ! 장정일이 독서일기이 적어놓은 표현이니까. 경기 룰은 간단하다. 10대 참가자 100명이 오래달리기(걷기)를 한다.  최종 우승자 1인이 모든 부와 명예를 차지한다. 단, 걷기를 멈추면 죽는다. 대회를 진행하는 군인이 그 자리에서 총으로 즉결처형하는 방식이다. < out > 이 아니라 < kill > 이다. 이 죽음의 레이스'에 참가하는 사람은 누구일까 ?  물어볼 필요도 없다. 아메리칸 금-포크 자식들이 상금을 노리고 목숨을 담보로 죽음의 레이스 경기에 뛰어들 놈은 없으니깐 말이다. 흙-포크'들이 한탕을 노리고 이 경기에 뛰어든다. 생존 확률은 1/100이지만,        어쩌라고 ?

내가 이 소설을 읽으며 깜짝 놀랐던 것은 킹이 선보이는 " 디스토피아적 우화 " 의 우아한 상상력 때문이 아니었다. 이 소설은 우화가 아니라 현실을 냉정하게 반영하고 있었다. 롱 워크 게임은 스포츠 파시즘과 연결되어 있다. 승자독식, 1등만 알아주는 더러운 사회에 대한 통렬한 반영이다. 특히 한국 사회는 스포츠 파시즘이 일상 생활 곳곳에 침투되어 있다. 탕 ! 경기가 시작되고 나서 첫 번째 총성( 주 : 여기서 총성은 경기의 시작을 알리는 출발 신호가 아니라 말 그대로 총살을 의미한다)이 울렸을 때( 총성이 울렸다는 것은 누군가가 낙오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낙오는 곧 죽음이다)  그 게임의 승자는 99명이었고 패자는 1명이었다. 탕 ! 다시 총성. 두 번째 총성이 울렸을 때 승자는 98명으로 줄어들었고, 패자는 한때 승자 중 1명이었다. 이런 방식으로 한때 승자였으나 패자가 된 사람이 하나둘 사라지게 된다.

즉결 처형'은 조용하게 진행된다. 킹은 < 헝거게임 > 이나 < 베틀로얄 > 처럼 야단법석을 떨며 경기를 진행하지 않는다. 바로 그 점이 이 소설이 가지고 있는 품격'이다. 이 소설은 킹의 기존 소설에 비해 재미는 1/2로 줄어들었지만 메시지는 강력하다. 만약에 이 경기'가 헬조선에서 벌어진다면 참가하는 사람이 있을까 ? 상금을 노리기 위해 목숨을 내놓고 하는 경기에 말이다. 헬조선에서 하루에 스스로 목숨을 끊는 자살자는 대략 40명. 그들은 대부분 경제적 빈곤에 시달리는 사람들이다. 1년이면 15,000명이 자살을 하는 사회.  어디 그뿐인가 ? 죽지 못해 사는 사람은 널리고 널렸다. 사업에 실패해서 빚더미에 오른 자도, 비정규직 노동자도, 갑질에 분노하는 을도 이 경기에 뛰어들 것이다. 특별한 기술이 필요한 것도 아니다.

걷기만 하면 된다. 멈추지 않으면 된다. 상대방과 경쟁할(싸울) 필요는 없다. 상대가 지쳐서 쓰러지기를 바랄 뿐이다. 타인의 고통이 나에게는 기회가 되는 사회. 경주마에게 씌우는 눈가리개를 사람에게 씌우는 사회. 옆사람의 손을 잡으며 " 연대" 를 이야기하면 " 고대" 를 무시하냐며 좌빨로 모는 사회. " 이대 " 로는 살 수 없다고 거리에서 노동자들이 시위를 하면 공공질서를 " 숙대(쑥대) " 밭으로 만들었다며 손가락질하는 사회. 공산당이 싫어요, 라고 말했다가 눈알이 파이고 입이 찢어졌다는 서사를 아이들에게 가르치는 사회. 일제의 쌀 수탈을 수출이라고 주장하는 사회. 티븨만 돌리면 먹방만 방영되는 사회. 흙수저 자식새끼들은 굶어죽는데 금쪽이들만 부탁한다고 신소리만 하는 사회. 이 삭막한 도로 위에 흙수저와 흙포크가 출발선에 서 있다. 앞은 볼 수 있으나 옆은 볼 수 없는 말 눈가리개를 쓰고 초조하게 출발 신호를 기다리고 있다. 신호가 떨어지면 걷기 시작한다. 

서바이벌 게임이 시작된다. 생존확률은 1/100 % 내가 잘한다고 우승을 할 수 있는 구조가 아니다. 흙수저로 태어나 할 일도 많지만 오늘도 걷는다. 탕 !  생존확률 1/99 %  탕 !  다시 울리는 총성. 생존확률은 1/98 % 앞만 보고 가련다. 탕 !  ■

 









 






 

  1. 김영삼의 상징적 오브제는 칼국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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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madhi(眞我) 2015-11-23 00: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리나라는, 지금˝을 적나라하게 깔끔하게 정리해주셨네요. 정리의 힘! 배우고 싶사옵니다. Winner takes it all. 정말 소름끼치는 말이죠.

곰곰생각하는발 2015-11-23 00:38   좋아요 0 | URL
조지오웰이 동물농장에서 이런 소릴 했죠. 과거를 조종하는 사람은 미래를 조종한다. 뭐 이런 소리였던 것으로 기억합니다만.. 아니다. 1984인가 ???!! 하튼. 박근혜 보니 저 문장이 느닷없이 생각나더라고요...

수다맨 2015-11-23 02:3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어제 전직 대통령이 세상을 떴더군요. 사실 그와의 추억을 많이 공유하지 못한 저로서는 애보다는 증이 좀 더 큽니다. 저는 그의 민주투사 시절보다는 경제 위기 관리와 대처에 너무나도 무능했다는 점과, 노동법을 가장 반민주적인 방법으로 처리하고 수습에 미흡했다는 점만 생각나네요. 하지만 야당 정치가로서 그만한 배짱을 보여준 이도 드물었다 봅니다. 김 씨에 비하면 안철수/문재인 같은 사람들은 유약한 사람들이지요. 그의 명복을 늦게나마 빕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5-11-23 16:51   좋아요 0 | URL
저도 김영삼을 좋아하지는 않습니다. 뭐 말년에는 자식 농사 잘못 지어서 식물 대통령으로 전락하게 되었지만 그래도 시대적 인물이었다는 점은 부인할 수 없겠네요. 안철수와 문재인의 공통점은 사람은 좋아보이는데 히마리가 없어보인다는 점... 아쉽습니다.

기억의집 2015-11-23 07: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진짜 맨 마지막 한 줄은 압권입니다. 아침부터 한참 웃었네요!

곰곰생각하는발 2015-11-23 16:48   좋아요 0 | URL
유독 한국에서는 킹 할베의 인기가 별로 없어요. 순문학 애호가 강해서 그런가 보다 합니다.
욕이 많이 나와서 순수하지 않다고 생각하거나... ㅎㅎㅎ

재는재로 2015-11-23 13: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박수 짝짝~

곰곰생각하는발 2015-11-23 16:46   좋아요 0 | URL
짝짝 하니 갑자기 짝짝짝 짝짝 ~ 응원 박수 박자가 생각났ㅅㅂ니다.

보슬비 2015-11-23 17: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아직 이책을 읽지 않아서 곰발님 페이퍼를 읽지 않았어요. 다 읽은후에 그때 읽을겁니다. ^^
빨랑 도서관에서 책아 오너라~~

곰곰생각하는발 2015-11-23 17:44   좋아요 0 | URL
스포일러는 전혀 없습니다만, 책 읽기 전에 리뷰 먼저 보는 것은 재미를 반감시키기는 하죠.. ㅎㅎ

강가딘 2015-11-23 21: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저는 밀리언 셀러클럽말고 딴데서 스티븐킹 책을 출간했으면좋겠어요.
영어에서의욕설을 차라리 원문 그대로발음만 적어놓던지
완전히 한국식 쌍욕으로 바꿔놔서.. 특히 듀마키라는 책을 번역했던조영학이라고하는 번역가는
진짜 너무 싫습니다. 자기가 쓴책도 아니면서 왜 남의 책에다가 그짓거리를 하는지..
출판사가 하나 밖에 없어서 울며 겨자먹기로 읽긴하지만..

기억의집 2015-11-24 09:17   좋아요 0 | URL
저도 이 분 말 공감해요. 제가 롱워크를영어로 읽었는데, 킹 작품이 번역된 다른 작품들처럼 싼티나지 않아요. 절대로.... 스탠 바이미도 그렇고. 제가 한때 청소년 소설은 영어로 읽었는데, 킹 문체가 생각보다 진중해요. 번역본처럼 싼티 절대 안 나요!!!!!

곰곰생각하는발 2015-11-24 16:58   좋아요 0 | URL
ㅎㅎㅎㅎㅎㅎ.......
욕을 번역한다는 게...... ㅎㅎㅎㅎㅎ 번역가도 좀 난감할 겁니다. ㅎㅎ
밀리언셀러클럽이 제본에 신경을 안 씁니다.
톰 고든을 사랑한 소녀 읽다가 정말 뒤집어지는 줄 알았습니다. 역대급 발번역...
번역가 님들 신경써주세요~~

기억의집 2015-11-24 09: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러게요. 저는 젊어서부터 킹을 좋아해서 그의 책을 대부분은 아니더라도 신간은 나오면 대부분 사서 읽었는데, 예전에 고려원에서 킹 소설 많이 냈어요, 남자들이 무협지 보는 사람 취급하더라구요. 하하. 그래도 쟝르문학에 대한 생각이 많이 바껴져 가고 있긴 해요. 전 그래서 순문학에 대한 반감 혹은 반항심이 없지 않아요!!!

곰곰생각하는발 2015-11-24 17:04   좋아요 0 | URL
킹이 뭐 워낙에 학교 선생할 때 작문 선생이었으니 정통성을 가지고 있을 겁니다. 신기하죠 ? 왜 킹이 한국에서는 인기가 없는지 모르겠습니다. 사실 킹은 일종의 소수 팬덤 문화일 뿐이지 대중적이지는 안잖아요. 한국 독자들이 너무 순문학에 집착하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순문학 지지자들이 종종 하는 말이 장르 문학은 발로 뛰며 쓴 체험이 아니기에 형편없다고 말하는데, 전 순문학 대부분이(요즘 현대문학 순문학)에 발로 뛴 흔적을 찾질 못하겠습니다. 리얼리티가 문학의 모든 것으라고 착각하는 것을 보면 좀 그렇습니다. 하튼 이번 롱 워크 좋더군요. 재미는 1/2이지만 아.. 뭔가 깊이가... 전 이 소설을 굉장히 슬프게 읽었스비다.

비로그인 2015-11-27 14: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진심으로 하는 말인데 지금까지 쓰신글 다듬어서 책좀 내주시면 안될까요 ? 이게 속모르고 하는 소리는 아닌지 걱정입니다만...출판업계 사정을 잘몰라서요...근데 매번 북플와서 읽기도 힘들뿐더러 곁에 두고 봤으면 하는 글이 너무 많아요. 아 그리고 책으로 나와도 각종 감칠맛나는 비속어들은 제발 무삭제로 나오기를 ㅎㅎ

곰곰생각하는발 2015-11-28 09:50   좋아요 0 | URL
이 댓글을 출판업자들이 보아야 할 터인데 말이죠.... ㅎㅎㅎㅎ
나중에 프린트로 뽑아서 묶어서 보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비속어는 삭제하면 맛이 안 나죠.. 후후...
 
롱 워크 밀리언셀러 클럽 143
스티븐 킹 지음, 송경아 옮김 / 황금가지 / 2015년 11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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롱워크 : 국토대장정, 오이디푸스 그리고 복면가왕




                                                                       해마다 여름이 되면 : 연중 행사'처럼 진행하는 퍼레이드가 있다. 동아제약에서 진행하는 << 국토대장정 >> 이다. < 박카스 > 가 대한민국 대표 자양강장제라면, < 국토대장정 > 은 < 지신밟기 > 의 20/21세기적 문화 행사'다. 마을 사람들이 집집마다 돌며 땅을 다스리는 신령을 달래고 안녕을 빌던 풍속은 지금에 와서는 기업 스폰서를 받아 글로벌하게 확장되었다. 해남 땅끝에서 서울로 범위를 넓힌 것이다. 국토대장정은 일종의 답정굿'인 셈이다.  행사 취지는 분명하다.  맨발의 청춘들은 해남 땅끝에서 시작해 서울로 입성하는, 600km가 넘는 거리'를 밟으면서 나라의 안녕을 빈다. " 비나이다, 비나이다. 천지신명께 비나이다. 평화통일 이뤄 주시고(할렐루야~), 부국강명 이뤄 주소셔(아멘~) ! "   이 퍼레이드가 성공하자 여러 단체에서도 희망원정대, 국토횡단모험단, 나눔로드 따위로 행사를 진행한다.

 

 

몇몇 단체에서 진행하는 21세기 지신밟기 행사에는 참가비가 무료이지만 몇몇 단체는 참가비를 내고 참여해야 한다. 고생은 사서도 한다는 말이 < 딱 > 이다. 그런데 내가 보기에는 21세기 지신밟기 풍속 서사'는 < 기-승-전-國 > 이 아니라 < 기-승-전-家 > 이다. 주최 측에서는 대한민국의 자랑스러운 " 화려 강산 " 보며 자긍심을 가지라며 " 팔도 유람 " 시켜 줬으나 대원들 머릿속은 집 생각뿐이다. 당연한 결과'다. 지신밟기'란 원래 내 집의 안녕을 비는 기복신앙에서 파생된 풍속이지 않은가 말이다. 이 세상 모든 행사 취지는 " 좋은 취지 " 에서 시작하지 " 나쁜 취지 " 는 없다.  이명박(or 박근혜)은 항상 나쁘지만 취지는 항상 좋은 놈이다. 하지만 뚜껑을 열면 취지와는 다른 놈이 얼굴을 드러내는 법이다. 국토대장정에 참여한 청춘은 모두 오이디푸스'다. 오이디푸스가 " 퉁퉁 부은 발 " 이란 점에서 이 대회에 참가한 사람들은 오이디푸스'라는 말이다.

 

그들이 이 행사에서 깨닫게 되는 것은 극기나 애국 따위가 아니라 " 집 나가면 개고생 " 이라는 평범한 진리'다. 집 나가면 개고생이라는 것을 배우기 위해서 돈 내고 집 나가서 개고생 하는 게 국토대장정이라는 눈물 없이는 볼 수 없는 휴먼드라마의 주제'다. 아 !  쪽팔린 일이다, 이런 서사 앞에서 눈물을 흘린다는 것은. 그런데 좀더 비판적으로 접근하면 군사 문화의 잔재'가 도사리고 있다는 점을 발견하게 된다. 국토대장정 프로그램은 " 개인의 극기 " 를 다루는 게 아니라 " 집단의 극기 " 를 다룬다. 이 행사에 참가한 청춘은 독단적 주체가 아니라 조(組)의 일원'일 뿐이다. 그들은 팀의 일원으로서 팀워크를 강요받는다. 팀워크는 하나를 위한 전체의 희생을 강요한다. " 너만 힘드니? 나도 힘들거등 ! " 국토대장정이 중요한 가치라고 여기는 것은 << 완주 >> 이지만, 팀원 중 낙오자가 없을 때에나 빛나게 되는 가치'다. 특정인의 낙오는 곧 그 특정인이 소속된 팀 전체의 낙오로 간주되어 얼룩이 된다.  

 

여기서 낙오된 자는 나쁜 신체'라는 멍에를 쓴다. 그러다 보니 도중에 그만두고 싶어도 그럴 수 없다. 내가 대한민국에서 국토대장정'이라는 프로그램에서 파시즘적 군국주의를 읽어낼 때, 스티븐 킹은 고등학교 졸업반이던 1966년에 << The Long Walk >> 라는 소설을 쓴다(여러 출판사에 투고했지만 출판사는 모두 거절한다. 후에 스티븐 킹은 리처드 바크만이라는 가명으로 출간하게 된다). 번역하자면 " 오래달리기 " 이지만 오래달리기'라는 표현은 지나치게 자기계발서 제목 같아서 거부감이 든다. 차라리  " 국토대장정 " 이라는 이름이 그럴 듯하지 않을까 ? < 킹 > 은 오래 전에 이미 변방의, 어두컴컴한 대한민국에서 벌어질 한국판 국토대장정에 대해 비판적 견해를 피력한 것이다. 이 소설에서 어린 청춘들은 국토대장정과 유사한 오래 걷기 대회에 참여한다.

 

 

< 룰 > 은 다음과 같다 : ㉠ 경기에 참여한 선수는 최저 제한 속도는 6.5km 이상으로 행군해야 하며, ㉡ 행군 중 최저 제한 속도 이하로 떨어지면 경고를 받는다. ㉢ 이 경고 횟수가 3회를 넘어 4회에 이르면 탈락된다. ㉣ 참가 인원은 100명이다. ㉤ 최후의 1인이 될 때까지 게임은 지속된다. ㉥ 당연히 최후의 1인은 엄청난 금전적 보상이 따른다 - 는 줄거리. 아참, 중요한 것 하나를 빼먹었다. ㉦ 경고를 4번 받아서 경기에서 탈락하게 되면 .......  총살(즉결 처형)을 당한다. " 어때요, 킹답죠 ? " 깊이 있게 이 소설을 이야기하고 싶으나 스포일러 대방출이라는 어쩔 수 없는 덫에 빠지기에 생략하기로 하자. 이 소설은 스티븐 킹이 리처드 바크만이라는 가명으로 내놓은 두 번째 작품이다. 쉽게 말해서 리처드 바크만은 스티븐 킹의 복면가왕인 셈이다. 킹이 바크만이라는 이름을 사용하게 된 이유는 문단의 홀대'에 있었다.

 

 

당시, 킹은 문단으로부터 대중에게는 인기가 높지만 퀄리티는 떨어지는 싸구려 대중 작가'라는 평이 대부분이었다. 킹 스스로도 실력보다는 운이 따른 영광이 아닐까 라는 의심을 하게 된다. 그렇게 해서 탄생하게 된 복면가왕이 바로 리처드 바크만'이었다. 그가 리처드 바크만이라는 이름으로 고등학생 때 쓴 << 롱워크 >> 를 내놓자 평단은 호평 일색이었다. " 킹, 보고 있나 ?  장르 소설을 쓰려거든 바크만처럼 쓰시게나.  킹,  자네는 바크만의 발톱 때만도 못하다네...... " 장정일이 << 사계 >> 를 읽고 나서 이런 소리를 한 적 있다. " 스티븐 킹이 이 단편을 쉬어가는 의미에서 쓴 작품이라면 한국의 작가는 다 죽어야 한다. " 장정일이 이 소설을 읽는다면 똑같은 소리를 했을 것이다. " 스티븐 킹이 이 소설을 쉬어가는 의미에서 고등학생 때 쓴 작품이라면 한국의 작가는 다 죽어야 한다. "

 

에둘러 말하지 말고 서둘러 말하자면 : << 롱 워크 >> , 쥑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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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madhi(眞我) 2015-11-22 17: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난 사람은 참 이른 나이에 날아다니네요.

곰곰생각하는발 2015-11-23 00:36   좋아요 0 | URL
난놈은 난놈입니다. 1년에 장편(보면 페이지 수가 1000되는 게 만음) 2개씩 생산하는 거 보면
집단 창작 같기도 하고.... 미스테리한 인물입니다.

기억의집 2015-11-22 18: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여튼 글 참 재밌게 쓰심~

곰곰생각하는발 2015-11-23 00:36   좋아요 0 | URL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는데.. 지금 춤추고있슴돠

5DOKU 2015-11-22 23: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최근 <스탠 바이 미>를 읽었습니다만, 소설 속 인물들의 이야기나 글로서 등장하는 단편들을 들여다보면 내색은 하지 않았지만 킹 스스로도 장르와 순문학 사이의 정체성에서 많은 고민을 한 듯합니다. 그런데 저는 킹의 존재 자체가 그런 구분이 무의미하다는 증거라고 생각해요. 과연 킹 앞에서 플롯 중심이니 인물 중심이니 하면서 장르와 순문학을 구분할 자격이 있는 이가 얼마나 될까요. 직접 발로 뛴 흔적이 문장에 없다면 킹처럼 서사적 즐거움이라도 주든지 대개는 순문학이라는 이름만 달았지 책상머리 앞에서 쓴 건 별반 차이가 없는 것 같은데 말이죠. 그놈의 와닿지도 않는 주제의식 제대로 전달할 실력이 없으면 알레고리도 무의미할 뿐인데 말입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5-11-23 00:35   좋아요 0 | URL
낮에 거의 7시간을 자버렸네요. 난감하네요.... ㅎㅎㅎㅎㅎ 5 님의 지적에 박수 4000번 때립니다. 말씀대로 발로 뛴 문장이 없다며 순문학은 지랄을 하던데, 솔직히 요즘 순문학 발로 뜁니까 ? 그냥 책상머리에 앉아서 모르는 것은 네이버 뒤지지요. 그럴 바에는 아예 킹처럼 읽는 맛이라도 주던지...만날 가족 얘기. 아빠는 항상 폭력적이야. 아빠 땜시 트라우마 생겼어. 엄마는왜 만날 아빠에게 맞아 ? 엄마도 싫어... 만늘 이런 이야기. 질렸습니다.
 

 

 

 

 

 

 

 

 

 

 

 

 

 

 

 

 


 

 

 

 

소음과 소리  

 

 

 


 

 

 

           

                                      ​볕에 바짝 마른 무명 라운드T를 입으면 기분이 좋아진다. 그리고  청바지를 입고 밖을 나가면 몸가짐이 자유롭게 된다. 아무 바닥이나 풀썩 앉아서 잭 케루악 소설 << 길 위에서 >> 를 읽거나 무라카미 하루키 소설 << 상실의 시대 >> 를 읽는다고 해서 이상하게 보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청바지는 행동을 자유롭게 만드는 < 힘 > 을 가지고 있다. 먼지와 흙과 청바지는 친구요, 잭 케루악과 무라카미 하루키의 책'은 훌륭한 소품이다. 

 

반면,     양복을 입게 되면 행동에 제약이 따르기 마련이다. 정장 차림으로  길바닥에 풀썩 앉아서 잭 케루악과 무라카미 하루키 - 책을 읽다가는 행인들에게 미친놈이라는 소릴 듣기 딱이다. 그 장면은 마치 양복 입고 가야금을 타는 연주자 꼴이다(혹시 국정교과서라면 모르겠다. 양복 입고 길바닥에 앉아서 국정교과서를 읽는 모습은 왠지 근사해 보인다. 아저씨,  잘 어울리셔요). 어쩌면 인간의 행동을 조율하는 것은 < 마음 > 이 아니라 < 의복 > 인지도 모른다. 글씨체도 마찬가지'다.   나에게 시를 가르쳤던 시인은 신춘문예에 응모할 때 가장 명심할 사항은 " 글씨체의 종류 " 라고 말한 적이 있다. 이 세상 모든 시는 < 명조체 > 로 쓰여져 있다고.  곰곰 생각하면 그 시인의 지적은 맞다. 현대시를 굴림체나 궁서체로 인쇄한 시집을 본 적이 없다.

 

고딕체가 박힌  기형도 시집을 상상하는 것은 불가능하지 않을까 ?  시는 모두 명조체로 쓰여져 있었다.  하지만 명조체가 미학적으로 가장 뛰어나다는 소리는 아닐 것이다. 법정 출두 명령서가 명조체로 인쇄되어 있다면 끔찍할 것이다. 이처럼 때와 장소에 따라 서체도 다양한 법이다. 서체가 단 하나뿐인 국가는 불행한 국가'다. 글의 종류에 따라 서체가 다르듯이 날씨와 기분에 따라 그때그때 어울리는 서체'도 따로 있다.  개인적으로 오늘 같은 날은 맑은 고딕체'가 어울린다.  나는 얼굴보다는 목소리에 끌리는 유형이었다. 소리 중에서도 " 긁히거나 부딪치는 소리 " 를 유독 좋아했다. 내가 기계식 언더우드 타자기'에 끌리는 데'에는 팔 할이 < 소리 > 때문이었다.  월리엄 포크너, 스콧 피츠제랄드, 잭 케루악이 모두 이 타자기로 소설을 썼다.

 

- 영화 물랑루즈 오프닝

 

그리고 << 앵무새 죽이기 >> 에서 하루 종일 타자를 치는 캐릭터인 등장인물 이름이 언더우드 씨'였다. 하나 더 덧대자면 영화 << 물랑루즈 >> 에서 이완 맥그리거가 타자기 앞에서 타이핑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그 소품이 바로 언더우드 타자기다. 타자기 글쇠'가 잇달아 종이를 두들길 때 내는 소리는 한겨울에 마른 장작이 타닥타닥,  타는 소리 같기도 하고  한여름에 씨알 굵은 빗방울이 바닥을 두들길 때 나는 투두두둑, 하는 소리 같기도 해서  볕 좋은 대낮에 타자를 쳐도 " 우중(雨中),  깊은 밤에 타자를 치는 기분 " 이 들어 좋았다. 하지만 다른 이에게는 그닥 듣기 좋은 청음은 아니었을 것이다. 취향이 다르다 보니 남들이 옥구슬 굴러가는 CD판'을 좋아할 때,  나는 독한 위스키와 담배로 숙성된 탐 웨이츠나 밥 딜런 노래와 클린트 이스트우드 그리고 모건 프리먼이 만들어내는 목소리(들)을 좋아했다.  

 

맑고 고운 소리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보기에 이 후줄근한 늙다리 마초들의 목소리는 디지털이 만들어낸 소리'보다는 아날로그가 만들어낸 소음'에 가까웠을 것이다. 낡은 기계에서 쏟아내는 " 삐걱거리는 소리 " 말이다.  디지털이 아날로그를 시장에서 축출할 때 내세웠던 전략은 " 소비자들이 아날로그적 소리'를 공해로 받아들이도록 하는 전략 " 이었다.   기계 부속이 서로 맞물리면서 내는 소리는 어느 순간 < 소음 > 으로 추락하고 말았다. 디지털은 빠르게 소리를 제거하거나(무음)  소음을 조절하는 방식으로 시장을 점령했다. 디지털은 이렇게 외쳤다. " 사물의 소리는 포스트모던의 적이다 ! " 그들은 시계 초침 소리'마저 비판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사물은 점점 소리를 잃었다.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하지만 상황이 바뀌기 시작했다.

 

디지털이 아날로그를 쫒아내자마자 그들은 자신들이 공격했던 아날로그적 소음을 흉내 내기 시작했다.  디지털 카메라가 만들어낸 < 찰칵 > 이라는 소리와 키보드를 칠 때 디지털 회로가 기계식 타자기 소리를 재현하는 기능을 선보일 때마다 조지 오웰의 << 동물농장 >> 에 나오는 일곱 계명'이 떠올랐다. < 두 발로 걷는 것은 모두 적이다 > 라는 계명은 어느새 < 네 다리는 좋고, 두 다리는 더욱 좋다 > 로 바뀌어져 있었다.  디지털이 처음에 아날로그를 공격할 때도 이와 같았다. < 소음은 나쁘다 > 라는 계명은 어느새 < 소음은 나쁘지 않다 > 로 전략을 바꿨다.   소비자는 처음에는 CD에 열광했지만 이제는 LP가 주는 따듯한 청감을 이해하기 시작했다. 빛으로 소리를 읽는 방식보다 날카로운 바늘로 긁어 소리를 재생하는 방식이 더 인간적이라는 사실을 말이다.  

 

클린트 이스트우드'는 < 디지털 ㅡ 소음 > 에 의해 사라진 < 기계식 ㅡ 소리 > 를 재현할 줄 아는 몇 안 되는 재능있는 감독이었다. 그럴 수밖에 없다. 그는 할리우드에서 몇 안 남은 기계식 타자기-몸'이다.  영화 << 용서받지 못한 자 >> 는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독백으로 시작해서 독백으로 끝난다. 그는 많은 말을 하지 않는다. 대사는 간결하다. 그의 영화가 무엇보다도 좋은 이유는 장황한 대사로 상황을 설명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 영화는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최고작이었다(물론 이 결정은 << 밀리언달러 베이비 >> 를 보면서 후회했지만 말이다). 21세기 소비-자본주의 사회는 " 긁히는 소리 " 를 촌스럽거나 나쁜 것으로 취급하는 경향이 있다. 불협화음은 나쁘다는 것이다. 특히 한국 사회'가 그렇다. 부속과 부속이 맞물리면 소리가 난다.

 

아날로그 시계는 초침 소리가 들려야 정상이고, 아날로그 카메라는 셔터가 열렸다가 닫히는 소리가 나기 마련이며, 기계식 타자기는 글쇠가 종이를 세게 두들겨야 글자가 새겨진다. 하물며 다양한 입장과 이해 관계로 뭉친 인간 사회'는 오죽할까. 민주주의는 불협화음을 화음으로 만드는 과정을 존중하는 사회'다. 다시 말해서 화음은 불협화음으로 만들어졌다. 불협화음은 소음이 아니다. 박근혜는 이 사실을 모른다. 정말 무서운 사회는 시끄러운 사회가 아니다. 쥐 죽은 듯 조용한 사회가 비극적인 사회'다. 맞물리면 소리가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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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15-11-17 13: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랜만입니다.
오늘 글 참 좋군요.^^

곰곰생각하는발 2015-11-17 14:38   좋아요 0 | URL
요즘 이사하면서 조립 가구를 잔뜩 주문했더니 조립하는 맛에 그만 !
남자는 역시 조립인가 봅니다. 묘하게 짜릿한 구석이 있습죠....

stella.K 2015-11-18 13:55   좋아요 0 | URL
보여 주세요!

곰곰생각하는발 2015-11-19 14:17   좋아요 0 | URL
그렇지 않아도 포스팅했습니다. 한가할 때 올려야 하니 냉큼 올려야겠네요..

samadhi(眞我) 2015-11-17 14: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조금 전에 유시민과 조전혁 권희영 토론을 이제서야 봤는데요. 다행히 유시민 부분만 편집한 것으로요.
˝입헌공주제˝ 라는 얘기에 크하하 웃었습니다. 곳곳에 풍자와 해학이 숨어 있는 말들로 넘쳐났어요. 말도 안 되는 사람들과 얘기할 때 대화법. 완벽하더군요.

곰곰생각하는발 2015-11-17 14:39   좋아요 0 | URL
입헌공주제... ㅎㅎㅎ 그냥 공주로만 남아 있으면 다행인데
확실히 간사한 정치가보다 무식한 정치가가 100배는 위험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samadhi(眞我) 2015-11-17 14:41   좋아요 0 | URL
그러니까요. 다른 사람 말고 ˝가만히 있어야˝ 할 사람이 웃지 않는 공주인데요. 그런 사람이 살아있는 사람들에게 가만히 있으라고 하니 이거 원.

곰곰생각하는발 2015-11-17 15:03   좋아요 0 | URL
대가리가 멍청하니 꼬리들이 주인 행세를 하는 겁니다.

samadhi(眞我) 2015-11-17 15:10   좋아요 0 | URL
그러라고 뽑아놓은 꼭두각시 아니겠어요. 지들 맘대로 할 수 있어 참 좋겠지요. e편한세상 못지 않은 G편한세상.

곰곰생각하는발 2015-11-17 15:35   좋아요 0 | URL
결국 꼬리들만 제일(J) 편한 세상이 되었군요....

수다맨 2015-11-17 19: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명색이 대통령이라는 사람이 국가에 중대한 사건/사고가 있을라치면 외국에 나가 있더군요. 말씀하신 대로 무지한 데다가, 얍삽하기까지 하니 지도자로서의 자질이 제로점에 가까운 사람이 아닐까 싶습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5-11-19 14:18   좋아요 0 | URL
마오쩌뚱이 아마 책을 10만 권인가요 ? 그리 소장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마오쩌뚱은 똑똑한 정치인이었죠. 정말로 얍삽한 정치가보다 더 핵폭탄은 무식한 정치가죠. 얍삽한 정치가는 적어도 선악의 구별은 할 수 있는데 멍청하면 답이 없죠...

5DOKU 2015-11-18 18: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문득 밤마다 머리맡에 자연의 소리를 `내주는` 애플리케이션을 켜놓고 잠을 청하는 제 모습이 처량하게 느껴지네요. 인간은 안락함과 깨끗함이라는 핑계로 온갖 괴상망측한 콘크리트 건물들을 세워 자연스러운 소리를 몰아냈지만 결국 그것들이 진정한 안락함이자 깨끗함이라는 걸 인정할 수밖에 없는 듯합니다. 좋은 글 잘 읽고 갑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5-11-19 14:21   좋아요 0 | URL
자연의 소리... ㅎㅎㅎㅎㅎ. 왜 전화왔어여.. 이런 멘트 날리는 벨소리도 있잖아요. 고것도 일종의 자연의 소리를 모방한 소리. 별별 짓을 다하는구나 생각합니다.